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대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국비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토끼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메이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절단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721
  • 러,휴전 2시간만에 포격 재개/체첸 대통령궁 주변 대공세

    ◎30초마다 포탄 1발씩 발사 【그로즈니 AFP 연합】 러시아군은 10일 일방적으로 선언한 휴전이 발효된지 2시간여만에 체첸자치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 대한 포격을 재개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상오 8시(한국시간 하오 2시)부터 일방적인 휴전에 들어가 전투가 잠시 중단되는 듯 했으나 2시간여만에 다시 포격을 시작,그로즈니 중심가에있는 대통령궁 근처에 30초에 1발씩 포탄을 발사했으며 이와 동시에 소형무기들의발사음이 강하게 들리기 시작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에 대해 아슬란 모스크야도프 체첸군 참모총장은 대통령궁에서 행한 AFP 통신과의 회견에서 러시아의 휴전제의가 「속임수」였다면서 러시아군의 휴전 제의를 위반한 포격재개를 비난했다. 한편 러시아의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세르게이 코발료프의원은 러시아 정부의 휴전 성명이 사상자 처리 등에 관한 인도적 내용이 빠져 있다며 『무장해제를 위한 새로운 최후통첩』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인명살상의 방지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며 9일 하오 늦게 10일상오 8시를 기해 48시간 동안의 휴전에 들어간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으며이 기간 중에 무장해제,포로석방,군대해산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체첸에 요구했다.
  • 유엔 인권조사단 4월 한·일 방문/정신대 「범죄행위」 조사

    【도쿄=강석진특파원】 「일제의 전종군위안부 문제는 국제인도법상의 범죄행위」라는 예비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는 유엔 인권위원회가 빠르면 오는 4월 한국과 일본등 아시아 수개국에 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10일 제네바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 31년 만주사변후 당시 국제연맹이 리튼조사단을 파견한 적은 있지만 2차대전 전쟁책임 문제와 관련해 유엔 조사단이 일본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일본정부가 보상 이상의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인도에 관한 범죄를 다룰 국내법이 없고 형사사건으로서는 시효가 성립됐다는 이유로 처벌논의를 회피해 왔으며 지난해 1월 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등이 도쿄지방법원에 제출한 처벌요구 고소는 수리되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의 여성폭력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라디카 크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스리랑카)은 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한 예비보고서에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지난 92년 사죄했으나 보상문제는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며 국제인도법상 범죄로 인정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당사자의 책임과 처벌로 이어지게 될 단호한 자세를 분명히 했다.
  • 이 골란고원 철수뒤/미 감시군 파견추진

    【텔아비브 AFP 로이터 연합】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9일 이스라엘이 장차 시리아와의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골란고원에서 철수할 경우 미국은 이 전략적 요충을 감시하는 군대를 파견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 멕시코/6년주기로 경제위기/작년 「성탄절악몽」계기로 본 실태

    ◎76·82·88에도 페소화 가치 폭락/매번 대통령 교체현상과 맞물려 페소화의 폭락으로 대변되는 멕시코의 현 경제위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재정혼란과 화폐가치의 붕괴는 지난 수십년간에 걸쳐 매 6년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때마다 대통령의 교체현상을 빚어왔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멕시코의 수백만 빈곤층은 화폐가치의 하락으로 더욱더 빈곤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제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다. 「성탄절의 악몽」이라 불리는 이번 경제위기는 에르네스토 세디요 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은지 약 3주일 뒤인 구랍 20일 터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의 재정당국은 정부재정상태를 국민들에게 속였고 페소화의 가치를 부양하기 위해 하루에 수백만달러를 풀었으나 결국 아무 성과없이 외환만 탕진하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세디요대통령은 과거 행정부의 고전적인 수법을 답습,외부요인으로 책임을 돌렸다. 이번에는 정치적 폭력과 미국금리의 상승이 그 외부요인으로 내세워졌다.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없었다. 마침내 정부는 국가경제가 잘못 관리돼왔음을 시인했으며 페소화는 달러화에 대해 3분의 1이나 하락했다. 세디요대통령은 초긴축정책을 추진,올해 임금인상률을 7%로 제한했다. 멕시코는 지난 60년대 이후 거의 주기적으로 경제위기를 맞았다.민주화 요구 학생들의 집회에 군대가 총을 난사,수백명을 숨지게한 사건이 터졌던 지난 68년,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대통령은 이때부터 시작된 경제침체와 싸워야했으며 지난 76년에는 루이스 에체베리아 대통령이 대중중심적인 정책을 취하자 은행가와 부유층이 이를 개탄,페소화대신 달러화를 끌어들이면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는 급감하고 페소화의 가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82년까지 집권했던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 대통령당시에는 석유시장의 침체로 차관이 들어오면서 페소화가 하락했고 지난 88년에 물러난 미겔 데라 마드리드 대통령시절에는 인플레율이 1백60%에 이르고 페소화의 가치는 수배가 하락했다. 멕시코의 역대 대통령들은 엄청난 권력을 누리면서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해왔다는 비난을 면치못하고 있다. 세디요 현 대통령의 바로 앞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전 대통령은 지난 88년 경제난국을 취임당시 물려받았으나 경제개방·자유시장개혁·균형예산의 집행·인플레율의 억제·적자 국영기업의 매각 등의 조치를 통해 이를 극복해내는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살리나스의 노력에도 불구,멕시코경제는 지난 82년 이후 1천17억달러에 달한 거대한 국제수지적자라는 짐을 지고 있었고 지난 93년 미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고금리현상을 보였던 멕시코로 유입됐던 외국자본이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감으로써 멕시코는 큰 타격을 받지않을 수 없게된 것이다.
  • 군 가산점제 개선 후속조치 지연/공무원 시험 지원자 큰 혼란

