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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윷놀이·널뛰기·굴렁쇠 굴리기…/초등교 전통놀이 운동회 “눈길”

    ◎틀에 박힌 행사 탈피… 조상의 슬기 체험 일선 국민학교에서 딱딱하고 틀에 박힌 군대식 운동회 대신 이채로운 전통놀이 운동회가 등장하고 「예절실」을 차려 생활예절 등 산교육을 가르치는 학교들이 크게 늘어 눈길을 끌고 있다. 학과중심에서 벗어나 개성을 중시하고 인성과 단체생활을 강조하는 갖가지 프로그램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치현국민학교에 열린 운동회는 가을철 국민학교 운동회의 새로운 틀을 보여줘 이채롭다. 이날 운동회는 기마전과 릴레이·공굴리기 등 종전까지 주종을 이루던 놀이 대신에 사물놀이와 강강술래·윷놀이·널뛰기·민요노래방 등 32가지 전통놀이 중심으로 펼쳐졌다.학생과 학부모·교사·지역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이날 행사는 학생들에게 지역주민과의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조상의 슬기를 몸으로 느끼게 하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노원구 중계동 을지국민학교도 지난 5월 제기차기·과녁맞추기·굴렁쇠굴리기 등 전통놀이를 위주로 한 운동회를 가진데 이어 2학기 들어 정규체육시간에 학생들이 다양한 전통놀이를 즐기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어린이들에게 전통의 멋을 가르치는 「예절실」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서대문구 북가좌국민학교는 지난 여름방학 기간 처음으로 교내 「예절실」에서 4∼6학년 1천5백여명의 학생들에게 식사예절과 인사예절·공중도덕·가족관계익히기·전화받기·경어사용법 등을 가르쳤다. 현재 서울시내 5백13개 국민학교 가운데 1백93개 학교가 「예절실」 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을지국교 김유경(55)교감은 『자율성과 다양성이 일선 학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어린 학생들의 인성과 개성을 계발하려는 움직임들이 어느때보다 활발하다』고 말했다.
  • 군인들,훈련 기피 「자해행위」 빈발(북한 이모저모)

    ◎맨발로 외출… 고의로 동상 걸리기도 ○…북한군대에서는 최근 훈련에서 빠지기 위한 사병들의 자해행위가 빈발하고 있다고 내외통신이 귀순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언. 특히 군인들의 자해행위는 12월부터 2월에 걸친 동계훈련 시기가 임박할 때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자해상처의 유형으로는 곪아터진 염증·골절 등인데 염증의 경우 대부분 일부러 가시 등으로 자신의 손가락 발가락 등에 상처를 내고 이를 악화시켜 장기치료를 요하게 만든다는 얘기. 또 훈련중에는 고의로 맨발로 외부출입을 하거나 근무를 나가 동상에 걸려 훈련에서 빠지는 일이 있다고. 상급자들도 이러한 관행을 알고 있어 훈련에 대한 불성실 정도가 심한 병사들에 대해서는 「직일병」(당직군인)으로 빼내 훈련에서 제외시키고 있다고 전해졌다. ○「100m 미인론」 소개 ○…북한 김정일이 공사가 완료된 건축물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우스갯 소리로나 등장할 법한 「100m 미인론」을 들고 나온 것으로 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가 보도. 김정일은지난 81년 완공된 「빙상관」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빙상관이 100m 미인같이 됐습니다.100m 미인이라는 것은 멀리에서는 고와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밉다는 뜻입니다』라고 언급,이 건물이 미려한 외양과는 달리 내부 마감공사 등에는 적지 않은 부실이 있음을 질책했다는 것. ○원자력 종사자 특별대우 ○…북한은 에너지 분야 종사자에 대해 특별대우를 하고 있다는 소식.귀순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방사능 오염에 노출되기 쉬운 원자력부문과 체력소모가 심한 탄광부문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영양제 식당」을 운영해 왔다는데 「영양제 식당」이란 작업직종에 따라 차등적으로 영양등급을 지정,하루 한끼씩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 미군영내 한국인 불법구금/국가서 배상해야

    ◎서울지법 “미란다 원칙 안지켜” 미군부대안에서 미헌병이 우리 국민을 불법연행,긴급구속했다면 「대한민국에서의 미합중국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등에 따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민사 37단독 오금석 판사는 16일 정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같이 밝히고 『국가는 정씨에게 3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4조」등에 따라 미군 영내에서는 미군측이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는 영내 질서와 안전유지를 위해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면서 『미헌병이 정씨를 연행하면서 범죄사실 요지,변호인 선임권등 미란다원칙도 준수하지 않은데다 불법체포를 한 만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 「공익요원」 탈선 급증/저학력·재소경험·알콜중독자 등 수두룩

    ◎훈련 마치면 민간인… 군통제 벗어나/선발·관리체계 개선해야 동부산우체국에서 공익근무 요원으로 일하는 임정일씨(21·중졸·부산진구 양정2동 312)는 지난달 21일 하오 7시30분쯤 우체국의 등기우편물 운반용 광주리에서 2천6백만원권 자기앞수표 1장과 1백만원권 수표 3장 등 모두 84장 1억9백42만여원이 든 봉투를 훔쳤다. 그는 훔친 돈으로 친구들과 부산 동래의 온천장 일대 유흥가를 돌며 술을 마시다 10만원권 횡선수표를 팁으로 주는 것을 수상히 여긴 술집 종업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 공익근무 요원들의 탈선이 잇따르고 있어 그 선발기준과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자질이 모자라거나,문제가 있는 공익근무 요원들이 잇따라 사고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병역의무를 마치기에 부적합한 저학력자나 전과자 등 문제 청소년들은 보충역으로 판정,소집대기 상태로 두었다가 그 기간이 끝나면 병역을 면제했으나 올해부터는 반드시 공익근무 요원으로 근무해야 한다. 대구 동구청 소속 산불감시 요원 이무형씨(21·절도 등 전과3범)는 지난달 28일 상오 1시20분쯤 동구 지저동 미용실 앞에 세워놓은 승합차에서 현금카드와 전자수첩 등을 훔친 뒤 인근 은행에서 현금 55만원을 빼내다 붙잡혔다. 경주시 산불감시 요원 이영우씨(21)는 가정집에 들어가 잠자던 김모양(19)을 흉기로 위협,성폭행했다가 구속됐다. 부산 사하구청 산림감시 요원 이수영씨(22)는 지난달 23일부터 15일간 근무지를 무단 이탈,서울 등지의 유원지를 돌아다니다 구청측의 고발로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공익근무 요원들이 쉽게 탈선에 빠지는 것은 이들이 4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민간인 신분이 돼 군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데다,근무시간이 끝나면 해당 행정기관의 감독에서도 벗어나기 때문이다. 또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대거 공익근무 요원으로 편입된데다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교육도 전혀 없어 탈선에 속수무책이다.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공익근무 요원들의 선발과 관리·운영 등이 기관별로 2원화돼 있어 사실상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못한다』며 『공익요원확보에도 어려움이 많지만 군대처럼 통제도 불가능해 시급히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익근무요원이란/병역대신 행정업무 등 봉사/일정기간 근무땐 병역인정 병역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시행하는 공익근무 요원은 자치단체 등에 배치된 산림감시요원 하천감시요원 등 행정관서 요원과 국제협력봉사요원 및 예술·체육요원으로 나뉜다.4주간 기본 군사훈련을 받은 뒤 배치돼 각각 28개월,32개월,36개월을 근무하면 병역이 면제된다. 행정관서요원은 올해 징병검사를 받는 76년 이후 출생자의 경우 신체검사에서 5∼6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대상이다. 나머지 두 종류의 요원은 현역입영 대상자들도 심사를 거쳐 편입될 수 있다.국제협력봉사요원은 외무부장관의 추천을,예술·체육요원은 병무심의 위원회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이들 두 분야의 공익 요원은 엄격한 심사를 거치므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행정관서 요원의 경우 문제가 많다.종전 보충역 제도에서 군대를 안 가던 저학력자 등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올해부터는 반드시 행정관서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다.
  • “북한 식량난 91년초부터 심각”/중 통해 귀순한 박성철씨 밝혀

