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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특집/ 한국 소주 日서 돌풍

    한국 소주가 일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소주를 대표하는 ‘진로’와 ‘그린’이 지난해 일본 수입주류 시장에서 버드와이저 맥주를 제치고 1∼2위를 각각 차지했다. 진로는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127만상자(1만723㎘)의 소주를 일본에 수출해 지난해 같은기간의 99만상자(8,327㎘)보다 29%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수출액은 미화 1,746만달러(한화 200억원)에 달했다. 진로소주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지난해 9월 출시한 캔소주(칵테일 소주)가 4개월간 15만상자(350㎖짜리 24개)가 판매된데 이어 일본 젊은층이 즐겨찾는 편의점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에 따라 진로재팬은 올해 470만상자,2001년 500만상자를 판매목표로 올해1월부터 직판체제를 구축했으며 지난 4월 군마현 다카사키시에 관신에쭈 지점을 개설한데 이어 오는 9월에는 나고야 지점을 개설,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그린소주를 생산하는 두산도 지난달말까지 모두 75만상자(6,300㎘),미화 789달러를 수출해 지난해 같은 기간 52만상자(4,368㎘)보다 45% 가량 늘어난셈이다. 그린 소주의 일본 수출이 늘어난 것도 작년 기존의 1.8ℓ들이 페트병보다용량이 큰 2.7ℓ짜리를 개발한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끈데다 매년 200명씩 일본의 주류판매점 대표자들을 한국에 초청,강릉의 두산 주류 BG생산공장 견학을 시키는 등 제품의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알린 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주류도 건강지향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천연수를 그대로 사용한 그린소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하고 올해 목표를 250만상자(2,700만달러)로 정하고 목표달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해소주는 ‘비단’이란 제품으로 일본시장을 공략해 지난해보다 1만9,000상자 늘어난 26만상자를 수출해 20%의 성장률을 보였다. 조현석기자
  • 후광업은 ‘세습후보’ 나란히 당선 화제

    [도쿄 연합] 최근 타계한 일본 정계 실력자로부터 선거구를 물려받은 세습후보들이 25일 실시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나란히 당선됐다. 지난달 서거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비서이자 차녀로 군마(群馬) 5구에서 출마한 유코(優子·26) 자민당 후보는 사민당의 거물 경쟁자를 물리치고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재임중 격무로 쓰러진 부친에 대한 동정표가 몰렸기 때문으로,유코씨는 26세때 첫 당선된 부친에 이어 2대째 최연소 당선 기록을 세워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도 관심거리다.영국 유학중 오부치 전 총리가 쓰러지가 급거 귀국,출마하게 된 유코씨는 이날당선 소감에서 “오늘은 아버지의 63번째 탄생일로큰 생일 선물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 한사람의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지난주 갑작스럽게 타계한 자민당의 ‘킹 메이커’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로부터 시마네(島根) 2구를 물려받은 친동생 와타루(亘·53)후보도 무난히 당선됐다. 또한 다케시타파의 실력자였던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의장남인 히로시(弘) 후보도 이바라기(茨城) 4구에서 부친의 후광에 힘입어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 日 오부치 前총리 둘째딸 총선 출마

    [도쿄 연합]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중 지난 14일 타계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의 차녀인 오부치 유코(小淵優子·26)씨가 군마(群馬)5구 지역구를 물려받아 다음달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23일 발표했다. 유코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병마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서 “이상적인 정치가인 아버지를 목표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오부치 전총리의 후계 문제에 대해서는 입원후인 지난달 중순 선거구내 2개 후원회가 긴급 임원회를 갖고 “오부치의 등불이 꺼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오부치가의 의향대로 후보자를 결정한다”는 점을 확인,간부들이 유코씨에게 후보 수락를 요청해 왔다. 세이죠(成城)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유코씨는 96년 4월 민방인 TBS에 입사,99년3월 퇴사한 뒤 오부치 전총리의 비서로 활약했으며,1년 예정으로 영국 유학중 비보를 듣고 급거 귀국했었다.
  • 오부치 日전총리 타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4시7분쯤 사망했다.62세. 지난 4월2일 뇌경색으로 쓰러져 혼수상태를 이어온 오부치 전 총리는 그동안 다소 상태가 안정돼왔으나 지난 12일부터 혈압이 떨어지는 등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오부치 전 총리는 1963년 고향인 군마(群馬) 3구에서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이후 12선을 기록했으며 98년 7월 제84대 일본 총리직에 올랐다. 일·한의원연맹 부회장인 오부치 전 총리는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총리 재임중 2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지즈코(千鶴子·59)여사와 2녀1남이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오부치, 日불황 타개 ‘성공한 총리’

