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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남북한 정상회담주선을”/미 해군대 올슨교수 기고문서 제의

    ◎탈냉전시대 미의 적극역할 중요/한반도통일비용 일이 지불해야 미국의 영향력있는 신문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7일자 여론란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해군대학원의 에드워드 올슨교수가 쓴 『미국은 한반도통일을 준비해야한다』는 기고문을 게재했다.아시아관계전문가인 올슨교수는 이 글에서 『클린턴 새 행정부는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적극 촉진해야하며 남북정상회담을 미국의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가질수있도록 주선해야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기고문의 요지를 간추려본다. 클린턴 차기대통령이 준비해야할 외교정책가운데는 통일한국에 대한 전망과 남북한통일을 위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것인가가 포함돼야한다.클린턴행정부는 아마도 한반도통일문제를 우선과제의 하나로 삼을 것이다. 한국문제는 냉전의 산물이며 냉전체제가 종식된 지금까지 분단으로 남아있는 것은 비정상적이다.남북한도 이미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가고있지만 상호간의 불신이 깊어 화해의 절차와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시키지 못하고있다. 한국통일에 대한 미국의선택은 본질적으로 두가지밖에 없다.하나는 수동적인 방관자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적극적인 조언자가 되는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통일에 관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방법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을수있다. 우선 중동평화회담(이스라엘­이집트정상의 캠프데이드회담)의 선례를 빌려 미국의 대통령이 남북지도자간의 캠프데이비드회담을 추진할수있을 것이다.만약 이러한 접근방법이 워싱턴의 입맛에 다소 맛지 않는다면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격상을 통해 남북한간의 접촉망을 확대하여 적극적인 기여를 할수있을 것이다. 통일문제가 점차 현실화되어 갈수록 미국은 남북한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할때까지 도와주어야한다.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남북한의 통일비용까지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 그럴수도 없을 것이다.다만 미국이 한국전쟁이후 기왕의 방위부담을 짊어져왔기 때문에 통일후도 안전보장을 계속 유지해주도록 기대는 할수있을 것이다.일본은 한국통일비용의 상당부분을 분담할수있을 것이며 그렇게 해야할 도덕적 의무도있다고 본다. 미국은 남북한통일이후에도 정책적인 준비를 해야한다.예를 들어 통일한국이 아시아의 세력균형에 어떻게 적응할것이며 미국의 대일­대중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 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한다. 한국의 통일은 클린턴행정부시절이 되거나 될수있는 향후 4∼8년안에 이뤄질지도 모른다.그러므로 새 행정부는 최소한 한국문제에 대한 긴급대책과 계획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한다.「변화」를 구호로 내걸고 있는 클린턴행정부는 한국통일문제를 잘 처리할수 있도록 이에 대한 창조적인 접근방법을 채택해야 할것이다.
  • 금융실명제 최우선 시행을/곽상경 고려대교수·경제학(정경문화포럼)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중요한 과도기에 새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너무 오랫동안 대통령을 대통령답게 여기지 않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고조되면서 질서가 문란하고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는 현실을 타파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성숙된 선진조국의 발판이 착실하게 다져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에서의 대통령은 일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본다.침체된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어려운 시기에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임무가 주어져 있을수록 업적은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정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5년 단임기간에 무사안일의 편한 대통령이 되려면 될 수도 있겠으나 굳은 신념과 강한 의지로 가장 훌륭한 임무를 수행한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려면 지금이 오히려 좋은 기회일 것이다. 훌륭한 대통령이 되려면 주위가 훌륭해야 하고 주위가 훌륭하려면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가장 힘을 많이 쓴 사람일수록 더욱 더 훌륭해야 한다.주위사람이 훌륭하다는 것은 곧 대통령과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일선에 나서지 말고 뒤에서 계속 잘못을 바로 잡아주는 일만 해야 한다.논공행상의 인사는 일부러라도 스스로 피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다운 훌륭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대통령이 하지 못한 것을 과감히 실천하고 잘못된 것을 철저히 바로잡으면서 보다 강한 의지와 신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그래서 새대통령은 첫째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출세지향적인 사람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굳은 신념과 강한 의지를 갖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뒷받침과 분위기조성이 새로운 차원에서 확립되어야 한다.둘째 새정부는 새로운 기강을 세워야 한다.정부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이제는 불만과 반항 또는 타도까지 생각할정도로 국민을 괴롭히는 만연된 부정부패는 직을 걸어서라도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다.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철저히 봉쇄하는 미국정부와 그 분위기를 하나의 모델케이스로 하여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바란다.가장 가까울수록 가장 엄하게 다스리고 어떤 예외도 인정치 않고 인정사정 없이 가혹하리 만큼 본보기를보이면 부정부패는 효과적으로 없어질 것이다.이에 가장 근본적인 뒷받침은 금융실명제 실시와 벌칙을 강화하는 특별법제정일 것이다.부패한 장개석군대가 모택동군대에 패하자 대만으로 도망온 장총통이 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부정부패에 철퇴를 내렸다.이 철퇴가 지금의 대만으로 발전시켰고 지금도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새정부를 맞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공무원,언론인,교육인 등 모든 국민이 부정부패 일소를 위해 완전히 다시 태어나는 지독한 홍역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셋째 새정부의 도덕성과 능력은 금융실명제 실시여부에 의해 평가받는다고 본다.금융실명제 실시에 소극적이거나 미루는 것은 부조리와 속임수를 인정하고 방치하는 것이 되어 부정부패의 일소는 물론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가 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금융실명제는 경제질서의 가장 기본이다.넷째 경제정책은 차원을 높여 보다 성숙된 경제에 걸맞도록 할 필요가 있다.자율과 개방을 바탕으로 안정위에서 성장이이루어지도록 조화와 장기적인 효율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것이다.경기활성화,기업의욕,투자촉진,생산성향상,경쟁력강화 등 거의 모든 것은 깨끗한 정부,일관된 정책유지,규제완화,제도적 뒷받침 등이 이루어지면 즉 분위기쇄신을 통한 여건만 잘 조성되면 자연적으로 실현되게 마련이다.이제는 정부가 일일이 지도,감독,규제,지원등을 하지 않아도 기업은 좋은 분위기만 조성되면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조건이나 처지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면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다.정부는 공정한 경쟁분위기를 조성하여 유능한 기업이 앞서고 이를 쫓는 기업이 최선을 다하는 자생적 경쟁력제고에 역점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끝으로 유능하고 강한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승자이면서 패자에 이끌려 다니고 여론에 너무 민감하여 갈팡질팡하고 눈치 보다가 소신을 잃고 마는 약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특히 국회나 언론이 하라는대로 하기 위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소신 없는 대통령은 되지 않아야 한다.오히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심사숙고하여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은 단기에 분별없는 사람들의 졸렬한 비판은 받을지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한달 두달을 보는 대통령보다 5년 이상을 보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 두 얼굴의 사회(변화하는 베트남:5)

