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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복무기간 호봉 반영」 무산/경제부처 반대로 병역법개정안서 삭제

    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했을 경우 복무기간을 호봉산정에 반영키로 했던 정부방침이 경제부처의 반대로 무산됐다. 상공자원부등 경제관련부처와 국방부는 15일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조건부 의결된 병역법개정안에 대해 협의한 끝에 개정안 74조3항을 수정,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할 경우 반드시 복무기간을 호봉산정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삭제하기로 했다. 당초 국방부가 마련한 개정안에는 「국가기관의 장 또는 기업체의 고용주는 직원의 임용,채용,승진 및 급여에 있어서 군복무이행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돼있었으나 부처간 이견으로 「급여」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 병역법개정안 싸고 난상토론(국무회의:11)

    ◎「군복무 호봉반영」 노동·국방부 등 대립/“엑스포 파견 공무원들 부처복귀 협조” 1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병역법개정안을 놓고 국무위원들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개정안 제74조를 둘러싸고 제안부처인 국방부와 경제관련부처에서 「통과」와 「유보」를 주장하며 1시간남짓 입씨름을 벌인 것이다.군복무를 위해 직장을 휴직할 경우 복무기간을 호봉산정에 반영토록 하자는 것이 이 조항의 골자. 결국 병역법개정안은 이 조항의 채택을 유보하는 「조건부 의결」이라는 방법으로 의결됐다.대통령에게 재가를 요청하기 전까지 관계부처가 협의해 이 조항의 채택여부를 결정하면 이를 국무회의의결로 인정키로 한 것이다.물론 각의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각의에서는 병역법개정안을 포함해 7건의 법률개정안이 심의,의결됐다.이로써 정부가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을 목표로 했던 1백57건의 법률안이 모두 처리됐다.각의는 지난주 국회의 졸속심의를 막기 위해 불요불급한 법률안은 더이상 제출치 않기로 결정한 바 있어 1∼2건의 긴급한 법률안을 제외하고는 추가로 법률개정안이 상정되지는 않을 전망. ○…병역법개정안 74조를 놓고 상공자원부와 노동부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내세워 유보를 주장.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은 『대기업중에 군복무기간을 호봉에 반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으나 이를 중소기업에까지 확대실시토록 하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며 실시를 유보할 것을 촉구. 이경식부총리와 이인제노동부장관도 『군미필자를 채용하지 않으려는 것이 지금의 기업풍토인데 이 조항대로 병역법을 시행하면 군미필자의 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 이에대해 권령해국방부장관은 『병역의무수행에 따른 불이익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는 헌법정신에 따라 이 조항은 채택돼야 한다』고 전제,『여러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실시에 따른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했다』며 채택을 주장. 이에따라 황인성국무총리는 직접 교통정리에 나서 대통령에 재가를 요청하기 전까지 경제부처와 국방부가 다시 협의해 제74조의 채택여부를 결정토록 지시. ○…대전엑스포대회에파견된 공무원 3백81명의 복직과 관련해 최창윤총무처장관은 『이번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해당공무원들의 노고를 감안해서라도 반드시 소속부처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관계부처에 협조를 당부.황총리는 지난 88서울올림픽이 폐막과 동시에 국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전례를 들어 『이번 엑스포대회는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 과학입국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라』며 특히 「잊혀지지 않는 엑스포」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강조. 황총리는 이어 정기국회와 관련,『과거에 보면 정부 각부처가 부처이기주의로 인해 관련법안을 자기 부처에 유리하게 수정하도록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일이 있었다』면서 『특히 약사법개정안을 다음회기로 넘기자는 주장이 있으나 정부는 원안대로 통과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 ▲국제협력요원에 관한 법률제정안 ▲병역법개정안 ▲군사법원법개정안 ▲군형법개정안 ▲향토예비군설치법개정안 ▲군인사법개정안 ▲토지관리및 지역균형개발특별회계법개정안
  • 해공군복무 2년6개월로 단축/국무회의 의결

    정부는 11일 황인성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방위소집제도 폐지와 상근예비군제 신설등을 골자로 한 병역법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따라 내년 12월31일까지는 종전대로 방위소집이 실시되나 95년1월1일부터 방위소집대상자들은 1년동안 현역병으로 복무한 뒤 신설될 상근예비군에 편성돼 1년6개월간 향토방위와 관련된 분야에서 근무하게 된다.2대이상 독자등에 적용해오고 있는 복무기간단축제도도 아울러 폐지된다. 개정안은 이밖에 해군과 공군 현역병의 복무기간도 3년에서 2년6개월로 단축했다. 한편 각의는 군인사법을 개정,하사관중 일등상사는 원사로,이등상사는 상사로 계급명칭을 변경했다.또 계급별 정년을 연장해 ▲대령은 53세에서 56세로,▲중령은 49세에서 53세로,▲준사관및 원사는 53세에서 55세로,▲상사는 50세에서 53세로 각각 상향조정했다.
  • 새로운 건설시장(평화 싹트는 중동:10·끝)

