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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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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兩岸긴장 적극 중재”

    [워싱턴 AFP AP 연합] 미국은 최근의 중국·타이완(臺灣) 긴장사태와 관련,금주중 미중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하는등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벌일 예정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19일 보도했다. 이와관련,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이번 주 싱가포르에서 중국의 탕자쉬앤(唐家璇)외교부장과 회담을 갖고 타이완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이신문은 전했다.클린턴 행정부는 또 이번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고위 외교관리를 곧 베이징(北京)에 파견할 예정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앞서 18일(현지시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해 나가겠다고 재확인한데 이어 타이완에 대해 무력사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데이비드리비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중국 군부는 최근의 양안(兩岸)긴장과 관련,타이완의 독립세력들에 대한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포스트는 말했다.중국 인민해방군의 한 고위관리는 18일 홍콩신문과의 회견에서 “평화적 재통일이 무망하고 타이완이 독립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사용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신문은 전했다.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헤더 파키스탄 대사

    따릭 오스만 헤더 파키스탄 대사는 16일 대한매일과의 특별 인터뷰에서 카슈미르 분쟁은 코소보 사태처럼 국제사회가 해결을 위해 개입해야 하며 현지주민대상의 국민투표 실시가 가장 적합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으로 가는 미사일 수출부품 선적 혐의로 지난달 25일부터 인도에 억류돼 있는 북한선박 ‘구월산호’와 관련해서 “파키스탄 정부는 북한과 이런기술을 거래하지 않았으며 이 사건역시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밝혔다.다음은 인터뷰의 주요내용. ■카슈미르 지역을 둘러싼 파키스탄과 인도의 분쟁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읍니다.어떤 상황입니까. 이 문제는 지난 50년동안 국제사회를 흔들어온 현안이었읍니다.특히 89년이후 6만6,000명의 지역 주민이 피살당하는 참화를 겪었읍니다.몇달전 자치를요구하는 수백명의 지역 무장세력들이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군사행동을시도했고 이에 대해 인도가 대규모 군사행동으로 대응,사태가 악화됐습니다. ■해결책은. 지역 주민 대다수가 회교도로서 파키스탄 귀속을 원하는 데도 인도군이 무력 점령하고 있는 모순이 분쟁의 뿌리입니다.인도도 처음엔 국민투표를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49년도에 이뤄진 유엔안보리의 국민투표 결의안은 여전히 유용한 해결방안입니다. ■파키스탄 입장은. ‘눈앞의 사태’ 수습을 위해 분쟁현장에 파견돼 있는 UN감시단(UNMOGIP)의 증원을 요청했습니다.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코소보사태와 같습니다.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개입이 필요합니다.최근 충돌과 관련,파키스탄정부는 문제의 회교도 무장세력들에게 ‘평화’를 요청했습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관계는 해결이 불가능합니까. 지난 12일 샤리프 총리는 카슈미르분쟁을 포함한 두나라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다시 천명했습니다.“두 나라가 서로를 의식한 비생산적인 군비경쟁으로 다른 나라들에 사회·경제 건설에서 뒤지고 있다”는 총리의 지적처럼 화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다만 관계회복을 위해선 카슈미르 분쟁의 해결이 핵심문제며 현실적으로 선결조건에 해당합니다. ■미국은 이 문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미국의 개입과 역할은 중요합니다.미국은 이 분쟁이 파키스탄과 인도라는두 핵보유국의 전면전으로 발전할까 우려해 왔습니다.우리는 미국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미국은 분쟁해소를 위해 더욱 핵심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지난해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꼭 필요했습니까. 핵을 보유한 인도는 파키스탄을 위협해 왔습니다.지난해 5월 핵실험의 성공으로 파키스탄은 다시 전략적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인도는 파키스탄보다 군사력에서 3배,인구에서 8배나 큰 나라입니다. ■핵비확산조약(NPT)에 가입 의사는 없습니까. 현재의 NPT는 핵 강대국들에 의해 만들어진 불평등한 제도입니다.파키스탄은 가입의사도,가입 계획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서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파키스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남북문제 해결의최선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파키스탄간의 관계발전 전망은. 두 달전 김대통령에 대한 샤리프 총리의 공식초청 서한을 전달했습니다.김대통령도 샤리프 총리를 초청했습니다.샤리프 총리가 올해 안에 내한할 가능성은 높습니다.정치·경제적으로 파키스탄은 한국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이 일부 국가들과 미사일 및 핵기술을 거래해 왔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파키스탄은 자체적으로 미사일과 핵기술을 개발해 왔으며 외부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다.관련 기술을 다른 나라에 제공한 일도 없습니다.최근 인도에서억류됐다는 미사일 부품을 실은 북한 선박은 파키스탄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파키스탄과 중국,일본 등 다른 동북아 국가들과의 관계는. 중국과의 관계는 우리 외교정책의 한 근간입니다.두 나라는 굳건한 우의를다져왔습니다.일본은 파키스탄에 대한 최대의 경제원조국으로서,주요 무역대상국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남아시아 지역협력체’(SAARC)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정치·경제문제 등 지역협력 활성화를 위한 조직체입니다.아세안(ASEAN)의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파키스탄을 비롯,인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몰디브,부탄등 12억 인구의 7개 회원국을 아우르는 잠재력 큰 기구입니다. 이석우기자
  • 오구라 가즈오 주한 日本대사 인터뷰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주한 일본대사는 16일 대한매일과 특별인터뷰를갖고 “한반도에 일시적으로 긴장이 고조됐으나 북한이 무리한(군사적)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한·미·일 3개국의 대북 정책노선은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기본적으로 옳은 정책으로 일본과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햇볕이 언제나 빛나는 것은아니다”며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정책대응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비췄다. 서해 교전사태와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미사일 재발사설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는 듯합니다.지금의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남북간 긴장이 일시적으로 고조됐습니다.긴장이 높았던 이유는 남북이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교전사태 등을)국내 정치문제화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양측은 이후 위기를 회피하려는 전략을 취하면서 서로 억제된 대응을 했습니다.미국 중국 러시아 등도 한반도를 세계적 문제로 보고 있고 국제여론도 있는 만큼 북한이 무리한 대응을 하지 못할겁니다. 지난 9일 중·일 정상회담에서 북 미사일 재발사 저지와 관련해 성과가있었는데요.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갖고 있고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대국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습니다.일본측의 미사일 재발사 저지협력 요청에 중국측은 기회가 있으면 북한측에 전달하겠다고 답했습니다.중국은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봅니다. 북한이 미사일 재발사를 강행할 경우 일본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인지요. 재발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국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여러가지 루트를 통해 미사일 재발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하는 한편 북한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일 재발사가 있을 때는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특히 일본의 국내여론이나 국민감정을 볼 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기여를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대북 제재조치도 강하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재조치 강화란 무엇을 뜻합니까. 이미 취하고 있는 제재 외에도 인적,물적 왕래는 물론 금융면까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3국간 이견은 없습니까. 서울과 도쿄,워싱턴의 기온이 틀리듯 온도차는 있습니다.먼저 그 온도차는3국의 국내상황이 다르다는 데 기인합니다.게다가 북한이 3개국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므로 북한문제를 느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3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일치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효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포용정책은 기본적으로 옳습니다.일본은 물론 국제사회도 지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햇볕이 영원히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상대가 전혀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고 도발만 한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참을 수 있는 것은아닙니다.국민감정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정책은 옳고 아직 1년 밖에 경과하지 않았으므로 지속하되 언젠가 논의하는 것은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본 북한간 국교정상화교섭은 언제 재개될 수 있을까요. 일·북 국교 교섭은 현재로선 전혀 계획이 서있지 않습니다.북한은 인도적문제,예를 들면 일본인 납치나 일본인 처(妻)의 일본 방문 등과 관련한 대화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이같은 인도적 문제와 함께 미사일문제에 대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여론을 감안하고 건설적으로 대응해온다면 교섭에 응할 수 있습니다. 실무차원의 교섭은 이뤄지고 있습니까. 현재 여러가지 정세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대한 주변국의 반발이 있습니다.가이드라인의 투명성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습니까. 투명하게 운용한다고 여러나라에 설명하고 약속했습니다.한국은 일본의 방위정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나 중국의 경우 사회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중국도 자국의 미사일개발이나 군사력 상황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서로간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한·일 경제상호협력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일본의 경제회복이 한국경제에도 소중합니다.일본의 대한(對韓)투자나 한국의 대일(對日)수출 무역이 확대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장기적으로 두 나라는 글로벌 이슈,즉 환경문제,국제범죄,테러리즘,원자력안전등에 적극적으로 공동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약속한 일본의 99년도 플러스 경제성장은 가능합니까. 온돌에 불을 지펴 온기가 구석까지 미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본경제는 현재 아궁이에 연료를 집어넣고 막 불을 지핀 상태입니다만 올해에는 0.5∼1%의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2002년 월드컵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일이 공통의 목적을 향해 협력하는 게 중요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부딪치기도 하면서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지는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진정으로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판소리 애호가인 대사께서 이달 초 직접 판소리 무대에 나섰는데요,느낌은 어땠습니까. 집에서 연습한 것과 극장에서 실제로 공연한 것과 크게 달랐습니다.잘했다는 생각보다 아직 멀었다는 느낌입니다.한국 관객들이 ‘얼쑤’라고 추임새를 넣어줄 때마다 한국인과 마음을 나누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황성기기자
  • “北·이라크 核개발 강화 우려”

