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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일 외무회담 29∼30일 서울서/북한핵 등 논의

    무토 가분(무등 가문)일본외무장관이 한승주외무장관과 제7차 한·일 정기 외무장관회담을 갖기위해 29,30일 이틀동안 방한한다고 외무부가 22일 발표했다. 양국 외무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핵문제를 포함,남북대화,일·북한관계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고 다음달초 도쿄에서 열리는 G7정상회담에 대해서도 협의할 예정이다. 양국 외무장관은 또 현안인 군대위안부문제등 과거사와 통상·경제협력,인적·문화교류증대 방안에 대해서도 협의할 예정이다.
  • 통수권자 안보관/지휘관들 충성심/상견만찬서 “마음 통했다”

    ◎전군 주요지휘관 청와대 초청/“옷 벗읍시다” 파격제의에 장성들 당혹/10여차례 막걸리 건배속 어색함 씻어 『자,옷을 벗읍시다』 대통령의 「일갈」에 군수뇌부는 깜짝 놀랐다.군인들에게 옷을 벗으라는 것은 전역하란 이야기.당황해하던 「군고위장성들은 대통령의 한참모가 웃옷을 벗어부치면서 『옷을 벗고 식사하십시다』라고 해서야 서로 눈치를 보면서 웃옷을 벗었다. 16일 밤 청와대의 전군 주요지휘관만찬은 파격으로 시작됐다고 한참석자가 전했다.군장성이 군통수권자 앞에서 와이셔츠차림으로 식사를 했다.농담이 자연스레 오갔으며 12∼13번의 막걸리 건배가 이루어지고,만찬장을 흘러넘치는 충성구호속에 문민대통령과 군은 같은 마음임을 확인했다. ○뜻 몰라 서로 눈치만 군과 대통령 모두에게 이날 만찬은 상대방에 대한 첫 정찰기회이면서 상견례.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이에대해 『처음에는 딱딱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군으로서는 민주화만 외쳐온 김영삼대통령이 재야와 같은 안보관을 갖고 있고,군에 대한 애정도 없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가진게 당연하다.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어딘지 어색한,낯선 분위기. 만찬이 끝난뒤에 양측은 모두 흡족해했다.대통령은 문민통수권자에 대한 군의 일치된 충성을 확인했고,군은 통수권자가 역대 어느대통령에게 뒤지지 않는 「전통적 안보관」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김대통령과 전군지휘관의 상견례는 접견과 만찬의 순으로 진행됐다.접견에서 지휘관들에게 박달나무로 된 지휘봉이 주어졌다.예전에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휘봉은 끝에 말총이 달렸었다고 한다.장병들이 『우리가 말(마)이냐』며 속으로 항의했다는 병마시대의 지휘봉이 문민시대를 맞아 바뀌었다. ○군에 대한 찬사 연발 만찬에서 김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이런 걱정과 군의 제자리찾기가 가져올지도 모를 후유증을 고려한듯,좋은소리만을 골라가면서 했다.김대통령은 『나는 지난주 5사단 수색대대를 방문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국민의 군대,드높은 사기와 엄정한 기강을 보았다』고 했다.문민대통령이 군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 이어 『나는 믿음직스럽고 마음 든든합니다』로 신뢰감을 표시하면서 『자주국방의 중요함은 재삼 말할 필요가 없으며 평화는 오직 힘에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고 지극히 보수적인 안보관을 내보였다.『우리국군은 여러분과 같이 신망이 높은 분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여러분은 능력면에서도 뛰어나지만 깨끗한 인품으로 장병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참석자들에게 애정을 표시한 김대통령은 대표적 보수집단인 군부에 대해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을 주었다. ○좌중에 폭소 일기도 「국가보안법개정불가」가 그것이다. 긴장된 분위기는 대통령의 칭찬과 신뢰,웃옷벗기제의로 화기애애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그러나 해군은 웃옷을 벗지 못해 좌중에 폭소가 일기도 했다.해군제복은 웃옷을 벗으면 바로 러닝셔츠가 나오는 탓이다. 만찬장에서는 포천 막걸리가 반주로 사용됐다. 권영해국방장관,이양호합참의장,김동진육군참모총장순으로 건배제의가 있었다.임종린 해병대사령관은 『우리 해병대는 명령만 떨어지면 물이고 불이고 뛰어들겠다』며 「충성」구호와 함께 건배를제의했다.군단장급까지 건배가 끝났을 때는 이미 10여차례 넘게 막걸리잔이 비워졌고 농담이 오갈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다. 권국방이 만찬장의 자리배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원래 서열은 육·해·공인데 해군총장이 중장이어서 대장인 공군총장을 먼저 할 것인가 아니면 직책서열대로 해군을 먼저할 것인지 고민하다 해군을 앞자리에 배정했다』고 말했다.김대통령이 이에대해 『소장에서 대장으로 한꺼번에 올릴수 없어 그런 것인데 1년지나면 대장이 되지 않겠느냐』고 옳은 결정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김홍렬해군참모총장이 일어나 자신이 취임식에서 한 실수를 이야기했다.해병대가 포함된만큼 「해군및 해병대 여러분」해야하는데 「해군 여러분」하는 실수를 했다는 것.그러면서 김총장은 이자리를 빌려 사과한다고 말했다. 임해병대사령관은 「영원한 해병」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을 당부했다. ○“자리배정 한때 고민” 이날 행사를 통해 문민대통령과 군고위장성들은 상당한 친밀감을 갖게 됐다.청와대는 이날 행사에 대해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김대통령은 지난 토요일에는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남방한계선 철책을 방문해 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표시한바 있다.북한군초소의 포대경으로 관찰이 가능한 지역이고,저격용 총으로는 위해를 입힐 수도 있는 지역이다.문민대통령으로서 군과 가까워지려는 김대통령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란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설명이다.
  • 구소 핵무기통제 “발등의 불”/CIS 합동군 포기로 공백

