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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父子 훈련병

    병영은 본질적으로 타율이 지배하는 사회다.병영에는 복종을 주내용으로 하는 엄격한 규율과 고된 훈련이 있다.그것만으로도 군대생활이 녹록지 않을것은 당연하다.하지만 교본대로 적용되는 규율과 훈련만이면 군대생활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군대생활이라면 뒤도 돌아보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그런 생각을갖게 만드는 것은 교본대로의 규율과 훈련은 결코 아니다.지금은 줄었다고하지만 여러가지 비인격적이고 모욕적이며 자의적이고 무원칙한 악습들이다. 규율과 훈련은 젊은이를 단련시킨다.강하게 만든다.반대로 악습은 사람의 영혼을 상처내며 타락시킨다.국민은 규율과 훈련은 엄정하고 고되지만 악습이없는 그런 건강한 군대를 원한다.군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아름다운 추억의대상이 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강군(强軍)의 지름길이요,진정한 국민의군대가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예전의 악습들이 다시 군대에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하며 잔재가 있다면 깨끗이 쓸어내야 한다.그렇게만 된다면 누가 군대를 뒤도 돌아보기싫다고 할 것인가. 일부 계층의 병역비리가 문제되고 있는 때다.비리의 양태가 어떠하든 그배경을 이루는 것은 군기피 의식이다.군기피는 젊은이들의 유약함과 이기적 타산,부모들의 과보호 탓만은 아니다.오히려 군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군에 가는 본인만이 아니다.부모들은 더 공포감을갖기 마련이다.부모들의 그것을 꼭 자식에 대한 과보호라고 삐뚜로만 볼 것은 아니다.오히려 자연스런 자식사랑의 발로라고 봐줄 수 있다.자식이 군복무를 시작하기 위해 군병영으로 모습을 감출 때 눈물을 훔치지 않을 부모는거의 없을 것이다.이렇게 보면 군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병역기피와 병역비리를 막는 한 가지방법이 될 수 있다.그러자면 군조직이 건강하고 투명해야 한다.동시에 국민들이 군조직의 건강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육군 논산훈련소가 훈련병의 아버지들을 훈련소로 초청했다.2박3일 동안 아들과 함께 훈련생활을 체험토록 한다는 것이다.각종 훈련도 같이 받고 불침번과 초병근무도 선다.일석점호도 받고 잠도 아들 곁에서 나란히 잔다.필시군의 공격적이며 이례적인 홍보작전 같다.그만큼 군이 군조직의 건강성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그렇다면 군에 가야 할 장정들과 부모들의막연한 공포도 많이 사그라들 듯하다.군면역(軍免役)을 위한 비리유혹도 덜받을 것이다.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상현 논설위원
  • 어린이용 보험 신상품 ‘봇물’

    보험사들이 3월 신학기와 해빙기를 맞아 신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가화만사성보험 삼성화재가 내놓은 가족종합보장 상품.가족의 사망·후유장애는 물론 상해와 질병 의료비 및 화재,도난,배상책임 등 가정생활위험을지켜준다.벌금,견인비용 등 차량운행중 위험까지도 보장해 준다. 특히 자녀의 보장연령범위가 기존 상품은 대부분 만1∼18세 이하 미혼자이나 이 상품은 0∼만 24세 미혼자녀로 확대해 갓난 아기와 군복무중이거나 해외유학중인 자녀들도 보장받을 수 있다. 가족나들이가 잦은 휴일에 사망·사고를 당할 경우 평일 보험금의 2배를 지급한다.입원의료비도 보장범위가 확대돼 감기에서 암까지 2,040개의 모든 질병을 보장해 준다.단 통원치료는 제외된다.부부형은 월 보험료가 6만7,610원,가족형은 8만8,920원이다.(02)7587-114. ◆참좋은 자녀사랑보험 손보업계에서 처음으로 동부화재가 시판.태아의 기형출산 등의 위험을 담보한 상품이다.태아의 경우 체중이 2㎏ 미만이거나 기형 또는 선천적으로 이상을 갖고 출생,30일 이상 생존했을 때와뇌성마비,다운증후군 등이 발생했을 경우 보상한다. 17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험을 담보한다.학교생활중 상해를 비롯,교통상해 등 일상생활 중의 상해와 백혈병·뇌암·임파선암 등 소아 3대암과 식중독 등 질병에 대해서도 보상한다.14세까지 가입할 수 있고 보험료는 월 2만원 이상 범위에서 선택할 수 있다.(02)2262-3523∼3524. ◆수호천사어린이보험 동양화재의 신상품.어린이 8대 질환을 보장해주는 상품이다.암과 재해는 물론 어린이 8대 질환인 천식,폐렴,복강헤르니아,충수염 등에서 파생한 총 60여 가지의 어린이 질환을 보장해 준다.백혈병의 치료자금을 최고 4,500만원 늘렸고,재해 가운데 어린이에게 발생 빈도가 높은 화상까지 보장한다.(02)7289-222,236.
  • 7일 세계여성의 날…곳곳서 기념대회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 15회 한국여성대회가 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공동 상임대표 池銀姬) 주최로 열렸다. ‘평등 평화 이루는 새로운 천년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金慕妊보건복지부장관,申樂均 문화부장관,尹厚淨 여성특위 위원장,李效再 올해의여성운동상 심사위원장 李美卿·鄭喜卿 국회의원등 각계인사와 경제정의실천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등 14개 관련단체 회원,가족 1,500여명이 참석했다. 金大中대통령은 축하 영상편지를 통해 “21세기는 여성의 장점이 빛을 발할수 있는 지식과 정보,문화의 시대로 새 천년의 주역은 여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정부는 이러한 흐름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 올해 불합리한 남녀 차별제도를 개선하고 남존여비의 인습적 잔재를 청산하는 한편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권리와 참여가 실질적으로 확대될수 있도록 힘써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池銀姬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성차별적인 고용조정 중단과 무분별한 비정규직 확산 규제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정을 통한 일정 소득 이하여성의 최저 생계 보장 ◆공공부문 30% 고용·승진할당제 실시와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가사와 직장을 양립할수 있는 육아지원제도 수립◆여성농민의노동가치 실현 제도화와 복지·건강대책 마련◆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과 30%여성 할당제 실시◆국민건강보험법에 기초출산 수당제 도입◆국민1인1연금제도입◆호주제 폐지◆성폭력근절 종합대책 마련등을 ‘새로운 세기가열리기 이전에 꼭 해결해야 할 10가지 여성과제’로 선포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또 25년간 빈민여성 운동을 벌여온 姜命順 부스러기선교회협동총무(47)가 제11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으며 기념공연과 미술전,페이스 페인팅(Face Painting)행사,군가산점 폐지 서명운동도 열렸다. 대회가 끝난뒤 5백여명의 회원들은 서울교를 거쳐 영등포 롯데 백화점 앞까지 여성해방 기원 거리행진도 벌였다. 姜宣任 sunnyk@
  • [사설]병무비리 뿌리뽑도록

