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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부전선 22사단 GOP 총기사고, “무장탈영 병장 월북 가능성도…체포 주력”

    동부전선 22사단 GOP 총기사고, “무장탈영 병장 월북 가능성도…체포 주력”

    동부전선 22사단 GOP 총기사고, “무장탈영 병장 월북 가능성도…체포 주력” 군 당국은 21일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동부전선 22사단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임모 병장을 체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육군 관계자는 “20일 오후 GOP 주간 경계 임무를 마치고 총기 사고를 일으킨 뒤 총기와 실탄을 소지하고 탈영한 임모 병장을 체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주요 도주로에 검문초소를 설치하고 수색팀을 증편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육군은 사고가 난 부대에 조사단을 파견해 사고 원인을 현재 조사 중”이라면서 “임 병장은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심병사로 분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임 병장이 혹시 월북할 가능성에 대비해서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현재 동부전선 북한군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총기 난사 사고로 사망한 장병은 김모 하사를 비롯한 병장 1명, 상병 1병, 일병 2명 등 5명이며 부상자는 7명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부상자 중 4명은 강릉 국군병원으로, 2명은 국군수도병원으로, 1명은 강릉아산병원으로 각각 후송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추 열애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와 진지한 만남” SNS에 이미 언급?

    상추 열애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와 진지한 만남” SNS에 이미 언급?

    ‘상추 열애’ 마이티마우스 멤버 상추가 일반인과 열애 중이다. 3일 한 매체는 “상추가 군 제대 후 오랜 시간 교제해 온 치과의사와 결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상추의 여자친구는 서울대 치대를 나온 재원으로 외모도 상당히 수려하다”고 상추 열애를 보도했다. 이에 대해 소속사 YMC엔터테인먼트는 “상추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치과 여의사와 2년 전부터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다”며 “자세한 사항은 개인적인 일이기에 모두 알 수는 없지만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이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상추 열애를 인정했다. 앞서 상추는 지난 5월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부실 복무 논란에 대해 해명의 글을 게재한 바 있다. 상추는 “사랑하는 저의 부모님과 형,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소중한 사람이 ‘차마 비난할 가치조차 없는 파렴치한 사람의 가족으로서’ 이루 말하지 못한 아픔을 껴안고 죄인처럼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것을 더 이상은 참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미래를 함께 할 소중한 사람’이 현재 열애 중인 여자친구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상추는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나, 현역 입대를 원해 재검으로 지난 2012년 10월 3급 현역으로 입대했다. 하지만 연예병사 특혜문제과 안마방 출입, 국군병원 특혜까지 여러 구설수에 휘말렸다. 상추는 오는 8월 제대한다. 네티즌들은 “상추 열애 대박이다”, “상추 열애, 축하는 하는데 시기가 뭔가 부적절해 보여”, “상추 논란 속에서도 열애 잘 하네”, “상추 열애, 구설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사랑 응원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상추, 1살 연상 치과의사와 열애…군 부실 복무 논란 해명은?

    상추, 1살 연상 치과의사와 열애…군 부실 복무 논란 해명은?

    상추, 1살 연상 치과의사와 열애…군 부실 복무 논란 해명은? 군 복무 중인 힙합 그룹 마이티마우스의 멤버 상추(32·본명 이상철)가 한 살 연상의 치과 의사와 교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추의 소속사인 YM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3일 “상추가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와 1~2년 전부터 교제하기 시작했다”며 “상대는 명문대를 나온 치과 의사로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상추가 빠른 1982년생이어서 (학번이 같기 때문에) 두 사람은 동갑이나 다름없다”며 “군 복무 중인 상추가 어깨 등의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여자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상추의 측근은 이날 보도 직후 언론과의 통화에서 “상추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면서도 “상추가 현재 군복무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파악되지 않지만 결혼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상추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부실 복무 논란을 해명했다. 상추는 A4 용지 10장 분량의 장문의 글을 통해 군 복무 중 안마시술소에서의 성매매 논란과 국군병원 특혜입원 등에 대해 불법 행위는 절대 없었다고 주장했다. 상추는 “사랑하는 저의 부모님과 형, 그리고 미래를 함께할 소중한 사람이 ‘차마 비난할 가치조차 없는 파렴치한 사람의 가족으로서’ 이루 말하지 못한 아픔을 껴안고 죄인처럼 고개 숙이며 살아가는 것을 더 이상은 참고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저로 인해 받는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수근거림들을 별 다른 내색 없이 그저 참아내고만 있는 제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사실에 대해 단순히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것만이 올바른 선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구차하게나마 제 입장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청일점’ 남자생도들의 하루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국군간호사관학교의 ‘청일점’ 남자생도들의 하루