    ◎장애인·군면제자·여성 등 공식 진출기회 제한/공채시험 4개월 앞으로… 조속한 결정 시급 정부가 지난해 국가공무원 채용시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을 줄이겠다고 발표하고도 아직까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가 없어 올해도 선의의 피해자들이 늘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4일 95년 공무원 임용시험 날짜를 공고했다.그러나 이 공고가 나가고 난 다음날 신문사에는 『왜 군가산점 제도를 정부가 개선한다고 발표하고도 시행하지 않는가』『어디까지 개정작업이 추진되고 있는가』를 묻는 공무원 지망자들의 질문과 항의가 빗발쳤다. 현재 국가가 공무원을 채용할 때 현역복무를 마친 사람에게는 과목별 만점의 5%를,방위소집해제자에 대해서는 3%를 부여하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제도는 군복무를 마친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도입된 것으로 장애인을 비롯한 군면제자나 여성에게는 공직진출의 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정부는 이에따라 지난해 10월 행정쇄신위원회에서 가산점부여제도를 대폭 개선할 것을 의결했으나 공채시험을 불과 몇개월 앞둔 현재까지 구체적인 조치가 없어 지원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 최종의결된 개선안에 따르면 6·7급 공무원을 채용할 때는 국가직·지방직의 구분없이 2년이상 군복무자에게 과목별로 만점의 3%를,2년미만 복무자에게는 1.5%를 가산해주며 8·9급 공무원 채용시에는 국가직의 경우 2년이상 군복무자에게 4%,2년미만에는 2%를 각각 가산하며 지방직의 경우는 현행대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올해 실시되는 7급·9급 채용시험.9급시험은 올 4월에,7급은 6월에 실시될 예정인 공무원채용시험에서 이같은 결과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지난 4일 공고된 95년도 국가공무원임용시험 계획공고에는 지금까지와 동일한 가산점항목이 그대로 실려 있다. 여성단체의 한 관계자는 『군가산점제도 개정작업은 정무2장관실이 성차별적인 문제로 개선을 추진한 것이라기 보다는 군미필자에 대해 집단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일을 막아야한다는 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안다』며 국가가 개정방침을 정한 이상 관련 부처들이 신속하게 후속조치를 취함으로써 변화와 개혁을 위해 신속히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군가산점제를 가능케하고 있는 현행의 「국가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개정작업은 국가보훈처 등 관계부처에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게되어 있어 정책 결정자들의 조속한 결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이다.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군대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도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시급하다.
  • 구일군 위안부 운영/과거아닌 현재 문제/유엔,범죄인정 촉구

    【도쿄=강석진특파원】 유엔 인권위원회의 「대여성폭력 특별보고관」이 최근 종합한 보고서느 「옛 일본군의 군대위안부 문제를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지적하는 한편 「보상문제에 매듭을 짓고 일본군의 행위는 국제 인도주의의 원칙에 따라 범죄로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4일 제네바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이달말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될 보고서는 개인보상은 하지 안혹 민간모금에 의한 위로금 지급을 통해 전문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반하는 내용으로 돼 있어 전군대 위안부 문제는 유엔에서도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 보스니아 4개월 휴전/내전3자/1일 발효… 평화협상 조짐

    【사라예보·자그레브 AP 로이터 연합】 보스니아 내전당사자들이 4개월간의 시한부 휴전안에 서명함으로써 33개월간 지속된 보스니아 사태가 화해국면을 맞는 한편 영구적 평화정착 전망도 크게 밝아지고 있다. 내전 주당사자인 회교정부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1일 2시간 간격으로 각각 사라예보와 팔레에서 ▲적대행위 중지 ▲전투지역에서의 중화기 철수 ▲전쟁포로 교환 ▲사라예보 주변의 자유로운 통행 허용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계 군대의 철수 등을 골자로 한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1일 정오(현지시각)부터 발효되는 이 휴전협정은 오는 5월1일까지 시한부로 이 기한내에 보스니아 내전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보스니아내 크로아티아계 지도자로 회교­크로아티아 연방 대통령인 크레시미리 주바크도 2일 모스타르에서 마이클 로즈 보스니아 주둔 유엔군 사령관과 회담을 가진 뒤 휴전안에 서명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세계질서의 중추역 꿈꾼다(일본 「21세기 야망」:1)

