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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강경파,「국민의 뜻」 못읽었다

    ◎엉성했던 조직력… “수준미달의 거사”/“실패원인” 미 시각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성공 확률은 50%를 넘지 않는다』이것이 쿠데타 발발 사흘째를 맞은 미국의 많은 관리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부시 미국대통령의 잇따른 강경발언은 감정적이고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쿠데타가 종국에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관측되고 있다. 즉 미국의 부시행정부는 소련 쿠데타의 실패를 예상하고 반쿠데타전략을 세운 것으로 대부분의 언론들은 보고 있다. 쿠데타를 일찍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무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마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최초의 생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 쿠데타 중심세력의 결집력이 예상외로 단단하지 않다는 진단은 거사당일인 19일부터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우선 쿠데타 지도부안의 분열 또는 충분히 계획이 안된 임시변통의 조치로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그리고 발틱해안 여러 공화국들에의 쿠데타군 배치가 엉성하며 엄격한 비상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더욱이 모스크바에 배치된 군대의 일부는 배치된 뒤 친옐친으로 태도를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미국관리들은 『아직까지의 사태진전만 가지고 말할 때 이것은 고전적인 쿠데타와는 다르다.탱크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쿠데타 발표가 있은지 몇시간이나 지난 뒤였다』는 말로 실패를 단정했다. 또 하나의 실패징조는 쿠데타지도자들이 소련의 여러 공화국 지도자들을 설득하거나 강요하는 노력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부 공화국 지도자는 이미 반쿠데타 입장을 밝혔으며 다른 지도자들중 상당수도 그 뒤를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라디오와 TV 등의 언론에 대한 통제도 보통의 쿠데타 수준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모스크바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다른 우방을 독려하여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즉 미국은 쿠데타 지도자들에게 경제원조를 잃게될지 모르며 국제적인 미아가 될 것임을 믿게 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제난 해결책·정통성 미비가 치명적/불 르몽드지 분석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 몽드지는 21일 소련전문가 미셸 타튀의 분석을 인용,이번에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르 몽드지의 모스크바특파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소련문제전문가인 타튀는 르 몽드지 기고를 통해 이번 쿠데타상황이 지난 64년의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와 판이하고 또 쿠데타 주도세력이 경제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갖고있지 못한데다 군부내의 이견등이 겹쳐 결국 성공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흐루시초프 실각 당시 소련의 정치·경제상황이 현재와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중국 천안문사태때의 반정부세력도 지금 소련의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미약했을 뿐 아니라 당시 중국내부문제도 현재 소련에 비해 덜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우선 현 쿠데타세력이 흐루시초프때와 비교해 「권위성」「신뢰성」,그리고 무엇보다 「정통성」이 결여돼 있다고 전제,64년 당시 흐루시초프 축출세력은 공산당 중앙위원회라는 제도의 틀내에서 일을 벌였으며 또 소련최고회의가 이를 승인하고 당사자인 흐루시초프도 자신의 사임에 동의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우 쿠데타 인정을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역시 헌법상 규정되지 않은 기관이며 이는 공산당내에서도 합법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타튀는 주장했다. 쿠데타 주동세력들은 또 최대한 지지를 긁어모으기 위해 「법과 질서」「범죄와 부도덕 비난」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있으나 이는 스탈린­브레즈네프 시대에 성행했던 「러시아인 주도 질서」를 연상케 하는 「향수적」인 것으로서 다른 민족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타튀는 군부내 이견을 지적,구세대 고위간부와 중간장교·사병 등 군구성원중 중간장교와 사병은 이제 정치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불만이 더 큰 만큼 대중에 보다 접근해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노선 고수를 주장하는 고위장성들 역시 최근 기존노선고수와 군개혁 필요성의 모순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 정변 소용돌이… 혼미의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1만 시민군,“범죄파쇼 타도” 빗속시위/도로 곳곳 교통차단… 「가판신문」동나/“연방특수군 접근” 러시아공 청사 긴장/반쿠데타 기갑부대도 「옐친 지키기」일전태세 ○…20일하오 5시40분(현지시간)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한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 앞광장엔 결전을 앞둔 전장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소연방군특수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러시아시민군 1만여명이 모여 러시아공화국 사수를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흰색 고층건물을 러시아시민들은 미백악관을 본따 「화이트 하우스」라고 부른다.20일 하오 현재 화이트 하우스로 향하는 모든 차도는 러시아시민군들에 의해 완전 차단됐다. 러시아공화국 정부를 접수하기 위해 소연방특수부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무전기등으로 속속 시민군측에 전달되고 있다. 갈리닝가와 크라스노프리스니얀스키리단가에 이르는 드넓은 화이트 하우스 광장주변에는 종일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1만여명의 시민·학생·노동자들이 모여서 「범죄 레드 파시트스 분쇄」 「러시아공화국사수」를 외치고 있다. 수천명의 젊은 노동자 학생들은 스스로 시민군을 구성하고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모스코니기갑부대와 다만스카야기갑부대소속 탱크 3대,장갑차 3대,수송차량 10여대가 광장에 이미 포진,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역시 전의를 다지고 있다. 모스크바교외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 기갑부대는 2차대전때 독일군과 싸운 소련 최정예기갑부대이다.이들이 옐친 지지를 내걸고 그 선발대가 14일 하오부터 이곳으로 진입한 것이다. 트랙터 트롤리버스 10여대와 일반버스 10여대가 광장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고 탱크 포신 버스지붕위에는 시민들이 빽빽히 올라앉아 역시 「공산주의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버스창문들 마다에도 「공산주의 범죄자들을 몰아내자」「레드 파시스트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가 빽빽히 나붙어 있다. 화이트 하우스 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각목·콘크리트보드 등으로 완전히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바리케이드 앞에는 머리띠를 두르고 간혹 단검을 손에든 젊은 시민군 수십명이 줄지어 서서 계단아래쪽 시민들에게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자고 외치고 있다. 한 젊은 시민군은 메가폰을 손에들고 『소련특수군이 접근하고 있으니 어린이 부녀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우리는 평화를 원한다.우리는 맨손으로 맞서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옐친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러시아공화국 정부인사들도 화이트 하우스안에서 연방특수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둠이 깔리자 불을 환히 밝힌 화이트 하우스건물의 창문들이 이들의 결의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저항좌절땐 망명정부” ○…안드레이 코자레프 러시아공화국외무장관은 20일 파리에 도착,쿠데타지도자들에 대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저항이 실패로 끝날경우 망명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자레프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망명정부수립이 자신의 이번 서방국가 방문 임무중의 하나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이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코자레프장관은 워싱턴도 방문,미국지도자들이 옐친의 반쿠데타 저항을 적극지지해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모잠비크 주재 소련대사관 타이피스트 3명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고 남아공외무부의 한 대변인이 20일 발표. 이 대변인은 몇주전 이웃한 스와질랜드를 통해 합법적으로 남아공에 입국한 이들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으며 현재 소련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노한 수백명의 시위대들이 19일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주의자들이 파견한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공 의회건물로 통하는 길을 가로질러 바리케이드를 설치. 급진적 개혁주의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호소에 대한 반응으로 군중들은 도시 중심부의 칼리닌가를 가로 질러 목재 조각등 인근 건축 공사장에서 가져온 장비들을 실은 두 대의 무궤도 전차를 주차해 놓았다. 인권운동가 옐레나 본네르를 포함한 옐친 지지자들은 모스크바강 둑 위의 백색러시아공화국 의회건물 주위를 돌기도. ○인기 전날보다 떨어져 ○…모스크바시민들 사이에 국가비상위의 인기는 전날에 비해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즈베스티야지의 한 기자는 『8인위는 개인의 정권욕을 앞세워 국가장래를 생각않고 구체적인 정책대안도 없이 쿠데타를 저질렀다』고 말하고 이번 쿠데타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 또 한 시민은 『탱크를 사용하는 권력은 진짜 권력이 아니다.권력은 합법적으로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역시 이번 쿠데타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공화국의 한 대의원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지금까지 개혁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너무 많이 보수파들의 눈치를 살폈고 그때문에 결국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말 셰바르드나제가 독재가 임박했다고 경고를 했을 때에도 고르비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 ○비내리자 일당 되찾아 ○…19일 하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가 20일 들어서는 가랑비로 바뀌고 모스크바시내 사람들은 거의 일상의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미대사관이 있는 사도바야가 러시아공화국정부 청사 앞등 시내곳곳의 도로 통행이 차단돼 엄청난 교통혼잡이 빚어지고 있다. ○…국가비상위는 프라우다·이즈베스티야·소비에츠카야로시아를 비롯,6종의 신문만 발행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발행을 중지시켰다. 시내 가판대에는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로 긴줄을 이루었으나 모든 신문들은 1면에 국가비상위원회에서 발표한 포고령을 거의 같은 크기로 싣는등 비슷한 내용들. ○미­소 전화통화 폭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축출 소식이 전해지자 소련과 미국간의 전화통화가 폭주,평소보다 1백배나 많은 통화가 이날 오갔다고 미국전신전화회사의 한 직원이 말했다. 이 직원은 소련의 강경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접수했다는 발표가 있은 뒤 미소간 국제전화가 『폭주했다』고 밝히면서 전화가 불통되지는 않았으나 통화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평양이 다시 움츠린다/남북실무접촉에 나타난 「고르비 파장」