    ‘인품의 오부치’도 병마 앞에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총리는 지난 4월 2일 하오 7시30분 혼수상태에 빠진지 43일만에 타계했다. 98년 7월30일 대망의 총리 자리에 올라 내각이 총사퇴한 4일까지의 총리 재임일수는 616일로 역대 총리중 ‘장수’부문 14위.부드러운 인상과 온유한인품,자리를 같이 하면 누구라도 빨아들이는 듯한 겸허한 성품 덕분에 ‘블랙홀’이란 별명을 지녔던 그는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침체된 경제를 회복궤도에 올려놓은 ‘성공한 총리’로 평가받았다. 1937년 군마(群馬)현에서 출생한 오부치는 아버지 오부치 고헤이(小淵光平)의원의 2남으로 2세 정치인이었다.와세다(早稻田) 대학원 재학중이던 63년 26세의 나이로 첫 출마해 당선된 옛 군마3구는 오부치의 정치색을 결정지은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후쿠다 다케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같은 거물 정객들의힘겨루기 씨름판이었다.이들과 함께 출마하면 오부치는 언제나 3,4위였다.그래서 어느 일본 정치인은 이런 오부치를 ‘미국과 소련 양대국 사이의 골짜기에 핀 한송이 백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정치적 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와 비슷하게 ‘참을성 많고 적을 만들지 않는 인품’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다.파벌내 분열로 군소파벌로 전락했던 옛 다케시타파를 물려받아 오부치파 회장이 되면서 그는특유의 ‘인품’으로 다른 파벌의원들을 끌어들여 최대 파벌로 키웠다. 사토(佐藤)파를 거쳐 다나카(田中)파 회원이었던 79년 그는 오히라(大平)내각때 총무장관겸 오키나와(沖繩) 개발청장관으로 첫 입각했다.87년 다케시타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기용됐다. 그는 다케시타 총리의 최측근이자 중간보스로서 다케시타와 ‘2인3각’의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91년에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대망’을키웠다.‘관방장관과 간사장을 거친 사람의 절반은 총리가 된다’는 통념에따라 총리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년8개월의 총리 재임중 10년 불황과 낮은 지지율로 사면초가에 빠진자민당을 수렁에서 건져올렸다.뿐만 아니라 취임초기 ‘경제회생 내각’이라 이름을 붙이고 경제회복에 전력을 기울여 99회계년도의 경우 공약대로 플러스 성장으로 되돌려놓았다.연립정권을 통해 정권의 기반도 안정시키고 외교에도 적극적이었던 그에게 그러나 마냥 ‘행운’만 따라주지는 않았다.50%대가 넘던 지지율이 지난해 10월을 고비로 하락세로 돌아선데다 최근 비서관의 수뢰의혹,경찰비리,금융재생위원장의 망언 등 악재(惡材)가 겹치면서 정치적 수세에 몰렸었다.더욱이 쓰러지기 하루 전날 자유당의 연정 탈퇴는 극도로 쌓인 심신의 피로함에 결정타를 안겼다. 오부치는 일본 정계에서 널리 알려진 친한(親韓) 성향이었다.일한 의원연맹 창립 멤버이자 사망전까지 이 연맹 부회장이었다.총리취임후 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고 이듬해 그가 한국을 방문,한국과 우호를쌓았다.양국이 서로 인정하듯 한일관계는 오부치 총리 시대에 가장 탄탄대로를 걸었다.한국으로선 듬직한 ‘우군’을 하나 잃은 셈이다. ■1937년 군마현 출생. ■58년 와세다대 문학부 입학. ■63년 최연소 중의원 의원 당선. ■70년 우정성 정무차관. ■79년 총무장관 겸 오키나와 개발청장관. ■87년 다케시타 내각 관방장관. ■91년 자민당 간사장. ■92년 다케시타(이후 오부치파) 회장. ■97년 하시모토 내각 외상. ■98년 7월 총리 취임. ■99년 1월 자민·자유당 연정수립. ■〃 10월 자민·자유·공명 연정수립. ■2000년 4월2일 뇌경색 긴급입원. ■〃 5월 14일 사망. 황성기기자 marry01@. *오부치 총리 타계 이모저모. ●자택 안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총리의 유해는 이날 병원에서 수습된 뒤 오후 7시쯤 병원을 나와 빈소가 마련된 도쿄 시내 자택에 안치됐다. 유해를 실은 차량은 경찰 호위를 받으며 그가 40년 가까이 지냈던 국회의사당과 쓰러지기 전까지 집무했던 총리 관저를 한바퀴 돌아 말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부치 전총리의 타계로 공석이 된 중의원 군마(群馬) 5구는 둘째딸인 유코(優子·26)씨가 물려받아 6월25일 실시될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 일본 정부·여당은 장례를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를 것을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역대 총리중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장례는 국장,7년여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는 국민장,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등은 자민당장,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등은 내각·자민당 합동장으로 치렀다. ●조문 및 애도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소식이 알려진 직후 최측근인 노나카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과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관방장관 등이병원을 찾아 미망인 지즈코 여사 등 유족을 위로했다.오부치 전총리의 타계소식을 접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어려운 시대에 훌륭한 지도자를잃어 슬픔을 참기 어렵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오부치 전 총리의 정치적스승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76) 전 총리는 “오부치군과는 40여년간 고락을 같이 해왔다”면서 “이제 편안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클린턴 미국 대통령 부부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성명을 발표,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를 애도하고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향후 정국 모리 총리가 이날 6월25일 중의원 선거 방침을 확인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총선 정국에 돌입.일본 여야는 오부치 전 총리의 타계가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면서도 자민당쪽으로 ‘동정표’가 움직여 다소 여권이유리할 것으로 전망.특히 오부치 전 총리가 쓰러진 이후 다케시타 전총리 등 원로 정치인들이 대거 은퇴의사를 밝혀 이번 총선에는 세대교체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황성기기자
  • 시·군 직급기준 달라 대상자 반발

    별정직 공무원인 사회복지 전문요원의 일반직 전환을 앞두고 직급별 정원이줄고 직급 부여 기준도 시·군마다 달라 대상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18일 전북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방침에 따라 도내에 배치된 292명의 사회복지요원과 신규 채용한 20명 등 312명을 내년 초 일반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도내에 배정된 사회복지직 직급별 정원은 7급 116명,8급 101명,9급95명으로 현재 7급 상당인 기존 복지요원 292명 가운데 176명의 직급 강임이불가피한 실정이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전환 대상자의 경력,자격증 급수,생활보호대상자 관리인원수,업무수행능력,근무태도 등을 고려해 직급을 부여하도록 임용기준을 마련해 시·군에 시달했으나 시·군들은 단체장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혼란이 일고 있다. 전주시는 시험으로 직급을 정하기로 했고,고창군은 일정 자격자에게만 시험을 치르도록 하기로 했다.부안군은 경력자를 높은 직급에 우선 임용하기로했다. 이에 따라 복지요원들은 보다 높은 직급을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로비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선 사회복지요원들은 “직급 부여기준 혼선으로 요원들간에 눈치보기와 경쟁이 치열해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하며통일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 전문요원들의 사기 진작을 통해 저소득층의 기초생활 보장업무를 원활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기존에 별정직 공무원으로임용된 이들을 내년초 일반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경북도, 산불감시 예산 국비지원 증액을

    정부가 해마다 산불 예방과 효율적인 진화활동을 위해 시·군마다 인력과예산을 철저히 운영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정작 국비 지원에는 터무니없이 인색해 시·군들이 거액의 예산을 자체 충당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시·군들은 산불 진화에 동원되는 공무원과 주민 등에게도 수당등을 지급하지 못할 뿐 아니라 특히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해도 치료비 등을전혀 보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6일 경북도내 시·군에 따르면 안동시는 올해 시내 산림 10만8,000여㏊에대한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 산불 감시 인건비와 헬기임차료 등 11억9,400여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활동하고 있다. 산림 감시면적은 전국 최대 규모인 반면 국비 지원은 전체 예산의 1%인 856만원에 불과하다. 도비 지원도 장비 구입 등에 필요한 극히 제한적인 1억2,500여만원이 전부이며 나머지 10억6,000여만원을 시비로 충당해 열악한 지방재정에 큰 부담이되고 있다. 연간 지방세 전체수입이 88억3,000여만원인 의성군도 올해 18개 읍·면지역의 7만9,426㏊에 대한 산불 방지 예산으로 5억3,082만원을 확보했으나 이중국비 745만원,도비 5,581만원을 제외한 4억 6,755만원이 군비다. 이에 대해 시·군 관계자들은 “지자체별 산불 방지 예산은 국비 1%내외와도비 11%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88%를 자체 충당하는 관계로 예산 확보와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며 “효율적인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서는 국·도비지원이 대폭 확대 돼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
  • 광역쓰레기처리장 국비 지원 인색