    ◎“개방” 뒷전엔 통제·감시 여전/「인민오염」 우려 공안통치를 강화/비밀경찰 인구 5.5명당 한명 꼴 75년 공산통일이전 대통령궁으로 쓰였던 호치민시 통일궁 1층 호치민홀에는 『베트남에는 오직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있다.이를 누구도 바꾸지 못한다.호치민』이라고 씌어져 있다. 또 하노이 호안킴호수옆 베트남정부 영빈관에서 호치민묘소가 있는 바딘광장으로 가는 길목 전쟁박물관 맞은편에는 출생지 러시아에서조차 철거된 레닌동상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 호치민시 르던가 미대사관 앞에는 『여기 미대사관이 있었다.미침략자들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1968년 1월31일 남베트남 인민과 군대가 이 건물을 점령했다.이 승리는 인민의 승리였다.1975년 4월29일 미침략자들은 이 빌딩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갔다.1978년 12월22일』이라고 쓰인 동간판이 정문옆에 서있다. 이처럼 베트남에는 개혁과 개방 물결에도 불구하고 관리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의 순수성」,즉 사회주의체제를 지키려는 당국의 의지가 곳곳에 엿보인다. 레닌과 그의 숭배자인 호치민은 여전히 베트남 인민들의 신봉의 대상이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국은 아직도 베트남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제국주의 침략자」로 남아 있다. 베트남외무성 한국과 직원 구엔 안지씨는 『미국도 한국도 이제는 친구』라며 『베트남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다』고 몇번씩 힘주어 말하지만 개방이 몰고온 사회주의 분위기의 위축에 몹시 신경쓰이는 눈치였다. 베트남정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인민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 호치민시무역관장 조영복씨가 든 예는 베트남의 공안통치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은 혹시 베트남에서의 영업에 도움이 될 까 해서 베트남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청년을 서울에서 데려왔다. 그러나 이 청년은 사장과의 불화로 얼마되지 않아 자취를 감추었다. 사장은 이 청년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헛수고에 그쳐 결국 비밀경찰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비밀경찰은 2일만에 이 청년이 언제 어디를 거쳐 어떤 비행기편으로 출국했는지 알아냈다. 베트남의 비밀경찰 숫자는 대략 1백20만명.전체인구가 6천6백만명이므로 인구 5.5명당 한명꼴로 비밀경찰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숫자는 군대병력 1백15만명보다 5만명이나 많은 것이다. 조관장은 『이같은 수치는 하다못해 시클로운전사,나아가 거지들 가운데조차 비밀경찰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철 하노이지사 오대용과장은 『외국인이 쓰는 전화와 팩시밀리는 모두 도청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베트남정부의 감시체제를 설명한다. 오과장에 따르면 이같은 감시와 통제에 일일이 역정내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며 사는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또 베트남의 정부기관들은 자신이 캐낸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곧바로 여러기관에 알리기 때문에 그만큼 정보의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베트남 정보기관의 정보수집능력은 어느집에 몇 식구가 살며 그들의 이름과 나이가 몇 살인지 또 그가운데 누가 아편쟁이이고 전과자인지까지 속속들이 파악할만큼 뛰어나다. 특히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한시도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아 호텔에 몇시에 들어와 어디에 갔다가 몇 시에 돌아왔는지까지 호텔에 비치된 장부에 기록한다. 때문에 호치민시처럼 과거에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곳을 돌아보면 이곳이 분위기상으로는 서방세계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베트남에는 소문인지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법에 3인이상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2)

    ◎매신의 구국활동/국채보상운동 주도… 항일 선봉에/「황무지 개간」반대·의병항거 대서특필/일제탄압불복… 식민정책 부당성 고발/박은식·신채호 등 반일언론인 포진… 절대적 국민신뢰 확보 노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부터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은 일본이 한반도에서의 독점적 우위를 확보하고 침략정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시기이다.바로 이러한 격동기에 발행되어 항일구국의 최선봉에 섰던 가장 대표적인 신문이 있다면 대한매일신보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문의 소유자이자 발행인은 영국인 배설(ErnestThomasBethell)이었으나 신문발간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양기탁이었다.배설은 노일전쟁 취재차 한국에 왔던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의 통신원이었으며 양기탁은 당대의 언론을 이끌던 논객이자 우국지사로 추앙받던 인물이다. 민족의 대변지 대한매일신보는 이들의 혈기와 의기가 합쳐져 1904년 7월18일에 창간됐다.영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와 함께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는 당초 한호 6면으로 이중 2면은 한글 전용이었고 4면은 영문판으로 할애했다. ○장지연사건 실어 파문 이 무렵은 일본의 한국 황무지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국민운동이 전국에서 분출되던 때이기도 했다.당시 한국과 일본의 신문들은 제각기 황무지개간권 요구를 비판하거나 옹호하고 나섰다.이런 시기에 더구나 민족진영이 가세해 창간된 대한매일신보가 이를 좌시할리 만무였다.논조는 당연히 반일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황무지개간권이 한반도의 영구식민지화를 꾀하려는 책동임을 지적,그 부당성을 널리 알리는 것으로 첫 포문을 열었다.이를 시발로 「장삼씨의 문뎨 □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본 시사신보의 개간권 옹호론을 예리한 필치로 찔러버렸다. 창간초부터 반일논조의 중심에 서서 항일민족운동을 고취하는데 앞장에 나선 것이다.그러나 이 신문은 창간시 미비했던 시설을 갖추느라 5개월의 휴면기간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다시 속간되기는 이듬해 8월11일이었다.속간하면서 한글전용을 국한문 혼용판으로 바꾸는 한편 영문판을 분리해 2종을 발행했다. 새모습으로 재출발한 대한매일신보의 반일언론은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고 이를 눈의 가시로 여긴 일본은 외교적 탄압으로 배설추방공작을 폈다.일본인들이 발간하던 한성신보·대동신보·대한일보등이 대한매일신보를 비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의 반일논조는 더욱 뜨거워져 황성신문이 정간당한 사실과 장지연의 구속을 대서특필하는등 일관된 자세를 고수했다.이러한 항일논조에 대해 고종도 은밀히 격려,지원을 아끼지 않았다.1906년 2월10일 고종은 「대한매일신보 사장 배설로 신문급 통신에 전권자로 특히 위임할 사」라는 친필 특허장을 내리는 한편 매월 1천원을 신문사 운영비로 보조해준 것이다. 용기백배하게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집요한 탄압에도 불구,또다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는다.런던 트리뷴지에 실렸던 고종의 밀서사진을 전재,밀서가 근거없다고 주장해온 일본의 허위를 폭로(1907년 1월16일자)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는 그 직후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어 구국운동의 새지평을 연 신문이기도 했다.이 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으로부터 빌린 돈 1천3백만원을 국민들의 성금으로 거두어 갚자는 자발적인 민중운동이었다.대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의 취지는 많은 국채를 나라의 재정으로는 상환할 길이 없으니 장차 한국의 강토가 일본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 성금으로 이를 갚자는 것이었다. 그 취지서를 크게 실어 전국적인 호응을 얻게 한것이다.고종도 호응하여 담배를 끊었다는 보도를 낸뒤부터는 여기에 자극받은 지도급 인사는 물론 부녀자들까지 참여,반지와 패물을 다투어 성금으로 내는등 적극적인 성원을 이끌어 냈다. 당초 이 운동은 전국적인 조직체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따라서 각처에서 거두는 성금을 통합된 조직으로 일원화해 적립해야한다는 논의가 일게 됐고 그결과 결성된 것이 국채보상지원금 총합소였다.1907년 3월에 설립된 이 총합소는 임시사무소를 신보사에 두기로 했으며 양기탁이 재무를 맡아 대한매일신보사는 이 운동의 실질적인 본부가 되었다. 이 운동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는 민족의 일대 각성이었으며 그 역량의 과시였다.국채보상운동의 중심기관이 되면서 사세를 크게 신장하게된 대한매일신보는 이해 5월23일 한글전용판을 다시 발간,기존의 국한문판·영문판과 함께 3종의 신문을 발행하게 되어 미상불 영향력있는 최대의 민족지로 성장했다. 이때의 발행부수는 3종을 합쳐 1만부를 넘어섰다.이는 한국언론사상 기록적인 최고의 부수였으며 이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더욱 늘어나 서울에서 발행되던 신문 전체의 발행부수를 앞지를 정도였다. 사세가 이처럼 커지면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의 대한정책을 더욱 날카롭게 비판,헤이그 밀사사건과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이 퇴위한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이어서 고종퇴위 직후의 대한제국 군대해산과 이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의 항거운동을 낱낱이 보도했다.이같은 보도는 전국의 많은 의병들에게 무장항쟁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고종퇴위·군해산 보도 일본의 입장에서 대한매일신보의 이러한 끈질긴 항일언론이야말로 한반도 식민지화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특히 이 신문의 필진이 지닌 칼날같으면서도 설득력 짙은 필봉은 일본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갖는 국민적 신뢰도는 거의 절대적이었으며 인기 또한 높아 한부의 신문을 여러사람이 돌려가며 읽을만큼 사회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한국내 신문이 가진 권력이란 비상한 것이라 이등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의 일필이 한인을 감동케하는 힘이 매우 크다.그중에도 지금 한국에서 발간하는 일외국인의 대한매일신보는 확증이 있는 일본의 제반 악정을 반대하여 한인을 선동함이 연일 부절하니 이에 관하여는 통감이 책임을 질밖에 없다』 이렇게 개탄한 초대 통감 이등박문의 말을 재음미하면 대한매일신보 지면 한장한장마다에는 모두가 민족의 독립함성이 응고 되었음을 익히 알수 있다.일본의 강압속에서도 대한매일신보가 항일논조와 구국운동의 구심점이 될수 있었던데는 이 신문이 영국인 소유여서 치외법권을 누린 탓도 물론 있다.그러나 신문제작을 총괄했던 양기탁을 비롯,박은식·신채호등 민족사상에 투철했던 항일언론투사들이이 신문을 그렇게 이끌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소말리아 파견병력/미,4천명가량 감축

