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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진스키의 페만전 시나리오

    ◎①이라크,무조건 항복선언/②미의 공격에 후세인 굴복/③미,유혈대가 치르고 승리/④전쟁 장기화… 부시,곤경에/“중동사태 돌파구는 막후외교 뿐”/평화 해결이 희생 줄이는 길 이라크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페만사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해온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8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아직도 평화적인 해결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비밀협상 등을 통해서라도 이라크와의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진스키씨는 앞으로 진행될 미·이라크 대결국면을 4개의 시나리오로 정리하고 이라크와 전쟁을 벌일 경우 손쉬운 승리가 예견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평화노력이 경주돼야 한다고 말했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등 미국내 강경여론 대변자들에 맞서 현실적인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협상을 강조해 온 브레진스키씨는 다음과 같은 네가지 시나리오를 가상하고 있다. 첫째,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해 매일 전쟁위협을 계속하고 무조건 항복을 고집한다. 마지막순간 사담 후세인이 굴복해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하고 배상을 할 뿐아니라 자발적으로 군사력을 약화시킨다. 부시의 강경책이 평가를 받는다. 둘째,사담 후세인이 굴복하지 않고 1월15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부시는 「기습적으로 결정적으로」 군사작전을 감행한다. 수일 이내에 대규모 공습에 이어 미국의 사상자를 최소한 줄이고 이라크의 피해는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라크군은 패퇴하고 사담 후세인은 전복된다. 부시는 영웅으로 평가를 받는다. 셋째,사담 후세인이 굴복하지 않고 미국의 공습이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그 결과 미 지상군이 영국군 일부가 가담한 가운데 혈전을 벌이지만 비교적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 이라크의 파괴를 환영하고 있는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은 박수를 보낸다. 미국 국민여론은 분열되지만 대체로 최악의 경우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안도한다. 넷째,지상전이 수주 혹은 수개월간 계속돼 미국은 사상자수나 재정적으로 매우 큰 대가를 치른다. 미국이 전쟁에 동참시킨 국가들로부터 반발이 일어난다. 유럽국가들은 개별적으로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한 미국의 순진성을 비웃고 아랍국가들은 미국에 대한 증오심에 불탄다. 미국내 여론은 심하게 분열된다.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과 전쟁을 주장한 사람들,우방국과 전쟁부담을 공평하게 나누지 않은 국가들을 책망하게 된다. 브레진스키씨는 이 네가지 시나리오중 첫째 및 둘째의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라크를 파괴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걱정할 일이 없지만 셋째,넷째 시나리오가 더 현실성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나 이 결과로 중동지역에서 야기될 지정학적 혼돈을 우려하고 미국의 희생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시나리오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따라서 미국이 손쉬운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비밀협상,유럽주도에 의한 평화안,유엔 사무총장에 의한 중재안 등 마지막 순간의 평화노력을 환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 아랍 6국 정상회담/페만 방위기구 구성등 논의

    【도하(카타르) UPI 로이터 연합】 사우디아라비아등 페르시아만 협력협의회(GCC) 6개국은 22일(한국시간 23일 상오)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이후 처음으로 GCC 정상회담을 갖고 페르시아만 사태를 중점 논의한다. 사이프 빈 하셸 알 마스카리 GCC 대변인은 아랍에미리트연합·카타르·바레인·오만·쿠웨이트 등 GCC 6개국 정상이 모두 참가하는 이날 회담에서 페르시아만 위기와 관련된 문제들만이 논의될 것이며 쿠웨이트의 셰이크 자비르 알 아마드 알 사바 국왕이 아랍 지도자들에게 이라크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소식통들은 이날 회담에서 이번 페르시아만 사태가 해결된 후 GCC국의 연합방위체제와 군사력을 확대 구축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회담에서는 또한 이라크가 유엔이 설정한 내년 1월15일의 기한을 넘길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한 미군 주도의 50만 다국적군과 이라크와의 전쟁발발 가능성 및 그에 따른 대처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 한·소 정상회담을 보고(서울시평)

    ◎“제정러시아의 행보를 반추하라” 외교관계의 진행에 있어서 국민의 의식과 정부의 정책추진간에 시차가 생기는 일은 흔히 있다. 아예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시대나 정치체제하에서는 그것이 별문제가 될 리가 없다. 그런데 소련은 지금 격심한 국내정치의 혁명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소련국민들의 시각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위시해서 소련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적인 희망을 갖고 있는 정도가 소련국민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러시아 앞세우려 노력 그리고 소련에서는 과거 70년간의 공산주의 역사를 깨끗이 버리기를 주저하는 자세가 없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들은 「소련」을 뒤로 밀어 넣고 「러시아」를 앞세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소련으로서는 다만 군사대국을 이루었으나 다른 분야는 망치고 말았다. 이제 러시아를 부활시킴으로써 그들이 유럽문명의 일원이며 종교와 문화에 있어 위대한 독창적 전통을 갖고 있었다는것을 내세워 새로운 대국으로서의 자세를 세워 보려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실패한 역사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위상설정에 대한 기대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상태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수교하는 일에 대한 소련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의식간에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국민들의 북한 김일성 체제에 대한 태도는 비판적인 단계를 넘어 혐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한국에 대한 태도는 어떠할까? 극히 일부의 지식인 그것도 고르바초프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김일성 정권이 우리를 비판하던 그 수사적 표현에 젖어있는 것이 지배적인 현상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후진국 중 경제발전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북의 변화 촉진에 기대 지난 6월초에 있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가 마치 내키지 않는 일을 저지른 것 같은 표정이 있던 것에 비한다면이번 모스크바정상회담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결심을 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선입견인지 모르겠으나 고르바초프가 유럽의 정상들과 어울릴 때처럼 신나게 웃는 장면을 못 본 것 같다. 물론 국내문제가 어려워 크게 웃을 형편이 못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취재하던 어떤 TV의 기자는 붉은 크렘린궁성을 가리키며 우리나라 대통령이 별과 낫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는 저 높은 담 속에서 소련측 상대와 회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소련과의 관계설정이 이렇게 급속히 진행되는 데 어리둥절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저 좋은 세상이 오려나보다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좋은 세상이란 어떠한 것일까? 우리가 소련과의 외교관계 설정에 거는 기대는 북한 김일성 정권의 개방과 변혁을 촉진시켜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나아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고 남북한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가장 합리적이고 또 당연한 것이다. 소련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고 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북한은 1989년 11월 현재 소련에 13억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으며 1991년부터 경화로 소련의 석유를 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기왕에는 시장가의 반액으로 공급해왔는데 이 제도를 폐지하기 때문에 그만큼 소련의 영향력은 줄어든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모스크바선언에서 「남북한간에 정치적 군사적 대결의 종식」 운운하였으나 소련이 그 동안 표현해온 정책원칙을 천명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다만 소련이 그 동안 북한의 군사력을 부추기는 기본세력이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정책을 재고하게 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련은 한반도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라는 점에서 북한과 태도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은 기존 한미우호와 안보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는 최근 통상정책면에서 마찰을 빚어 전통적인 우방이라는 국민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젠 부산까지 영향력 이렇게 볼 때 한소 수교와 협력관계의 증진이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냉각화로 이어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중요시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예기치 않은 오해를 가져올 수 있고 이것이 또 외교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을 시장으로서의 가치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요시해왔다. 그러나 소련은 경제협력 못지않게 아시아지역으로의 전통적인 러시아적 세력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소련으로서는 북위 38도선이 종착역이었으나 러시아로서는 부산 또는 제주도가 종착역이었던 것이다. 외교에는 반드시 앞면과 뒷면이 있다. 우리의 한소 관계도 이같은 일반원칙의 거울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소,한반도 군축 검증 동의”/노대통령 기자간담

