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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시업에 GPS 도입/빈차 운행률 5%P 줄여/야지마사 성공기

    ◎매출액 50% 상승과 맞먹어/모니터로 배차… 승차율 최대 『네.야지마택시입니다.○○번지 앞이면 2분 뒤에 도착하게 됩니다』 도쿄에서 북쪽으로 특급열차로 1시간30분정도 떨어진 군마현 오타시의 야지마택시 배차계.지방도시는 택시영업이 「콜 택시」제다.거품불황으로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일본의 지방택시업계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야지마택시도 카 네비게이션(항공기의 자동항법장치를 승용차에 적용한 기술)을 이용한 GPS를 도입,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야지마는 지난 93년 11월 54대의 택시에 GPS를 도입했다. 도입결정에 대해 야지마 마사히로(시도정홍) 사장은 『택시업은 빈차운행률을 얼마나 낮추는가가 열쇠다.매출액 50%를 올리는 것과 빈차운행률을 5% 낮추는 것이 이익면에서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면서 『매출액 50%를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빈차운행률을 줄이는 것이 쉽다.그 때문에 GPS를 도입했다』고 말한다. 야지마의 GPS시스템은 택시의 발신기로부터 위치와 「운행중,요금정산중,휴게중,빈차운행중,영접하러 가는 중」 등의 정보가 미국 군사위성을 통해 회사 모니터에 표시된다.모니터에는 택시들이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컬러로 나타난다.또 각 택시에는 자사소속 택시들이 어디에 몇대 있는지가 표시된다.회사는 손님에게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택시를 배차한다.기다릴 시간도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고 배차시간도 빨라진다.또 택시들도 자사소속 택시가 몰려 있지 않은 곳으로 스스로 이동해 승차율을 높인다.운전수들의 봉급은 업적급제이다.배차계 인원은 4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야지마 사장은 GPS의 도입에 따른 배차효율화로 빈차운행률이 종전 48% 수준에서 40∼43%로 떨어졌다고 한다.도입비용은 3천만엔 남짓.가볍지 않은 부담이지만 야지마 사장은 경영효율화가 가져오는 결과에 만족해하고 있다.
  • 여 대권주자들 “정중동”/겉으론 대권논의 해금 기다리며 “동면”

    ◎속으론 주자들간 회동·밑바닥 훑기 분주 대권논의 자제령으로 신한국당 대권예비군도 「동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현재 공식 행사라곤 중간쯤 끝난 지구당개편대회가 고작이다.그것도 2∼3명이 번갈아가며 참석,「이미지메이킹」을 하는 정도다. 이 기간동안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래야 이홍구 대표의 「젊은 후보론」에 이은 출처 불명의 「당정분리 및 민주계 대표설」,지난주 김윤환·박찬종 고문의 청와대 개별면담,그리고 최형우 고문의 「온산 서예전」이 전부이다. 이처럼 외형상 예비주자들의 행보는 일단 「해금」을 기다리는 정치휴년병 처럼 보인다. 그러나 김윤환 고문의 얘기처럼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일 뿐이다.한걸음 내딛는 것 자체를 실전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일전을 위한 준비의 성격이 짙다.지난 15일 최고문의 서예전에 1천여명이 몰려 전시회장 일대가 대혼잡을 빚었듯이 주자군마다 대세확보 경쟁과 물밑을 훑는 잠행이 한창이다. 공통적인 특징은 강연·인사접촉 등으로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는 점이다.이홍구 대표는 공휴일에도 개인적인 조찬 약속부터 시작,종일 잠시도 짬을 내기가 어렵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서예전으로 바쁜 최고문도 15일 전시회 개막식이 끝난뒤 곧바로 강릉대 경영대학원 특강에 참석,「취약지역」을 누빌 정도로 열심이다. 이회창 고문은 다소 관계가 껄끄러운 재계에 자신의 무기인 「대세론」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고,14일 청와대 방문이후 측근들과의 폭음으로 관심을 모은 박찬종 고문은 「강연정치」까지 중단한채 접촉반경을 확대,영입파로 원외라는 취약점의 보강에 역점을 두고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빈도수를 높여가고 있는 주자들간의 물밑회동이 관심을 모은다.지난 8일 최형우 고문·김덕용 정무제1장관의 회동에 이어 지난주 초에는 김윤환 고문과 김정무 장관이 깊숙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김장관은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사람들의 동지애는 각별하다』며 『개인적인 만남일 뿐』이라고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다른 예비주자 진영에서는 정치는 먼저 만남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때 예사롭지 않다는시각이다. 독서광인 이한동 고문은 다음달 출간할 자신의 정치철학과 국가경영론을 담은 책발간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당내 하위직인사들과의 접촉반경을 확대중이다.그는 또 다음달 2일 아랍에미리트 국왕즉위 기념식과 쿠웨이트에 대통령 특사로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진다.
  • 북한의 마약(외언내언)

    북한에서의 마약은 외화벌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무기수출이 외화벌이의 선두라면 마약밀매는 그 다음이다.북한당국은 20여년전부터 외교관을 동원,마약밀매를 해왔지만 외화가 고갈된 90년대에 들어서는 「국가사업」으로 더욱 다그치고 있다.김일성은 92년초 「내적교시」를 통해 『각 도에서는 대대적으로 양귀비재배바람을 일으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지시했고 그 이후 양귀비재배면적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92년이전에는 함경도·양강도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1백30만평 규모였으나 94년에는 1천2백80만평으로 10배나 늘어났다.이정도 면적이라면 한해 약 30t 아편을 생산할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정.아편 1㎏의 국제시세를 1만2천달러로 계산하면 3억6천만달러에 이른다. 북한당국은 70년대 후반까지 주로 유럽지역 공관을 통한 중간밀매형태를 취해왔으나 90년대에는 중개거래보다 수익이 많은 직접밀매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어쨌든 지금 북한의 마약밀매루트는 러시아·중국·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동남아·남미지역 등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딸과 함께 귀순한 허창걸씨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은 함경북도 백부고원 등 10여개 대규모 양귀비농장에 아편가공공장까지 만들어 막대한 마약을 제조하고 있으며 각 시·군마다 이를 관리하는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증언은 북한의 마약 생산과 밀매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허씨는 북한에서 동약단과 대학을 졸업한뒤 인민병원과 요양소 등에서 약제사로 근무한바 있어 이 증언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허씨 증언과는 별도로 우리가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북한 마약이 우리사회에도 반입되고 있다는 점이다.안기부는 지난4월 일본의 조총련을 통해 상당한 양의 북한마약이 들어온 사실을 포착한바 있다.마약침투는 무장공비침투 못지않는 악랄한 만행이다.당국은 이 「소리없는 무기」가 우리사회를 좀먹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해 주기 바란다.
  • 나카소네·각당 리더 일찌감치 당선 확정/총선 개표 이모저모

