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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지구촌 칼럼)

    ◎미­러 밀월관계 깨지고 있/러­“경제개혁 실패는 미국탓”/미­국제문제 독자행보는 배신”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간의 밀월관계는 확실히 끝났다.그리고 갖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 두 나라의 밀월을 해치고 있다.관계를 해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그리고 앞으로 이 두나라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국내정치적 요인들을 체크해봐야한다.러시아에서는 소위 「쇼크요법」식 급진경제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크렘린내 권력핵심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보수주의,전통주의 정치인들이 진출해있다.물론 이들은 과격 반대파 정치세력에 의해 점차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극단주의자들은 소연방의 해체,강대국 지위의 상실,그리고 친서방 일변도의 정책에 대해 크렘린내 민주세력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10년간 러시아가 겪은 재난들이 모두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저질러진 것으로 믿는다.사회,경제,민족문제등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에 쉽게 휘말린다.이런 분위기에 과감히 제동을 거는 정치인도 없고 대외정책도 점차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점차 덜 우호적으로 돼간다.이는 부분적으로는 러시아국내 문제 탓이지만 크게는 미국내 사정 탓이다.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공화 두 세력간 경쟁관계가 첨예화된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두나라 관계를 해치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수년에 걸친 협력관계 모색이 별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실망을 들 수 있다.처음 러시아 민주세력들은 미국을 러시아의 개혁을 도와줄 이념,정치적 동맹관계로 보았다.미국 지도자들 역시 러시아의 개혁을 지지했다.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 기조가 변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급격히 퇴조했다.그러자 러시아 정치인들은 이를 미국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양측 모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조문제만 해도 그렇다.1992년에 미국은 러시아를 주 원조대상국으로 간주했다.새 러시아에 필요한 물품,재정적 지원을 베풀 태세가 돼있는 듯했다.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미국의 차관,원조가 불충분하다고 욕한다.투자 역시 미미하다.필요한 투자 대신 미국은 쓸데없고 유해한 물품(예를들면 껌·담배등)들만 러시아에 실어나른다.법적 제약 때문에 기술이전도 되지 않고 미국은 러시아가 제3국에 기술을 팔아 돈을 버는 길마저 막고 나선다.러시아와 이란간 핵기술 판매협정 건이 바로 그런 예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쏟아내는 이런 불평불만이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갖는 불만들 모두 합당한 논리를 갖지 못한다.러시아에 주는 차관·물품은 관료,범죄조직의 주머니로 사라진다.러시아의 투자환경은 너무 열악하다.그리고 러시아 수입업자들 스스로가 그런 무익한 물품들만 골라서 사간다.그리고 극단적인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판매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 모델을 따라 보겠다고 한 개혁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이들은 미국인 경제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주었다고 욕한다.물론 미국학자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새로운 개발모델을 소화할 능력을 못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양자 관계를 해치는 또하나의요인은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안보·경제·민족문제등 여러 면에서 옛소련방 공화국들이 반드시 다시 뭉쳐야한다고 믿는다.러시아는 소위 「가까운 외국」으로 일컫는 옛연방 공화국들도 이에 동감한다고 말한다.하지만 미국은 이를 러시아제국주의의 재등장 조짐으로 해석한다.그래서 미국은 이들 옛소련 공화국들에게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난 독자적인 정책을 펴고 다른 외국과의 관계강화를 추구하라고 부추긴다. 동구에서도 양국간 이해는 충돌한다.러시아가 보기에 과거 자기의 동맹국들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는 유럽대륙에서 자기들만 고립돼 러시아의 평화,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미·러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의 장래가 불안해질수록 미국은 동유럽국들의 희망대로 이곳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지금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자기들을 2등 파트너로 대한다는 불만이 높아간다.주요 국제문제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러시아의 대내외 문제에사사건건 간섭한다.그리고 러시아국민들의 미국여행에 온갖 제약을 다 가하면서 저질 팝 문화로 러시아를 오염시키고 또한 러시아의 언론들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강대국 러시아의 옛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미국의 이러한 횡포를 도저히 참지 못한다.이제 더이상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지 말자고 이들은 주장한다.그래서 이들은 최근 들어 모든 주요 국제분쟁에 개입해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미국은 러시아를 손 아래 파트너로 취급하는데 익숙해 있다.우선 크렘린은 국내정적과의 투쟁에서 번번히 미국의 지원에 신세를 졌다.그리고 미국은 경제원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사회,교육,행정,환경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과 자문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볼 때는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완전 회복불능은 아니다.최악의 시나리오로 설사 러시아에극우 민족주의 독재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양국관계가 완전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우선 러시아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그런 대결을 감당할 힘이 없다.그리고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군사력,나아가 국민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양국관계를 떼놓을 이념대결이 없다.러시아가 현대사회를 건설하는데 미국·서유럽 모델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그리고 어떤 독재자가 나와 세계강대국이 되겠다고 호언해봤자 러시아국민들이 이를 지지할 리가 없다.러시아국민들은 이미 그런 슬로건에 식상해있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보다 나은 삶뿐이다.미국 역시 오랜 냉전대결로 힘이 소진돼 새로운 냉전대결을 벌일 입장이 아니다.따라서 미·러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완전히 판이 깨지지는 않는 미묘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 무르익는 중국군 참전(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15)

    ◎“중국 파병 결정” 주북경 소대사 본국에 급전/모스크바 잇단 요청에 중공당 중앙위 태도 바꿔/스탈린,「북조선정권 북한철수」 지시 황급히 취소 중국내부에서 참전논의가 무르익을 무렵 스탈린도 나름대로 북조선군에 대한 지원확대방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이런 가운데 50년9월30일금일성이 소련군의 직접출동을 간곡히 요청한다는 전문보고가 평양으로부터 있었고 이어 10월1일스탈린은 모택동 앞으로 중국군 5∼6개 사단을 파병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스탈린은 필리포프라는 가명으로 로신대사에게 이 전문을 보내며 첫머리에 「모택동과 주은래에게 즉각 전달하라」는 별도지시문을 덧붙였다(국가문서소 보관.전문번호 N4581). ○5∼6개사단 파병 촉구 『본인은 지금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휴가중인 관계로 조선사태에 관해 계속 보고받지 못했음.(편집자주=스탈린은 당시 흑해연안 소치에서 유가중) 하지만 오늘 모스크바로부터 받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건데 조선동지들이 처한 상황이 심각함을 알 수 있음.우리는 지난 9월16일북조선동지들에게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심각한 사태이며 북조선군 제1,제2병단을 북쪽의 후방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작전이라고 경고했음.그래서 남쪽에서 최소한 4개 사단을 즉각 철수시켜 서울 북동쪽에 전선을 형성할 것과 이후 남쪽에 있는 주병력을 점차 북으로 이동시키라고 요구했음.그렇게 38도선을 확고히 하라는 뜻이었음.그러나 제1,제2병단은 병력을 북으로 후퇴시키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이행치 않았음.이로 인해 이들은 미군에 의해 고립,포위됐음.북조선동지들은 서울지역에 병력이 없어 저항을 못하고 38도선 방향은 사실상 무방비상태임. 만약 이 시점에 중국동지들이 북조선에 대한 지원확대를 고려중이라면 지체치 말고 최소한 5∼6개 사단을 38도선으로 이동시켜 중국군의 엄호하에 북조선군 병력이 38도선 이북으로 빠지도록 도와주기 바람.중국군은 물론 중국사령관이 지휘하되 의용군으로 위장하기 바람.본인은 조선동지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을 방침임.하지만 그들도 이 사실을 알면 분명히 기뻐할 것으로 믿음. 답을 기다리며. 필리포프』 이틀 뒤인 10월3일 로신대사는 이 전문에 대한 모택동의 회신과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전문번호 N25199.총참모부 제2총국). 『처음에 우리는 적이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하는 즉시 수개 의용군사단을 북조선에 투입할 계획이었음.그러나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그럴 경우 매우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것으로 생각함.첫째 수개 사단으로는 한국문제를 풀 수 없음(우리 병력의 장비는 매우 취약해 미군과 싸워 승리할 수 있을지 의문임).둘째 미국과 중국간 공개충돌이 야기될 것임.그러면 소련 역시 전쟁에 개입하게 돼 문제가 매우 커짐. 중국공산당의 많은 동지가 매우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임.물론 우리가 병력을 파견하지 않을 경우 북조선동지들로서는 심각한 일임.하지만 우리가 수개 사단을 보내고서도 적에게 쫓기고 그뿐 아니라 미·중간 공개충돌까지 야기한다면 평화적 해결을 위한 우리의 계획 전체가 무산되는 것임.조선국민 다수가 불행을 겪게 됨. 따라서 지금은 병력파견보다 전력을 키우며 보다 적합한 시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좋음.조선으로서는 일단 패배를 하고 있으니 전술을 바꾸어 게릴라전을 펴는 게 바람직함.우리는 현재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소집중임.파병문제에 대한 최종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음.동지께서 원한다면 주은래와 임표를 비행기편으로 동지의 휴양지로 보내 이 문제를 협의토록 하겠음. 회신을 기다리며.모택동』 로신대사는 모택동의 서신 뒤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1)모택동의 답신내용은 조선문제에 있어 중국지도부가 초기의 입장을 바꾼 것을 뜻함.지금까지 모택동이 유딘·코토프·코노프장군에게 말한 내용,그리고 유소기가 본인에게 말한 내용에서는 중국군을 파병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음.(2)중국정부는 5개 사단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전투사단을 파견할 능력이 있음.물론 그 경우 대전차무기,대포류 등 전투력을 어느 정도 보강시킬 필요는 있음.중국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분명치 않음.아마도 국제정세,남조선내 전황악화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됨.영·미가 네루를 통해 중국측에다재난을 막기 위해 인내심과 자제력을 발휘토록 요청한 것도 한 요인으로 생각됨.로신』 ○모“전력증간 긴요” 거부 이와 같이 스탈린의 당초 희망은 중국군이 38선까지 내려와 인민군이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하는 것을 돕고 전선을 38도선으로 옮겨 이를 지키자는 전략이었다.그런데 모택동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병력파견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스탈린은 이 때문에 병력파병을 요청한 김일성의 9월28일자전문에 대해 열흘이 다 되도록 답을 하지 못했다.10월8일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성 전문을 보냈다(대통령문서보관소.스탈린이 소련대사를 통해 김일성에게 보낸 전문). 『귀하의 요청에 답신이 늦어진 것은 이 문제를 놓고 소련·중국간 협의가 계속됐기 때문임.10월1일 본인은 모택동에게 5∼6개 사단을 즉시 보내달라고 요청했음.모택동은 여러 이유를 달아 이 부탁을 거절했음.본인은 다음 점을 들어 중국군 파병을 거듭 요청했음.(1)미국은 한반도에서 대규모전쟁을 치를 준비가 안돼 있음.(2)일본은 아직 군사력 복구가 안돼 미국에 군사원조를 할 여력이 없음.(3)이런 점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소련의 지원을 받는 중국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음.(4)같은 이유로 미국은 대만을 포기해야 될 뿐아니라 일본제국주의를 부활시켜 이를 자신들의 극동군사교두보화하겠다는 계획을 버려야 함. 중국은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이같은 양보를 다 얻어낼 수 없음.심각한 투쟁과 자신들의 힘을 강렬하게 과시할 필요가 있음.그리고 미국은 비록 대규모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안돼 있다고 하나 자신들의 체면유지를 위해서 전쟁에 임할지 모름.물론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음.중국은 소련과 상호원조조약으로 연결돼 있고 미·영보다 우리가 더 강함.만약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수년 뒤가 아니라 지금 하는 게 유리함.몇년 뒤 일본의 군국주의가 재건돼 미국의 동맹역할을 할 것임.그리고 미·일이 이승만정권의 도움으로 대륙으로 진출할 군사적 도약대를 마련할 것임』 ○수동적 입장 신랄 반박 스탈린은 이같이 모택동의 수동적인 입장을 김일성에게 매우 신랄히 반박했다.그러나 스탈린은 이 서신에서 모택동이 9월7일자서신을 통해 『6개 사단이 아니라 9개 사단을 파병하되 파병시기는 지금이 아니라 중국대표단을 모스크바에 보내 이 문제를 충분히 협의한 뒤 결정하겠다』고 했음을 상기시켰다. 10월12일 스탈린은 모택동이 또다시 파병을 거부했음을 김일성에게 알리고 조선영토에서 철수,가능한 한 신속히 북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했다.그런데 바로 이튿날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전문이 모스크바에 날아들었다(전문번호 N25629.로신이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10월13일). 『중공당 중앙위가 조선문제를 재검토,중국군의 불충분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조선동지들에게 군사지원을 확대키로 결정했다고 모택동이 본대사에게 말했음.모택동은 말하기를 「우리의 지도적 동지들은 만약 미군이 중국국경까지 진출할 경우 조선은 우리에게 심각한 위협지대가 될 뿐아니라 동북아시아는 계속 심각한 위협하에 놓이게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음. 이전에 망설인 것은 국제정세에 대해 분명한 판단이 안 섰고 또한 소련으로부터 공군지원여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고 함.모택동은 이제 이런 의문들이 풀렸기 때문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음. 1차로 9개 사단을 보내고 아울러 2차파병을 신속히 준비하겠다고 했음.모택동은 자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중지원이라고 했음.늦어도 2개월이내에 공군지원부대가 도착하기 바란다고 했음.모택동은 아울러 무기지원과 관련,이를 현시점에 현금으로 결제할 수는 없고 이를 차관형식으로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음.결론적으로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의 지도적 동지들은 어려운 투쟁을 벌이는 조선동지들을 도와야 한다고 믿으며 이와 관련,주은래가 필리포프동지와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음.로신』 ○중 참전·북 철수 갈림길 스탈린은 이 전문을 받은 즉시 김일성에게 급전을 띄워 북조선정권의 완전철수를 지시한 10월12일자 전문을 황급히 취소했다.『본인은 방금 모택동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가 북조선에 대한 추가무력지원을 결정했다는 전문을 받았음.따라서 10월12일자로 보낸 전문에서 지시한 북조선으로부터의 철수와 병력의 북으로 후퇴는 이행을 보류함』 중국군참전이냐,김일성정권의 북한철수냐의 기로에 놓인 가장 긴박한 이틀은 이렇게 지나갔다. ◎모택동 처음엔 중국군 참전을 꺼려/스탈린은 김일성에 “모가 거절” 전문(새로 밝혀진 사실) 중국군의 참전결정과 과정은 아직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있다.이번 자료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많은 사실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먼저 10월1일 스탈린의 전문은 중국군의 참전에 대한 스탈린의 요구가 매우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그는 중국군이 참전할 때 의용군으로 위장하라는 세세한 권고까지 하고있다.물론 스탈린의 이러한 권고는 실제의 참전에서도 관철되었다. 이에 대한 모택동의 대응은 최초에는 명백히 참전을 꺼리는 입장이었다는 점이 이번 문서에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소련의 개입가능성을 들어 참전을 미루려 하고 있는 점은 모택동이 스탈린의 2중전술을 간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흥미있는 것은 모택동이 북한지도부에게 게릴라전을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하고 있는 점이다.이새로운 사실에 따르면 모택동은 가능한 한 개입하지 않고 김일성 자신에게 전쟁을 맡겨두려 하였던 것이다. 10월8일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보낸 전문의 내용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자신은 중국에 적극적인 참전을 권고하고 있으나 모택동이 이를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10월12일에도 같은 내용을 김일성에게 보냈고,또 김일성의 후퇴를 권고하고 있음이 이번 자료에 밝혀져 있다.그의 전형적인 2중전술이었던 것이다.그러나 그의 끈질긴 권고와 압력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음날인 10월13일 중국군의 참전소식이 알려졌고 스탈린은 이에 전날의 전문을 황급히 취소하고 있다.이번회의 자료를 통해 우리는 중국군의 참전 직전 하루이틀 사이에 숨가쁘고도 심각한 논의와 결정적인 전환이 있었음을 상세히 확인하게 된다.박명림
  • 북핵/동아시아 주요 불안요인/중 핵실험·러 극동군도 지역안보 위협

