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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대안없는 동반자” 받쳐주기/클린턴,옐친 지지선언 의미

    ◎구공산계 결집땐 세계전략 차질/정권붕괴로 핵통제불능 우려도 클린턴미대통령은 21일 하오(한국시간 22일 상오)『민주주의 아래서는 국민이 최종적으로 정치적,사회적 쟁점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면서 옐친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러시아국민들이 러시아의 장래에 대해 올바른 결정을 할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클린턴대통령은 러시아사태의 급보가 전해진 직후 『민주화와 경제개혁에 대처하기 위한 시련의 과정』이라고 말해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듯 했으나 옐친대통령과 약 17분간에 걸쳐 통화를 한뒤 강력한 지지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는 옐친대통령이 자신에게 새로운 의회를 구성할 오는 12월의 총선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선거가 될 것임을 다짐했다고 전했다.클린턴대통령은 옐친대통령과 통화를 한뒤 독일의 헬무트 콜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옐친과의 대화내용을 전하고 미국정부는 옐친대통령을 전폭 지지할 것임을 밝혔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도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정리,클린턴행정부는 옐친대통령의 민주개혁을 지지하며 『앞으로 실시할 그의 총선계획은 개혁을 가로막고 헌법변경을 저지하고있는 현재의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클린턴행정부가 이같이 신속히 옐친대통령을 전폭 지지한 이유로는 ▲옐친외의 대안이 없다는 점과▲세계전략수행의 동반자로서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의 필요성▲러시아의 정치안정촉진 등이 꼽히고 있다. 우선 옐친은 러시아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절차에 의해 선출된 민선대통령일 뿐아니라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함으로써 미국으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러시아의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또한 지난 4월 클린턴대통령은 밴쿠버회담을 통해 옐친과 개인적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옐친에 대한 신뢰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냉전시대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수행에 있어 가장 편한 파트너가 바로 옐친의 러시아다.옐친과 정치투쟁을 벌이고있는 러시아의회의 강경파들은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자칫 구공산세력의 결집으로미국의 세계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최근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정등 미국의 중동평화정착에 옐친정부는 미국과 2인3각의 협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이 옐친대통령을 주저없이 지지하는 또하나의 이유 가운데는 옐친대통령이 강력한 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핵무기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클린턴의 옐친 지지는 『의회해산조치가 헌정중단의 쿠데타와 무엇이 다르며 옐친이 의회의 반발을 꺾기 위해 군대를 동원할 경우에도 계속 지지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미국외교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민주주의 가치의 확산인데 이런 점에 비추어 옐친의 비상조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이중적인 가치기준의 적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내가 대세 장악” 옐친,시민에 장담/비상사태후 러시아 이모저모

    ◎중요시설 병력배치 없어 평온한 표정/옐친,“군통수권자는 나뿐… 핵단추 통제”/모스크바시민들 권력투쟁 개탄… 완전종식 바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22일 모스크바 시민들을 상대로 가두 연설을 갖고 자신은 군부와 지방 정치 지도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상황을 완벽한 통제하에 두고 있다면서 현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 옐친 대통령은 이와 함께 또 하나의 포고령을 발표,최고회의로부터 대통령 권한 대행을 위임받은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이 내린 명령들을 불법이라고 규정짓고 이를 무시할 것을 지시했다. 이타르 타스 통신은 옐친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 상업중심가인 푸시킨 거리에 빅로트 예린 내무장관과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을 대동,시민들과 대화를 갖는 자리에서 자신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실이 모스크바의 각 언론사들에 배포한 포고령 전문은 대통령의 권력을 가로 채려는 루츠코이 부통령의 기도는 『불법적인 것으로 아무런 실효도 없다』면서 그가 내린 어떠한 명령도 『이행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러시아 핵통제체제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지휘권은 어제의 사태가 있기 전과 마찬가지』라면서 『핵단추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손안에 있다』고 답변. ○…러시아 사태를 보도하는 현지 언론들의 시각은 보수·개혁·중립등 세방향으로 갈리고 있다. 개혁파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대표적인 신문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22일 1면 「최소한의 전환으로 최대한의 혁명」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옐친 대통령이 헌정위기 극복을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논평. 한편 최고회의가 발행하는 로시스카야 가제타지는 옐친의 조치를 보도하면서도 1면상단에 헌정수호를 위한 최고회의(의회)발표문을 게재함으로써 대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대표적인 보수계 신문 프라우다지는 옐친의 비상조치에 대해 아예 언급조차하지 않은채 가이다르의 재기용과 옐친의 호화주택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크게 싣고 특히 1917년 혁명전 제정 러시아시대와 60년대및 80년대 소련시대의 사회상을 비교하는등 소련부활을 부추기는 기사를 크게 취급. ○…러시아 중앙은행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최고회의(의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 옐친 대통령은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발표하면서 중앙은행이 자신의 직접통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나 최고회의는 중앙은행에 대해 옐친에게 자금을 주지말라고 명령했다. ○…러시아의 정국 위기때마다 이동상황이 관심을 끌었던 러시아 내무부 산하 최정예부대인 제르진스키 사단이 이번에도 모스크바로 이동중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방부는 러시아의 전국 위기와 관련,러시아내에서 이례적인 병력이동은 목격되지 않고 있다고 발표. ○…병력배치가 눈에 띄지 않기는 TV방송국이나 송신국,전화교환국,발전소와 같은 중요시설도 마찬가지인데 서방 소식통들은 군사적 움직임이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인 무선교신량의 대폭 증가현상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옐친대통령의 의회해산 포고령이 발표된 직후 보수파의 본거지인 최고회의 의사당주변에는 야간임에도 불구하고 붉은 깃발을 든 보수파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밤 12시쯤에는 수백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목격됐다. 이들은 옐친의 조치가 쿠데타라며 『옐친타도』를 외치면서 밤이 깊어지자 의사당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22일의 「투쟁」에 대비하는 모습. ○…「민주 러시아」등 친옐친 단체들도 22일 상오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지지시위를 벌일 것으로 전해져 양측 시위대간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 한 러시아언론인은 시위대간 충돌이 가열될 경우 군대 충돌이 불가피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91년 8월 쿠데타 사건의 재판이 일어날 것이라며 유혈사태를 우려. ○…옐친대통령은 21일 TV연설 서두에서 지난 수개월간 정치권에서 쓸모없고 무모한 권력투쟁을 해왔다고 개탄하며 이같은 상황에서는 개혁을 실행할 수 없으며 기초 질서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이날 긴급회의를 갖고 옐친 대통령의 의회해산과 조기총선 포고령에 대한 대책을 논의. 이 자리에서 벤야민 소콜로프 재판관은 옐친대통령이 『헌법상 기준에서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며 그의 포고령은 위헌』이라고 강조하고 옐친을 「범죄자」라고 비난. ○…옐친의 TV연설을 대부분 가정에서 시청한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번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층과 일체 무관심층 및 91년의 쿠데타와 다름없다는 층으로 뚜렷이 갈리고 있는데 다만 이번 사태를 마지막으로 권력투쟁이 완전 종식되기를 바라는 눈치가 역력. 많은 시민들은 1년 이상이나 끌어온 싸움으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져 서민들만 골탕을 먹었다고 개탄하고 다가오는 겨울이나 걱정해야겠다는 모습. ○…러시아 최고회의에서 대통령 대행으로 지명된 알렉산드르 루츠코이는 21일 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발표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는데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옐친 포고령 요지◁ ▲인민대표대회와 최고회의는 상하 양원의 새로운 연방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활동을 중단한다. ▲포고령에 위배되지 않는 헌법과법률은 계속 유효하다. ▲헌법위원회와 제헌회의는 오는 12월12일까지 헌법초안을 제출한다. ▲(새로 구성될) 연방의회는 대통령선거문제를 검토한다. ▲연방의회를 구성할 의원선거는 오는 12월11·12일 실시한다. ▲지방의회의 권한은 포고령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민대표대회는 개최되지 않으며 대의원의 권한은 정지된다.대의원을 역임한 시민의 권리는 보장된다.의회 직원들은 12월13일까지 휴무한다. ▲정부는 이 포고령에 의해 수정된 부분을 포함해 헌법이 명시한 모든 권한을 이행하며 최고회의 산하 모든 기관을 인수한다. ▲중앙은행은 연방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대통령포고령으로 운영된다. ▲대통령은 연방의회가 구성될 때까지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외무·내무·보안·국방장관은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외무부는 외국과 유엔에 연방의회 선거가 경제개혁과 민주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린다. 21일 하오 8시(한국시각 22일 상오1시) 옐친대통령이 서명한 이 포고령은 즉시발효된다.
  • 폴란드 주둔 잔류 구소군 모두 철수