    ◎중동 종단·횡단도로 등 청사진 화려/“신속성 긴요” 한국업체 진출 유망/레바논 송전선공사 이미 현대 참여 이스라엘을 여행하다 보면 카키색 군복차림에 거꾸로 총을 맨 이스라엘 병사들이 히치 하이킹(공짜로 차타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유난히 여자병사가 많고 더러는 상당히 나이들어 보이는 병사들도 눈에 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극적인 평화협정은 팔인들보다도 오히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골란고원에서 지뢰탐지·매설반에 소집돼 복무중인 예비군 로렌스 리프킨씨(39·건축업)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면서 『이제 생업에 지장을 초래하던 예비군복무가 대폭 줄어들 것이고 아랍 보이콧정책이 완화되면 이스라엘의 침체된 경기도 살아날 것』이라며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예비군 50% 감축 그는 『이스라엘은 남녀 똑같이 18세부터 3년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하게 돼있으며 제대후에는 50세까지 연 30일씩 정기소집된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각종 비상소집 등으로 실제로는 적게는 45일부터,많게는 90일까지 복무해 왔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듯 지난 10월초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이츠하크 라빈총리는 한 야당의원의 질의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오는 96년까지 예비군을 91년 기준으로 50%까지 감축,점차 정규군으로 대체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같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기대를 안고 있는 이 평화협정은 세기말 이 지구상에 평화 도미노의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협정에 제시된 7개의 시한 가운데 이미 조인(9월13일)과 발효(10월13일)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같은 기대는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미 원조 이달 도착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수감자 6천명에 대한 석방에 합의하고 1차적으로 지난달 25일 수감중인 팔레스타인인 6백17명을 석방했다.또 이스라엘 치안당국은 지난 3월부터 시행중인 팔인들에 대한 예루살렘 출입제한 완화방침을 밝혔다. 국제적으로도 이 협정의 성사를 위해 많은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협정이행의 최대 걸림돌인 시리아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이 이스라엘과 시리아간 대화 중재에 나서고 있다.또 11월부터는 세계 각국이 약속한 경제원조 가운데 우선 미국으로부터 약속된 일부가 도착할 예정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12월13일(5년자치 개시) ▲94년 4월13일(이스라엘군 가자지구·예리코 완전철수) ▲94년 7월13일(팔 총선완료,자치정부수립 위한 평의회구성) ▲95년 12월13일(점령지 지위를 규정할 항구평화협상 개시) ▲98년 12월13일(팔 자치기간 만료,점령지 지위확정)등 5개의 시한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게 한다.더욱이 그 시한은 최대한으로 잡은 것이기 때문에 잘만 된다면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골란고원을 관통 벌써 이곳에서는 중동 종단평화고속도로등 각종 대형건설공사 계획등이 발표되고 있어 평화의 도래와 함께 이 지역이 과거 중계무역지로서의 세계적 명성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은듯 했다.베냐민 벤 엘리저 이스라엘주택장관이 밝힌 이 도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지중해안을 따라 터키의 이스켄데룬을 잇는 것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터키 등을 지나게 돼있다.또 골란고원을 관통,이스라엘의 하이파항과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연결하는 횡단도로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동의 평화에 대비하는 우리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랐다.아직 우리 대사관이나 대한무역진흥공사 등 정부기관이 없는데도 이스라엘이나 레바논 등지에서 이미 한국제품들은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동예루살렘의 팔인 호텔 룸에서 금성TV를 볼 수 있었으며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를 운행하는 관광버스는 대우버스였다.또 현대건설은 레바논정부의 「호라이즌 2000」계획의 첫 사업인 8천만달러짜리 송전선공사를 따내 공사에 들어가고 있었다. ○곳곳에 한국 상품 오랜 전쟁의 질곡에서 평화로 깨어나는 중동.가자시장 자카리아 미키박사의 얘기는 중동에 다시 한번 한국의 위력을 떨칠 그날을 기대하게 했다.『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성」 입니다. 웨스트뱅크의 비행장도 가자지구의 항만건설도 빨리 해야합니다.그렇기 때문에 기술도 좋고공사도 빨리 해낼 수 있는 업체라면 우리는 대환영 입니다』
  • 법원공무원 수당 규칙/군복무경력 인정 안해/방희선판사 헌소

    광주지법 방희선 판사는 29일 『군복무경력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의 법관및 법원공무원 수당규칙은 병역의무 이행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와 평등권을 인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된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 장기 해외훈련(알아둡시다)

    ◎2·3급/연 30명 추천 선발… 1년간 정책 연구지원/4∼7급/직무훈련·학위이수과정 대상 토플시험 공무원 국비장기해외훈련제도는 국제화·전문화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행정능력 배양을 위하여 실시하고 있는 제도로 훈련인원은 연간 약 2백명이다. 장기훈련은 2·3급 경력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장급 과정과 4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과정으로 구분된다.일반과정은 훈련지역에 따라 다시 영어권 훈련·비영어권 훈련·특수지역 훈련등으로 구분된다. 국장급과정은 연간 30명정도 선발하며 훈련대상자는 소속 부처의 추천에 의하여 총무처장관이 선발한다.자격요건은 선발연도말 현재 53세 이하인 2·3급 공무원으로 소정의 어학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훈련은 외국의 유명대학이나 연구기관등에서 객원연구원으로 관련정책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훈련기간은 1년이다.훈련공무원에게는 훈련에 소요되는 직접경비와 월 2천7백60불(미국기준)의 체재비를 지급한다. 4급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기구 직무훈련과정은 연간 약 30명정도를선발하며 국장급 훈련과 마찬가지로 소속 부처의 추천에 의하여 총무처장관이 선발한다.자격요건은 선발연도말 현재 50세 이하인 4급 경력직 공무원으로 국제기구등에서의 직무훈련이 가능할 정도의 어학실력을 구비하고 동일직급에서 1년이상 국외 훈련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훈련은 국제기구·외국정부기관등에서 직무를 수행하거나 비교정책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학위과정과 관련된 훈련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훈련기간은 2년이내이며 훈련공무원에게는 훈련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와 월 2천7백60불(미국기준)의 체재비를 지급한다. 4∼7급 경력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과정은 연간 약 1백40명을 선발한다.훈련대상자 선발은 미국·영국등 영어권 지역은 부처별로 기배정된 훈련인원 범위내에서 부처별로 토플시험을 통하여 경쟁선발한다. 일본·독일·프랑스등 비영어권 지역과 중국·러시아·동남아·중남미등 특수지역은 부처 구별없이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에서 실시하는 훈련국 언어시험을 통하여 경쟁선발한다. 자격요건은 선발연도말 현재 만45세 이하인 4∼7급 경력직 공무원으로 군복무기간을 제외한 실근무기간이 선발연도말 현재 만3년이상이어야 한다.또 어학시험성적이 영어권은 토플 5백30점,비영어권은 서울대 어학시험성적 60점이상이어야 한다. 훈련은 외국의 유명대학원에서 학위과정을 이수하거나 연구활동을 하는 방식의로 진행되며 훈련기간은 영어권은 2년이내·일본·독일·프랑스등 비영어권은 2년6월이내 중국·러시아·중남미등 특수지역은 3년이내까지 가능하다. 훈련공무원에게는 훈련에 소요되는 직접 경비와 월 1천3백80불(미국기준)의 체재비를 지급한다.
  • 중 군복무의무화 자원등록제 대체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20일 18∼21세의 청년들에게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위한 등록절차를 밟도록 지시했다고 중국 국영 라디오 방송이 보도했다. 라디오 방송은 이같은 방식은 전통적인 자원 등록제를 수정한 것이라면서 지방병무청에서 등록절차를 필하지 않은 북경의 청년들은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빛나는 민중의 지팡이 이제

