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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역비리 관련자 명단

    ● 병역면제 청탁 금품공여자(135명)●구속 이용일(67·쌍방울구단주 대행·전KBO사무총장) 임금택(55·신한은행 서초지점장) 김경희(46·서울은행 응암지점장 홍성봉의 처) 조인택(61·세무사) 한대희(66·전 총무처 소청심사위원) 서용빈(29·프로야구선수·LG트윈스·보석) 마미숙(54·충남대 교수 이원웅의 처) 안승택(57·의사·부평안병원) 김교천(49·부산동아대 강사) 김영분(57·분당자동차학원장 배병태의 처) 민옥자(57·동남유화대표 최남호의 처) 최덕광(59·숙박업) 송진화(53·신생프러덕션대표) 이외룡(59·부동산임대업) 김현숙(50·회사원 김진철의 처) 양한묵(53·음식점 전무) 박춘옥(51·원창물산 상무 이강일의 처) 유일수(51·전 대유공영 대표) 이권재(48·전 로베르패션 대표) 노창식(61·무직) 권옥순(56·대원레저대표 박완순의 처) 김예균(54·개인택시) 박춘식(51·목수) 신영환(54·㈜신성 회장) 조규완(57·대창전기 대표) 송영섭(56·척추교정치료사) 민성기(49·철강판매업) 이상용(61·출판업) 김병준(50·㈜거봉 감사) 장재순(50·농장경영 김봉일의 처) 서재설(59·㈜삼성전기 부사장) 유병국(49·화랑운영) 이낙수(59·의류판매업) 김은배(46·회사원 이창명의 처) 오정자(57·삼익주택 법정관리인 원수언의 처) 정덕남(44·수산물중매인) 허창삼(52·㈜삼전 대표이사) 이한기(56·약국운영) 정광만(56·음식점경영) 고병헌(54·㈜금비 대표이사) 박청(55·직물도매업) 오동희(56·동조무역 대표) 오동훈(49·부동산임대업)●구속(적부심 석방) 주경빈(49·한양대 의대교수) 김용문(56·의사·강서고려의원) 백명자(62·한국기공 대표 서종국의 처) 구모환(49·동우직물 대표) 박무웅(55·신성전자부품 대표) 전용배(47·부동산임대업)●불구속(영장 기각) 김종윤(56·성남시의원) 송경(54·외환카드㈜ 감사) 전영실(51·의사·전영실 산부인과) 윤원조(59·건물임대업) 장유자(55·전 농어촌진흥공사 직원 단한주의 처) 정동건(54·개인택시) 홍기식(56·풍산전기 대표) 김정태(61·동양기업 대표) 김현수(54·삼립인쇄 대표) 이정상(55·무직) 이복연(54·의류판매업) 최종태(45·㈜우림해운 대표) 정혜경(48·영남정보통신 부사장 김용환의 처)●불구속 김영욱(51·하나은행장 김승유의 처) 최순강(55·가수·예명 김상희) 홍원식(48·㈜남양유업 대표이사) 이재홍(49·㈜대우중공업 상무) 전용수(55·인하대교수) 김병만(56·관악세무서 6급) 정창호(50·김포세관 6급)박철조(49·전 신한은행지점장) 방대영(63·전 주택은행지점장) 박순철(53·전 한일은행지점장)이석도(49·전 서초구청 도시국장) 곽원문(54·전 도로공사감리단 감사) 이혜경(52·LG LCD 사장 김선동의 처) 이근옥(69·전 호서대 교수 박윤성의 처) 강대균(68·변호사 임영득의 처) 김증자(56·변호사 최병륜의 처) 박순이(49·㈜LG화학이사) 이순상(53·의사 주영철의 처) 권혁권(63·의사·대림성모병원) 김기영(58·의사·서울구치소의무서기관) 구정열(56·의사·마산중앙자모병원) 이병원(60.의사·산재중앙병원) 우영혜(47·쌍용양회 지사장 권대헌의 처) 김명수(50·㈜해태상사 이사) 정영민(53·무역업) 이기석(43·건설업) 조재린(59·크린타치오 대표) 박융길(45·의류판매업) 김정택(57·건설업) 박재명(48·한일유통㈜ 부사장) 백송수(58·동성유통 대표) 송용민(52·전 ㈜이원대표이사) 이정희(50·음식점경영) 황태리(45·의류판매업) 한택환(49·부동산임대업) 김영창(57·건축사) 감경철(55·㈜익산 대표이사) 김두환(56·스포츠용품점) 문희지(61·부동산임대업) 정석명(53·의류제조업·두손 어패럴) 허용호(51·상원산업대표) 주명희(46·주부) 김은정(56·약사) 송희순(53·주부) 채실경(46·부동산임대업) 박상석(53·다남산업 전무) 김용심(50·건화상사 부회장 정우경의 처) 이재오(44·루치아노 대표 최원만의 처) 송인복(59·주부) 전희식(58·완구제조업) 우금순(58·환경미화원 박성구의 처) 방기봉(52·무직) 한은순(45·제마트 대표 임성재의 처) 정양호(55·국세청 5급) 최승계(55·무직) 안동진(52·무직) 장신자(57·전 농협직원 최정웅의 처) 정춘자(54·신라교역 대표 박준형의 처) 김병성(55·.의류판매업)●지명수배 김찬영(61·개풍산업㈜ 대표) 정종대(53·그린웨딩홀사장) 이민우(28·프로농구선수) 갈지원(53) 김용희(56) 신정희(50) 여창대(51) 박성래(55) 박정하(51) 허계근(57) 이상도(57)●참고인 중지 이연우(59·전 상업은행과장) 이명복(50·무직) 김유진(54.주부)● 알선자 및 전직 군의관(49명)●구속 최기택(44·서울병무청 7급) 정건표(46·〃 6급) 김재우(56·〃 6급) 김종기(43·〃 7급) 김세환(40·〃 7급) 이인옥(43·〃 7급) 유남술(54·〃 6급) 정윤근(47·병무청 징병검사과 6급) 박기석(56·〃 총무과장 4급) 이영운(40·〃 감사실 6급) 이영운(40·〃〃) 송두표(47·〃 산업지원과 5급)한상태(54·〃 징모국 4급) 박용원(41·경기병무청 8급) 허주철(45·〃 6급) 이기왕(52·신길1동 병무담당 7급) 김정권(57·전 모병관·해군준위) 성치용(55·전 국군수도병원·대령) 장용기(50·〃 소령) 이승준(59·전 관악구청 5급) 유광영(54·건물임대업) 권태훈(50·평화초등학교 7급) 나춘균(48·반도정형외과 의사) 이민용(39·의사·전 군의관) 손호열(39·〃〃) 김경수(32·〃〃) 이일철(35·〃〃) 이상표(34·〃〃) 이춘오(46·울산대학병원의사)●불구속 김진우(34·의사·전 군의관) 김평호(36·프로야구 코치) 곽주표(55·예비역대령) 소병빈(53·〃) 강선호(52·건물임대업)●지명수배 김진대(51·서울병무청 6급) 김영식(42·〃〃) 김영국(55.서울병무청 6급) 성용현(47·〃〃) 이흥섭(40·〃〃) 안계영(40·〃 7급) 양태근(40·〃〃) 조진구(45·〃 기능직) 조문길(48.전 〃 직원) 한소열(52·병무청징병검사과 6급) 김종근(41·경기병무청 7급) 최경희(51·전 강남구청 병사계장 6급) 황동연(44·전 성동구청 직원) 이상진(67) 정재효(63) 이상직(61)● 군인 및 군무원(23명)●구속 임영호(37·국군수도병원 외과처장·소령) 고기복(38·〃 안과과장·소령) 최경석(34·국군수도병원 신검과장·소령) 송상현(35·국군수도병원정형외과·대위) 윤영현(34·〃 정형외과·소령) 김익수(37·〃 정형외과장·소령) 윤태일(32·〃 정형외과·대위) 김장훈(34·〃 안과·소령) 김도술(52·〃 주임원사) 김양태(48·〃 군무원·7급) 이정수(50·〃 주임원사) 김용호(52·국군부산병원 주임원사) 임종범(47·〃 행정부장·중령) 임만석(48·국군대구병원 행정부장·중령) 김경환(35·국군 백제병원 안과·소령) 김인식(37·국방부 의무실장·소령) 박종영(45·〃 합조단 군무원 5급) 허성초(36·육군본부 의무감실·소령) 윤일선(39·공군교육사 진주기지병원장·소령) 조규섭(37·공군15비행단 신경외과·중령) 김규형(48·의무사령부 인사행정처장·대령) 정인호(44·〃 인사과장·중령) 여광조(46·연합사령부 기무대·준위)
  • [외언내언] 북한 군사우위정책 /장청수 논설위원