    【바르샤바 로이터 연합】 폴란드에 남아있던 마지막 구소련군 24명이 18일 열차편으로 바르샤바를 출발,러시아로 철수했다. 이로써 지난 약 반세기에 걸쳐 폴란드에 주둔하며 모스크바의 대폴란드 정치·군사적 지배를 강화시켜주었던 소련군은 폴란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은 우리역사에서 한 시대를 끝내는 날이다.폴란드 영토에는 더 이상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 쿠바 공군대위 미 망명 요청(지구촌단신)

    【키웨스트(미 플로리다주) AP 연합】 한 쿠바 공군대위가 17일 하오 미그­21기를 타고 비행훈련중 쿠바를 탈출한뒤 미국 플로리다주 남단 키웨스트의 미해군비행장에 착륙,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미국 정부소식통들이 말했다.
  • 「위안부급모」 일제 광고 첫 발견

    【도쿄 연합】 2차대전 말기인 지난 44년 조선총독부가 실권을 쥐고 서울에서 발행하고 있던 「매일신보」에 「군위안부급모」 광고가 나온 사실이 밝혀졌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18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군대 위안부등 일제시대 강제연행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나고야시의 시민단체 「아이치(애지)현 조선인 강제연행 역사조사반」이 이 광고를 발견했다면서 한반도로부터 군대 위안부를 직접 모집한 자료가 발견된 것은 지극히 희귀한 일로 연행·동원등 실상을 파악하는데 단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한·미 경협확대·공정무역 노력”/레이니 주한 미대사 청문회발언

    ◎“김영삼정부 개혁조치 바른방향으로 갈것”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대사 내정자(66)에 대한 미상원외교위의 인준청문회가 14일 하오(한국시간 15일 상오)열렸다.하오 3시부터 2시간에 걸쳐 찰스 롭 위원장대리의 사회로 상원의 116호실에서 진행된 이날 청문회는 소속의원들의 상원본회의의 잇단 표결참석으로 5차례나 정회와 속개가 거듭되는 가운데 진행됐다.다음은 이날 청문회의 요지. ◇레이니대사 내정자의 기조발언 미국의 대한정책은 3가지의 목표를 지향한다.그것은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유지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자유무역과 경제협력의 확대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환경속에서 이러한 목표를 다음의 6가지를 통해 구현해나가고자 한다. 첫째,한반도의 평화를 가장 위협하고있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이기 때문에 우리는 한국과 국제원자력기구와 함께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지금 우리는 최대한의 인내로 북한의 건설적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둘째,한미간의 안보유대관계를 긴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양국간의 방위산업협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주한미군주둔에 대한 한국측의 방위비분담이 늘고 있다.주한미대사관과 주한미군사령부와의 긴밀한 협조관계 유지를 주한대사 업무의 가장 높은 우선순위의 하나로 하겠다. 셋째,한미양국은 새로운 태평양공동체의 건설에 협력해 나가야 한다. 넷째,우리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확보하기위해 주한미대사관과 미국정부의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야 한다.미국회사들이 한국내의 금융,불공정한 세제,까다로운 각종 규제,농산물수입장벽,불투명한 기준등에 관해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과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대사들에게 미국의 업계를 지원하는데 각 대사관이 앞장서 줄것을 훈령했다. 다섯째,한국의 문민정부출범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크게 신장된 것을 환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국민들과 모든 분야에 있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일문일답 ­80년 한국의 광주광주사태 당시 외부 군대의 역할이 있었다고 보는가. ▲주한미군이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력을장악한 측이 일부 병력을 동원해 사태를 진압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미국이 부분적인 책임이 있는 것처럼 비난을 받고 있다.미국방부에서 주한미군과 한국군간의 작전지휘권 체계를 분명하게 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한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시한이 있는가. ▲미·북한간의 2단계 고위급 회담후 두달안에 3단계 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사찰협의,남북한간의 대화 양쪽에서 전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북한핵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은 확고하며 명백하다.크리스토퍼장관도 인내심이 떨어져가면 최종적으로는 유엔안보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한국에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김영삼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조치를 볼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개혁과 민주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본다.
  • 불,이 16C 벽화 3년 걸려 복원

    ◎베로네즈작 「가나의 혼인잔치」… 18c에 약탈/포도주 성찬 예수기적 표현 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기적과 세속적인 귀족계급을 동시에 묘사한 16세기 중엽의 벽화 「가나의 혼인잔치」가 3년만에 거의 완벽하게 「부활」돼 프랑스의 예술계가 흥분하고 있다.이탈리아 천재화가 베로네즈가 1562∼63년에 그린 이 작품은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관리부실로 훼손돼 그동안 완벽한 복원을 위해 1백여회에 걸쳐 전문가의 여론을 수렴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1797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베니스에서 전리품으로 빼앗아오기 전 생 조르쥐 마조에르수도원에 있던 이 벽화의 진본(10m×7m)에는 1백3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갈릴리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가나」는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한 바로 그곳이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시대상황을 초월,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색채가 짙게 밴 「최후의 만찬」 등과는 확연히구별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회장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예수의 뒤편에서 하인들이 양고기를 나르고 있고 왼쪽의 회식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양측 출입문 기둥들의 화려한 장식,그리고 금빛나는 식기류,귀족들의 비단옷 등은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수준을 엿보기에 족하다.큼지막한 술항아리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어릿광대들의 모습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특히 흑인하인들은 16세기 무렵 베니스에서 노예제도가 성행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이 그림은 또 난간 뒤쪽에서도 예수의 기적으로 마련된 고기와 포도주가 곁들여진 풍성한 만찬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 당시 항구도시 베니스는 이미 부가 넘쳐 흐르는 「사치의 쇼윈도」였음을 이 그림은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터번을 머리에 두른 회교국 군주 술탄의 사신들도 눈에 띄고 또한 당시만 해도 진귀하던 마로멜로(오렌지)잼과 접시에 담긴 과자류 등의 묘사도 매우 사실적이다. 사실 베니스출신 상인들은 10세기경부터 지중해의 크레타섬을 지배해온 아라비아인들과 교류,사탕판매권을 독점하는 등 그 활동영역을 넓혀왔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이번 복원과정에서의 논란과 마찬가지로 이미 제작당시에도 종교회의에서 성직자들이 화가 베로네즈의 처벌을 요구하는 등 물의를 빚었었다. 이 벽화와 베로네즈에 대한 평가 또한 엇갈리고 있다.『수준이하의 형편없는 졸작』이란 악평이 있는가 하면 최근 프랑스 국립박물관협회가 발간한 서책은 『속물적인 것과 기독교의 복음을 동시에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 여맹에 군지원사업 강화 촉구/“유사시 김정일을 결사옹위” 강조도

    【내외】 북한은 최근 각 도별 여맹위원회 집회를 열고 군지원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전쟁발발시 군대와 함께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북한방송에 따르면 김정일이 군지원사업에서 모범을 보인 각지 여맹조직에 보낸 「감사」에 대해 보답하기 위한 해당지역 여맹원들의 궐기모임 형태로 열리고 있는 이 집회에서 북한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인민군대를 친혈육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적극 원호함으로써 군민일치의 미품을 꽃피워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한 김정일이 『전체 인민이 인민군을 적극 원호하며 일단 유사시에는 인민군대와 함께 침략자들을 반대해 싸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전체 여성들에게 전쟁대비책 강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북한은 여맹원들에 대해서는 『군대가 강해야 나라가 튼튼하고 행복한 생활도 보장된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모두가 최고사령관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조했다.
  • 「재산가」 총학장 10억원이상 9명/공직자재산공개 부처별 이모저모