    ◎돈·기술·정보·인재… “일본은 있다”/하이테크산업에 전력투구… 초일류 유지/군사·정치 대국화로 줄달음/“슈퍼파워 재팬” 냉정한 직시로 「불행한 역사」 반복 막아야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계기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일본은 패전 50주년이 되는 19 95년을 맞아 과거청산을 「선언」하고 유엔상임이사국 진입을 적극화하는등 경제 뿐만아니라 정치·군사면에서도 강대국을 지향하고 있다.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변화하는 일본과 그들의 21세기 위상을 조망해본다. 일본의 1995년을 여는 아침해는 그동안 움츠렀던 전후 반세기의 역사를 거부한다.경제적 「슈퍼 파워」 일본은 패전후 50년동안 축적한 힘을 바탕으로 이제는 과거 침략사의 굴레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며 국제정치무대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일본의 하루는 해가 후지산 너머로 진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빅토리아여왕의 영국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이다.일본의 첨단기업과 연구소의 하루를 마감하는 불이 꺼지기전에 태평양 건너 미국에 있는 일본 공장과 연구소의 불이 켜진다.지구촌 곳곳의 일본공장에서 세계시장을 압도하는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일본의 엔화는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패전의 참담한 잿더미속에서 경제신화를 창조한 일본.그러한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일본이란 말처럼 우리에게 착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도 드물다.가까우면서도 그러나 결코 가깝지않은 나라.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보려해도 가슴속 감정이 앞서는 나라.그러나 미국·유럽과 함께 21세기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일본의 변화하는 21세기 위상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이 「세기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오늘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배경은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실현이라는 전략적 선택의 성공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전후 일본정치의 틀을 만든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국가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성장에 집중투자하는 국가정책을 채택했다.일본은 미국의 전략적 우산아래 매년 국민총생산(GNP)의 1% 미만만을 방위비에 지출하며 경제분야 투자에 집중했다. 일본 경제성장의 결정적 도약의 계기는 잘 알려진대로 한국전쟁이었다.한국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당시 중국·소련등 공산주의세력의 팽창을 막는 방패국가로 일본의 경제건설을 적극 지원했다.미국은 이에앞서 일본군대의 광적인 팽창주의 야심과 그들을 지원했던 재벌의 유착관계가 아시아침략의 원인이었다고 판단하고 일본의 민주화란 이름아래 이들의 해체를 단행했다.재벌해체 이면에는 사실 일본경제체제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반공·보수주의로 급선회 일본을 아시아 반공국가 지원을 위한 군수기지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경제지원 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의 경제발전은 그러나 미국의 지원과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적절한 전략적 선택 때문만은 아니다.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정치적 안정과 관·민협동체제 아래 정말로 열심히 일한 일본의 근면한 손과 과학적 두뇌의 기술인맥이다.그들은 선진기술을적극 받아들이고 미국과 유럽이 지적오만에 빠져있을 때 밤을 밝히며 우수한 상품을 개발·생산해냈다. 일본은 또 미국이나 유럽이 「개인의 현재를 위한 소비」를 즐길 때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저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맺다.전후 일본은 산업시설이 파괴됐을 뿐만 아니라 자본부족도 극심했다.그러나 국내 저축률이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지며 많은 돈을 저축했다.미군을 상대로 돈을 벌었던 게이샤(일본기생)들조차도 미군에게서 받은 달러를 암시장이 아니라 은행으로 갖고 갔다고 한다.일본정부는 저축된 자금을 우선순위가 높은 산업발전에 집중 투자했다.지금은 자본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미래를 예비하는데 있어서 저축 뿐만이 아니라 인재를 아끼는데도 탁월했다.일본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과 전쟁의 패배라는 참담함속에서도 폐허가 된 국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우수한 인재들을 전쟁의 죽음으로부터 보호했다.그 방패막이 역을 맡았던 것이 일본해군의 단기 장교제도다.일본은 「단기 현역해군주계과사관」이라는 제도로 우수한 인재들을 온존시켰다.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들이 육군 쫄병으로 징병되어 전장에서 이름없는 병사로 죽어가서는 안된다.그것은 일본의 손실이다.인재를 남겨놓지않으면 일본은 멸망한다』.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단기 해군장교로 임관했던 3천여명의 인재들은 전후 관료·기업·경제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며 오늘의 일본을 만드는데 크게 공헌했다. 인재를 아끼는 것은 일본의 기업관에서도 잘나타난다.일본은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을 단순한 상품으로 보지않는다.인간을 교육을 통해 부가가치가 더욱 높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가치창조자」로 보고 있다.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기업관을 배경으로 일본기업은 특히 역경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저력을 발휘했다.일본기업은 70년대 1·2차 석유위기를 맞자 에너지 절약형 산업구조로 바꾸고 하이테크화를 서둘러 경쟁력을 강화했다. 1985년 9월 22일.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선진 5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가 열렸다.그 결과는 엔고의 가속화를 알리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로 나타났다.플라자 합의 직전의 환율은 1달러당 2백40엔이었다.그러나 89년초에는 1달러에 1백20엔으로 엔의 가치가 두배나 올랐다.일본경제를 이끌어온 자동차·전자등 수출기업들은 한때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그러나 일본기업들은 경영의 합리화·하이테크화에 박차를 가하며 엔고를 극복 국제경쟁력을 더욱 높였다.그러한 노력은 지금 더욱 강도를 높이고 있다.플라자 합의는 전후 40여년간 세계경제에 군림해온 「막강한 미국」의 종언을 의미한다. 일본 첨단기업들은 80년대 기술의 스승인 미국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했다.컴퓨터계의 거인 IBM까지도 일본전기(NEC)·히타치·도시바·후지쓰등 일본 첨단기업들의 도전으로 경영위기를 맞았다.세계의 거리에는 도요타·닛산·혼다등 일본자동차가 질주하고 있다.소니가 미국의 혼이라고 하는 콜롬비아영화사를 구입하고 미쓰비시가 록펠러빌딩을 사들인 것을 비롯,일본기업들은 엔고를 활용,「세계의 부동산」을 사들였다.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기술의 광인」들도 세계 일류를지향하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데 땀을 흘려왔다.일본은 더욱이 미국의 「정보 슈퍼하이웨이」 구상에 대응,정보분야 투자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신화는 통계지표(93년)로 더욱 분명해진다.무역흑자 1천4백억달러,해외순자산 7천억달러,1인당 국내총생산(GDP)3만3천7백64달러,외환보유고 9백90억달러,차관공여 2천4백10억달러,그 앞에는 모두 세계 최고라는 접두어가 붙는다.일본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경제의 거의 15%를 차지하고 있다.일본의 93년 GDP는 4조2천75억달러로 미국(6조2천8백억달러)에 이어 세계 2위다.1950년 일본의 GNP는 미국의 20분의 1에 지나지않았었다.그러나 지금은 거의 3분의 2수준이며 2000년대는 미국과 비슷해질 전망이다. 「강대국의 흥망」으로 유명한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는 그의 새로운 저서 「21세기 준비」에서 「일본은 기술에 의해 주도될 미래 변화에 가장 준비가 잘돼 있는 나라」라고 지적했다.미래학자들은 바다를 중심으로 볼때 과거의 지중해 시대에서 현재의 대서양시대를 지나 앞으로는 태평양시대가될 것으로 전망하며 일본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국가권력문제의 권위자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과거 4반세기에 걸쳐 세계경제에서의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본의 몫이 두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얼마전까지만해도 국제질서와 세계경제 게임룰을 만들었다.그러나 지금은 세계 제일의 무역적자국과 채무국이 되며 국가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일본에서 빌려오지않으면 안되는 처지로 전락했다.미국만이 국제룰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으며 일본도 경제게임룰을 만드는 강대국이 됐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앞으로의 세계는 국경없는 세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냉전의 이데올로기 전쟁시대가 끝나고 국경없는 경제전쟁시대가 도래하며 일본이 쌓은 부의 축적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발족에 따른 자유무역의 확대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볼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보고서는 예측한다.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일본이 경제대국으로만 안주하지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사실이다.경제력에 걸맞는 정치·군사적 영향력도 행사하겠다는 것이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이다. 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우리는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는가.우리는 일본의 실체를 감정적 판단으로 덮는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일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기에 지나지 않는다.일본은 역사속에 존재하며 강대국이 되어 다가오고 있다.일본의 그러한 변화를 바로 보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광복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뜻깊게 하는 참다운 역사인식일 것이다.
  • 장군진급 앞둔 40대 대령/노처녀 여장교와 결혼식(조약돌)

