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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사회·통일분야­토론내용(제2의 건국선언 무엇을 담나:Ⅱ)

    ◎권위주의·관치·개발독재 청산/민족사 비판적 고찰 통해 21세기 대처/가슴에 와닿는 현실적 비전 제시 필요/남북 화해·협력시대 열어야/‘햇볕’ 좋지만 맞고도 주기만하면 곤란/세계적 보편주의·의식·규범 적극 수용 올 8월15일은 정부가 수립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지난 반세기동안 8·15라면 일제로부터의 해방,광복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왔다.자유총선거에 의한 민주공화국이 처음으로 탄생한 건국의 가치는 소홀히 다뤄온 감이 없지 않다.金大中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를 통해 국정 최고 슬로건으로 ‘제2의 건국’을 선언한다.현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명실상부한 민주·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6대 국정운영철학과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을 국민앞에 제시하게 된다.金대통령은 이미 국정운영 기조로 ▲민주주의 ▲시장경제 ▲세계주의 ▲화해와 통합 ▲지식중심의 산업 ▲안보와 교류·협력의 6대 지표를 천명한 바 있다. 서울신문사는 건국의 참의미와 그 건국정신이 우리 현실에 어떤 의미를 주며,그리고 6대 국정운영 철학의 실천적 방법이 무엇인지를 총론 및 정치·외교부문,경제분야 등 두차례로 나눠 전문가들 집중토론을 통해 조명해봤다.1차로 동국대 白京男 교수와 서울대 朴相燮 교수,연세대 文正仁 교수를 초청,총론과 정치·사회·통일분야를 정리했다. ▲白교수=우리는 19세기 개항을 자주적으로 하지 못해 근대화에 실패했다. 이제 21세기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족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긴요하다.한국의 지성들도 민족의 미래를 위해 20세기의 성찰이 필요하다.제2의 건국 이념은 그런 의미에서 문제의식의 제기다.선진국들은 한 세기 전에 국가의 비전을 만들어 도약에 성공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제1건국시대 개혁의 실패는 권위주의,지역패권,분단이라는 3중의 기득권 구조 때문이었다.바로 개혁의 걸림돌인 것이다.지금까지 국민적 생활에서 법질서 법치국가의 뿌리가 내리지 못했다.일상 생활에서도 땀흘린 대가가 없는 부분도 많았다.준법자가 손해보는 세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요컨대 민주주의 공고화,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세계경제에의 적응으로과거의 구조적 모순을 청산해야 한다. 구체제를 작동시켜 온 분단과 권위주의 대결,관치·정경유착,개발독재형모델등의 패러다임은 더 이상 효력을 상실했다.50년동안 근대화 산업화를 이룩했던 모델은 21세기에는 더 이상 원활히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말잔치로 끝나지 않도록 ▲朴교수=현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굵고 화려하기만 하지 선뜻 와닿지 않는다.과거 정부와의 차별성을 굳이 보여줄 의욕이라면 겸손한 말로 시작하는 게 좋다.지난 정부든 현 정부든 지금 구조로는 안된다는 절실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그러나 상징이 가진 논리에만 쫓기다 보면 전술·전략의 개념이 없어지고 앞뒤가 뒤바뀔 우려가 있다.현 정부가 5년 동안 할 일이 많은데 시작부터 화려한 수사로 시작해 말잔치로만 기울어선 안된다. ▲文교수=정치는 수사와 상징조작이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다.그러나 제2의 건국은 너무 진부하다.마치 지난 정권의 ‘제2의 개항’을 보는 것 같다. 제2의 건국이란 용어는 헌법을개정하고 사회·정치구조를 새롭게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개항보다 강력한 뉘앙스이고 과거를 부정하는 의미가 짙다.가급적 단절의 의미를 지양하고 연속성 위에서 창조성 있는 제2의 건국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또 제2의 건국 목표들이 너무 중장기적인 관점에 치우쳐 있다.오늘날 한국의 위기에 대한 절실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8월15일에 제2의 건국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 전과 갑자기 달라질 수는없다.너무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중장기 목표에 너무 치중 ▲白교수=전환기에는 비전이 필요하고 구체적 방법론으로 큰 틀이 필요하다.큰 틀없이 세부적인 방안이 어떻게 나오는가.제2 건국 개념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와 긍지를 이어 받아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결코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다.국가 운영을 위해 국민적 동력을 끌어내자는 의미가 크다.특히 사회 모든 요소에서 권위주의를 다 털어버리자는 것이다.우리 사회에는 권위주위에사로잡혀 민주적인 분위기가 없다.모든 운영의 원리를 민주적인 협의식으로 사회질서의 축을 잡아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외교도 진행돼야 한다.외교는 이념적 대립이 아니라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력 있는 국가구조를 갖추고 민주적 성숙국가로 재도약하는 도구라야 된다.제1의 한강기적을 만들어 낸 만큼 제2의 한강의 기적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목표가 외교의 과제여야 한다.기업,실업·도산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외교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무엇보다 우선할 과제로서는 교역을 활성화하고 투자유치를 증대하는 한편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작업이다.이외에도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한민족의 생존 번영의 터를 닦는 목표가 필요하다. ▲朴교수=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르다.어느 사회든 강제적 권위가 아니라 서로 인정되는 권위가 살아 움직일 때 질서가 형성되고 구성원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따르는 데 민주주의의 열쇠가 있다.이러한 권위를 살려내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인데 그 부분은 빠진 것 같다.사회의 권위가 다 깨진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날수 있을지 의문이고 특히 현 정부는 스스로 권위주의를 없앴다고 생각하지만 현 정권 초기에도 과거 정권 초기의 권위주의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文교수=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별해야 한다.권위는 민주정치를 움직여가는 동력이다.정통성있는 정부는 권위가 올라가고 정부의 법질서가 존중 받는다.반면 권위주의는 자율이 아니라 강제에 의한 수직적 이익표출의 한 방법이다.우리 사회에서 권위주의가 제일 많이 노출되는 부문은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이다. 민주정치 기본은 정당이다.정당내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권위주의가 판치는 데 정치권이 무슨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겠는가.또 민주주의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金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면 다원주의적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듯하면서도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신봉자인 것도 같다.노사정위원회가 바로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대표적 시책 사례다.지도자가 이처럼 미국식과 서유럽식을 오락가락하면 정치·이념적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한가지 유형을 분명히지향할 필요가 있다. ▲白교수=민주적 정통성을 갖고 있어야 진정한 권위가 나온다.정당을 선진화하고 지역구도 파괴하고 선거법을 개정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체제에서는 미국식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옳다고 생각한다.위기를 벗어나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제체제로 가야한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특히 노사정위원회는 모든 사회 성원들이 책임을 가지고 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하려는 모델이다.노사정 대타협이 없으면 노동자의 파업,재벌 이기주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위기 극복이 어려워 질 것이다. ○정책방향 일관성 있어야 ▲朴교수=미국식과 구라파식의 두개 모델이 엄격히 갈려지는지,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인지 의문이다.특히 노사정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구라파식이나 미국식은 구체적으로 경험한 역사적 사실이 우리나라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보다 우리가 닥친 현실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인식을 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현정부의 정책방향은 어느 때엔 다원주의 선호하는 것 같지만 사회민주주의 성격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현상황에서 우리측의 정책 노선의 큰 방향은 어차피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같다. 희망을 제시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처한 입장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지역구도를 깨기 위해 정당제도를 바꾼다고 하지만 그 동안 제도가 나빠 지역구도가 남아 있는 게 아니다.독일식 정당명부제든 무슨 식이든 현재 우리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와 생활 방식 등 움직일 수 없는 패턴이 있다는 점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지방서 세계로 직접 연결 ▲文교수=IMF체제 극복 때까지는 미국식 민주주의,그 이후에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식의 발상은 문제가 있는 것같다.그리고 중앙집권은 나쁘고 지방분권은 나쁘다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도위험하다.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으로 나아간다는 목표는 자칫 국민들에게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소지가 다분하다.과도한 중앙의 권위와 자원을 나눠가져야 할 필요는 있지만 중앙을 무력화시키고 지방에 모든 권한과 책임을 이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얼마전 강연차 내려갔던 전남 장성의 경우 지방재정 자립도가 겨우 20%에 불과했다.이런 상태에서 중앙의 보호와 통합조정 없이 지방정부가 존재할 수는 없다.우리나라는 어차피 연방제 국가도 아니다. 우리의 세계화 패턴도 ‘지방에서 서울로,다시 서울에서 세계로’라는 식이었다.그러나 앞으로는 ‘지방에서 바로 세계로’라는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생력을 길러 세계화의 파고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白교수=정치 문화 예술의 중심이 분산되고 지방중심 체제가 되면 자연스레 자원과 권력이 나눠지는 것이다.세계화 시대엔 경제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지방 기업들이다.서울을 통하지 않고 지방에서 해외로 연결돼야한다.지방에서 중앙을 거치지 않고 곧 바로 세계로 나가자는 것이다.민족주의에 집착하면 세계로 갈수 없다.세계적 보편주의,의식·행위규범 등을 우리 것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세계주의는 우리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가치개념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朴교수=지방분권도 좋지만 경제적인 것 중에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된 상태에서 지방사람들의 불만은 재정자립도 등 경제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한 두시간 생활대인 우리나라에서는 환경 등 중앙에서 관장할 주요 문제가 있는데 지방에 떼어준다고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현재 권력의 핵심은 정보 데이터를 어떻게 모으느냐에 있다.권력의 중심을 지리적인 위치로 놓고 생각하는 것은 19세기적인 발상이다. ▲文교수=민족주의의 기원은 3가지다.민족주의를 현실의 어려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는 ‘도구론적 민족주의’가 그 하나다.그리고 서구에서 볼 수 있는 계급착취와 노동착취를 겨냥한 ‘계급적 민족주의’라는 것도 있다.그런데 한국의 민족주의는 ‘목적적 민족주의’개념이다.같은 곳에 태어나서 한 언어를 쓰고 지리적으로 고립돼 퇴출이 없다는 점에서다.따라서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바로 삶의 양식이다.이것을 부인하고 세계화로 간다는 것은 최근 영어 공용화 논쟁같은 황당한 발상을 가능하게 할 수있다. 그리고 白교수께서 닫힌 민족주의를 지적했는데 열려진,계몽적인 민족주의는 원래 없다.민족주의는 단어상으로도 닫힌 개념으로 하나됨을 의미한다.민족주의라는 삶의 양식이 없으면 누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에 나서겠는가.金大中 대통령의 세계화는 얼핏 민족적 가치와 아시아적 가치를 배격하겠다는 의도로 들린다. 세계화는 두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시장 개방 등 외래 파고에 대처하기 위한 ‘관리적 차원의 세계화’이다.다른 하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세계화를 삶을 이끌어가는 이념 내지 가치로 쓰려는 ‘자생적 차원’이다.지난 정권의 세계화는 관리적 차원이었지만 현 정권은 자생적 차원의 세계화를 강조하고 있는것 같다. ▲白교수=제2의건국을 남북 관계에 적용할 때 그 기본적 조건은 냉전관계를 청산하는 것이다.북측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해서 체제 붕괴의 위기를 맞았고 남측은 화려한 도약끝에 IMF위기를 맞은 상태다.남과 북은 제1건국 시대,냉전관계를 성찰하고 차분하게 미래를 서로 이야기 하면서 화해협력의 시대로 가야한다.양쪽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민족의 과제가 아닐수 없다. 북한 핵위기로 우리나라가 전쟁위험 직전에 와 있을 당시 야당에 있던 金대통령이 햇볕론을 제기했다.金日成과 카터 전 미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전쟁위기를 막았다.북한을 코너로 몰지 말고 대화의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기조다. 햇볕론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고 여기에 동북아 평화를 심어 공동번영을 추구하자는 것이다.남북관계도 공존공영의 길로 가자는 의미다.이를 위해 무엇보다 남북간 대화가 필요하다. ○때로는 바람정책도 필요 ▲朴교수=햇볕정책은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방식과 수단에 불과한데 목적이나 전략속에 집어 넣는 것은 문제다.북한 옷이 때가 절어 벗기려 한다면 따뜻하게도 했다가 벗기려고도 하는 등 여러 방식을 다 사용해야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정책의 옵션을 묶는 것 같아 안타깝다.햇볕이란 용어에만 사로잡힌다면 1∼2년 사이에 발목이 묶여 자가당착이 노정될 수도 있다.金泳三 정권에서도 첫 단추를잘못 꿰 남북정책이 왔다갔다 했다.이번에도 그런 위험이 깔려 있다.특히 화해 정책을 추진하려면 줄 수 있는 햇볕이 많아야 하는데 우리가 줄 수 있는 햇볕이 썩 많은 것 같지도 않다. 또 화해는 혼자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상대와 같이 해야 한다.그리고 화해정책을 펴더라도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때로는 한대 맞으면 한대 때려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자칫 남북관계의 방향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도구인 60만 대군을 한 두마디로 아주 무력화시킬 수 있다.특히 정경분리는 우리 정부가 주장할 일이 아니다.정경분리 주장은 득이 되면 정치적으로 살벌해도 경제적으로는 거래하겠다는 것이다.북한의 입장이라면 정경분리가 말이 된다.우리처럼 두들겨 맞으면서도 주겠다는 식의 정경분리는 곤란하다.정경분리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서로가 득을 봐야 하는 것이다.화해정책을 하더라도 확고한 군사력은 유지해야 한다. ▲文교수=기본적으로 햇볕론에 찬성한다.그러나 운용의 묘에 문제가 있다.햇볕론의 기조는 안보와 화해의 병행,정·경 분리이다.북한 잠수함이 동해안에서 발견되면 소떼 보내기를 미루는 식의 행동은 모든 이슈들을 연계시켜 조치하는 ‘연계적 상호주의’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이것은 정·경분리라는 ‘비연계적 상호주의’ 원칙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상호주의란 용어를 엄격히 제한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핵 대치는 일회성 게임이다.최소피해를 위해 그 쪽의 행동이 있으면 즉각 대처해야 한다.그래야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그러나 경협은 연속적 게임이다.즉각 대응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정치와 분리해 움직여야 한다. ○남북 경제공동권 형성을 ▲白교수=남북한 지도자 교체는 새로운 남북화해·협력시대의 개막으로 보고싶다.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대북정책의 추진 방향은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진이다.정경분리 원칙과 국가 수호 내지 안보의 병행 추진이다.민간 교류와 경제 협력을 심화시키면 동질성도 살아날 수 있다.남한의 IMF위기 극복을 위해 남북 경제 공동권을 형성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다.평화교류의 원칙도 필요하다.미국과 일본과의 북한 수교를 도와주고 일관성 있는 화해·협력이 뒤따라야 한다.평화통일의 공감대를 만들려면 화해정책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오늘의 러시아