    ◎부산해경 안창수경사/청정바다 파수꾼으로 26년/67년부터 해양오염감시로 일관/전국 연해안 꿰뚫는 “최고의 해경” 『지금 우리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속병」을 앓고 있습니다』 21일 제48회 경찰의 날을 맞아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부산해양경찰서 오염관리2호선 기관장 안창수경사(57)는 수상 소감을 바다 걱정으로 대신했다.웃음 사이로 보이는 고르지 못한 치아가 그를 경찰이라기보다는 세상의 영화와 타락을 모르는 순박한 시골농부로 느끼게 한다. 오염관리선을 타고 나가 바다의 오염을 감시하고 병든 바다를 깨끗히 치료하는 일이 그의 업무다.그는 군복무를 마친뒤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지난 67년12월 경찰에 첫발을 내디뎠다.30세의 건장한 청년에게 주어진 첫임무는 경비정을 타는 일이었다. 요즘도 매일 바다오염을 감시하기 위해 출항한다.한번 경비정을 타고 나가면 최소한 3박4일에서 길게는 두달씩 바다를 누빈다. 바다를 친구로 삼은지 어언 25년11개월이 지났다.속초·독도·인천·군산·목포·제주 등 우리나라해양경찰서 가운데 근무해보지 않은 곳이 없다.그래서 주위에서는 그를 「연안해의 산 증인」으로 부른다. 내무부장관 표창 등 11차례의 수상 경력이 바다에 바친 그의 공적을 입증해준다. 『70년 12월 부산에서 제주간을 운항하는 남영호가 침몰돼 승객·승무원 3백23명이 목숨을 잃고 겨우 12명만이 구조됐는데 이때 생존자 구출 및 사체인양작업을 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최근에는 추석 전날인 지난달 29일 선박충돌로 기름이 유출된 광양앞바다에 나가 닷새동안 기름제거작업을 하는 바람에 추석을 거꾸로 쇤 일이 떠오른다고. 『겉으로 드러난 육지의 오염은 걱정하면서 바다오염에 대해서는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관심한 세태가 안타깝습니다』안경사는 8순의 노모를 모시는 지극한 효자로도 소문이 나 있다. ◎서울 원효2가 파출소/권위벗고 주민의 휴식처로/휴게실 꾸미고 운전면허등 교육/“함께하는 경찰로”… 신뢰도 높여 사람들은 보통 경찰서나 파출소에 가는 것을 꺼려한다.무엇인가 겁나고 귀찮은 일이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오랜 선입견때문이다. 그러나 서울 용산경찰서 원효로2가 파출소(소장 조영식경사·사진)에는 매일 주민들로 북적거리고 있다.문제가 생겨 불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이 파출소는 지난 7월부터 5평 남짓한 주차장을 「주민휴게실」로 꾸며 무료로 운전면허강좌·한문 및 태권도교실·공부방을 운영,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휴게실에는 기다리거나 쉬는 주민들의 무료함을 덜어주기위해 신문과 월간지 등을 갖춰 놓았을 뿐만아니라 음악까지 틀어준다. 매일 하오 3시부터 4시30분까지 열리는 운전면허강좌는 20여명의 주부들이 모여 운전이론도 배우고 이웃들과 교분을 나누고 있다.지금까지 이 강좌를 받은 1백20명의 주부 가운데 47명이 운전면허를 땄다. 최근에는 시흥과 구로등 다른 지역 주민들까지 소문을 듣고 강좌를 들으러 온다는게 강의를 맡고 있는 김덕환경장의 말이다. 조소장을 비롯,비번인 직원들이 강사로 봉사하고 있는 한문교실과 태권도 교실에는 언제나 동네꼬마들로 붐빈다.경비를 줄이기 위해 공부방의 책·걸상등은 관내 독서실이나 사무실에서 내다버린 것을 고쳐 사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이곳에 부임한 조소장은 『사실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경찰이 되기 위해 이같은 일을 시작했을때 주민들로부터 도둑을 잡는게 경찰이지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등의 비아냥거림도 들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주민들이 사건·사고등을 즉시 신고하는등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파출소에서는 또 귀중품보관함설치·구원호루라기보급·구급약제공 등 무려 36가지의 방범예방활동을 펴 절도·강도사건이 크게 줄었다.
  • 해고근로자 수배해제 추진/노동부/대상 56명… 복직도 지원키로

    노동부는 18일 수배근로자및 해고근로자 수배해제와 복직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인제노동부장관은 이날 전국구속수배해고노동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위원장 조준호)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법무부·검찰등 관계부처에 수배중인 해고근로자 56명의 수배해제문제를 적극 검토해주도록 요청했다』고 밝했다. 이장관은 『현재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자는 대부분 병역특례해고자로서 현행법상 사업체의 복직결정만으로는 병역징집면제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군복무를 마치고 해당업체에 복직을 원할 경우 이들의 복직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장관은 이와 함께 『현재 민주당사에서 단식농성중인 해고자 11명이 하루빨리 단식을 풀고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당부했다.
  • 3과합격 김태석씨(사법시험 영광의 얼굴들)

    ◎불공 드리며 뒷바라지 부모께 감사 『불공을 드리며 고향에서 뒷바라지 해준 부모님께 합격의 영광을 돌립니다』 외무,행정고시에 이어 3과합격의 영광을 안은 김태석씨(28·서울대 경제학과 졸))는 담담한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김씨는 『매일 아침 4시에 기상,학교 순환도로 5㎞ 가량을 달린 뒤 7시부터 밤10시까지 하루 10여 시간씩 도서관에서 공부한 것이 합격의 비결이 된것 같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연수원교육을 마친 뒤 미국유학을 거쳐 국제변호사로 활약하고싶다』고 장래희망을 밝혔다. 김씨는 90년 3월 외무고시에 합격,연수를 받다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해11월 행정고시에 합격했었다.대구에서 제과업을 하는 김무식씨(59)부부의 3남2녀중 셋째.취미는 등산.
  • 유서대필혐의 부인/강기훈씨 국감 증언

    분신자살한 전전민련사회부장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3년형을 받고 대전교도소에 수감중인 강기훈씨는 11일 『진실규명을 위한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날 하오 서울지검에 대한 법사위 감사에서 유서대필사건 관련 증인으로 출석,『대법원판결로 유죄가 확정됐으나 당시 수사및 재판과정에서 관련 증거에 대한 심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추가로 밝혀진 증거도 많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강씨는 추가 증거로 ▲지난 91년 5월8일 김기설씨 사망 당일 검찰이 「강기훈에 대한 자살방조 피의사건」이란 문건을 작성한 의혹 ▲항소심때 군법무관이 제출한 「김기설의 군복무시절 작성한 주소등이 유서필적과 유사하다」는 자료를 심리하지 않은 이유 ▲유죄판결에 결정적 증언을 한 홍성은양이 「검찰측의 회유와 협박에 의한 허위진술」이라고 번복한 점 등을 들었다.
  • 재수생 대학입학/입영연기 기간 연장

