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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기수의 신부(新婦)-그 여자의 15년

    무기수의 신부(新婦)-그 여자의 15년

    무기징역을 받고 옥살이하는 남편을 찾아 교도소 문턱을 드나들기 15년. 산천도 변해버린 오랜 세월이었지만 꿈을 되찾으려는 「열녀」의 고행(苦行)은 변함이 없었다. 서울영등포교도소 기결수 1329호의 아내 장일자(張一子)여인(39·가명). 신혼생활 1개월만에 살인, 사체유기라는 끔찍한 죄명으로 남편 최상희씨(42·가명)가 수감된지 15년, 이미 가버린 젊음이었지만 장여인의 강한 의지와 사랑의 불길은 남편 최씨가 받게된 감형(減刑)과 귀휴(歸休) 은전으로 딸 희자(熙子)양(생후 5개월·가명)을 낳게되자 더욱 타오르고 있다. 교도관들은 물론 1천여명의 재소자들마저 망부석(望夫石)이라고 부르는 장여인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 15년전인 1955년 4월 29일 당시 K대학 3학년이던 최씨는 가정불화로 1년동안 학교를 나오지 못했던 급우 이모씨가 복학운동을 부탁하며 준 교제비 1만1천5백환(구화)이 탐나 이씨를 죽인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이 분석한 살인동기는 6·25동란 당시 S의대 1학년이던 최씨가 피난길을 전전하다가 8240부대에 입대, 18개월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K대에 복교했으나 가정형편으로 등록금을 낼 수 없었고, 군번없이 군복무를 했기 때문에 징집연기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급우 이씨를 죽이고 돈을 빼앗았다는 것. 최씨는 사고가 난 날, 심한 가정불화로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이씨로부터 복학운동을 부탁받고 스승인 안(安)모 교수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한 뒤 이씨의 청에 못이겨 술병을 사들고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신세타령이 섞인 술잔을 나눴다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 학교로 내려오는 길에 최씨는 술에 취해 벗어던진 최씨의 웃옷을 주워 들고 뒤늦게 내려와 보니 이씨가 길가에 있는 깊이 3m의 우물속에 빠져 죽어있었다고 말했다. 검시결과 이씨가 추락사한 것이 아니라 외상(外傷)으로 보아 심한 타격을 받아 죽은 것으로 나타나 최씨는 살인범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대법원 판결이유와 함께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이가 사람을 죽였다니…그럴수가…』-어릴때 소꿉친구였던 남편을 생각하며 장여인은 결혼 1개월만에 살인자의 아내가 돼버린 엄청난 비극앞에 몸부림쳤다. 고향인 충북음성에서 소꿉동무로 자라던 두사람이 헤어진 것은 최씨가 11세때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게 됐을때였다. 6·25동란뒤 군복무를 마친 최씨가 고향에 내려가 여고(女高)를 졸업한 장여인을 만났을 때 장여인은 보랏빛 꿈을 꾸던 24세의 아리따운 처녀였다. 무기징역을 받은 남편-그러나 남편에 대한 사랑의 힘은 무엇보다 강했다. 여필종부의 낡은 관념때문도 아니었다.『비록 같이 살지는 못하더라도 남편이 살아 있는 한 내가 바치려는 정(情)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면회날이 되면 장여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최씨를 찾아 위로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던 최씨가 장여인의 면회를 거절한 2년동안 장여인은 매일같이 교도소 정문을 찾아 비참해 있을 남편을 마음속으로 위로하며 눈물로 날을 보냈다. 「살아있는 망부석」-2년동안 장여인의 정성을 지켜보던 교도관들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 나오게 된 말이었다. 지난 60년 10월, 당국의 특별감형혜택을 받아 형기가 20년으로 줄자 장여인은 벅찬 기쁨에 최씨를 부둥켜 안고 울음을 그칠줄 몰랐다. 5년전 늙은 시부모를 모시고 벅찬 생활속에 폐결핵에 걸린 장여인은 남편과 면회를 할때마다 나오는 기침을 감기 때문이라고 속였다. 어느날 장여인은 남편앞에서 끝내 피를 토하고 실신했다가 깨어난 적이 있었다. 복역중인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끼쳐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지만 오랫동안의 번민으로 몸이 쇠약해져 버렸던 것이었다. 아내의 지성에 감동한 최씨는 그동안 자포자기하던 마음을 버리고 새삶의 의욕을 보이기 시작, 지난 67년 7월 1일 재소자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새싹상」을 받은 1급 모범수가 되었다. 68년 6월 17일 5·16혁명의 은전인 귀휴시행규칙(현형법제44조)에 의해 장기복역수로는 처음으로 5일간의 휴가를 맡아 사회구경을 하게 된 최씨는 두 어깨를 마음껏 젖히며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토록 오랜 기간을 기다리던 아내 장여인과 함께 잠시나마 교도소를 떠나는 이들 부부에게 1천여명의 재소자와 교도관들은 갈채를 보내며 부러워했다. 복역수에 대해 좀처럼 없는 귀휴조치가 모범수 최씨에게 내려지자 다른 장기수들도 활기를 띠며 성심껏 일하게 됐다. 최씨가 2차 귀휴를 받은 지난해 4월, 장여인은 바라던 임신을 하게 되었으나 3개월만에 유산했다. 지난해 4월초 장여인은 산부인과 의사의 진찰에 따라 수태기일을 맞춰 찾아가 마지막으로 호소했다. 늙기전에 혈육을 하나 보게 해달라는 장여인의 눈물어린 호소에 교도소장 최형수(崔亨洙)씨는 최씨의 당일귀휴를 허락했다. 지난 1월 21일 장여인은 그토록 원하던 예쁜 딸 하나를 낳았다. 경사를 전해 들은 교도소안에서는 보기 힘든 인정에 모두들 흐뭇해 했다. 딸이 백일을 맞은 지난 5월 1일 장여인은 푼푼이 모은 돈으로 백일떡을 마련, 1천여명의 재소자들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교무과장 허병_(許炳_)씨(50)는 『20년만에 처음 맛본 보람스런 모습이었다』면서 감격했다. 최씨의 형기종료일은 76년 3월 19일. 교도소장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은 형량의 3분의1이 지난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가석방 은전(형법 제 72조)이 하루 빨리 최씨에게 찾아오기를 안타깝게 바라고 있다. 우홍제(禹弘濟)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6월 7일호 제3권 23호 통권 제 88호]
  • “개헌·복무단축 중단”

    예비역 장성 모임 성우회는 26일 서울 신천동 재향군인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개정과 군복무기간 단축, 전시 작전통제권 단독행사 등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정부측에 요구했다. 전직 군 수뇌부의 이름으로 정부 정책 전반을 비판하는 사실상의 ‘시국선언’을 발표한 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들은 ▲북한 핵폐기 촉구 ▲전작권 환수 논의 중단 ▲군복무 단축 연기 ▲개헌 등 국론분열행위 중단 ▲남북정상회담 추진 중단 등을 정부측에 요구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초대석] 군의관 출신 첫 3성 장군 김록권 의무사령관