    ◎일 국방백서 북한핵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주요 불안요인』이며 일본은 이에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19일 공개된 일본의 연례 국방백서가 분석했다. 일본 지지(시사)통신이 입수한 이백서는 또 전세계에서 지역분쟁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안전을 보장할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백서는 최근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중국이 핵무기 현대화와 다양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러시아의 극동군사력 역시 아시아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백서는 보스니아와 기타 지역의 내전이 장기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유엔평화유지군의 활동이 모두 성공적이지는 못하다고 평가했다.
  • 미는 보스니아에 더깊이 개입말라(해외사설)

    보스니아 전쟁이 새롭고 위험스런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보스니아 정부군이 사라예보 주위에 대한 총공세를 취하고 있으며 유엔은 1만2천5백명의 추가병력을 파견하고 있다.보스니아 정부군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간의 전투가 치열해지면 유엔군의 위치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유엔 신속대응군의 주임무는 보스니아에 배치된 2만2천5백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을 보호하는 것이지 세르비아계가 유엔군 인질로부터 빼앗은 대포화기를 다시 탈환하는 것이 아니다. 세르비아계가 다시 공격을 할 경우 보스니아 정부군의 군사력 억제를 촉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그것은 워싱턴이 해야 할 일이다.보스니아 정부군의 대공세가 성공적일지라도 세르비아계의 격렬한 보복전이 뒤따를 것이다.이같은 치열한 전투는 시민들을 더 큰 위험에 처하게 하고 유엔군을 철수하게끔 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이달 초 신속대응군을 합의했을 때 신속대응군을 보낸 국가들이 군사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비용은 연 10억달러규모이다.때문에 신속대응군의주요멤버인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군을 유엔의 지휘권에서 벗어나 독자적 지휘를 받게 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3억달러 상당의 미국 부담몫을 준비했었지만 의회가 승인을 거부했다.다수당인 공화당은 미국은 이미 유엔평화유지활동에 너무 많은 것을 지불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공화당과 민주당의원들은 보스니아정부가 자신을 잘 방어할 수 있도록 행정부의 대보스니아 무기금수조치 변경을 요구할 생각이다. 그럴 때가 온 것 같다.보스니아에서의 유엔의 기록은 영광스럽지 못했으며,유엔안보리도 평화유지군 파병을 심각히 재고해야 할 것이다. 보스니아에서의 유엔의 존재는 전투부대를 억지해왔으며 유럽국가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받아들였다.이러한 것들은 미국의 이익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워싱턴의 더이상의 개입은 대가를 치르는 일이다.
  • 광복50년­한국안보의 좌표와과제/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 발표전문요지

    ◎남북 비공격적 방어취한뒤 군축·재통일 시도를/안보전문가 교류 촉진… 신뢰구축 여건 창출해야/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 비슷… 분단영구화 우려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황병무 국방대학원교수)는 16일 국내외 학자를 초청,서울 힐튼호텔에서 「광복 50주년 한국안보의 좌표와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17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에서 배리 버전 교수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영구화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으며,보른 몰러 박사는 한반도 통일이 국가연합­연방국가­완전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간추려 본다. ◇「공동안보와 비공격적 방어:한반도에의 적실성」(보른 몰러 덴마크 코펜하겐대 평화·분쟁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공동안보의 군사적 의미는 비공격적 방어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이는 문자 그대로 상대국에 대한 위협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국의 안보를 고려하는 것이다.한반도에이를 적용시킬 경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군사적 대치는 남북한 모두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고 미국 역시 방어력 군사력으로만 남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방안보다는 덜 매력적이지만 다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남북한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여기서 불개입이란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군이 철수하고 유엔군이 이를 대신해 주둔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나는 ▲72년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상호간의 신뢰구축과 안정을 도모하고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며 ▲선제공격의 준비태세에 대한 옵션을 제거하고 ▲공격능력을 줄여가며 ▲일반군축을 시도한 뒤 마지막으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을 위해 재통일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나는 한반도의 통일이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그리고 완전한 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군사신뢰 구축과 군축」(제임스 매킨토시 캐나다 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남북한 안보관계의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있어 신뢰구축은 단순한 신뢰구축 수단을 적용하는 것 이상의 것과 관련되어 있다.신뢰구축은 기본적인 안보개념의 변화과정을 촉진하는 활동이다.신뢰구축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본적인 조건들이 일치해야 한다. 비록 북한이 남한에 대해 중요한 문턱을 넘어서려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서 이런 조건들은 신뢰구축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이는 현재 의미있는 신뢰구축이 남북한간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남북한간 그리고 지역전문가 그룹과의 상호작용의 기회를 촉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 과정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촉발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복합적인 신뢰구축 협정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신뢰란 안보개념에 있어 장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감축협정을 무익하게 추구하는 것이나 전후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투명성 보장수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 및 국가안보의 패러다임과 중급국가들의 안보기획에 주는 의미」(배리 버전 영국워윅대 국제관계학과교수)=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는 탈냉전시대의 정치·군사적 안보복합체의 형성이란 관점에서 볼때 문제지역의 하나이다.전반적으로 힘의 수준은 극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힘의 분포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으며 강한 민족주의를 보이고 있다. 또 국제제도는 취약한 반면 중국과 대만,남북한간의 심각한 대립을 포함해 역사적 반목,국경분쟁,문화적 분열등을 많이 보이고 있다.더욱이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과 군사현대화에다 몇몇 국가는 필요할 경우 핵보유국이 될 능력을 지니고 있다.이렇게 볼때 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과 상당한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지역상황의 취약성 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나갈 때 분단이 고착화,영구화될 것이다.최악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사이에 말려드는 것이다.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군사적인 세력균형체제로 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으로 지역국제사회의 구축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야 한다.이를 위해 중국의 행동을 온건화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일본에 대한 나쁜 역사적 기억을 고무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미국이 아시아 안보에서 발을 빼거나 훨씬 더 이기적 자세를 취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또는 미국을 계속 붙들어 맴으로써 이 지역의 국제사회 구축을 지연시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 「북 지원」 기우는 북경(6·25내막 모스크바 새 증언:14)