    4월25일은 북한 인민군 창건 67주년 기념일이다.북한은 48년 2월8일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당초 이날을 창군일로 기념해 오다가 지난 78년부터 김일성(金日成)이 만주에서 조직했다는 반일인민유격대 결성일인 32년 4월25일로 바꿨다.알려진대로 북한 인민군은 6·25동족상잔을 일으킨 주력군으로 또는 북한 사회주의 존립의 보루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군의 위상과 역할은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金正日)체제 출범이후에도 지속돼 무소불위를 자랑하고 있다.김정일체제 출범 이후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이며 당’이라고 역설함으로써 기존의 당우위에서 군사우위정책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체제고수를 위한 군대의 중요성을 거듭강조하는 등 북한군의 제고된 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북의 이같은 군사우위정책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명백히 나타나 있으며 김일성생일인 이른바 태양절을 기해 군장성 79명을 대거 승진시킨 것은군사우위성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북한의 이같은 군사중시 정책은 김정일이군에대한 지속적 관심과 배려를 표명함으로써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위축된군의 사기진작을 통해 절대적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군부에 대한 카리스마가 약한 김정일로서는 군부를 장악하지 못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통치 전략으로 이해된다. 김정일체제 출범과 맞물린 북의 군사우위정책은 과다한 군사유지비로 북한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북한 군부가 권력의 핵심을 장악할 경우 한반도 안보에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도 군사우위정책은 포기돼야 한다.총칼로 유지되는 정권은 총칼에 의해 멸망한다는 것은 세계사적 교훈이다.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도 결국 비극적 종말을 고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며 이는역사의 필연이다.현 시점에서 북한당국이 선택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무리한 군사우위정책을 포기하고 남북당국간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보장을 제도화하는 일이다.그리고 과다한 군사비 지출과 군사적 모험주의를 중단하고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그 길이 바로 북한의 체제말기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이 함께 번영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4者회담 핵심문제는 평행선