    직업 선택에서 ‘금남·금녀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대학 입시에서 먼저 나타난다. ‘전통적인 남학생, 여학생 강세 학과’라는 표현이 유명무실하다. 최근 남자 간호장교 활용도가 증대되면서 여성만의 영역이었던 국군간호사관학교(이하 국간사)도 2012년부터 남자 생도를 모집하고 있다. “아아~ 송이송이 피어나는 백합꽃 떨기 ~갸륵하다 백의천사 겨레의 꽃이로세.” 지난 15일 대전 유성구 자운대 국간사에서 3학년(56기) 생도들이 부르는 교가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오전 학과출장 시간이다. 다수의 여자들 틈에 끼어 있는 7명의 남자들은 61년 만에 금남의 벽을 깨고 들어온 최초의 남성 간호사관 생도들이다. 임채원(56기) 생도는 사관학교 입시를 생각하고 있다가 국간사를 알게 됐다. 임 생도는 “무엇보다 처음이란 의미가 좋았다”며 “간호사와 사관생도의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고 군 복무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금남의 구역에 첫발을 내디뎠던 1학년 때는 모든 것이 불편하고 서툴렀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여자 동료·선배들과 생소한 ‘동거’를 하는 것 자체가 익숙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승주(56기) 생도는 “취침 시간 이후에 물을 마시러 방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잠옷을 입은 채 여생도들과 마주칠까 봐서였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학교 측은 공간 배치를 다시 하고 화장실, 목욕탕 등 편의시설을 새로 만드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했다. 기존의 국간사 생도 생활예규에는 여생도만 언급돼 있어서 새로운 교본이 필요했다. 이후 육·해·공사에서 ‘속옷을 개는 요령’과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배웠고, 그것이 곧 남생도를 위한 지침서가 됐다. “지금 1학년은 정말 편한 거예요.” 처음과 달리 입학 3년차가 되면서 1, 2학년 남자 후배 생도들의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피구만 하던 운동 시간에도 보통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여생도들과 같이 즐긴다. 생도들의 일과는 매우 촘촘하다. 아침 6시 기상부터 밤 10시 점호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4년제 정규 대학 과정의 군사학교이다 보니 군부대의 규율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작게는 군복 단추의 위치와 다림질 상태부터 크게는 각종 학과수업 및 훈련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규정과 방침에 의해 통제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남자·여자 동기끼리 서로 자극을 주면서 잘 이겨 내고 있었다. 3학년(56기) 여자 동기인 이진영 생도는 “훈련이 힘들어도 ‘남자한테 지기 싫어서’, ‘여자도 똑같이 하고 있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서로 분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경혜(22기) 교장은 “학교 측은 여생도와 남생도 간의 ‘동기애’를 자연스럽게 심어 주는 것을 주요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남녀 생도들은 선의의 라이벌인 동시에 끈끈한 동기 의식으로 뭉쳐진 전우(戰友)인 것이다. 국간사는 육·해·공군 정예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특수목적 대학이다. 따라서 교육과정이 일반 대학과 사뭇 다르다. 핵심 교양부터 이론·실습을 병행한 전공, 재난 간호과정 및 군사훈련까지 포함돼 있다. 특히 재난간호는 국간사에서 역점을 두고 운영하는 교육과정이다. 재난간호는 자연재해나 재난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외상 처치와 심리상담 등을 통해 보다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최 교장은 “현재 운영 중인 재난간호교육센터를 확대 발전시킬 것”이라며 “국가적인 재난상황에서 위기대처 능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재해전문 간호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험한 재난 현장에서 남성 간호장교들의 역할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원격진료가 도입되고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간호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지고 간호사의 수요 또한 늘어나고 있다. 남자 환자가 대부분인 군병원은 물론 일반 병원에서도 남자 간호사는 인기가 높다. 올해는 국군간호사관학교 설치법 개정 이후 네 번째로 남자사관생도를 선발하는 해다. 전문 간호인이 되기 위해서, 임관의 명예를 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보람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수험생들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국방부 “김무열·상추 특혜없어” 김무열 공식입장 “복귀 대기 中”

    국방부 “김무열·상추 특혜없어” 김무열 공식입장 “복귀 대기 中”

    국방부 “김무열·상추 특혜없어” 김무열 공식입장 “복귀 대기 中” 상추와 김무열이 군 복무 특혜 논란에 휩싸였지만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상추는 6개월째 국군병원에 장기입원 중이며 김무열은 무릎수술로 의가사제대 대상자가 됐다. 이런 소식에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4일 한 매체에 입장을 전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두 병사 모두 정당한 사유가 있어 치료를 받은 것”이라면서 “연예병사 출신에 대한 특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상추는 지난해 10월 말 군의관 진단에 따라 어깨관절 수술과 지난 1월 발목관절 수술을 민간병원에서 각각 1차례씩 받았다. 국방부는 “두 차례 모두 큰 수술이었고, 회복기간이 필요했다”며 “애초 3월 말 퇴원 예정이었지만 소속부대가 훈련을 나가 복귀시기가 4월 초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또 국방부는 무릎수술로 의가사제대 대상자가 된 김무열은 현재 최종 전역심을 앞두고 대기 중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김무열은 내측 연골판 절제술이라는 큰 수술을 받았다”며 “규정상 현역으로 복무하기 힘들다고 판단돼 의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무열 소속사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무열이 의가사제대 판정에도 불구하고 만기제대 의사를 전달하고 군의 복귀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김무열 측은 휴가 중이라는 보도에 대해 “휴가가 아닌 복귀 명령 대기”라고 강조했다. 네티즌들은 “김무열 공식입장 이해가 되네”, “김무열 국방부 공식입장, 그럼 문제 없는 건가”, “김무열 국방부 공식입장, 만기 제대라니 대단한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국방부 공식입장 “김무열·상추 특혜 사실 아냐…적법한 절차”

    [전문]국방부 공식입장 “김무열·상추 특혜 사실 아냐…적법한 절차”