    ○…28일 국방부 영내 육군회관에서 40대 후반의 노총각 장군진급예정자와 30대 후반의 노처녀 장교가 결혼식을 올려 군에서 화제. 내년 7월1일부로 준장진급하는 한미연합사 연합정보운영실장 한철용대령(48·육사26기)과 여군대대장 추순삼중령(38)은 이날 낮 12시30분쯤 이필섭전합참의장의 주례로 백년가약을 맺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창군과 6·25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계급의 총각이었던 한대령과 추중령은 최근 동료의 소개로 만나 마침내 결혼에 성공.
  • 러,체첸공 재공습… 130명 사망/평화회담 제의 거부 대응

    ◎미사일 공격… 지상군 수도외곽 진입 【모스크바·그로즈니 AP AFP 연합】 러시아 전투기들은 28일 체첸공화국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평화회담 제의를 거부한 뒤 체첸공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러시아 전투기들이 이날 상오9시(한국시간 하오3시)쯤 체첸공 수도 그로즈니교외에 미사일을 투하했으며 그로즈니 남부의 우루스 마르탄마을을 공습해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고 전했다. 이번 러시아의 공습재개는 체첸공측이 옐친 대통령의 공격중단 발표후에도 타협이나 항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 대응해 이루어졌다. 모프라디 우두고프 체첸공대변인은 러시아군이 이날 공습과 함께 지상공격을감행해 그로즈니교외로 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군이 공세를 재개했으며 그로즈니중심부에서 10㎞ 떨어진 키로프까지 진출한 뒤 페트로파블로스카야지구로 진출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지난밤 체첸공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무장헬기·전투기 및 야포를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그로즈니의 두곳과다른 마을을 공격해 약 1백3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망자수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했으며 그로즈니의 병원에는 사망자 1명과 부상자 여러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러시아군의 공세로 체첸공화국 군대는 적어도 두 방향에서 시내 중심부에서 5㎞ 떨어진 곳까지 철수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 미,50년대 북·중에 원폭 투하계획/합참본부 한국전 극비문서 공개

