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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세번째 광우병 소 확인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埼玉)현에서 도축된 젖소가 광우병 소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일본 정부가 2일 밝혔다. 광우병 소가 일본에서 발견된 것은 세번째이다. 일본 정부와 사이타마 보건 당국은 문제의 소가 생후 68개월된 홀스타인종이며 인근 군마(群馬)현에서 태어나 사육돼 왔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9월10일 지바(千葉)현에서 광우병 감염소가 첫 발견된 이후 지난 달 21일 홋카이도(北海道)에서두번째 광우병 감염 소가 확인됐다.
  • 日 광우병 소 또 발견

    [도쿄 교도 연합] 일본에서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이가는 소가 세번째로 발견됐다고 일본 후생노동성이 30일 밝혔다. 지난 9월 광우병 감염 소가 처음 발견된 이후 전국적으로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던 중 사이타마(埼玉)현에서 도축된 한 젖소에서 광우병 감염 1차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사이타마 보건당국은 문제의 소가 생후 68개월된 홀스타인종이며 인근 군마(群馬)현에서 태어나 사육돼 왔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9월22일 지바(千葉)현에서 광우병 감염소가 처음 발견된 뒤 이달 21일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두번째 광우병 감염소가 확인됐다.
  • 에듀토피아/ ‘복수지원 후 추첨’ 고교 노려볼만

    “옆에 있는 고등학교는 마음에 안 들고 이사를 가자니형편이 안되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사대문 안 고교에 입학원서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선(先)복수지원 후(後)추첨배정’방식을 적용하는 이 지역 고교들은 원칙적으로 서울지역의 모든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다. ‘선복수지원 후추점배정’은 원하는 학교를 골라 먼저지원하고 지원자 가운데 추첨하는 배정방식이다.도심 공동화현상으로 사대문 안의 학생수가 줄면서 다른 지역의 학생들을 강제로 배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다. 최근엔 강남과 강북의 학력 격차를 줄이는 데도 제 몫을톡톡히 하고 있다. ◆어떤 학교들이 있나=서울시청에서 4㎞ 이내 지역과 용산구에 있는 30개 고교가 96년부터 시범운영하고 있다.남학교가 한성고·용산고·숭문고 등 16개교,여학교가 중앙여고·서울여고·풍문여고 등 12개교,남녀공학이 2개교다.서울에 있는 일반계고등학교가 총 187개이니 무시못할 숫자다. 지난해에는 서울시내 고교 신입생 9만7,209명 중 약 14.5%인 1만4,122명을 뽑았다.1만8,754명이 지원해 경쟁률은약 1.3대 1이었다.여학교는 1.6대 1,남학교는 1.2대 1로남학교가 더 많아 경쟁률이 낮았다.하지만 Y여고,D고 등‘명문’으로 알려져 있거나 교통이 편리한 고교는 경쟁률이 4∼6대 1이었다. ◆지원·배정 어떻게=원서 ‘선복수지원학교명’란에 대상학교 중 2∼3개교를 선택,희망 순서대로 기재하면 된다.배정 때는 1순위 지원자를 우선으로 하고 결원이 있을 경우에 2,3순위에서 보충한다.다른 학군과 달리 지원자들의 성적 편차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1∼3순위에 모두 인기 고등학교를 썼다간 추첨에서 떨어져 타학군에 배정되는 낭패를 보는 수도 있다.시교육청 중등교육과 박평순(朴平淳)장학사는 “통학하기 쉬운 거리의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주지만,지난해에는 이 지역 여학생100여명이 다른 구의 고교로 배정되었다”며 학교 선택에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올해는 서울시내 고교 신입생 9만860명 중 1만2,250명을이 방식으로 선발한다.원서는 다음달 17∼19일에 일선학교에서 지역교육청으로 제출하면된다.학교 배정은 내년 2월9일 다른 고교와 함께 이뤄진다. ◆어떻게 달라졌나=‘선지원 후추첨’으로 학생들을 뽑는고교에서는 “학교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고 입을 모은다.학생들 대다수가 원해서 온 만큼 학교에 대한 불만도거의 없다. 용산고등학교 권중태(權重太)교감은 “수업시간에 잠자거나 떠드는 학생이 거의 없고 교내 폭력사건도 눈에 띄게줄었다”면서 “4년제 대학 진학률도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이화여고 김정문(金正文)교감은 “애교심이 높아져 학생 지도가 수월해졌다”고 밝혔다. ◆새로 도입되는 지역은=2002학년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는 경기도 5개 지역 중 부천을 제외한 성남·고양·수원·안양권(과천·의왕·군포시 포함)지역 학생들은 1차로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으로 고교를 배정받는다.추첨대상 학교는 성남·고양·수원의 경우 5지망까지,안양권은 6지망까지 허용된다.1차에서 배정받지 못한 학생은 2차로 ‘근거리 배정’방식을 적용받는다.부천에서는 ‘선복수지원 후추첨’방식으로만 뽑는다. 김소연기자purple@. ■고교 학군별 신입생 배정 어떻게. A학군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 학군에 있는 학교에 배정되는 것은 아니다.이웃 학군이나 엉뚱하게 멀리 떨어진 학교에 배정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이유는 간단하다.학군마다 학교 수와 학생 수에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지난해의 경우 남학생은 서부,남부,북부,강동,성동학군이,여학생은 동부,서부,남부,북부,강동,동작,성동,성북학군이 배정 인원보다 학생수가 많았다.때문에 총 5,669명이 다른 학군으로 배정받았다. 현재 서울 지역 고교는 11개 학군으로 나뉜다.후기 일반계고교의 신입생 배정은 학군 내에서 성적편차를 고려해 무작위로 추첨하는 것이 원칙이다.입학원서를 낼 때의 주거지가기준이다.하지만 모집인원보다 학생수가 많은 지역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학군으로 배정한다. 특히 노원구를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북부학군에는 학생 수가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고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지난해 이 지역 인문계 고교 합격자는 6,008명으로 강남학군의 6,063명과 거의 비슷하다.하지만 고교 수는 강남이 19개,북부가 7개로 북부학군의 학교 수가 강남학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그 결과 지난해 북부학군의 학생 1,880명이 다른 학군으로 진학했다. 반면 강남학군은 내신 부담과 집값 폭등으로 97년부터 오히려 학생이 줄었다.이른바 ‘8학군 열풍’이 불면서 강남에학생이 넘쳐 한강 다리를 건너 통학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난해 강남학군은 모집인원보다 1,269명이 부족했다.도심 한복판인 중부학군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숫자였다. 학군별 고교 및 학생 수 차이는 학급당 학생 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강남이나 동작학군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가 39명인 반면 북부,동부,중부,성동,성북 등 5개 학군은 평균 48명으로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내년부터 ‘콩나물 교실’문제는 없다.내년도 고교신입생 배정은 학급당 인원 35명을 맞춰야한다.북부학군엔도봉고,수락고가 남부학군엔 경인고,독산고가 신설된다.다른 고교에서도 총 1,060교실이 증축 중이다. 김소연기자 purple@
  • [씨줄날줄] 일본 구석기유물 조작