    또 병무비리가 터졌다.이른바 元준위 사건의 풍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이다. 국방부는 자체특감으로 대규모 의병전역의혹을 적출해냈다.元준위 사건은 징병과정에서의 병무비리였다.이번 사건은 복무중에 꾸며졌다는 점에서 그것과 다르다.그렇지만 어느것이나 뇌물이 비리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같다.그러니까 있는 사람들,바로 부유층의 비리다.유전무죄(有錢無罪)가 얼마나 사회적 위화감을 조장하는 말인가.병역의 유전면역(有錢免役)도 마찬가지다.기필코 뿌리뽑아야 할 비리임은 더 말할 필요없다. 국방부는 모두 198건의 의병전역의혹을 적발해냈다.국군수도병원등 전국 8개 병원만을 대상으로 한 특감을 통해서다.국방부는 나머지 의병전역 판정권한이 있는 전국 10개 병원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의혹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어쨌든 이번수사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병무비리의 발본색원 계기가 돼주었으면 한다.엄정하고 철저한 수사로 비리는 반드시 적발되며 처벌받는다는 교훈을 남겨야 한다. 또 하나는 수사와 함께 비리가 발붙일 틈이 없도록 방책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의병제대 판정절차와 조건을 강화하는 조치가 그같은 일이다.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관련 법률과 규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성실성을 보장하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병무비리 대책은 그동안 꾸준히 강화돼왔다.그럼에도 비리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집행관들의 성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현실이다.집행관들이 건성이거나 법과 규정을 악용하려 들면규정은 있으나마나다.주민등록초본의 제대사유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기록토록하는 것도 중요하다.두루뭉실하게 표기토록 방치해서는 안된다.정신병은정신병으로 사실대로 표기해야 가짜환자를 억제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증적 처방만으로 비리가 근절되지는 않는다.원인처방도 생각해볼 때가 됐다.예컨대 군이 군홍보나 실제 군운용을 통해 젊은이들이 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군대에 갔다오면사회생활에서 여러가지로 손해보는 현실의 개선도 시급하다.그래야 군기피풍조를 근원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물론부유층의 유별난 자식 과보호가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이것도 군복무를 마친 자에 대한 제도적 프리미엄 부여를 통해 어느정도는 시정이 가능하다고 본다.여하튼 병무비리가 용납돼서는안된다.국민통합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다.그것이 대부분 부유층의 비리이기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그런 점에서 이번 수사가 빈틈없이 이루어져야 한다.수사 진행과정을 주시한다.
  • 경주시,천년古都 馬車유람 새달부터 운영

    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유적을 4월부터 마차를 타고 유람할 수 있게 된다. 경주시는 2일 관광객들에게 새롭고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해 문화·유적지를 순회하는 관광마차를 운영하기로 했다.시는 관광마차 운행 사업을 민간에 위탁할 계획이다.이달중 운영희망자를 물색,다음달부터 운영에 들어간다.순회코스는 천마총을 출발,첨성대와 계림숲,향교를 거쳐 반월성에 이르는 4㎞ 구간. 관광마차는 신라시대 분위기를 한껏 풍길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다.관광객들이 화랑,원화,장군복 등 옛 신라인의 의상을 입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마차를 이끄는 마부는 운행중 각 유적지에 얽힌 전설이나 설화, 역사적 사실 등을 관광객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게 된다. 마차는 2인승과 6인승 2종류.요금은 2인승은 1인당 6,000원,6인승은 4,000원을 받을 예정이다.
  • [외언내언] 아름다운 화해

