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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4

    ◎유태인 귀향 러시… 정착대책에 고심/나치 박해 피해 탈출 50년 만에 “귀국”/수용시설·일자리 부족,안식처 못돼/따가운 눈총에 미·이스라엘로 다시 떠나기도 독일 통일 후 동구권 망명자들이 독일로 떼지어 몰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도시의 외국인관리청 앞엔 체류허가를 받으려는 인파가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특히 소련 거주 외국인들이 대거 베를린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히틀러시대에 「유태인 사냥」을 피해 소련으로 탈출했다가 소련의 정치·경제적 위기가 고조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반세기 만에 생활의 안정을 찾아 고국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통일 이후 소련 탈출 유태인들이 서방세계에서의 새로운 삶을 찾는 첫 기착지가 되고 있는 베를린시에 요즘 대략 하루에 1백여 명쯤의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임시수용소는 연일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숙박업소들도 장기투숙 유태인들로 북적대고 있다. 또 동베를린지역의 유태인 상담소에도 유태인들이 임시거처와 체재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통일 후 베를린시에는 외국인들이 크게 몰려 3백20여 만 명의 전체시민 가운데 외국인이 14%를 차지,전국비율 8%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 4월1일부터 새로운 긴급피난법이 시행되면서 베를린시 당국은 소련 유태인들을 정치적 망령자로 분류,1년 체류를 허가해주고 있는데 일단 체류허가를 받으면 계속 연기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출국에 앞서 모스크바 주재 독일대사관에 필요한 증빙자료를 제출한 뒤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번거러움을 피해 방문비자로 입국,불법체류하는 경우가 많아 베를린시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부베를린의 빅토리아 루이제광장에서 만난 오이겐이라는 67세의 유태인은 히틀러시대에 소련으로 탈출했다 55년 만에 베를린으로 돌아온 사람으로 최근 독일로 돌아오는 많은 유태인들과 사정이 비슷했다. 돋보기 안경에 허리가 구부정한 그는 20대 성장기를 보낸 「제2의 고향」 땅을 다시 밟게 된 사실에 감회가 깊은 듯 눈언저리가 젖어 있었다. 12살 때 베를린을 등져야만 했던 그는 러시아에서 형무소 생활을 했고 그 뒤 발트해연안 라트비아공화국에서 이방인 생활을 해야 했다며 『이제 부모와 함께 살던 옛집을 다시 보았으니 죽어도 소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시절 베를린에서 호헨 촐렌 중학교를 다니다가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학교에서 쫓겨났으며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형제들과 함께 1936년 독일을 떠나 라트비아공화국 수도인 리가시로 이주해야 했다. 그러나 41년 히틀러의 군대가 리가시 근교까지 침공해오자 그의 가족들은 또다시 러시아공화국의 로스토프시(Rostow)로 서둘러 대피했다. 그는 41년 10월 소련의 붉은 군대에 자원입대했으나 국적이 「독일」이란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다. 소련당국은 당시 17세인 그를 「독일을 위한 간첩행위」와 「반혁명혐의」로 6년형을 선고한 뒤 시베리아 집단수용소로 보냈다. 그는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형기가 연장돼 14년이란 젊은시절을 수용소에서 보낸 뒤 55년에야 비로소 석방됐다고 한다. 그는 억울한 전과로 말미암아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했다. 건축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요행히 한 어업회사의 기술자로 취직돼 22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 동안 소련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소련을 떠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지난해에야 겨우 사면을 받아 독일 통일과 더불어 국외여행을 할 수 있는 여권을 손에 넣어 베를린으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오이겐씨는 지난 1월 부인과 함께 반세기 만에 베를린 땅을 다시 밟았다. 그러나 그의 새로운 출발 앞에도 난관은 중첩돼 있었다. 그의 아들은 지난해 가을 소련을 먼저 떠나 독일로 왔으나 지금까지 베를린 근교 아렌스펠드에 있는 임시수용소에 기거하고 있어 앞으로의 생활에 큰 불안을 느끼고 있다. 오이겐씨가 한평생 유랑생활 끝에 찾아온 베를린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는지는 최근 베를린으로 몰려오는 그와 운명이 비슷한 많은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미지수이다. 더욱이 통일 이후 크게 늘어난 실업문제와 겹쳐 독일인들이 외국인들을 보는 눈길이 그리 곱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일자리를구해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련을 버리고 독일에서 정착하려던 유태인들 중 상당수가 또다시 짐을 챙겨 미국이나 이스라엘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 일 육상자위대원/한국에 처음 유학

    【도쿄 연합】 일본 육상자위대는 16일 한국과의 군사요원 교류계획에 따라 육상 막료감부 조사부 소속 도모베 가오루(우부훈·34) 삼좌를 오는 6월 상순 한국에 파견키로 했다. 도모베 삼좌는 내년 6월까지 약 1년간 진해의 육군대학에서 지휘참모 과정을 연수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작년 8월 채연석 육군 소령(32)이 2년 예정으로 육상자위대 간부학교에 와 있다.
  • “소,한반도 통일여건조성에 노력/야나예프 소부통령 본지 단독인터뷰