    워싱턴 연합 미국은 코소보사태를 계기로 북한과 이라크등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s)들이 미국의 힘과 직접 충돌하는 것에 신중해 지기보다는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개발노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 관리들이 지난 달 미측 협상대표에게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로 장거리 미사일 없이는 ‘제2의 유고슬라비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들었다고 지적하고 경제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한 북한의미사일개발 포기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고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미군의 화력을 측정하기 위해 베오그라드에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으며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한이 베오그라드에서 미 공군력을 확인한 뒤 더 많은 군사시설을 지하로옮기는 결정을 하게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고 이 신문은 밝혔다. 미국내에서는 코소보 사태에서 미국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동맹국이나 적국은 코소보 사태를“10년째 이어지고 있는 유일 초강대국으로서미국 힘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보여준 군사력은 다른 국가들의 대미시각을 바꿔놓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저널은 북한과 이라크 처럼 폐쇄된 국가의 반응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양국이코소보 사태의 추이를 주시해 왔다고 말했다.신문은 낙관론자들은 코소보사태에서 보여준 미국의 군사력이 이라크나 북한의 침략을 저지할 것이란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코소보에서 보여준 미국 재래식 무기의 압도적 우위가 이들 국가의 비재래식 무기 개발 욕구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란 상반된 견해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 [오늘의 눈] 美의 北미사일 대책 고민

    한국에서 청소년 수련장 화재사건으로 꽃같은 어린이 23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미언론 국제면 톱뉴스를 장식한 1일에도 북한 관련 뉴스는 어느 매체든역시 주요뉴스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은 특히 미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행한 배경설명과 국무부의 정례브리핑 내용에 모두 북한의 미사일 실험 재개에 따른 의제가 포함돼 있기에 더욱 그랬다. 이 고위관리는 김 대통령 방미시 클린턴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주요의제에 북한미사일문제가 포함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또 제임스 폴리 대변인은 “북한미사일위협에 따른 한국측의 우려와 억지노력의 정당성을 인정,오랫동안 한국의 단거리 미사일 개발을 위한 기술지원을 해왔다”고 밝혔다. 미 대외정책 수행에 있어 핵심인물인 두사람의 언급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한결같이 미사일 실험재개에 대하는 단호하고 강경한 태도로 인해 내셔널프레스 센터와 국무부를 오가며 자리를 꽉 메웠던 내외신 기자들 역시 뉴스전달에 더많은 비중을 실으려는듯 보였다. 그러나 단호한 태도를 보이던 이 고위관리는 “또다른 미사일 실험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심각하다는 단어의 의미설명에 한동안 시간을 할애하는 신중함을 보였다.그는 심각하다는 단어는 serious(심각한,중요한)이지 dire(끔찍한,극심한)가 아니라고 뜻풀이를 해가며 언어해석상 착오를 막으려 애쓴 것이다. 간단한 두 단어의 부연은 상당한 의미차이가 놓여있었다.차이 중 한가지는‘심각한 결과’란 뜻이 분명 보복성 침략이나 파괴력을 동반한 물리적 대응이 아니라는 부연설명이었다. 폴리 대변인 역시 “한국의 방위 및 억지노력은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기 바란다”고 지적,군사력 사용에 도덕성과 명분을 중시하는 미국의 고민을 내비쳤다.단호함 사이에 엿보인 이들의 고민은 수십년간 럭비공같이 튀는 북한을 대해온 경험에 비춰 미국의 단호한 자세를 자칫 도발로 억지해석하지 않을까하는 또다른 우려 때문이며 그만큼 북한은 다루기어려운 존재임을 다시한번 확인해준 것이다. 최철호 워싱턴 특파원hay@
  • ‘북한의 실체 어떤 모습일까’ 실상다룬책 잇따라 출간

    북한은 알 수 없는 나라다.서해에서는 무력도발을 일으켜 남북한 교전이라는 긴장상태를 만들어 놓고서도 동해를 통한 금강산 관광은 허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는데도 군사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속하고 있으며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에게도 도전적이다.이러한 북한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어느정도 그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책들이 나왔다.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북한 읽기’ 책들은 ‘북한 이해의 길잡이’(김성철·임강택·홍용표 등 10명 공저,박영사 2만원),‘북한법 50년,그 동향과전망’(이장희 등 7명 공저,아사연 2만5,000원),‘1999 민족의 희망찾기’(강정구·법륜 엮음,정토출판 1만원) 등이다. ‘북한 이해의 길잡이’는 통일연구원 연구진들이 몇년동안 북한 및 통일문제 연구와 강의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독특한 작동원리와 정치·군사·사회 등 각 분야의 실상을 이념적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서해에서 무력도발을 일으킨 북한의 군사전략과 관련 “북한은 미사일과 같은 전략무기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대내적으로는주민들에게 강대국의 환상을 심어주고 대외적으로는 한국·미국 등과의 협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에서 낸 ‘북한법 50년,그 동향과 전망’은 북한의 헌법·형법·민법·경제법(합영법)·소송법·국제법 등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부록에는 ‘김일성 헌법’이라고 불리는 북한의 개정 헌법과 형법·민법·가족법의 법전을 수록하고 있다. ‘1999 민족의 희망찾기’는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분부’가 북한돕기운동을 펴는 과정에서 탈북자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과 그로 인한 사회변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불교운동본부는 1998년 5월 중국으로 넘어온 식량난민 770명을 인터뷰한 결과,770명의 가족 4,121명중 95년 8월부터 98년 3월 사이에 1,107명(27%)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북한인구중 300만명 이상이 굶어죽거나 영양실조로 인한 합병증,전염병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1997년 9월30일부터 11개월간 탈북자 1,6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김일성·김정일부자와 지도층에 대한 불신의 조짐을 유추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북한이 못살게 된 이유중 지도자의 책임(11.4%),지도층의 실정(12.3%),국가정책 실패(12.9%) 등 36.6%가 지도층과 국가정책 실패 때문이라고대답한 것이다.탈북자들의 생각을 북한 전체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계속되는 경제난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신화와 그들에 대한 절대적 신임에균열이 나타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창순기자 cslee@
  • 서해교전 남북한 득실

