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군대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전선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매트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확률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 화상
    2026-03-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5,721
  • 포로 석방 배경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계속되는 공습에 한발더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토군의 공습 39일째를 맞으면서 국가 기간시설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마침내 각료들 가운데에서도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상황을 보면서 운신의 폭이줄어든 것으로 보여진다. 나토 솔라나 사무총장이 1일 “나토의 공습목표 달성이 눈앞에 보인다”고천명한 것이나 유고의 드라스코비치 부총리가 밀로셰비치의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등 심각한 내부분열을 드러낸 것은 이런 분석을 뒷바침한다. 밀로셰비치는 1일 내방한 제시 잭슨 목사를 통해 나토국가 군대를 포함하고 ‘자위를 위한 무기’를 지닌 평화유지군의 주둔을 허용하는 것을 앞세운 6개항의 중재안과 억류중인 미군 포로 3명의 석방을 협상카드로 내밀면서 화전을 요구했다. 밀로셰비치의 이 카드는 그가 항복하는 것을 제외한 꺼낼 수 있는 마지막카드로 보인다.그는 그동안 쭉 나토군이 무장한 채 코소보에 주둔하는 것을격렬하게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 부분에도 함정은 있다.자위를 위한 무기란 중화기가 제외된 것이며 주둔 활동중 유고군과의 교전 위험이 없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교전시에나토군의 희생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토로서는 이참에 공습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포로가 석방되도공습을 계속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어설픈 외교적 매듭보다는 당초 계획했던공습을 통한 완전한 목표달성을 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hay@
  • 주민증 병역 삭제 논란 ‘끝없다’

    “상징적으로나마 병역관계를 표기해야 합니다” “사생활 침해요소를 없앤 것으로 잘된 일이다”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병무비리가 비난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2000년 3월31일까지 현행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주민등록증으로 바꾼다는 것과 현 주민등록증 수록항목 가운데 본적,호주 및 병역 부분을 삭제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병역 대목.본적과 호주 부분 삭제는지역차별 해소와 남녀평등권 신장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인터넷 토론장인 유즈넷 이용자 김모씨는 이에 대해 “높은 분들과 그들의아들들은 군대에 많이들 안가 주민등록증에 5급(제2국민역)이라고 쓰여 있는 게 거슬리나 봅니다”라면서 “이제 군대 갔다온 사람과 안갔다온 사람의차이를 자꾸 더 없애려는 것 같다”고 삭제 소식에 불만을 표시했다. ‘우리는…’이라는 한 토론자도 “병역 부분이 왜 빠져야 하는가”라면서“이러면서 대다수 젊은이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가?”라고 역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행자부 관계자는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병역 기재사항을삭제했다고 밝혔다.주민등록증 병역란은 당초 병역미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것이나 주민등록초본 등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파악이 가능해 필요성이 엷어졌다는 것이다. 청사 주변에서는 이와 관련,“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신고 및 공개에 관한법을 하루빨리 만들어 지도층 인사 자제들의 병역 기피를 제도적으로 막는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5·18단체-진압부대 19년만에 ‘화해’

    광주의 5·18관련 단체 회원들이 19년만에 진압 군부대를 방문,용서와 화해의 자리를 마련했다. 7개단체 회원 280명은 30일 오전 80년 5월 당시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전남담양의 제11공수여단을 찾았다.11공수여단은 전남도청 앞과 금남로 일대에서 대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유혈진압에 나섰던 부대. 이날 방문은 5·18 관련단체들이 시민이나 진압군 모두가 ‘피해자’라는인식아래 특전사령부에 먼저 제의해 이뤄졌다.관광버스 7대에 나눠탄 회원들이 부대 정문을 들어서자 특전사 간부와 장병 등 100여명은 뜨거운 박수로맞았다.김덕수여단장은 버스에서 내리는 단체 대표들을 부둥켜 안았다. 김여단장은 환영사를 통해 “군복과 베레모를 쓰고는 광주시내를 맘놓고 걷지 못했다”며 “이 순간을 계기로 불신의 벽을 허물고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답사에 나선 이무헌(李武憲·42) 5·18광주민주화운동구속자회 회장은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군의 입장을 이제는 이해한다”며 “그동안의 반목과 갈등을 용서와 국민화합으로 승화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진압군으로 참여했던 김모(44)원사는 “마음 한켠에 늘 고통을 간직하며살아왔는데 이제 피해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용서를 받으니 가슴이 후련해진다”고 말했고,이에 금남로에서 목에 관통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된 김요한(金要漢·39·광주시 광산구 우산동)씨는 “몸이 아파올 때마다 군에 대한 증오심으로 치를 떨어왔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보니 형제같은 친숙함을 느낀다”고 화답했다.5월단체 회원 일행은 이어 이날 오후 전북 익산의 제7공수여단과 서울의 제3공수여단을 차례로 방문,당시 진압군으로 참여한 장병들과도 만났다.