    ◎에이즈 환자 이에니시 “유력” 보도에 환호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총재,가토 고이치 간사장,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 등은 하오 6시부터 시작된 개표결과 일찌감치 속속 당선이 확정돼 당본부의 후보자 명단위에 빨간 꽃이 꽂혔다.또 군마현이 속한 북간토 비례구에 1순위로 출마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총리도 쉽게 당선. 신진당도 오자와 이치로 당수와 니시오카 다케오 간사장이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됐으며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공동대표와 간 나오토 공동대표도 속속 당선됐다. 당의 분열로 고전을 면치 못한 다케무라 마사요시 신당 사키가케 전대표는 접전끝에 하오 9시 넘어 당선이 확정되자 『처음 당선된 것 같다.기쁘다』면서 감격한 표정. 한편 출구조사 결과 과반수 획득이 어려울 것으로 조사된 자민당은 개표 중반전 당선확정자의 과반수이상을 얻자 다소 고무된 표정을 지었으나 목표에 못미치는 신진당과 민주당 관계자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채 『새로 출발하는 각오로 노력하겠다』고 간단하게 언급. ○…자민당 금권정치의 상징인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작고) 전 총리의 딸로 곧잘 총리 물망에 오르고 있는 다나카 마키코(진기자)후보는 과거 아버지의 후원회간부가 신진당 후보로 맞섰으나 가볍게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 ○…41차에 걸친 일본 의회선거에서 단 한차례만을 제외하고는 일본의 모든 선거를 지켜본 「킨」과 「긴」이라는 이름의 100살이 넘은 쌍둥이할머니들이 20일 총선에 참가했으나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혈우병자이자 HIV보균자로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소속 이에니시 사토루 후보(36)는 20일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에니시 후보는 이날 회견에서 『이번 선거에서 많은 이들이 에이즈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나는 환자라는 관점에서 나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 대남 정찰임무 수행 부서/북,각군마다 운영

    북한은 인민무력부 정찰국말고도 각 군마다 대남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를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또 북한은 지난 94·95년 각 1차례씩과 이번 강릉 침투를 포함,올해 2차례 등 4차례에 걸쳐 잠수함을 동해안에 침투시켰던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군 당국에 따르면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31)는 북한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국 직속으로 ▲육상침투 담당 5개 정찰대대 ▲해상호송 업무를 맡는 해상처 외에 다수의 처를 두고 대남정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 합동연설회/선거구마다 2차례개최… 이틀전 공고(4·11 가이드)

    ◎후보별 30분이내 배정… 순서 현장추첨 선거기간이 시작되면 후보자들은 연설회를 통해 지원유세를 할 수 있다.연설회는 선관위가 주관하는 「합동연설회」와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개별적으로 여는 「정당 및 후보자에 의한 연설회」등 두가지다. 합동연설회는 선거구마다 2차례 열리며 2개 이상의 시·군·구로 구성된 선거구는 각각 1차례씩 가능하다.예컨대 영동·보은·옥천의 경우 군마다 1차례씩 총 3차례가 열린다. 선관위는 후보등록 마감후 합동연설회의 날짜와 장소를 후보자별로 공평하게 확정,개최 이틀전까지 공고해야 하며 후보자나 선거사무장에게 이를 통지해야 한다.또 확성장치가 부착된 차량으로 고지방송을 해야 한다.연설시간은 후보자마다 30분 이내로 배정하고 연설순서는 현장에서 추첨으로 정한다. 후보자가 자기 연설시간 전까지 참석하지 않으면 연설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 상수도·택지개발 등 민간운영 공공사업/내년 지방공기업 전환 허용

    ◎내무부,“지자체서 요청땐 적극 인가” 민간이 관리 운영중이거나 사업소 형태의 공공사업들이 내년 중에 대폭 지방 공기업으로 전환된다. 내무부는 18일 전국 시·도 기획관리실장 회의를 갖고 각 시·도가 공기업과 공사,공단의 공기업 전환신청을 해오면 적극적으로 인가해 준다는 방침을 통보했다. 이는 갖가지 공공사업등 직영체제인 공기업으로 전환해 자치단체의 수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공기업 전환 대상 사업은 ▲지방상수도 사업가운데 직원수 30인이상,하루 1만5천t의 생산시설을 갖춘 사업 ▲시·군에서 추진중인 3만평 이상의 택지개발 사업 ▲직원 10인이상이고 주차규모 5백대 이상의 주차시설을 직영,위탁 관리하고 있는 기업체 등이다. 내무부는 이와 함께 전국에 16개인 민·관 공동출자(제3섹터)형태의 기업을 2000년까지 1백32개 시·군마다 1개씩 세우도록 했다.
  • 병무청·서울 경찰청(국감초점)

    ◎병무청­상근예비역 근무기간 단축 검토/부작용 줄이게 「방위병 제도」 부활 촉구 6일 병무청에 대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올해부터 방위병 제도 대신 시행중인 상근예비역과 공익근무 요원제도 등 국방인력정책의 문제점이 집중 거론됐다. 여야의원들은 이들 제도가 시행된지 미처 1년도 지나지 않아 전반적인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과 관련,「졸속 병무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고 제도개선을 서두르거나 문제의 제도를 전면폐지하고 종전 방위병 제도를 부활할 것을 촉구했다. 상근예비역은 12개월 현역근무한뒤 나머지 16개월을 종전 방위병처럼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향토방위업무를 맡는 것이며,공익근무요원은 기초군사훈련만 마치면 곧바로 산림청 등 각 해당부처에 소속돼 집에서 출퇴근하며 28개월 근무하는 제도. 우선 이건영 의원(민자)은 『한 나라의 병역제도가 시행 1년만에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방위병제도를 부활시킬 것인지,아니면 복무기간을 줄이고 활용부대를 향토사단으로 한정하는 등 추가보완책을 마련할 것인지 분명히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김동근 의원(민자)도 『상근예비역의 실제지원율은 95년 4%에 불과,나머지 부족인원을 징집에 의해 충원하고 있다』면서 상근예비역 제도의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당에 비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자민련 등 야당의원들의 목소리는 한층 높았다. 정대철 의원(국민회의)은 『상근예비역 제도는 현역병 순환율의 증가에 따른 향방 인력부족 현상,12개월 현역근무에 따른 3백10억원의 추가예산 소요,내무생활시 현역병과의 갈등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킴으로써 병력수급 및 자원활용에 막대한 차질을 가져오고 있다』면서 『육군마저 환영하지 않는 이 제도를 폐지하고 방위병 부활을 건의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따졌다. 이철 의원(민주)은 공익요원제에 대해 거론,『당초 올해 공익근무요원 정원은 2만3천2백35명으로 확정됐으나 각종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편법으로 과적차량 단속요원 1천8백86명을 늘렸다』며 무원칙성을 질타했다. 이밖에 여야의원들은 한의대졸업생들의 공중보건의 활용방안과 최근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군가용병력 확보방안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송재환 병무청장은 『상근예비역은 현역보다 2개월 긴 복무기간등의 탓으로 지원율이 저조한 실정』이라며 『최근 근무기간 단축등 제도 개선방안을 국방부에 건의했으며 새로운 제도로 전환하는 문제는 앞으로 연구검토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경찰청/안보법 복역자 보호관찰 최소화/여야,노원구청장 수사 싸고 입씨름 6일 서울경찰청에 대한 국회 내무위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상반된 목소리로 일관했다. 야당,특히 국민회의 의원들이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 수사 및 「정치사찰」 여부에 온통 매달리자 민자당 의원들은 즉각 반론을 제기,뜨거운 설전을 벌였다.서로가 기선제압을 위해 초반부터 팽팽하게 맞서면서 회의는 겉돌았고,업무보고는 도중에 취소됐다. 최구청장 수사문제를 놓고 국민회의 장영달·김충조·정균환 의원과 민주당의 국민회의측 전국구 의원인 김옥두 의원과 김종완 의원 등이 대거 나서 「표적수사」「야당탄압」이라고 공격했다.안병욱 서울 경찰청장은 『지난 7월 자체적으로 첩보를 입수했다』고 정치적 의도와는 무관함을 거듭 강조한 뒤 『범법사실이 드러나 구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옥두 의원은 경찰이 미리부터 「의도」를 갖고 최구청장이 다니던 각종 테니스대회 등에 형사를 투입,정보를 수집해 왔다고 주장했다.이어 장영달 의원도 「표적수사의 표본」이라고 가세하자 민자당의 박희부·김길홍·번형식 의원등이 반론을 제기하며 경찰측 지원사격에 나섰다. 박희부 의원은 『장의원은 무슨 근거에서 일방적으로 표적수사라고 주장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고 번형식의원은 『위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놓고 표적수사는 무슨 표적수사냐』고 대응했다. 김길홍 의원은 『경찰이 합법적으로 한 일은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경찰은 주저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의 지구당사무실 압수수색 등에 대해서도 야당의원들은 집요했다.김옥두 의원과 김종완의원은 『『현역의원의 지구당사무실을 사전양해도 없이 압수수색한 것은 명백한 야당탄압』이라고 성토했다. 장영달 의원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 대한 전화도청 사건에 대해 즉각 해명하라』고 요구했다.정균환의원은 『경찰이 서울시로부터 불법 예산지원을 받아 「주민신고 지도요원」이라는 사찰요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안청장은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등으로 복역한 뒤 출소한 사람 등에 대해 북한의 대남공작 차단 및 보호차원에서 보안관찰법등 관계규정에 따라 관찰해 왔으나 앞으로 대상자를 최소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내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최선길 서울 노원구청장 수사를 놓고 여야가 설전을 벌이다가 급기야 동료의원에 대한 고발문제로까지 비화돼 고성이 오간 끝에 정회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 면암 최익현(외언내언)