    ‘조금은 힘이 없어 보이는 듯한 흰색의 북극 곰.보드카 술병을 옆에 끼고 있는 옐친 대통령과 ECONONY(경제)가 씌어진 블록으로 놀이를 하고 있는 아기옷의 키리옌코 총리’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풍자 만화를 통해 묘사한 러시아의 현주소다. 탈냉전과 더불어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탄생한 러시아는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곤경에 처해 있다. 거덜나다시피한 최악의 경제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러시아는 지난 13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22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만 했다. 한때 미국과 함께 양극체제의 한축이었던 러시아의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진 셈이다. ‘IMF 신탁통치’에 들어간 러시아 경제와 이로 인해 추락한 러시아의 국제 위상을 짚어본다. ◎경제 현주소/6년 개혁 공염불 ‘북극곰’/이젠 IMF 구제로 지탱/아시아 금융위기 여파 외국자본 ‘썰물’/루블화 폭락… 보유달러만 25% 소진 ‘겨우 급한 불은 껐다’.러시아와 국제통화기금(IMF)이 13일 22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 협정을 체결한직후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반응이었다. 시장경제로의 전환 이후 6년동안 쌓아온 개혁 성과가 물거품이 되기 직전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났다는 분석이다. IMF와 합의 직후 러시아 RTS주가는 전날보다 7.18% 치솟아 그같은 기대 심리를 반영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아시아권에 경제위기가 몰아친 이후 줄곧 금융·외환불안에 시달려 왔다.아시아에서 발을 뺀 국제 금융자본이 러시아에서도 속속 이탈하기 시작한 탓이다. 금제금융계의 ‘큰손’들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러시아 경제를 들쑤셔 놓은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 수출품인 가스와 석유가격마저 급락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말 200억달러였던 외환보유고는 최근 150억달러선까지 떨어졌다. IMF지원금 타결전까지 러시아 주가는 연초보다 60%나 곤두박질쳤다. 올해초 달러당 5.998루블이던 환율은 6.212까지 주저앉았다. 정부는 빠져나가는 외국투자자를 붙들기 위해 지난해 10월 21%선이던 단기금리를 150%로 올리는 극약처방을 썼다. 대외부채는 1,450억달러,상환해야할 국채 이자만도 2001년 총예산의 12.3%인 585억루블(97억5,000만달러)이다. 실업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전문가들이 쿠데타로 이어질 만한 위험수위라고 할 정도다. 지난해 말 정부 공식 실업률은 9.3%,실업자 수는 약 650만명이다. 그러나 통계상으로 취업자이나 일거리가 없는 사실상 실업자는 2,000만명에 이른다. 러시아 정부는 IMF의 구제금융을 얻어내기 위해 최근 국세청장을 경질하면서 징세 강화를 천명했다. 특히 65억달러의 정부지출 삭감방침을 발표하는 등 긴급 위기 대응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 정도로 러시아 경제를 수렁에서 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정실·권력에 좌우되는 낙후된 금융제도의 대수술과 단기적으로 실업난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구조조정 등을 잘 해낼수 있느냐가 경제회생의 관건이다. ◎바뀐 사회상/월수입 큰 격차… 갈등 커져/모스크바 한끼밥값 월평균 수입 맞먹는 식당 즐비/유색인종에 집단 테러 등 혼란… 공산당 지지 늘어/임금체불 공무원도 파업… 뇌물로 연 수백억불 낭비 남자 58세,여자 71세.러시아인의 최근 5년간 평균 수명이다.종전의 64세,74세에서 뚝 떨어진 이 수치야말로 암울한 러시아 사회의 오늘을 고스란히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미국과 겨루던 초강대국이 부도위기 직전의 나라로 가라앉으면서 러시아인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시장경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데 따른 좌절감,높은 범죄율,공공보건 시스템 약화로 인한 열악한 영양상태 등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더욱이 시장경제의 성과가 일부 신흥재벌과 노멘클라투라로 불리는 옛 소련시절 관료층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만만찮다.모스크바인의 한달 수입은 250달러선.한끼 200달러가 넘는 레스토랑들이 거리에 즐비한 현실이고 보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에 충분하다. 최근 ‘신(新)나치주의자’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적대행위도 꺾인 자존심에서 나온 반발이란 분석이다.지난 4월20일 히틀러 생일땐 이들이 ‘유색인종 살인주간’을 설정,흑인·아시아인들에게 집단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최근 러시아 사회를 ‘혼돈 그 자체’로 표현한다.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체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실제로 구공산당 지지자들도 늘고 있다.정부의 국영기업체 직원이나 공무원에 대한 임금지불이 가장 큰 문제다.시베리아 횡단열차 선로를 점거한 국영 철도 노동자들의 시위도 일상화됐다.국경수비대가 나라의 파수꾼이기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시절 뿌리내린 뇌물관행도 여전하다.옐친 대통령의 수석 정책보좌관을 지낸 게오르기 사토로프씨는 각종 부패로 한해 수백억달러가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적 위상/옛 초강국 위력 핵에만 잔영/G8회원·내년 WTO 가입… 나토의 코소보개입 반대/경제난으로 옛 영화 재현은 꿈… 21세기 미·중에 뒤질듯 국제사회의 초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소련의 그림자가 러시아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 엄청난 국토와 자원,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의 유산이었던 막강한 군사력으로 2차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획득한 국제적 위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러시아는 구소련 붕괴후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7년 동안 악착같은 ‘실리외교’를 펼쳐왔다. 좀처럼 성장·안정기미를보이지 않는 경제를 위해 서방과 IMF등 국제 기구들의 자금지원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과거 사회주의의 맹주로서 펼쳐 왔던 힘의 외교는 사라졌다. 단지 핵무기 등 아직도 사뭇 위협적인 군사력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5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기본협정서에 서명,나토의 동진을 용인했다. 대신 서방선진 7개국그룹(G7)에 가입을 요구,지난 5월 G8의 이름으로 영국 버밍엄에서 서방선진국들과 형식상으론 어깨를 나란히 했다.내년엔 세계무역기구(WTO)에까지도 가입을 보장받아 놨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이라크 사태에서 프랑스와 함께 미국의 강경제재안에 반대하며 중재에 나섰다.지난달에는 나토의 코소보 무력개입을 경고하는 등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를 만회하기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이미 추락한 러시아가 옛 영화를 되찾기란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올초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30년경엔 미국과 중국이 세계 2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봤다.러시아는 외교력의 기준이 되는 정부의 효율성과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도,군사력 유지에 필요한 경제력에서 낙제점을 얻었다. 더욱이 미국이 대주주인 IMF 관리체제안에 편입됨으로써 세계 지도국으로 다시 비상하려는 러시아는 한쪽 날개가 꺾인 형국이 됐다. ◎유력 지도자/키리옌코­35살 총리… 기업체 사장 역임한 청년 개혁파/넴초프­유력한 차기 대선후보… 탈세 근절 강력 추진/추바이스­철저한 시장경제론자… IMF지원 이끌어내/주가노프­공산당 당수… 최근 설문 차기 대통령감 1위에 러시아를 이끄는 인물들은 옐친 대통령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젊다.대부분이 30∼40대.지방에서 교수·연구원 생활을 하다 지방정부 및 체르노미르딘 내각에서 시장경제 개혁에 참여해 성과를 본 실전 경험파들이 주류다.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35살.지난 3월 경질된 아나톨리 추바이스 뒤를 이어 총리로 입각했다.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는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와 함께 확실한 청년개혁파로 분류된다.노르시석유회사 사장(96년)과 에너지장관(97)을 거쳤다. ▲보리스 넴초프 부총리=39살.청년 개혁파의 대부.강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고리키 국립대 출신.97년 러시아 제1부총리와 연료에너지 장관을 지냈다.최대 천연가스회사 가즈프롬과 4개 석유업체 등의 탈세근절을 선언하면서 전면개혁에 나섰다. ▲아나톨리 추바이스=43살.낮은 인기 탓에 키리옌코에 자리를 물려준지 석달 만에 부총리급의 국제금융담당 특사로 재임용돼 이번 IMF협상을 타결시킨 ‘돌아온 장고’.해박한 시장경제 이론과 유창한 영어실력,철저한 개혁주의자로 서방에서 인기가 높다.‘시장개혁의 아버지’‘러시아를 서방에 팔아먹는 매국노’등 평가가 엇갈린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52살.러시아 최대 재벌.자금력과 언론 동원력으로 크렘린궁 막후 실력자로 불린다.안보회의 부서기 출신.옐친의 둘째 딸 타티야나의 재정후원자이다.지난 4월 독립국가연합 사무총장으로 임명되면서 정치 전면에 나섰다. 옐친 품안의 이들 외에 그의 잠재적 경쟁자들도 부상중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로 2000년 대선의 강력한 후보인 알렉산드르 레베드 전 안보회의서기,경제난이 악화된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감 1위로 거론되는 게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와 유리 루츠코프 모스크바 시장 등이 그들이다.
  • 솔라즈 前 美 하원외교위 亞太소위원장(인터뷰)

