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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野 병역공방 지루한 소모전

    여야의 병역비리 공방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민주당은 엄정한 법집행에서한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의 소환거부방침을 ‘국기문란행위’로 규정하며 융단폭격에 나섰고,한나라당은 여당 수뇌부의 병역기피 의혹을 폭로하겠다고엄포를 놓는 등 초강수의 ‘맞불작전’을 펴고 있다. 민주당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22일 선대위 간부회의 브리핑에서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수사불응 발언과 지시는명백한 사법 방해행위이자 법질서 파괴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며 “두 사람은 국기문란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특히 이 총재를 겨냥,“이총재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속의원 자식들의 병역비리 수사까지 가로막는 대단히 위험한 반국가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공격했다.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도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받은 것은 스캔들 때문이 아니라 사법방해행위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의 소환거부 방침을비난했다.민주당은 이와 함께 병역비리수사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총선과관계없이법대로 처리’(65.2%)가 ‘총선후로 연기’(20.6%)보다 3배 이상높았다고 강조했다.연루 정치인 명단 공개에 대해서도 무려 86.7%가 지지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나라당은 검찰이 병역비리 수사를 강행할 경우 여당 수뇌부의 병역기피 의혹을 폭로키로 했다.이원창(李元昌)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민주당이 병역비리의 온상”이라면서 “민주당 수뇌부 인사들의 병역관계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특히 이인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겨냥,“병역기록부상에 분명히 두 차례 입영기피 사실이 기록돼 있다”면서 “이 위원장은 의도적으로병역을 기피,잠적했다가 뒤늦게 강제입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우재(李佑宰)의원은 이날 병역비리 수사와 관련해 소환통보를받은 두 아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반부패국민연대,공선협 등이 참여한가운데 두 아들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한종태 최광숙기자 jthan@
  • 악의적 해킹 막는다 ‘해커사관학교’ 출범

    건전한 해커 양성을 위한 ‘해커 사관학교’가 출범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KAIST 정보보호 교육연구센터가 22일 대덕연구단지 내 대학 3호관 3229호실에서 서정욱(徐廷旭) 과학기술부 장관과 국방부 및 기무사 담당자,경찰사이버수사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연구활동에 들어간다. 정보보호 교육연구센터는 이미 활동 중인 KAIST의 해킹관련 학생활동을 양성화,건전한 윤리관을 겸비한 네트워크 보안 전문인력으로 양성하고 정보보호에 관한 기술을 개발해 관계기관에 제공하게 된다.또 공공기관·은행·군대·경찰에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기술적인 협조를 한다.오는 6월에는 ‘국제정보보호경진대회’(IISC)를 개최,외국의 해킹기술을 모니터링 할 계획이다. 이 센터에는 전산·산업·산업경영·수학과 등 KAIST의 5개 학과 11명의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함혜리기자
  • [총선 엿보기] ‘병역공방’후보들 明暗교차

    병역비리 수사가 총선의 또 다른 이슈로 등장하면서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군 문제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후보는 여야를 떠나 내심 수사가 계속 진행돼 ‘떳떳함’이 부각되기를 바라는 반면 그렇지 못한 후보는초조해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병역에 집중되자 비리와는 무관한 면제자들이나 상대후보와 비교해 병역을 내세우기 어렵다고 여기는 후보들도 공연히 위축되는 양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면제,단기사병에서부터 장성 출신에 이르기까지 후보들이각종 언론 매체에 자신의 병역 사실을 알리는 행태도 가지각색이다. 이른바 ‘방위’ 출신들은 보충역이라는 표현을 마땅해하지 않는다.소집면제도 보충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두 가지를 구분해 사용해줄 것을 바라고있다.거꾸로 면제자들은 보충역이라는 말을 선호한다.모후보는 병역에 대한질문에 한사코 보충역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60세 전후의 일부 후보는 상병으로 전역했지만 ‘만기제대’란 표현을 부탁한다.한때 현역으로 입대했어도 학생·교사들은 18개월 만에 제대시켰던제도가 있었음을 상기시킨다.절대로 방위가 아니며 현역이란 점을 강조한다.일부 386세대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전력으로 군대를 갈 수 없었는데도도매금으로 ‘면제자’ 취급을 받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이를 배려하기위해 대부분 언론사는 ‘구속으로 인한 군 면제’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면제를 받은 후보들은 합법적인 면제사유가 있으며 불법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민주당 모의원이 “입영 신체검사에서 치질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며 증빙서류를 제시하는 등 이날 이와 비슷한 보도자료가 각당 기자실에 쏟아졌다.‘정당한 면제자’ 등이 병역 비리자와 함께 매도당하는 분위기도 옳지 않지만 어쨌든 이번 선거를 계기로 병역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출마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지운기자 jj@
  • [김삼웅 칼럼] 정치인관련 병역비리 근절하라

    ‘문민정부’ 시절 ‘아직도….’시리즈가 나돌았다. “아직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느냐”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일부 계층 자제들이 군대를 기피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힘깨나 쓰는 집안치고 자제를 현역에 보낸 경우는 드물었다. 지금도 현역 국회의원 298명 가운데 28.2%인 81명이 병역을 면제받았고 국회의원 자제의 군복무 면제율이 22%에 이르고 있다.일반인들을 크게 웃도는 수치로 특혜 아니면 비리의 소산이다. 병역비리를 수사중인 군·검합동수사반이 정치인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아들 66명을 총선 전에 소환·조사할 방침을 밝히자 야당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연루된 정치인 대부분이 야당 소속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사를 총선뒤로 미루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병역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수사는 끝장이다.정형근 의원 한 사람을 보호하고자 1년 내내 방탄국회를 연 야당이 이번에도 소속 의원들을 ‘보호’하려고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병역비리자를 투표 이전에 밝혀 유권자들의 선택에 착오가 없도록하는 것이 옳다.따라서 야당은 병역비리 수사를 ‘탄압’이라고 정치공세를펼 것이 아니라 협조해 털 것은 미리 털어내고 선거전에 임하는 것이 보다떳떳할 것이다.병역비리 연루자에 야당 인사가 많은 것은 그들이 집권 시절에 저지른 비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표적사정이나 야당탄압으로 몰면 국민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입만 열면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본인은 물론 자제들까지 병역을기피시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이런 못된 버릇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말해 준다. 6·25전쟁 당시 일선에서 전투하다 쓰러진 병사들이 ‘빽!빽!’하며 죽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렸다.‘빽(Power)’이란 한자 조어가 나돌기도 했다. 배경을 뜻하는 실 사변에 돈을 의미하는 쌀 미(米)자와 쇠 금(金)자를 조합해 자를 만들었다.이름하여 ‘빽 빽’이란 조어다. 예나 이제나 든든한 배경과 돈만 있으면 ‘신성한’ 군대를 안가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시중의 ‘무전(無錢)입대’‘유전(有錢)면제’란말이나 “현역은 어둠의 자식들,보충역은 사람의 아들,면제는 신의 아들”이란 우스갯소리(?)도 이런 세태를 대변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역은 지도층이 솔선수범했다.고대 로마에서는 군역을 마친 사람에게만 국정참여 자격을 주었다.근래에 이르러 각국 지도자들은 자식을 솔선해서 전장에 보냈다.한국전쟁때 중국 마오쩌둥(毛澤東)은 장남을 참전시켰는데 그는 최전선에서 복무하다전사했다. 스탈린도 장남을 대독전쟁에 포병장교로 참전시켰다가 독일군에게사살됐다. 조지프 케네디는 해군장관에게 미국 대통령이 될 존 케네디를 최전방으로 배치해 주도록 ‘청탁’해 케네디는 PT-109호뢰정 정장(艇長)이 돼일본 수송선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전쟁때 영국 앤드루 왕자는 자원해 해군장교로 임관,참전하고 왕실은 동의했다.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은 육군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하고,벤플리트 장군 아들은 공군 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으며,아들이 없었던 존슨 대통령은 사위를 베트남 전쟁에 참전시켰다가 전사했다. 아들이나 사위 하나쯤 전선에 보내지 않을 만큼 실력을 갖고 있었던 권력자들인데도 그러지 않았다.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사회정의와 도덕성 담보의 준거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의무를 기피하고 권리만 누리려는 자들은 위선자다.남의 자식들만 일선에 보내고 제자식은 면제시키거나 해외로 빼돌리는것은 범죄다.높은 신분(노블리스)에는 책임과 도덕성(오블리제)이 따른다. 듀란트는 ‘역사의 교훈’에서 로마제국이 망한 원인을 “조국을 위해 싸울건강하고 애국적인 전사(戰士)를 로마군단에 공급했던 농업인구가 소수가 소유하는 농장의 농노(農奴)로 대체되면서 로마가 약화됨을 안 야만인들의 침입” 때문이라고 정의했다.국가를 이끄는 국회의원과 지도층 인사들이 군대도 못가는(안가는) 약골이고 그 아들들까지 그렇다면 국가의 운명이 어찌될까.군·검합동수사반은 정치권 눈치를 보지 말고 이 기회에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의 병역비리를 뿌리뽑아야 한다.
  • [타이완 51년만의 정권교체]”모든 당 참여 초당적 연정구성”