    면암 최익현선생은 조선조말의 거유로 나라안팎이 시끄러울때 마다 상소와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대쪽같은 충신이었다.흥선대원군의 실정을 탄핵하다 제주도·흑산도 등에 귀양가기 여러번이었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반대시위를 주도한 죄로 투옥되기도 했다.면암은 『내 목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상투는 끊을 수 없다』고 버텼지만 선생의 완고함 뒤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선생에게 있어 상투는 가치질서의 상징이었다.『상투를 끊되 자주적인 사고를 통해 자주적인 결단으로 끊어야 한다.개화의 물결이란 명분으로,일본의 강요에 의해 끊을 수는 없다』는 것이 선생의 유명한 「상투논리」였다.이같은 기개와 지조에는 대원군마저 감복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투쟁을 호소하면서 납세거부,철도이용안하기,일본상품불매운동 등을 펼치다가 그 이듬해인 1906년 전북 순창에서 몸소 의병을 일으켰다.그때 선생의 나이 74세.의병 4백명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할 수밖에 없었고 체포된 뒤 일본 대마도로 끌려가 억류됐다. 그곳에서 『일본쌀은 한톨도 먹지않겠다』면서 단식에 들어간 선생은 1907년 1월1일 이역만리 일본땅에서 순국했다.그해 11월 선생의 유해가 환국했을때 부산포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수만명의 유림이 대성통곡,천지를 진동시켰다고 한다.매천 황현은 이때의 모습을 이렇게 읊었다.『곡소리 방방곡곡 삼백군에 이었는데/이나라의 높은 정화,한 외로운배에 가득하네』 선생이 안장된곳은 충남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관리가 허술했던 탓인지 선생의 묘소가 지난달 25일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유실되고 말았다.유해는 간데없고 비석과 상석도 토사더미에 묻혔다.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유해를 찾는대로 국립묘지로 이장,후손들에게 선생의 충절을 널리 알려야 한다.위대한 학자이자 투철한 애국지사의 혼이 깃든 묘소를 이처럼 방치한 것은 우리모두의 책임이다.
  • 한국전쟁 전야(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1)