    정부가 농어촌지역의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시·군마다 광역 쓰레기 처리시설을 조성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정작 국비 지원에는 인색해 시·군들이 사업 추진에 애를 먹고 있다. 9일 경북도내 시·군에 따르면 정부는 읍·면별로 자체 운영하던 소규모 쓰레기매립장을 패쇄하는 대신 시·군별로 광역 쓰레기 처리시설을 갖추도록지난해부터 독려하고 있다.그러나 정부는 수십억∼수백억원이 소요되는 이들사업에 시단위에는 국고보조지침에 의해 전체 사업비의 30%를, 군단위에는농어촌 폐기물 처리시설 지원금 명목으로 15억원씩을 지원해 주고 있다. 경산시는 내년부터 2001년말까지 남산면 남곡리 일대 8만9,500여평에 대형소각기 등 최신 위생매립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그러나 사업비 290억원중 87억원만 국비 지원을 받고 나머지 200여억원은 지방비로 충당해야 하며 도비 지원 50%(100억원)마저 불투명해 사업 차질이 우려된다.경상비 등을 제외한 경산시의 연간 가용예산은 100억원 안팎이어서 2년간 200억원을 투입하면 자체사업은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재정자립도가 16%로 전국 최하위권인 군위군도 2003년까지 85억원을 들여군위읍 내량리 4만여평에 환경관리센터 건립계획을 세워 놓고 있지만 정부보조금 15억원을 제외한 70억원을 지방비로 마련할 길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시·군 관계자들은 “쓰레기 처리시설도 국비 70%를 지원받는 양여금사업으로 전환하든지 국비 지원을 50%로 늘리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 경북 시·군, 특정단체 회원자녀에만 장학금

    지방자치단체들이 특정 관변단체 회원 자녀들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해 다른관변단체들이 형평성없는 처사라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5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83년부터 경북도 새마을장학금지급조례에 의거,시·군마다 도비와 시·군비 50%로 연간 수천만원씩의 예산을 확보,새마을부녀회장 및 문고지도자를 포함한 새마을지도자의 자녀 수십명씩에게 장학금을지급하고 있다. 도 새마을장학금지급조례는 시·군 새마을 지회장과 자치단체장의 추천을 받아 새마을 도지부장이 지급대상을 확정하도록 돼있다. 안동시는 올해 3,281만원의 새마을장학금을 확보,관내 수혜대상자 1,000여명 가운데 자녀 58명을 선정,장학금을 주고 있다.학생 1인당 1회 평균 중학생은 19만원,고등학생은 30만원씩 연간 2차례 지급한다. 경산시도 올해 2,372만원의 새마을 장학금을 새마을지도자 자녀 42명에게상·하반기로 나눠 학생 1인당 중학생 17만9,000원,고등학생 29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예천군도 새마을지도자 자녀 32명에게 장학금 1,800여만원을 지급하는 등도내 23개 시·군 모두가 비슷한 형편이다. 이에 대해 다른 관변단체 관계자들은 “자치단체 예산으로 특정 관변단체자녀들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은 특혜이자 형평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에게 장학금 혜택이 고루 돌아가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7)海商王 장보고(상)

    841년 11월 중순 어느 날.한반도의 남쪽에서 빛나고 있었던 ‘동아지중해의 진주’인 청해진이 역사에서 사라지고,그 주인인 장보고는 암살돼 영웅의일생을 마쳤다. 장보고는 현재 완도군에 있는 한 섬에서 태어나 차별받고 자란 섬사람이었다.아명이 ‘궁복(弓福)’인 그는 친구 정년(鄭年)과 함께 배를 타고 당으로 건너갔다.그때는 관리와 귀족,승려,상인들도 많이 건너갔다.가난을 피해 외국으로 이민가는 서해 연안의 농민이나 어민들도 많았다.당군의 초급장교가된 장보고는 역설적으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일가가 일으킨 대당전쟁을 토벌하는 무령군(武寧軍) 군중소장으로 출세했다. 이정기는 고구려 멸망후 요동에서 산동으로 옮겨와 그 지역을 지배하던 군벌이었다.평로치청절도사(平盧淄靑節度使)로 발해 및 신라의 교역을 통제하였다.동족인 발해와는 황해북부항로를 이용하여 상당한 규모로 군마교역을하면서 부를 축적했다.그는 산동지역의 해양권과 대운하의 주변을 장악하면서 당을 경제·정치적으로 위협하다가 제나라를 세워 당나라와 오랫동안 전쟁을 했으나 결국 819년에 패하면서 55년에 걸친 역사는 사라졌다. 이를 계기로 유민사회는 전환을 맞았으며,신라와 당의 관계는 보다 원활해졌다.이 시기에는 대운하와 황해연안주변에 재당 신라인들이 집단거주지를이루었으며,황해를 건너다니며 교역을 하였다.장보고는 이들을 조직화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갔다. 당의 고급장교로 신라변방의 해양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거대 해상(海商)으로 커가던 장보고는 당시 국제질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세계는 군사적 대결에서 경제협력 중심으로 변화하였고,교역이 질서변동의 핵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지중해와 페르시아의 물품들이 대상길과 해상길을통해서 중국에 수입됐고,다시 더 큰 이익을 위해 신라와 일본으로 수출됐다. 마찬가지로 신라와 일본의 토산물이나 공산품들도 당에 수출되었다. 산업이 발달한 신라는 일본에 적극적으로 수출해야 했다.당시 육로는 폐쇄돼 있어,열린 길은 해로 뿐이었다.때문에 각 나라는 물류망을 장악하고,해양력을 강화하는 일이 필요했다. 바로 이때 장보고가 시대변화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는 몇가지 상황이 조성되었다.당시 동아지중해에는 당과 신라,일본의 해적이 횡행하고 있었다.해적들은 일종의 무장상인(武裝商人:armed-merchant)으로 그 실체가 분명하지못했다.다국적군으로 이뤄진 해적은 선박을 공격하고,교역을 방해하며,심지어 노예무역까지 하였다. 때문에 해로망을 이용한 교역을 통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당상인 신라상인 일본상인들에게 해적은 제거의 대상이었다.각 국은 해양방어체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현실에서 대규모 해군을 편성해 해적선을 토벌할 능력이없었다.때문에 상인과 정부는 무정부 상태인 황해에 무장력을 갖춘 해상관리자가 나타나 해적을 퇴치,바다를 평정하고,교역로를 보호해주길 바랐다. 한편 당에는 해적들에게 잡혀온 신라인들이 노예로 팔려와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당은 법으로 이를 금할 정도였다.장보고는 신라에 노예약탈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을 내세웠다.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으며,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서해와 남해에서 발호하는 해상세력들을 통제하는 일이 시급했다.또 교역상의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한편 보다 국제화되고,정치적인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의 해상세력을 키워야만 했다. 이렇게 다이나믹한 국제환경과 신라내부의 필요에 의하여 장보고는 828년에 귀국,‘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라는 직책으로 해양과 관련한 전권을 부여받으면서 동아지중해의 ‘해상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라이샤워 설)이 되어갔다. 그는 해적을 퇴치하여 바다를 안녕시켰다.황해 연안에 퍼져 있던 재당 신라인들을 체계적으로 조직,거주지역,물품생산,교역과 해상운송 등을 효율적으로 운영했으며,법화원(法華園)같은 종교시설을 마련,정신적 유대관계를 강화시켰다.특히 본거지를 군항이며,자유무역항(金成勳설)으로 만든 청해진에 두어 재당신라인과 본국의 신라인을 동시에 관리하고 조정했다.제조업,상업,운송업,삼각 중계무역,보세가공업,문화교류,이데올로기 전달 등을 ‘해양’이라는 시스템속에서 운영하였다. 장보고는 ‘대당매물사(大唐賣物使)’를 교관선이라는 무역선에 실어 파견하였으며,구(毬:페르시아산 담요) 자단(紫檀:자바 등의 향목) 향(香:수마트라산 향료)등 고가품을 수입해 신라귀족들에게 팔았다.또 일본을 방문,현재의 후쿠오카에 지점을 설치하고 ‘회역사(廻易使)’란 무역선을 보내 사무역(私貿易)은 물론 공무역까지도 시도하였다.이 때문에 엄청난 무역 역조현상이 일어나 조정에서는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장보고는 무력과 해양력을 바탕으로 상권을 장악하면서 신라인의 저력을 동아지중해에 실현시켰다.그는 오늘의 의미로 볼 때 좁은 신라땅을 극복하고 해양을 매개로 NET(자연스러운 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로만들었다.그는 또한 군산상(軍産商)복합체를 실현시켰으며 가문이나 혈통,학문적인 배경없이 탐험정신 하나로 해외로 진출,사업에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질서를 두려워한 신라의 보수적 중앙귀족과 장보고선단의 해상권 장악을 억제하려는 세력들에 의하여 암살되었다.장보고의 깨진 꿈과 함께 우리는 동아지중해의 주인자리를 앗겨버렸다.장보고는 바다를 향해 진출하려는 현재의 우리에게 ‘중핵관리 역할’이라는 희망과 지도자의 한계에서비롯된 좌절을 함께 보여준 인물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박현순·조정연…日프로테스트 통과

