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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유고 파병 합의/서구동맹

    【런던·사라예보 AFP 로이터 연합】 서구동맹(WEU)은 28일 구유고에 있어서의 유엔의 활동을 돕기 위해 약 5천명의 군대와 관련장비를 보낼 것을 다짐했으나 서방 각료들은 구유고 사태에 관한 런던 국제회의의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으로 평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WEU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에밀리오 콜롬보 외무장관은 이날 이곳에서 열린 WEU외무·국방장관 회담이 끝난후 WEU가 유엔의 활동을 돕기 위해 근 5천명의 군대와 장비를 보내기로 했다면서 지원장비중에는 수송·감시·병참장비가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역경 딛고 민주화·개혁기수 40년

    ◎「거산」의 정치역정… 집권당총재가 되기까지/25세에 국회입문… 9선에 야총재 4번 역임/한때 연금 등 핍박… “구국일념” 3당통합 결행/대학땐 학생운동 몰두… 「6·25」 나자 의용대 지원도 「정치 거산」김영삼총재는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제1인자이다.신장 1백68㎝,체중 66㎏,아담한 체구,미소띤 동안의 그는 어떤 역정을 거쳐 이 자리에 섰는가.65년동안 살아오면서 40년간을 민주화투쟁과 정치개혁의 일선에서 기수역할을 해온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9선의원에 야당총재를 4차례나 역임하고 다시 집권당총재로 선출된 그의 진기한 기록은 앞으로 찾기어려울 한국 정치사의 기념비로 꼽힌다.그의 연륜과 불굴의 정치역정을 조감해보면 그가 왜 오늘 이자리에 섰으며 또한 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유복한 어린시절 ▷출생◁ 김총재는 1927년12월20일(음력)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씨(82·마산거주)는 당시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씨(60년작고)는 대가집며느리답게 손도 컸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령김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총재는 여동생만 다섯을 둔 외아들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김총재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정치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된것으로 보인다.어머니 박씨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김총재식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영·축구에 소질 ▷성장◁ 아호가 거산인 김총재는 거제 장목소학교를 거쳐 통영중학교에 진학하고 45년해방과 함께 부산에 있던 경남중학교(6년제)3학년에 편입했다.43년4월에 입학한 통영중학시절 김총재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수영과 씨름을 잘하는 학생으로 동창생들에게 기억되고있다.김총재가 당시 한국인학생들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일은 아직도 주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44년 전근하는 교장의 이삿짐을 나르면서 곡물자루에 구멍을 내고 잡동사니를 채워넣은 사건으로 영삼학생은 통영경찰서 고등계에까지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이다.해방이 되던해 11월 영삼군은 경남중으로 전학했다.학업성적은 중상정도였으며 문학과 역사과목에서 재능을 보였다. ○정치학수업 열심 ▷대학시절◁ 김총재는 47년9월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했다.김총재가 철학과를 지망하게 된것은 당시 모교인 경남중 안용백교장의 영향이 컸던것으로 알려져있다.경성제대 철학과 출신인 안교장이 학생들에게 윤리교육을 통해 많은 교훈을 주었으며 김총재의 학과선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했다.철학과 동기생은 김총재와 이한조씨(서강대 명예교수)등 모두 7명.그들은 김총재가 대학시절 철학과수업보다는 웅변부에 가입하는등 학생활동에 열성적이었다고 기억한다.당시 정치학과에 다녔던 이규원씨(현대문예사대표)는 영삼학생이 정치학과 수업에 열심히 나왔고 웅변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정치학과에 다니던 손도심씨(작고·전서울신문사장)와 「순학회」라는 우익단체를 만들어 낭산 김준연,창랑 장택상씨등을 초빙해 강연회도 갖는 등 학생운동에도 열심이었다.김총재는 51년5월 서울대를 졸업했는데 졸업논문제목은 「칸트에 관한 소고」였다. ▷군대시절◁ 김총재는 전쟁이 한창이던 50년10월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감으로써 군생활을 시작했다.「군번은 E135」.그러나 전투병으로 전쟁에 참가한것이 아니라 후방 정훈교육요원으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대북방송담당으로 일했다.김총재는 이시절을 매일 1시간동안 직접 원고를 써서 군가를 섞어가며 대북방송을 했는데 날마다 다른말을 하려니 무척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대북방송을 맡은지 8개월쯤 지난후 김총재는 당시 장택상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에 발탁되면서 군생활도 마감했다.김총재는 80년봄과 87년 대선에서 군복무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정적들의 공격을 받았으나 김총재의 복무사실에 대해서는 당시 김상구씨(유도회총본부회장)등 학도의용대관계자들이 확인해주고 있다. ○거제서 최연소 당선 ▷정치입문◁ 창랑 장택상과의 만남은 일찌감치 정치에의 꿈을 키워오던 김총재에게 현실정치입문의 계기가 됐다.서울대2학년때 정부수립기념 웅변대회에서창랑과 인연을 맺은 김총재는 50년 5월 경북 칠곡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창랑의 지원유세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몸에 익혔다.이후 51년 학도의용대 복무중 장택상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서관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수업을 받았다.장택상씨가 총리가 되면서 인사담당비서관도 지냈다.53년 창랑이 총리직을 사임하자 김총재는 다음해 5월 실시될 3대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거제로 돌아왔다.무소속출마를 준비중이던 김영삼은 선거 열흘전 유력한 무소속후보를 찾던 자유당의 눈에 띄어 정당공천을 받게 됐다. 첫 선거결과 김영삼후보는 총2만7백70표를 얻어 차점자인 1만4천1백10표의 서순영씨(작고)를 누르고 만25년6개월의 나이로 금배지를 달았다. ○사사오입에 반대 ▷야당시절◁ 사사오입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탈당한 김영삼청년의원은 당시 야당인 민국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호헌동지회에 가입함으로써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30여년 야당인이 된다.55년9월 민주당이 창당되자 김영삼은 중앙당청년부장겸 경남도당부위원장을 맡았다.당내에서는 선이 굵은 조병옥박사의 계보인 구파로 분류됐다.김총재는 이때 56년·60년 2차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조박사를 쫓아 다니며 승부사의 정치감각을 익혔다고 한다.3대의원시절 김영삼의원은 대구매일피습사건·김창용특무대장암살사건 등의 진상규명에 뛰어난 활약을 했다.58년 4대총선에서 민주당후보였던 김영삼은 부산서갑에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당시 선거는 자유당말기로 선거부정의 공방이 치열했으며 김영삼후보는 선거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진행도중 4·19를 맞게된다. 4·19이후 5대 7·29총선에서 부산서갑에 다시 출마해 차점자를 무려 3배이상 표차로 제치고 원내에 복귀했다. 이후 김총재는 정치규제에 묶였던 11,12대를 제외하고 내리 9선에 달하는 헌정사상 최고다선을 기록했다. 김영삼의원의 활약은 5·16이후 구성된 6대국회부터 두드러졌다.김영삼의원은 제1야당의 대변인으로서 한일협정서명,공화당창당과 관련한 4대의혹사건,월남파병문제등 굵직굵직한 정치쟁점에 능숙히 대처함으로써 위상이 높아졌다. ○대선 낙선,좌절도 74년과 79년 신민당총재에 두차례 선출됐고 87년 통일민주당 총재와 13대 대통령후보에 이르기까지 줄곧 야당의 정상을 지켜온 그였지만 이기간중 두차례 2년간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총재직정지가처분및 의원직제명,정치활동규제등 핍박은 그를 불굴의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실패로 대통령선거에 낙선하고 이후 88년 4월총선에서는 제2야당으로 전락하는 좌절의 시기도 겪었다. ▷3당통합◁ 김총재는 90년 1월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으로 당시 노태우민정당총재·김종필공화당총재와 3당통합을 결행,오늘날에 이르렀다. 89년 당시 민주당총재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해 미수교국과의 초당외교의 첫걸음을 내디뎠으며 90년 3당합당후 민자당대표로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하는등 정당외교사의 새지평을 열었다. 민자당출범후 2년반여동안 계파간 갈등속에서도 꾸준히 여권2인자의 자리를 지켜 드디어 대통령후보경선을 치렀고 총재에 선출됐다. ▷가족관계·사생활◁ 김총재는 51년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혜영(39·연대 도서관학과졸)·혜경(37·이대 음대졸)·은철(36·한대 열공학과졸)·현철(33·고대 사학과졸)·혜숙씨(31·이대 음대대학원졸)등 2남3녀를 두고 있다. 25년째 상도동 인근 산에 올라 4㎞씩 조깅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으며 술은 마주앙 1∼2잔 정도며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과거 양주2병에 하루 서너갑씩 담배를 피우기도 했으나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과감히 끊어버렸다.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현재 충현교회 장로이다. 좌우명은 「대도무문」으로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의 붓글씨를 써넣어 구운 도자기를 선물하기도 한다.
  • “강력한 정부 깨끗한 정치” 천명/「YS총재」 국정청사진을 보면