    ◎비전투요원 472명 남고 미군 전원철수/6월17일 내한 덜레스 국무 “38선 이상무” 우리 민족이 가장 불행하게 맞은 20세기가 꼭 절반이 저문 19 50년 1월12일 워싱턴으로부터 달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한국은 미태평양방위선밖에 있다는 애치슨의 발언이었다.그토록 머물러 주길 희망했던 미군마저 철수한 위기상황 속에 날아든 애치슨의 발언은 한국민들에게 불길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한국은 미 방위선 바깥” 한국에 남아있던 당시 미군의 병력은 4백72명에 지나지 않았다.전투병력이 아닌 미군사고문단(KMAG)자격의 비전투 요원들이었다.미군은 성급하게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20일뒤인 19 48년 9월15일부터 한국을 빠져나갔다.미안전보장회의가 대통령 H S 트루먼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부터 미군들이 극비에 철수하기 시작한 것으로 되어있다.그리고 48년 12월말까지 완전 철수할 계획이었으나,중대한 모험이라는 여론에 따라 몇개월 연장되었다.미군은 결국 1949년 6월29일 군사고문단만을 남기고 철수를 끝냈던 것이다. 미국은처음부터 남한에 병력과 기지를 유지하는데 전략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이는 미 합동참모본부의 판단이었는데,극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 주둔 미군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것이었다.미국의 입장에서는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지상작전보다 쉽고 돈이 덜드는 미 공군의 활동에 더 기대를 걸었다.또 심각한 병력 부족현상을 겪고있던 미국은 남한에 유지하고 있는 병력 2개사단 약 4만5천명의 병력을 다른 지역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49년 3월22일 미국가안전보장회의는 그 전해에 만든 「한반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재검토하고 철군 건의안을 대통령 트루먼에게 제출했다.미군의 철수에 뒤따를지도 모를 공산주의 지배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한국정부를 실행 가능한 한도에서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였다.이는 한국에서 미국이 병력과 비용부담 의무를 줄일 수 있다는 국익과 맞물려 트루먼의 승인이 곧바로 떨어졌다. 어떻든 트루먼의 미 행정부는 철군 보상으로 한국에 미군 장비와 6개월분의 비축물자를 이양키로 했다.이와 더불어 미국 경제협조처(ECA)로 하여금 19 50년 회계연도에 1억9천2백만달러의 경제원조를 주는 방안이 고려되었다.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부에 더 많은 원조를 주려는 하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결국 한국정부는 50년 2월15일 이전에 사용할 수 있는 6천만달러의 원조금을 겨우 받아냈다. 한국군의 군비는 실로 말이 아니었다.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미국인 친지 R T 올리버(당시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한국 육군의 탄약 비축량은 5일분에 불과했다.북한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면 5개월을 버틸 수 있다는 분량이라고 예측한 미국의 여론에 대해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불만을 품었다. 1949년 9월 한달 동안에 북한의 공격이 1천1백84회나 되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육지와 연결된 통로가 없는 옹진반도에서는 한국군이 매일 공격을 받은만큼 사실상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미군사고문단은 명목상 한국군을 위한 것일 뿐 실제 임무는 한국군을 통제하는 일이었다.항공기는 대공포화가 없는 지역에서 사용할 수있는 6대 이외는 허용하지 않았다.탱크나 장갑차 보유는 엄두도 못냈다.포병은 탱크를 격파하기에는 너무도 가벼운 바주카포와 화포에 국한시켰다. 그렇다고 영토보전을 위한 어떤 보장도,외부공격에 대한 지원약속도 없는 상태였다. ○탄약 비축량 5일분 불과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 1월 한국이 미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렸다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발언이 전파를 탔던 것이다.정부수립 만 3년이 안되는 신생 대한민국으로서는 큰 놀라움이었다.한국은 참으로 고독했다.이승만 대통령이 19 49년부터 힘을 기울인 태평양 반공방위조약이 실현되었더라면 한국은 덜 외로웠을 것이다.자유중국·필리핀·인도·호주·캐나다·뉴질랜드 등이 참가하는 방향으로 구상한 이 조약은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도 매듭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 김일성 정권의 1950년은 의기양양했다.김일성은 1월1일 신년사에서 강력한 민주기지의 축성과 신속한 국토완정을 외쳤다.여기 나오는 국토완정은 얼핏 애매모호한 용어로 들리지만,실로 가공스러운 의미를 함축했다.국토의완전한 정리,다시 말하면 무력통일을 선언했던 것이다.그러면서 인민군대·경비대·보안대는 능숙한 전투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남한의 유격투쟁을 부추기는 내용의 발언을 덧붙인 김일성은 1949년에 이어 그해 3월에도 훈련된 빨치산 요원 1천50명을 남으로 보냈다. 김일성은 특히 미 국무장관 애치슨의 발언에 고무되었다.북한은 한국과 대만을 미태평양방위선 밖에 둘 것이라는 애치슨의 내셔널 프레스클럽의 연설이 있기 그 이전에 이미 병력과 장비를 증강해놓은 상태였다.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만큼 전력을 증강한 것은 1949년 여름 이후였다.먼저 5만명에 이르는 중공군 출신 한인의용군을 중국으로부터 불러들였다.이로써 북한 정규군의 약 3분의 1이 실전경험을 갖추게 되었다.그리고 나서 1950년 봄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소련제 중화기와 T34형 탱크가 청진항으로 속속 입항했다. 미군의 철수와 소련에 의한 북한의 군사력 강화는 한반도에 대한 미·소의 정책차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는 북한군 능력의과소평가와 동아시아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의 활동반경은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미국의 판단은 한국군 무장의 불필요성과 한국포기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었다.이 시기에 미국은 직전의 적국 일본을 보호하기 위한 일본의 제한적 재무장을 심도있게 들고나왔다.국제정치는 그토록 냉혹한 것이었다. ○“5년 이내에 전쟁 없다” 한국의 위치는 계속 흔들렸다.1950년 5월5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T 코널리는 미국의 전략에서 볼때 한국은 그다지 중요한 지역이 아니라는 발언을 했다.그의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지만,국내에서는 제2대국회를 뽑는 5·30선거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코널리 발언에 앞서 5월4일 미 대통령 트루먼은 전쟁이 일어날 위험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그러나 한국의 판단은 사뭇 달라 5월12일 신성모 국방장관이 북한군이 38선에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기자들에게 밝혔다. 그리고 6월이 다가왔다.그 6월의 첫날 트루먼은 또 『5년 이내에 전쟁이 없다』는 말로 5월4일의 발언을 더 구체적으로 확신했다.이어 6월17일에는 신임 미 국무장관 덜레스가 서울로 날아들었다.38선을 시찰한 덜레스는 국회연설에서 한국을 물심 양면으로 돕겠다는 말을 남기고 19일 서울을 떠났다. 세계전사를 통해 가장 지루하고 긴 대규모의 국지전으로 치러야 했던 며칠후의 한국전쟁을 예측하지 못한채 극동의 화약고를 멀리했던 것이다 ◎미 CIA 정보평가 보고서/미 “북한은 전면전 펼 능력 없다”/“중·소의 적극지원 전제돼야 가능/대남투쟁 선동·유격전에 그칠것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19 50년 북한이 전쟁 수행능력 어느 정도 지녔던 것으로 평가했다.그러나 전면 남침이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최근 발굴한 미 CIA 정보평가보고서(NIE)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입증하는 문서는 CIA가 1950년 6월19일에 작성한 「NIE리포트­3」등으로 되어있다.이 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탱크와 야포 등의 장비를 갖추었기 때문에 제한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있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했다.그 능력이란 단시일 내에 서울을 손아귀에 넣은뒤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북한의 군사적 우위성에 근거하여 이같이 판단한 NIE문서는 소련과 중공이 적극 지원하면 한국에서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남한에 대한 미국의 경제·군사원조가 대폭 삭감되거나 낭비되지 않는다면 남한 전체의 공산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다만 이 문서의 한계성이 있다면 미구에 닥칠 전면전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이다.그래서 북한정권이 남한을 겨냥한 목표를 단순한 선동선전및 침투·사보타지·파괴공작·유격투쟁 등으로 예견했다.또 북한은 전적으로 소련에 의지하여 정권을 지탱하고 있으나 정권을 위태롭게 할 내부의 위협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이밖에 1950년 북한 상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북조선노동당 문서도 NARA에서 입수했다.6·25가 일어난 19 50년 5∼6월까지의 사업계획을 명시한 이 문서는 군사적 측면을 가장 밀도있게 강조했다.10부만을 등사물로 간행,극비문서로 분류한 조선노동당 문건은 미군이 평양에서 가져온 노획문서.이 문서 역시 서울신문이 국내에 처음 공개한 것이다.
  • 도쿄 현대미술관/문 열자마자 “구설수”