  • [朴康文코너] 제 자식만 귀한가

    군대 가는 것 돈 받고 빼 주는 비리가 여전하다는 것이 또 확인되었다.“군대는 힘 없고 돈 없는 집 아들이 간다”는 믿고 싶지 않은 말을 “이래도 못 믿어”하고 다그치는 양 가끔 불쑥 터진다.징모 업무 부정이 오랫동안 국방부의 원용수 준위와 박노항 원사에게 돈을 퍼부어 준 화수분이었음이 밝혀진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열 달 전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참이다.이번에는구청과 병무청 직원,군의관들이 걸렸다. 병무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군대 가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과 돈을 주고라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군대 가면 손해보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고,부모가 안심하고 아들을 군대에 보낼 수있게 해야만,이 고질병이 근본적으로 고쳐질 수 있다. 이번에 당국이 조사해 발표한 것을 보면,청탁자들이 거의 모두 어머니들이다.우리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은 유난한 데가 있다.홀로 된 어머니가 삯바느질이나 행상을 해서 자식을 대학 공부까지 시킨 이야기를 드물지 않게 듣는다.이런 강한 어머니들이 나라를 떠받치는 기둥들을 길러냈다.나라의 발전이 이 어머니들에게 힘입은 바 실로 크다.그러나,법을 어기는 모성애,이기심가득한 모성애는 기릴 바가 못된다. 남의 아들 다 가는 군대를 제 아들만 가게 하지 않으려고 저지르는 불법행위는 이기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위화감을 주는 행위며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다.1,000만원이나 5,000만원을 뇌물로 쓰고 아들의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하는 어머니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어머니는 못난 어머니인가. 군 복무하는 병사들 가운데 일부라도 “나는 힘 없고 돈 없어서 입대했다”고 생각한다면,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전력은 약해진다.이기적인 모성애의 발휘가 이렇게 결과적으로 이적행위에까지 이르게 된다. 뇌물을 건넨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아이도 남편도 모르게 한 일”이라고말한다.아마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그러나,모든 아들과 남편이 모르고만 있었을까.수천만원의 돈을 남편 몰래 쓸 수 있는 집안의 재력은 많은 사람이부러워할 만하다.심신이 멀쩡한데도 징병검사에서 자신이 떨어진 것을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아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사후에 알려지더라도 가족의암묵적인 동의는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실천되었을 수 있다. 가족의 암묵적인 동의를 기대할 수 있는 바탕은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군대 빠지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사회 분위기로서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다면,어느 모성애가 자식 앞길 막는 일에 나설 것인가. 그런 분위기가 자리잡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군대 빠지면 예비군도 빠지는 등,손해는커녕 이득이 많은 불합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물론,군대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 선량한 젊은이가 억울하게 되지는 않도록 할 일이다. 아들들은 입대할 때 어머니 눈에 글썽이는 눈물을 본다.어머니 마음은 다같다.병영내 가학행위를 근절하고 안전 사고 예방에 힘써 생때같은 젊은이가 뜻밖의 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지난날의 군내 의문사 사건을 당국은 약속대로 분명하게 규명하고 그런 일이 앞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이러면,어머니들의 근심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네 검이 짧으면 그만큼 앞으로 나서라”이런 강한 어머니들이 스파르타를 강국으로 만들었다.스파르타 같은 군사국가 시절도 아니고 스파르타 어머니들처럼 굳센 마음까지 필요한 것도 아니다.다만,어머니들이 아들 걱정을 너무 하지 않도록은 해 주어야 한다. 이번에는 돈으로 해결한 경우만 적발했다지만,힘으로 해결한 경우마저 철저히 적발해서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지난해 드러난 사건의 관련자에 대한처벌이 너무 가벼웠다는 여론이 있었다.돈을 받은 이와 준 이는 예외 없이따끔하게 벌을 주고,불법적인 면제 혜택을 받은 젊은이는 사회 생활 내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공소 시효를 늘려 불법 면탈이 10년 뒤에 밝혀지더라도 즉각 입영시키든가 중벌해야 한다.그들이 끼치는 해악은 참으로 크다.