    ◎문민시대 걸맞는 사회적 처방 제시/단계적 통일론·경제 활성화 밝힐듯/“인사는 만사”… 지역차별 철저배제 약속 민자당 지도체제가 개편됨에 따라 새로운 정치에의 기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영삼총재권한대행은 28일 총재수락연설에 이어 9월초에 있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통치철학등 국가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민자당은 특히 총재수락연설에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계획아래 그동안 황인성정책위의장,김덕용총재비서실장,서상목정책조정실장,강인섭·남재희전의원,최창윤비서실장,박재윤경제·오인환정치·이경재공보특보,김중위정무·한리헌경제·김무성정책보좌역,당홍보위원장인 박관용의원,이원종부대변인등과 사회 각계 각층의 자문교수단을 총동원,수락연설에 담을 내용에 대해 숙의를 거듭해왔다. ○…김권한대행은 총재로 선출된뒤 30여분간의 수락연설을 통해 소감을 피력한데 이어 총론적 수준에서 우리나라사회전반에 관한 현실인식및 이에 대한 처방책을 제시할 계획이다. 수락연설의 핵심은 「변화와개혁」이라는게 측근들의 설명. 순수한 민간인출신인데다 야당생활로 대부분을 보낸 김권한대행을 여당의 총재로 선출한 것은 국민들이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 이와함께 지금까지 밝혀온대로 「강력한 지도력과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할 계획. 특히 정권교체기를 맞아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고 있고 통치력의 누수도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기강해이와 무질서,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집단이기주의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이와관련,『과거처럼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정치선언이나 공약을 제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병리를 진단한뒤 이를 치유하겠다는 철학과 의지를 표방하고,말로써가 아닌 행동과 결단으로 국민의 시름을 덜어주는 생활의 정치를 다짐하게 될것』이라고 역설. ○…김권한대행은 이같은 기조위에서 정치·경제·사회부문등 각분야에서 원론적 수준의 정책지표와 정책의 일관성을 제시한다는 방침.특히 강력한 지도력과 깨끗한 정치는 인사의 공정성에서나오므로 「인사는 만사」라는 방침아래 지역차별을 배제한 획기적인 인사정책을 단행,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인사불만과 불평을 해소할 것을 표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함께 김권한대행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상도동 자택뿐임을 공개하고 대통령이 될 경우 재산을 조금도늘리지 않겠다며 「도덕성」을 강조할 방침. 경제분야에서는 민간분야의 자율성과 창의성및 정책결정에의 참여기회 확대,땀을 흘린 사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경제정의의 실현과 경제활력창출을 위한 행정조직의 재편,중소기업및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과감한 지원과 투자등을 제시하고 국민들에게도 우리의 현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당부한다는 계획. 사회부문에서는 집권하면 재임중 부정부패를 반드시 척결하고 정경유착과 이권개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할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성급한 낙관론이나 이상론에 경계를 표하고,휴전체제의 안정적 유지와 신뢰구축을 전제로 「핵문제의 해결­이산가족등 남북간 인적교류­남북경제협력」등 단계적 통일론을 제시할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 이밖에도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한 당내민주주의의 확립,군의 정예화·전문화·경제화를 통한 국민군대로서의 위상확립과 한미연합작전체제의 유지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김권한대행의 측근들은 수락연설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으며 앞으로 기자회견이나 대통령선거공약등을 통해 점차 가시화될 것이라고 설명. 한 측근은 『수락연설에는 30년이상 정치에 몸담아오면서 가장 자생력있는 정치지도자로 커온 김권한대행의 통치철학이 담겨 있다』면서 『기본적인 뿌리와 줄기는 생성이 돼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기와 뿌리를 뻗쳐나갈 것』이라고 비유.이 측근은 또 『김권한대행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국민여론』이라며 여론에 부응하는 강력한 정치를 해나갈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여론이 잘못됐을 때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계도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 일부에서는 수락연설에서 노태우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내세울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측근들은 28일의 행사는 축제분위기로 이끌게 될것이라고 강조.한 측근은 이와관련,『9월초 정식기자회견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책의 방향이 제시될 것』이라고 말해 노대통령과의 「차별화」정책도 점차 가시화해나갈 것임을 시사.
  • 팔레스타인 게릴라/「이」 비밀부대 급습