    “어머니 앞으론 저를 장군님이라 불러주세요.”천신만고의 경쟁 끝에 별을 단 아들이 감격에 겨워 어머니께 했다는 얘기라고 한다. 별을 다는 순간부터 신분은 장관급 장교가 된다. 별을 달기 전보다 대우가 몇십가지는 달라진다고도 한다. 김록권(53) 중장. 별이 세개인 의무사령관이다. 지난해 12월1일 의무병과에서는 최초로 3성 장군에 올라 관심을 끈 인물.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사건 등 줄이은 군의료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뒤라 3성장군의 탄생은 정부의 강력한 군의무 개선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그는 군 안팎에서 철저한 업무는 물론 독특한 개인적 소신과 실천으로 더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경기도 분당의 육군 수도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김 사령관은 소문대로 그가 왜 창군 이래 의무병과로는 첫 3성장군이 됐는가를 웅변했다. 그의 요즘을 요약한다면 두 가지 전도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군 의료에서 가장 취약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군의관 직의 매력을 전하는 ‘군의관 전도사’. 또하나는 사생활 측면에서 문자 그대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한 종교적 전도사다. 먼저 군의관 관련 질문부터 해보았다. -현재 군 의료인력은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단기 군의관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병사들이 거의 실습 수준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단기 군의관이라고 해도 의사 자격을 가지고, 소정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상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현재 직업적으로 일하는 장기 군의관은 전체 군의관 중 3%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정원의 25%밖에 채우고 있질 못합니다. 국·공립 병원의 58% 수준에 머물고 있는 보수체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고급인력을 군에 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군의무발전추진계획’에 따라 대우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올해 ‘군의관 임용 등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해서 2008년까지는 국·공립병원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우를 높이겠습니다. 또 우수한 인력 선점을 위해 국방 의·치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미 각 의학대학원에 정원 외 40명을 더 뽑아 미래의 군의관으로 위탁교육한다는 데 합의가 돼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사로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것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부족할 뿐이지 일반사회에 못지 않은 지위와 명예, 보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군에서는 장군으로 승진할 수도 있고, 대규모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가와 국민 전체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데서 느끼는 보람도 특별합니다.” 군의관이라고 누구나 다 장군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했더니,“현재도 정원의 75%가 부족한데 무슨 큰 걱정이냐.”며 내년부터는 의무병과의 장군 숫자가 현행 4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게 돼 문호는 더 넓어지는 것이라고 정색을 한다. 사실 김사령관은 앉은 자리에서 계급만 3성장군이 된 것이 아니다.‘군의무발전 추진계획’에 따라 앞으로 의무사령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의무사령관은 16개 군병원을 관장하는 ‘의료원장’격에 불과했다. 반면 병사들의 의료 불만이 주로 발생하는 야전은 각 군에 속해 의무사령관의 소관 밖에 있었다. 이번 승급은 다원화된 의무지휘 체계를 단일화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의무사령관이 국방부 의무본부장이 돼 육·해·공군 의무를 통합 관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무병과 장군 숫자도 6명 늘게 됐다. -전반적인 군 감축추세와 안맞는 것 아닙니까. 저항도 있을텐데요. “일단 군의무를 단일화하는 것은 미국만 예외지 세계적 추세입니다. 또한 의무 강화는 국민적 요구입니다. 국가가 무기 획득에만 치중하고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인 병사의 건강에는 소홀하다면 계산이 잘못된 것이지요. 그러나 병과가 커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 역풍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김 사령관은 이 대목에서 언론의 보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군의무발전계획’의 핵심은 병사의 의료접근권 보장인데 언론은 3성장군 배출이나, 국방의학대학원 신설 등 조직적 측면만을 주목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군 의무체계가 단일화되면 2500명의 군의관을 효율적으로 배치해 1차의료를 자유롭게 받고, 후송체계를 통해 군병원에서 고급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군인복무기본법에 의료접근권 보장도 명기하도록 했다. 과도기 대책으로 민간서비스 연계, 군야간병원 운영 등도 시행에 들어갔다. -군 의무발전 추진계획은 올해부터 7년간 총 1조 3000억원이 소요되는데 첫해 예산 1200억원은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올해는 제도 개선과 장비 등에 역점을 두고 있으므로 적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군 병원의 기초진단 및 검사장비 보강, 중형 구급차 및 환자수송 전용버스 구매, 전역전 건강 검진물자확보, 전방사단 의무시설 환경개선 등이 우선 착수됩니다. 의무발전계획은 어떻게든 실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군병원에 대해 신임평가를 받겠습니다. 민간병원들처럼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 주관의 병원평가를 받는 겁니다. 내부에서는 반대가 많지만 잘 나오면 잘나오는 대로, 못나오면 못나오는 대로 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 이야기는 사적인 주제라 공개적으로 거론할 부분은 못된다. 그러나 김사령관의 경우 군 투신 자체가 선교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기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군생활 중 종교를 갖게 됐다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습니까. “의대 졸업하고 결혼한 뒤 5년 동안 아내를 시집살이 시켰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따면서 처음 살림을 나갔는데 그동안 고생을 보상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싶어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게 된 겁니다.” 장기 군의관으로 눌러앉게 된 종교적 개인체험은 공개하기 뭣하지만, 종교적 신념은 그 후 군과 가정생활을 끌어가는 버팀목이 돼 주었다. 무의촌 진료를 나가 주민들과 옥수수를 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때나 승진에 누락돼 낙심했을 때, 이런 신념이 함께 있었다. 무엇보다 서울 강북에 살며 사교육도 제대로 못받았던 자녀들이 바르게 커준 것도 이런 실천적 삶의 영향이 컸던 듯하다. 아내는 지금껏 매달 월급날이면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에게 한달 동안 수고하셨다며 절을 하도록 하고 자신도 함께 인사를 한다. 김 사령관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며 주말에도 골프모임보다는 가족을 선택할 정도로 가정적이다. 그렇게 자란 장남이 지금 신학대학 4학년생이다. 김 사령관은 주변을 밝게 하는 얼굴을 가졌다. 중년 이후의 얼굴은 그의 삶을 말한다고 한다. 그의 긍정적 힘이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의 걱정을 가시게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yshin@seoul.co.kr ■ 김록권이 걸어온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와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했다.6남매 중 다섯째로 대식구였지만 가정형편은 넉넉지 못했다. 부친은 전당포를 자주 들락거릴 정도였다. 의대생일 때 형과 누나까지 집안에 대학생이 셋이었다. 부친이 학자금 대출을 위해 여기저기 보증인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덕분에 본과 1학년 때부터 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졸업 후 입대해 7년을 군의관으로 근무했다. 의무 복무기간을 지난 후엔 전역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업 군의관의 길을 택했다. 이유는 군복무 중 갖게 된 신앙 때문이었다. 군 선교를 필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1990년 국군 현리병원 원장을 시작으로 창동, 부산, 서울지구, 대전 등 전국의 국군병원에서 근무했다. 가는 근무지마다 화장실을 짓고, 교회를 세웠다. 주말엔 무의촌 진료, 여름휴가 땐 해외봉사활동을 다녔다. 국군군의학교장, 육군본부 의무감을 거쳐 2005년 11월 의무사령부 사령관에 취임했다. 사령관 취임 다음해인 2006년 1월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 12월1일 중장으로 진급을 거듭했다. 진급속도도 초고속이었지만, 의무병과 사상 최초의 3성 장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얼핏 순탄하게 출세가도를 달려온 것 같지만 시련도 있었다. 이른바 잘나가는 보직을 벗어나 갑자기 외곽으로 돌려졌고, 동기생보다 진급이 뒤처지기 시작했다. 장성 진급이 2년이나 늦어 이젠 옷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상황까지 몰렸다. 갈등하기도 했지만 ‘소명의식’으로 버텼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군 최초로 ‘군의무비전 2015’를 입안한 것이 전화위복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군의무비전 2020’을 세웠고, 고 노충국씨 위암 사망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끓을 때 의무사령관에 올라 ‘군의무발전 추진계획’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었다.
  • 병적증명서 인터넷 발급 확대

    병무청은 1989년 이후 전역자에 한해 실시해온 병적증명서 인터넷 발급서비스를 1982년 이후 전역자로 확대한다고 24일 밝혔다. 이에 따라 1982∼1988년 군복무를 마친 사람도 읍·면·동사무소나 병무청을 찾지 않고도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에 접속, 공인인증을 받으면 손쉽게 증명서를 뗄 수 있게 됐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특별하區 ★나區] 캠퍼스 분위기 물씬 ‘실버들의 아지트’