    ◎중국의 대북원조 종식시키려 단행 검토 미국이 한국전쟁 직후인 지난 54년 북한과 중국·만주일대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에 관한 극비문서사본이 한 대학 연구소에 의해 공개됐다.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사학과)는 27일 이 연구소 객원교수인 방선주박사(워싱턴 거주)가 지난달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지시로 비밀해제된 한국전 관련 극비문서중 하나인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의 중국 공산당의 침략예측 보고서」(Possible CHICOM Aggression in Koreaand Indochina) 사본을 보내왔다며 이날 전문을 공개했다. 미 합동참모본부가 54년 4월17일 작성한 이 극비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이 종결됐음에도 불구,중국이 북한에 대한 대규모 군사원조등 미국에 대항하는 적대행위를 계속할 경우 만주와 북한내 군사시설물에 대한 원폭투하를 가장 우선적으로 실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 『한반도 일원에서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본토에 대한 대규모 공중폭격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미지상군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재래식무기 및 원자폭탄을 투하,적군을 일시에 섬멸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어 『중국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공산화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중국내 목표물에 대한 신중한 선별폭격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와함께 중국해안과 연안 도서들을 봉쇄하는 한편 중국본토 상륙을 위해 대만의 국민당 군대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계획은 미합참본부 「합동전략계획위원회」(JointStrategic Plans Committee)가 54년 4월16일 내부회의를 거쳐 작성한 것으로 각 예하부대는 이 계획에 따라 필요한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림대 이삼성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은 실제로 54년 5월 베트남 서북부 「디엔비엔푸」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열세에 몰리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월맹군 진지에 원폭을 투하하려 했으나 NATO회원국과 아시아국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바 있다』며 『중국 원폭투하계획도 미아이젠하워 정부의 공산진영에 대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의 일환으로 보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또 『미국은 실제로 지난 58년 한국에 「제4미사일 사령부」(The Fourth US Missile Command)를 설치,이곳에 전술핵무기인 「어네스트 존」을 배치한 바 있다』고 밝히고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50년대 중·후반기 미국의 대한반도 핵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3군사령관 도일규대장/수방사령관 한승의중장

    정부는 24일 육군 3군 사령관에 수방사령관 도일규 중장(육사20기)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정부는 수도방위사령관에는 한승의 국방부 정책기획관(소장·육사22기)을 중장으로 승진시켜 임명했다. ◇도3군사령관 약력=▲서울(54) ▲합참 군사전략과장 ▲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수방사령관 ◇한수방사령관 약력=▲경남 산청(52) ▲미국 인디애나대 응용언어학석사 ▲미 지휘참모대 ▲미 육군대학원 ▲합참의장 보좌관 ▲연합사 작전처장 ▲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 범인 전용철 진술 배씨살해 동기·도피행각

    ◎“매니저 진출 막고 해고시켜 범행”/배씨 납치즉시 살해… 전국 스키장 전전/인출한 돈은 애인과 함께 유흥비 탕진 11일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배병수(36)씨는 결국 살해된 시체로 발견됐다. 무명이었던 탤런트 최진실·엄정화를 발굴한 데 이어 최민수·독고 영재·허준호를 잇달아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스타제조기」 배씨는 왜,무슨 이유로 데리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살해된 것일까. 경찰은 범인 가운데 최진실의 운전사였던 전씨가 평소 배씨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던데다 배씨가 많은 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김씨와 공모해 범행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씨는 92년 8월쯤 배씨를 만나 『연예계 일을 배워 배씨처럼 매니저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고 최진실의 운전사로 일하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아 해고됐다가 지난 10월 다시 복직됐으나 비슷한 이유로 한달여만에 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는 이때 최씨의 신용카드를 훔치는 등 손버릇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주변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김씨 역시 지난 11월부터 한달여동안 배씨밑에서 일을 하며 연예계 입문을 꿈꿨으나 전씨와 마찬가지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수사결과 배씨의 은행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애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유흥비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전농동에서 「배석봉」이라는 이름으로 부기와 회계를 가르치다 돈을 벌어 전국에 학원을 6개나 운영하던 유명강사였다.그런 배씨가 연예인 매니저 세계에 뛰어든 것은 87년 군대동기였던 가수 김학래를 따라 방송국에 드나들면서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배씨는 6년전 당시 무명이었던 최진실양을 만나 『매니저를 봐주겠다』고 제의한 뒤 재력을 바탕으로 「스타 만들기」에 착수,연예계 매니지먼트 사업에 「기업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로비의 귀재」.자기가 관리하는 연기자를 드라마에 출연시키기 위해 대본작가의 집앞에서 몇시간씩을 기다리는 열의를 보였는가 하면 최진실·최민수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에 신인들을 「끼워팔기」식으로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독특한 「출연법」을구사했다. 배씨는 또 PD와 매니저의 관계를 역전시킨 인물로도 유명하며 최근에는 스타의 「몸값」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광고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스타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 배씨는 최진실양과 결별을 선언했고 그뒤 최민수와 엄정화도 「홀로서기」를 결정해 배씨의 활동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이처럼 자신이 공들여 키운 스타들과 결별하게 된 데는 배씨가 전횡에 가까울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영화 및 CF 출연료 등 돈문제로 연기자들과 사사건건 대립해왔던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 김정일에 충성 다짐/북한 군부