    ◎배급 더타려 다투다 할머니 깔려 숨져/공안원 폭행뒤 처벌 두려워 연변으로 【부산=이기철 기자】 한·중 정기 여객선 황해호를 몰래 타고 귀순한 북한노동자 박성철씨(33)는 16일 부산지방 해운항만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에서도 주택거래가 암암리에 이루어지며 식량난은 90년대 초부터 심각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택은 주로 당에서 배급해주지만 85년쯤부터 음성적으로 매매가 가능해져,지역에 따라 1만원에서 20만원이면 살 수 있다』며 『당도 이런 뒷거래를 묵인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월급을 모아 집을 마련하는 것이 주민들의 꿈이고 특히 신부 쪽에서 집을 사 줄 능력이 있는지 여부가 총각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조건이며,그렇지 못할 경우 결혼하고도 결혼등록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덧붙였다.자신도 결혼한 뒤 집이 없어 가족은 함경북도 숙청군에 머물고,자신은 평안남도 남포시 독신자 숙소에 살며 한 달에 한번 꼴로 가족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서는 『지난 91년 8월 평남 남포시 대안구역내 새마을동이라는 아파트 배급소에 쌀이 들어왔으나 배급량이 적어 서로간에 많이 타려고 다투다 할머니가 사람에 깔려죽었다고 기억했다. 박씨는 『아버지(61)가 경제사범으로 구속된 지난 87년 군대에서 강제 제대당한 뒤 평남 남포시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당을 비판하는 시를 쓴 것이 발각됐다』며 『이 문제로 괴롭히는 공안원(경찰)을 폭행해 처벌이 두려워 탈출했다』고 말했다. 탈출경로로 『지난 93년9월 함경북도 무산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연변의 조선족 마을인 왕청현 동포집에서 농사를 도우며 2년간 생활하다 지난 5일 북경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요청했으나 외교상의 문제로 거절당하고 밀항을 결심,지난 13일 중국 연대에서 황해호를 몰래 탔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한달에 70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다는 박씨는 2남2녀의 맏이로 부모와 아내(34) 딸(3)이 있다고 말했다.『시를 쓰는 것이 취미이며 남한에서는 무엇을 하든 열심히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 미,“대만방위 지원” 다짐/페리 국방

    ◎“유사시 파병” 미­대만 관계법 준수/“중의 인권·무기판매 좌시 않겠다” 【홍콩 연합】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정부는 「대만관계법」을 집행하여 대만의 자주방위를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고 홍콩연합보가 15일 뉴욕발로 크게 보도했다. 페리 국방장관은 13일밤(현지시간)뉴욕에서 개최된 일본협회 주최 만찬 연설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그의 발언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 주변에서 잇따른 무력시위를 벌여 중국과 대만 관계가 크게 긴장된 시기에 나온 방위지원 약속이다. 그는 대만관계법 집행과 동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해방군 지도부를 비롯한 중국지도부와도 긴밀한 접촉을 가져 나가겠다고 밝혔다. 79년 4월 발효된 대만관계법은 미국이 대만에 대해 무기를 판매하고 필요시 군대까지 파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페리 장관은 또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와 위험한 무기판매 및 실험 등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이때문에 중국을 고립시키려고 시도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중국을 고립시킬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들로서 ▲아시아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강대한 군사력 ▲세계 최대에다 최고 빠른 성장률을 보이는 경제 ▲세계 최대 인구 등을 지적했다.
  • 정승화 전 육참총장/「내란방조」 재심청구

    80년 10·26사태와 관련,내란방조혐의로 기소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10년을 선고받았던 정승화(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유죄판결을 받은지 15년만에 이 사건에 대한 재심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정씨는 80년 3월 군법회의에서 내란방조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그해 6월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뒤 88년 예비역 육군대장으로 계급이 회복되었으나 유죄판결로 연금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아왔다.
  • 자바이칼 지방(시베리아 대탐방:36)

    ◎손꼽히는 밀 주산지… 목축 성행/몽고계 울란우데역은 마치 한국의 시골역/주변 사람들 손짓·표정이 한민족과 똑같아 이르쿠츠크역을 출발한 기차는 곧장 일직선으로 남하한 뒤 바이칼호수 남단을 싸고 돌며 다시 북동진한다.출발 30분만에 유명한 알루미늄공장이 있는 샬리호프역을 지났다.이어서 기차는 이르쿠츠크라는 도시이름을 만들어준 이르쿠츠크강 뒤편의 산을 감싸고 돈다.이곳은 지진대라서 험한 단층 바윗돌로 이루어진 산들을 많이 지난다.리스트비양카에서 「바이칼 순환선」이 연결됐던 남쪽 슬루지양카도 「단층돌」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슬루다」에서 따온 이름이다.슬루지양카는 1904∼1905년 바이칼 순환선이 건설되며 역으로 출발된 뒤 계속 발전,1936년 정식으로 도시가 됐다. ○두개의 철로 합쳐져 1시간이 지나자 왼편 차창 아래편으로 바이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며 숨바꼭질을 시작한다.가랑비가 흩뿌려 시야가 좋지 않은 게 흠이다.산 정상에 있는 파스역을 지나며 모스크바를 출발한지 보름여만에 처음으로 터널을 지나갔다.바이칼호수의 주항구도시인 쿨툭에서 두번째 터널을 지난 뒤 얼마 안있어 슬루지양카역에 도착한다.이곳에서 바이칼순환선과 대시베리아철도는 만나 하나로 합쳐진다.산을 넘는 동안 열차 앞뒤로 각각 2대씩 전동차가 붙어 끌어주고 밀어주는 게 재미있다. 1949년 이르쿠츠크∼슬루지양카간 단축노선이 완공되며 바이칼순환선 시대는 막을 내렸다.이 단축노선을 건설한 이유는 여러가지 경제적인 이점도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그 직전에 이르쿠츠크∼리스트비양카를 연결하는 노선이 이르쿠츠크 수력발전소 건설로 모두 물에 잠겨버렸기 때문이다. 슬루지양카에서 조금 더 달리면 바로 바이칼호수의 오염주범으로 지목받는 셀룰로오스 콤비나트(공장)가 있는 바이칼스크역이 나온다.1961년 이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이주해와 1966년 정식 도시가 된 곳이다.모스크바 시간으로 낮 12시30분 바이칼스크역으로 진입하면서 셀룰로오스 콤비나트의 거대한 굴뚝들이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게 보인다. ○호수엔 낚시꾼 몰려 드디어 본격적인 바이칼 순환관광이 시작됐다.북동진을 시작하며 왼편차창으로 수평선이 마치 동해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졌다.열차는 때로 호수쪽으로 7∼8m씩 바짝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기막힌 경관을 눈앞에 펼쳐준다.호수는 때로 10여m 높이의 파도가 치기도 한다.그래서 철길을 보호하기 위해 호수가에 방파제를 쌓은 것이 곳곳에 보인다.북동진하는 5여시간 동안 줄곧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로 변해 있다.곳곳에서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호수에 드리우고 있다. 수네지나야강을 지나며 기차는 이르쿠츠크와 부랴트공화국 경계를 넘는다.호수 동안을 따라 올라가던 열차는 마침내 오바르트역을 지나며 바이칼과 작별을 고하고 본격 동진을 시작한다.「오바르트」는 「방향을 돌린다」는 뜻.이후 셀렝긴스크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지역은 셀렝가강이 호수로 흘러들면서 형성된 거대한 삼각주다. 옆칸의 젊은 여자승객이 복도바닥에 있는 네모난 뚜껑을 좀 열어달라고 부탁한다.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하면서 손잡이를 잡아당겨 열었더니 놀랍게도 그 밑에 작은 칸막이 방이 만들어져있고 우유·소시지 등 먹을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승객들을 위한 음식물 보관소였는데 겨울철에는 자연냉장고가 되는 곳이었다.척박한 자연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귀중한 지혜인 것이다. 열차안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자바이칼 코사크 병사 한명과 어렵게 몇마디 말을 나누었다.얼마나 무뚝뚝한지 말을 붙이기까지 여간 힘든 사람이 아니었다.「자바이칼」이란 말은 바이칼 뒤쪽이란 뜻.행정단위는 아니지만 예부터 지리·역사적 단위로 불려온 이름이다.현재 부랴트공화국과 치타공화국이 이 자바이칼에 해당된다.자바이칼은 일명 「다우리아」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바이칼 지방의 특유한 스텝을 일컫는 말.좋은 스텝 덕분에 이 지역은 러시아전역에서 손꼽히는 밀 주산지가 됐다. 기차칸에서 만난 이 코사크병사로부터 그들의 생활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코사크는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군복바지옆에 단 줄의 색깔로 소속을 구분한다.예를 들어 자바이칼 코사크는 노란색 줄,이르쿠츠크 코사크는 붉은색,돈 코사크는 청색줄,카자흐스탄·우랄의 코사크는 녹색 띠를 달고 다닌다. ○유목전통 아직 남아 이들은 현재 연방의 행정·군대조직과 완전 별개인데 그러면서도 철저한 자체규율·조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각 지역에는 아타만이라고 부르는 사령관이 있고 그 밑에 각급 지역별로 지휘관이 세분돼 있다.지금은 국경수비 등 옛날의 임무가 없어졌기 때문에 생계수단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래서 철도 보안요원이나 관공서 경비업무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우리 일행이 탄 울란우데행 기차의 종착지인 블라고비센스크는 바로 아무르 코사크의 수도로 과거 자바이칼 코사크의 총본부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1920년부터 1922년 사이에 잠시 존재했던 극동공화국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시간으로 하오 4시20분 드디어 울란우데역에 도착했다.마치 영천이나 진주역 같은 우리나라 시골역에 온 기분이다.우리와 똑같이 생긴 시골사람들이 플랫폼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너무 낯익은 정경들이다.말이야 다르지만 이야기 도중 하는 손짓·표정·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자태들이 영락없는 우리 민족의 동류들이다.부랴트는 몽골족의 일파이니 「동족」임이 분명하다. 부랴트인들은 이 부랴트공화국 외에도 바이칼 서쪽의 이르쿠츠크주 안에 자치구가 있고 동쪽으로 치타주 안에도 자치구가 있다.바이칼을 기준으로 동서로 갈라진 부랴트인들 사이의 생활·풍습은 서로 확연히 다르다.바이칼 서쪽 부랴트는 거의 러시아화된데 반해 이 동쪽 부랴트는 아직 자기들의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있다.서쪽 사람들은 러시아의 영향이 컸고 동쪽 사람들은 몽골의 영향권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쪽 부랴트에는 볼거리가 참 많다.지방으로 가면 아직도 평원에서 말 달리는 사람들이 있고 활쏘기 경연대회도 벌어진다.몽골의 유목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 부산 정치파동(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5)