    요즘 들어 자꾸만 노년이 기다려진다. 어이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정말 그렇다. 되돌릴 수 없는 청춘의 한 때를 그리워하는 대신 앞으로 다가올 제2의 황금기를 멋지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송파구 삼전동의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 첫발을 내디딘 그 순간부터 난 은발의 멋진 신사를 동경하게 됐다. 노인들의 사랑방을 예상했던 내게 시끌벅적 활기 넘치는 복지관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깔끔한 강의실에서는 다양한 강좌가 진행되고, 각종 스터디 그룹과 동아리 회원들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유창한 회화실력을 뽐내는 외국어교실 수강생들, 춤 삼매경에 푹 빠진 춤사랑동아리 회원들, 어르신 컴퓨터 경진대회를 대비해 막바지 연습에 들어간 컴퓨터교실 멤버들…. 대학 캠퍼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모습이었다. 특히 3층 홀에 놓인 당구대를 사이에 두고 큐를 잡고 빙 둘러선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무척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포켓볼을 가르치는 강사 역시 75세의 할아버지였으니…. 젊은 시절 미8군에서 군복무를 하며 배운 포켓볼로 지금은 멋진 노년을 보낸다는 할아버지 강사님의 시원스러운 샷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깊게 패인 주름살만 아니라면 누가 그들을 노인이라 부를까. 현재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스포츠댄스·차밍디스코 등 건강프로그램과 컴퓨터·외국어·문학 등 교양프로그램, 판소리·클래식기타 등 총 82개다. 여기에 영화상영·문화공연·동아리축제 등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문화 행사는 복지관 어르신들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큰 인기다. 5000∼1만원의 재료비가 드는 심화학습반을 제외하고는 전 강좌가 무료이다.65세 이상이라는 연령 조건과 점심값, 차비만 있으면 이곳에서 하루 종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은퇴 후 자원봉사로 참여한 강사들도 많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 모두가 친구다. 그야말로 이곳은 ‘실버들의 아지트’다. 늙으면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그리워진다는데, 대문만 열면 수많은 친구와 신나는 하루가 기다리는 이곳이 있으니 나는 이미 즐거운 노후를 보낼 최고의 공간을 확보한 셈이다. 내가 꿈꾸는 실버 라이프(silver life). 그 날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노년을 기다린다.
  • [부고]

    ●이계진(한나라당 국회의원)계돈(자영업)씨 모친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02●조중표(외교통상부 제1차관)중길(재미 사업)중근(세네스 연구소 부소장)중찬(한국타이어 차장)씨 모친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92-0499●박종대(사업)종성(공정거래위원회 재정협력팀장)종근(동관 남양전자 대표)종득(푸른쥬 〃)씨 모친상 이원훈(사업)배성기(〃)씨 빙모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3410-6910●이석희(동남아해운 대표)윤희(삼성카드 부장)씨 부친상 이장희(김천소방서 소방행정과장)씨 큰아버지상 오주식(선일하이텍 대표)장우석(주한미군 군무원)씨 빙부상 20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53)956-4448●유광사(유광사여성병원장)병환(자영업)씨 모친상 어영효(서울지방중소기업청 서기관)씨 빙모상 유상욱(미국 하버드대 의과대 연수)상훈(사업)상희(테크필피부과 원장)씨 조모상 21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2)2650-2742●배기룡(효성 필름PU장)기성(경성대 해양토목공학과 교수)기영(피엔피경영컨설팅 대표)씨 모친상 김영명(초원약국 대표)전운기(중앙노동위원회 사무국장)씨 빙모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2)3410-6909●이선용(웅진코웨이 연구소 부장)호용(마리아병원 기획실 차장)민용(하이닉스반도체연구소 주임연구원)씨 모친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3010- 2235●윤재영(사업)수영(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과장)씨 모친상 최근성(시흥교회 목사)씨 빙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6시 (02)3010-2238●한현수(성일화학 대표)씨 별세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3●김영탁(대성엘텍 대표)병탁(사업)경탁(미국 거주)씨 모친상 박수성(동아대 이사)씨 빙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233●이동근(전 삼환빌딩 회장)씨 별세 남성(삼환빌딩 대표)남양(LG필립스 상무)남석(대한방직 부사장)씨 부친상 김백균(자영업)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8시 (02)3410-6912●손완표(한신대 교수)찬표(자영업)씨 모친상 고홍식(삼성토탈 사장)김형석(김형석외과의원 원장)씨 빙모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2일 오전 7시 (02)3410-6916●이봉식(전 국정원 국장)씨 별세 이재영(파주 예술마을 헤이리 도도헌 관장)씨 상배 이승진(군복무중)유진(회사원)씨 부친상 21일 경기 일산 백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31)902-4444●이장훈(전 한국일보 주간한국 부장)중훈(인천지검 부천지청장)광훈(EN페이퍼 해외영업팀 차장)태훈(변호사)씨 부친상 20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590-2697●김영균(하나은행 고대병원지점 차장)영석(알리안츠생명)영주(유니텍피아이)씨 부친상 21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3일 8시 018-722-2512●김상철(울산지방경찰청 공보담당관실 공보주임)씨 부친상 20일 부산 동구 인창병원, 발인 22일 오전 10시 (051)464-5345
  •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이순신표 거북선 곧 복원·공개”