    1945년 패전후 만주, 즉 중국 동북 지역에서 수십만명의일본인들이 겪은 고초는 비슷한 역경을 수도 없이 겪은 우리로서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진한 것이었다. 만주 주둔 관동군은 패전 때까지도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했다.만일의 경우에도 민간인 소개를 우선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남방으로 주력부대가 빠져나간 줄 몰랐던 일본 민간인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하지만 패전이 현실화되자 관동군은 자신들과 군인가족을 먼저 피란시키고 수십만명의 민간인은 나 몰라라 했다.일본이 저질렀던 만행은 가증스럽지만 어린이들까지 거적을 둘러쓰고 배고픔에 떨면서 만주의 겨울 벌판을 헤매는 정황은 지금 들어도 처연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일본인들이 패전후 일어나기 시작했다.경제부흥과함께 1949년 군마현 이와주쿠에서 구석기 유물이 처음 발견되자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살아나기 시작했다.‘긴역사’,‘힘의 역사’는 우익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러한 ‘역사 내셔널리즘’은 고고발굴 분야에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라는 영웅을 낳았다.그는 70년대에서80년대에 걸쳐 일본 미야기현 바바단(馬場壇)과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을 비롯,40여곳의 중·전기 구석기 유적을발굴하면서 일본 열도의 역사를 20만년 이전으로 끌어 올렸다.그의 발굴은 홋카이도에서 간토지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취급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그의 날조 행각이 마이니치신문의 추적 보도로 들통나기 시작했고 지난 4일 아사히신문은 마침내 그의 발굴이 거의 모두 날조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3만년전 이전 일본 구석기 시대 연구는 총체적으로붕괴됐다고 한다. 그는 “당초부터 좀더 그럴듯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껴왔다”고 말한다.날조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일본 국가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압력 속에 잉태됐던 것이다.‘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등일본 보수 우익이 끊임없이 왜곡된 역사를 보급하려는 것도 맥을 같이한다.그들의 역사인식 속에는 ‘자랑스러운역사’와 ‘허구’가 친화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후지무라나 ‘새역모’등 역사왜곡 집단들을 ‘역사학의관동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하튼 그들의 말을 믿었던 일본인들은 졸지에 역사인식의 허허벌판에 나앉게 됐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시골 양조장