    ◎중 수뇌 “혁명 완성위해 참전” 당위성 역설/러국위문서보관소 미공개자료 9백50건으로 엮는 시리즈/유소기 “이제 중국이 북조선 도울 차례” 개입 지지/중·소 인천상륙작전 이후 긴밀하게 작전 협의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된 사흘뒤인 50년 9월 18일 주은래는 북경주재 로신소련대사와 소련군사고문단의 코토프,코노프 장군을 불러 한국전 상황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크게 당황한 모습의 주는 이들에게 중국은 인천상륙작전을 신문보도와 평양라디오방송의 보도를 통해서야 알았다고 불평했다. ○주,인천상륙에 당황 로신대사가 같은날 스탈린에게 보고한 이 면담내용에 따르면 주는 북조선동지들과 중국군의 연락이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그는 북조선군의 작전계획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말하고 북조선과의 국경지대에 있는 군사관구에서 중국군 대표를 북한에 파견해 현지상황을 파악토록 하겠다는 요청을 보냈는데도 북조선에서 아무 회신이 없다고 불평했다. ○“모충고 무시” 큰 불만 이와 함께 주은래는 지금까지 모택동이 수차례 해준충고와 예견을 북조선 지도부가 모두 무시했다며 큰 불만을 표시했다.심지어 평양주재 중국대사가 작전관련 정보를 받지 못해 제때에 본국에 보고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따라서 중국정부는 인천의 진짜 상황을 모르며 그 때문에 일관성 있는 입장을 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그는 이와 함께 공식적인 보고에 의거해 다음과 같은 작전관련 주문을 내놓았다.(로신 대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보고전문) 『1.만약 지금 북조선이 서울과 평양지역에 병력 1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면 충분히 상륙작전으로 들어온 적을 궤멸시킬 수 있다.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주전력을 전선으로부터 북으로 후퇴시킬 필요가 있다.전선에는 적의 진격을 저지할 일부의 병력만 남긴다.미군을 방어지역에서 밀어내 전전선으로 분산시킨 다음 치밀한 작전을 통해 이들을 하나하나 분쇄할 필요가 있다. 2.주공격부대를 창설해 이를 결정적인 전투에 대비,비밀리 유지할 것』 이같은 주문을 한 다음 주은래는 소련정부가 한국전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줄 것을 모택동을 대신해로신대사에게 부탁했다.그는 최근 한국전상황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갑자기 중국의 유엔가입문제를 끄집어냈다.미국이 대통령선거를 치르기까지는 중국의 유엔가입을 계속 반대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이 입장을 바꾸는 즉시 중국은 유엔에 가입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었다. 주는 또한 미·영·불이 소련·중국의 한국전 무력개입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왜냐하면 이들 나라들은 한국에서 장기적인 대규모 전쟁을 벌일 준비가 안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주는 이같은 두려움을 더욱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중국이 중국남부 주둔 병력 일부를 만주로 이동시키자 미·영정부가 크게 겁을 먹었다고 말했다. 로신 대사는 주가 소련측에 요청한 사항은 즉각 본국에 보고하겠다고 말하고 중·북조선간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중국대표단이 북조선을 방문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9월 20일 스탈린은 로신대사의 이 보고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북조선지도부가 중국동지들에게 조선전쟁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물론 잘못이다.하지만 우리는 김일성이 고의로 그랬을 것으로 생각지 않음.아마도 전선과의 통신불량으로 인한 문제로 생각됨.모스크바도 평양주재 대사로부터 이따금씩 그것도 낡은 정보를 보고받고 있음.모두가 북조선인민군이 창설된지 얼마되지 않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임.인민군 사령부와 전선병력사이의 통신이 아주 불량한 수준임.전선의 보고수준이 불량해 제때 분석이 안됨. 거듭 말하거니와 북조선 당·군 모두 미숙함.불과 3개월의 전쟁경험밖에 없는 북조선군이 완벽한 장비를 갖춘 외국군대를 맞아 그정도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다는게 오히려 놀라운 일임.제물포(인천)의 패배는 인민군이 이승만뿐 아니라 영·미군을 함께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당한 것임.만약 이승만정권만 상대했다면 조선반도의 반동세력을 오래 전에 일소했을 것임』 ○스탈린,중·소 공조 다짐 스탈린은 이와 함께 다음의 4가지 사항을 모택동에게 전달했다.『1.대대·연대가 개별적으로 적과 싸우는 전략은 잘못됐음.이는 전략손실만 자초할뿐임.2.주전선에서 병력을 대부분 철수시켜 서울 동북부에 강력한 방어선을 새로 만들어야 함.3.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더 힘들어졌음.소련대표단이 유엔에서 중·소의 평화해결방안을 계속 역설하겠음.4.미국은 중국의 유엔가입 거부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임.소련대표단은 국민당대표의 유엔축출을 계속 요구하겠음』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어려워진 전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작전변경과 함께 중·소의 국제적 공조체제를 재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이 무렵 중국측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국면타개를 위해 어차피 중국측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개진되기 시작했다.로신대사는 스탈린의 지시를 전하기 위해 주은래를 다시 만난뒤 이같은 중국측의 분위기를 9월 21일 스탈린에게 보고했다. 중국쪽의 참전지지 분위기를 보다 분명히 표시한 사람은 유소기였다.이날 유는 소련아카데미 회원 유딘을 위해 자신이 주최한 만찬에서 한국전 상황을 상세히 분석한 뒤 중국사회 각층의 이같은 참전지지 분위기를 이야기했다.9월 22일 로신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전문중에서 유소기의 발언중 참전관련 부분만 소개한다. ○일부선 개입에 반대 『노동자,농민,혁명적 지식인들 다수는 중국혁명이 진행되는 오랜기간 동안 북조선이 중국을 도왔다고 믿고 있다.이제 중국이 북조선을 도울 차례라고 말한다.이들 다수는 미제국주의를 증오한다.민주정당 지도자들도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물론 일각에서는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 중국이 다시 고통을 당할까 두려워한다.활발한 정치선전 덕분에 중국군내 장교·사병 다수는 사기가 충천하다.필요하다면 미제국주의와 맞서 싸우겠다는 기세이다.미군의 사기는 크게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물론 조선전쟁에 개입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다.오랜 전투를 치르다보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많다.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극소수일뿐이다.중국공산당 지도부에서는 미제국주의를 분쇄하기 전에 중국혁명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미국이 북조선을 위협하는한 중국은 북조선 동지들을 도와야 한다고 지도부동지들은 믿고 있다』 중국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라도 한국전에 참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한 것이다. 이 전문보고와 같은 날인 9월 22일 모택동이 유딘을 불러 역시 중국의 참전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로신대사가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9월22일). ○“미,장기전 준비 미비” 『트루먼이 6월말 남조선과 대만에 미군을 보내기로 한 결정은 큰 실책이었다.그 때문에 영국의 입장이 난처해졌다.영국은 한편으로는 남조선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했기 때문에 미군의 대만파병을 지지할 수 없는 입장이다.현재 남조선에서 미군의 군사활동을 보면 그곳에서 장기적인 대규모 전쟁을 치를 준비가 안돼 있다.그들이 하는 것은 소련·중국의 반응을 떠보고 군사력을 시험하는게 목적인 것 같다.모택동은 미군이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다시 타협할 명분을 찾을지 모른다고 했음.이와 관련,미국이 중국의 유엔가입 가능성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모는 보았음.미국이 중국의 유엔가입을 반대하고 대만에 병력을 파병한데 대해 인도·필리핀같은 나라가 반대한 것이 이런 가정을 뒷받침한다고 모는 주장했음』 모는 이와 함께 『적어도 미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유엔가입이 허용될때까지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제국주의에 맞서 공개적으로 투쟁할 명분을 갖고 있다』며 한국전 참전을 시사한것이다.
  • 노태우 전대통령 「재임시 방북정책」 강연

    ◎“한 중·한 소 수교로 한반도안정구도 공고히” 노태우 전대통령은 14일 상오한朱프레訓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榻에碻 열린 고려대 언론대학원(원장 원우현) 최고위과정 조찬강의에 연사로 초청돼 대통령재임시 추진했던 북방정책에 관해 강연했다.노 전대통령은 강연에서 남북관계는 핵묻제딸으로 인한 일시??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이미 북방정책의 당면목표인 통일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노 전대통령의 강연요지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미간 경수로문제가 풀려가는 것같다.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우선 대통령재임시의 성과를 묻는다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사회적인 균형발전,그리고 북방정책으로 대변되는 외교적인 성과등 3가지를 꼽고 싶다.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인 공과는 당사자가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생각한다.다만 북방정책에 대해서는 벌써 몇편의 논문이 나오는등 학문적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나 그 기본개념과 철학,수행과정등에서 중요한 내용들이 잘못 이해되고 있다.이를 바로잡아 북방정책의성과를 확대·발전시키는 것이 국가나 현정부를 돕는 길이라 믿는다. 북방정책은 남북통일이라는 당면목표와 함께 통일후 우리의 생활문화권을 과거와 같이 연변·연해주등지로 넓히면서 동북아시아의 위대한 중심국가로 자리잡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는 원대한 구상이었다.그리고 우리민족의 장점,무서운 저력등을 고려할 때 2천년대 이전 최종목표가 달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소 수교는 당시 공산권국가들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을 점령,우리의 외교가 전방위외교로 전환하는 출발이었던 동시에 북한의 최대 외부지원세력을 제거,북한의 기본노선에 일대 타격을 가하는 사건이었다.이로써 우리 외교는 자주외교라는 확신과 자존을 확립하게 됐다.또 소련과의 수교는 중국과의 수교를 앞당기는 청신호였다. 한편 소련과의 수교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30억달러를 지원하는등 돈낭비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으나 소련에 실제 제공한 돈은 15억달러이며 소련과의 수교로 인한 북한군사력의 억제라는 측면만 고려하더라도 이미 투자비용이상의 효과을 거두고 있다.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소련은 다가 오는 21세기에는 큰 나라가 될 것이다.장기적으로 볼때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한다. 중국과의 수교는 북한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과의 우호관계를 확립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구도를 공고히 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경제적 측면으로 볼 때도 오랜 역사적 선린관계에 있던 중국과의 관계회복으로 최대의 경제시장을 확보한 셈이 됐다.우리와 중국은 상호발전을 위한 보완성이 무한대다. 이밖에 주택 2백만호건설의 급작스런 추진등으로 부실공사,물가상승등의 부작용이 빚어졌다는 지적과 관련,졸속시행의 착오를 시인한다.그러나 서방세계가 1백∼2백년에 걸쳐 달성한 국가발전을 30년도 안걸려 이룩했다.부작용이 없진 않았지만 짧은 기간내에 고속 성장·발전했다는 사실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 일 자위대/대형 수송선 4척도입/8천9백t급… 수송능력 3배 늘어

    ◎항모전용 가능… 군비 증강 우려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항공모함으로 사용될 수 있는 대형수송선을 4척 보유하기로 결정했다고 일본의 도쿄신문이 14일 보도했다. 도쿄신문은 이 가운데 1척은 이미 건조중이며 1척은 96년부터 시작되는 차기방위력 정비계획기간 동안 추가 건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해상자위대가 도입하려는 대형수송선은 배수량이 8천9백t으로 수송선이지만 뒤쪽에 비행갑판이 설치돼 헬기의 이착륙이 가능하며 특히 일본이 도입하려는 수직이착륙기 「해리어 2+」와 조합되면 항공모함으로도 쓸 수 있다. 이들 대형수송선이 모두 도입되면 총보유함정의 배수량이 1만2천6백t인 해상자위대의 수송능력이 3배나 증강된다. 대형수송선은 또 완전무장한 육상자위대 1개연대 전투단을 수송할 수 있으며 함내에 양륙정(LCAC) 2척을 탑재할 수 있어 자위대의 군사력 전개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한편 영국의 군사전문지 제인연감측도 일본 해상자위대의 대형수송선이 미해군의 강습양륙함과 비슷한 겉모습을 띠고 있다고지적하고 이의 도입은 미묘한 정치적 문제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불 핵실험 재개/각국 거센 반발