    ◎법무·검찰선 1차홍역 겪어 다소 느긋/사조직·치부 장성 “치명상 입을것” 소문/청와대 비서실·경호실 평균 5억 기록/국방부 예상외로 액수적어 일단 안심 ▷청와대◁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은 평균 5억원대를 기록.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일찍 뉴욕으로 건너가 사업으로 성공한 김혁규사정1비서관으로 국내 15억3천만원,미국소재 약31억원등 모두 46억 3천만원을 등록. 다음은 주돈식 정무수석으로 21억원9천만원,전남방직 회장아들인 김무성 민정2비서관이 15억3천여만원으로 3위를 차지했다. 또 민자당 전국구 0순위인 정옥순 여성담당비서관은 14억9천만원,부인이 치과의사인 엄효현홍보2비서관은 14억8천만원을 등록. 대표적인 가신그룹인 김기수수행실장은 4억1천여만원,장학로제1부속실장은 3억3천여만원을 등록했고 30년간 김대통령을 보좌해온 김대환 총무비서관은 9천6백만원의 재산을 등록해 청와대내에서 꼴찌를 기록. 박관용비서실장의 경우 서울 서교동 집이 2천만원정도 내려 지난번 보다 약 3천만원 줄어든 7억5천여만원을 신고했고 반대로 박상범 경호실장은 서울 청운동 자택이 공시지가로 신고기준이 변동됨에따라 지난번 재산공개 2억7천만원보다 늘어난 5억6백만원을 등록했다. 주수석의 재산은 지난번 공개때는 8억1천만원에 불과했는데 이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신고기준 변동으로 신고가액이 5억2천만원에서 20억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 ○차 평남지사 1위에 ▷행정부처◁ ○…11명이 재산을 공개한 내무부는 환경관리공단 이사장을 지낸 차성호평남지사가 12억9천7백2만7천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11억2천8백4만원의 최인기차관과 9억7천7백27만원의 임경호차관보가 2·3위를 마크했으며 7억3천2백51만원을 신고한 이해구장관은 6위에 랭크. 이같은 금액은 이장관의 경우 지난번보다 2천여만원 늘어난 것이며 최차관은 오히려 5천7백44만원이 줄었다.이에대해 장관실은 임야등 1천6백여평의 공시지가가 상승하고 예금이자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며 최차관은 서울 강남구 포이동 체비지의 공시지가가 내리고 모친의 재산이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 한편 내무부는 7위부터 맨 꼴찌까지 모두가 3억대로 조사돼 비교적 안도하는 모습. ○3∼4명은 내심초조 ○…국방부는 중장급 이상 군장성 46명과 장·차관,제1·2차관보등 1급이상 정무직및 일반직 공무원 6명등 52명의 재산규모가 일반인들의 상상보다는 적은 것으로 나타나자 일단 안도하면서도 김모중장등 고위랭킹자를 포함,3∼4명의 재산내역이 의혹을 살만하다는 지적이 일자 내심 초조. 권령해장관은 지난번 장·차관 재산공개시보다 6천2백여만원이 적은 6억6천7백56만원을 등록했으며 이수휴차관은 지난번보다 5천1백여만원이 줄어든 17억3백90만1천원을 신고했으나 국방 고위관계자로서는 1위를 차지. 이번 재산공개에서 미술품등을 공개한 사람은 3명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김재창한미연합사부사령관(육군대장)이 동양화 2점과 조각 2점등 4점,도일규수방사령관(중장)이 서양화 4점을 가격표시없이 신고했다.이재달군단장(중장)은 배우자의 5부짜리 다이아반지를 5백만원에 신고해 국방부주변에서 화제가 되기도. 국방부 관계자들은 생각보다는 재산공개파문이 적을 것으로관측하고 있으나 과거 「하나회」등 군사조직에 관여했던 인사로서 재산형성내역이 의심나는 군장성 2∼3명은 「재산공개 태풍」을 빗겨나기 힘들 것 이라고 이구동성. ○여론동향에 더 신경 ○…법무부와 검찰은 이미 지난번 재산공개때 정성진전대검중수부장과 최신석전대검강력부장이 물러나는 등 한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는 탓에 별도의 브리핑 자료도 준비하지 않는 등 느긋한 분위기속에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쪽의 재산규모와 여론동향에 더 신경을 쓰는 눈치. 특히 이번에 추가로 재산을 공개한 재경지청장과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울산지청장등 7명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안강민서울지검남부지청장이 19억5천여만원으로 박종철검찰총장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4위에 올랐지만 대부분 10억원대 안팎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분위기. 모두 47명의 재산보유현황이 공개된 법무부와 검찰에서는 지난번에 1·3위를 차지했던 정·최전검사장의 용퇴로 당시 2·4위였던 김도언대검차장과 김유후서울고검장이 37억여원과 24억9천여만원으로 1·2위를 차지하는 등 재산규모와 순위에 있어 큰 변동이 없는 상태. 다만 최근 부친상을 당한 김서울고검장과 새로 공개대상이 된 김수장서울지검의정부지청장·유재성부산동부지청장등 3명이 부모의 재산내역에 대해 고지거부를 해 여론이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하는 표정. ○의사 등 맞벌이 많아 ○…보사부는 등록재단 공개대상이 송정숙장관·최수병차관·주경식기획관리실장·김종대사회복지정책실장과 박인서국립의료원장·유원하국립보건원장·이강추보건안전연구원장등 모두 7명으로 이중 최차관·박의료원장·유보건원장등 3명의 재산이 10억원을 넘어서 눈길. 최차관의 경우 부인이 약사로 한때 약국을 개설,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의료원장은 의사출신으로 부인이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유보건원장도 부인이 H종합병원 과장으로 근무,재산형성과정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 보사부 내부의 반응. 보사부의 한 관계자는 『재산이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으로 의혹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 ○땅 16억원어치 보유 ○…환경처의 경우 국무위원 가운데 황산성장관은 예금에 이자가 붙어 지난번 재산공개때 보다 2백여만원이 늘어난 23억6천7백여만원,김형철차관은 1천2백여만원이 줄어든 2억7천여만원을 각각 신고. 김인환 기획관리실장은 아내명의로 된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 동산리의 논 2천7백93㎡를 포함,5억3천여만원을 신고했는데 김실장은 노후를 위해 80년대 중반 매입했다고 설명. 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경기 안산시 일대의 임야와 전답을 포함,16억4천1백80만원을 보유,만만찮은 재력을 과시한 조병환조정평가실장은 본인·부인·어머니가 각각 아파트를 한채씩 소유하고 있으며 본인과 부인이 예금·유가증권에 모두 1억2천여만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직치곤 부자 많아 ○…노동부는 산하기관을 포함,9명의 재산공개자 평균재산이 8억6천7백여만원으로 나타나자 한직부서치고는 의외로 많다는 반응. 특히 산하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 김기덕이사장이 32억8천여만원인 것으로 공개되자 『노동부유관단체에 그런 재력가가 있었느냐』며다소 놀라는 표정. 김이사장은 본인소유의 서울 양천구 신월동 대지5백16평,건평3백34평 주택(평가액 25억1천8백여만원)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지79평,건평1백79평 주택(평가액 6억9천3백여만원)이 재산의 거의 전부로 이 두 주택을 합친 재산이 32억1천1백여만원. 김이사장은 신월동주택의 경우 약사인 부인이 모은 돈을 합쳐 지난 70년대에 구입했다는 후문. ○“장모 증여재산 60억” ○…교통부및 산하기관의 재산공개 대상자 17명 가운데 총재산이 10억원을 넘는 사람은 76억6천8백만원을 등록한 김광득 해운항만청차장등 모두 7명. 김차장은 부인 명의의 울산시 중구 남외동의 대지 1만5천9백76㎡가 66억8천3백만원에 달하는 등 부인명의의 재산이 74억5천2백만원으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 김차장은 울산시의 대지는 장모 김일기씨가 지난 54년 매입한 것으로 울산공업단지 조성과 함께 매립돼 대지화되면서 값이 오른 것으로 상속후 증여세를 납부하고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본인과 부인의 재산 76억6천8백만원 가운데 장모의 증여재산이 69억7천2백만원에 달한다고 해명. 김차장 다음으로 재산이 많은 공직자는 김경회 철도청차장과 염대섭해운항만청장으로 각각 36억2천9백만원과 24억9천1백만원을 등록. 김철도청차장은 지난 80년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대원빌딩(대지 6백39.4㎡,건물 1천3백65.55㎡)이 32억9천만원으로 재산의 대부분이라고 설명. ○23개 예금구좌 지녀 ○…경무관급 지방청장을 포함,치안감이상 29명이 재산을 공개한 경찰 가운데에서 재력랭킹 1위는 29억9천여만원을 신고한 박양배제주경찰청장. 박청장은 본인명의의 임야 2백여평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57평짜리 빌라를 비롯,부인이름으로 된 아파트 한채와 인천의 상가,예금·주식등 부동산과 동산을 고루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청장은 그러나 재산의 대부분이 지난 84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장모(86년사망)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밝혀져 별다른 의혹은 받지않고 있다. ○“거의 문중재산” 해명 ○…교육부의 경우 모두 62명의 공개대상자 가운데 52명을 차지하는 국립대학 총·학장들의 재산규모가 큰 관심사였으나 대개 평균 수준으로 드러나자 안도하는 빛이 뚜렷. 오병문장관과 이천수차관·박병용국립교육평가원장·박영석국사편찬위원장등 차관급 3명은 1차공개때와 비슷한 규모로 등록. 그러나 총·학장 가운데 10억원대 이상의 「부자」가 9명이나 있어 눈길. 랭킹 1위는 임선재천안공업전문대학장으로서 모두 40억1천8백41만3천원을 등록. 임학장은 서울 송파구 오금동과 충남 천안시 일대에 상당한 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대부분 문중재산의 공유지분이라고. ○“의혹 눈길 섭섭하다” ○…문화체육부는 현직 국회의원이기도 한 이민섭장관이 지난번 공개 때보다 7천만원정도 많은 8억5천9백여만원을 신고했는데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삼익빌라 값이 5천만원 높게 평가되는등 부동산 평가기준이 바뀐 결과라고 설명. 최창신차관보는 10억4천6백여만원을 신고해 부내 최고액수를 기록했는데 본인은 『이 가운데 8억4천여만원이 선대로부터 물려내려온 어머니 명의의 재산』이라고 해명.최차관보는『어머니는 고향인 전주에서 혼자 사시기때문에 이번 신고내역에서 빠뜨려도 됐지만 감출 이유가 없어 포함시켰다』면서 일부의 의혹어린 눈길이 섭섭하다는 반응. ○“재테크도 과학두뇌” ○…과학기술처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된 유관기관장들의 재산랭킹 1,2위를 산하기관에서 차지하자 『과학기술자들이 하이테크 뿐 아니라 재테크에서도 뛰어난 두뇌를 발휘하는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과학기술처는 장·차관과 출연연구소장등 19명의 등록자중 10억원대 이상자 10명,30억원대 이상자 4명으로 특히 출연연구소장들이 김시중장관(6억8백57만여원대)과 한영성차관(3억2천7백여만원대)의 수준을 크게 압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박승덕원장은 69억9천6백여만원으로 공직유관단체 1위,한국기계연구원의 서상기원장은 61억9천여만원으로 2위이다.이외에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임용규원장 32억여원,한국해양연구소 송원오원장 23억원,과학기술연구원의 김은영원장이 21억5천7백여만원으로 공개됐다. 서울강남에 50억원 상당의 대지및 사무실 2백62평,67평아파트등을 보유한 박승덕표준연구원장은 약국을 한 부인이 73년 산 임야를 환지해 받은 땅등이라며 본인명의과 부인명의 부동산등 소명자료를 첨부하고 있다. 한편 과기처 관련 공무원들중 최고액인 48억1천여만원을 등록한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김호기사무처장은 서울강남구 논현동과 서초구 양재동의 3필지등 38억7천만원 상당의 대지를 소유한것으로 밝히고 있으며 금융인인 부친 김진흥씨(전 한일은행장)가 상당히 도움을 준것으로 알려졌다.
  • 대입 대리시험 알선/수배 학원강사 구속