    ◎병무청/21∼22세 1학년수료때까지 혜택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재수생들중 일부 입영연기 혜택을 받는 연령이 현재 만21세에서 22세로 한살이 늘어나고 징집시기도 1학기수료 직후에서 2학기수료 직후로 조정된다. 병무청은 8일 국회 국방위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 현재 만20세가 넘어 대학에 진학하는 재수생의 경우 21세가 되는 학년의 1학기 수료때까지 입영을 연기해 주던 것을 만22세까지 대학에 들어갈 경우 1학년 수료 때까지로 연장,입영을 지금보다 최대 1년6개월을 연기해 주기로 했다. 병무청의 입영시기 조정방침은 만20세가 넘어 대학에 진학한 재수생들이 1학기만을 마치고 입영할 경우 복무기간이 26개월이어서 제대후 복학시기를 제때에 마칠 수 없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병무청은 빠르면 내년부터 병무청장 훈령으로 이를 시행할 방침이다. 병무청은 이와함께 예비군의 경우 현재 거주지및 근무지에서 20㎞ 이상 떨어진 부대에 입영할 때 집단입영을 원칙으로 했으나 60㎞이내일 경우에도 개별입영을 허용하는 한편 입영시간을 현재 상오 8시에서 상오 10시로 2시간을 늦춰주기로 했다. 또 계속 집단입영을 해야 하는 60㎞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입영할 경우 1인당 1천7백원씩의 급식비를 지급키로 했다. 김광석병무청장은 이날 국방위 답변에서 『시국관련 수형자 가운데 복학한 자는 수형기간을 총합산,2년 이상된 자에 대해서는 병역소집을 면제하는 방안을 긍정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청장은 또 『오는 95년부터 실시되는 상근예비역의 지원자가 많을 경우 입영순위를 읍·면·동 지역별로,학력이 낮은 순으로,체격등위가 낮은 순으로 정해 비리의 소지를 제도적으로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김청장은 이어 『독자보충역제도는 내년도 수감대상인 75년생부터 폐지하는 한편 전공상자 가족중 1명은 공익근무요원으로 12개월 복무토록 하고 생계곤란자는 예비군복무까지도 면제되는 제2국민역에 편입토록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 로켓포 무장 시위대 방송국 난입/이기동특파원 「오스탄키노」현장취재

    ◎공격 30분만에 경찰저지선 무너져/양측,장갑차등 동원… 심야까지 공방전 일요일인 3일 정오를 지나며 모스크바 시내는 한산한 가운데 꼭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무거운 긴장이 내리 깔리기 시작했다.루츠코이가 구소련 전역으로 방영되는 오스탄키노 텔레비전 방송국과 시청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는 뉴스를 최초로 접한 것은 하오 3시(모스크바시간).곧이어 수많은 의회지지 군중들이 의사당앞 경찰저지선을 뚫고 들어갔다는 소식이 있었다.그곳은 정부측 최정예 경찰병력이 배치돼 있는 곳이다.그게 뚫렸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다.자동차를 끌고 곧장 오스탄키노 방송국으로 달렸다.방송국은 모스크바 중심부에서 북으로 20㎞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하오 4시30분 남산타워의 몇배 높이가 되는 텔레비전 송신탑 밑의 방송국 건물에 당도했을 때는 도심에서 떨어진 탓인지 아직 별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다만 방송국 경비병력은 조금전 2배로 증강배치됐다고 했다. 하오 5시.시청이 공격당하는 장면이 CNN과 유러비전 뉴스속보를 통해 전해졌다.하오 6시직전.의회 지지자들을 가득 태운 버스,군용차량들 1진이 모습을 드러냈다.모두 탈취한 차량들이었다.공산당을 상징하는 적색깃발과 민족주의 단체의 흑·황·백색깃발을 흔들고 있었다.나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20대의 젊은이들도 다수 타고 있었다.젊은이들은 모두 의회가 지급한 군복을 입었고 탈취한 것이 분명한 경찰방패들을 들고 있었다.총기를 든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6시30분이 되자 이렇게 도착한 수가 어느덧 1천여명에 이르렀다.이들은 방송국쪽을 향해 『쥐새끼들아,나와라』,『옐친은 너희들도 버렸다』,『우리 마카쇼프 장군의 명령에 따르라』고 외쳤다.이들은 제1공격목표로 제1채널인 오스탄키노 방송본부가 든 건물을 택했다. 7시쯤에 경찰저지선이 무너졌다.별 저항이 없었다.그들은 돌과 곡괭이,병 등을 휘두르며 손쉽게 저지선을 넘어섰다.저지선을 넘자 수대의 차량이 방송국 1층에 위치한 유리벽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오스탄키노는 이렇게 쉽게 시위대의 수중에 떨어졌고 곧이어 방송이 중단됐다.그때까지만해도 총성은 한두방만 들렸다.7시30분.이들은 맞은 편에 위치한 제2채널 베스티 TV를 향해 몰려 들어갔다.경찰저지선은 역시 쉽게 무너졌다.날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건물 2층에 위치한 베스티 TV 뉴스본부.8시 저녁 메인뉴스를 준비하던 스태프들은 총성이 요란해지자 일단 5층으로 피신했다.중앙 출입문과 뒷문 모두 시위대에 봉쇄돼 빌딩밖으로 탈출하기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5층 복도로 올라서는 순간 요란한 수류탄 폭발음이 울렸고 일순간에 화약냄새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필름제작진 가운데 1명인 크라실니코프가 총탄에 맞아 즉사했다는 비보가 2층에서 전해졌다.창문으로 밖을 살피다가 유탄에 맞은 것이었다.이들 제작진은 9시쯤 건물을 포위한 시위대들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그곳을 탈출했다.베스티도 방송이 중단됐다. 베스티 방송 제작진들은 이후 모스크바 중심부의 압스카야 폴레에 있는 임시방송본부로 옮겨 방송을 재개했다. 9시가 지나서도 시위대는 차량 등 은폐물 뒤에 숨어 경찰과 총격전을 계속했다.방송국 1층 로비에 남은 경찰들은 의자뒤에 숨어 자동소총으로 응사하고 있었다.시위대 다수는 전투경험이 상당한 것이 분명했다. 9시20분쯤.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한 경찰관이 『폭도들이 탈취한 장갑차를 이용해 방송국 중앙계단에 로켓포를 쐈다』고 외쳤다.안쪽에 있던 경찰관 6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시간이 지나며 총격소리,수류탄 터지는 소리,로켓포 소리는 점점 더 격해졌다.10시쯤 총소리를 뒤로 하고 철수했다. ▷러시아사태 일지◁ 다음은 지난 9월21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의회해산령발동 이후 3일 반옐친 시위대들의 모스크바시청 점령 및 옐친대통령의 비상사태선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사태와 관련한 주요 일지다. ▲9월21일=옐친대통령,의회 해산 및 12월 조기총선 발표. 의회강경 보수파,옐친 탄핵 및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에 임명. 반옐친 시위와 함께 의사당 주변에 바리케이드 설치. ▲9월22일=군·경,친옐친 진영에 가담.의회측선 전국적 파업을 촉구했으나 지지확보에는 실패. ▲9월23일=옐친,의회선거 6개월후인 내년 7월 대통령선거실시 발표. ▲9월24일=옐친,의회수비대에 무장해제 명령. ▲9월25일=옐친,정국위기 타계위한 무력불사용 천명. ▲9월26일=시민 1만명,모스크바 붉은광장서 옐친 공개지지후 도심 가두행진 돌입. ▲9월27일=옐친,의회 및 대통령 동시선거를 요구한 보수파 제안 거부. ▲9월28일=보수강경파 지지 시위대,폭력진압 경찰과 충돌해 경찰관 1명 사망. ▲9월29일=옐친,보수파의 타협조짐에도 불구 10월4일까지 의사당건물을 떠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의회에 경고. ▲9월30일=옐친진영과 의회대표,러시아정교회가 중재한 협상에 합의. ▲10월1일=협상은 의회가 군대해산을 조건으로 한 의사당 포위망 해제안을 거부함에 따라 아무런 결과 없이 무산. ▲10월2일=1천여명의 친의회 시위대,의사당건물서 8백m 떨어진 스몰렌스크 광장서 집회후 보안군과 충돌해 경찰관 24명 및 시위대 5명 부상. ▲10월3일=반옐친 시위대,스몰렌스크 광장으로 통하는 모스크바 도심의 레닌가집결후 모스크바시청 장악.옐친대통령 비상사태선포.
  • 김대통령 국군의 날 연설문 요지