    2일자 신문들은 휠체어를 탔거나 목발을 짚은 민간인들과 얼룩무늬 군복을입은 공수특전대원들이 서로 다정하게 어울리고 있는 사진들을 일제히 실었다.광주 5·18 유족과 부상자들이 광주 민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였던 제3공수특전여단을 찾아가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이다. 부상자회 金好成회장은 “국민 대화합을 위해서는 희생자인 우리가 나서야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이번 방문으로 부상자들과 군인이 화해해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자”고 제의했다.이같은 제의에 대한 부대장 宋璂碩준장의 화답 또한 의미심장하다.그는 “아버지가 빚을지고 떠나면 아들이 그 빚을 갚는 게 우리의 전통이다.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은 여러분이 어려운 결단을 내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반기며 “일부 정치군인들의 잘못으로 광주시민들이 희생됐다.광주시민들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보장하는 나라가 될 수 없었다”고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적의미를 평가했다. 모처럼 들어보는 민주군인의 발언이다.宋준장의 말 그대로 5·18 광주대학살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집권야욕이 빚어낸 역사적 죄업이다.그리고 정치군인들은 그들의 죄업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사법적 심판을 받았다. 이 부대원중 5·18 당시 광주진압작전에 참가했던 군인들은 30여명.그들은“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라 수행한 작전이었지만 희생자들에 대한 죄송한 생각이 늘 마음 한구석에 짐으로 남아 있었다”면서 뒤늦게나마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다.상명하복의 군조직에서 명령에 따라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군인들도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었을 것이다. 가해자가 된 군인들 가운데는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19년 만에 만나 가슴을 열고 서로 용서하고 사죄하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 아닐 수 없다.이제는 성역화된 망월동 묘역에잠들어 있는 희생자들도 ‘아름다운 화해’를 흐뭇하게 지켜보리라. 용서함으로써 5·18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이 아름다운 화해가 여야 격돌과 지역갈등,노사정 대립 등 우리사회를 옥죄고 있는 온갖 대결과 갈등을푸는 큰 계기가 됐으면 한다. [張潤煥논설위원]
  • 유족·부상자 220여명,제3공수여단 방문 19년만에 화해

    1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특전여단에서는 19년 전의 그날을 되새기는화해와 용서의 자리가 마련됐다. 제3공수특전여단은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저항하던시민들을 최종 진압했던 부대. 5·18 유가족과 부상자 220여명은 19년만에 처음으로 당시의 진압부대를 방문,용서의 뜻을 전달했다.장병들은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의 앙금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5·18 민중항쟁부상자회 서울·경인지회측이 부대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부대장이 흔쾌히 수락하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오전 11시30분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5대의 전세버스에 나눠타고 부대에 도착하자 300여명의 장병들은 따뜻한 박수와 꽃다발로 환영했다. 부대장인 宋기석 준장은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국민 화합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다”면서 “민·군 화합이라는 큰 뜻에서 행사가 이뤄진 만큼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군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부상자 회장 金好成씨(45)는 “지난날의 잘못을 모두 용서한다”면서 “국민 대화합을 위해서는 피해자인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차에 치여 1급 중증장애인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 온 張周仁씨(60)는 “처음에는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움찔했다”면서 “이렇게 어울려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이어 “잘못된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진압부대 요원이었던 李모원사(45)는 “마음 속에 커다란 짐으로 남아있던 앙금을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진촬영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며 ‘화해와 용서의 대화’를 나눴다.이동할 때마다 장병들은 목발을 짚는 부상자의 겨드랑이를 부축해주고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했다.시간이 지날수록 표정도,대화도 부드러워졌다. 유가족들과 부상자들은 부대원들의 태권무 시범을 관람한 뒤 2시간여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부대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부대를 나섰다.
  • 기고-’국민과의 대화’를 보고/이호철 소설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1년 만에,그리고 지난해 5월 이후 꼭 9개월 만에세번째로 진행된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짧았다.대강 그렇게 되리라고 짐작했지만,지난 1년간의 시정(施政) 전반을골고루 짚어내자니 망라적(網羅的)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일부 여론의 지적대로 ‘대화’인지 ‘홍보’인지 알쏭달쏭했다.하지만 대국적으로는 여전히 신선했다.국정의 책임자가 정확히 1시간 45분 동안 방송 3사를 통해 국민 앞에 허심탄회한 모습으로 저렇게 직접 나와 앉아서,지난 1년간의‘이 나라 살림살이’를 이 나라 가장(家長)으로서 이 나라 국민들에게 속속들이 밝힌다! 물론 속속들이라는 것은 어느 한도껏의 이야기지만,아아 좋고 말고다.세상은 과연 이만큼 좋아졌구나,이것이 솔직하고도 단적인 느낌이었다.대통령과마주 앉은 방청석을 꽉 메운 남녀노소뿐 아니라,지방 곳곳에서 질문하는 한사람 한 사람의 표정들도 필자는 유심히 화면 안으로 들여다 보았는데,거의하나같이 밝은 얼굴이요,즐거운,그리고 그지없이 자연스러운 평상인들의 분위기였다.추호나마 겁 먹거나 억눌린 얼굴들이 아니었다. 필자는 1시간 45분 동안 눈길은 그대로 텔레비전 화면에다 꼬나박은 채,51년 임시 수도 부산의 충무동 로터리인가에서 李承晩 초대 대통령이 느릿느릿한 꺾쉰 목소리로 연설하던 것을 성능 안 좋은 라디오로 듣던 일과,그뒤 정부 당국의 홍보물 같은 데 실려 있던 그 현장의 흐릿한 흑백사진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뿐인가,강직한 군복에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주로 공식 행사장에서 공식적으로 연설을 하거나,무슨무슨 선포를 일삼던 제3대박정희 대통령,그때마다 늘 무시무시했던 일도 연달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 다음,전두환,노태우,김영삼씨로 이어오면서,구중궁궐 속 같은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의 ‘키 높이’가 차츰차츰 세월 따라 알게 모르게 보통사람 ‘키 높이’로 작아져 오더니,아아,이제는 얼씨구나! 나라 살림을 통틀어서 맡은 대통령이라는 사람과,여염집 가장이거나 한창 배우는 학생 아이들까지도,그리고 농민 기업인 근로자 누구라도,저렇게 무릎을맞대듯이 마주앉아지난 1년간의 나라 살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기탄없이 의견을 털어놓을 만큼 되었구나.불과 두 시간이니 그 나누는 이야기 알맹이라는 것이야 뻔할 뻔자,겉 핥기가 되기가 십상이겠지만,이만만 해도 이게 어디인가.지나간 50년간을 거슬러 돌아보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필자 자신도 이미 정부 홍보차원으로 어느 한 가닥 가세하고 있는 꼴은 아닌지,스스로 일말의 쑥스러움섞어 자신을 돌아보게 되거니와,일언이폐지하여 바로 이만큼 세월은 흘렀고세상은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거듭 이야기거니와 두 시간은 너무 짧았다.모든 문제가 망라되어제기되었다는 데에 뜻이 있을까,어느 하나,진짜로 궁금한 문제들에 대해 아주아주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못 한 것 같았다.대강 그런 정도 수준의‘국민과의 대화’였다. 다만,필자도 이산가족의 한 사람이어서 더 그런 쪽이겠지만,거의 모든 문제가 망라되어 나온 데 비해서는 정작 새 정부 들어서서 지난 1년간에 가장활기 찼던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이 조금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북한문제로 말할 것 같으면,미국,일본,중국 등 금년 상반기까지 원체 미묘하게 걸려있는 때인지라,그 ‘국민과의 대화’ 수준으로 함부로 다루기는 나름대로 자제했음직도 하였겠다고 짐작도 되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 합격 지름길 가산점을 노려라