    ◎45년 냉전종식 큰 수확/경협규모 1월 실무협의때 결정/방소 3박4일 마치고 오늘 상오 귀국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16일 상오 8시(한국시간 하오 2시) 레닌그라드 영빈관에서 소련 방문 3박4일을 결산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남북한의 군사력이 상호 균형되게 하기 위해 지금까지 지원을 해주었던 나라들이 군비축소 문제도 관여해 합동으로 확인하는 장치를 만드는 등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설명했고 그도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한소정상회담에서 7·4공동성명 이후 북한이 약속을 깬 사실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했고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소련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문제와 관련,『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나의 한국 초청에 대해 빠른 시일안에 서울에 가겠다고 답변했다』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맹국인북한을 의식하는 것 같았으나 그가 북한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또한 소련의 국익을 위해 무엇이 더 도움이 될 것인가는 이미 판단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양 동시 방문 가능성이 희박함을 강력히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방소 결산에 대해 『해방 이후 45년간 지속돼온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소가 가장 큰 성과이며 지금까지 냉전체제의 상대국 대표국가와 냉전체제의 종식을 합의하고 상호 협력체제를 갖추게 된 점과 통일의 기반을 조성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 중국과도 관계를 정립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경협문제와 관련,『경협규모는 이번에 정하지 않았으며 내년 1월초 실무협의를 통해 결정키로 했다』면서 『소련이 현재 소비재가 급한만큼 소비재의 연불수출과 생필품 생산을 위한 군수산업의 민수산업 전환,합작투자·플랜트수출·도로·항만·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우리 기업이 참여하는 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분명한 논의가 있었으며 그는 유엔의 보편타당성의 원칙에 나와 의견을 같이했고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소 외무장관회담에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6·25전쟁과 KAL기 격추사건에 대한 언급을 소련 정부의 공식사과로 간주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정상회담에서도 과거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언급이 있었다』고 소개하고 『소련 외무장관의 입장표명을 소련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북한체제와 북한 지도층에 대한 의견교환이 있었으나 인물 하나하나에 대해 좋다 나쁘다는 식의 논의는 없었다』면서 『북한도 결국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시간이 가면 반드시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귀국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청와대회담을 가질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런기회가 오리라고 본다』고 말해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 뒤 『현재 해외문제에 여러 가지 정리할 일이 있어 개각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나 정리를 다하고 겨를이 생기면 개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닌그라드 출발 【레닌그라드=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3박4일간의 소련 방문 일정을 모두 끝내고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레닌그라드 폴코보공항을 출발,귀국길에 올랐다. 노 대통령은 17일 상오 서울공항에 도착,귀국인사를 통해 방소결과를 직접 밝힐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낮 소브차크 레닌그라드 시장이 영빈관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국의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 이 도시를 방문한 것은 냉전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 두 나라가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세계에 밝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 20분(한국시간 하오 4시20분) 레닌그라드시 승리의 광장에 있는 시 수호기념비에 헌화하고 이오페 물리기술연구소를 시찰했다. 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난 뒤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헤르미타지박물관도 둘러봤다.
  • 한·소,“한반도 평화정착 노력”/노대통령·고르바초프 모스크바선언

    ◎남북대화 지지·경협확대 합의/정상회담/고르비,방한초청 수락 【모스크바=이경형 특파원】 노태우 대통령은 방소 이틀째인 14일 상오 11시(한국시간 하오 5시)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문제 해결에 군사력사용을 배제해야 하며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이날 2시간15분간에 걸쳐 진행된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남북한 문제와 관련,먼저 신뢰구축을 통해 단계적인 군축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방안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한 뒤 『통일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나 소련은 이에 도울 일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고 말하고 『남북 통일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또 『한소 관계발전이 남북 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의견을 일치시키고 『유럽에서 긴장완화와 화해가 이룩되었듯이 아시아에서도 화해와 평화가 정착되어야 하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는 아시아 평화의 관건이 된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이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가입문제에 대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한반도 평화정착은 물론 남북한간의 협력증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며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조속히 가입하는 것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바람직하다』면서 북한의 조속한 핵안전협정 가입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유엔의 보편성원칙·핵확산의 반대 등 소련의 입장을 북한에 여러차례 전달했다는 뜻만 밝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안의 민감성에 비추어 더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를 유보키로 양국간에 양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대통령은 한소 쌍무 관계발전에 만족을 표시한 뒤 양국의 잠재성이나 경제적 상호 보완성에 비추어 더욱 심화될 것임을 다짐했으며 경협이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1월중순 양국 정부대표단의 회담을 통해 마무리 짓기로 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이날 합의내용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을 위해 양국의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가기로 하는 내용의 「한소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을 채택,서명한 후 이를 발표했다. 이 모스크바 선언은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사용,타국의 희생하에 자국의 안보 확보,또는 모든 관계 당사국간의 합리적 동의에 입각한 정치적 합의 이외의 방법에 의한 국제적·지역적 분쟁의 해결을 인정치 아니한다』고 분쟁해결 수단으로서의 무력 불인정을 천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한소간의 불행했던 과거사와 관련,6·25전쟁·KAL기 격추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은 채 『양국 관계는 과거 냉전시대의 불행했던 관계,불행했던 일을 청산하는 바탕 위에서 양국 선린우호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기본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날 하오 모스크바대학에서 가진 연설에서도 『스탈린시대 나라를 불바다로 만든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83년에는 소련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여객기가 피격당했다』고 상기시키고 『한소 양국은 어두웠던 지난날의 불행을 씻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날 단독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가졌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공식으로 한국방문을 초청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노 대통령의 초청에 깊은 사의를 표명하고 방한시기는 추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회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한소 양국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선린·우호협력관계를 증진시키기로 합의했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나의 방한초청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한국시간 15일 상오 1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크렘린궁에서 주최한 공식만찬에 참석,답사를 통해 『나의 모스크바 방문기간중 양국간에 교류협력관계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확고한 틀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방소 사흘째인 15일 상오(현지시간)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 크렘린궁으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예방,작별인사를 나누고 공식환송식에 참석하며 한소 경제인 및 학계대표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레닌그라드로 떠난다.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 강영훈 총리 기조연설