    부엌의 부지깽이도 일어선다는 모내기 날 막걸리는 새참거리에 불과하지만 가장 중하게 챙기는 먹거리였다.일손이 좀익자 싶자 막걸리 타령부터 하는 모내기꾼 눈치에 주인네는배달 자전거를 기다리다 못해 20리 떨어진 면 소재지 양조장을 향해 냅다 뛰어가곤 했다. 농경사회의 틀이 유지되던 70년대 말까지 막걸리는 농민들이나 도시 이농민의 삶 자체였다.생계나 자식 걱정 등으로졸아든 새가슴을 열어주는 막역한 벗이었다.또 말 안듣는 손자놈도 할아버지가 부르면 쪼르르 달려갔다.손자 손에 쥐어준 100원이면 동네 앞 구멍가게에서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를 사고도 50원이 떨어져 온갖 주전부리가 가능했다. 이렇게 막걸리는 농경사회와 동고동락했다.그래서 막걸리를 농주(農酒)라고도 했다.배고프던 60∼70년대 막걸리는 출출한 배를 채워주던 요깃거리로도 훌륭했다. 8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수요폭발로 시골에서 술도가(양조장)는 부잣집의 대명사였다.시·군마다 면 단위에 1곳만 허가가 났고 엄격한 공급구역으로 배타적 독점권을 누렸다.당시 시골에서 밀주를 빚다 들키는 날에는 살림이 거덜날만큼중한 범죄행위로 치부됐다.양조장 집 주변에서 키우는 돼지도 윤기가 돌았다.구정물이 전부이던 시절 술 지게미는 영양가 높은 사료였던 셈이다. 그러나 세태변화는 어쩔 수 없 듯,번지르르 하던 양조장 지붕 곳곳에 잡초가 돋아난 것은 80년대 후반.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뒤로 추락하기 시작했다는 게 양조업계의 판단이다. 이농으로 마을마다 빈집이 늘고 품앗이 대신 트랙터나 콤바인이 농사일을 하면서 양조장에 찬바람이 불었다.논이나 밭둑 새참거리가 막걸리 대신 자장면과 맥주로 대체되는 새로운 풍속도가 자리잡으면서 양조장 문턱에 먼지가 앉았다. 82년 잘 나가던 양조장을 물려받았던 김동순(金東舜·43·전남 장흥군 장평면)씨는 “86년을 정점으로 매출이 곤두박질했으며 이후 명맥을 유지하다가 96년 고민끝에 전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그 전 주인들은 “70년대 중반까지 하루에 1말(18ℓ)짜리 막걸리통으로 300여개를 주문받았다.장정 7명이 자전거 1대에 10개씩 싣고 다녀야 할 정도로눈코 뜰새가 없었다”고 기억했다.당시 막걸리통은 물통 대용으로 인기였다.돈 주고도 술통만큼 단단한 물통을 살 수없었기에 술통 수거를 둘러싼 실랑이도 적잖았다. 대한 탁·약주제조중앙회는 “3월말 현재 전국 양조장 수는 996개로 줄었으며,이마저 가내공업 수준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70년대 협회에 등록된 회원 양조장은 2,481개가 정점이었다. 막걸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다.빛깔 등에 따라 탁주(濁酒)·백주(白酒)·박주(薄酒)·모주(母酒) 등으로 불린다. 들녘에서 일꾼들 창자가 등에 붙을 즈음,멀리서 막걸리통을 싣고 달려오는 양조장 통발 자전거는 시계만큼 정확하게 새참 때를 알려줬다.또 동네잔치나 면민의 날 행사 때 막걸리1말을 내면 마이크로 이름을 불러줄만큼 대단한 기부물품이었다. 이번 한가위에 보름달이 뜬다고 한다.오랜만에 얼굴을 대하는 정다운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권하면서 도심의 찌든 때를 털어내고 그리운 시절로 돌아가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경북직장협 강매표 반납운동

    경북직장협의회연합(회장 南鎭福)이 공무원들에게 배당된각종 축제와 행사 입장권의 반납운동에 나섰다. 경북직협연합은 자치단체들이 각종 축제와 행사를 잇따라개최하면서 공무원들에게 강제성을 띤 입장권 배당도 많아지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이에 따라 경북직협연합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입장권에대해서는 배부처나 지역 직협으로 반납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다음달 5일부터 14일까지 열리는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입장권을 주최측이 3만여장을 경북도와 23개 군에 할당한것으로 알려졌다.주최측은 2,500원짜리 입장권 6만∼7만여장을 행사전에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경북도는 2,000여장의 입장권을 건네받아 부서별로 25∼30장씩 배정했다.C군의 경우도 1,200장을 넘겨받아 부서별로배당하는 등 시·군마다 비슷한 실정이다. 경북도청은 탈춤축제 이외에도 경기 이천도자기축제 3,000장,전주 소리축제 700장을 각 실·국별로 배당했다. 경북직장연합 남 회장은 “자치단체들이 축제만 열리면 공무원들에게 강제로 입장권을 배당하고있으며 심지어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제주 섬축제의 입장권도 공무원들에게판매했다”면서 “공무원을 봉으로 아는 자치단체의 처사를 바로잡기 위해 본인이 구입을 원하지 않은 입장권에 대해서는 배부처에 돌려주는 등 입장권 반납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어선 폐윤활유 무단방치

    강원도 내 어선들이 사용하는 윤활유 가운데 매년 870드럼(1드럼 200ℓ)의 폐유가 회수되지 않고 항·포구 등에방치돼 바다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환동해출장소는 최근 자체 조사결과 수협을 통해연간 도내 연안어선에 공급되는 윤활유 2,262드럼 가운데회수되는 양은 공급량의 41.5%인 938드럼에 불과한 것으로나타났다고 6일 밝혔다. 3개월 정도 사용하고 교체하는 윤활유는 운항과정에서 공급량의 20%가량이 자연 소모되고 나머지 80%는 폐유로 수거돼야 하지만 38.5%가 회수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매년 870드럼의 폐유가 항·포구에 방치되거나 바다에 유출,연안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윤활유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데다어민들의 환경에 대한 의식이 미흡하기 때문으로 분석되고있다. 이에 따라 강원도는 올해 1억5,000만원을 투자,동해안 6개 시·군마다 1곳씩 종합폐유 수거처리시설을 설치하는한편 효율적인 폐유수거를 위한 각종 관련 규정보완 등을해양수산부 등에 건의키로 했다. 강원도환동해출장소 관계자는 “청정 동해안의 이미지 제고와 수산 동식물의 생태환경보호를 위해 어업용 폐유의효율적 수거와 처리대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
  • 다나카 日외상 戒告처분

