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대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721
  • 민간단체/지방선거 후보내기 “경쟁”

    ◎환경운동연합·여연등 6∼7곳서 추진/지역 정책결정 참여… 영향력확대 겨냥/공약·홍보책자 등 총력 지원/약사·한의사회선 여론주도 노려 오는 6월 지방자치단체선거를 앞두고 각종 민간단체의 기초및 단체장선거 「후보자내기」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들 단체는 지자제시대를 맞아 지방정치인이 지역정책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판단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강화를 위해 후보자를 대거 출마시키려는 작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각종 단체는 지역사회의 숙원사업해결등 단기공약에서부터 2000년대의 지역청사진을 제시하는 장기적인 정책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회원중 기초의원에 30여명,광역의원에 10여명 등 40여명이 출마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회원 10여명으로 구성된 정책지원팀을 구성,지역별로 환경관련 정책개발을 연구하고 있다.특히 이들은 환경문제가 현안인 지역을 주대상으로 후보자를 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89년 창립된 녹색당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환경정책을 공약으로내건 환경운동가를 후보로 물색하고 있다. 한국농어민후계자연합회도 이번 선거에 나설 전국의 2백50명정도의 농어민출신 후보자를 적극 돕는다는 차원에서 수시로 선거법상 위반사례와 각종정보등을 책자로 만들어 선거전에 활용키로 했다.연합회는 후보자등록이 끝나는 6월12일이후 시·군대책위와 도대책위를 중심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27개의 연합단체로 구성된 여성단체연합도 14명을 지자제선거에 출마시키기로 했으며 지역주민의 요구와 관련해 지역복지를 위해서는 여성이 더욱 적합하다는 캠페인을 전개할 방침이다.특히 「지방정치는 생활정치로부터,생활정치는 여성정치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경실련은 공식적으로 공명선거감시활동에만 치중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이미 사표를 낸 40여 회원의 정책개발제공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경실련은 한국시민단체협의회의 회원단체로 참여,교통·재정·환경등 분야별로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정책공약에 대한 당위성등을 집중홍보할 계획이다.또한 여론주도와 영향력강화를 위해 약사회와 한의사협회도 각각 2백50여명,70여명의 후보자를 내세워 정치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이들은 회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선거지원기구를 별도로 구성하기로 하는등 어느때보다 뜨거운 대결을 보이고 있다.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노회찬 대표(39)는 『풀뿌리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도 다양한 목소리의 후보자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다만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공익을 앞세우는 자세가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재일교포 「반쪽발이」라며 멸시”/귀순 오씨가족 일문일답

    ◎탈북자 늘자 감시·통제 심해져/북 선전에 회의… 아들이 탈출 권유 ­귀순동기는. ▲명선씨=북한에서의 생활은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생활해 온 부모들의 영향도 컸으며 남한방송을 듣고 북한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점을 알았다.북송교포라는 신분도 동기로 작용했다. ­탈출을 언제 결심했나. ▲명선씨=탈출은 지난해 8월쯤으로 군생활하다 만난 친구 철만이에게 더 추워지기 전에 가자고 말했다.그러다 그해 9월5일 함경남도 금야로 출장간다며 철만이를 만나 최종결심했다. ­탈출에 어려움은 없었나. ▲오씨=아들이 함경남도로 출장간다고 집을 비운뒤 한달간 나타나지 않자 안전부 보위부등에서 아들의 행방을 조사했으나 평소 내가 당에 열성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러다 아들이 탈출을 권유해 주저하지 않고 감행했다. ­고향출신인 여만철씨의 탈출소식은 알고 있었나. ▲명선씨=보위부등에서 흘러나와 알았다.고향의 대부분 사람들은 여씨가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문에 잘됐다는 반응이었다.그러나 그후부터 주민을 감시하는 인민반등을 통해 감시가 철저해 졌고 규율도 엄격했다. ­김일성의 사망때 주민들이 정말 슬퍼했나. ▲명선씨=북한에서는 자기감정을 제대로 표현할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속을 알수 없다.개인적으로는 죽었다는 말이 정말인지,거짓인지도 모르겠고 슬픈지 기쁜지도 몰랐다.다만 공장에서는 집단적으로 꽃다발을 준비해 동상앞에 찾아가 시키는대로 엎드려 절한 것으로 안다. ­북한에도 세대차이가 있나. ▲철만씨=큰 차이는 잘 모르겠다.다만 늙은이들은 일제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알고 있어 인생에 대한 회의로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었다. ­탈출 소감은. ▲초미씨=땅에 떨어져도 흙이 묻지 않는다고 거짓선전에 속아 살아온 북한생활은 다시 떠올리기 싫다.탈출한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다. ◎작년 12월29일 새벽 압록강 도착/기다리던 밀항 나타나자 “살았다”/긴장의 탈출 순간 『걸리면 마지막이다』 가난과 굶주림,「반쪽발이(재일교포출신)」라는 멸시속에서 삶을 연명하다 북을 탈출한오수룡씨 가족들은 탈출을 감행하던 순간의 긴장감을 이 한마디로 대신했다. 지난해 12월29일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인 새벽 5시50분쯤 오씨 일가족 5명은 평북 신의주시 압록강변 갈대숲을 숨을 죽이며 헤쳐나갔다. 오씨 아들 명선씨는 큰딸 인화(4)를 업고 둘째 딸 수화(2)를 안은 아버지와 어머니 김초미씨를 인도했다. 명선씨는 이미 3개월전인 9월17일 친구 박철만씨와 함께 압록강을 자동차 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갔다가 부모님을 모시러 3개월여만에 죽음의 땅을 다시 넘었던 것이다. 명선씨는 북의 생활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품어오다 군대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철만씨가 같은해 9월5일 함남에서 장사차 자기 집에 들르자 탈출 결심을 털어놓았다. 철만씨는 명선씨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함남에 있는 부모와 처자식 걱정에 명선씨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하다 다음날 꿈도 희망도 없는 북한땅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명선씨는 함흥으로 출장간다는 핑계를 대고 철만씨와 함께 같은달 17일 어둠을 틈타 내의와 양복·구두를비닐봉투에 넣고 자동차튜브를 이용,압록강을 건너 중국 단동에 이르렀다. 『중국말도 못하는데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을 것을 우려,잠도 자지않고 거닐었지요』 그후 명선씨는 하얼빈·대련등을 전전하다 친절한 조선족 사람을 만나 그 의 도움으로 생활하다 부모님을 자유의 품으로 모셔올 계획을 세웠다고 회상했다. 명선씨는 밀선을 타고 부모님이 계시는 신의주 집에 몰래 숨어들어 『고향으로 가고픈 한을 풀자』면서 부모님과 떠날 시각을 정한뒤 이웃들의 눈을 피해 다른 곳에서 쉬다 부모와 합류,목숨을 건 탈출길에 나선 것이다. 이때 오씨의 가족들은 산책하듯이 집을 나섰다. 막상 명선씨가 가족을 데리고 약속장소에 도착했을때 기다려야 했던 밀선은 보이지 않았다.명선씨는 강으로 뛰어들어 배를 찾았다.10분쯤 지나자 밀선이 나타났다. 『밀선이 우리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군요.그때 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선씨는 방향을 틀어 오던 배를 오해한 것이었다. 명선씨 일행을 태운 배에 지옥의 땅을 뒤로하고 살을 에는듯한 추위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갔다.
  • 한국의 정치­중앙집권과 민주화/개리 레드야드(해외기고)