    【모가디슈 AFP AP 연합】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기대이상으로 많은 병력을 소말리아에 파견함에 따라 현지에 파견할 미군병력을 최소 4천명가량 감축할 것이라고 현지 미군대변인 프레드 펙 대령이 2일 밝혔다.
  • 이라크 비행금징 수회위반/미항모 걸프해역에 재출동/미군당국자 밝혀

    【마나마 AFP 연합】 이라크 전투기들이 지난 28일 이라크남부 비행금지구역을 몇차례에 걸쳐 침범했으나 미군비행기들의 요격으로 퇴각했다고 리야드의 미군대변인 론 스코니어스 대령이 29일 밝혔다. 스코니어스 대령은 이라크 전투기들이 비행금지 구역 32㎞안까지 침범했으나 미군 전투기들의 요격으로 곧바로 비행금지구역을 벗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총격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미군 전투기들은 이라크 남부 시아파를 보호하기 위해 유엔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에 들어온 이라크 제트기 한대를 격추시킨 바 있다. 【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미국은 28일 이라크기 격추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소말리아 해역에 일시적으로 파견돼있던 항공모함 키티 호크를 다시 걸프해역으로 출동시키고 있으며 만일 필요하면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방부 당국자들은 지난 27일 이라크기가 격추된 이라크 남부 비행금지 구역에 더이상의 사고는 없었으나 이 비행금지구역을 감시하는 다국적 연합군 비행기들의 초계비행업무를 보강하기위해 키티 호크가 소말리아해역에서 걸프지역으로 항진하고 있으며 29일 또는 30일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약 70대의 전투기와 5천5백명의 병력이 탑재·탑승하고 있는 키티 호크는 원래 걸프해역에 배치돼 있다가 소말리아 사태로 인해 그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비행기격추사건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고 있는 이라크의 타레크 아지즈 이라크부총리는 이날 이라크가 지난 8월27일 이라크 남부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정식으로 거부한다고 밝히고 이는 유엔의 결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가 지지한 미국의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미국무부 관리는 이라크기의 비행금지구역 침범이 미국과 유엔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필요하면 미국이 더이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과 빌 클린턴 차기대통령은 그들이 유엔이 설정한 이라크내 비행금지구역 침범을 저지하려는 결의에 있어서 서로 단결돼 있다면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우리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중국은 이날 미국의 이라크기 격추사건으로 걸프지역의 긴장이 고조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미국측에 이라크의 영토보전을 존중하도록 촉구했다. 앞서 니자르 함둔 주유엔 이라크 대사는 영BBC 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라크가 이번 사건으로 위기가 조성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으며 이라크는 또한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주에 대한 인도적 구호물자 수송을 유엔이 경비한다는데 원칙적으로 동의했다고 한 유엔 당국자가 유엔 본부에서 확인했다.
  • 올해 경제기반 조성·사회문화분야 주요동향(오늘의 북한)

    ◎80개 산업시설 건설… “겉으론 성과”/주석치적 선전하려 생일맞춰 완공/합작회사 17개… 생필품공장은 거의 외화벌이용/「지식인·교육일군·열사가족대회」 잇따라/체제고수 목적,80년대이후 최대규모 행사 김일성이 80회생일을 맞아 대원수로 올라앉으며 「세기와 더불어」라는 자서전을 발표,「김일성통치시대」가 서서히 마감되고 있음을 예고한 올 한해는 북한에 참담한 고통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세기사적 격랑속에서 부침한 92년 북한 경제건설 및 사회·문화분야의 움직임을 정리해본다. 기간산업부눈과 함께북한경제의 또다른 취약점인 생필품생산을 위해 북한은 올해 약 20개의 생산시설을 건설했다.그러나 이중 절반가량이 의류생산시설이며 특히 이들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한 수출용 피복공장이어서 북한주민들의 실생활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올해 완공된 건설 프로젝트중 합영 또는 합작회사(8개)와 유엔개발계획·조총련 등으로부터의 자금지원으로 건설된 것((개)이 17개나되는 것도 중요한 특징의 하나다. 8개의 합영공장 또는 합작회사는 의류관련 회사가 4개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관광운수회사·수산물가공회사·광업회사·인쇄회사 등이 각각 1개이다. 그리고 합영대상은 북한의 명예총회사와 일본의 알반가라리주식회사가 합작·운영하는 「명예고급기성복공장」*6·3」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총련을 상대로 한 것이다. ▷경제건설◁ 북한은 92년 한햇동안 약 80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완공함으로써 예년에 비해 비교적 많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이러한 경제건설 실적은 북한이 김일성의 80회생일과 김정일의 50회생일을 기해 이들의 치적선전을 위해 대부분의 건설대상을 그들 생일에맞춰 완공토록 독려한데 따른 것으로서 북한의 경제사정과는 무관한 것이다. 북한은 올해 총연장 1백70㎞의 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착공(87·12),5년만에 완공(4·2)한것을 비롯해 평양시 궤도전차 2단계 1구간(문수∼토성·12㎞·4·1일),평남 순천∼북창간 46㎞ 도로포장공사(2·14일),함흥∼주전간 전철화공사(9·8),흥남항부두확장공사(4·28) 등을 완공함으로써 교통운수부문의 기간산업 확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문화행사◁ 북한은 올해도 예외없이 주민들의 사상교양강화와 노역선동 및 「사회주의체제」를 찬양하는 수단으로 각종 행사를 적극 이용했다. 북한에서 금년에 열린 주요 사회행사는 지난해와 비슷한 50여회 정도이며 그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선지식인대회」였다. 지난 48년 북한정권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12월9·10일 이틀동안 평양서 열린 이 대회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텔리들의 사기진작과 체제고수 및 김일성·김정일체제 보위를 위한 사상결속에 목적을 두었던 것으로 분석됐다.이 대회 개막식에는 김부자를 비롯한 북한의 당·정·군고위간부 전원이 참석,대회의 비중을 실감케 했다. 또 9월20∼22일,10월1∼2일에 각각 열린 「전국교육일군대회」「전국열사가족대회」등도 주목을 받았던 대표적인 사회행사였다.이 대회들도 한중수교 이후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한 북한정권 핵심세력들의 사상동요를 방지키 위한 목적으로 열렸는데 이처럼 사회핵심계층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대회가 열린 것은 80년대 이후 처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연례적으로 상·하반기에 한차례씩 열린 「연맹」「여맹」「농근맹」등의 전원회의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직원들의 사상무장 강화 ▲노역제고 및 증산등이 촉구됐다. 한편 주요 문화행사는 약 20여회 열렸으며 금년으로 10회째를 맞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가장 시선을 모았다.이 축전은 김일성생일 행사의 하나로 82년부터 시작됐고 금년에는 80여개의 외국 및 북한 예술단이 참가한 가운데 4월8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됐다. 이와함께 3회째를 맞는 평양비동맹영화축전도 대내외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축전에는 41개국에서 98편의 영화가 출품됐고 북한의 다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이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또 김정일생일 축하행사로 지난 91년에 만들어져 금년으로 2회째를 맞은 「조선영화축전」(12월12∼19일)에서는 극영화 「음악가 정율성」 전·후편과 기록영화 「일본땅을 뒤흔든 보천보 경음악단」등이 해당분야의 우수영화로 선정돼 축전의 기본상인 「2·16영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 열린 「문민문화」에의 기대/김병익 문학평론가(정경문화포럼)