    ◎“만화” 「머리 리본을 단 소녀」 거액구입 말썽/“현대 아시아미술 무시했다” 비난 드높아 도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인정받기 위한 야심작으로 최근 개관한 도쿄현대미술관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흔히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면 뉴욕 런던 파리를 일컫는다.이들 도시는 문화적으로 뭔가 대단한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파리하면 루브르박물관,런던은 테이트 미술관,뉴욕은 시립미술박물관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도쿄도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끼기를 원하지만 문화적으로 이렇다하게 내세울게 별로 없었다.우에노공원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귀중한 일본예술품을 보관하고 있지만 초라해 보이고,그 옆에 국립서양미술관이 있으나 전시작품을 다 합해야 루브르박물관의 전시실 한두개를 겨우 채울 정도다.시립미술관이 있지만 전시용으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장소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지난 63년부터 은밀히 준비하고 87년부터 건물설계에 들어간 끝에 도쿄현대미술관이 지난달 18일 문을 열었다.일본작품 외에도 주요 외국작품 4백80점을 과시하면서. 그러나 몇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우선 간판작품으로 삼기 위해 6백만달러(약47억원)를 주고 구입한 미국 대중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머리리본을 단 소녀」를 놓고 『시민들의 돈을 이같은 「만화」하나 구입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써도 되는냐』하는 반발여론이 제기된 것.6백만달러는 물론 일본이 구입한 단일작품 최고가는 아니다.오사카가 모딜리아니 작품을 1천9백만달러에,아이치현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1천7백만달러에 구입했고,군마현도 모네작품에 1천1백만달러를 쏟아부었다.사기업이지만 야스다 해상화재보험은 반 고흐 작품인 「해바라기」를 3천9백만달러에 사들였다.그러나 모두 사치가 당연시됐던 80년대 거품경제 시대에 이뤄졌던 일들이다. 두번째로 현대 아시아미술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프랭크 스텔라,케네스 놀랜드,마크 로스코 등 서구 기성화가들의 작품을 배면 대부분이 일본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장소 선정문제다.쓰레기 매립지인 「꿈의 섬」과공장지대로 더 잘 알려져 문화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고토구에 위치해 있다.매립지여서 지진에 약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까지 합해 4억3천만달러가 투입된 화강암 건물의 도쿄현대미술관은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미술관측은 연간 관람객이 70만명 수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일 나카소네 정치생명 “풍전등화”/4등당선 지역구 오부치와 결합

    ◎인기도 뒤져 비례대표 전락위기 관록의 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77)전총리가 최근 정치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80년대 국제무대에서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나카소네지만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지역구를 내놓으라는 압력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47년부터 일본 중부의 군마현 제3선거구에서 18번 당선했다.지난 선거까지 군마3구에서는 자민당에서 나카소네 전총리 말고도 후쿠다 야스오(복전강부·48·재선·후쿠다 다케오 전총리의 장남),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58·11선·자민당부총재)등이 당선해 왔다.이 가운데 후쿠다 의원의 아버지인 후쿠다 전총리와는 선거때마다 득표율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져 「복·중전쟁」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나카소네 전총리는 하지만 중앙무대에서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선거구에서는 후쿠다와 오부치에게 뒤져 왔다.지난 선거에서는 사회당의 야마구치 쓰루오의원에도 뒤져 4등으로 당선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더 험난하다.지난해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4명을 뽑던 선거구가 둘로 나뉘고 정원이 2명 줄었다.자민당내에서 누군가 한명은 탈락이 불가피하다.후쿠다 집안은 떼놓은 당상격이고 오부치부총재는 선거구조정 소위원회를 맡고 있는 실력자.오부치 부총재는 신군마5구를 택하고 어디서 나와도 당선가능한 후쿠다는 남부인 신군마4구를 주며 역시 신군마4구가 기반인 나카소네를 비례대표로 밀어내기로 복안을 마련했다.이러면 신군마4구에서 다시 「복·중전쟁」이 일어나고 자신은 여유있게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오부치가 지난달 23일 나카소네를 찾았다.『총리를 거친 원로들은 비례대표로 나가주셔야죠』하고 운을 뗐다.나카소네는 『나는 이제 일개 병졸일뿐.당간부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정면으로 거부했다. 여기에 후쿠다씨는 득표율등을 감안해 신군마5구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50년 벌여온 복·중전쟁이 1백년 지속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졸지에 오부치와 나카소네의 「중·소전쟁」으로 돼 버렸다. 하지만 오부치가 좌장인 소위는 나카소네를 비례대표로 하는 조정안을 마련했다.비례대표가 되면 「뿌리없는 풀」신세가 될 것은 뻔한 일.의원직을 물려주기도 어렵고 영향력도 낮아진다.비례대표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제 조정안은 고노 총재의 손에 넘어가 있다. 정계원로인 나카소네는 군마의 산길을 홀로 걸으며 고군분투할 것인지 비례대표라도 누릴 것인지 어려운 선택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일 지진현장의 정치인/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눈)

    한자로 「신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 고베(신호)시 인근에 대지진이 발생한지 20일로 4일째다.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땅이 흔들리면서 4천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나자 일본의 눈과 귀,손은 온통 「신의 집」쪽으로 향하고 있다.텔레비전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피해상황과 구조작업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구조작업은 마치 「숙달된 조교」의 시범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재민들의 행동도 침착하다.약탈도 없다.부족한 물,식량을 나누는 데도 혼란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이 그러했다는 기록처럼 이들의 행동은 감동적이다.심지어 대피생활을 하고 있는 27만여명은 피난처에서도 쓰레기 분리수거를 실시하고 있다.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태울수 있는 쓰레기」와 「태우지 못할 쓰레기」로 나누어 버리고 있다.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사람들이 신의 집인 것이다. 또 하나.사고현장에 정치인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 놀랍다. 정치인이라면 사고현장을 방문,이재민을 위로하거나 보고를 받거나구조대에 한 말씀 훈수하는 것이 「선거용」호재가 될 것이다.그러나 지금까지 현장을 찾는 일본 정치인은 19일 함께 현장을 둘러본 무라야마 총리와 도이 중의원의장,담당부처 장관인 국토청장관·건설성장관,고베시가 속한 효고현이 지역구인 국회의원들뿐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힘내라』고 격려하고 다녔다.도이 의장은 효고현이 지역구로 자택과 사무실등이 엉망이 됐지만 19일에야 내려갔다.『따로 가면 돌아오는 교통수단의 확보도 어렵고 혼란을 겪고 있는 피해현장에 폐를 끼칠까 염려해서 총리와 동행했다』는 것이다. 현장에 급히 마련된 의자에 앉아 기관장이나 구조대장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사람은 전혀 없다.또 구조활동등에 대해 뭐라고 훈수하거나 훈계조로 말하는 사람도 없다.당초부터 「요란한 행차」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이 소매속에 손을 넣고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정부 각료들은 구조와 앞으로의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고 여야당 수뇌들은 19일 일제히 도쿄 번화가에서 가두모금활동을 폈다.지난해 성수대교사고를 비롯,한국의 큰 사고때마다 정치인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보좌관들이 받쳐주는 우산속에서 마치 개선장군마냥 지휘하는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 러,체첸 수도 공습/옐친 무력승인 하루만에/군증파 국경 봉쇄

    【그로즈니 AFP 로이터 연합】 러시아는 1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체첸 자치공화국에 대한 무력 개입을 승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한뒤 하루만인 10일 전투기를 동원,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공습을 가했다. 현지의 AFP,로이터 통신 기자는 러시아 전투기들이 그로즈니 상공을 여러 차례선회 비행하며 폭탄을 투하하고 미사일 공격을 가했으며 이에 맞서 체첸 정부군이 격렬히 반격하는 것이 목격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전투기들의 공습은 체첸 국경에 대규모의 러시아군 병력이 집결하는등 무력개입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는 가운재 이뤄진 것이다. 타스 통신은 정부가 이날 내무부 보안군에 국경을 차단하고 국방부에는 영공을 봉쇄할 것을 각각 지시했다면서 이는 체첸에 대한 통제권 회복을 위해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하라는 대통령 포고령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 기자는 이날 폭격기 1대가 지나간뒤 그로즈니 남동쪽 15㎞ 지점의 아르군마을에서 커다란 폭발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으며 수분뒤 2대의 다른 전투기들이 통과하면서 주거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것이 목격됐다고 말했다. 체첸 관리들은 러시아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이 탄두가 장착된 것은 아니었으나 「여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투하된 폭탄 가운데 하나가 주거지역에 명중해 재산피해를 냈다고 주장했다.
  • 일서 냉대받는 일계남미인(특파원 코너)

