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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 군부소요에 대비/옐친,특수부대 창설

    【모스크바 AFP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군대내 불만세력들의 소요 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해 모스크바 주변에 독자적인 지휘체계를 갖는 새로운 엘리트 군조직망을 구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러시아의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가 14일 보도했다. 새로운 군조직망은 특히 독일과 발트해 연안국가들로부터 최근 철수한 군인들의 불만에 따른 행동을 진압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강조했다.
  • 회교·크로아티아계 공동정부 구성 합의

    【자그레브·사라예보 AFP 연합】 보스니아내의 회교계와 크로아티아계 대표들은 14일 자그레브에서 양측이 공동으로 정부와 군대를 구성하고 모든 이산가족의 귀향을 보장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고 이날 발표된 공동발표문이 밝혔다.
  • 「12·12」는 우발적 충돌/전 전대통령 석명

    ◎정승화씨가 김재규 도와줘/“사전계획도니 군부반란 명확”/장태완씨 전두환 전대통령은 15일 『12·12 사태는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 내란사건 관련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이라면서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12·12 사태」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면서 발표한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이 건재했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됐으며 행정부와 국회,사법부에도 변화가 없었으며 국민생활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들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측의 병력출동에 대해 『합수부가 정총장을 연행할 때는 수사관과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고,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 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계통을 무시한 채 자의적으로 군대를 출동시킨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전전대통령은 검찰에 제출한 「변호서」에서 사태발생 직전 청와대에 이웃한 제30경비단에 유학성 당시 국방부군수차관보등 8명의 장성이 모인 데 대해 『이들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지휘관들로 정총장의 연행 수사가 불가피함을 설명해 이해를 구하고 군부내의 동요를 사전에 막겠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이어 최규하 당시대통령에게 정전총장의 연행을 재가받는데 8시간이 걸린데 대해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는데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노재현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의 출두지시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나 도피 잠적함으로써 재가가 지연됐다』면서 『처음에는 보고후 재가가 난 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사태로 절차상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정총장은 김재규에 의해 10·26 내란의 군부후원세력의 핵심으로 역할을 하게 돼 있었고 실제로 내란음모의 2단계 계획인 「계엄령선포로 사태장악」까지 실현되도록 도와주었다』고 주장했다. 전전대통령은 합수부에서 조사된 정전총장의 10·26 전후 혐의내용을 열거한 뒤 『정총장은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이날 대국민 발표문과 함께 검찰에 보낸 2백28쪽 분량의 답변서,84쪽의 「변호서」,정전총장의 10·26 관련 행적을 요약한 도표등을 함께 배포했다. 한편 12·12당시 수경사령관으로 신군부와 맞섰던 장태완재향군인회장은 이날 『전두환전대통령이 12·12는 10·26사건에 관련된 정승화 당시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충돌 사건이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12·12는 사전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하극상에 의한 군부반란임이 명확하다』고 반박했다. 정전총장도 『전씨측의 이같은 주장은 모두 허구이자 조작』이라면서 『반성은 커녕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개방땐 체제종말” 북의 딜레마/미뉴요커지 부루마기자 방북기

    ◎판문점의 북군 바짝 마르고 무기력/핵이 외부세계 양보얻는 유일카드 뉴욕의 종합주간지 「뉴요커」는 최신호에서 지난 8월 북한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안 부루마 기자의 김일성 사후 북한여행기를 8페이지에 걸쳐 특집으로 실었다.다음은 그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기차로 북경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국경을 건너면서 극적인 대비를 볼 수 있었다.외국 무역상들과 네온불빛이 어우러져 흥청거리는 중국 단동의 강건너편 신의주는 퇴락한 콘크리트 건물과 텅빈 가로에 위대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확성기 소리만이 요란했다. 기차역마다에는 『김일성 원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다』등의 플래카드와 김부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어 적어도 기찻길을 따라가면서는 김일성은 죽지 않은 것 같았다.북한은 전체가 거대한 쇼무대이고 방문객뿐 아니라 국민 전체까지 일종의 쇼에 출연하고 있었다. 특히 평양은 김일성을 숭배하는 기념물들로 가득차 있었다.주체탑에는 수마일 밖에서도 볼 수 있게 전기 횃불이 지펴 있었다.이 탑은 개선문모양으로 82년 김일성의 70회 생일때 세워졌다.전면에는 김일성의 항일 투쟁시기를 1925년부터 45년까지로 적어놓고 있다.13세에 혁명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시설은 현재 3분의1밖에 가동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성장률은 92년도에 마이너스7.6%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동해안 공업도시들에서는 식량부족으로 많은 난민도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에너지문제가 극심해 평양최대의 고려호텔이 엘리베이터를 손님이 있을 때만 가동했다.거리는 밤이면 암흑세계로 변하며 최대의 도서관인 인민대학습당조차 불을 제대로 못켤 정도였다. 그래도 주체탑의 횃불,만수대의 김일성 동상등은 전력을 아낌없이 썼다.묘향산 국제우호전시관에는 김부자가 1백50개국에서 선사받은 6만점의 선물들이 전시된 80개의 전시실이 추울 정도로 센 에어컨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고려호텔의 침침한 방에는 개방을 기다리는 유럽 기업인들이 있었다.한 영국인은 베트남처럼 북한도 곧 적어도 기업에는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북한쪽에서 판문점을 가면서 느낀 것은 남한에서 판문점을 향해 갈때 건장한 병사들의 삼엄한 경계에서 긴장감을 갖던 것과는 달랐다.북측 병사들은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하나같이 빈둥거리는 모습이었고 적개심이나 호전성없이 오히려 지루하다는 분위기였다. 북한이 현재 백만명 이상의 군대 유지가 어렵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로 보인다.그것이 바로 핵무기개발의 한 이유가 되고 있다.가장 값싸게 군사력을 유지하고 외부세계와 흥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1995년에 한반도가 재통일된다고 말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굳게 믿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위대한 수령이 살았을때 얘기였다.
  • 정전위 중대표 철수안해/장교 3명 유엔군 유해반환식 참석