    ◎민에 기반 둔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변혁/획일성 탈피,새로운 가치체계 창출 필요 이번의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중 하나는 그 후보자들이 모두 군출신이 아닌 분들이며 그 선거에서 대권을 장악한 분은 이번에도 실패한 다른 한분과 함께 지난 시절의 군사 정권에서 탄압받고 한때 정치권으로부터 축출당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진 분이다.그렇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사도 이제 군에다 기반을 두었던 권력으로부터 민에 기반을 둔 성숙한 민주주의적 통치 방식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그래서 참다운 문민정치의 가능성을 드디어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일은 1961년의 5·16 이후 참으로 춥고도 길었던 31년만의 변화라기보다는 변혁이라고 부르고 싶은 즐거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이와 때를 맞추어 이 정치적 변화가 문화에도 자연스레 확산되기를,그리하여 군사문화라는 딱딱하며 차고 굳은 체계로부터 부드럽고 따뜻하며 열려있는 문민문화의 체계로 변모하기를 새 대통령이 이러한 문화적 삶과 사유와 활동을 키우고 뒷받침해주기를 바란다.통치자의 신원과 선발 과정이 그것과 거리가 참 먼것같은 문화에도 연계된다는 사실때문에 우리의 이러한 기대는 더 커진다. 가령 쿠데타로 집권하여 군사주의적 성격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낸 60년대초 이후의 우리의 군부 통치 방식은 우리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 못지않게 문화에도 강력한 군사주의화로의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다.그 방식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다원적이어야 할 문화 행위와 그 사유법들을 억압하고 강제하며 획일화하여 권위주의와 교조주의,흑백논리로 개칠을 해왔는데 그것이 어느 만큼이었는가 하면 비판적인 문화 세력들의 의식마저 그 권력의 행태를 닮아 획일주의적이고 교조적이며 흑백논리적인 것으로 성격지워줄 정도였다.예컨대 약간의 비판적이거나 진보적인 생각들을 군부가 불온한 좌경으로 단정하는 것과 약간의 온건하고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급진주의자들이 반동적인 보수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방향은 상반되고 있지만 그 뿌리는 마찬가지로 교조적이며 흑백논리적인 군대식 심리구조를 함께 갖고 있는 것이었다.이런 현상은 문화 부면 곳곳에 널려 있어왔다.실로 우리의 문화와 문화 행위,그 구조와 의식 전반이 알게 모르게 그처럼 깊고도 음흉하게 군대식 사유와 의식에 오염,훼손되어 있었다. 정치 권력과 문화부면의 은밀한 상동관계는 좀더 살필 수 있다.87년 여름 이후에도 군부 통치 시대의 유습은 여전히 작용했으며 진보주의적 행동과 사상에 대한 기존의 억압 방식도 마찬가지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치와 경제,사회뿐 아니라 행정과 치안에서도 권력의 레임덕 현상이 점점 넓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문화와 예술계에서 기왕의 이념적 무거움과 교조적 경직성이란 흐름과 그것에 반발하는 가볍고 해체주의적인 흐름의 출현과 상응하는 것이었다.이 현상은 6공의 대통령이 군부 출신이며 전임자로부터 그 통치권을 거의 인계받은 꼴이었고 그럼에도 그 승계가 근원적으로 민간출신 후보자들과의 힘든 경쟁을 치르는 민선의 과정을 겪었다는데서 연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본의든 아니든 권력의 탈중심화를 수행한 6공의 「물대통령」의 역할은 문화에서도 탈중심주의로의 물꼬를 터놓도록 기여한 셈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순수 문민출신으로서 격렬한 민선의 과정을 치르고 통치권을 획득한 새 대통령에게 문민문화의 창출을 기대해봄직하다.우선 그는 억압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정치나 사회와 마찬가지로 문화 역시 군대는 아니며 아니 반군대적이며,군대식 획일주의와 배타주의는 권력 유지를 위해서도 오히려 해롭다는 것을 문민 통치자들이 먼저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를 포함하여 회의와 반대의 권리가 국민들에게 기본권으로서 향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자신의 경험으로 깊이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그는 또한 국민들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유도할 것이다.그것들이야말로 그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시킨 참여 민주주의의 덕성이며 민주주의 문화의 기반임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경제 운용과 사회 운동이 모두 그러하듯이 문화 행위도 군대식 명령과 요구로는 참된 성과를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그분의 정치 이력이 스스로 확인해온것이다. 획일성을 지양하는 자유주의와 배타성을 극복하는 다원주의,강제성을 거부하는 참여와 교조성을 깨뜨리는 자율이 문민문화의 핵심이라면 군사주의와 평생을 싸우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온 새 대통령은 그 통치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로서 문민문화의 형성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비록 그분의 후보 공약들중 문화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다른 분야에 비해 가장 약했다 할지라도 문민문화를 위한 과제들을 수행하기에는 체질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역대의 어느 대통령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모쪼록 그 바람직한 자질들이 십분 발휘되어 우리 문화가 21세기의 새로운 가치 체계에 훌륭히 대응해낼 수 있기를 이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는 즐거운 소망으로 기대해마지 않는다.
  • 예수그리스도/김상복 할렐루야교회 목사(굄돌)

    2000년전 어느날,중동지방의 유대라고 하는 조그만 나라에 한 아기가 태어났다.그 아기는 갓난 애기였을때 일국의 왕을 놀라게 했고 소년 시절에 당시 대학자들과 겨루웠고 30대 초기의 청년기에는 나라의 화제거리가 되었고 2000년이 지난 오늘은 세계 인구의 18억이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린다.그 분은 대학을 세우신 적이 없지만 인류 역사를 통해 그 분보다 더 많은 학생를 가져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글 한자 남기지 않으셨지만 그 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여진 책들의 주제가 되었다.한 곡의 노래도 지어 놓으신 일이 없으시면서도 세계의 모든 작곡가들이 다 합해서 작곡한 것보다 더 많은 노래의 주제가 되셨다.그 분은 군대를 지휘한 일이 없고 한 명의 군인도 모집하신 일이 없으며,한 발의 총탄을 쏘아 본 적도 없으신데 그 분보다 더 많은 지원병을 가져 본 지도자가 세계 역사에 한 명도 없다.그 분의 지휘하에 생명을 내놓은 지원병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반항군이 무기를 버리고 말 없이 항복하게 만들었다.그 분은 현대 정신의학을사용한 일이 없으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망라해서 모든 의사들이 고쳐낸 환자들 보다도 많은 마음의 병을 고쳐 주셨다.또 그분은 약도 없이 수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고 한 푼의 치료비도 요구하신 일이 없다.지난날 수 많은 세계의 대정치가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져 갔다.위대한 과학자,철학자,사상가들도 다 왔다가는 사라져 버렸다.그러나 유독 그 분의 이름만이 날이 갈수록 더 빛나고 더 널리 퍼져가고 있다.그 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인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정글속에도 바다 끝에도 가고 있다.위대한 건축가들은 그 분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들을 지어 바치기도 하고 천재적 음악가들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나 헨델의 메시아와같은 세계 정상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세계적 문인들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단테의 신곡과같은 수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그 분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세계의 문화와 역사와 인간의 삶은 얼마나 더 가난해 졌을까.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과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혔던 그때와는 거의 200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신다.헤롯 대왕이 죽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허사였고 그분이 묻혔던 무덤도 그분을 붙들어 놓을 수가 없었다.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요 크리스마스의 주인이시다.선물도,징글벨도,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크리스마스 카드도,파티도 아니다.크리스마스는 그 분의 나심,태어나심이다.그 분은 나의 인생마저도 변화시켰다.메리 크리스마스!
  • “중국,추가군축 없다”/강택민