    최근 한국에서의 지방자치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논란들은 나에게 한국역사에 있어서 일반적인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문제들을 떠오르게 한다.중앙정부가 도지사와 군수를 임명하고 지방세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가하는 현재의 행정체계는 한국의 정치문화와 과거 왕조시대의 제도적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과거에 국가의 왕은 도와 군단위에 대한 독점적인 임명권을 갖고 있었다.지역등급에 따라 존재하던 부사·군수·현감 등 지방행정관은 왕의 대리인으로 지역내 재판권·질서유지·방위·병력충원·부역·토지 등기·토지등급및 징세·교육,심지어는 제사의식 등 모든 것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다.판사이자 장군·행정가·성직자의 역할까지 모두 맡은 것이다. 물론 지방민도 스스로의 힘과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양반은 향안과 향약이라는 제도를 통하여,또 서당에서 선생님 역할을 통해 지역사회내에서 효율적인 지도력을 행사해왔다.이들의 지방문제에 대한 비공식적인 감독과 중재는 종종 중앙정부가 개입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그러나 당시 법은 왕의 법이요,군대는 왕의 군대이고,세금은 왕의 세금이었다.행정관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어떤 면장이나 이장도 파면할 수 있었다.지방의 양반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토지소유권보호를 위해 행정관에 협조했다.심지어는 그들이 종종 지방민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결과 지방사회 보호자로서의 그들의 역할이 축소되었다. 현대에 들어서 군수는 전통적인 행정관보다 더 잘 교육받은 행정전문가다.지방자치단체에 영향을 미치는 법은 보다 합리적이고 제한적이 되었다.불평등한 사회적 신분의 폐지는 지방사회내 긴장과 갈등을 제거시켰고 사법적·군사적 권한도 더이상 지방에 의해 행사되지 않는다.그러나 아직도 군수는 중앙정부내의 조직으로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정치적·행정적 개혁을 위한 조치들이 도나 군단위 행정분야에까지는 확산되지 못한 것 같다.지방민은 아직 자신들의 공공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그 까닭은 무엇일까.먼저 전통의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국가권력이 분산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한국인의 정치의식에 깊이 남아 있다.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고,또 수세기동안 지방에 대한 중앙의 지배가 문제시돼오지 않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방민통제의 도입시도는 과거를 과감히 단절하는 것이 된다.그러한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근대적인 경험이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행정에 높은 가치를 두어왔다는 사실이다.안보위협은 국방에 대한 단합된 통제를 필요로 했고 또 그것은 정치체제유지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경제정책의 국가적 통일성과 경제관련 법과 규제에 있어서의 국가권위,그리고 경제성장에 있어 국가적 이익에 반할지도 모르는 지방의 법과 규제의 제거로 인해 보다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40여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경제가 발전하고 복잡화해 지나친 중앙의 간섭은 성장의 원동력인 시장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정치적으로 많은 개혁조치는 일반적으로 공정한 선거와 중앙정부의 보다 큰 민주화,언론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보다 큰 자유를가져왔다.주민은 자신들의 투표권을 통해 국가의 정치에 중요한 지렛대를 얻었다. 이 민주화운동이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영역으로 향해 퍼지고 있다.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중심은 개인이 스스로의 통치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다.지방과 지역사회에서의 상응한 정치적 발전 없는 국가적 민주화는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조시대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지방주민이다.지방자치단체의 민주화와 더불어 이들 지방민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길을 놓더라도 그들이 어디에 놓을 것인지 말할 것이다.산업발전계획이 수립되더라도 자신들이 선출한 지도자가 그 결정과정에 참여할 것이다.지역적 조건에 적합하지 않은 국가환경관계법률이 자신들의 자치단체에 의해 강화될 수도 있다.경쟁적으로 지방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장기적으로 지방생활의 질이 개선되고 지방경제의 효율성과 나아가 국가경제가 강화될 것이다. 지방의 선거를 치르면서 또는 일단 선출된 후 정치적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이익단체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단체가 없이는 선출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설사 독자적인 힘으로 당선된다 할지라도 일단 업무수행을 해나가는 데 있어 민주적 여론수렴과정에서 필요할 것이다. 이같은 단체들은 정치적 특성을 지니게 될 것이며 성공적인 단체들은 항구적 정치조직으로 변신시킬 능력을 갖게 된다.자신들의 후보가 선출되면 그 조직은 번창하게 될 것이다.많은 민주국가의 국가적 정당들이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다.그러나 그들의 후보가 낙선하거나 통치에 실패하면 그들은 대중으로부터 보다 많은 지지를 받는 조직에 의해 밀려나게 될 것이다.지방선거를 조직하는 것은 정치적인 과정이다.그렇다면 정당이 이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인지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한국사를 배우고 가르쳐본 입장에서 나는 현재 지방자치를 둘러싼 쟁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일면 그것은 분명 여야간의 정치적인 대결이다.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지도해온 정치적 중앙집권주의와 분산되지 않은 국가의정치권력을 둘러싼 논쟁이다. □약력 ▲한국사 전공·컬럼비아대 한국학연구소장 ▲저서:「화란인의 한국상륙」·「14 46년의 한국 언어개혁」등 다수
  • 일 위안부기금 관리/정부내 새기구 설립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전군대위안부에 위로금을 지급하기 위한 민간기금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우호기금」(가칭)을 운영하는 새 기구를 설립하고 실질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30일 보도했다. 당초 정부는 일본 적십자사에 사무국을 설치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적십자사가 난색을 표시함에 따라 타개책으로 기금을 사실상 관리하는 방안을 채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니노 사케타로(곡야작태낭)총리실 외정심의실장은 29일 적십자사의 아오키 유키오(청목행웅)총무국장을 방문해 이같은 구상을 설명했으며 적십자사도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여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민간기금구상이 조기실현될 것으로 신문은 내다봤다.
  • 안병태 해참총장 등 진급·보직신고받아/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29일 상오 청와대에서 해군참모총장및 육군 1·2군사령관으로 승진 임명된 안병태 해군대장과 오영우·조성대 육군대장,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임명된 임대섭 중장으로부터 진급및 보직신고를 받고 격려했다.
  • 데라우치 문고(외언내언)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현지에서 만나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그것이 희귀한 것일수록 접근은 더욱 어렵다. 가령 일본 나라(나양) 천리대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수년전 국내전시가 있기전까지 일본서 이 명품을 배견한 국내전문가는 손꼽을 정도.파리 국립도서관이 갖고 있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심경」이나 신라의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같은 세계적 고서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의 반환은 약탈에 의해서건 합법적인 반출이건간에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미테랑대통령이 반환을 약속했던 강화도 외규장각 고서가 1년 3개월이 넘도록 진전이 안되고 있지 않은가.까다로운 당사국의 국내법과 국민감정,타국에 미칠 영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 파악된 해외유출문화재는 6만4천여점.세계 17개국에 분포돼 있으며 일본이 절반 가까운 약 3만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이 숫자는 확인된 것일 뿐,실제로는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우리는 채 모르고 있는 그 가치를 헤아린 외국인들이 거둬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의 수장품이 한·일 의원연맹의 주선으로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올해 반환될 것이라고 한다.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야마구치(산구)현의 여자대학에 기증된 「데라우치 문고」중 우리의 고서화·고서 등 5백62점이 대상이 되고 있다.그는 총독부임전 1902년부터 임기가 끝나 귀국한 1916년까지 이 문화재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찰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듯 하다.육군대장의 무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재수집 취미였다고 할까.어떻든 데라우치 문고가 꼭 귀환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 중관가 사정한파 몰아친다/당기율위·검찰원서 잇단반부패활동 강화선언