    ◎북한,체제강화명분… 개혁파 숙청예상/「정·경분리」고수,중국식모델 따를듯/대남 유화노선 수정조짐… 남북관계 악영향 『고르비 실각.군부 쿠데타로 추정』 19일 이 메시지를 접한 북한 김일성주석은 일순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미소뒤에 도사린 김주석의 속마음은 불과 하루가 지나지 않아 남북대화에 그대로 반영됐다. 27일로 다가온 제4차 고위급회담의 「판문점개최」제의가 바로 그것. 소련사태후 북측이 즉각적으로 취한 일련의 제스처가 담고 있는 뜻은 명약관화하다. 소련사태에 향배를 주시하면서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정책노선을 대폭적으로 재조정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북측이 보인 첫 반응은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사회의 대외개방및 남북관계개선 움직임이 경우에 따라서 대폭 둔화,후퇴할 것임을 나타내는 징후라는게 대부분 북한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은 이제까지 소련및 동구사회주의권의 변혁향방을 지켜보면서 그 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며 대외개방및 남북관계개선의 완급을 조정해왔다. 따라서 소련개혁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이 시기에 북한은 대외개방은 물론 남북대화에 있어서도 명확한 입장표명을 유보한채 관망할 것이다. 어쨌든 고르비의 실각은 그 자세한 경위나 그 미래가 어떠하든 궁지에 몰린 김주석에게는 국면전환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김주석은 그간 고르비가 추구해온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해 「사회주의의 이념을 저버린 배신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해왔다.뿐만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의 물결이 북한에 스며들어 자신의 지도체제및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뒤흔들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느껴왔다. 때문에 그는 ▲한소 첫 정상회담(90년6월5일) ▲한소수교(9월30일) ▲한소제주정상회담(91년4월20일)등이 이어지자 「몇푼의 달러에 몸을 파는 고르비」라고 노골적인 인신공격을 펴는가 하면 소련에서조차 고르비의 사임요구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있다고 현지 언론을 인용,보도해왔다. 김주석은 소련사태의 앞날이 불투명하지만 그 상황이 결코 최근 2∼3년보다 악화되지는 않을것이란 기대 아래 소련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의 압력에 밀려 취해왔던 대외·대남유화정책을 전면적으론 궤도수정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김주석은 반고르비 세력이 군부라는 사실에서 북·소관계를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필승불패의 사회주의 이념」이 국제정치의 한 기둥으로 다시 설 수 있도록 소련의 군부및 보수세력에 강한 지지와 연대감을 표명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고르비의 실각은 김주석에게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소련 등의 변혁에 동요하던 북한내부체제의 단결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같은 분석을 근거로 할때 북한체제의 변화및 남북관계의 개선은 앞으로 상당기간 침체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최근 북한체제 내부에서 대내외적 변혁과 개방을 주장해 왔던 혁신계 또는 개혁파의 입지는 크게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고르비의 실각은 엉뚱하게 북한에서의 개혁파 숙청바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또 소련의 새로운 집권세력이 전통적으로 유대가 강한 군부나 보수파세력일때 북­소간 우호관계를 복원시키고 이를 통해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또하나의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시도할 것이다.이 경우 북한이 유일한 타개책으로 매달려온 북·일국교수립이라든가 남북간 경제교류도 크게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향후 체제생존과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대외개방을 펴더라도 그 모델은 「중국식」이 될 것.급격한 정치체제개혁의 결과가 고르비의 실각이었다는 경험은 북한으로 하여금 철저한 정경분리원칙에 따른 경제개방만을 시도토록 할 것이다. 이밖에 소군부의 쿠데타는 김주석의 지도노선의 당위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상대적으로 김정일후계체제의 조기공식화에는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군부의 동향이 권력유지의 가장 중요한 변수임이 입증된 이상 그렇지않아도 불명확한 북한군의 김정일지지에 대한 김주석의 우려는 증폭될 수 밖에 없다.이 결과 김주석은 조기 권력승계에 앞서 보다 완벽한 보장장치 마련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북한군을 김정일의 군대화하기까지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것이다.
  • “월요일의 대충격”… 세계가 「비상」

    ◎「고르비 실각」… 각국의 표정/“사태유동적”… 주요국들 「공식논평」 유보/“개혁­보수파 대립… 내전비화 가능성도” ▷미국◁ 미백악관 관리들은 소련의 사태를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한 정보를 얻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CNN 등 미국방송들은 고르바초프 실각사실을 긴급 주요뉴스로 취급,현지와 연결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이날 케네벙크포트의 하계휴가 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둘러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등 신속히 대처했다. 부시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쿠데타가 실패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대소경제지원 동결을 발표하는 한편 고르바초프를 높이 평가하는 등 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해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간접적인 의사를 밝혔으나 『권력을 장악한 소련 강경파들이 국제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해 쿠데타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쿠데타 주도세력들과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을 뜻임을 시사했다. 로먼 포파듀크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에 앞서 발표한성명을 통해 『우리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듣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19일 하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정부와 국민들은 큰 충격과 우려를 나타냈다. NHK 등 일본방송들은 고르바초프 사임소식을 매시간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특집프로를 마련,소련의 향후 정치향방을 전망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일본총리는 이날 낮 사임소식을 듣고 『외무성을 통해 사실관계나 배경에 대해 조사중이므로 자세한 소식을 파악한 뒤 논평하겠다』고 대답을 회피한 뒤 자민당 중진들도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각의를 열고 소지도부의 급작스런 변화에 관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입수하도록 지시했다. 사카모토(판본)관방장관도 『일본정부로서도 정식으로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고 미국과 정보를 교환하는 등 사태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관리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이유가 건강상의 문제라고 전해진데 대해 『병이 생겼다면 비상사태를 선포할리가 없다』고 지적,쿠데타일 가능성이 있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영·불◁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19일 고르바초프 실각에 대해 『탈헌법적 권력찬탈』이라고 비난하고 실각소식이 냉전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메이저총리는 『현재 사태는 소련내 개혁과정에 대한 저항』이라면서 『우리는 소련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했던 약속들을 존중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마거릿 대처전영국총리는 소련국민들에게 거리로 나가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린다 찰커 영외무차관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을 수 있고 동서관계에도 심각한 의미를 갖고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매우 걱정스럽고 당혹스런 사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TF­1 등 프랑스방송들은 19일 일제히 아침뉴스의 머리기사로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보도하고 그것이 유럽의 안정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프랑스와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이날 크레송총리,뒤마외무장관과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고르바초프실각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독일◁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19일 새로운 소련지도부에 대해 국제조약을 준수하고 인권을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콜 총리는 이날 하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소식을 듣고 휴가중이던 오스트리아에서 본으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힌뒤 실각한 고르바초프가 신체적인 위협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콜 총리는 이에 앞서 부시 미국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대통령,메이저 영국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실각에 따른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한편 테레초프 본주재 소련대사는 독일총리실을 방문,소련신지도부의 성명을 독일정부에 전달했다. 유럽안보회의는 20일 회의를 갖고 소련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 한편 로스 소련서부군대변인은 이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에도 불구하고 독일주둔 소련군의 철수는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고르바초프 실각 소식이 전해지면서 19일 홍콩 증권시장의 항생지수가 1백94포인트나 폭락하는등 이곳 홍콩주민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곳 시민들은 소련의 강경파 집권으로 냉전체제가 부활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하면서 현재 소군부의 동향이 어떤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한편 중국에서는 신화사통신이 고르바초프 실각뉴스를 타스통신을 인용,간단히 보도한채 별다른 반응을 즉각 보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곳 관측통들은 중국지도층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극구 반대해 왔으며 최근 소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식 포기한데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한채 급격히 보수회귀 성향을 보여왔다고 지적,고르비의 거세를 가장 반가워할 사람들은 북경의 중남해(중국지도층 집단거주지)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토­EC도 긴급회담 소집 ▷나토·EC◁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19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축출에따라 정치위원회 비상회의를 소집했다고 나토대변인이 밝혔다. 유럽공동체(EC)외무장관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실각과 강경파 비상위원회의 집권을논의하기 위해 20일 헤이그에서 긴급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고 네덜란드 외무부가 19일 밝혔다. ▷유엔◁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포르투갈 남부에서 휴가를 즐기던중 고르바초프 실각소식에 접하고 이 사태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회원국의 내정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자신의 위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타국가◁ ▲인도=최근 20년만에 소련과 우호협력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조약을 체결한 바 있는 인도는 소련내의 정치적 변화로 양국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기를 희망했다. ▲필리핀=코라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축출 소식을 접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소련 사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고르바초프의 집권시에 추진되던 세계평화를 향한 전진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체코=바츨라프 하벨 체코대통령은 『소련의 현사태가 슬프게도 지난 68년 프라하의 봄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련의 강경진압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이라크=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이날 혁명평의회와 바트낭지도부 합동회의를 주재한 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국제적인 세력균형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점령지내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소련이 이제 중동평화정착 과정에서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주길 희망했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안보환경 변화와 민군관계