    ◎“고르비,제주정상회담 성과에 큰 만족/한국기업등 투자 「보호법」 곧 마무리”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한­소간에 선린우호 협력조약의 체결을 통해 두 나라 사이의 장기적 관계전망과 신사고에 따라 형성되는 양국간 관계의 성격이 표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겐나디 야나예프 소련 부통령이 밝혔다. 야나예프 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4월의 한­소 정상회담과 방한결과에 대단히 만족해하고 있으며 특히 제주도민들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서울신문을 통해 한국국민과 정부에 대한 감사 및 안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야나예프 부통령은 15일 하오(현지시간) 크렘린궁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 김영일 모스크바특파원과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소련은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한간의 대화를 심화,화해를 이룩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련의 권력서열 제2인자가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특히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직접 한국 국민과 정부에 감사를 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과 제주도에서 있었던 한·소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소련정부의 평가를 말씀해주십시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방한성과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제주도민들의 따뜻한 환대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오늘 서울신문과의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내게 서울신문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에 자신의 감사와 안부를 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십니까. 『양국관계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역동성과 다양성을 심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첫째 성과는 양국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관계확대심화에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발전이 한반도의 안정과 안전에 기여한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이 지역의 일부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에 대한 입장이 비슷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대한민국 지도부는 소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전통적인 친선관계를 유지,공고히 하려는 입장을 이해했습니다. 또한 소련은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한간의 대화를 심화,화해를 이룩하고 신뢰회복을 하려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소련간의 경협확대에 대한 소련정부의 희망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들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십시오. 『현재 양국의 경제는 서로 다른 수준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고 주·객관적 다양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대규모적인 경협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특히 우리는 소련의 기초과학기술과 한국기업들의 상업적 능력을 합한다면 훌륭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자본과 경영능력,인재양성에 대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95년까지 무역규모를 1백억달러로 높이기로 했습니다만 이것이 최종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많은 기업 자본들이 합작투자 등의 형태로 소련에 진출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호하기 위한 외국투자보호법이 곧 연방최고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으로 있기 때문에 투자여건은 좋아질 것으로 봅니다』 ­합작가능사업의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사할린 남쪽의 천연가스 매장지를 공동개발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재·구리 등 주요자원에 대한 합작개발들이 거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한국기업들이 소련에 대한 투자를 조심스러워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보다 유리한 조건들이 계속해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이 기회에 적극적인 한국기업의 투자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한국기업들이 계속해 조심스러워하기만 한다면 서유럽 쪽의 기업들에 선수를 빼앗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소련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한반도 통일은 민족의 내부문제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고 봅니다. 소련의 기본입장은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 갈등과 이견을 축소해 나감으로써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남북한의 총리회담이 보다 빨리 재개돼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북한 문제는 정치적 대화와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외의 다른 방안은 없다고 봅니다. 한반도는 우리의 인접지역이면서 핵문제를 포함한 수많은 무기가 배치된 곳입니다. 3개국의 군대가 배치된 이 지역에 소련은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소련과 미국 등 주변국들이 여러가지 노력을 통해 남북의 내부조건이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해가도록 외부조건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독일 통일이 보여주듯이 양측이 성의를 기울이고 대외적 조건이 유리하게 조성된다면 통일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독일통일에서 적용됐던 4+2회담을 한반도에서도 적용하는 것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한국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예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정치는 움직이는 것이고 어떤 틀에 박아놓을 수는 없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 하겠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지난번 제주도방문에서 남북한을 동시방문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십니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남북한 동시방문 가능성은 여러조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합니다. 우선은 남북한간의 대화가 어떻게 발전할 것이냐가 중요하며 남북한이 양측 입장을 일치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두 번째는 한반도의 주변정세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한국과도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했으며 또한 두 나라 관계발전이 제3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국기업의 투자확대는 결국 소련 경제개혁의 불확실한 미래와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소련 경제개혁의 미래를 전망해 주십시오. 『오늘날 소련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데필요한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통제경제체제에 대한 낡은 기구들은 사라졌는데 시장경제기구,수단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시장경제로 가는 과정이 몇 년 걸려야 합니다만 제일 중요한 시장경제기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최소한 올해와 내년 1·4분기까지는 위기수습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내년 2·4분기부터는 본격적인 시장경제메커니즘 도입을 위한 대대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것입니다. ­위기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어떤 것을 들 수 있습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자본이나 지원이 소련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물론 외국의 지원이 우리의 과업수행을 보다 용이하게는 할 것입니다만 주요한 것은 자력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자기자원,자기자본,자기힘으로 시장경제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대단한 자연과학과 기술잠재력이 있습니다. 근면하고 능력있는 인민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위기극복의 그 자체입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 「한국병」 치유의 길/김용운 한양대교수(서울시론)

    ◎효율 제1주의 탈피,인간성 중시를 70년대 중엽 어느 국립대학 교수가 한국 해안의 오염 실상을 조사하여 발표했다가 직장을 잃었다. 국립대학 교수는 공무원이다. 그 연구결과는 공무집행상의 일이며 그것을 상관의 허가도 없이 발표하는 것은 공무원으로서의 실천강령을 무시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러나 실상은 한 고관이 아예 「공해를 말하는 자는 공산당」이라고 알기쉽게 잘라 말한 것에서 나타났다. 또 인권은 밥을 먹을 수 있을 때의 얘기이고,배고픈 처지에 무슨 인권이냐고 하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 시작된 한국의 경제성장은 인권과 공해를 무시하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경제성장이 되고 모두가 배불리 먹을 정도가 되면 공해문제를 생각하자는 유보조건은 무의식적으로나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노선이 정해진 레일 위를 기관차가 달리면 가속도가 붙어 달리기만 하지 기관차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풍요로운 시기가 되면 인권도 중시하고 공해문제도 해결한다는 무의식적인 공감대는 쉽게 잊혀지고 만다 민주화가되었다 하더라도 인신매매,성폭행,살인의 건수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인권은 경제성장이나 정치제도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사고에 의해 유린되는 것이다. ○「철학의 빈곤」서 출발 철학은 직접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철학의 열매는 공해업체의 살인적인 노동조건,한반도 전 국토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뒤돌아 보지 않은 「잘 살아보세」의 지휘자는 황음의 광연에서 살해되었고 그의 아들이 마약에 시달리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조국의 근대화는 메마른 유물주의 기반에서 출발하였고 그 노선은 필연적인 결과를 낳았다. 경제성장 만이 국민의 살 길이라는 묵시적인 정책은 부의 축적이 곧 윤리와 인간의 존엄까지도 모두 해결해 준다는 안일한 사고이다. 다소의 공해쯤이야 장독속의 구더기쯤으로 생각한 것이다. 공해가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풍조에 인권이 소외되면서 추진된 경제성장은 마침내 그 본색을 나타낸다. 자연적인 변화는 스스로 이 체계에 흡수하며 자율적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공적인 물질을 생산해 냈다. 그 가장 좋은 보기가 플라스틱이다. 장독속의 구더기는 자연적인 존재이기에 다소의 불편이 있다해도 거대한 자연의 생태계 속에 흡수되어 가지만 플라스틱은 인공적인 화합물이기에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자연은 마치 현대적 무기를 갖춘 군대 앞의 원시인처럼 인공의 화합물에 대해서 완전히 무방비이다. 오늘의 부의 축적은 과학적인 지식이 추진력이 되면서 동시에 비자연적인 인공적인 화합물의 공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자연과 조화”가 기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는 한결같이 산업사회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의 사회이다. 불과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맡겨온 한국인은 이들 두 인공의 사회제도 속에서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우리에게 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각된 윤리운동인 것이다. 잘 산다고 해서 윤리성이 회복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미 기관차는 비인간적인 레일 위를 달렸던 것이다. 부의 축적이 행복이라는 믿음은 개발이 곧 발전이고 발전은 곧 행복이라는 도착의 논리를 낳은 것이다. 우리 경제성장의 기반이 자연파괴와 인간성 무시였기에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한낱 정책이나 행정적인 땜질이 아니다. 물질숭상의 레일위를 달리는 기관차의 방향을 바꾸고 새로운 사고의 기반을 마련해야만 하는 것이다. ○윤리의식 회복 급선무 현대과학은 유태교·기독교적 사상의 기반에서 구축되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지배하여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동산에서 따먹은 지혜의 열매는 결국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형성했다. 그러기에 오히려 서양에는 실락원의 이야기에 상징되어 있는 지혜의 발동을 두려워 한다. 그들은 새로운 과학지식이 나올때마다 그것이 낳게 될 해독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에 조심스럽다. 한편 동양,특히 한국의 기본정신은 자연의 지배가 아닌 자연과의 어울림이 있다. 신라의 최치원은 그런 정신을 풍류라고 표현하고 있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낭만의 세계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고 자연에 몸을 맡기기에,우리는 근대화를 도모하면서 사상적 공백을 무시했었다. 한국적인 정신풍토에 유태인적인 세계관이 부딪칠 때의 갈등을 미리 생각했어야 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의 병,인권무시,공해의 만연은 결코 어느 일부 계층만의 진단과 치료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 그 병의 실상을 알고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자연의 자생력이 인공적인 화합물질을 자연의 리듬으로 소화시킬 수는 없으며,자연부락의 윤리는 인공적인 대도시의 질서를 정해주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목가적인 세계를 떠났다. 그곳은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세계이며 우리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자식은 누구에게나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저마다 국민은 진정한 행복의 뜻을 새기고 후손들에게 돈이나 물질보다도 진정 넘겨주어야 할 정신적 유산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적 차원의 새로운 철학이 요청되는 것이다. 「우리가살 길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다」는 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 세대의 물질적 풍요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미신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과학·기술의 발전은 경제성장과 직결되어 있다.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인간성 무시는 예기치 않은 불행을 초래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의 효율에 앞서 인간성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원진레이온의 비극,오염된 자연,거친 시민생활,전경과 학생간의 심각한 대립,이들은 애당초 잘못 부설된 근대화의 레일에 숨어있었던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이 급격히 이루어졌음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속도와 비례해서 인간소외와 공해가 만연함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정신적 자각이 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위험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성장·민주화·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모두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진정한 열매는 오직 투철한 지성과 강한 윤리의식의 토양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 크로아티아공,독립 찬반투표/유고 인종분규 또 악화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특약】 민족간 인종분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유고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서 12일 세르비아인들이 분리독립에 관한 찬반투표를 실시함에 따라 유고가 새로운 긴장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크로아티아공화국내에 거주하는 약 60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은 이날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크라지나지역 등에서 분리독립에 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이들의 주 거주지인 크라지나지역 등을 이웃 세르비아공화국에 합병할지 여부를 물었다.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공화국 정부는 아직까지는 『이 같은 투표는 불법』이라고만 선언하고 이를 저지하지 않고 있으나 조만간 모종의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마카르스카(유고슬라비아) AP 연합】 안테 마르코비치 유고슬라비아 총리는 11일 내전 직전까지 분쟁이 악화되고 있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공화국에 대해 무기를 버리지 않을 경우 군대가 무력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군은 「단호하게」 결정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자기실현이 요즘 학생의 첫째 욕구”