    ◎우남,「대통령 직선」 시도… 야서 강력 반대/계엄 선포·민의 조작… 발췌개헌안 통과 1952년 초 한국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유엔군과 공산군이 51년 11월 판문점 휴전회담에서 양쪽의 접촉선을 일단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키로 합의한 뒤 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1월 초 서부전선인 문산 북쪽 두매리고지와 중동부전선의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충돌이 있었을 뿐 양쪽의 작전은 수색·정찰,간헐적인 포격전 등 일상적인 군사활동에 그쳤다.이 군사분계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휴전까지 이어져 지금의 휴전선으로 고정됐다.한편으론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정전회담이 거듭 열려 휴전과 포로교환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쯤 후방은 전쟁의 공포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안정을 되찾아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1월19일에는 제32회 전국체전 동계대회가 수원에서 열리기도 했다.그러나 백성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월남 동포 1백20만∼1백50만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모두 7백만명가량의 피란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몰리는 바람에 생필품은 매우부족했다.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의 경우 전쟁전 43만명이었던 인구가 1백50여만명으로 늘어났다.52년 초 물가는 「6·25」전보다 13배나 뛰어올라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부산정치파동」이 서서히 싹터갔다.부산정치파동은 1952년 5월25일 계엄령선포에서 7월7일 제1차 헌법개정,이른바 발췌개헌 공포에 이르기까지 부산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사건들을 말한다.그 발단은 51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에 따라 정부가 발의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에서 비롯됐다. ○첫 표결 압도적 부결 이승만은 개헌발의에 앞서 자유당을 창당,이를 발판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자유당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원내세력과 지지하는 원외세력으로 갈라져 결국 창당 한달여만에 원내자유당과 원외자유당으로 분리됐다.이런 가운데 헌법개정안은 해를 넘겨 1월18일 국회 표결에 부쳐졌는데 찬성 16,반대 1백43,기권 1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승만은 자신을 반대하는 국회에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대신 충성을 다하는 경찰력을 이용,민의를 동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이때부터 원외자유당 주도로 「개헌안 부결반대 민중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헌법규정에도 없는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벌이는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해 국회에 압력을 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이승만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먼저 4월25일 실시한 읍·면의원선거와 5월10일의 도의원선거 등 첫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원외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이승만은 지방의회와 원외자유당을 양대 축으로 삼아 직선제개헌안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앞장서던 서민호 의원이 4월24일 육군대위 서창선을 저격한 사건도 반이승만파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계기가 됐다.서의원은 지방의회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에 갔다 숙소에서 술취한 서대위와 시비가 벌어졌다.서대위가 먼저 권총 6발을 쏜 뒤 서의원이 응사했지만,서의원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국회는 서의원의 살인이 정당방위인데도 그를 구속한 것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서의원 석방결의안을 의결했다. ○대낮 야 의원에 테러 서의원이 5월19일 석방되자 부산 거리에는 이를 항의한다는 구실로 조작된 민의가 활개를 쳤다.민족자결단·백골단·땃벌떼 등 정체모를 집단들이 때를 만난듯 거리를 누비며 대낮에 야당의원들에게 공공연하게 테러를 가했다.이들은 또 「살인 국회의원 석방한 국회는 해산하라」며 정부·국회·대법원 청사를 습격하기도 했다.피란수도 부산시내에는 공포 분위기가 확산됐다.때맞춰 이승만지지파가 주를 이룬 7개 도의회가 국회해산 요구를 결의했고,지방의회 대표는 반민의국회 해산궐기대회를 열었다. 정부의 공세는 5월25일 0시를 기해 부산·경남북과 전남북 일부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공비소탕을 내세운 계엄을 악용,야당의원을 철저히 탄압한 것이다.계엄당국의 언론 검열이 시작됐고 25일 밤부터 서민호의원 등 내각제 지지의원들을 잡아들였다.26일에는 헌병대가 국회의원 40명이 탄 통근버스를 크레인에 달아 끌고갔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우방들의 비난이쏟아졌다.맨 처음 반응은 유엔한국통일 부흥위원단(UNCURK)에서 나왔다.언커크는 5월28일 이승만에게 성명을 보내 『한국에서 유엔을 대표하는 본 위원단은…부산시의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고,현재 체포·구금된 국회의원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트루먼 미국대통령도 항의각서를 보냈지만 이승만은 「계엄령은 공비토벌을 위한 것이며,국회의원 체포는 공산당과의 공모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둘러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6월25일 반이승만 세력에게 결정타를 먹인 「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부산 충무로광장에서 벌어진 「6·25기념식전」에서 유시태(당시 62)가 이승만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 바람에 이승만은 암살을 면할 수 있었다.이 사건으로 유시태에게 신분증과 옷을 빌려준 민주국민당 김시현의원 등 야당의원 5명이 배후세력으로 체포됐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은 온갖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재집권 야욕을 꺾으려던 야당에게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장택상의 수정안수용 이처럼 반이승만 세력이 궁지에 몰렸을 때 장택상 국무총리가 제안한 제3의 개헌안이 등장했다.이 개헌안이 바로 정부의 안과 국회의 안을 적당히 절충한 「발췌개헌안」이었다.하지만 대통령직선제·양원제를 뼈대로 한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개헌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국회안을 몇가지 수용하긴 했지만 이는 야당의원들에게 타협할 명분을 주기 위한 치장에 불과했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으로 기진맥진한 야권은 장총리의 「발췌개헌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52년 7월4일 밤 발췌개헌안은 기립표결로 통과됐다.출석 1백66명 가운데 1백63명이 찬성했고 3명이 기권했다.정부는 7월7일 개정헌법을 공포함으로써 부산정치파동은 막을 내렸다.이 개헌에 따른 정·부통령 직접선거가 8월5일 실시돼 이승만은 다시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우리 헌정사에 첫 개헌으로 기록된 발췌개헌은 이처럼 불미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후 거듭된 정치파동의 선례가 됐다.역사는 부산정치파동을 「여야간의 정치운영 방식을 폭력을 통한 극한대립 양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헌정사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분기점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 정치파동」에 미 직접개입 주장/휴전협상·군사작전에 악영향 판단/한때 이승만 제거·임정수립을 암사 1952년 한국 정정이 부산정치파동으로 위태로워지자 미국은 한때 이승만 대통령의 제거를 고려하는 등 대책 마련에 크게 고심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극비문서를 최근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정책수립처 문서」(Records of Policy Planning Staff)더미에서 발굴했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이 문서는 「한국에서 정치적 위기의 지속」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3쪽분량.미 국무성 유엔과장 힉컬슨이 1952년 6월13일 작성,정책수립처의 니체를 포함해 국무차관보 매튜,극동과의 앨리손과 존슨등 간부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 힉컬슨은 이 문서에서 부산 정치파동의 해결책으로 미국의 직접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그는 미 국무성이 제한적인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제아래 위기의 책임을 이승만보다는 그의 측근인 이범석·임영신·윤치영에게 돌렸다.그 까닭은 한국에서 이승만을 대체할 만한 『전 국가적인 명망성』을 지닌 인물이 없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때문에 이승만의 지위는 인정해 주면서도 주변의 추종자를 거세함으로써 그의 독재적 경향을 제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며칠 뒤 발췌개헌안을 내놓은 장택상 국무총리를 미국이 비난대상에서 제외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미국은 지지부진한 휴전협상보다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미국은 이 위기가 휴전협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의 시행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따라서 이승만을 제거하고 임시정부를 세울 계획이 한때 있었음을 이 문서는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미국의 개입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밝혔고 이 내용대로 미국은 발췌개헌안 통과­이승만 재선의 과정을 묵인하게 된다.
  • 「행동강령」 논의로 뜨거운 GO 회의