    서해 교전사태로 남과 북이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일까.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으로 촉발된 ‘서해 교전사태’가 18일 사실상 종결단계에 접어들면서 이번 사태의 득(得)과 실(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측은 대북 군사적 우위와 자신감을 실증적으로 확인한 것을 최고의 성과로 꼽고 있다.휴전 이후 남·북한 정규군 사이의 충돌로서는 가장 규모가컸던 이번 교전에서 우리 군은 장비 및 전술,작전능력 등 군사력의 우위를입증하고 북한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정부가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강력한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있음을 북한에 각인시켜준 점도 큰 성과로 지적된다. 9명이 부상하고 고속정과 초계함 등 2척이 가볍게 부서지는 등 외형적 피해 외에 우리측이 잃은 것도 있다. 군 당국의 미온적인 초기 대응으로 인해 국민으로 하여금 NLL 남쪽이 과연우리의 영해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했다. 북한이 서해 침범에는 ‘NLL 무력화’가 주요 목적 중의 하나로 분석되고있다.북한으로서는 NLL문제에 관한 한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하지만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너무 많다. 가장 큰 실(失)은 국제사회에 테러국가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는 점이다.교전에서 패배한 데 따른 사기 저하,인책론 대두 등 적지않은 동요를 겪을 전망이다. 교전에서는 어뢰정 1척이 침몰됐고 경비정 5척이 대파됐다.군사전문가들은물질적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18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외신은 사망자 30여명을 포함,북한군의 사상자를 100여명으로 보도했다.북한으로서는 가장 부담스럽고 아픈 대목이다. 조현석기자 hyun68@
  • 北경비정 南下않고 NLL대치

    서해 교전이 있은지 하루가 지난 16일 북한은 경비정들을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 대기시켰으나 남쪽으로 내려보내지는 않았다.그러나 국방부는북한의 재도발 가능성에 대비,다양한 작전을 마련하는 등 긴장감을 늦추지않고 있다. 미국은 하와이 주둔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여러 척을 남해에 배치하는등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대폭 증강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관계자에 따르면 공중조기경보기(AWACS)와 전자전기 EA-6,대잠초계기 P-3C 등도 이날 일본 오키나와와 요코스카,하와이,알래스카 등의 미군기지를 출발,17일부터 18일 사이에 한반도에 도착한다. 사정 450∼2,500㎞의 토마호크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급 순양함도 미군기지를 출발,수일 안에 한반도 주변해상에 포진할 예정이다. 코소보 사태로 걸프해역으로 이동했던 키티호크 항공모함도 한반도 긴장이고조됨에 따라 이날 페르시아만을 출발,오는 20일쯤 요코스카항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면 미국 본토의 전력을 추가로 동원하는 방안도 적극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태(趙成台)국방부장관는 이날 북한이 경비정을 NLL 남쪽으로 내려보내거나 서해안의 지상군 및 해·공군 전력을 투입해 공격을 시도할 가능성에대비해 대응방안을 수립하라고 전군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공군은 모든 비행단에 출격태세 상태를 유지토록 지시하는 한편초계비행을 하루 평균 40대에서 80대로 2배 늘렸으며 정보수집기 RF기의 비행을 평소 1대에서 2대로 늘렸다.육군은 중북부 방공포부대에 무장대기 명령을 내렸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 24척이 이날 오전 8시쯤부터 북방한계선 북쪽 4∼5㎞ 부근에 몰려와 조업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가운데 10여척은북방한계선상까지 내려왔다가 기상이 악화되자 북쪽으로 물러났다. 합참 관계자는 “오후 3시를 기해 남해서부 및 서해남부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데 이어 오후 4시를 기해 백령도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중부 해상에도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소형함정의 출동을 자제하고 있다”면서 “북측도나쁜 기후조건 등으로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상이 좋아지면 또다시 남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인철 주병철 조현석기자 ickim@
  • 「남북한 西海 교전」軍당국 대책과 사태 전망

    15일 오전 9시25분 ‘한반도의 화약고’ 서해에서 마침내 남북간 첫 교전이 벌어졌다.교전 후 남북 함정들이 후방으로 철수해 서해상은 일단 안정을 되찾았지만 팽팽한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군 당국은 교전 직후 북한측의 충돌적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 일단 고속정과 초계함 등 해군세력을 완충구역 아래로 후진 배치했다.북한 경비정과 어선도 교전 이후 NLL 북쪽으로 모두 물러갔다.때마침 열린 판문점 장성급회담에서 유엔사측은 남북 해군이 북방한계선(NLL)을 존중하고 군사력을 철수시킬것을 권고했다. 군 당국은 첫 교전 해역이 북한 서해안 옹진반도 연안에 집중 배치된 사거리 83∼95㎞ 샘릿·실크웜 등 지대함 미사일 및 100㎜ 해안포 등의 사정권에 들어 있고 공격을 받을 경우 자칫 국지전 등으로 확대될 수 있어 일단 군사력을 물린 뒤 북측의 대응을 관망하기로 했다. 어뢰정과 경비정이 퇴각한 뒤 북한군의 별다른 군사행동은 아직까지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의 강경한 대응과 해상 군사력의 열세 등으로 인해 국지전이나 전면전 등 본격적인 전쟁을 도발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옹진반도 연안에 배치한 샘릿과 실크웜 미사일 등으로 대함 공격 등을 할 수 있지만 전면전 상황으로 비화할 수 있어 이같은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게 군 당국의 분석이다.군 고위관계자는 “지난 14일 현재 서해안 이외 다른 북한 지역에서 별다른 군사적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관측됐다”면서 “북한이 서해상의 대치 상태를 전면전이나 국지전 등으로 확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번 교전의 완패로 인해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고 분계선 무력화를 위해 당분간 다양한 형태의 무력시위를 벌이며 지루한 신경전을 계속할 것으로 군 당국은 전망했다.북한은 이번에 격침된 어뢰정보다 기동력과 무장이 월등한 유도탄정 등을 NLL 남쪽으로 내려보내 우리 함정에 선제사격 후 도주하는 ‘게릴라식 보복공격’을 시도하는 등 신경전을 계속할 것으로 관측된다. 군 당국은 이에 대해 당분간 적극적인 군사작전은 최대한 자제하되 ‘힘으로 NLL을 지킨다’는 작전 지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특히 북한측이 선제 공격을 강행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특히 우리 함정은 컴퓨터로 목표물에 대한 거리 및 각도를 측정,하푼미사일 등을 자동발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교전시 백전백승이라는 게 해군측 설명이다. 김인철기자 ickim@
  • 「남북한 西海 교전」서해안 남북 군사력비교