    나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두차례의 고위급회담과 실무대표접촉 과정에서 제기해 온 귀측의 여러가지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수용하여 다음과 같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의 수정안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제1조,남과 북은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상대방의 체제를 존중하며 상호 내부문제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분쟁문제를 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상호 비방·중상행위를 일체 중지한다. 제2조,남과 북은 민족성원들이 서로 상대방 실상을 잘 알 수 있도록 하며 이를 위하여 신문·라디오·TV 및 출판물의 상호 개방과 교류를 실시한다. 제3조,남과 북은 민족전체의 복지향상과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경제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고 각 분야의 인적교류와 협력을 실시하며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통행·통신·경제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다. 제4조,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아무런 조건없이 즉각 실시하며 이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추진한다. 제5조,남과 북은 군비경쟁을 지양하고 무력대치상황을 해소하기 위하여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고 단계적인 군비감축을 실현해 나간다. 제6조,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의 침략이나 파괴·전복행위를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다. 제7조,남과 북은 현 휴전체제를 남북간의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남북간의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국제적인 평화보장장치를 마련한다. 제8조,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의 경쟁과 대결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이익과 자존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9조,남과 북은 남북교류협력 분과위원회와 남북정치군사 분과위원회를 합의서 발효 후 1개월 이내에 설치한다. 남북교류협력 분과위원회에서는 교류협력 실현문제와 통행·통신 및 경제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문제를 협의 해결하며 남북정치군사 분과위원회에서는 신뢰구축문제와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 채택문제를 협의 해결한다. 제10조,이 합의서는 남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상대방에게 통고한 날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특히 나는 「기본합의서」 제6조에 명시한 불가침 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을 좀더 자세히 밝히고자 합니다. 우리가 남북간에 불가침에 대한 합의를 이룩하려 하는 목적은 한마디로 한반도에 전쟁재발의 위험을 제거하고 평화공존의 기틀을 확보하면서 평화통일의 길을 닦아 나가자는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간에 불가침에 대한 약속이 진정한 가치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첫째로 쌍방간에 그것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둘째로,최소한 상대방 체제를 부정하고 파괴·전복시키려는 정책이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셋째로,남북간에 불가침에 관한 약속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불가침의 이행을 보장하는 확고한 보장장치가 강구되어야 합니다. 나는 평화정착과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측의 분명한 의지를 밝혀두기 위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한후 정치군사 분과위원회에서 협의·해결해야 할 불가침에 관한 우리측 방안을 다음과 같이 미리 제시해두는 바입니다. 1.쌍방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허용하지 않으며 어떠한 형태의 침략행위도 하지 않는다. 2.상호간에 야기되는 의견대립과 분쟁을 당국간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3.불가침의 영역은 1953년 7월27일자 군사정권에 관한 협정에 따라 남과 북이 각각 관할해온 영역으로 한다. 4.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정책노선을 포기하며 상대방 체제를 전복 또는 교란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 5.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상태를 해소하고 불가침을 확고히 보장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①군사정보를 교환하고 군 인사간의 상호 방문 및 교류를 실시한다. ②일정규모 이상의 모든 부대 기동훈련이나 이동을 사전에 상호 통보하고 참관단을 교환 초청한다. ③우발적 무력충돌과 같은 군사적 긴급사태를 예방하고 이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군사당국자간에 직통전화를 설치 운용한다. ④무력침략을 상호 억제하기 위해 남북간 군사력의 불균형을시정한다. ⑤군사정권에 관한 협정을 준수하여,비무장지대를 실질적으로 완충지대화하며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한다. ⑥이상의 보장조치의 이행을 검증하고 기습공격을 예방하기 위하여 현장검증단과 상주감시단을 교환 운영한다. 6.불가침에 관한 합의사항의 이행에 필요한 실천조치를 강구하기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5 7.불가침에 관한 국제적 보장조치를 강구한다. 8.쌍방이 이미 체결한 양자 또는 다자간의 조약이나 협정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 1백여 이민족 연방/오늘의 소련 국세

    ◎2천만㎢ 면적에 인구 2억9천만명/12국과 접경… 한인 50만명 거주 추정/개혁추진속 침체경제·민족분규 몸살 한때는 붉은 곰·철의 장막·동토의 나라를 먼저 연상케했던 소련이 노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15개 공화국과 1백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연방국가 소련은 유라시아대륙의 북부에 위치,세계 육지면적의 6분의 1이나 되는 2천2백40만㎢의 광활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다.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쳐 동서로는 1만1천㎞,남북으로는 5천㎞에 달하는 광대한 이 나라는 세계 최장의 국경선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모두 12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인구는 90년 현재 2억8천9백만명으로 중국과 인도 다음의 세계 제3위이며 인구밀도는 1㎢당 13명을 약간 웃돈다. 정식명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라는 국호가 공식채택된 것은 1917년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진후 22년 12월30일에 개최된 제1차 전소련 소비에트대회에서 였다. 처음에는 러시아연방,자카프카즈연방,우크라이나공화국,백러시아공화국 등 4개 사회주의국가 연방으로서 성립했다. 그뒤 일부 연방의 해체에 따른 새 공화국의 탄생,그밖의 공화국의 가입과 통합 등을 거쳐 지금은 15개의 공화국(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우즈베크 카자흐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다비아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15개 공화국의 통치구역내에는 각기 상이한 소수민족들이 자치권을 인정받아 20개의 자치국,8개의 자치주,10개의 민족관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민족구성은 러시아인(51%)·우크라이나인(15%)·우즈베크인(6%) 등 12대민족이 전체 인구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개는 유럽계이지만 아시아계도 상당수 혼재해 있다. 현재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의 수는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1백여개 이상의 소수민족 가운데 수적으로 29위를 차지한다. 소련의 공용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민족수와 거의 같은 숫자의 언어가 민족어로 사용되고 있다. 소련은 1917년 11월7일의 혁명으로 로마노프왕조를 무너뜨리고 탄생한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다. 24년 레닌이 죽자 대권을 잡은 스탈린은 28년부터 2차대전까지 3차례의 5개년 계획을 실시,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를 이룩했으며 농업을 집단화 했다. 오늘날 소련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이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4년말부터 38년까지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태동한 사회주의국가들의 대부가 됐다. 그후 흐루시초프(53∼64년),브레즈네프(64∼82년),안드로포프(82∼84년),체르넨코(84∼85년) 등을 거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세계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은 85년 3월 현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시대를 맞으면서 개혁과 개방의 탈바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헌법개정을 통해 공산당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등 일련의 대개혁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지금 이같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경제문제와 각 공화국의 분리 독립요구,민족문제등 소 연방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양대난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동구 대변혁의 기적을 만들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의 확산과 군부의 동요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고르비의 개혁을 지원하려는 EC 등 서방측은 소련의 취약한 경제구조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특히 심각한 생필품 부족현상은 국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70년대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의 저하,낮은 투자효율 등은 86년부터 시작된 제12차 5개년경제계획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 교역확대보다 합작에 눈돌려라/한·소 경협 본격적 궤도진입에 부쳐