    ◎북,유해 14구 인도 【판문점=박재범기자】 판문점에 파견된 중국 군사정전위대표단이 중국정부가 소환방침을 발표한 지 2주일이 넘도록 아직 철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중국군 정전위대표일행인 중국군 영관급 장교 3명이 이날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군 유해반환식에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밝혀졌다. 이에 대해 군사정전위 유엔사측 비서장인 마크 슈메이커 미육군대령은 『중국대표들이 오늘 행사에 참석한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남북간에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사건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전위기능이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들어 처음이자 사상 열번째인 이날 유해반환식에서는 미군등 유엔군 유해 14구가 유엔사측에 넘겨졌다.
  • 김 대통령,미 항모 키티호크 방문

    김영삼대통령은 12일 『한미 연합군은 세계 최강의 연합전력을 보유한 정예 군대』라고 말하고 『한미간의 강력한 군사적 협력체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그리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 근해에서 작전중인 미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키티호크」를 방문해 항공기 이착함 시범등 비행훈련을 참관하고 장병들의 사열을 받은뒤 함상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인간적인 신뢰감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한미간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강화해왔다』면서 「한미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해군함정 10% 기지서 “낮잠”/인력달려 30여척 장기정박

    ◎유사시 대응전력 약화 우려/국방부 실태조사 해군이 병력부족으로 함정들을 조기에 대기함정으로 전환,기지에 장기간 정박시키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89년부터 국방부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해군의 인력증원을 동결한데 따른 것으로 전력의 약화가 우려된다. 관리대기함정이란 퇴역(폐선처리)이 가까운 함정을 전시등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시기에 활용하기 위해 미리 작전에서 철수,항구에 정박한채 최소한의 정비인원등만 배치해 녹이 슬지 않을 정도로만 배의 성능을 유지하도록 하는 함정이다. 12일 국방부와 해군에 따르면 해군은 해마다 취역하고 있는 잠수함등 신형함정을 운용하기 위해 구형함정의 하사관과 장교를 전환배치,전체 함정의 10%가 넘는 30여척이 항구에 관리대기형태로 편법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관리대기함정이 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해군의 인력이 편제상 정원의 85%수준으로 육군과 공군의 90%이상 수준에 5%포인트 이상 미달하고 있음에도 증원이 안돼 기존병력을 활용하는 방편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군은 5대5나 적어도 6대4로 유지돼야할 함정근무요원과 지상근무요원의 비율이 8대2에 이르러 교육이나 전투지원업무에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인력부족으로 하사관과 초급장교의 근무강도가 심각해지면서 이들의 전역률이 크게 증가,인력부족현상이 악순환되고 있다』면서 『해군대학에서 6개월이상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장교의 경우 전속명령이 나지 않아 1주일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1주일은 원소속부대에서 과제물처리로 대체하는 식으로 학교를 다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 노인정/정자:중(서울 6백년만상:57)