    일본 자민당은 8일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이 참의원 선거 지원 유세 과정에서 ‘실언’으로 자민당 후보를오히려 궁지에 빠뜨린데 대해 계고 처분을 내렸다. 자민당은 다나카 외상이 지난달 28일 군마(郡馬)현 마에바시(前橋)시의 자민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나는 후보 이름도 모른다”는 등의 무성의한 발언을 연발,당내로부터 “지원 유세가 아니라 유세 방해”라는 지적이 인데 대해 이날당기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다나카 외상은 7일 당기위원회가 징계 처분 결정에 앞서이번 ‘유세 방해’에 대한 경위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자,“특정 후보의 유세를 방해할 의사는 없었으나 결과적으로말이 빗나간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제출했다. 다나카 외상은 지난 4월 자민당 총재선거 유세 과정에서도 작고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당기 위원회에 회부된바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 日자민, 다나카 징계할듯

    일본 자민당은 최근 참의원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당 후보에 대해 지원유세가 아닌 방해유세를 했다는 내부 비판에직면해 있는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외상을 징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NHK 방송이 6일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자민당의 한 고위인사는 “어떤 조치를취하지 않는 한 당이 규율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자민당은 오는 8일 다나카 외상에 대한 징계 여부를결정할 예정이며,이를 위해 다나카 외상에게 7일 오후 4시까지 해명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NHK는 전했다. 다나카 외상은 참의원 선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 군마(群馬)현 선거구에 출마한 자민당의 여성후보 요시가와마유미(吉川眞由美)에 대한 지원유세를 나가 “이 여자의이름이 뭐죠?”라고 말해 유권자들로부터 폭소를 자아냈고 또 요시가와 후보가 자신의 팔을 가볍게 건드리자 “알지도 못하는데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모욕을 당한 요시가와 후보는 결국 선거에서 낙선했고,이는요시가와 후보 진영은 물론 자민당 내부의 분노를 유발한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인기가취임 3개월째를 지나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가운데 다나카외상의 인기도 점차 거품이 빠지고 있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전했다. 신문은 지난달 참의원 선거 기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나카 외상은 차기 총리감 부분에서 5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다나카 외상은 지난해 실시된 중의원 선거 때는 차기 총리감 1위에 뽑혔었다. 이는 다나카 외상이 외교사령탑에 기용된 후 잇단 말 실수와 위기관리능력 부족 등 국민에게 실망감을 준 때문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는 분석했다. 차기 총리감에는 여전히 60%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고이즈미 총리가 1위를 했으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도 지사가 2위,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간사장이3위를 기록했다. 도쿄 연합
  • [씨줄날줄] 야스쿠니의 원혼들

    중종실록에는 경순왕후 위패 도둑을 잡은 포도청 관리에게면포 1,500필과 3계급 특진의 포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면포 100필을 포상한 일반 도둑 검거에 비해 파격적인 것으로 위패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숭조사상은 그만큼 뿌리가깊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야스쿠니(靖國) 신사(神社)에합사된 한국인 징용희생자의 위패반환을 일본 정부에 공식요청키로 방침을 정한 것은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지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결정과 관계없이 진작서둘렀어야 할 일이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2만1,000여명의 한국인 위패가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원혼들이 아직 야스쿠니에있다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징용으로 끌려가 잡혀 있는 셈이다. 일본측은 이들 위패에 대해 “전사한 시점에서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도 일본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든가“일본 군인으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야스쿠니 합사는 당연하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물론 개중에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며 죽어간 ‘영광스러운 황군 장교’ 출신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침략이 빚은 넌센스이니 그 또한일제의 피해자가 아닌가.그리고 그 역시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을 터이니 이들의 귀향은 너무나 당연하다. 야스쿠니 신사가 어떤 곳인가.도죠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종전후 처형된 14명의 A급 전범과 함께 11번의 전쟁에서전사한 246만명의 일본인 위패가 안치된 곳이다. 입구에는일왕이 내린 제국 군인의 덕목을 적은 ‘칙유비’가 있고‘일본 육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동상,자살비행을 감행했던 가미카제 ‘특공용사의 동상’,군마(軍馬)군견(軍犬)위령탑이 있다.말하자면 일본국민의 군국주의 학습장이나 마찬가지다.그 뿐인가.지난해 집권 자민당은 ‘야스쿠니 간담회’를 만들어 국가재정 지원등 사실상 신사 국영화를 시도 했다.종전 55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한 것이다.교과서 왜곡,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등이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보면 예삿 일이 아니다.설사 그들이 한국인 위패를 모신 뜻이 진심이라하더라도 A급 전범위패와 함께 있는 한 한국인 원혼 뿐 아니라 일본인 영혼들도 모골이 송연할 일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jskim@
  • 전북 ‘거꾸로 가는’ 구조조정

    자치단체들의 군살을 빼기 위한 구조조정이 최근 거꾸로 가고 있다. 2일 전북도에 따르면 도와 시·군들이 특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라는 이유를 들어 정원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북도의 경우 이번달 말 63명의 정원을 감축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 할 방침이다. 그러나 도는 다음달부터 7개 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행정자치부에 무려 97명의 증원을 요청한 상태다.전주권 신공항지원사업소,첨단방사선이용연구센터추진단,새만금사업 관련 조직,전·군마라톤 담당 기구,지역신보설립 추진위,전국체전준비단 등이다. 정읍시는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사업소에 16명을 행자부에요청,8명을 승인받았다.고창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고인돌공원 관리사업소 설치를 위해 14명을 요구해 7명을,진안군은 환경사업소에 9명을 요청해 6명을 승인받았다. 이같이 인력 증원 요청은 그동안 구조조정을 이유로 인력이 크게 줄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인력이 필요해서다.또 중앙부처에서 지역 실정에 맞지 않게 일률적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일선 시·군들이 편법으로 정원을 늘리려 하는 것도 신규정원 요청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日장애작가 호시노 자서전등 번역출간