    【제닌(이스라엘) AFP 로이터 연합】 제6차 중동평화회담이 워싱턴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 비밀부대원들이 26일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내 한 가정집을 급습,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들과 총격전을 벌여 쌍방 3명이 숨지고 민간인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날 총격전은 비밀부대원들이 지난 2월 이스라엘 보안군을 총살하고 아랍 민간인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게릴라들이 숨어 있는 한 건물을 급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이스라엘 군대변인이 밝혔다.
  • 이선념 사위가 한·중수교 공신

    ◎중국군대령 유아주… 등도 신뢰/수차 한국방문,밀사로 맹활약 고 이선념 중국정치협상회의주석의 사위인 유아주가 한중수교의 숨은 공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현역대령인 군인의 신분으로 작가생활을 하고 있는 유는 최근 대만을 비밀리에 방문,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홍콩경제일보 보도(21일자)에 따르면 유가 한중관계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8년 서울에서 열린 제51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중국대표단장으로 참석하면서부터.유는 당시 회의에는 별로 참석하지 않고 노태우대통령과의 면담을 비롯한 한국고위관계자들과의 면담에만 신경을 쏟았었다. 유는 귀국후 이붕총리에게 『남한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는게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이붕에게 대한국교수립이 오히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해 조속한 대한수교 원칙을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붕총리는 이같은 유의 의견을 최고지도자인 등소평과 의논,대한문제책임자인 전기운부총리에게 유를 천거했고 유는 그이후 서울을 수차례 오갈 때마다 노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경제계의 지도자들을 만나 한중수교의 밀사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 북방외교의 완성(사설)