    ◎「꿈」 안고 역이민… 외국인 실업 걱정 남미 페루의 대통령은 후지모리다.일본 이민의 후손이다.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일본의 남미 이민은 성공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요즘 일본에는 역류돼 오는 일본계 남미인이 곧잘 눈에 띈다.일본과 현지의 경제격차가 너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의 일급은 현지 임금 한달치에 육박하기도 한다.게다가 일본 이민들은 일본인이라는 의식을 대물림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이민 3∼4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나라인 일본으로 「꿈」을 안고 몰려온다. 이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지만 일본계 브라질인만 15만명,페루인이 3만3천여명을 넘나든다.브라질의 일본인 사회 1백25만명 가운데 10% 이상이 역류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들은 엄연히 「외국인」이다.공식통계상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계 남미인들이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서 겪는 슬픈 이야기는 다른 외국인들이 겪는 고통을 가늠케 한다.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한 일본계 페루인의이야기.아우구스토 히가씨는 페루 산마르코스대학의 교수였다.그가 페루에서 받은 월급은 1백달러 수준.90년 교수직을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와 군마현의 한 전기부품 공장에서 공원으로 일했다.일급 1만엔.그러나 업자에게 이것저것 떼이고 아파트대,비행기삯 등을 공제하면 한달 10만엔.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그는 임금수준이 높은 자동차 공장으로 옮겨 1년2개월을 더 일하다 돌아갔다. 그는 일본에는 페루인의 미래는 없다면서 『일본은 춥다』는 말을 연발.페루로 돌아간 그는 최근 「일본에 행운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일본계 남미인들의 절반 이상이 일본 정주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이들이 몰려살고 있는 시즈오카현의 조사로는 60% 이상이 정주를 희망하고 있고 군마현에서는 80%가 가족과 함께 거주,정주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사회에는 남미풍 식당·신문 등이 발행되는 등 생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도 이들을 필요로 한다. 지난해 사상유례없는 더위로 에어컨 수요가 폭발했을 때 가전제품 메이커들은 이들을 임시고용,생산을 늘렸다.일본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늘 해고의 칼날 위에 서있다.임금을 떼먹고 달아나거나 회사 입구에서 비자를 보자고 해서 비자가 연장되지 않은 사람들을 무단해고하기도 한다.전화요금을 아끼기 위해 밤늦게 공중전화로 떠나온 고국에 전화를 거는 이들의 마음에 일본은 어떤 나라일까.
  • 신강위구르 성도 우루무치/허세욱(서역 문화기행:2)