    [전문]국방부 공식입장 “김무열·상추 특혜 사실 아냐…적법한 절차” 국방부가 군 복무 중인 그룹 마이티마우스의 상추(본명 이상철)와 배우 김무열 특혜 논란에 대해 4일 공식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국방부는 전 홍보지원대원(연예병사) 이상철과 김무열의 군병원 장기입원 논란에 대해 “이 상병과 김 병장이 군 병원에서 받고 있는 조치는 일부 언론 매체에서 보도된 전 홍보지원대원 특혜에 관한 의혹과는 달리 일반 현역 장병들이 받고 있는 적법한 조치와 절차에 의해 진행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상철은 지난해 8월 1일부로 홍보지원대를 나와 전방 모 사단에 재배치돼 소총수로 복무했다. 같은 해 10월 25일 우측 어깨 관절 손상으로 국군춘천병원에 입원, 민간병원에서 1차 수술을 한 뒤 국군춘천병원에서 물리치료를 해왔다. 이후 우측 발목 인대 손상 발병으로 다시 올해 1월 초 민간병원에서 2차 수술을 받고 국군춘천병원에서 최근까지 물리치료 등의 시술을 받았다. 김무열은 지난 2월 5일 민간 병원에서 왼쪽 무릎 연골에 대한 수술을 받았고, 24일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 현역복무를 계속 할 수 있을 지 여부를 조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육군은 김무열에 대해 국방환자관리 훈령 제18조에 따라 최종 전역 심사 전까지 휴가를 부여한 상태다. 네티즌들은 “김무열 상추 국방부 공식입장으로 특혜 의혹 사실이 아니라고 나왔으니 다행이네”, “김무열 상추 국방부 공식입장에는 수술 받았다고 나오네”, “김무열 상추 국방부 공식입장 때문에 해명이 되겠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국방부 입장 전문 14.4.4일 某 매체에 의해 보도된 前 홍보지원대원 2명의 군병원 장기입원 논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국방부 입장을 밝힘. 이OO 상병은13.8.1일 부로 홍보지원대가 해체되어 전방 00 사단에 재배치되어 소총수로 복무 중인 병사로서 13.10.25일 우측 어깨 관절 손상으로 국군춘천병원에 입원, 13.10월 말 민간병원에서 1차 수술을 한 후 국군춘천병원에서 물리치료 등을 하다가 우측 발목 인대 손상 발병으로 다시 14.1월 초 민간병원에서 2차 수술을 받고 국군춘천병원에서 현재까지 물리치료 등의 시술을 받고 있음. 이렇게 2차에 걸친 수술이후 물리치료가 장기화되는 이유는 자대복귀 후 정상적으로 임무가 가능할 때까지 정상적인 회복을 위한 정양(靜養)이 필요하기 때문임. 이 상병은 물리치료 후 3월 말에 퇴원할 예정이었으나, 소속부대의 대규모 전개훈련으로 복귀가 제한되어 4.10일경으로 퇴원이 연기되었음. 또한 1인실에 머물고 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현재 2인실에 입원 중임. 김OO 병장은 14.2.5일 민간 병원에서 왼쪽 무릎 연골에 대한 수술을 실시하고, 14.2.24일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 현역복무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여부를 국군수도병원에서 조사를 하였음, 김병장은 「국방환자관리 훈령」 제18조에 따라 육군본부의 최종 전역 심사 전까지 휴가를 부여한 상태임. 이 상병과 김 병장이 군 병원에서 받고 있는 조치는 일부 언론 매체에서 보도된 前 홍보지원대원 특혜에 관한 의혹과는 달리 일반 현역 장병들이 받고 있는 적법한 조치와 절차에 의해 진행 되고 있음. 2014. 4. 4 국방부 대변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추, 연예병사 폐지 뒤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입원” 디스패치 폭로?

    “상추, 연예병사 폐지 뒤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입원” 디스패치 폭로?

    ‘상추 군병원 장기입원’ ‘디스패치’ ‘연예병사’ 복무기강 해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병사 제도 폐지까지 불러온 가수 상추(본명 이상철·32)가 6개월째 군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라고 연예전문 매체 디스패치가 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지난해 10월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해 지금까지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며 6개월째 장기입원 중이다. 퇴원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입대해 연예병사로 선발된 상추는 지난해 6월 숙소 무단이탈 등의 복무기강 해이 행태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예병사 중 한명이다. 당시 논란으로 결국 그해 7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고 상추는 10일간 영창 처분을 받았다. 이후 8월에는 강원도 화천 15사단에 일반 병사로 전출됐다. 보직도 연예병사에서 소총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재배치 2개월 만에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했다. 디스패치는 상추가 국군춘천병원 1인실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리치료를 받을 때에는 칸막이 침대를 쓰고 있다고도 전했다. 디스패치가 취재한 한 의무병은 “상추가 부상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라면서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루에 2~3시간 가량 물리치료를 받은 뒤 휴식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추는 입원 기간과 상관없이 오는 8월 전역할 예정이다. 현행 군 복무 관련법에 따르면 입원 기간 역시 복무기간으로 인정한다. 디스패치는 국군춘천병원 담당 군의관이 “이상철(상추)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절대 특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추,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 입원” 디스패치 폭로?…연예병사 폐지 그 뒤

    “상추,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 입원” 디스패치 폭로?…연예병사 폐지 그 뒤