    박현순(27)과 조정연(23)이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프로자격을 얻었다. 지난해 국내 상금랭킹 2위 박현순은 5일 일본 군마현의 후지골프장(파72)에서 끝난 프로테스트에서 최종 3라운드 합계 4오버파 220타(75-74-71)를 쳐공동 9위를 차지했다.조정연도 6오버파 222타(76-75-71) 공동 13위로 23명에게 주어진 프로 자격을 땄다. 박현순과 조정연은 올 연말 시드배정 라운드를 갖는다.이로써 일본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11명으로 늘었다.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2회)

    ■ 韓·日 연합왕국說 경성대학교는 1990년부터 김해 대성동에서 4∼5세기초 금관가야의 왕릉급무덤들을 발굴하였다.이 발굴을 통해 금동말안장 등 마구와 철제갑주,철제큰칼,방패에 붙였던 파형동기(巴形銅器),청동거울,그리고 많은 양의 철정(鐵鋌)등 유물을 발굴하였다.물론 근처인 동래의 복천동과 양동리에서도 많은 양의 유물들이 출토됐다.이렇게 해서 삼국사 속에서 사라졌던 나라인 가야가복원되고 사국사(四國史)가 기술되게 되었다. 가야는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였다.중국기록에 일찍부터 등장하고,왜 등 주변국가들과 교역을 한 국제적인 나라였다.국력이 매우 강하여 전기에는 신라를 제압하기도 했으며,고구려의 광개토대왕군이 신라를 구원하고자 할 때 백제,왜와 연합해 대항하기도 했다.가야는 미약하나마 562년까지 실존한 나라였다.그럼에도 기록이 불실하고,실체가 불분명하여 해석이 분분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임나일본부설’이다. 4세기경 야마도정권이 신라를 정벌하고,가야지방을 정복한 뒤 약 200년간‘임나일본부’가 존속하였다는 것이다.이 설은 기록의 문제점과 당시 동아시아의 대세로 보아 한일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어 왔다.그중에는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가 주장한 ‘기마민족국가설’이 있다.부여 고구려지역에서 남진해온 기마집단이 4세기 초 가야지방에서 일본열도로 이동한 다음 규슈북부와 한반도 남부지역에 걸쳐서 연합왕국을 건설했다는 이론이다.이 설은 활동주체를 일본열도 쪽에 두는 한계가 있지만 그 사이에 바다를 둔 국가의 존재를 상정한 것은 타당성이 있다. 필자가 지면을 통해 꾸준히 주장하였듯이 동아지중해 해양문화는 매우 뛰어났고,특히 대한해협은 주민들이 활발하게 오가는 교통로였던 것이다.가장 손쉽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통로는 김해지역과 규슈북부를 연결하는 항로이다. 일본 건국신화에는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미코도(瓊瓊杵尊)가 삼종신기를 갖고 다카마노하라(高天原)를 떠나 히우가(日向)의 다가치호노다게(高天穗峰)의 구시후루(환觸峰.久士布流多氣)에 도착한다.그의 후손인 짐무(神武)는 동쪽으로 정벌을 완료한 후 초대 천황이된다는 내용이 있다.이 신화는 김수로왕의 ‘천손강림신화’와 구조나 내용이 같고,등장하는 지명(구시후루는 구지봉(龜旨峰)과 음이 유사함)도 비슷하므로 가야계 집단이 일본열도에 도착,고대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대마도나 규슈북부지역에는 가야계 지명이 매우 많다.특히 고대항로의 깃점인 당진(唐津)은 원래는 한진(韓津)이었으며,지금도 ‘가라의 항구’란 뜻인‘가라츠’라고 읽는다. 만을 굽어보는 산은 ‘가야산’이고, 근처에 ‘가라도마리’,‘게야’등 가야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특히 천손인 니니기노미코도를 모신 규슈 중부의 기리시마신궁(霧島神宮) 근처에는 가라쿠니다케(韓國岳)가 있다.그외에도 한국과 가야를 가리키는 말이 무수히 많다. 가야와의 관련성은 유물에서도 나타난다.일본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청동거울이 양동리 대성동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가야는 변진의 전통을 이어받아 철기문화가 발달하였다.대성동 2호분에선 철도끼와 교역품이었던 대형철정 150점이 발견되었고,다른 곳에서도 철제칼 무기 등이 발견되었다.중요한 고분에서는 철제 갑옷과 투구,마구류,행엽,가죽방패 등이 나온다.기마문화가 발달하여 4세기 경에는 기마군단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그외에 파형동기,통형동기 등 일본적인 것으로 알려진 유물이 있는데,이는 오히려 일본보다 시대에서 앞서고,기술도 뛰어나 가야가 원류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야인들은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군단을 보유한채 함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를 정복한 것이다.물론 당시 조선수준으로는 대규모 군마를 운송할수 없었다.때문에 군사는 빠른 전선에 타고,군마는 뗏목(宮本常一 설)이나쌍동선(雙胴船:石井謙治 설)에 싣고 대선단을 이뤄 건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야인들은 이렇게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안을 동시에 지배한 해양제국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성동에서 발굴된 벽옥제 화살촉 등이 조공품이었다는 견해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가능한 일이다.가야는 점차 일본열도의 중심부를 향하여 진격하는 한편,남해무역을 독점해 국가의 부를 더욱 축적하였을 것이다.그러나 고대국가가 성장하고,해양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신라는 질좋은 철을 생산하고,동해남부 항로를 개척하면서 일본열도로 진출하였다.백제 또한 전라도 해안까지 진출한 뒤 대한해협을 본격적으로 건너갔다.고구려 역시 광개토대왕 이후에 동해를 건넜다.이렇게 사국의 해양력 경쟁체제가 성립되자 가야는 항로의 독점권을 빼앗기고,교역상의 이익이 사국으로 분산되면서 점차 위상이 약해져 갔다.해양폴리스들을 주축으로 한 소국연합체인 가야는 필연적으로 내부 통합력이 약했다.또 양안에 걸친 지배체제였을 경우 관리와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이런 한계를극복하지 못하고,해양제국인 가야는 점차로 사라져 갔다.하지만 그들은 대한해협의 정치와 상업을 장악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주인이었으며,우리는 그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6)장수왕