    ◎“교수직 50년” 연대 원일한 박사/“40년대엔 사회적 책임의식 강했죠”/설립자의 손자… 개교 1백6돌 감회 깊어 지난 11일 창립 1백6주년을 맞은 사학의 명문 연세대의 학교법인 이사인 원일한 박사(74)에게는 올해가 참으로 뜻깊은 해이다.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원 박사는 1885년 4월5일 미 북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 연희전문을 설립한 언더우드(원두우) 박사의 손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이 학교에 봉직하고 있으며 맏아들 한광씨(48)도 영문과 교수로 있다. 따라서 원 박사 집안 4대의 역사는 연세대학교의 작은 역사이기도 하다. 원 박사의 할아버지 언더우드 박사는 1915년 4월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창천리이던 현재의 학교부지 일대의 땅 19만 평을 사들여 연희전문학교를 설립,초대 교장으로 학교의 터전을 닦았다. 그는 언더우드의 발음을 따 원두우라는 우리 이름을 썼다. 연세대 본관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따 「언더우드관」으로 불린다. 원 박사의 아버지 원한경 박사도 이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34년 9월부터 41년까지는 제3대 교장으로 일했다. 원일한 박사는 1917년 10월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외국인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해밀턴대학에서 교육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원 박사는 40년 서울로 돌아와 연희전문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의 학생들은 고등교육을 받는 자부심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강했으나 요즘 학생들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가장 큰 것 같다』는 것이 원 박사의 평이다. 그는 42년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으로 돌아가 해군대위로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45년 전쟁의 승리는 제2의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또 하나의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해방후 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기간이 이 학교에 머물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때 대학생들은 해방의 흥분과 조국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꼈으며가르치는 교수들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원 박사는 41년 결혼,아들 셋을 두었다. 43년 맏아들이 태어나자 당시 연희전문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한국의 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의미로 한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으며 뒤에 아버지의 「한」자를 물려받기 위해 한광으로 고쳤다. 그는 한자도 한국의 상징인 한강과 통하기 때문에 한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이름이라고 했다. 원한광 교수는 영문과에서 영미소설을 강의하고 있다. 둘째 윌리엄과 셋째 피터의 한국이름은 이 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용제 백낙준 박사가 영어이름의 원뜻을 살려 한웅과 한석으로 지었다. 흥분의 시대가 지나고 50년 6·25사변이 일어나자 원 박사는 다시 해군으로 복귀,현역장교로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53년 휴전회담이 이루어지자 원 박사는 유엔군측 수석대표 통역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연희전문학교는 연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꿔 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연세대학교로 발전했다. 원 박사는 이때부터 83년까지 전공인 교육학을강의했다. 75년 부인과 사별한 원 박사는 호주 출신의 선교사로 한국에 온 이화여대 종교음악과 원성희 교수(58)와 77년 재혼했다. 파란눈에 다부진 몸집을 가진 원 박사에게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느냐 』고 묻자 『책상 위에 주전자로 물을 부으면 물방울이 「또르륵」 굴러 간다』고 말하며 웃었다.
  • 고르비­옐친 전격회동/신연방조약 가입 확대 논의