    *천수이볜 총통당선자 인터뷰.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당선자는 18일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하나의 국가 속에 다른 체체를 유지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 방식에 의한 중국의 통일방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또 빠른 시일 안에 모든 당이 참여하는 초당적 연합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나라를 확고하게 지키는것은 우리의 단순한 과제가 아닌 의무”라며 “이같은 결심은 결코 흔들리지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 총통 당선자는 그러나 타이완이 독립을 추진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중국측 위협을 의식,“타이완해협의 안정과 평화는 양안 국민들의 공통된 소망”이라며 중국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안문제의 우호적 해결과 상호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나 주룽지(朱鎔基) 총리,왕다오한(王道涵) 해협양안관계협회장등 중국측 고위대표의 타이완 방문을 환영하며 자신도 아무 전제조건 없이중국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타임지와의 단독회견에서 “5월20일 취임 전에라도 당과 출신 지역을 초월한 초당적인 연합내각을 가능한 한 빨리 구성해 양안문제 등 현안을해결해나갈 계획”이라며 국민당 등과의 연합 의사를 밝혔다. 천 총통 당선자는 “미국과 일본,가능하다면 싱가포르 등을 방문해 안보 문제를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천 총통 당선자는 “이번 선거는 51년간의국민당 일당지배에 종지부를 찍고 타이완의 새로운 미래를 선택한 국민들의역사적 결정이었다”며 “용감한 타이완 국민들이 사랑과 희망으로 두려움과악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선거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제는 개혁을 신속히 추진하고 1년여 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선거전 과정에서 빚어진 국론분열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리덩후이(李登煇) 총통을 만나 국내 및 국제적인 현안들에 대해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리 총통은 타이완의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며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김균미기자. *천수이볜은 누구.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며 타이완에 새 시대를 연 천수이볜(陳水扁·49)은민주화를 향한 지치지 않는 결의와 뛰어난 머리를 바탕으로 한 효율적 행정처리로 국민당 일당독재를 끝낼 인물로 일찍부터 꼽혔다.여기에 그의 부인위수전(禹淑珍·46) 여사가 정치적 테러로 하반신마비가 돼 국민들 사이에정치적 신념을 위해 큰 희생을 치른 비극적 인물로 각인됐다. 51년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탕수수농장 일용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초등학교과 국립타이완대를 수석졸업하는 등 명석한 두뇌로 빈곤을 벗어나대학 4학년때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의 정치 입문은 79년 민주화시위를 주동한 반체제잡지 ‘포모사’ 발행인의 변호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됐다. 81년 타이베이 시의회 의원에 뽑혀 야심만만한 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탈바꿈했으나 85년 펑라이다오(蓬萊島)라는 반체제잡지 제작에 참여한 혐의로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출소 후 활동을 재개,89년과 92년 입법의원 선거에 연속 당선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94년12월타이베이 시장에 당선돼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1세기의 젊은 지도자 100명’에 선정됐다.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타이베이의 윤락산업에 철퇴를 가하는가하면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범죄율을 크게 낮추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그러나 그의 타협할줄 모르는 강경한 자세는 동지들로 하여금 그에게등을 돌리게 만드는 한편 많은 적을 만들어 98년 재선에 실패하는 또한번의좌절을 맛봤다. 지난해 홍콩의 ‘아시아위크’가 선정한 ‘차세대의 아시아 정치인 20인’에 오르기도 한 그는 98년의 실패를 자신의 외곬수적인 단점을 고치는 교훈으로 삼아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타이완 독립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이 중국과의 전쟁을 부르는 말썽꾼이 아니라 평화주의자임을 내세우는 타협안을 들고나와 마침내 첫 정권교체라는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76년 부유한 의사의 딸이었던 위 여사와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유세진기자 yujin@. *뤼슈롄 부총통 당선자. 타이완의 첫 여성 부총통뤼슈롄(呂秀蓮·56)은 타이완 민주운동과 여권운동을 최일선에서 이끌어온 강성(强性) 여성투사. 천수이볜(陳水扁)의 국립타이완대 선배로 대학을 수석졸업한 뒤 미 하버드대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귀국 후 타이완의 야당 결성 운동에 참여,과격 민중노선을 대표하는 잡지인 메이리다오(美麗島)의 발간에 참여하면서 타이완 민주화 및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79년12월 ‘메이리다오 사건’에 연루돼 계엄통치 시절이던 이듬해 1월 군법재판소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복역하다가 85년 병 보석으로 석방됐다.독신인 그는 석방 후에도 85년 민진당 창당에 관여하고 메이리다오지 부사장직을 역임하면서 민주화운동에 적극참여했으며 페미니즘 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이끌어왔다. 98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타오웬 현장에 당선됐으며 총통부 국정 고문직도 맡고 있다.영어와 타이완 현지어에 능통하며 부패 일소와 외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타이완의 유엔 재가입 및 중국의 타이완 침공시 독립 선포를 주장하는 한편“타이완은 부패 공직자들의 천국이 되서는 아니다”는 일갈로 국민당의 오랜 부패에 싫증을 느낀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유세진기자. *51년 통치 끝난 국민당. 19일 오후 타이베이시의 국민당 중앙당사 앞에는 이틀째 총통선거 패배에격분한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당간부들의 차량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다.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가 참패하고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총통에 당선, 1949년 중국대륙에서타이완(臺灣)으로 밀려난 이후 처음으로 야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51년만에 야당으로 밀려난 국민당은 중국 현대사의 영욕(榮辱)을 대변하고있다.49년 중국대륙의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장제스(蔣介石)가 휘하 군대와국민당 정부관료,200여만명의 피란민들을 이끌고 타이완섬으로 옮겨온 이후타이완은 그와 그의 후계자가 통치해 왔다. 1912년 쑨원(孫文)에 의해 중국본토에서 창당된 국민당은 삼민(민족·민주·민생)주의를 바탕으로 청나라 제정(帝政)을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조직으로출발했다. 25년 쑨이 사망하고통치권을 물려받은 장은 각 지역을 분할 통치하던 군벌에 대한 북벌(北伐)을 개시했다.28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나,30년대 이후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과 대적했고,45년 일제가 패망하면서 치열한 국공내전을 벌였다. 49년 12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는 타이완섬으로 넘어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행정·입법·사법부 3권을 장악, ‘일당 독재’정치를 폈다.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54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에 서명,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주력해 고도성장을 이뤘다.경제는 성장했지만 타이완인들의 기본권과 언론자유는 보장받지 못하고 크게 제한돼 왔다. 급기야 71년 10월 유엔 안정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중국에뺏기고 유엔에서 축출되는 외교적 수모를 맞본데 이어,세계 각국이 중국과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국제사회의 ‘고아’신세가 됐다. 75년 장 총통이 사망하자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총통에 올랐다가 88년 1월 숨지자,내성인(內省人)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가 총통에 취임했다.리총통은 복수정당 허용 등 민주화 작업을 추진했으며,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비껴나는 업적을 쌓았다.리 총통은 타이완성 주석직의 롄을 행정원장(총리)에 발탁하고 99년 3월 당내 최대 라이벌이던 쑹을 축출,국민당 총통후보로 그를 선출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의 참패로 ‘양지에서만 자라온’ 국민당은 피할 수없는 분열 위기를 맞게 됐다.중국시보(中國時報)·연합보(聯合報) 등 현지언론들은 “쑹 후보가 이날 신당 창당을 선언함으로써 국민당내 쑹 지지자의신당 이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천 당선자도 안정의석 확보를 위해 국민당·건국당 등과의 연정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이베이(臺北) 김규환특파원 hay@. *타이완 주요 정치사건일지. □1945년 일본의 50년 식민통치 종식. □47년 타이완인 봉기를 국민당 군대가 무력진압,수천명 희생. □49년 12월 장제스(蔣介石) 총통 국민당 국공내전서 패하자 망명정부 수립. □55년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71년 유엔이 유엔대표권을 박탈하고 중국을 인정. □75년 장제스 총통 사망. □79년 미국,중국과 외교관계수립.미 의회는 타이완에 방위용 무기공급 약속. □88년 장징궈(蔣經國) 총통 사망으로 타이완 출신 리덩후이 총통 승계. □93년 중국과 싱가포르서 첫 대화.유엔 가입 시도. □94년 총통 직선제 도입. □95년 리 총통 미국 방문.중국이 보복으로 수차례 군사훈련 실시,양안 긴장 고조. □96년 3월 리 총통의 재선을 막기 위해 중국이 타이완을 겨냥해 한차례 미사일 발사,두차례 모의 전쟁연습.미국은 인디펜던스호와 니미츠호 등 항모 2척 타이완 해역에 급파. □2000년 3월18일 제10대 총통선거.민진당 천수이볜 후보 당선. □2000년 5월20일 천수이볜 당선자 취임.
  • [시베리아 대탐방](13)시베리아의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