    ◎정부 부처별 「제식구 비리」 단속 부심/공금유용·향응 금지 지침 하달 중국의 각급 정부기관들이 「제식구들」에 대한 집안 단속에 나섰다. 공금 유용과 향응 수수에 대한 엄금.이것이 요사이 중국 관가에 불어닥치고 있는 「제식구」 단속의 내용이다.이전에도 「상부」의 이같은 지시 사항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각 기관별로 세부적인 관련 규정을 제정,공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우리의 재정경제원격인 국가계획위원회와 재정부를 비롯,공안부(경찰) 해관총서(관세청) 국가공상국 등 7개 부서가 관련 규정을 마련,발표했다.국무원산하 다른 중앙부처및 지방정부들도 이를 따를 것이라고 관영 신화통신 등은 전하고 있다. 각 기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직무 행사에 영향을 줄 향응을 엄금한다는 것이 이 규정의 골자다.공금으로 해외여행을 하거나 이것을 식사비용및 유흥비로 전용하는 자에 대해선 강력하게 처벌하겠다는 것도 주요내용에 포함돼 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재정부의 경우 지방관리들이 상경해 접대하는향연에 응해선 안되며 업무관계를 맺고 있는 중앙기관과 군대·국영기업 등의 접대에 대해서도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공상국은 주로 하급기관에서 상급기관을 접대하는 가운데 생기는 비리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공안부는 『개인 자비로 유흥장소에 갈 때 제복을 입을 수 없고 직권을 이용,공짜로(가라오케 등)오락활동을 즐기거나 공금으로 상급기관 관계자와 동료들을 접대하는 행위를 엄금한다』고 소속 직원들의 행실을 단속하고 있다.이를 어기면 비판교육·감봉및 봉급지급 정지 등 경제적 처벌과 법에 의한 처벌 등이 마련됐음은 물론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부서장의 책임을 묻겠다는 고위층 지시가 각 부서의 집안단속 강화의 한 원인이다.또 지난 한햇동안 공금유용액이 1백억달러를 넘는 등 관리들의 작폐가 일반 국민들의 공분을 사는 등 비난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각급 기관의 「제식구 단속」의 이면에는 중국 관가가 사정국면에 돌입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특히 25일 장사경 최고인민검찰원검찰장이 전국검찰기관 기율감독회의에서 검찰직원의 비위 역시 발견되면 엄격히 처벌하겠으며 반부패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은 사정활동 강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위건행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부패및 오직방지를 위해 각종 시책과 처벌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 만취 해군대위 심야 노상강도

    만취한 현역 해군대위가 심야에 길가는 여인을 상대로 강도짓을 하다 붙잡혔다. 22일 하오11시30분쯤 서울 은평구 수색동 국방대학원부근 수색시장앞 도로에서 조영진(29·해사42기)해군대위가 귀가중이던 김모씨(26·여·서울 S여대 대학원생)의 얼굴을 주먹등으로 때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힌 뒤 손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다 경찰에 검거돼 군수사기관에 넘겨졌다.
  • 김 대통령 육사졸업식 치사/요지

    여러분은 광복 50주년이자 분단 50주년이라는 민족사적으로 뜻깊은 해에 조국의 간성으로 나섭니다. 나는 이번 유럽순방과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 참석을 통해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부응해 온 국민이 세계화에 나서고 있습니다.이 시기에 조국의 간성으로 새 출발하는 여러분의 책무는 크고 무겁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그러나 한반도는 아직도 마지막 냉전지대로 남아 있습니다.북한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려는 우리의 진지한 노력을 외면하고 여전히 냉전시대의 대결정책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이 오래전부터 올해를 「통일의 해」로 정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켜 왔다는 사실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그들은 우리 정부에 대해 격렬한 비방을 계속하면서 군사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최근에는 군사훈련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북한이 만약 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을한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응징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우리 군과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어떤 사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물샐 틈없는 안보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국가안보는 모든 것의 기초입니다.우리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와 경제적 번영에는 국가안보의 굳건한 뒷받침이 있었음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우리가 세계로 미래로,나아가 민족의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안보의 숭고한 사명을 짊어진 우리 군은 마땅히 온 국민의 존중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자유와 평등을 구가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오늘의 사회에서도 국가에 대한 책임을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군입니다.여러분은 여러분이 입고 있는 제복에 대해 높은 긍지를 갖기 바랍니다. 우리 군은 지난 2년동안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국민의 군」으로,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민주의 군」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그러나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 군이 세계 최고의 군대가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그것이 「군의 세계화」입니다. 21세기 세계중심국의 하나인 대한민국의 군대로서 나라의 이익을 지키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군대로 발전해야 합니다.그것은 군이 엄정한 군기와 사기로 한 덩어리가 될 때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지금 군은 새로운 안보환경에 부응할 수 있는 필승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인력과 제도,장비와 기술등 모든 면에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나는 우리 군을 정예강군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지휘관의 길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지만 긍지와 명예로 빛나는 길입니다.어떤 어려움속에서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그것이 참다운 군인정신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4년동안 지·인·용의 교훈 아래 훌륭한 장교로서의 자질을 갖추었습니다.여러분은 선배들이 몸바쳐 나라를 지킨 「필승육군」의 전통을 계승하여 통일된 「21세기 일류국가」신한국의 국방주역으로서 큰 포부를 키워 나가기 바랍니다.
  • 미 함정 중 방문 재개/89년후 처음/벙커힐호 청도 기항