    ◎분규 대처못해 집단안보노력 물거품/우크라 스타트Ι 비준거부가 주원인 지난 91년 12월 소연방해체 직후 핵무기를 포함,구소련이 보유하고 있던 군사력을 공동관리할 목적으로 탄생된 독립국연합(CIS)합동군 창설계획이 백지화됐다. 91년 당시 합동군 창설안을 담은 집단안보조약 서명 6개 CIS회원국 국방장관들은 15일 회의를 갖고 통합군사령부를 금년말까지 해체하고 그 대신 협의조정기구인 군사정책 조정합동참모본부를 설립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러시아를 비롯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로루시 등에 남아있는 핵무기의 통제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등장하게 됐다. 통합군 창설노력은 91년 당시 10개 CIS회원국 가운데 러시아·카자흐스탄·아르메니아·우즈베크·키르기스·타지크 등 8개공화국이 우즈베크의 수도 타슈켄트에 모여 집단안보조약에 서명하면서 본격화됐었다.이때 통합군사령부가 발족,러시아의 예브게니 샤포슈니코프장군이 사령관에 취임했다. 샤포슈니코프사령관은 취임이래 집단안보체제구축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으나 애당초 회원국중 6개국만 가담한데다 회원국간 각종 분규에 전혀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함으로써 사령부만 유치한채 「기능정지상태」에 있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옐친대통령은 『CIS회원국들이 이미 독자군대를 창설한 마당에 통합군창설은 의미가 없다』며 샤포슈니코프사령관을 공석중인 국가안보위 서기에 전격 임명,합동군창설 백지화를 기정사실화했었다. 보리스 그로모프 러시아국방차관은 통합군창설 백지화로 CIS내 핵무기 통제권은 앞으로 러시아가 장악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러시아외에 핵무기 보유국인 우크라이나·카자흐·벨로루시 등 3개국중 핵무기 통제권을 러시아에 넘기는데 동의한 나라는 벨로루시뿐이어서 이를 들러싼 논란이 불가피한 실정이다.카자흐는 CIS공동관리를 주장하고 우크라이나는 「핵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하고서도 핵통제권을 당분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우크라이나는 이 문제를 현재 분쟁중인 흑해함대분할문제 등과 연계,대러시아 협상카드화시켜 핵탄두를 러시아로 운반해 해체할경우 경비보조와 핵보유국들로부터의 집단안전보장 약속 등을 요구하며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비준과 NPT(핵확산금지조약)가입을 계속 미루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1백76개의 대륙간 탄도탄과 42대의 전략폭격기에 장착된 총1천8백4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카자흐는 1천4백10기를 갖고 있다. 이곳 군사관측통들은 CIS내 자체 핵통제체제기능이 사라짐으로써 이 문제는 해당국들의 START­1의 비준과 NPT가입여부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 미행정부도 이 점을 의식,우크라이나정부에 대해 이 문제를 경협과 연계,START­1의 조기비준과 NPT가입 등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측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조속한 시일내 비준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 캄 「민족연」,자치주 탈환 태세/정부선 7곳 분리움직임… 충돌조짐

    ◎제헌의회,시아누크 국가수반 선출 【프놈펜 AP AFP 연합】 캄보디아 총선에서 승리한 민족연합전선(푼신펙)은 13일 프놈펜정부가 7개주에 「자치정부」를 선언한데 맞서 휘하 병력에 이들 지역을 탈환할 준비태세를 명령했으며 유엔도 현지 주둔 일부 요원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혀 또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날 조짐이 커지고 있다. 푼신펙 지도자 노로돔 라나리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캄보디아가 분할되는 사태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전세계가 프놈펜 정부에 선거결과에 승복하도록 압력을 가해줄 것을 호소했다. 라나리드는 전쟁 재연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나 프놈펜 정부가 전국토의 40%를 차지하는 이들 지역에서 분리움직임을 계속할 경우 『우리는 독자적인 군대를 편성,이들 지역을 해방시킬 태세가 돼 있다』고 말하고 푼신펙은 이들 지역에 무기은닉처들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프놈펜 AFP 연합】 캄보디아 제헌의회는 14일 첫 회의를 소집,노로돔 시아누크공을 전권을 가진 국가수반으로 선출했다. 제헌의회는 지난 70년 시아누크를 축출한 쿠데타를 불법으로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시아누크공에게 국가수반으로서 국가통치에 필요한 「특별 전권」을 부여했다. 시아누크공은 제헌의회 연설을 통해『캄보디아를 내전의 위기로 몰고가고 있는 이탈 세력들의 캄보디아 분할 기도를 지체없이 막아내고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평화를 되찾아 줄 것』을 촉구했다. 시아누크공은 UNTAC의 아카시 야스시(명석강)대표 앞으로 보낸 지난 12일자 서한에서 UNTAC가 자신에게 캄보디아 군통수권을 인수토록 요청한 데 대해 감사했다.
  • 개신교계도 자정 나섰다/“호화건축 자제·부당취득 재산 환원”

    ◎KNCC6개교단,서신 발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9일 목회자들에게 보낸 「교회갱신을 위한 한국교회의 입장」이라는 서신을 통해 『교회는 개인소유로 된 종교재산을 소속재단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협의회는 또 『교세 확장을 이유로 몇몇 교회가 사치스런 과시적 시설을 건축하거나 기도원 건립을 빌미로 불법행위를 자행한 일도 있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사치시설을 하지 말 것 ▲과거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취득한 부동산 및 재산이 있다면 이를 사회에 환원할 것등을 권고했다. 이 목회서신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등 6개 교단 공동명의로 작성됐으며 전국 1만2천여 교회로 발송됐다.
  • 북한­중국관계 정말 껄끄러운가/김정일 방중취소 등 불화설 저변