    ◎유엔문서 「섹스」 대신 「젠더」로 표기/낙태허용 싸고 선진­개도국 대립/전체 초안중 20% 합의도출 못해 제4차 유엔 세계여성회의가 앞으로 10년간 여성운동의 지표가 될 행동강령 채택을 위한 본격적인 토론에 돌입했다. 개막 사흘째를 맞은 정부간(GO)회의는 6일 실무회의에 이은 주위원회에서 「SEX」라는 단어 대신 「GENDER」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결정,행동강령의 내용과 문안을 둘러싼 쟁점 중 걸림돌 하나를 제거했다. 바티칸등 카톨릭국가들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지칭하는 「SEX」의 사용을 지지했으나 EU국가들과 대부분의 여성운동가들은 『「섹스」라는 말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적 함의가 포함돼 있다』며 『고정된 성역할을 전제하지 않고 기존의 가치로부터 자유롭게 생물학적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젠더」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이날 결정은 오는 15일 본회의에서의 최종결정을 남겨 놓고 있지만 사실상 통과나 다름없어 앞으로 유엔의 모든 문서에서 「섹스」란 표현은 사라지게 됐다. 이에 앞서 5일「여성의 건강」과 「여성의 인권」 두가지 주제로 열린 실무회의에서는 출산과 낙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둘러싸고 선진국 그룹인 EU국가들과 개발도상국 그룹인 G77및 회교국가들 사이에 예상대로 큰 논란이 벌어졌다. 여성들에게 보다 나은 보건서비스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 EU그룹과 미국대표등은 여성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낙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G77과 회교국가 그룹대표들은 『낙태는 각국의 사회규범에 따라 허용을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낙태와 피임 문제는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쟁점으로 6일 실무회의에서도 큰 논란을 빚었다. 바티칸대표단의 수석대표인 매리 앤 글렌돈은 유엔의 행동강령이 성적 건강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낙태에 대한 반대입장도 재천명했다.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등 낙태찬성론측은 『인공피임을 인정하지않는 바티칸의 원칙이 오히려 더 많은 낙태를 부른다』며 이번 회의에서 「여성의 낙태자유 및 재생산권의 보장」을 강령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맞섰다. 행동강령 초안 중 지금까지 합의 도출을 못하고 있는 부분은 낙태문제를 비롯 5분의1 정도.각국 대표들은 자신의 종교 및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이번회의에서 채택된 「행동강령」은 각 나라가 국내 관련법을 제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GO 회의·NGO 포럼 이모저모/미 대사부인 모시적삼 눈길/힐러리 강연에 2천명 참석 ○…북경 세계여성회의 북한수석대표인 윤기정 재정부장(67)은 회의 사흘째인 6일 상오,본회의 두번째 연사로 기조연설. 이날 윤대표는 20만명의 한국여성등 아시아및 유럽인들이 일본 「제국주의군대」의 성노예생활을 강요받아야 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가 바로잡혀지지 못하고 있다고 정신대문제에 관해 집중 거론.윤대표는 일본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민간차원의 보상으로 무마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북한은 일본정부가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범죄행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등 진상규명과 관련 범죄자에 대한 재판,모든 피해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보상을 요구한다』고 발표. ○…세계여성회의 우리대표단 명예수석대표로 참석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날 공식일정을 갖지않은채 조어대에 머물면서 주중대사관직원 부인들을 접견.손여사는 이어 김장숙 정무제2장관,이숙 비정부(NGO)회의 한국공동대표등 정부간 회의와 비정부간 회의 대표등 이번 북경여성대회에 참석한 한국대표 85명을 조어대로 초치,만찬을 하며 담소. ○…레이니 미국 대사 부인이 이날 「남한과 북조선여성의 만남의 광장」 행사에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참석해 눈길.그는 한국NGO대표단과 함께 종군위안부 관련 가두캠페인에도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클린턴 미국대통령 부인 힐러리여사의 강연이 열린 NGO포럼장의 컨벤션센터는 6일 상오 9시30분 문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수용인원을 훨씬 초과하는 2천여명이 입장,힐러리여사의 높은 인기도를 반영.이날 강연에서 힐러리여사는 『각국 NGO참가자들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했던 것들을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특유의 명쾌한 논조로 강조.한편 이날 프레스센터에서는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던과 USA투데이지 뉴하스 발행인 등이 「힐러리와 회유」를 주제로 간담회를 개최.뉴하스 발행인은 힐러리 여사가 『인권문제에 대해 강경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불만을 표명.
  • 유형의 수도 이르쿠츠크(시베리아 대탐방:34)