    ◎시장경제체제 못 갖춰 신중한 접근 필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대소 경제진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지도부가 급격한 정책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즉 이 나라를 70년 동안이나 지배해 오던 계급투쟁 우선주의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낡은 사상 대신에 모든 정책의 기본을 전인류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핵전쟁시대의 신사고에 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소련은 신사고에 입각한 대외평화·공존외교정책을 펴면서 경제개편(페레스트로이카)과 정보공개(글라스노스트)로 민주화와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고도의 기초과학기술과 거대한 잠재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군비와 체제적 비효율성으로 해서 소련경제가 낙후되고 국민생활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대로 가면 21세기에는 2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위기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전환에는 많은 애로가 뒤따르고 있다. 민주화에따라 각 공화국정부와 연방정부간의 마찰,민족간의 갈등,각계각층간의 갈등 등으로 해서 정치·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시장경제화에 따라 성장둔화,물가상승,소비재부족,근로의욕 감퇴 등 각종 모순으로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동구와 달리 시민사회의 경험이 없는 소련으로서는 민주화와 시장경제에의 이행이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고 이의 달성에는 오랜 세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어떻든 현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잘 알 수는 없지만 고르바초프는 보수파를 등에 업고 정치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면서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혼란을 수습함으로써 개혁파와 국민을 달랠 것으로 예견된다. 소련은 부시·고르바초프간의 말타회담을 통해 뜻을 같이 한 바와 같이 소련의 우랄산맥 이서와 동구,EC를 묶는 대시장을 형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우랄산맥 이동 특히 시베리아 극동지역의 장기개발계획을 추진하여 아시아태평양 경제권의 일원이 되어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었다. 역시 소련의 꿈은 피터대제 이래로 대국주의에 있고 결코 우리의 원조대상이 될 약소국가는 아니다. 막강한 군사력,고도의 기초과학기술,풍부한 자원을 지닌 강대국가인 것이다. 그 동안 다만 주인이 없는 경제운영이 되어 당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뿐이다. 요컨대 소련은 마르크스에서 벗어나면서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기울어지려는 동구와는 달리 마르크스를 버리지 않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입각해서 소련을 재건하려는 것이다. 소련은 극동지역 장기개발계획에 따라 경제기반을 극동방면으로 이동시키면서 21세기가 환태평양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아시아태평양 경제대권에 참여하는 것이 경제현대화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의 경제교류에 의한 경제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소련의 정치적 배려도 도외시될 수는 없다. 소련은 한국과 경제교류를 통해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보호무역주의를 강력히 내세우는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등장시킴으로써 일본으로부터 여러 가지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4공화국이나 제5공화국도 한소 관계개선과 경제교류 확대를 내세우는 북방정책을 추구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결외교라는 전례가 한소 관계개선의 장애요인이 되어 실현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6공화국의 북방정책은 대립외교 및 북한고립화 정책을 지양한 7·7특별선언을 통해 대북한 공존노선을 표명함으로써 한소 경제교류의 걸림돌이 제거되었다. 특히 올림픽 개최를 전후하여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한소 관계는 급격히 개선되었다. 특히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지난 9월의 한소 외교정상화,이번의 노 대통령의 방소가 한소 관계가 급격히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대미 무역흑자로 통상압력을 받아왔고 대일무역적자로 무역마찰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대소 경제진출은 새로운 시장개척에 의한 시장다변화와 북한 개방화 유도에 따른 통일기반조성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이리하여 이미 한소 무역고가 10억달러에 달했고 일부기업이 합작투자에 손을 대었다. 소련은 무역보다도 합작투자를,더 나아가서는 시베리아개발 참여를 바라고 있다. 우리로서도 소련의 기초과학기술과 자원이 필요하고 수출시장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거니와 우리의 기술과 경험을 살려 도로·주택·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창설에 참여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미 미국과 일본도 대소 경제진출을 적극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소련의 기초과학기술과 응용기술 결합에 의한 첨단기술의 발전을 기대하고 싶다. 이번 노 대통령 방소에 의한 한소 정상회담은 획기적인 관계개선으로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한중 관계개선을 촉진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유엔가입 기반을 마련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역협정,2중과세방지협정,과학기술협정 등의 체결로 경제교류확대 기반이 조성되면서 투자보호협정 체결까지 진전될 전망을 안고 있다. 또한 대소 경제협력 자금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이다. 한소 경제교류는 궁극적으로 양국에 도움이 될 것이며 앞으로 무역규모와 경제협력이 급격히 증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활로를 북방 경제진출에서 찾으려는 우리의 적극적인 북방진출 자세와 소련의 경제위기가 맞물려 한소 경제관계가 급진전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장에 큰 성과를 얻어 당면한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풀어나가기에는 아직은 미흡하다. 소련의 정정이 불안하고 경제교류 확대에 필요한 제도가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우리와 체제가 다르고 루블화의 비교환성 등도 그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고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 장기적 전망에 따라 실속있는 경제교류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제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시기에 30억달러나 되는 막대한 경협자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대소 접근을 하는 우리 입장은 신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것을 우리는 무역이나 합작투자와 연계시키고자 하지만 소련은 보다 많은 현금차관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대소 진출기업들간의 과당경쟁이 문제되고 있어 이에 대한 방지대책도 요구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의 너무 성급한 대소 진출이 우리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선진우방국과의 사이에 큰 금이 가게 해서도 또한 안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북방진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대소 진출을 서두르면 우리 이익보다 상대방의 의도에 휘말리기 쉽다. 역시 소련은 세계에서 대국으로 군림하려는 꿈을 버리려 하지 않고 핵무기를 제한하는 선의 군축을 할 뿐 다른 면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을 것이다. 대소 접근은 필요하나 신중이 뒤따라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 대한교류 확대는 현명한 선택/노대통령 방소앞서 노보스티통신 보도

    ◎일은 영토요구로 협력에 장애 구축 【도쿄 연합】 소련 노보스티 통신은 지난달 29일자에 「대한 교류확대는 소련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전재해 눈길을 끌었다고 일 도쿄(동경) 신문이 8일 전했다. 다음은 노보스티통신의 기사 전문이다. 오는 13일에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는 뉴스를 모스크바는 한소 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최근 수주일 동안 서구 여러나라 지도자들과 정력적으로 대화를 전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극동지역을 시야에서 멀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는 그 건설적인 의도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 계획을 끈기있게 실현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욕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양국간의 실무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그 전망이 명확하게 되고 있다. 소련측도 한국측도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대상으로서 시베리아·극동지역이 올라있으며 경제접촉의 전망이 밝다는 점에는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방소는 극동에서 소련 외교의 우선 항목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특히 소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확히 극동에서 소련의 관심에 일정한 변화가 일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일본측이 일소 경제관계의 발전을 대소 영토요구의 실현과 직접 묶어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의해 상호 협력의 도상에 인위적인 장애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동등하게 한국과의 실무교류를 확립시키는 것은 소련의 무역관련 부처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 가지 더 첨언할 것은 일왕의 즉위식을 전후해 각국 수뇌가 접촉하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미 국방부에 새로 이 군사기지를 제공한다고 하는 합의가 이루어져 주목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군사적 대치의 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중에 긴장완화에 반하는 것임이 명확하다. 소련과 한국이 상호 이해의 달성과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집 가능성을 찾는 이번 한소 수뇌회담은 평화를 원하는 아시아에 대해 이 지역에서의 외국 군사력 증강에 관한 어떠한 협정보다도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 유럽배치핵 대폭 감축/나토,국방회담서 합의