    15일 남·북한 해군 함정 사이에 교전이 발생한 서해5도 지역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릴 정도로 가장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지리적으로도 서해5도의 최북단인 백령도와 북한의 장산곶은 17㎞ 거리에 불과해 육안으로도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양쪽은 어느 대치지점보다 최신예 함정이나 정예부대를 배치해놓고 있다. 우선 ‘적진 속의 기지’라 할 백령도에는 해병 1개여단과 해안포,레이더사이트 및 사정거리 130㎞의 하푼미사일 등이 배치돼 있다.해병여단은 외부지원이 끊겨도 최소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물자와 장비를 갖추고 있다.모든 군사시설이 북측 화생방 공격에 대비해 완벽한 지하요새로 구축돼 있다. 연평도·대청도에는 해병 1개 연대와 중대 및 고속정 편대가 각각 배치돼있고 대연평도에는 해안포 지대지 미사일 등이 북측을 노리고 있다. 북방한계선(NLL)은 인천의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총괄한다.사령부에는 1,200∼1,500t 규모의 초계함 호위함을 포함,함대함 미사일을 보유한 10여척의 함정이 경계활동 중이다.유사시에는 잠수함 8척과 200여척의 함정,60여대의 항공기 지원이 이뤄진다. 북한은 해주와 옹진반도 해안에 사정거리 20㎞ 정도에 달하는 100㎜ 해안포 등을 배치했다.또 인근 해안에는 사정거리 83∼95㎞의 ‘실크웜’‘샘릿’등 지대함 미사일 기지가 다수 설치돼 있다. 평안남도 남포의 서해함대사령부 산하에는 6개의 전대가 420척의 함정을 보유하고 있다.함정은 대부분 유도탄고속정·어뢰정·화력지원정 등으로 170∼400t급의 소형 전투함이다.이 함정들의 60% 이상이 NLL 인근의 해주와 사곶등 서해안 해상에 전진배치돼 있는데 고속인 데다 미사일까지 장착하고 있어위력적이다. 유도탄 고속정은 사정거리 46㎞의 대함 STYX 미사일 2∼4기를 장착하고 있다.상어급을 포함한 40여척의 잠수함도 보유하고 있지만 서해안은 갯벌이 많아 잠수함이 작전을 펴기에는 부적절하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5)장르떠나 전문성 융합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다음달 23일 사상 최초로 사이버공간과 음악을 연계시킨 ‘두뇌오페라(brain opera)’를 선보인다.과학과 음악의 벽을 허물어내는 새 시도로써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이 행사에서는 뉴욕줄리아드음대 컴퓨터에 음악가 및 인터넷가입자 1,390명이 음악에 관한 정보를 각각 입력하면 컴퓨터가 이를 오페라로 종합해 뉴욕링컨센터의 청중에게들려주게 된다.오페라를 기획한 인공지능학자 민스키교수는 “인간 뇌세포는 각각 독립적이지만 다른 뇌세포와 조화를 이뤄 지능을 형성한다”면서 “컴퓨터와 음악을 통해 이같은 뇌의 움직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연말 미국의회는 국방부가 ‘4개년 국방계획(QDR)’을 작성하자 민간전문가 20여명으로 자문단을 구성,평가작업을 벌였다.이들은 20년후의 시각에서 미국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에 따라 갖춰야할 군사력 수준 등을 민간차원에서 검토했다.미 국방부는 이 비판을 내년부터 작성하는 다음번 계획서에 포함시키게 된다.비밀성이 요구되는 군사력 방향을 놓고 정부가민간기구의 지혜를 선뜻 수용한 것이다. 이같은 ‘벽 무너뜨리기’또는 ‘전문성의 융합’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유럽도 벌써부터 채비를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의 전자회사인 필립스는 현재 ‘미래의 비전’계획에 따라 비디오폰 손목시계,음악이 나오는 티셔츠 등 2∼3가지 개념을 종합한 신제품을 개발중이다.종래의 제품으로는 21세기 회사의 운명을 개척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프랑스 드쿠플레무용단은 80년대들어 무용 마임 아크로바트영상 컴퓨터를 종합한 새로운 복합공연을 펼치고 있다.이들은 지난 4월 내한공연을 가져 국내 문화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세계는 이처럼 민간과 정부부문,학문과 학문,과학과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장르와 전문영역의 두터운 울타리를 부수고 새로운 조화와 창조를 이뤄내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21세기 글로벌경쟁의 시대를 맞아 성장과 효율이라는두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최근 정부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있다.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실용적 처방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그러나‘성공’으로 평가받는 것은 매우 적은 편이다.정부의 잘된 태스크포스는 규제개혁위원회와 수질개선기획단 등이 고작이다.수많은 태스크포스 가운데 대부분은 부처이기주의,영역다툼 등에 부딪쳐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은 더욱 어렵다.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쓰레기문제를처리하기 위해 자치단체간 협의체가 있지만 운영이 잘 안된다”고 말한다.또 개방형 공직임용제의 경우 당초 1만3,000여개의 직위 가운데 30%를 민간인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공직사회의 반대로 자리가 빈 데 한해 민간인을 채우는 것으로 대폭 축소됐다.기업들도 최근 사외이사제를 도입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보인다.정부의 인식변화,학문의 협력 등과 함께 문화계의 크로스오버 등 ‘장르 가로지르기’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학문과 학문,지역과 지역,세대와 세대,보수와 진보,기득권층과 소외계층,전문가와 전문가의 갈등 등 곳곳에 쌓인 우리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그러나 이 벽을 쳐다보고 한숨만 내쉴 수는 없다.세계가 무한경쟁에 뛰어든 지금,영역과 사고,마음의 담을 부수고 새로운 통합의 길로 나서는 일이 시급하다. - 밀레니엄 탐방-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학의 집’에서는 매주 월요일이색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20여명의 내로라는 KAIST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인문학과 이공학의 융합에 나선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 회원 모임이다.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는 지난 92년부터 KAIST의 몇몇 교수들이 간헐적으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시도해오다 지난해 3월 공식 발족했다.디지털정보화시대로 표현되는 미래사회에선 지금의 독립된 학문구분으론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한다.그래서인지 이들은 자기 분야의연구에 다른 분야의 기술이나 이론을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한다. 모임의 시초는 전산학과 원광연교수가 미국 하버드대 및 펜실베이니아 대학 강의시절 느낀 점을 토대로,전공·학제가 개방적인 KAIST 특유의 체질을 살려 이공·인문학의 교류를 제안한 것.지난 92년의 일이다.과학·공학·인문사회과학·문화예술 분야의 교수 20명이 선뜻 동의했다.여기에는 사이버 가수 ‘아담’의 지도교수인 원 교수를 비롯해 96년부터 3년 연속 최우수강의교수로 뽑힌 윤정로교수(사회학),KAIST 연구처장 이귀로교수(전기전자공학),과학영재학회 부회장인 박상찬교수(산업공학),KAIST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소장 김진형교수(전산학)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글 전산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최기선교수(전산학)는 “전산분야의 일이지만 인문학 성격이 강한 디지털작업인만큼 인문학 소프트웨어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라면서 “이 분야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나 전문과정이없어 모임을 통해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권은숙교수(산업디자인학)는 “외국의 경우 디자인이 이미 기술마케팅 차원을 떠나 삶의 한부분으로통합되고 있다”면서 “문화와 기술의 융합이 어떤 가치를 창출해내는지를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델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미래형태를 연구,실험하는 MIT의 미디어랩.이곳은 TV 영화 신문 도서 컴퓨터 등 온갖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거대한 융합을 실천하고 있다.학부 및 석·박사과정이 개설돼 있으나 특정 전공을 두지않고 있다.다양한 전공이 교차하는 창조적 실험장인 셈이다. 원 교수는 “지금의 단절된 학문체계로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기술이나 과학,혹은 인문학 등의 융합,즉 공동작업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밀레니엄 포인트 공학도로 임원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운다.마케팅을 모르고 회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유가 아니라도 학문간의 장벽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의 학생 모집은 학과단위가 아니라 기초과학군,지구과학군,인문학부 등으로 광역화되고 있다.대학의 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넓혀주자는 취지도 있지만 칸막이가 쳐진 학과로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포복제는 윤리문제를야기시켜 과학과 철학적 배경을 요구한다.매스컴은 컴퓨터 등 공학적 지식과 연계된다.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통상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외국어뿐만 아니라 외교학과 비즈니스,인류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서강대학교는 올해부터 6개 연계전공과정을 개설했다.미디어공학,스포츠경영학,여성학,한국학,PRT(Philosophy,Religion,Theology),PEP(Politics,Economics,Philosophy)가 그것이다.미디어 정보처리를 통한 창의적인 엔지니어 양성을 목표로 한 미디어공학 과정에서는 신문방송학에 대한 이론과 전자,컴퓨터 등을 배운다.스포츠경영학은 말 그대로 스포츠와 경영학이 결합한 것.스포츠 스타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방안 등을 연구한다.PRT는 철학과 종교·신학,PEP는 정치학과 경제학·철학을 결합시킨 것이다. 한양대학교는 영상산업학과를 개설하고 연극과 경영학,정보처리,컴퓨터그래픽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친다. 한동대학교는 아예 무전공제를 실시하고 있다.컴퓨터와 영어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분야는 이수학점을 정해 놓았으나 나머지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임태순기자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4) 만주벌에서 바다로