    9급 일반 행정직 시험을 2년째 준비하는 金모씨(25·여)는 이달부터 서울종로의 워드프로세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1점 차이로 탈락한 쓰라린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가산점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金씨는 수강생들과 대화를 해보고 깜짝 놀랐다.상당수가 공무원시험 준비생이었기 때문이다.가산점을 주는 각종 자격증 취득은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필수가 돼 버렸다. ▒가산점 9급 시험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은 6가지이다.수험생들은 자신의 적성과 취득 소요기간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 두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9급 필기시험 전까지 자격증을 따야 가산점이 인정되므로 시험시기 조절도 중요하다. 가장 도전하기 쉬운 분야는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급수에 따라 0.5∼1.5%까지 가산점을 얻을 수 있다.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6∼7개월,기본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면 3∼4개월이면 가능하다.올해에 3번 응시기회가 있으며 학원 수강료는한달에 7만원선. 정보처리기능사(2급)는 2%의 가산점이 주어진다.전자계산기 일반 등 4개 과목을 준비하는데 4∼5개월 이상이 걸리고 올해 시험은 3번 치러질 예정이다. 학원 관계자는 “워드프로세서보다 가산률이 높은 만큼 컴퓨터에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집중적인 학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격증 가운데 3%로 가장 높은 가산점이 주어지는 정보처리분야 산업기사(옛 기사 2급과 기능사 1급)는 그만큼 만만치 않은 시험이다.정보처리·사무자동화·정보기술 산업기사는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졌거나 기능사자격을 딴 뒤 1년 이상의 실무 경험을 거쳐야 한다. 자격증에다 제대군인 가산점(2년 이상 군복무는 5%,2년 미만은 3%)을 합치면 8%의 가산점을 받는다. 여기에다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 자녀는 10%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나 군복무를 마친 독립유공자 자녀는 10%의 가산점만 인정받는다. 까닭에 가산점은 최고 13%로 제한돼 있는 셈이다.
  • 朴康文코너-징벌이 될 수 없는 납세와 국방의무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의무인,세금 내는 일과 젊은 남자 군대 가는 일이,징벌일 수 있는가.우리는 꽤 긴 세월 그렇게 여길 만한 일을 보면서 살았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기업이있다면 세무조사를 해서 세금을 거두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그런데,세무조사가 마치 징벌처럼 되어,기업에 경각심을 줄 때는,이렇게저렇게 하지 않으면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효과가 컸다. 검사들이 처신을 제대로 못해서 한 변호사의 입놀림에 목의 안부가 달리고,관련 검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 총수 물러나라는 항명 소동이 일어나다가,역사상 처음으로 검사들의 연판장까지 나오게 된 요즘,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언론이 지나치게 헤집고 떠들었기 때문이라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그런 가운데 전국검사회의에서 “국세청 세무조사처럼 언론을 견제할 만한 대책을 가져야 한다”고 한 어느 검사의 말은 놀랍다. 그 말을 들으니,국세청 세무조사가 검찰이 부러워할 만큼 무섭기는 무서운것인가 보다.그것이 보복방법으로 여겨져 왔다는 것도,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관리가 있다는 것도,이 말에서 확인된다.납세 의무를 징벌처럼 보는 데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국방 의무 수행은 목숨을 거는 것이다.의무를 다한 사람은 그에 값할 만한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있었다. 1970년에 제대하고 직장에 들어갔더니,군대 갔다 오지 않고 들어간 동년배보다 한참 처진 뒷줄이었다.속이 끓었다.술집에서 한 친구와 잔을 기울이면서,군 시절 임진강변의 각다귀 같은 여름 모기와 뺨을 에는 겨울 칼바람이새삼 생각나 그 분통한 마음을 털어 놓았는데,친구 말이 이랬다.“군대 가는 사람이 바보지.세상살이도 요령이야,임마” “그래,난 바보다.나 같은 바보들이 이 나라 지킨 거다,이 뻔뻔아.” 군대갔다 오지 않은 친구를 앞에 놓고 불평하는 내가 바보는 바보였다.내가 그뒤에 할 수 있었던 것은 선거권을 행사할 때 군대 갔다 오지 않은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또 하나 할 수 있는 것은 성한 몸이면서도 군대 다녀오지 않은 젊은이를 사윗감에서 제외하는것이다(딸이 동의한다면). 1950년에 일어난 전쟁 때 지도층 자제가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그 자제들은 난리중에 나라 바깥에 공부하러 갔다가 난리가 끝난 뒤돌아 와서 조국 재건에 진력했거나,그렇지 않으면 대개 몸이 약해서 포연과총탄에서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정치적으로 험한 세상이 되면서 시위 주동 학생들이 붙잡혀 징집돼갔다.병역 의무를 징벌로 쓴 것이다.이 청년들 가운데 더러는 군복무중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최근 국방부가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지난 대통령선거 기간에,고위 관리와 국회의원들 가운데 군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부자들 자녀 역시 그렇다는 것이 숫자로 드러난 것을 보고는,세상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납세와 병역이 바보나 떠 안는 짐이거나 미운 대상에게 내리는 벌로 여겨져서는 안된다.내라는 세금 내고,군대 가야 할 때 갔다 온 사람,나라를 지키고떠받치는 것은 이 사람들이다.
  • 제네바 4자회담 이모저모