    시베리아의 중심지인 노보시비르스크.고려인(카레이스키)들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부른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간난(艱難)과 신산(辛酸)의 세월을 이겨내고 제법 여유있는 생활을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닦아 놓은 덕분이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중심가에위치한 한국 음식점 오아시스는 고려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이곳에 들어가면 건설업체 KPP를 경영하고 있는 김우광(金佑光) 사장(66) 등 고려인 1∼3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봉용 고려인 문화관장(53)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1세대들은 기후와토양이 다른 이곳에 적응하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려운 삶을 살았다”며 “그러나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현재 시베리아 지역에 살고 있는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하기까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사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죽음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구한말(舊韓末)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연해주로,1937년 스탈린의 추방정책으로 다시 연해주에서 시베리아,중앙아시아로 쫓겨났던 고려인들의 유랑은 지난 1863년부터 시작됐다. 피폐한 한반도에서 굶주림을 못이겨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간 초기 고려인들은 순탄하게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1919년 3·1운동 후 월경자가급격히 늘어나자 옛 소련 당국이 국경을 봉쇄했다. 당시에는 연해주 18만여명의 고려인들은 그리 넉넉한 생활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대로 만족하며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잡자마자 불행하게도 비극이 찾아왔다.스탈린이 연해주고려인들을 시베리아 등으로 강제 이주시킨 것은 1937년 9월9일. 1937년 8월21일 공산당 중앙위 서기 스탈린과 인민위원장 몰로토프가 서명한 ‘극비 문서 1428326’에서 비롯된 강제 이주의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과의 공모,또는 스파이 혐의’였다.그러나 실제로는 스탈린이 자행한 소수민족 말살정책의 하나였을 따름이다. 연해주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은 이날 느닷없이 날아든 소련당국의통지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하나둘 모여들었다.일부 가재도구만 챙긴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시베리아 열차속에 짐짝처럼 부려졌다.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고려인들의 앞날에는 척박한 시베리아의 황무지가 저승사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37년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해였습니다.할아버지는 19세기말 연해주에서 교사로 재직중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말을 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종적도 모르는 곳으로 강제 이주당했습니다” 고려인 1세인 이학로씨(가명·77)가 털어놓은 비극적인 삶의 고백이다.고려인들은 밀폐된 화물 열차에 태워져 3개월동안의 ‘죽음의 여정’을 거쳐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와 알마타 등으로 옮겨졌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노약자와 어린이 등 이주민들의 20%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노보시비르스크의 교회에 병든 몸을 의탁하고 있는 김 나제즈다씨(70·여)는 “영하 60도 가까이 내려가는 혹독한 겨울이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야쿠트공화국에 몰려와 엄청난 추위와 참을 수 없는 굶주림,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며 “카마 마루스카(경찰차)가 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어느새 김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데다 밥이 아닌 빵으로 연명하다 보니 많은 고려인들이영양실조에 걸렸고 위장병과 간장병에 시달렸다.그러나 약도 없었고 치료도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씨는 당시 가장 슬픈 기억중 하나가 쓰레기통을 뒤져버려진 감자껍질을 찾아 씹어 먹던 일이라며 그때 제대로 먹지 못해 생긴 병으로 지금까지 고생하며 거동이 불편하다고 전한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세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해에는 고려인들이 수확한 쌀 전량을 옛 소련 당국이 빼앗아 군대로 보내버린 일도 있었다.한번 잘 살아보려던 고려인들의 열망과 의욕은 또 한번 산산이 깨져버린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같은 극한적인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시베리아의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고 각종 채소를 재배해 옛소련 당국을 놀라게 했다.고려인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높은 교육열로 거주제한 등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시베리아를 옥토로 바꿔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당시 강제 이주를 체험한 고려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날이 가져다준생채기가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생존자들 대부분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의 고령자들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생채기가 자리잡고 있어 이들에게는 진정한 고향도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당시 이주가 불법이었다며 러시아 정부에 ‘고려인들의 명예회복’을 호소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아 마음 편하게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러시아) 김규환 특파원 khkim@. *강제이주 金나제즈다씨. “조국 한국의 품에 안겨 마음 편하게 남은 삶을 살아보는 게 나의 조그마한 소원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고 간 1930년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역사를 대변하는산증인 김 나제즈다씨(70·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기위해 이름도 ‘나제즈다(소망이라는 뜻의 러시아어)’로 지었다. 김씨가 옛 소련 스탈린의 추방정책에 따라 강제 이주당해 시베리아로 떠돈60여년의 유랑생활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처절한 투쟁의 역사이다.러시아극동 우수리스크 인근 수후사에서 부모형제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1937년정치·사상범으로 몰려 아버지와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가장 추운 야쿠트공화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당시 그곳에는 강제 이주돼온 고려인 100가구가 있었어요.그때 아무런 이유없이 아버지는 형무소로 끌려갔습니다.아버지는 형무소에서 얻은 지병으로 37년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기 위해 집을 나선뒤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그때 나이가 겨우 8살이었어요.나의 기억으로아버지 친구들은 당시 모두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언니도 이때 영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김씨는 남동생과 함께 지금의 야쿠트공화국내 ‘알단고아원’에맡겨졌다.“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잘 기억할 수 없어요.나중에 들은얘기로는아버지가 독립군이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김씨의 고아원 생활은 순탄했다.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제법 잘하고모든 일에 앞장서 고아원 일을 도와줘 고아원 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이 덕분에 고아원 원장의 도움으로 마가단 광산전문대학에도 진학하게 됐다. 광산전문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9년 마가단에서 만난 러시아인과 결혼해 남편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 정착,두명의 아들을 낳으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달콤한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첫째 아들을 여의는 아픔을 겪었던 까닭이다.76년에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생활마저 궁핍해졌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릴 때의 고아원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나이가 들어영양결핍 증세를 보이며 시력이 약화돼 지금은 실명 상태나 다름없다. “국가에서 연금으로 20달러를 받아요.도저히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그동안 지난(至難)한 칠십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아직도 강제이주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로운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보시비르스크 김규환 특파원
  • [대한광장] 중국과 타이완의 이혼(?)