    415년 전에 제작된 거북선(귀선·龜船)에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 십중팔구는 용머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거북머리가 아닌 용머리를 달았을까.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 1592년 6월14일)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의 변란을 염려하여 전선과는 다른 거북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물에는 용의 머리를 달고, 그 아구리로는 대포를 쏘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이가 천년을 살면 용, 즉 ‘신귀’가 된다는 이야기(龜變化神龜)가 있다. 아울러 조자용씨가 소장한 ‘귀선도’에 보면 “신귀는 사신(四神)과 사령(四靈)에서 한자리를 차지해 벽사와 길상의 상징이 되어 용왕의 사자로서도 큰 임무를 맡았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거북선에 용머리를 단 것은 신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통 한선(韓船)기능 전승자로 국내 유일한 고대선박 연구가 이원식(73)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소장. 백제 사신선, 통일신라 교관선, 고려 완도선 등 지난 42년동안 36건의 고대선박을 연구·복원제작해 이 방면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거북선박사 1호’라는 공식명함을 하나 더 추가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새로운 영역을 쌓았다. 지난 달 실시된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심사에서 그가 제출한 논문 ‘1592년 귀선의 주요 치수 추정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 학위수여식은 오는 2월21일.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발표한 연구논문의 내용이다.2006년말 현재 역사 서적이나 교과서 등에 게재돼 있는 귀선도(龜船圖)나 정부 기관에 전시된 모형선은 ‘1795년식 거북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1592년 이순신 수군절도사가 창제한 거북선이 아니라 203년이 지난 1795년(정조19년) 규장각에서 편찬한 ‘이충무공 전서’의 ‘귀선지제’에 근거해 만들어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따라서 1592년에 일본군의 침략전쟁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1592년식 거북선’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아 연구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소장이 연구한 대목이 바로 이 ‘1592년식 거북선’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연구의욕으로 400여년 전의 베일을 어느정도 벗겨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지난 1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찾았다. 강아지 세마리가 먼저 나와 꼬리치며 낯선 방문자를 맞이한다. 현관 입구에는 ‘한선 기능 전승자’‘원인고대선박연구소’라는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때마침 그는 1592년식 거북선의 복원작업을 위한 설계도, 즉 선체 선도(線圖)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선 1592년식 거북선이 1795년식 거북선과 다른 점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첫번째는 크기나 규모면에서 1795년식에 비해 전체적으로 30%정도 작은 것이 특징. 따라서 선체 전장의 길이가 1795년식(34.05m)보다 7m가량 작은 26.27m이고, 선체 선폭은 1795년식(9.15m)보다 1.9m 좁은 7.06m라는 것. 배 밑창에서 갑판까지의 깊이 또한 1795년식의 2.34m보다 다소 낮은 1.92m라고 설명했다. 두번째로는 대포의 포혈.1592년식의 경우 좌우측 각각 6개씩의 포혈이 있는 반면 1795식은 이보다 더 많은 10개씩이다. 또한 1592년식에는 없는 소구경포혈이 1795년식 거북잔등 부분에 설치돼 있다. 특히 용머리의 경우 1592년식은 대포를 발사했으나 1795년식은 유황염초를 피웠다고 했다. 아울러 1795년의 용머리 배치가 90도로 꺾인 반면 1592년식은 이보다 완만한 30∼40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 1592년식에는 거북잔등에 창을 꽂아 적이 오르지 못하도록 했으나 1795년식은 거북그림을 그려넣었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라고 이 소장은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의 근거에 대해서는 “1592년 당시 이순신 수군절도사의 일기와 장계, 조선왕조실록, 비변사등록 등 관련 전적(典籍)에 기록된 거북선의 주요수치와 기타 선박 관련자료 등을 참고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그동안 대한조선학회지 등에 발표한 거북선 관련 선행 연구논문을 활용했다. 특히 전통한선의 제1번 기본치수가 되는 ‘1592년식 거북선의 저판치수자료’ 7건을 발굴했으며 이것이 1592년 거북선 주요치수 연구의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1592년식 거북선은 언제 복원될까. 이 소장은 현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에서 ‘한국 전통선박 복원 조사연구’ 프로젝트(책임연구원 민계식 부회장)의 사외연구원으로 몸담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전통 고대선박 복원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1795년식 거북선과 조선통신사선 등 정밀모형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소장이 현재 1592년식 거북선의 선도 및 공작설계도 작업을 마무리 중이서 이르면 올 봄 실험용 모형정도는 언론에 공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거북선연구에 대한 논의는 1958년 숭실대 최영희 교수의 ‘귀선고(龜船考)에서 처음 대두되었으며 1964년을 전후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소장 역시 이 무렵 한강유역과 서해안 및 남해안의 전통 한선의 조선기법을 채록하면서 고대선박 연구에 뛰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공고 4학년때 6·25가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공군사관학교 조종간부후보1기로 군복무를 마쳤다. 제대후 제약회사인 ‘한국화이자’에 기계담당 공무직으로 1963년 입사했지만 고대선박 연구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1965년에 ‘국방사학회’에 가입한 뒤 그해 첫 논문인 ‘귀선의 과학적 연구’를 발표했다. 내친 김에 ‘원인(元仁)고대선박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를 설립했다. 1969년에는 은사로 모시는 김재근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작고)와 함께 아산 현충사에서 최초의 거북선 복원작업에 들어갔다.1971년에는 인천대림조선소에서 처음으로 원형의 2분의1 1795년식 거북선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북선은 극영화 ‘이순신’(김진규 감독)에 등장했다. 이후 거북선 복원에만 10여차례, 신라시대 전선(戰船), 장보고 무역선, 백제 사신선, 완도 고려선, 조선통신사선 등 30여 척의 고대선박을 복원, 박물관 등에 전시했다. 아울러 ‘한국의 배’‘고대선박 발달사’ 등 4권의 저서를 냈고 논문은 수십편을 발표했다. 그는 뒤늦게나마 정식 학위를 취득하려고 검정고시와 독학사 과정을 거친 뒤 2002년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집념을 보였다.2004년 석사 학위 논문이 통과되자 곧바로 박사과정을 밟았고 일주일에 2∼3일씩 부산과 용인을 오가며 노력한 끝에 이번에 그 결실을 보았다. “앞으로는 기존의 1795년식 거북선은 1592년식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하고 이에 따른 후속 작업은 매우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잘못 알려진 우리의 전통 한선에 대한 수정작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해요.” 주말마다 찾아오는 손자손녀들을 만날 때마다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4년 서울 출생 ▲50년 경기공고 4년 재학때 학도병 입대 ▲65년 원인고대선박연구소 설립 ▲69년 문화공보부 현충사 귀선 고증위원 ▲85년 한국과학사학회 정회원 ▲92∼96년 해군사관학교 해저유물발굴단 자문연구위원 ▲98년 대한조선학회 정회원 ▲2001년 독학사 검정고시 합격, 한국해양대학 장보고연구소 연구원 ▲04년 해양대 공학석사 ▲06년 공학박사 # 주요 상훈 전통한선기능 전승자(노동부장관 지정), 대통령 표창(01년, 한선기능전승 유공) 등 # 주요 작품실적 현충사 거북선(69년), 중앙정보부·해군사관학교 거북선(71년), 미국EXPO 거북선(84년) 등 수십여 작품. 그외 장보고 전선, 조선통신사선, 완도 고려선, 신라 교역선, 백제사신선, 통나무쪽배 등 30여 작품제작
  • [오늘의 눈] 軍과 파킨슨의 법칙/이세영 정치부 기자

    ‘파킨슨의 법칙’이란 게 있다. 공무원 수는 직무량에 상관없이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밥그릇 지키기엔 열심이면서 조직쇄신엔 게으른 관료조직의 생리를 꼬집는 용어다. 종전(終戰) 후 조직의 덩치를 불리는 데 치중했던 군의 처지에선 새겨들을 구석이 적지 않다. 국방연구원이 군복무를 15개월로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2년 전 국방부에 보고했다는 기사<1월3일자 1면>를 내보낸 뒤 전화공세에 시달렸다.“보고서는 2년 전이 아닌 3년 전에 나왔고,15개월로 단축이 가능하다는 진단도 대체복무 폐지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연구원 관계자부터 “연구진 견해일 뿐 우리와 무관하다.”는 국방부 관계자까지 한결같이 ‘잡아떼고 보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2005년 2월’이란 발행월이 선명한 보고서 어디에도 대체복무 폐지를 전제로 복무단축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내용은 없다. 직속 연구기관이 펴낸 공식 연구보고서를 자신과 관계없다고 강변하는 국방부 반응도 궁색하기만 하다. 병력수급 차원만 고려한 것이라지만, 복무기간을 지금보다 최장 9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다는 국방연구원의 진단은 병 자원이 부족해 복무단축이 어렵다는 일부 주장을 무색케 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복무단축안을 마련 중이라는 청와대 발언이 나온 뒤 몇몇 언론을 통해 “전력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일방적 견해만 소개된 터라 독자의 알 권리 충족 차원에서도 요긴한 정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국방부가 몸을 사리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복무단축 불가론’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대폭적 복무단축이 가능하다는 내부 진단에 대해 발뺌부터 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 가뜩이나 구조개혁에 대한 저항이 강한 곳으로 소문난 군 조직이다. ‘선진정예강군’으로 거듭나려는 군의 노력에 기대를 걸었던 기자로선 이번 국방부의 반응이 ‘파킨슨의 법칙’과는 무관한 무의식적 ‘방어본능’의 표출이라 믿고 싶다. 정치부 기자
  • 美마이너리거 김일엽 롯데 입단