    【청도 로이터 연합】 미국 해군함정 벙커힐호가 22일 중국 산동성의 청도항에 기항함으로써 미함정으로서는 지난 89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버나드 스미스 해군소장은 이날 양국 군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문은 친선방문』이라고 밝혔다. 가공할 해상의 대공망으로 불리는 벙커힐호는 중국 구축함 카이펭 109호의 인도를 받아 청도항의 해군기지로 들어왔다. 벙커힐호가 청도항으로 들어올 때 정복차림의 중국 수병들이 프리깃함 단동545호와 잠수함 창첸359호 갑판에 도열해서 지난 89년 이후 처음으로 청도항을 방문하는 벙커힐호를 환영했다.
  • “북 핵합의 어기면 응징”/정전협정 무력화 기도·전력증강 주시

    ◎김 대통령,육사졸업식서 경고 김영삼 대통령은 22일 『북한이 만약 핵합의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시대에 역행하는 선택을 한다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응징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 육군사관학교 제51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나는 분명히 말한다』면서 이같이 경고하고 『우리군과 정부는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어떤 사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물샐 틈 없는 안보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은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려는 우리의 진지한 노력을 외면하고 여전히 냉전시대의 대결정책에 매달려 있다』고 전제,『특히 북한이 오래전부터 올해를 「통일의 해」로 정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켜왔다는 사실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 정부에 대한 격렬한 비방을 계속하면서 군사정전협정을 무력화 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최근에는 군사훈련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우리가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 민족의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우리에게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 군이 세계최고의 군대가 되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항모 여수병 14명 집단임신

    ◎함상생활 5개월만에… 섹스장면 비디오 촬영도 미 항공모함에 승선중인 남녀수병이 섹스를 가지면서 이를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 동료들에게 보이다가 처벌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군대내에서의 성차별 철폐를 강조해 온 클린턴행정부가 전투함에도 여수병을 승선토록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섹스사건이어서 군율이 엄격해야 할 전투함정에서의 남녀 풍기문란문제가 크게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9일 워싱턴 포스트지가 보도한 미해군 대서양사령부 대변인의 발표에 따르면 전투전함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수병을 승선시킨 미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의 20대초반의 남녀수병은 항모의 외진 곳에서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이들 수병은 지난주 항모에서 열린 비공식 청문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시인했는데 이 남자는 섹스현장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자동촬영한 뒤 그 녹화테이프를 동료수병들에게 틀어보였다는 것이다. 이들 남녀는 각각 45일간의 행동반경 제한조치와 다시 45일간의 특별근무를 하도록 처벌받았으며 특히 남수병은 계급강등과 8백50달러의 벌금형도 과징되었다. 아이젠하워호는 작년 10월20일 현재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항을 출발한이래 지난 5개월동안 14명의 여수병이 임신중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해군당국은 이들이 승선중에 임신을 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 오늘 8개지역 시·군통합 주민투표/평택시·군등 전국18개 시군대상

    ◎찬성땐 6월 통합시 출범 내무부는 경기도 평택시·군및 송탄시를 비롯한 전국 8개 지역에서 추진해온 행정구역개편에 대한 주민의견조사가 21일 일제히 실시된다고 20일 밝혔다. 내무부는 그러나 행정구역개편 추진대상 19개 시·군 가운데 지난해 의견조사에서 9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률을 보였던 충남 천안시에서는 의견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의견조사에서 해당 지역주민들이 통합에 찬성할 경우 시·군통합이 사실상 확정돼 해당 시·군및 도의회의 의견 수렴과 관련법률안 개정을 거쳐 6월부터 통합시로 새출발한다. 이번 주민의견조사는 지역에 따라 ▲의견조사서를 우편물로 회수,개표(강원·전북·경남) ▲21일 마련된 의견 조사소에서 기표(충남·전남) ▲의견 조사서를 현장 배포,회수하는(경기)방식등으로 시행된다. 경남은 21일 상오 9시부터 김해시·군과 삼천포시·사천군등 두지역의 조사결과에 대한 개표에 들어가지만 나머지는 하오 7시부터 개표에 착수키로 했다.
  • 중,대만과 적대종식 희망/홍콩지 보도… 양안병력 철수조건

    【홍콩 연합】 중국은 대만과 지난 40여년간에 걸친 첨예한 적대상태를 종결시키기 위해 양측 ▲군대철수 ▲무력 불사용 등을 포함하는 「적대상태 종식 합의서」에 서명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홍콩 연합보가 20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중국은 이 합의서에서 중국군대가 복건성을 포함한 대륙의 동남부 연안에서 철수하고 대만군대가 최전선인 김문도와 마조도에서 철수하는 조건들과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불사용 조건들을 명확하게 규정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 해방후 식량·농지문제(새로쓰는 한국현대사:11)