    우리역사에 고구려란 나라가 있다.군사력이 강하고,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한반도 중부 이북에서부터 만주벌 요하 일대,연해주와 멀리 북방의 초원까지 장악한 나라.하늘과 빛을 지향하는 자의식이 강한 천손(天孫)민족으로 늘 자유를 꿈꾸고,실천하는 사람들의 나라였다. 고구려의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철기로 무장한채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군단과 강건한 문화가 있다.하지만 또하나,중요한 힘의 원천이 있으니 그것은 하얀 돛을 단 범선으로 동아지중해를 누비던 광범위하고 활달한 해양활동과 그 문화이다.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는 이미 해양활동 능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나 초기에는 대륙의 강 위에서만 수상활동을 하였다. 인간은 처음 강에서 수상활동을 하였으며 점차 바다로,대양으로 나갔다.그래서 강은 문화의 출발점이었다.중국에는 황하와 양자강의 유장한 흐름이 수천년간 대하드라마를 연출해왔다.우리들의 배냇고향인 만주에도 큰 강이 초원과 평원 사이를 흘러가며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고 물자를 배분해줬다.백두산에서발원한 송화강은 장춘을 지나 북으로 흘러 초원지대인 대안에서 대흥안령산맥을 출발한 눈(嫩)강과 만나 동류 송화강으로 거듭난다. 북부여 천제인 해모수(解慕漱)가 따라 내려왔을지 모르는 눈강은 배가 다닐 수 있는 통항(通航)거리가 700여㎞이다.송화강은 북만주를 거쳐온 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들어가는데 통항거리가 무려 1,890㎞에 달한다.수도인 국내성옆을 흐르던 압록강도 통항거리가 750여㎞다.그외에도 요하,혼강,두만강 등은 수로가 깊고 길며 바다로 이어져 큰 배들이 항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강에는 어느 시대,어느 지역에건 이른바 강상수군(江上水軍)이 있다. 고구려는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만주벌에 그물처럼 뻗은 강을 관리하는 수군이 필요했다.주몽의 아버지인 천제 해모수는 물의 신으로 불린 하백의 딸 유화부인과 결합했다.고구려는 태양숭배집단과 물에 세력기반을 둔 토착세력이 혼인동맹을 맺으면서 통합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배도 띄웠던 것이다.고구려는 내륙수군에만 만족하지 않고,초기부터 동해로 진출하였다.동옥저가 동해에서 잡은 해산물들을 공급하였으며,민중왕과 서천왕때는 고래잡이도 성행한 듯 야광눈을왕에게 바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동아(東亞)의 지정학적인 구도나 본격적인 국제교역을 위해선 황금의 바다인 황해로 진출해야 했다.그렇다면 험준한 산성전투에 능하고 기마전을 장기로 하는 고구려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배타고 활동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말을 탄 채 수천리를 행군하는 정복욕이 강한 집단은 해양에도 과감하고 신속히 진출한다.유목문화와 해양문화는 똑같이 이동성을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고구려는 3대 대무신왕때부터 황해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태조대왕(146년) 때에는 출해구(出海口)인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을 공격,대방(帶方)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 태수의 처자를 포로로 하였다. 그런데 3세기 전반에 이르러 중국대륙은 위오촉(魏吳蜀) 삼국시대였고,고구려는 위나라와 대결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이때 강남에 터전을 굳힌 오나라의 손권은 위(魏)를 배후에서 압박하면서 군마와사치품인 담비가죽을 수입하기 위해 고구려를 필요로 했다.반면에 고구려는 중계무역과 남방의 귀중품을 수입할 목적으로 원교근공책을 취했다.해양활동을 활용해 국가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고구려는 233년,동천왕시대 양자강유역의 오(吳)와 황해를 천수백km나 종단하면서 본격적인 해양외교를 펼쳤다.당시 오는 최고의 수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해양에 관한 기술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위는 대방을 일본열도까지 이르는 해상 네트워크의 중계지로 삼아 황해 횡단항로를 구축했는데 이것은 교역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를 겨냥한 광범위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그러나 고구려는 황해 북부의 해상권을장악해가면서 남쪽에 있는 낙랑 대방 등의 한족세력을 고사시켜갔다. 그러면 고구려와 오나라 사이의 항로는 어떠했을까? 당시의 국제관계와 황해의 해양조건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갈 때는 압록강하구인 서안평을 출발,요동만을 우측으로 보면서 멀리 나가서 산동반도 근해를 통과한 다음 위의 세력권을 벗어나 양자강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곧 공손씨의 배반으로 요동반도를 거치는 연근해항로는 피해야만 했다.실제로 오의 수군함대는 산동반도에서 위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따라서 강남에서 출발할 경우 안전을 위해 산동권으로 진입하기 전 일단 먼바다로 나가 종단으로 북상하다가 압록강하구로 들어갔다.위험부담이 많은 원양항해에 가까운 항로이다. 양쪽을 오간 배의 크기와 규모는 정확히 알수가 없다.그런데 235년 오나라의 사굉(謝宏)이 탄 사신선이 적어 고구려가 준 수백필 가운데 80여필만 싣고 돌아갔다.수십필의 말과 군사,화물을 실고 다닐 정도이니 큰 선박임이 틀림없다.육지의 나라,기마군단의 나라였던 고구려는 바다로 나가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경영하면서 고조선의 역사를 재현했던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모스크바大 강연 이모저모

    ?綬凋뵀㈈? 유민특파원?瘦兀陸?(金大中)대통령이 모스크바대학을 찾은 것은28일 방문으로 3번째다.93년 이 대학 명예교수로 위촉됐고 1년 뒤 강연차 방문했다. 김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측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학생들로부터는연설도중 여러차례 기립박수를 받는 등 환영열기가 뜨거웠다. 김대통령이 본관 앞에 도착하자 사도브니치총장부부와 소콜로프부총장이 김대통령을 맞았다.대학측은 귀빈을 맞는 전통환영식도 펼쳤다.쟁반에 올려진빵조각을 김대통령이 소금을 찍어 먹는 시늉으로 ‘환영절차’를 마쳤다. 김대통령이 2층 대강당으로 들어서자 대학 교수,학생 등 25명으로 구성된합창단이 ‘고다무스’(세계 학생가)를 합창했다.사도브니치총장은 “수 많은 투옥과 역경을 딛고 한국대통령으로 우뚝선 김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뿌리”라고 600여명의 교수·학생에게 소개,박수세례가 펼쳐졌다.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모스크바대 명예교수로 이 자리에서 강연했었는데한국 대통령이 되어서 여러분을 만나니 금의환향한 심정”이라고 소감을 피력했고 이는 모스크바 대학의 친구들이 과거 나의 외로운 민주화투쟁을 지원해줬기 때문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대통령은 “나는 옥중생활에서 푸슈킨 레르몬토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등 거의 모든 러시아 고전을 섭렵했다”면서 “그때마다 위대한 문학을 만들어낸 러시아의 저력과 예술성에 탄복했다”고 말했다.이어 “러시아문학을 읽은 것만 가지고도 감옥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 말하자 장내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김대통령의 연설은 ‘러시아찬양’으로 이어졌다.문학 뿐아니라 막강한 군사력,첨단 과학기술,기초·응용과학을 갖춘 보기드문 나라라고 러시아를 치켜세웠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했고 러시아가 우리측이 제안한 남북한이 공존공영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포괄적 협력 방안’을 지지해줬다고 정상회담 내용도 알렸다. 김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운명은 21세기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좌우될 것”이라면서 한-러간 유대강화를 역설했다.
  • 페리訪北과 北의 선택 ‘개방 신호탄’