    마오쩌둥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국민당 간부·군대와 20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이끌고 대만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국민당의 집권은 반세기가 지난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오늘 대만에서 총통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정권교체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특히 각 후보들의 대륙정책 차이점 때문에 선거 이후 전개될 양안관계가 초점으로 부각하고 있다.과연 대만인들은본토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중국의 대만 독립에 대한 입장,대만의 중국 통일에 대한 입장과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 가능성을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대만 독립 불가 입장은 확고하다(三不政策).96년 첫번째 총통선거에서도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무력 시위를 벌임으로써 중국은 대만을 위협한 바 있다.당시 미국은 항공모함을 파견함으로써 내정간섭을 중지하라는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당의 롄쟌(連戰),민진당의 천쑤이볜(陣水扁),무소속의 쏭추위(宋楚瑜)후보는 양안관계에 대해 각각‘양국론’ ‘대만독립론’ ‘준국제관계론’을견지하고 있다.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천 후보에 대한 반감을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대만의 안정을 볼모로 낙선을 위한 영향력 행사를 꾀하고 있다.중국은‘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문제’라는 백서를 통해 대만이무기한 통일 협상을 연장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표시한 바있다. 대만의 안정에 호소하고 중국과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가 쏭추위이고,명통암독(明統暗獨)을 염두에 두는 롄쟌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거스르지않고 있다.이에 따라 중국은 부패 혐의로 인기가 급락하고 있는 쏭추위 대신당선이 가능한 차선책으로 롄쟌 후보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대만 거주인들의 본토와의 통일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대만인 대부분은 굳이 중국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다.중국 본토보다 월등한경제력을 보유한 대만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통일이 되면 본토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사회간접시설에투자하기보다는 현금을 보유하는 등 그동안 통일에 대한 애착을 보이던 대만인들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그동안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 해도 사회주의와의 불안한 동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정서를 무시할 수없다.이런 대만인의 정서를 파고 들고있는 것이 천쑤이볜의 선거전략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만 독립 입장에 대해 실질적인 무력 침공으로 대응할 것인가.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응징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침공했다가 망신만당한 경험이 있다.무엇보다도 육군 위주의 중국이 전쟁 발발시 제공권에서대만에 대해 우위를 보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물론 미국의 참전을 불러일으켜 중·미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되는 상황 또한 중국은 원하지 않을것이다.동북아 안정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이 지역의 일본과 남·북한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중국이 무력으로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사일 발사,해상훈련,삼군훈련 등으로대만을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있다. 중국의 전인대(全人代)에 참가하고 있는 주룽지 총리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대만 독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마치 이혼하고자 하는 아내에게 무력사용을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혼인법과 국제법이 다르다는 것을 내세운 주 총리의 답변이 재치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싫다는 파트너를 억지로 붙들기 위해 어떤 매력을 발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육체적(경제력)으로,정신적(중화인)으로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도망칠 기회만 노리는 별거 중인 아내를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겠는가.중국으로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강압적인 자세가 가져올 사랑의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상호간 관용의 한계를 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 국방부, 금연구역 지정 의무화

    군대에도 ‘금연 바람’이 불고 있다. 국방부는 16일 금연에 성공한 사병에게 지휘관 재량으로 외출·외박을 허용하는 등 부대 내 금연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는 군인의 흡연율(72%)이 일반인의 흡연율(68%)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군입대 후 담배를 배우는 사병이 많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국방부는 우선 자발적인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희망자들에게 ‘본인의 명예와 의지력을 걸고 ○월○일부터 금연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라고 적힌 ‘금연결심서’를 배포했다.희망자가 결심서를 지휘관에게 제출하면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소속 부대에 ‘금연협조 공문’을 띄운다. 아울러 올해부터 부대마다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을 분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은단이나 박하사탕 등 흡연 욕구를 해소하는 기호품 판매도 확대할 예정이다. 사병간·내무반간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금연에 성공한 사병과 금연자가 많은 내무반에는 외출·외박과 자유시간을 늘려주는 등 부대 실정에 맞는 적절한 유인책도 제공토록 했다. 국방부 보건과 정미선(鄭美善·여)대령은 “95년부터 훈련소 등 신병교육대에서 금연을 실시한 결과 좋은 효과를 거뒀지만 병사들이 자대에 배치된 이후 다시 담배를 피우는 폐단이 있었다”면서 “이번 조치를 통해 건강한 병영생활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타이완 총통선거] 집권당 인기 추락… “바꿔 바꿔” 목청