    ◎“햇볕론은 한차원 높은 외교”/金 대통령 취임 20세기 가장 감격적인 드라마/DJ 제거 음모 저지위해 모든 노력 다했었다 미국 의회의 인권단체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NED)’ 이사장인 스티븐 솔라즈 전(前)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58)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솔라즈 이사장은 75년부터 92년까지 9선의 하원 의원을 지낸 관록있는 정치가.임기중 내내 아·태 소위원회에서 일하며 한국의 암울한 군사독재시절엔 민주화와 인권을,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이기도 하다. 한때 주한 미국 대사의 물망에도 올랐던 그는 지난 2월 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식 때에 이어 올들어 두번째 한국을 방문했다.5일 출국에 앞서 솔라즈 이사장을 만나 ‘햇볕정책’ 등 한국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았다. ­이번 한국 방문의 목적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자세히 알아 보기 위해서다.4일 탈북자 5명을 직접 만나 북한의 인권상황과 경험 등을 자세히 들었다.불법체포및 구금,수용소 생활과 고문 등 북한에서의 인권상황을 폭넓게 조사해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에 보고서를 제출하고 전국재단은 이를 종합해 계간 소식지 ‘민주주의 저널’에 특집기사로 게재할 것이다. ­80년과 91년 등 북한을 두번이나 방문했다.특히 첫방문을 두고 일부에서는 정치적 입지확보를 노린 방북이라고 지적했었는데. ▲처음 북한을 방문한 시기는 어느때보다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상정한 긴장이 고조됐을 때이다.북한이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방북했다.물론 북한의 초청에 응해 선전에 이용됐다는 비난도 있었다.그러나 방북 이후 변화없는 북한의 태도와 실질적인 대남위협을 눈으로 목격했다.그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金日成이 사라지면 북한이 개혁개방의 자세로 나올 것이라고 전망한바 있는데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이 천명하고 있는 ‘햇볕정책’이 주효할 것으로 보는지. ▲당연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햇볕정책’은 현재 한반도문제에서 취할 수 있는 대안중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본다.그것은 북한이 취하는 호전적인 자세를 수용하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주는 한단계 높은 외교술이라고 하겠다. ­지난 2월 金大中 대통령의 취임식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한국 현대사를 소상히 아는 사람으로 金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느낀 점도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金 대통령의 취임식은 20세기에서 가장 감격적인 한편의 정치 드라마였다.아마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어떤 작품보다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본다.내 인생에서도 의미가 깊었다.그것은 진정한 한국 민주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또 인간 金大中씨의 인생역정 가운데 한 정점일 뿐만 아니라 한국민들이 이룩한 민주승리의 순간이었다.그를 살해하려던 전직 대통령들을 모두 불러 함께 앉은 장면은 믿기 어려운 의미있는 모습이었고 한국내 민주주의 신장을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 ­金 대통령과는 언제부터 교분을 쌓아 왔나. ▲70년대말 처음 金 대통령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어 왔다.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할 당시 집으로 초청해 저녁을 함께한 적도 있다.나는 당시 한국 민주주의의 신장이 한국은 물론 미국을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며 이를 미 행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金大中씨를 제거하려는 것을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이를 저지하고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한국의 반민주화나 인권상황을 강력히 지적하면서 비판적이었던 입장이 77년 한국방문 이후 크게 태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朴正熙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그점을 지적하면서 자연히 인권상황을 비판했고 그뒤에도 변화가 없었다.그러나 77년 한국을 방문해 북한의 조직적인 위협을 직시하게 됐다.그점이 한국 정치상황에 영향을 줘 인권상황도 안좋은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았다.그후 군사력이 월등한 북한의 위협을 저지할 수 있도록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과 미군의 주둔을 행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었다.그래서 내가 태도를 바꾼 것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는 두번의 쿠데타가 있었다.특히 80년 全斗煥씨의 군사행동은 법원의 심판을 받아 쿠데타로 규정됐는데. ▲全斗煥씨의 군사행동은 광주학살을 초래하는 등 지극히 유감스럽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다.그의 행동을 심판한 법원의 판결은 이성적이고 이유있는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이전에 한국내 인권을 지적한 것도 이 사건에 유감을 표한 차원이기도 했다. ­한국은 지금 국제통화기금(IMF)지원 체제하에 놓여 있다.경제위기가 닥친 원인을 지적한다면. ▲일차적인 책임은 금융기관들의 무분별한 차관도입과 신용없는 대기업 대출일 것이다.그러나 투명성 없는 금융기관의 행동에는 정치권과 행정부 인사들의 은행업무 개입이 동기가 된 부분도 많다.
  • 美 첨단무기 국제망신/對이라크 미사일 공격/창문2장 깨는데 그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미국은 지난달 30일 이라크 남부 알 바스라항 인근 비행금지구역을 감시 비행중이던 영국 토네이도 전폭기를 추적하는 이라크 레이더를 겨냥,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미사일은 목표물을 명중시키기는 커녕 엉뚱한 곳에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측은 미사일이 레이더기지를 훨씬 벗어난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의 움 카시르 부근 비무장지대 식수관리소 옆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미국측을 조롱이라도 하듯 식수관리소 건물 외벽의 칠이 벗겨지고 인접 건물 창문 두장이 깨졌을 뿐이라고 피해 결과를 자세히도 발표했다. 미 국방부 케네스 베이컨 대변인도 2일 미사일이 목표물인 이라크의 SAM(지대공) 미사일 레이더기지를 맞추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단발사건으로 끝나길 바란다는 멋적은 논평도 곁들였다. 실패 원인으로 이라크 측이 레이더를 일찍 꺼버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있음직한 다른 원인도 조사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사된 미사일은 미 해·공군의 최첨단 고속 열추적 대 레이더 미사일(HARM). 83년 개발돼 현재 걸프해역에 배치된 F­4G,F­16C전투기에 탑재돼 있다.
  • “軍 강하면 北도 생각 바꿀것”/金 대통령 軍부대 방문 이모저모