    ◎한­중 수교후 장관급 공식방문 “전무”/중,시장경제채택으로 이념상 “결별” 중국과 북한관계가 위기로 치닫고 있는가. 근래에 들어 이들 양국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내용의 보도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국경선에서의 총격전을 비롯,중국민항기의 평양운항중단,김정일의 방중취소,강택민주석의 김일성특사 접견거부,양국간 외교접촉 중단설 등이 보도되는 걸 보면 중국과 북한관계가 이제 막다른 골목길에 접어든듯한 느낌이다.이렇게 가다가는 단교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해 8월 한·중수교 이래 중국·북한관계가 다소간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신문보도처럼 그렇게 위기상황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게 중국관리나 이곳 외교 소시통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들은 최근의 중국·북한관계 보도들이 이상하리만큼 날조·과장·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홍콩의 한 잡지는 강택민국가주석이 지난 5월중순 김일성특사의 접견을 거부했으며 대신 고위 관리들을 이 특사에게 보내 양국간 당·군대표단의상호 교환방문계획을 취소키로 결정했음을 통고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이는 북한의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이 인도네시아에 가기 위해 조선민항을 타고 왔다가 다른 항공기로 갈아타는 동안 잠시 북경공항 일부가 폐쇄되고 중국 외교부의 부부장 한명이 마중나갔던 사실을 두고 계속 쏟아지고 있는 억측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잡지가 당·군대표단의 교환방문을 취소했다고 전한 것과는 달리 5월부터 적십자대표단·공안대표단·여맹대표단 등 오히려 전보다 활발한 교류가 일고 있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또 양국 국경선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몇차례 있었으나 이것 역시 『북한측 경비요원들이 밀수꾼들에게 총을 쏜 경우』로 해명되고 있다. 이밖에 김정일이 3월8일 중국방문계획을 중단하게 된것은 팀스피리트훈련을 둘러싼 「준전시상태 선포」(3월9일)와 핵확산금지조약탈퇴선언(3월12일)등 북한 내부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간 때문이지 서방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강택민국가주석과의 회담이 거부됐기 때문이 아니며 중국민항기의평양취항중단설도 승객이 없어 운항횟수를 종전의 주2회에서 주1회로 줄인데서 나온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해 한·중수교 이후 양국관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우선 지난 10개월 가까이 양측에서 장관급 이상 고위인사를 상대편 국가에 공식대표로 보낸 적이 없다.종전의 예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과거 평양공항에서 중국여권 소지자에게는 아무 검사도 없이 무사통과시켰으나 이제는 검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크고 근본적인 변화는 이념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중국이 등소평의 이른바 「남순강화」 이후 2단계 개혁·개방 바람을 일으키면서 이스라엘,남아공,한국 등과 수교하고 당대회에서 시장경제체제까지 공식 채택하게 되자 북한으로서는 『중국도 이제는 이념상 동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그래서 내부적으로 중국을 「사회주의변절자」로 취급하게 되고 김정일은 『몇몇 국가들이 사회주의 경제를 접수하지 않은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선택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까지 했다.사회주의 국가들간에 이념적 변절이 생기면 화합은 커녕 원수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중·소분쟁을 비롯한 각종 역사적 사실들이 잘 입증해주고 있다.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중국과 북한 두 나라는 이미 마음속으로 등을 돌렸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다시말해 과거 혈맹이나 동맹관계를 따질 때 처럼 서로 마음속으로 의지하고 믿던 시대는 지나고 국가이익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변질됐다는 얘기다. 이같이 서로 마음이 변한게 분명함에도 아직까지는 『양국간 우호친선관계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따라서 중국과 북한은 이념상으로는 남남이 됐지만 아직도 양측이 상대편을 필요로 하고 있어서 서로 조심하면서 적대관계로 발전하는 걸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 무기중개상/국내 1백여개사 활동

    ◎대부분 정부… 군실세 친인척·영관출신/국방정보 입수,외국 군수업체와 연결/공식 수수료 2%… 뒷거래가 더 큰뭉치 율곡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기중개상 10여명의 출국금지와 예금계좌추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이들의 정체와 활동상황,무기거래규모등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군사무기 도입과정에서 「연결고리」역할을 하는 이들 무기중개상들은 일명 「죽음의 상인」이란 오명을 갖고 생산업체의 이익을 위해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일반 수출입업체처럼 무기거래를 중개하는 에이전트들도 무역대리점허가를 받아야 활동할 수 있다. 현재 국방부 군수물자조달업체로 등록된 무기중개상은 67개. 그러나 이들이외에 종합상사를 비롯,수출입업을 하는 갑류무역업 허가업체중 일부와 미맥도널더글러스(MD)제너럴 다이나맥스(GD),록히드,노드롭 닷소등 세계적인 군수업체들의 한국지사등도 자사제품판매활동을 하고 있어 실제 무기중개상이나 업체는 1백여개에 달한다. 거대한 무기체계의 일부 부품만을 취급하는 비인가 영세업체도 1백여개에 이르고 있다. 5공초기만해도 무기중개상들이 몇개가 되는지,중개수수료(커미션)는 얼마나 되는지 이들에 대한 일체의 활동은 국가기밀사항이라는 이유로 비밀에 부쳐졌었다.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자체가 군사비밀로 분류돼왔기 때문이었다.그러나 85년 11월 청와대의 지시로 음성적인 무기중개업을 양성화시키기 위해 등록제를 시행하면서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게 됐으나 아직도 성역시되기는 마찬가지다. 무기중개상은 자산규모나 활동범위 보다는 권력의 지원이 더 중요해 정부나 군부실력자의 친인척인 경우가 많고 영관급으로 전역한 고급장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사관학교출신이 많다. 예비역장성들은 직접 무기중개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대형 프로젝트가 나오면 고문이나 상담역으로 영입된다. 군출신 무기중개상들은 출신별로 육·해·공군의 비율이 엇비슷한데 해·공군출신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율곡사업이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비,해·공군장비 현대화에 역점을 둔 점과 관련사업규모가 크다는데 이유가 있다.무기중개상 가운데 비교적 큰 에이전트인 K사의 경우 회장은 예비역 육군대령이며 사장은 예비역 해군대령이다.군출신 에이전트들은 안면·지연·학연등 연줄과 과거 군인맥등을 동원,군고위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하고 있으며 외국 무기공급자들도 이같은 「로비력」있는 에이전트를 고용,국내에 무기를 팔고 있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형 전차(K1)의 포수조준경 GPTTS등을 중개한 K사는 회장이 육군헌병감 출신이어서 로비력이 적중했으며 육군의 차세대 헬리곱터사업에 대형 헬기 등을 계약한 Q실업의 대표는 육사13기로 전 국방장관과 육사 동기였다. 차세대전투기 선정이 경합을 벌일때는 GD와 MD사가 한국지사에 각각 예비역 공군준장 한명씩을 고문으로 영입했다가 경쟁이 가열되자 다른 예비역 공군장성들을 추가로 끌어들였다. GD사의 경우 F18전투기가 선정될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자 89년 6월 지한통인 전주한미7공군사령관 그레고리 미공군 예비역대장을 한국에 파견하기도 했다. 국방부가 인정하는 무기거래에 따른 수수료는 「구매금액의 2%또는 최고 미화 4백달러」로 제한,최고 4백만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중개료일뿐 이면에는 「뭉칫 돈」이 거래되고 있다는게 통설이다.경쟁이 치열할수록 중개수수료 비율은 높아져 구매금액의 3∼5%에 이르는 중개수수료를 지불키로 이면계약을 하는 때가 많다. 무기중개상들 사이에서는 『큰 것 한두건만 하면 3대가 잘 살 수 있다』『얼굴로 평생장사를 한다』는 말이 있다.무기거래에는 엄청난 뒷돈이 오고간다는 이야기다. 국방부가 88년부터 92년 9월말까지 거의 5년동안 미국등 외국에서 수입한 무기구입총액은 2조5천여억원.이중 중개수수료로 지급된 것으로 공식발표(92년10월 최세창국방장관 국회답변)된 금액만도 3백16억원에 달한다.물론 실제 커미션과 리베이트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추측이다. 무기중개상들은 율곡사업을 주관하는 국방부가 추진하려는 무기종류등 정보를 입수하면 곧바로 외국의 해당제조업체와 접촉,중개계약을 맺은 뒤 군당국에 로비를 전개한다.무기획득심의위원회와 전력증강추진위원회도 빼놓을 수 없는 로비대상이다.국방부와 합참의 관련 부서에도 손을 뻗친다.크든 작든 무기선정의 결정권을 쥔 관련부서 결재자 60여명은 1차 접촉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감사원이 이번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중 하나가 이같은 무기체계선정시 로비의 흐름이다. 고가무기일 경우 군고위관계자가 무기중개상과 결탁,가격을 비싸게 책정해 차액을 나눠먹는 일종의 「공생비리구조」가 상당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 「율곡」 비리 완벽하게 도려내야(사설)