    ┑제네바 秋承鎬특파원┑4자회담 분과위 가동 첫날인 20일 평화체제구축분과위가 오전에,긴장완화분과위가 오후에 각각 열렸다.▒긴장완화분과위에 참여한 한·중·미 현역 고위 군당국자 3명은 모두 군복이 아닌 양복 정장차림으로 회의장에 등장했다.외교통상부 당국자는^252국제외교상 군복차림은 관례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이에 앞서 19일 열린 4자회담 본회담에서 의장을 맡은 북한 金桂寬대표는각국 대표의 인사말 순서를 소개하면서 우리측 朴健雨대표를 ‘대한민국 대표단장’으로 처음 정식 국호를 넣어 호칭했다.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등 공식 문서에서 대한민국 호칭을 인정한 것과 달리 국제회의에서는 ‘남측대표’ ‘박대사 선생’등으로 불렀다. 화기애애했던 본회담 분위기는 북한이 기조연설에서‘일촉즉발의 위기상황’,‘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원인’운운하면서 한때 얼어붙었다.오후에 속개된 본회담에서 미국은 “인도적 차원의 식량 및 중유를 지원하는데 무슨 대북 적대정책이냐”고 북한을 공박. 우리도”한반도에서는긍정과 부정적 상황이 공존한다”면서”금강산관광이 대표적인 긍정적 상황이며 부정적인 것을 지양하는 것이 4자회담의 목적 아니냐”고 지원사격.▒중국은”쉬운 것부터 해결해 나가자”는 뜻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견이 같은 것은 추구하고 다른 것은 놔둔다)’를 들고 나왔다.이에 북한은” 쉬운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자는 게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래서는 한반도의 근원적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반박했다.chu@
  • 북한군 추정 시신 3구/日本 해안서 발견

    【도쿄 황성기 특파원 김인철】 동해에 연해 있는 일본 후쿠이(복정)현 다카하마 해안에서 25일 북한군으로 보이는 남자 시체 3구가 떠올라 일본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이들 시체는 이날 오전 7시40분쯤 인근을 산책중이던 한 주민이 발견해 신고했는데,모두 별 표시의 배지가 부착된 녹색군복 차림으로 나무뗏목에 몸을 묶은 채 뼈만 남은 상태로 발견됐다. 이와 관련,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시신이 뗏목에 묶여 백골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지난 18일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 침투요원일 가능성은 없으며 탈북자 등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민원행정 최우수 병무청 李相浩 청장(인터뷰)