    “좋든 싫든 북한도 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 정책조정관의 방북활동을 지켜본 한 당국자의 촌평이었다. 북한의 변화는 여러모로 감지됐다.가장 달라진 모습은 페리에게 보여준 북측의 비상한 관심 그 자체였다. 북한 방송 선전매체들은 페리일행의 동정을 실시간대로 보도중이다.25일 일행이 도착 때부터 주요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만경대 방문,종합교예공연관람 등을 중계방송하다시피 하고있는 것이다. 대외용 매체인 중앙통신·평양방송 뿐만이 아니다.대내용인 중앙방송과 조선중앙TV까지 나서고 있는 점은 퍽 이례적이다.‘철천지 원쑤’로 불러온 미국의 대통령특사를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시켰다는 점에서다. 김영남이 직접 환영연회를 주재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그는 명목상이지만 북한정권을 대외적으로 대표한다.북측 매체들은 그를 통해 클린턴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됐다고 보도했다.물론 ‘대북포괄적 접근’이 골자인 것으로 알려진 친서의 내용은 언급치 않았다. 친서 전달 사실을 내부에 공표한 것은 북-미 협상 가도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대량살상무기 개발포기와 경제지원 및 관계개선 등을 맞바꾸는 ‘거래’에 대한 관심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김정일이 페리가 평양을 떠나는 28일전까지 면담에 응한다면 북-미 관계정상화는 급물살을 탈 참이다. 다만 이같은 외형상의 변화가 당장 시장경제로의 전환 등 북한의 개혁으로이어질 것으로 보긴 어렵다.더욱이 한·미·일이 제시한 ‘포괄적 접근’방안을 선뜻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북측이 마지막 남은 핵카드를 버릴듯 말듯 하면서 좀더 곡예를 벌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북측이 포괄적 접근에 “전면 부정적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林東源 통일부장관)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북한에게 군사력에 의존하지않고도 사는 방도를 제시했다는 차원에서다.만족스럽진 않지만 북한의 변화가 시작된 느낌이다. 구본영기자 kby7@
  • 나토,유고공습 2개월째 손익 계산

    나토의 유고연방 공습이 24일로 2개월을 넘겼다.나토측은 그동안 60억달러이상의 전비(戰費)를 투입하고도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 보호라는 당초의목적을 이루지 못했고,유고측은 산업시설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돼 앞으로 복구하는데 10∼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토측이 단행한 공습은 당초 예상보다 작전기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유고측의 인종청소만 부추겨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생한 코보소주 알바니아계 난민은 모두 93만800여명이다.이중 70만명 이상은 알바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인접 국가로,13만명 이상은 서방국가로 각각 피신했다.유고내 다른 지역으로 피난한 알바니아계 주민 60만명 이상을 포함하면 90% 가까이가 쫓겨난 셈이다. 공습을 위해 엄청난 전비를 쏟아부었다.전비는 하루 평균 1억달러 선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이 때문에 미국은 유고공습과 미 군사력 보강 등을 위해 의회로부터 115억7,000여만달러의 전비를 받아냈고 서유럽도 막대한 지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나토측은 몇차례의 오폭사건으로 도덕적인 면에서도 타격을 입었다.민간인들을 희생시키는 잦은 오폭과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의 폭격 등으로나토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고워싱턴포스트가 경고했다. 유고측도 ‘굳세게’ 버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곪아터지기 일보 직전이다.군 및 경찰 병력의 사망은 차치하고도 민간인 1,200여명 사망하고 5,000여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냈다.다뉴브강의 다리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은 물론 자동차공장·공항·방송국’통신시설 등 국가 기간산업의 거의 대부분 파손됐고 교량의 70%,정유공장의 100% 가까이가 파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고연방 전체로는 1,000억달러 이상의 경제적 피해를 봤다고 유고관영 보르바가 밝혔다. 국제사회도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아직 사태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중국 대사관 오폭사건 이후 주춤했던 외교적 해결노력이다각적으로 모색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이 서방선진 7개국 및 러시아(G-8)의 평화안에 참여를 약속했으나,21일 열린 G-8 고위급 회담에서 이견을 보여 유엔안보리 결의안 초안 마련에 실패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김 대통령 르 몽드 인터뷰 내용/포용정책 현재론 최선의 선택