    ◎“민주화 부응이 군 발전 지름길”/개방화시대 발맞춰 대민 신뢰 쌓아야/병영의 참모습 알려 불신요인 제거 중요/긴급 재난때 장비·인력 적극 지원 바람직 국방부는 16일 남북한유엔동시가입 등 국내외의 안보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안보환경변화와 민·군관계」라는 주제로 안보관련 세미나를 육군회관에서 개최했다.이날 세미나에서 연세대 서정우교수는 「민·군신뢰기반구축방안」이라는 제목으로,교육부 김진성장학관은 「민·군안보의지 고양방안」이라는 제목으로,그리고 통일연수원 윤병익교수는 「미래지향적 안보정책대안」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서정우교수는 『급변하는 국내외환경변화속에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과 안보의 주역인 군의 신뢰증진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군의 활동상과 참모습을 그대로 홍보하여 불신요소를 제거하고 군 본연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해다. 김진성장학관은 『통일여건조성을 위해 국방력과 경제력을 배양해야하며 이길만이 북한을 개혁·개방토록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윤병익교수는 『정부의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의 짙전에 따라 일부 국민사이에 감상적인 평화통일기피심리가 점증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통일과 이의 실현을 위해서는 시대상황변하에 부응한 양보의식의 제고방안과 신축적인 정책개발이 요구된다』고 제시했다.주제논문을 요약한다. ◇서정우교수=민주사회에서의 군은 국민의 동의없이는 어떠한 기능도 수행할 수 없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다.국민이 군을 신뢰하면 강력한 군이되고 군이 강력하면 국가안전은 보장된다.이때문에 국민의 군에 대한 신뢰수준의 정도는 군의 발전과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척도가 된다.국민이 군에 대해 갖고있는 신뢰는 최근 상당히 향상되고 있으나 만족할만한 상태는 아니다. 군이 국민의 신뢰기반을 구축하기위해 수행해야할 자체관리의 영역을 몇가지 예시하면 ▲군의 정지적 중립 ▲군의전문화 ▲군의 민주화 ▲정훈교육의 강화 ▲대국민홍보조직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군은 자신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왔다.이때문에 군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이해수준,그리고 신뢰도가 낮은 상태다. 신뢰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예시하면 군은 국가의 민주화·개방화·공개화 추세에 적절히 순응해야 한다. 군은 언제나 사기가 충만해야하나 휴가장병과 초급장교들의 기강문제에는 유의해야한다. 국민들에게 군의 참모습을 알리기위해 매스미디어를 적극 활용,홍보를 강화해야한다. 긴급재난구조등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을 확대하고 민·군친선 체육대회 등을 열어 함께 어울려야 한다. 수재와 가뭄과 같은 재해를 당할경우 지역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군이 소유하고 있는 장비와 기술·인력은 사회에 환원,봉사해야한다. ◇김진성장학관=민·군의 상호이해를 돕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투기·탱크 등 무기와 군사시설을 어린이들에게 공개하고 중·고생들의 소풍·야영·집단수련장으로 부대를 개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초·중·고교와 일선부대가 자매결연을 맺고 자매부대를 친선방문하는 등의 행사는 군의고충과 특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군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경계심리를 불식하고 「우리군대」라는 의식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도록 군의 이미지개선에 민·군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군대에 입대한뒤 군 경험은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수행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개인의 삶에 신념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음을 청소년들에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윤병익교수=우리나라의 안보상황은 군사력을 중심으로한 안보역량을 증대시켜야 할 요인과 통일분위기 공조에따라 안보의식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상황으로 이를 조화시키는 차원에서 안보정책의 대안이 강구돼야 한다. 우선 「가상적」및 안보개념을 재정립해 북한과 중소양국을 냉전체제적 가상적으로 일축하는 안보정책은 통일지향적인 국민의식과 마찰을 가져올것이므로 지양돼야 할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안보정책은 우리의 국가체제와 이익을 위협하는 대내외의 군사적,비군사적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모든 행동및 조치를 포함하는 「전방위안보개념」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둘째로 「전방위안보개념」에 입각,군사력을 증강하되 한편으로 남북대화의 진전과 더불어 군축가개념이 부각될것이므로 이들 요인을 조화시키기위해 국군의 정예화·첨단병기화과정이 추진돼야한다. 셋째는 「전방위안보」의 핵심적과업으로서 김일성 주체사상의 대남혁명전략상의 역할및 한계,주제사상에 대한 종합적인 비판및 이에대응할 수있는 우리의 체제이념등에 관한 인식을 확립하는등 정신전력을 강화해야한다. 그러나 앞으로 가장 확실한 안보정책대안은 남북한 신뢰구축방안이며 민·군간 안보공감대 조성을위한 방안으로서는 상호 안보의식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군사정보가 비밀일수만도 없으며 오히려 국가안보와 군사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파해 국민의 안보의식과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중국군 1백만명 감축/전군의 33%

    ◎무기체제·군수산업 현대화/총참모장 밝혀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중국은 군의 현대화와 첨단무기 개발을 위해 총3백만명의 인민해방군 가운데 1백만명을 감축하고 있다고 지호전총참모장이 13일 밝혔다. 지총참모장은 소련의 육군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적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중국군의 감축작업내용을 밝히고 이는 중국의 무기체계와 군수산업 현대화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말했다.그는 군감축으로 인한 여유자금을 군수산업 현대화와 첨단무기 개발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총참모장은 중국군이 감축되더라도 군의 현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력의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군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그는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국가 지도이념에 적합하고 군사적으로는 강력하고 높은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군대의 편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13일자 조간신문에 실린 두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분단 46년만에 남북의 학생들이 판문점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남과 북의 학생들이 서로 얼싸안은 사진도 있고 마주보고 웃는 사진도 있다.북한지역방문 취재를 준비중인 서울지역대학 신문기자연합대표 3명과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 대표 3명이 사진의 주인공들.◆그런데 그 사진이 감격스럽기 보다는 생소하게 느껴지고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지난12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남북의 학생들이 마주치는 순간 북쪽 학생들이 먼저 남쪽 학생들을 소련식으로 포옹했고 남쪽 학생들은 잠시 당황했으나 같이 끌어 안았다.북쪽 학생들은 또 회의실중간에 마주앉도록 되어 있는 의자와 책상을 치워버리고 『자유스럽게 이야기하자』면서 북측지역에 다시 자리를 만들었다.◆모든 것이 북쪽 학생들의 뜻대로 되어갔다.이런일들을 자연스런 모습으로 보면 그만이다.그러나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남쪽 학생들은 글자 그대로 학생이지만 북쪽 학생들은 「학생」의 가면을 쓴 이른바 「통일일꾼」들.◆남북 학생들의 나이만 비교해 보아도 그런 사정은 금방 드러난다.남쪽 대표들은 모두가 20살을 갓 넘겼지만 북쪽 대표들은 26살,27살,32살.북쪽에도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대학생들이 많지만 이날 나온 북쪽 대표들은 군대와 직장을 거쳐 당에서 특별훈련까지 받은 통일전선의 전위대라고 봐야한다.◆그렇다면 북한의 의도는 불을 보듯 뻔하다.지난12일부터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범민족서울대회」를 부추기기 위한 선동굿판에 남쪽의 학생기자들을 이용해 보자는 것.우리는 모르고 끌려가고 때로는 알면서 따라가는등 선전·선동·전술면에서는 그들에게 말려드는 인상.천하대세는 이미 우리편.「통일」「민족」「민주」라는 마술적 용어에 걸려 북의 장단에 춤추는 어리석은 놀음일랑 이제 그만했으면.
  • 이념 자유화/경제 사유화/정치 다원화/군대 국유화

