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재단 ‘국민의 정부’ 출범3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아태평화재단 주최로 2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지역협력에 관한 전망’주제 국제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반도의 화해기류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이날 주제발표자는 스탠리 로스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쟝윈링 중국 사회과학연구원 일본연구소장,알렉산드르 만수로프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연구위원,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 교수등 4명이다.
◆미국의 동북아 외교정책 전망 (스탠리 로스 전 미 국무부동아태담당 차관보) 한국과 미국에서 제기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이 도대체 무엇을 변화시켰나”이다.회의론자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줄지 않았고,남북정상회담의 합의사항도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는 과장됐다고 생각한다.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그야말로 ‘은둔하는 국가’에서 ‘활동적인 국가’로 변모했다.또한 남북정상회담으로 동북아 안보는 더욱 안정됐으며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도 크게 감소했다.
이는 수사적(修辭的)인 변화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투자와 경협,국제적 식량지원,에너지 제공,철도 연결 등과 같은,북한에 대한 평화유지 요인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들의 정책을 바꿀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중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의 중지에합의한다면 동북아 안보는 훨씬 더 공고해질 것이다.
군사적 신뢰구축조치 차원에서 정치적,외교적 긴장의 감소가 논의되는 것 역시 동북아 지역안보에 기여할 것이다.이는 군부 핫라인에서부터 시작해 비무장지대(DMZ)에서의 병력재배치와 군사훈련의 축소,그리고 궁극적으로 군사력의 감축으로 발전될 수 있다.
과거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그러나 그것은 현실로 일어났고,이제 한반도는 또다른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들이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중국의 역할 (장윈링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장)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교류 증가뿐 아니라 북한과 서방의 관계개선을 이끌었다.주변 강대국들의 한반도 정책도 빠르게재편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추세가 얼마만큼 지속되느냐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신뢰할만한 구조를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남북 당사자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체제가 필요하다.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촉매제가 될 것이다.남북한 화해는 북한이 지역 협력체제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중국은 지정학적·경제적 관심 때문에 한반도의 상황을 늘주시해 왔다.중국은 남북간 관계개선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절대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강력히 지지한다.남북한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건설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속적인 평화 유지에는 불확실한 요인이있다.북한 내부 및 대외 정책의 향방,남한의 정치적 환경과인내심,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한반도와 북한에 대한 정책,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 등이다. 분명한 것은 남북한 화해무드와 협력은 되돌릴 수 없고 한반도 평화정착은 이미 진행중이라는 점이다.
다만 문제를 푸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감을 갖고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남북한 최종목표인 통일을 지지한다.한반도에서의통일국가 출현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남북한 통일과 지역 협력체제가 갖춰지면 동북아시아의 질서는 더욱안정되고 관계개선도 쉬워질 것이다.
◆탈냉전후 한반도에서의 신뢰구축:러시아의 시각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연구위원) 지난 50년간 적대세력으로 규정돼 왔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냉전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최근의 남북관계 변화와북·미,북·일관계의 개선이 계속돼야 한다.동시에 한반도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전체제를 해체하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의 확립이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분명한 것은 남북한과 미국,중국이 참여해온 4자회담은 지금까지여섯차례의 회의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치적 의지가 그만큼적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회담의 참여 범위가 더 넓고 포괄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예를 들어 ‘2(남북한)+4(미·일·중·러)’ 방식과 같은 상호 수용 가능한 공식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안보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그리고 나서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서로의 체제를 존중해야 한다.군사 문제가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지도록 다양한 신뢰구축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재래무기 감축 의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남북한 미사일 협상은 서로의 군사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북한은 장래 통일 한국으로 가는 사전조치로 한반도 전역에 대한 안보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이는 장래의 남북한국방장관회담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평화조약 체결에는 경제적 문제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북한의 경제개방을 조건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최근 발언한 ‘신사고’를 감안할 때 남북간 경제교류는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한반도 외교의 과제와 전망 (신도 에이이치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세가지 제약을 받아 왔다.첫째 남북한 통일은 일본의 번영과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일본의정책 입안자들은 아직도 한반도를 ‘일본의 복부를 겨냥하고 있는 칼’로 간주하고 있다.
둘째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의 지적인 사고가 ‘탈아시아주의’로 일관했다는 점이다.일본의 번영과 안보는 열등한 아시아에 머물기보다 어떻게 부유하고 월등한 유럽으로 탈출하느냐에 집착했다는 뜻이다.
셋째는 일본의 전통적인 우방들과의 관계다.19세기에는 영국과,1945년 이후에는 미국과 우방을 맺으면서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그때마다 새롭게 강조됐다.
그러나 이같은 제약들은 사라져야 한다.북한은 최근 급변하고 있다.북한을 예측 불가능한 ‘게릴라 국가’로 보는 것은 냉전시대의 함정이다.김일성(金日成) 사후의 북한을 군사독재체제로 보는 것은 정권이양 과정에서 개방을 추구하는 북한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다.
북한을 감안한 유일한 통일안은 독일이나 홍콩과 달리 ‘1국·2개 정부·2개 국회’ 체제다.이같은 체제를 가정하고일본은 빠른 시일 내에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제재조치도 풀고 한국과 협력해 북한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해야 한다.
일본이 남북한과 미국,중국,러시아 등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의 포괄적 안보체제 구축을 제안하면 한반도 통일과 일본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이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외교정책이다.한반도 정책을 구속해 온 세가지 제약을 없애는 탈출구이자,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지 않고 21세기 아시아에서공존하는 해답이기도 하다.
정리 백문일 강충식기자 m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