    ◎공군 시험비행 지켜보고 장병들과 오찬 金大中 대통령은 6·25 48주년을 맞아 24일 중동부지역의 공군 전투비행단과 육군 야전군 사령부를 차례로 방문했다. ○…金대통령은 먼저 공군 전투비행단에 도착,朴春澤 공군참모총장과 崔珏圭 강원지사,鄭喆皓 비행단장의 영접을 받고 기지지휘소에 들려 잠시 환담을 나눈 뒤 방명록에 ‘영공방위 임무완수’라고 서명했다. 鄭단장은 이 자리에서 金대통령이 북한 공군의 전투력 정도를 묻자 “북한은 미그 29기를 16대 보유하고 있으며,조종사들의 연 훈련시간은 10∼20시간”이라고 소개하고 “북한의 전투기는 우리의 M16기가 필적할 수 있으며,우리 조종사들의 연습시간이 160∼170시간이므로 우리가 전투력 면에서 앞서고 있다”고 보고했다. 金대통령은 지시말을 통해 “군통수권자로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라고 요구한다”며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고도,전쟁을 하지않고도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선의 길을 가려고 한다”고 역설했다.또 “북한이 군사력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강력한 군을 유지하면 그런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지휘관 조정사 40여명과 기념촬영을 했다.金대통령은 전투기에 장착된 무기를 불러보고 전투기 ‘블랙 이글’의 시험비행을 지켜본뒤 육군 야전군 사령부로 출발했다. ○…金대통령은 육군 야전군 사령부에서 金東信 육군참모총장과 金石在 군사령관 등 군 지휘부의 영접을 받고 중앙현관 앞에 크기가 3m인 23년생 무궁화를 기념 식수했다.이어 기밀실에서 업무보고를 받은 뒤 강군(强軍)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부내에서 장병들과 오찬을 함께한데 이어 연병장에 전시된 96년 강릉 잠수함 노획물을 둘러 보았다.
  • “北 국제사회 불안정 초래”/日 정부 방위백서

    ◎경제난 불구 군사부문 자원 중점 배분/‘노동1호’ 실전 배치땐 日 절반 사정권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정부는 23일 98년 방위백서를 통해 “북한은 국제사회에 전체적으로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라며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방위백서는 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군사정세와 관련,“이 지역에는 핵전력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력이 존재하고 북방영토 및 독도,한반도,남사(南沙)군도 등 제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채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해 “북한은 경제난이 심각한 데도 여전히 군사부문에 자원을 중점적으로 배분하고 군사력의 근대화를 도모,즉응태세의 유지·강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백서는 말했다. 백서는 이어 “북한의 국방비는 국민총생산(GNP)의 25%에 이르며 전체 인구의 5%가 현역 군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은 핵무기 개발의혹을 지니고 있는 외에도 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연장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이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불안정 요인이 되고 있다”고 백서는 밝혔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노동 1호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을 경우 배치 위치에 따라서는 일본의 절반 이상이 사정권내에 들 가능성이 있다고 백서는 말했다. 백서는 이밖에 미·일 안보체제에 대해 처음으로 별도의 항목을 마련,신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기 위한 주변사태법안과 공동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검토기관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한편 인도·파키스탄의 핵실험과 관련,백서는 “남아시아지역의 안전보장뿐만 아니라 대량 파괴무기의 확산금지 노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근 동남아시아의 경제위기가 태국,인도네시아 등에서와 같이 국방비삭감,신형 장비도입 재검토 등으로 이어져 이 지역 안전보장 체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백서는 지적했다.
  • 한국 통일정책과 남북한 관계 토론회 주제발표/조지 타튼

    조지 타튼 미국 남가주대 교수는 19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와 국제지역학회가 민주평통에서 주최한 ‘한국의 통일정책과 남북한 관계 전망’이라는 토론회에서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제사회 시각과 남북한 관계’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金大中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시아 다자간 안보체제(MNASCS)와 관련해 남북한과 중국 일본 미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조약기구(NEATO)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金대통령이 쓴 ‘金大中의 통일에 관한 3단계 접근방식’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린다. ○우호관계 정립 최적기 세계 열강들이 한반도를 분단시킨 이후 요즘은 어느 때보다도 남북한간에 우호적인 관계가 이룩될 수 있는 좋은 때다. 러시아나 중국은 북한이 서방세계에 맞서는 필수적인 방어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공산주의가 러시아에서 비참하게 실패했고 중국도 놀라울 정도로 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북한이 중국식의 변조된 공산주의를 채택한다 해도 한반도의 통일이 틀림없이한국의 주도로 이뤄지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통일 된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염려는 거의 모두 사라진 상태다. 아시아의 국가들이 공조해야 하는데다 북한의 경제성장이 뒤쳐질 경우 북한지역에 투자를 하려는 일본의 기회를 감소시킬 수도 있다는 의식이 일본내에서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한간의 화해와 나아가 남북한간에 궁극적으로 이뤄질 통일에 대해 일본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 같지는 않다. 현재 한일관계는 어느 때보다 괜찮다. 중국은 한국이 북한을 흡수하기 보다는 상호교섭하기를 원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이뤄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이러한 게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과 협조하기를 원하고 있다. ○회원국 군사장비 감시 金大中 대통령은 ‘남북한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영구한 평화정착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된 92년의 남북합의서를 이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냉전체제에서 발동된 북한에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철회해 줄 것도 제안했다. 한반도 전체를 위한 최선의 보호책은 주변국가들이 위협적인 군사력을 확보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확실히하기 위해 金대통령은 다자간 동아시아 안보협력체제(MNASCS)를 제창했다. MNASCS내에는 NEATO를 둘 수 있다. 남북한(나중에는 하나의 연합이나 연방) 중국 일본 미국이 회원국으로 될 수 있다. ○남북한 주축 中·美·日 참여 NEATO의 중심은 한반도가 될 것이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군비통제를 실천하는 기구가 될 수 있다. 이 체제에서 회원국들은 서로의 군비를 조사할 수 있다. 한국정부가 상호주의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남한이 북한과 교섭하는데 유연성을 상실하게 할 수도 있다. 새로운 ‘햇볕정책’은 남북한간의 상황에서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그저 웃으면서 교섭을 하자는 게 아니고 관대함을 갖고 지혜롭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을 복구하기 위해 마샬정책을 펼 때 비난도 있었고 미국인들이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이러한 게장기적으로 미국의 복지에 기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 白凡 재조명:3­1(정직한 역사 되찾기)