    ◎중국,「신4화」 배격운동/전국에 공작소조… 「물든 당원」 엄벌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개혁·개방정책으로 생겨나고 있는 ▲이념의 자유화 ▲경제의 사유화 ▲정치적 다원화 ▲군대의 국유화등 이른바 「신4화」가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를 위협하는 당면과제로 인식,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급 당조직내에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공작소조(실무대책반)을 설치,운영키로 했다고 홍콩 스탠더드지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을 인용,이같은 「신4화」움직임이 자본주의로 나아가려는 위험한 생각으로 현 사회주의 중국정권을 위협하는 최대의 당면과제로 간주,철저히 배척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탠더드지는 중국지도부가 소련의 자본주의화에 자극받아 지난7월초 「신4화」방지를 위한 공작소조결성을 결정했으며 그 범위는 중앙당으로부터 각 지역당과 말단의 공장 당조직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탠더드지가 인용한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의 기능 및 역할은 당정치국상무위원 교석이 서기직을 맡아이끌어 가고 있는 막강한 당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기능 및 역할과 유사한 것이나 그 주임무가 당내 「신4화」추세의 확산을 저지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이에따라 「신4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 당원들은 각급 공작소조의 엄중한 처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 공작소조는 또한 「사회주의 정치교육」을 통해 당의 세포조직을 강화하고 당원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고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중국지도부는 소련을 자본주의 경향으로 돌아서게 한 주원인도 자산계급 자유화,경제시장화,정치다원화 및 군대의 국유화 등 「4화」풍조 때문인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소식통은 당내의 이같은 결정과 병행하여 당중앙통일전선공작부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지도노선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부문서를 8개 민주당파에 회람시켰다고 밝혔다. ◎“사회주의체제 고수” 결의 표명/“개방 틈타 들어온 「자본주의 불순물」”/당내 권력투쟁서 보수파 득세 입증 중국공산당이 최근「신4화」노선을 적극 배격해나가기로 결정한 것은 소련·동구등 전세계의 탈공산화 움직임에 아랑곳없이 현 사회주의체제를 기필코 수호해 나가겠다는 결의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에 걸쳐 등소평이 주도한 4개 현대화(경제·농업·국방·과학기술)와 함께 개혁·개방정책을 적극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사회 곳곳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적잖이 스며들었다고 보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건을 6·4천안문사태로 간주하고 있다. 등소평은 당초 경제부문에만 개방·개혁정책을 적용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일부 도입함으로써 국가 현대화를 달성하자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정치부문에까지 개혁·개방물결이 스며들어 급기야는 천안문사태등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자 이른바 4항원칙(공산당 영도,사회주의노선,프롤레타리아독재,마르크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을 줄곧 강조해왔다. 이같은 4원칙을 엄격히 지켜오고 있음에도 국외에서는 탈공산화바람이 거세게 불고 국내에서도 자유화불씨가 사그러들지 않자 『이번에 「신4화」배격운동을 펼치게 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이같은 사실은 당내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권력투쟁에서 보수파가 확고한 우위를 차지했음을 말해주고 있다.천안문사태 직후 주도권을 잃은 개혁파는 올해들어 추가화·주용기등 개혁파의 부총리 등용,조자양 심복들의 정계복귀,개혁위주의 8차5개년계획채택 등으로 다시 보수파를 압도하는 듯했으나 지난7월1일 당창건70주년을 계기로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당시 강택민당총서기는 기념사에서 『중국공산당은 결코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식 경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등 보수파의 완전승리를 선언하는 듯한 연설을 했다. 개혁파를 이끌어온 등소평 역시 사회주의체제 위협에 대해서는 보수파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그는 최근 『오늘날 사회주의 운명은 십자로에 서있다.중국공산당의 운명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다만 그는 공산당을 살리기 위해서는 경제를 현대화해야 하고 그러자면 개방·개혁이 절실하다고 보는 반면 보수파에서는 개혁·개방보다는 사회주의 방식으로 경제건설을추진해나가자는 것이다. 「신4화」배격운동으로 중국의 개혁정책은 브레이크가 걸린 셈이다.그렇다고 현재와 같은 대외지향적 경제정책이 또다시 자력경생방식으로 되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중국경제는 이미 국제경제의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과거로의 회귀는 중국경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은 적어도 동구사회주의권 붕괴의 도미노위협이 사라질때까지는 집안단속을 철저히 할 것이지만 멀지않아 경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다시 개혁파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 내전몸살 유고/경제난도 심화

    ◎입국자 작년의 40%… 관광수입 크게 줄어/대외채무 1백50억불 육박… 파산기업 속출 공화국들의 이탈로 내홍을 겪고있는 유고는 민족갈등보다 더욱 심각한 재정파탄에 직면해 있다.내전으로 인해 산업이 침체한데다 한해 1천여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렸으나 휴가철을 맞고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재정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있다. 올해초 민족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입국자의 수가 전년도보다 60%나 줄어든데 이어 내전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5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모두 철수,피서철을 맞은 요즈음에는 아드리아해변으로 몰리던 유럽피서객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발길을 돌렸다.유고를 찾는 관광·피서객들의 3분의1은 독일인들이었으나 유고관광을 알선하던 독일관광회사들은 예약취소로 문을 닫는 사태까지 맞고있다.유고의 관광수입은 연국가예산 1천6백만디나(약 90억달러)의 3분의1이상인 37억달러였으나 민족분규로 가장 큰 수입원이 갑자기 말라버린 것이다.아드리아해안을 중심으로 한 피서지는 대부분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속해있으며 이탈리아쪽 일부가 슬로베니아공화국에 포함되어 있는데 예년같으면 관광객들로 붐빌 해변가 호텔의 객실이 지금은 텅텅비어 마치 버려진 건물의 모습을 띠고 있다.독일인 피서객들을 알선해온 유고의 베멕스여행사 마체빅이사는 『내전이후 많은 숙박업소가 문을 닫았으며 관광경기가 다시 살아날지도 현재로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내전으로 인한 재정악화는 관광업뿐만 아니라 공업생산고가 올상반기 23%나 줄어드는등 전산업이 황폐화되고 있어 국가존립의 위기를 맞고있다. 지금까지 4개민족으로 구성된 유고를 결속시켜온것은 티토이즘경제구조로 각공화국이 독자적인 경제운영을 하지만 재정적인 조정은 연방정부가 맡음으로써 공화국들의 이탈을 막아왔다.그러나 티토가 유산으로 남긴 티토이즘국가졍제는 내전상태에 빠지면서 기능이 마비됐고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각 공화국들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유고의 재정운영방식은 연방정부와 각공화국의 수입원을 구분,연방정부는 예산을 중앙은행의 교부금과국경 및 공항의 관세징수금만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각종세금은 각공화국이 거둬들여 사용하도록 되어있다.내전이 한창 치열할때 슬로베니아 민병대가 정부청사 또는 방송국등 주요시설물을 점령하기위해 시가전을 벌이기보다 국경초소를 장악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유도 국경 세관의 업무를 마비시켜 연방정부의 수입원을 봉쇄,연방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자는 의도였다. 유고는 민주화이후 수입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나 마치 곶감 빼먹듯이 얼마 안되는 국고에서 행정기관운영비와 공무원들의 봉급을 지출하고 군대를 운영해오고 있어 얼마동안 버텨나갈지가 의문이다.연방정부의 마렌딕재무장관은 유고의 대외 채무는 1백46억달러에 이르고 있다고 밝히고 당장 외국으로부터 30억달러의 차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공화국들도 최악의 상태에 직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파산하는 기업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연방정부로부터의 지원은 물론 외국자본의 도입마저 막혀있다. 런던의 은행들이 유고에 공여한 72억달러를 현재로서는 상환받을 수 없는상황에서 재정상태가 호전될 전망도 없고 정치적인 장래가 불안한 나라에 차관을 제공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유고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부유한 서구국가들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경제적인 파탄은 세계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유고의 파탄은 강건너 불보듯 구경만하고 있다는 점이다.
  • 유엔시대와 서울∼평양/소 바자노프여사 인터뷰