    호시노 토미히로(星野富弘·55).그는 ‘꽃의 시화전’이란 이름으로 일본 전역에서 200여 차례나 전시를 연 중견 화가다.지난 91년 고향인 군마현 세타군 아즈마무라 쿠사키댐 부근에 건립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는 해마다 10만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그의 그림은 소박하다.지인들이 가져다 준 화분이나 꽃다발,뜰에 핀 꽃나무,산책길에서 만난들꽃을 붓가는대로 그린다.그리고 시를 곁들인다. 그의 작품이 유달리 가슴에 와닿는 것은 그가 목 아래를전혀 쓸 수 없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가 된 지 두 달만에 사고를 당했다.체조수업도중 공중제비를 돌다 떨어진 것.하지만 기독교에 귀의하고 시와 그림에서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으면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그 고난의 터널을 뚫고 작가로 우뚝 서기까지의 생활을 그린 자서전 ‘극한의 고통이 피워 낸 생명의 꽃’(김유곤 옮김)과 시화집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이윤정 옮김)가 문학사상사에서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20년 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일본에서 각각 140만권과 200만권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만목수참(滿目愁慘).졸지에 장애의 늪에 빠진 그의 눈에잡히는 모든 것은 시름겹고 참혹했다.그러나 부조리해 보이는 세상의 온갖 현상들이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질서지워져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마침내 우주 만물 속에 구현된 신의 섭리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고 장애마저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것이다.그 마음결에 꽃이 어리어 그림이 되고 시가 됐다. 그의 그림과 시는 이제 온갖 삶의 질곡을 털어버리고 바람과 함께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다.“들판을 지나는 바람이뺨을 스치고,내 상념은 언제나 바람이 됩니다.나는 꽃잎을어루만지고 민들레 홀씨와 함께 하늘을 날아올라 옥수수 잎사귀를 사각이다가,나뭇잎을 한 잎 한 잎 뒤적이며 초록빛산을 오릅니다.” 투명한 서정이 감도는 그의 글에는 삶에대한 반듯하고 서늘한 시선이 스며 있다. 그의 시는 시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상의 단상처럼 읽힌다. 어찌 보면 사물에 대한 즉물적 심상을간결한 시형 속에 담아내는 하이쿠(俳句)같기도 하다.하지만 상징시의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담담함 속에서 배어나는 풍성한 속뜻이 구절구절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우리에게 재앙이 도둑처럼 찾아온다면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조그만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비관으로 치닫는 나약한 현대인들에게 그의 글은 조용한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김종면기자
  • [자랑스런 공무원] 성남시 재난관리과 김황준씨

    “표지판 등 교통안전시설물 설계내역서의 기본틀을 만들어 예산절약에 기여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경기도 성남시 재난관리과 김황준씨(36·토목 7급)는 그동안 전문가 부족으로 대충 만들어왔던 교통안전시설물 내역서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정립해 감사원으로부터 모범사례로 뽑혔다.전국 지자체에서는 처음 만든 것이다. “경찰서에서 보낸 교통안전시설물 설계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전문인력의 부족 등으로 시설물 공사에 따른 표준품셈(분야별 단가 등)이 정립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 그는 이 분야 일을 담당한 99년 9월 이후 1년여간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표준설계 내역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교통안전시설물 설계내역서는 98년 이후 대부분 경찰서에서 작성,지자체는 이를 검토한 뒤 공사계약을 하고 있다. 그는 “교통시설물인 신호등 설치공사에 철도시설물 공사를 적용,고임금을 줘야 하는 철도신호공을 투입하는 등 낭비사례가 많았다”며 “이같은 잘못된 사례가 전문가 부족으로일본의 자료를 그대로 원용한 데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알게됐다”고 밝혔다. 곧바로 서류를 검토하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기존에 쓰던일본자료와 비교하면서 현실적으로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부문들을 추려냈다.김씨의 이같은 노력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성남시의 교통시설물 총 발주금액 35억여원의 10여%인 3억8,000여만원의 예산을 절감하게 했다.성과가 알려지면서 행정자치부에서도 시군마다 각기 다른 단가산정을 통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내역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정기홍기자 hong@
  • 운보 김기창화백 타계/ 천주교와의 관계

    운보 김기창화백의 말년은 천주교와의 관계로 특징지어진다.지난 85년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실,이에 앞서 그가 매우 사랑한 막내딸이 수녀가 된 것,김수환추기경과의 인간적인 만남 등 천주교는그의 삶에서 마지막 정착지가 됐다. 개종하기 전 운보는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사찰 법당 건립을 위한 전시회에 작품을 내는 등 특정종교에 얽매이지 않았다.작품세계에 자유분방함이 종교 쪽에서도 다름없은 것이다.개종에 관해 묻자 그는 “신교의 하느님이나 구교의 하느님이나 똑같지 않나.이사 한번 했다고생각하면 되지”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나 57년 수묵화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를 낸 것은 그의 작품경력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당시는 ‘군마도’니 ‘투우’같은기운찬 작품에 전념할 때여서 파격적으로 비쳐진 게 당연했다. 이 그림은 부인 박래현이 막내딸(김영)을 잉태한 뒤 그린 것이다.그 딸이수녀로 입교할 것을 간청했다. 평소 아버지의 장애인 사랑에 감화받은 딸은 “나도 장애인과 어려운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싶다”며 수녀가 되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운보에게 간절히 요청했다고 한다.딸이 입교한 2년 뒤 운보는 마침내 성라자로성당에서 김수환추기경으로부터 직접 세례를 받았다.그는 “오늘의 영광은 모두 천주님의 것“이라며 하느님에게 가장 가까이 가고 싶다는 염원으로 세례명으로 베드로를 원했다. 이후 김추기경과는 신앙적·인간적인 관계가 지속됐고 이는 김추기경이 오는 27일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영결미사를 친히 집전하겠다는 약속으로 남았다. 김성호기자 kimus@
  • 운보 김기창화백 타계/ 운보의 생애·작품세계