    군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을 둘러싸고 소문으로 떠돌던 의혹들이 감사원의 특별감사로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율곡사업의 비이구조는 지금까지의 감사결과만으로도 관련자의 비리액수나 비리행태가 엄청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출국이 금지된 인사만 해도 6공핵심인사들인 이종구 전국방장관,김종휘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등 21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의 수뢰혐의 액수도 5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뿐만이 아니다.일부 무기의 경우 당초 설계와는 달리 성능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는데다 도입가격도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개탄에 앞서 분노가 치민다. 율곡사업이 무엇인가.우리의 국방과 안보를 위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무기와 장비를 현대화하는 사업이다.그런데 군최고책임자등이 매년 국방예산을 낭비하면서 무기거래상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겨온 것이다.그런 그들에게 그동안 국가안위를 맡겼다니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이번 사건은 국군전력 증강계획의 핵심이므로 군비이차원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파헤쳐야 한다.따라서 성역없는 잣대가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비이가 있을 경우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해야 함은 물론이다.국가안보와 직결된 나라의 전력증강계획이 몇몇 관계책임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이용돼왔다는 것이야말로 국가적 중대사인 동시에 가장 결정적인 안보위해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율곡사업을 둘러싼 부조리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다만 그것이 군기밀이란 이유 하나로 베일에 가려져 온 것은 30여년간의 군사적 권위주의 통치 때문이었다.그래서 군의 막대한 예산은 물론 비리가 발생해도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그러니 군의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졌고 전력증강 역시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더이상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국가안보역량의 증대를 위해서도 그렇고 묵묵히 국토방위에 전념하고 있는 수많은 장병들을 위해서도 그렇다.따라서 이번 비리사건을 척결하는데 아무리 힘들고 고통이 따른다해도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야 한다.그것이 오히려 군의 전력증강과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아울러 차제에 무기도입체제 전반에 대한 개선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군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심으로 일치단결하여 이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자랑스런 국민의 군대로 새롭게 자리잡아 굳건한 안보의 주춧돌이 되기를 당부한다.
  • 강택민,북 특사 접견거부/북의 당·군대표단 방중초청도 취소

    ◎홍콩 월간지 보도 【홍콩 연합】 중국 국가주석겸 당총서기 강택민은 최근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북경에 파견한 특사를 접견하지 않았으며 중국측은 오히려 이 특사에게 북한 당대표단과 군대표단의 올해 방중초청 계획을 취소했음을 통보했다고 홍콩의 중국계 시사 월간지 경보가 5일 보도했다. 홍콩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경보는 이날 발행된 최신호(6월호)에서 정통한 북경소식통을 인용,김일성이 지난달 13일 북경에 특사를 파견,강택민 당총서기와의 면담을 요구했으나 강택민은 『처리할 일이 많고 바빠서 만날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전했다.이 잡지는 대신 강택민이 정치국원겸 중앙선전부장 정관근과 전부총리 오학겸을 김일성의 특사에게 보내 그의 입장을 전달토록 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오학겸은 중국측은 『북한이 양국 인민관계및 양국 정부관계를 손상시키는 일을 저지르지 말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으며 정관근은 현재 중국과 북한의 양당 관계가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북한측이 중국에 대한 「내부공격」과 중국공산당및 중국정부를 비방하는 선전활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고 경보는 밝혔다.
  • 국방정보 본부장 김홍래중장/해군교육 사령관 하종근소장

    ◎해군군수 사령관 박연용소장 국방부는 4일 공석중인 국방정보본부장에 김홍래공군참모차장(중장·공사10기)을 임명했다. 한편 해군은 이날 교육사령관에 하종근해군대총장(소장·해사17기),군수사령관에 박연용해군군수참모부장(〃·〃18기)을 각각 보임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윤세주열사)

    ◎의용군 지휘… 중국 화북서 일군과 전투/중학때 연무단 조직,개천절시위 주도/일경수배 피해 망명… 조선의열단 결성/독립단체 규합… 40만명과 교전중 장렬한 최후 윤세주선생은 1901년 6월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강천리에서 부친 윤희규선생과 모친 김경이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항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윤선생은 국민학교때 일왕 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독립선언서 낭독 그는 밀양의 사립 동화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 정신을 키워갔다. 윤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학교내의 비밀결사인 연무단을 조직했다.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그러나 윤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사상은 영원히 남게됐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13일 하오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그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일본은 그해 4월14일 부산지법 밀양지청에서 궐석재판으로 윤선생에게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만주로 망명한 그는 요령성 유하현에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시 국내의 독립운동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결의에따라 이회영형제가 세운 독립군양성 무관학교로 그는 이곳에서 정식으로 군사훈련을 받았다.그는 11월9일 죽마고우 김원봉등 13명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의열단을 결성했다. 구체적인 항일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의열단은 조선총독부등 일제 침략기관의 파괴와 원흉들을 살해 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폭탄투척자를 물색하게됐다. 19세의 그는 신철휴 윤치형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했다. 그러나 윤선생일행은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면서 국내동지 50여명과 함께 체포됐다. 5년4개월의 감옥생활을하고 27년 출옥한 그는 중외일보 기자·경남주식회사사장으로 위장,독립운동에서 손을 뗀 양 조용히 지내다가 32년 여름 다시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폭탄투척자 물색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방법도 세련되어갔다.그는 『과거에는 열정과 용기만을 갖고 싸웠으나 앞으로는 혁명적 인생관과 과학적 혁명이론으로 재무장, 정확한 혁명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그는 32년 10월20일 중국군사위원회 간부훈련단 제6대(약칭 조선민족혁명간부학교)에 입교,33년 4월21일 1기로 졸업했다.독립운동전선의 행동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였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연합준비위원회를 구성한뒤 해외독립운동단체들을 참가시켜 그해 11월10일 한국대일전선통일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이 단체에서 안병조·김두봉·김규식·윤기섭·최동오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33년 7월5일 독립운동가들이 소망하던 민족혁명단을 탄생시키는 모체가 됐으며 그는 이 단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는 또 민족혁명당이 일군에 무력으로 대항하기위해 만든 중국과 제휴해 만든 조선의용대에서도 핵심부서인 편찬위원회 주간이 돼 선전공작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독립운동의 효과는 호전되지 않고 일군에 유리하게 전개되어갔다.독립운동을 적극 협력해주던 중국 국민당 정부도 38년 10월25일 무한이 일본군에 함락되면서부터는 중공군과의 내전에만 심혈을 쏟았다. 그는 직접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일전투에 참가했다.41년 4월에 그는 수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황하를 건너 화북을 향해 북상해갔다.그는 마침내 태행산 항일 근거지에 도착, 조선의용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칭하고 중공 8로군과 함께 항일 무장활동에 열중했다.그는 모든 대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로 존경을 받았다.42년2월 일본군은 4만명의 군대를 동원,태행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5월에는 20개사단 40만명의 병력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조선의용군은 불과 3천∼4천명에 불과했다. ○“끝까지 투쟁” 유언 일본군은 전투기와 전차까지 동원,본격적인 군사작전을 폈다.5월29일 항일 연합군 사령부에서는 조선의용대에 탈출로를 확보하고 탈출할 것을 명령했다.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양쪽 산봉우리 사이의 탈출로를 확보하기위해 두 산봉우리를 조선의용군이 공격,전군이 탈출할 때까지 사수하기로 했다.작전개시 5시간만에 탈출로를 확보했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3일 뒤 동지들이 중상을 입고 쓰러진 그를 발견했으나 이미 중태였다.6월3일 그는 석굴에서 숨을 거두었다.『단결해서 적을 사살하기 바란다』는게 동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이었다.선생의 나이 41세였다. 선생이 전사한 뒤 1주년이된 43년 6월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군은 합동으로 윤선생의 추도회를 가졌다.대한민국정부는 80년 윤세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개혁신당설을 뒤집어 보면…(김호준 정치평론)