    ◎“남북이 서로 믿어야 벽이 헐린다”/남쪽이 과감한 통일정책 펴야/북의 유엔가입은 개방의 징후/김정일,이미 전권 장악… 추인만 남아 서울신문 초청으로 방한중인 소련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 부원장 페트로비치 유진 바자노프박사의 부인 나타샤 바자노프씨는 10일 유엔가입이후의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상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인 바자노프여사는 북한문제를 집중연구,소련의 북한문제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중국주재 소련대사관에서 공보관생활을 거치기도 했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급변하는 국제조류에 크게 뒤떨어져 있으며 남과 북이 상호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본격적인 관계개선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소련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인 나타샤 바자노프여사는 10일 기자와 만나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후의 한반도 상황과 향후 북한의 전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지각변동」을 위해선 남북한의 상호 신뢰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한반도는 냉전의 유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장소라고 언급한 그는 남북간의 무제한적인 군비경쟁,휴전선을 따라 배치된 엄청난 병력,그리고 강한 상호 불신등이 해소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것 이라고 내다보았다. ○상대의 주장 백안시 바자노프여사는 또 북한내부의 권력승계문제와 관련,『이미 김정일은 모든 권력을 장악했으며 단지 형식적인 추인절차만을 남겨놓고 있다』면서 앞으로 있을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점쳤다.그는 이어 김정일체제가 확립된뒤 안정적인 정권운영이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에 『김정일은 김일성만큼의 정권유지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몰락까지는 가지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남북관계개선의 최대 걸림돌은 무엇인가. ▲남북한 공히 서로의 주장을 백안시 하는 것이다.북한은 남북간의 교류가 본격화 될 경우 자신들의 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남한은 북한의 정치선전 공세가 사회혼란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한다.그러나 모든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남한이 과감하게 통일을 위한 관계개선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남쪽선 현실적 접근 ­통일과 관련,남북한간에는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하리라고 보는가. ▲근본적으로 남북간에는 큰 시각차가 있다.남측은 현실적 접근을 시도하는 반면 북측은 극적인 대타결을 꾀하고 있다.그러나 이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본다.상이한 남북간의 주장은 점차 정반합의 원리를 통해 한목소리로 수렴될 것이다.그리고 이같은 조짐은 벌써 북한의 유엔가입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개방속도 내부변수에 ­소련의 입장이 예전과 달리 북한의 통일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있다.바자노프여사는 개인적으로 우리측의 통일방안과 북한측의 통일방안중 어느것을 선호하는가. ▲최근들어 소련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과 북 어느편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특히 통일문제는 한국인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개인적으로는 점진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남한의 통일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으로 북한의 개방은 필연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북한의 향후 전망은 어떠한가. ▲동구몰락이후 세계적인 추세는 개방쪽으로 흘러 가고 있다.이같은 분위기는 한반도 북쪽의 「동토의 나라」에도 이미 유입됐다.북한이 유엔에 가입했다는 것 자체가 개방의 조짐이다.북한이 필연적으로 문호를 열지않을 수 없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그러나 그 시기와 속도는 내부변수가 많아 단정하기 힘들다. ○중국내락을 받아야 ­현재 김정일의 권력행사는 어느정도 이며 김정일이 언제쯤 후계자로 공식화 될 것인가. ▲김정일은 이미 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김일성은 단지 기본적인 정책방향의 틀만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명되기 위해선 공산주의 장형격인 중국의 내락을 받아야 하는데 국제여론을 의식,중국이 김정일의 방중을 허락하고 있지 않아 추인절차는 다소 시간이 걸릴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이같은 행위는 단지 요식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권력승계는 이루어 진 것으로 봐야 한다. ○동구식 혁명 불가능 ­김정일 후계구도가 확립된뒤 그의 안정적인 정권운영이 가능하겠는가.그리고 예상되는 북한의 개방정책이 불러올 체제위기를 김부자는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김정일정권은 김일성정권 만큼 확고한 지지기반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김정일정권이 당내부의 반발로 불안에 직면하지도 않을 것이다.김정일은 군대와 정보조직을 장악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불완전하지만 당을 지배하고 있다.북한에서 민중소요나 루마니아식의 자유화 혁명은 불가능 하다.만에 하나 권력의 이상변동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권력암투에서 비롯될 뿐이다.하지만 아직까지는 이같은 궁중혁명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국제경제학 박사 □소련과학아카데미 동양학연구소 북한담당 수석연구원 역임 □주중 소련대사관 근무 □동양학연구소 수석연구원(현)
  • “자유·빵없는 조국은 싫다”/알바니아인 수만명,또 이로 대탈출

    ◎군의 삼엄한 통제 뚫고 화물선 승선/이선 송환 착수… 외교문제로 비화 자유와 풍요로운 삶을 동경하는 알바니아인들의 대탈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지난 3월의 대탈주극에 이어 또 다시 필사적인 대규모 국외탈출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만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은 8일 알바니아 화물선 블로라호를 타고 이탈리아 바리항에 도착했다. 알바니아인들이 이같이 계속 해외로 탈출하고 있는 가장 큰 동기는 오랜 가난과 억압받던 생활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때문이다. 알바니아는 대변혁의 물결이 동유럽을 휩쓸때도 개혁을 거부하고 「동유럽의 마지막 고도」로 남았었다.그러나 지난해 5월부터 집권공산당이 부분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단절됐던 외부세계와의 관계가 열리면서 알바니아인들은 통제받고 가난한 자신들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알바니아경제는 지난 40여년간 알바니아를 통치한 공산주의자 호자의 철저한 고립정책으로 파탄에 빠졌다.알바니아의 1인당 GNP는 1천2백달러에 불과하고 외채는 3억5천만달러이며 3백30만 인구중 실업자는 5만명에 이른다. 알바니아는 호자의 뒤를 이어 집권한 알리아대통령의 부분적 개혁정책으로 지난 3월 다당제총선을 실시하고 최초의 비공산연립정부가 구성되는등 점진적으로 개방되고 있다.알바니아정부는 그러나 해외탈출이 많아지자 이들을 막기위한 강경책을 쓰고 있다.알바니아는 수천명이 몰려들고 있는 아드리드해에 있는 4개 항구에 군대를 동원,통제하고 여객열차의 운행을 중단시켰다. 알바니아인들의 생명을 무릎쓴 탈출은 그러나 그들에게 자유로운 새로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이탈리아정부는 지난 3월의 대탈출 사태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알바니아인들을 되돌려 보내기로 방침을 세우고 대규모 해상및 공중수송작전을 개시했다.이탈리아는 정치적 난민을 받아들이겠지만 경제적 동기의 난민은 불법입국자로 간주,모두 송환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지난 3월 이탈리아로 탈출한 알바니아난민 2만4천여명중 1천2백50명만을 정치적 난민으로 인정하고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을뿐 나머지는 모두 송환시킨바 있다. 이탈리아정부는 이번에도 먼저 도착한 2천여명의 알바니아 난민들을 되돌려 보냈다.알바니아 난민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이탈리아는 알바니아국민들에게 국외탈출중지를 호소하고 있다.이탈리아정부는 또 난민에게 가혹하다는 국제여론을 의식,알바니아정부로부터 송환난민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경제원조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알바니아난민문제는 비단 이탈리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8일에는 알바니아난민을 태운 2척의 화물선이 지중해 몰타에 도착,몰타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와 몰타 항구에 도착한 알바니아 난민외에도 지중해에는 4척의 선박에 타고 있는 수천명의 알바니아인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표류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난민탈출을 막기위해 집안단속을 강화하고 있다.하지만 근본적인 개혁이 없고 경제난이 극복되지 않는 한 「자유와 빵」을 찾아 조국을 떠나는 알바니아인들의 탈출사태를 막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알바니아인들의 탈출은 더 나아가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유고슬라비아의 내전과 함께 발칸반도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 중국,크루즈미사일 개발/「지대공」등 실전에 배치

    【홍콩 연합】 중국은 선진 수준에 도달한 고성능 크루즈 미사일을 자체 개발,실전에 배치했다고 홍콩의 대만계 신문인 성도일보가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을 인용,중국이 자체개발에 성공한 크루즈미사일은 지대함,함대함 및 지대공미사일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들 미사일의 성능 또한 명중률과 위력면에서 상당히 우수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걸프전쟁에서 미국등 선진국 군대가 보인 현대무기의 놀라운 위력에 깊은 충격을 받고 새로운 무기 특히 신형 미사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걸프전 영웅 미 슈워츠코프대장 퇴임