    ◎풍은 부원군 조만영의 필동 정자서 유래/명문대가·고관·문인들 모여 풍류 즐겨/마포 「망원정」은 임금도 자주 드나들어 갈데없는 도시노인들이 모여 심심파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정.아파트지하실에 차려졌건,아니면 공원모퉁이에 지은 가건물이건 노인들을 위한 휴식장소를 두고 사람들은 정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이를 노인정으로 부르는데 이는 서울에 실제로 있던 「노인정」에서 유래됐다고 전해 진다. 1800년대초 풍은부원군 조만영이 중구 필동2가 남산 북쪽기슭에 세운 「노인정」이라는 정자가 바로 그것. 주변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많은 노인들이 몰렸다.특히 당대 명문가이던 풍양조씨 일가의 고관들을 비롯,안동금씨·동래정씨등의 문인·대관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다. 한말의 풍운이 불어닥치던 시절에 선비들이 세상일을 등지고 풍류에만 젖어 있다 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이를 풍자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노인정위에 어린이가 노나/삼월의 복사꽃이 물을 어지럽히는데/평생토록 세상일도 모르고/날마다 풍류로 늙어가네.」 노인정은 역사적인 한일간 회담이 열려 더욱 유명하다.1894년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은 내정간섭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5가지 내정개혁안을 들고 일반백성이 눈치챌세라 인적드믄 노인정에서의 회담을 제의했다. 그해 6월8일부터 3차례에 걸쳐 회의가 열렸으나 3차회담에서 우리측이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그러자 일본은 군대를 이끌고와 경복궁을 포위하고 대원군을 입궐시켰다.이 사건은 이른바 갑오경장으로 이어진다.말하자면 노인정은 일본침략의 도화선이 된 불쾌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였던 것이다.노인정은 일제시대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해방후에는 불교부인회에서 사용했다가 지금은 개인주택이 들어서 있다.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망원정」은 조선시대 임금들이 자주 드나들며 세상사를 논하던 곳으로 유명하다.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이 별장삼아 지은 망원정의 본래 이름은 희우정.효령대군의 아우인 세종이 바깥에 시찰을 나갔다가 정자에 들려 가뭄걱정을 하며 얘기를 나누던중 때마침 비가 내렸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성종때에 이르러 희우정은 다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별장이 됐으며 월산대군은 정자를 크게 수리하고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꿨다.정자에 올라 앉으면 먼 경치까지 전부 바라볼수가 있다고 해 붙여졌다.성종도 역시 세종때의 일을 본따서 매년 봄이면 망원정에 나가 농사일등 세상 돌아가는 일을 살피고 여러 문신들에게 시를 짓게해서 현판에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서깊은 망원정도 연산군에 의해서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궁중에서의 향락만으로는 부족해 각 명승지를 찾아 연회를 베풀던 연산군은 망원정의 절경에 취해 1천명이 들어앉을수 있도록 새로 지으라고 했다.그리고 연산군 12년 7월 망원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은 공사 건물을 막론하고 모두 철거하라고 해 양화진에서 마포에 이르는 일대가 허허벌판이 될 판이었다.그러나 그해 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 공사는 즉각 중지되고 망원정은 살아남을수 있었다.망원정은 조선말기에 없어졌다가 88올림픽이후 한강변유적 복원사업으로 정자로는가장 먼저 복원됐다.
  • 일 제작 고지도에도 “조선해”

    ◎조선·일본 어업협정 문서 등 18점 공개/서지학자 이종학씨 최근 정부가 동·서해 해양오염방지를 위한 북서태평양해양보전회의(NOWPAP)에서 채택할 실천계획 문안에 표기할 동해의 표시문제가 말썽을 빚고 있는 가운데 10일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한 19세기 고지도와 문헌이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서지학회 소속 서지학자 이종학씨(67·경기도 수원시 화서동69의6)는 이날 상오 서울 종로구 청진동 서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정만국전도」등 일본에서 제작발행된 지도 12점과 대한해로 표기한 우리나라 지도 2점,조선해 명칭이 들어있는 조약문서등 고문헌 4점을 공개했다. 이씨가 공개한 「신정만국전도」(1810년),「신제여지전도」(1844년),「지구만국방도」(1871년)등 일본지도 12점에는 동해가 「조선해」로 표기돼 있으며 태평양연안의 일본해역이 대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특히 이씨가 이날 처음으로 공개한 1883년 조선과 일본의 어업협정조약 「일본인민통상장정과 해관세목」문서에는 일본의 연안도시 비전·석견·장문등의 위치를「조선해에 인접한 어항」으로 표기하고 있어 당시 일본에서도 동해가 조선해로 통용되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일본 해군성이 1885년에 발행한 「수로지」 제19호에 게재된 해군대위 간촌겸행의 글 가운데에는 『외국인들이 독도와 가까운 일본섬인 은기도를 「조선해」(동해)가 아닌 「일본해」(태평양)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이씨는 『일본에서 제작발행된 각종 문헌과 지도까지 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고 있는데 정부가 「일본해」표기에 잠시나마 동의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일본해상보안청이 지난해부터 독도가 포함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일본근해해도」를 대량 발행,세계 각국에 배포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방위개념에 불과한 동해의 명칭을 조선해 또는 대한해로 고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나토­구소권 첫 합훈/13국참가… 내일부터