    북한은 20일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 3주년(12월24일)을 맞아 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절대충성」을 과시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우리 인민군대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실한 혁명적 무장력」제하의 장문의 논설을 게재,북한군은 ▲김정일을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되려는 충성의 일념으로 싸워나가고 있으며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심단결,「강철의 대오」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러군,체첸수도 포위망 압축/목표물 미사일공격 강화

    ◎대책회의/“단호한 공세… 분리독립 궤멸” 결의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러시아지도자들은 20일 공식성명을 통해 체첸공화국 분리주의자들의 저항을 일소하기 위해 폭격과 미사일공격을 강화하고 「단호한 공세」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타르 타스통신은 공식성명서를 인용,『러시아부대는 체첸공 주요목표물에 대한 미사일공격과 폭탄공격을 계속할 것이며 단호한 공세를 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공식성명서는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주재한 고위급회담이 끝난 뒤 나온 것이다. 성명서는 『러시아병력은 더욱 단호하게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체첸공 병사의 희생은 늘어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체첸군 장갑차 15대와 포 10문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타스통신은 그로즈니에 있는 소식통을 인용,러시아부대는 페트로파블로로브스카야마을 근처의 체첸군 근거지를 포위하고 있으며 시경계에서 10㎞지점에 있는 다리에까지 접근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인테르 팍스통신은 러시아 내무부성명을 인용,『러시아부대는 체첸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으며 전투가 시작된 뒤 내무부소속 병사 4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AFP 로이터 연합】 체첸공화국에 파견된 러시아 공식 대표단은 2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게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대한 러시아 지상군의 공격을 중지토록 하라고 촉구했다. ◎러군 대규모 공격에 파괴된 체첸 표정/35만 그로즈니시민들 대부분 탈출/여성·노인들 「인간사슬」… 러침공 항의/러병사 술취해… 마약주사바늘 발견 ○…러시아군의 공습은 그로즈니의 주민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어 인접공화국이나 시골지역으로 대피토록 하려는게 가장 큰 목표라는 분석이 유력.이같은 분석은 러시아군당국이 표적으로 삼은 목표물들이 대부분 빗맞았지만 35만인구의 그로즈니 시민들 대다수가 벌써 수도를 빠져 나왔다는 사실에서 뒷받침되고 있다. ○…그로즈니 주민들은 군사시설은 물론 주택가와 가스관,송전시설,상수도시설,TV중계탑 등 목표를 가리지 않는 러시아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그로즈니에서는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사상자가 속출하고 주요시설들이 대거 파괴되고 있다며 러시아군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토로.병원관계자들은 대통령궁에서 1㎞ 떨어진 주택가에서 폭격으로 2명이 죽고 8명이 다쳤으며 또 그로즈니시 주택가 미누츠카지구에서 공습으로 2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전언. ○…그로즈니시 중심가에서는 두다예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수백명의 무장병력이 모래부대가 쌓여 있는 대통령궁 앞 「자유의 광장」에 모여 체첸공의 독립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 ○…그로즈니시에서 서쪽으로 나가는 눈덮인 도로에서는 대부분이 여성과 노인인 수백명의 체첸주민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항의로 서로 어깨에 어깨를 걸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시위를 벌이기도 시위여성들은 대부분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흰색 머리띠를 매고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는 플래카드를 흔들고 있었다. ○…체첸공화국접경 잉구세티아공화국의 아우세프 대통령은 19일 러시아군의 체첸난민 총격사건 조사를 지시.아우세프 대통령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러시아 병사들은 술에 취해 있었으며 마약과 관련이 있는 주사바늘도 발견됐다』고 공개.그는 이와 관련,러시아의 니콜라이 예고로프 부총리에게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 ○…체첸공화국에 집결한 러시아군 병력 규모는 2만4천5백명으로 3백대의 장갑차,MI8 무장헬기및 수호이 25,27 전투기로 무장.반면 체첸공화국에서는 2천∼3천명의 정규군과 수천의 자원병이 이에 대항.러시아군 병력중 2만3천명은 3개 공정및 2개 경보병연대,4개 공군부대이고 나머지 1천5백명은 내무부소속 돌격및 폭동진압 특수병력.체첸군은 8백명의 돌격대를 포함,40대의 공격용 탱크와 60대의 무장수송차,두대의 MI8 헬기및 수대의 체코제 L39 훈련기로 무장. ◎러의 체첸공격과 옐친 앞날/소수민족 독립열망 잠재우기 난망/협상 유도용 평가불구 민간희생 커 부담/주변국 확산·내부반발 소지도 불안요인 러시아군을 체첸영토에 투입시킨지 1주일을 넘겼지만 옐친 대통령은 여전히 문제해결의 최종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19일의 대규모 무력공세도 두다예프를 무릎꿇게 만들기에는 부족한 위협용이었다.수도 그로즈니를 무력으로 점령하겠다는 최종결심을 망설이는 것이다.그러기에는 넘어야할 문제와 장애가 너무 많다. 그래서 많은 관측통들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에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니콜라이 예고로프 민족문제담당 부총리를 체첸의 임시통치자로 임명한 것도 실질적 조치라기보다는 두다예프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위협용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전력만으로 보면 러시아군은 그로즈니까지 단숨에 점령하고 두다예프를 몰아낼 수 있다.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체첸은 물론 인근 코카서스지방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잠재우는 근본처방이 되지 못한다는데 옐친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무력점령을 감행하면 대규모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부담도 크다. 체첸영토 대부분이 산악지역이어서 이들이 산악으로 숨어들어가 게릴라식 전법으로 대항할 때 대처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지 불과 5년 밖에 안된 시점이라 러시아 국민들은 이런 장기전에 빠져드는데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무력해결을 감행하면 두다예프의 희망대로 체첸주변에 산재한 코카서스산악민족들의 동조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체첸을 비롯해 잉구세티야,다게스탄,카바르디노­발카리아,카자차예보­체르케시야,아디게야공화국 등 코카서스 산악민족들은 90년초부터 소위 「코카서스민족연맹」을 결성,유대를 다져왔다.이들을 모두 합하면 인구 5백만의 무시못할 집단이다.만약 체첸에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면 이들의 반러시아 유대는 그만큼 더 강화될 것이다.그루지아,아제르바이잔 등 인근 국가들로 불똥이 튈 여지도 배재할 수 없다. 옐친 대통령이 가장 부담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겪게될 정치적 부담이다.이번 군대투입을 계기로 옐친은 지난 89년 이래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민주진영과 거의 결별했다.예고르 가이다르 전총리,샤흐라이 전부총리 등 개혁세력들은 일제히 군대투입을 반대하고 있다.옐친 측근에서 이번 작전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그라쵸프 국방장관,스테파신 방첩부장,빅토르 예린 내무장관 등 보안부서장관들과 코르자코프 경호실장 등 측근의 강경파 보좌관들이다.옐친으로서는 무력을 통한 해결을 시도할 경우 95년 총선과 96년 대통령선거에서 입을 정치적 손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 장교길들이기·총기난사(94년 충격의 365일:5)