    ◎각계서 스카우트 손길… 정계 진출여부 관심 【탬파(미플로리다주) 외신 종합 연합 특약】 걸프전의 영웅 노먼 슈워츠코프 미육군대장(56)이 이달말 공식 전역을 앞두고 9일 하오11시(한국시간) 미중부군사령관직에서 퇴임,35년간의 군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체니국방장관과 파월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플로리다주 탬파의 맥딜공군기지에서 열린 이날 퇴임식에서 조셉 호어 해병대참모차장에게 지휘봉을 넘긴 슈워츠코프는 미군사상 가장 유명한 상태에서 퇴임하는 장군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파월합참의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세계는 사막과 하늘과 바다에 그가 새긴 승리와 용기의 이야기들때문에 슈워츠코프장군을 알고 있다』고 격찬했고 눈물을 머금은 슈워츠코프는 이임사에서 『역사를 새로 만든 병사 여러분을 나는 영원히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슈워츠코프는 지난 4월 귀국당시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엘리자베스영국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는 등 영광을 한몸에 안았다.또 내년가을 출판예정으로 4백만달러(약30억원)에 계약을 맺었고 순회강연에 나설 때마다 5만달러 이상의 강연료를 받는 등 돈방석에도 올라앉았다. 걸프전 종전직후에는 체니국방장관 및 파월합참의장과 나란히 공화당 부시대통령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되고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영입설까지 나돌았으며 최근에는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공화당후보로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고있어 그의 퇴역후 정계진출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있다.이같이 각계의 스카우트손길이 쇄도함에 따라 직업선택과 정계진출 여부를 자문할 전담에이전트까지 고용해 놓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가하고 그라나다침공작전을 지휘한 영원한 보병으로 키 1백90㎝ 몸무게 1백4㎏의 거구인 슈워츠코프는 1남2녀를 둔 가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앞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 셈이다.
  • 일 자위대 해외로… 「군사대국」 발진

    ◎유엔평화유지군 참여 추진의 안팎/“당사국 동의”등 파병명분 5원칙 마련/평화유지 빌미 파견합리화 속셈/아시아 각국 “군국 부활” 내심 경계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정부의 한 관리는 2일 일본은 유엔평화유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군대의 해외파견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일본정부는 이에 앞서 궁극적으로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세계평화유지군(PKF) 참가 5개 기본 원칙을 마련했다. 5개 기본 원칙은 ▲분쟁당사국의 동의를 얻는다 ▲평화유지군의 활동은 중립적이어야만 된다 ▲무력사용은 정당방위에만 가능하다 ▲분쟁에 말려들 소지가 있을때는 철수한다 ▲평화유지군의 파견은 대상지역에서 정전이 성립될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 등이다. 일본정부는 또 유엔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해외에 파견되는 자위대가 자위목적을 위해서라면 헌법이 금지하는 「무력행사」와는 달리 「무기사용」은 가능하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림으로써 자위대의 무기소지 및 무장을 합법화 할 수 있는 길을열어놓았다. 일본 정부가 이같이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추구한다고 해서 당장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집권 자민당에서 조차도 평화유지군 참가를 위한 5개원칙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자와(소택일낭)전자민당 간사장을 비롯한 이른바 자민당의 매파그룹은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끈질기게 추진하고 있다.자위대의 해외파견 문제는 물론 어제 오늘에 시작된 얘기는 아니다.이같은 논의는 지난 87년 나카소네(중증근)당시 총리에 의해 제기된이후 주변국가들의 우려속에 계속돼 왔다. 나카소네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걸프만의 위기가 고조되자 유조선의 안전을 위해 해상자위대에 소해정 파견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그는 『공해상에 한해서는 법이론상 문제가 없다』고 말해 현행 헌법아래서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공언했다. 걸프전은 「나카소네의 희망」을 실현시켰다.일본의 소해정을 비롯한 6척의 함단이 걸프전이 끝난후인 4월26일 걸프만의 기뢰제거를 위해 「험란한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소해정해외파견은 2차대전이후 제정된 평화헌법의 중요한 금기 하나를 깬 것으로 「전수방위」에 한정돼온 자위대의 개념을 완전히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일본은 겉으로는 자국선박의 보호를 위해 기뢰제거작업에 참여했다든가 국제평화를 위해 소해정을 파견했다라고 말하고 있다.그러면서도 소해정 파견이 자위대의 해외파견에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고 있다.집권 자민당은 소해정 파견이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까지 평가하고 있다. 자위대의 해외파견이 본격화된다면 이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미소의 군축에도 불구하고 군비증강을 계속하는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미 군사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일본의 연간 국방예산은 4조엔을 넘어 미국과 소련에이어 세계3위라고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밝히고 있다.자위대 병력은 25만에 지나지 않지만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일본 자위대의 막강한 군사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일본이 세계군사력의 심장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한다.미국과 소련이 군사력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일본의 최첨단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군사력의 배경없이 하이테크와 정보화의 물결속에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나라다.이러한 일본이 군사력의 배경까지 갖춘다면 세계무대,특히 아시아에서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 안보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원하고 있다.미국도 일본이 아시아 안보체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기를 기대하고 있다.물론 일부 전략가들은 일본의 지나친 정치·군사적 영향력의 확대를 우려하고 있지만 미국은 걸프전 이후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해 왔다. 일본이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도 경제대국에 걸맞는 군사대국으로 등장하며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정부는 최근 자위대의 캄보디아 파견을 강력히 시사했다.일본정부대변인은 캄보디아에 배치될 유엔평화유지군에 자위대를 파견,휴전감시와 함께 수송·보급·의료등 후방지원 업무를 수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같이 기회만 있으면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일본의 자위대 해외파견 움직임은 그러나 과거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본 상품에 의해 이미 「경제침략」을 받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은 자위대가 해외에 파견될 경우 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한 일본의 과거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되지않을까 우려하고 있다.아시아국가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1