    분단된 한반도를 중심으로 4강 외교가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동아질서가 재편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분명한사실은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고 주변 4강은 분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 동아시아의 중핵에서 능동적으로 주변국가를 요리한 나라가 있었다.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으로 전방위 공략을 펼치고,수군과 기마병을 동원해 백제를 공격한 다음 경기만을 장악하였다.장수왕은 즉위한 후 광개토대왕릉비를 세웠다.그 비에서 ‘고구려는 세계의 중심’이며‘하늘과 해의 자손’이라는 성스러운 선언을 국내외에 하였다.그리고 그 의지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남진정책을 적극 추진했다.이러한 정책들은 국제질서 및 해양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평양은 대동강과 예성강을 아우르며 평안도와 황해도를 동시에 장악하는 전략적인 거점이다.부채꼴로 펼쳐진 하계망(河系網)을 통해 내륙을 통치하고,바다와 연결되어 해양진출과황해북부 해상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그래서 고조선시대 이래 대외교섭과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장수왕은 북방에서 연(燕) 북위(北魏)등과 전쟁을 하면서 남진정책을 전개하였다.신라를 계속 압박하여 468년에는 실직주성(悉直州城:현재의 삼척지방)을 공격하였다.481년에는 청송지역과 포항밑 흥해(興海)까지 공격하였다.이는 동해중부는 물론 남부지역까지 해양활동의 범위를 확대했음을 의미한다. 신라의 수도를 압박하고,일본열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이곳을 출발하면 해류와 바람을 이용하여 일본열도의 시마네(島根)와 돗도리(鳥取)현 등지로 도착한다. 이 지역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제기된다.장수왕은 475년에 백제의 한성을 공격해 점령하였다.백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고 백제는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겼다. 이렇게 고구려의 국경선은 아산만에서 충주지역을 거쳐 동해안의 영덕까지이르렀고,이 땅의 패자가 되었다.그리고 황해중부 이북과 동해중부 이북의해상권을 장악하였다. 5세기의 동아시아에는 역학관계가 매우 복잡했다.중국은 남북조시대,즉 분단국가가 되어 전쟁을 하는 등 적대관계에 있었다.북방에서는 ‘유연(柔然)’이라는 유목국가가 북위와 싸우고 있었다.한편 백제와 신라는 성장을 하면서 중국지역과 교섭하며 국제질서에 진입하고자 하였다.왜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모든 나라들을 유일하게 연결시키는 외교통로는 바다였다.육지만 장악해서는 동아시아의 강국이 될 수 없었다.장수왕은 이와같은 지정학적 현실을 인식하고,해양능력을 강화시켰다.20세기와는 정반대로 중국 남북조를 대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 등거리외교를 하였다.양자강 유역에 도읍한 송(宋)과는 해로를 이용한 해양비밀외교를 펼치며 당시의 기갑전력인 군마 800필과 화살,석궁 등을 배에 실어보내기도 했다.또한 북방의 유연과 남방의 송을 외해양(外海洋)으로 연결시키면서 북위를 협공하는 환상적인 포위망을 구축했다. 이러한 해양비밀외교는 양국의 사신선이 산동 해상에서 북위의 수군에게 나포되면서 외교분쟁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고구려는 황해중부의 해상권과 항로를 장악,백제와 신라가 북위와 교섭하는 것을 통제했다.이러한 질서에 도전하던 백제 개로왕은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이후 백제 신라,왜는 남조(南朝)정권만 교섭하는데 그마저도 자유롭지 못하였다.고구려는 대륙과 한반도,해양을 장악한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서 역학관계를 조정하는 위치를차지하였다. 고대사회에서 정치적 교섭은 주로 교역을 동반한다.고구려는 해양을 경제활성화에 최대한으로 활용하였다.군마 등 갖가지 물품을 송나라에 수출하고,남방의 물자를 수입하였다.고구려는 중계무역도 하였다.예를 들면 흥안령지역에서 생산되는 말과 담비가죽 등을 수입하고,대신 요동의 철을 수출하였다. 이러한 북방의 특산물은 다시 고구려 배에 실려 남방으로 수출된다.뿐만 아니라 섭라(涉羅:제주도로 추정)의 특산물인 가(珂:흰 마노로 된 구슬)라는보물을 북위에 보내기도 하였다.일본서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279년부터 일본열도로 진출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월(越:현재의 후쿠이현) 지역은 고구려와 호족들간의 교역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능력을 갖게한 고구려의 현실적인 해양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당시 고구려의 항로는 황해와 동해로 다양했으며 어느 지역으로도 항해가 가능했다.황해북부 연근해항로,황해중부 횡단항로,황해사단(斜斷)항로,동해중부사단항로 등 다양했으며,특히 홋카이도(삿포로 근처)까지 이어주는 연해주 항로도 있었다. 선박은 사신선,전투선,민간교역선 등이 있었다.800필의 말을 싣고 황해를종단 항해,양자강 유역까지 들어가는 등 큰 배로 이루어진 대선단이 있었다. 배안에 2개의 돛대를 갖추고,기록으로 보아 50∼100명 내외의 인원을 태웠다.근해 항로를 많이 활용하였지만 동해를 건너거나 황해를 종단하기 위해서는 별과 해를 관측하는 천문항법을 하였을 것이다. 이같이 고구려 장수왕은 활발한 남진정책과 해양활동을 통해 정치,외교,군사,경제,문화적으로 고구려를 동아지중해의 중핵국가로 만들었다.이러한 해양력의 강화와 ‘동아지중해 중핵조정론’은 21세기를 앞 둔 우리에게 의미있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4) 만주벌에서 바다로