    ◎왕정반란 「12월 당원」들의 마지막 안식처/유형 온 주모자가 살았던 주택을 박물관으로/앙카라 강변엔 17세기 「시베리아 정복탑」 우뚝 이르쿠츠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은 앙가라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 정복탑이다.총독청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오벨리스크다.동진하던 러시아 정복자들은 17세기말 이곳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잠시 정복의 발길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이곳에 높이 10여m의 대형 정복탑을 세워 그동안의 공적을 자축했다.정복의 상징인 대형 쌍독수리 문양 아래 모라비요프·아무르스키·스페란스키 등 정복자들의 이름이 쓰여져있고 「시베리아 정복자들에게 영광있기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철도 개통… 도시 부흥 이르쿠츠크는 1686년 정식 도시가 된 뒤 성장을 거듭,1764년에는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다.그러나 도시발전의 진짜 전기는 1898년 시베리아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찾아왔다.따라서 3년 뒤면 동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지 1백주년이 된다.당시 이곳은 주도 였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철도업무를 이곳에서 관장했다.관공서 거리였던 칼 마르크스거리에는 당시 이르쿠츠크·부리야티·치타주의 철도를 총괄하는 동시베리아 철도청이 있었다.4층짜리 대형 대리석건물인데 혁명 전 세워진 건물원형에다 혁명 뒤 소비에트식 건물장식을 곳곳에 덧붙이고 역시 혁명성이 강한 대리석 조각까지 건물상단 곳곳에 만들어 붙여서 연대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돼버렸다.시베리아 곳곳에 이런 식으로 옛건물에 사회주의 장식을 덧붙여 건물의 원형을 훼손시킨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혁명 전 러시아 유형의 수도였다.특히 1825년 왕정에 반대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주모자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유형 와 생을 마쳤다.사회주의 시절 볼셰비키들은 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추앙했다.그래서 이곳은 혁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이 유형 와 거처했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성역화해 놓은 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 구경꾼들 몰려 제르진스키거리에있는 「돔 무제 데카브리스트」는 1826년부터 30여년간 12월당 혁명주모자들 수명이 유형생활을 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대표적인 명소다.12월당 혁명은 1825년 알렉산더 1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할 즈음에 일어났다.당시 군대내에 왕정폐지를 주장하던 비밀결사조직인 12월당원 5백여명이 「새 차르즉위 반대,공화정 수립 지지」를 내걸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나드광장에서 무력저항을 시작한 것이다.25년 12월14일 하오3시 직후였다.물론 이 저항은 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분쇄됐고 이후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주모자급 1백28명이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이들은 중죄인으로 유형지에서도 모두 죽을 때까지 카타르가(쇠족쇄)를 차고 살아야했다.박물관 자료에는 당시 12월당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북 소사이어티」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남 소사이어티」등으로 나뉘어 이미 광범위한 비밀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박물관,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입구에는 반드시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맞는 불청객들이 있다.바로 구걸꾼들.입구의 좌우로 10여명씩 늘어서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자비를 구하는 데 도저히 그냥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이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이르쿠츠크는 폴란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제정 러시아시절부터 러시아에 이주해온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 같은 곳이고 폴란드인들의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시베리아 폴란드인들도 유형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나폴레옹시대가 지난 1861년 당시 바르샤바가 있는 동폴란드는 러시아영토였다.1861년부터 63년까지 폴란드인들은 거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이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만여명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왔다.이들의 주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였고 그들의 친척·후손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모여살게 된 것이다. 주청사 바로옆 「폴란드혁명거리」에 위치한 폴란드성당인 「성모 무염시태(무염시태)성당」도 1884년 이들이 세운 것이다.소련시절 교회가 폐쇄된 채 국유화돼 시립 파이프오르간 연주장 등으로 쓰이다 지난해말 건물 일부가 폴란드신도들에게 되돌려졌다.폴란드에서 파견돼온 베르다벳다라는 젊은 수녀는 현재 이르쿠츠크 오블라스치(주)에 약 3천여명의 폴란드인이 사는 데 매주 3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이곳 뿐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옴스크 등 시베리아 여러 곳에 폴란드성당이 있는 데 하나 같이 교회건물 반환문제를 놓고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폴란드 혁명거리로 모스크바에도 많은 폴란드인이 살고 폴란드 성당이 2곳 있는 데 이들은 시베리아 폴란드인들과는 또 다른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서부러시아는 과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당시 그곳에 살던 폴란드인 다수가 모스크바로 옮겨가 살았다.특히 폴란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모스크바의 각종 대학·인스티튜트(단과대학)등에서 공부했다.소련시절에는 모스크바 거주 폴란드인수가 10만명을 넘었다.모스크바의 가톨릭교회도 소련시절 국유화됐는 데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폴란드인들과 시정부가 맞붙어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모스크바 폴란드성당건물은 외양만 교회이지 시정부에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내부는 완전히 일반 사무실처럼 바뀌어 있다.러시아전역이 마찬가지지만 국유화된 교회는 이렇게 사무실로,창고로,때로는 감옥으로도 바뀌어 철저히 파괴됐다.모스크바의 폴란드성당은 몇개월 전 건물일부가 반환돼 폴란드인들과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외국인 가톨릭신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본다. 이르쿠츠크의 폴란드성당 멀지 않은 곳에는 주청사건물을 비롯한 정부청사들이 들어서있다.시베리아의 각 도시들이 마찬가지지만 주도에는 주청사·지방의회·지방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연방대통령 대리인의 집무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게 흥미롭다.93년말 새헌법 채택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들로 임명하는 지방관을 보내 주정부의 일을 감독·감시토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주민이 선거로 뽑은 주지사·시장과 이 대통령 대리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 프랑스 핵실험 강행(쟁점)

    프랑스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반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의 핵실험은 유럽안보를 위협할뿐」이라는 비난과 「핵무기는 전쟁 억지력으로 평화에 공헌한다」는 반론이 최근 프랑스 신문에 게재되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독일 하원 인권위원회 위원장인 프라이무트 두베의원이 르 몽드지에 기고한 「핵무기는 더이상 전쟁억지력의 도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그 반론으로 알렝 쥐페 프랑스총리가 르 피가로지에 기고한 「전쟁 억지력,그것은 평화」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한다. ◎긍정론/알랭 쥐페 프랑스 총리/불 핵 억지력이 유럽안보·평화 보장/신 국제질서 불안정… 새로운 위협 공동 대응해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6월13일 프랑스가 96년말부터 핵실험을 전면 금지하는 협약에 서명할 것이라고 천명했다.동시에 그는 프랑스가 어떠한 유보조항 없이 협약에 서명하려면 프랑스군의 안전과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핵실험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이런 결정이 태평양지역과 반핵기구들의 적의에 찬 반응을유발시켰다.더 놀라운 것은 유럽연합(EU)가운데 어떤 우방국들이 보인 입장들이다.놀랍다는 것은 프랑스의 억지력이 프랑스의 독립만을 보장하지 않는 까닭에 있다.그것은 유럽을 위한 목적이고 안보와 평화를 위한 것이다. 지난 89년이후 자유와 민주주의가 유럽과 세계에서 자리잡았지만 평화와 안전성은 자리잡지 못했다.보스니아사태에서 우리는 비통함을 느낀다.어떠한 신국제질서도 냉전과 자리바꿈하지 못했다.우리는 유럽에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다는 것을 유럽국가들에게 말해야할 의무를 느낀다.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국제안보와 평화는 계속해서 핵억지력의 존재에 근거할 것이다.핵억지력이 유럽 대륙의 평화를 반세기이상 유지시켜 왔다. 핵억지력에 집착한다고 해서 세계 군비축소나 확산금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프랑스는 과잉군비에 참여한 바가 없으며 91년이후에는 핵능력을 15% 감소시켰다.특히 프랑스의 외교나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외교는 비핵확산조약의 무조건적인 연장을 이뤄내는데 매우 활동적이었다.스스로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새로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이는 순전히 환상적인 가정이다.프랑스는 억지력의 개념에 만족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마지막 핵실험은 가장 견고한 암석의 매우 깊은 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핵실험이 환경과 인구에 어떠한 손실도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과 같이 핵권한도 수반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변을 관찰하는데 고취돼 있을 것이다.특히 장래 협약을 검증하는 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다.그러나 시라크대통령의 결정은 심사숙고끝에 나온 것이다.국가의 최우선의 이익을 요구하는 통찰력에서 나온 용기있는 행동이었다.프랑스는 핵실험에 반대하는 합창소리에 동참하지 않은 독일과 영국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두나라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범적인 행동은 어쨌든 민주주의는 선동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유럽방위의 장래는 프랑스와 영국의 억지력이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그것은 연대정신과 침착함 가운데서만 전개될 수 있다.나는 최근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들이 반프랑스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알고서 당혹감을 감출수 없다.약40년전부터 시작된 유럽연합의 건설은 많은 진전을 이뤘으며 96년 정부간 협의는 진정한 질적 발전을 가져 올 것이다.프랑스는 안보와 방위의 책임을 버리게 되면 유럽연합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프랑스는 억지력을 확인하면서 평화와 유럽에 봉사하는 것이다. ◎부정론/프라이무트 두베 독 하원 인권위원장/핵무기 더이상 전쟁억지력 아니다/보스니아전 등 민족분쟁 군사력만으로 해결못해 프랑스의 핵실험이 공개적인 토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그러한 논쟁을 야기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핵실험 결정은 잘못됐다.하지만 그의 잘못된 결정을 취소한다 해도 유럽의 위협에 대한 분석과 안보의 필요성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마저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드골 전대통령이 취한 막강한 군사력정책은 당시의 냉전이 핵억지력에 토대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토론없이 받아들여졌다. 핵억지력의 전략은 정치적인 반대정파도 핵무기를 전쟁에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묵계가 이뤄졌다.핵무기가 처음 사용됐던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아주 복잡한 전략의 발전을 가져왔다.대차대조표를 볼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그것은 과잉군비와 잔혹한 대리전을 허용하도록 했다. 오늘날 핵무기확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됐다.그 까닭은 핵무기가 유럽을 위협하는 분쟁을 전혀 억제할 수없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사태 같은 분쟁은 20세기말이 전쟁과 평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일상생활 사이에서 치욕을 당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하고 있다.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는 바로 인질인 까닭이다.더이상 무기의 전쟁이 아니다.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조치를 갖지 못한다. 강력한 군사력은 알제리의 내전이나 터키 쿠르드족의 민족분쟁을 종결짓지 못한다.독일과 프랑스는 오늘날까지 안보의 필요성에 매우 상반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금세기에 있었던 두차례의 세계대전이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독일은 군사력에 대해 잠재적인 불신을 갖고 있으며 반면 프랑스는 유약한 군대로 패배와 굴복을 해야만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이런 정서상황을 고려하는 일은 정치인들의 의무이다.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도록 발전시키는 것은 그들의 고유 권한이다. 보스니아 다인종의 존재와 회교주의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서유럽의 군사적 위협을 사용하는 시라크의 생각을 그대로 전파하는 일이 독일에서는 어렵다.알렝 쥐페 총리는 외무장관 재임 당시인 지난1월 핵구성요소를 협조체제에 두겠다고 말한바 있다.시라크대통령은 그러나 그러한 전략이 지지를 받지 못하자 이를 취소한 적이 있다.독일은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했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비핵확산의 동기로 인식되고 있다.이런 관점에서 협조체제라는 것은 현시대에 부적합한 군사기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스니아분쟁에서 나타나는 유럽의 무기력은 군사력이 약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분열에 있다.보스니아전쟁의 교훈은 유럽이 뭉치면 억제력을 가질 수 있지만 분열되면 크로아티아군대보다 약하다고 요약될 수 있다. 새로운 위험도 거기에 있다.우리는 함께 분석해야 하고 위험은 문명사회의 무기력과 연결돼 있다.그리고 비밀 핵무기 격납고에 저장해둔 핵탄두에 의존해서는 안된다.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여야 한다.
  • 나토,세계 공습­협상 병행/전폭기·「신속군」 3일째 맹공