    ◎“청탁 무조건 NO… 비리 재발 없다”/520차례 이동 상담/원스톱 민원처리 ‘호평’/정의로운 병역문화 투명성 확보 주력 “병무비리의 온상이라는 오해와 불신 속에서도 전 직원이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맡은 바 책임을 다해준 결과입니다” 李相浩 병무청장은 지난 22일 ‘98년 정부업무 심사평가 보고회’에서 고객만족도가 가장 높은 민원행정 최우수청(廳)으로 선정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李청장은 “올 한해 동안 병무비리 때문에 상당히 고통스러웠는데 조금이나마 명예를 회복하게 돼 기쁘다”면서 “큰 상을 받았으므로 앞으로도 공정하고 깨끗하게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물론 다시는 병무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불합리한 법령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군수본부장을 역임한 李청장은 치밀하고 차분하면서도 업무추진력을 갖춘 전문 행정가로 평가받고 있다. “민원인 편익시설 확충 및 원스톱 민원처리 시스템 구축 등의 노력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최우수청으로 선정된 이유를 설명하고 “대학별로 ‘이동병무상당’을 실시하고 전화와 컴퓨터를 통해 민원인들의 병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병무청은 520여차례의 이동병무상담을 했고 537만여건에 이르는 ARS(음성자동응답장치)와 PC통신 상담을 했다. IMF 체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병역의무자들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기 입영의 길을 넓혀주거나 입영을 연기토록 해주었다. 특히 1,500여명의 직원들은 매달 친절교육 및 시범교육을 받으며 민원서비스를 체질화하고 있다.민원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불평·불만·불친절 사항을 곧바로 시정한다. 李청장이 내세운 올해 병무청의 목표는 ‘정의로운 병역문화를 정착’. 李청장은 “직원들에게 비리와 관련된 부탁이나 민원은 무조건 ‘노(NO)’라고 말하라고 엄명을 내려 청탁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면서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의식 속에 심어주어 반드시 정의로운 병역문화가 뿌리를 내리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李청장은 병무비리 사건이 터진 이후 징모·징병 관련 직원 122명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병무청은 지난 8월 후암동 시대 28년을 마감하고 대전청사로 이전했다. 李청장은 “내년부터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병역의무자들은 원칙적으로 군복무를 하도록 면제 범위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신체검사자의 군면제 비율을 10%에서 3% 선으로 대폭 내리고 국외이주자 면제연령도 31세에서 36세로 대폭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신검 전문의 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면제자들은 군의관과 지역주민 등 5∼6명으로 구성된 ‘신체등위심의판정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야 면제가 확정되도록 하는 등 투명하고 공정한 병역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 모든 군 의문사 철저규명을(사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소대장 金勳 중위 사망사건을 계기로 80년대 이후 군(軍)내에서 일어난 모든 의문사도 재조사키로 한 것은 당연하고 잘한 결정이다. 金중위의 경우뿐만 아니라 그동안 군이 밝힌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이 많은데다 자식을 군복무중 잃은 유가족에게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려주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군은 한창 혈기가 왕성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특수집단이다. 게다가 개인화기와 폭발물등 위험한 장비들을 가지고 각종 훈련과 작전을 해야하는 군에서 갖가지 사고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애통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죽음의 원인이 석연치 않을때 유가족들의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대단할 것이다. 군대 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사의 경우 부대 밖에서는 구체적인 사고 내용이나 원인을 알 길이 없다. 군에서 통보해주는 대로 믿을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사고 경위나 사망원인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의 사망사고가 적지않아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이나 재조사를 탄원하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양쪽 가슴과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숨진 병사나 머리의 함몰상으로 과다한 출혈때문에 숨진 하사관을 자살이라고 하는 군의 처리를 믿을 유가족이 어디에 있겠는가. 육군 중장출신의 金중위 아버지가 30여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상대로 그토록 애타게 타살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끝내 외면당했을 정도이니 다른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군에 따르면 매년 각종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400여명에 이르며 이들 대부분이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자살의 경우 유가족들은 대개 사고 경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도 견디기 어려운데 재조사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려고 몇년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고생까지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군 의문사에 대한 이번 재조사로 유가족들의 의혹이 명백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군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자식들을 군에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군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사의 조사에는 민간 전문가와 유가족대표를 참여시켜 한점 의혹이 없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하기 바란다. 지금처럼 사고조사를 군에게만 맡긴다면 문책이나 복잡해질 뒤처리를 피하기 위해 손쉽게 적당히 처리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부대내 각종 비리 소상히 기록/金 중위 사망전 메모 노트 발견

    ◎‘탄약 은닉’ 등 전역병 진술과 일치 타살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金勳 중위는 지난 2월 숨지기 전 부대내의 총기분실·탄약은닉·음주사고 등 각종 비리를 메모식으로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金중위의 아버지 金拓씨(55·예비역중장)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훈이의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는 대학노트 1권에는 부대내의 각종비리가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면서 “소대장의 위치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당시 군기가 문란해졌음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노트에는 ‘총기 분실’ ‘탄(약)은닉 및 금기사건’, ‘총기장난,MP(헌병)체포’ ‘구타,동기끼리 때려’ ‘선임자 지적에, 선임자 멱살→소대 교체’ ‘초소근무지 총구 위협’ 등 군기 문란 행위가 89쪽에 걸쳐 적혀 있다. 이어 소대원들의 실명과 함께 ‘북쪽에 올라가기 12시간 전 음주’, ‘음주운전, 새벽 3시’라는 메모와 함께 ‘군복무규정을 지키지 않는 우리는 군인도 아니다. 우리는 거짓말쟁이다.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자책하는 메모가 영문으로 쓰여 있어 김 중위가 부대원들의 군기 문란 때문에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金씨는 “웬만한 비리라면 지휘관이 자신도 문책당할 수 있는데 노트에 이런 얘기들을 적어 놓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훈이가 부대내의 문제를 고치려고 혼자 고민하며 갈등을 빚다 반대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탄약은닉’이라는 메모만 봐도 ‘당시 실탄을 쏘다가 남으면 감춰두고 있었는데 어떤 때는 박스째 다량으로 보관한 적도 있었다’는 전역병의 진술과 일치한다”면서 “당시 부대 내에 많은 비리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씨는 “훈이가 죽은 뒤 전역병들로 부터 ‘군수품을 팔아먹고 나중에 남대문시장에서 보충했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군기가 엉망이었다”고 덧붙였다.
  • 군기문란 실상 노출 큰 충격/한국군 판문점서 北韓軍 접촉 파문