    프로야구 롯데는 4일 미국프로야구 필라델피아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우완 투수 김일엽(27)과 신고선수로 계약했다. 조건은 계약금없이 연봉 2000만원이며, 해외파 선수로는 11번째다. 김일엽은 지난달 22일 사직구장에서 실시된 테스트에서 145㎞의 빠른 공과 날카로운 포크볼을 선보여 코치진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11월 방위산업체에 들어가 군복무 중이며 오는 31일 제대한다. 당당한 체구(191㎝,106㎏)의 김일엽은 경북고를 졸업하고 단국대 4학년이던 2001년 계약금 85만달러로 필라델피아에 입단했다. 2년간 마이너리그 싱글A 34경기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3.42의 성적을 냈다. 그러나 오른쪽 어깨 회전근 파열로 2003년 5월 방출됐고 한국으로 돌아와 재활 훈련에 매달렸다. 지난해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어떤 구단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김일엽은 “이제 부상 걱정은 없다. 야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하며 신고 선수의 1군 등록이 가능한 7월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총보(1∼170) 이 바둑은 11월13일에 두어졌다. 그런데 김효곤 4단은 그 다음날 입대 예정이었다.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부대에 배치될 것을 감안하면 이 바둑을 이기더라도 그 다음 판을 둘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따라서 승부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료기사들은 이 바둑에 대해서 “김효곤 4단이 져주기로 하고 뒀지.”하고 진동규 3단에게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프로기사들 중에는 승부에서 일부러 져주는 프로기사는 한명도 없다. 혹시 대국 전에는 그런 마음을 먹었더라도 막상 대국에 임하게 되면 절대로 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기사이다. 즉 바둑에 전념하는 순간에는 바둑수 이외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즉 져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 바둑에서도 김효곤 4단은 초반 포석에서 약간 우세하게 앞서 나갔다. 흑59라는 패착을 두기 전까지만 해도 바둑은 흑이 유리했다. 그러나 한수의 패착으로 우변에서 쫄딱 망하면서 순식간에 형세는 뒤바뀌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김효곤 4단은 끊임없이 승부수를 날렸다. 흑103의 붙임부터 좌하귀 백 대마를 노리는 수를 두고 흑109,119로 우하귀 백 대마를 노리며 재역전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결국 재역전에 성공하지 못하고 차이가 점점 벌어지자 돌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아마 진동규 3단도 초반 형세가 불리했을 때보다, 유리해진 다음에 더 긴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역전을 시키며 크게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이런 바둑을 재역전당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바둑에 대해서 진동규 3단에게 물었을 때 주위의 동료기사들이 “져주기로 하고 둔 것 맞지?”하고 묻자, 진 3단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아마도 그 웃음의 의미는 “내가 이 바둑을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것만 같았다. 승리한 진 3단에게 축하를 보내며, 김효곤 4단은 군복무 잘 하고 바둑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170수 끝, 백 불계승 (제한시간 각 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 6집반) 유승엽 withbdk@naver.com
  • [여성&남성] 돼지띠 남녀들 새해 꿈

    ‘돼지’들이 제철을 만났다.2007년은 정해년(丁亥年) 돼지해, 그것도 600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는 ‘황금 돼지해’라는 속설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황금 돼지해가 관련 업계들의 ‘상술’이라며 일축하지만 어찌됐든 1959·71·83년생 등 ‘돼지띠’들에게는 의미가 각별하다.‘돼지 돈(豚)’의 발음이 ‘돈(錢)’과 비슷해 올해 태어난 아이들은 재물복이 있다고 한다. 또 사업하는 사람들은 개업할 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굴러 들어온다.’고 한다.‘돼지띠’들에게는 이런 말 만큼 기분좋은 얘기가 어디 있겠는가. 연일 매스컴에서 돼지 관련 화제를 조명하고, 업계에서도 돼지를 빼면 장사가 안된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올해의 ‘흥행 코드’로 떠올랐다. 주목받아서 좋고, 재물 복이 많다 해서 행복한 돼지 남녀들, 그들의 남다른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 남 “보다 나은 미래 준비” ●20대,‘미래’를 위해 한걸음씩 대학생 서성록(24·광운대 2년)씨는 신세대답게 번뜩이는 이벤트로 새해를 맞이했다. 그는 “태어난 지 세번째 맞이하는 돼지해에 무언가 평생 기억에 남는 일을 하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시내버스로 횡단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일일이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랍 27일부터 29일까지 모두 24번의 시내버스를 갈아타면서 부산에 내려갔다. 도중에 용돈을 주는 분도 있었고, 추운데 고생한다며 자신이 팔고 있는 모자를 선뜻 내준 상인도 있었다. 비디오저널리스트(VJ)나 프로듀서를 꿈꾸는 서씨는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엔유’라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사이트에 올렸다. 새해 첫날 상병으로 진급한 현역군인 구두희(24)씨의 새해 소망은 건강한 군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슬슬 반환점을 돌아선 군 생활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정해년을 맞은 구씨의 과제다. 특히 밖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지만 이해 당사자인 그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군복무 단축 발언이 마냥 즐겁다. 제대 전에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부족한 학점도 채워야 하고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은 토익 공부도 해야돼서 갈길이 멀다는 느낌이네요. 휴가 나와 먼저 제대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큰 일 나겠더라고요. 시간은 부족하지만 짬을 내서 공부를 시작해야겠어요.” ●30대,‘부자아빠’를 꿈꾸죠 30대 후반에 접어든 갈길 바쁜 ‘서른여섯 돼지띠’들은 재물과 자식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회사원 임진한(36)씨는 “우리 딸이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특히 부모님과 우리 가족 모두에게 ‘돈벼락’이 내렸으면 더 없이 좋겠다.”며 새해 소원을 펼쳐 놓았다. 임씨의 또 다른 소망은 둘째 아이를 보는 것.“올해가 황금돼지해라서 애를 낳으면 좋다는데 여섯 살된 첫째 은경이에게 동생을 보여주고 싶네요. 돼지는 재물운이 있다니까 더 욕심이 나요.” 건설업을 하는 손영범(36)씨는 “지난해 사업이 참 힘들었다. 나나 집사람이나 모두 돼지띠인데 올해는 뭔가 달라질 것”이라면서 “새해 첫날 로또복권을 샀는데 대박이 터졌으면 좋겠다.”며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40대,‘인생 2막’ 준비는 이제부터 ‘지천명’을 앞둔 40대 돼지띠들은 천천히 인생의 제2막을 준비중이다. 6개월 전에 해외주재원 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온 김정우(48·기아자동차 해외영업본부 부장)씨는 “그동안 삶이 조금 나태해진 것 같다.”면서 “새로운 변신을 통해 도태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대기업 임원을 맡고 있는 이병호(48·대한항공 공보담당 상무)씨는 개인적인 소망보다는 업무나 회사 일에 대한 바람이 더 크다. “임직원들과 똘똘 뭉쳐서 올해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저 한테도 더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여 “화목한 가정이 최우선” ●20대,‘취업문아, 활짝 열려라’ 군대를 갔다와야 하는 남자들과 달리 이제 막 대학문을 나서는 여자 돼지띠들은 취업에 대한 소망이 많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현수진(24)씨는 “올해의 목표는 취업 성공”이라면서 “지난해에 취업이 정말 힘들었는데 올해는 돼지의 해이니 만큼 우리가 들어갈 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얼른 취업준비생 신분을 벗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수십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는 고유진(24·취업준비생)씨는 “지난해는 충격이 꽤 커서 많이 힘들었지만 더이상 주저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새로운 해를 맞이해 다시 책을 폈다.”면서 “일단 내가 가고 싶은 기업에 가기 위해 토익 900점,JPT 750점을 목표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며, 외국계 기업 수시 채용을 중점으로 취업 시장에 재도전 할 생각도 있다.”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직장을 잡은 돼지띠들은 성공적인 출발을 기원했다. S전자에 입사를 앞둔 명지현(24)씨는 “회사에서 인간 관계를 잘 만들고 싶다.”면서 “돼지는 복을 상징한다는데 올해에는 특히 인복을 많이 받고 싶다.”라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치원 선생님인 박진선(24)씨는 “이제 사회인이 된 만큼 취업에 매몰된 생활이 아니라 취미 생활을 누리고 싶다.”면서 “그동안 틈틈이 피아노를 배웠는데, 좀더 제대로 배워서 수준을 높이고 싶다.”고 말했다. ●30대,‘가정 화목이 최우선이죠.’ 주부생활 6∼8년차에 접어드는 30대 중반 돼지띠들은 역시나 가정의 화목을 제일로 꼽았다. 부산에 사는 전업주부 박여정(36)씨는 “돼지하면 ‘돈(豚)’”이라면서 “돼지해에 맞게끔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지고, 남편 사업이 많이 어려웠는데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순영(36)씨도 “가족과 우리 아기의 건강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면서 “아기가 돼지처럼 건강하고 튼튼하게, 씩씩하게 자라줬으면 좋겠고, 재물운이 따른다는데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다. 그는 현재 20평에 살고 있는데 30평 방 세 개짜리(현재는 방 2개, 거실주방 겸용)로 이사를 가는 부푼 꿈을 꾸고 있다. ●40대,‘후회없는 인생 만들터’ 불혹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는 40대 후반의 돼지띠 소망은 나이 만큼이나 원숙했다. 황규자(48·한양대 무용과 교수)씨는 “지난해 12월 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서인지 만남과 헤어짐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됐다.”면서 “올해는 일상에서 주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작은 일에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배려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독신이라는 이혜신(48·직장인)씨는 “정해년 황금 돼지해를 맞아 금돼지의 통통한 몸매처럼 삶이 넉넉하고 푸근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현재 미혼이어서 따뜻한 인연을 만나는 한 해가 됐으면 싶고,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소박하지만 훈훈한 소망을 밝혔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길섶에서] 30년전 선배/이용원 수석논설위원