    올해의 국군의 날은 각별히 뜻이 깊습니다.새로운 문민정부가 출범하고,육해공 3군본부의 계룡대 시대가 열린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군은 문민시대를 맞아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지난 시대에 우리 군의 명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기도 있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후 저는 국군의 참된 명예를 되찾아주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군의 개혁을 단행하여 문은 문답게,무는 무답게,문과 무가 각기 제자리를 찾도록 했습니다. 역할만 다를뿐 문과 무는 국민에게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행복과 번영을 실어다주는 두개의 수레바퀴입니다.문무가 서로 균형을 잘 이루어야만 나라가 평안하고 민족이 발전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군 스스로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과감한 자기 혁신의 노력을 해왔습니다.때로는 참기어려운 아픔을 스스로 견뎌냈습니다.이제 우리 군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민주군대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우리 국민은 이제 국군에 대해 깊은 신뢰와 사랑을 갖게 되었습니다.올해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새시대 새로운 국군으로 도약하는첫 해가 되는 것입니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올해를 「신한국군의 원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군을 깊이 신뢰하고 있으며 우리 군의 명예와 위신을 높이는데 앞장설 것입니다.우리 장병들이 군복을 긍지로 알고,계급을 명예롭게 여기며,군복무가 국민의 자랑스러운 의무가 되는 「신한국군」의 풍토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3군이 서로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한마음으로 단결해 가는 모습은 국군에 대한 신뢰를 더해주고 있습니다.이제 각 군은 균형을 이루면서 함께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군현대화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우리 군을 최정예군으로 육성해 나갈 것입니다.조국의 평화통일을 달성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강건한 국군을 만들 것입니다.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한 문민정부의 국가안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합니다.
  • 자성과 각오 그리고 신뢰(사설)

    일반적으로 시민사회에서의 군의 명예는 「직업」으로서의 역할과 시민으로서의 자세,즉 민주적가치를 얼마나 존중하는가에 좌우된다.이는 60년대 이후 80년대말까지의 우리 정치상황 다시말해 「권력과 군부」,「군부와 권력」의 상호관계에 따라 군의 역할과 명예가 달라졌다는 사실로도 입증될수있다. 어느사회에서건 군은 국민의식과 국가사회적위상의 표상이다.그래서 군은 충직 강건해야한다.그러나 시민과 사회는 그들 군의 이미지가 무조건 강하고 용맹스럽기 보다는 지혜롭고 합리적이기를 원한다.전쟁에 임해서는 무조건 저돌적인 공격의 군대여야하지만 그 뒤안에서는 사태를 분석하고 사이를 판단하며 때로는 물러서서 차후를 도모하는 전략적 지혜를 갖춘 군을 국민은 기대한다.그런점에서 우리 군은 이제 누가뭐래도 거듭 태어나고있다.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괄목할만큼 지혜롭게 성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국민의 군대」로서의 재탄생을 다짐한 군부의 결의가 그것을 보여준다.무엇보다 『과거처럼 정치에 관여하는것은 물론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것은 결코 용납하지않을것』이라는 각오와 결의에 국민들은 신뢰를 갖게된다.여기에는 과거에 대한 회오와 자성위에서 용맹강건과 함께 지혜와 여유도 아우르겠다는 불퇴전의 자세가 함축돼있다. 지나간 한 시대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한국 정치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으로 언제나 군부가 첫째였다.그러나 군내부에서는 달랐다.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이 친척·친구등을 만나러 「사회」(시내)에 나갈때 군복입기를 꺼려할만큼 따가운 눈총을 느꼈다고 실토했던것이 그 시기였다.시민사회로부터 그들은 무언중에 따돌림을 당했다. 90년대들어 군부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국회(의원),재벌,시민단체등의 다음으로 밀려났다.군 스스로 내부지향적 임무수행에 눈을 돌리고 과거를 반성하게됐다.오늘 우리 군의 결의는 그 자성과 회오의 값진 소산이다. 군 내부로 눈을 돌릴때 오늘날 국내외적 정치안보정세의 변화보다도 실제로 직업군인들을 더 심각하게 만드는것은 진급,보직,처우 그리고 사회적 명예문제라 할수있다.일부 정치군인들을 비롯하여 그 「하나회」와 「알자회」등등이 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얼마나 훼손시켰는지는 이제 그들보다 국민이 더 잘 알게 됐다. 군인이란 직업은 속세의 복잡한 관계를 떠난 탈속성,생사를 건 위험성,규율과 명령이라는 부자유성을 감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더 존중된다.따라서 군이 세속적 이익추구에 몰입할때 그런 덕목은 깨지는 것이다.오늘 군의 제2창군의 각오는 오랫동안 훼손돼온 명예와 긍지의 복원이며 잃었던 덕목에의 회귀이다.그래서 더욱 값지고 마음 든든한것이다.군에 신뢰와 지지를 보낸다.
  • 남북한 대화해는 언제…/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13일 상오11시15분,백악관남쪽 잔디밭.초가을의 맑은 날씨에 따가운 볕이 내려쬐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40여년간에 걸친 증오와 복수와 전쟁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클린턴미대통령은 평화협정의 조인식을 주관하는 백악관주인으로서,실제로는 이 협정의 이행을 담보할수 있는 냉전이후시대의 유일한 국가의 원수로서 평화을 위한 헌신을 다짐했다.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외무장관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집행위원이 양측을 대표하여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내용으로 하는 평화선언문에 서명했다. 서명이 끝나자 백발의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떨리는 듯한 둔탁한 목소리로 『이번 평화의 선언은 이스라엘의 전사인 나는 물론 이스라엘국민들에게 있어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술회한뒤 『피와 눈물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평화의 시대를 선언했다. 이어 카기색 군복차림에 아랍유목민의 두건인 카피에를 쓴 아라파트PLO의장은 『우리의 자결권행사가 인접국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그들의 안보를 침해하지 않을것』이라고 역설,테러리즘의 포기를 분명히했다.이스라엘을 철천지 원수로 삼아 평생을 게릴라지도자로 보낸 그는 그「원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두「원수」가 굳게 손을 흔들자 백악관경내는 일제히 박수의 물결로 가득했다. 이날 서명식은 지난 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캠프데이비드협정이 체결되었을때 사용한 테이블을 사용함으로써 평화의 상징효과를 더해주었다.재임시절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카터·부시 두 전임대통령이 3천여 초청인사와 함께 이를 지켜보았고 약 1백개국에서 이날의 조인식을 생중계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아브라함의 자식들인 이삭과 이스마일의 후예(이스라엘민족과 아랍민족을 각각 지칭)들이 다함께 장도에 나섰다며 『샬롬,살람,피스』(히브리어,아랍어,영어의 「평화」)를 천명했다. 백악관의 조인식이 끝난뒤 한참이 지나도록까지 「아브라함의 자손들」대신에 『단군의 자손들』을 대입해보았지만 『남북특사교환무산』이라는 신문제목만 뇌리에서자꾸 맴돌았다.
  • TV드라마 공동집필제 확산/화가·법조인·의사등 전문직 종사자 참여