    『복지부동』이란 야간에 아군진지 위에서 조명탄이 터졌을 때 적군에 노출되지 않도록 땅에 엎드려 꼼짝하지 말라는 군대구령이다.새 정부의 개혁과 변화가 시동된지 석달 열흘이 지났건만 정치권,특히 민자당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복지부동」이다.사정의 칼날에 다치지 않을까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채 개혁의 조명탄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는 구태의연한 기득권 집단이 바로 민자당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진위는 여하간에 당대표가 지구당매각설로 구설수에 오르고 거액 수뢰혐의로 구속된 의원은 자신이 무슨 정치보복에 억울하게 희생된 양 속죄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민자당이다.어디 그뿐인가.사정의 표적으로 떠오르자 외국으로 줄행랑을 놓아 의혹을 증폭시키는가 하면 이자리 저자리에서 개혁에 대한 푸념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민자당의 여전한 모습이다. 흔히 민자당은 정부와 더불어 개혁의 두 수레바퀴로 비유된다.과연 민자당은 그런 비유에 걸맞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개혁의 견인차이자 당총재인 대통령에게 민자당이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다.민자당은 대통령이 꼭 필요로 하는 정치기반일까.아니면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까.행혀 개혁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의 방향은 향후의 정국전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우리 정치사는 대통령과 여당간의 관계에 있어 대통령의 절대적 우위를 보여주고 있다.과거에 여당은 대통령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었지 대통령이 여당때문에 존재한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박정희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공화당과 유정회라는 두 정치조직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국회와 여권을 요리했다.전두환대통령은 새로운 여당으로 민정당을 창당하여 자신의 통치기반으로 삼았다.공화당과 민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았건 창당주로서 박·전 두 대통령이 두 정당에 표시한 애정과 미련은 남다른 것이었다.민정당의 간판을 내리게 한 6공때의 3당통합은 어떻게 보면 자신이 만들지 않은 여당에 대한 노태우대통령의 차가운 인식이 반영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제3당의 당수로서 제1당과 합당하여 대권을 잡은 「트로이의 목마」YS가 민자당에 얼마나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대통령 취임전부터 민자당을 『개혁 대상』이라고 지적한 그의 발언은 많은걸 시사한다. 가까이는 작년 가을 노대통령의 민자당탈당과 중립내각구성 선언으로 잠시 목도한바 있지만 여당이란 대통령이 버리면 그위상이 크게 바뀐다.심한 경우 끝장이 난다.작년엔 그래도 YS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있어 민자당이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을수 있었지만 만일 지금 그런 사태가 터진다면 작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민자당이 YS로부터 버림받는다는건 사실상 당의 종말을 뜻한다.민자당엔 YS를 대신할 구심점이 없을 뿐더러 그의 결별선언은 민자당을 개혁의 걸림돌로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부패척결을 제1의로 내세운 김영삼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가 국민들로부터 90%이상의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건 우리사회의 부패척결 과업이 더이상 미룰수 없는 한계상황에 와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그런 상황에서 개혁의 걸림돌로 지탄된다면 민자당은 분노에 찬 국민들이 던지는 돌에 순식간에 매몰되고 말 것이다. 지금 항간엔 밑도 끝도 없는 정계개편설이 나돌고 있다.이른바 개혁신당 창당설도 그중의 하나다.현재 여당의원 1백67명 가운데 24명에 불과한 민주계,즉 개혁세력의 지분을 각종 사정활동과 보궐선거등을 통해 90여명 수준으로 높이고 야권의 개혁세력 70여명을 끌어들여서 수구세력이 철저히 배제된 개혁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이 신당설은 야권의 이런 저런 사정과도 맞아떨어져 그럴싸하게 들린다. 신당설의 여권측 주역으로 거론되고 있는 김덕용정무장관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정치집단이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취할 방법은 있다』고 정계개편 가능성을 선택적으로 시사한다.그러면서도 신당설은 일축하며 15대 국회 공천을 이용한 정치세력의 자연스런 「물갈이」를 강조한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현단계의 신당설은 개혁열등생 민자당에 대한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이틀전 헌법재판소 준공식에서 「헌법수호」라는 휘호를 써준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위해 초법적인 국회해산을 단행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그러나 3당합당때처럼 법질서 테두리내에서 정치인의 『헤쳐 모여』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개혁신당설­그건 민자당이 대통령과의 개혁 일체화를 얼마나 이루느냐에 따라 살았다 죽었다 할 것 같다.많은 사람들의 눈에 민자당이 복지부동으로 비쳐진다면 신당설은 기승을 부릴 것이다.
  • 내부결속 겨냥 정치구호 대거양산(오늘의 북한)