    【바르샤바 UPI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미국 후원하의 평화동반자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구소블록국가 등 13개국 9백20명의 병력이 12일부터 16일까지 폴란드서부 포즈난 근처의 비드루스코 훈련장에서 최초의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폴란드국방부가 9일 발표했다. 「협동교량94」라는 이름으로 평화유지활동과 관련된 공동 군사기술을 연마하려는 이 훈련에는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 나토회원국과 불가리아 체크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블록국가의 군대가 참가한다.
  • 미군 곧 아이티 침공/군정 퇴진 거부에 작전개시 당겨

    ◎미 백악관·주아이티대사관 대변인 밝혀 【마사스빈야드(미매사추세츠주) 로이터 AFP 연합】 미국은 6일 아이티 침공의 시한을 정할 계획이 없으며 미군이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을 축출하기 위해서나 또는 그들이 자진해서 물러날 경우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아이티의 질서회복을 위해 곧 아이티에 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 디 마이어스 백악관대변인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휴가중인 마사스 빈야드에서 백악관이 아이티 침공의 시한을 정할 계획이 없다면서 『우리는 어느 때라도 행동을 취할수 있으며 언제까지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이티주재 미대사관의 스탠리 슈라거대변인은 아이티 수도 포르토 프랭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군과 국제군이 곧 아이티에 올 것이며 그들은 아이티 군부지도자 라울 세드라 장군이 출국한 뒤에나 또는 그가 떠나기 전에 이 곳에 당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민주선거로 선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축출한 세드라장군 등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에게 퇴진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 슈라거 대변인은 최근 몇차례에 걸쳐 아이티지도자들이 퇴진할 의향이 없음을 나타내는 상황이 벌어진데 이어 미군주도 국제군의 아이티 침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아이티 군부지도자들이 특히 미국무부와 국방부사이에 군사행동에 관한 의견차이가 있다는 보도 등으로 침공위협을 믿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슈라거대변인은 미국방부와 국무부 당국자들이 필요할 경우의 대아이티 군사행동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은 캐나다에 미군주도 아이티 침공군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있으나 캐나다는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는 아이티에 군대를 보낼 용의가 있지만 침공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당국자들이 말했다.
  • “김정일체제 세계가 공인”/중앙방송,대대적 선전

    【내외】 최근 김정일의 권력승계문제에 국제적인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2일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김정일을 북한의 최고영도자로 「공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김정일을 「세계적 위인」으로 부각,선전하는 가운데 중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이란 시리아 이집트 등의 지도자들이 김정일을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영도자로 공인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은 『김정일이 있어 김일성이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은 빛나게 계승,완성될 것이라는 굳은 확신을 표명했다』고 선전했다. 이 방송은 이어 최근 2개월간 1백70여개국의 당및 국가지도자들과 각계인사들이 김정일에게 5천여통의 전문을 보내 『자기들의 한결같은 기대와 염원을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 IRA지도자/영군·경 철수요구/북아일랜드 구교도 탄압 중지도

    【더블린 로이터 AFP 연합】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 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는 2일 북아일랜드의 구교도 지역에서 영국이 군대와 경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애덤스 당수는 이날 더블린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영국군과 경찰은 민족 지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영국이 즉각 비무장화 작업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애덤스 당수는 IRA가 휴전을 선언한 이후 첫 기자회견을 갖기 직전 이같이 말하고 영국은 이번 휴전 선언을 계기로 불법 수색,체포를 중지하고 구교도를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악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카톨릭계 주민 총격/신교단체,“자파 소행” 【벨파스트 AP 연합】 ‘북아일랜드의 신교계 과격단체 「얼스터 해방전사들(UFF)」은 1일 발생한 카톨릭계 주민에 대한 총격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2일 주장했다. UFF는 언론에 성명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아일랜드공화군(IRA)이 선포한 휴전 첫날 카톨릭계 남자 1명이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격 사건은 IRA가 대영 투쟁 25년만에 선언한 역사적인 휴전 첫날 발생해 신교계 과격단체들이 IRA의 휴전 선언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공세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 휴전선 분쟁 확대 위험성/정부,중대표 정전위 철수에 우려 표명