    “혹시 기억납니까? 김○○인데요.” “아니, 형 오랜만이오.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이십수년만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스무두어살 때 대학 동아리를 함께 한 선배이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시를 긁적거렸고 운동권에서는 이론가로도 통했다. 막걸리에 빈대떡을 놓고 마주 앉으면 그의 입에서 칸트·헤겔이 마구 춤추다가는 느닷없이 젓가락 장단에 맞춘 ‘하드 록’(헤비 메탈)이 쏟아져 나오곤 했다. 그는 내 젊음에서 친구이자,‘싸부’이자, 동지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그는 이미 졸업하고 없었고, 근황을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모두들 ‘그 보헤미안이 살아는 있는 거야?’라며 걱정어린 눈빛을 주고받곤 했다. 그리고 그는 차츰 잊혀갔다. 서둘러 퇴근을 하고 그를 만난 저녁, 서먹함은 아예 없었고 우리는 타임머신을 탄 듯 30년 전으로 급속히 되돌아갔다. 그 뒤론 그를 만날 때마다 나 자신 스무살 어간으로 돌아간다. 고마운 인연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기존사병도 복무단축 검토

    정부는 다음 달 중에 군복무기간 단축 및 사회복무제도의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한 병역제도 개선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29일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병역제도 혁신방안은 현재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면서 “범정부 차원의 마지막 종합 검토와 검증을 거쳐 한 달 이내에 그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국민들에게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변 실장은 “정부로서는 내년 상반기까지 모든 제도화를 마친다는 목표 아래 정치적 상황이나 대선 일정과 무관하게 관련 작업을 착실하게 진행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개선안 내용에 대해 “핵심은 선진 정예강군 육성과 병역 형평성 확보”라면서 “전투력을 강화하고 군복무를 선호하게 하는 차원의 군복무체계 혁신, 병역의 형평성과 자원 활용의 효율화를 기하는 측면에서의 사회복무제도 도입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복무체계 혁신방안으로는 ▲유급지원병제 도입 ▲예비군 편성제도 개편 ▲군복무기간 단축 등이 검토되고 있다. 변 실장은 특히 “군복무기간 단축이 결정될 경우 입대시기와 관련, 그 시기 여하에 따라 개인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세세한 제도적 보완책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고 밝혀 형평성 차원에서 기존 입대자의 복무기간 단축도 검토 중임을 내비쳤다. 또 복무환경 개선과 생산성 제고 방안으로는 ▲장병의 근무외 시간 보장 ▲무인전자 감시시스템 확충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무제도 도입에 대해 “중증장애인을 제외한 병역의무자 전원이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복무제도 도입이 깊이 있게 검토되고 있다.”면서 “군복무 대체개념보다는 이러한 인력군이 국가, 사회 발전을 위한 필수 인적자원으로서 보다 생산적으로 활용되도록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 실장은 병역제도 개선안이 ‘대선용’이란 주장에 대해 “정부가 지난 2년여 동안 연구, 검토해 온 과제로 즉흥적 발상도 아니고 선심성으로 출발한 것도 아니며 대선용은 더욱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軍복무 4~6개월 단축 가능성 높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한달 이내에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밝힌 병역제도 개선안의 윤곽이 상당부분 드러났다. 개선안은 범정부 차원에서 ‘병역자원 연구기획단’이 마련중이다.●군복무기간 단축 핵심은 육군과 해병대 24개월, 해군 26개월, 공군 27개월인 현 복무기간의 단축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4∼6개월가량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물론 정부 측은 “아직 확정단계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큰 방안인 점에서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와 병무청 측은 복무기간 단축에 따른 혼선을 최소화하려면 단계적인 단축 방안의 검토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예컨대 2개월 정도 줄인 뒤 병영자원의 수급 동향을 지켜보고 다시 논의하자는 의견이다.●유급지원병 제도 현행 의무 복무기간을 채운 군인들이 군에 계속 남기를 희망하면 선별적으로 수용,1년 정도 봉급을 주고 복무케 하는 제도이다. 국방부는 오는 2011년부터 시행,2020년까지 2만여명 수준에서 운영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국방부는 우선 2008년 일부 부대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에 따라 내년에 급여 및 복지, 계급 등 세부 내용을 담은 입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사회복무제도 군 입대 대신 노인·환자·장애인 복지시설과 아동·청소년 복지시설, 수용자 보호시설 등에서 복무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산업체 근무도 해당될 것 같다. 최근 중소기업청은 국방부에 현역병 1만여명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산업체에 현역병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예외없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위해 적극 검토할 만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물론 대체복무제도와 약간 성격이 다르다. 대체복무제도는 현역을 충원하고 남은 잉여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현역복무에 상응하는 국가차원의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예비군 편성제도 개편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다. 신도시의 개발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됨에 따라 도시·농촌 간 예비군 자원 격차가 심화된 데다 지하철·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작전 소요가 증가한 탓이다.따라서 현행 읍·면·동 단위 1개 중대에서 시·군·구 단위로 확대하는 데다 여러 중대를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작전지역도 인구 수에 따라 A·B·C·D형의 네 가지 형태로 구분 조정하는 안도 나와 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美 시민권 미끼로 용병모집

    이라크전에서 희생된 미군의 수가 9·11테러 희생자 수를 넘어서는 등 ‘테러와의 전쟁’이 뚜렷한 성과없이 장기화하면서 미군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당장 직면한 문제는 인력난. 이라크전 지상군 병력 증강을 계획 중인 국방부가 구인난 해소를 위해 이민자와 외국인을 상대로 한 모병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스턴글로브가 26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해외에 모병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과 외국인이 입대를 자원할 경우 시민권을 빨리 취득할 수 있는 현행 특혜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민권을 미끼로 한 외국인 모병활동에 대해 군 전문가들은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고, 미국인들이 군복무를 꺼린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미군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군 입대를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들은 750명에서 지난해 4600명으로 급증했다.미군내 비시민권자는 3만명으로 현역 군인의 2%이며, 이 중 100명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세력과 싸우고 있는 미군에게 국내 이슬람교도의 지지를 얻는 일도 당면 과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입영전야’ 男心 대요동