    프랑스의 최고 권위지 르 몽드는 6일자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다음과 같은 회견내용을 게재했다.회견은 지난 4월9일 이뤄졌다. 유고 사태를 보면서 한반도의 안보에 어떤 교훈을 얻는가. 유고사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군사개입이 불가피해졌다.나토가 유엔의 결의없이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은 유감이지만 상당한 변화이며 이는 국제기구내에서 논의돼야 할 것이다.한국은 모든 도발을 억제하고 도발이 일어나면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그러나 무력사용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한반도 전쟁 위협성을 우려하는데. 위협성은 있다.그러나 전력을 다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결심이다. 얻는 것도 없이 경계를 완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포용정책은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간첩선 침투나 미사일 생산 등 아직 부정적인 조짐이 있지만 4자회담 등 고무적인 변화도많다. 김정일(金正日)과 만난다면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평화를 보장하라는 것이다.인도적 측면에서는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왔나. 금융위기의 고비는 넘겼다.이런 리듬이 계속된다면 금년말에 다시 튼튼한산업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시위 사태가 일어나는데. 나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호한다.노동자는 법을 지키고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한다.충동적인 파업노동자들이 폭력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어떤 나라에서도 이를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경제원칙은 소외계층을 낳는데,보호방안이 있는가. 자유시장경제는 사회정의를 동반해야 한다.실업보험·의료보험 등 실업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정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도운기자
  • [특별기고] 질서 그리고 민주주의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하는 기준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예를 들면 경제력,군사력,환경관리,지적 수준,정보능력 등을 들 수 있다.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그것은 질서의식이다.다시 말하면 그 나라 국민이 어느정도 정해진 기존 질서를 지키느냐로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가 쓴 ‘제3의 파도’나 ‘권력이동’에서 거론되고 있는 새로운 천년 시대의 양태는 한 마디로 기존의 전통과 가치,질서와 형식이 깡그리 무너지는 일탈의 세계가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낡은 질서든 새로운 질서든 그 사회를 지탱하는 축은 질서라는 사실을 외면하면 안된다.단 질서란 그것이 정치질서든 사회질서든 정의에 모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헬라 사람들은 질서를 탁시스(taxis)라고 한다.그 뜻은 ‘정연한 정돈’ ‘고정된 계승’이라는 것이다.질서란 그 사회를 정돈시키는 기준이며 아름답고 바람직한 전통을 계승시켜 나가는 힘이라는 뜻이 된다.그렇게 볼 때 기존 틀을 깨는 혁명이나 쿠데타는 바람직한 정치형태가 못된다.얼마전 미국 시카고 교외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자동차 왕래가 그다지많지 않은 지방도로를 친구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뚫린 시골길을달리는 쾌감은 돈을 주고라도 살 만한 것이었다.달리던 차가 네거리에 멈춰섰다.30초 정도 서 있을 무렵 오른쪽에서 다른 차 한 대가 달려오다가 역시멈춰 섰다.그곳에는 신호등도 없었고 교통순경도 없었다.‘우선멈춤’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있을 뿐이었다.네거리에 도착한 차들은 일단 멈춰서고,먼저 온 차는 먼저 건너가고,나중에 온 차는 나중에 건너갔다.그런데 그같은 평범한 질서가 그토록 부러웠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앞지르고,끼어들고,소리지르고,삿대질하고,멱살잡고 싸우고,그 뿐인가 경적소리에 호루라기 소리까지 어우러지는 우리네 서울은 시끄럽고 울화통이 치민다. 작은 질서,그것은 민주주의의 뿌리다.솔직하게 말하면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아무 데나 가래침을 내뱉는 사람들,자기주머니는 텅텅 비워둔 채 길바닥에 휴지를 내버리는 사람들,자기가 씹던 껌을 그대로 아무 데나 내뱉는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저질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 의식 속에 자신을 방임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돈벌어 벼락부자가 되면 ‘졸부열전’을 엮어나가기 마련이고,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을 잘 만나 정치가가 되면 정치는 파행정국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출근시간에 쫓긴 아버지가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태우고 차를 몰고 있었다.빨간 신호등이 켜졌지만 아버지는 계속 차를 몰고 있었다. “아빠,빨간 불인데 달리면 어떡해” “인마,바쁠 땐 그럴 수 있는 거야” 학교 앞에 아들을 내려준 아버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그 아들이 빨간 불이 켜있는 건널목을 건너가고 있지 않은가.놀란 아버지는 소리쳤다. “인마,빨간 불이잖아” “아빠,바쁠 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이것은 평범한 듯한 이야기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이야기도,웃어 넘겨서도안 되는 이야기다.이것은 무서운 모방이며 소름끼치는 유전이다.우리 사회는 그동안 와전되고 오도된 질서에 의해 병들었으며 아직도 치유의 길을 찾지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병든 질서의 모판에서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아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혹시 자란다 해도 그것은 기형이고 불량성이기 때문에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성서가 말하는 천지창조의 특징은 한마디로 ‘질서’라고 말할 수 있다.빛과 해와 달과 별,그리고 하늘과 땅….그 순서를 보면 과학적이고 기하학적임을 알 수 있다.그리고 섭리와 다스림 역시 질서적임을 알 수 있다.작은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작은 질서 속에서 민족공동체의 정체성을 발견하고지키는 시민정신,그날에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손으로 그토록 열망했던 민주사회,민주국가,민주정치의 꿈을 실현했노라고 소리칠 수 있을 것이다./박종순 총신교회 담임목사
  • ‘가이드라인’ 통과 이후 고개드는 日 헌법개정론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일본 중의원 통과직후 일본 정가에서 헌법 개정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개헌론의 요지는 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가 교전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어서 주변국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집권 자민당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의원은 28일 요미우리(讀賣)와 회견에서 “헌법 개정을 자민당 총재선거의 공약으로 내걸겠다”고 밝혔다. 자민당내 4번째 파벌인 야마사키파를 이끌고 있는 그는 9월 총재선거에 입후보할 예정으로 안보문제에 보수적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국제적 안전보장에 일본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이는 헌법해석의 확대가 아닌 개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마사키 의원이 개헌론을 들고 나온 것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호헌(護憲)입장인 당내 2위파벌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의원 등 유력 총재후보들과의 ‘차별화 전략’때문. 지난해 북한 미사일 발사와 3월 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작선 침범사건 등을 계기로 일고 있는 ‘강한일본만들기’의 여론을 등에 업고있다. 요미우리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하는 쪽이 좋다’가 53%로사상 최고지지율을 보인 것도 이런 일본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2차대전 패전뒤인 46년 제정된 일본 헌법은 9조에서 ‘육해공군의 군사력을 갖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점령군 지시로 제정된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한다’는 내용을정강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민당 등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개헌론이제기돼왔다.최근 사민 공산당을 뺀 여야4당이 헌법논의를 맡을 헌법조사회의 국회내 설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국이 개입하는 국제분쟁에 가담할 수 있도록 한 가이드라인 법안 통과 이후 군사대국화에 발맞춘 개헌논의,유엔평화유지군(PKF)파병,유사법제 제정논의는 한동안 봇물처럼 터질 전망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제2공화국과 張勉](19)-요동치는 軍(上)