    우리역사에 고구려란 나라가 있다.군사력이 강하고,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한반도 중부 이북에서부터 만주벌 요하 일대,연해주와 멀리 북방의 초원까지 장악한 나라.하늘과 빛을 지향하는 자의식이 강한 천손(天孫)민족으로 늘 자유를 꿈꾸고,실천하는 사람들의 나라였다. 고구려의 이러한 발전의 배경에는 철기로 무장한채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군단과 강건한 문화가 있다.하지만 또하나,중요한 힘의 원천이 있으니 그것은 하얀 돛을 단 범선으로 동아지중해를 누비던 광범위하고 활달한 해양활동과 그 문화이다.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는 이미 해양활동 능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으나 초기에는 대륙의 강 위에서만 수상활동을 하였다. 인간은 처음 강에서 수상활동을 하였으며 점차 바다로,대양으로 나갔다.그래서 강은 문화의 출발점이었다.중국에는 황하와 양자강의 유장한 흐름이 수천년간 대하드라마를 연출해왔다.우리들의 배냇고향인 만주에도 큰 강이 초원과 평원 사이를 흘러가며 사람들의 삶을 이어주고 물자를 배분해줬다.백두산에서발원한 송화강은 장춘을 지나 북으로 흘러 초원지대인 대안에서 대흥안령산맥을 출발한 눈(嫩)강과 만나 동류 송화강으로 거듭난다. 북부여 천제인 해모수(解慕漱)가 따라 내려왔을지 모르는 눈강은 배가 다닐 수 있는 통항(通航)거리가 700여㎞이다.송화강은 북만주를 거쳐온 흑룡강과 만나 동해로 들어가는데 통항거리가 무려 1,890㎞에 달한다.수도인 국내성옆을 흐르던 압록강도 통항거리가 750여㎞다.그외에도 요하,혼강,두만강 등은 수로가 깊고 길며 바다로 이어져 큰 배들이 항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강에는 어느 시대,어느 지역에건 이른바 강상수군(江上水軍)이 있다. 고구려는 교역과 전쟁을 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위해 만주벌에 그물처럼 뻗은 강을 관리하는 수군이 필요했다.주몽의 아버지인 천제 해모수는 물의 신으로 불린 하백의 딸 유화부인과 결합했다.고구려는 태양숭배집단과 물에 세력기반을 둔 토착세력이 혼인동맹을 맺으면서 통합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고구려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배도 띄웠던 것이다.고구려는 내륙수군에만 만족하지 않고,초기부터 동해로 진출하였다.동옥저가 동해에서 잡은 해산물들을 공급하였으며,민중왕과 서천왕때는 고래잡이도 성행한 듯 야광눈을왕에게 바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동아(東亞)의 지정학적인 구도나 본격적인 국제교역을 위해선 황금의 바다인 황해로 진출해야 했다.그렇다면 험준한 산성전투에 능하고 기마전을 장기로 하는 고구려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배타고 활동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말을 탄 채 수천리를 행군하는 정복욕이 강한 집단은 해양에도 과감하고 신속히 진출한다.유목문화와 해양문화는 똑같이 이동성을 특성으로 하기 때문이다.고구려는 3대 대무신왕때부터 황해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태조대왕(146년) 때에는 출해구(出海口)인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을 공격,대방(帶方)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 태수의 처자를 포로로 하였다. 그런데 3세기 전반에 이르러 중국대륙은 위오촉(魏吳蜀) 삼국시대였고,고구려는 위나라와 대결하는 복잡한 상황이었다.이때 강남에 터전을 굳힌 오나라의 손권은 위(魏)를 배후에서 압박하면서 군마와사치품인 담비가죽을 수입하기 위해 고구려를 필요로 했다.반면에 고구려는 중계무역과 남방의 귀중품을 수입할 목적으로 원교근공책을 취했다.해양활동을 활용해 국가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고구려는 233년,동천왕시대 양자강유역의 오(吳)와 황해를 천수백km나 종단하면서 본격적인 해양외교를 펼쳤다.당시 오는 최고의 수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해양에 관한 기술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한편,위는 대방을 일본열도까지 이르는 해상 네트워크의 중계지로 삼아 황해 횡단항로를 구축했는데 이것은 교역뿐만이 아니라 고구려를 겨냥한 광범위한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그러나 고구려는 황해 북부의 해상권을장악해가면서 남쪽에 있는 낙랑 대방 등의 한족세력을 고사시켜갔다. 그러면 고구려와 오나라 사이의 항로는 어떠했을까? 당시의 국제관계와 황해의 해양조건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갈 때는 압록강하구인 서안평을 출발,요동만을 우측으로 보면서 멀리 나가서 산동반도 근해를 통과한 다음 위의 세력권을 벗어나 양자강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곧 공손씨의 배반으로 요동반도를 거치는 연근해항로는 피해야만 했다.실제로 오의 수군함대는 산동반도에서 위나라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따라서 강남에서 출발할 경우 안전을 위해 산동권으로 진입하기 전 일단 먼바다로 나가 종단으로 북상하다가 압록강하구로 들어갔다.위험부담이 많은 원양항해에 가까운 항로이다. 양쪽을 오간 배의 크기와 규모는 정확히 알수가 없다.그런데 235년 오나라의 사굉(謝宏)이 탄 사신선이 적어 고구려가 준 수백필 가운데 80여필만 싣고 돌아갔다.수십필의 말과 군사,화물을 실고 다닐 정도이니 큰 선박임이 틀림없다.육지의 나라,기마군단의 나라였던 고구려는 바다로 나가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경영하면서 고조선의 역사를 재현했던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지리산 7개시·군 테마관광상품 공동개발 합의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는 3개 도 7개 시·군이 21세기형 테마관광상품을 공동개발한다. 전북의 남원 장수,전남의 구례 곡성,경남의 하동 산청 함양군 등 7개 시·군 자치단체장들은 19일 곡성군에서 모여 ‘지리·섬진권 생태 테마상품’을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다. 회의에서 단체장들은 시·군마다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활용한 체험형 관광지와 휴양지,특산품,향토음식,쇼핑지를 서로 조화시킨 테마상품을 공동개발하는데 상호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고현석(高玄錫) 곡성군수는 지리산권의 관광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군간을 오가는 시외버스를 활용,관광지간 연결망을 체계화하자고 제안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최진영(崔珍榮) 남원시장은 남원의 사랑길,장수의 논개길,함양의 성림길,산청의 면화길,하동의 화개길,구례의 화엄길,곡성의 추억철도길 등 지역특성을 살리는 테마길을 만들어 육성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국관광연구원 연구팀이 참석해 ▲관광 보존▲관광상품개발▲관광인프라 확충▲관광정보체계 구축▲협력체계 구축등 5개 전략부문과 10대 전략과제를 놓고 단체장들이 의견을 모았다. 광주 임송학기자 shlim@
  • 자치단체, 직원 출장비로 ‘골머리’