    ◎대사에 항의·군사협력 동결­호주·뉴질랜드/“오만한 도발행위… 강력저지”­도서국가/그린피스 프랑스의 핵실험 재개 발표와 관련,호주·뉴질랜드·미국·일본·러시아등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국제적 핵확산금지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프랑스를 강력히 비난했다.핵실험 예정 장소인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무르로아섬 근처에 있는 뉴질랜드와 호주등은 특히 프랑스와의 국방협력관계를 동결하고 프랑스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등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그러나 영국은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은 핵실험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호주=호주정부는 14일 도미니크 지라르 프랑스대사를 소환,프랑스 남태평양 핵실험 재개결정에 대한 유감표명을 받아냈다고 호주 관리들이 밝혔다. 보브 맥멀런 호주 외무부장관 대리는 캔버라에서 지라르대사와 30분간 회담을 갖고 호주가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핵실험 재개결정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대변인이 밝혔다. ▲뉴질랜드=도널드 맥키넌 뉴질랜드 외무장관은 핵실험을 재개하겠다는 프랑스의 결정을 『나폴레옹같은 오만』이라고 비난했다.맥키넌 장관은 이어 핵실험 재개 결정을 변명하려 자신을 방문한 자크 르블랑 뉴질랜드 주재 프랑스대사에게 『당장 집무실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미국=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프랑스의 결정에 크게 실망했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가 내년까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신화통신은 프랑스 핵실험 재개를 논평없이 간단히 보도했으며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군축회의에 참석중인 정서성 국제기관국대사는 『중국은 96년의 CTBT 체결및 발효까지는 핵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린피스=세계적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시라크 대통령이 핵실험 재개를 발표한 13일을 『검은 화요일』로 명명했다.뉴질랜드에 정박해 있던 그린피스의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14일 핵실험을 저지하기위해 무르로아섬으로 출항했다. ▲남태평양 소국=남태평양 포럼으로 대표되는 작은 나라들은『세계의 여론을 무시한 도발적 행위』라고 비난하고 외교관계가 손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 왜 핵실험 재개하려하나/「핵금」 참여전 핵수준 제고 포석/현 보유핵무기 15년내 교체위해 실험 필수/시뮬레이션시설은 2002년에나 가동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13일 핵실험재개 발표는 외교·국방분야에서 프랑스의 독자적인 힘을 구축하겠다는 신드골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독자적인 핵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취임 한달이 되지 않은 시라크대통령이 미국방문을 앞두고 핵실험재개를 발표한 것은 국내및 대외적으로 이같은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과시하려는 성격이 짙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라크 대통령의 핵실험재개 발표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그는 대선기간중에 이미 핵실험재개의 필요성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향후15년내에 교체해야 하고 핵억지력유지에 필요한 잠수함발사용 핵무기등의 실험이 필요하다는게 관계전문가들의 주장이다.또 미국과 러시아에 뒤져있는 분야의 개선을 위해서도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피하기위해서는 약 1백억프랑(약 1조6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모의실험을 위한 기술과 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문제는 예산뿐 아니라 2002년 이후에나 사용이 가능하다는데 있다. 또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들의 효율성이 오는 2010년을 고비로 떨어진다는 점도 핵실험재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시라크 대통령이 핵실험재개를 밝히면서 『프랑스군의 안전과 신뢰도를 위해서도 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말해 「강한 프랑스」를 내세워 온 시라크로서는 미국이나 러시아에 비해 매우 빈약한 핵군사력을 핵실험을 통해 어느정도 끌어올려 놓은후 내년 가을에 있을 포괄적인 핵실험금지조약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라크 대통령의 핵실험재개는 당장 국내외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야당인 사회당은 물론 미국·뉴질랜드 등과 환경단체에서는 프랑스의 결정에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 한·미·일 시각/남북한 관계 진전의 단초 열리다(경수로 타결)

    ◎서울/미흡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일만 『항복문서가 아니라 외교협상의 산물임을 이해해 달라』.콸라룸푸르 북­미 준고위급회담에서 타결된 합의문안에 대한 13일 공노명 외무장관의 솔직한 토로였다. 이같은 언급 속에는 타결 결과가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미흡하지만 대체로 수용할 만한 수준이라는 정부의 시각이 함축되어 있다. 정부로선 당초부터 대북 경수로 공급시 계약협상과 설계·건설은 물론 사후관리등 전과정에서 주도적 역할확보가 최상의 목표였다.이는 북한핵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발전계획이라는 명분에 따라 우리측이 경수로지원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만큼 당연한 원칙이었다. 우리측이 이번 콸라룸푸르 회담에 나선 미국측에 한국형과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합의문에 명기토록 강력히 주문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번 합의문에서는 한국표준형원자력발전소(KSNP)라는 용어나 울진 3,4호기를 참조발전소로 한다는 등 직접적 표현으로 이를 문서화하지는 못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네바 북­미 합의에 대한 북한의 계속적 이행의지를 확인했다는데서 애써 상당한 의의를 찾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권능과 역할을 인정함으로써 한국형 경수로와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인정했고,이를 보장하는 장치를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이를테면 비록 한국형을 합의문에 명기하지는 못했지만 「2개의 냉각제 유로를 가진 가압 경수로 2기」,「현재 건설중에 있는 것」등의 기술적 표현으로 이를 보완했다는 것이다.이 두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원자로는 한국형 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이 집행이사국으로 참여하는 KEDO가 경수로 노형과 주계약자를 선정토록 합의한 사실이야말로 한국형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담보라는게 정부측의 대체적 시각이다.KEDO 설립협정은 1천Mw급 한국표준형원자로 2기를 북한에 제공하는 것을 설립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탓이다.정부는 이날 하오 한·미·일 3국이 참여하는 KEDO 집행이사회를 열어 이같은 설립규약을 재확인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선보였다. 그러나 정부내 일부 전문가들이 이번 합의에대해 내심 상당한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예컨대 한국형을 명백히 못박지 않은데다 경수로 공급시 KEDO의 역할과 함께 미국의 주접촉선 역할을 인정하는 이중적 합의를 함으로써 북측이 한국형과 한국의 역할을 배제하려는 기도를 계속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모든 당사자 득준 국무부의 개가 경수로공급에 관한 미국과 북한간의 콸라룸푸르 합의는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북한의 체면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단락지었다는 점에서 미국내에서는 일단 이 회담을 주도해온 국무부의 개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경수로의 한국형 명기와 한국업체의 주도적 건설참여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국에 대해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국 주장의 수용을 확약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기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역할을 인정토록 함으로써 합의문에 「한국형」이라는 표기는 없지만 실제로는 한국형을 채택토록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이번 합의로 북한이 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모델를 수용하고 KEDO가 선정하는 주계약자와 공급계약을 맺게됨으로써 앞으로 KEDO가 경수로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가게 됐다.또한 북한의 경수로 건설이 국가대 국가의 국제안보적 차원보다는 민간차원 혹은 기술적 차원으로 포커스가 전환되는 결과도 가져올수 있게 됐다. 또한 클린턴 대통령도 친서에서 앞으로 한반도 핵문제의 완전해결을 위해서는 남북대화의 재개가 필수불가결이라고 밝힌바와 같이 앞으로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더욱 강력하게 대두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1주일 예정에서 3주를 끌어온 북·미간의 콸라룸푸르 접촉은 최종합의에 이를때까지 몇차례의 결렬 고비를 넘기며 밀고 당기기를 계속해온 끝에 극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비상식적이고 상궤를 벗어나는 경우를 자주 겪어온 미국무부 관리들은 이번 합의가 KEDO와 북한 대외경제위원회간에 올해안에 체결키로한 경수로공급협정으로 순탄하게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 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번 합의는 그동안 미·북한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큰 장애가 제거된 것으로 앞으로 미·북한간의 관계개선 또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우선 대북한 중유제공문제는 앞으로 미기술진이 방북,중유전용방지를 위한 장치에 합의할 경우 예정대로 추가공급분 5만t의 제공이 이행될 예정이다.또한 폐연료봉 안전처리문제 역시 미전문가팀의 6월중 방북합의로 빠른 시일내 장기안전보관방법이 강구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평양간 연락사무소 개설문제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규제완화 조치등도 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공급협정 추이와 남북대화재개 여부등에 따라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도쿄/최종 계약까진 먼 산… 더 지켜보자 일본정부는 북한과 미국이 경수로지원문제에 대해 합의에 이른데 대해 일단 환영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정부의 대북한 접근에 속도가 붙을 것은 분명하다.일본의 대북한 접근에 장애가 돼왔던 커다란 암초가 하나 제거됐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지난주 북한과 미국의 협상진전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또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러 「한국형」의 명시 여부로 한국정부가 미국과 긴급협의를 가질때 일본정부는 타결여부와 관련,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한국정부라는 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결국 회담이 타결될 것으로 보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체제정비를 요청하는 「한수 먼저 두는」대응을 보여왔다.핵문제가 KEDO로 넘어오는 만큼 경수로 공급의 범위,공급사업비의 변제방법등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정부는 12일 한국방문을 마친 갈루치대사를 맞아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일본정부는 대북한접촉에서도 발빠른 대응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일본은 지난 4월을 전후해 경수로지원문제가 난국을 맞이하고 있을 때도 북한에 여당대표단을 보내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에 합의한 바 있다.그 뒤 정부차원에서는 경수로협상 진척상황을 고려해 공식적인 재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물밑 접촉은 지속해 왔다.최근 비공식 접촉을 통해 북한측으로부터 「평양과 도쿄를 오가며 교섭하자」는 전향적인 제의를받아두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또 북한이 요청한 쌀원조문제에 대해서도 분위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현재 쌀문제는 한국이 제의한 조건없는 쌀제공의사를 북한이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강력한 견제로 진전이 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연립여당과 농림수산성등의 당정협의에서는 북한에 대한 쌀제공이 인도적인 문제이므로 한국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제공하자는 강경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하튼 일본은 10억달러 가량의 경수로지원금을 내놓으면서도 북한과 대화통로를 닫힌 상태로 놔둘수 없다는 점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접근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북한도 외교와 경제측면에서 일본접근이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양자간에는 「함께 춤을 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다만 경수로지원까지는 구체적인 계약단계에 들어가서도 넘어야 할 산과 강이 많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경수로지원 추진상황을 조금은 더 지켜 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동진 단장·갈루치 대사 공동회견/“중유전용­폐연료봉 감시 등 난제”/대북관계개선 「휴전선병력」 등 해결돼야 13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집행이사회를 마친뒤 갈루치 미핵대사는 『경수로 제공에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는 아무런 의문이 없다』고 강조했다.다음은 갈루치 대사와 최동진 경수로기획단장의 공동회견 일문일답. ­지금까지 경수로 노형 선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앞으로도 장애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장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갈루치)미·북간 연락사무소 개설,중유 제공,중유를 다른 용도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폐연료봉의 안전한 보관및 다른 나라로 반출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일,계약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일등 모두가 어려운 일이다.지난 7개월동안의 노력보다 더 애써야만 할것으로 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의 기업인과 기술자들이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는가.또 남북간의 경제관계 전망은. ▲(최동진)때에 따라 수십에서 수백명의 기술자와 전문가가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더불어 물자 왕래도 필요하게 된다.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이런 바탕 위에서 경제협력이 점차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협상 타결에 따라 미국과 북한간 연락사무소 개설이 가능해졌다.외교관계 정상화도 가능하다고 보는가. ▲(갈루치)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일련의 회담이 열렸었고 앞으로도 개최될 것이다.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탄도미사일과 엄청난 재래식 군사력의 휴전선 전진배치등 우려되는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북­미 합의문 전문 미국대표단과 북한대표단은 콸라룸푸르에서 95년5월19일부터 6월12일까지 94년10월21일의 북­미 기본합의문의 이행과 관련한 회담을 가졌다. 양측은 북­미 기본합의문 이행에 관한 정치적 약속을 재확인 했으며 특히 동합의문에 입각한 경수로 사업의 원활한 이행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결정하였다. Ⅰ,미국은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에 관한 94년10월20일자 미대통령의 보장서한이 계속유효함을 재확인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미국 주도하에 북­미 기본합의문에 입각,북한에 제공될 경수로 사업의 재정조달 및 공급을 담당한다.합의문에 명기되어 있는 바에 따라 미국은 경수로 사업에 있어서 북한과의 주접촉선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관련,미국 국민이 필요에 따라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KEDO 대표단 및 작업반의 대표가 된다. Ⅱ,경수로 사업은 각각 두개의 냉각재 유로를 가진 약 1천㎽(e) 발전용량의 가압 경수로 2기로 구성된다.KEDO가 선정하는 경수로 노형은 미국의 원설계와 기술로부터 개발되어 현재 생산중인 개량형으로 한다. Ⅲ,북한정부를 대표한 대외경제위원회와 KEDO가 북한에 경수로를 턴키베이스로 제공하기 위한 공급협정을 가능한 최단시일내에 체결한다.이 발표문에 기초하여 북한은 경수로 공급협정에 관한 현안을 협의하기 위하여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KEDO와 회동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의 건설과 운전에 필요한 요건들을 확인하기 위해 부지조사를 실시한다.동 부지조사와 부지준비에 소요되는경비는 경수로 사업의 공급범위에 포함된다. KEDO는 경수로 사업을 수행할 주계약자를 선정한다.경수로사업의 전반적 이행에 관하여 KEDO의 감리업무를 보조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미국기업이 담당하며 KEDO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선정한다.북한기업은 경수로사업의 추진을 위해 필요에 따라 이행에 관련된 계약에 참여한다. Ⅳ,경수로 사업에 추가하여 양측은 기본합의문의 이행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양측의 전문가들은 기본합의문에 따른 중유의 단계적 공급을 위한 일정과 제반협력조치에 합의하기 위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에서 만난다.KEDO는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중유의 1차분 공급을 위한 조치를 즉시 취한다. 1995년 1월20일자 사용후 연료봉의 안전한 보관에 관한 북­미간 회담기록은 신속하게 실천에 옮겨진다.이와 관련,동이행을 위해 미국 전문가들이 6월중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북한을 방문한다.
  • 21세기 아시아의 명암/새뮤엘 헌텅턴 교수 특강