  • [제2공화국과 張勉](19)-요동치는 軍(上)

    1960년 8월27일 민의원에서 총리 취임후 첫 시정연설에 나선 장면(張勉)은긴급과제 6가지에 관한 정부 방침을 역설했다.마지막 항목에서 장총리는 “경제건설과의 균형상 과중한 국방비를 줄이고자 감군(減軍)을 하겠으며 이에 대비해 중장비를 도입하는 계획을 이미 수립했다”고 밝혔다.이어 “국군의 군기를 확립하고 일부에서 있었던 부패를 숙청하는 동시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군내 파벌 조성을 방지하기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다짐했다. 장총리가 제시한 군 관련 정책의 큰 줄기는 ‘감군’과 ‘개혁’이었다.또그가 지적한 군의 문제점들은 국민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들이었다.이승만(李承晩)정권 아래서 군은 정치에 심하게 오염된 상태였다[별도기사 참조].4월혁명이 일어난 뒤 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분야에 관한 것 못잖게 높았다. 4월혁명 공간에서 국민과 군의 만남은 충돌 없이 이루어졌다.4월19일 이승만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군이 서울 등 대도시에 진주했지만,경찰과는 달리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송요찬(宋堯讚)계엄사령관은 계엄군에게 “민가에 들어가지 말고 절대 음식을 얻어먹지 말 것,어떤 일이 있어도 총을 쏘지 말며 발포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계엄군인 15사단의 조재미(趙在美)사단장은 19일 고려대를 찾아가 강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절대 연행하지 않겠다”는약속을 해 해산시키기도 했다. 60년 4월 중립을 지킨 군의 엄정한 자세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다행스러운일이었다.가령 군이 유혈진압에 나섰다면 그 비극적 결말은 상상하기에도 두려울 정도였을 테고,계엄사태를 빙자해 직접 권력 장악에 나섰더라도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타격이 됐을 것이다. 4월혁명 과정에서 군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초연한 듯이 보였다.다만 장총리의 연설에서 지적받은 자체 문제점들을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내부에서일어났다.그것이 바로 정군(整軍)운동이다. 허정(許政)과도정부 시절인 5월2일 군수기지사령관인 박정희(朴正熙)소장은송요찬 육군참모총장에게 편지를 보낸다.“군의 최고 명령자로서 ‘3·15부정선거’에책임을 지고 용퇴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5월8일에는 김종필(金鍾泌)중령 등 육사 8기생인 중령 8명이 김중령 집에서모였다.이들은 정군운동을 벌이기로 뜻을 모으고 ▲3·15 부정선거를 방조한 군 장성들의 책임 추궁 ▲부정축재한 장성 처단 ▲무능·파렴치한 지휘관제거 ▲파벌 요인 제거와 군의 정치적 중립 보장 ▲군 처우개선 등을 목표로 정했다. 이들은 연판장을 돌려 군내 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했지만 즉시 발각돼 김종필 최준명(崔俊明) 김형욱(金炯旭) 옥창호(玉昌鎬) 석창희(石昌熙)등 5명이구속됐다.그러나 여론 악화를 우려한 송요찬은 이들을 바로 석방하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났다.송요찬의 후임으로는 역시 정군대상으로 꼽히는 최영희(崔榮喜)중장이 임명됐다. 장면내각이 구성되면서 국방장관은 현석호(玄錫虎),정무차관은 박병배(朴炳培)의원(무소속)이 각각 맡았다.장·차관 모두 군이나 국방에 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었다.다만 현석호에게 육사 2기생인 현석주(玄錫朱)라는 동생이 있어 그를 통해 군 내부사정을 알아보는 정도였다.장면은 국방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다.공보비서관인 고 송원영(宋元英,5선의원 역임)은 회고록에서 “장총리는 나이가 지긋한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앉힌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그러나 국방부의 모든 일은 한계가 있다고 본 것 같다.미군에서 작전권을 가진 이상 국방장관 자리는 한계가있다고 보았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는 최경록(崔慶祿)중장을 앉혔다.최중장은 이승만정권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은,몇 안되는 고위장성 가운데 하나였다.최영희는 합참의장으로 승진했다. 장면정부 출범후 영관급 장교들의 정군운동이 다시 떠올랐다.9월10일 김종필 김형욱 등 중령 11명이 현석호 국방장관을 방문해 전군을 상대로 정군을 단행할 것을 청원했다.현장관도 필요한 정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이틀뒤 국방장관이 현석호에서 민주당 구파인 권중돈(權仲敦)으로 바뀐 뒤 권장관은 정화조치의 첫 단계로 3·15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자를 조사하는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다. 9월20일 엉뚱한 곳에서 정군운동에 불똥이 튀었다.최영희 합참의장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국방부 군원국장인 윌리스턴 파머 대장이 한국을 떠나면서 정군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한국군 고위장성들이 최근의 사태에큰 불안과 초조를 느끼니 더 이상 조직을 흔들어 군사력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요지였다. 