    ◎당선전 선동부 주도/잇단 대규모 군중집회 통해 전파/주민 경제불만·사상동요 방지 2중포석/지난달 11일 하루에 최고 2백개 발표도/강요된 구호 맞서 비리풍자 은어도 범람 북한당국은 최근 체제유지 및 사회주의 건설을 부추기기 위한 각종 구호들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이를 전파하기위한 대규모 군중집회도 잇따라 열고있다. ○정치 변혁기마다 발표 북한측이 스스로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이라고 주장하고있는 휴전협정체결일(7월27일) 40돌을 앞둔 지난달 11일에는 당중앙위 명의로 무려 2백여개되는 구호를 발표하기도했다. 「동토의 왕국」으로 불리고있는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자지위를 공식화한 지난 80년 당 제6차대회 등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있을 때마다 각종 구호를 양산해 온 「구호의 왕국」이기도 하다.특히 북한은 매년 대남선동차원에서 「민민전」방송을 통해 투쟁구호를 발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순전히 대내용으로만 구호를 대량으로 제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다』『당과수령을 목숨으로 견결히 보위하는 결사대가 되자』는 등 체제유지용 구호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구호들은 대부분 북한이 당면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살려는 세기적 숙망을 하루 빨리 실현하자』『사회주의 건설에 일대 앙양을 일으켜 우리를 경제적으로 봉쇄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수자』는 등의 구호에선 폐쇄적 사회주의 경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그런가 하면 『최고 사령관의 명령을 무조건 관철하는 혁명적 군풍이 차넘치게 하라』는 구호에는 김정일로의 군통수권 이양에 따른 일말의 불안감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선언등으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공장가동률이 40%를 밑도는 경제난에다 주민들의 사상적 동요등 이중고를 겪고있다. 따라서 최근의 구호 양산은 주민들의 긴장의식을 높이면서 김일성 부자세습구도를 다지고,노력동원 극대화를 통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여러가지 목표를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최근 북한이 연일 구호관철을 독려하는 군중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데서 뒷받침된다.지난 14일 평양에서 10만명의 주민이 동원된 궐기대회가 열린 것을 비롯,함흥·원산·사리원·신의주 등 북한전역이 구호와 군중집회의 물결로 뒤덮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김기남 등 핵심적 역할 이같은 구호들은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에서 주로 제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과정에서 김정일의 측근중의 측근으로 꼽히는 김기남이 핵심적 역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식 대로 살자」「우리 당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는 등 북한의 유명한 구호는 거의가 그의 두뇌에서 나왔거나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에서부터 강요되는 구호가 쏟아지는만큼 북한사회 저변에서는 체제와 각종 사회비리를 풍자하는 은어도 범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키가 작은 김정일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비꼬는 「고도」,당간부가 부정한 여성관계로 처벌을 받게 될 때 상대여성을 「간부절단기」라고 부른다.「마동무」와 「로선생」은 말보로 및 로스만 담배를 일컫는 것으로 당간부들의 외제품 선호경향을 꼬집고 「영실군대」는 영양실조 인민군을 지칭하며 「물·안·지 법칙」은 뇌물·안면·인맥이 각종 규정보다 우선하는 세태를 비꼬는 말이다.
  • 대통령 외유 틈타 칠레군 무장 집결

    【산티아고(칠레) 로이터 연합】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부에 위치한 군사령부에 28일 중무장한 병력이 집결했다고 칠레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그러나 칠레국방부는 이같은 군대의 움직임이 통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면서 쿠데타가 진행중이라는 풍문을 부인했다. 앞서 목격자들은 이날 사령부에 모인 병력이 소총과 방탄복등 완전무장을 갖추고 있으며 일부는 휴대용 대전차무기도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의 이같은 움직임은 파트리시오 아일윈 칠레대통령이 노르웨이를 방문중인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어서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수석비서관들에 「이해력」 밝혀 눈길

    ◎김 대통령,“군생리 누구보다 잘 안다”/“의원시절 절반 국방위원으로 활동”/절묘한 인사에 “비공식채널 보유” 추측도 ○“그건 날 모르는 소리” 김영삼대통령은 군정보를 어떻게 얻고 있고,얼마나 알고 있을까. 최근 단행된 전격적인 군수뇌인사의 정교성에 군내외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김대통령이 27일 군에 대한 자신의 높은 이해력을 스스로 공개해 화제다. 김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들과 만난자리에서 『일부에서는 내가 군에대해서 잘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국회의원생활의 절반이상을 국방위원으로 보낸 걸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밝혔다.김대통령은 백선엽장군부터 시작해 6·25참전군인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이면서 『군출신들보다 내가 군의 생리를 더 잘안다』고 말했다는 것. ○두 전 대통령 대위때 김대통령이 처음 국방위원이 되었을 때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들은 육군대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와관련,청와대의 한측근은 『김대통령과 두전임대통령의 이런 인연때문에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을 어렵지 않게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즉 김대통령은 전임대통령들의 재임시에도 『내가 국방위원이었을 때 겨우 대위였던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측근의 이야기도 이를 뒷받침한다.『3당합당후 노태우 당시대통령과 김영삼대표는 현안이 있을 때마다 격렬히 부닥쳤다.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재는 모양인데 웃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상대방에 대한 그런 관념이 격렬한 투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중의 하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급장교 잦은 접촉 이측근은 『김대통령이 군의 고급장교들과 수십년을 부딪혀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또 어디를 잡으면 되는 것인가를 잘안다』고 설명했다.때문에 어떤인사를 하면 군의 단결이 강화되고 군이 좋아하는 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일련의 군인사가 군내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특별한 정보가 있어서라기보다 군에 대한 높은 이해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군내부에서도 지지 일련의 군수뇌인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군을 잘아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해군인사의 경우 청와대의 한고위관계자는 『해군내부에서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만세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오랜 국방위원으로서 갖게된 군에 대한 이해력만으로 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이에대해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들은 군내부에 대해 비공식 정보라인을 갖고 있지않겠느냐고 풀이했다.검찰에 대해 가차없는 숙정을 지시했던 것도 걸러지지 않은 정보의 유입채널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감각·결단력 큰 요인 실제 김대통령은 전임자들이 의존했던 기무사에 대해 큰 역할부여를 하지 않는 것 같다.사령관과의 독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은 『높은 이해력과 풍부한 정보탓도 있겠지만,그보다는 타이밍에 대한 감각과 결단력이 군인사의 점수를 높인 결정적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 과테말라 헌정중단/세라노대통령/의회해산… 「포고령통치」 선언