    ◎미특사,분쟁국들 접촉 분주/“공격 계속땐 장기선 돌입”­세계 지도자 【사라예보·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전폭기들은 1일 새벽2시(현지시각)미국특사들이 옛 유고지역 분쟁당사국들을 오가며 평화중재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목표물들에 대한 사흘째 공습을 감행했다. 유엔군대변인은 또 유엔 신속대응군이 지난달 30일에 이어 이날 아침 7시 두번째로 세르비아계 진지에 대해 포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나토간부들은 이날 어떤 목표물들을 공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사라예보부근의 세르비아계 탄약저장소들이 주요 목표』라고 말하고 『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공습이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토는 사라예보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포위가 풀리고 사라예보를 비롯한 유엔안전지대들을 위협하는 지역으로부터 모든 무기들이 철수되는 등 세르비아계로부터 더이상 전쟁을 수행할 의지와 수단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폭격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나토의 대대적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는 아카시 야스시(명석강)유엔특사에게 서한을 보내 세르비아계는 안전지대에 포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공격을 계속하면 장기전에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중화기철수 시작 【브뤼셀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나토가 군사공격중단조건으로 요구한대로 사라예보주변으로부터 중화기를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나토측이 1일 밝혔다. 나토 대변인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를 접수했으나 그 진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첫번째 보고에 따르면 31일 밤과 1일 상오 단행된 공습은 성공적이었으며 출격한 항공기는 모두 무사히 기지로 귀환했다고 말했다.
  • 유럽국가/“약탈 미술품 돌려달라” 한 목소리

    ◎구텐베르크 성화 등 60만점… 5조원 상당/「붉은 군대」 약탈,러시아선 “전리품” 주장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이 물러나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50년.당시 약탈한 예술품을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예술품의 반환요구대상은 독일이 아닌 러시아다.붉은 군대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미술품들을 모스크바 등으로 가져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들은 종전 직후 원품 그대로 봉인된 채 기차로 고리키에 반입됐다가 지난 58년 모스크바 등으로 옮겼다.그 가운데 일부는 수송을 맡은 군인들이 빼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고스란히 운송됐다. 붉은 군대가 가져간 작품은 60만점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추정되고 있다.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20만점.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비롯해 명작들이 포함돼 있으며 시가로는 5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품은 유화 등 그림이 7백점,데생화 3천점이다.헝가리와 벨기에 등의 작품에다 프랑스 화가의 작품들도 상당수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미술품은 그림이 6백69점이고 3천점의 데생화에다 7백점의 청동상 등이다.이 가운데는 드가의 「춤추는 여인」,고갱의 「타페라 마하나」,드가의 「두사람과 집안」,반 고흐의 「흰집」,르누아르의 「빗질하는 여인」,마티스의 「무희」 등 명작도 섞여 있다. 이들 프랑스 작품들은 「오소비판(OS)」이라는 별도의 목록으로 보관돼 있다.구소련이 이렇게 많은 서구와 동구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스크바대학의 미술사 교수인 알렉세이 라스토구에프씨가 지난 91년 러시아의 일간신문 이즈베스티야지에 처음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의 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자고르스키의 맥주의 탑에 유화와 청동상 등 1만6천5백점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들 미술품들은 스탈린이 대외비를 명령한 이후 외부에 공개가 절대 금지돼 왔다.단지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의장의 허락을 받아야 관람이 가능했으며 KGB를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경우에만 관람이 허용됐다는 것이다. 일부 미술품들은 러시아의 해외주재공관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러시아는 옛소련시대인 지난 74년 브레진스키와 지난 92년 옐친러시아대통령때는 일부 예술품을 헝가리에 되돌려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측은 「예술품을 두번이나 구조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나 헝가리는 「두번이나 도독맞은 작품들」이라고 맞서고 있다.특히 옛소련및 동구의 붕괴로 상호 연대가 느슨해지자 반환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반응은 다양하다.푸슈킨박물관의 야아다이리나 앙토노바푸슈킨 관장(72)은 『독일에 협력한 헝가리가 독일에 팔아치운 것을 되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또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증거』라고 전리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다.하지만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전리예술품들은 「전쟁의 마지막 감옥」이라며 반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관한 예술품들 가운데 일부는 내년부터 전시도 될것으로 전해진다.지하에 보관돼 있다가 50년만에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 각국대표 2만여명 북경 도착/유엔 세계여성대회 이모저모