    ◎동쪽 1백㎞ 천산중턱의 천지 장관/만년설 녹은 물 담겨… 설봉·수해와 함께 “한폭 그림”/시 한폭판에 호랑이모양 홍산 “우뚝”… 벼랑위엔 진요탑 남고 우루무치의 금석 청나라때 유명한 소설가였던 기윤(1724∼1805)이 1768년부터 1771년까지 우루무치에 유배되었을 때 쓴 「오로목재잡시」1백60편은 2백20여년전의 우루무치를 사생활처럼 볼 수 있었다. 「독차력록만장가 화수은화대대배. 무수홍군란초수, 유인습득봉황혜」 (오로목재잡시·유람) (삐걱 삐걱 달구지소리 거리를 누비고, 불빛 나무 은빛 꽃들,쌍쌍이 줄을 섰네. 빨간 치마들 몰려나와 왁자지껄한데, 구경꾼들은 그녀들 벗겨진 봉황신을 줍네) 정월 대보름에 불놀이하던 풍물을 그렸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루무치엔 송아지나 노새들이 끄는 달구지나 손수레가 많았었다. 이보다 옛적인 당나라시대에는 우루무치를 윤대라 불렀다.지금 우루무치교외의 오랍박댐 근처를 말하는데 그때 변새시인이었던 음참(715∼770)이 754년부터 3년이나 안서절도사 판관으로 이곳에 주재했었다.그때에 쓴 윤대군사에는 우루무치 당시의 풍물 풍속이 생생하다. 「윤대풍물이, 지시고단우. 삼월무청초, 천가진백유. 번서문자별, 호속어음수. 수견류사북, 천서해일우」 (윤대의 풍물이 달랐다, 옛날 흉노의 땅이라서. 삼월에도 풀이 돋지 않고, 집집마다 하얀 느릅나무. 오랑캐 글씨라 글도 다르고, 오랑캐 말이라 소리도 달랐네. 사막 북녘을 망연히 보면, 하늘은 로부노오르 저편에) 1천2백년이 지났어도 별로 변함이 없다.어디를 가도 느릅나무요,거리마다 위구르 문자에 들리는 것은 낯선 언어들,다만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된 뒤,비록 1954년 신강성을 「위구르족자치구」로 선포하고 소수민족의 풍습과 문화의 고유성을 보호한대지만 우루무치같은 대도시를 비롯,북로의 연도도시엔 한족들의 이주가 늘어 지금 한족대 소수민족의 인구비율은 거의 반반을 형성한 것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서왕모의 전설 간직 우루무치에서 시인묵객의 붓끝에 자주 오르던 명승으로는 천지와 홍산이 있었다.천지는 우루무치 동쪽 1백여㎞ 지점의 천산산맥에안긴 호면 해발 1천9백28m의 반월형 호수요,홍산은 우루무치시의 한복판에 선 해발 9백10m의 호랑이 형상을 한 적갈색의 바위산이었다. 천산산맥의 제2주봉인 해발 5천4백45m의 보고다(박격달),그 서북쪽 음지의 능선 아래로 설수의 모임이다.그 동남에 웅장한 만년설의 병풍을 두르고 그 품안에 길이 3.4㎞ 너비 1.5㎞의 호수와 호수에 누운 설봉의 그림자를 안았기로 그 천지의 절경은 백두산의 천지에,그 배경은 스위스의 몽블랑에 견줄만했다. 오죽해야 중국 최초의 허구적인 전기요,허구적인 여행기인 「목천자전」에서 주나라 목왕이 서역 선녀의 수령격인 서왕모를 만난 무대로 여기를 골랐던 것이다.그로부터 천지는 요지 용담 천경 신지등으로 미화되었다. 필자가 탄 버스가 부강현을 지나 두시간뒤에야 천산산맥으로 접어들었는데 그 첫번째 경관은 아무래도 해발1천5백m 높이서 만난 석문이었다.20∼30m 높이의 우람한 바위가 마치 두쪽 대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그 사이를 뚫고 굽이 굽이 산길을 오르면 파란 전나무의 진하디 진한 바람을 타고 하얀적설이 시야에 부딪는다.다시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서 기우뚱 보이는 시퍼런 호수,그게 「목천자전」에 서왕모가 발을 씻었다는 「서소천지」였다. 버스의 종점부터 필자는 4시간동안 준마 한필에 마부 한사람을 빌리곤,더덩실 안장에 가랑이를 얹고 천산의 가파른 등성이를 향해 고삐를 죄었다. 반달 모양의 천지,그 북쪽 제방을 거드름 피우며 건너가는데 늙은 느릅나무 한그루가 호수쪽으로 누운 채 버티고 있다.목책을 세워서 그 자빠진 나무를 보호했고,그 옆으로 「정해신침」,곧 「서유기」의 한장면을 표시하는 비를 세웠다.호수를 안정시키는 신침이란 뜻.듣건대 여기 산지 사람들은 그 느릅나무와 호수의 간격으로 호수의 저수량을 측정한다고 했다.그보다는 여기에도 서왕모의 전설이 서려 있었다.어느날 서왕모가 벌인 반도회잔치에 훼방을 부리는 도깨비가 있어 자기의 비녀를 뽑아 던졌더니 그 자리서 느릅나무가 돋았다는 비녀의 화신설이다. ○분지는 마치 솥바닥 천지에서 서쪽으로 3㎞쯤 올랐다.고개를 넘자 널찍한 분지,그 뒤로 팽이처럼 꼿꼿한등간산,등간산 꼭지에는 뾰족한 바위 세덩이가 창모양으로 서있다.이름하여 「정천삼석」.등간산 아래로 그 분지는 마치 솥바닥,그래서 서왕모가 밥을 짓던 솥이라는 전설이 있었는데 한때 군마를 사육하고 훈련시켰다던 곳이다. 등간산분지로부터 하산할 때 굽어보는 천지는 절경이었다.하얀 설봉에 파란 수해,거기에 저 아래로 시퍼런 호수,문득 천산의 높이와 천산의 주변을 잊고,천지가 작은 그림엽서로 보였다.청나라 역사학자요 시인이었던 홍량길(1746∼1809)이 1800년 유배길에 쓴 천산가의 한대목이 잘 말해 준다. 「지맥지차단, 천산사포천. 일월하처루, 총괘청송전」(후략) (지맥이 여기서 끊겼고 천산은 벌써 하늘을 안았으니,해와 달은 어디서 살까? 청송 가지끝에 가만 걸렸네) 천지 언저리엔 일찍이 팔대사가 있었다고 한다.그런데도 몽땅 폐허로 남았다.그중에도 천지 서북쪽 7백m 비탈에 남은 철와사가 그 유적만으로도 당시의 장관을 짐작케하는 제일사원이었다.원나라때 칭기즈칸이 유럽 정벌길에 목천자의 전설을 따라 천지를 오르고는 거기다도관을 짓토록 명령했다고.그러나 확실한 연혁은 아무래도 청나라 건륭연간,푸른 벽돌로 벽을 쌓고 쇠 기와로 지붕을 이었대서 「철와사」로 불린 것이다.학교 운동장을 방불케 널따란 폐허에 유적비만 동그마니 서 있었다. ○하사크족 파오 즐비 철와사 유적지 아래로 하사크족들의 파오가 즐비했다.몽골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그러나 하얀 모전의 둥근 텐트형의 그 속은 난로에 식탁·침구정도의 간소한 가구지만 초원의 주막이라고 호객도 서슴지 않았다. 이토록 빼어난 경관을 지녔음에도 발길 닿는 곳마다 서왕모의 전설이 얽힌 곳.말하자면 천혜의 상품에다 전설의 포장을 덧붙여 나그네를 맞고 있었다. 우루무치로 돌아와서 곧장 홍산으로 차를 몰았다.고개를 치켜 들고 하늘로 치솟는 용이나 호랑이의 형국이다.천산에선 청색과 백색을 보았는데 홍산에선 검붉은 바위,그러니까 원색과 원색을 옮겨 다니는 강렬한 대비로 오싹한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홍산은 벼랑,벼랑위로 회청빛 9층탑이 섰다.거기서 우루무치 전경을 굽어 볼 수 있었는데 이름하여 「진요탑」.옛날 해마다 여름이면 범람하는 홍수로 우루무치가 물 바다였다고.그것을 요괴의 장난이라고 믿은 청나라 총독은 드디어 1788년 거기다 탑을 쌓고 요괴의 맥을 끊었던 것이다. 「진요탑」에서 정상으로 한참 오르면 「임칙서시비」가 새로운 초점으로 우뚝 섰다.청나라 아편전쟁때 아편을 금지하였던 항전파의 수령이요 시인이었던 임칙서(1785∼1850)를 기념하는 비다.거기에는 그가 영국 투항파에 쫓겨 신강으로 귀양살이하던 1845년12월4일,이곳 홍산에 올라 단숨에 썼던 「금루곡」,그 명작이 절록되어 있었다. 「임광가,취와홍산취. 풍경처,주린기」 (미친듯 노래하다가 홍산에 누웠노라! 바람 모진곳에 술잔조차 일렁인다.) 한 영웅의 강개가 뭉클하게 표출되었다.더구나 싸늘한 서역의 바위산에서
  • 폐플라스틱/고형연료·석유로 재생/일본에선:3(녹색환경가꾸자:80)