    서울경찰청은 6일 한양대 대리 입학시험 사건과 관련, 수배를 받아오던 학원강사 정용화씨(59·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301의93)를 붙잡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서울 Y학원의 윤리 강사로 근무하던 지난해 1월1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S다방에서 자신의 담당 학원생 이모군(19)의 아버지 영보씨(56)로부터 7천만원을 받아 이중 2천만원을 S대 유모군(당시 건축공학과 4년)에게 주고 이군대신 유군이 한양대 안산캠퍼스 전자공학과에 대신 시험을 치르게하는 등 학부모 2명으로부터 대리시험을 치러주는 조건으로 모두 1억6천만원을 받은 혐의다.
  • 이인영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13도 의병 규합… 1907년 “서울진공” 시도/12월말 8천여명 연합부대 편성·지휘/양주서 집결… 동대문밖 30리까지 진격/무기·병력 열세로 일제에 패배… 한말 15년의병사 마감 『동포들이여,우리는 함께 뭉쳐 조국의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우리는 일본제국의 잘못과 광란을 전세계에 호소해야 한다』 ○27세 여주서 거병 이인영선생은 1868년 9월23일 경기도 여주군 군북면 교곡동에서 부친 이현상씨와 모친 한씨의 4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선생은 27세인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등 압제를 강화해나가자 보다못해 유린석등과 함께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여주에서 의병 5백여명을 규합,왜군과 싸웠다.1896년 여름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의병해산령을 공포하자 선생은 할 수 없이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후 일제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군을 해산시킨 뒤 고종을 폐위하는등 더욱 오만무례한 행동을 자행,나라의 형세는 말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서 의병이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강원도에서 의병 2천여명을 일으킨 이은찬 이구채등이 선생을 통솔자로 모시기 위해 찾아왔으나 부친의 병이 깊을 때여서 선뜻 허락을 하지 못했다.이은찬등은 나흘동안을 유숙하며 선생의 결단을 촉구하자 선생은 마침내 허락을 하기에 이른다.1907년 7월25일이었다.선생은 즉시 원주로 가 의병원수부를 설치한 뒤 관동창의대장으로 추대됐다. 선생은 곧 국내외에 격문을 발송했다.일제는 인류의 적이므로 분쇄,조국의 독립을 찾자는 내용이었다.해외동포들에게도 격문을 보내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많은 우국지사들이 이 격문에 감동,의병으로 참가,그 수가 무려 1만여명에 달했다. 선생은 이때부터 1907년 11월까지 원주·철원등 강원 지역에서 38차례나 일군과 항전했다. ○일군 접전 38차례 선생은 시골에서 아무리 일군과 싸운다해도 서울을 일군이 장악하는 한 국권회복은 멀다고 판단,전국의 의병을 하나로 뭉쳐 서울로 진격시키는 전략을 굳혔다.산발적인 의병활동을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로 통합,일거에 일군을 패퇴시키려는방책이었다. 각 의병대장에게 1907년 11월 경기도 양주로 집결하라는 전갈이 전달된다.선생은 13도 창의대진소 원수부가 설치된 뒤 의병장들의 협의끝에 만장일치로 총대장으로 옹립됐다.선생도 이를 쾌히 승락하고 조직을 정비,관동군(강원도지역)6천여명과 진동군(경기·황해지역)2천여명을 축으로 연합대부대를 편성했다. 서울 진격일을 12월말로 정한 선생은 예하 각 의병대장들에게 경기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일대에 진주토록 했다. 선생은 각 의병진에서 결사대원 3백여명도 엄선했다. 선생은 공격개시에 앞서 심복부하인 김세영에게 격문원고를 작성,서울에 가 이를 인쇄토록 지시했다.인쇄된 격문은 김세영이 직접 서울주재 각국영사관에 전달하게 했다. 선생은 이 격문에서 을사조약의 폐지와 13도 창의대진소를 교전단체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한 뒤 2천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한다.그러나 이때 이미 일군은 수천명의 보병과 기마병으로 망우리 일대 군사요충지를 선점,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결사대원이 앞장서 싸웠음에도 연발총무기로 무장하고 정규군대 훈련을 받은 일군 앞에는 불가항력이었다.선발대 의병은 항일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지만 열악한 화살총으로는 패전이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선발대는 설상가상으로 각도 의병진들이 기일내에 도착하지 않아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됐다. 선생은 눈물을 머금고 망우리고개를 넘지 못한 의병대에 후퇴명령을 내리고 패전의 진용을 재정비할 무렵 부친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된다.1907년 12월25일(양력 1908년 1월28일)이었다.선생은 허위군사장을 불러 군무를 위탁하고 총대장직을 사퇴한다.3년상이 끝나면 다시 합세하겠다는 뜻을 알리고 그날로 문경 고향집으로 달려간다. ○42세때 체포·순국 선생이 부친상을 치르고 있을 때 후임 의병총대장 허위는 소요산까지 퇴군하게 되었는데 일군이 산을 태워 공격하는 화공작전으로 나와 의병들은 1908년 5월14일 포천 영평에서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의병 15년사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서울공략계획은 이로써 무산돼 버렸다. 선생은 이후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충북금계동으로 피신생활을 하면서 3년상이 끝나는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그러나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1909년 6월7일 금계동에서 9명의 일군헌병에게 붙잡혔다. 일본 헌병의 가혹한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선생은 『당시 전황이 그러한데 어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부모의 상을 치르는 것은 조선의 규칙인데 이를 행하지 않으면 불효요 부모에 효도하지 않는 자는 금수와 같으며 금수는 신하가 될 수 없다.그러면 그것이 바로 불충인 것이다』고 답했다.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일왕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1909년 9월20일 사형이 집행됐다.42세때였다. 정부는 선생의 업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한·일,북핵해결 공동노력/사할린동포등 전후처리문제 해결”