    【브뤼셀 로이터 연합】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7일 냉전시대의 유럽배치 핵무기를 대폭 감축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일부 현대식 핵군사력은 평화의 보장장치로서 보유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나토 국방장관들은 이날 브뤼셀에서 동서관계변화에 따른 나토의 군사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이틀간의 회의를 마친후 발표한 성명에서 나토의 군사전략을 수립하는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고 전제,『이 일은 앞으로 나토가 유럽에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그러나 『우리는 나토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유럽에 배치됐고 또한 지금까지 필요한 곳에 보유하고 있는 핵 및 재래식 군사력을 적절히 혼합,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덧붙였다.
  • 소 태평양함대 증강/핵잠함등 10척 배치

    【도쿄=강수웅특파원】 냉전 종식과 함께 유럽지역에서의 소련 군사력 삭감과는 정반대로 극동에서는 소련이 올해에도 계속 태평양함대에 최신예 원자력 잠수함 3척을 포함한 약 10척,12만t의 전력을 증강했다고 일본 산케이(산경) 신문이 6일 국제군사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올해 태평양함대에 배치된 것은 오스카급 원자력 탄도미사일 잠수함·델타 3급 원자력 탄도미사일 잠수함 및 아크라급 원자력 공격형 잠수함·우타로이급 미사일 구축함·스라바급 미사일 순양함 등 이라는 것이다.
  • 유엔 무력사용 결의(사설)

    유엔 안보리는 내년 1월15일까지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해 다국적군이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은 1950년 북한이 남침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결의안을 승인한 바 있다. 유엔 결의안은 내년 1월15일 이후 자동적으로 무력을 사용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이라크의 반응 여하에 따라 내년초 중동에서 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사태를 예고하는 것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유엔은 지난 8월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 이후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와 모든 인질석방 등을 요구하는 10차례의 결의안을 채택했으나 부분적인 인질석방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결의안은 이라크가 앞서의 결의안들을 이행토록 촉구하는 최후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한편 예비선전포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페르시아만 위기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최근 복잡하고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냉전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평화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유럽안보협력회의 등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현 중동위기의 해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파리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연쇄회담을 가진 데 이어 중동을 순방,아랍제국의 수뇌들과 만나 걸프만사태를 협의했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바그다드에 대해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고 인질을 석방하지 않으면 유엔의 강력한 결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은 커다란 태도변화였다. 무력사용에 미온적이거나 반대의사를 가지고 있던 프랑스와 중국도 그러했다. 유엔의 이번 결의는 평화적 해결 노력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음을 말해준다. 평화해결에 따르는 시간과 정치·경제적 부담을 느끼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어렵사리 이루어진 세계적인 평화공존과 화해무드가 국지분쟁으로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 공통인식이 바탕을 이룬 것이다. 유엔의 집단안보로 있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평화위협을 방지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도 우리는 평가한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음을 우리는 감안한다. 때문에 최종기한내에 평화적으로 해결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전쟁이 가져오는 군사적·경제적 손실까지를 전제하고 있는 유엔결의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지원이 현실적으로 뒤따를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서방세계가 병력을 파견했거나 군사비를 분담키로 했다. 우리 정부도 2억2천만달러의 재정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한국군의 파병이 거론되기도 했다. 때문에 유엔결의가 앞으로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석유라인의 확보라는 절대명제와 건설업체·현지동포의 안전문제가 페르시아만사태와 맞물려 있다. 새로운 사태 발전에 대응하는 태세가 더욱 강조되는 시점이다. 무력행사는 분쟁해결의 최후 방편인 전쟁을 말한다. 그럼에도 이라크는 유엔결의를 무시하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반응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가 유엔결의에 승복하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이라크의 국운과 국민의 운명은 물론 세계의 평화가 걸린 문제다.
  • 유엔,이라크 무력제재 결의/한국전 후 처음… 중국 기권

    ◎철군시한 내년 1월15일/부시,“평화적 해결 희망”… 후세인은 불복선언 【유엔본부(뉴욕) AP 로이터 연합】 유엔 안보리는 29일(한국시간 30일 아침) 이라크가 내년 1월15일까지 점령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이라크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력 사용을 승인하는 결의를 찬성 12,반대 2,기권 1표의 압도적 다수로 채택,지난 50년 한국전쟁 이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회원국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유엔의 이름으로 허용하는 역사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날 하오 2시(한국시간 30일 새벽 4시) 이례적으로 각국 외무장관들이 대부분 직접 대표로 참석해 안보리회의로는 최고위급으로 개최된 이날 표결에서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12개국이 찬성한 반면 쿠바와 예멘은 반대표를 던졌으며 거부권 행사 여부로 주목을 받았던 중국은 기권했다. 이날 회의에는 미국과 영국·프랑스·소련·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과 캐나다·콜롬비아·쿠바·에티오피아·핀란드·말레이시아·루마니아·자이르·예멘·코트디부아르 등 10개 비상임이사국을 포함,15개 이사국들이 모두 참가했으며 특히 예멘과 코트디부아르만이 유엔대사가 참석했을뿐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외무장관들이 직접 회의장에 나왔다. 이날 결의안은 특히 미국과 소련·캐나다·프랑스·영국·루마니아가 공동 발의에 나서는 등 냉전시대의 동서 양진영이 단합,적극적으로 결의채택에 보조를 맞췄다. 유엔의 45년 역사상 회원국에 대한 유엔의 군사력 승인 결의가 채택된 것은 지난 50년 7월7일 한국전 당시 유엔이 북한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주도의 연합군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승인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통과된 결의는 이라크에 대해 지난 8월2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유엔이 이라크군의 무조건적인 철수를 요구한 안보리 11개 결의를 이행하도록 재차 촉구하는 한편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내년 1월15일로 못박고 기한내에 철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유엔 결의를 집행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행할 수 있도록 승인하고 있다. 한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안보리회의 개최에 앞서 28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라크는 폭풍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이라크에 전쟁이 강요될 경우 아랍과 회교도들이 명예를 걸고 싸울 것』이라고 말해,안보리의 쿠웨이트 철수 요구를 무시할 뜻을 명백히 선언했다.
  • 부시의 대 이라크 정책에“십자포화”/미상원 군사위 페만청문회 안팎