    ◎빠른 경제성장이 정치발전 유도/「강한 중국」 출현… 아주패권 조심/등사후 권력이양 순조… 개혁 가속 새뮤얼 헌팅턴 미국 하바드대학 석좌 교수는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산업개발은행 협의회 창립총회에 참석,「21세기 아시아의 명암」이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했다.내용을 간추린다. 21세기 아시아에 병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발전적인 요소와 불안정한 요소는 상호작용을 통해 아시아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아시아는 지난 30년동안 극적인 경제발전을 계속해왔다.20세기 후반 세계경제에 있어서 가장 뚜렷한 발전의 하나였다.지난 6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이 지역의 경제발전은 NICS를 거쳐 아시아 전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아시아지역의 경제규모는 현재 전세계의 5분의 2에 달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그 규모가 더욱 커져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것이다. 아시아의 급격한 경제발전은 아시아지역내 국가간 혹은 아시아와 세계 여러 국가간에 형성되어온 힘의 균형을 변화시켰다.이는 국가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서유럽과는 달리 서로 다른 문명의 복합체로 각기 다른 경제발전단계와 다양한 정치체제를 갖고 있으며 영토분쟁·군비경쟁·경제불균형등 많은 갈등요인도 있어 언제 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정한 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이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주도권을 가져온 강력한 중국의 출현이다.지난 2천년동안 이 지역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하여온 중국은 최근 경제력의 증가를 군사력·정치력 강화로 전환,아시아의 맹주로서 자신의 역할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경제발전의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서구의 여러 국가 또한 급속한 경제발전이후 대외국력확장과 제국주의경향을 나타내어 왔다.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면 주변국은 외교정책에 있어서 성장하는 힘에 균형을 취하든지 연합을 구성하여 대항하든지 하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유럽에서는 다국체제에 의한 힘의 균형유지가 외교정책의 근간이었다.그러나 아시아지역에서는 힘의 균형추구보다는 강국으로의 예속이었다.따라서 일본이 아시아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하지는 않을것이다.대다수의 이 지역 국가들도 이러한 중국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21세기 아시아의 평화는 중국의 주도를 주변국들이 순응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성장은 아시아에서 서구,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면서 아시아와 서구와의 갈등은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되며 사회체제·외교정책 등의 상충요소로 인해 중·미관계도 근본적으로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미국은 유럽과 동아시아지역에서 강대국의 출현을 억제하는 정책을 계속 취하여왔으며 이러한 정책기조는 현재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미국은 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으며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서유럽에서와 같은 힘의 균형을 아시아지역에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이 아시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서구와의 갈등만을 야기시킨다고 단언하기만은 어렵다.경제발전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발전을 촉진하고민주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이러한 현상은 이미 한국과 대만에서 나타났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우선하는 중국 유교문화의 전통은 현재 민주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그러나 남부중국을 중심으로 인민의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경제력의 축적으로 중산층 발전이 촉발되었다.더욱이 중국 인민이 무역·투자·교육 등을 통해 외부세계와 깊게 관련되는 등 민주화를 위한 사회적 기본여건이 성숙되고 있다. 민주화의 기본조건은 관료체제내의 개혁세력의 등장이다.등소평사후 첫번째 권력이양은 순조로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 이후는 확실치 않다.중국남부에서는 독립적인 사회세력이 등장,정치적 발언권을 강화하기를 원하고 있다.따라서 21세기에는 남부중국에서 홍콩·대만·싱가포르 등의 지원을 받는 정치단체의 출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만일 이러한 민주화운동이 남부중국에서 성공한다면 북경내의 개혁주의자와 더불어 민주화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길을 열 것이다. 중국에서의 민주화전망은 밝다.이러한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동아시아 평화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만일 중국이 스스로 개방주의노선을 걸어간다면 아시아의 불안정한 요소는 사라질 것이고 중국과 서구의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또한 중국은 아시아의 지도국으로서 21세기 세계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모­김 북경 비밀회담(모스크바 새 증언:7)

    ◎모택동,김일성에 남침 세부작전 일일이 지도/모택동/“평화통일 불가능… 무력침공 밖에 없다”/미 개입땐 중국 지원병력 파병 재확인 □모 충고사항 장병에 구체적 임무 부여 모든 작전 신속하게 전개 대도시는 우회공격 할 것 적의 군사력 파괴에 주력 스탈린이 모택동앞으로 보낸 전문은 스탈린·김일성 두사람이 무력남침을 결행키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소련군총참모부 제8국·전문번호N8600·1950년 5월14일). 『모택동 동지앞.조선동지들과의 회담에서 필리포프 동지와 그의 친구들은 국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조선인들의 통일제의에 동의했음.이와 함께 최종 결정은 중국과 조선동지들이 공동으로 내려야 한다는 데도 합의했음.중국동지들이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최종결정은 새로운 논의가 있을 때까지 미루어야 함.조선동지들이 이번 회담의 상세한 내용을 귀하에게 통보할 것임.­필리포프』 ○스팔린 가명 사용 스탈린은 김일성과 남침계획을 확정지은 뒤 이같이 모택동에게 뒤늦게 통보,그의 체면을 살려 주는 체하면서 개전의공범으로 만들려고 했다.재미있는 것은 남침결정 사실을 문서화한 이 전문에서부터 스탈린은 「필리포프」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이후 그는 필리포프외에 「환시」라는 가명도 사용했다. 이보다 이틀전인 5월12일 평양의 슈티코프대사는 본부에 다음과 같은 보고전문을 띄웠다.『5월12일 김일성의 요청으로 그와 박헌영을 면담.김일성은 북경주재 대사 이주연이 김일성의 중국방문을 주재로 모택동·주은래를 만났다고 했음.주은래는 이 방문을 공식방문으로 하자고 주장.반면 모택동은 언제 북조선이 통일작전을 개시할 계획이냐고 묻고는 답도 기다리지 않고,군사작전을 곧바로 시작할 계획이라면 비공식 방문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함. 모택동은 또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며 무력에 의한 통일밖에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함.미국의 개입가능성에 대해서도 모택동은 미국이 그런 작은 나라에서 3차세계대전을 시작할 리 없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함.김일성은 이에 덧붙여 이주연대사는 자기와 모택동간의 회담을 논의할 권한이없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그래서 그를 소환해 견책한 뒤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음.5월10일 이주연대사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 모택동을 만나 정식으로 김일성의 접견승인을 받았다고 함.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5월13일 아침 출발예정임.김일성은 그때까지 자신이 타고 갈 비행기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음.이에 대해 본인은 비행기는 이미 준비돼 있다고 답했음.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문제를 당중앙위에서 토의하지 않고 김책(정치국원)과만 의논했다고 함』 여기서 엿볼 수 있듯이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을 추진하면서 스탈린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크게 신경을 썼다.이주연 대사를 소환해 견책한 것도 스탈린을 의식한 쇼였다.모택동과의 회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다음과 같이 슈티코프 대사에게 통보했다.다음은 슈티코프가 보낸 보고전문의 계속.『김일성은 모택동과 다음의 문제들을 토의할 계획이라고 함. 1,무력통일 의향을 알리고 모스크바 회담 결과를 통보. 2,조만간 북조선과 중국간 무역협정체결과 통일 후 양국간 우호조약체결을 희망.3,중국공산당과 북조선노동당 중앙위간 교류문제.4,북조선 수력발전소 건설,중국거주 조선인문제등 상호관심사 논의』 이와 함께 김일성은 중국거주 조선인군 부대가 갖고 있는 일본제 및 미제 무기에 쓸 탄약공급을 중국측에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총참모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김일성은 이 물건들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전군이 사용할 3벌 분량의 탄약이 이미 비축돼 있다는 것이었다.김일성은 모스크바 회담에서 이미 필요한 원조는 다 받기로 합의됐기 대문에 실제로 모택동으로부터 원조받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5월13일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예정대로 북경으로 날아갔다.도착 당일 저녁늦게 모택동과의 1차회담이 이루어졌다.그리고 주은래는 로신 북경주재 소련대사를 불러 회담결과를 설명했고 로신대사는 이를 곧바로 스탈린에게 보고했다.다음은 로신대사가 보낸 5월13일자 전문. 『1,김일성과 박헌영이 중국에 도착했음.2,조선지도자들은 모택동과의 회담에서 상황이 바뀌어 북조선이 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사항을 설명했음.이 문제는 조선지도자들과 중국,특히 모택동과 의논해야 된다는 필리포프 동지의 지시도 전달됐음.3,조선지도자들은 이틀간 북경체류예정임.…중략…모택동 동지는 이 문제에 관해 필리포프 동지가 직접 설명해주기를 원함.중국동지들은 신속한 답을 원함』 ○개전땐 승리 보장 이튿날인 5월 14일 로신대사는 스탈린·김일성의 모스크바 회담결과에 대해 본국에서 보낸 전문을 받아 모택동에게 전달했다.그리고 로신 대사는 같은 날 모택동의 반응을 본국으로 타전했다.이 전문내용에 의하면 모택동은 신속한 군사적 방법으로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하며 승리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북한지도부가 내린 현 남북한 정세와 남북한 군사력 균형에 대한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모는 또한 통일 뒤 중소조약과 유사한 우호동맹조약 및 상호원조조약을 북조선과 체결할 것을 북조선지도자들에게 제의했다고 밝혔다.물론 이같은 조약체결은 스탈린동지의 의견을 들은 뒤에 추진할 것임도 덧붙였다. 5월15일 2차회담에서 모택동은 김일성·박헌영과 무력남침에 대해 상세한 입장교환을 했다.회담 뒤 로신대사는 양측(주은래·박헌영)으로부터 별도 브리핑을 통해 회담결과를 전해 들었다.회담결과의 대한 양측의 설명에는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다음 사항은 양측 브리핑내용이 일치한다.김일성이 먼저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합의한 남조선 침공계획을 모에게 설명했다.즉 1단계 준비 및 병력집중배치.2단계 북조선이 수차례 평화통일 공세를 펼칠 것.3단계 남측이 이 평화통일제의를 거부하는 즉시 군사작전 개시.모택동은 이 3단계 작전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모택동은 작전과 관련,몇가지 중요한 충고를 덧붙였다.우선 모든 병사와 지휘관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할 것.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며 대도시는 우회할 것.대도시 점령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됨.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적의 군사력을 파괴하는 데 두어야 함.이미 알려진 대로 후일 김일성은 모택동의 이 「귀중한」 충고를 제대로따르지 않아 작전에 큰 차질을 빚게 됐다. ○「3단계 계획」 동의 그 다음 모택동은 일본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김일성은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다만 미국이 2만∼3만의 일본군을 파병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김일성은 말했다.하지만 그 경우 북조선군은 더욱 열심히 싸울 것이기 때문에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자신했다. 주은래가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말을 듣고 모택동은 김일성에게 『일본군의 개입은 전쟁을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진짜 개입위험이 큰 쪽은 일본보다 미국이라고 모택동은 말했다.그러나 김일성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미국은 극동에 군사적 개입의사가 없다』고 미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했다.『미국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중국에서 물러 났으며 한국에서도 이같이 신중한 입장을 지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후일 전쟁발발 직후인 50년 7월2일에도 주은래는 로신 대사에게 미군의 개입가능성에 대해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반면 김일성은 끝내 미국의개입가능성을 과소 평가했다. 박헌영이 로신 대사에게 브리핑한 내용은 주은래의 것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다음은 로신이 본부에 보고한 박헌영의 브리핑부분.『50년 5월16일.박헌영의 발언.모택동은 일본군의 개입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음.미군개입시 중국이 병력을 보내 북조선을 지원하겠음.모택동은 또 소련은 미국과 38도선 분할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전투행위에 참가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했음.반면 중국은 그같은 의무규정에 얽매이지 않아 북조선에 대한 지원을 쉽게 확대할수 있음』 5월15일 저녁 공식일정을 끝낸 김일성 일행을 위해 모택동은 만찬을 베풀었다.만찬시작 전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이렇게 말했다.『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은 매우 순조로웠다.모동지는 해방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모동지는 모스크바에서 있은 스탈린동지와 본인사이의 합의사항을 모두 지지했다』 이튿날 5월16일 스탈린은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통일 뒤 중국·북한간 우호동맹 및 상호원조조약 체결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끝에 김일성·스탈린·모택동 3인간 무력남침에 대한 합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이제 남은 것은 공격개시의 택일뿐이었다.
  • “북 동결핵 가동댄 북·미 합의 무효”/「대북타협배제」법안 제출