    한·중수교는 노태우대통령이 지난88년 7·7선언을 통해 천명한 북방정책의 완결편이다.7·7선언이후 정부는 소련·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적극 추진한 결과,지난89년 헝가리와의 수교를 시발로 90년에 소련과 국교를 정상화했고 작년엔 남북한유엔가입을 실현시켰다.그리고 이번에 마지막 과제인 중국과의 수교문제를 타결함으로써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6공화국이 집념을 갖고 추진해온 북방정책이야말로 세계의 변화를 꿰뚫어 본 선견지명의 도전이었으며,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한국외교에서 우리의 저력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한중수교의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이번 수교를 통해 한국은 한반도 주변 4강과의 관계정상화를 완결했다.한반도안정구도의 정착과 평화통일을 위한 외교적 토대구축이 완료된 셈이다.우리는 한중수교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한중수교는 남북한관계의 실질적 발전과 미·일의 대북한 관계개선에도 도움이 됨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동북아냉전체제를 새로운 평화질서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촉진할 것이다. 한중양국은 24일 발표할 외교관계 수립 공동성명에서 중국의 6·25참전문제에 관해서도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중국은 6·25동란때 김일성정권을 돕기위해 수십만명의 군대를 의용군이란 이름으로 파병했다.이로 인해 우리 한국민은 큰 고통과 희생을 당했다.무엇보다도 안타까웠던 것은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공함으로써 목전에 다가왔던 북진통일이 그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좌절됐다는 사실이다.우리 입장에서 볼때 모택동 치하의 중국은 한반도통일의 방해자였다. 이번에 중국은 6·25참전에 대해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불가피한 파병이었다고 해명하며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우리에게는 미흡하게 들리는 유감표명이긴 하나,수교에 앞서 짚을 것은 일단 짚게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인정하는 바이다. 중소이념분쟁과 동서냉전으로 동북아에서 불안이 고조되고 있던 지난 61년 체결된 중국과 북한간의 우호협조및 상호원조조약도 우리에게는 걸리는 대목이다.왜냐하면 이 조약내용중 일부가 군사협조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지금은 동서간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한·중간에 국교가 수립되기 때문에 이 조약의 배경과 기초가 달라지고 그 의미도 많이 변질됐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6·25의 기억이 생생한 우리로선 이 조약의 잠재적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정부는 중국정부에 대해 우리의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한중수교는 우리에게 본격적인 4강외교시대의 돌입을 예고하는 것이다.또한 북방정책에 집중시켰던 우리 외교역량을 전방위외교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북방외교의 요체는 통일의 문을 열고 통일로 가는 길을 닦자는 것이었다.정부는 북방외교의 완성에 자족하지 말고 새로운 전방위통일외교의 청사진을 만들어서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그 집념을 다시 살려나가야 한다.
  • “한산도해저 거북선 존재 확신”/발굴단장 황동환 해군대령

    ◎탐사 2년만에 임란최고 유물 발견 『이번에 발견한 총통은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이 그동안 발굴한 각종 유물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것입니다』 총통을 발견해낸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장 황동환해군대령은 총통의 발견으로 거북선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발굴단은 지난 90년부터 임진왜란 당시 해전이 벌어진 남해 앞바다를 중심으로 발굴작업을 벌여 8번째의 탐사에서 총통을 건져올리는 개가를 올렸다. 황대령은 『그동안의 발굴을 통해 각종 해전때 사용됐던 화살촉·철환·도기류 침목선발의 잔해등 각종 유물을 인양했다』고 말했다. 황대령은 별 황자총통의 역사적 가치외에도 이번 발굴을 계기로 앞으로 더많은 해저유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도자기등 많은 유물을 싣고 가던 배가 6백년동안 신안앞 바다밑에 묻혀 있다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거북선이 원형대로 묻혀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해군은 총통이 발견된 지점을 중심으로 한산도및 당포근해를 집중 탐사할 계획이다.
  • 극단 미추,태평양연극제 참가

    ◎23∼3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서/한국전쟁 소재 「오장군의 발톱」 공연 극단 미추(대표 손진책)가 오는 23일부터 30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제1회 태평양국제연극제에 한국대표로 참가한다. 극단 미추가 공연할 작품은 극작가 박조열씨가 쓴 「오장군의 발톱」. 「오장군의 발톱」은 한국전쟁의 체험을 소재로 삼은 휴머니즘극.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직한 병사로 낙인찍인 오장군은 마침내 전선에 배치된다.전쟁의 와중에서 오장군은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려던 자군의 계략에 빠져 첩보원으로 오인돼 총살당한다.한편 오장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사무착오로 징집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군대로 아들을 찾아오나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아들의 차가운 시신뿐이다. 이 작품은 당국의 공연불허로 탈고이후 15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지난 88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초연돼 이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작품상,연출상,희곡상등을 수상했다. 이번 공연은 망자굿 형식을 빌어 무속의 현대극에의도입을 시도한다. 한편 극단 미추는 블라디보스토크 고리키극장에서 한국교민들을 위한 특별공연도 가질 계획이다. 연출 손진책,안무 국수호,김성녀 이원종 김종업등 출연.
  • 유고 회교도 지원/걸프국,대책 강구

    【마나마(스페인) AFP 연합】 사우디 아라비아·쿠웨이트등 걸프협력회의(GCC)회교6개국은 유고사태 격화에 따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다수 거주하고 있는 회교도들을 지원하기 위해 수천만달러를 모금하는등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중이라고 현지 소식통이 14일 전했다. 걸프지역 각국은 현재 「인종청소」등 각종 비인간적 만행이 벌어지고 있는 보스니아내 참상과 관련,무기와 군대를 지원하자는 요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각국 정부도 보스니아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는 세르비아를 「침략자」로 규정,비난하고 나섰다.
  • 참다운 광복을 성취하는 길(사설)