    ◎남북 모두 흉년… 귀환동포 늘어 식량난 심각/소,살 북송 않으면 대남 전력중단 위협/미군정 쌀시장 자유화… 가격뛰자 폐지/미,일인소유토지 환수… 소작농 선발나서 인구는 때로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다시 말하면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을 의미한다.광복 이듬해 19 46년의 남한인구는 1천9백36만8천2백70명.이는 해방직전에 비해 자그마치 2백80만3천8백53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북한으로부터 남하한 인구에 일본이나 북지에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 합세했으니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그래서 호구지책의 민생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해방원년 19 45년은 그런대로 풍년이 들어 쌀 1천2백83만5천섬을 수확했다.그 다음해인 46년에는 장마가 져서 흉년이 드는 통에 1천2백5만섬을 수확하는 것으로 그쳤다.오늘날 3천4백만섬을 해마다 웃도는 쌀 생산량에 비하면 분명히 격세지감이 있다.농촌의 쌀 과소비 탓도 있었지만 하여튼 해방이후 군정하에서 식량사정은 매우 심각했다.쌀 산지로 유명한 경기도에서도 45년 한해에 15만4천섬이 모자랄 정도였다. ○경기서만 15만섬 부족 우리 민족의 생활에서 쌀은 대단한 존재다.쌀농사 문화권(미작문화권)에서 쌀은 주식이려니와 재화의 척도가 되었다.그럼에도 1945년 미군정은 쌀의 중요성을 그리 깊이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군정은 10월11일 쌀을 시장기능에 맡기는 쌀 시장 자유화 시책을 시행했던 것이다.여기에는 물론 미국적 사고의 자유시장 경제원칙이 적용되었다.또 일제의 수탈로 위축된 농촌경제에 활로를 열어준다는 의도도 가미되었을 것이다. 미군정이 쌀 자유시장 시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2주일이 걸렸다.그래서 군정은 한국경제를 위해 언제라도 식량을 통제하겠다고 선포했다.자유시장이 개설되고 나서 쌀 값은 해방전 암시세인 1말 1백50원선을 웃돌았다.도시민들은 자유시장 기능 정지와 배급제 실시를 연일 외쳤다.미군정은 다음해 1946년 2월 자유시장 폐지와 아울러 긴급법령으로 전년도에 생산한 쌀 수집령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하지장군의 경제고문 A C 번스는 쌀 자유시장 채택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그는 기자회견에서 『내 생각으로는 작년에 도입한 쌀 자유시장을 큰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본다』고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나섰다(서울신문 1946년9월4일자).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수집령을 내린 1946년 2월은 수확기로부터 3∼4개월이 지난 뒤였다.마침 2월2일은 마음놓고 선호할 수 있는 해방후 첫 구정이어서 농촌 쌀 소비량은 절정을 이루었다. 군정이 전국에서 수집한 쌀은 68만3천섬에 불과했다.서울시민 1백20만명에게 하루 1홉꼴씩 일곱달 반을 배급할 양을 겨우 수집한 것이다.이에앞서 1월25일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에서 소련은 지체없이 북한에 쌀을 보내지 않으면 전력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해왔다.그러나 미국산 잡곡으로 간신히 배급제를 유지하는 남한 실정으로는 어려웠다.북한은 8만㎾가 넘게 송전하던 전력을 4월부터 최하 3만2천㎾로 실제 내려버렸다. 한반도의 민생경제가 몹시 궁핍했다는 사실은 미소공위 예비회담에서도 보여주었다.최종 확정한 15개 항목 의제가운데 민생 경제관련 분야가 6개항목을 차지했다.쌀과 전력을 포함한 원자재,연료,화공품 교역과 철도차량 운송문제 등이 그것이다. ○미,쌀 수집령 긴급공포 철도는 북한에 미군보다 먼저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1945년 8월27일 자정을 기점으로 이미 끊긴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물자교환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남한에서는 농사짓는데 쓸 비료가 당장 필요했다.그러나 비료와 같은 중화학공업은 당시 북한에 있었다. 1946년 2월5일 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이 급히 막을 내린 이유의 하나도 쌀이다.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다른 어떤 사안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소련대표 스티코프 대장은 쌀 공급요청을 되풀이하면서 더이상 토론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일방적 폐회 결론을 내렸다(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군사령관에 보낸 전문·1946년2월5일).미소공위 예비회담에서 노린 소련쪽의 주목적은 쌀이었다.소련은 북한에 쌀만 준다면 남한에서 아주 필요한 전력,석탄,비료를 보내줄 수 있다고 매달렸다(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군사령관에 보낸 전문·1946년2월7일). 미군정은 일본인 소유재산,특히 농지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23만1천3백㏊에 달했는데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우선 법령을 만들어 1945년 9월25일부로 일본인 재산 모두를 확보했다.이어 미군정은 이상한 현상들을 발견한다.그 하나가 해군대위로 전남도 미군정에 참여한 바 있는 E G 미드(전 버지니아대 교수·90년 작고)의 저서 「주한미군정 연구」에 나온다.「내가 전남에 도착했을 때 마침 수확기였는데 아무도 일본인 논의 벼를 거두어들이지 않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일본인 소유농지를 법적으로 귀속시킨 미군정은 1945년 11월 신한공사(신한공사·New Koean Co.)를 서둘러 만들었다.과거 일본의 농촌수탈 법인격인 동양척식회사 보유 농지는 물론 다른 개인소유 토지를 인계받은 신한공사는 농사를 지을 소작농을 선발했다.미군정의 농지정책은 소련과 소련의 조종을 받는 좌익세력의 비난이 늘상 따라다녔다.왜냐하면 북한은 명목상 임시인민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19 46년 초반기에 토지개혁을 끝내고 이를 선전자료로 삼았기 때문이다. ○여론도 토지개혁 반대 미군정도 토지개혁을 그냥덮어둔 것은 아니다.하지장군은 일본인의 재산,그중에서도 농지처리문제 결정을 워싱턴에 요청했다.국무부는 이를 지지하면서도 정작 행정지침은 내려보내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결국 사문화한 1946년 2월 미군정의 농지령 역시 농지개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15년동안 농지를 점유한 농민에게 자작을 허용하고 대신 일정액의 현물지대를 내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령은 군정기간 내내 빛을 못보았다. 미국의 입장은 새로 태어날 한국정부에게 농지개혁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실제 군정이 1946년 3∼6월 사이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분의2 이상이 장래의 한국정부가 담당하길 희망했다.이 조사에서 서울에서는 응답자의 89%,농촌에서는 68%가 북한의 토지개혁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와 비슷한 입법여부를 물어본 결과 서울의 73%,농촌의 56%가 반대했다는 것이다(미외교문서시리즈·1946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이 소련군 명령에 의해 거의 몰수성격을 띠고 19 46년 1월부터 강력히 진행되었다(별도기사 참조).김일성은 그해 4월10일 「토지사업을 결산하는 보고서」에서 『북조선 경제생활 향상을 위해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자찬했다.그러나 북한은 지금 혹독한 식량란을 겪고있다. 역사의 존재가치는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존중되느냐에 있다고 한다.그럼에도 역사를 무시한 북한의 고립주의적 주체철학은 「다 함께 침몰하는 운동」을 가속화시켰는지도 모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미( 〃 〃) ▲김경운(조사부 〃) ◎「꼭두각시」 북정관 연구에 큰가지/서울신문 입수 미 노획문서를 보고/토지·농업 등 정책 배경 드러나/당시 행정 소군 사령부서 명령 서울신문이 입수한 미국의 노획문서는 해방 이후 북한 실정을 연구하는데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특히 이 문서와 같이 북한의 각급 행정당국 간에 내부적으로 전달된 문건일 경우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간 혹은 발표한 자료에 포함되지 않는다.그래서 구체적인 정책 입안과정이나 배경등이 파악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들문서 2건은 1945년 12월과 1946년 1월 초에 생산된 문서로서,모든 농업및 토지 문제에 관련된 자료이다.모두 『북조선 주둔 소련군 사령부의 명령』에 의해 작성되었음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1945년 12월 문서의 경우 『북조선 농림국은 소련군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임시조치 시정요강을 좌와 여히(왼쪽과 같이) 포고함』이라고 명기했다.이로 보아 이 당시 북한의 행정은 명백히 소련군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마치 자치정부인양 선전되었던 임시인민위원회가 실제로는 소련군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하부기관에 불과했던 것이다. 1946년 1월의 문서는 제목 자체가 소련군사령관의 명령서이기 때문에 「북조선주둔 소련군 사령관 치스차코프」와 「참모부장 벤코프스키」의 이름으로 발령된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1945년 12월의 문서는 「북조선 농림국장 이순근」의 이름으로 포고되었는데 이는 외형적으로 당시 북한의 각종 정책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정부기구에 의해 자율적으로 제정 집행된 것처럼 보이게 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된다. 농림국 문서 내용 중에 각별히 눈에 띄는 것은 1945년 12월 이전에 이미 전일본인 소유 재산과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의 재산을 몰수하여 인민위원회 혹은 농민단체에서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이 문서에는 조선인 지주들이 「건국성납」이란 명목으로 토지등을 내놓았다는 증거가 들어 있다. 1945년 12월에 『전도농호등록을 행하고 매년도 말까지 그 이동을 보고』토록 한 뒤 46년 1월부터는 북조선주둔 소련군사령관이 전농호를 조사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여기에는 각종 토지사용자들(농민·소작농·지주·사원 소유지 기타)과 일체 국유지,이전 일본인 소유지들이 세밀하게 포함되었다.토지면적조사는 46년 2월15일 이전까지 끝내도록 지시하였다. 어떻든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토지개혁 준비에 필수적인 과정이다.그래서 북한의 토지개혁이 1946년 3월에 시작하여 한달만에 완료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도 이처럼 1945년 말부터 그 준비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미군 즉각 대응력 결함없다”/로렌스 커브(해외논단)