    ◎‘不法’ 알아낸 金勳 중위 피살 가능성/재수사 통해 연계 드러나면 파장 클듯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북한군의 대남심리전 요원인 ‘적공조’와 수시로 접촉,선물을 받고 술을 나눠 마시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군의 기강이 얼마나 해이해졌는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이 사건으로 지난 3일 구속된 金모중사(28)가 지난 2월24일 JSA내 벙커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채 발견된 金勳 중위(25·육사 52기) 아래서 부소대장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관심의 초점이다.국방부는 金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한 반면 유족은 타살이라고 주장해 왔다.앞으로 재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과 金중위 사망사건이 연계된 것으로 드러나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金중위가 병사들의 불법행위를 알게되자 ‘증거인멸’ 차원에서 金중위를 살해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혹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군 검찰은 불과 열흘전인 지난 달 27일 5개월여간에 걸쳐 정밀 재수사 결과 ‘金중위가 군복무에 대한부담감과 무력감 등으로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소속 부대원들의 군기강 문란행위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구속된 金중사 등 JSA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북한군 접촉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 사이에 중점적으로 이뤄졌다.그러나 이들은 지난 2월 북한군 적공조원이 귀순한 이후 이같은 불법 행위를 그만둔 것으로 밝혀졌다. 군 수사당국은 지난 3일 국회 국방위 金勳 중위 사망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에 출석한 전역병사가 이같은 사실을 증언한 이후에야 본격 수사에 나섰다. 지난 2월 귀순한 북한 적공조원에 대한 수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감지조차 못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1군단장을 거쳐 3군 부사령관으로 예편한 金중위의 아버지인 金拓 예비역 중장(55·육사 21기)은 ●권총에 金중위의 지문이 남지 않았고 ●오른 손잡이인 金중위의 왼손에서만 화약이 발견됐고 ●발사지점보다 위쪽에서 형성되는 탄착점이 金중위의 키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된 점 등을 들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 “72시간 장군” 군복 벗고 정훈공보관 발탁/姜浚權 예비역 준장

    ◎국방부대변인 능력 인정/예편 3일 앞두고 별단 진기록/임무는 소장급 직책 姜浚權 국방부대변인이 ‘지상 최고의 계급’(대령)에서 ‘하늘의 말단 별’(준장)이 됐다가 다시 일주일만에 사단장급(소장) 직책에 올랐다. 북한의 침투 도발사건 등 국방부의 주요 현안이 있을 때마다 TV 카메라 앞에 서서 묵직한 목소리로 국방부의 입장을 대변하던 ‘군인’ 姜대변인이 8일 민간인으로 변신,정훈공보관(별정 2급)에 임명됐다.국방부의 공보 및 정훈업무를 총괄하는 정훈공보관은 전임 朴모 소장을 비롯,주로 현역 소장이 보임돼 왔던 직책이다. 전북 익산출신인 姜공보관은 지난 67년 갑종 212기로 임관 후 줄곧 정훈장교로 복무하다 지난달 27일 군 생활 31년만에 육군 준장으로 진급했다.진급이전에도 정책부서의 과장급인 대령이었지만 千容宅 국방장관의 공보 참모로서 차관보급(중장) 이상만 참여하는 주요 정책결정 회의에도 빠짐 없이 배석해 발언하는 등 ‘중장급 대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또 국방부 청사 지하 1층에 있는 ‘장군 식당’에서 매일아침 열리는 조찬 간담회 등에도 어김 없이 자리해 주요 현안에 대한 홍보방향 등을 건의하는 등 장군 식당을 이용하는 유일한 대령이기도 했다. 千장관은 지난달 30일자로 전역 명령을 받은 상태인 姜공보관이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 때 보여준 탁월한 업무능력 등을 인정해 예편 3일을 앞둔 27일 극히 이례적으로 특별진급을 상신,‘72시간 장군’의 영광을 선사해 화제가 됐었다. 姜공보관은 지난 10월22일 장군진급 내인가를 시작으로 진급 결정(10월25일),진급 및 보직인사(11월27일),대통령표창(11월28일),장군 전역신고(11월30일),정훈공보관 보직(12월5일) 등 1개월17일만에 모두 6번에 걸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육본 정훈감실 기획담당과 1군사령부 정훈공보실장,합참 공보실장 등을 두루 거친 정훈공보통인 姜대변인이 앞으로 열린 국방의 시대를 헤쳐가는데 얼마나 기여할 지 주목된다.
  • 한나라당 부대변인집 강도/부인 흉기 찌르고 달아나

    27일 낮 12시25분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1동 미주아파트 2동 1411호 한나라당 張光根 부대변인(43) 집에서 예비군 복장을 한 20대 남자가 張씨의 부인 姜錫珠씨(42)를 주먹으로 때리고 흉기를 휘두른 뒤 달아났다. 姜씨는 “문을 열어놓고 옆집에 잠시 다녀와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예비군복 차림의 20대 초반의 남자가 뛰어나오면서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리고 흉기로 턱을 찔렀다”고 말했다.
  • 활짝 열린 금강산 뱃길­이모저모