    ◎러시아공 16개 자치구 지도자도 참석 【모스크바 UPI 연합】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신연방조약의 조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2일 오전 크렘린궁에서 연방 산하 15개 공화국 가운데 가장 큰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 최고회의 의장과 다시 대좌했다. 러시아 통신은 고르바초프,옐친 두 사람이 이날 오전 11시부터 회담에 들어갔으며 이 자리에는 러시아 공화국내의 16개 자치구 지도차들도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은 옐친 의장이 3주 전 일부 공화국의 최고지도자들과 함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공동합의문서에 서명한 지 3주 만에,그리고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불화를 청산하겠다고 발언한 직후에 이뤄진 것이다. 이 회담에서 논의될 문제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 공화국내의 자치구들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신연방조약에 조인하는 데 동참토록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앞서 인테르팍스통신이 11일 보도한 바에 의하면 옐친 의장은 구국을 위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불화를 청산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하고 지난 4월23일의 합의에 근거에 민주적인 소련을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옐친 의장이 지난 9일 소련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인적인 관계는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러시아공화국과 소련이라는 두 국가의 지도자이기도 하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이는 우리가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연방이 붕괴할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했던 옐친은 이어 고르바초프가 국가보안위원회(KGB) 소속 병력들이나 군대와 같은 보수세력에 철저히 의존하는 데에서 탈피했기 때문에 그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고르바초프는 개혁의 지속이라는 점에 있어 확고한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매우 심각하고도 중대한 현 시점에서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옐친은 지난달 23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자신을 비롯한 9개 공화국 지도자들이 서명했던 공동선언을 토대로 고르바초프와 협력할 준비가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고르비­옐친은 천적 아닌 공생관계”/소 언론인,NYT지에 기고

    ◎고르비,“옐친 실각 땐 정치생명 위협” 판단/보·혁 세력균형 이용하려 교묘한 줄타기 소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지의 멜로르스투루아 논설위원은 최근 뉴욕타임스지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권력게임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기고했다. 필자는 「고마운 적」이라는 제목의 이 글을 통해 옐친은 사실상 고르바초프의 동지이며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보수·개혁파 사이에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고르바초프의 최대 정적」 「천적」.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보리스 옐친을 일컬을 때 자연스레 등장하는 수사들이다. 옐친은 과연 고르바초프의 적인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복잡한 데 그 핵심을 파고들어가 보면 옐친이 고르비의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비밀병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옐친이 없으면 고르비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만약 강경파들이 옐친을 제거하는데 성공하게 되면 그 다음 목표는 고르비이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옐친에 대해 고르비가 「전면전」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번 당중앙위는 두 사람의 이런 미묘한 관계를 잘 보여주었다. 보수파들이 자신의 등을 노린다는 것을 눈치 챈 고르비는 비장의 이 「옐친카드」를 내밀었던 것이다. 옐친을 비롯한 9개 공화국지도자들과 맺은 비밀협정이 바로 그것이다. 고르비는 이 협정에서 분리주의자들과 급진개혁파들에게 큰 양보를 했다. 뒤이어 러시아공화국에 탄광관할권까지 넘겨주었다. 당중앙위에서 얼굴을 불그락 푸르락 하면서 서기장직을 내놓겠다고 전격 제안했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쇼에 불과했다. 물론 사퇴제의는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보수·급진 두 세력 모두에게 그는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 세력 모두 아직은 세가 약해 급진파들은 그의 도움없인 권력을 잡기 어렵고 보수파는 그의 도움없인 권력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고르비는 이 양자 사이의 빈 공간을 용케 비비고 들어가 시계추같이 양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한편에선 러시아공화국내 탄광들을 옐친정부에 넘겨주면서 한편에선 아르메니아공화국에 군대를 보내 수십명의 사망자를 내게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다리 걸치기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양세력간의 균형상태가 조금이라고 깨지만 그 순간 그의 존재가치는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 번 최고회의에서 파블로프 총리가 강경한 경제조치를 제안했을 때 고르비는 대의원들을 향해 『이제 우리는 제자리를 잡았다. 사회·정부 모두 「오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당시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교활하게 줄타기를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로 얼마 뒤 그는 옐친을 만나 파블로프 총리가 내놓은 강경경제정책을 일부 비난했다. 경제개혁안에 있어서도 그는 당초 옐친과 연합해 5백일 계획을 지지하는 척하며 보수파들을 자기 수중으로 끌어들였다. 얼마 뒤 그는 5백일 계획을 버리고 정책기조를 강경 쪽으로 급선회해 버렸다. 그 뒤 보수파들의 기세가 너무 세지는 듯하자 이번에 옐친과의 연합이라는 쇼크요법을 또다시 쓴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르비가 이렇게 양다리를 걸치고 시계추같이 왔다갔다 하는 한 소련의 사회·경제 난국은 타결될 길이 없다는 것이다.
  • 사우디,외국군 철수 촉구/미군 장비 배치요청도 반응 유보

    ◎정책 돌연 변경… 안보구상에 차질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AP 연합】 걸프전 이래 외국군의 자국내 주둔을 허용해온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까지의 정책을 돌변,심지어 아랍권 군대의 주둔도 원치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미국의 군장비 사전배치 요청에 공개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의 이같은 움직임은 이집트가 지난주 사우디와 쿠웨이트 양국에 주둔시킨 3만6천명의 자국군 병력을 철수키로 결정한 사실과 함께 걸프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 새로 구축된 안보체제에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사우디는 또 미군의 걸프지역 주둔을 원하고 있는 쿠웨이트와 미군의 규모와 주둔형태를 둘러싸고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진전은 전후 새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아랍권 결속의 취약성을 또다시 드러낸 것이다.
  • 이라크,유엔군 주둔 거부/“북부지역서 다국군대체 반대”

    【워싱턴 로이터 연합 특약】 이라크는 유엔 경찰군이 이라크북부지대에 배치된 다국적군 연합군을 대체하는 안을 거부했다고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이 9일 밝혔다. 케야르 총장은 이날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에 앞서 『오늘 나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매우 명백한 거절을 받았다. 이라크는 유엔 경찰군의 주둔을 거부했다』고 말하고 케야르 총장은 그러나 『이라크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미·영·불군이 이라크 북부에서 철수한 뒤 유엔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미국은 이라크북부의 쿠르드난민 보호를 위해 현재 이라크 북부에 배치된 미군이 장기주둔이란 수렁에 빠져 들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 “북한 자유화”… 김일성에 세계적 압력 넣자