    ◎한의원련 총회,11개항 채택 제21차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가 양국의 새정부 출범후 처음으로 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우리측의 김윤환회장과 일본측의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회장을 비롯한 양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양국의원들은 이날 총회와 4개 분과위원회별 회의를 통해 ▲북한 핵문제등지역안보협력문제 ▲군대위안부 등 과거사청산 및 새로운 한일관계 ▲과학기술개발및 산업협력 ▲재일교포의 법적지위향상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 특히 총회는 11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북한 핵위협의 완전해결을 위한 공동협력 ▲과거사의 합리적 청산 ▲아태지역 경제협조체제 구축을 위한 공동노력 ▲사할린동포문제등 전후처리문제의 해결 등을 결의했다. 양측은 또 ▲재일한국인의 법적·사회적 지위개선 ▲동북아지역 환경문제 공동대처 ▲어업자원보호수역의 상호존중및 가칭 「국제수산자원조성센터」설립 등에도 합의했다. 양측은 이어 두나라간 미래지향적인 관계구축을 위해 30∼40대와 50대초반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21세기 위원회」를구성,양국 소장의원들간의 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날 분과위별 회의에서 우리측 박상천의원(민주)은 사할린동포등 태평양전쟁희생자들을 위한 한일공동기금 설치와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한 진상규명등을 제안했으며 나병선의원(민주)은 김대중씨 납치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일본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 우리측 김윤환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두나라 새정부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는 큰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다』면서 『두나라 신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향한 중대한 분수령이 되는만큼 서울총회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대만에 고도의 자치권 부여/중 통일백서

    ◎홍콩식 특별구 지정… 독자군도 보유토록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정부는 31일 대만과의 통일은 「평화통일,1국양제」라는 기본방침아래 대만에 고도의 자치권을 주는 홍콩식 특별행정구 방식으로 달성하겠다는 방침을 확정,발표했다.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대만문제와 중국의 통일」이라는 제목의 이 통일백서에 따르면 통일후 대만특별행정구는 입법권,행정관리권,독자적인 사법권과 종심권을 가지며 독자적인 군대와 일부 외교사무권까지도 향유토록 함으로써 홍콩이나 마카오보다 더 고도의 자치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 사노맹 재건 기도 8명 구속/6개소에 활동거점/현역군인 5명 이첩

    【춘천=정호성기자】 강원경찰청은 28일 반국가단체인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단체(사노맹)의 지방조직인 사노맹 강원도위원회 재건을 기도한 이은영(여·사노맹 강원지부 총책)등 8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전모씨(25)등 현역군인 5명을 군에 이첩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마침내 전선에 서다」「붉은 기빨은 세차게」「김영삼 체제의 성격과 사화주의자의 전술」등 서류와 컴퓨터 디스겟등 증거품 3백13종 6백27점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91년 9월 춘천근교 강촌유원지에서 사노맹 강원도위원회 준비모임을 갖고 춘천 원주 지역 6개소에 활동 거점을 마련,사노맹 재건위의 지령에 따라 대학을 비롯,학원과 광산 산업 현장및 군대내부에 사노맹의 조직복원을 꾀하는등 반국가 행위를 한 혐의다. 경찰은 행방을 감춘 6명을 추적하고 있다. 구속자는 다음과 같다. ▲이은영 ▲성락윤 ▲공인표(26·사노맹춘천지역책겸 연락국장) ▲전훈(24·〃 강원위영업부원)▲이수진(25·〃 강원위판매부장) ▲이충희(26·〃 강원위영업부원) ▲박학렬(26·한울타리대표 ▲지재근(28·민정련원주지부장)
  • “정신대 보상책 제시할터”/유엔 특별보고관 샤베스여사 밝혀

    【도쿄 연합】 유엔 인권위의 차별방지및 소수자보호소위원회(차별소위)에 의해 구일본군의 군대위안부및 유고내전 성폭행문제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린더 샤베스씨(여)는 26일 종군위안부문제 조사를 통해 일본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할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샤베스씨는 이날 제네바의 유엔 유럽본부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혔다고 일본 교도(공동)통신이 제네바발로 보도했다. 샤베스씨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아시아 관련국을 방문할 희망을 갖고 있지만 이미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해 많은 문서와 자료가 있기 때문에 꼭 피해자와 개별적으로 인터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 6·25참전 마지막 현역 별달고 예편/육군 3사교수 정육진대령

    ◎17세 입대… 43년간 참군인 외길/대통령이 특진지시… “최고 영예” 홍안의 미소년으로 6·25전쟁에 참전한뒤 국토방위에 평생을 바쳐온 마지막 참전용사가 마침내 군복을 벗는다. 『오로지 참 군인으로 살아왔던 군생활 43년을 마치려고 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국가에 충성하는 것을 군인의 기본으로 알고 복무해 온 지난날이 자랑스럽습니다』 육·해·공 3군의 현역 가운데 유일한 6·25참전용사인 정육진대령(60·육군3사관학교 교수)은 오는 30일 준장으로 진급,「하루장군」을 거친뒤 31일 42년8개월의 군생활을 마감한다. 정대령의 장군특진은 뜻밖의 일.당초 국방부는 정대령의 전역에 앞서 김영삼대통령과의 오찬을 추진했으나 일정이 맞지않아 표창상신으로 바꿨는데 정대령의 얘기를 전해들은 김대통령의 특진지시로 뜻하지않은 전역선물을 받게 됐다. 한국군의 산증인으로서 숱한 일화를 남긴 정대령이 군에 입대한것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서울한성중학교 5학년생이었던 그는 17살의 어린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1주일동안 총쏘는법만 배우고 육군 8사단에 배속돼 말단 소총수로 참전했다. 몇고비의 사선을 넘나들었던 그는 51년 8월엔 전사에 남는 강원도 양구북방 김일성고지(965고지)탈환작전에 참가하기도 했다.1953년 9월 갑종간부 57기로 육군소위에 임관한 그는 일선 소대장과 작전·군수·정훈장교를 두루 거친 뒤 62년 국비장학생으로 단국대법대를 졸업하고 미육군특수전학교 심리전과정을 이수하는등 학구파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정대령은 대위이던 65년10월 맹호부대 정훈장교로 월남전에 참가,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외신기자들에게 한국군의 전투상황 및 주민선무작전을 소개,사이공주재 외신기자들이 경쟁적으로 한국군에 관한 보도를 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런던타임스지는 당시 1면에「고보이전투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군이 한국군처럼 작전을 했더라면 월남전은 이미 끝났을 것』이라고 찬양하기도 했다. 대령으로 진급한 이듬해인 77년부터 줄곧 경북 영천의 3사관학교 교수로 봉직하면서 「공산주의 전략전술론」「현대의 이데올로기」등을 강의하고 있다. 전역후 국군홍보관리소의 논설고문으로 일할 예정인 정대령은 『군은 오직 국민의 군대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속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을 군후배 장병들에게 남기고 싶어했다.
  • 유엔,곧 정신대 내한 조사/인권소위,「침해조사 보고관」 임명