    【홍콩=최두삼특파원】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당중앙군사위 주석은 앞으로 중국은 국방력을 강화할 것이며 더이상 감군이나 군비축소는 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홍콩의 성도일보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경소식통을 인용,강택민이 최근 한 당내연설을 통해『인민해방군이 현재 주력해야 할 임무는 국방력의 강화』라고 전제하고 『군대의 질과 양 및 전투력을 향상시켜야하며 군축문제는 더이상 제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3)

    ◎소년시절:4/“중국소학교서 애국작문 썼다” 선전/“중국에 충성” 의미… 주체사상에 정면배치/82년 전기부터 「임강시절 우상화」 본격화/김일성,“어릴때 또래애들 많이 때렸다” 인정 김일성이 임강소학교에 다녔다는 것을 똑똑하게 말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8월에 발간된 「무지개 비낀 만경대」이후이다.그래서 임강소학교 시절의 우상화작업도 이 책부터 본격화 되었다. 이 책에서는 김일성이 만경대에 있었던 5살때부터 불학이문장이란 소문이 날 정도로 한문글에 뛰어났었다는 말이 나온다. ○새 내용 별로 없어 필자는 세종때 매월당 김시습이 거세문장이란 평판이 났다는 일화를 어디에서 본 일이 있다.그런데 「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있다」는 격으로 김일성은 「5세때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대문장가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임강에서는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오늘 배운 글을 다 외우고 놀자」라고 하며 책을 외우기 전에는 놀지 않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82년부터 시작된 우상화작업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이상의 이야기 이외에는 모친에 대한 「효성」정도밖에 새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1년반이나 있었던 임강시절의 이야기가 20일정도밖에 있지 않았던 중강진때 이야기보다 그 양이 적다는 기묘한 현상이 생겼다. 다만 김형직이 백산무사단의 사업을 하고 있을 때인 어느날,김일성이 부친으로부터 과업을 받아 중강진에 가서 「탄알과 화약」을 운반해 왔다는 이야기가 「세기와 더불어」에 실리고 있다.경찰들이 세관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는데 그는 가방안에 탄알과 화약을 넣어가지고 태연하게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무지개 비낀 만경대」에 실려있지만 「세기와 더불어」는 그 이야기의 세부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그러나 만8세의 어린아이에게 김형직이 이런 일을 시켰겠는가라는 의문부터 먼저 생기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팔도구일화 많아 팔도구시절은 임강시절과는 달리 「일화」투성이로 되어있다.1960년때부터 팔도구소학교에 다녔다고 선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작물도 그만큼 많아진 결과이다.그중 주된 것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⑴소학교에서 김일성이 지었다는 작문은 이렇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나가자면 많은 일을 하게 된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고귀한 일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이다.예로부터 전하는 말이 나라없는 백성은 금수보다도 못하다고 하였다.그러므로 나라를 세우고 백성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은 우리들의 영광이며 의무로 된다…」 무책임한 어용작가들은 애국이란 제목으로 이상과 같은 작문을 김일성에게 써 주었다.그리하여 소학교 2학년짜리 김일성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복무한다」라는 개념어만으로 된 작품을 썼다고 선전하는 것이다. 그들은 중국학교에서 「애국」이란 작문을 쓰면 그것은 「중국나라와 중국백성에게 복무한다」라는 뜻으로 되어 「주체사상」과 정반대의 작문으로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 ⑵김일성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도중 「장키다리」라는 중국아이가 조선학생을 「망국노」라고 놀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학생의 부친은 관청에 다니었으나김일성은 그를 혼내주었다. ⑶압록강 얼음판에 너비가 1m도 넘는 큼직한 구멍을 뚫어 놓고 그 구멍을 뛰어넘는 내기를 하였다. 보폭이 작거나 겁이 많은 아이들은 얼음구멍을 뛰어넘지 못하고 물속에 풍덩 빠지기도 하였다.그런 날이면 물에 옷을 적신 아이들의 집에서는 화로불에 옷을 말리며 저 평양집 성주때문에 온동네 아이들이 동태가 되겠다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⑷어떤 날은 밤늦게까지 팔도구 뒷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군대놀이를 하느라고 어른들의 속을 까맣게 태운 적도 있었다.그럴때면 팔도구사람들이 온밤 잠자지 못하고 우리를 찾아다녔다. ⑸한번은 그때 나하고 같이 공부하던 김종항이 자기 집 창고에서 뇌관 하나를 꺼내가지고 우리한테 자랑하였다.우리는 그날 화로불 곁에서 호박씨를 까먹으며 놀았는데 김종항이 그 뇌관을 입에 대고 휘파람을 자꾸 불었다.그러다가 뇌관에 불씨가 닿아 그만 폭발하였다.그바람에 그는 여러군데 상처를 입었다. 김일성은 어릴때부터 유·소년들을 가차없이 다루어 패거리를 데리고는 다른 아이들 두들겨 패거나 못살게 구는데 유별났던 모양이다.「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선천적인 폭학성 「돌이켜보면 내가 어려서 장난을 제일 많이 한 때가 팔도구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어떤 날은 어른들이 혀를 찰 정도로 험한 장난을 할 때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되풀이 되었기 때문에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한 단속을 무섭게 하였다.그러나 만리대공으로 날아 다니는 자유분방한 동심을 자물쇠로 잠그어둘 수는 없었다」 현재 북한에서 당원들이나 민중을 사정없이 다루는 김일성의 행패와 이 「동심」을 연관시켜 보면 그의 폭학성은 천부적인 것이었다.김일성이 본래 이런 인물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유일독재」가 가능한 것이다. ①1982년 전기 14면 ②같은 책 15면 ③같은책 같은면 ④「세기와 더불어 1」73면 ⑤같은책 73∼74면
  • 한국과 베트남,17년만의 수교(사설)