    제네바 오일만 특파원 4자회담 개막식에 이어 25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분과위원회가 열렸다.처음으로 실질적 토의에 착수한 만큼기대감도 높았지만 ‘분단의 벽’은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았다. ●긴장완화분과위는 예상대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의제로 명시하자는 북한주장을 놓고 ‘평행선 대립’이 계속됐다.한·미 양국은 “실천 가능한 쉬운 문제부터 논의하자”며 ▲남북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설치 ▲군사훈련의통보 및 군사훈련 참관 허용 ▲군인사 상호 교류 등의 의제 선정을 제의했다. 북한측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 긴장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맞서 이견 해소에 실패했다. 평화체제구축분과위도 난항을 겪었다.평화협정 체결의 주체 선정을 고집한북한에 대해 한·미는 “외국 사례를 검토하면서 평화협정 내용을 토의하자”고 주장,결론을 내지 못했다. ●24일 4자회담 전체회의는 의장국인 미국의 찰스 카트먼 대표의 사회로 각국 대표들의 기조연설과 의제에 대한 각국의 의견교환 순으로 이어졌다. 초반부터 시각 차이가 커 난항을 거듭했지만 구체적 사안은 분과위원회로넘기자고 합의,일단 ‘한고비’를 넘겼다.4국 대표들은 또 분과위원회와 별도로 수석대표회담을 수시로 소집해 합의가능성을 높이도록 했다. 박건우(朴健雨)한국측 수석대표는 “50년 묵은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하는 만큼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군사핫라인 설치 등 3개 항을 제의. 반면 북한 김계관(金桂寬)대표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선행을 주장했다.중국의 첸융넨(錢永年)대표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며 ‘실질적 접근’을 요구하는 한·미 입장을 지지했다. ●회담장소 제공국인 스위스의 적극적인 ‘중재’도 눈길을 끌었다.크리스티앙 뒤낭 대사는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유럽안보협력(OSCE)의진행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며 “4국이 원한다면 스위스 군대를 방문해 OSCE 검증 대표단의 상호 검증 절차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의했다. 스위스측은 ‘판문점 인도적 회랑’설치 방안도 제시한 바 있다.
  • [대한광장] 민중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 / 도진순 창원대 교수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당시 고려에서는 배운 것 없는 비천한 남녀들까지도 고구려의 ‘동명설화’를 즐겨 이야기하곤 했다.그러나 많이 배운 이규보는 그 얘기를 듣고“공자님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동명설화는 참으로 황당무계하다”며 간단히 무시해버렸다.그런데 그 뒤 이규보는 ‘구삼국사기’의 동명왕 본기를 여러 번 읽고 난 뒤“이는 황당한 것(幻)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聖)”이라 찬탄하게 된다. 동명설화에 대한 이규보의 이러한 변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슨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규보의 원래 이름은 인저(仁^^)였다.그런데 그가 과거(科擧)시험을 보려고 할 때 ‘규성(奎星)’이라는 별의 신이 노인으로 나타나‘네가 장원을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이후 그는 ‘별로부터 보고받은 사람’,즉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꿔 쓴다.과거시험에 대한 집착과 함께 하늘로부터 점지받았다는 대단한 자부를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규보는 무신정권기라는 불우한 시절을 만나 과거급제 이후에도 9년 동안이나 실업자생활을 하게 된다.이때 그는 이규보라는 이름 대신 백운거사(白雲居士)를 자처하며 방랑과 방황을 하면서 민중세계와 접하게 된다. 그가 ‘동명왕편’을 쓰게 된 시기는 실업자생활을 시작한지 3∼4년 정도 되던 때였다. 과거공부를 하던 이규보가 접했던 책은 ‘사기’ ‘한서’ ‘후한서’ 등주로 중국 책들이었다.여기에는 중화세계는 있었지만 고려의 현실은 없었다. 반면에 실업자 백운거사가 접한 것은 중국 사서보다 세련되지 못한 신화·설화였지만 그 속에는 나라와 민중의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신화·설화적인 형태를 역사의 장으로 끌어 올리는 데는 시가 적격이라 하여 ‘동명왕편’을 지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에서 당쟁이 더욱 심화된 것은 아마도 명(明)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국가의 안보가 명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대의그릇된 믿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돼 청나라로부터 문물을 배우자고 한 북학파의 박지원에게도 남아 있었다. 박지원이 연행길에 올랐던 1780년은 청의 최전성기인 건륭(乾隆) 45년으로명나라의 숭정(崇禎)황제가 죽은 지 136년이나 지난 뒤였다.그럼에도 그는‘건륭 45년’을 굳이 피하고‘숭정 153년’이라는 명의 연호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할 수 없음으로 그는 부득이 ‘숭정 기원(崇禎 紀元)’을 생략한 채 ‘후삼경자(後三庚子·숭정 기원의 해는 경자년으로 세 번째 맞는 경자년이라는 뜻)’라는 연호를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민중들은 비록 세련되지는 못한 설화의 형태였지만 임진란 당시 이미 명나라에 대한 자주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었다.그들은 명나라 군대가 구국에 도움준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지만,대국 군대가 이국에서 행한 방자한 토색을 직접 맛보아야 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당시 민중의 설화는 이미 이여송과 명군의 횡포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민중의 이야기는 공식적인 역사로 쓰여지진 않았지만 식자들보다 앞서는 현장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사대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근대 이후정당한 것으로 역사에 등록되었다. 오늘날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의 원리를 꿰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일수록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정리해고와 노동·실업의 현장,한·일어업협정과 어민들의 현장,농협과 농민의 현장 등등.비록 문법에는 맞지 않는 신화적·설화적인 수준일지라도 민중이야기는 늘 진실의 보고이다. ‘세계화’를 모르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세계어로 말하는 식자층일 수 있다.구체적 귀결인 현장의 소리를 외면함으로써./한국사
  • 李鐵基교수 아시아사회과학硏 학술포럼 주제발표

    통일한국의 적정 군사력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이철기(李鐵基)동국대 교수는 24만∼28만명의 군인을 보유해야 한다는 1차적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원장 李長熙 외국어대 교수)주최‘남북한 군사력 평가와 적정 군사력 수준’학술포럼에서 밝힌 이 교수의 주제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국가의 적정 군사력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외적 안보환경을 고려해야 한다.통일 후 주변의 잠재적국들로부터 제기되는 안보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주변 강대국들과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방어적 충분성’의 원리에 입각한 자위에 필요한 전력의 보유를 말한다. 그 다음으로 통일국가가 지향해야 할 군사력의 구축방향이 고려되어야 한다.말하자면 통일국가의 군대는 병력 위주의 군대가 아니라 ‘소수 정예의 과학군’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음의 과제를 부과한다.첫째,병력의 대폭적인 감축이 수반되어야하며 육군 위주에서 탈피하여 육·해·공군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통일국가의 군사력은 경제력에 걸맞은 세계 10위권수준의 견실한 중견국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한국의 적정 병력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통일국가의 인구수를 추계하는 것이 필요하다.통계청이 유엔의 자료를 토대로 추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까지의 남북한 총인구는 남한(5,061만여명)과 북한(2,911만여명)을합쳐 7,973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통일국가의 인구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인구면에서 가장 적당한 참고 대상국이 독일이다.독일 등을 참고로 할 때 통일국가의 적정 병력은 인구 대비,0.3∼0.35% 수준이면 충분하다.이를 예상인구 8,000만명에 대입해보면 통일국가의 적정 병력수는 24∼28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육·해·공군의 비율도 점증하는 해양의 중요성과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위치를 고려할 때 60 대 20 대 20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한은 통일국가의 적정 군사력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군사력을 감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통일에 이르기까지 군축 과정을 평화체제단계,국가연합단계,통일국가단계의 3단계로 나눠 단계마다 보유 상한선을 설정해 무기와 병력을 감축해 나가는 것이다. 정리 구본영기자 kby7@
  • 4者회담 포용정책 시험대로

    제네바 오일만특파원 24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4자회담 5차 본회의는또 한번의 ‘대북 포용정책 시험장’이다. 이번 회의도 역시 ‘기대반 우려반’에서 출발하고 있다.기대는 지난 1월4차회담부터 가동된 긴장완화·평화체제 양 분과위가 ‘본궤도’에 오른다는 점이다.‘우려’는 북한이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북한은 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정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되풀했다. 한·미양국은 이번 회담에서는 초보적인 신뢰구축조치(CBM)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이다.양국은 남북한 군사통신망 설치,군인사 교류,군사훈련 사전통보·참관,인도물자의 판문점 직접통과 등을 제의할 방침이다. 본회의를 앞두고 4국은 양자회담과 차석대표회의를 잇따라 열어 의제선정을 위한 이견조율을 시도하는 한편 본회의 진행절차 등을 논의했다. 한·미는 22일 저녁 늦게까지 박건우(朴健雨)-카트먼 수석대표 주재로 양자회담을 갖고 긴밀한 한·미 공조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권종락(權鍾洛) 외교부 북미국장은“주한미군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거론하지 않기로 의견을모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등 기존입장을 되풀이할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에서 모든 군대문제와 함께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수 있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도 23일 오전 양자회의를 통해 “실효성있는 회의를 진행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회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23일 오후에는 4국은 차석대표회의를 열어 5차회의 진행순서와 형식 등을논의했다.이날 회의에서 4국은 24일 전체회의,25∼26일 긴장완화·평화체제양 분과위 가동 등으로 가닥을 잡았다.회의 마지막 날인 27일엔 분과위 토론내용을 문서로 전체회의에 회부키로 했다. 한편 21일 제네바에 도착한 북한대표단은 23일 미국과 양자회담을 갖고 긴장완화·평화체제 양 분과위 의제선정 문제와 금창리 지하시설 현장방문의 구체적 방안을 협의했다.
  • [金三雄 칼럼] 민주와 개혁은 양립되는가