    지방자치단체들이 공무원 국내여비(출장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비 예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지급기준마저 모호해 갈수록 집행이어려워 지기 때문이다. 현행 공무원 국내여비규정에 따르면 근무지내 출장은 출장여행시간이 4시간 이상이면 1만원,4시간 미만이면 5,000원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시·군마다 부서별 연간 예산할당액이 실제 소요액에 비해 평균 50∼70% 수준인데다 예산배정도 부서별 인원수대로 일괄 산정,편성하고 있어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경기도 의정부시 K과의 경우 기준대로 적용하면 지난해 1,200만원의 여비가 필요했으나 실제는 절반인 600여만원을 지급하는데 그쳤다.이때문에 관외출장을 제외하고는 분기별 출장회수를 계산해 직원 1인당 평균 4만∼5만원씩일괄 분배해주는 실정이다. 부서별 할당기준도 문제다.민원기동처리반 교통 위생 등 출장업무부서와 총무 기획부서 등 내근부서 직원간에 지급액 차이가 없다.심지어 같은 부서내에서조차 상근직원과 출장직원들의 지급액을 똑같이 배정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국내여비로 1,000만원을 지급한 고양시 M과는 “여비지급과 상관없이 손쉬운 출장업무를 선호하는 직원들이 많은데다 특정직원이 출장을 전담하면 부서의 모든 출장비를 직원 1∼2명이 타가는 문제가 생겨 차라리 공동분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남양주시의 한 민원부서 직원은 “출장비로 부서의 차(茶)를 구입하거나 직원회식에 사용한 경우가 많아 출장이 빈번한 일부 직원들은 가뜩이나 수당등이 깎인 판국에 사비를 들여가며 공무를 수행하는 등 선의의 피해를 보고있다”고 불평했다. 의정부시 예산관계자는 “부서별 개인별 출장비 편성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무엇보다 행정자치부의지침과 예산 증액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 박성수기자 songsu@
  • “올 도자기축제는 2001년 세계축제 전초전”

    “올해 도자기축제는 예년과 다릅니다” 오는 2001년 세계도자기 축제 공동개최지로 확정된 경기도 광주·여주군과이천시가 저마다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열띤 홍보전에 돌입했다.올해행사를 세계축제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예비행사로 보기 때문이다. 사고 보는 행사에서 탈피해 주민들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도자기 교실과 도예공모전,왕실도자기 진상식 등 시·군마다 볼거리를 잔뜩 준비해 벌써부터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기에 혈안이 돼있다. 광주군은 행사를 ‘왕실도자기축제’로 이름짓고 오는 4월29일부터 5월9일까지 11일간 첫 도자기축제에 들어간다. 주행사장으로,조선시대 왕궁터가 남아있는 남한산성 일대에서는 도자기진상식이 열리고 초적(풀피리)연주회도 열린다.수백년동안 왕에게 바치는 보물도자기를 만들어온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보도자기 재현품 경매행사도벌여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 행사장 주변 벽면에는 대형도자기벽화만들기 대회도 열리며 관람객이 왕과왕비가 돼 열리는 궁중다례시연회도 볼만하다.여주군은 ‘흙과 혼 그리고 불의 조화’를 주제로 4월30일부터 10일간 신륵사 국민관광지 및 인근 도예촌 일대에서 축제에 들어간다.낭비성 이벤트행사는 지양하고 관람객 중심의 문화행사를 준비했다.지역에서 생산된 도자기 할인행사를 지양하고 관람객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전시판매대를 설치해 참여기회를 넓혔다.도자기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리고 공군 군악대와 의장대 퍼래이드도 열린다.이 행사에 앞서 전국 도자기 예술인들의 작품을 모아 우수작을 선발하는 제1회 세종도예공모전도 개최된다. ‘흙과 불의 잔치’로 이름지어진 이천 도자기축제는 이천온천광장과 도예촌 일원에서 오는 9월9일부터 19일까지 12일간 열린다.6개월여가 남았지만이미 세부계획을 확정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세계도자기축제를 염두에 둔 국제도예전이 열리고 세계도예작가워크샵과 해외바이어 초청 이천도자기 수출행사도 개최된다.축제장 입구에는 국제조각전이 마련되고 초·중·고등학생과 대학생 도예작품전도 열린다.
  • 삼국지 역사체험展 어제 개막

    ◎대한매일 주최… 사료 등 국내 첫 기획전시 삼국지 역사체험전 전시회가 21일 오전 11시30분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내 특별전시장에서 개막식을 갖고 22일부터 1년간 일반공개에 들어간다. 대한매일신보사와 육영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삼국지 관련 기획전으로는 국내 처음 열리는 것이다.개막식에는 대한매일신보 全萬吉 감사,한국실리콘 밸리 盧相周 사장,동양화재해상보험 朴鍾翊 사장,어린이회관 金幸一 관장 등이 참석했다. 전시장은 미로를 찾아가는 미궁체험관,삼국지 역사현장의 사진 및 사료들이 판넬로 전시된 실내전시장,삼국성,군마상 등이 전시된 옥외전시장 등 3부분으로 이루어졌으며 기념물관에는 삼국지 관련 도서와 비디오 테이프,기념품등이 전시 판매된다. 공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이며 입장료는 어른 5,000원,학생 및 경로우대 3,500원,단체(30인 이상) 2,500원이다.(02)447­2286∼7
  • 日 검찰,정당교부금 유용 중의원 체포/자민당 나카지마 의원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29일 정당교부금을 유용한 뒤 허위보고서를 제출한 나카지마 요지로(中島洋次郞·39) 자민당 중의원을 정당조성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이 95년 정치부패 방지를 위해 기업과 단체의 헌금을 폐지하고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정당교부금을 배분하기로 한 정당조성법을 도입한 뒤 국회의원이 이 법에 따라 체포되기는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나카가와 의원은 자신이 대표자로 있는 군마현 제3선거구지부 명의로 96∼97년에 걸쳐 2,000만엔의 정당교부금을 받은 뒤 이중 1,000만엔을 유용했으면서도 전액 정당하게 사용한 것처럼 허위 보고서를 제출했다.
  • 팔당호 오염현장을 가다(4대강 上水源 긴급점검)