    ◎“군기 확립” 재점검 계기로/하극상·탈영… “국민의 군이 어쩌다”/부대운영·교육 혁신적 전환 있어야 「화려하지도 평탄하지도 않은 푸른제복의 길을 나는 소명이라 여기고 기꺼이 택했다.푸른제복을 명예롭게 하기 위하여 촛불의 정신을 익히고…」 지난 10월31일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석우리 육군 ○○기계화사단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지휘하던 중 부하 사병의 어이없는 총기난사로 비명에 간 김수영(30·육사44기)대위가 육사 졸업앨범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놓은 글귀다. 김대위의 부인 최성의(29)씨는 앨범을 펴놓고 남편의 글을 몇번이고 되뇌다 갓 말을 하기 시작한 외아들 방환군(2)이 『아빠,아빠』라고 부르자 아이를 얼싸안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그동안 사는게 지옥이었어요.이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요』 그동안 부대 근처 군인아파트에서 살아온 최씨는 남편이 숨진뒤 집을 비워야 했다.의지할 곳이 없어 이삿짐은 임시로 큰 시숙이 살고 있는 전남 광주에 맡겨놓고 시댁이 있는 장흥과 광주를 오가며 괴로운 나날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최씨는 『청춘을 군을 위해 보내겠다며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남달리 군에 열성이었던 남편이 추서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파 매일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근에는 큰 시숙이 동생의 평소 업적을 모아 호소문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해 각계에 띄우는 등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영내에서 「장교 길들이기」 사건이 일어난 나흘뒤 지난 10월 27일 발생한 사격장 총기난사사건. 이 두 사건을 보고 국민들은 『군기를 목숨보다 소중히 해야하는 군이 왜 이토록 무법천지가 됐으며 기강이 해이해진 군대가 어떻게 국토방위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느냐』며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다. 군기와 관련된 일련의 군부대사고는 구태의연한 부대관리와 교육에 군이 안이하게 대처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때문에 군이 기강을 확립하고 「전대미문의 하극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부대 운영 및 지휘,장교교육,사병교육 방식이 혁신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군수분야 최우수상,장병정신교육 유공상,강재구상 등 남편 김대위가 받은 상이 나란히 걸려있는 방안에서 외아들을 꼭 껴안고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최씨의 모습이 결코 우리 군의 자화상으로 남아서는 안될 것이다.
  • 러,체첸 수도 재폭격 경고/“투항시한 연장안해”/안보회의