    끝없는 실험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예술혼을 불살라온 한국화단의 거목.운보 김기창 화백이 영원히 화필을 놓았다.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세상, 그 침묵의 언어를 화폭에 옮겨온 60여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운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운보의 삶은 한 편의 휴먼 드라마다.1914년(호적상으론 1913년)서울종로구 운니동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운보는 승동보통학교에입학한 7세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후천성 청각장애가 됐다.어린시절 날마다 듣던 돈화문의 보초 교대 나팔소리도, 단성사 날라리 소리도 아득한 침묵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30년 신여성인 어머니 한윤명의 손에 이끌려 이당(以堂)김은호 문하에 들어가면서 그의 운명은 전기를 맞는다.입문 이튿날부터이당에게 수묵 농담법을 배운 운보는 그날 이후 47년동안 매일같이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운보는 입문 이듬해 18세에 ‘판상도무(板上跳舞)’란 널뛰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선전)에 입선, 일찍이 대가로서의 소질을 보였다.37년엔 선전에서 ‘고담(古談)’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아 입지를 확고히 했다. 운보가 진정 거장인 것은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정신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그는 전통주의와 현대적 조형실험을병행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다.그의 예술은 크게 10년을 주기로변모를 거듭했다.첫 시기는 이당 문하에서 전통화법을 공부한 때부터50년대 초반까지.전통 한국화의 평면구성에서 벗어나 입체구성을 시도한 ‘노점’‘복덕방’같은 수묵담채화와 ‘성화’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선보인 시기다.운보가 입체파의 선구적 작가로 나선 것이 바로이 때다. 60년대 들어선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세계를 추구했다.전통 가면극을 작품화한 과감한 동세(動勢)의 ‘탈춤’,흥겨운 악공들의 모습을 힘찬 필치로 그려낸 ‘아악의 리듬’등이 대표작이다.야생마의 움직임을 격정적인 구도로 담아낸 ‘군마도’(69년)는 운보 작품의 스케일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굵고 검은 윤곽선과 대담한 형태의 포착은 그의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백을 보여준다.이 시기는 또한 운보가 추상작품을집중적으로 그린 때이기도 하다.‘태고의 이미지’‘청자의 이미지’등이 그것.운보의 추상세계는 자연에의 통찰과 애정이 낳은 직관의 세계다. 운보 그림은 70년대 ‘청록산수’와 80년대 ‘바보산수’로 이어진다.‘청록산수’가 우리 산하에 깃든 충만한 생명력을 윤기흐르는 초록으로 표현했다면,‘바보산수’는 조선민화의 멋과 해학,여유 등이 녹아 있는 편안한 그림이다.특히 바보산수는 관념산수가 판친 18세기겸재 정선이 만들어낸 진경산수와 견줄만큼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평가된다.운보는 ‘엿장수’‘일장(日長)’‘오수(午睡)’‘비오는 날’‘행려(行旅)’‘호수’‘관폭(觀瀑)’‘십장생’‘장생도’‘바보화조’‘바보수렵’등 80여점의 바보화풍 그림을 불과 두달새에 그려내는 활화산같은 창작열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만년에 개척한 바보산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바보’란 무엇인가.그것은 천진함과 무위에 기초한 원초적인 순수의 세계요 무심의 세계다.바보라기보다는 차라리 현실의 굴레를 벗어난 천재성이 빛나는 세계라할 수 있다.운보는 평소 “바보와 천재는 너무 통하는것이 많아.종이 한장 차이야”라고 말하곤 했다.바보화풍은 운보의부인이자 동지인 우향(雨鄕)박래현(76년 작고)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90년대 들어 운보는 봉걸레를 이용한 ‘걸레그림’을 선보이는 등 또한차례 변신을 시도했다.그는 이 글씨추상을 ‘심상(心象)예술’이라 불렀다. 그러나 작품 경력에서 운보에게는 친일화가란 ‘업’이 따른다.‘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노인’‘총후(銃後)병사’등의 삽화가 친일작품으로 꼽힌다.운보는 이를 솔직히 인정,“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운보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한 것은 박애행(博愛行)이다.농아복지에남달리 관심이 많은 운보는 세계스케치 여행 때면 으레 선진국의 농아복지시설을 둘러봤다.낙후된 국내 농아복지시설을 개선하고자 회장으로 있는 한국농아복지회를 국제농아연맹에 가입시킨 공은 전적으로그의 몫이다. 운보는 80년대 중반 외가가 있던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세웠다.그리고 그옆에나란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운보공방을 조성했다.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한 것이다. 예술과 장애인을 위한 거대한 삶은 그에게 ‘천연기념물’‘바보인간’이라는 호칭을 안겨줬다. 타계하기 전 운보는 다행히 작은 소원을 하나를 풀었다.북한에서 공훈화가로 활동중인 동생 기만(71)씨를 최근 병상에서 만난 것이다.패혈증과 고혈압으로 다리까지 부어오른 운보는 중풍으로 고생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50년전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진 형제의 상봉은 가족사의 차원을 넘어 예술가의 비극을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백의민족의 정신을 들날리기 위해서라며 병상에서도 흰 고무신에 빨간 양말만을 고집한 운보.그는 화선(畵仙)이 되어 하늘로 갔지만 예술은 남아 넓직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수뢰 日 명문가 정치인 자살