    [타이베이 김규환특파원] 18일 치러지는 타이완 총통선거가 유례없는 혼전으로 치닫는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은 전하고 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천수이볜을 선두로 무소속의 쑹추이 후보와 집권 국민당의 롄잔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2,3위를 다투고 있어 누가 당선될지 점치기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혼전 속에서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51년간 타이완을 지배해온 국민당의 시대가 이제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내 친구는 천수이볜과 쑹추이 가운데 누구를 총통으로 지지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둘다 롄잔만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고 타이베이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말한다. 그는 이어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화다”고 덧붙였다.인터넷회사에 다니는캐롤 황양(22)도 “롄잔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라도 찍겠다.롄잔의 얘기에서국민당을 지지해 달라는 말을 빼면 들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40년 가까운 계엄령,오랜 일당 독재에 따른 부패의 만연과 금권의 야합 등으로 국민당의 인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국민당에대한 염증과 함께 민주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난 젊은 층의 확산은 타이완 국민들간의 화두를 변화로몰아가고 있다. 이처럼 ‘바꿔보자’는 분위기에 힘입어 18일의 총통선거는 타이완이 새 시대로 접어듦을 알리는 서막이 될 것이다. 타이완 총통선거를 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은 온통 중국-타이완 관계가 어떻게 정립되느냐는 데에만 쏠려 있다. 그러나 타이완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현 집권 국민당이 본토로부터 건너온 것은 사실이지만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지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양안관계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거듭되는 무력위협에 대해서도 대다수의 타이완 국민들은 누가 당선되든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공격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무력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한 해결 방식이 모색될 것이란 얘기다. 전쟁은 타이완은 물론 중국과 아시아를 포함한 국제사회 모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관심은 오히려 부패 청산,관료주의 종식,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증대와 같은 생활에 직결된 부문에쏠리고 있다. 18일의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힘들다.그러나 타이완에서도 이제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추세다. 그런 점에서 횡령 스캔들로 타격을 받은 바 있는 쑹추이 후보보다는 타이베이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변화와 개혁의 바람을 일으켰던 천수이볜 후보쪽이당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khkim@. *국민당 51년史…정치탄압속 경제성장 이뤄. 장제스(蔣介石)가 1949년 국공 내전에서 마오저뚱(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에 패배,타이완(臺灣)으로 불명예 퇴각한 뒤로 국민당은 타이완을 51년째 장기 통치해오고 있다. 국민당 군대와 정부 관료 등 200만명의 피난민을 이끌고 타이완으로 옮겨온장제스의 국민당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민족·민주·민생주의)에 기초를두고 있다. 국민당은 중국본토 회복이라는 목표 아래 같은 해 12월 타이베이를 중국의 임시 수도로 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계엄령은 87년 해제될 때까지 37년이나 지속되면서 국민들의 정치·사회적 자유를 제한했다.국민당은입법 뿐아니라 사법·행정의 3권을 장악해 실질적인 ‘일당독재 체제’를유지해왔다. 극동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보루로 인식,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군사·경제 원조를 받으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누렸다.그러나 이후 국제사회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 가시화됐고 71년 10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중국에게 넘겨주고 유엔에서 탈퇴했다.72년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타이완과는 단교했다. 75년 장제스 총통이 사망하자 아들인 장징궈(蔣經國)가 대를 이어 후임 총통에 올랐고 89년 타이완인 출신의 리덩후이(李登煇)가 처음으로 총통에 취임했다. 국민당 집권 51년의 가장 큰 업적은 역시 놀랄 만한 경제성장.국민당은 집권기간 동안 인구 2,200만명의 타이완을 경제규모 세계 19위,무역규모 14위,1인당 GNP 세계 25위에 올려놓았다.반면 오랜 계엄 치하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언론(표현)·결사·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절저히 제한해 왔다. 정치적 반대파를 수천명씩 투옥,처형하고 타이완 방언의 사용을 금지하는 등타이완 원주민에 대한 탄압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86년 첫 야당인 민주진보당이 등장했을 정도다. 김균미기자 kmkim@. *中 ­타이완 ‘급속 냉각’예고. “타이완(臺灣)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다.나라명은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가 아니다.두 국가는 같은 문화와 조상을 가졌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더 친하고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타이완의 독립국 선포 필요성을 주장,21세기 중국-타이완관계의 극단적 냉각을 예고하며 막판 세몰이를 하고 있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독립강령’으로 불거진 선거전의 ‘북풍’과 중국지도부의 무력위협 속에서도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후보와 무소속 쑹추위(宋楚瑜) 후보를 앞서고 있다. 중국의 무력위협으로 기득권·보수세력의 반발 바람이 거세지자 “중국이무력침공을 하지 않는 한 독립선포는 하지 않겠다”며 물러서긴 했다.그러나 표를 의식한 일시적인 수위조절용 발언이라는 게 중론이다. 천 후보의 중국관은 전체주의국가 중국과 민주주의국가인 타이완은 주권과통치 사법체계에서 완전히 다른 나라이므로 1국가2체제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이때문에 중국 정부는 천을 당선기피 후보 1호로 꼽는다. 94년 타이베이시 민선 시장에 당선된 40대의 천 후보는 개혁적 이미지로 젊은 층과 농촌지역·도시 저소득층 유권자의 인기를 얻고 있다.타이완 남부의 가난한 사탕수수농가 출신으로 타이완국립대 법대를 졸업했다.선박회사 소속 변호사로 일하다 80년 반정부인사들의 인권변호에 나서면서 명성을 얻었고 89년 국회의원에 진출한 뒤 의회내 국가안보위 공동의장을 맡으면서 민진당내 총아로 등장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3人후보 ‘하나의 중국’ 반대. 총통선거를 앞둔 타이완(臺灣)에서 독립열기가 뜨겁다. 주요 후보들은 16일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15일 타이완(臺灣)유권자들에게 독립주의자 후보를 선출할 경우 좌시하지 않고 전쟁을 벌이겠다고 경고한 데 대해 일제히 선거에 간섭하지 말라고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타이완을 중국 본토의 일부로 통일돼야 할 ‘반도들의 성(省)’으로 여겨 존재는 인정하되 독립국가의 지위는 부인하는 ‘1국2체제’ 입장을 갖고 있다. 집권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와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타이완이 주권국가임을 내세워 주총리의 경고를 받아쳤다.중국의 1국2체제를 거부하는 국민당의 ‘양국론(兩國論)’ 노선을 따르고 있는 렌 후보는 이날 시내 웨스틴 타이베이 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타이완은 주권독립국가로서 어떤국가도 선거결과에 대해 간여할 수 없다”며 주총리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양안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그와 유권자를 ‘중국인’이라고 불러 대륙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취했다.이번 총통선거에서 유일하게 대륙출신(중국 호북성)으로 중국과준(準)국가관계 수립을 내세우고 있는 쑹추위 후보도 주총리를 비난하기는마찬 가지였다.그는 이날 저녁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진 유세에서 “주권독립국가인 우리는 대륙과의 담판을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의 반발 수위가 가장 높았다.그는 16일 핑퉁(屛東)에서 가진 유세에서“1국2체제는 수용할 수 없으며 타이완이 홍콩이나 마카오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는 하루전 가우슝(高雄)에서도 “주총리가 ‘테러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면서“유권자들은 협박당하지 않을 뿐더러 베이징의 ‘1국2체제’하에서는 통일은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주총리를 맹비난했다. 천후보는 이와 함께 자신이 렌잔이나 쑹후보와는 달리 타이완인임을 내세워 중국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30세 미만의 젊은층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중국본토 출신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하며 30세 미만은 유권자의 4분의 1정도다.한편 타이완 대륙위원회의 쑤치(蘇起) 주임(통일부장관격)도 15일 주 총리의 발언은 명백한 선거간섭이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어떤 기도에도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박희준기자 pn
  • 용산구·주한美軍, 기지내 건축물 싸고 ‘티격태격’

    용산구와 주한미군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용산구는 10일 주한미군이 용산기지 안에 건축하고 있는 호텔(Dragon HillLodge)과 주차장이 관할 용산구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라며이의 자진 철거를 주한미군측에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용산구는 이 공문을 통해 ‘오는 31일까지 주한미군측이 용산구의 자진철거시정통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같은 사실을 미국 정부에 정식 통고하고법령에 따라 강제 철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장현(成章鉉) 구청장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중 행정협정 제7조에 ‘미합중국 군대의 구성원과 군속 등은 대한민국의 법령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만큼 미군측은 우리의 건축법에 명시된 ‘공공건축물 신·증축때는 반드시 해당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며 자진철거 요구 배경을 설명했다. 성구청장은 또 “차제에 의정부와 파주 등 미군기지가 위치한 지방자치단체와 연대,문제가 되고 있는 한미 행정협정 개정운동도 펴나갈계획”이라고덧붙였다. 앞서 용산구는 지난달 8일 미군 영내의 호텔 건축이 불법임을 미군측에 공식 통고하고 이의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최근 법무관 명의의 회신 공문에서 ‘미합중국에 공여된 시설과 구역 내에서는 미합중국이 시설과 구역의 설정,운영,경호 및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다’는 현행 SOFA 제3조 규정을 들어 호텔 건축이 적법하다고 맞섰다. 성구청장은 “이번의 시정통보가 사실상 용산구로서는 최후 통첩”이라며“주한미군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현행 건축법에 따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거나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 철거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말부터 용산기지 안에 지하 1층,지상 6층의 호텔과 지하·지상 각 1층의 주차장 건립공사를 시작,현재 6층 호텔건물의 골조공사가마무리단계에 접어든 상태다. 심재억기자 jeshim@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지식이 곧 전투력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예부터 자식교육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말이었다.오늘날 우리 부모들도 자식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교육을 생의 최고 가치로 생각했던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은 자원이 빈약한우리나라를 오늘날 세계10대 경제대국의 하나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 되었다.이러한 가치관은 우리 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교육열이 없는 지휘관은부하에 대한 애정이 없는 지휘관이다.군대에서의 교육이란 ‘싸우는 방법’‘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인데,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지못하면 전장(戰場)에서 죽으라는 말밖에는 안된다. 군대가 정말로 싸울 준비를 하면 적이 먼저 알아 싸우지 않게 되고,싸울 준비를 적당히 하면 적이 얕보아 싸움을 피할 수 없고,결국은 패배하고 만다는것이 역사의 교훈이다.패자의 운명은 참혹할 수밖에 없다.그렇기 때문에 ‘군대생활은 곧 교육 훈련’이라고 할 만큼 교육훈련이 중시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할 것인가. 손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했다. 전투에서 싸워 이기려면 적의 전술과 무기체계는 물론 적의 기도까지도 완전히 꿰뚫어 보고 실질적인 전투요령을 숙달해야 한다.특히 군 간부는 이에정통해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평생 소원인 바다구경을 한다고 황하에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놀러 갔다고 한다.황하의 개구리가 “저기 보이는 넓은 수평선,일렁이는 파도,이곳이 바로 바다란다”하고 설명하자 개구리들이 감탄하고 돌아갔는데,사실은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모르고 가르쳐 주지 못해,자자손손황하를 바다인 줄 잘못 알고 살았다는 옛말이 있다. 군 간부도 마찬가지다.황하지와(黃河之蛙)가 정중지와(井中之蛙)에게 가르치듯 해서는 전장에서 부하들을 죽게 만든다. 쓸데 없는 행정적 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간부들이 오직 ‘전투임무 위주로 생각하고 준비하고 훈련’한다면,신세대 병사들은 하루 4시간 교육으로도목표를 충분히 달성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그러고 남는 시간은건전한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고 체력을 강화하며,정보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영어 공부도 하고 인터넷도 배우라는 것이다군 생활이 우선 즐거워야만 그리고 동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더욱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이것이 요즘 진행되고 있는 군 교육 및 병영문화개혁의 핵심 내용인 것이다. 조성태 국방장관
  • “한생명 구한다면…” 국경·핏줄 초월한 군인정신