    ◎정전협정 계속 유효/유엔사,“중국결정은 받아들일수 없다” 정부는 2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대표단이 이미 철수한데 이어 중국마저 인민지원군 대표단의 철수를 결정하자 한반도정세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대책을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중국측의 철수 결정이 알려진 1일부터 통일원·외무부·국방부등 관계부처간에 대책을 협의,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는 남북 사이에 신뢰가 구축된뒤 남북한 당사자가 직접 협의·해결해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정부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중국의 철수로 정전위의 기능이 마비되고 유사시 사소한 분쟁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진데 대해 외무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중국측에 유감을 표시했다. 장기호 외무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중국정부가 군사정전위의 자국대표단을 소환하기로 결정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고 『지금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들 사이에 협의가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결정을 한것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장대변인은 『정부는 중국측의 이번 결정이 현 정전협정체제의 효력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하며 중국측도 이를 인정했다』면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한 쌍방 합의에 의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현 정전협정체제가 계속 유지되고 준수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대변인은 또 『중국측이 자국 대표단의 소환결정을 사전에 우리측에 알려왔다』면서 『중국측은 이 결정이 사무적인 조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북한이 이른바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려면 우선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성실히 준수,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간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북한측의 끈질긴 기도는 지난 92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화해에 관한 부속합의서」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화해에 관한 부속합의서는 「남과 북이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성실히 이행,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대표에 전달 유엔군사령부 정전위(MAC) 비서장인 슈메이커 미군대령은 2일 중국의 남북군사정전위 대표 소환 결정과 관련,판문점에서 북한측 비서장 박임수 대좌를 만나 중국의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정전협정 체제는 계속 유효하다는 유엔사의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사의 한 관계자는 『정전협정은 체결 당사자인 유엔사·중국·북한 3자의 합의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중국이 대표를 소환하더라도 정전협정은 계속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의 박임수가 유엔사측 주장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엔사는 또 이날중 중국의 이번 결정에 대해 유엔안보리에 보고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군사령부는 이에 앞서 『중국이 정전위 대표를 소환키로 결정한 것은 정전위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조치로 앞으로 유엔사와 북한간의 사소한충돌이 심각한 국면으로 비화될수 있는 위험이 높아졌다』고 우려하면서 『유엔사로서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핵·관계개선 대미직거래 “창구트기”/북의 정전위체제 무력화 속셈

    ◎한미공조 틈새 벌리기 집요한 기도/「전문가회담」 앞서 중 철수 결국 관철 이번에 중국이 군사정전위 철수를 결정한 것은 정전협정체제의 폐기를 집요하게 획책해온 북한측의 정전위 무효화 전술에 중국이 공조한 산물로 볼 수 있다. 정전위의 중국인민군 지원단 철수 결정이 북한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이다.더욱이 북한이 이미 정전위 대표단을 철수한데 이어 정치협상기구 성격을 띤 인민군대표부를 판문점에 설치한 상태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정전협정체제의 변화를 기도하고 있는 이면에는 우리측을 배제한 채 미국과의 직거래를 통해 관계개선과 경제지원 등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장기적 전략이 깔려 있다는 것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즉 정전협정을 북한과 미국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논리를 펴면서 그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등을 추구한다든가 상주연락사무소급 이상의 관계개선을 촉진하려는 속셈이 개재되어 있는 것이다. 북한은 올들어 그들의 이같은 장단기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1차적으로 군사정전위를 기능상실 상태로 몰고가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해 왔다.지난 92년 한국군 황원탁소장이 미국측을 대신해 유엔측 수석대표로 임명된 직후부터 군정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해온 연장선상에서 중립국감독위 철수통보에 이어 지난 4월28일부터 군정위 비서장을 아예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측이 지난 5월24일 유엔사측에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설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도 정전협정의 폐기를 노린 계산된 행동이었다.지난달부터 북한측이 판문점 북측지역에 있는 판문각 확장공사에 들어간 것 역시 판문점대표부 활동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군정위의 효력정지를 기정사실화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이처럼 북측이 군정위 기능정지를 꾀하고 있는 데는 정전협정을 무효화하되 정전협상의 당사자로서 미국과의 대화채널은 유지·확대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때문에 이러한 북측의 처사들을 미국과의 핵 및 관계개선을 일괄타결하기 위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북한특유의 「벼랑끝 대화전술」의 일환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미­북 전문가협상을 앞두고 중국측의 정전위 철수발표를 이끌어냈다는 점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측도 정전협정을 무효화한 뒤 당장 미국과의 평화협정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게 정부당국의 분석이다.말하자면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를 약화시키고 미국과의 대화창구를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은 미국과의 막후접촉에서 단골메뉴인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이로 미뤄 볼 때 북측은 의도적 긴장조성을 통한 대내 결속 도모 차원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의 중간단계의 과도기 체제를 일단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표 소환」 중국의 정전위정책/정전협정 존중·평화협정 지지 함께/한국 자극않고 북지원 「양다리 외교」 중국이 1일 군사정전위에서 대표단을 소환키로 결정함으로써 한반도의 정전협정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중국 외교부 수뇌부는 북한 특사로 지난달 30일부터 북경을 방문중인 외교부 부부장 송호경과의 일련의 회담 끝에 북한측 주장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라는 북한측 주장에 동조하는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전위대표단 철수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은 한반도에서 당사국간 협상을 통해 새로운 평화보장 체제가 탄생하기까지는 기존 정전협정체제가 유효하다는 상치되는 입장을 동시에 밝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혼선은 중국측이 나름대로 이 문제로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않고 대외명분상으로도 수세에 몰리지 않기 위해 정전협정유효라는 원칙론을 덧붙인데서 빚어진 것이란 분석이다.중국이 명분상의 입장 선언은 전기침외교부 부장이,실질적 입장은 당가선외교부 부부장의 입을 통해 밝히는 더블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북한측으로 보아서도 중국의 입장은 분명치 못한 구석이 있는 셈이다.왜냐하면 당부부장은 국제관계의 변화와 한반도형세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새로운 평화체제수립이 필요하다는데 두나라(중국과 북한)의인식이 같다고 송호경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바로 같은날 전외교부부장은 송에게 기존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보장 제도 마련을 위해선 한반도안정과 평화정착이 전제조건이며 여전히 정전협정은 유효하고 이해당사자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 주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중국측은 정전위에서의 대표단 소환 필요성을 정전위의 파트너를 이루고 있는 북한대표단이 이미 철수,정전위의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있어 북한측의 요구를 고려한 끝에 이같이 결정할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측의 정전협정의 유효성 천명에도 불구,우리측으로선 중국 외교부 당국자가 정전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체제에 대한 고려논의가 언급됐다는 점에서 큰 부담을 안게 됐다. 한편 북경의 외교관측통들은 중국과 북한과의 이러한 논의는 지난6월 최광북한총참모장의 방중등을 통해 계속돼 왔으며 북한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이날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또 관측통들은 중국도 정전위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상대하는데 더 많은 여지를 갖게 하고 중국 자신들도 대미 외교의 협상력을 발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은 주중 한국대사관등에 중국의 이번 조치가 철수가 아니라 다시 대표단을 재파견할 수 있는 소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북경의 외교가에서는 이러한 중국측의 결정이 정전위의 단계적인 무력화와 나아가서는 주한미군철수의 당위성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성하면서 한국정부의 대응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 유감스런 중국의 정전위 철수(사설)