    아시아 사회주의대국의 하나인 베트남과의 수교가 22일 어루어진다.대중국 수교에 이어 우리 북방외교가 거둔 또하나의 큰 성과요 결실이다.베트남은 구공산권 중요국중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이었다.베트남과의 수교로 노태우대통령의 우리정부가 추구해온 북방외교목적은 거의 완벽하게 달성된 셈이다. 베트남과의 수교는 구소련이나 중국과의 경우와는 또다른 측면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베트남은 우리와는 특별한 관계의 나라다.우리와 같은 이데올로기희생의 분단국이었으며 전쟁을 통해 적화통일을 달성한 나라다.우리도 31만의 군대를 파견해 그들과 싸운 과거가 있다.적화통일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금은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며 개혁을 서둘고 있다.베트남의 성공은 우리 북방외교목적의 하나인 북한개방개혁유도의 중요자극제가 될수 있을 것이다.때문에 우리는 베트남의 개혁을 도와야할 입장에 있다고도 할수 있다. 베트남은 북방외교의 차원을 넘어서도 우리에겐 중요한 나라의 하나라 할수 있다.세계로 나가는 해상관문의 하나인 동남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자연자원이 풍부한 33만㎦ 면적에 인구 6천6백만의 큰 나라다.사회주의제국에서 흔히 볼수 있듯이 지금은 1인당 GNP 2백30달러의 빈곤국이지만 장차의 잠재력은 큰 나라다.동남아의 마지막 남은 투자유망국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동남아 정치경제협력기구인 아세안에도 곧 가입한다.그리고 동남아는 세계적인 보호무역경향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우리경제 탈출구의 하나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이다.미일과 함께 우리도 이미 하노이에 무역관을 설치했으며 30여개 민간기업이 진출한 상태다.무역규모는 지난1월부터 9월말까지 2억5천만달러에 달했으며 14건 8천5백만달러상당의 투자도 하고 있다.이번 공식수교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메콩강개발사업참여의 문을 여는 등 그동안의 경제관계를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중요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베트남은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희생하더라도 우리와의 수교를 달성하겠다는 강한 희망을 피력해왔다.미래를 위해 적대적이었던 과거도 문제삼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였다.그러나 일본이나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경험한 감정이 베트남인들에게도 없을리 없다면 원하든 않든 우리도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불행했던 지난날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노력은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라 생각한다.양국관계의 보다 건전하고 긴밀한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말도 좋지만 보다 적극적인 협력의 행동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력이야말로 가장 바람직스런 방법이 아닐까 한다.
  • 「소말리아 평화회복작전」의 의미(해외사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상륙한 미군에 의한 「희망회복작전」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세계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은 2만8천여명의 군대를 소말리아에 파견할 예정이다.그들의 주요 임무는 심각한 기아와 재난에 휩싸여 있는 소말리아 내륙지방에 구호식료품이 안전하게 도달할수 있도록하는 안전한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작전의 성패는 사상 최악의 기아상황을 구제할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할수 있다.소말리아에서는 이미 25만명 이상이 굶어죽었으며 수개월 이내에 2백여만명이 기아로 희생될 위기에 놓여 있다. 미군은 유엔안보리가 지난 3일 만장일치로 채택한 소말리아정세에 관한 결의안에 따라 다국적군의 주력부대로 파견됐다.유엔이 기아구제라는 인도적 목적으로 군대를 조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미국이 군사적 목적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 군대를 해외에 파견한 것도 처음이다. 다국적군이 소말리아에 파견된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근대에 있어서 국제관계는 국가가 각자 불가침의 국가주권을 유지하며 민족자결과 내정불간섭원칙을 배경으로 유지되어 왔다.이같은 원칙의 최대 위협은 냉전이었다고 인식되어 왔다.그러나 냉전이 끝나자 오히려 민족간,지역간의 분쟁이 분출하고 있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민족분쟁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평화의 과제로 유엔강화책을 제안했다.소말리아의 다국적군 파견은 유엔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초의 구체적 행동이라 할수 있다. 미국의 「평화회복작전」은 전략적 거점인 중동에 가까운 소말리아를 확보한다는 국가이익차원의 고려가 없다고는 단언할수 없다.그러나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이른바 인도적 책임으로 미국이 군대파견을 단행했다는 점은 틀림없다.미국은 구호식료품이 난민에게 안전하게 전달되는 공급루트가 확보되면 철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인도적 차원의 군대해외파견은 세계가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이같은 국제환경의 변화에서 일본의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국민적 논의가 불가피하다.
  • 진급탈락 고민/공군대령 자살

    【대전=이천렬기자】 지난 7일 상오8시쯤 충남 논산군 두마면 계룡대안 영관숙소옆 다리난간에서 공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김평호대령(46·공사18기)이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초병이 발견,공군헌병감실이 조사에 나섰다. 김대령은 지난70년 공군사관학교를 2등으로 졸업,지난해까지 전투비행단에서 F­5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하는등 모범적인 장교생활을 해왔으나 지난 11월말 장성진급심사에서 탈락하자 그동안 크게 고민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 배(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22)

    ◎조선 침략에 앞장선 일 운양함/돛·함포·증기추진기관 갖춘 개량 군함/강화도서 살육·약탈… 불평등조약 빌미 일본이 1863년 명치유신을 조선에 통고한 이후,일관된 대한정책은 정한론이었다.정한론은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구미열강과 맺고 있는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수단으로 삼고,명치유신 이후 배출된 불평 사주을 외지로 보내어 정치적 안정을 꾀하며,조선에서 분쟁을 일으켜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쏠리게 한 후 개혁의 박차를 가하려 하였다.그 첫 작업이 군함을 이용한 조선에서의 무력행사였다.극비리에 일본 조정은 군함 운양함·춘일함·제이정묘함을 조선 연해에 파견할 것을 결정하였다.일본 군함 운양함은 단대의 기함으로서 근대 과학병기인 함포를 싣고 증기 추진기관을 가진 개량 범선이었다.운양함이 휘하 군함을 인솔하고 부산에 도착하였을 때 부산시민들은 처음 보는 거대한 군함들을 경이와 경계심으로 바라보게 되었다.일본 군함의 불법체류를 항의하기 위해 조선 관헌이 탑승하자 일본 군함들은 훈련이라는 구실로 시위 함포사격을 가했다.선체마저 전율했던 함포 소리에 부산시민은 물론 탑승한 관헌들도 혼비 백산하였다.무력시위에 성공한 일본 군함들은 동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무력시위를 하였고 급기야는 조선 수도 방위의 관문인 강화 해협에 이르러 정박하였다.그리고 포함을 강화도 초지진 포대로 접근시켰다.이는 인접국의 국방요새에 대한 의식적인 도발 행위였다.일본함정의 도발행위에 대한 자위적 수단으로 조선 포대에서 포격을 가하자 일본군함은 일장기를 게양한후 초지진과 영종진을 향해 맹렬한 포격을 가한 뒤 육전대를 상륙시켜 방화,살륙,약탈을 감행하였다.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일장기를 게양한 일본 군함에 조선이 먼저 포격을 가한 것은 주권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유사한 사건의 방지라는 미명하에 군대를 파견하였고,조선의 입장에서는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규를 맺음으로써 한반도가 일본의 대륙침략의 전초기지로 변하게 되는 출발점이 되었다.그것은 장기간의 세도정치와 쇄국정치가 가져온 비극의 불씨가 점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미 해병 1천8백명/오늘 소말리아 상륙

    【모가디슈·워싱턴 AP 로이터 연합】 소말리아 구호활동을 위한 유엔의 군사작전과 관련,소말리아 근해에 대기중이던 미해병대 병력 1천8백명이 9일새벽(현지시간) 소말리아 해안에 상륙할 것이라고 미국방부가 7일 밝힘으로써 미국주도의 소말리아구호 활동을 위한 유엔의 작전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갔다. 미국방부 관리들은 현재 트리폴리,러시모어등 3척의 함정에 분승해 소말리아 근해에 대기중인 미해병대병력 선발대가 9일 새벽 소말리아에 상륙,수도 모가디슈로 향하는 계획이 세워졌다고 말했다. 미해병 선발대는 해병 기동대가 먼저 모가디슈 항구와 공항을 접수한뒤 헬리콥터와 상륙함으로 군대를 투입,미제10산악사단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바이도아공항을 장악할 것이라고 미해병대 관계자들이 밝혔다.
  • 불필요한 학력 인플레(해시계)

    자유당 때 갖 취임한 어느 치안총수가 경찰간부들을 모아놓고 국민이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가 물었단다.한 간부가 『인플레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치안총수는 『그 인플레라는 놈을 당장 가서 잡아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인플레야 잡아 올 수만 있다면 십년이고 이십년 아니 영원히 징역살이시킨들 마다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물가불안이 진정되었다느니 경제가 안정되었다느니 싫지 않은 이야기가 보도되지만 경제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도무지 진정되지 않는 인플레가 하나 있다.그것은 학력 인플레다.이 사회에는 웬 박사가 그리 많은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박사학위를 받으면 사진,수여대학 그리고 논문제목이 신문에까지 나서 희소가치를 인정 하던 시절이 생각나 금석지감을 느낀다. 국민의 학력이 높아지는 것은 바라는 바요 조금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모두가 철학,문학,예술 또는 과학 등 한가지 방면에 일가견을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간다면 우리의 정신생활은 얼마나 풍요로울까.그러나 학력이 높아지는 것이 반드시 좋기만 한 것일까.한때 우리나라는 상아탑이 오골탑이라 비아냥을 받고 고등실업자를 양산한다 해서 「대학 망국론」까지 대두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60년대 초부터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한 산업화가 이들 예비군을 모두 현역으로 산업전선에 투입시켰고 그래서 그 때 과잉투자라고 비난받던 교육투자가 없었다면 우리의 급속한 공업화도 불가능 했으리라는 지론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그 때는 우리나라의 대학생이 모두 십만도 안 되던 때이고 입대하는 장정 중 문맹이 너무 많아 군대 안에서 한글을 따로 가르쳐야 하던 시절이다.따라서 학력의 상승이 학력의 증진과 정비례할 수 있었고 앞에 말한 치안총수에게서 느끼듯 그것이 꼭 필요하기도 했다.그러나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은 군대에서 받아 주지도 않는다는 지금,그 때의 요행이 다시 찾아오기를 바랄 수 있을까.우리는 대학 졸업생의 취업난과 생산현장의 인력난을 동시에 목격한다.사회는 이미 고학력자로 포화상태가 되었고 앞으로의 산업팽장은 오히려 기능인력의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리라는 예견이 그래서 가능하다.대학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초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외에 어느 수준이상의 지능지수는 갖추어야 한다.어느 민족이고 이 조건을 충족하는 이가 전체의 삼분의 일이 안된다는 것이 정설이라면 전국민의 학사화는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박사도 그렇다.예를 들어 미국에는 개업의 중 의학박사는 없다.그 돈 잘 번다는 한국의 개업의들은 왜 박사학위를 따려고 그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박사학위가 꼭 필요한 데는 연구직이나 교수직등 거의 한정되어 있고 포화점 이상에서의 학력상승은 필연적으로 질의 저하를 수반한다.단순히 허명을 위해 박사학위를 이수한다는 것은 학력 인플레 사회가 갖는 시간,인력,기회,금전의 엄청난 과소비일 뿐이다.
  • 북한 인민군대장 김봉을 사망