    ‘20대 남심(男心)이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내년 상반기에 군복무 단축안을 공개하고 2008년에 유급지원병제를 시범 운영할 방침을 잇따라 밝히면서 군 입대를 앞둔 병역 미필자들과 부모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찬성론을 펴며 군 입대를 연기하려는 이들이 있는 반면 믿을 수 없다며 예정대로 군대에 가겠다는 소신파도 있다. 정확한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입영 대기자들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등 문의 쇄도… “선심성이라도 기뻐” 26일 병무청과 국방부 등 관련기관의 홈페이지에는 입대 연기 문의와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 경우 소급 적용이 가능한지를 묻는 수백여건의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내년 1월 입대를 앞둔 한 네티즌은 국방부 홈페이지에 “입대를 연기해 6개월 단축될 때까지 기다려 볼 생각”이라면서 “입대 연기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3월 입대를 앞둔 아들을 둔 이모씨는 병무청 홈페이지에 ‘군복무 정말 단축되나요. 가능성이 있나요.’라는 글에서 “군복무 단축은 한국땅에서 아들 가지고 있는 모든 엄마들의 염원”이라면서 “설사 선심성 정책이라 하더라도 내 자식을 위한 건데 솔직히 기쁘다.”고 반겼다. 병무청 공보실 관계자는 “아직 복무기간 단축이 확정된 상태가 아닌데 홈페이지와 전화로 질문들이 쏟아져나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 복무기간을 줄였을 때도 이미 입대한 병사들에게까지 남은 복무기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혜택을 줬다.”면서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복무기간이 2개월 줄었던 2003년 10월의 경우 이미 입대한 이병은 6∼7주, 일병은 5∼6주, 상병은 3∼4주, 병장은 1∼2주가량 단축 혜택을 줬다. ●“설만 믿다 국회통과 안되면 누가 책임지나” 군복무 단축에 대해 입영 대상자들은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그러나 ‘선거용’이라는 의견과 함께 실현 여부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다. 대학교 2학년생 김모(20)씨는 “입영 대상자인 친구들이 군복무 단축에 대해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선거용일 뿐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내년 1월 말 논산훈련소에 입영할 예정인 김성수(21·서울시립대 2년)씨는 “한 살만 어리더라도 고민했겠지만 친구들이 제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루기 힘들어 그대로 입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소문 차원 이상의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내년 2월 입대를 앞둔 전석진(20·부산대 1년)씨는 “시급한 민생법안들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데 괜히 설만 믿다가 차일피일 미뤄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나.”라면서 “제대한 뒤 복학 날짜를 맞추어 놓은 만큼 계획대로 군대에 가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비판 성우회 성명에 인터넷 시끌 전직 군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가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군대가서 썩지말고’라는 ‘군 비하’ 발언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자 이에 대한 찬반 의견도 인터넷 등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한 네티즌들은 “혈기 왕성할 때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서 2년 동안 썩고 나오는 것 아니냐.”면서 성우회를 비난했다. 반면 다른 네티즌들은 “국가 안보는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데 군 통수자로서 경솔한 발언이었다.”면서 성우회의 성명을 지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나라 “軍복무 단축 반대”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군 복무기간 단축’ 발언에 대해 성탄절 연휴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다가 26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등 공개적으로 당장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뒤늦게 입장을 밝힌 것은 연휴 동안 심도있는 논의를 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300만∼400만명에 달하는 군 입대 연령층의 대선 표심(票心)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당내 대선주자들은 젊은 유권자들을 의식, 이 문제를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여전히 신중한 행보를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핵 문제로 안보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 복무 제도의 급격한 개편은 국민합의를 얻기 어렵다.”면서 “노 대통령이 지난 8월 병역지원 연구기획단을 발족시킨 뒤 최근 군복무 기간 단축, 유급사병제 도입 등 개편안이 무질서하게 쏟아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사병 복무 제도는 대선을 겨냥해 포퓰리즘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며 “한반도 평화가 정착될 경우 청년실업을 완화시키는 등 여러가지 관점에서 징병제를 순차적으로 손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재희 정책위의장도 군복무제도 개편 6대 원칙을 내놓았다.6대 원칙에는 ▲주요국가안보정책을 대선을 겨냥한 선심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서는 안 되고 ▲군 개편을 종합적으로 수립, 연계하고 ▲유급 지원병 제도를 추진하고 ▲사병복무 제도 단축을 시행하고 ▲분명한 재원마련 계획을 먼저 제시하고 ▲국회가 중심이 돼 작성하고 국민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한나라당은 또 당내 국방개혁특위를 구성, 군복무 기간 단축을 포함한 자체 국방개혁안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마련키로 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대체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핵 때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6일 “핵 위기로 안보상황은 더 악화시켜놓고 복무기간을 단축시킨다면 설득력이 있겠느냐.”면서 “군복무기간 단축은 안보여건이 된다면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안보상황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고 말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이수원 공보특보도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만큼 전반적인 사안을 함께 검토해 조만간 입장을 내겠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군복무기간 단축 정치권 득실 고민

    정부가 추진중인 군복무기간 단축을 놓고 정치권이 이해 득실을 따지기에 분주하다. 특히 한나라당은 젊은이들의 표 때문에 ‘대선용 정책’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서지 못하는 형편이다. 물론 열린우리당은 경제적 이유를 내세워 노무현 대통령의 ‘평통 발언’ 취지를 지원하면서도 일각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군복무기간 단축 검토를 대선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되는 만큼 전체적인 산업인력 운용 측면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 국방위 소속 열린우리당 김명자 의원은 “병력 감축이나 복무기간 단축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정책을 병행하면서 추진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나라당은 예산 문제 등을 내세워 비현실적인 ‘대선표심 잡기용’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젊은 층의 표심을 의식, 감축반대라는 직접적인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신성한 병역문제까지 대선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면서 “장기적인 국가과제로 신중하게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당 송영선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노 대통령이 ‘모병제’ 가능성까지 내비쳤는데 그렇게 되면 병력 인건비가 지금보다 6조원 많은 7조 2000억원이 소요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평통발언은 서곡내년봄 승부수?

    평통발언은 서곡내년봄 승부수?