    우리는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안고 있다.대표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묘청과신돈,조선 건국기의 정도전,중기의 조광조·율곡·정조,후기의 전봉준·대원군·고종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한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이들 중에는 국왕을 비롯한 권력자도 있고 학자와 개혁사상가도 포함된다. 개혁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무난한 방법은 권력자가 스스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이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두번째는 개혁사상가들의 뜻을 받아 권력자가 추진하는 옆으로부터의 개혁이다.상당한 불안과 정쟁의 요인이 따르는 방법이다.마지막은 개혁운동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적 방법이다.자칫하면 내란 또는 정변으로 이어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①은 정조와 대원군,고종의 개혁정치를 들 수 있고 ②는 신돈,정도전,조광조,율곡 ③은 묘청과 전봉준의 경우를 든다. 묘청은 서경천도·칭제건원 등 획기적인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신돈은 무신란과 원(元) 간섭기를거치면서 득세한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작업을시도하다가,정도전은 신권론(臣權論)으로 집약되는 국정쇄신을,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특권과 비리를 혁파하고 합리적이고 기능 위주의 관료체제 확립과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율곡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강화와 왕도정치를,‘탕평 군주’ 정조는 정치개혁을 총론으로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각론으로 하는 국정개혁을,전봉준은 척왜척양과 12개 폐정개혁,대원군은 서원철폐와 부패척결 등 갑오경장,고종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을 각각 추진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좌절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이 발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했다.왕조나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쇠퇴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개혁이나 경장을 서둘러야 해체의 비극을 겪지 않게 된다. 고려가 신돈의 개혁정치를,조선조가 조광조와 율곡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의 개혁요구만이라도 수용했다면 ‘해체’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여년의 군사통치유산과 김영삼 정부가 남긴 국가부도위기 그리고 남북대결과 지역갈등구조 등 그야말로 쇠퇴 또는 해체기의 국정을 맡아 ‘제2의 건국’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사 대부분의 개혁작업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도전에 의해 좌절되었듯이DJ개혁도 이들에 의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기득세력은 친일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거나 정경,정언유착을 통해 수혜를 받은 계층이다.이들은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더 연연한다.때문에 개혁에 도전적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보수 기득세력은 또 그렇다 치자.입만 열면 개혁과 통일,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인·지식인,노동계는 어떤가.국난극복과 개혁의 당위보다는 지역,파벌,계층,집단이기주의를 우선한다.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은 도덕성과 정당성에서 비롯된다.독재·부패정권에 협력하거나 기생해온 지식인·언론인들의 오늘의 비판자세는 어떠한가.최근 칼럼 미게재에 항의하면서 신문사를 떠난 한 언론인은 “포악한 정권에겐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 아래선 교활하다”고 토로하면서 “과거 정권 아래선 능동적으로 나쁜 짓 하던 언론이 이제는 매사를 트집잡고 비판해.집권세력을 보는잣대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해.하고 있는 것의 ‘동기’,집권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지”라고 말했다.이런 언론인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설 땅이 없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이고 지성계이며 개혁의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4·19후 장면 정권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이를 말해준다.DJ정부의 개혁작업이 주춤거리는 것도 반개혁 세력의 도전과 자율에 대한 악용에서 비롯된다. ‘자율’을 존중하되 악용·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혁이 요구된다.남한 180만 실업자,북한 300만 아사자를 둔 민족적 재앙과 문명사적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의 네트워크가 시급하다.우리에겐 실패한개혁의 역사를 되풀이할 여지가 없다. 김삼웅 주필
  • 美행정부, 지상군 투입 철저 배제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행정부가 유고 공습에 지상군 투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4일 시작된 나토의 공습을 회의적으로 지켜보던 여론은 물론다양한 색깔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지상군 투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다. 여론은 60%가량이 코소보공습을 찬성했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지상군을 투입해야 완전한 승리를 빨리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회는 민주당의원들 사이에서는 물론 군사 쪽에 밝은 상원의 존 매케인 의원이나 존 워너 군사분과위원장은 한결같이 지상군 투입을 주장해왔다. 15일에도 상원 군사위에서 미국과 나토가 공습에만 의지해서는는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을 몰아내고 코소보 인종청소를 끝낼 수 없으며 오히려‘재난을 자초하는 처방’이라는 비난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미 행정부와 일부 나토국가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유고내 군사력을 그대로 둔채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없는 손실만 가중시킨 채 전쟁을 장기화시킬 뿐더러인명피해로 인해 평화보장이란 명분이퇴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고는 잘 알려졌듯이 게릴라전에 능한 강인한 군대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전설적인 티토의 게릴라전 전통이 아직 내려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토는 밀로셰비치가 나토의 지상군 투입에 게릴라전으로 맞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 속에 굳이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그럼에도 공습 사이를 비집고 유고가 민간인 학살이나 코소보 영역확보에지금처럼 계속 전념하는 한 지상군 투입을 요구하는 미국내의 목소리는 앞으로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朴康文 코너]’당구게임’과 ‘마지막 수업’