    ◎예비포럼·식전행사로 분위기 고조/중 세관원,등풍자 외국책자 찢기도 다음달 4일 북경에서 개최되는 제4회 유엔 세계여성대회는 27일 3천명에 이어 28일에도 각국에서 1만8천여명의 대표들이 속속 입국,예비포럼과 각종 공개행사에 참가하는 등 본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벌써부터 대회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준비상태 양호한편 ○…27일 북경공항에 도착한 각국 여성대표들은 분홍색 셔츠차림의 중국인 자원봉사대의 환영을 받으며 만족해 하는 모습.수파트라 마스디트 비정부조직(NGO)회의 의장은 『중국인들이 대표들을 영접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치하하고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준비상태가 좋다』고 평가.하지만 한 인권단체는 세관원들의 강요로 자료로 가져온 책자에서 중국최고지도자 등소평을 풍자한 내용의 만화가 실린 페이지를 뜯기기도 했다고 불만. ○「위안부」 쟁점될듯 ○…30일부터 열리는 NGO포럼에서는 옛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대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라고 교도통신이 28일 보도.특히 군대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개인보상을 거부한 채,민간기금모금을 시작한 일본정부의 조치가 논의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망. ○교황청 파견단 구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달 4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세계여성대회의 교황청 대표단 단장에 이례적으로 여성인 메리 앤 글렌든 하버드 법대교수를 임명하고 대표단을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할 것이라고 발표. ○인권유린 고발할듯 ○…미대통령 부인 힐러리의 세계여성대회 참석 발표와 관련,공화당은 중국이 대통령부인의 중국 방문을 중국 여성들의 인권 참상을 감추는데 이용할 수 있다며 반발.그러나 유엔인권위원회의 제랄딘 페라로 미대사는 대통령부인의 세계여성대회참석 결정이 『전세계 여성들을 위한 승리』라고 환영.지난 84년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였던 페라로 대사는 성명에서 『여성의 경제적·정치적 권리 및 여성에 대한 폭력 상황을 언급하는 외에 중국의 여성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서도 비난할 것』이라고 발표.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하는 이라크 대표단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중동지역전역에 걸쳐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유엔감시하에 둘 것을 촉구할 것이라고 관영 영자지 바그다드 옵서버지가 27일 보도. ◎한국 대표단 36명 확정/새달 1일 출국 9월4일부터 15일까지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제4회 세계여성회의에 참가할 한국대표단이 28일 최종 확정됐다. 손명순 여사를 명예수석대표로 하는 대표단은 수석대표에 김장숙 정무제2장관,교체수석대표에 황병태 주중대사를 비롯,정무제2장관실,외무부,보건복지부,재정경제원,총리실,노동부등 8개부처 관계자등 36명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고문으로 국회여성특위 위원장인 이우정 의원과 정옥순·강선영·주양자·강부자·박정수·금진호 의원,여성정책심의위원회 박보희·이연숙씨,정세화 한국여성개발원장,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으로 입후보한 김영정 대한적십자사부총재가 참여하며 한국비정부기관(NGO)대표로 이미경·손봉숙·박영혜씨와 김영자 노총여성국장등이 참가한다. 대표단은 9월1일부터 출국한다.
  • 한강 인도교 폭파(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3)

    ◎「임진강교 폭파 실패」뒤 서둘러 준비 지시/미 참전으로 예정보다 하루 늦춰 결행 19 50년 6월25일 일요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은 다음날 26일 월요일에 벌써 수도 서울을 혼란에 몰아넣었다.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26일 밤 각각 긴급 국무회의와 긴급국회를 열어 27일 새벽 수원으로의 천도를 결정할 만큼 전선은 긴박하게 돌아갔다.그리고나서 28일 상오2시30분쯤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폭파해버렸다.한강다리를 폭파한 시간에 T33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아직 수도 서울의 중심부 밖에 있었다. ○개전 다음날 검토 착수 한강 다리 폭파계획은 전쟁 다음날 26일 상오부터 이미 검토되었다.전황이 매우 불리해지면서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불러들여 한강다리 폭파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졌다.이는 적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임진강 다리 폭파를 시도했다 실패한 과오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공병감은 공병학교 폭파교관 황원회 이창복 중위에게 폭파준비를 서둘러 지시했다.당초 폭파시각은 27일 하오4시로 결정되었다. 이같은 결정은 육군본부가 시흥으로의 철수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이날 하오2시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미군개입 가능성과 극동미군의 전방지휘소(ADCOM)가 한국에 설치될 것이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이 소식을 미군사고문단(KAMAG)단장대리 W H 라이트로부터 전해들었다.그래서 시흥으로 나앉았던 육군본부를 다시 용산으로 복귀시켰다.이에따라 한강다리는 결국 하루늦게 폭파되었다.이시영 부통령 일행은 폭파직전 한강을 마지막으로 건넜다. 이승만 대통령은 27일 상오2시 특별열차편으로 한강를 건너 대전으로 내려갔다.그런데 이날 한강다리가 폭파되기 30분전에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이 전파를 탔다.그 내용은 『미국의 적극적인 군사원조가 있을 것이니 국민은 총궐기해 반란분자들을 퇴치하자』는 것이었는데,사실은 사전에 준비한 녹음방송이었다.한강다리의 폭파는 결국 수도 서울을 사수하던 국군장병 4만4천명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국군 4만4천명 낙오 북한 공산군이 서울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시각이 28일 하오3시쯤이었으니까 다리 폭파를 6∼8시간 정도 늦추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뒷날 나왔다.이런 이유로 해서 공병감 최창식 대령은 군사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그러나 폭파를 명령한 육국 참모총장 채병덕은 7월27일 하동전선의 180고지에서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다.한강 다리가 끊겨나간 이후 육군 5개 혼성사단이 노량진 본동을 중심으로 모여 한강 방어선을 구축했다.서울에서 퇴각한 이들 부대는 명목상 사단편제였지 사실은 연대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개전한 시각에 한국의 우방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대통령은 미조리주 인디펜던스 자기 사저에 머물고 있었다.그는 당장 워싱턴으로 돌아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국무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음날 백악관에 도착했다.미국은 국제연합(UN)이 「평화에 대한 침략적 행위」로 규정지어 주기를 바라면서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지않는 전략을 취했다.그리고 미국무성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무렵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중공)대신대만의 자유중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회원국으로 총회 안보이사회 의석을 차지하도록 결정한데 항의하여 유엔을 보이콧하고 있는 중이었다.소련이 불참한 안보이사회는 즉각적인 전투중지와 38선 이북 원위치로의 철수를 요구하는데 결의했다.이와 더불어 유엔 회원국은 이 결의의 집행을 위해 한국에 원조를 제공하고 북한에 대한 원조 자제를 요청하는 안도 결의안에 포함시켰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북한 공산군이 서울 근교에 접근하던 6월27일(워싱턴 시간) 미공군과 해군에 한국정부를 엄호지원하는 명령을 내렸다.이날 유엔 안보이사회는 소련이 여전히 불참한 가운데 「무력침략을 격퇴시키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음날 28일 서울은 침략자의 손에 들어갔다.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엔의 경찰행위를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전 5일째가 되고 서울이 공산권 수중에 완전히 넘어간 다음날인 6월29일에는 맥아더장군이 자신의 전용기 바타안호를타고 동경에서 수원으로 비행해왔다.바타안호가 착륙하는동안 간이 활주로 한쪽 끝을 북한의 소련제 야크기가 공격했다.맥아더는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한편 임시수도 대전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적의 항공기로부터 요격을 피하기 위해 계곡을 따라 저공비행으로 수원에 와 닿았다.이들이 서울대 농과대학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안에 적의 전투기는 계속 기총소사를 해댔다. ○“미 해군 해안선 봉쇄” 맥아더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는대로 한국을 지원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약속했다.트루먼은 6월30일 일본에 기지를 둔 미공군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폭격을 승인했다.이와함께 한반도의 전 해안선을 해군이 봉쇄하도록 명령하고 맥아더 장군으로 하여금 한국에서 상당한 지상군 지원부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따라 찰스 스미드 중령이 이끄는 미 지상군 선발대가 일본 사세보를 떠나 부산을 거쳐 7월5일 평택에 도착했다.그러나 이 미군부대는 한국군의 한강 방위선을 무너뜨리고 계속 남하하는 북한군 탱크앞에 속수무책이었다.이런 상황속에 UN안보이사회는 7월7일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회원국은 그 군대를 미국이 지명하는 사령관 휘하에 둘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날 트루먼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주한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기에 이른다.개전후 뼈아픈 11일간이 지나가는 동안 유엔과 미국은 한국전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그리고 16개국에 이르는 회원국이 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특히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지상전에 주동적 참전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선 주변에 위험한 그림자를 깔기 시작했다.그 위험은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공산군 점령지역의 허리인 인천을 상륙한데 이어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한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로 다가왔다.1950년 가을이 저문 10월19일 저녁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넜던 것이다.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은 전쟁양상을 또 한번 바꾸어 놓았다. ◎미 「국가정보평가서」/“소,「한국전 중 개입땐 대전 확산」 예측”/“유엔군 내분 조장… 전력약화 기대/필요땐 중에 소 의용군 지원 태세” 1950년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했을때 소련은 한국전쟁의 세계대전 비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그와같은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시 미국은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국가정보평가서­11」(NIE­11)에 따르면 소련의 통치자들이 중공의 한국전 개입을 지시 혹은 재가하면서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위험성을 인지했다고 미국은 평가하고 있었다.NIE­11은 그러나 소련이 중공군 개입과 동시에 세계대전에 돌입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NIE­11은 또 소련이 세계대전 발발여부와 상관없이 미국과 중공간의 전면전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적고 있다.▲우선 미국과 연합군대를 다른 전장으로 유인해 병력을 소멸시킬 수 있고 ▲미국과 그 동맹국간 알력을 조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의 침공으로 유엔의 단결력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소련의 판단으로 추정했다. 이에따라 소련은 중공에 대해 적절한 물자와 기술인력,심지어는 의용군까지 제공해 한국에서의 중공군 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판단했다.특히 유엔군의 공중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중국내 거점 방위가 필요하다면 비행기와 대공포를 훈련된 요원도 함께 제공할 것으로 내다보았다.또 중국영토에 대한 미군(유엔)의 대규모 작전이 있을 경우 중·소조약에 근거해 중공에 대한 소련의 공개적 군사지원이 따를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NIE­11은 이어 사태추이를 볼때 중국 공산당의 개입목적은 유엔이 한국에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NIE­11은 미 중앙정보부가 1950년 12월5일 국무성 및 육·해·공군의 정보관계자들을 참여시켜 작성한 1급 비밀문서다.
  • 미,군장비 걸프지역 전진배치/미군 2만5천명 「최고 준비태세」