    【도쿄=이창순특파원】 유엔 인권위 「차별방지및 소수자 보호 소위원회」(차별소위)는 25일밤(한국시간 26일새벽) 구일본군의 군대 위안부 문제와 구유고의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연구하는 특별 보고관의 임명등을 규정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6일 제네바발로 보도했다. 이로써 종군위안부 문제를 유엔이 직접 조사토록한 한국과 북한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됐으며 일본은 구체적으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됐다고 이통신은 전했다. 한편 차별소위에 의해 종군위안부 문제등에 관해 조사하는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린더 샤베스(미)여사는 25일 관계국을 방문해 조사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뜻을 확실히 밝혔다고 일본 지지통신이 26일 전했다.
  • 전 전대통령 대 국민 발표 전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 모두가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계신 이때,제가 새삼 재임중의 일에 관해 번거롭게 말씀을 드리게 된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즘 일기가 불순하여 농사마저 어려워져서 농민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의 걱정이 더해가고 있는 터에,그동안 정부가 두번이나 바뀐 6∼7년전의 일이 또 다시 시비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해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평화의 댐 건설은 제가 현직에 있을때 대통령으로서 정책판단을 하고 결정했던 일입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국회의 본회의와 관련 상임위원회,특히 1988∼89년의 국회특별위원회 등에서 되풀이 다루어졌고 더러는 일부 정당차원에서의 조사도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평화의 댐 축조에 관계했던 공무원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필요한 자료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답변을 했던 것으로 알고있으며,저 자신도 1989년 12월의 국회증언에서 말슴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정치권과 언론등에 의해 다시 평화의 댐에 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되었고,저 스스로는 침묵으로 일관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인식되고 있으며,이것이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우려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현상을 전직 대통령으로서 모른척 할 수 만은 없고,또 그것이 저와 관계된 사안인 만큼,이 기회에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하게 된 경위와 배경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역사를 돌아볼때,조선왕조 선조임금때 일본에 갔던 통신사가 『일본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고,율곡 이이선생이 10만양병을 제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때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면,비록 국고가 다소 축이 나고 민생이 어려워졌을는지는 몰라도 왜적의 침입을 받아 수년간 전국토와 백성이 유린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파적 입장때문에 『침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못 보고한 통신부사의 말을 따른 결과 엄청난 국난을 자초한 셈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때 10만의 군사를 길러 대비했으면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침략을 당했더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의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해야 하겠습니까. 영세중립국도 군대는 갖고 있고,수 백년간 전쟁을 모르고 살아온 나라들도 만일의 외침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53년 휴전이래 북한의 전면남침이 없었다고 해서 40년동안 매년 국가예산의 3분의1을 방위비에 투입하여,북한의 전면전도발에 대비하도록 한 역대 대통령들의 정책판단이 단순히 「세금의 낭비」를 가져왔다고 비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옛말에 『한나절 싸움에 이기기 위해 1천일에 걸쳐 군사를 기른다』(양병천일 용어일일)고 했는데,9백99일동안은 전투가 없었다고 해서 공연한 정성과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국방문제는 본질상 그러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이 금강산주변의 산악지대에 길을 닦고 도수터널 공사를 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국내외 관계기관으로부터 처음 입수한 것은 1986년 초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 같은해 4월에는 북한의 방송이 금강산 발전소계획을 확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뒤 저들이 댐 공사의 착수를 공식 발표한 10월까지 수개월동안 북한의 동향과 의도를 면밀히 주시,분석한 결과 금강산댐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판단의 근거는 첫째 그들이 전력과 산업용수 확보를 위해 댐을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화력발전소를 만들거나 다른 지역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경우와 비교해서 전력생산단위가 3∼4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 것입니다. 다음으로 댐이 완공되면 그들 주장대로 산업용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댐 건설로 인해 금강군등의 농경지가 수몰되어 22만t 정도의 미곡감산이 예상되는 바,이것은 채산성이 안맞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경제성도 채산성도 없는 댐을 만들기 위해 그 험준한 지역에 인민무력부 주도 아래 수만명의 군병력을 동원해서 난공사를 강행하는 뜻은 분명히 군사적 목적 때문이며,그것은 우리에게 곧 수공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10만 병력의 상호감축을 제의했는데,이것도 감축된 병력을 댐공사에 투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했으며,실제 그들은 5만명을 초기공사에 투입했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북한공산주의자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집단인가 하는 사실과,또 그들이 우리에게 기상천외 하고 악랄한 도발과 위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전 세계가 다 아는 일입니다. 6·25는 물론 1·21사태,남침용땅굴,아웅산 암살 폭파사건,KAL기 폭파사건 등 전쟁광이나 할 수 있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 바로 저들인 것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전과가 있는 북한이 우리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인다면,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가 따져보고 대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위에 열거한 사건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하기는 커녕,모두가 우리의 자작극이라고 덮어 씌워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서둘러 착공한 금강산댐이 인위적으로 폭파되거나 사고로 무너질 경우 한강수계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그들의 선의를 믿고 팔짱을 끼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설혹 「수공의도가 전혀 없다」는 그들의 말을 믿어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이 1백% 확실한 것이 아니고,다만 1%의 의심이라도 남는다면,그리고 그 1%가 우리의 생존권에 위협이 된다면 국가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는 대응책을 찾아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시기는 북한공산집단이 방송등 그들의 선전매체를 통해 『서울올림픽을 결코 수수방관하지 않겠다』고 되풀이 위협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고위당국자들이 「금강산댐을 만들어서 비상시에 문을 열어 놓으면 서울 시내에서 물에 잠기지 않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다」「남조선 것들이 올림픽한다고 우쭐대지만 금강산댐만 만들어 놓는 날에는 서울이 물바다가 될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사실을 귀순한 북한관리들이 증언한 바 있습니다. 10여일 전에 귀순했다는 북한군 장교도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이 인민무력부에 대해 인민군의 전투 준비완성에 큰 몫을 할 금강산댐의 건설을 지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들이 귀순한 것은 제가 이미 퇴임하고 서울올림픽이 끝난 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권안보를 위해 금강산댐의 수공가능성을 조작했다」고 비난 받는 저를 변명해주기 위해 없는 말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에 와서는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여러 이점들을 지난 몇년간 헛되이 흘려 보냈다는 반성이 있지만,어쨌든 서울올림픽이 우리의 국가발전과정에서 선진국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울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당시 우리의 시대적 과제요 국민적 합의였습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1986년에서 올림픽 때까지의 그 엄청났던 민족적 열의와 고조된분위기가 너무도 허무하게 사그라져 버린 오늘의 시점에서는 실감하기 어렵지만,그때 우리는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였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를 연달아 반쪽 올림픽으로 치른 국제올림픽 관계자들도 혹시나 서울올림픽마저 북한의 방해때문에 실패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소련을 비롯한 동구가 붕괴된 오늘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호전적이고 경직된 자세는 변함이 없지만,1986∼87년 당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던 우리와의 체제경쟁에서 결정적 열세에 몰린 나머지 극도의 초조감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국운이 뻗어 오르던 그 소중한 시기에,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침략기도를 사전에 봉쇄하지 못해서 전쟁이 일어날까봐 애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보를 확고히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 최악의 상황,있을 수 있는 모든 위협의 가능성까지 철저히 점검해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가금강산댐에 관해 처음 발표할때 2백억t이라고 한 것은 정보입수 초기에 댐건설 현장으로 추정되는 위치의 지형자료등을 토대로 계측한 그 지역의 용적의 최대치라고 이해했으며,나중에 외국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와도 일치한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북한이 겉으로 내세우는 건설목적과 규모야 어쨌든 일방적 댐건설이 공유하천이용에 관한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인 만큼 정부로서는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하였습니다. 