    중국이 지난달 31일 남북군사정전위에서 중국인민군대표단을 철수한 것은 한마디로 한반도 평화체제유지라는 유엔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그것은 당장 정전위기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종국에는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이 있기까지는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 북한의 끈질긴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그런 조치가 중국의 국가이익에 적합하다는 계산도 있었으리라 본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한반도 평화정착에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북한주장에 쉽게 동조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이번 조치는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못했다.중국은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관련국간에 협의가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철수한 것이다.게다가 우리와는 사전협의는커녕 연락조차 없었다.일방적인 사후통고만 있었다고 한다.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중국은 대표단을 철수하면서 「남북한의 정전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며 해당국들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정전위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고는 정전협정은 계속 유효하다니 그게 어디 이치에 맞는 말인가.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이며 이중적 태도다.겉으로만 선린외교를 펴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남북양측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챙길 것은 다 챙기겠다는 태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사정전위는 지난 40년여 동안 활동해오면서 휴전체제유지를 위한 안전판 노릇을 훌륭히 해왔다.그러나 지난 4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철수한데 이은 중국의 철수는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해 지탱돼온 정전위기능을 완전 마비상태로 들어가게 했다고 봐야 한다.따라서 앞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사소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국면으로 비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정전위기능은 그런 이유로라도 유지돼야 한다. 북한이 왜 그토록 중국을 정전위에서 철수토록 설득했을까.정전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데 1차적 목적이 있다.그래야 자신들의 의도대로 정전협정을 미국과의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로 한·미방위조약을 무력화시키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조성한다는 것이 북한의 교활한 계략인 것이다.중국은 결과적으로 북의 그런 계략을 돕고 있는 것이다. 미·북간은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한 전문가협의일정까지 잡아놓고 있다.중국의 정전위철수나 미·북회담 진행과정으로 보아 평화협정까지 체결하려는 북한의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은 남북간 신뢰가 구축된 뒤 남북한당사자가 직접 협의해 해결할 문제다.남북한 신뢰구축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이 선결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 유엔평화군 2천명 확보/다국군 침공뒤 6천명 투입계획