    ◎평양서 돌아온 서방 의원들 주장/“북한에 스탈린식 독재”… 끔찍한 경험/김 주석 사진 태웠다 「불경죄」 곤욕도 ○…평양에서 열린 국제의회연맹(IPU)회의에 참석하고 귀로에 북경에 들른 독일 의원들은 4일 북한의 김일성을 현대판 히틀러나 스탈린이라고 비난하면서 김의 「피로 얼룩진 독재체제」로부터의 자유화를 요구하기 위해 세계적인 압력을 가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6명의 대표들은 기자들에게 김일성과 2천3백만명의 북한인에 대한 그의 엄격한 통제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조소를 표시했다. 자민당의 율리히 이르머 의원은 『지금까지 피로 얼룩진 많은 독재체제를 보아왔지만 이와 같은 독재는 보지 못했다』면서 『그들(북한)은 국민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이들을 조직화해 생활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 의원들은 IPU회의와 관련,참가 80여 개 국 대표들이 거의 북한 체제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가하지 않음으로써 김의 IPU회의 평양 개최는 선전적 효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이르머 의원은 『우리는 단 하나의 목적 즉 김의 체제가 국제적 인정을 받는 데 이용되기 위해 초청된 것』이라고 말하고 『대부분의 대표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민당의 우웨 홀츠 의원은 북한에서의 1주일간 체류가 『끔찍한 경험』이었다면서 국제적인 압력만이 북한을 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홀츠 의원은 또 김의 일상 호칭인 「위대한 수령」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을 연상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공론화함으로써 외부 세계가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김이 느끼도록 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고 말했다. 또 구동독지역 기민당의 우도 하쉬케 의원은 북한에서의 1주일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평양과 우호적 유대관계였던 공산 동독하의 악몽 같은 생활을 상기시켰다면서 특히 「어린 학생들이 등교와 귀가시 군대식 직각 보행을 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서도 지난 89년 동독을 휩쓴 해방이 찾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그러나 정보가 엄격히 통제되고 있는 한 그같은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우려했다. ○…국제의회연맹(IPU) 평양총회에 참석중이던 한 노르웨이 대표가 숙소에서 북한 주석 김일성의 신문 사진을 불태우는 등 불경스런 행동 끝에 북한측과 심한 마찰을 빚은 것으로 노르웨이 신문들이 보도했다. 4일 입수된 노르웨이 최대일간지 아프텐 포스트지에 따르면 IPU총회에 참석중인 진보당 소속 테르제 니베르제트 의원은 호텔방에서 「평양타임스」 1면에 게재된 김일성의 사진을 불태우고 김일성의 연설문 가장자리에 부정적 반응을 낙서하는 등 불경스런 행동으로 북한측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는 것. 이 사건과 관련,니베르제트 의원은 IPU 회의장에서 북한측 관계자 3명으로부터 동행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으며 대신 2일 밤 이들 관계자들이 니베르제트 의원의 숙소를 방문한 것으로 이 신문은 전했다. 북한 관계자들은 니베르제트 의원 숙소에서 증거를 발견하고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으며 이에 대해 지그루드 베르달 노르웨이 대표단장이 물의를 일으킨 데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사태를 진정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인 니베르제트 의원은 자신의 행위가 고의로 누구를 자극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아프텐 포스트지는 전했다.
  • 중·소,30년 만에 국방장관회담/국경군 철수·SU기 구입 논의

    ◎한반도등 아주안보 거론할듯 【북경 AP AFP 연합】 중국을 방문한 드미트리 야조프 소련 국방장관과 진기위 중국 국방부장은 3일 30년 만에 처음으로 중·소 국방장관회담을 가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두 나라 국방장관이 『양국간 우호관계의 증진과 기타 공동관심사들에 대한 의견교환을 위해』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으나 더 이상 자세한 회담내용은 전하지 않았다. 야조프 장관은 5일간 예정의 이번 중국방문 기간중 또 유화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과 양백빙 인민해방군 정치부 주임 등 중국군 관계자들을 비롯,중국 공산당 및 정부 관리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현재 중국과 소련 양측이 모두 이같은 회담들의 주제에 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외교 소식통들은 중국이 장거리 SU­27기를 비롯한 소련제 전투기 수십 대를 구입하는 문제가 이들 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1주일 전 체결된 중·소국경조약에 따라 양국 국경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는 문제도 아울러 논의될 전망이다. 3일 아침 북경에 도착한 야조프 장군은중·소 양국이 지난 60년 이데올로기 논쟁 끝에 사이가 멀어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소련 국방장관이다.
  • 외언내언

    일본은 자국군을 일본군이라 부르지 않고 자위대라고 부른다. 제국 일본시절엔 대일본 제국군이라고도 불렀고 황군이라고도 불렀다. 이 제국군,황군이 아시아 각국에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스스로도 일본군이란 명칭을 못쓰고 경비대 방위대 같은 느낌의 자위대란 이름을 붙였겠는가. ◆잔악하고 포악했던 일본군의 역사를 반성하고 자숙한다는 뜻도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턴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오직 자위만 할 것이란 대외선언이기도 했던 것. 해서 주변국들도 얼마간 안심을 했던 것이 사실. 그 일본 자위대가 최근 들어 자위대 아닌 일본군대로 변모해갈 기미라 주목되고 걱정된다. ◆1만3천㎞의 한달거리. 기뢰도 거의 제거되어 굳이 갈 필요도 없을 것 같은 걸프해역에 전후 처음으로 해외에서 일장기를 펄럭이는 해군 소해함대를 파견한 일본정부가 연이어 이번에는 유엔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육군 병력의 캄보디아 파병을 검토중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캄보디아는 일본제국군의 침략무대였던인지반도. 일본은 마침내 일제부활의 향수에 젖기 시작한 것인가. 군사대국의 신제국주의라도 해볼 생각인지 의심하게 된다. ◆현재 일본군은 병력 27만3천여 명 정도의 비교적 소규모. 그러나 작년의 군사예산은 2백81억2천2백만달러. 우리가 1백8억,중국이 61억달러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 현대전은 과학기술전이고 첨단무기의 싸움이란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이미 아시아 제1의 군사대국이다. 이런 일본이 중동과 동남아에 파병을 했고 하려는 것이다. 세계와 아시아문제에 군사개입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 것. ◆소해함대 파견에 대한 일본 여론조사 결과 당연하다 34%에,부득이하다 44%로 78%가 지지했다. 일본 국민의 여론도 크게 변하고 있다. 탈냉전으로 미소의 군사력이 축소되는 아시아의 공백을 일본은 자신이 채우고 싶은 것이다. 아시아의 맹주노릇도 그리운 모양. 일본의 걸프파병 양해가 일본의 군사대국화,아시아 맹주화까지 양해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일본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 15일부터 휴전… 앙골라의 앞날