    방비를 해야 탈이 없다.율곡 이이가 10만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뒤에 왜군에 국토를 짓밟히고 임금은 압록강까지쫓겨가야 했다.프랑스도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시대에 군비를 소홀히 했다가 프러시아 군에 파리를 포위당하는 꼴을 당했다. 프러시아 군대의 침공이 있기 3년 전인 1867년 프랑스 전쟁장관 아돌프 닐원수가 군비 현대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했다.병력과 군비를 단단히 키워온 프러시아 군이 예상대로 1870년 프랑스로 쳐들어왔다.프랑스는 프러시아의 왕 빌헬름 1세가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을 차지하고여기서 의기양양하게 독일황제 대관식을 치르는 것을 구경해야 하는 국민적수치를 맛보았다.나폴레옹 3세는 황제 자리를 잃었다.프랑스는 제3공화국 시대로 넘어갔다. 다음해 강화조약에서 알사스와 로렌 지방을 프러시아에 떼어 주었는데,이시절 이야기를 쓴 알퐁스 도데의 작품 하나가 ‘마지막 수업’이다.이 소설은 꽤 오랫동안 우리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시간 이야기가 우리에게 각별한 감명을 주는 것은 일제에 강제 합병되고 국어와이름까지 말살되는 지경을 겪었기 때문이다. 제 나라 말을 마음대로 쓴다는 것이 보통 때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지만,그럴 자유를 잃으면 그처럼 서러운 것이 없다.프랑스 국민에게 애국 교과서가 될 만한 이 소설을 쓴 도데의 다른 작품 ‘당구 게임’이라는 것도 같은단편집 안에 함께 들어 있다. ‘당구 게임’은 지도층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생각된다.프러시아 군대가 눈앞에 몰려온다.전령이 급박한 상황을 사령부로 전하는데 사령부에서는 아무런 명령이 없다.그 시각에 사령관인 장군은 멋진 정장을 하고 부하 장교와 당구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이윽고 사령부 마당에 포탄이 떨어져도 이 배짱 두둑한 장군은 전혀 동요가 없다.결국 장군은 당구를이겼으나,장군의 군대는 패주했다. 이 ‘당구 게임’은 우리 외환 난리 전후의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우리 사령탑이 닥쳐오는 전쟁을 보지 못하고 무슨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대통령 선거와 국난이 함께 물려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불행이었다. 우리 경제정책 수립과 시행에 오래 관여한 고위 공직자 한 분을 인터뷰한일이 있었다.그때 골프 금령이 풀리지 않은 때여서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뒤에 알고 보니 그의 취미는 골프고 실력은 ‘싱글’이라고 했다,고위 경제관료가 한 단위 숫자 핸디캡이 되도록 골프를 쳐대는데 신경을 쏟았으니 나라 경제가 제대로 되었겠는가,골프 또한 ‘당구 게임’이 아니었는가.‘당구 게임’은 이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독일의 강자 프러시아가 제2제정 프랑스를 친 것은 독일과 유럽의 복잡한정세 때문이었지만,그 전 제1제정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독일이 혼난일이 있었으니까 설욕한 셈이기도 했다.나폴레옹의 성세에 독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되었을 때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민족정신을 고취했다.그 뒤 부단히 국력을 기른 프러시아는 방비가엉성해진 프랑스를 쳤다. 알퐁스 도데 단편집은 ‘당구 게임’의 장군들 때문에 종국에는 ‘마지막수업’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우리에게는 ‘당구 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는 대담하고 대범한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있다.그 동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을 고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다시 또 난리를 당하지 않으련만, 제 잇속 챙기고 제 기분 내는 데만 마음을 쏟으니 언제 또 민초들만 녹아날지 걱정이다. [편집국 부국장 pensanto@]
  • 임동원 청와대외교안보수석, 韓·美 주한문제 논의 가능

    임동원(林東源)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12일 주한미군의 지위변경 논란과 관련,“한·미 두나라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진전이이뤄질 때 한반도내 모든 군대의 구조나 배치문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서 “이 때 남·북간의 군사력과 주한미군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입장”이라고 밝혔다.
  • [인터뷰] 자민련 姜昌熙신임총무

    “솔직히 염치가 없고 송구스럽다.”자민련 강창희(姜昌熙)신임총무의 취임 일성이다.12일 의원총회에서 선출되자 인사치레로 한 말이다. 강신임총무는 승승장구중이다.사무총장·과학기술부장관에서 원내총무로 이어지고 있다.공동정권 출범 1년 남짓 동안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다.‘잘 나간다’는 비아냥마저 사고 있다. 강총무는 “훌륭한 동료의원들도 많아 박태준(朴泰俊)총재에게 고사했다”고 소개했다.그러면서도 “총재님도 그러시고 총리께서도 간곡한 권유도 있고 해서 당이 어려울 때 기꺼이 나서는 게 도리”라고 소감을 대신했다.그는 “순리와 상식에 벗어나서 잘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정치에는 원칙이 있다”고 강조했다.“이 세가지를 바탕으로 윗분과 상의하고 동료의원들의 조언을 구해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서는 “상대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나라당이부영(李富榮)총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형님으로 부르고 있어 얘기가 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정치개혁협상 등 현안에는 “지금부터 파악할 것”이라고 즉답을 유보했다. 오는 8월까지 내각제 논의 중단에 대해 “총장 재임중 대선후보 단일화와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으므로 주역은 아니지만 책임은 있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내각제 소신에는 변경 여지가 없다”면서도 “다만 8월까지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니 그 테두리 안에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53 ▲대전고 육사 ▲육군대 교수 ▲민정당 조직국장 ▲총리비서실장 ▲자민련 사무총장 ▲과학기술부장관 ▲11,12,14,15대 의원
  • “승용차 구입 이달이 적기”

    ‘차를 구입하려면 이달중에 사세요’ 승용차 성수기인 4월을 맞아 현대,기아,대우 등 자동차3사의 판매전쟁이 뜨겁다.파격적인 할부제와 다양한 할인제가 선을 보이고 각종 판촉행사도 잇따라 차량구입에 유리한 시기다. 할부및 할인제도 현대는 아토스,엑센트,아반떼를 대상으로 프라임할부를실시한다.할부방식은 인도금 액수(10만원에서 구입금액의 40%까지)에 따라정상금리(연리 13.8%)의 절반수준인 6∼8%를 적용한다.보너스할부는 평월에는 일반할부금액의 60%만 내고 1년에 한번만 평월의 8배를 한꺼번에 납입하는 방식으로 매달 내는 할부금에 부담을 느끼는 샐러리맨에게 유리하다. 대우는 할부금 납입시기를 2000년 1월까지 유예해 주는 밀레니엄 할부제를실시한다.보험료,등록비 등 차량구입 부대비용을 차종에 따라 120만∼200만원까지 연 6∼10%의 저리로 대출해준다.대상차종은 라노스,누비라Ⅱ,레간자,브로엄,이스타나등이며 할부기간은 24개월과 36개월 두가지다. 13.8%의 금리를 적용하는 정상할부땐 차종에 따라 20만∼50만원을 할인해준다. 기아는 3사중 유일하게 무이자할부를 시행하고 있다.할부금리를 6%로 낮춘수퍼할부제도와 계약금 10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모두 할부로 납입하는 전액할부제도도 실시중이다.일시불 구입땐 차종에 따라 10만∼50만원을 깎아준다. 판촉 이벤트 대우는 ‘대우오토카드 더블포인트’,‘대우오토 마일리지 페스티벌’등의 이벤트를 벌여 할인혜택을 준다.이중 대우오토카드 더블포인트제는 대우오토카드를 갖고 있는 고객이 레간자를 사면 카드적립포인트 금액의 2배,최대 60만원까지 할인해준다.중형차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레간자 밀레니엄 스페셜 모델을 내놓고 구입 선착순 2,000명에게 최고 40만원까지 할인해준다. 현대는 4월 한달간 ‘해피투게더-현대 대축제’를 펼쳐 직장과 아파트 주민,가족 등이 2대이상 단체로 구입하면 특별보너스를 제공한다.대상차종은 아토스,엑센트,아반떼 등 3개 모델이다.상장회사,5대그룹 계열사,공기업,군대,은행,학교,중앙부처및 지방정부의 직원중 2명이상이 2∼4대를 구입하면 1인당 도고 수안보 백암 등 온천지 호텔의 하루 숙박권을 받을 수 있다. 기아도 4월중 승용차를 구입한 전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등 한명에게 노트북 컴퓨터를,2등 100명에게는 레스포 MTB자전거를 증정한다.또 스포티지와 레토나를 산 고객중 추첨을 통해 20명에게 금강산 관광을 보내준다.
  • 金대통령, 해병대 50돌 축하메시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축하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성장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해병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해병이 한국전쟁과 월남전,그리고 대간첩작전을 통해 쌓아올린 혁혁한 전공은 국민의 방패다운 자랑스러운 것”이라며 “그 고귀한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 이모저모