    【유엔본부 AFP 연합】 유엔 당국자들은 31일 미국 주도의 아이티 침공후 아이티에 배치될 6천명의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약2천명의 병력을 10개국으로부터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들은 프랑스,캐나다와 아시아,아프리카,동유럽 수개국이 군대를 보내겠다는 확고한 다짐을 했다.
  • 종군위안부 보상 정부차원선 종료/일 관방장관

    【도쿄=양승현특파원】 이가라시 코조(오십람광삼)일본 관방장관은 31일 군대위안부 보상문제와 관련,『정부차원의 개별적인 보상은 지난 65년 이미 법적으로 끝난 상태』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그것으론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어 새로운 방안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고 밝혀 민간차원의 개별보상가능성을 시사했다.
  • “갈망하던 평화가…” 축제 분위기/IRA휴전발표 이모저모

    ◎신 페인당수 “역사적인날” 자찬/신교도들 “차리리 죽음을” 울상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휴전선언에 대한 반응은 환영과 불신,반신반의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담스당수의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나 로저 스코트 영국노동당대변인의 『하나의 큰 진전』이라는 논평은 이날의 휴전선언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임을 보여주고 있다.또 아일랜드교회를 이끄는 로빈 이엄스박사의 『폭력의 종식 및 삶에 대한 위협의 종식은 당연히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왜냐하면 이들은 애초부터 매우 부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평도 휴전에 대한 부푼 기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IRA의 테러에 가족을 잃은 희생자들은 IRA의 휴전선언을 시큰둥하게 보고 있다.경관이었던 아들을 IRA의 테러로 잃은 마거릿 굿맨여인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해도 IRA의 살인행위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그이외에 그들은 달리 할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한편 북아일랜드동맹당지도자 존 올더다이스는 『말이아니라 행동으로 IRA가 평가될 것이다.모든 사람은 앞으로의 사태진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IRA(아일랜드공화군)가 휴전을 발표한 31일 벨파스트에선 기쁨의 환호를 터뜨리는 카톨릭교도들과 믿을 수 없다는 시큰둥한 표정의 신교도들 간의 반응에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이날 휴전이 발표되자 신 페인을 상징하는 녹색·백색 2색기와 아이랜드국기를 탄 긴 자동차행렬이 벨파스트시내를 행진하며 경적을 울려대는가 하면 기쁨에 찬 카톨릭교도들이 신 페인 본부앞에 몰려들어 서로 인사하고 박수치며 축제분위기를 빚었다. 한 할머니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을 하고서도 춤추고 박수치면서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오랫동안 평화를 갈망해 왔는데 이제 평화를 기대해도 좋게 됐다』고 말했다. 또다른 한 사람은 『이제 공은 신교도들에게 넘어갔다』며 신교도측이 폭력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교도들 사이에는 이날의 휴전발표를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한 남자는 『눈으로 보아야만 IRA의 휴전을 믿을 수 있다』고 말했으며 또다른 한사람은 『이번에는 IRA가 거짓말을 안했기를 바란다』고 IRA에 대한 불신감을 표시. 한편 신교도들의 무장조직인 얼스터자유전사(UFF)측은 『모든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죽음이 내리기를… 우리는 통일된 아일랜드에 살기보다는 기꺼이 죽음을 택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얼스터지원병(UVF)도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벨파스트내 카톨릭교도들과 신교도간의 상반된 반응은 평화정착이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IRA의 성명에 고무됐다』고 밝혔으나 『우리는 이 성명이 진정으로 폭력의 포기를 의미하는 지 알고 싶다』고 단서를 달았다.영국정부도 일단 IRA의 성명을 환영하면서 IRA의 성명에 대한 답변에 앞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일랜드정부는 『이런 중대한 결정은 아일랜드 국민이 오랜 시간동안 바라던 평화에 대한 열망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환영하면서 『국내외 동포가한뜻으로 이번 성명을 환영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IRA(아일랜드공화군)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의 지도자 게리 애덤스는 31일 영국에 대해 이날 발표된 IRA의 휴전선언에 따라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자 수감자들을 석방하고 ▲북아일랜드로부터 영국군을 철수시킬 것을 촉구했다. ◎IRA는 어떤 단체인가/영국군 치안담당에 항의… 69년 결정/「피의 일요일」 계기로 본격 무장투쟁 북아일랜드의 종교·민족분쟁의 뿌리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만 북아일랜드 가톨릭계의 저항이 본격화된 1969년에 IRA는 탄생했다. 