    ◎통일사상의 정수/“自主없는 통일 허구” 날로 새로워/列强 간섭 배제하고 ‘민족의 힘으로’ 역설/지역·이념 뛰어넘는 화합의 정신 일깨워 20세기 후반 세계사를 지배하던 냉전은 끝났다.그러나 한반도의 냉전은 과거사가 아니라 여전히 현실이다.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거대한 시대의 흐름도 남과 북의 이념적 분단의 벽은 넘지 못했다.철옹성 같은 분단의 벽을 넘어 화해와 통일의 길로 가는 일은 이 시대 우리들의 소명이다.그 일의 출발점을 金九 선생의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론에서 찾으면 어떨까. 백범이 추구한 이상의 완결편은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이었다.그는 생의 마지막 부분을 민족통일을 위해 바쳤다.1948년 2월엔 ‘3천만 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시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했다.백범은 냉전이라는 불리한 국제정세와 이승만과 김일성이 각각 미국과 소련을 배경으로 단독정부를 구성하려는 어려운 시대상황에서도 통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남북협상을 위해 1948년 4월19일 38선을 넘었다.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방문했다.북측에 의해 미리 짜여진 각본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없었다.그러나 남북협상의 성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민족의 자주적 힘에 의한 평화통일 노력 그 자체도 중요했다.민족의 운명을 외세에만 맡기지 않고 자주적 통일을 위해 힘 쓴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은 소중한 역사다. 백범은 한반도가 분단의 위기에 빠지자 정치·이념적인 반대세력과도 손을 잡았다.그의 통일노력은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백범은 남북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면 민족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통일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그의 우려는 모두 현실화됐다.한반도에는 이념적 분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남쪽에는 정치·지역감정에 의한 또 하나의 분단이 있다.그 ‘마음의 분단’이 얼마나 심각한가는 이번 6·4지방선거에서 다시 확인됐다. 지역감정·혈연·이념 등에 의한 분열은 민족의 화합으로 바뀌어야 한다.백범의 애국적 민족사랑은 좋은 전환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념과 정치적 이익을 초월한 백범의 민족사랑 정신은 세속적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배워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론도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오늘의 유효한 통일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한반도 통일은 물론 우리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미국·중국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도 중요한 변수다.강대국들은 그러나 한반도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적극적이고 자주적인 노력 없이는 통일은 불가능하다.백범의 자주적 통일론이 오늘의 통일정책에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는 지금 과거와 다른 차원의 남북교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그러한 변화를 남북화해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동안 ‘박제’됐던 백범의 민족화해와 통일론에 생명을 불어넣어현재화해야 하지 않을까. 백범은 ‘今日我行跡(오늘 내가 걸어간 자국은) 遂作後人程(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니라)’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휘호로 즐겨 썼다.그가 넘었던 38선을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6일 다시 넘는다.반세기만에 마침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남북교류가 활성화되면 그의 더 큰 소망인 민족의 화해와 통일도 가까워질 것이다. ◎DJ와의 인연/상대후보 백범암살 배후 드러나 3選 의원에/효창공원 골프연습장 공사 중단시켜 “報恩”/기념사업회 이사… 동상 건립 적극 재정 지원 金九 선생과 金大中 대통령은 살아온 시대가 다르다.민족의 큰 지도자 백범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을 때 金대통령은 20대 초반이었다.그러나 두사람간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운명적인 인연이 있다. 그들의 인연은 60년대 중반 金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빠졌을 때 그가 존경하던 백범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며 시작됐다. 金대통령은 67년 7대 총선에서 힘겨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朴正熙 정권은 야당의 ‘떠오르는 별’이었던 당시 金大中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집권당인 공화당의 물량공세로 金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목포는 흥청거렸다. 집권당의 전략적인 집중 공세로 金대통령의 3선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나타났다.상대방 후보였던 김병삼(당시헌병 대위)씨가 백범 시해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金대통령측에서 알아차린 것이다. 金洙振(66·현재 국민회의 당총재 특보)씨는 선거 열흘전쯤 김병삼씨 관련 내용을 담은 책을 준비했던 金龍熙(77)씨를 찾아가 金大中 후보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金씨는 상대방 후보가 김병삼이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기로 했다.金씨는 李承晩 정권이 무너지자 안두희를 잡아 검찰에 넘긴 사람이다.그는 안두희의 고백과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김병삼씨의 관련 내용을 담은 ‘이것이 진상이다’라는 책을 준비했다. 金大中 후보 진영은 절판됐던 이책을 비밀리에 다시 제작했다.투표 나흘전인 6월4일 목포역에 15만명 이상의 군중이 모였다.박순천 초대 신민당당수는 “공화당후보 김병삼씨는 백범암살을 뒤에서 조종한 사람입니다.그러한 사람이 어떻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폭로했다.‘이것이 진상이다’라는 책 3만5,000부가 즉석에 배포됐다.선거분위기는 급변했다.6월8일 투표결과 金大中 후보가 당선됐다. 金大中 대통령은 백범 추모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그때의 간접적 도움 때문에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백범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67년 서울시가 효창공원내 백범묘소와 3의사(義士) 묘소중간에 골프연습장을 만들기 위한 공사를 했었다.국회건설위 소속이었던 그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그는 백범기념사업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매년 백범 추모제에 참석해 왔다.남산에 백범동상을 세울 때도 자금지원을 했다. ◎초라한 ‘묘역 성역화’/담장교체·소나무 식재 기념관 건립 예산 부족/구청 녹지과 관리맡아 “국가관리 필요” 여론 金九 선생의 묘는 효창공원에 있다.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이동녕·차이석·조성환 선생의 묘도 함께 있다.많은 사람들은 최고 지도자였던 백범을 비롯 7명의 애국지사가 안장돼 있는 선열들의 묘를 국립묘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는 지금 효창공원의 장·단기 성역화 작업을 하고 있다.단기계획(97년∼99년)에 따라 담장 교체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용산구청의 유동렬씨는 1,326m에 이르는 담장공사는 연말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소나무 600그루도 새로 심었다.호국이념을 상징하는 대형 조형물(높이 11.7m 폭3m)도 공원입구에 세울 예정이다.장기계획은 7명의 애국지사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이다.하지만 예산이 문제라고 유씨는 말한다. 성역화 작업이 진행중인 효창공원은 그러나 국립 현충원(국립묘지)과 비교할 때 너무도 초라하다.국립묘지는 국가가 관리하지만 효창공원은 용산구청의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한다.기능·고용직 공무원 7명이 관리인의 전부다. 백범기념사업협회의 선우진 상임이사는 金九 선생이 귀국후 45년 12월부터 49년 6월 암살당할 때까지 3년6개월간 숙소 및 집무실로 사용했던 경교장(京橋莊)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고/세계화시대의 백범/都珍淳 창원대교수·한국현대사 백범이 안두희에 의해 비운의 생을 마감하자,엄항섭은 그의 서거를 ‘달은 하나지만 뭇 강에 자신의 모습을 도장처럼 박아내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표현하였다.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아로새길 민족주의자 백범의 월인천강은 남아 있는가. ○개방과 주체 선택 강요 한반도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강대국에 휩싸여 있어 선진 문물의 수입 등에서 적지 않은 장점도 있지만,사대와 식민 그리고 분단의 역사가 증거하듯 늘 강한 원심력이 작용하였다.따라서 한반도의 ‘역사적 화두’는 늘 대외적 개방과 민족적 주체를 겸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어느 하나로 편향되는 경향을 띄었고,그 극단에 민족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다.개방과 선진만 쫓아가면 사대·식민·분열의 굴레로,주체와 자주만 강조하면 후진과 망국의 역사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한가.지난해 말 나라가 환란(換亂)위기에 빠진 이후,이제 우리는 진정 세계화되어 가고 있는 지 모른다.삼척동자도 IMF을 운위하고,뉴스는 언제나뉴욕 월가(Wall Street)의 동향을 전하며,국내 증시 또한 이에 따라 춤추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세계화는 민족현실에 굳건히 뿌리 내린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때문에 작금의 현실은 백범이나 민족주의를 박물관의 골동품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과거에 대한 추모를 넘어서 현재적 생명력으로 되살려 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의 과제는 남북의 화합과 통일이라고,누구나 이야기한다.그러나 그것은 단지 관습적·수식적 문구(文句)에 지나지 않고 생활력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위해 최근 외국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나 기관의 진단을 들어보자.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지만 문제는 시간’이라느니,‘북한이 붕괴하더라도 유엔 관리하에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느니,‘남·북한이 민주적 분단관리체제로 영연방과 같은 느슨한 연방(confederation)이 필요하다’는 등의 언급은 다름아닌 ‘분단체제에 대한 균형적 관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최근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적 발언’이 아니라,역사와 구조를 지닌 ‘전략적 개념’들이다.북한이 강한 군사력으로 남한을 통일하려 했던 한국전쟁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소련·동구권의 붕괴 이후 남한이 우월한 경제력으로도 북한을 흡수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강력하고 일방적인 통일 한반도의 출현을 열강들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분명 ‘냉전적 대립’에서 ‘평화적 교류’로 나아가고 있지만,그것이 통일의 기초가 될지 분단의 장기 지속을 초래할 지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따라서 우리는 두번 깨어나야 한다.먼저 남북 사이에 누가누구를 삼킬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하며,다음에는 평화를 넘어 통일에 이르는 길은 자주적 노력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필요가 있다.강대국이 해줄 수 있는 최대치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보장이다. ○강대국 역할 제한적 해방 직후 백범도 좌우·남북의 체제 대립적 정치구도의 한가운데 있었다.그러나 민족 분단의 위기가 박두하는 것을 목도하면서,그는 좌우·남북 대립의 구도 속에서 유실되었던 민족문제에 다시 주목하여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가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호소하였다.민족을 위한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이것이야 말로 백범이 남긴 월인천강의 핵심인 것이다.이후 백범이 노래한 시와 글도 모두 ‘자주적 평화통일’로 요약되거니와,그의 죽음도,그리하여 그의 부활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백범의 모습은 어떠한가.정치적 입지나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 백범을 거론하면서도,그 생애의 총 귀결점인 ‘평화통일의 민족적 백범’은 허다하게 유실되어 있는 실정이다.백범은 자신의 미진한 바를 민족 앞에 바로 세웠으되,추앙한다는 우리는 백범를 다시 거꾸로 세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 金 대통령 訪美­美 외교협회 연설 문답

    ◎“대북 경제제재 완화 바람직”/북 경제난 불구 쉽게 붕괴 안될것/일 과거 반성­한국 인식개선 긴요 【뉴욕=梁承賢 특파원】 金大中 대통령은 8일 하오(한국시간) 한국협회,아시아협회,미국외교협회가 공동 주최한 오찬연설회에서 남북 관계와 경제난 극복등 주요 현안을 놓고 참석자들과 질의응답을 가졌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에 관한 입장은. ▲미국은 제네바 핵협정 당시 대북 제재 완화를 약속했다.그 정신에 입각해 제재를 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거기에는 2가지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첫째,제재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에 핵개발 재개의 구실을 줄 우려가 있다.둘째,북한은 지금 강경파가 지배하고 있다.지금처럼 나간다면 온건세력이 매우 곤란해진다.북한의 강경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북한 사람들이 바깥 세상,남한을 알게 해야한다.북한은 점차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실업 대책은. ▲실업자가 150만명이다.정부가 전력을 다해 50억∼60억달러를 투입했으나 불충분하다. 내가 미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미국정부와 기업 및 국민들에게 호소,더 많은 투자를 해주도록 하고 개선된 투자 여건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남북통일 전망은 어떤가. ▲한국민은 통일을 염원해왔으나 급작스러운 통일에 대한 우려도 있다.북한은 경제가 나쁘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붕괴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한·일관계에 대한 입장은. 올해안에 일본을 방문한다.방일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이를 위해 두 나라가 해야 할 일이 한가지씩 있다. 한국과 중국 등 일본의 주변국은 일본이 과거사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일본이 깨끗이 반성하면 우리도 잊고 싶다. 한국민도 일본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야 한다.일본의 50년간에 걸친 민주주의,비핵3원칙,평화헌법,양식있는 지도자 등에 대한 인식이 더 개선돼야 한다.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북한 바깥의 누구도 (북한에 대해)정확히 알지 못하고,나도 마찬가지다.여러 상황을 보면 북한 정권은 쉽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국가로서의 기반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남북관계 전망은 어떤가. ▲당장 개선된 것이 2가지 있다.우선 7년간 중단됐던 군사정전위가 남북간 장성회의라는 형태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또 봉쇄됐던 판문점이 열리고 있다.이달에 鄭周永씨가 소 500마리를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보낸다. ­한국의 주식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그러나 주가하락은 인도네시아 사태와 일본 엔화 폭락 등 국외적 요인에도 기인한다. 금융개혁을 통해 돈 흐름이 정상화하고 기업이 활력을 받으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다.지금 주가가 필요이상으로 내려가 있으니 상당한 투자가치가 있다.
  •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조지 맬로언 칼럼 요지(해외논단)