    복무기강 해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병사 제도가 폐지된 가운데 또 다시 연예인의 군 복무와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연예병사 폐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가수가 또 한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연예전문 매체 디스패치는 상추(본명 이상철·32)가 6개월째 군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라고 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지난해 10월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해 지금까지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며 6개월째 장기입원 중이다. 퇴원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입대해 연예병사로 선발된 상추는 지난해 6월 숙소 무단이탈 등의 복무기강 해이 행태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예병사 중 한명이다. 당시 논란으로 결국 그해 7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고 상추는 10일간 영창 처분을 받았다. 이후 8월에는 강원도 화천 15사단에 일반 병사로 전출됐다. 보직도 연예병사에서 소총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재배치 2개월 만에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했다. 디스패치는 상추가 국군춘천병원 1인실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스패치가 취재한 한 의무병은 “상추가 부상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라면서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루에 2~3시간 가량 물리치료를 받은 뒤 휴식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추는 입원 기간과 상관없이 오는 8월 전역할 예정이다. 현행 군 복무 관련법에 따르면 입원 기간 역시 복무기간으로 인정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상추,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 입원” 디스패치 폭로에 소속사 반응은?

    “상추, 군병원서 6개월째 장기 입원” 디스패치 폭로에 소속사 반응은?

    ‘상추 군병원 장기입원’ ‘디스패치’ ‘연예병사’ ‘상추 소속사’ 복무기강 해이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연예병사 제도 폐지까지 불러온 가수 상추(본명 이상철·32)가 6개월째 군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이라고 연예전문 매체 디스패치가 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지난해 10월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해 지금까지 정형외과 치료를 받으며 6개월째 장기입원 중이다. 퇴원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입대해 연예병사로 선발된 상추는 지난해 6월 숙소 무단이탈 등의 복무기강 해이 행태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예병사 중 한명이다. 당시 논란으로 결국 그해 7월 연예병사 제도는 폐지됐고 상추는 10일간 영창 처분을 받았다. 이후 8월에는 강원도 화천 15사단에 일반 병사로 전출됐다. 보직도 연예병사에서 소총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상추는 재배치 2개월 만에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했다. 디스패치는 상추가 국군춘천병원 1인실에 머물며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리치료를 받을 때에는 칸막이 침대를 쓰고 있다고도 전했다. 디스패치가 취재한 한 의무병은 “상추가 부상 때문에 온 것은 아니다”라면서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안다. 하루에 2~3시간 가량 물리치료를 받은 뒤 휴식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추는 입원 기간과 상관없이 오는 8월 전역할 예정이다. 현행 군 복무 관련법에 따르면 입원 기간 역시 복무기간으로 인정한다. 디스패치는 국군춘천병원 담당 군의관이 “이상철(상추)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절대 특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에 대해 상추 소속사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국군춘천병원에 입원해 6개월째 장기입원 중인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특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10월부터 두 차례 받은 수술이 이유였고, 장기 입원 결정도 군의관이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원래 상추는 어깨, 발목이 좋지 않아서 현역 입대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려 입대했다. 하지만 훈련도 받고 작업도 하면서 몸 상태가 많이 악화됐다. 결국 10월부터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회복 중이다”라고 전했다. 만기 제대 의지도 전했다. 관계자는 “사실 지금도 의가사 전역이 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본인이 만기 전역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도 그렇고 상추도 현재 꾀병이나 부릴 때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특혜는 사실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응급·중환자실 동참’ 24일 2차 집단휴진땐 더 큰 혼란

    ‘응급·중환자실 동참’ 24일 2차 집단휴진땐 더 큰 혼란

    의사들의 10일 집단휴진은 의료대란 없이 마무리됐지만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다. 대한의사협회는 24일부터 6일간 대규모 장기 휴진을 벌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2차 집단휴진에는 이번에 제외된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필수 진료 인원까지 참여하게 된다. 정부는 전국 보건소·대학병원·군병원·산재병원·소방방재청과 함께 비상진료 체계와 응급환자 이송 시스템을 가동해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2차 집단휴진이 현실화될 경우 응급 환자들의 건강이 가장 먼저 위협받게 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대화를 통한 출구 모색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차 집단휴진 참여율이 20.9%로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2차 집단휴진 동력 확보에 비상이 걸린 의협은 일단 2차 집단휴진까지 2주간 적극적으로 정부와 갈등 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집단휴진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도 정부를 향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의사협회가 정말 국민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집단 이익을 위해 불법 단체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돌아와 대화로 문제를 푸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역시 대화를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주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차관회의에 올려 심의하고도 11일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화를 염두에 두고 의료계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집단휴진에 참여한 의사들의 면허 취소까지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강경 기조가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 오히려 파업 규모를 키웠다는 비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권덕철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전공의들의 의료계 집단휴진 참여 상황을 봐 가며 의료법 개정안 국무회의 상정 시기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그동안 ‘집단휴진 철회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기 때문에 의협과 공식 대화를 시작하기보다 비공식적인 물밑 대화를 거쳐 주요 쟁점에 대한 이견을 좁혀 가는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입영신검, 혈당 등 11개 항목 추가