    육군 장교의 골수가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백혈병 환자에게 전달된다.또 한사병이 국내 백혈병 환자에게 골수를 기증한다. 육군대학 김공래(金工來·37)소령과 육군 비룡부대 김석동(金錫東·24)상병은 오는 8일 충남대부속병원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골수이식수술을 받는다. 김소령이 골수이식수술을 결심하게 된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95년 전방 전차대대의 작전장교로 근무할 당시 김소령은 백혈병에 걸린 유능한 후배장교가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구하지 못해 끝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김소령은 곧바로 사단법인 한국골수은행협회에 골수기증희망자로 등록했다. 김소령에게서 골수를 받는 환자는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일본인.99년 3월 한국과 일본의 협회 사이에 체결한 ‘협력적 골수기증을 위한 시험협약’에 따라 한국인이 골수를 기증하는 첫사례다.지금까지 한국인 8명이 일본인한테서 골수를 이식받았다. 김소령은 지난 86년 서울대 농대 임산공학과를 졸업,ROTC 24기로 임관한 뒤전차중대장과 야전부대 참모를거쳐 현재 육군대학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육군 비룡부대 통신대대에 근무중인 김상병도 만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네살짜리 어린이와 자신의 골수조직이 일치한다는 통보를 받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김상병은 “골수조직이 일치할 확률이 2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내가 거절한다면 꺼져가는 어린 생명이 어디에서 구원의 손길을 찾겠느냐”고반문했다.김상병은 지난 96년 충남대 재학 당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조혈모세포은행에 골수자원 등록을 했다. 한국골수은행협회 전용식(全用植·49)사무국장은 “국내에 골수기증 희망자로 등록된 사람은 모두 2만1,000여명에 이르지만 환자의 수요를 채우기에는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들의 골수기증은 병상의 백혈병 환자들에게더없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주석기자 joo@
  • [기고] 병역비리 척결 빠를수록 좋다

    지난 새해 첫날,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두는 병역에 관한 것이었다.우리 근대사에서 요즘처럼 군 복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적은 없었다는 얘기들이다.남자는 이제 ‘국방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어디가서도 발붙이지 못할거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군대를 가고 안 가는 걸 두고 ‘어둠의 자식’이니,‘신의 아들’이니,또는 ‘유전면제,무전입대’란 해괴한 자조어가 나돌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지난번 대선에서 ‘대쪽’ 이미지로 참신성을 내세우던 대통령 후보의 집안이 온통 병역미필로 밝혀져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데 이어,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병역미필자이고,그들의 자녀들이 병무 부정과 연루돼 매스컴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국민을 분노케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군대 생활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적어도 직업군인을 제외하고선 말이다.자유분방한 젊은 날을 24시간 영내에서 통제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먹는 것,입는 것,잠자는 것등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엄한 조직의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명령과 복종의 상하관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집단.한달에 1만원,2만원의 봉급을 받고도 영하의 설원을 달리며 호된 훈련을 받고,밤잠을 설치면서 전선을 지켜야 하는 고달프고 무거운 책임.뭍에서,바다에서,공중에서 조국을 보위하는 사명을 다하는데 한눈을 팔 짬이없다.그런 날이 910일간이나 쉼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주를 이루는 귀족이나 상류층은 전쟁이 나면 먼저 전장으로 달려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지’,그리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형 존 F.케네디1세가 공군조종사로 최전방에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외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으며,모택동의 아들도 중공군으로 참전해 사망한 사례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리에게 병역문제는 여러 갈래의 자취를 남겼다.고구려의 상무정신은 북방대륙을 우리 손아귀에 들게 했으며,신라 화랑도의 군사력은 3국을 하나 되게 하였다.그런가하면,조선조의 무반천시 풍조와 국방홀시정책,병역제도의 모순·비리는 나라를 망국의 길로 내몰았다.사대부나 양반의 자식들은 제외하면서 강아지와 절구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아내는 관리들의 가렴주구를견디지 못한 양민들은 토호들의 종이 되거나 중으로 신분을 바꾸어 군역을면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그러나 ‘호국의 얼’이 숨쉬는 자랑스런 일화도 있다.백제와 싸움에서 16세의 아들을 최후의 격전장인 황산벌에 내보내 전세를 역전시킨 신라 화랑관창의 아버지 품일장군이 있었는가 하면,임진왜란때 자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왜적을 물리친 고경명 같은 명장이 있다.낮은 시력으로 군 면제 판정을받았음에도 입영해 훈련을 마친 현역장군의 아들 얘기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정보화시대에 시민을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병역을 마쳤는가’가 될 것이라 한다.특히 지도층이 되려는 사람,선거로 입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2년반의 세월이 결코 헛된 시간낭비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헌법이 정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수행하는 일이 건전한 시민,애국하는 국민의 기본요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하물며 병역비리의 척결에 있어서는 어떠한 구실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선거철이라 피하고 정치적 탄압이라는 공세에 밀린다면 이 고질병은 어느 세월에 바로잡힐 것인가. 군입대 희망자가 몰려 입영원을 6개월 전에 내야 하고,입영이 선착순이 아니라 성적순이라는 말이 들리는 이즈음의 사회 분위기가 일과성이 아닌 건전한 병역문화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그런 뜻에서 병역비리 척결은 엄정하고 빠를수록 좋다. 정영휘 수필가·예비역 육군준장
  • [대한광장] 국악 단상