    [도쿄 연합] 수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일본의 나카지마 요지로(中島洋次郞·41) 자민당 전 중의원이 6일 도쿄(東京)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경찰은 그가 가족을 걱정하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미뤄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철도상을,아버지는 문부상을 지낸명문가 출신이다.부친의 군마현 지역구를 이어받아 92년 이후 3선에성공했다.방위청 차관 시절인 98년 정당 교부금 유용 혐의로 기소되면서 의원직을 물러났으며 구난(救難)비행정 개발을 둘러싸고 후지중공업으로부터 500만엔을 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2심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1,000만엔의 실형을 선고받아 상고중이었다.
  • [기고] 역사의 허구는 공허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현해탄 너머에 있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시마네대학 국제회의장.지난 3일부터 사흘간에 걸쳐 한·일 양국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가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그러나 둘째날인4일 뜻밖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가미타카모리(上高森)구석기 유적조작사건이 공표되었다. 일본사를 무려 70만년까지 끌어올려 영웅으로 부상한 도후쿠(東北)고고학연구소의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가미타카모리 발굴단장이자신이 1주일 전에 묻어 놓은 석기를 새로 발굴한 것처럼 조작한 자작극이 탄로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은 이미 80여년 전 베이징(北京) 근처의 주구점(周口店)동굴유적에서‘북경원인’이라고 명명된 50만년 이전의 화석 인류를 발견하여 ‘아시아인의 원고향’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이후 남북한이 약속이나 한듯이 커다란 진전을 이루었다.북한은 평양 근처 검은모루 동굴유적이 각광을 받았고,남한은 아프리카·유럽형에 속하는 전기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와 자르개를 전곡리에서 발굴해 세계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의 존재조차 불분명했던 일본은 경제적 번영에 도취한 나머지 상상조차 못할 역사 미화를 서슴지 않았다.일본 학계는1946년 군마(群馬)현에서 발견한 2만5,000년 전의 석기를 보고 흥분하였다.이때 문제의 후지무라가 등장한다.1981년 발굴 조사를 벌인미야기(宮城)현 이와데야마마치 유적이 적어도 5만년 전까지 연대가올라간다고 극적인 발표를 했다.이후 그가 수십개의 구석기 유적 발굴에 손을 댈 때마다 연대가 올라가는 유물이 계속 나왔다. 드디어는 가미타카모리 유적을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리고,중국의 북경원인과 결부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후지무라의 발굴을 통해 일본은 선사문화를 70만년 전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문화로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이집트문명과 맞먹는 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내용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일본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라고까지 허구에 찬 주장에 맞장구를 친 일본 국민의 한결 같은 성원도 가세되었다.나아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석기시대 조작사건을 오랫동안 묵인한 일본 학계의 학문적 양심도 오늘과 같은 사건을 일어나게 한 요인으로 지적할수 있다. 일본 고고학자들은 우리를 가미타카모리 유적지로 초청하는 계획을세워놓았다고 한다.일본 역사의 서장을 알리는 유적을 방문하지 않고서는 좀더 진전된 한·일 고고학 교류가 불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런데 이 유적 조작사건이 공표되자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냐는식으로 조용하기만 하였다. 심포지엄이 끝난 5일 일본은 문제의 조작사건을 시인하면서 이를 속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일본 교육부도 조작되고 왜곡된 교과서를고쳐 나가겠다는 재빠른 조처로 뒤따랐다. 일련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머리 속에는 우리의 옛날 모습이 스쳐갔다.1981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구석기 학자 클라크(D.Clark)박사가 충남 공주 석장리,충북 점말 구석기유적을 실사한 뒤 연대 문제와 문화유적의 진위에 의문점을 제기한 일이 있다. 그후 20년 동안 우리 학계는 구석기 연구에서 과학에 바탕을 두지않고 무작정 연대를올리는 등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유적의 진위 문제,깨진 돌 조각을 석기로 간주하여 성과를 과대 발표하는 문제,저절로 깨진 뼈 조각 따위를 인공 예술품으로 해석하는 문제 등 숙고해야 할 일은 한둘이 아니다. 가미타카모리 유적의 유물 조작사건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나아가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진 일본의 고고학적발굴 결과나 역사 교과서의 왜곡 기술, 그리고 일그러진 한·일관계사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역사의 허구(虛構)는 결국 공허할 뿐이다. 임효재 서울대 교수·선사고고학회장
  • 경북 보건소 독감백신 접종비 제각각