    ◎“무력대응보다 장기적 경제봉쇄가 효과적”/슐레진저 전 국방등 개전연기를 강력 촉구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을 축출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의 군사력 사용 승인결의안 채택(예정)과는 대조적으로 미 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 이라크 경제제재조치가 성공을 거두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며 군사행동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원 민주당 총무인 리처드 게파트 의원은 28일 민주당지도부로는 최초로 『이라크군 축출을 위한 조기 무력사용에 반대한다』고 선언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인내하는 힘』의 정책을 추구하도록 요구했다. 그는 이날 미 상의 연설에서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기 전에 미 의회와 국민은 대 이라크 고립화 및 경제제재 정책이 실패했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부시는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원 군사위의 페르시아만 사태 청문회에서도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과 2명의 전직 합참의장이 『대 이라크 경제제재는 이 시점에서 최선의 선택이므로 이 조치가 효과를 나타낼 때까지 기다려야한다』고 강조,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부시 대통령이 의회와 상의없이 전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 청문회에서 샘 넌 위원장은 『대 이라크전을 서두를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민주당측 동료의원 9명으로부터 공감을 샀다. 상원의 군사문제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넌 위원장은 『부시의 사우디주둔 미군 증강 결정은 미국정책의 기본적인 변경』이라고 주장하며 『쿠웨이트의 무력해방이 과연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시간은 우리편』이라면서 『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내면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27,28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증언요지다. ▲제임스 슐레진저(전 국방장관)=대 이라크 경제제재 조치는 결국 성공을 거두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철수케 만들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경제제재조치가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처음엔 제재조치가 효과를 나타내는데 1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개월간 이라크의 민간부문생산은 약 40%가 감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수출은 전무했고 이에 따라 수출수익은 떨어졌다. 물자밀수에 필요한 경화는 보유고가 줄어들고 있다. 경제압력은 이라크의 사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만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미국의 기본목표가 쿠웨이트의 해방이 아니고 이라크 군사능력의 파괴나 자신의 제거라고 믿을 경우 경제제재조치의 효과는 감소될 것이다. ▲윌리엄 크라우(전 합참의장)=경제제재가 효과를 나타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경제제재는 결국 후세인의 무릎을 꿇게 할 것이다. 그 효과가 6개월 후가 아니라 12∼18개월 후에 나타나더라도 그것으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다. 나는 인내를 권한다. 전쟁은 적절치 않다. ▲데이비드 존스(전 합참의장)=국론통일을 위해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 군사력 사용의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페르시아만에 40만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전술이다. 또시기상조다.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불필요하게 전투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현 병력 23만명에 대한 보완은 가급적 적게 하고 나중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로버트 버드(상원 세출위원장)=경제제재의 효과 발휘를 기다려야 한다는 크라우제독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의 얘기는 국민의 소리다. 그가 역설한대로 인내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 시간은 후세인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이다. 군사행동은 취해야 할 때에 취해야 국민이 지지한다. 1년이나 1년반이 걸리더라도 기다려야 할 것이면 기다려야 한다. ▲헨리 키신저(전 국무장관)=경제제재는 바람직한 효과를 나타내지 않을지 모르며 이라크를 쿠웨이트에서 물러나게 하기 보다는 협상제의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 시간을 끌면 국제적 해결도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이 페르시아만에 40만 병력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투돌입 결정을 내려야 한다.
  • 안보리,「이라크 무력제재」 결의

    ◎“내년 1월15일까지 철군 안하면 군사력 사용을 허용”/후세인,평화회담 재촉구 【뉴욕·바그다드·니코시아 외신 종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5개 이사국은 29일 하오(뉴욕시간)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 주재로 외무장관급 회담을 열어 지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40년만에 유엔사상 두번째로 이라크가 오는 91년 1월15일까지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군사력 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 들어갔다. 미국의 주도로 추진돼 온 이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은 그동안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놓고 내년 1월1일까지로 하자는 미국의 안과 빨라도 내년 1월말쯤이 적당하다는 소련·프랑스 등의 안이 대립해 왔는데 양측이 그 중간선인 1월15일로 타협,29일 결의안이 채택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무력사용 결의안이 채택된다 해서 당장 이라크에 대한 연합군측의 공격이 시작되지는 않겠지만 이 결의안은 이라크를 응징해야겠다는 미국의 결심을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이 보증하는 것이어서 미국이 언제든 마음놓고 이라크를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으며 이라크측은 더욱더 세계로부터 고립돼 궁지에 몰릴 것이 확실하다. 28일 현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 비상임이사국중 상임이사국 중국과 비상임이사국 예멘이 기권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쿠바만이 반대하고 있을 뿐 나머지 12개 이사국은 대 이라크 무력사용 결의안을 지지할 것으로 보여 유엔주재 외교관들은 결의안통과가 거의 확실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89년 이후 미국을 방문하는 중국의 최고위 관리인 전기침은 자신이 29일중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혀 결의안 표결을 앞둔 중국의 입장에 마지막 수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한편 이라크는 28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협상을 제의하면서 결의안이 통과되더라도 결코 굴복치 않을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도 관영 INA통신을 통한 성명에서 유엔이 이중기준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중동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쿠웨이트 점령과 팔레스타인 문제와의 연계해결 요구를 되풀이 했다.
  • “동아시아,무역경쟁시대로/냉전이후 새 질서 전망/WP지

    ◎소 영향력 줄고 중·일이 대체세력 부상/북은 핵개발과 미군 철수연계 말아야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동아시아를 보는 미국과 소련의 시각이 현저하게 접근해가고 있으며 소련당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는 한편 북한의 핵개발계획을 주한미군 주둔과 연계시키지 않고 중지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26일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냉전시대후의 동아시아 질서재편을 조망하는 장문의 기사에서 냉전시대가 끝남에 따라 동아시아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연대가 변모하고 있으며 소련의 영향력이 감소되는 가운데 중국의 지배와 일본의 팽창을 두려워해온 아시아 각국지도자들은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역할을 중국 및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인도네시아·싱가포르·중국·베트남과 북한에서 노령의 지도자세대가 무대를 떠나고 새로운 세대가 국가이익과 안보를 목표로 경쟁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정치적 관계의 전환은 앞으로 몇년동안 계속되거나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이같은 정치적 변화의 예로 한국정부의 소련수교 및 중국과의 무역사무소 개설,중국의 인도네시아 및 싱가포르와의 외교관계 설립,그리고 베트남의 대미,대일 관계개선 제스처를 들면서 이같은 변화는 경제적 당면과제가 이념을 대신하고 안보문제가 군사적인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관계에서 파악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도널드 자고리아교수(헌터대)는 미국의 대 아시아 교역량이 지난해 3천억달러로 유럽에 비해 50%나 더 많은 사실에 언급,『우리는 태평양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경제적 영향력을 아시아의 영토분쟁이나 냉전의 잔재를 해결하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이 신문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미국·소련·일본·중국 관리들이 한반도를 제외하고는 이 지역에서 당장은 안보위협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하고 지난달 리처드 솔로몬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 연설에서 『우리는 한반도에서의 핵확산이 동아시아 제1의 안정위협』이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켰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홍구 청와대 특별보좌관이 최근 워싱턴에서 『그들(북한)은 시간을 벌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기다리겠다,천천히 하라」고 말하고 있다』고 연설하고 이어 『우리는 통일에 대한 어떤 종류의 정치적 해결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북한 지도자들이 예전보다 합리화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를 발견했다』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중국은 지난해 천안문사태 이후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소련 베트남 일본 대만 등 이지역 국가들과의 관계개선 및 무역확대를 추구하고 있고 소련 또한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아태경제협력위(APEC) 등 이 지역의 정치·경제적 기구에 가입하는데 놓여있는 장애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베트남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인도차이나반도를 석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베트남의 경제적 몰락과 함께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아시아 및 서방측 분석가들이 아시아지역에서 지속적인 정치·경제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낙관하면서 공산주의 경제가 동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해체될 것이나 중국 베트남 북한 등의 공산지도자들이 민족주의자로서 나름대로의 대중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구국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몰락속도는 비교적 완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전종식과 함께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그라지는 대신 지역간 경쟁의식과 뿌리깊은 적대감이 부활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고 이 신문은 말하고 그 단적인 예로 지난달 발생한 조어대사건을 들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영토문제가 과거처럼 전략적 중요성을 갖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고리아교수의 견해도 소개했다. 내부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소련이나 중국에 비하면 미국에 있어서 아시아는 골칫거리가 아니라 가능성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문제는 아시아가 미국을 아시아권으로 인정해 주느냐가 아니라 미국이 자신을 아시아권으로 인정하느냐에 달렸다고 이 신문은 주장했다.
  • 대 이라크 무력사용 승인여부 논의/안보리 내주 소집 가능성