    국방부가 병사들이 입대 직전 실시하는 입영 신체검사 항목을 늘리고 환자를 조기에 식별할 수 있도록 의료 체계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50사단 훈련병 이모(20)씨가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한 사건에 따른 후속 조치지만 전문성 있는 응급처치사 배치 대신 훈육요원의 능력을 보강하겠다고 밝혀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17일 입소 훈련병 가운데 환자가 있을 경우 이를 조기 식별하기 위해 교관과 조교에게 상담 능력과 기초 의학상식과 응급처치 요령 등을 교육하고 입영 신체검사 때 검사할 대상 항목을 5개에서 16개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입영신검 때는 간기능, B·C형 간염, 매독, 에이즈만 검사하지만 앞으로 백혈구, 적혈구 등 일반혈액검사 5개 항목, 간기능(GOT), 신장기능, 공복혈당, 총콜레스테롤, 염증반응(CRP), 소변검사 등 11개 항목이 추가된다. 군 당국은 약 53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입대 이전 병무청 징병검사 때는 요당검사 방식을 혈당 검사 체계로 바꾼다. 군 당국은 이 밖에 정밀검사를 위해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입영 신체검사를 담당하는 군의관도 2명에서 4명으로 증원하고 군병원 진료 때 담당 군의관과 관련된 다른 진료과목 군의관이 합동으로 진료하는 협진 체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명령 위주의 군 체계와 여전히 낮은 인권의식에 비춰 볼 때 이 같은 개선 방안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태훈 군 인권센터 소장은 “자격증을 갖춘 전문응급처치사가 아니라 교육에 전념하는 교관과 조교들의 상담 능력이 얼마나 향상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군 의료기관 진료수준 높여야 한다”

    “군 의료기관 진료수준 높여야 한다”

    이명철(65) 전 가천대 길병원장이 민간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군의료의 상징인 국군수도병원장에 취임해 안팎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신임 이 원장은 3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국내 핵의학 개척자로, 세계핵의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동위원소기구 회장을 맡고 있는 신임 이명철 원장의 국군수도병원장 발탁이 주목받는 것은 군 의료기관의 질적 수준 향상에 대한 군 당국의 의지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기대를 알고 있다는 듯 이 원장은 “군 의료기관의 의료 수준을 주요 대형병원 수준으로 높여 실질적인 치료 및 재활 전문 의료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서울대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2년부터 가천대 길병원장을 맡아온 이 원장은 국내 최초의 핵의학 전문의로, 국내 핵의학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1994년 국내에 핵의학 전문의 제도를 처음 도입해 의학적 치료 목적의 방사선 활용에 대한 개념을 정착시키는 등 단기간에 한국의 핵의학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이끌었다는 것이 의료계의 평가이다. 이 원장을 취임식 직전에 만났다.   이 원장은 “군의료의 중심 병원인 65년 전통의 국군수도병원장으로 취임하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열정을 쏟아 군의료 발전의 토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군의료가 국내 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으나 1980년대 이후 건강보험 제도가 시행되면서 민간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반면 군의료는 상대적으로 발전의 계기를 찾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같은 현실 인식은 정부가 2009년 국군수도병원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한 데서도 확인된다. 군의료의 변화와 도약을 위해 예비역 공군 준장 출신을 병원장으로 선임한데 이어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인 출신 의료인을 병원장으로 전격 발탁하기에 이른 것. 이 원장도 이런 배경을 감안한 듯 “국군수도병원의 경쟁력 확보와 병원 경영 혁신을 이뤄 국군수도병원이 군의료의 발전을 이끌도록 해야 하며, 이런 토대 위에서 군과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하겠다”고 구상의 일단을 내보였다. 현재 국방부가 추진중인 군 보건의료 발전계획 사업과 연계해 국군수도병원의 목표와 역량을 재설정, 진료·교육·연구 기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와 관련한 실천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우수한 의료 인력을 폭넓게 영입하고, 의료서비스를 전문화해 군병원 환자들이 신뢰하고, 만족할 수 있는 진료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원내 교육 및 연구 분야의 적정화와 내실화를 통해 의료인력의 질적 수준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전공의 수련제도 개편, 연구인프라 확충 및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할 일이 많을 것”이라면서 “외부적으로 서울대병원과 국군수도병원(국방부) 간에 구축되어 있는 협력관계를 강화해 의료의 질적 향상을 꾀하며, 미국·일본·중국 등 전세계 군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국제적 수준의 의료체계를 갖추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 원장은 이어 “현재 추진 중인 국군중증외상센터 설립도 매우 의미있는 시도”라면서 “군중증외상센터가 군의료 발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주밀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임기 중 군장병의 건강을 확실하게 책임지는 토대를 닦아 국군수도병원이 국내 최고의 공공의료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은 물론 세계적인 군의료기관으로 도약하도록 하겠다”면서 “그것이 민간인 출신을 병원장으로 발탁한 의도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원장은 세계핵의학회 회장(2002~2006)을 역임했으며, 한국PET협의회, 대한뇌기능매핑학회, 대한핵의학회, 대한방사선방어학회, 아시아핵의학협력기구 등을 이끄는 등 방사선 의학분야의 세계적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또 2008년에는 세계동위원소기구를 설립,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 과학기술훈장을 받기도 했다. 가천대 길병원장과 가천대 메디컬캠퍼스 부총장으로 재임하면서는 투명한 조직문화와 효율적인 병원 운영시스템 구축을 위한 경영혁신을 이끌어 병원의 질적, 양적 성장을 이끌었으며, 가천뇌융합과학원을 설립, 초대 원장을 맡아 뇌영상 분야 기술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하는 등 한국의 뇌영상시스템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몹쓸 짓 당해도… 말 못하고 눈물 삼키는 남자들