    ◎미·소의 대리전 끝나 아주에도 데탕트 바람/정부­반군대표,내년 총선까지 과정 앙골라정부와 반정부 최대 조직인 앙골라 전면독립민족동맹(UNITA)이 지난 1일 포르투갈에서 1년여 동안 계속된 협상을 통해 휴전을 위한 예비협정에 서명,16년 동안 계속된 내전종식이 임박해지고 있다.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과 호나스 사빔비 UNITA 의장이 이달말 내전종식을 위한 휴전안에 공식서명,휴전안이 정식으로 효력을 발하게 되겠지만 양측의 휴전안 수락여부 시한인 15일부터 사실상의 휴전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앙골라의 내전은 지난 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직후 시작됐다. 1885년 이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앙골라는 2차대전 이후 친공산계열인 앙골라인민해방운동(MPLA)과 우익민족주의단체인 UNITA의 양대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투쟁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지난 75년 11월 베트남전 참패의 악몽으로 미국이 시달리고 있는 틈을 이용,소련의 지원을 받은 MPLA가 정부수립을 선포하자 UNITA측은 MPLA에 대한 투쟁을 선언,앙골라는 기나긴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었다. 앙골라의 내전은 그 뒤 미국 및 남아공은 반군을 지원하고 소련 및 쿠바는 정부군을 지원,국제전 및 미소 대리전의 양상으로까지 발전됐다. 남아공은 앙골라 남부의 나미비아 독립을 촉구한 78년의 유엔결의안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미비아를 통치하며 앙골라를 침입,앙골라정부와 마찰을 빚어 왔으며 5만여 명의 쿠바군은 앙골라정부의 요청으로 내전에 개입했었다. 앙골라 내전은 지난 88년 12월 앙골라,남아공,쿠바가 ▲쿠바군의 단계적인 앙골라 철수 ▲나미비아의 독립 등에 관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부터 종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변화와 지난해 평화협정에 따라 쿠바군의 철수가 완료되고 나미비아가 독립을 이룸으로써,정부측과 UNITA측이 1일 예비적인 휴전안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휴전안에 따르면 정부와 UNITA의 대표들로 구성된 정치군사공동위원회(JPMC)가 92년 9∼11월에 치러질 앙골라의 첫 자유총선 때까지 과도정부를 이끌어 나가도록 돼 있다. 또한 과도정부는 양측의 군을 포함,4만명 규모의 단일군을 구성하게 되며 휴전의 성립으로 미·소 양국은 그들의 무기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양측이 내전종식에 합의하게 된 것은 최근의 국내외적인 분위기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먼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동서데탕트와 협조분위기가 성숙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중재로 이루어진 이번 휴전은 미국과 소련이 지지를 받았으며 미국이 휴전안 발표 직후 『이것은 미국과 소련의 갈등해결에 대한 협력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환영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 동안의 오랜 내전으로 30여 만 명이 사망하고 석유 및 광물 등 부존자원이 풍부한 앙골라의 경제가 피폐,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양측이 평화적인 해결에 접근한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앙골라가 지난 89년의 휴전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난해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불고 있는 민주화 바람에 동참할 수 있을지가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이라크내란종식 원칙합의/후세인­반군대표/쿠르드족 권리회복도 논의

    【바그다드·니코시아 AP 로이터 연합】 이라크의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는 24일 반군측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반란종식에 관한 원칙적 합의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쿠르드 대표단을 이끌고 후세인과 1시간 동안 회담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인 내용은 내주에 있을 추가회담에서 협의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후세인을 전복하려는 반란이 실패로 돌아간 후 터키와 이란에 피신한 수많은 쿠르드족들에게 이라크 북부의 고향에 돌아가도록 호소했다. 주요 쿠르드족단체 중 하나인 쿠르드애국동맹(PUK) 지도자인 그는 이날 이루어진 원칙적 합의가 지난 70년 3월11일 쿠르드족과 중앙정부 사이에 체결된 자치협정의 이행에 관한 것이라면서 이 협정이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한달 전에 있었던 최초의 접촉에 이어 개최된 그 동안의 회담에서 ▲관계정상화 ▲이라크의 민주주의 ▲쿠르드족의 권리 ▲이라크의 국가통일 등 네 가지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고 말했다. 탈라바니는 『우리는 분리주의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독립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이번 회담에서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자유선거와 언론·집회의 자유에 관한 문제도 논의됐다고 말했다.
  • 쿠르드족 자치의 길 보인다/후세인­반군대표 회담의 저변

    ◎참정권·언어 인정선서 합의 전망/후세인 정권 안정 이후 보장여부는 미지수 걸프전 이후 계속 세계의 관심을 끌어왔던 이라크내 쿠르드족의 자치가 마침내 실현될 전망이다. 쿠르드족 반군 지도자들과 이라크정부가 쿠르드족의 반란종식과 자치허용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3백50만 쿠르드족의 자치가 가시화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아 어느 정도까지 자치가 허용될지는 분명치 않다. 다음주에 다시 열릴 예정인 쿠르드족 대표와 이라크정부간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쿠르드족 회담대표인 쿠르디스탄애국동맹(PUK)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가 이라크정부와 원칙적으로 합의된 것은 지난 70년 체결한 자치협정 이행이라고 밝혀 주로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자치는 70년 자치협정에 준해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70년 3월11일 체결된 평화협정은 ▲쿠르디스탄지역내에서 아랍어와 함께 쿠르드어의 공용어 인정 ▲쿠르드인의 중앙정부 참여보장 ▲쿠르드인 자치권 허용 등 15개 항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탈라바니가 『우리는 분리주의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독립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함으로써 쿠르드인들이 독립을 추구하거나 자치정부까지 구성할 가능성은 현재로서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족들은 이라크내에 공존하며 권리신장을 도모하는 정도에서 자치권이 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후세인이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하는 데 합의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라크가 당면한 당장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후세인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함으로써 그들의 도전을 무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경제제재조치의 완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자치허용이 과연 항구적일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대부분의 중동 전문가들은 후세인 정권이 안정되면 과거에도 그랬듯이 다시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라크정부와 쿠르드족은 과거 66년과 70년에도 자치협정을 맺었었다. 자치협정을 맺었을 때는 언제나 이라크정권이 내전이나 외세에 의해 위협을 받았을 때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자치가 실현된 적은 거의 없었다. 쿠르드족내 갈등과 분열도 협정이행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그러나 과거 무장충돌까지 빚었던 쿠르드 민주당과 쿠르디스탄애국동맹뿐만 아니라 쿠르드 사회당·쿠르드 인민민주당 등 주요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어 쿠르드족내의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후세인 정권이 안정된 후에도 쿠르드족의 자치를 허용할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이라크내 쿠르드족의 자치허용은 1천2백여 만 명의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시리아에 대한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들 국가가 쿠르드족내의 파벌과 갈등을 교묘히 이용,「방해공작」을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쿠르드족의 장기적인 자치가 정착되려면 국제적 보장과 자체내의 힘의 결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국가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쿠르드족들은 이번에도 과거와 같은 배신과 패배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아픔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 “자코지역서 48시간내 철군”/다국군,이라크에 최후통첩