    ◎1인 집필,다원화 사회상황 수용에 한계/사실성 근거 극의 완성도 높여 TV드라마의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드라마 집필방식도 공동화·전문화 경향을 띠어가고있다. 최근들어 드라마에 화가·법조인·의사·동시통역사·광고기획자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인물설정 빈도가 늘어나자 실제 이같은 전문직에 있는 인물들이 직접 드라마를 집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것. 이런 추세는 사실성을 근거로 한 극중인물과 상황설정이야말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첩경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일부 전문직 종사자들은 아예 드라마작가로 겸업 내지 전업하는 경우도 있어 방송작가의 저변이 확대돼가고 있다. 오는 9월 중순쯤부터 방송될 MBC-TV의 「김가 이가」(책임 극본 이흥구 연출 김승수)가 이들 전문직 종사자들이 나서 공동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대표적인 작품. 본격 시츄에이션 코미디를 표방하고있는 「김가 이가」는 책임 극작가를 포함해 모두 6명의 작가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중에는 현재 광고회사 부장인 오인두씨,보건의로 군복무중인 김호영씨,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인 최윤정씨,작가지망생인 곽경룡씨등이 포진해있다.여기에 「코미디」의 특성을 고려해 「쓰리랑부부」로 지난91년 KBS 코미디대상을 수상한 권미경씨가 합류,재치와 유머를 제공한다.오인두씨는 극단 연우무대에서 극작과 각색을 한 경험이 있고 김호영씨도 대학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극작과 연출경험이 있는 나름대로는 이 분야의 유경험자들이다.이들은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극중 광고회사 간부와 의대생,아동학과 박사역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직접 써 극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게 된다.각각의 에피소드를 놓고 극작가들이 토론과정을 거친뒤 책임작가가 이를 정리해 한편의 대본을 완성시킨다. 「김가 이가」는 또 선별된 관객들을 입장시킨 가운데 공개녹화를 하며 방청객들로부터 드라마에 대한 견해와 에피소드를 공급받아 시청자까지 드라마극작에 참여케할 계획이다. 이같은 방송작가의 전문화나 드라마의 공동집필이 우리 방송계에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한 것은 불과 5∼6년전. 그 시발은 건축업에 종사했던 이은교씨가 70∼80년대 「모닥불」등 기업드라마를 쓰고 고교국어교사 출신인 이금림씨가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교생 일기」를 써 호평을 받았던것. 한동안 주춤했던 작가의 전문화추세는최근 KBS-2TV 주말극「연인」의 작가 최연지씨가 신문기자와 동시통역사라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생기있는 드라마를 선보이면서 방송가 전반에 새롭게 붐을 조성하는데 기여했다. 한편 전문화와 함께 여러사람의 아이디어와 글을 조합하는 공동집필 체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도 1인 집필로는 다원화된 사회상황과 복합적인 관계를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기때문.KBS의 「굿모닝 영동」과 「먼동」,「내일은 사랑」,MBC-TV의 청소년 드라마「사춘기」등이 공동으로 집필되고 있으며 SBS의 「오박사네 사람들」은 개그작가인 장덕균씨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견습방송작가들과 함께 활동중이다. 이윤선 KBS­TV제작 부주간은 『기존의 획일적이고 일반적인 소재는 다양해진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시청자들의 욕구는 경험적 진술을 통한 설득력있는 정보제공과 논리적 타당성등이 뒷받침되야 하는데 이는 방송작가의 전문화와 공동집필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고 말했다.공동집필의 관건은 여러사람의 글과 생각을 얼마나 정교하게 하나의 작품으로 엮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덧붙였다.
  • SBS 본격 농촌드라마 선보인다

    ◎이문구 소설 각색한 「친애하는…」 50부작으로 방송/K·M­TV 「대추나무…」「전원일기」에 도전 SBS-TV가 본격 농촌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SBS가 의욕적으로 제작에 들어간 작품은 오는 10월부터 방송예정인 수목드라마 「친애하는,기타 여러분」.「한강 뻐꾸기」후속으로 준비중인 「친애하는,기타 여러분」은 중진소설가 이문구씨의 장편소설「산너머 남촌」과 창작집「유자소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창사1주년 특집드라마 「관촌수필」을 연출했던 이종한PD가 다시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의 등장은 MBC-TV의 「전원일기」,KBS-1TV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함께 농촌드라마의 3파전시대가 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관심을 갖게 한다. 농촌드라마의 선발주자인 두 방송사의 드라마는 농촌의 현실을 진단한 본격 농촌드라마라기 보다는 농촌이나 도시·농촌의 접경지역을 배경으로 생활중심에 농촌문제를 간간이 다룬 「홈드라마」 성격이 강하다. 반면 「친애하는,기타 여러분」은 농촌출신의 작가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붕괴되고있는 우리네농촌모습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있는 이문구의 원작소설을 50부작으로 밀도있게 영상화시킨데 그 차이가 있다.50∼60년대 농촌을 다룬 「관촌수필」,70년대 농촌모습인 「우리동네」에 이어 80년대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돼온 농촌사람들이 겪고있는 절실한 문제들을 심도있게 다루는 동시에 그속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산업화에 찌든 도시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데 역점을 두고있다. 당면한 문제점의 파악과 극복을 통해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고 단절된 도시와 농촌의 공동체적 삶의 연대를 모색한다. 주인공 이문정은 군복무 3년을 제외하고는 두물머리를 떠나본 적이 없는 농사꾼이다.3남1녀 가운데 장남이 농약중독으로 죽고 현재는 서른을 넘긴 차남 응두와 농협판매장 직원인 명숙,대학생인 막내아들 영두를 두고있다.마을의 사교장으로 온갖 소문의 온상인 읍내다방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선거철만 되면 가슴이 설레이는 과거 정치꾼들의동분서주한 모습,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농촌총각의 결혼문제등이 다뤄진다. 다방 얼굴마당 하순남역은 김혜선이,두물머리 터줏대감 문정은 70년대 TV스타 김성옥이 맡아 오랜만에 연기력을 과시한다.이밖에 소설가역은 홍요섭이, 그의 아내역을 김미숙이 맡아 SBS에 첫나들이를 한다.또 박근형이 문정의 동생이자 정치에 뜻을 둔 지방유지 무정으로,송영창이 문정의 둘째 아들 응두역을 맡았다.
  • 6·25참전 마지막 현역 별달고 예편/육군 3사교수 정육진대령