    ◎미 하원 공화의원들… 곧 가결될 듯 【도쿄 연합】 북·미 핵합의와 관련한 클린턴 행정부의 타협배제를 요구하는 일련의 법안및 결의안이 미하원에 제출됐다고 산케이신문이 26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재 미 하원에서 심의중인 「해외국익법안」의 추가 또는 수정안 형태로 제출된 이들 법안 등은 북한이 특별사찰 수용,사용후 핵연료 전체의 해외처리 등에 응하지 않는 한 미정부도 북한과의 핵합의를 이행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법안 등은 특히 북한이 동결시킨 원자로 가동을 재개하면 북·미 합의는 무효가 된 것으로 하며,비무장지대의 군사력 삭감,중거리미사일의 배치 중지 등을 실행하지 않으면 북·미 수교도 추진하지 않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산케이는 이들 일련의 법안과 결의안이 공화당의원들에 의해 제출됐기 때문에 조만간 하원에서 가결될 것이 확실시 된다고 덧붙였다.
  • 미·중,동북아 안정에 힘써야(사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각한 갈등의 마찰을 빚고 있다.중국의 반대를 무릅쓴 미국의 이등휘 대만총통 방미허용이 직접적인 도화선이다.중국의 강력한 항의에 이어 중국 공군사령관이 방미일정을 단축,귀국했으며 주미대사 소환검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미중관계의 급냉각이다.우리는 이것이 동북아 및 한반도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고 경계한다. 미국의 대만총통 방미수용은 궁극적으로는 중국견제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중국의 꾸준한 군비증강 및 아시아패권 추구경향,문제지역에 대한 미사일 등 무기판매와 원자력발전소 이란판매추진 그리고 최근의 지하핵실험 강행 등으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이 강력히 반대하는 이 총통방미 수용은 그러한 대중심기의 표현이자 중국견제 잠재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대중외교의 대만카드 활용인 것이다.중국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중국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중국원칙」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미중관계 냉각내지 제약은불가피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지나친 군사력증강이나 아시아패권추구 및 지하핵실험강행 등은 동북아 안정에 저해요인이 될 수있다.중국이 아시아 최강국으로서 응분의 책임을 다하고 미국의 이유있는 반발도 충분히 참작하고 고려해 주기를 우리는 바란다.그러나 미국이 중국에 대해 대만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옳지못한 처사라 생각한다.핵문제와 관련된 지나친 대북한 온건자세도 결국 중국내지 한국 견제카드가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된다. 물론 양국관계의 냉각이 파국으로까지 치달을 것으로는 보지않지만 여하튼 중국은 물론 미국도 자중해 주기를 당부한다.미중갈등은 동북아 경제는 물론 안보차원에서도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다.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협력이 소홀해 질 가능성을 경계한다.북의 핵개발은 대미관계와 상관없이 반드시 저지되어야 할 동북아 평화와 안보의 공통된 필수과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김일성·스탈린 모스크바 비밀회담(6·25내막/모스크바 새증언:5)

    ◎스탈린,김에 「3단계 남침계획」 수립지시/스탈린/“「엘리트 공격사단」·추가부대 창설을”/김일성/“모택동 동지도 조선해방 지원약속”/모택동,“김­스탈린 남침합의” 듣고 「조선인 사단 파견」 결정 □3단계 작전계획 ①38선 가까이에 병력집결 ②북에서 먼저 평화안 제의 ③평화안 거부땐 기습공격 김일성이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룰 의제로 제의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1950년3월23일·슈티코프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 「1.남북조선 통일방안 및 방법(의도는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임) 2.경제문제. ⓐ)북조선 경제개발.개발계획의 방향·기간.2·3·5년? 남조선 개발문제는? ⓑ)북조선 철도의 전기화. ⓒ)소련으로부터 산업장비·자동차 추가수입문제. ⓓ)북조선 농업개발문제. ⓔ)소련전문가 파견. 3.중조관계. ⓐ)모택동과의 회담. ⓑ)중국과의 조약체결문제. ⓒ)중국거주 조선인,조선거주 중국인문제. 4.아시아 공산당·노동당간 협조문제.」 ○소서 특별기 제공 이 전문을 보낸 이튿날 슈티코프대사는 재차 김일성과 만나 스탈린이 김과 박헌영 두 사람을 만나는 데 동의했다고 통보했다.김일성은 출발일을 3월30일로 잡겠다고 말했고 이에 슈티코프는 특별기를 이용해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물론 이 특별기는 소련이 제공해야 하는 것이었다.슈티코프대사는 3월24일자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이 특별기는 3월29일 평양에 도착해야 함.비행기가 못올 경우 원산에서 군함으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간 뒤 그곳에서 특별객차를 단 기차를 이용,모스크바로 가야 함」 이렇게 해서 김은 소련이 제공한 특별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3월30일부터 4월25일까지 거의 한달을 그곳에 머물렀다.이 기간중 김일성은 세차례 스탈린과 회담했다.두 사람의 대화내용을 시간·장소별로 별도기록한 문서는 발견되지 않는다.아마도 보안유지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아예 대화속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하지만 이들의 회담내용은 당시 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이 내용을 종합한 상세한 보고서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귀한 자료이기 때문에 보고서를 전재하기로 한다(1950년3월30∼4월25일.김일성의 소련방문건.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작성). 「스탈린동지는 김일성에게 국제환경과 국내상황이 모두 조선통일에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강조했다.국제적 여건으로는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해 승리를 거둔 덕분에 조선에서의 행동개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중국은 이제 국내문제로 인한 시름을 덜었기 때문에 관심과 에너지를 조선지원에 쏟을 수 있게 됐다.중국은 이제 필요하다면 자기군대를 무리없이 조선에다 투입할 수 있다.중국의 승리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하다.이는 아시아 해방의 기운을 증명했고 대신 아시아 반동세력과 그들의 주인인 미국·서방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미국은 중국에서 물러나 이제 더이상 군사적으로 새 중국당국에 도전치 못한다. 이제 중국은 소련과 동맹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세력에 대한 도전을 더 망설일 것이다.미국에서 오는 정보에 의하면 미국내에도 타국에 개입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소련이 원자탄을 보유하고 유럽에서의 위상이 강화됨으로써 이런 불개입분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 해방의 찬반을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한다.첫째 미국이 개입할지 여부를 검토하고,둘째 중국지도부가 이를 승인하는 경우에 한해 해방작전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투수단 기계화 김일성은 미국이 개입치 않을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그것은 북조선 뒤에 소련·중국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고 미국 스스로 대규모전쟁을 벌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내용. 김일성=모택동동지는 항상 조선전체를 해방하는 우리의 희망을 지지했습니다.모택동동지는 중국혁명만 완성되면 우리를 돕고,필요할 경우 병력도 지원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조선통일을 이루겠습니다.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탈린=완벽한 전쟁준비가 필수입니다.무엇보다 군사력의 준비태세를 잘 갖추어야 합니다.엘리트 공격사단을 창설하고 추가 부대창설을 서두르시오.사단의 무기보유를 늘리고 이동·전투수단을 기계화해야 합니다.이와 관련된 귀하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상세한 공격계획이 수립돼야 합니다.기본적으로 공격은 3단계로 작성하시오.(1)38도선 가까이 특정지역으로 병력집결.(2)북조선당국이 평화통일에 관해 계속 새로운 제의를 내놓을 것.상대는 분명 이를 거부할 것임.(3)상대가 평화제의를 거부한 뒤 기습공격을 가할 것. 옹진반도를 점령하겠다는 귀하의 계획에 동의합니다.공격을 개시한 측의 의도를 위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북측의 선제공격과 남측의 대응공격이 있은 뒤 전선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오.전쟁은 기습적이고 신속해야 합니다.남조선과 미국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어서는 안됩니다.강력한 저항과 국제적 지원이 동원될 시간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소련이 전쟁에 직접개입하는 것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소련은 다른 지역,특히 서방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스탈린은 김일성에게 다시 한번 모택동과의논할 것을 강조했다.모택동이 아시아문제에 정통하다는 점을 덧붙였다.스탈린은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보낼지 모르기 때문에 직접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일성은 전쟁승리에 대한 강한 자심감을 내 보이며 스탈린을 안심시키려 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국제국 보고서의 계속. 「김일성은 스탈린동지에게 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인지 상세한 분석을 해 보였다.공격은 신속히 수행돼 3일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한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이 강화돼 대규모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미국은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고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전체 조선국민은 열렬히 새 정부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강조했음.박헌영은 남조선내 빨치산활동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음.그는 20만 당원이 그곳에서 대규모폭동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음」 이 회담에서 김일성과 스탈린 두 사람은 1950년 여름까지 북조선군이 완전한 동원태세를 갖추고 북조선군 총참모부가 소련고문단의 지원을 받아 구체적인 남침계획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모스크바회담을 계기로 남침계획수립의 주도권은 어느덧 김일성으로부터 스탈린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남침승인과 함께 스탈린은 즉석에서 구체적인 3단계 작전방향까지 김에게 제시했던 것이다.한편으로 스탈린은 모택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한국전쟁을 아시아공산화운동의 일환으로 만들고자 했음이 이 문서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일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에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중 누가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두 사람은 때론 경쟁적으로,때론 상대측에 일을 떠넘기는 식으로 김일성을 지원했다.우선 중국은 1940년대말부터 김일성의 권력강화와 군사력강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국민당과의 내전중에도 모택동은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필요하다면 병력지원까지 할 것을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다만 중국내전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것이다.그리고 모택동과 스탈린 두 사람은 남침문제를 주제로 회담도 가졌다.그래서 스탈린과 김일성 두 사람이 모스크바회담에서 모택동을 제외한 채 무력남침에 합의했다는 보고를 받고 모택동은 매우 섭섭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모택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지원의사를 재삼 다짐했다. ○방소결과 중 통보 김일성은 49년3월 모스크바를 다녀온 뒤,5월초 인민군 정치보위국장이며 당중앙위원인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김일성은 5월14일 슈티코프대사를 만나 김일의 방중결과를 통보했다(슈티코프가 스탈린에게 보낸 보고전문.5월15일). 「김일을 중국으로 보냈다.방문목적은 중국공산당중앙위와 교류를 맺고 중국군내 조선인사단(만주출신 조선인으로 구성)에 관해 협의하기 위해서다」 하고 김일성은 설명했다.김일은 4월30일 고강(고강)을 만나 중국공산당 중앙위로 안내됐다.그러나 김일의 진짜방문목적은 조선군 사단을 북한으로 전출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모택동은 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일을 통해 김일성은 모택동에게 친서를 전달했다.친서에는 조선군 전출문제 외에도 남침문제가 언급돼 있었다.이에 대해 모택동은 『군사행동은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으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답했다.시기적으로 스탈린보다 모택동이 먼저,더 적극적으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지지한 것이다.
  • 미,대북 핵협상 관련/주한미군 증강 돌입