    ◎廣州무허공장 100여곳 폐수 흘러 들어/廢페인트 등 유독물질 장마 틈타 몰래 버려/개발명목 주변 7개 지자체 환경감시 뒷전 ‘상수원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수도권 2,000만명의 시민에게 먹는 물을 공급하는 팔당호를 비롯해 대청호 금강 낙동강 주암호 등 전국 상수원이 몸살을 앓고 있다. 주변지역에 마구 들어선 음식점과 카페,공장 및 축산 폐수 등으로 강물이 날로 오염되어 가고 있다. 특단의 대책 없이 방치하다가는 물마저 마음놓고 먹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형편이다. 때때로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는 하지만 환경당국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가 엇갈려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강 영산강 낙동강 금강 등 전국 4대수계의 상수원 실태와 수질 보전방안을 시리즈를 통해 짚어본다. 3번 국도를 따라 경기도 광주군에서 용인군 모현면 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광주읍 태전리가 나온다. 멀리서 보면 아파트와 상가 뿐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딴판이다. 야산 골짜기마다 들어선 공장들은 공업단지를 방불케 한다. 태전리 뿐 아니라 태전리 윗쪽 孟思誠묘 방향의 직리,태전교 왼쪽 목리에도 개천을 따라 야산 기슭에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2㎞쯤 되는 길 양쪽에 100개가 넘는다. 골짜기로 숨어들 만큼 영세한 공장도 있지만 제법 규모가 큰 공장도 여럿 있다. 공장이 밀집하다 보니 여느 시골길 같은 도로에는 자동차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직리천과 목리천은 곤지암천에서 합류돼 경안천으로 흘러든다. 경기도 광주 용인 등에서 유입되는 경안천은 남한강 북한강과 함께 팔당호를 이룬다. 태전리 일대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모두 팔당호로 유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의 공장 가운데 폐수 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군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무허가 공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광주군청 환경보호과 직원도 공장이 모두 몇개나 되는지,업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趙봉세 공업행정계장도 “공장 면적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막연한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관할 자치단체의 행정이 이렇다 보니 단속의손길이 미칠리 없다. 한강 환경감시대 등 환경당국이 몇번씩 고발을 해도 버젓이 조업을 계속한다. 얼마전 페인트 폐기물을 그대로 하수구에 흘려보내는 장면이 TV에 보도돼 고발된 P가구공장도 여전히 가동 중이다. 소각한 폐기물을 공장 뒷편 직리천변 구덩이에 파묻었다가 적발된 K산업에서도 기계를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얼마전 폐기물을 묻은 듯 뒤엎어진 검은 흙이 지금도 눈에 띈다. 또한 켠에 쌓아둔 ‘유독물질’ 표시가 된 폐페인트 통에서는 폐페인트가 빗물을 타고 새 나온다. 광주군은 태전리 일대 뿐 아니라 초월면 오포면 실촌면에도 공장이 많다. 성남과 분당이 개발되면서 그 곳에 있던 공장들이 대부분 광주로 옮겨 눈에 잘 띄지 않는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한강 환경감시대 金周熙 계장(53)은 “광주군은 골짜기란 골짜기가 다 공장지대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광주군이 특히 심할 뿐 다른 팔당호 주변 다른 시·군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팔당호에 바로 인접한 양평군과 남양주시도 광주군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양평군과 남양주시에는 음식점 카페 호텔 등 숙박·접객업소가 많다. 광주군 퇴촌면과 남종면 분원리 못지 않다.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수호교(橋)와 강 건너편 남양주시 조안면 삼봉리를 경계로 하류쪽 상수원 보호구역은 물론 상류쪽에도 근사한 카페와 호텔이 많다. 상수원 보호구역 바로 위에는 모터보트와 수상스키를 빌려주는 업소가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이다. 낚시 뱃놀이 등 물을 오염시키는 일체의 행위가 금지된 상수원보호구역에서 채 100m도 되지 않는다. 구역 경계에 철책을 둘러친 것이 아니어서 특별대책지역에서 수상스키를 타다 상수원보호구역을 침범하는 일도 허다하다. 상수원 보호구역 경계에서 빤히 바라보이는 곳에는 군(軍) 도하(渡河)훈련장이 있다. 도하훈련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이 고스란히 상수원으로 유입될 것이 뻔하다. 도하훈련장 맞은 편 서종면 수인리는 ‘카페촌’으로 불릴 만큼 마을 전체가 카페 일색이다. 또 도하훈련장과 수상스키 대여업소 사이 남양주시 화도읍 금남리에는H호텔 K오피스텔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숙박업소가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폐수는 곧바로 팔당호로 유입된다. K오피스텔은 하수관이 팔당호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금세 눈에 띈다. 정화시설을 거쳐 걸러진 폐수가 배출된다고는 하지만 설겆이한 물과 화장실에서 쓴 물 등이 곧바로 식수원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문호리 금남리 주변의 논밭에서는 농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또 금남리 남쪽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유기농업단지에서는 닭똥 썩는 냄새가 난다. 비가 오면 농약과 닭똥이 팔당호로 흘러내린다. 팔당호의 수질 악화는 남양주시 용인시 이천시 광주군 양평군 가평군 여주군 등 주변 7개 자치단체의 무성의한 행정에도 원인이 있다. 시·군에서 환경파괴에 오히려 앞장서기도 한다. 환경부 鄭鎭勝 차관은 “언젠가 모 군수가 ‘한 토지 소유주가 군청 청사를 공짜로 줄테니 농림지를 준 도시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鄭차관이 거절해 무산되기는 했지만 일선 단체장들의 환경의식 수준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들 시·군은 또 협의회를 만들어 환경부의 정책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고,심지어 주민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팔당호 주변 음식점과 카페는 주인이 모두 외지인들로 지역 주민들과 별 관련이 없다. ◎팔당호 수질과 개선책/경안천 BOD 7.5ppm “수질 최악”/완충지대 숙박·음식점 등 건축금지 수도권의 상수원인 팔당호는 5월 현재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1.8ppm으로 전체적으로 2급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강의 남양주군 조안면 삼봉리,남한강의 양평군 강상면 교평리 양평교(橋),경안천의 광주군 퇴촌면 광동리 광동교(橋),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팔당댐 앞 등 4개 측정지점의 수질이 각각 다르다. 용인시 광주군 등의 생활·공장 폐수가 흘러드는 경안천이 7.5ppm으로 가장 나쁘고 남한강 2.0ppm,팔당댐 앞 1.8ppm,북한강 1.0ppm의 순이다. 팔당호는 갈수기에 해당하는 5월과 6월의 오염도가 제일 심하다. 팔당호의 오염은 개발 위주의 토지정책 때문이다. 94년을 기점으로 개발용도로 지정된 토지가 15.6%에서 57.3%로 크게늘었다. 상수원인데도 불구하고 전국 평균 42.7%보다 14.6%나 높다. 자연환경보전지역도 2.5%로 전국 평균 7%에 훨씬 못미친다. 수질 보전을 위한 특별대책지역내 건축 규모 제한도 음식·숙박시설 400㎡ 이하,주택 등 일반 건축물 800㎡ 이하로 규제가 약하다. 특별대책지역도 하수처리시설이 갖춰진 하수처리구역은 건축 제한이 없다. 환경부는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 팔당호 양안(兩岸)에서 500∼1,000m 이내를 수변 완충지대로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완충지대로 지정되면 가축 사육,음식·숙박시설 신·증축,폐수배출시설 건축이 금지된다. 또 팔당호 주변의 녹지 훼손을 막기 위해 팔당호에서 일정한 거리 이내의 산림의 형질 변경을 전면 제한하는 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음식점 카페 호텔 등 기존 오염원의 배출기준도 현재의 20ppm 이하에서 2배 이상 강화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특별대책지역 내 7개 시·군에 대한 오염물질 총량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시·군마다 배출할 수 있는 오염물질의 총량을 할당한다는 것이다. 오·폐수를 팔당호로 직접 방류하는 업소에 대해서는 정화에 드는 비용을 업주에게 직접 물리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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