    【내외】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군대장 김봉을(61)이 4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방송이 6일 보도했다. 김봉을은 사망당시 당중앙위 후보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직함을 갖고 있었다.
  • 캐나다/PKO 참여여부 고민(세계의 사회면)

    ◎흔들리는 “세계평화 수호 모범국”/수요 느는데 병력·국방비는 줄어/특수부대 창설 등 묘안짜기 “부심” 세계 평화의 파수꾼 캐나다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세계 곳곳의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분쟁지역에 대한캐나다의 평화유지분담활동은 계속 늘고 있으나 이같은 임무를 수행할 군대의 규모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다 활동에 드는 비용도 적지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전통적으로 유엔이 벌이는 각종 평화유지활동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는 나라로 정평나있다.캐나다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평화유지활동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총리를 지낸 레스터 피어슨에 의해 평화유지군창설이 제안된 이래 1947년부터 지금까지 유엔의 각종 감시단이나 평화유지활동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하고있는 유일한 나라로 기록되고있다. 캐나다는 그동안 한국전에 참전한 것을 비롯,크메르,뉴기니,예멘,중앙아메리카등 세계 곳곳에 수만명의 병력을 유엔군으로 파견,「평화수호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이 과정에서 수많은 군인이 희생됐다. 현재는 유고와 중동등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고 소말리아에도 조만간 7백50명을 파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있다.유고에 파견한 평화유지군 규모도 2천2백명으로 2배 늘릴 계획이며 그렇게 되면 캐나다가 파견하고있는 평화유지군은 4천1백여명으로 늘어나게된다. 이처럼 캐나다가 유엔군 일원으로 평화유지활동을 모범적으로 벌이고 있으나 총병력은 8만4천여명으로 규모면에서 볼때 세계 1백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그런대도 총병력의 5%정도를 유엔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하고있다. 더군다나 캐나다는 지난해 군병력을 현재의 8만4천명에서 7만6천명으로 9·5%줄일 계획을 세워놓은 바있다.또 지난 2월 캐나다 정부는 현재 1백25억달러에 이르는 국방예산을 22억달러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감군이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력과 국방비는 줄고있는 추세인데 비해 유엔군으로서의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고있다는데 캐나다의고민이 있는 것이다. 이에대해 캐나다 전략문제연구소 알렉스 모리슨소장은 『캐나다는 세계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싶어하지만 만약 병력규모를 줄인다면 이같은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한다.또 군관계자들은 『현재 병력만으로 새로운 평화유지임무에 대처할 수는 있으나 앞으로는 현 수준 이상의 작전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감군이 현실로 다가오면 캐나다군 보병의 경우 심지어 토론토시 경찰보다도 적어진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군속에서도 유엔평화유지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있는 캐나다는 해결책으로 두가지 방안을 연구하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평화유지본부」를 만든뒤 이곳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할 다른나라 군인들에게 캐나다식 군사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또다른 것은 긴급한 시기에 대비,특별히 평화유지활동에 필요한 훈련만을 시키는 특수부대를 창설하는 안이다. 일각에선 캐나다군의 평화유지활동이 단기간만 지속되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긴 하다.그러나 그럴경우 실익보다는 손해가 많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캐나다 당국이 어떤 대안을 이끌어낼 지 귀추가 주목된다.
  • 옐친 정책브레인 아르바토프 인터뷰/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