    ◎17세 입대… 43년간 참군인 외길/대통령이 특진지시… “최고 영예” 홍안의 미소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뒤 국토방위에 평생을 바쳐온 마지막 참전용사가 마침내 군복을 벗는다. 『오로지 참 군인으로 살아왔던 군생활 43년을 마치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군인의 기본으로 알고 복무해 온 지난날이 자랑스럽습니다』 육·해·공 3군의 현역 가운데 유일한 6·25참전용사인 정육진대령(60·육군3사관학교 교수)은 오는 30일 준장으로 진급,「하루장군」을 거친뒤 31일 42년8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한다. 정대령의 장군특진은 뜻밖의 일.당초 국방부는 정대령의 전역에 앞서 김영삼대통령과의 오찬을 추진했으나 일정이 맞지않아 표창상신으로 바꿨는데 정대령의 얘기를 전해들은 김대통령의 특진지시로 뜻하지않은 전역선물을 받게 됐다. 한국군의 산증인으로서 숱한 일화를 남긴 정대령이 군에 입대한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서울한성중학교 5학년생이었던 그는 17살의 어린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1주일동안 총쏘는법만 배우고 육군 8사단에 배속돼 말단 소총수로 참전했다. 몇고비의 사선을 넘나들었던 그는 51년 8월엔 전사에 남는 강원도 양구북방 김일성고지(965고지)탈환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1953년 9월 갑종간부 57기로 육군소위에 임관한 그는 일선 소대장과 작전·군수·정훈장교를 두루 거친 뒤 62년 국비장학생으로 단국대법대를 졸업하고 미육군특수전학교 심리전과정을 이수하는등 학구파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정대령은 대위이던 65년10월 맹호부대 정훈장교로 월남전에 참가,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신기자들에게 한국군의 전투상황 및 주민선무작전을 소개,사이공주재 외신기자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군에 관한 보도를 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런던타임스지는 당시 1면에「고보이전투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군이 한국군처럼 작전을 했더라면 월남전은 이미 끝났을 것』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대령으로 진급한 이듬해인 77년부터 줄곧 경북 영천의 3사관학교 교수로 봉직하면서 「공산주의 전략전술론」「현대의 이데올로기」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역후 국군홍보관리소의 논설고문으로 일할 예정인 정대령은 『군은 오직 국민의 군대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속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을 군후배 장병들에게 남기고 싶어했다.
  • 한국화가 송수남씨(이세기의 인물탐구:34)