    ◎체니 미 국방,“무력사용 불사” 【자코(이라크) AP 연합】 쿠르드족 난민보호를 위해 미군 등 다국적군이 안전지대를 설치중인 이라크북부 자코시에 24일 영국해병 특수부대 6백여 명이 도착한 가운데 다국적군측은 이 도시에 있는 이라크 무장경찰이 앞으로 48시간내에 철수토록 최후통첩을 내렸다. 이날 1백명의 중대원을 이라크군이 장악하고 있던 한 3층건물에 배치한 제프메이슨 대위는 미군측이 이라크 경찰에 대해 자코시를 48시간내에 떠나도록 최후통첩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정부의 한 대변인은 이라크 정부의 탄압을 피해 이란의 외딴 산악지대에 피신해 있는 쿠르드족 난민들에 대한 구호물자공급을 위해 지난 21일 이란 영토로 들어온 독일군 병력의 수가 곧 2천명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는데 독일군은 지난 70년대말 회교혁명 이래 이란 영토에의 진입이 허용된 최초의 서방군대이다.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은 이라크군이 북부 이라크내 쿠르드 난민에 대한 국제적인 원조노력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무력을 사용할 용의가 있다고 딕체니 미국방 장관이 23일 말했다. 체니 장관은 CNN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이라크군이 북부 이라크 지역 쿠르드 난민에 대한 우리의 원조노력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 “소유즈 리더” 알크스니스 첫 단독인터뷰/김영만 특파원

    ◎“파국위기의 소련… 비상선포로 타개해야”/쿠데타 성공하기엔 소 너무 큰 나라/보·혁 대결 장기화땐 내전 부를수도/경제독립 없는 연방탈퇴는 공염불… 단합 긴요 소련 인민대표회의의 강경보수파 의원들로 구성된 소유즈그룹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에 따른 혼란을 비난하며 비상사태 선포 등을 주장해 소련의 장래와 관련,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울신문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은 당중앙위 개막 직전인 23일 이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인 빅토르 알크스니스 대령(41)을 우리나라 기자로는 처음으로 단독으로 만나 개혁에 대한 입장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평가 소련의 장래 등을 들었다. 현역 공군대령으로 베일에 가린 채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에서 일명 「검은 대령」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는 지난해말 셰바르드나제 당시 외무장관이 사임연설을 통해 『새로운 독재의 출현을 음모하는 검은 대령』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소련 정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크스니스 대령은 서울신문과의 회견에서 자신들이 쿠데타를 꾸민다는 설은부인했지만 급진개혁세력의 요구는 결단코 저지돼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비상사태와 통제경제를 주창하는 소유즈는 개혁 자체에 반대하나.』 『개혁을 반대하지 않는다.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바로 경제개혁을 위해 정치적 안정은 필요하다. 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 당신들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한국이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지지한다고 했는데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고르바초프는 노련하고 또한 여러 가지 복잡한 권력게임 때문에 우리가 사임에 필요한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치적인 패배를 안길 수 있고 동시에 우리가 주장하는 비상사태의 선포를 얻어낼 가능성은 있다고 여겨진다』 ­일부 분석가들은 소유즈의 발빠른 행보가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강화시켜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한다. 말하자면 보수파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개혁파와의 협상 여지를 오히려 넓힐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이른바민주파를 곤란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고르비와 우리의 이해가 같을 수 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고르비에게 우리는 민주파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인민대표회의 특별회의 소집은 가능하다고 보나. 『오늘부터 서명에 들어갔다. 4백50명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전체 대의원 정수의 5분의1). 소유즈그룹의 대의원 대부분이 현재 지방에 머무르고 있어 필요서명인원을 채우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의회가 비상사태를 선포치 않을 경우 소유즈는 자신들이 제안한 방안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이 조치는 쿠데타가 반의회적인 다른 방식에 의한 정부구성을 의미하나. 『우리의 결의내용은 아니고 블로힌 의원의 연설에 그런 내용이 있어 오해를 사고 있다. 비헌법적이고 위협·암시·공포로 이해되고 있어 유감스럽다. 우리는 합헌적인 것이 때때로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헌법의 범위내에서만 행동할 것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의 비상사태 선포 같은 극단적인 방법의 사용은 유혈사태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가능성까지 감내하면서 비상사태를 주장하나.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다. 나는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소련에서는 전쟁이 아닌데도 지난 2년간 정치적 분쟁으로 1천명 이상이 사망했다. 세계는 지금 이라크내의 쿠르드족 문제에 비난을 집중하고 있다. 소련은 지금 민족분규 등으로 피난상태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1백만명을 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군부쿠데타가 가능할 수 있나. 『우린 쿠데타를 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다. 장군만 모아도 크렘린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숫자가 많다. 우리는 프랑코 장군이나 피노체트 장군,주코프 원수도 없다. 있다면 야조프 원수가 있을 뿐이다』 ­군부 내에도 옐친을 지지하는 개혁파가 형성돼 있나. 『있지만 모스크바에서만 조직이 있는 극소수다. 우라즈체프 러시아 대의원(예비역 중령)이 대표로 있는 「방패」가 그것인데 최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에서 이 조직을 만들려다토론도 하기 전에 그들은 도망가야 했다』 ­옐친이 러시아공화국 헌법개정에 성공하고 6월12일로 예정된 선거에서 직선대통령이 된다면 소련의 장래는 어떻게 되나. 『이 대결이 멈추지 않는다면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세계3차대전으로 치달을 것이다』 ­당신은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은 라트비아 출신인데 강경세력의 간판으로 꼽히고 있다.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 견해 사이의 차이를 무엇으로 설명하나.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구호는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 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탈퇴만이 살 길 인양 외친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킨다면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의 사임연설로 당신은 유명하게 됐다. 실제로 사임을 종용했는가,그것 외의 다른 배경은 무엇인가. 『사임을 종용한 바 있지만 현역 대령 두 사람(한 사람은 페트루센코 대령)의 종용으로­비록 그것이 검은 대령이라 할지라도­장관이 물러날 수 있나? 그보다는 다른 배경이 있다. 하나는 그가 실시해온 정책에 대한 책임추궁의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또 하나는 이라크를 반대하는 진영에 서겠다고 미국에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못 한데 따른 자기인책으로 보는 것이 옳다』 ◎군부 강경파가 주도… 반고르비 선봉/소 「소유즈그룹」이란 소유즈(연합)그룹은 급진개혁을 반대하며 지난해 2월 소련 최고회의 보수파 대의원 1백여 명이 결성한 압력단체. 최고회의 대의원인 유리 블로힌이 대표를 맡고 있으나 알크스니스 대령을 비롯한 강경파 군장교 5∼6명이 사실상 모임을 주도해가고 있다. 89년 7월 인민대표회의내 급진파 대의원 2백50여 명이 급진개혁을 요구하며 「지역간 그룹」이란 단체를 만든 것이 소유즈그룹이 결성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창립 당시 이들이 밝힌 결성취지는 소연방을 와해시키려는 분리주의,민주주의세력과의 투쟁 및 러시아민족의 권리보호였다. 이들은 그 동안 각종 회의에서 고르바초프의 국내외 정책에 강한 비판을 가해 주목을 끌었다. 특히 90년 11월17일 최고회의에서는 『30일내에 개혁정책을 중단치 않으면 고르바초프는 사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서방 분석가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12월에는 셰바르드나제 외무,바딤 바카틴 내무 등 개혁파 장관 2명을 사퇴케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회원수는 4백50∼5백명 선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장교,군수산업체 간부,지방공화국 거주 러시아인 출신 대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 오늘 소 당중앙위… 권력다툼 어찌될까