    ┑베오그라드 워싱턴 외신종합┑ 나토는 공습 16일째인 8일 새벽(현지시간) 유고 수도 도심 등에 폭격을 계속했다.이에 앞서 브뤼셀을 방문중인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7일 웨슬리 클라크 나토 총사령관과 전황을 검토한 뒤 나토의 공습을 강화하기 위해 전투기 등의 추가 배치를 요구한 클라크 장군의요구를 수락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는 보도했다. 미국은 7일 전쟁범죄나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유고 연방군의부대장 9명을 거명했다.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코소보 중부에 배치된 유고 252 기갑여단의 부대장 밀로스 만디치 대령 등을 일일이 지목하면서 헤이그의 국제전범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셰이 나토 대변인도 세르비아 지도자와 군대의 전쟁범죄 행위를 기소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밝혔다. 유고 상공에서 정찰활동 중이던 미군의 무인정찰기가 7일 유고 방공망에격추된 것으로 보인다고 미 국방부 관리들이 밝혔다.이 무인정찰기는 대당가격이 30∼35만 달러로 전투지역의 영상자료를 전달하는 일을 해왔다. 미국의 3대방송 중 유고 공습 보도와 관련해 ABC 방송의 ‘월드뉴스 투나이트’가 가장 비판적인 반면 CBS의 ‘이브닝 뉴스’가 가장 지지하는 입장을,NBC의 ‘나이틀리 뉴스’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공습이후 8일 동안 3개 방송이 내보낸 208건의 보도 가운데 142건의 소식통 논평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52%가 공습을 지지,48%는 반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7일 유고 연방에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러시아 하원의 요구를 거부했다.옐친은 유고분쟁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크레믈린궁 대변인이 전했다.
  • 나토, 왜 공습 계속하나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유고의 유화 제스처를 무시하고 나토군는 공습을계속 강행하고 있다.오히려 날씨 호전을 십분 활용해 공습강도를 몇 단계 높힌 양상이다. 코소보에서 유고 군대의 철수가 선행되지 않고 있는 등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아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고 나토는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해 여론도 수긍하는 입장이다. “밀로셰비치가 군대를 코소보에서 철수하고 나토 군대주둔 안을 받아들일때”만이 공습중지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클린턴은 유고의 일방적 휴전선언 뒤 즉각 지적했었다.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 역시 “유고의 일방적 휴전선언은 그들이 학살만행을 언제든지 계속할수 있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유고의 선언 만으로는 공습을 중지할 수 없음을 확실히 했다. 섣불리 현 단계에서 휴전을 한다거나 외교적인 해결을 시도했다가는 코소보에 주둔한 유고군대의 만행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한다.코소보를 보는 유고의 시각이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공습 이후 실질적으로 개선되거나 변화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휴전한다는 것은 100만 코소보 난민이 안전하게 자기 거처로 돌아가는 것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실책이 될 수 있다. 결국 코소보 내에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세르비아계의 위협없이 살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기 전까지는 밀로셰비치가 무슨 수를 쓰든지 공습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즉 유고 군대의 코소보 철수와 난민의 귀환,그리고 평화유지군으로서 나토군의 코소보 주둔을 꼭 이루고 만다는 것이다.
  • 외교부관계자, 4자회담 5차회의서 주한미군 간접논의 가능성

    외교부 한 고위관계자는 7일 “이달로 예정된 4자회담 5차회의에서 인민군과 국군,주한미군 등 한반도 내 군대의 재배치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미국도 반대하지 않고 있어 주한미군 문제가 간접적으로 논의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날 “주한미군 문제가 4자회담 5차회의의 단독의제로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미국은 4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논의할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현상유지를 통한 윈-윈 전략을 세계전략으로 채택한 만큼 주한미군 지위변경 등의 문제는 신뢰회복과 평화체제 구축 전까지는 논의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 이달 개최 4者회담 5차본회의‘주한미군’ 본격 논의될까

    남북한과 미국,중국 등 4국은 5일 한반도 4자회담 5차 본회의를 이달 안에스위스 제네바에서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5차 회의를 앞두고 ‘주한미군 문제’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핵심은 주한미군의 지위문제를 회담 의제로삼느냐는 것이다. 당초 오는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5차 회의는 북한의 일정조정 요청에 따라4국 실무접촉을 통해 ‘4월 개최 원칙’에 합의했다.다만 세부 일정과 의제선정은 추후로 미룬 상태다.5차 본회담부터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질적 토의에 들어간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한미군 철수는 대외 선전용에 불과하며 현재 북한과 적대적 관계로 설정된 주한미군의 지위를 ‘중립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이북한의 최대 관심사라는 주장이다.북한이 미군주둔을 인정,동북아의 ‘안정자’역할을 기대한다는 적극적 해석까지 나온다.지난 3차 회담에서 북한이주한미군 ‘철수’ 대신 ‘지위변경’이라는 용어를 사용,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적어도 5차 회담의 의제로 삼지 않겠다는방침이다.외교부 權鍾洛북미국장은 “평화체제 구축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때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의 모든 군대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할수 있다”고 못박았다. 최근 洪淳瑛외교부장관도 “주한미군은 포괄적 대북 접근 구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남북 평화공존 체제가 정착되기 이전에 주한미군의 지위변경이나 철수 문제에 대해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배수진이다.한·미 양국을교란시키려는 북한의 고도의 협상전술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친일의 군상(31)문명기