    ◎국제 핵통제 현실성 없다 인도와 파키스탄간 핵개발 경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최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 선진8개국 정상회담에서는 이에 대한 국제적 제재방안이 논의됐다.그러나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조지 맬로언의 19일자 칼럼을 통해 현행 국제적 핵통제 방식의 비현실성을 통렬히 비판했다.그는 현행 핵통제 관련 국제조약들이 기존 핵강대국들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이해관계 차이 등으로 인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그의 칼럼을 간추린다. ○파키스탄 G8 경고 비웃어 지난 17일 버밍엄에서 열린 세계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파키스탄에 강한 경고 메시지를 발했다.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하다면 인도와 마찬가지의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요지였다. 그러나 파키스탄측은 핵실험 후 인도측이 강대국들의 으름장에 대해 보인 것과 같이 비웃음섞인 반응을 보였다.핵무기는 결코 웃어넘길 대상이 아니지만 인도의 핵실험 계획도 까맣게 모른 정보기관에 의존한 주요국들이 정상회담을갖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 것 자체는 희극적이었다.그들이 토론을 진행하는 동안 파키스탄이 어디에선가 핵폭탄을 터뜨릴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다.사실 파키스탄측은 당국자들의 서로 다른 언급으로 앙숙인 인도에 뒤이어 핵실험을 강행할지 여부에 대해서 세계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처신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도 다른 정상들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 등의 핵개발경쟁에 ‘심각한 우려’을 표시했다.러시아는 런던의 국제전략연구소 통계가 말해주듯 877기의 대륙간탄도탄(ICBM) 등을 보유한 막강한 군사력 덕분에 G­8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하지만 옐친의 심각한 우려가 러시아의 핵 및 미사일 개발기술을 잠재적 핵보유국들에게 유출시키는 것을 막겠다는 뜻으로 새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중국도 17기의 대륙간 및 38기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국은 또한 세계를 비웃으면서 핵실험을 강행해왔으며 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 팔아 미국의 비난을 샀다.그러나 클린턴 미 대통령은 지난 96년 미사일개발에 악용할 위험이 있는 미제 인공위성의 중국 판매를 반대하는 국무부의 결정을 뒤집을 정도로 중국에 우호적이었다. 두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핵강대국들인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견줘볼 때 바지파이 인도 총리가 핵개발 사실을 공개한 사실도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클린턴이 미국의 직접 지원이나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의 지원을 끊는 경제재제에 착수했지만 인도정부는 심각한 위협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클린턴이나 다른 서방지도자들이 걱정해햐 할 일은 인도가 이웃국가에 핵미사일을 당장 발사할 개연성이 아니라 무기통제조약들이 현대무기 확산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다는 사실일 것이다.냉전 당시의 두 전략무기제한협정(SALT)들은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 ○무기통제조약 허점 노출 한마디로 현재 시행중인 국제적 핵통제 방식은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외부로부터 위협을 느끼지 않거나,핵개발의 비용을 부담하기를 원치 않는 국가들은 핵비확산이나 핵실험금지 조약에 기꺼이조인했다.그러나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이 NATO와 같은 동맹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면서 위험한 이웃을 둔 나라들은 선의를 믿기에 앞서 안전보장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 印·파키스탄 끝없는 ‘핵대치’

    ◎50년간 3차례 전쟁… 군비경쟁 어디까지/양국 신정권 기반 약해 강력한 군사력 선호/국제사회 개발 제재에 한계… 핵무장 못 막아 50년 앙숙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냉전시대 미소간의 핵경쟁과 같은,숨막히는 핵대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인도의 핵실험 강행으로 양국이 핵무기 개발 경쟁에 돌입,이 지역 긴장이 고조될 것이란 국제사회의 우려가 차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는 17일 핵실험에 대한 비난을 비웃듯 최근 실시한 핵실험 사진을 공개했다.한개의 폭발력이 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3배인 TNT 43㏏에 해당하는 것임을 과시한데 이어 핵탄두를 운반할 미사일 개발도 완료했다는 선언까지 했다.중국 상하이와 베이징도 목표에 둘 수 있는 사정거리 1천500㎞의 ‘아그니’(불)미사일 개발을 공식발표했으며 96년 개발,실전배치한 ‘프리트비’(땅)미사일도 시험발사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47년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분리된 두 나라는 그동안 3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치열한 무기경쟁을 벌여왔다.현재 두 나라 모두 국제핵외교테이블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잠재적 핵보유국가.인도가 지난 96,97년 핵탑재가 가능한 지대지 미사일 ‘아그니’와 ‘프리트비’를 만든데 이어 지난달에는 파키스탄이 핵탄두 탑재 가능한 지대지 미사일 ‘가우리’를 개발하는 등 최근까지 두 나라는 무기개발을 둘러싸고 팽팽한 긴장상태를 조성해왔다. 현재의 핵위기 국면을 주도하고 있는 양국 정부는 모두 ‘오랜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제땅 다지기에도 바쁜 ‘약체의 신생정권’.현재의 대치상황이 국내 정권을 확고히 하는 효과도 있는 만큼 양국의 핵개발 열전(熱戰)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양국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적절한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우선 적용가능한 제재방안은 경제적인 봉쇄조치.미국 등 핵강국들은 유엔을 앞세워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를 발동시키겠지만 경제제재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은 쿠바와 이라크,리비아 등의 예에서 이미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력제재.미국이 이라크를 공습했던 것처럼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을 무력으로 공격,핵무기를 제거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다.그러나 양국이 핵무기로 무장했다면 무력 공격 역시 쉽지 않은 형편이다. 중국이 오랫동안 핵실험으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 버텨온 결과 지금은 핵강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인도와 파키스탄이 노리는 것도 핵테이블에서 주도권을 행사,결국 핵강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 “對北 비료지원 신중/양곡으로 대체해야”/黃長燁씨 기자간담

    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는 7일 “북한에 비료를지원하는 것은 전략물자가 될 수 있을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각성을 위해서도 비료보다는 양곡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黃씨는 이날 상오 안기부 청사에서 金德弘 전 북한여광무역대표와 함께 망명 1년여만에 기자간담회를 갖고 “비료 1t으로 양곡 10t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비료 20만t보다는 양곡 2백만t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 대북 비료지원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밝혔다. 黃씨는 또 “북한의 경제 마비상태가 오래가면 군사력에도 영향력을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난해와 달리 북한의 전쟁위협에 대한 경각심 보다는 화해·협력을 강조했다. 黃씨는 이어 “한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따라 남북대화를 끈기있게 계속 벌여나가며 민간차원에서도 교류를 합리적으로 진행해 나간다면,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나가는 문제도 종국적으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 주한미군:上(대한민국 50년:16)