    【도쿄 AFP 연합】 미국은 교착상태에 빠진 대북 핵협상을 둘러싼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주한 미군의 단계적 군사력 증강계획의 첫 단계에 돌입했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21일 보도했다.
  • 크렘린의 남침 결단(모스크바 새증언:4)

    ◎스탈린­모택동 비밀회동… “북 남침 지원키로”/김일성,중 공산화에 고무… “개전”고집/스탈린,“전쟁나면 북 지원”전문 보내/소,북 3개 정예사단 창설·「무기구입 차관」제공 약속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최초로 남침허용을 요청한 49년 3월부터 이듬해 1월 만찬장사건이 일어나기까지 10개월여 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 스탈린은 전쟁 개시를 원치 않았다.49년 9월 툰킨 대사대리가 김일성의 옹진반도 점령계획을 보고한 것을 시발로 평양의 소련대사관과 모스크바 사이에 오간 전문들은 김일성이 남침 개시를 요청하고 스탈린이 이를 말리는 식으로 계속됐다.49년 10월30일부터 수일간 스탈린과 슈티코프대사간에 오간 전문들을 보면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기도를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읽을 수 있다. ○“전쟁기도 못 마땅” 스탈린은 9월24일 당정치국결정을 통해 김일성에게 남침불가를 통보한 바 있다.그러나 슈티코프 대사는 그후에도 김일성이 옹진반도점령,해방구건설 등에 미련을 못버린다는 사실을 계속 보고했다.이 일을 두고 스탈린은슈티코프 대사를 크게 질책하기에 이른다.『10월30일.슈티코프 대사에게 엄중경고함.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조선에 대해 국지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긴 대사의 행동은 적절치 못함.그런 도발은 우리의 이익에 매우 위험하고 적으로 하여금 대규모 전쟁을 시작할 빌미를 주는 것임.대사의 행동은 전적으로 무책임한 것임』 크게 놀란 슈티코프 대사는 이튿날 곧바로 해명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띄웠다.『본인은 북조선 내무성에 파견된 우리 고문관 보두아긴 대령을 통해 북조선이 38도선을 침범치 못하도록 엄중 감시하라고 지시했음.본인은 북조선당국에게 남조선을 무력침공하라는 충고를 결코 한 바 없음』 스탈린은 이 해명에도 불구하고 11월20일 당중앙위 명의로 재차 경고전문을 슈티코프에게 보냈다.『귀하가 제출한 해명은 전적으로 불만족스러움.이는 바로 모스크바가 내리는 지시사항을 귀하가 이행치 않는다는 증거임.38도선에서 어떤 긴장도 발생시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대신 귀하는 이 문제를 놓고 토의를 벌였음』 호된 질책을 당한슈티코프 대사는 이후 김일성의 남침계획 관련 보고를 중단했다.대신 남한의 북침기도에 관한 보고만 수차 스탈린 앞으로 더 보냈다. 그렇다면 스탈린이 이러한 초기 입장을 바꿔 김일성의 남침의사에 동조하게된 것은 언제,무슨 계기가 발단이 된 것일까.그것은 바로 중국내전에서 모택동이 승리한 것이다.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가장 크게 고무된 사람은 바로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이 만찬장사건을 일으킨 것도 사실은 모택동의 승리에서 얻은 용기의 일단을 보인 것이었다.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을 해방시켰으니 다음은 자기 차례라고 김일성은 생각했던 것이다.더구나 모택동은 중국내전만 끝나면 북조선을 도울 수 있다는 언질을 여러차례 김에게 했었다.1950년 1월30일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답신이 스탈린으로부터 떨어졌다.모스크바에서 면담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소 차관 전용 허용 이날 스탈린은 전쟁불가를 고수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다음의 전문을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보냈다.『…김일성 동지의 불편한 심기를 이해함.그러나 그가 지금남조선과 관련해 도모하려는 중대사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이해해야 함.무엇보다 큰 위험부담이 없는 쪽으로 일을 꾸며야 함.그가 이 문제와 관련,나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항상 그를 만나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음.이런 나의 입장을 김일성에게 전달하고 이 문제에 대해 내가 그를 도울 준비가 돼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 구체적인 남침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이 전문이 되는 셈이다.그러나 마치 면담허락의 조건인 양 스탈린은 이 전문에서 매년 최소한 2만5천t의 납을 소련에 공급해달라고 요구하며 『김일성이 이 요구를 거절하지 말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슈티코프 대사는 전문을 접수한 바로 그날 김일성을 만났다.이날 면담내용은 이튿날 스탈린 앞으로 보낸 보고전문에 상세히 기록됐다.『50년 1월31일.각하의 지시에 다라 김일성 동지를 만났음.김일성은 내가 전달한 내용을 매우 만족스럽게 받아들였음.동지께서 그를 만나겠다고 한 사실과 이 문제(남조선 해방문제)와 관련,그를 지원해 주겠다고 한 사실에 그는 매우 큰 감명을 받았음.김은 스탈린동지의 진의를 한번 더 확인하고 싶어 스탈린동지께서 바로 이 문제와 관련해 자기를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하냐고 재차 물었음.본인은 이 전문내용으로 판단할 때 그렇다고 확인해주었음.김은 자기는 언제든지 스탈린동지를 만날 준비가 돼있다고 덧붙였음』 이와함께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소련이 요청한 납을 10∼15일 이내에 약속대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문을 보낼 바로 그 시점에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은 모택동과 만나고 있었다.김일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때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은 북한의 남침시 지원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그렇게도 전쟁을 애원했던 사람은 김일성이었지만 중국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함과 함께 북한의 남침문제에 대해서 스탈린 모택동 두사람이 이니셔티브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2월2일 스탈린은 슈티코프 대사 앞으로 다음의 전문을 보냈다.『…다음 사항을 김일성 동지에게 주지시킬 것.그가 나에게 의논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시점에서 완벽한 보안이 유지돼야 함.북조선의 다른 지도자들은 물론 중국지도자들도 알아서는 안됨.이는 적에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함임.…중략…지금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모택동 동지와의 회담에서 우리는 북조선의 군사력과 방어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를 도울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논의했음』 이틀 뒤 김일성이 먼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그리고는 즉각 다음의 문제들을 제기했다.(대통령문서소보관.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50년 2월4일.김일성은 전군을 10개 사단으로 증강시키기 위해 추가 지상군사단을 편성하고 싶다며 본인의 의견을 물었음.본인은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답하고 우선 이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고 물었음.아울러 이에 대해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음.김일성은 소련정부가 51년도 분으로 주기로 한 차관을 50년도에 쓸 수 있도록 자기가 직접 스탈린 동지에게 요청토록 해달라고 했음.그는 이 차관으로 3개 지상군사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고 싶어했음.본인은 이 요청을 본국정부에 보고하겠다고 답했음』 스탈린은 2월9일자 전문을 통해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고 답했다.그는 이 3개사단을 엘리트장교,현대식 장비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라는 별도주문까지 덧붙여 보냈다.다음은 전문내용.『김일성을 만나 3개사단 창설을 추진하라고 이를 것.이 사단들은 경험있는 장교들과 훈련 잘된 사병,현대무기를 갖춘 정예부대로 만들어야한다는 점을 그에게 유념시킬 것.51년도분으로 책정된 차관을 50년도로 전용시켜 3개사단 창설에 필요한 무기구입에 쓰도록 승인한다는 것도 알릴 것』 ○「무력남침」못 박자 바로 이튿날 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을 만나 이 사실을 통보하고 곧바로 같은날 스탈린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슈티코프 대사는 『김일성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원조에 대해 스탈린 동지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몇번이나 되풀이 했다』고 보고했다.이후 김일성은 모스크바 방문준비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방문절차와 관련,모스크바와 평양간 수차례 전문이 오갔다.3월20일 김일성은 슈티코프 대사를 만나 방문날짜를 4월초로 잡고 박헌영을 대동하고 싶다고 말했다.아울러 이번 방문을 1946년도와 마찬가지로 비공식(비밀) 방문으로 하고 싶다고 주문했다.방문준비는 모두 마쳤으며 스탈린과의 회담에서 다음의 사항을 논의하고 싶다며 회담의제를 내놓았다. 김일성이 제의한 이 의제는 3월21일자 슈티코프 대사가 스탈린 앞으로 보낸 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①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에 관해 ②북조선의 경제발전에 관해 ③가능하다면 당사업에 관해. 3월23일 슈티코프 대사는 이 의제를 더 상세히 정리해 다시 모스크바로 보냈다.①통일방안 ②경제문제 ③중·조선관계 ④아시아공산당,노동당의 협력문제 등으로 세분한 이 전문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이 ①항의 통일문제이다.그런데 3월1일자 보고전문에서 「남북조선통일 방안과 방법」으로 기술됐던 이 항목이 이틀 뒤의 이 전문에서 『남북조선 통일 방안과 방법.의도는 군사적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는 데 있음』이라는 쪽으로 바뀌어졌다.통일방안을 아예 「무력남침」으로 못박자고 김일성이 요청한 결과였다.
  • 남침야욕 노골화(6·25 내막/모스크바 새증언:2)