    15년 전,휴학을 하고 입대할 무렵까지 한해 동안 나는 국악에 빠졌다.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던 10대 시절 이후 록음악 일변도의 취향을 가지던 내가 국악을 가까이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뭐였는지는 이제 가물가물하다.FM에서 흘러나오던 단소 소리에 인상을 받은 일이 그 시작이었을까.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당시 내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학생운동권에 이른바 민족해방진영 즉, NL이 등장한 것은 80년대 중반의 일이지만 나와 같은 80년대초 학번의 대학생들은 진작부터 반미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것은 물론 광주 때문이었다.광주는 그간 우리가 목표로 한 세상이 고작 ‘건전한 미국령’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세상을 바꾸는 일의 차원에 대해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대학에 들어가 첫 축제때,초청받은 록그룹이 무대에 오르자마자 “양키 문화 물러가라”는 야유를 받으며 쫓겨나는 광경을 보며 나는 드럼이나 록음악에 대한 관심을 매우 사적인 차원으로 단속하게 되었다.그런 음악은 적어도반미 민족주의가 지배하던 나의 대학시절 동안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그러나 당시 우리가 선택한 한국 전통음악이란 사물 위주의 농악뿐이어서나의 음악적 갈증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그 한해 동안 나는 늪에 빠져들 듯 서서히 국악에 빠져들었다.처음엔 단소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좋았지만 이내 대금의 깊고 드라마틱한소리를 이해하게 되었다(알다시피,대금엔 가운데 부분에 청공이라는 큰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은 갈대 속청으로 덮여 있다.특히 고음부에서 그 갈대 속청이 찌이 울리면서 내는 장쾌한 소리는 대금의 묘미지만 처음 들을 때는 좀거슬리기도 한다). 입대하면서 나는 국악과 멀어졌는데 한국 군대라는 데가 일개 사병이 국악이라는 ‘별스런 음악’을 듣기엔 적당치 않은 곳인 데다 내가 다시 드럼을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휴가때면 입대 직전 막노동을 해서 사두었던 대금을 꺼내 어루만지곤 했지만 어쩐지 나는 국악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제대후들어간 문화운동단체에선 드럼이나 일렉트릭 기타 같은 악기들을 주요하게쓰고 있었다.오래전 야유를 받으며도망치던 록밴드를 떠올렸지만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 있었다. 15년이 지난 요즘 나는 다시 국악을 듣는다.요즘 나를 사로잡는 음악은 무속음악과 노동요들이다.15년 전 이른바 민중의 시대에 내가 영산회상 같은선비들의 음악에 빠진 일이나 민중을 외치던 청년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오늘 민중의 음악에 빠지는 일은 시대를 거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건 나는 어떤 실용주의적인 이유도 아닌 그저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음악인 국악에 자연스레 빠져들 뿐이라는 점이다. 박병천이나 김대례,김석출 같은 이들의 굿음악을 들으면 내 영혼이 정화되고 부질없는 욕망들(욕망은 우파의 독점물이 아니라 인간의 독점물이다)이사그라드는 기쁨을 느낀다.‘뿌리깊은 나무’에서 채록한 여러 지방의 아리랑들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요즘 나는 그런 무속음악과 노동요에 레드제플린이나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메탈리카 같은 쉽고 강한 록을 곁들이는것으로 최상의 음악적 균형을 얻고 있고 이따금씩 전율을 느끼는 일 또한 국악에서도 록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리 오랫동안 국악에서 멀어졌던 정확한 이유가 뭔진 잘 모르겠다.생각나는 것은 내가 ‘서편제’라는 영화를 정점으로 외쳐지던 ‘우리것’ 캠페인에 질려 했다는 점이다.나는 국악을 우리 음악이라 듣는 게 아니다.단언컨대 지난 15년 동안 온갖 음악들을 부유하던 내가 다시 국악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 음악이 국적과는 상관 없이 그저 최고의 음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국악에 관한 한 ‘우리것’이라는 캠페인은 어떤 손색도 없는 고유한한 음악을 비참한 동냥아치로 만드는 일일 뿐이다. 김규항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 [공직탐험] 검찰지청장(2)

    ◆ 지역사회 최고의 '상전'대접. 지청장을 지내다 지난 21일 서울지검으로 전보 발령된 K검사는 출근 첫날부터 곤욕을 치렀다. 교통 체증을 우려해 지하철을 탔으나 다른 승객들과 심한 몸싸움을 해야 했다.이틀전만 해도 2,000㏄급 관용차로 편안한 출퇴근을 했던 K검사는 출근길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지청장을 역임한 검사들은 대부분 본청의 부장이나 부부장으로 복귀한 뒤갑작스런 신분 변화에 ‘사고의 혼란’을 겪는다고 고백한다.서울지검의 한검사는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지청장은 지역사회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에 가까운 권한을 누리며 최고의 ‘상전’(上典)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지역사회 기관장의 서열은 공식적으로는 지원장-지청장-시장-군수-경찰서장 등으로 매겨져 있다.하지만 지원장은 상징적인 위치만 점하고 있어 사실상 지청장이 최고의 기관장으로 대접받는다.관내 사법경찰기관인 국정원·경찰·노동부 등으로부터 각종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으며 수사를 지휘한다.지청장 관사는 보통 대지 100여평에건평 40∼50평 규모다. 시장과 군수 등이 임명직이었을 때는 국회의원의 ‘끗발’도 무시하지 못했지만 선거직이 된 이후로 지청장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지청장이 새로 부임하면 각 기관장들이 접경지나 공항으로 영접을 나온다. 지방 시장과 군수를 역임한 광역자치단체 행정부지사 K씨는 “지청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확확 바뀐다”고 말한다.지방경찰서장을 두번 경험한 총경 K씨는 아직도 지방서장 시절을 회상할 때 지청이없었던,더 작은 경찰서 시절이 좋았다고 말한다.그는 ‘아무리 좋은 고참도없느니만 못하다’는 군대 속담을 들어가면서 ‘지청 모시기’가 보통 일이아니라고 말한다. 기관장들이 행사 일정을 잡을 때도 지청장의 참석 여부를 우선 확인하고 참석할 행사를 선택한다.검찰,법원,경찰 관련 단체로 범죄예방위원회,조정위원회,청소년 선도위원회 등이 있지만 검찰이 관리하는 범죄예방위원회에 ‘힘있는’ 지역 유지들이 몰린다.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관장 출신 검사,특히 비부치(非部置),즉 부가 없는 작은 지청의 장을 역임한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검사들이 정신적인 혼란을 많이 겪는다. 지청장 출신 모 검사는 “지청장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다가 본청으로 되돌아오면 자신이 한명의 검사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 절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총선연대 로고송 당선작 발표

    ‘이제 새천년이 되었어 모두 변해가고 있는데/눈과 귀를 막고 문을 닫은곳 하나 국회/누가 누굴 욕하는 거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잖아/국민 팔아먹는 쓰레기 정치꾼 퇴출’(1절)‘바꿔,바꿔,바꿔,정치를 다 바꿔/바꿔,바꿔,바꿔,국회를 다 바꿔/바꿔,바꿔,이제는 다 바꿔/바꿔,바꿔 우리가 다 바꿔’(후렴)‘시민들의 분노 낙천,낙선운동 뜻을 모아 표를 모아 반드시 해낸다/깨끗하고 민주적인 인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치/이번에도 못해내면 후회하며 또 4년을 기다려야 해(랩)’ ‘IMF 끝났다 해도 서민들에겐 남의 얘기야/국회 출석 않고 해외 시찰 핑계대지마/부정 부패 반인권 범죄,대를 이어 군대도 안가면서/의정 활동비만 올리려고 혈안들이야 아∼’(2절) 총선연대 로고송으로 사용될 ‘바꿔’의 새로운 가사다.당선자는 원광대 음악대학원 4학기에 재학중인 정형락(鄭炯洛·29)씨. 총선연대는 지난 11일부터 홈페이지(www.ngokorea.org)를 통해 로고송 가사를 모집했다.모집부문은 ‘바꿔’ 개사,일반 대중가요·동요 개사,창작 등 3개 분야였다.모두 72편이 응모해 총선연대와 정치개혁에 대한 열기를 보여줬다.심사는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와 총선연대 문화홍보위원회에서 맡았다. 일반 대중가요·동요 부문에서는 40대 자영업자 이명훈씨가 동요 ‘겨울바람’을 ‘‥‥어디서 이 바람이 불어 왔는지 선거 무관심 투표 무관심 나라살림 무관심‥‥’으로,‘퐁당퐁당’을 ‘부정부패 돌을 던지자/지역감정 돌을 던지자/민주여 자유여 멀리멀리 퍼져라‥‥’라고 각각 개사해 당선됐다. 총선연대 김성민(金成民) 공연행사팀장은 “유권자들의 참여로 정치개혁을이루자는 뜻에서 시민들이 직접 개사한 노래를 공모했다”면서 “대중성,시의성을 중요시했다”고 말했다.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는 당선작을 낸 정씨를 명예회원으로 위촉했다. 이랑기자 rangrang@
  • [외언내언] 신 병영문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군대시절 체험이 자주 화제에 오른다.군대 체험이라고는 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내무반 생활의 고달픔과 곤경이 주된 화제가 된다.사병의 병영 내 생활이 의무화된 우리의 경우 내무반은 일과 후 사병들이편안히 쉴 수 있는 주거공간이 되어야 하나 많은 소대원이 공동생활을 해야하는 특성상 군기를 세우기 위해 고참의 통제를 받기 마련이다. 군대 내무생활이 국민들에게 희화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동작그만’‘우정의 무대’‘TV내무반,신고합니다’ 등 전파매체의 코미디나 쇼,드라마 때문이리라.악랄한 선임과 얼빵한 신참이 벌이는 소동,발랄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 군바리들의 모습은 실제로는 사병들의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엄격한 취침·기상시간과 일석점호,내무사열 등은 군인과 군조직의 규율을위해 불가피하다 해도 신참들은 고참의 사적인 시중과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내무생활이 고달프기 마련이다.심지어 어리어리한 신병을 길들이기 위해 ‘얼차기’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행과 체벌은 지난날 탈영과 병역기피의 원인(遠因)으로 지적되기까지 했다. ‘훈련이 힘들어서 탈영하나,내무생활이 고달퍼서 탈영했지’대부분 탈영병들은 검거된 후 내무생활의 불만과 고참의 부당한 폭행을 원망하기 일쑤였다.군 전투력은 첨단무기보다는 군인의 사기와 단결에서 나온다는 것은 병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변함없는 정설이다.군의 사기는 내무생활의 원만함에 달려있는만큼 인간적인 내무반 분위기 조성이 전력강화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국방부가 마련한 신병영문화 창달계획은 육·해·공군 공통의 표준일과표에 따라 사병의 근무시간을 주당 44시간이내로 하고 일과 후는 자유시간으로영어·컴퓨터 학습 등 자기계발에 주력토록 해 병영생활의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내무반에는 개인별 칸막이를 설치,사생활을 보장하고 내무반 수용인원을 30명 소대단위에서 9명 분대단위로 줄이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신세대 병사들에게 그들의 정서에 걸맞는 병영생활을 조성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조직보다 개인 중심이고 규율보다 자율에 익숙한 신세대 병사들에게 과거와같은 상명하복의 복종과 추종은 통하지 않는다.60년대 한겨울 임시막사에서 갈탄이 꺼지지 않을까 걱정하던 세대는 ‘연약한 군인’을 우려한다.작년 서해해전은 이러한 우려가 현재로선 성급한 기우임을 보여주었다. 중요한 것은 군대생활을 통해 배우고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보람되고 즐거운 군대생활은 인생의 기회이자 평생의 자산이라는 인식의 확산이무엇보다 소중하다.입영열기가 뜨거워 병무비리가 사라지기 바란다. 이기백 논설위원
  • 국방부 새 표준일과표 마련“자기계발의 터전으로”