    ◎화력·훈련 최고수준… 예산증액 구실 안돼야 미군의 즉각대응력에 결함이 있으며,이를 끌어올리려면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군부와 공화당 의원들의 주장에 브루킹즈연구소의 로렌스 코브 선임연구원은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다음은 그가 최근 뉴욕 타임즈 메거진에 기고한 글의 요약이다. 공화당 사람들이 하는 말과 군대 나팔소리를 듣노라면 미합중국군대가 속빈강정이란 말을 들을 만큼 사기가 떨어진,그래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선거운동 이슈로까지 제공했던 지난 70년대를 연상케 한다.현시대의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된 이라크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경험한지 단4년만에 이처럼 군대가 부적절한 훈련과 예비부품부족,엉망인 사기등으로 허덕이게 됐다는 것이 가당한 말인가. 오늘날 미합중국은 바로 다음 순위의 경쟁국가에 비해 군사비를 6배이상 지출하며 다른 모든 나라에서 들이는 양을 합친 것 만큼의 안보비용을 쓰고 있다.베를린장벽 붕괴이후 국방력은 25%가 줄었고 신무기를 위한 예산은 50%가 감소했다.반면 즉응력을 위한 비용은 단지 10%만이 줄어들었다.지난해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국방비는 3%가 줄어든데 비해 즉응력 예산은 50억달러가 늘었다.국방부는 지금 레이건·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으며(개인당 연 6만달러정도)카터 시절보다 무려 50%를 더 들이고 있다. 그리고 신병들의 질은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1980년 68%이던 고졸이상 학력자가 지금은 96%)병영을 이탈하려는 군인들이 거의 없어서 생겨난 잉여인력이 제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정치인들과 장군들은 즉응력에 결함이 있다고 암울하게 보는 것일까. 즉응력이란 것이 파악하기 어렵고 아주 잘못 이해되는 개념이란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즉응력은 군사 능력이나 준비상태와 같은 말로 간주된다.그러나 즉응력이란 준비상태가 갖는 네가지 요소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다.제대로 된 즉응력이란 화력의 구성(전함·항공기·탱크의 숫자등),현대화(무기들의 제작연도),그리고 유지성(군장비를 사용가능상태로 유지하는것)의 세측면에서 살펴봐야한다. 나는 또 부대단위의 즉응력이란 다음 네가지의 범주가 최소의 수준으로 유지된 상태에서 갖춰진다는 것을 알았다.즉 병력,장비,공급가능한 보급품,장비의 준비상태와 훈련이 그것이다.현대화무기를 갖췄더라도 훈련시간이 적다면 즉응력을 갖췄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즉응력이란 정치적으로 자주 이슈로 등장하고 끊임없이 조작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군 지도자들은 즉응력이 갖는 공포감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빠르다.나는 즉응력을 측정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정교한 과학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됐다. 각군은 즉응력을 서로 다르게 정의 하고 즉응력에서 서로 다른 수준을 보여주면서도 비슷한 조직이면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공군은 조종사가 적절한 임전태세를 갖추려면 한달에 20시간의 비행시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해군과 해병대는 최소 24시간이 필요하고 국립방공대는 10시간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소련의 위협이 컸던 시절인데도 70년대의 군사비는 매우 적었다.게다가 국방부의 민간·군지도자들은 비행시간과 부품확보에는 비용을 들이면서도 스텔스전투기나 크루즈미사일등 첨단무기개발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최근 즉응력을 위한 비용이 20%가 증가했고 개인당 1만달러가 쓰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참의장에 따르면 해군전함을 제외한 84년도까지의 모든 군대의 즉응력은 떨어졌다.레이건의 군비증강에 따라 즉응력은 80년대 중반부터 높아져갔다.걸프전때 미군의 임무수행은 얼마나 적절하고 잘 준비가 됐었는지 보여준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즉위」하면서 즉응력은 다시한번 도마위에 올려졌다.지난해 12월 힘이 약화된 클린턴은 2백50억달러의 추가비용을 즉응력에 충당키로 약속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즉응력 결함이란 문제는 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국방성 사람들이 냉전시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국방비를 유지하기 위해 형태만 바뀐채 정치적 문제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에 따르면 군대는 동시에 두군데에서 전투를 수행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한곳은 이라크,다른 한곳은 북한이다.국방부와 많은 공화당원은 군대가 돈도 없고 이 임무를 수행할 화력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합참 수뇌들은 간단히 군조직을 조종한다.세개의 육군 군단 가운데 두개 군단은 즉응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체되고 있다.다른 군대들은 실전에 들어간 상태란 이유로 일상적인 훈련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군대이다.그러나 그 군대는 민간인 수뇌부들이 잘못 조종하고 있다.민간인 지도자들은 공화당원들이나 혹은 군참모들과 충돌하는 모험을 꺼린다.결과적으로 「비정치적인」 제독과 장군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에 대처한다며 즉응력의 결함을 귀중한 달러를 잡아채 가는데 이용하면서 우리를 빈털터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장정연 주한중국대사 인터뷰/중「9차 5년계획」한국기업 진출의 호기