    ◎“구룡폭포 물줄기 하늘서 쏟아지는 듯”/북,관광객 점심식사 장소 제공/3개조 나눠 코스별 등반/민간인 첫 통화 1분37초 ●금강산 관광 첫날인 19일 장전항의 기온은 영하 1도로 당초 예상보다 따뜻했다.오후들어 기온은 영상 6∼7도로 오르며 관광하기에 안성마춤인 맑고 쾌청한 날씨를 보였다. ●18일 오후 5시30분 동해항을 출발한 금강산 관광선은 19일 오전 7시30분쯤 장전항의 임시계류장에 무사히 정박.오전 9시부터 30여분간 입북 수속을 마친 관광객들은 구룡연,만물상,해금강 등 3개 관광코스로 나뉘어 버스에 타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버스는 현대가 미리 북한에 보낸 것으로 이날 35대가 운행됐다. 관광객들의 점심은 코스별로 마련된 식당에서 현대측이 준비한 보온도시락(반찬 4가지)으로 해결.북한측은 구룡폭포코스는 목란관,만물상코스는 금강산호텔,해금강코스는 단풍관을 식사장소로 제공하고 물과 국을 나눠줬다. 만물상코스에서 일부 연로한 관광객들은 등산을 포기,버스에서 비디오를 시청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도.관광을 마친관광객을 태운 첫 버스가 오후 4시30분쯤 유람선에 도착해 오후 6시에 모든 관광객들이 승선을 완료. ●소설가 이문열씨는 구룡폭포를 다녀온 뒤 전화로 ‘역시 절경이었다”며 “설악산이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고 소감을 피력. 그는 또 아홉마리 용이 서로 싸우다가 쫓겨가 숨었다는 전설이 담긴 이 폭포는 “두개의 커다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면서 “좌우로 붙어있는 얼음과 함께 장관을 이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금강호로 돌아오는 길 양 옆에 있는 철조망과 군복차림의 사람들은 낯선 이국땅이라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고 지적. ○정 명예회장 북 인사 접촉 안해 ●북한측 고위인사의 재접촉 가능성 때문에 언론의 촉각을 곤두세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관광을 가지 않고 금강산 초대소에서 하루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장전항 도착 이후 가장 먼저 하선한 정 명예회장이 조선아태평화재단 황철 감사관의 영접을 받았으며 다른 북한측 인사와는 접촉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고 전언. ●금강산관광 첫 날 일정을 무사히 마친 현대측은 북측과 실무회의를 갖고 관광불편사항을 점검.이날 만물상으로 가는 도로가 일부 얼었다는 지적에 따라 19일 밤 북한과 현대 양쪽 근로자들이 투입돼 모래 등을 뿌렸다. ●순수한 관광을 조건으로 내건 북한측은 우리쪽의 일부 취재진이 점심을 먹다 식당봉사원들과 대화를 시도하자 즉각 제지.기자들은 이후 관광코스로 이동하면서 만나는 북한 주민들과 끈질기게 접촉하려 했으나 번번이 북한지도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북 주민과 접촉 제지 ●북한의 입국거부자 숫자를 놓고 현대그룹의 PR사업본부와 대북사업단이 집계한 숫자와 거부경위가 서로 틀리는 등 오락가락해 한동안 혼선. PR사업본부측은 금강호에는 24명이 남아있으며 KBS기자 15명,조선일보 기자 5명,통일부 관계자 4명이라고 밝혔다.또 KBS기자 15명 가운데 4명이 배에서 무단하선,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조사받고 있으며 이들의 거취는 아직 알수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현대 대북사업단은 입국거부자로 분류돼 배에 잔류해 있는 인원이 20명이며 KBS기자 4명은 거부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아 관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최종 확인. ●금강호에 남아 있는 인원은 총 25명으로 확인.이 가운데 애초부터 하선이 금지된 금강호 호텔지배인과 러시아 여성무용수 4명 등 5명을 제외한 언론사관련자는 20명.승선이 거부된 KBS관계자 11명 가운데는 ‘사랑의 리퀘스트’팀 5명이 포함돼 있는데 이중에는 원로 코미디언 송해씨도 있어 눈길. 현대측에 따르면 송씨는 북한측에 제출한 신청서의 직장난에 KBS라고 기재,억울한 잔류자가 됐다고. ○20일 671명 떠나기로 ●관광객들은 북측 영해에 들어서기 전까지 선내에 마련된 공중전화 4대를 이용,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다.장전항 입항부터는 4개 회선의 국제전화를 통해 남쪽 가족과 통화. 처음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전화를 한 관광객은 黃규연씨(68·동아수산회장·서울 송파구 문정2동)로 밝혀졌다.黃씨는 19일 오전 8시58분쯤 장전항에 정박 중인 금강호에서 온세통신 교환원을 통해 서울에 사는 아들 黃인성씨(49·동아수산사장)와 1분37초 동안 통화.이날 통화는 분단이후 50여년만에 민간인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이뤄진 것. ●20일 출항하는 현대봉래호의 승선인원은 관광객 671명,관광안내원 34명,승무원 288명 등 모두 1,011명.봉래호에 승선할 내·외신 취재진은 88명으로 주로 잡지·지방지 기자로 구성됐다.입북거부 소동을 빚고 있는 조선일보는 출판국 기자 4명이 들어갈 예정이며 KBS는 신청하지 않았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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