    ◎45년 日 항복후 4만5천명 첫 진주/6·25땐 최대 32만명 파병 ‘韓國수호’/국력 신장 따라 우리방위비 분담 늘어 이땅의 주한미군 역사는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25일만인 1945년 9월 8일부터 시작됐다.이날 하지중장 휘하의 제7사단이 1진으로 인천에 상륙했다.인천 내항에는 해방군으로서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부두는 온통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을 이루었다.이어 29일과 10월 8일 40사단과 16사단이 부산과 목포에 도착,38선 이남지역을 지배하는 점령군으로 주둔하기 시작했다.당시 주둔병력은 4만5천명. 이후 주한미군의 존재는 대한민국 50년사의 전개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이땅의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특히 주한미군의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 논쟁과 갈등은 두나라 관계의 본질을 대변해줄 만큼 양국의 정치적 상황과 국민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며 전개됐다. ○닉슨 ‘괌독트린’ 2만명 철수 주한미군에 의한 군정통치는 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끝났다.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는 애치슨라인이 설정됨에 따라 49년 5월부터 6월 사이에 군사고문단 500명만 잔류시킨뒤 철수했다.주한미군의 첫번째 철군이다.이 과정에서 당시 李承晩 대통령은 미국측에 충분한 보상과 확실한 안전보장 등을 요구했지만 결국은 점령군의 철수완료 시기만을 통보받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로부터 1년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재진주해야 했고 이때 치른 대가는 컸다.전쟁기간중 가장 많을 때는 32만7천의 병력을 파견했으며 전사 3만3천여명,부상 10만3천여명 등 인명피해만도 엄청났다.하지만 종전 이후인 8월8일 한국정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하고 10월1일 조인함으로써 한반도에 합법적으로 주둔할수 있게 됐다. 70년대 들면서 한미간에는 또 한차례 주한미군의 철수를 둘러싸고 신경전과 갈등이 전개됐다.70년 닉슨이 아시아에서의 미국역할의 축소를 밝히는 이른바 괌독트린을 선언함에 따라 그해 후반기부터 71년 3월에 걸쳐 7사단 병력 2만명이 철수했다.한국측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감축계획은 66년한국군이 월남에 증파될때 맺은 ‘브라운 각서’의 주한미군 감축시 사전협의 약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결국 이후 열린 협의에서 미국은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약 15억달러의 군사원조및 차관을 제공하는 한편 양국간 연례안보협의회를 개최하기로 합의를 보았다.우리의 방위산업 육성과 국군현대화 등의 추진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세번째 철군은 이로부터 5년이 지난 76년 7월 인도주의를 표방한 민주당대통령후보 카터가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쟁점화됐다.당시 한국은 유신의 철권통치하에 있던 시기로 한국의 인권문제가 미국내에서 여론의 쟁점으로 부각돼있었다.미의회 프레이저소위원회 청문회가 “한반도가 적화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안전에 영향이 없는 만큼 인권탄압적인 한국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못박을 정도로 미국내의 반한여론은 드높았다.한국정부는 이를 내정간섭의 논리와 핵개발 위협으로 맞받아침으로써 양국관계에는 살얼음판 같은 핵긴장이고조됐다.朴正熙는 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고 있으나 지금은 개발하고 있지 않다.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고 공개선언,미국정부를 압박했다.그런 한편으로는 ‘선보완 후철군’론을 주장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균형 유지책과 한국의 자체 방위력 증강조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카터의 철군결정은 미의회 및 군부로부터 많은 비판과 반발을 샀고 이에 카터는 싱글러브 장군을 주한 미8군 참모장에서 해임,철군 반대론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韓·美軍 역할­위상 큰 변화 아무튼 3차 철군을 둘러싼 한미간의 밀고 당기기에서 한국은 20억달러 상당의 무기 및 군사시설을 제공받고 미공군의 강화,한미 합동군사훈련 실시,한미연합사령부 설치 등의 부수적 성과를 거뒀다.또한 3천4백명의 철수가 이뤄진뒤 미국은 대북한 군사력 재평가결과에 따라 81년까지의 주한미군철수 동결조치를 발표함으로써 3차 철군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로 일단락됐다. 이상에서 보듯 80년 이전에 거론되거나 실행된 주한미군 철수는 철저하게 미국의 입장에서 결정된 것이며 한국의 입장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80년대 초 한국이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됐다.광주의 참극에서 행해진 주한미군의 역할문제다.주한미군은 전에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으나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61년 5·16 쿠데타때는 매그루더 사령관이 이의 저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79년 12·12 쿠데타태도 위컴사령관이 신군부에 항의를 했다고는 하나 항의로 그쳤다.그러나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신군부측의 병력이동과 관련,주한미군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부대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직·간접적으로 신군부를 지원 내지는 묵인했다는 비난을 샀다.그리고 이때부터 한국민들로부터‘반전반핵’‘양키 고홈’의 야유를 받으며 시위의 대상으로 몰리기에 이르렀다. 어쨌든 철군을 둘러싼 양국간 대립과 해소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 및 위상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즉 한국전쟁 이후 70년대 말까지는 한반도의 안보를 미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보조하는 관계에서 80년대초 동반자관계로 격상했고 90년대 들어서는 94년 미군의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이 상징하듯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보조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미묘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의 문제다.한국의 경제력 신장을 반영하기도 하는 방위비 분담은 78년 한미연합사 창설이후 어김없이 제기되면서 특히 대한군사판매차관(FMS)를 졸업한 86년 이후로는 연례안보협의회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했다.
  • “한반도 작년은 기적의 1년”/英 국제전략硏 보고

    ◎IMF체제·정권교체·김정일 건재 등 거론/“한국 장기적으론 경제위기 극복” 낙관 【도쿄 연합】 영국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23일 발표한 ‘97∼98전략개관’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한국 야당의 첫 정권교체 ▲경제파탄 속의 金正日체제 건재 등을 거론하며 ‘기적의 1년’으로 표현했다. 런던발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략개관’은 특히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난관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북한의 경제파탄에 관해서는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그같은 상황에서 金正日 체제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 문제와 관련,남·북한이 동시에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이 양측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군은 식량을 우선적으로 배분받고 있어 여전히 대남(對南) 침공능력을 갖고 있으나 훈련 감소와연료부족 등으로 군사력이 확실히 저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내에서도 군사비 삭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일고 있어 경제난이 대북 정책의 수정 계기가 되고 있으며,金大中 대통령이 북한과의 진지한 대화 용의를 갖고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 美 국방부 해커 침입 전산망 보안 구멍

    ◎작년 10월 침입… 군사위성 정보 절취/美·英·러 10∼20대 15명으로 구성/“미군배치도 테러단체에 판매” 위협 【뉴욕 AP 연합】 “다운로딩/2016216의 대가들”이란 해커그룹이 미국 국방부 컴퓨터망에 침입,군사위성시스템 관련 소프트웨어를 절취한 후 이를 테러분자들에게 판매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심각한 보안위기를 빚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그룹은 작년 10월 국방부 전산망에 침투,정보를 빼냈으나 지난주에야 컴퓨터안전 전문가 존 브래너세비치에게 연락,이 사실을 밝힌 것으로 22일 전해졌다. 해커들 손에 들어간 소프트웨어는 수십개의 군사위성을 이용해 미사일의 목표물 겨냥 배치,정확한 군대위치 확인 등 미군사력의 세계 각지 배치시스템을 조정하는데 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래너세비치는 이 그룹이 19∼28세 젊은이 1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요원들의 국적은 미국인 8명,영국인 5명,러시아인 2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와 관련 수전 핸슨 국방부 대변인은 부 산하 국방정보국이 사실관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핸슨 대변인은 도난당한 소프트웨어에 기밀정보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으나 국방부 컴퓨터안전을 위해 일한 바 있는 보안전문가 기디언 새미드는 해커 침입은 정부가 인지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이 대체적 경향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2월 국방부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한 이스라엘인 해커 “분석가”를 추적하는 작업에 최근 참여한 브래너세비치는 이번 침입이 정부 컴퓨터망이 지금까지 겪은 것중 최악의 경우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대가들”과 인터뷰한 브래너세비치는 이번 사건이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면서 대부분 경우 해킹의 전형적 유형은 일단의 청소년들이 말하자면 사이버 낙서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지만 이번 경우는 해커들의 나이도 비교적 많고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한다”고 말했다.
  • 創軍(대한민국 50년:14)

    ◎해방 직후 좌우익 군사단체 60여개 난립/“치욕 되풀이 말자” 강력한 군사력 국민적 열망/미군정 견제속 육군·해군·해병대·공군 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은,1948년 9월5일 남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정식 출범했다.정부 수립 21일만이었다.해군도 곧이어 발족했고 해를 넘겨 49년에는 4월15일에 해병대가,10월1일 공군이 창설돼 초창기 4군체계를 확립했다. 나라를 세운 뒤 곧바로 창군(創軍)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간단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것은 정치단체만이 아니었다.각종 사설·유사 군사단체가 곳곳에서 깃발을 올렸다.이에는 까닭이 있다. 먼저 35년만에 국권을 되찾은 한민족에게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아울러 해방정국에는 독립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만군·학도병·공산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좌우 이념대립에따라 군을 선점하려는 양쪽의 경쟁이 작용한 것도 군사조직 난립에 큰영향을 미쳤다. ○사설 군사단체 끼리 충돌 해방 이틀 뒤인 45년 8월17일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병대(후에 국군준비대로 개편)가 발족한 것을 필두로 그달 말에는 일본 육사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임시군사위원회(위원장 李應俊)가,9월1일에는 좌익 성향의 학병동맹(위원장 王益權)이 잇따라 조직됐다.이밖에 학병단·학도대·광복군국내지대·보안대·한국혁명군·장병대·장총단·조선국군학교·대한민국 군사후원회·육해공군 출신 동지회·한국장교단 등 수많은 군사단체가 등장해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45년 11월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한 군사단체는 30곳을 넘어섰으며 비등록조직을 합하면 60여 단체가 존재했다. 이같은 군사조직의 난립에 당황한 미군정은 한국군 창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해 창군 기본계획 수립을 맡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한 데 이어 12월5일에는 군간부 양성을 목표로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군사단체들의 발호는 그치지 않았고 무력충돌도 적잖게 발생했다.46년 1월18일 학생동맹은 서울 도심에서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시위대를 습격했다.이에 따라 경기도경은 張澤相 부장의 지휘아래 다음날 새벽 학생동맹 본부를 기습해 해체시켰다.이날 金斗漢이 이끄는 우익단체 대한민청은 좌파그룹인 조선국군준비대(총사령관 李赫基)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결국 46년 1월20일 사설군사단체해체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고 그에 따라 각종 군사조직은 점차 퇴색했다. 한편 창군작업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다.국방경비대는 병력 600명으로 제1연대 제1대대를 편성,46년 1월15일 서울 태릉에서 입대식을 갖고 출범했다.2월7일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해 4월까지 병력을 8연대로 늘렸다. 국방경비대 사령부는 국방부를 거쳐 통위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남조선국방경비대도 국방경비대­남조선경비대 순서로 개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로 자리잡았다.정부 수립 직전 남조선경비대의 규모는 5여단,15연대에 장교 1천403명,사병 4만9천87명이었다. 육군에 비해 해군 창설작업은 훨씬 순조로웠다.해방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21일 孫元一을 중심으로 해사대가 조직됐다.孫元一은 중국 남경 중앙대농학원 항해과를 나와 외항선에서 선원생활을 한 인물로,뒤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장관(53∼56년)을 역임한다. 해사대는 그해 11월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확대되면서 100t급 2척과 40t급 1척 등을 갖고 미약하나마 해안경비에 나섰다.46년 6월15일에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조선해안경비대로 개편된 뒤 전국 주요항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총사령부를 서울에 두는 등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해병대는,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그필요성이 인정돼 49년 4월15일 해군에서 차출한 병력 400여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범했다. ○공군 연락기 20대로 창설 공군은 가장 늦은 49년 10월1일 조직됐다.해방직후 국내외 항공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항공건설협회로 출발했으며 48년 5월15일 육군항공부대로 탈바꿈했다.육군 예하 항공군으로서 기틀을 닦은 공군은 창설 당시 1천600여 병력과 연락기 20대를 보유했다. 창군을 전후한 시기에 군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근본적으로 한미간에 시각차가 있었다.정부수립에 앞장선 정치 지도자들은 내심 북진통일을 바래 강력한 군대를 원한 반면 전쟁을 원치 않은 미국은 일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확보를 견제했다.군맥(軍脈)에 따른 내부갈등이 있었고,‘여순반란사건’‘대구 6연대 사건’ 등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에서 비롯된 상쟁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창군 2년이 채 안돼 발발한 6·25였다.소련의 강력한 지원아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짧은 세월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됐다. ◎“美는 李承晩의 北侵을 경계했다”/초대 주한대사 무초의 진술서 첫 확인 대한민국이 처음 군을 조직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사이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한국은 당연하게 강력한 군대를 갖기를 원한반면 미국은 상당히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이는 ‘한국이 강한 군대를 보유하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통일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혹에는 당시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경솔한 언행도 크게 작용했다.李承晩 대통령이 1949년 9월30일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李承晩은 이 편지에서 “나는 지금이 북한에 있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합세해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우리는 金日成의 부하들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내 거기에서 굶어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우리방위선이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6·25 발발 아홉달전쯤에 쓴 이 편지는,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극복’이라는 통일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미국이 한국군 전력강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근거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편지는 1950년 가을 유엔에서 공산측에 의해 ‘북침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당시 미 정부는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후에 올리버는 진짜임을 확인해 주었다. 李承晩의 편지가 한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면 미국의 판단을 보여주는 자료로 무초의 진술이 있다.대한민국 주재 첫 미국대사인 무초는 1973년 12월 트루만 대통령도서관의 기록담당자에게 재임 때 경험을 토로했다. 현재 문서로 남아 있는 이 진술에서 무초는 “한국인들이 국토를 자체방위케 하는 한편 북한 진격이라는 그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미국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 우리가 李承晩과 한국군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면 그들은 북진을 개시했을 것이고,북한도 동일하게 남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명은 우리몫이 됐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초 대사의 진술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美,잉여 군기지·시설 대폭 폐쇄/2005년까지