    ◎화폭에 시정 가득… “시인같은 화가”/수묵현대판화 개척… 「남천산수」는 독보적 경지/유연하면서도 예리한 운필로 화력 30년 빛내/가장 한국적인 소재에 집착… “동서양 넘나드는 화격” 꿈꿔 남천은 시인같은 화가다.그는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그의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먼산 먼강 안개 서린 먼동,잔잔한 금강이며 섬진강 얼어붙은 겨울산하까지도 그의 그림속에는 교교한 시정이 담겨있다.공간에 뜬 몇개의 산이 담묵 농묵으로 꿈결같은 원근을 이루거나 또는 보석처럼 빛나는 수묵채색일 때도 아름다운 여백을 살려 화면전체에 서정시가 흐르는 듯한 향수를 품고 있다. 그가 쓰는 먹은 모든 색의 출발이자 모든 색깔을 포함한 색채다.어둠이 흩뿌리는 혼묵,비내리는 잿빛하늘의 회묵일지라도 단순한 검은색인가 하면 전혀 검은 색깔이 아닌 현묘 심묘의 먹색일색이다.그는 눈부시게 하얀 백지위에서 먹으로 백색을 백답게 살리고 먹색을 가장 먹답게 표현할 줄 아는 화가다. 색깔과 색깔을 배합해서 얻어지는 효과와는 달리 물과 먹의 비율은그 농도를 계산할 수는 없으나 모필이 한지에 닿는 순간의 유연성과 날카롭고 경쾌한 선조,그 번짐이 내는 의외의 조형에 흠뻑 빠져든듯 그는 지난 수년간 수묵을 매재로 하는 긴 실험과 모색의 시기를 거쳐왔다. 그리고 수묵추상 발색산수 동양화판화에서 다시 발묵산수로 이어지는 그의 수묵작업은 이제 포만과 방출의 단계를 통과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남천산수」를 이루고 있음을 인정받고 있다. ○충격던진 첫 개인전 그의 이런 실험정신은 그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일관되게 지켜지던 그만의 방법이다. 이대입구 신촌 하숙집 골방에 틀어앉아 낙엽이란 낙엽은 모조리 주워다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이를 화면에 이리저리 꼬아 붙이는 나뭇잎 콜라주,켄트지에 유화 한지에 수채화등 그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를 스스로 모색하고 타진한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때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향의 뒷동산」과 「강언덕 버들개지 꽃샘바람에 한바탕 춤추고 나면 온산은 진달래가 물들어」샤갈과 드가를 변주한 듯한 영롱한 색채는 그가 범상치않은 화가로 탄생될 것을 그의 주변에 일찍이 예감시켰다. 화력 30년의 화가로서나 대학교수로서나 그는 이제 중진의 위치다. 그러나 스승의 문하에서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은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혼자서 자신의 세계를 암중모색으로 성취한 편에 속한다.이에대해 그 자신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영향을 받은 바도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기 「한국화」전이란 타이틀로 그가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한지와 먹,탑이나 기와지붕등 동양화재료와 한국적 테마를 택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의 동양화에서의 설채와 운필을 벗어나 서양추상화를 보는듯한 충격을 던졌다.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은 송수남 한국화는 새로운 공간예술을 실천한 예로서 70년대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우뚝 설것임』을 다짐했었다. 70년대후반 실경산수가 한창 붐 일때도 그의 산은 진채표현의 중량감을 과시하여 적묵산수의 특징을 강조했고 담백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수묵과는 달리 강렬한 발색산수에서 중성적 느낌을 안겨주는 다채로운 채색과분방한 화풍을 구사해 보였다. 야트막한 구릉과 하천을 부드러운 선과 극도로 절제된 간결한 구성으로 암시하는가 하면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거대한 산봉은 휘염의 범람인듯 화면을 압도하기도 한다. 그곳에는 시의 빛과도 같은 섬세한 장식이 둥우리를 틀고 우뚝한 삼각형,묵취와 묵광,산정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빨갛고 동그랗고 자그마한 해만으로 먹구름같은 화면에 눈시린 청량감을 뿌렸다. ○동양화서 추상 시도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동양화가로서는 드물게 「산」을 주제로한 판화를 제작,목판·석판·실크스크린·모노타입등 4종류를 찍어 수묵화의 수묵현대판화로서의 새로운 화경을 열었고 88년 「자연과 도시」전도 빼놓을수 없는 탁발한 전시로 손꼽힌다. 굵거나 묽은 선으로써 시작과 끝을 흐려뜨리면서 드로잉적인 필선과 발묵의 번짐으로 독특한 도시의 서정을 구현,울창한 잡목숲과도 같은 어지러운 도시의 여러 풍경을 특징적으로 묘사해 냈다. 도시나 산하외에 그가 즐겨 그리는 미루나무는 먹으로 화면을 가득채운 동양화의 현대추상을 시도한 선시리즈와 고향으로 가는듯한 휴식을 살린 첨단과 향수의 두면을 대비적으로 선보여주고 있다. 붓끝에 힘을 주어 사군자를 치는듯한 한계를 자유하여 그는 이제 모필만이 갖는 유연성으로 동서양을 넘나드는 그만의 화격을 이루는것이 꿈이다. 남천으로서는 어느구석에도 그 겉모습에선 화가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그런 「티」는 그에게는 지난 시절의 치기일지도 모른다.문학과 철학에 빠져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니힐리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이른바 가난이면 가난, 슬픔이면 슬픔, 외로움이면 외로움이었던 회오리가 한바탕 지난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훨훨 벗고 「평범」과 「무심」을 과장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굵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 그런거지 세상이란 그런거지」털털 웃으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를 바라보노라면 지난 날이 흔적없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수류운공이 떠오른다. ○단체활동 개입 안해 그러나 그는 여전히 어눌하고 치밀하지 못하여 지난 90년 한 신문사가 주는 예술대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상을 제정해주신 신문사에 감사한다」는 인사말을 여러차례 연습까지 해놓고는 막상 단상에 올라 다른 신문사 이름을 들먹이며 중언부언하는 바람에 관계자와 좌중을 난처하게 했었다. 또 두주불사로 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사심없이 놀다가도 갑자기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한국적이란 무엇일까.중국하면 도가 떠오르고 인도하면 명상이 떠오르듯이 「한국」하면 뭐가 먼저 생각나지?』심각하게 추궁하여 주위를 당혹케하기 일쑤다.이런 한국적인데 대한 집착은 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전이후 수십차례의 세계미술전에 참가하면서 생긴 징후다. 그는 전북 전주에서 농가 송대석씨의 3남매중 외아들.조부가 쓰던 먹과 벼루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 일찍이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소원은 언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성취하는 일이었다.소원대로 지금은 서교동 그의 집에 마련된 80여평의 드넓은 화실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바로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끝없이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다.가족은 부인 백명희교수(이대사대학장·54)와 1남2녀.그림을 그리는 자녀는 없다. 화가친구보다는 옛날 신촌하숙방에서 함께 뒹굴던 소설가 이제하 시인 강위석 등과 즐겨 어울리고 80년대 수묵화운동을 함께 했던 후배 제자들이 있지만 화단에서의 단체활동등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 화가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남천을 소탈하고 소박하다고 말한다.대체로 자신의 일에만 충실할뿐 그는 만사에 서툴고 머뭇거리는 형이다. 그러나 가까이 화단일부에서 그의 후배들이 말하는 남천은 뚝심과 정열,실험정신이 투철하여 기왕에 있어온 타성을 묵살하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적 욕망이 꿈틀대는 야심파다.또는 감정이 격하고 제스처가 명확하며 일을 벌이면 끝장을 내고 한번 눈밖에 난 사람은 끝끝내 돌아보지않는 독선적인 면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의 완성을 설계 어느것이나 화가로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일면일 것이다.사람이 나이들면 환경과 시대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듯이 아마도 남천 역시 그런 여러 측면을 복합적으로 지닐 수도 있다.그래선지 그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미술은 음악처럼 세계도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서슴없이 긍정한다.그리고 한때 지나치게 탐닉했던 화려한 색채를 단순하게 저버린것이 아니라 이를 오채의 먹으로 종합한다는 의지다. 그는 결국 시와 철학으로 살찌운 마음속에다 그의 수많은 붓들을 담가두었다가 어느날 하얀 한지위에 먹만의 조형으로 세계화단에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그는 그림의 완성,그의 그림의 끝을 알고있는 이시대 소중한 화가의 한사람임에 틀림없다. □연보 ▲1938년 전북 전주출생 ▲전주중앙국교 서중­공고졸업 ▲1956년 홍대 서양화과 입학 ▲군복무후 1961년 동양화과로 전과 ▲1963년 홍대 졸업 ▲1962년 국전입선후 신광여고­이대부고교사 ▲1967년 제9회 동경국제비엔날레 출품(동경) ▲1969년 송수남 「한국화」전(신문회관화랑) ▲1970년 인도 트리엔날레 출품(뉴델리) ▲1972년 한국현대작가7인전(샌프란시스코 아시아재단화랑) ▲1973년 송수남 개인전(신세계화랑) ▲1973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상파울루)한국 동양화10인전(동경) ▲1974년 양지화랑 초대개인전 ▲1974년 현대 화랑 기획전(현대화랑)현대한국동양화전(나고야) ▲1975년 스웨덴 스톡홀름국립박물관 초대개인전 ▲1976년 한국현대 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7년 한국 미술대상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78년 맥향화랑 초대전 ▲1978년 뉴욕 한국화랑 초대개인전 ▲1978년 한국미술20연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1980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개관기념 초대전 ▲1981년 백상미술대전 한국현대작가 드로잉전(뉴욕 브루클린미술관) ▲1983년 송수남전(현대화랑) ▲1983년 초대 송수남 개인전(뉴런던 코네티컷대,뉴욕브루클린대 시카고 스코키시립미술관) ▲1984년 송수남 개인전(뉴욕 한국문화원) ▲1985년 송수남 판화전(조선화랑) ▲1986년 한국화,오늘과 내일 전망(워커힐미술관) ▲1986년 한국화 100연전(호암갤러리) ▲1986년 동양화 초대전(강남현대화랑) ▲1986년 송수남 초대전(부산진화랑) ▲1988년 자연과 도시전(동산방화랑) ▲1989년 남천 판화전(청작미술관)해마다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현대미술초대전,한국의자연전,서울미술대전,현대작가초대전 등 단체전 수회출품 동아미술제심사위원,문예진흥원 미술대전심사위원,운영위원 역임〔현재〕서울 미술대전 운영위원,서울시 예술위원,홍대교수(홍대박물관장) 중앙예술대상수상 「수묵화」「동양화」「자연과 도시」「남천사군자(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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