    ◎“시민·외국인들 그로즈니 떠나라” 권고/두다예프대통령 회담초청 거부 【모스크바 외신 종합】 체첸공화국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던 러시아는 다시 이날 자정까지(한국시간 18일 새벽7시)무장해제를 하지 않을 경우 그로즈니를 폭격하겠다고 17일 경고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이와함께 그로즈니시내의 외국인들과 시민들에게 즉각 그곳을 떠날 것을 모든 통로를 통해 전달하고 있으며 이같은 경고가 나온뒤 두다예프체첸대통령은 러시아의 회담초청을 거절했다. 니콜라이 예고로프러시아부총리는 이날 하오6시부터(한국시간)체첸공화국내 모즈도크에서 열린 안보회의에 참석한뒤『만일 이날 자정까지 무장해제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체첸측이 취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군대가 포탄과 로케트등을 동원,그로즈니의 전략목표물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것이 강온양면작전에서 나온 제스처인지 혹은 전면 공격에 대비,시민들을 소개시키기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현지의 분위기는 화해분위기에서긴장쪽으로 급선회했다. 이에앞서 니콜라이 예고로프 부총리와 세르게이 스테파신 방첩본부장이 이날 안보회의를 개최한뒤 두다예프대통령에게 이 회담에 초청의사를 전달했으나 이같은 경고를 하면서 두다예프대통령은 그의 초청을 거절했다.
  • 군의 사기진작 시급하다(사설)

    우리 군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그로인해 장교와 하사관의 전역지원율이 부쩍 늘고 있으며 높아야 할 초급장교의 지원율은 오히려 크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사기가 곧 전투력이라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군의 사기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전에도 여러차례 나온 바 있다.그러나 국방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것도 국민들에게 하나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밝히고 그에 대한 대책까지 제시했다.우리는 군의 사기저하 현상에 대해 염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군의 전향적인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군수뇌부에 대해 몇가지 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이처럼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도록 군당국은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 책임을 묻고 싶은 것이다.그동안 하극상이라든가 총기사고등 군기에 관한 사고가 잇따르고 해군함정이 장기복무장교나 하사관의 부족으로 운휴중이라는 얘기가 나온지도 꽤 오래됐다.군의 사기가 떨어져 전력상의 허점까지 드러날 지경이면 군당국은 진작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물론 사기가 떨어진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그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최근들어 군의 위상이 말이 아닌데다 직무상 위험도가 타직종에 비해 높은데도 근무환경이나 보수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이 상호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안보의식의 해이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을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어떻게 해서든 군의 사기를 올려 막강국군의 전력을 회복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먼저 군수뇌부의 부단한 자기혁신과 솔선수범이 있어야겠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군은 개혁과 민주화로 새로운 모습의 국민 군대로 태어난 것만은 틀림없다.그러나 아직도 군수뇌부에 대해서는 보다 진지한 자기혁신을 요구하는 소리가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다음은 군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이다.직업군인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는 한편 그들이 안심하고 장기근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군무를 3D직종으로 기피하는 일이 더이상 있어선 안되겠다. 마지막으로 국방전력의 경제적 운영이다.현재의 노동집약적 군구조를 시급히 예비전력 중심의 기술집약적 군구조로 전환시켜야 한다.21세기의 강군은 소수정예의 과학군 이어야 한다. 군은 그 위상과 사기가 충천할 때 백전백승할 수 있다.군당국은 항구적인 사기진작책을 시급히 마련해 적극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이 군을 신뢰하고 군도 국방임무 완수에 진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체첸,고위급협상 제의/옐친,항복시한 연장·대화 시사

    ◎두다예프,군에 공격중지명령… 평화해결 무드 고조 【그로즈니 로이터 AFP 연합】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공화국 대통령은 15일 러시아에 대해 양국간의 전투를 중지하기 위한 고위급 회담의 즉각적인 개최를 제의하고 이를 위해서는 체첸에 투입된 러시아군이 우선 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측도 이날 체첸공화국의 항복 시한을 48시간 연장하는 한편 조건부 협상의사를 밝혀 체첸사태는 협상에 의한 해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두다예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에 고위급 회담 개최를 제의하기로 각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혔으나 회담이 언제 개시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두다예프 대통령이 직접 체첸공화국측 대표단을 이끌고 협상에 참석하고 체첸측에서 전투를 중지할 경우,러시아도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그로즈니 AP 로이터 연합】 체첸공화국 수도인 그로즈니를 포위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인근지역에 대한 포격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조하르 두다예프 체첸공화국대통령은 16일 체첸공화국군에 대해 전선에서 1㎞ 후퇴하고 러시아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두다예프 대통령실은 이날 발표를 통해 체첸공화국군에 대해 상황을 주시하도록 지시했다며 이같이 밝히고 만일 러시아군이 계속 접근해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 11일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체첸공화국에 군대를 진격시켰으며 그 이후 러시아군과 체첸공화국군간에 몇차례 충돌이 발생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