    ◎군쿠데타 우려,선제행동 추징 【과테말라 AFP 로이터 연합】 호르헤 세라노 과테말라 대통령은 25일 헌법의 효력을 부분적으로 중단,의회및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고 앞으로 자신의 포고령에 의해 통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세라노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중계된 라디오와 TV 방송 연설을 통해 『나는 헌법을 일시적으로·부분적으로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60일이내에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조치는 지난 21일 군대까지 동원된 바 있는 전국적인 파업등 시위로 인해 법과 질서가 공백상태이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라고 세라노대통령은 말했다.그는 또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96년 1월에 권력을 양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라노대통령은 30여년에 걸친 군사통치가 계속된 과테말라에서 지난 91년 1월 첫 민간대통령으로부터 처음으로 평화적으로 정권 이양받아 취임했다. 과테말라의 노조·학생단체·야당 의원·언론등은 경제난과 군이 좌익 게릴라·노조원·학생등에 인권유린을 해온데 대한항의로 지난 수개월동안 시위를 해왔으며 지난 21일 시위는 최고 절정에 달했었다. 이날 발표는 그동안 군의 쿠데타 가능성이 자주 시사됐기 때문에 군의 쿠데타를 우려해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과테말라 경찰은 이날 수도 과테말라시티의 주요 건물들과 대법원장·검찰총장의 집을 포위하고 민간 라디오방송국 1곳을 접수했다.
  • 군수뇌부 인사의 함축/문민정부의 「군체질개선」 마무리

    ◎육해공 균형발전·능역우선에 비중 「12·12사태」문책으로 단행된 「5·24」군 숙군인사로 김영삼문민정부의 군부가 확연히 모습을 드러내고 본연의 임무수행을 추진할 자신감에 차있다. 지난 2월25일 문민정부출범이후 지금까지 모두 5차례에 걸친 군수뇌부 인사를 통해 보여준 다양한 메시지에서 문민정부의 군부는 과거 정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대부분 충격요법을 동원,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문민정부의 군인사는 불예측성 때문에 군관련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한가지 원칙 즉 「거듭나는 군」「국민의 군대」를 재창출 하기 위한 동력원으로 삼으려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평가된다.물론 군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군인사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민정부의 군인사는 「5·24」숙군인사를 마지막으로 대략적인 한 매듭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5·24」군인사는 바로 앞서 4차례 군인사의 「종결판」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번 군인사는 ▲각 군의 균형발전과 미래지향적 군위상정립 ▲육사의 우위 또는 독점시대의 종막 ▲능력위주를 통한 조직의 활성화를 겨냥하고 있다.그전까지의 인사가 「하나회」「9·9인맥」등 소위 소수의 정치군인의 거세에 주안점을 둔 외과적 수술이었다면 이번 인사는 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체질개선과 세대교체를 위한 내과적인 대수술이었다 할수 있다. 이때문에 김영삼정부의 군부는 출범 3개월만에 내·외과적 수술을 모두 마치고 지휘부가 갈린 새로운 모습으로 왕성한 활동을 눈앞에 둔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할수 있다. 인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문민정부의 혁명적인 군부 틀짜기의 성패는 앞으로 구성원들의 개혁정신 강도에 달려있다고 할수 있다. 인적 청산만 하더라도 대장급의 경우 현재 92년6월에 보임된 조남풍육군1군사령관(육사18기)만 제외하고 8명이 모두 전역조치되거나 자리를 옮겼다.전역조치된 대장급은 이필섭합참의장(5·24)김진선2군사령관(〃) 김철우해군참모총장(〃) 김연각2군사령관(4·8)구창회3군사령관(〃) 김진영육군참모총장(3·8)등 6명이나 됐다. 특히 지난 3월8일 전격단행된 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기무사령관(현1군부사령관)의 경질은 군내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주었으며 문민정부 군부 틀짜기의 서곡이었다.이는 이어 지난달 2일의 수도권 핵심부대장인 안병호수방사령관(5·24예편)과 김형선특전사령관(현 참모차장)의 돌연경질로 이어진다.충격인사에 따른 군부의 동요움직임이 있자 「쐐기」를 박기 위해 6월 정기 장성인사를 두달 앞당겨 4월8일(대장급)과 4월15일(중장·소장급)두차례 군수뇌부인사가 실시됐다. 문민정부의 군부 골격마무리가 필요했던 김영삼정부로서는 「12·12사태 재조명」흐름을 활용,「12·12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하고 연루된 이필섭합참의장등 장성급 4명을 문책인사를 함으로써 군인사 완결을 위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아직도 「5·18」관련자들의 문제가 미결상태로 남아있긴 하지만 군내 분위기는 「5·24」인사조치로 평상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공군참모총장의 합참의장기용,학군단(ROTC)출신의 대장진급과 2군사령관보임,갓 중장진급한 해군참모총장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함께 군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군의 정치개입을 막는 차원에서 시작된 문민정부의 군부 재구성작업은 역설적으로 군의 정치참여배제를 선언한 「5·24」인사로 사실상 마감됐으며 각 군이 갖고 있던 불만요소를 제거한 인사로까지 발전시켰다고 볼수 있다.
  • 개혁이미지 맞는「새 기수 찾기」/민자,조직강화특위 본격 가동 안팎

    ◎13곳 조직책인선 무소속영입 박차/강남갑구 등에 재야출신 기용 예상 24일부터 본격 가동된 민자당의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지구당 위원장이 없는 13개 사고 지구당의 조직책 인선작업을 주로 다루게 된다.이 지역은 기존의 지구당 위원장이 공직을 맡았거나 탈당등의 사유로 이를테면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곳이다.그만큼 당안팎의 신경전과 힘겨루기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날 황명수사무총장의 주재로 열린 특위 첫날 회의에서는 이들 13개지구당 조직책은 개혁이미지에 맞는 참신한 새인물을 뽑기로 기준을 정했다.이를 위해 6월 11일 실시되는 3개지역 보선전까지 공개적으로 신청을 접수한뒤 보선이후에 심사를 거쳐 최종 마무리한다는 것이다.따라서 몇몇 지역은 오히려 신인이나 재야인사중에서 낙점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위는 이와는 별도로 8개 무소속의원 영입지역에 대해서도 조직정비를 서두르는 한편 무소속의원 2차 영입작업에도 착수했다. 13개 사고 지구당 조직책임명은 당내 세력판도의 변화를 가늠하고 길게 보면 15대 총선의 공천기준등을 미리 점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가운데 김종필대표가 자리를 내놓은 부여지구당은 김대표의 추천에 따라 조남욱전의원이 경합자가 없어 내정이 확실한 상태이다. 황병태주중대사의 공직취임으로 자리가 비게된 신정치 1번지 서울 강남갑의 경우 서상목,조용직 두 전국구의원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강용식의원과 구창림의원이 가세하고 있으며 재야인권변호사출신의 정성철정무1장관보좌관도 의외의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춘천(한승수주미대사)은 국민당 손승덕의원의 교통사고로 인한 타계로 조직책이 곧 보선후보자가 되는데 이상용 한석용씨등 두명의 전직 강원도지사가 다투고 있다. 서울 성동을(김도현평통사무차장)은 심의석전위원장과 윤원배숙명여대교수,방송앵커출신인 이득렬씨,조창현한양대교수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승주(유경현평통사무총장)는 조충훈세진관광대표와 육군대령출신의 위찬호씨가 후보명단에 들어있다. 임춘원의원이 탈당한 서대문을은 김재광전국회부의장의 동생인 김재기전외환은행장이 민주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있는 가운데 이연석서울시지부사무처장과 안성혁전위원장,김병호한성학원이사장도 의사를 타진중이다. 박준규전국회의장이 내놓은 대구동을은 김종한대구시지부 사무처장이 희망하고 있으며 이재오전민중당사무총장도 거론되고 있다.정동호의원이 탈당한 의령·함안은 조홍래농업진흥공사이사장과 장권현변호사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김복동의원의 대구동갑은 김용기위원장대행과 이춘식청년국장,안태전연수국장이 오르내리고 있고 김현규전의원도 소문의 대상이다. 한편 황총장은 추가 무소속 영입작업과 관련,『앞으로 1,2명 정도면 된다.천천히 여유를 갖고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우선은 소수에 한정된 선별영입을 추진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 군위상 바로 세우다(사설)