    우리에게 있어 8·15해방은 왜 다시찾은 빛이며 되찾은 정신이었는가.마흔일곱돌 광복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은 참으로 필요하다.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요컨대 8·15해방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보자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다가 당연한 대답일 터이지만 그것이 틀린답은 아니더라도 오늘에 우리가 구하고자하는 정답은 아니다.일본이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남북한이 통일의 예비작업을 다지고 있으며 세계가 탈냉전·긴장완화·새질서를 구가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8·15의 의미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일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러면 그 정답은 무엇이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결론컨대 광복은 질곡과 인고 굴종과 타율로부터의 탈출 다시말해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의 계기였을 뿐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니었다.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할일은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강조컨대 그것은 지난47년의 세월동안 되풀이됐던 시련과 좌절 분열과 대결,도전과 실패의 악순환을마감하고 60·70년대 이땅에 충만했던 자신감과 성취욕을 되찾아 다시 한번 굳게서는 「자기확신」과 「자기확립」을 말한다. 노태우대통령이 광복절경축사에서 지적한바 긍지와 자신감을 갖지못한 민족이 위대한 시대를 열수는 없다.「새로운 힘과 용기」로 다시 달려갈때 광복47년,건국44주년의 의미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러 이제 8·15는 우리에게 다음의 몇가지 의미를 새롭게 한다.첫째 참된 광복의 정신과 의의를 되찾는 일이요,둘째 한때 전력으로 질주하여 많은 것을 성취했던 자신감을 되찾는 일이며 셋째 민족통일의 당위와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이것들이 없고는 8·15는 언제까지나 참다운 의미의 광복이 아니며 올바른 의미의 해방일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세계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그들 군대아닌 군대의 해외파병이 이뤄지고 있고 공공연하게도 그들 왕과 각료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가 이행되고 있다.그런가운데 일본군의 정신대 강제집행을 증언하고 참회하는 수많은 「요시다」들이 방한하고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제수뇌들이 사전에 계획했다는 극비문서자료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한일간에 가로놓인 이 방대한 과거의 퇴적물들이 올바로 분석되고 극복되기전에는 광복의 참된 의미는 유보될 수 밖에 없다.그것이 바로 극일이다. 다시 한번 자신감을 되찾아 민족적 성취욕을 충족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한동안 우리를 신바람나게 했던 「바르셀로나」의 영웅들이 개선했고 젊은 과학도들이 맨손으로 일군 「우리별1호」가 지금 지구궤도를 돌고있다.우리는 말하기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비아냥대로 용이 되다만 지렁이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다만 조그마한 성취로해서 빚어졌던 자만과 허세와 착각과 조급성만을 벗어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올림픽과 「우리별1호」를 통해서 믿게됐다. 그러고서 이제 통일이라는 민족 공동의 광장을 일구자는 것이다.그것은 남북한의 유엔시대,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시대가 부여하는 엄숙한 과제이다.47년간 미완의 광복을 완성의 광복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은 필수적이다.그것이 마흔일곱돌 맞는 광복절의 참다운 의미를 살리는 세번째 항목이다.
  • 「러」 국방1차관/9월말께 방한

    송응섭합참 제1차장은 14일 안드레이 코코신러시아공화국 국방1차관이 옐친대통령 방한이후인 오는 9월말쯤 권령해국방차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고위급 인사가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코신차관은 한국방문기간중 러시아의 방위산업 기술이전문제와 양국간 군사교류방안등을 협의할 예정이다.송차장은 3년 주기로 거행되는 내년도 「국군의 날」행사에 러시아공화국 국방장관등 군고위급인사 5∼6명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차장(육군대장)은 지난달 27일부터 사흘간 한국군 고위인사로는 처음으로 러시아공화국을 공식방문했다.
  • 안보리 「유고 군사력사용 결의안」 채택/“필요한 모든 조치 강구”

    ◎「이민족청소」도 전범행위로 규정 【뉴욕·제네바 로이터 AP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3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에 대한 인도적 구호물품 수송로 확보를 위해 대한 군사력 사용을 승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안보리는 또 보스니아 전역에서 자행되고있는 「이민주 청소」조치를 불법화하는 결의안도 통과시켰다. 안보리는 12일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러시아등이 제안한 이 두 결의안을 심의한데 이어 이날 표결에 부쳐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무력 사용에 관한 안보리 결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인도적 구호물자 수송을 보호하기위해 모든 국가들이 유엔과의 협의를 통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결의는 그러나 군사 행동을 요구하고있지 않으며 이에 관련된 군대 편성,참가국,공군및 지상군 동원여부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있다. 안보리가 이날 통과시킬 「이민주 청소」에 관한 결의는 오스트리아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같은 행위를 전쟁범죄행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 결의는 이같은 행위가 ▲민간인들에 대한 강제 이송및 추방 ▲강제수용및 구금센터에서의 인권 남용 ▲비전투원·병원및 구급차에 대한 공격 ▲민간인에 대한 식량및 의약품 공급 방해 등의 전쟁범죄행위에 들어가며 국제법과 지난 49년의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한­미합동「포커스렌즈연습」/19일부터 30일까지 실시/국방부 발표