금강산댐이 그들 주장대로 전력과 산업용수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우리 쪽에서 전력을 공급하는등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우방 여러나라는 물론 국제연합과 세계 대댐 학회등 국제기구를 통해 북한의 일방적이고 무모한 댐건설을 중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모든 제의를 묵살한 채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쟁을 각오하고 금강산댐 공사현장을 폭격할수는 없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불가피하게 정부는 대응댐의 축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측이 공사에 관한 사항을 극비에 부치고 있어서 그 시점에서는 댐의 정확한 위치나 규모등을 모두 추정밖에 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따라서 우리측도 대응댐에 관해 실무자사이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대응댐 공사를 2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자는 데는 쉽게 합의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1단계로는 우선 북한이 3억t 정도 가물막이 공사를 끝냈을때의 위력에 대비하는 규모로 댐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1984년 홍수때의 수량 9.4억t과 북한의 가물막이댐 3억t을 합쳐 12.4억t 정도의 수량이 될 것인바,이에 대응하는데에는 평화의 댐 5.9억t과 화천댐등 기존댐의 수위조절 저수량 7억t을 합친 12.9억t으로서 최소한의 응급책은 된다고 계산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단계공사는 금강산댐의 최종적인 규모를 확인해가면서 그들의 공사 진도에 맞추어 추가하여 순차적으로 추진할계획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1단계 공사가 끝난 상태로 있는 평화의 댐이 물을 담고있지 않은 모습으로 있어서,일부에서는 「막대한 국민성금을 삼긴채 쓸모없이 서 있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덩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서 있는것 자체가 평화의 댐의 본래의 「쓸모」인 것입니다. 발전을 하거나 산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댐이 아니라 유사시 북으로부터의 수공을 막는 일종의 「방벽」의 성격이 그 1차적 기능인 만큼 일반적인 댐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최근 대전 엑스포 현장에서도 몇시간의 호우로 인해 적잖은 지장을 초래했었고,서울의 한강변은 몇년에 한번씩 홍수가 져 큰 물난리를 겪는것이 우리 실정인 것입니다. 1984년 홍수때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소양댐이 범람하고 파괴되더라도 수문을 열지않고 버텨야 하느냐,아니면 서울이 물바다가 되더라도 수문을 열어야 하느냐하는 심각한 기로에 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2백억t이 아니라 수억t만 더 쏟아져내려와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댐으로부터 2백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70억t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거나 서울이 마비될 정도의 피해를 입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단계 공사를 조기에 착공한 것은 북한이 초기에는 5만 병력을 투입했으나 1986년 가을에는 15만명의 투입을 결정하는등 공사를 급히 서두르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러한 동향은 단기적 군사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았고 그것은 곧 서울 올림픽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를 갖게 한 것입니다. 당국의 분석으로는 3억t 정도의 저수량인 가물막이 댐은 북한이 5개월 안에 만들수 있다는 계산이었고 따라서 정부로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우기이전에 최소한 10억t 안팎의 수공만이라도 막을 수 있는 5.9억t 규모의 1단계 댐을 조기착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일부 잘못 알려져 있듯이 공사를 하다가 흐지부지 중단된 것이 아니고,예정했던 1단계 공사는 당초 계획대로 1988년 6월에 완공된 것이며,현재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북한쪽의 공사진도에 따라서는 2단계 공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이 서 있는 것입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화천댐등 우리의 기존댐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평화의 댐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수공에 대비해서 우리의 댐들을 모두 비워놓고 있어야 하는데,그로인한 경제적 손실은 평화의 댐을 만드는 비용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화천댐은 수공을 받으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질학적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가 듣기로는 지난해에만 해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금강산댐에 관한 교시를 발표하고 건설사령관인 인민무력부장에게 군병력의 집중투입을 지시하는등 직접 공사를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강산댐과 수공위협의 가능성은 분명히 실체가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댐이 지금은 우리의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해서,또 평화의 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에 와서는 실감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의 일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지난 일을 오늘의 상황과 기준에 서서 따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단임의 실현으로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평화적 정부이양을 이룩하는 것이 저에게 부하된 최대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신념을 시종일관에서 지켜왔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을 착공할 당시 저로서는 잔여 임기를 불과 1년 남짓 앞둔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시국이 다소 어려웠다고 하더라도,있지도 않은 북한의 위협을 날조해가면서까지 1년 남은 정권을 유지해야 할 만큼 그렇게 허약하고 부도덕한 정부는 아니었다고 저는 믿고 있고 또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6·25때 「맥아더」원수가 막료들이 모두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결행해서 전세를 일거에 역전시킨 일도 있듯이,최고결정권자는 국가의 이익과 백년대계등을 종합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에 부분적 진실에만 집착하기 쉬운 특정기관이나 특정인의 판단에 구애받아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의 댐과 관련한 사항도,모든 정보보고와 판단자료를 제가 검토하고 심사숙고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지시한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끝으로 한가지 간절히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1988년과 1989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기회에도 호소한 바 있습니다만,지난 날의 허물과 잘못은 모두 저에게 물어 주시고,이제는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미래를 지향하면서,보다 살기 좋고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데 매진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재임중 과오도 많았고 부덕하고 불민한 이 사람이지만 그 점만은 국민 여러분께서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경제성도 없는 금강산댐을 빨리 만들라고 오늘도 인민무력부장을 다그치고 있는 김일성 부자가 그 대응댐을 만든 전직 대통령의 「저의」를 거듭거듭 따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안타깝고 답답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여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제가 재임중에 정부와 공직자가 한 모든 일은 그것이 어떤 경로로 입안되어 어떻게 실행되었든,그것은 최종보고받고 결정하고 지시한 것은 대통령이었던 저였습니다. 따라서 그 책임은 비록 퇴임한 후인 지금에 와서도 모두 저에게 귀착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실무자나 전문가들의 보고,건의와는 다른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전두환씨 감사원 회신(전문) 1,본인은 1993년 8월16일자 귀원의 「평화의 댐 감사관련 질문서를」를 받고 본인이 취할 수 있는 합당한 대응방법에 대하여 원로들과도 의견을 교환한 바 있습니다.그런데 법률적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준 분들은 대통령 소속하에 있는 감사원이 대통령의 정책결정의 배경·경위와 타당성에 대하여 직무감찰을 하는 것은 헌법 제97조와 감사원법 제24조의 규정내용에 비추어 볼때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헌정사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스럽지 못한 선례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귀하도주지하고 계시겠지만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로써 행하여 지는 것이 원칙이며 평화의 댐에 관련된 정책결정 역시 관련 부처에서 작성된 문서로써 행하여 졌습니다. 따라서 귀원의 감찰활동상 필요한 자료와 사실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관중인 관련문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평화의 댐과 관련한 문제에 대하여는 지난 수년간 국회차원에서도 다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에 이르러 또다시 세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칫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본인은 대통령으로서 평화의 댐 축조를 결정한 배경과 경위에 대하여 모든 국민에게 아는대로 설명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별첨한 「평화의 댐에 관하여」는 이러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문민통치 6개월 평가가와 과제/원로대담