    몹쓸 짓 당해도… 말 못하고 눈물 삼키는 남자들

    신입 사원 A(33)씨는 요즘 회사에 갈 일이 끔찍하기만 하다. 직장 상사인 B(47·여)씨는 처음부터 회식 자리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A씨의 허벅지를 만지기 일쑤였다. 급기야 B씨는 자신이 인사권자임을 내세워 벌써 몇 차례나 ‘선’을 넘어선 요구를 해 왔다. A씨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하소연할 상대나 대책을 찾지 못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기댈 전문 상담소 등은 부족하기만 하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 강간 등 성범죄 건수는 2010년(793건) 이후 2011년 829건, 2012년 918건, 2013년 1164건으로 3년 사이 47%나 증가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한 남성 역시 2009년(42건) 이후 2010년 51건, 2011년 54건, 2012년 60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담 건수가 증가하는 것 같다”면서도 “‘남자니까 그냥 웃어 넘겨야 한다’는 편견에 가로막혀 여전히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이 협력해 성폭력 사건 신고 및 상담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원스톱 지원센터’가 전국 17곳에 설치돼 있다. 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상담, 의료,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하는 이곳에는 여성 경찰관과 상담사, 간호사 등이 상주하고 있다. 반면 남성들을 위한 전문 상담소나 지원센터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옥이 한국남성의전화 소장은 “남성을 위한 전문 성폭력 상담소는 국내에 한 곳도 없다”면서 “남성 피해자들은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부는 남성 피해자들이 원스톱 지원센터를 방문할 때 증거 채취 및 의료 지원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센터 내부에서 다른 여성 피해자들과 함께 상담을 받기는 어려운 탓에 강력범죄 피해자를 치료·보호하고 지원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스마일센터’ 등 관련 기관에 인계하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담사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후속 처리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군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남성 피해자 역시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오는 12월 국내 최초로 ‘군성폭력상담소’ 개소를 추진하고 있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대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남성 피해자 중 심한 경우 군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임상경험이 적은 군의관에게 전문적인 성폭력 상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원스톱 지원센터를 비롯해 기존에 있는 성폭력 상담소 내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남성 피해자에 대한 상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몹쓸 짓 당해도… 말 못하고 눈물 삼키는 남자들

    몹쓸 짓 당해도… 말 못하고 눈물 삼키는 남자들

    신입 사원 A(33)씨는 요즘 회사에 갈 일이 끔찍하기만 하다. 직장 상사인 B(47·여)씨는 처음부터 회식 자리에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A씨의 허벅지를 만지기 일쑤였다. 급기야 B씨는 자신이 인사권자임을 내세워 벌써 몇 차례나 ‘선’을 넘어선 요구를 해 왔다. A씨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하소연할 상대나 대책을 찾지 못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기댈 전문 상담소 등은 부족하기만 하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 강간 등 성범죄 건수는 2010년(793건) 이후 2011년 829건, 2012년 918건, 2013년 1164건으로 3년 사이 47%나 증가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요청한 남성 역시 2009년(42건) 이후 2010년 51건, 2011년 54건, 2012년 60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최지나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남성도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상담 건수가 증가하는 것 같다”면서도 “‘남자니까 그냥 웃어 넘겨야 한다’는 편견에 가로막혀 여전히 상담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와 경찰청이 협력해 성폭력 사건 신고 및 상담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원스톱 지원센터’가 전국 17곳에 설치돼 있다. 여성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상담, 의료, 법률 지원 등을 제공하는 이곳에는 여성 경찰관과 상담사, 간호사 등이 상주하고 있다. 반면 남성들을 위한 전문 상담소나 지원센터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옥이 한국남성의전화 소장은 “남성을 위한 전문 성폭력 상담소는 국내에 한 곳도 없다”면서 “남성 피해자들은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부는 남성 피해자들이 원스톱 지원센터를 방문할 때 증거 채취 및 의료 지원은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센터 내부에서 다른 여성 피해자들과 함께 상담을 받기는 어려운 탓에 강력범죄 피해자를 치료·보호하고 지원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스마일센터’ 등 관련 기관에 인계하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담사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후속 처리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군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남성 피해자 역시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오는 12월 국내 최초로 ‘군성폭력상담소’ 개소를 추진하고 있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군대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남성 피해자 중 심한 경우 군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임상경험이 적은 군의관에게 전문적인 성폭력 상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원스톱 지원센터를 비롯해 기존에 있는 성폭력 상담소 내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남성 피해자에 대한 상담 교육을 진행하는 등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씨줄날줄] 종친부와 미술관의 화해/서동철 논설위원