    노무현 대통령이 내뻗은 ‘원 투 펀치’에 대선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범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고건 전 국무총리를 지목, 공개리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고 전 총리 측이 반발하자 청와대가 다시 23,24일 연거푸 비판적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청와대가 ‘군복무 기간 단축’과 같은 따끈따끈한 정책을 임기말에 내놓는 일도 전례가 없는 정치행위다. 과거 퇴임을 앞둔 대통령들은 ‘차기’와 관련, 모호성을 유지했고 선심성 정책은 여당 후보의 몫으로 넘겨 선거전의 ‘브랜드’로 삼도록 후원했었다. 임기말의 노 대통령이 무대 위에서 ‘주연’을 자처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과거와 다른 정치적 환경과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이 복합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지금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이지만 대형 권력형 스캔들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점이 도덕적 자신감을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말 아들과 측근 비리로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상황과 다르다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대통령이 현재는 물론 퇴임 후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기에 대선정국에서 과감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거론되는 여권 유력후보 가운데 ‘영남권’이 없는 점도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수수방관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 2차례 대선에서 부산·경남지역에서 30%대의 득표를 할 수 있었기에 집권이 가능했다.”면서 “영남에서 파괴력을 갖는 후보가 나오기 전까지는 대통령 자신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 “오는 18대 총선에서 이강철·김두관·정윤재씨 등 측근이 영남권에서 당선될 수 있는 기반을 대통령 스스로 제공하려는 배려의 차원도 읽혀진다.”고 덧붙였다. 크게 보면, 최근 노 대통령이 내놓은 일련의 충격파는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 소식통은 “‘제2의 탄핵 유도’ 운운은 아직 성급한 분석”이라며 “노 대통령은 민주평통 발언 등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하다가 내년 봄 취임 4주년에 즈음해 진짜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승부수란 예컨대 ‘개헌’ 등을 주장하는 그림이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켜 대선·총선을 함께 치르는 식으로의 개헌을 주장하면서 대통령 직을 거는 형태다. 소식통은 “개헌의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논란 자체만으로 ‘판’을 흔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노 대통령의 ‘전장(戰場)’ 설정도 눈여겨 볼 만하다.‘부동산’이나 ‘경제’처럼 참여정부에 불리한 주제는 덮어두고 ‘군복무 기간’,‘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젊은층을 중심으로 어필할 수 있는 의제에 집중돼 있다. 노 대통령이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구사한 전략인 ‘코끼리(공화당의 상징·감세 논란 등 공화당이 설정한 의제를 의미)는 생각하지마’를 유념하고 있을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어릴 적, 철부지 꼬마는 차갑게 내리는 눈발에도 아랑곳없이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몰려와 등을 떠밀었을 때야 귀가했으므로 몸은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이뿐이랴. 겨울은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 추억의 창고문을 자주 열게 한다. 문득,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처럼 지금쯤 어디에서 ‘나만큼 늙어가고 있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오른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찹쌀떡∼, 메밀묵∼’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침을 삼키며 달려나갔던 정겨운 광경이 새삼 그려진다. 또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가장 생각난다. 힌트, 두 단어로 표현된다. 하숙집 아랫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애인처럼 정성으로 돌봐주면 활활 불꽃을 피운다. 다 타고 재가 되면 동네 언덕길에 산산이 으깨어져 등꼬부라진 할머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시 한편이 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를 통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속물성과 허위를 준열하게 질타하고 있음이다. 아울러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이며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이면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연탄’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위란 뼛속까지 에이기에 연탄 한장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음이다. ‘연탄배달의 기수’ 김성수(65)씨.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40년째 연탄배달로 생활하고 있다. 열아홉 구멍 숭숭 뚫린 시커먼 연탄 수십장씩 지게에 올려놓고 달동네 언덕을 숨이 차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왔다. 독거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결코 지게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이지만, 겨울의 강을 건너야 할 사람에게 스스로 얼음판이 되어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산타’의 길을 걸어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주, 때마침 영하 6도의 추운 날씨였다. 서울 이대 앞 전철역에서 옛날 대흥극장 쪽으로 향했다. 신협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서자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휴대전화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더 올라오란다. 좁은 언덕길 양쪽에는 구멍가게,00양장점,00상회,00쌀집 등의 간판이 즐비해 1960년대의 흑백필름을 연상케 했다. 언덕 아랫길만 하더라도 외래어간판들로 북적대는 거리가 아닌가.10분여를 더 걸었더니 언덕 꼭대기 한편에 ‘三표연탄’이라는 글자가 전봇대에 메달려 있고 그 옆에 시커먼 판자로 가려진 연탄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였다. 골목길에서 잠바차림에 모자쓴 아저씨가 걸어나왔다. 직감으로 “김 선생님이시죠?”라고 했더니 씩 웃는다.“배달은 언제 나가세요.”라고 물었다. “오후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열댓장만 갖다 주면 된다.”고 했다. 만난 시간이 오전 10시여서 혹 아침 식사를 했느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선생님, 시장하신 것 같은데 순대집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인터뷰 장소를 인근 순대집으로 옮겼다.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켠 김씨는 “이 동네 누구 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개 있는 거 다 알아유.”라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을 열었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겨울이면 월동준비 1순위로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연탄을 들여놨으니 ‘누구집 강아지 이름’까지 손바닥 보듯 했을 터. 올 겨울 연탄 배달량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했다.“신수동, 창천동, 염리동 일대에 할머니들만 사는 곳에 2200장을 보냈시유.” 대한적십자사의 주문으로 200장씩 모두 열한 집에 보냈단다. 연탄 한 장당 가격이 370원. 또 장당 이문(利文), 즉 배달료가 70원이라고 하니 올 겨울 14만여원이 주머니에 들어온 셈이다. 작년 이맘때 7000장을 배달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하루 200장은 배달혀야 먹고 살아유.”라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점점 시름이 깊어진다. “이 동네에는 연탄 쓰는 집이 30가구 정도 돼유. 그런데 구의원이나 정치인, 여러 단체 등에서 공장에서 연탄을 다량으로 싸게 구입해 없는 집, 있는 집 할 것 없이 다 돌립니다. 어떤 집에는 부모 자식 돈버는 부잣집인데도 쌀이며 연탄까지 갖다 줘유. 진짜 없는 집은 배가 고픈디 말이여유. 정부에서 하는 일이 왜 그런디유?” 김씨는 안양에 있는 연탄공장에서 타이탄트럭 한 대분(1200장)을 받으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노고산동과 인근 독거노인들이 사는 집 위주로 배달해오며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 연탄배달 외에는 주로 라면박스 같은 것을 주워다가 고물상에 내다 판다. 박스 1㎏에 40원을 받으니 리어카 하나 가득해 봐야 겨우 4000원을 받는 셈. 리어카를 채우려면 일주일은 돌아다녀야 한다.“우리 집 말여유? 혼자 세들어 살지유. 외풍도 세고 비도 줄줄 새는 그런 집이여유.” 결혼 얘기가 나오자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빈 속에 막걸리 몇잔 들이켜서인지 어느새 눈이 젖어 있었다.“고생 고생 해서 번 돈, 아이들 엄마가 어느날 훌쩍 다 갖고 도망가 버렸어유. 그때 아내를 찾으려고 1년 동안 실성하다시피 지낸 것 외에는 연탄배달만 줄곧 해왔시유.” 김씨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많은 식구들이 논농사 12마지기에 의지하기엔 벅찼다. 그래서 대홍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함께 상경했다. 그는 스무살 무렵 곧바로 5사단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서울 신촌 인근의 건재상에서 장당 30원을 받는 벽돌배달 일을 했다. 당시 라면 한 봉지에 16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30원 하던 시절이었다. 스물다섯 살 되던 1966년에 지금의 노고산동으로 옮겨 한 기와집 추녀 끝에 조그마한 연탄가게를 마련했다. 이어 리어카를 장만하고 지게를 만들어 본격적인 ‘시커먼(?) 인생길’로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동네에서 한달 3만장씩 팔았다. 특히 연대와 이대, 이대부고 등 주변 학교에 배달을 맡아 그럭저럭 돈벌이도 괜찮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시책으로 가구당 연탄 50장씩 할당하는 카드제가 실시되던 시기였다. 결혼도 이 무렵에 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인 1978년 어느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던 것.“지나가는 버스만 쳐다봐도 아내가 탄 줄 알고 막 쫓아가고 했시유.” 시련을 딛고 다시 연탄배달에 전념했다. 결국 한때 삼표, 삼천리, 대성, 한일연탄 등 여러 연탄집들이 경쟁적으로 있었지만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들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다들 사라지고 삼표연탄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게 됐다. “얼마 전 구청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자동차가 몇대냐 직원은 몇명이냐고 합디다. 그래서 ‘리어카 한대와 지게 하나.’라구 했지유. 저는 살아오면서 쓸데없는(나쁜) 일은 한번도 안했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물어봐유.” 주위에서 속이거나 힘들게 해도 싫증 한번 내보지 않았다는 김씨. 또 매서운 산동네의 겨울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40년 동안 한결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고단한 하루를 시작했다. 딸 둘을 키워 시집보내고 지금은 무자식처럼 외롭게 산다. 워낙 가난해서 누가 버린 옷과 양말을 주워다 입고 신어도,‘연탄 한장 갖다 주세요.’라는 말에 항상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배고픈 거 하늘이 알겠어유, 땅이 알겠어유.” 침묵이 흘렀다. 잔주름 가득한 이마가 할말 많다는 듯 위아래로 미동한다. 그것도 잠시, 김씨는 또한번 씩 하고 웃더니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다.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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