    1960년 8월27일 민의원에서 총리 취임후 첫 시정연설에 나선 장면(張勉)은긴급과제 6가지에 관한 정부 방침을 역설했다.마지막 항목에서 장총리는 “경제건설과의 균형상 과중한 국방비를 줄이고자 감군(減軍)을 하겠으며 이에 대비해 중장비를 도입하는 계획을 이미 수립했다”고 밝혔다.이어 “국군의 군기를 확립하고 일부에서 있었던 부패를 숙청하는 동시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군내 파벌 조성을 방지하기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다짐했다. 장총리가 제시한 군 관련 정책의 큰 줄기는 ‘감군’과 ‘개혁’이었다.또그가 지적한 군의 문제점들은 국민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들이었다.이승만(李承晩)정권 아래서 군은 정치에 심하게 오염된 상태였다[별도기사 참조].4월혁명이 일어난 뒤 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분야에 관한 것 못잖게 높았다. 4월혁명 공간에서 국민과 군의 만남은 충돌 없이 이루어졌다.4월19일 이승만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군이 서울 등 대도시에 진주했지만,경찰과는 달리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송요찬(宋堯讚)계엄사령관은 계엄군에게 “민가에 들어가지 말고 절대 음식을 얻어먹지 말 것,어떤 일이 있어도 총을 쏘지 말며 발포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계엄군인 15사단의 조재미(趙在美)사단장은 19일 고려대를 찾아가 강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절대 연행하지 않겠다”는약속을 해 해산시키기도 했다. 60년 4월 중립을 지킨 군의 엄정한 자세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다행스러운일이었다.가령 군이 유혈진압에 나섰다면 그 비극적 결말은 상상하기에도 두려울 정도였을 테고,계엄사태를 빙자해 직접 권력 장악에 나섰더라도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타격이 됐을 것이다. 4월혁명 과정에서 군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초연한 듯이 보였다.다만 장총리의 연설에서 지적받은 자체 문제점들을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내부에서일어났다.그것이 바로 정군(整軍)운동이다. 허정(許政)과도정부 시절인 5월2일 군수기지사령관인 박정희(朴正熙)소장은송요찬 육군참모총장에게 편지를 보낸다.“군의 최고 명령자로서 ‘3·15부정선거’에책임을 지고 용퇴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5월8일에는 김종필(金鍾泌)중령 등 육사 8기생인 중령 8명이 김중령 집에서모였다.이들은 정군운동을 벌이기로 뜻을 모으고 ▲3·15 부정선거를 방조한 군 장성들의 책임 추궁 ▲부정축재한 장성 처단 ▲무능·파렴치한 지휘관제거 ▲파벌 요인 제거와 군의 정치적 중립 보장 ▲군 처우개선 등을 목표로 정했다. 이들은 연판장을 돌려 군내 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했지만 즉시 발각돼 김종필 최준명(崔俊明) 김형욱(金炯旭) 옥창호(玉昌鎬) 석창희(石昌熙)등 5명이구속됐다.그러나 여론 악화를 우려한 송요찬은 이들을 바로 석방하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났다.송요찬의 후임으로는 역시 정군대상으로 꼽히는 최영희(崔榮喜)중장이 임명됐다. 장면내각이 구성되면서 국방장관은 현석호(玄錫虎),정무차관은 박병배(朴炳培)의원(무소속)이 각각 맡았다.장·차관 모두 군이나 국방에 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었다.다만 현석호에게 육사 2기생인 현석주(玄錫朱)라는 동생이 있어 그를 통해 군 내부사정을 알아보는 정도였다.장면은 국방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다.공보비서관인 고 송원영(宋元英,5선의원 역임)은 회고록에서 “장총리는 나이가 지긋한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앉힌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그러나 국방부의 모든 일은 한계가 있다고 본 것 같다.미군에서 작전권을 가진 이상 국방장관 자리는 한계가있다고 보았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는 최경록(崔慶祿)중장을 앉혔다.최중장은 이승만정권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은,몇 안되는 고위장성 가운데 하나였다.최영희는 합참의장으로 승진했다. 장면정부 출범후 영관급 장교들의 정군운동이 다시 떠올랐다.9월10일 김종필 김형욱 등 중령 11명이 현석호 국방장관을 방문해 전군을 상대로 정군을 단행할 것을 청원했다.현장관도 필요한 정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이틀뒤 국방장관이 현석호에서 민주당 구파인 권중돈(權仲敦)으로 바뀐 뒤 권장관은 정화조치의 첫 단계로 3·15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자를 조사하는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다. 9월20일 엉뚱한 곳에서 정군운동에 불똥이 튀었다.최영희 합참의장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국방부 군원국장인 윌리스턴 파머 대장이 한국을 떠나면서 정군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한국군 고위장성들이 최근의 사태에큰 불안과 초조를 느끼니 더 이상 조직을 흔들어 군사력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요지였다. 파머의 성명은 큰 반발을 불러왔다.최경록 육참총장이 즉각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9월24일에는 육사 7·9·10기 대표 16명이 최영희 합참의장을 찾아가 “파머를 불러들여 자리를 보존하려고 했다”면서 사임을 요구했다.‘하극상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태의 결과로 김종필·석정선(石正善) 두 중령이 61년 2월 예편당한다.배후로 지목된 박정희는 육군본부작전국장에서 2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된다. 이후 정군운동은 사라지지만 주동자들은 결국 쿠데타 음모로 돌아선다. 이용원기자ywyi@李承晩정권하의 軍실태 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동안 군은 외형상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대한민국 출범 당시 국군은 육군·해군을 합해 5만 병력 규모였다.‘6·25’발발직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1954년에는 65만명에 이른다.이후 다소 줄어 50년대 중반부터는 통칭 ‘60만 대군’으로 자리잡는다. 반면 이 시대는 군이 정치적인 사건에 자주 동원되고 그 영향으로 분파(分派)가 극심해지는 등 정치에 오염된 기간이기도 했다. 창군(創軍)이후 60년대 초까지 한국군 상층부를 이룬 장성과 고급장교들은출신에 따라 네 부류로 나뉜다.광복군 또는 중국 정규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 장교·하사관 ▲일본이 창설한 만주군 ▲공산통치를 피해 내려온 이북피난민 출신 들이다. 육군의 전신으로 46년 창설된 조선경비대에서는 광복군의 유동열(柳東悅)송호성(宋虎聲)장군이 초대,2대 사령관을 맡는다.하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김구(金九)를 지지하는 광복군·중국군 출신들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이승만은 초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참모총장(49년 폐지됨)에 일본군 출신 이응준(李應俊) 채병덕(蔡秉德)을 각각 임명한다.일군 출신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해 초기 국군이 기틀을 잡는 데 나름대로기여한다. 그러나 일군 출신들도 52년이면 ‘실권’에서 멀어진다.‘발췌 개헌’때 이승만이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에게 2개 전투사단을 부산으로 보내라고 명령하지만 거부당한 일이 계기가 됐다.일본 육사를 나온 이종찬은 “군의 정치적 개입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만만치 않은’일군 출신들을 배제한 이승만은 후임에 ‘젊고 경험이 부족한’만주군 출신들을 선택한다.대표적인 인물이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정일권(丁一權)과 백선엽(白善燁)이다.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공하려고 관동군 보조병력으로 창설한 만군은 그 위상이 독특했다.정규전 훈련보다는 독립군이나 마적들을 소탕하는 데 필요한 반란진압 전술을 주로 배웠다.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를 상대하는 바람에 그업무도 상당히 정치적이었다.그래서 흔히 “만군 출신의 많은 장교들은 군내(軍內) 분파주의와 음모의 원천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승만은 정일권과 백선엽을 교대로 중용하며 충성경쟁을 부추긴다.정일권이 51년 34살에 국군 최초로 중장에 오르지만 대장 계급장은 그보다 3살 아래인 백선엽이 53년 먼저 단다.육군참모총장도 정일권(50년)-백선엽(52년)-정일권(54년)-백선엽(57년)으로 왔다갔다한다.두 사람의 선두다툼은 군부 내에 함경도파(정일권)와 평안도파(백선엽)라는 두 파벌이 형성되는 원인이 된다. 군부내 파벌을 조장해 충성경쟁을 시킨 것 말고도 이승만은 여러 면에서 군을 정치에 악용한다.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때 부정투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헌병총사령부(사령관 元容德)와 특무대(대장 金昌龍)를 시켜 군 내부를 감시하는 한편 이들을 정적 제거에도 동원했다.‘서민호(徐珉濠)의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자금도 군비에서 조달했다.군은 당시 국가예산의 40%이상을 썼고 매년미국으로부터 4억달러 상당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원조받고 있었다.군에서 정치자금을 끌어쓰는 행태는 필연적으로 군 내부에 부패를 불러왔다.군수물자를 빼돌려 사복(私腹)을 채우고 위로는 상납하는 구조가 심해졌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군은 자유당·관료층에 버금가는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라 정군(整軍)운동을 불러왔다. 이용원기자ywyi@
  • [사설] 日의 방위관련법 주목된다

    새로운 미·일(美·日)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법안의 일본 중의원 통과는 여러 면에서 우려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27일 중의원을 통과한 주변사태법 및 자위대법 개정안과 미·일 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 개정안등 3개법안은 일본 주변에 유사(有事)사태가 발생했을때 일본이 미국을 후방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지금까지 일본영토의 전수(專守)방위에 국한했던 자위대의 군사활동을 주변사태로까지 합법적으로 확대한 것이다.군사활동의 범위를 비록 탄약·무기수송과 미군의 수색·구조등 후방지원으로 한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후방의 개념이 모호한 현대전의특성상 군사개입의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법이 동북아의 안보상황,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사태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군사지원이 가능한 유사사태의 범위에 무력분쟁이 발생했을 때만 아니라 무력분쟁이 임박하거나 내란·내전이 발생했을 경우,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을 경우,유엔안보리가 경제제재를 결의했을 경우 등을 폭넓게 포함하고 있는 점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을 돕기위한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뜻하고 있다. 미·일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에 일본의 역할분담을 겨냥한 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을 뒷받침하는 조치이다.미·일의안보협력 강화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중국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여 이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군대와 전쟁의 영구적 포기를 선언한 평화헌법에위배될 뿐만아니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한다는 이유로 일본 국내에서도반대의 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얼마전부터 시작되고 있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아울러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이 한반도안보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여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북한도 일본에게 군사력 강화의 빌미를 주는 도발행위는 중단해야한다.국내외의 반발로 1년이상 끌어왔던 가이드라인 관련법이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공작선침투를 계기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북한은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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