    문민정부시대를 맞아 군이 국민으로 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민의 군」으로 거듭 나야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그것은 국민적 여망인 동시에 시대적 요청이다. 군이 강력하고 건전한 군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과거 권위주의시대의 면모를 일신시켜 국방의무라는 군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토록 해야 한다.또한 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상명하복의 지휘체계도 완벽하게 확립해야 한다.이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통한 「신한국」창조라는 대업을 이루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이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한 12·12사태 관련및 인사비리로 물의를 일으킨 장성들에 대해 전역등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한 것은 군이 「국민의 군」으로 거듭 나게하기 위한 통치권차원의 결단이라 할 수 있다.뿐만아니라 그것은 비정상적인 한 시대를 정리함으로써 다시는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통수권자의 의지표현이라 할 것이다.우리 군이 과거 30여년 동안 정치군인들로 인해 저질러졌던 오욕의 역사를 딛고 새로 태어나는 전기를 맞이하게 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누차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 잡는다」고 강조해 왔다.그의 이같은 개혁의지는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고도 광범위한 변화와 개혁을 가져왔다.군에 대한 개혁조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과감하고 파격적인 인사는 군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하나회」군맥을 정리,군을 사조직으로 부터 보호하고 군의 지휘계통도 확립시켰다.새로 출범한 문민정부의 정통성 기반없이는 결코 해낼 수 없는 결단이기에 국민들로 부터 신속하고도 용기있는 조치로 평가받을만하다. 특히 이번 군수뇌부의 전격적인 인사에서 육군출신 장성의 독무대였던 합참의장 자리에 공군참모총장을 임명하고 2군사령관에 ROTC출신을 임명한 것은 군 역사상 전무한 일이다.이러한 인사는 국군현대화를 위한 각군간의 균형적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또한 이는 김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사항이라는 점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면모를 새롭게하고 있다. 국민들은 결코 12·12사태가 역사의 정당한 과정이었다고 믿지 않는다.그것은 10·26사태로 권력의 공백상태가 됐을 때 일부 정치군인들이 하극상을 저질러 가며 비정상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쿠데타적 사건」이다.국민들은 그같은 사건이 다시는 되풀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김대통령의 이번 군수뇌부 인사가 갖는 깊은 뜻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군은 이제 바로 서야 한다.
  • 「12·12문책」 장성 4명 예편

    ◎이필섭 합참의장·김진선 2군사령관·안병호 2군부사령관·박종규 56사단장/「인사물의」 김철우 해참총장 해임/합참의장 이양호·2군사령관 박세환대장/해참총장 김홍렬·공참총장 조근해씨 내정 김영삼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를 거쳐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을 임명하고 육군 제2군 사령관에 박세환 교육사령관을 대장으로 승진,임명한다고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이 24일 발표했다. 이필섭 합참의장·김진선 2군사령관·안병호 2군부사령관은 전역조치 된다.또 12·12당시 특전사령관 부관인 김오낭소령을 사살하고 정병주사령관을 체포한 박종규 56사단장을 예편시켰다. 김영삼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합참의장에 이양호공군참모총장(공사8기)을 임명하고 육군 제2군사령관에 박세환교육사령관(ROTC1기)을 대장으로 승진,임명한다고 이경재청와대대변인이 24일 발표했다. 이필섭합참의장(육사16기) 김진선2군사령관(〃19기) 안병호2군부사령관(〃20기)은 「12·12사태」와 관련돼 전역조치된다.또 12·12당시 정병주특전사령관을 체포한 박종규56사단장(육사23기)도 함께 예편된다. 김영삼대통령은 또 이날 신임 해군참모총장에 김홍렬합참전력평가부장(소장·해사16기)을,공군참모총장에 조근해국방부정보본부장(중장·공사9기)을 각각 내정했다. 김해군총장과 조공군총장은 25일 국무회의의결을 거쳐 대장승진과 함께 보임될 예정이다. 김대통령이 현역 소장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해군참모총장에 발탁한 것은 해군사상 파격적인 인사로서 이를 계기로 진급 인사비리 물의를 빚은 해군내 조직을 쇄신하고 세대교체를 앞당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후임 공군참모총장에는 조근해국방부정보본부장(중장·공사 9기)이,사의를 표명한 김철우해군참모총장 후임에는 김홍렬합참전력평가부장(소장·해사16기)이 내정됐다. 조공군참모총장 내정자와 김해군참모총장 내정자는 각각 대장과 중장으로 승진,임명된다. 이에 앞서 권영해국방장관은 이날 하오 청와대를 방문,후임 공군및 해 군참모총장 인선내용을 보고하고 재가를 받았다. 이대변인은 장성3명의 예편과 관련,『12·12당시 자기직무와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을 벗어나 지나친 행동을 한 장성들에 대해 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봐도 좋다』고 말해 이번 인사가 12·12의 마무리를 위한 조치임을 밝혔다. 이대변인은 『오늘의 군인사개편은 국민의 군대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군현대화에 따른 각군의 균형적 발전을 약속한 선거공약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전제,『특히 헌정사를 얼룩지게 만든 군의 정치개입을 마감하고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수행에 전념케하는 한편 군통수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대변인은 이어 5·18문책인사와 관련,『통수권과 지휘절차를 따라 움직인 지휘관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말하고 『이번 인사가 구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으로는 최종적인 것』이라고 말해 군관련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군내부의 추가문책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대변인은 12·12와 관련됐던 정치인에 대한 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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