    ◎허드 영 외무/부시­후세인,“무력불사” 선언 【런던 AFP 연합】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사용 승인문제를 논의할 유엔 안보리회의가 다음주에 소집될 가능성이 있다고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이 23일 말했다. 허드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페르시아만 위기가 결정적인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곧,아마도 다음주에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의 침략을 되돌려놓기 위한 군사력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그같은 유엔결의가 반드시 페르시아만에서의 즉각적인 전쟁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자신은 『그같은 결의가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에 대한 최후의 철군 압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미군기지·바그다드 AP 로이터 연합】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22일 각각 사우디 사막지대에 위치한 미군 전방기지와 이라크·쿠웨이트에 포진한 이라크군 부대들을 방문한 가운데 전쟁도 불사한다는 호전적인 결의들을 표명했다. 중동을 순방중인 부시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의 파드국왕과 망명중인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을 만난뒤 동부지역의 미군 주둔지로 날아가 장병들과 추수감사절 축하행사를 갖고 강력한 대응결의를 거듭 밝히면서 이들의 각오를 촉구했다. 위장복 차림을 한 바바라여사를 대동하고 현지의 몇개 기지를 돌아본 부시대통령은 일단의 미해병대와 영국군 「사막의 쥐」부대 병사들을 상대로 한 연설을 통해 『이것은 훈련이 아니다. 이것은 진짜 상황이며 우리는 임무가 완수되고 참략자가 쿠웨이트에서 물러날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두번째로 이라크군 전방기지를 시찰하기 위해 21일과 22일 이틀간에 걸쳐 바스라시를 비롯한 이라크 남부지역과 이른바 「쿠웨이트성」일대를 돌아보면서 부시 대통령의 사우디방문을 비난하고 미군의 분쇄를 다짐한 것으로 이라크 언론들은 전했다.
  • “남·북 신뢰회복뒤 불가침선언해야”/23일 본회의(의정중계)