    경복궁 동쪽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안팎은 조선시대 소격서와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들어서 있던 관청 밀집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는 경성의전부속병원이 지어졌고, 해방 이후 이 건물은 수도육군병원으로 쓰였다. 서울 시내 중심부의 요지인 탓인지 병원 뒤편은 국군기무사령부가 차지했는데 얼토당토않게 1981년 테니스장을 짓겠다며 멀쩡한 종친부(宗親府) 건물을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 세운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령관을 대통령으로 배출한 직후 기무사의 위세를 당시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했다. 기무사 전신 국군보안사령부 시절이다. 미술인들의 소망대로 정부는 2010년 이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힌다. 서울관 건립과 함께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 또한 당연한 조치처럼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이어 군사정권에 훼손된 역사를 일부나마 되찾는 뜻깊은 일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니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나마 미술인 사이에 나온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이 땅은 미술인들이 힘을 합쳐 쟁취한 일종의 ‘전리품’인데 문화재라는 ‘다른 장르’가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반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종친부 건물의 제자리 복원은 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과 동시에 추진됐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듯 우여곡절을 겪은 종친부 건물의 이전복원 공사가 마침내 마무리돼 20일 현장에서 준공식을 갖는다고 한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10동 남짓한 규모였다고 하는데 남은 건물은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뿐이다. 미술관 착공과 동시에 이루어진 발굴조사 결과 건물 지하의 옛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확인해 그 자리에 복원할 수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던 경근당과 옥첩당의 현판도 다시 걸었다. 경근당 현판은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종친부 복원이 반갑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서울관이 개관한 이후에도 종친부는 썰렁한 분위기 속에 공사 중이었다. 미술인들에게는 여전히 ‘눈엣가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관 기념전에 종친부 건물을 활용한 작품 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늦었지만 준공식이 미술과 문화재가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미술인들은 종친부 건물을 예술적 자원의 하나로 활용하고 문화재 관계자들은 종친부 건물이 역사적 의미를 넘어선 새로운 문화 자산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박물관 옆 미술관 시대/서동철 논설위원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의 청계산 자락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것은 1986년이었다. 휴식공간이라면 아늑한 환경에 훌륭한 시설이지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현대미술관으로는 무리한 입지였다. 현대미술관이란 그저 평생에 한두 차례 소풍 삼아 가보면 되는 곳 아니겠느냐는 인식이 ‘동물원 옆 미술관’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런 현대미술관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서울관을 마련하고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길 건너 경복궁의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로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잇는 마름모꼴의 ‘내셔널 뮤지엄 벨트’가 완성된 것이다. 미술인들은 이제 과천 미술관 건립 주체들에게 비난을 거두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그들이 처음부터 적절한 입지에 미술관을 지었다면 서울관과 과천관이라는 두 개의 미술관은 없었다.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2000년 고도(古都)에서도 전통과 현대가 가장 극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미술관을 중심으로 경복궁과 현대적인 문화가 중심을 이루는 삼청동 거리, 북촌 한옥마을,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현대적 공연예술의 메카인 세종문화회관을 중심으로 하는 광화문광장이 둘러싸고 있다. 서울관은 그 자체가 조선시대 언론의 역할을 수행한 사간원과 왕실 친·인척을 관리한 종친부가 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군 정보기능을 맡은 국군기무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졌던 종친부 건물은 이번에 제자리에 복원됐다. 서울관 전면의 벽돌건물은 일제강점기 경성의전부속병원으로 지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수도육군병원으로 쓰였고 1979년 10·26사태 당시 총상을 입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곳으로 후송하는 동안 숨을 거뒀다. 이렇게 서울관에는 종친부, 수도육군병원, 새로 지은 미술관 건물이 공존한다. 서울관 개관의 의미는 바로 역사적 공간에 예술을 매개로 하는 미래의 개척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더해진 데 있다. 서울관은 따분하고 어려운 미술관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미술을 적극 소개하면서 작가들이 세계 미술과 협업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옳은 방향이지만 실제로 관람객이나 미술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록 전시와 연구, 사업으로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토록 염원하던 도심 미술관을 미술인들이 어떻게 도심 미술관답게 운영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현대미술관이 도심에 자리 잡고도 ‘그들만의 미술관’에 머물며 평범한 시민과 소통에 실패한다면 과천에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전투기 또 추락… 35년 된 F5E

    전투기 또 추락… 35년 된 F5E

    공군의 F5E 전투기가 26일 오전 11시 56분쯤 충북 증평군 행갈마을 뒷산에 추락했다. 1978년 도입된 사고 비행기는 35년 동안 6610시간을 비행했으며 2017년 말 도태될 예정이었다. 조종사 이모(32) 대위는 추락 직전 탈출했고 인근 공군병원으로 이송됐다. 추락 지점은 민가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이었지만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 관계자는 “사고 전투기는 오전 10시 48분쯤 청주 기지를 이륙한 직후 계속 고도가 상승하는 기수 급상승 현상이 발생했다”면서 “조종사는 비상 착륙을 수차례 시도하다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 기종은 2000년 이후에만 이번까지 9번의 사고로 12대가 추락해 13명의 조종사가 순직했다. 최근에는 2010년 3월 강원 평창에서 18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 2대가 추락해 조종사 3명이 숨졌다. 같은 해 6월 동해상에서 발생한 추락 사고로 조종사 2명이 숨졌다. F5 전투기는 미국 노스럽사가 1955년에 개발한 저가의 경량 전투기로 1987년 생산이 종결됐다. 공군은 현재 F5E, F5F, KF5(제공호) 등 180여대의 F5 계열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 F5E와 F5F는 2019년까지, KF5는 2025년까지 모두 도태될 예정이다. 차기전투기(FX) 사업이 늦춰지면서 F5 계열 전투기의 대량 도태와 맞물려 전력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여군 임산부의 죽음] 만삭의 몸, 한달 50시간 초과근무 이 악물고 버티다…