    ◎한국부문/북한병력,남침 6일전 38선 집결/“개전 임박” CIA보고 극동 사서 무시/6·25 터지자 백악관·의회·군 “책임 논쟁”/휴일 미 보병학교서 야구중계 보다 “전쟁발발” 뉴스 들어 한국에서의 「미군」은 누구인가­.주한미8군참모장을 역임한 존 싱글로브장군(69)이 펴낸 회고록 「위험한 임무」(HazardousDuty)는 한국전쟁발발 및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77년 두번째 한국근무중 당시 지미 카터 미대통령의 주한미군철수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다 소환되어 강제퇴역 당하는등 소신을 굽힐줄 모르는 강직한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싱글로브장군은 이 회고록에서 6·25는 미 CIA보고에 대한 미국정부의 판단착오 때문에 발생했다고 기술하고 있다.서울신문은 이 회고록을 긴급입수하여 「미군」으로서 체험하고 느낀 주한미군의 한반도에서의 역할과 책임,그리고 공과에 관한 부분을 발췌하여 몇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1950년 6월 25일 비내리는 일요일 새벽,날이 채밝기도 전에 10만여명의 북한인민군이 38선 전역을 가로질러 침공을 개시했다.남한에서는 이들을 편성도 채 갖추지 못한 3개사단 정도가 맞서고 있었다. 당시 한반도는 1945년 2차대전 후 일본인들의 항복을 접수하기 위하여 남쪽은 미군이,북쪽은 소련군이 나누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소련은 탱크와 중화기를 지원하는등 북한 인민군의 무력증강에 많은 투자를 했다.1948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공식적으로 북한땅을 철수한 후에도 수천명의 군사고문단이 잔류,지속적인 군비증강을 꾀했으며 침공을 감행할 무렵에는 13만5천의 병력과 소련사관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만주에서 중국공산당의 전투를 참관한 유능한 장교단들로 구성된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국군은 10만명이 채 못되었으며 미 고문단에 의해 훈련을 받고 미군장비를 갖추고 있었다.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24군단 병력이 공식적으로 철수한 것은 1949년 5월이었으며 군사고문단과 병참요원등 5백여명만이 잔류하고 있었다.한국군에는 탱크는 없고 몇대의 대포만 있을 뿐이었으며 제대로자격을 갖춘 장교도 드물었다.더욱이 소규모 작전의 지휘권까지도 워싱턴에 있었으며 도쿄의 맥아더 극동사령부와는 중계를 통한 무선통신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군은 바로 첫날 새벽부터 현대전 사상 유래가 없는 패주의 행진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한의 방어에 미군을 사용한다는 극동사령부의 임시계획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같이 38선 전역에 걸쳐서,또 다량의 우수한 최신 소련제 탱크의 공격을 예상한 것이 아니고 고작 북으로부터의 소규모 국경충돌이나 게릴라침투 등을 고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다. 내가 한반도에서의 전쟁발발을 안 것은 조지아주 베닝기지에서 였다.그 전날 보병학교에서 대대장교육을 수료한 뒤여서 그날은 숙소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야구중계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중간에 한국전쟁 소식이 스포트로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만주에서 여러해동안 정보업무를 맡아왔던 나로서는 우선 몹시 화가났으며 놀라움에서 불평이 튀어나왔다.그 다음에는 강한 의구심이 일었다.『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 침공을 예측하지 못했는가?』 봄철 내내 38선 전역에서 북한군에 의한 철저한 준비와 위장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의 높아져가는 긴장감을 분명히 CIA와 윌로그비소장 산하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에서 감지했을 것이다. 나는 CIA의 북한 정보망을 내가 직접 작성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의도에 관한 정보를 완벽하게 놓치고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CIA는 1946년부터 48년 사이에 만주로부터 압록강을 건너 잘 훈련된 10여명의 젊은 한국인 정보원들을 북한에 투입했다.극동사령부의 맥아더원수와 윌로그비장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략 조기경고의 특수한 임무를 부여해 북한땅에 헌신적인 반공주의자들을 투입시켰던 것이다. 그후 1949년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CIA는 마침내 서울에 지역본부를 설립했다.나는 그때 CIA의 중국담당 책임자였는데 서울본부는 아주 우수하고 믿을만한 장교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해 중반부터 서울본부에는 북한으로 침투시킨 정보원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상당부분 북한의 전쟁준비 움직임에 대한 경고를 해왔을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후에 CIA에서 한국에 대한 군사정보 임무를 맡아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당시의 민간및 군사정보 책임자들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50년 6월 엄청난 「정보실패」의 미스터리를 풀수 있었다. 그해 봄부터 김일성의 공산당정권은 한국에서의 선거를 비난하고 군사적 도발의 위협을 가하면서 남한에 대한 악랄한 선동공세를 벌여왔다.그러는 가운데 소련지원을 받는 김의 군대는 침공준비를 위해 은밀하게 단계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당시 북한에 있던 우리 정보원들은 이미 북한의 교통시설은 물론 정부기관이나 군내부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앉아 임무수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같은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6월까지 몇몇 정보원들이 북한의 전쟁준비에 대한 특별보고를 해오거나 38선을 실제로 넘어와서 서울에 있는 CIA간부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CIA 서울지역국 보고」라고 명명된 1950년 6월19일자로 된 한 중요한 정보보고를 보면 중장비 등을 수송하기 위한 38선 북측 도로의 확충,1945년이래 소련에 의해 파괴되었던 남측으로의 연결도로에 대한 일제 보수등 광범위한 병력의 움직임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더욱 불길한 징조는 북한의 민간 교통수단들이 북한의 주요 군사기지에서 38선으로 연결되는 철로변에 집결돼 있다는 것이었다.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으며 김일성은 자신이 원할때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병력과 장비를 배치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다. CIA국장 로스코 힐렌쾨터 해군대장은 북한의 침공이 있기 전 닷새의 시간동안 이 평가서는 백악관과 딘 애치슨 국무장관,루이스 존슨 국방장관,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등 트루먼대통령의 군사및 외교정책 핵심참모들에게 전달됐으리라고 확신했다.이 평가서의 요약본은 또한 전통을 통해 도쿄 극동사령부의 맥아더장군과 윌로그비장군에게도 전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군부및 민간의 핵심 정책입안자들은 남침 이전에 이미 북한의 침공의도에 관한 충분한 증거자료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물론 이들 증거자료는 잘 훈련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연적인 의문점이 제기될수 있다.왜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 정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왜 어떤 작은 군사적 행위도 강력한 응징을 받을수 있다는 공식적인 주의를 북한에 주지 않았는가? 왜 적어도 미공군의 정찰기들이 북쪽의 뒤엉킨 산들로부터 단지 세개 뿐인 남쪽으로의 통로를 감시하지 않았는가? 당시 태평양지역에서 일했던 CIA 지역책임자들이 후에 나에게 이 문제들의 해답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윌로그비소장의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는 그해 봄 서울에서 오는 모든 정보들을 분석평가했는데 그것들은 모두 「F6」정보,즉 「미숙한 정보원이 보낸 신빙성이 불투명한 정보」로 분류돼 거들떠보기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어서의 미국의 작전은 맥아더사령관의 관할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정보책임장교는 그 보고들을 심각한 고려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해버렸던 것이다.그러한 등급으로는 워싱턴에서 절대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질 수 없었다. 워싱턴에서 이들 정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힐렌쾨터 CIA국장 한사람 뿐이었다.그러나 그의 임무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그의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무방비상태에서 전쟁은 발발했고 개전 다음날인 26일부터 워싱턴은 한국전쟁발발의 책임문제를 놓고 의회와 백악관,CIA와 극동사령부 정보참모부간에 「정보수집실패」냐 「정보판단실수」냐의 뜨거운 논쟁에 휘말렸다.
  • 유고 휴전협상 또 결렬/크로아공 대표 불참

    ◎북부선 치열한 포격전 계속/EC 중재단 베오그라드 도착 【베오그라드 로이터 AP 연합 특약】 유고의 크로아티아공화국 지도부가 30일에 이어 31일 소집된 연방간부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공화국 군대와 연방군간에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돼 유고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크로아티아공화국의 프란요 투즈만대통령은 30일의 연방간부회의에 불참한데 이어 31일 『간부회의는 전날 세르비아에 동조적인 몬테네그로공화국의 코스티치를 휴전안 초안자로 선정하고 EC의 중재를 방해·책동하는등 건설적이지 못한 결정만 내렸다』는 반박과 함께 연속 불참을 선언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스티페 메시치 유고연방 대통령은 30일 회의에는 중도퇴장했으나 31일 회의에는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유고사태를 중재하려는 EC(유럽공동체)의 고위급 외교관들은 31일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이들 EC중재단은 크로아티아의 휴전을 위한 준비작업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들의 휴전안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외무장관등이 2일 유고를 방문,연방간부들과 함께 서명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31일 새벽에도 크로아티아공화국의 북동쪽 텐예마을에서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져 최소한 5명이 사망,7월 한달동안의 사망자수가 1백명을 넘어섰다고 유고 관영 탄유그통신은 전했다.
  •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13)

    ◎통독위상 맞춰 국방력 증강 박차/「역내작전」개념 탈피,국제경찰역 자임/군장비 대폭 개선… 군사대국화 우려도 독일의 국방개념이 통일당시만해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일원으로 NATO역내의 작전과 유엔평화군의 역할만을 담당하는 범위로 극히 제한적이었으나 걸프전을 계기로 국제질서 유지담당이라는 범위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독일군은 NATO협약에 따라 병력은 37만명으로,작전은 NATO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되어 있지만 통일이후 국제정세의 변화와 걸프전을 계기로 전력의 강화와 작전범위의 확대가 추진되고 있어 인접국들은 독일이 군사강국이 되지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독일군은 정치적인 결정과 법적인 제도가 마련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자체적으로 이미 군사체계 재조정 및 전투력증강작업을 추진하고 있다.통일이 된뒤 정치가들이 국제사회에서 통일독일의 역할증대를 강조하고 있는 동안 국방관계자들은 정치적인 결정이 언제 나느냐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국방장비 개선과 작전지역의 확대방법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국방부감찰관인 벨렐스호프장군은 최근 내부보고를 통해 『이제 독일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은 사라졌지만 먼장래의 위협에 대비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방조직의 개혁과 위협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국방부는 동구와해와 더불어 군사적인 위협이 사라진 이후 독일군이 국제적인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세계 어디든지 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임무를 맡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전능력향상과 제도적인 보장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국방관계자들은 그러나 전투력증강과 작전지역확대를 추가예산과 법개정없이 올해와 비슷한 92년 국방예산 5백25억마르크(총예산 4천2백25억마르크)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져 보인다. 육군의 경우 기존의 25만5천명의 병력중에서 NATO지역을 벗어나 작전을 할수 있도록 기동력이 탁월한 공수사단과 전술사단을 구성할 계획이다.이들 기동부대들은 전투헬기 및 전차파괴용헬기를 보유하며 이동시에도 주로 헬기를 이용,기동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특징이다.육군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레오팔드전차에다 걸프전때 그 성능의 우수성이 입증된 1백40㎜포를 장착할 계획이며 특수임무 수행을 위해 공정부대와 산악부대를 설치할 예정이다.이같은 계획은 걸프전때 수수방관만을 했던 육군이 앞으로 국제적인 분쟁지역에 출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동력과 우수한 장비가 중요하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해군은 지난 3월 자체적으로 2차세계대전이후 북해 일부해역에 국한되어 있던 작전지역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일본에서는 걸프전이 끝난 뒤 페만에 소해정을 파견하는 문제로 한참 시끄러울때 조용히 함정을 보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한스 요하킴만제독은 유엔의 결정에 따라 독일해군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는 원칙과 마찬가지로 독일함대는 앞으로 세계평화와 질서를 지키기위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장기간 출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페만에 출동했던 한 장교는 『우리는 처음으로 NATO지역을 벗어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전쟁지역에서 소해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했다. 독일해군의 작전해역제한 철폐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군함정이 분쟁지역해역에 출동함으로써 군대가 상대방 영토를 침공하지도 않고 정치적인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데다 세계 어느 곳이든지 출동해 장기간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분단시절과는 달리 통일독일의 국제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군사력이 뒷받침 할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은 이같은 이유로 세계 어느 해역이라도 출동할 수 있는 프리기트함 16∼20척을 2005년까기 보유할 계획이며 독일의 북해에서 작전하는데 적합하도록 설계·건조중인 쾌속함들도 원양작전을 할수 있도록 크기를 늘릴 계획이다. 공군도 통일후 국제적인 작전수행을 목표로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공군은 NATO지역을 벗어난 작전에도 참여 한다는 방침아래 장거리 수송체제확립에 주력하고 있다.독일공군이 NATO회원국의 일원으로 협정에 따라 걸프전쟁기간중 이라크와의 국경근처인 터키의 공군기지로 18대의 알파전투기와 4대의 수송기를 이동시키면서 이동능력의 한계를 실감했다.공군은 작전반경을 확대하기위해서는 공중보급기의 확보가 시급하다는 점에서 구동독의 인터푸르그사가 보유하고 있던 에어버스와 4대의 보잉707기를 공중급유기로 구조변경을 하고 있다. 독일은 통일후 기존의 국방체계와 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바꾸기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그러나 국방관계자들은 통일후 정치·경제·외교적으로 독일의 역활이 증대될 것이 분명한만큼 이에 상응하는 국방체계의 개조를 자체적으로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 세계서 가장 긴 휴전… 분단의 벽 언제 헐릴까