    국방부는 13일 한미합동연합 포커스렌즈연습을 오는 19일부터 30일까지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윤창로국방부대변인은 이날 『이번 연습은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발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한미합동연합작전에 관한 협력과 절차·계획및 체계를 연습하고 평가하며 개선해나가는 연례지휘소연습』이라고 말하고 올해가 17번째라고 덧붙였다. 윤대변인과 한미연합사령부 피일낙섹대변인(미육군대령)은 특히 을지포커스렌즈연습과 별도의 야외기동연습을 9월1일부터 5일까지 동해상에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대변인은 또 포커스렌즈연습은 순수한 지휘소연습이지만 북한의 오해소지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외교적 채널을 통해 북한에도 이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 유고 민족분쟁 「끝」이 안보인다

    ◎유혈내전의 본질과 사태추이/문답풀이/티토사후 민족주의 고개… 종교전 양상/세르비아 영토욕에 「땅뺏기전쟁」 변질/희생자 10만·난민 2백50만명선 추정/유엔등 무력개입땐 유럽화약고 될듯 좀처럼 유혈내전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날줄 모르는 유고사태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유엔과 나토가 마침내 무력개입태세를 본격화하고 있다.그러나 오히려 내전의 중심지 보스니아에서는 전투가 격화되고있다.세르비아는 또한 점령지에서의 이민족 추방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발칸반도에는 추방과 살육의 공포를,유럽 전역에는 난민공포를 안겨주고 있는 유고사태의 본질과 향후전망을 문답으로 정리해본다. ­유고는 어떤 나라인가. ▲유고는 1차대전후 승전국들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세르비아에 강제병합,창설됐다.이처럼 「잘못된 과거」를 안고 탄생한 유고는 4개의 언어,3개의 종교를 갖고있는 5개의 민족이 각 공화국과 자치주에 흩어져 분열가능성이 상존해왔지만 티토의 강력한 영도력과 사회주의라는 이념의 끈에 의해 연방체를 존속시켜왔다.그러나 지난80년 티토가 사망,지배력이 상실되고 동구사회주의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를 신호탄으로 각 공화국의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세르비아의 패권주의와 충돌,폭발적 분열양상으로 치닫게 되었다.6개 공화국,2개 자치주로 구성돼있던 유고는 내전촉발 1년여가 지난 지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완전독립,마케도니아 독립선포,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진행 등 갈갈이 찢긴 상태이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만이 보이보디나·코소보자치주와 함께 신유고연방의 명맥을 잇고있다. ­내전당사자들은 누구인가. ▲현재 내전이 진행중인 보스니아는 4백30만 주민이 회교도 44%,세르비아계 33%,크로아티아계 17% 등으로 구성돼있다.초기에는 이들 3개 민족중 회교도와 크로아티아계가 연합,세르비아계에 대항했으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인접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자민족보호를 구실로 개입,실제 내전주역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태다. ­무엇때문에 다투고 있나. ▲기본적으로는 각 민족들의 영토확보욕구때문이다.세르비아의 영토팽창야욕이 노골화하자 보스니아정부를 구성하고있는 회교도는 크로아티아계와 공동전선을 구축,세르비아계에 대항해왔다.그러나 독립을 달성한 크로아티아가 자민족들을 지원,보스니아내 영토확보에 나서면서 세르비아와의 땅따먹기 전쟁으로 변질됐다.이 틈바구니에서 회교도들도 제2의 팔레스타인 난민신세가 되지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금까지의 피해상황은. ▲내전발발 1년만인 지난 6월말까지의 사망자만 공식 1만4천여명,비공식으로는 약4만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후는 사망자집계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며 최근 세르비아가 점령지 회교도들에 대한 집단처형을 가하고 있다는 보스니아정부의 주장등에 비추어 유고사태 총희생자수는 최고 10만명 가까이까지 추정되고 있다.난민발생은 약2백50만명으로 1백50만명은 구유고 각 공화국에,50만명은 유럽으로 흩어지고 50만명은 아직 보스니아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고사태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그전의 영토분쟁차원을 넘어 이민족에 대한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세르비아계에 의한 난민수용소만행등 인권유린문제와 독립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에 대한 주권침해를 국제질서의 차원에서 그대로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또 전쟁을 피해 이웃 유럽으로 몰려드는 회교계 난민문제도 심각한 형편이다.게다가 유고내전의 확산은 유럽 전체의 화약고로 번질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 ­유고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그동안 유엔·EC등이 주축이 되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분쟁당사자들이 직접서명한 휴전협정만도 30여차례에 가깝다.그러나 번번이 협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살육전이 재개되곤 했었다.그 원인은 교전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들에 대한 중앙통제가 불가능하며 특히 영토확장에 혈안이 된 밀로세비치 세르비아대통령이 분리독립한 각 공화국에 산재해 있는 세르바아계의 보호를 구실로 침략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이 그동안 군사적 행동을 서둘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 유럽각국은 EC를 통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가하는 정도에 불과했다.공산권 붕괴이후 EC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진공상태인 유럽안보공백의 주도권 다툼으로 내부분열돼 유고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피해왔다.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신경전을 펴온 미국 또한 유럽의 문제에 대해 섣불리 나설 형편이 못되는데다 오는 11월 대선을 의식,적극개입을 주저해왔다. ­유엔결의를 통한 무력개입 가능성은. ▲미국 영국 프랑스등 3개국의 유엔결의안 초안합의로 유엔의 무력개입 가능성은 높다.경제적 외교적 제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데다 미국중심의 NATO와 독일 프랑스가 주축이 된 WEU가 공조체제로 구체적인 실행이 임박하고 있다.그러나 유고에 대한 군사개입이 지상전으로 전개될 경우 8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이만한 규모의 동원이 가능할 것인지는 회의적이다.또한 유엔이 이번 유고사태의 군사개입에서도 과거 걸프전에서 거둔 승리만큼 일사분란한 군사적 지휘권과 재정적인 지원을 각국으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인지도 미지수다.유고사태의 군사개입에 앞서 현재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주둔하고 있는 1만여명의 유엔평화유지군 철수도 선결문제중의 하나다. ­서방의 무력제재로 과연 내전종식이 가능할 것인가. ▲유엔이 가상하고 있는 개입시나리오중 우선 일차적으로 착수해야할 일은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을 위한 보급로 확보다.그러나 이를 위해 지상군을 투입한다해도 세르비아계가 게릴라전으로 맞설 경우 미국을 중심으로한 유엔이 희생자속출에도 불구,끝까지 해결사노릇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특히 다국적군에 참여했던 나라들이 국내사정으로 자국군대를 철수시킬 경우 군사개입까지 하면서 내전종식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 유엔,「인종청소」 방지 구조대 급파