    ◎본격개혁 이제부터… 완성은 국민의 몫/역대정권 손못댄 난제 해결… 국민신임 두터워/지속사정·실명제등 충분한 사전정지/중기 실질지원등 구체적 정책 실천을 ▷참석자◁ 박충훈 전국무총리 이만갑 서울대명예교수 25일로 김영삼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았다.문민정부의 반년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원로 2인의 좌담을 통해 김대통령의 통치 6개월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점검해 본다.좌담회에는 박충훈전국무총리와 이만갑서울대명예교수가 각각 참석했다. ▲박전총리=한 조사에 의하면 같은 시기에 정권을 잡은 미국의 클린턴대통령 인기도가 36%인 반면 우리 김영삼대통령은 80%이상이었습니다.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김대통령의 개혁수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죠.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흠도 더러 있었다고 생각됩니다.충격요법의 하나인 전격성이 많았다는 것이죠.세간에는 군인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대통령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부드럽고 인정미있는 개혁작업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교수=김대통령이 그동안 쌓여왔던 문제점에 대해 탄력성있게 신속히 대처해온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오랜 정치생활끝에 몸에 밴 감각을 통해 국민의 요구가 뭔지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이 정도의 개혁을 이뤄낸데는 김대통령의 힘이 무엇보다 컸지만 감사원이나 언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고요. ○감사원·언론 큰역할 한편으로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접한 정보가 너무 일방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신문이나 TV가 대통령에게만 앵글을 맞추다보니 개혁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다소 미흡한 면도 없지 않은 것입니다. ▲박전총리=김영삼정권은 취임 즉시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하고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각종 공직자의 비리에 대해 사정의 칼날을 휘둘렀습니다.새롭게 출범한 문민정부가 신임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적어도 깨끗한 공직풍토는 조성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 않지요.예를들면 감사원이 제역할을 한다는 것은 좋지만 「뇌물수수조사」등 특정한 이슈나 정치적인 문제에만 무게중심을 두는 바람에 정작 지속적인 개혁에 필요한 정책감사를 못하고 있는 것같아요. 지방자치등 지방분권도 시기를 늦춰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됩니다.일본의 호소카와 신내각이 중요한 이슈로 내건 대목이 아니겠습니까.지방의 정신,고유성을 찾고 지역간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도 새 정부의 정치개혁적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책자체 다소막연 ▲이교수=부정척결 등 실질적인 개혁을 위한 전단계는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됩니다.지금부터가 본격적인 개혁이지요.김대통령의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조직의 의지는 충분한 것으로 비쳐집니다.그러나 발표되는 정책 자체는 다소 막연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행정 전반의 팀이 빈틈없이 짜여지고 각자마다 구체적으로 뭘 할 것인지 전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할 때입니다.정치가 활성화되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재가 여러 명이 나와야지요.그렇지 않으면 5년후에 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전총리=금융실명제는 역사적 당위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또 역대정권이 하지 못한 것을 과감하게 실행한 것도 개혁정부의 업적이겠지요. 시중에는 『큰 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경제가 큰일이다』는 식의 볼멘소리를 터뜨리는 것도 자주 목격됩니다.그러나 소위 「큰손」이나 「가진 자」들은 이같은 역사적 소명에 따라야 합니다.실명제문제는 시중의 자금경색을 잘만 풀어주면 정착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각료들이 미처 개혁의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어요.예를 들어 경제운용 방식을 민주적으로 한다고 해놓고 구태의연한 「통제」나 관주도 형식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신경제계획도 그래요.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요.경제가 회복된다는 밝은 전망은 있어도 밑으로 내려가보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징후가 너무 많고 실제로 이를 걱정하는 기업이 무척 많은 것 같습니다.중소기업이 당면한 가장 급한 문제는 자금경색입니다.새정부 출범 1백80일이 됐지만 중소기업이물품거래 대금으로 받은 진성어음이 제대로 할인되지 않고 있는 점은 쉽게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사실입니다.결국 정부는 문제점을 꾸준히 제시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실천력이 약한 것 같아요.철저한 확인감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교수=금융실명제의 경우 전문지식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높이 평가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지금까지 큰 부작용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반드시 성공할 수 있겠지요.김대통령은 집권여부가 불안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제에 대해 깊이 연구할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이제부터는 힘을 기울여야 하겠지요.전세계적인 불황과 관련,각국과의 관계를 먼저 설정하고 대내적으로는 물가 등 각종 분야의 우선 순위도 정해야 합니다.이 모든 것들을 높은 수준에서 검증할 수 있는 체제도 구축해야 하고요. ○통제·관주도 버려야 ▲박전총리=사회부문의 개혁은 국민 개개인의 의식개혁과 이를 조율해 낼 수 있는 통치권차원의 뒷받침으로 가능합니다.얼마전 종교계에서는 재산공개니 자정운동이니 하는 문제가 거론됐던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자발적으로 개혁운동에 동참하도록 하는 정부의 후속적인 홍보나 정책적 뒷받침은 거의 없었다고나 할까요. 대전엑스포만 해도 그래요.조직위가 장내에 엑스포 노래를 들려주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지나치게 상부쪽의 눈치를 보는 것도 개혁의 장애물이 아닐까요. ▲이교수=동감입니다.대통령이 아무리 개혁을 하더라도 국민이나 관료가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그렇더라도 국민의 의식이 전환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지적 역량은 과거보다 눈에 띄게 향상되지 않았습니까.다만 군대식으로 시키는대로만 하는 습관이 아직 고쳐지지 않았을 뿐이지요.아직 활용하지 못한 잠재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각 분야의 중간 리더계층을 육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박전총리=21세기는 태평양시대(PAX­PACIFICANA)라고들 합니다.그중에서도 한국의 역할이 점점 커가고 있습니다.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6천년 역사 가운데 지금처럼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거나 그 계기를 가진 적은 없었습니다.지금이 민족의융성기인 셈이지요.세계적인 기류가 우리를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고 우리도 활력이 가득 차 있는 때인만큼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할 것 같아요. ○중간리더층 육성을 ▲이교수=21세기는 새로운 미가 존중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우리 민족은 원래 문화적으로 의욕이 강합니다.재주도 상당히 있고요.이러한 문화적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고 개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박전총리=김영삼대통령은 참 좋은 때 대통령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국민의 지도자로서 국민의 의지,역량등을 잘 조직화하고 결집하고 조율하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언제나 그러했듯이 인기위주의 정책이나 쇼킹한 기법을 자주 등장시키는 일은 곧 한계에 직면하게 되니까요. ▲이교수=우리 체질은 위에서 한마디 하면 밑에서 쫓아다니는 식이었습니다.개혁의 중추세력은 중추세력대로,지원세력은 지원세력대로 그 몫을 다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다양한 중산층이 힘을 발휘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 “북한,영변서 지하 핵실험”/장거리 미사일기지 수곳 건설

    ◎식량난에 군 보급품 탈취 빈번/11일 귀순 북 임영선중위 회견 북한은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고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는 반면 식량사정이 극에 달해 군대식량보급이 탈취당하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1일 제3국을 통해 북한을 탈출한 인민무력부 직속 군사건설국(583부대)경비소대장이었던 임영선중위는 24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임씨는 『영변 원자력연구소 지하에는 납으로 밀봉된 장소에서 핵실험이 행해지고 있다』면서 『미국이 강제로 핵사찰을 할 경우 이는 곳 우리가 손을 드는 것으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중앙당이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씨는 또 『함경북도 곰덕산과 강원도 문천시 옥평등 2곳에는 유사시 일본및 괌도의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기지를 갖추고 있다』면서 『북한은 이외에도 자강도 중강과 강원도 원산등 2곳에도 북한제 장거리 미사일발사기지가 건설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임씨는 최근 숙정된 오극렬 전인민무력부 총참모장에 대해서는『군대 말단조직까지 감시토록 설치된 정치부를 없애자는 논문을 썼다가 김일성의 미움을 사 숙정됐다가 최근에는 대남연락소 작전부장을 맡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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