    ◎재처리공장선 옷걸이·분재대·의자 등 제조/공장폐유는 토탄 만들어 연료로… 토탄재는 다시 시멘트 원료로 인류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플라스틱은 과학문명의 걸작품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그러나 플라스틱은 버려질 경우 자연의 생태계로 환원되지 않는 산업폐기물이 된다.산업폐기물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심각한 환경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폐기물은 재생하려 해도,태워 묻으려 해도 처리가 곤란하다는데 더욱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량생산이라는 효율적인 경제발전에 따라 산업폐기물의 양은 계속 늘어만 나고 있으며 더욱이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일본 후생성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산업폐기물은 연 3억9천5백만t(90년)에 이르고 있다. 산업폐기물이 늘어남에 따라 일본에서도 불법투기 등 산업폐기물의 부정처리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일본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때문에 산업폐기물 불법투기를 막기 위해 계몽과 단속을 강화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폐기물 처리를 위한특정시설의 정비촉진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의 정비를 위해 각종 재정·세제상의 우대조치를 실시하고 있다.산업폐기물처리사업진흥공단에 의한 채무보증,기업화 조성금 등의 사업진흥조치도 마련돼 있다. ○재정·세제 우대조치 그러나 산업폐기물은 단속이나 처리시설의 확충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산업폐기물을 줄이려는 기업의 노력과 함께 리사이클을 위한 여러가지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다.그 대표적인 것이 폐기 플라스틱과 공장폐유,도로공사에서 나오는 아스팔트와 시멘트 등의 리사이클 기술이다. 관동지방의 군마현 다데바야시의 산업폐기물 처리공장은 이러한 리사이클 기술을 통해 기업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저공해 고형연료로 만드는 현장이다.공장에서는 주변 기업으로부터 운반돼온 폐기 플라스틱을 먼저 잘게 부순 후 염화비닐과 철성분 등을 제거한다.그 다음 나머지를 눌러 딱딱하게 한 후 열를 가하면 고형연료가 된다.1일 생산량은 50t 정도. 세키 가쓰시로 사장은 『폐기 플라스틱의 리사이클에 따라 플라스틱을 반출하는 기업,고형연료를 사용하는 기업,그리고 그 연료를 생산하는 공장 등 3사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산업폐기물 처리공장은 기업으로부터 매립처분 비용의 반값으로 폐기 플라스틱을 반입받고 있으며 고형연료는 보통 사용하는 중유 가격의 4분의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이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오히려 환경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실이 더욱 중요할지 모른다.고형연료는 다른 연료와 비교할 때 유황이나 질소성분이 적게 나와 대기오염 방지에 도움이 되는 저공해 연료다.그 뿐만 아니라 재활용을 통해 쓰레기의 양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매립지를 더욱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4년전의 공장설립도 사실은 폐기 플라스틱을 버릴 다데바야시의 폐기물 최종 처리장의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는 석유로부터 만든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환원하는 꿈의 기술도 개발됐다.효고현 아이오시에 있는 주식회사 후지 리사이클의 플랜트에서는 지난 88년부터 폐기 플라스틱으로부터 원료였던 석유가 만들어지고 있다.후지 리사이클은 잘게 부순 플라스틱을 2백50∼4백도로 가열한 후 독자개발한 「합성제오라이트」라고 불리는 특수매체를 통해 석유를 만들고 있다.석유생산량은 무게로 플라스틱의 약 85%.반은 가솔린 나머지는 등유와 경유로 구성된다.가솔린은 옥탄가 1백 이상의 좋은 품질이다. 도쿄옆 사이타마현 오케가와시에서도 일반 쓰레기에 들어 있는 플라스틱으로부터 석유를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다.폐기 플라스틱으로부터 석유를 만드는 실험은 아직 초보단계이지만 일본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쓰레기의 분리수거와 결합할 경우 자원의 재이용이라는 측면에서 큰 가능성이 있다. ○1백% 리사이클 야마구치현 호후시에 있는 주식회사 산포리의 플라스틱 재처리공장에서는 폐기 플라스틱으로부터 문어잡이 항아리·옷걸이·회전식 분재대·의자 등 1백여 가지의 아이디어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심각한 수질오염원인 공장폐유를 1백% 리사이클 하는 기술체계도 만들어졌다.오사카부기시와다시에 있는 근기환경흥산주식회사는 공장폐유와 공장에서 나오는 진흙·먼지 등 산업폐기물로부터 혼합 토탄을 만들고 있다.이 회사는 지난 83년부터 1일 약 1백ⓣ의 공장폐유를 처리해오고 있다.제조된 토탄은 미에현에 있는 오노다 시멘트회사의 후지하라공장으로 옮겨져 연료로 사용된다. 후지하라공장은 전체 연료중 15% 정도를 공장폐유로 만든 토탄으로 충당하고 있다.그러나 토탄이 시멘트공장 연료로 쓰이는 것으로 끝난다면 공장폐유의 1백% 리사이클이라고는 할 수 없다.타고 남은 재의 처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공장폐유의 1백% 리사이클은 후지하라공장이 타고 남은 토탄재를 다시 시멘트 원료로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완결된다. 일본에서는 이같이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산업폐기물을 리사이클,환경오염을 막고 소중한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체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산업폐기물의 이러한 적극적인 리사이클로 일본의 자연환경은 더욱 푸르러지고 있다.
  • 일 가뭄 지속… 18개지자체 제한급수/태풍월트 호우 역부족

    【도쿄 연합】 태풍 7호 월트가 동반한 일본 남부지방의 집중호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국적으로는 가뭄이 계속되면서 일본의 47개 지방자치단체중 28일 현재 18개 지방이 수돗물 공급중단 등 급수를 제한하고 있다고 후생성이 이날 발표했다. 후생성대책본부에 따르면 도쿠시마와 고치현의 경우 태풍의 영향으로 급수제한은 해제됐으나 전국적으로는 가뭄이 계속되면서 약 5백만명이 물부족을 겪고 있어 태풍 통과전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에 대해 시간제 급수를 실시하고 있는 지역은 군마,니가타,교토,효고,나라,돗토리,오카야마,히로시마,야마구치,가가와,에히메,후쿠오카,사가,나가사키 등 14개현이며 야마가타,기후,아이치,미에현 등 4개현은 급수량을 줄이는 감압급수를 실시하고 있는 등 모두 18개부현 51개시가 피해를 입고 있다.
  • 일본도 취수제한/도쿄등에 10%씩

    【도쿄 연합】 서일본을 중심으로 한 심각한 가뭄이 관동지방으로 확대,도쿄 등에서도 22일부터 취수 제한이 시작됐다. 일본 관동지방 건설국은 이날 수도권의 최대 수원인 도네가와(이근천) 수계의 물부족으로 도네가와를 이용하는 도쿄를 비롯,기옥 자성 군마 도치기 등 1도 5현에 10%의 취수 제한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관동지방의 취수 제한은 90년 이래 4년만의 일이다. 관동지방 건설국에 따르면 이번 조치에 따라 상수도,공업용수,농업용수 등 모든 물이 취수 제한의 대상이 된다.
  • 육상자위대 신전략/일 「북방중시」 수정/수도권방위 강화

    ◎「러」 위협 감소로 북상황 초점/헬기·장갑차 등 기동력 확충 【도쿄 연합】 냉전후의 존립 방향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는 현재의 극동 러시아군을 의식한 「북방중시 전략」을 북한의 중거리미사일 「노동1호」등의 사정권에 있는 규슈(구주)등 서일본을 비롯,수도권의 방위에도 중점을 두는 새로운 전략으로 바꿨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14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육상자위대의 이같은 전략변경은 구소련의 붕괴로 북방위협이 감소함으로써 자위대 정원의 삭감이 필요한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과 일본 정치·경제 분야의 중추를 중시,일본전국에 배치하고 있는 사단의 전략적 의의를 재검토한데서 나온 것이다. 일본 육상자위대가 마련한 신전략에 따른 「기본방침」은 전국 13개 육상자위대 사단중 제5사단(사령부 북해도 대광시)등 4개 사단을 여단으로 축소하는 한편 병력수송용 헬리콥터부대의 신설 등 기동력의 대폭강화 등을 골자로 담고 있다. 기본방침은 우선 방위상 관점에서 일본전국을 ▲아오모리(청삼)현 이북의 「북일본」▲북부규슈(구주)와 주고쿠(중국)지방의 서일본 ▲그밖의 「중일본」등 3개 지역으로 구분,영토문제,한반도정세의 영향,정치·경제의 중추 등과 관련해 각 지역을 동등하게 중요시하고 있다. 기본방침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5사단과 제10사단(명고옥시),제12사단(군마현),제13사단(광도현 해전정)의 병력을 현행 7천명에서 4∼5천명으로 줄여 여단으로 하되 기능은 종전의 사단과 똑같도록 하고 있다. 기본방침은 또 전국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방위 전략의 실현에 따른 기동력 강화를 위해 ▲제12사단에 헬리콥터를 배치,유사시 전국 어디라도 즉각 출동할 수 있는 공중기동여단으로 하고 ▲각 사단·여단의 장갑차를 대폭 늘리는 한편 핵심부대의 인원보충책으로 예비자위관 제도의 확충 등을 도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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