파머의 성명은 큰 반발을 불러왔다.최경록 육참총장이 즉각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9월24일에는 육사 7·9·10기 대표 16명이 최영희 합참의장을 찾아가 “파머를 불러들여 자리를 보존하려고 했다”면서 사임을 요구했다.‘하극상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태의 결과로 김종필·석정선(石正善) 두 중령이 61년 2월 예편당한다.배후로 지목된 박정희는 육군본부작전국장에서 2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된다. 이후 정군운동은 사라지지만 주동자들은 결국 쿠데타 음모로 돌아선다. 이용원기자ywyi@李承晩정권하의 軍실태 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동안 군은 외형상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대한민국 출범 당시 국군은 육군·해군을 합해 5만 병력 규모였다.‘6·25’발발직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1954년에는 65만명에 이른다.이후 다소 줄어 50년대 중반부터는 통칭 ‘60만 대군’으로 자리잡는다. 반면 이 시대는 군이 정치적인 사건에 자주 동원되고 그 영향으로 분파(分派)가 극심해지는 등 정치에 오염된 기간이기도 했다. 창군(創軍)이후 60년대 초까지 한국군 상층부를 이룬 장성과 고급장교들은출신에 따라 네 부류로 나뉜다.광복군 또는 중국 정규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 장교·하사관 ▲일본이 창설한 만주군 ▲공산통치를 피해 내려온 이북피난민 출신 들이다. 육군의 전신으로 46년 창설된 조선경비대에서는 광복군의 유동열(柳東悅)송호성(宋虎聲)장군이 초대,2대 사령관을 맡는다.하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김구(金九)를 지지하는 광복군·중국군 출신들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이승만은 초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참모총장(49년 폐지됨)에 일본군 출신 이응준(李應俊) 채병덕(蔡秉德)을 각각 임명한다.일군 출신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해 초기 국군이 기틀을 잡는 데 나름대로기여한다. 그러나 일군 출신들도 52년이면 ‘실권’에서 멀어진다.‘발췌 개헌’때 이승만이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에게 2개 전투사단을 부산으로 보내라고 명령하지만 거부당한 일이 계기가 됐다.일본 육사를 나온 이종찬은 “군의 정치적 개입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만만치 않은’일군 출신들을 배제한 이승만은 후임에 ‘젊고 경험이 부족한’만주군 출신들을 선택한다.대표적인 인물이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정일권(丁一權)과 백선엽(白善燁)이다.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공하려고 관동군 보조병력으로 창설한 만군은 그 위상이 독특했다.정규전 훈련보다는 독립군이나 마적들을 소탕하는 데 필요한 반란진압 전술을 주로 배웠다.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를 상대하는 바람에 그업무도 상당히 정치적이었다.그래서 흔히 “만군 출신의 많은 장교들은 군내(軍內) 분파주의와 음모의 원천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승만은 정일권과 백선엽을 교대로 중용하며 충성경쟁을 부추긴다.정일권이 51년 34살에 국군 최초로 중장에 오르지만 대장 계급장은 그보다 3살 아래인 백선엽이 53년 먼저 단다.육군참모총장도 정일권(50년)-백선엽(52년)-정일권(54년)-백선엽(57년)으로 왔다갔다한다.두 사람의 선두다툼은 군부 내에 함경도파(정일권)와 평안도파(백선엽)라는 두 파벌이 형성되는 원인이 된다. 군부내 파벌을 조장해 충성경쟁을 시킨 것 말고도 이승만은 여러 면에서 군을 정치에 악용한다.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때 부정투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헌병총사령부(사령관 元容德)와 특무대(대장 金昌龍)를 시켜 군 내부를 감시하는 한편 이들을 정적 제거에도 동원했다.‘서민호(徐珉濠)의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자금도 군비에서 조달했다.군은 당시 국가예산의 40%이상을 썼고 매년미국으로부터 4억달러 상당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원조받고 있었다.군에서 정치자금을 끌어쓰는 행태는 필연적으로 군 내부에 부패를 불러왔다.군수물자를 빼돌려 사복(私腹)을 채우고 위로는 상납하는 구조가 심해졌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군은 자유당·관료층에 버금가는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라 정군(整軍)운동을 불러왔다. 이용원기자ywyi@
  • [사설] 日의 방위관련법 주목된다