    통제위주의 군대생활이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자기 계발의 기회가 주어지는 방식으로 바뀐다. 국방부 국방개혁추진위는 21일 ‘신(新)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에 따라육·해·공군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표준일과표를 새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부대관리상 불가피한 기상(오전 6시) 및 취침시간(오후 10시)과 점호는 종전처럼 실시하되 일석점호는 현재의 ‘내무사열’ 형태가 아니라 인원 및 사병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정도로 간소화했다. 일과시간은 주당 44시간(1일 8시간)으로 의무화했다.일과후 나머지 시간은병사들이 자기계발에 주력할 수 있도록 가급적 자율에 맡기도록 했다. 국방부는 이같은 일과표를 이날부터 일선부대에 적용한 뒤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단점은 보완해나가기로 했다. 국방부는 병사들에게 자기계발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컴퓨터와 영어,한자를 공통과제로 정해 매일 일과후 자유시간 중 1시간씩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전역 3개월 전부터 집중적인 교육을 통해 인터넷 검색사 2급 자격증 취득을 의무화하는 등 컴퓨터 교육방안도 포함됐다. 특히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소형 녹음기와 테이프,교재 등 개인자율 학습용교재 등을 반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토익이나 토플 등 국제영어자격시험 응시기회도 보장해 주기로 했다. 국방부는 중·장기적으로 병영시설 및 내무반 구조를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는 형태로 개선하는 한편,군 주특기 부여 때 사회의 전문성과 연계시키는방안도 강구키로 했다. 노주석기자 joo@
  • [부처별 업무보고] 국방부

    국방부가 18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한 주요 업무내용을 간추린다. ■군사대비태세 북한군의 국지도발에 대비,적 침투기지 및 장비를 24시간 추적 감시하는 등 확고한 위기관리 및 대비 태세를 구축한다.한·미연합 ‘작전계획 5027-98’의 수행 능력을 제고한다.한·미 안보협력을 기본축으로 일본,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균형있는 군사외교를 추진하는 등 한 차원 높은 대(對) 주변국 군사외교를 펼쳐 나간다. ■국방개혁 ‘정예 정보화 군’을 육성하기 위해 실시간에 전장관리 및 지휘통제가 가능한 C4I체계(Command,Control,Communication,Computer and Intelligence)를 건설한다.또 국가 초고속정보통신망과 연계,국방 정보통신망 기반체계를 구축한다.공정한 인사관리를 정착시키고 교육개혁을 추진한다. 내년도 국방예산을 제로 베이스상태에서 재편성하되 정보화,과학화된 정예군 육성에 가용예산을 집중 투입한다. 군의 중추인 하사관의 역할 및 권한을 재정립하는 내용의 ‘하사관 종합발전계획’을 시행한다.이에 따라 오는 6월부터 하사관의 명칭을 부(副)사관으로,복제도 장교와 동일한 형태 등으로 바꾼다.2003년부터는 하사관의 보수및 수당을 상향 조정한다. ‘국민과 함께하는 군대상’을 구현하기 위해 현재 교외로 시설을 이전중인 36개 부대와 함께 육군하사관학교 등 8개 중·대대급 부대를 신규 이전대상부대에 포함한다.230만평에 이르는 군사용 사유지를 정리한다. ■주요 현안 6·25전쟁 발발 50주년을 기념,2003년까지 452억원을 들여 전사자 유해 발굴 및 안장 등 52개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노주석기자 joo@
  • 군가산점 폐지 탈락자들 인터넷 통해 대응

    군필 가산점제도가 폐지된 지 두달여가 지나도록 ‘생존권’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고 있다.특히 인터넷을 통한 논쟁은 식을줄 모른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은 ‘제대군인의 정당한 평가와 역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모임’인 ‘싸우’(www.ssaw.co.kr).18일까지 9만여명이방문했고,회원도 300여명에 이른다. 이 사이트의 특징은 오로지 군필가산점에 관련된 주장만을 담고 있다는 것. 또한 여성에 대한 사이버테러가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징병제를 반대하거나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등의 주장 역시 거부하고 있다. 가산점에 대한 네티즌의 의견을 모은 ‘토론방’에는 군필자의 처지에서 볼때 ‘눈물나게 옳은 말’만 올라와 있다.‘난 이땅에 태어난 것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글을 올린 강모씨는 글 속에서 “군대 제대 후 복학생,늙은이라해도 난 숭고한 병역의 의무를 마친 것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나의 희생에대해 조금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난 부끄럽다”고 말했다. 분을 삭이는 곳인 ‘해우소’코너에는 “이제 이 부끄러운 군번을 반납하고 싶다”(포비병장)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힘을 한곳으로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TV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를 다시 부각시켜야 한다”는 행동론도 보인다. 이밖에도 가산점 폐지로 불합격한 이들의 사례를 모은 ‘피해상황실’을 만들어 군필 가산점 부활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이트 운영자 박모씨(23)는 “‘싸우’는 군필 가산점 사수를 위해 싸우는 모든 분들을 위해 만들었다”면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군필 가산점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한편 가산점 폐지로 올해 교원임용고시에서 불합격의 쓴잔을 마신 이모씨(31·경기 중등임용시험 탈락) 등 10여명은 최근 ‘교원임용시험 군가산점 구제 대책위’를 구성하고 행정심판을 제기하기로 했다. 이씨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수험생 100여명과 조만간 모임을 가질 예정”이라면서 “이들과 함께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여경기자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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