    ◆경북 영덕 최고부자 文明琦 잊을만 하면 한번씩 기자를 찾아와 친일파·현대사 인물 등에 관한 자료(정보)를 제공해주는 분이 한 분 계신다.겨우 이름 정도를 알고 있을 뿐 그 분의 신상에 대해선 자세히 알 길이 없다.다만 그 분이 건넨 자료 가운데는 대단히 우수한 것들이 많음에 번번이 놀랄 뿐이다.자료와 함께 동봉한 메모를통해 그 분의 방대한 독서량과 해박한 지식에 대해서도 혀를 내두를 뿐이다. 특히 누구는 누구의 부친이고,누구는 누구와 사돈간이고… 등등의 ‘사람이야기’는 더욱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공간(公刊)된 자료나 문헌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으로 때로는 문헌자료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지난 겨울에 찾아와 건넨 그 분의메모 속에는 일제때 상하이(上海)에서 일본군에 군납(軍納)을 하면서 떼돈을 번 손창식(孫昌植)을 비롯해 여러 명의 친일파가 등장한다.그런데 그중 한명은 한 때 자신이 그의 ‘괴짜인생’을 교훈으로 삼을 뻔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70년대 초반 어느 신문에서 그 사람의 출세비화를 다룬 적이 있는데그때는 그의 친일행적을 전연 몰랐다는 것이다.이야기는 대충 이런 내용이다. 일제때 경북 영덕 읍내 영덕경찰서장집 마당에 아침마다 팔뚝만한 삼치 한마리가 떨어져 있곤 했다.이를 이상히 여긴 그 집 식모가 어느날 아침 이를서장에게 고하자 서장은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하였다.며칠 만에 식모가 삼치를 떨어뜨리는 주인공을 잡고 보니 그는 지게에 생선을 지고 다니며 파는 생선장수였다.마침내 서장이 나와 무슨 연유로 매일 아침 마당에 생선을 놓고가느냐고 묻자 그 생선장수는 “서장님께서 치안을 잘 유지시켜 주시니 덕택에 저 같은 사람도 생업에 종사할 수 있습니다.달리 보답할 길은 없고 해서제가 파는 생선이나마 드려서 아침 밥상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에 탄복한 서장이 “내가 뭐 도울 것은 없소?”하고 묻자 그는 “특별한 부탁은 없습니다만…밑천이 달려 물건을 많이 받아올 수가 없어서 겨우 지게꾼 행상을 하는 것이…”하고는 말끝을 흐렸다.그러자 서장이 “그럼내가 생선도매점에 소개장을 하나 써주겠소” 하고 약속을 하였다. 당시만 해도 거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던 경찰서장의 소개장 덕에 그는 이 일대에서 생선장사로 큰 돈을 벌게 되었다.생선을 미끼로 출세길을 튼 이사람은 일제 당시 경북 영덕 일대 최대의 부자 문명기(文明琦·창씨명 文明琦一郞)였다.일제로부터는 ‘애국옹(愛國翁)’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민족사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자. 문명기는 1878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문승환(文承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씨 부자가 언제,어떤 경로로 경북 영덕에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조선총독부가 시정 25주년 기념으로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朝鮮功勞者銘鑑)’(1935년 간행)에 따르면 그는 29세 때인 명치 40년(1907년)쯤 제지업을 시작한 것으로 나와있다. 생선장사로 돈을 모은 그가 제지업에 눈을 돌린 것은 이 일대가 종이원료가 풍부한 것이 계기가 된 듯하다.그는 자기 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하면서 다른 공장의 종이를 사서 이를 만주로 내다팔기도 하였다.사업이 번창해지자 그는 제지업계의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하에 광제회(廣濟會)라는 재단법인을만들어 종이 생산·판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아울러 그는 이같은 이권단체를 통해 일제 관헌과 조직적으로 유착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산업과 제지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그는 당시 유행하던 금광사업에투자하였다.일제 당시 대부분의 기간산업은 일본인들이 독차지하고 있어서조선인들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운(運)을 담보로 한 금광사업 정도였다. 따라서 이 분야는 조선인 사업가들이 일제로부터 별 간섭 없이 진출할 수 있던 분야이자 조선인 토착자본의 집중 투기대상이기도 했다.1932년 영덕군 지품면 도계에 있던 금은광산을 인수,자신의 이름을 따 ‘문명광산’으로 명명하였는데 그는 이 광산에서 ‘노다지’를 캐 향후 사업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경북지방의 모퉁이인 영덕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그가 중앙무대에 얼굴을 내민 것은 1935년 그가 육·해군기 각 1대씩 비용으로 10만원을 헌납하면서부터다.그는 자신이 경영하고 있던 금광을 일제 당국의 주선으로 일본유수의 미쓰코시(三越)측에 12만원을 받고 매각하고는 그 대금 가운데 10만원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이다.어림잡아도 현재의 10억원 규모의 거액을 비행기 헌납금으로 내놓은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일제는 그를 ‘애국옹(愛國翁)’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대적으로 선전에 활용하면서 그가 헌납한 돈으로 구입한 비행기를 ‘문명기호(文明琦號)’로 명명하였다.경성비행장에서 열린 명명식에는 일본의 해군대신 대리가 참석하였고 행사 후 해군기 6대가 축하비행을 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매일신보 1935.4. 7). 이후 그는 곧바로 영덕 국방의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다시 재향군인회 특별회원,일본적십자사 특별회원 등에 선임되었다.일약 이 지역의 명사로 등장한 그는 뒤 이어 경북도회 의원,중추원 참의에 피선돼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명성과 함께 그의 친일 행위는 더욱 노골화되어 갔다. 그는 조선 전역에서 ‘1군(郡) 1대(臺) 헌납운동’을 펴자고 주창하고는 조선국방비행헌납회를 만들어 여기에 1만원을 기부하면서 대대적인 헌납운동을전개했다.이후 전국에서 군 단위나 단체별로 헌납 주체의 이름을 딴 ‘애국기헌납운동’이 꼬리를 물고 뒤따랐다.밀양 지역의 ‘밀양호 (密陽號)헌납운동’의 경우 총모금액은 10만원,모금대상은 전 밀양주민인 것으로 나와 있다. 한편 당시 ‘헌납병 환자’ 또는 그의 이름을 빗댄 ‘야만기(野蠻琦)’ 등으로 불린 그는 두 차례의 헌납에 이어 다시 육군과 해군에 각각 2만원,4만원을 헌납하였다.또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에는 비행기로는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이번에는 ‘헌함(獻艦)운동’을 제창하고는 솔선하여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동광(銅鑛) 3개를 기부하였다(매일신보 1943.1.24).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일제의 강요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동적·소극적 친일을 한 반면 그의 친일은 다분히 의도적·적극적이라는 데 분명한 차이가있다.중일전쟁이 발발(1939.7.7)하자 그는 황군(皇軍·일본군) 위문차 북지(北支·북중국)로 가는 도중 평양에서 강연회를 개최,전쟁 미화를 골자로 한친일연설을 하였으며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경부선 주변 각도시를 순회하며위문결과 보고대회를 가졌다. 이듬해에는 의남(義男)단원을 강제로 모집,수많은 조선청년을 북지의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임전보국단 경북지부 상임이사,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일어판 친일지 ‘조선신문’사장,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면서 일제의 침략전쟁협조에 광분하였다. 그의 대표적 친일행각 중 하나는 그가 전시하 황도(皇道)선양을 목적으로조선 내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비치운동’을 전개한 사실이다.‘가미다나’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인 아마데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영부(靈符)를 안치한 것으로,이를 집안 높은 곳에 비치해 조상신으로 모시고는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전국으로 보급하기 위해 광제회라는 보급단체를 조직,자신이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경성부윤(현 서울시장)을 명예회장에 추대,남산 조선신궁에서 가미다나 분포식을 거행하고는 1차로 서울시내 각 정회 총대(町會 總代,동장) 130여명에게 가미다나를 나눠주었다.이후로 조선 내 각 가정에서는 신사참배와 함께 일본황실의 조상을 강제로 받들어야만 했다. 평소 일본 신도(神道)의 철저한 맹신자였던 그는 이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것으로도 유명하다.집안 치장이나 의복·언어는 물론 생활방식까지도 전부일본식으로 개조하여 철저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였다.1943년 7월 그는 황도선양회를 만들어 자신이 회장에 취임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1949.1.29)돼 심판대에 올랐던 그는,호적에 따르면 이후 행방불명돼 생사확인이 곤란하다.
  • 고종황제 侍醫 獨분쉬박사 일기·편지모음 출간