    ◎연 200弗 절감… 첨단무기 개발 투입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윌리엄 코언 미국국방장관은 2일 지난해 발표한 중기국방전략계획에 의거,오는 2001년과 2005년 두차례에 걸쳐 미국내 군기지·시설의 폐쇄를 강행하는 한편 2척의 차세대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등 군사력현대화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언 장관은 이날 미 의회에 제출한 국방관련 보고서를 통해 “현재 국방부는 전투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규모 이상의 군기지를 갖고 있다”면서 “잉여 군기지·시설폐쇄를 단행하지 않으면 군사력 현대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언 장관은 “2차례에 걸쳐 군기지와 시설을 감축할 경우 연간 2백억달러의 국방비를 절감할 수 있다”면서 “이 비용을 군사력 현대화를 위한 첨단무기 개발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군사시설 감축에 따른 절감비용을 ▲2척의 차세대 항공모함 건조 ▲700대의 공군 및 해병대용 합동타격기(JSF) 개발 ▲650대의 코만치 헬기 ▲800대의 육군용 첨단 크루세이더 야포체계 ▲1천척의 수륙양용 공격정 구매 등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美 방산업체 ‘나토 확대’ 거액 로비/NYT 보도

    ◎의회상대 2년간 5천만弗 사용 【뉴욕 연합】 미국의 무기제조업체들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 지난 수년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 미 의회를 대상으로 엄청난 규모의 로비자금을 사용하는 동시에 선거운동 자금을 지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날 선거운동 연구 회사인 ‘캠페인 스터디 그룹’(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 소재)의 분석 자료를 인용,미국의 6대 방산업체가 지난 2년간 의회를 상대로 나토 확대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5천1백만달러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록히드 마틴,노스롭 그루만,레이시온,보잉 등이 포함된 이들 6대 방산업체는 또 지난 97년에 ‘미 연방 선거운동위원회’에 2백4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기탁했는데 이는 지난 91년의 1백50만달러에 비해 크게 증가한 액수라고 타임스는 말했다. 신문은 냉전 종식으로 무기 판매가 급격히 감소한 이들 주요 방산업체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왔으며 나토의 확대 개편은 이들 업체에 거대한 시장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나토 조약에 따르면 신규 가입국의 경우 기존 동맹국들과 국력에 걸맞는 수준의 군사력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 나토 가입이 사실상 승인된 폴란드의 경우 100∼150대의 전투기 구매를 원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 록히드 마틴사 및 보잉사와 프랑스,영국 등의 항공기 제조업체들은 자사 혹은 자국 전투기를 판매하기 위해 수주전에 참가,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
  • 군 수뇌부 인사/합참의장 金辰浩씨/육참총장 金東信씨

    정부는 26일 합참의장에 金辰浩 2군사령관(학군2기),육군참모총장에 金東信 연합사부사령관(육사21기)을 임명하는 등 육군 수뇌부 인사를 단행했다.호남 출신과 학군출신이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에 발탁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연합사부사령관에는 鄭永武 합참 작전본부장(55·육사22기),1군사령관에는 金石在 합참 전력평가참모본부장(54·육사23기),2군사령관에는 曺永吉 2군부사령관(58·갑종172기),3군사령관에는 吉亨寶 육군참모차장(56·육사22기)이 대장으로 승진,임명됐다. 정부는 육군 수뇌부 인사에 이어 다음달 초까지 군단장(중장) 3∼4자리와 사단장(소장) 9∼10자리 등 장성급 후속인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프로필 ◎金辰浩 합참의장/소신 의리 중시하는 만능 스포츠맨 활달한 성격에 의리와 소신을 중시하는 스타일. 학군 출신에 대한 배려가 발탁의 배경이라는 후문.대학시절 럭비선수를 지내는 등 만능 스포츠맨이지만 한국 현대사 분야의 교재를 펴내는 등 문무를 겸비.월남전에 참전하고 특전사 수방사 등에 근무한경력을 갖고 있다. 부인 瀋基淑씨(56)와 1남1녀. ▲서울(57) ▲배제고 ▲고려대 사학과 ▲학군2기 ▲37사단장 ▲1군부사령관 ◎金東信 육참총장/단구에 일처리 야무진 정책기획통 단구에 일처리가 야무지다.영어에 능통한 정책기획통.호남 출신의 유일한 4성장군으로 일찌감치 참모총장감으로 꼽혀 왔다.96년 9월 합참 작전참모부장으로 있으면서 강릉무장간첩 소탕작전을 지휘하다 연합사부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부인 李惠貞씨(54)와 1남1녀. ▲전남 광주(57) ▲광주일고 ▲육사21기 ▲국방부 정책기획관실 차장 ▲51사단장 ▲수도군단장 ◎金石在 1군사령관/야전경험 다양한 작전통 육척 장신에 서글서글한 외모이지만 일처리에는 빈 틈이 없다는 평.온화한 성품에 격의 없는 대화를 좋아해 부하들의 신망이 두텁다. 육사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한 만능스포츠맨.야전 경험이 다양한 작전통으로 꼽힌다. 부인 河蘭永씨(51)와 1남1녀. ▲경남 함양(54) ▲안의고 ▲육사 23기 ▲3군단 참모장 ▲5사단장 ▲육본 인사참모부장 ▲3군단장 ◎曺永吉 2군사령관/20여년간 전략기획 참여 소신이 뚜렷하고 부하를 잘 챙기는 자상한 인품의 덕장.서적을 늘 가까이하는 독서광으로 바둑 실력은 프로급.영관장교 때부터 20여년간 군의 전략기획과 군사력 건설업무 분야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왔다. 부인 姜淑씨(53)와 2녀1남. ▲전남 영광(58) ▲광주 숭일고 ▲갑종 1백72기 ▲국방대학원 교수부장 ▲31사단장 ▲2군단장 ◎吉亨寶 3군사령관/방위력 개선 업무에 밝아 꼼꼼한 성격에 매사를 알뜰하게 챙긴다.국방부 전력계획관 등으로 근무하는 등 방위력개선 업무에 밝다.솔선수범 정신이 몸에 밴 합리적 지휘관으로 꼽힌다.부하 사랑이 남다르며 상관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 부인 金恩惠씨(50)와 2남. ▲평남 맹산(56) ▲휘문고 ▲육사 22기 ▲203특공여단장 ▲1사단장 ▲국방부전력계획관 ▲수도군단장
  • “中,대만 전면봉쇄 능력 보유”/대만 국방부 보고서

    【홍콩 연합】 중국은 유사시에 미사일을 동원하는 육·해·공 3군합동작전으로 타이완(臺灣)을 전면 봉쇄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타이완 국방부 보고서에서 분석됐다. 25일 홍콩 신문들에 따르면 타이완의 장 중링 국방부장은 올해 국방보고서에서 중국은 타이완을 겨냥,군사력을 동남해안에 집중 배치하고 특히 제2포병(미사일 부대)의 전력을 크게 강화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최근 2년간 푸지엔(福建)성에 정예 8만의 타이완 전담 부대를 배치하고 부근의 각 군구에도 특수 기동부대를 포진,유사시 3군 합동작전으로 타이완 외곽도서들을 봉쇄하고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전력을 보유했다고 보고서는 말했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의 미사일 작전 능력이 타이완 방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중국이 타이완을 절대로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내 일부의 안일한 사고방식이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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