    ◎김일성,“개막 두달내 남한점령” 장담/49년9월 소 공사에 남침구상 처음 표명/“전쟁 허락해 달라” 집요하게 스탈린 설득/“국지전·전면전” 선택권은 크렘린에 맡겨/평양,빨치산 지휘자 8백명 남파… 게릴라전 지도 김일성의 구체적인 남침구상이 최초로 문서로 드러난 것은 1949년 9월3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의 툰킨공사가 스탈린앞으로 보낸 극비보고전문이다.전문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시아대통령문서보관소) ○스탈린 관심 표명 김일성이 밝힌 이 최초의 구체적 남침 계획에 대해 스탈린은 일단 관심을 표명했다.그리고는 9월 11일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앞으로 한반도정세에 관해 다음의 항목으로 상세한 보고서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⑴남조선군의 전력에 대한 평가.규모·무기·전투능력등. ⑵남조선내 빨치산운동상황.개전시 그들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지. ⑶)북조선이 전쟁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인민들이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⑷남침시 미군이 취할 입장 ⑸북조선의 군사력·무기·전투능력.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툰킨공사는 곧바로 12∼13일 양일간 김일성·박헌영을 면담했다.재미있는 것은 툰킨공사와의 면담에서김일성의 태도는 이전의 남조선의 군사적 위협에서 대남 무력침공이 성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급변했다는 것이다.다음은 9월14일 툰킨공사가 스탈린에게 보고한 김과의 면담내용. 『⑴남조선군은 장교들의 훈련수준이 아주 낮다고 함.김일성은 38도선에서 벌어진 몇차례 교전결과를 토대로 이같이 평가했음.김은 현재 남조선군 거의 모든 부대에 북한첩자들이 침투해있다고 했음.그러나 내전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여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음. ⑵김일성·박헌영은 현재 남조선에 1천5백∼2천명의 빨치산이 활동중이라고 했음.김은 그러나 이들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했음.남한출신인 박헌영은 김과 다소 다른 견해를 밝혔음.그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음. ⑶북한이 선제공격을 시작할 경우 남한국민들의 반응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김일성은 말했음.김은 금년 봄 모택동이 북조선대표 김일에게 말한 내용을 인용,지금 전쟁을 시작하기보다는 중국내전이 고비를 넘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음』 그러나 바로 이튿날 김일성은 슈티코프에게 전날과 달리 북조선이 군사작전을 시작할 경우 남조선 국민들도 이를 환영할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불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슈티코프대사는 이를 통역으로 나온 허가이(편집자주:재소한인으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비서)의 영향탓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김일성은 다시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따라서 전면전 대신 옹진반도와 반도동쪽의 개성까지 남한영토 일부를 점령하는 작전이 좋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김일성은 북조선군이 남조선군과 비교해 강점으로는 탱크·박격포·비행기등 기술적인 면과 훈련·사기등에서 앞서고 약점으로는 조종사의 숫자 및 훈련부족·군함부족·탄약부족·대구경총의 전투태세 미흡등을 들었다.김일성은 먼저 옹진반도를 공격,그곳에 주둔중인 남한군 2개연대를 궤멸시키고 반도를 점령한 뒤 동쪽의 남조선영토 일부를 점령하면 일단 공격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겠다고 했다.남한군의 사기가 떨어졌다 싶으면 계속 남진하되 그렇지 않으면 옹진반도를 확고히 해 방어선을 3분의1 정도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밝히면서도 스탈린의 의중을 알기 위해 끝까지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물론 남침의사를 내비친 것은 스탈린이 원칙적으로 이에 동의할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그러면서도 남한 군사력에 대한 평가,국지전을 할지 전면전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은 결국 스탈린이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다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툰킨공사는 이 보고전문 말미에 김일성·박헌영과는 다른 견해를 덧붙이며 전쟁개시에 강한 브레이크를 걸었다. ○무력통일밖에 없다 『김일성이 제의하는 국지전은 필히 남북한간 내전으로 발전될 것임.현재 남북한 지도부내 내전 지지자는 극소수임.현단계에서 북조선이 내전을 시작하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생각해야 함.본인은 현명치 못한 판단으로 생각함.북조선군은 남쪽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신속한 작전을 수행할 만큼 강하지 못함.빨치산과 남조선인민들의 도움을 가정하더라도 신속한 성공을 기대하기 힘듦.내전으로 확대되면 정치·군사 양면에서 북조선에 불리함.첫째로 전쟁확대는 미국에 이승만정부를 지원할 명분을 줌.미국은 중국에서 패했기 때문에 매우 적극적으로 남조선문제에 개입하려 함.또한 전쟁피해가 커지면서 남조선국민들 사이에 전쟁을 시작한 측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 것임』 그는 이 전문과 함께 남북한의 정치경제·군사 관련장문의 보고서를 스탈린앞으로 보냈다.이 보고서는 그동안 알려진 당시상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는 인용치 않기로 한다.다만 한가지 툰킨공사가 이 별도보고서에서 김일성이 남침의사를 갖고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그는 김일성·박헌영 두사람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 가능성은 없어졌고 무력에 의한 통일의 길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그러나 여기서도 툰킨공사는 남침시 미군개입과 반소선전에 악용될 가능성등을 들어 전쟁개시에 강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그는 전쟁보다 남조선내 빨치산부대의 활동을 지원하는게 보다 현명하다는 견해를덧붙였다. 이같은 보고를 접한 크렘린은 9월24일 당중앙위 정치국 이름으로 북조선의 남침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지도부에 전달케했다(소련공산당중앙위 정치국결정.회의록 N191).이 결정에서 크렘린은 군사적으로 인민군이 장기적인 작전을 벌일 준비가 안돼 있어 지금 작전을 시작하면 적을 패배시킬 수도 없을 뿐아니라 북조선에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초래하게 된다고 못박았다.이 결정은 「조선인민들이 통일을 고대하고 있다는 동지의 견해에는 동의한다.그러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무엇보다 남조선내 빨치산운동을 강화하고 대규모 반정부 기운이 성숙되기를 기다리라」고 충고했다.옹진반도 점령작전에 대해서도 소련지도부는 『이는 남조선과의 전면전 초기단계로서 시작돼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때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빨치산운동 강화를 1차 면담에 이어 두번째로 김일성의 개전허가요구를 거절한 것이지만 스탈린의 이 결정은 좀더 확실한 승리를 위한 작전지시문 같은 느낌을 준다.아울러 김일성과 스탈린 두사람간 전쟁개시에대한 공감대는 이 무렵을 전후해 확고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10월4일 슈티코프대사는 이 전문을 들고 김일성·박헌영을 다시 만났다.그리고는 바로 그날 저녁 스탈린앞으로 다음과같이 이 면담결과를 보고했다.『김일성과 박헌영은 우리의 통보를 냉담하게 받아들였음.김일성은 「좋다」는 한마디만 했고 박헌영은 모스크바의 논리가 옳다고 수긍한 뒤 남조선에서 빨치산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다리는게 좋다고 동의했음.현재 남조선에서는 북조선에서 파견한 8백명이 빨치산운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했음』 소련의 이같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은 남침의사를 굽히지 않았다.이듬해인 50년 1월17일 평양에서는 박헌영외상이 주최한 한 만찬이 열렸다.1월10일 애치슨 미국무장관이 미국의 태평양안전보장선에서 한반도를 제외시킨다고 선언한지 꼭 1주일째 되는 날이었다.이 만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취한 김일성은 소련·중국 대표들을 붙들고 자신의 남침의지를 다시한번 강하게 나타냈다.이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을 한 것이다.
  • 차분쟁/미,일에 「안보카드」 사용 움직임

    ◎NYT지 「경제와 연계」보도 관심/「핵우산」 제공 타당성에 의문 제기/국방부선 반대… 무역전쟁 새국면 미·일간 자동차분쟁이 무역차원을 벗어나 양국간,더 나아가 동북아지역 안보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14일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보제공과 무역분쟁의 연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다음은 NYT 보도내용이다. 핵우산 제공과 35년간 지속된 상호안보협정등 일본에 대한 미국의 안전보장이 아·태지역 안보의 핵심역할을 수행해왔다.그러나 경제안보가 최우선시되는 오늘의 세계에서 냉전의 유산인 무조건적인 안보제공이 과연 타당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아무리 무역공세를 취하더라도 미국이 결코 안보문제를 카드로 사용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무역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지난 수십년간 미관리들은 무역과 안보문제의 연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싫어해 왔으나 지난주 양국간 자동차 분쟁이 전개되면서 양상은 달라지고 있다.제프리 가튼 미상무부 국제무역차관은 『일본과의 안보관계에 손상을 주거나 주일 미군사력을 무역의 수단으로 이용할 의도가 없지만 경제적 긴장관계는 안보유대관계의 기초인 양국간 신뢰를 점차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와 교역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뚜렷한 적도 없는데 강력한 안보유대관계가 유지된 사례는 역사상 찾아볼 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표현은 완곡하지만 무역과 안보의 연계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반면 미국방부의 조셉 나이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의 발언은 행정부내 다른 목소리를 반영해 주고 있다.그는 지난주 뉴욕의 저팬 소사이어티에서 행한 발언에서 『일부에서는 무역문제에서 일본의 팔을 비틀기 위해 안보를 카드로 이용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단기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안보를 분노에 찬 무역경쟁국(미국)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논리가 일본내 극우파로부터 제기될 것이며 그 결과 일본은 세계의 군사강국으로 다시 부상하는 외에 다른 선택이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방부나 국무부에서 누구도 미키 캔터 무역대표나 로버트 루빈재무장관에게 제동을 걸 사람은 없다.캔터대표가 지난주 행정부의 대일 무역제재를 건의했을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클린턴 대통령이 2년전 시애틀에서 아·태지역 정상들에게 간략히 경고했던 말을 조만간 되풀이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러 붉은광장서 전승 50주년 행사

    ◎“나치 물리친 단결력 높이 평가” 옐친 연설/미·중·영·독·가 정상 등 수뇌급 50명 참석 【모스크바 AP AFP 연합】 러시아의 2차세계대전 종전 50주년기념행사가 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존 메이저 영국총리,강택민 중국주석등 외국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이날 붉은 광장의 레닌묘소 위에서 수천명의 행사참석자에 행한 연설에서 소련군과 연합군이 나치 독일군을 물리친 것은 국가간 이견을 극복하고 단결한 훌륭한 사례라고 칭송했다. 그는 당시 연합국 지도자들이 나치 독일을 패퇴시키기 위해 『용기와 지혜』를 보여줬다고 말하고 『우리는 파시즘이 결코 다시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옐친대통령의 연설후 수천명의 참전용사,사관생도,특공대원등은 붉은 광장에서 행진을 벌였다. 과거 소련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사열을 행하던 레닌묘소 위에 옐친이 등장한 것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이날 행사가 열린 붉은 광장은 군인·경찰·관리등수천명이 동원돼 경계를 강화한 가운데 주변건물은 각종 포스터·현수막·대형그림등으로 장식됐으며 군악대의 연주와 행진,교회종소리등으로 축제분위기가 고조됐다. 러시아당국은 이날 하오에도 탱크,이동식 로켓발사대등 현대식 무기들을 동원한 2차행진을 모스크바 서부구역에서 한 차례 더 실시할 계획이나 클린턴대통령등 외국지도자들은 체첸사태를 이유로 참석을 거부했다. 이번 행사에는 이밖에도 헬무트 콜 독일총리,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등 50여명의 외국지도자가 참석했다. ◎“러 군사력 강화”/그라초프국방 주장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9일 모스크바에서 연합군 전승 50주년 기념행사가 거행된 가운데 파벨 그라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역적인 무력충돌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강화돼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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