    ◎되돌아 본 “판문점 38년”/“냉전의 상징”… 성과없는 회담만 4백60차례 3년1개월이나 계속됐던 6·25전쟁의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전쟁의 포연이 멎은지 38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해도 세번이나 더 바뀔 세월이 흘렀어도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남북2㎞씩의 비무장지대는 변함이 없다. 1953년 7월27일 상오10시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 미육군대장을 대리한 해리슨중장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을 대리한 남일대장 사이에 체결된 휴전협정발효와 함께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휴전회담 회담장을 중심으로 8백m의 원을 그려 유엔군과 공산군의 공동경비구역으로 삼은것이 오늘의 판문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판문점은 세계 뉴스의 초점이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찾는 남북한 방문객의 관광명소가 됐다. 당초 휴전회담은 51년 7월10일 공산측의 통제구역인 개성에서 시작됐다. 공산측의 제의에따라 회담장소를 개성으로 정한 유엔군은 휴게소 건물이나 회의장건물이 모두 공산측의 장악아래 있어 통신이나 경비·왕래 등에 불편함이 많았고 심리적으로도 협상대표들이 압박을 받기도 했다. 51년 10월25일 유엔군측은 당시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판문점을 새로운 회담장소로 제의,공산측과 합의를 보아 옮겼다. 대형 군용천막 4개를 급속히 세우고 통신시설과 도로 등을 닦아 회담장을 설치했다. 2년여동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천막대신 목조건물이 세워졌고 53년 7월27일 역사적인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었다.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현재 판문점공공경비구역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유엔군측의 자유의집,평화의집,일직장교실,초소,막사등이 들어서고 공산측에도 판문각,통일각,경비본부초소,막사등과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실등 10여채의 건물이 들어서있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본회의장은 군대막사형인 단층의 콘크리트건물로 20여평밖에 되지 않는다. 군정위 본회담이 열릴때마다 유엔군측과 공산군측의 내외신기자1백여명과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등 중립국감시위원단장교들이 창문을 통해 회의진행을 지켜본다. 휴전이후 4백60여차례의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이 열렸으나 합의한것은 아무것도 없이 수사학적인 언어의 전투가 계속되고있다. 유엔군측은 지난1월 군정위 수석대표를 미군장성에서 한국군장성으로 교체 임명 발표했으나 공산군측은 한국이 휴전협정에 조인한 당사국이 아니기때문에 대표권이 없다고 주장하며 군정위해체론까지 들고 나오고있다. 한국군의 장성이 군정위 수석대표에 임명된이후 본회담이 열리지 않고있다. 공산측은 『조선문제는 조선사람들끼리 풀어가자』면서도 한국군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고있다. 우리 민족은 부끄럽게도 세계에서 가장 긴 휴전의 역사를 갖게됐다. 휴전협정조문속에는 「통일」에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어 이 불안정한 휴전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 “실질 생활보장,양질의 전투력 확보”/하사관 처우개선의 배경

    ◎전역 막게 봉급 현실화… 국영기업의 90%선 인상/“계급 다단계화”… 하사 2년 복무땐 전원 중사 진급 국방부가 22일 마련한 하사관처우개선책은 육·해·공군·해병대의 근간인 하사관들이 낮은 봉급,근무여건의 열악,군내외의 낮은 인식 등으로 전역원을 내는 장기하사관들이 늘어나 이를 방지,양질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제6공화국이 들어선 88년부터 각 군에서는 하사관들의 전역희망률이 높아져 정상적인 군부대운영과 각군 특성에 맞는 고유전력 유지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특히 해군과 공군의 경우 하사관들은 대부분 고된 함상근무와 야근을 자주해야 하는 무장·정비·통신·레이다기지 등에서 근무하는 기술하사관들로 전역 희망률은 50%가 넘고 있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부대장들은 말하고 있다. 하사관의 현인원은 65만 군전체병력의 12∼13%선인 8만여명 수준이다. 이중 지난해에 약11%가 전역했으며 올해에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국방부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공군의 일선부대에서는 일부기술하사관들이 민간항공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집단으로 전역원을 제출했다가 당국의 불허조치에 불복,집단으로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공군기술하사관들은 군대생활을 계속할 경우 비상대기,일직근무,잦은야근 등으로 근무가 힘든데다 봉급수준은 민간회사의 절반정도밖에 되지 않고 또 잦은 인사명령으로 전국의 기지를 돌아다녀야해 자녀교육이나 주택마련이 어렵다고 판단해서 전역원을 내는 경우가 많다. 현재 4계급제도로 되어 있는 하사관의 계급은 하사 1호봉이 20만4천7백원,중사 1호봉은 24만5천2백원,이등상사 1호봉은 30만9천1백원,일등상사 1호봉은 45만7천4백원 등으로 도시근로자 생계비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일등상사가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진급을 하는 경우에도 15년이 걸리며 주택을 마련하는 경우는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국방부는 이번 개선책에서 일등상사위에 특무상사제도를 신설,5계급제도로 만들고 비무장지대와 함정근무·항공정비직종의 특수수당을 대폭 늘려 현 국영기업체의 70%수준인 보수를 90%로 향상하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 하사 40세,중사 45세,이등상사 50세,일등상사 53세 등의 연령정년을 4∼6년씩 연장하고 하사 2년만에 전원이 중사로 진급할 수 있도록 진급관리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20%에 이르고 있는 주택보급률을 95년까지 60%로 향상시키기 위해 1만3천6백50가구의 관사를 건설하고 군인공제회의 주택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주택자금을 융자·알선하며 주택청약우대제도를 관계기관과 협의해 마련키로 했다. 또 과거에는 장교들에게만 실시하던 일반대학 위탁교육을 하사관들에게도 시행하며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만 지급하던 자녀학비보조를 대학까지 확대,실질적인 봉급인상효과를 갖도록 했다. 국방부는 또 「만년사병」이라는 하사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장교수준의 계급장 및 정복을 마련하고 계급대신 보직에다 「님」자를 붙이는 등 호칭을 개선키로 했다.또 주임상사의 활동비를 대폭 늘리고 지휘관과 같은 크기의 집무실을 마련해 주는 한편 국립묘지에 하사관묘역 신설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처우개선책만으로는 하사관전역률을 낮출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경제의 발전과 국제화·개방화·민주화에 따른 사회의 전문기술인력에 대한 수요증가로 기술하사관들의 전역률은 해마다 늘어날 전망이다. 안보적 상황이 우리와 다른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하사관들에게는 각종 혜택과 정책적인 배려를 해줌으로써 우수인력들이 투철한 사명감과 왕성한 사기로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볼때 우리도 이제는 하사관들에게 일방적인 애국심만으로 근무를 해달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점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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