    [여군 임산부의 죽음] 만삭의 몸, 한달 50시간 초과근무 이 악물고 버티다…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여군이 제대로 된 산부인과 진료를 받지 못한 채 격무에 시달리다 출산 다음 날 사망했다. 유가족의 순직 처리 요구에 군은 전례가 없다며 버텼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가 나섰고 군은 순직 처리키로 방침을 바꿨다. 지난 2월 3일 사망한 이신애(28·여군 사관 55기) 중위 이야기다. 사건은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현재의 여군에 대한 인식이나 열악한 군 의료체계가 지속되는 한 제2, 제3의 이 중위는 언제든 나올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 중위를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악바리’ 이 중위는 지난 2월 2일 679g의 사내아이 봄봄이(태명)를 세상에 선물하고 이튿날 오전 7시 47분 숨을 거뒀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임신 7개월의 몸으로 한 달 내내 초과근무하며 준비했던 혹한기 훈련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사망 원인은 임신성 고혈압에 의한 뇌출혈. 육군본부는 4월 11일 “군 복무와 사망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결정했다. 아버지 재학씨와 남편 연두봉씨는 6월 16일 강원 횡성군 봉안소에서 유해를 인수했다. 육군 대위 출신의 할아버지, 중령으로 예편한 부친에 이어 3대째 군인의 길을 걷던 이 중위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그대로 묻히는 듯했던 이 중위의 죽음은 권익위가 지난 10일 과로로 인한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육군본부에 권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1월 초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던 이 중위는 왜 죽었을까. 산부인과 전문의 3명은 과로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가 임신성 고혈압을 악화시킨 것으로 권익위에 자문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대대 지휘관이 교체되고 직속 상관인 부대 운영과장이 1월에 전출된 후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다. 후임자도 배치되지 않았다. 혹한기 훈련 준비까지 겹쳐 정보작전 임무를 맡은 이 중위는 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이 중위의 죽음에는 군의 상명하복 문화와 낮은 모성 보호 인식, 낙후된 의료체계가 복합 작용했다. 근무지였던 인제군에는 산부인과 병원이 없다. 가장 가까운 속초까지 왕복 두 시간, 춘천은 왕복 세 시간 거리다. 두 곳 모두 위수지역 밖이어서 지휘관 승인을 받아 휴가를 내야 한다. 서상원 권익위 조사관은 “지금 같은 상황이면 ‘제2의 이신애’가 또 나올 수 있다”며 “군의 시스템과 제도가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3월 말 현재 장교·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여군은 8448명, 전체 군인의 4.7%이다. 2007년 말(4959명)보다 58% 늘었다. 주로 전방에 배치되는 전투병과는 전체 여군의 36%(3120명)에 이른다. 군은 2015년까지 여군을 1만명 이상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여군 대책은 이중적이다. ‘기계적 평등’을 강조할 뿐 일과 가정의 병립을 위한 지원은 인색하다. 공공연하게 여군을 전투력 저하 요인으로 꼽는 가부장적 지휘관들도 적지 않다. 육군 관계자는 “일부 지휘관들은 결혼한 여군 장교를 노골적으로 꺼린다”면서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이 제때 충원되지 않기 때문에 짐을 떠안는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낙후된 의료지원 체계도 문제다. 16개 국군병원 중 산부인과가 설치된 곳은 국군수도병원, 국군서울지구병원, 국군대전병원, 항공우주의료원(청주), 해양의료원(진해) 등 5곳뿐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산부인과 군의관 증원이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임신한 여군의 경우 산부인과 진료는 민간에서 받고 진료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전방 지역의 경우 민간 산부인과 병원이 전무해 이 같은 원칙은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늦었지만 육군은 이달 중 재심의를 열어 이 중위를 순직 처리키로 했다. 이 중위의 유골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까지 부친의 집에 임시로 보관돼 있다. 엄마의 부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들 봄봄이는 그동안 건강하게 자라 체중이 6㎏이 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10년간 1000여구 시신 수습한 남자

    10년간 1000여구 시신 수습한 남자

    매일 전쟁터에서 실려오는 시신을 염(殮)하는 남자가 있다. 60여년 전 6·25 전쟁 때의 일화가 아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워싱턴포스트는 4일(현지시간) 지난 10년간 1000여명의 아프간 군인 시신을 염습한 남자의 스토리를 보도했다. 아프간전 최대 격전지인 칸다하르 지역 군병원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일하는 아프간 남성 누룰라 누리(33)의 업무는 탈레반 반군의 공격에 전사한 아프간 군인들을 염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병원으로 실려온 전사자의 몸에 묻은 피와 때를 깨끗이 닦아낸 뒤 이슬람 식으로 향수를 뿌리고 하얀 천으로 덮는 일이다. 이처럼 곱게 ‘단장’된 시신은 유족에게 보내진 뒤 매장된다. 누리의 ‘집무실’은 병원 한 켠의 컨테이너 안이다. 거기에는 침대와 선풍기, 시신을 씻겨낼 고무 호스가 비치돼 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을 보고 만지는 일은 누리에게 고통 그 자체다. 다소 멀쩡해 보이는 시신을 침대에 눕힌 순간 하얀 시트가 순식간에 붉게 물드는 것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그래서 그는 신경안정제 없이는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다. 누리는 “전사자의 시신을 염하는 일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면서 “시신 3~4구를 씻기고 나면 탈진해 드러눕고 만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족에게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직 밝히지 못했다. 그는 탈레반 정권 집권기 때 19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전쟁이 터져 탈레반 정권이 쫓겨난 뒤 전사자가 밀려들어오면서 현재의 일을 맡게 됐다. 최근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의 철군이 진행되면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아프간 군의 전사자가 급증하고 있다. 매달 400명의 아프간 군인과 경찰이 사망하고 있다. 그만큼 누리의 일도 많아지고 있다. 한밤 중에 자다가 불려나가는 일도 다반사다. 누리는 “나보다 시신을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군대가 싸우면 사람은 반드시 죽게 돼 있다”며 직업에서 체득한 ‘인생철학’을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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