    최근 일선 자치단체 보건소에 독감백신(인플루엔자)을 맞으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리고 있으나 시·군마다 접종비용이 제각각이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10일 경북도내 자치단체들에 따르면 일선 시·군들은 자체 공개입찰을 통해 독감 백신을 구입,이달부터 ▲65세 이상 노인 ▲생후 3세 이상부터 10세 미만 어린이 ▲당뇨 등 만성 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독감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그러나 시·군마다 접종비 부담액이 1인당 1,850원에서 2,350원까지 차이가 나 주민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칠곡군의 경우 1인당 접종비(주사기 포함)가 2,150원인 반면 영천·경산시는 4,000원,경주시는 4,500원으로 시·군간 최고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처럼 접종비가 다른 이유는 시·군마다 독자적으로 입찰을 실시해제약회사가 아닌 의약품 도매상들과 각각 다른 가격으로 독감백신 납품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정부 또는 광역 자치단체가 백신제조회사 등과 일괄적으로 구매계약을 체결,전체적인 소요 물량을 확보한 뒤 일선 보건소에공급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주장하고 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 한국경제연구원‘21세기 한반도‘주제 세미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이 국제금융 체제에 참여할 때까지 다국적 컨소시엄 형태의 북한지원그룹을 창설해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내년에 출범할 차기 미 행정부는 어떤 정당이집권하든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이같은 지적은 워싱턴에 위치한 한국경제연구원(KEI)이 19일 존스홉킨스대 강당에서 행한 ‘21세기 한반도:안정과 협력의 전망’이란 주제의 세미나에서 제의됐다. ◆채수찬 교수(텍사스주 라이스대)=‘북한개발에 대한 협력’을 주제로 발표한 채 교수는 “당장 국제금융체제에 편입할 수 없는 북한이실질적인 국제지원을 효과적으로 받기 위해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같은 다국적 컨소시엄 형태의 한시적 지원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돼 정식 국제금융기구 일원이 되기 전까지 국제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가칭 북한개발지원그룹(INKDAG)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채 교수는 INKDAG을 설치하면북한과의 외교적 경험이 없는 미수교국을 포함한 각국들의 중복지원은 물론,정치적 고려에 따른 지원 지연 등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북한에 실질적·안정적 지원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대사=레이니 전 대사는 “차기 미 행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하든가 혹은 북한을 다시고립시키는 것을 포함한 강경책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한국의 대북정책을 명확하게 지지하는 입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이니 전 대사는 “냉전 이후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억제에 초점을 둔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안보를 기치로 주둔한 미군마저 재론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면서 “한국정부와의 상대에서 조바심이나 주저함을 보일 경우 미국이 원하는 안보상황마저 해롭게 한다”며 확고한 공조를 강조했다. 레이니 전 대사는 “김대중 대통령도 핵과 미사일 제거의 중요성을인식하고 있지만 한반도 문제의 초점은 이슈가 아니다”면서 “미국이원하는 북한 억제력 측면에서라도 미 정부는 남북대화를 적극 지지해야 하고,만일 한국을 도외시한 채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을 꾀할경우 안보상황은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hay@
  • 운보 김기창 화백 米壽전

    운보 김기창 화백(88)이 은거 4년만에 작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갤러리 현대는 ‘바보예술 88년-운보 김기창 미수기념 특별전’을 7월 5일부터 8월 15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분산 개최한다.한국현대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운보의 극적인 삶과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를 총정리하는 자리다.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는 1920년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었고 1976년에는 아내인 우향 박래현과 사별했다.그러나 운보는 그런 절망을 오히려 희망의 언덕으로 삼으며 빛나는 작품을 토해냈다.그러나 이제 그림을 그릴 수 없다.96년 스승인 이당 김은호 화백의 후학모임인 후소회 창립 60주년기념전에 참석했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그는 현재 충북 청원 ‘운보의 집’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100㎏이 넘던 당당하던 체구가 60㎏대로 줄었다.생사의 고비를 수차례 넘긴 그는 요즘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그중하나가 월북한 막내동생 기만과 여동생 기옥을 생전에 과연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기만은현재 공훈화가로 활동중이며,기옥은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운보.그가 남긴 작품은 1만점이 훨씬 넘는다. 표현의 진폭 또한 어느 작가도 따를 수 없다.인물과 화조에 대한 사실적인묘사에서부터 조선시대 민화의 정취와 익살을 대담하고 해학적으로 표현한‘바보산수’,한국 산하의 정기를 수묵의 농담과 단순한 색상으로 힘차게 그려낸 ‘청록산수’,그리고 인생의 비의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추상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대무변하다. 이번 미수전은 운보 생전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뜻깊은 전시다.그런 만큼 작품 선정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운보 전작도록에 실린 4,000여점의작품중 초기에서 현대까지 장르별로 88점을 가려 뽑았다.특히 일본에 있는제13회 선전 입선작 ‘정청(靜聽)’(1934년)과 개인소장의 ‘군마도’(1969년,1986년)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한편 이번 전시엔 가로 1m,세로 75㎝ 크기로 확대된 1만원권 한화 지폐 한 장이 작품으로 내걸린다.그 이유는 뭘까.1만원권 지폐에등장하는 세종대왕을 그린 영정작가가 바로 운보란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다.운보는 세종대왕 외에 을지문덕·김정호·무열왕 등의 표준영정을 남겼다. 운보의 개인전이 열리는 것은 8년만이다.지난 93년 1,200여 작품이 선보인예술의전당 ‘팔순기념 대회고전’이 양적으로 압도한 전시였다면,이번 미수전은 운보의 걸작만을 엄선한 알짜배기전시란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하다.입장료는 일반 5,000원,초·중·고생 3,000원,학생단체할인 2,000원.(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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