북아일랜드의 다수를 차지했던 브리티시계 신교도들이 지방정부의 요직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자 이들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은 토착 아이리시계 가톨릭교도들은 69년7월부터 10월까지 거세게 저항운동을 벌였다. 가톨릭교도들은 17세기 영국 「제임스」2세의 가톨릭군을 패배시킨 신교도의 기념일 전후를 기해 유혈폭동을 일으켰으며 영국군의 북아일랜드 치안담당에 항의해 무장단체를 결성했는데 이 조직이 바로IRA다. IRA는 71년 여름과 가을의 무력충돌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인 테러를 감행한다.72년 1월30일에는 런던데리에서 가톨릭계 시민 13명이 영국군에 의해 사살된 「피의 일요일」이라 부르는 참사가 벌어져 이들의 저항은 더욱 거세지게 됐으며 같은해 7월 폭탄테러를 일으키자 영국정부는 2만명 이상의 군대를 집결하고 지방정부의 의회기능을 중지시켰다. 75년 2월에 IRA와 영정부사이에 무기한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5월에는 제헌의회의 총선거가 실시됐으나 양파에 의한 권력배분에 신교도측 강경파가 반대,76년 3월 의회는 해산되고 그후 영국정부의 직접통치가 계속되고 있다.79년 8월에는 영국의 국민적 영웅인 마운트배튼 백작이 암살되고 영군부대의 병력 15명이 매복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어 81년 5월에는 IRA대원 보비 샌스와 프란시스 휴스가 수감중인 IRA소속 게릴라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줄 것을 요구하며 옥중단식투쟁 끝에 잇따라 사망하자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등지에서 구교주민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IRA는 영국정부나 신교도들에 대한 공격말고도 실제로 영경찰이 해왔던 북아일랜드 지역의 치안을 떠맡았다.그러나 이들의 처벌형식이 무릎이나 팔꿈치등 신체일부에 총을 쏘는 등 너무나 잔인해 가톨릭계들로부터도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중반이후 영·아일랜드 정부간에는 북아일랜드 문제를 놓고 협상이 조심스레 전개됐다.85년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와 개릿 피츠제럴드 아일랜드총리가 북아일랜드사태에 관해 아일랜드의 발언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정례적 회담을 시작했다.그러나 이는 북아일랜드내 신교계들이 협정을 반대하고 나서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91,92년 아일랜드정부와 북아일랜드정당이 런던에서 신 페인당을 배제한 채 다자간회담을 개최했으나 92년 11월 협정을 내지 못하고 무산됐다가 93년 영국과 아일랜드간의 논의가 다시 활발해져 영·IRA간 비밀접촉이 진행됐다.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총리는 평화협정의 개요를 정하고 IRA의 영구휴전 대가로 신 페인당에 평화회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다우닝가선언」에 서명했다.협상은 올들어 더욱 활발해져 아일랜드와 영국이 지난 20년에 제정된 아일랜드 독립당시 북아일랜드를 제외시켰던 「아일랜드 정부법」의 개정을 시사했으며 영국도 이 법이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가운데 IRA의 정치조직 신페인당이 휴전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IRA휴전 발표문 요지 ▲현상황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민주적 평화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IRA는 8월31일 자정부터 휴전을 선포한다.이번 휴전은 군사작전을 완전히 중지하는 것으로 IRA의 모든 부대는 군사작전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리의 투쟁에 힘입어 민주적 입지를 위해 노력한 민족주의자들은 그동안 많은 업적과 진전을 이루어 왔다. ▲우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또한 영국정부의 발표가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해결책으로 제시되지도 않았음을 주지하고 있다. ▲해결방안은 단지 총괄적인 협상결과로서 찾을 수 있다.여타 당사자들 특히 영국정부는 그들의 책임을 인정할 의무를 갖고있다. ▲이같은 풍토조성에 크게 일조코저 하는 우리의 염원에 따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의 새로운 상황에 결의와 인내로 접근하기를 촉구한다.
  • 붉은 군대/「유럽주둔 49년」 마감

    ◎옐친­콜,동베를린 러군철수 기념식/“동서냉전 청산”… 발트서도 철군 49년동안 동독에 주둔했던 구소련군이 31일 헬무트 콜 독일총리와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참가한 가운데 베를린에서 공식 기념행사를 갖고 완전철수,동서냉전을 상징하는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로써 독일로서는 다음달초 미·영·불 서방3국 주둔군 철수기념식이 끝나면 통일후 4년만에 외국점령군들을 모두 떠나보내는 전후청산의 큰 과정을 마치게 됐다. 러시아도 지난해 리투아니아에 이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 이날까지 모든 구소련군을 철수시킴으로써 발트 3국에서도 완전철수를 마쳤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서방연합군과의 협약에 따라 45년6월부터 동독에 진주한 구소련군은 한때 순수병력 규모만 38만명을 넘기도 했으며 통독후인 91년에도 지원인원을 합친 총 주둔인원이 55만명,군기지와 훈련장,비행장을 합친 총 점유면적이 25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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