    ‘한국 여인의 해산을 도와준 대가로 참외 한 개를 받았습니다.’고종황제의 시의(侍醫)로 일하던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분쉬 박사가 1902년 부모님에게보낸 이러한 편지 내용은 100년전 우리 사회가 지금과 얼마나 다른 세상이었나를 전해준다.20세기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급속한 변화의 시대였지만 20세기 초 생활상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너무 낯설다. 구한말의 낯선 사회상과 열강들의 각축 상황 등을 서양인의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실적으로 기록한 ‘고종의 독일인 의사 분쉬’가 학고재에서 나왔다. 이 책은 1901년 11월부터 4년 남짓 한국에 머물었던 분쉬 박사의 편지와 일기를 그의 사후 65년 만에 딸인 게르트루트 클라우센­분쉬 여사가 1976년독일에서 출판한 ‘동아시아의 의사’중에서 한국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번역한 것이다.(김종대 옮김 9,000원). 이 책을 읽어나가면 분쉬 박사의 눈에 비친 궁핍한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편린들이 부패한 정치와 열강들의 야욕 속에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분쉬 박사는 궁핍한 생활로 민중들은 고통받고 많은도둑이 들끓고 있다고쓰고 있다.“도둑맞는 일이 워낙 흔해서 엄청난 손해만 입지 않으면 다행입니다.특히 날씨가 추울 때는 땔감창고나 석탄창고를 잘 지켜야 합니다.” 민중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나라가 망할 위기에서도 국가는 무기력하고 관료들은 부패하여 부당이익만 챙기다는 그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아프게 되새겨야할 교훈이다.“황제는 항상 생명에 위협을 느껴 궁을 떠나지 않습니다.모든 행정기구가 불안정하고 신용도 없고 아졸들이 고관에 줄을 대어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분쉬 박사가 기록으로 남긴 부패한 정치와 열강들의 경쟁 속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은 중요한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그는 황실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외교관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부패한 정치의 실상과 열강들의 미묘한 알력을 비교적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물포항은 전함으로 빽빽합니다.영국·미국·러시아·일본의 전함들입니다.일본은 비밀리에 군대를 도시에 주둔시키고 일이 터지면 즉각 대처하려고 노동자처럼 평상복을 입고 시내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당시에도 많은 파티를 즐겼으며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많이쓰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의료행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지금과 전혀다른 그 당시 사회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한국인들은 진료받는 것을마치 자선을 베푸는 것같이 생각하며 진료비를 내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게다가 국민의 신앙심에 어긋난다 하여 해부를 금지하고 있습니다.”李昌淳 cslee@
  • ‘수도 폭격’엇갈린 시각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미국 주도의 나토 유고 공격이 확전 양상을 보이고있다.그러나 미국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상황이다. 나토가 유고의 수도 베오그라드 중심부의 내무부를 폭격하면서 유고정부에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밀로셰비치의 숨을 더욱 가쁘게 만들고 있다.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는 러시아에 구원을 요청,세바스토폴항에 정박중이던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향진한 것이 확인돼 유고에 대한 심정적인 원조를 가시화시켰음을 과시했다. 나토군 공습이 수도 한복판 건물에 이르고 외국원군이 움직이면서 자칫 코소보 사태가 대국전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 국방부나 나토의 브리핑을 종합해 보면 확전보다는 이제 공습목표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호전된 상황으로 보는 분석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드리아해 주둔 함대가 발사한 토마호크 미사일이 베오그라드를 강타했음을 확인한 미 국방부는 이제 지상의 유고 군대가 힘을 못쓰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연료나 탄약보급,식량배급 등 군유지에 필요한 각종 보급시스템이 붕괴,군대로서의 위협이 거의 사라졌음을 지적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날 “코소보 난민들이 궁극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자치정부를 구성,안전을 보장받는 상황에서 살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이유도 전황이 새로운 구상을 밝힐 단계가 될 만큼 뒷바침됐다는 분석이다. 만에 하나 러시아 군대가 유고쪽 편에서 활동을 개시할 것인가란 우려가 없지 않지만 직접적인 개입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는 게 대부분의 지적이다. 미 국방부는 “흑해함대의 이동은 나토군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수집 차원의 목적이 크다”고 밝혔다.“이 정보가 유고군에게 제공될 경우,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기는 하다. 아무튼 전황의 커다란 줄기가 잡혀 클린턴 대통령이 코소보 ‘자치보호령구상’을 밝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유고 공격이 금방 매듭지어지는 것은 더욱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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