    ◎전인대 향방과 한·중의 내일을 듣는다/내년부터 철도·항만 등 대형사업 발주/강택민 중심 3대지도체제 이미 구축/대만 이 총통 「적당한 신분」으로 북경오면 환영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옹의 건강과 등옹 이후 중국 변화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북경에서는 지난 5일부터 보름 일정으로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3차회의가 열리고 있다.이번 전인대를 통해 중국의 권력체제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세계는 지금 중국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장정연 주한중국대사는 그러나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권력체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중국의 권력체계는 강택민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를 핵심으로 하는 제3대 지도체제로 이미 이양됐다』고 강조했다.장대사는 등옹의 건강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외교부가 늘 얘기하듯 『건강하다』고 밝히고 『근거없는 추측을 믿지말고 외교부 발표를 믿어달라』고 말했다.그는 또 『등소평 선생의 개혁·개방정책은 국민생활을 향상시켰으며 국민들의 환영 속에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인대에선 중국의 국방비를 무려 20%이상 증액할 것으로 밝혀져 일본 등 주변국들을 자극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있는데…. ▲군사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중요한 원인은 군대에서 운영하던 군수공장의 민수화로 인한 군대의 수입감소와 높은 물가상승 때문이다.중국군의 군사비는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보다도 적다. ­「양안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란 보도가 그치질 않고 있는데 그 가능성은? ○정상회담 환영 ▲대만 지도자 이등휘 선생이 「총통이 아닌 적당한 신분」으로 오면 언제나 환영할 것이다.강택민 주석도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서 어떠한 문제도 협상할 수 있다.그러나 회담은 대륙이나 대만에서 열려야지 제3국은 안된다.통일은 국내문제이기 때문이다. ­수교 이후 한중관계는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가. ▲중국과 한국 두나라는 양국의 공동노력으로 정치·경제·과학·기술·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대단히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그 배경은 두 나라가 지역적으로 가깝고 옛부터 많은 교류가 있어 역사·문화전통의 공통점이 많으며 경제면에서 상호 보완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에서 양국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양국이 공동이익과 목표를 갖고 공동의 발전을 이룩하면 동아시아뿐만아니라 아시아 전체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협력관계는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요. ○산업협력 순조 ▲양국은 지난해 6월 산업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항공기·자동차·고화질TV·전자교환기·원자력발전 등 5개 분야에서의 공동협력 등 여러가지 산업협력을 추진하고 있다.산업협력은 대단히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으며 자동차분야는 이미 중국에서 시작됐다.항공기의 공동 연구·개발·판매 추진과 원전분야에서의 대대적인 협력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2천여건의 프로젝트에 15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활발하다.그러나 전체적인 외국인 기업 진출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외국인 투자는 20만건에 6백억달러를 넘었다.이붕 총리가 5일 전인대에서 밝혔듯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계속되며 많은 외국기업들이 앞다투어 중국진출을 강화하고 있다.한국기업도 중국진출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기 바란다.한국기업들은 산동성 등 몇군데 지역에 집중투자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나 광활한 대륙의 여러 지역으로 진출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노동집약적 분야도 중요하지만 기술집약적 분야 진출로도 눈을 돌렸으며 좋겠다.내년부터 시작되는 9차 5개년 계획에는 에너지·철도·항만·발전 등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예상되는데 이러한 분야진출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심양의 한국총영사관은 중국이 설치허가를 주저한다는데…. ○업무수행 충실 ▲한국은 상해와 청도에,중국은 부산에 각각 총영사관을 설치하고 있다.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우선은 이들 총영사관의 충실한 업무수행이 필요하다.심양 총영사관 허가는 양국 외무부가 더 협의해 결정할 문제이다. ­오랜 북한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남북한간 가장 큰 문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쌓인 불신이 너무 깊다는 느낌이다.쌍방의 불신해소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본다. ­강주석의 한국방문은? ▲올 하반기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크로아­보스니아 군사동맹/정·군대표 협정 체결