    ◎“블랙박스사건은 실무차원 실수”/남북대결 해소 향한 한­러군사협력 가능/남침땐 북한에 대한 모든 무기유입 차단/“평양의 핵개발은 화자초하는 일… 보유 않는게 더 안전” 러시아의 대서방외교 주요정책입안기관의 하나인 「미·캐나다연구소」소장 게오르기 오르바토프 박사는 5일 서울신문과의 특별회견을 갖고 최근의 한국과 러시아 및 북한·러시아관계,아태지역의 새로운 안보상황등에 대해 해박한 의견을 제시했다.아르바토프박사는 이 회견에서 앞으로 한·러시아관계가 실질적인 군사협력관계로까지 발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북한·러시아관계는 러시아회의에서 북·러시아우호조약을 수정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관계로 바뀔 것이라고 진단했다.그는 또 한반도에 다시 남침에 의한 전쟁이 일어난다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모든 무기의 유입을 차단할 것이며 조기종전을 위해 적극 중재에 나서게 될것이라고 말했다.이어 최근의 KAL기 관련자료 전달과정에서 빚어진 한·러간 마찰은 러시아측의 실수때문에 빚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조만간 러시아정부의 추가해명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옐친대통령의 방한때 두나라 군사협력의 시발이 되는 한·러시아 군사교류각서가 서명됐다.앞으로 군사협력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한·어시아군사교류각서는 두나라가 서로 적대관계에 있던 구체제로부터 결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앞으로 군수뇌·해군함정상호방문등이 이루어지면 한반도의 대결상황을 해소하기위한 본격적인 군사협력도 물론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면 북한·러시아관계도 당연히 변화된다. 한반도 주변 러시아군사력은 감축될 것이고 주한 미군도 물론 감축될 것이다.앞으로 양국군사협력에는 돌발사태예방·조기경보체제·상호이해증진,예를들면 군사대표단 상호교환등이 포함될 것이다. ­새로운 미국행정부에서 주한미군은 대폭철수할 것으로 보는지. ○미군감축 불가피 ▲새행정부가 들어서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겠지만 미국의 입장은 이미 확고하다.새로운 미국행정부는 냉전후 최초의 새행정부이다.그들은 정책우선순위에 있어 다른 생각을 갖고있다.그들은 사회문제·경제문제·국가하부구조 건설등 국내문제에 보다 치중할 것이다.따라서 그들은 군사비를 줄이는데 보다 적극적일 것이다.공화당정부도 군사력감축을 결정했지만 민주당정부는 유럽주둔군을 포함,공화당정부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줄일것이 분명하다.한국과 일본주둔 미군도 예외일수없다.러시아도 해외에 많은 군사력을 주둔시킬 필요가 더이상 없다.우리는 모든 병력을 국내로 불러들일 것이다. ­통일후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것으로 보는지. ▲그것은 한국민의 뜻에 달렸다.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이 두려워 미군을 주둔시켰던 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을 받는 북한 때문에 그랬다.통일은 이런 두려움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앞으로는 통일한국과 러시아,통일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달렸다.이들과 선린관계가 유지되면 굳이 외국군대를 주둔시킬 이유가 없다.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한국민이 결정할 문제이다.일본도 마찬가지이다.우리는 조만간 일본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그러면 일본도 미국과의 안보협정을 재평가할 것이다.앞으로안보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오히려 무역마찰같은 문제가 전면에 부각될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될 것인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자동개입을 명시한 러·북한우호조약이 더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을 이미 여러차례 천명하고있다.하지만 이러한 러시아의 입장은 대통령의 선언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할수 있다.선언은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의회에서 법적인 변경절차를 거쳐야한다.전쟁과 평화에 관련된 제결정은 의회에서 내리도록 돼있다.그러나 러시아의 새로운 상황에서는 그 법적근거가 매우 희박하다.지금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전혀 다른 사회·정치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나가고 있다.이런 체제에서 그러한 조약은 실효가 없다.이제 이념대결시대는 지났다.의회는 어떤 나라의 전쟁에 자동개입할 것을 규정한 조약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바라건대 한국민은 이 조약에 너무 신경쓰지 말기 바란다. ­북한의 남침을 제지할 어떤 장치를 러시아가 갖고있는가. ▲당신은 지금 아주 가능성이 낮은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북한이 러시아나 중국 누구로부터도 남침을 지지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취할 조치도 굳이 논의할 필요는 없다.우리는 북한을 지원할 어떤 법적구속도 없다.우리는 결코 그들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만약 남침이 일어나면 우리는 러시아뿐아니라 어떤 나라로부터도 북한으로 무기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모두 차단할 것이다.그리고 가능한한 조기에 이 전쟁이 종결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남침가능성 희박 남북한은 우리에게 중요한 이웃국가이다.조기 전쟁종결을 위해 양측이 대화테이블에 앉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하지만 도발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한국도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왜냐하면 너무 상대방을 의심하다보면 상대방의 의심도 불러일으키게 되고 그러면 충돌(대규모가 아니라 단기간의 소규모 충돌이라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개발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우리는 북한에 핵개발능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과거 양국관계에 비추어 러시아가 북한에 핵기술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과거에 준 기술은 핵무기제조기술이 아니었다.옐친대통령도 이 점을 되풀이 강조했다.지금은 물론 어떤 원조도 주지않는다.북한의 핵기술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기술자 몇명을 데려갔다해서 충분한 노하우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핵무기개발에는 일정수준의 기술이 필요하다.그리고 그것은 아주 비용이 비싸다.우라늄을 추출해서 핵무기를 개발하기까지 아주 어려운 기술을 요한다.그리고 지금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과거보다 훨씬 큰 위험을 감수해야한다.핵무기보유국 클럽에 가입,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야하고 심지어 군사적 위험까지 감수해야한다.일본은 원하면 당장 핵보유국이 될수있다.하지만 그러면 일본은 아주 취약하게 된다.스웨덴·독일·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이다.그들이 핵무기를 만들지 않는 것은 그것이 없는 게 훨씬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일본을 겨냥해 의식적으로 대한접근카드를 쓴다는데.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우리 외교정책이 그렇게 세련돼 있지도 않다.러시아외교는 오히려 너무 단순한게 흠이다.나는 80년대초 정치적 위험을 각오하고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과감히 주장했다.많은 사람이 이에 반대했고 셰바르드나제까지도 한동안 반대했다.한국과 수교하는데 일본은 어떤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해결책도 찾아야 한다.하지만 그것은 한국과는 무관한 것이다.한국과의 관계는 일본과 무관한 독립된 문제이다.일차적으로는 일본외무성에 문제가 있다.일본은 외교문제에 관한한 모든 것을 외무성이 최종결정한다.그런데 그들은 러시아에서 일어난 변화를 제대로 이해못한다. 그들은 옐친에게 압력을 넣으면 이른바 북방도서의 반환을 비롯,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지금 러시아에서는 모든 결정을 옐친이 내리는게 아니다.국민·반대세력·여론이 결정과정에 참여한다.우리도 우리의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일본에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잘못이 있다.또한 우리는 여론수렴을 제대로 않고 너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선동가들 손에 맡겼다.그것은 좋은 교훈이다. ○북방섬계속 논의 ­옐친의 방일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새해 도쿄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이 기회이다.옐친대통령이 올해 G­7정상회담에 참석했기 때문에 일본은 그의 초청여부를 놓고 고민할 것이다.물론 양국간 사전조정을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양국관계개선에 「북방영토」문제가 여전히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는지. ▲물론 그 문제가 해결안되더라도 다른 길을 찾을 것이다.일본도 러시아와 관계개선에 관심이 깊다.만약 미국이 일본주둔 군사력을 감축 내지 완전철수 한다면 일본은 러시아와 새로운 안보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옐친의 북방섬반환에 대한 진의는 무엇인가.어떤 정치세력이 반환에 반대하나. ▲옐친의 입장만으로 해결되는게 아니다.러시아에는 지금 그가 할수있는 일과 그가 할수없는 일이 있다.러시아 상황은 복잡하다.경제는 위기이고 국민들은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이런 배경 때문에 선동이 나올수 있고 옐친이 나라를 팔아넘긴다고 비난할수 있다.옐친은 이런 면을 제때에 생각하지 못했다.외무부도 이 문제를 등한히 했다.북방섬반환에 대한 입장을 국민들에게 미리 설명했어야 했다.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바로 전체주의의 잔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가이다르총리·코지레프외무 모두 그것을 제대로 이해 못했다.무엇보다 그들은 정치 신인들이다.그들은 서구적 의미에서 전문가가 아니다.정치를 국민들에게 팔줄을 모른다.섬을 두개씩 순차적으로 반환하는 방안을 비롯,때가 되면 일본과 이 문제를 적절한 방법으로 논의할 것으로 믿는다. ­가이다르는 경질된 것이가. ▲나는 옐친지지자이지만 가이다르는 경질될 것을 희망한다.나는 대통령자문위원이고 옐친대통령의 개혁을 지지하지만 가이다르의 기용은 옐친대통령의 큰 실책이었다.가이다르는 똑똑하지만 총리직엔 맞지 않다.그는 정치경제학교수일뿐이다. ­당신이 의심하는게 그의 능력인가 아니면 그의 정책노선인가. ▲그는 정치경제학을 가르치다가 신문사와 잡지에서 일했을 뿐 실무경험이 전무하다.정통 마르크시즘에서 단번에 정통 밀튼 프리트만으로 뛰겠다는 것이다.프리트만 이론은아주 보수적인 서방이론이다.그는 오직 거시경제면,통화정책만 이야기한다.그는 기존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극도의 독점경제에서 곧바로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려고 한다.하지만 러시아에서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는다.나는 11월에 한국을 방문,경제기획원에서 수백명이 일하는 것을 보았다.그런데 러시아는 국가계획위원회를 없앴다.가이다르팀은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다해줄 것으로 믿는다.물론 때로는 가격자유화도 필요하고 시장경제전환 화폐태환화도 필요하다.하지만 이것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한국에는 있다.그런데 이곳에서는 환율이 경매에서 결정된다.달러의 유입이 제한된 나라에서 경매로 환율을 정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조만간 해명있을것 ­옐친대통령의 방한때 KAL기 블랙박스전달을 싸고 양국간 불유쾌한 마찰이 있었다.어떻게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보는가. ▲분명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다.조만간 러시아정부에서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개인적으로는 옐친대통령이 항로기록테이프를 빠뜨리고 음성기록장치 사본을 한국에 전달한 것은 그것을 챙겨야할 「실무차원에서의 실수」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대통령 몰래 누군가가 그것을 고의로 빼돌릴수도 있겠지만 대통령을 상대로 그런 짓을 쉽게 저지르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하지만 러시아정부의 해명은 ICAO(국제민간항공기구)에 주기위해 한국에는 주지 않기로 방한전에 이미 결정한 것처럼 돼 있는데. ▲ICAO에 관련자료 일체를 넘겨주는 것은 러시아의 결정사항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사항이다.하지만 방한 전후 옐친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하면 ICAO규약을 무시하고 한국에 인도할 의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그렇지 않다면 ICAO에 원본을 주고 한국에는 사본을 주기로 했다는 것은 한국민에게 굳이 못밝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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