    ◎보·혁의 양면공세… 코너에 몰린 고르비/자아비판식 보고 요구땐 입지 흔들/보·혁 속셈 달라 실각 가능성은 희박/비상선포권 확보 등 전화위복 계기 될 수도 골수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소유즈그룹 등의 춘계 대공세가 시작된 가운데 소련 공산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24일부터 개막된다. 결론부터 말해 이번 공산당중앙위원회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의제가 간부 선임의 건이기는 하나 중간간부들을 의미하고 있고 또 상당시간은 경제위기타개책 인준문제에 할애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최근 보수우파들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대처방법에 따라서는 그의 정치적 입지에 개혁파의 그것에 못지않은 가공할 파괴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는 고르비가 잘 대처할 경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을 동반하는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어쨌든 고르바초프는 지난번 옐친이 주도하는 개혁파에 의해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선사」한 대통령 직선 결정에 이어 또 하나의 심각한도전에 직면해 있다. 소련에서는 최근 주목할 만한 두 가지의 보수파 움직임이 있었다. 첫째는 각급 의회 대의원들 중 강경파들의 모임인 소유즈그룹이 지난 20일과 21일 크렘린에서 회의를 열어 고르바초프의 탄핵과 비상사태 선포를 위한 연방 인민대표대회 특별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는 같은 기간 레닌그라드에서 열린 러시아공화국 공산당내 골수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의 궐기대회를 들 수 있다. 소련 전체 공산당원 1천6백만명의 8분의1인 2백만 당원의 대표자 7백50여 명이 참석한 레닌그라드대회는 소유즈그룹보다 더욱 선명하게 고르바초프의 「반공산주의적 반인민적」 일련의 행위들을 규탄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 해임을 결의했다. 이밖에도 최근 상당한 수의 각급 지방공산당위원회들이 중앙위에서 고르바초프가 업무보고를 하도록 결의하고 나섬으로써 고르바초프는 분위기면에서 대의원·지방공산당·개혁파 모두로부터 배척당하는 사면초가의 입장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24일 개회되는 당중앙위나앞으로 열릴 인민대표대회 특별회의에서 고르바초프가 법률적으로 실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지의 분석이다. 당이 고르바초프를 서기장직에서 사임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국의 선도에 따라 중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는 알크스니스 공군대령 같은 이마저 당이 그런 절차를 밟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를 대통령직에서 해임시키기 위해서는 인민대표대회 재적의원 3분의2의 찬성을 얻어야 하고 또한 헌법감시위원회가 헌법위반에 대한 결의서를 대회에 제출해야 하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이런 절차를 볼 때 고르바초프에 대한 법률적인 탄핵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스크바 정치인과 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파가 이에 동조할 수 없는 독특한 권력게임의 논리도 고르바초프 탄핵의 가능성을 줄여주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당중앙위원회에서 고르바초프에게 소유즈나 골수당원 대표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 동안의 당운영에 대한 보고를 하도록 결의할 경우 고르바초프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또한 특별대의원대회에서 탄핵찬성표가 3분의2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과반수에 이를 경우 고르바초프는 정치적으로 사임해야 하는 입장에 놓일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는 고르바초프가 원하지 않는 한 서기장직과 대통령직 모두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앙위에서 보고를 하도록 요구할 경우 관례적으로 보고는 곧 자아비판을 의미해왔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은 어려워진다. 고르바초프가 역설적으로 보수파들의 공세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논리는 보수파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헌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해 인민대표대회에서의 헌법개정으로 비상대권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비상사태선포권만은 그의 수중에 있지 않다. 거기다 보수파의 대궐기가 개혁파로 하여금 새로운 위기감을 조성해 고르바초프와의 대결을 고르바초프가 인내할 수 있는 선으로축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즉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 문제나 새로운 연방조약 체결에 있어서 개혁파가 고르바초프와 협상폭을 넓히려 할 것이란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보수파 주도하의 고르바초프 축출이 가져올 결과는 개혁파로선 참혹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보수파의 역공세로 오히려 개혁파가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개혁파를 지지하는 탄광 광부들은 고르바초프의 탄핵을 주장해왔고 이를 개혁파가 부추기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수파 주도의 고르바초프 축출에 개혁파가 동참할 수 없고 그렇다면 탄광과 파업노동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현재의 소련 상황과 관련해 자신있는 전망을 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수한 분석들이 빗나가거나 틀렸고 고르바초프는 아직도 강력한 연방대통령으로 행세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에는 이변이 많다. 소련 공산당은 그 점에서 어느 나라,어느 조직의 그것보다 더 많은 이변을만들어 내놓았던 전력과 기록을 갖고 있다.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그는 표 분포상 중앙위원회에서 반수를 훨씬 넘는 지지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국에서 시작된 음모는 정치국 결정 존중의 불문율에 따라 중앙위원회가 흐루시초프의 실각을 결정하도록 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는 양에 따라 사약이 될 수도 있고 보약이 될 수도 있는 보수파가 내민 독배 앞에 앉아 있는 셈이다.
  • 이라크­쿠르드반군 휴전 합의/쿠르드민주당

    ◎「후세인 자치 제의」 수용 검토 【다마스쿠스 로이터 AFP 연합】 이라크정부와 쿠르드족 반군은 2일 전 잠정적인 휴전에 합의했다고 쿠르드 민주당(DPK)이 18일 밝혔다. 쿠르드족 반군측은 그들과 사담 후세인 대통령 군대간에 지난 36시간 동안 선언되지 않은 휴전이 지켜지고 있다고 밝혔다. 마수드 바르자니가 이끄는 쿠르드 민주당의 한 대변인은 쿠르드전선(KF) 지도자들이 『쿠르드족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이라크정부의 제안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쿠르드족 전사들과 이라크정부가 휴전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쿠르드전선은 쿠르드 민주당의 산하단체이다. 이 대변인은 『이라크정부의 제안은 이라크내의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의 현실화와 쿠르드족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1970년 3월의 협약에 근거해 쿠르드족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쿠르드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라크 국민의 전반적인 문제,특히 독재타도와 연관된 것이므로 이라크의 제안이 불충분하기는 하지만 쿠르드족 전선의 지도자들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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