    새로운 미·일(美·日)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법안의 일본 중의원 통과는 여러 면에서 우려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27일 중의원을 통과한 주변사태법 및 자위대법 개정안과 미·일 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 개정안등 3개법안은 일본 주변에 유사(有事)사태가 발생했을때 일본이 미국을 후방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지금까지 일본영토의 전수(專守)방위에 국한했던 자위대의 군사활동을 주변사태로까지 합법적으로 확대한 것이다.군사활동의 범위를 비록 탄약·무기수송과 미군의 수색·구조등 후방지원으로 한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후방의 개념이 모호한 현대전의특성상 군사개입의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법이 동북아의 안보상황,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사태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군사지원이 가능한 유사사태의 범위에 무력분쟁이 발생했을 때만 아니라 무력분쟁이 임박하거나 내란·내전이 발생했을 경우,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을 경우,유엔안보리가 경제제재를 결의했을 경우 등을 폭넓게 포함하고 있는 점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을 돕기위한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뜻하고 있다. 미·일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에 일본의 역할분담을 겨냥한 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을 뒷받침하는 조치이다.미·일의안보협력 강화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중국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여 이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군대와 전쟁의 영구적 포기를 선언한 평화헌법에위배될 뿐만아니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한다는 이유로 일본 국내에서도반대의 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얼마전부터 시작되고 있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아울러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이 한반도안보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여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북한도 일본에게 군사력 강화의 빌미를 주는 도발행위는 중단해야한다.국내외의 반발로 1년이상 끌어왔던 가이드라인 관련법이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공작선침투를 계기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북한은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 [사설] 병무비리 끝까지 척결토록

    병무비리합동수사본부는 27일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병무비리 수사는 그동안 무수하게 많이 이루어져 왔었다.그럼에도 그 뿌리가 여전히 질기다는 것을 이번 수사가 보여주고 있다.병무비리는 두말할 것 없이국민위화감의 원인이 된다.병역이 의무인 나라에서 누구는 군대에 가고 누군안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그 비리는 뿌리뽑아야 한다. 병무비리 수사를 위해 정부가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만큼 병무비리의 폐해를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또한 그 비리에 대한 근절의지가 확고함도 과시했다.발표에서 드러났듯이 적발된 비리실태는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규모에서뿐만 아니라 관련자 면면에서도그러하다.이들 대부분이 부와 지위에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다.운동선수 연예인 기업체사장 고위공직자 은행임직원 교수 의사들이 그들이다. 지도층에는 그 위상에 걸맞은 윤리와 책임이 있는 법인데 이들은 그것을 방기(放棄)했다.윤리와 책임에서 사회의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도리어 사회의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채질했다.이번 수사에서 모두 207명의 비리혐의자가 적발됐다.이중 100명은 구속되고 80명은 불구속 수사중이며 27명은지명수배를 받고 있다.단일 사건으로 이렇게 많은 숫자가 구속되기는 과거몇몇 공안사건에서나 있었던 일이다.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5개월 동안 관련자 1,000여명을 조사했다.시간과 품과 경비가 많이 소요된 수사였다. 군대에 가고 안 가고의 기준이 돈의 있고 없음이어서는 사회통합은 있을 수 없다.그런 비리는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완전히 뿌리뽑아야 한다.유전면역(有錢免役) 무전현역(無錢現役)이라는 말이 세간에서 회자된 지 오래다.이 말이 빚어냈을 계층간의 갈등과 반목은 실로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렇다해서 병무비리가 처벌만으로 없어지지는 않는다.징벌과 함께 법적 제도적 개혁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무엇보다 군필자에 대한 사회생활에서의 상대적 불이익이 없어져야 한다.같은 맥락이지만 미필자의 상대적 이점이 허용돼서도 안된다.병영은 사회발전과 변화,개방과 개성 시대의 젊은이에 적합하게변모해야 한다.병영은 결코 젊은이에게 무익하거나 고통만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병역의무를 언필칭 신성하다고한다.그렇게 되려면 좋은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또한 그 집행이 공정해야 한다.그런 다음 비리가 있을 때 척결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않다.