    ◎대세계 전면전 격화 우려 【자그레브·사라예보·런던 AP 로이터 연합】 크로아티아는 6일 세르비아계와 내전중인 인접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계 및 회교도와 군사동맹을 체결,조만간 양국 정부군과 세르비아계와의 무력충돌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크로아티아 국영 TV는 이날 크로이타아와 보스니아 크로아티아계및 회교도들의 정치·군사 대표들이 회담을 가진 후 합동사령부를 창설키로 하는 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합동군사령관은 크로아티아 정부군사령관 양코 보베트코 장군이 맡기로 결정됐다. 이번 협정은 크로아티아가 세르비아계와 회교도간의 교전이 끊이지 않는 보스니아 내전에 자동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협정은 보스니아 내전을 더욱 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 키신저 「냉전이후 시대」연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러시아 실체 인정… 우호관계 유지해야/“미·유럽,세계현안에 공동대응을”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국무장관은 3일(한국시간) 닉슨센터가 주최한 외교정책회의에서 「미국의 외교정책과 냉전이후 시대」라는 제목의 오찬연설을 했다.다음은 연설내용의 요약이다. 미국 외교정책의 논쟁은 서로 모순되는 2개의 명제를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미국 외교의 첫번째 명제는 국익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그 반대 견해는 국제주의적 외교 정책론이다. 미국 지식인의 대부분은 국익우선 외교정책론 주장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왜냐하면 그들은 국익을 미국의 이기적인 것으로 해석,객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들은 국익은 다른 사회와 보편적 정당성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포용하지 않으면 안되며 국제적 컨센서스를 구축하는 일이 미국 역할의 한 부분이라고 믿을지 모른다.그러나 국제주의자들의 견해도 사실은 고립주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그들은 냉전시대 미국의 역할은 지나치게 주제넘을 정도로 과도했으며 일부는 「잠재적 악」으로까지 생각했다. 국제주의자들은 미국의 힘을 국제적 제도를 통해 발휘하고 미국 스스로는 자제하기를 원한다.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이 국제적 합의로부터 유래될 수는 없다.미국은 자신의 독특한 목적을 개발한 후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독일의 통일로 프랑스의 정치적 우위와 독일의 경제적 우위가 교환됐다는 등의 과거 많은 가정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그러한 유럽에는 국가적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그러나 유럽통합의 여지도 있다.물론 유럽통합에는 유럽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그러한 문제의 논의는 사실 의도적으로 피해왔다.그 이유의 일부는 냉전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전통적인 감각으로 동맹관계의 필요성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그들은 집단안보를 선호하고 있으며 여러부분으로 나누어지기 보다는 하나의 단순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동맹관계에는 단위와 지휘시스템및 특별한 의무가 주어진다.집단안보는 사례에 따라 협상을 하여야 하는 법적 개념이다.사람들은 두개를 동시에 할 수는 없으며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우리는 유럽이 어디서 시작되는 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안되며 러시아의 실체를 인정하여야 한다.러시아는 4백년 이상된 강대국이다. 러시아의 4백년 외교는 그들 특유의 기질을 시사하고 있다.유럽·중동·아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는 그 규모와 지리적 관점에서 유럽국가가 아니다.러시아에는 많은 유럽전통이 있으나 잘 보존되지 않고 있다.닉슨 대통령시절 우리는 러시아와의 데탕트 정책에서 너무 관대하다는 비난을 받았다.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러시아를 하나의 강대국으로 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존경한다.그러나 그의 생존은 그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는 아니다.미국의 문제는 러시아가 국경선안에 머물도록 격려하는 일이다.미국의 역할은 러시아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고 균형을 유지하며 인간의 진화를 촉진하는 일이다.나는 닉슨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러시아에 대한 경제지원을 지지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유럽안정의 열쇠라는 사실을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우리는 또 옛소련내 공화국들 및 중앙아시아와 많은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그 공통의 목표는 특히 이슬람의 부활과 관련,그들이 독립국가로 인정되고 그 곳에 러시아 군대가 진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그러한 상황은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 있어서 지금 가장 어려운 과제는 아시아 문제이다.그 이유는 오늘의 아시아 상황이 19세기 고전적인 유럽상황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아시아에는 스스로 서로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정책이 서로 다른 주요 국가들이 존재하고 유럽과 같은 공동체 의식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지금 아시아국가들간의 관계보다 더 좋은 관계를 아시아 국가들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입장에 있다. 미국은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시아 외교의 어려운 점이다.미국의 아시아 외교가 어렵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종류의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아시아와의 관계,한국과의 관계를 그러한 분석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세계에는 기술과 경제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그러나 인간의 의식변화는 그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컴퓨터를 조작하는 일부 기술자들은 우리의 세계를 정치적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그래서 우리들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는 인간이 창조한 기계를 통제하는 일이다. 세계는 하나의 무역시스템으로 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그러나 나는 일련의 지역적 무역시스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미국은 이 때문에 유사성과 역사·자유시장원리를 공유하는 서반구 국가들과 그룹을 만드는 것이 국가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미국과 유럽은 가능성과 좌절에 대해 공동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난민이 발생하고 테러리즘이 세계적 이슈가 되고 결정적인 이익이 위협받을 때 미국과 유럽의 공동대응이 필요하다.
  • “일본은 과거 반성… 침략부터 인정하라”/한스 야콥센(해외논단)

    ◎독은 유태인학살 진상 밝혀 재발 방지 노력/일선 남경만행 은폐… 죄악 다시 저지를 수도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한스 야콥센 본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도쿄신문에 실린 기고문에서 독일과 일본은 자국의 역사적 사실을 좋은 부분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다음은 야콥센 교수의 기고문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은 20세기 최초의 대규모 민족살육전쟁이었던 1차대전이 끝난지(1918년)불과 21년만이었다.그 전쟁중 인류가 당한 재앙은 죽음과 파괴,폭력,테러뿐만이 아니었다.수백만명의 사람들은 전재산을 잃고 고향에서 추방당했으며 심한 박해를 받았다. 전쟁의 무대가 됐던 곳은 어느 나라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 전쟁에 대한 책임자도 지식인도 희생자도 「왜 같은 일이 매번 반복되는가」라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면서도 인간이 과거의 실패·태만·불행의 재앙으로부터 거의 교훈을 얻지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모든 것은 이름도 없는 시민의 운명도아니며 신의 섭리도 아니다.오히려 인간이 나쁜 짓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한 것으로 결국 그러한 운명을 인간 스스로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경우 「인간」이라는 것은 우선 특정의 결정권을 갖는 권력자들이었다.그들은 「국가의 적」을 물리치라고 국민들에게 요구했다.그에 따라 대부분의 병사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전투를 했다.그들은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렇지않으면 안됐다.그들은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한 전쟁중에서도 일본과 독일군대의 특징적이었던 것은 많은 병사들이 상도를 벗어나 행동하고 규율에 반하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그들은 자신들이 현혹되어 그러한 일을 한 비참한 현실을 깨달았으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일본육군은 1930년대 중국침략의 대규모 전투를 시작한 후에야 중국에서 영토확장을 하려는 일본의 전략을 드러냈다.1937년 12월 일본군이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남경을 점령할 때 본국에서는 너무 기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축하무드에 싸여있는 동안 중국시민과 병사들에게는 일본군의 잔악한 학살이 자행됐다.남경의 이름은 2차대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아우슈비츠와 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치 정치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은 나치의 전략이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와 아우슈비츠라는 관념과 떼어내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폴란드에 있던 최대의 나치수용소「지옥」에서 살아남은 7천명의 환희의 소리와함께 옛소련에 의해 해방된 것은 50년전의 1월27일이었다.현재 우리는 그 수용소와 다른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나치전략의 비인간성은 무엇으로 설명하면 좋을 것인가.독일인들은 그것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여기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히틀러와 그 일당이 정권획득을 획책할 때 『전쟁은 우리의 정치목적 달성을 위해 정당하며 불가피한 수단으로 「절대적 우등선민」은 「자연의 섭리」다』라고 주장한 사실이다. 나치지배하의 독일사회가 거기까지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수 없더라도 유태인의 「시민권 박탈」실태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러시아원정때의 잔악행위도 많은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나치가 저지른 아우슈비츠의 비극과 남경대학살은 서로 비교의 대상은 아닐지 모른다.남경에서의 일본군이나 일본 병사 한명한명이 범한 잔인한 행위는 국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계획적인 독일의 민족학살과는 다르다.과거청산 방법도 서로 다르다. 과거 침략행위와 관련,일본에서는 침묵을 지키며 진실을 말하지않고 진상을 감추는 경우도 있었다.독일에서도 과거청산을 거부하는 소리가 있어 오기도 했다.우익세력들은 「아우슈비츠는 거짓말」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독일과 일본 양국민은 자기의 역사적 사실을 좋은 것이든 나쁜 부분이든 총괄적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과거청산을 할 수 있다.그렇게 함으로써 장래에 희망적인 교훈을 과거의 행위로 부터 얻을 수 있다.그러한 교훈은 앞으로도 가슴 깊이 새겨 기억하지않으면 안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