    ◎나토·WEU,15일 무력개입 수단 논의 【제네바 AFP 연합】 유엔은 세르비아 세력이 최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북동부 4개 마을에서 벌여온 「인종청소 작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구조대를 보내는 등 다각적인 사태재발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대변인이 12일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인종청소가 전개되고 있는 프리예도르,산스키 모스트,보산스카크루파,보산스키 페트로바치 등 4개 마을에 거주하는 약 2만8천명의 보스니아계 주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살아온 곳을 떠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인종청소」작전은 지난 7월 보산키 노비 마을에서도 자행된 적이 있으며 당시 UNHCR는 이 마을 주민 7천명을 크로아티아 지방으로 소개했었다. 【파리 AP 연합 특약】 나토와 서유럽동맹(WEU)의 군사전문가들이 구유고지역에 대한 구호물자보급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개입수단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15일 브뤼셀에서 회동한다고 소식통이 12일 밝혔다. 유엔안보리의 결의안 채택 후 열릴 이같은 회동은 미국정부의 원칙적인 동의를 받았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번 보급확보 군사개입은 미국이 나토의 일원으로 공군력을 제공하고 WEU는 지상부문을 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엔본부 AFP 로이터 연합】 유엔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구호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군사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는데 관한 결의안을 13일 채택될 것으로 보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구호물자의 안전수송을 보장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할 극비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14일 긴급회의를 개최한다.
  • “CIS체제 붕괴 되면 각공화국 장래 불투명”

    ◎고르비,「8월쿠데타」 1년맞아 경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실각을 가져온 「8월 쿠데타」 1주년을 앞두고 11일 독립국가연합(CIS)이 붕괴된다면 각 공화국에는 고통스럽고 불확실한 미래가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8월 사태는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공화국들에 여전히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쿠데타로 인해 그가 시동을 걸어놓은 「혁명적 변화」의 수레바퀴가 궤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시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한번 출현한 이상 CIS체제가 끝까지 지속되도록 해야 하며 그 외의 다른 길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으나 『CIS체제를 유지해 나가는 과정은 인민·인권·군대·국경등 가장 힘든 문제들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그 장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CIS가 활성화된 하나의 공동체로 순탄하게 출범한다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고 완전히 해체된다면 우크라이나·카자흐 등 각 공화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며이렇게 될 때 이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데타후에도 『공화국 상호간의 이해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도』소련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그렇다고 독립국가들을 다시 옛 틀로 묶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우리들은 정치적으로 현실주의자가 돼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모스크바시 지도자들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쿠데타 1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계획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연주회,시가행진 등은 물론 당시 군의 시위 진압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 의회 주변에 운집했던 「하얀 집의 수호자들」의 집회개최등이 포함돼 있다.
  • 일,「캄」파병 준비 본격화/PKO법 발효