    ◎군대변인­이라크군 활동증가 견제 조치 【쿠웨이트·항모 링컨호 AFP 로이터 연합 특약】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두 사위 망명으로 야기된 이라크내 군사활동 증가에 대한 예비조처로 군장비를 만재한 미국 선박들이 걸프지역으로 속속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걸프지역 등에 있는 2만8천명의 미군들은 「최고 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스코트 레드 미해군 중장이 26일 밝혔다. 그는 이라크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걸프지역에 있는 2만3천명의 해군,육군,해병대 및 공군과 동지중해에 있는 항모 시어도어 루즈벨트호에 있는 5천명이 공식적인 경계태세는 아니지만 최고 준비태세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와의 합동훈련에 참가하고 있는 미군 대변인 오스틴 존슨씨도 이라크내에서 수상쩍은 군사활동이 감지된후 미국은 걸프지역에서의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말하고 7척의 미국 보급선들이 해병 1만6천5백명과 6천명의 육군이 30일간 전투하면서 지탱할 수 있는 각종 탱크와 대포,연료,식량,물,차량 등 기타 장비를 만재하고 걸프만으로 들어오고 있다고밝혔다.
  • 정전위 수석대표 한국군장성 재지명의 뜻

    ◎북의 정전체제 교란기도에 쐐기/대미 직접대화채녈 확보 요구도 거절/“대남 노선 불변땐 한·미입장 고수” 의지 한미양국이 25일 군사정전위 유엔측 수석대표로 다시 한국군 이석복소장을 지명한 것은 북한의 정전체제 와해 기도에 휘말려 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91년3월 유엔측 정전위 수석대표가 미군장성에서 처음으로 한국군 장성인 황원탁소장으로 임명된 이후 지금까지 정전위 수석대표 회담을 거부하는 등 단계적으로 정전체제 와해조치를 취하고 있다.북한은 ▲지난해 4월 3일 북측 중립국감독위 체코대표 철수 ▲4월28일 북측 정전위 일방 철수 ▲5월24일 판문점인민군대표부 설치 ▲10월28일 정전위 중국대표 철수 ▲올 2월28일 북측 폴란드 대표의 강제철수 등을 단행해왔다. 북한은 이와 별도로 미측과 지난연말 헬기 조종사 송환문제 해결을 위해 임시로 열린 북·미 장성급 접촉을 정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지난 4월 이후 비무장지대(DMZ)안에서 월경 행위 등 각종 도발행위를 저지르고 나서 미측과 대화를 요구한 것 등이 모두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한미양국은 그러나 『모든 문제는 정전협정에 따라 정전위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국군 장성의 수석대표 지명은 북한의 정전체제 교란 및 북·미간 직접대화채널 확보 요구에 대한 거절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한미양국은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정부의 한관계자는 『지난4월 수석대표를 제외하고 미군 및 한국군장성을 포함한 4명이 함께 대화에 나서겠다고 북측에 제의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북한이 지난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군사공동위 등 대화를 재개한다면 이 자리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결국 한미양국은 이번 정전위 수석대표의 한국군 장성 지명을 통해 북한이 대남적화노선에 따른 술책을 중단하지 않는 한,한미양측의 입장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과시한 것이다.
  • 남노동자 1명 입북/북 중앙방송 보도

    북한 중앙방송이 23일 춘천에 사는 전재원씨(34·남)가 제3국을 통해 의거입북했다고 보도한 것으로 24일 관계당국이 전했다.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북한 중앙방송이 전씨가 군대 제대후 가톨릭농민회 춘천지부와 건설부문 막노동에 종사했다고 주장했다』면서 『정확한 입북경위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 김 대통령 민자 전국위 치사/요지

    이번에 구조선 총독부청사를 실질적으로 철거했습니다.문민정부의 중요한 개혁 중의 하나입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도 32년 만에 부활시켰습니다.지방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름으로써 세계로부터 사랑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번 선거에서 패했습니다.반성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올바른 반성이 있어야 미래가 있습니다.반드시 앞으로 있을 중요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이것을 해내는 것이 민자당의 저력입니다. 12·12 관련 녹음테이프는 문민정부 탄생 이전 유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국민들이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느낌일까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저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제일 먼저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청산하고 정치군인의 옷을 벗겼습니다.그 결과 능력있고 깨끗한 사람에게 자리를 보장해 군의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통수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됩니다.저는 지금 확고하게 60만 대군을 통수하고 있는 것을 보람과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북한은 제가 93년 2월25일 대통령에취임한 뒤 3월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습니다.내 임기중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클린턴 미대통령과 3번 정상회담을 갖고 수십번의 전화를 통해 북한핵 문제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북한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신뢰회복을 위해 북한사정에 관한 모든 것을 공개하기를 삼가고 있습니다.흔히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한반도는 마지막 냉전지역입니다. 과거 독일통일을 예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한반도도 예외는 아닙니다.모든 사태에 대해 준비해야 합니다.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공직자 재산공개,정치관계법 개정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동참이 중요합니다.생활의 개혁,우리 모든 사회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8·15를 기해 대대적인 사면을 했습니다.앞으로 정기국회가 개회되면 1천만명이 넘는 일반사면도 단행할 것입니다.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고,진실로 큰 정치로나아가자는 것입니다.그러나 부정을 용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문민정부 출범 이후 저질러진 부정은 이번 사면에서 전부 제외했습니다.결코 부정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10월 아니면 11월에 유엔 안보리이사국에 진출할 것입니다.세계속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당은 단합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역사와 명분은 우리 당에 있습니다.누구하고의 싸움이 아니라 운명과의 싸움이 제일 중요합니다.역사에 끌려다니는 정당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당이 돼야 합니다.총재인 저 자신이 당을 직접 챙기도록 하겠습니다.민자당을 오늘의 정당이 아닌 미래의 정당으로 길러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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