    ◎북한의 「유엔단일가입」 설득력 없어/내치 다진뒤 북방정책 추진용의는 ◇문동환의원(평민)=총리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냉전종식을 공식선포토록 건의할 용의는 없는가. 그런 의지가 있다면 국가보안법부터 개정해야 하며 실제적인 군비축소를 멀리 다루려 해서는 안된다. 세계정세와 남북한 국가의 규모를 비춰볼때 북한의 남침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의 여유있고 대담한 평화정착조치들이 먼저 강구되어야 한다. 안기부와 같은 정보기관이 남북관계의 주무를 관장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통일업무 관련 기관에서 안기부출신 인사를 배제할 용의는 없는가. 북에서 받아주겠다고 할 경우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방북토록할 의사는 없는가. 북한·일본 수교에 우리 정부가 경계하거나 우려를 나타내는 까닭이 무엇인가. ◇이종찬의원(민자)=정부는 내치부터 건실하게 다져나가면서 이를 토대로 외교통일정책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페만사태와 관련,추가지원 요청이 있을 때 국회와 사전협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투자비가 76년부터 북한을 앞질렀음에도 아직도 군사력에서 열세를 보인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차세대 전투기계획은 국방부외에도 경제·과학·기술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의 견해도 감안,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고 보는데. ◇강영훈 국무총리=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는 여러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민주개혁을 외면하고 공산주의식 통일전선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통일의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의 통일방안은 수천년 단일문화민족의 공동체 회복이 기본목적이며 자주·평화·통일이 기본 접근방법이다. 북의 대남적화전략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수호를 위한 최소한 법적장치로서 국가보안법이 존치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다만 남북관계와 북방외교등 새 질서에 따라 국가보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국익보호에 차질이 없는 범위에서 심의되기를 바란다. 남북불가침선언은 실천의지와 신뢰구축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북의 72년 무력불사용 선언후 아웅산사태·KAL기 폭파사건을 일으켰던 점을 볼때 상호 신뢰회복후 불가침선언을 하는 것이 옳다. 군축문제도 신뢰관계 회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술단 상호방문등 민간교류가 정치 선전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따라서 꽃파는 처녀 공연을 이유로 이산가족 고향방문 합의를 보류한 북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정부간 협의와 문화교류 문제는 별도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 입각,북한과 일본간의 수교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북­일수교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의 고립화는 우리의 북방정책과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유엔 단일의석 가입주장은 유엔헌장에도 상충되고 실현가능성도 없으며 국제적 관례에 비추어 볼때에도 전혀 가능성이 없다. 북이 주장하는 연방정부·연방의회 구성은 아직 적절치 않으며 북이 미군철수·보안법철폐 등 전제조건을 제시하는 한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간의 시각이 다르다. 우리는 북한이 1인체제인 만큼 정상이 만나면 무언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입장인데 반해 북한은 고위급회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뒤 정상회담을 가진다는 입장이었다. ◇최호중 외무장관=일·북한 수교에 대해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반대치 않고 있으나 북한개방 및 남북한 평화공존체제 구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대남정책의 근본이 변치않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등 주요 우방의 대북수교추진은 한반도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일본정부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앞서 우리와 충분하게 사전협의키로 했으며 앞으로 남북대화진전,북한의 핵안전협정가입 등이 고려돼서 추진될 것이다. 북한의 단일의석 유엔가입주장은 국제적으로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남북한이 모두 유엔에 가입토록 기존 우방은 물론,중소의 건설적 역할을 유도토록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겠다. 그러나 북한의 유엔가입 설득노력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페르시아만사태와 관련해 아직까지 미국측으로부터 추가지원요청은 없었다. 사태가 악화돼 추가지원요청이 오면 지원필요성,가용자원,일본·독일 등 우방태도,우리의 대 중동관계 등을 면밀히 검토해 지원여부를 결정하겠으며 국회와도 상의하겠다. 미의회의원 일부가 우리의 페르시아만 파병을 거론한 바 있으나 미국정부의 파병요청은 없었다. ◇이종구 국방장관=내년도 보안사의 예산이 증액 편성된 것은 보안사의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예산안이 입안됐기 때문이다. GNP(국민총생산)면에서 보면 76년부터 우리가 북한보다 군사비의 총액이 늘었다고 하나 실질적인 전력증강에 소요되는 비용은 88년부터 앞지르기 시작했다. 북한은 83년부터 소련으로부터 미그 23·29기,SU25기 90여대,지대공 미사일 50여대,자주포 40여대 등 10억달러어치 이상을 도입해 왔으며 고성능항공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무기를 자체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홍성철 통일원장관=남북불가침선언문제는 안보와 남북관계에 있어서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회와 협의하거나 국회의 동의를 얻어 처리해 나가겠다.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북의 실정을 올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소련·동구권을 통해 입수한 북한자료를 집대성하고 있고 독일통일과정과 통일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실제의 예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있다. 내년에 발족하는 민족통일연구원도 여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 화해시대의 휴전선에는…/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전반적인 군축과 긴장완화의 세계적인 평화추세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자체방위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병력과 무기가 존재한다. 6·25전쟁 당시의 8배가 넘는 파괴력을 가진 전력이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완충대로 하여 남북 양측으로 산개해 있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전쟁이 터질 경우 1주일 이내에 2백40만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한 달 이상 계속되면 5백만명의 사상자가 생긴다. 모든 시설의 80%가 파괴된다. 이상은 전혀 허구의 숫자도,가상의 수치도 아니다. 최신판 국방백서가 밝힌 「워게임」 예상결과라 해서 못 믿겠다는 허세도 부릴 일이 아니다. 남북한 전력대비는 세계적으로 그 권위가 인정되는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등에 의해서도 객관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나라의 군사력(전투잠재력)을 평가할 때 「전력지수」가 원용된다. 군사전문가와 과학기술자들이 공동으로 피아의 모든 부대의 특성과 능력,무기체계와 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판단하여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든 기준을 말한다. 예컨대 북한이 갖고 있는 탱크는 소련제 T54,55형이고 남한의 그것은 미국제 M48형이다. 이 두 종류의 탱크는 포신도,엔진마력도 다르다. 장착된 컴퓨터 조준장치도 다르고 전차병의 훈련시간도 다르다. 이런 경우에 어떤 기준없이 무조건 보유대수의 과소만으로 전투능력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수치가 전력지수이다. 그러나 전력지수를 통해 양쪽의 전투능력을 평가할 때는 무기체계의 효과나 구성요소와 같은 명백히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요소만 대상이 된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형적인 요소는 제외된다. 전문적인 방법으로 전력지수를 산출한 후에 실제로 컴퓨터에 걸거나 모형을 만들어 실전과 똑같은 실험을 거쳐 비로소 전력비교기준으로 확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앞에 나온 「워게임」 결과 예측이다. 그러니 어느 쪽의 도발에 의해서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터지면 결과는 완전한 파괴와 공멸뿐일 수밖에 없다. 흔히들 한반도를 세계의 화약고라고 한다. 좁은 땅,높은 인구밀도에 못잖은 화약의 밀도가 세계 으뜸이라는지적이다. 공식확인된 바는 없지만 핵과 화생방 무기의 밀도 역시 한반도와 그 주변이 제일 높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한 시각 위에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지혜롭지 못한 민족은 누구일까. 아마도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다른 체제와 이념 그 아래서 살고 있는 이 민족이 아닌가 한다. 그까짓 밖에서 들어온 사상이 다르다는 핑계로 역사와 언어와 풍습이 같은 한민족이 등을 돌린 채 화약을 품고 산다. 양쪽 합쳐 1백60여 만 병력을 갖고 해마다 1백30억달러(약 9조1천억원)를 군사비로 쓰는 「배달민족」이다. 모든 군사비 지출은 군비경쟁에 따른 것이고 군비경쟁은 전쟁을 전제로 한다. 물론 군비경쟁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느냐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국제정치학계에서도 꾸준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 같은 이는 일찍이 군비경쟁과 전쟁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군비경쟁이 강화될 때 전쟁이 뒤따르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1815년 이후군비경쟁이 가속화된 상태에서 벌어진 분쟁들 가운데 82%가 전쟁으로 귀결된 반면 군비경쟁이 없는 상태에서 빚어진 분쟁들 중에는 단 4%만이 전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파리헌장」으로 동서냉전의 종결이 공식선언되고 재래무기 감축,불가침협정이 서명됐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화해의 시대에 왜 전쟁을 얘기하는가. 전쟁은 말로 하지 않는다. 협정이나 약속으로 기피되지 않는다. 전쟁은 사람의 의지와 욕심이 하는 것이고 무기로써 승부하는 것임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변화와 주변정세의 흐름은 한반도에도 유리한 환경요인이 되고 있다. 두 차례의 남북한고위급회담이 곧 세 번째로 이어질 참이다. 지난 가을 한때 수백수천의 동포들이 서울과 평양에서,북경과 뉴욕에서 교류하고 화친했는데도 우리는 전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세계도 그러하다. 미소의 협조무드와 냉전의 종식은 세계평화기운에 크게 기여했으나 양국의 긴장이완을 틈탄 지역분쟁이 고개를 들기 시작해 90년대엔 유례없이 확산될 것이라고 세계적으로 저명한 연구소와 석학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 분쟁은 소규모 전투가 주류를 이룰 것이지만 제3세계국가들의 화학무기 및 핵무기 보유가 늘어나면서 대규모 살상파괴를 가져올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어쩌면 핵전쟁으로 비화할지도 모른다는 탄식도 나온다. 우리는 북한과의 군사력 비교에선 지나친 경직성을 가져서도 안 된다. 이에 관한 한 우리 당국의 공식입장은 북이 남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전문가들간에도 단순비교의 수치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어왔다. 그중에는 주한미군이 보유한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북한이 열세하다는 정반대되는 지적도 있다. 남북간의 전쟁은 다시는 안 된다. 북쪽의 총리도,남쪽의 총리도 이제 전쟁은 다시 말아야 한다고 두 차례 고위급회담에서 다짐했다. 성스러운 통일의 길에서 서로 상대방을 누르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도 하지 말며 남침도 북침도 없어야 한다고도 했다. 문제는 그것이다. 한 쪽이 다툴 생각이 없으면 둘 사이에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다툴 경우에 양쪽이 다나쁜 것이다. 전쟁을 희망하지 않으면 평화는 가능해진다. 전쟁은 일체의 인류죄악의 총괄이라고 했다. 『전쟁은 동물에게나 적합한데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고 토머스 모어경은 말했다. 이 화해의 시대에 한반도의 휴전선에는 참 이상하게도 을씨년스런 전쟁의 그림자가 늘상 떠나지 않아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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