    ◎수송선 10월 오사카등서 출항 【도쿄 연합】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규정한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이 10일부터 발효,일본이 앞으로 평화유지활동이라는 명목아래 군대를 외국에 주둔시킬 수 있게 됐다. 일정부는 이날짜로 국제평화협력본부(본부장 궁택희일총리)를 발족하고 유엔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에 부대를 파견하기위해 육·해·공 자위대에 파견 준비명령을 내리는 등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일 정부는 오는 9월에 앙골라에 선거 감시요원을 파견한다는 방침을 세운것 외에도 유고 등 세계 각지의 지역분쟁에 참여할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방위청은 법의 시행에따라 캄보디아 파견요원에대한 인선 작업에 들어갔는데 차량과 자재를 실은 제 1진의 수송선이 오는 10월께 오사카(대판)항과 고마키(소목),아이치(애지)를 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 나고르노 전투 치열/아르메,전격 재침공

    【모스크바 AP AFP 로이터 연합】 나고르노­카르바흐지역을 싸고 인접 아제르바이잔공화국과 분쟁을 벌여온 아르메니아공화국 군대는 6일밤(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을 전격 침공,국경지역의 두 마을을 점령했다고 아제르바이잔의 투란 통신이 국방부 발표를 인용,7일 보도했다. 투란통신은 아르메니아의 크라스노셸스크 주둔 병력이 병력수송용장갑차(APC)를 동원,아제르바이잔의 국경지역인 케다벡을 공격하면서 영토내로 진입했다고 전했다.
  • 북방섬 3자협상 제의/“미 불개입 사전보장 필요”/러 부총리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을 방문중인 미하일 폴토라닌 러시아 부총리는 5일 NHK­TV와의 인터뷰에서 쿠릴열도(북방4개섬)를 둘러싼 일본과 러시아간의 영토분쟁 해결을 위해 러시아·일본·미국의 3자회담이 필요하며 미군이 오키나와로부터 철수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일본 교도통신은 폴토라닌부총리가 쿠릴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분쟁 해결을 위해 러시아·일본·미국의 3자협상을 제의함으로써 획기적인 입장변화를 보였다고 4일 보도했다. 구소련이나 러시아는 지금까지 북방 4개섬에 관한 문제는 러시아와 일본 양국간에 해결해야할 쌍무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었다. 폴토라닌부총리는 러시아 군대가 철수한 후 미군이 이들 섬에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전 보장을 받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3자협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것으로 교도통신이 전했다. 폴토라닌부총리는 『이는 더이상 쌍무문제가 아니며 국제적 문제로 부상했다』면서 내년에 도쿄에서 개최될 서방선진공업7개국(G­7) 연례정상회담이 쿠릴열도에 대한 영토분쟁을다룰 것을 촉구했다.
  • 알권리와 군기의 합리적 조정(사설)

    우리나라의 경우 군에 관한 한 정확히 얘기하자면 사실 금기와 비밀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에 속한다.그것은 멀지않은 과거에 전쟁을 치렀고 남북대치와 분단이라는 특수장황에 따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따라서 군사안보와 군기보호의 측면을 감안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은 다소의 불편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전폭적으로 이해하고 협조해온게 사실이다. 이런 군사안보현실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우리헌법재판소가 『군사기밀보호법은 최소한도 축소돼야 한다』는 해석을 내렸을 때 국민들은 우리 사회민주화발전과 관련하여 새시대의 또다른 징표로 받아들여 이를 환영한 바 있다.마침 그 무렵에 군 내부에서 사조직의 해체,각종 부조리·불합리행태 추방,인사쇄신,기강확립등 조용하고 세부적인 자기 쇄신노력이 드러날 때였고 아울러 국방비의 공개논의가 활성화하는 등 군의 민주화 의지가 두드러질 때여서 더욱 그 의미가 돋보였던 것이다. 헌재의 결정인 즉 『필요이상의 군사기밀 양산은 언론보도를 위한 취재의 자유와 학문연구의자유를 위축시키며 국민의 정당한 비판과 감독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군사기밀의 보호라 할지라도 한계를 갖는다』는 지적이었다.민주주의이념과 우리 헌법정신에 비추어 당연한 해석이요 바람직한 방향제시였다. 따라서 이번에 국방당국이 군기의 보호와 군사비밀의 대상및 범위를 합리적으로 축소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군기법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군대로서의 국방 「신사고」의 결과로 받아들이고싶다. 국방및 안보를 위한 군사기밀사항은 그것이 공개 또는 고의로 누출됐을 경우의 국가적 불이익과 군사안보상의 타격을 고려할 때 엄격히 보호유지돼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군기사항은 때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해주는 바 「알권리」 또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상충되는 바 있게 마련이다.중요한 것은 필수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군사기밀과 국민의 알권리가 어느 지점에서 합리적으로 조정되느냐 하는 점이다. 현행 군기법은 72년 유신당시 제정된 것으로서 시대상황과도 맞지않을 뿐더러 군을 지나치게 성역화했다는 건설적인 비판이 군내부에서도 일어왔다.특히 헌재가 지적한 바대로 군사기밀의 한계를 너무 확대했다는 지적이 두드러졌었다.국가의 안전보장에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실질적인 비밀가치의 범주를 넘어 공지의 사실까지 군사기밀로 덮어놓은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었다.개정안이 보호돼야 할 기밀과 필요하다면 공개될 수 있는 기밀의 경우를 명시한 의미도 여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군기법개정과 관련된 국방당국의 발전의지가 국회심의과정에서 의미 있게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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