  • 병역비리 관련자 명단

    ● 병역면제 청탁 금품공여자(135명)●구속 이용일(67·쌍방울구단주 대행·전KBO사무총장) 임금택(55·신한은행 서초지점장) 김경희(46·서울은행 응암지점장 홍성봉의 처) 조인택(61·세무사) 한대희(66·전 총무처 소청심사위원) 서용빈(29·프로야구선수·LG트윈스·보석) 마미숙(54·충남대 교수 이원웅의 처) 안승택(57·의사·부평안병원) 김교천(49·부산동아대 강사) 김영분(57·분당자동차학원장 배병태의 처) 민옥자(57·동남유화대표 최남호의 처) 최덕광(59·숙박업) 송진화(53·신생프러덕션대표) 이외룡(59·부동산임대업) 김현숙(50·회사원 김진철의 처) 양한묵(53·음식점 전무) 박춘옥(51·원창물산 상무 이강일의 처) 유일수(51·전 대유공영 대표) 이권재(48·전 로베르패션 대표) 노창식(61·무직) 권옥순(56·대원레저대표 박완순의 처) 김예균(54·개인택시) 박춘식(51·목수) 신영환(54·㈜신성 회장) 조규완(57·대창전기 대표) 송영섭(56·척추교정치료사) 민성기(49·철강판매업) 이상용(61·출판업) 김병준(50·㈜거봉 감사) 장재순(50·농장경영 김봉일의 처) 서재설(59·㈜삼성전기 부사장) 유병국(49·화랑운영) 이낙수(59·의류판매업) 김은배(46·회사원 이창명의 처) 오정자(57·삼익주택 법정관리인 원수언의 처) 정덕남(44·수산물중매인) 허창삼(52·㈜삼전 대표이사) 이한기(56·약국운영) 정광만(56·음식점경영) 고병헌(54·㈜금비 대표이사) 박청(55·직물도매업) 오동희(56·동조무역 대표) 오동훈(49·부동산임대업)●구속(적부심 석방) 주경빈(49·한양대 의대교수) 김용문(56·의사·강서고려의원) 백명자(62·한국기공 대표 서종국의 처) 구모환(49·동우직물 대표) 박무웅(55·신성전자부품 대표) 전용배(47·부동산임대업)●불구속(영장 기각) 김종윤(56·성남시의원) 송경(54·외환카드㈜ 감사) 전영실(51·의사·전영실 산부인과) 윤원조(59·건물임대업) 장유자(55·전 농어촌진흥공사 직원 단한주의 처) 정동건(54·개인택시) 홍기식(56·풍산전기 대표) 김정태(61·동양기업 대표) 김현수(54·삼립인쇄 대표) 이정상(55·무직) 이복연(54·의류판매업) 최종태(45·㈜우림해운 대표) 정혜경(48·영남정보통신 부사장 김용환의 처)●불구속 김영욱(51·하나은행장 김승유의 처) 최순강(55·가수·예명 김상희) 홍원식(48·㈜남양유업 대표이사) 이재홍(49·㈜대우중공업 상무) 전용수(55·인하대교수) 김병만(56·관악세무서 6급) 정창호(50·김포세관 6급)박철조(49·전 신한은행지점장) 방대영(63·전 주택은행지점장) 박순철(53·전 한일은행지점장)이석도(49·전 서초구청 도시국장) 곽원문(54·전 도로공사감리단 감사) 이혜경(52·LG LCD 사장 김선동의 처) 이근옥(69·전 호서대 교수 박윤성의 처) 강대균(68·변호사 임영득의 처) 김증자(56·변호사 최병륜의 처) 박순이(49·㈜LG화학이사) 이순상(53·의사 주영철의 처) 권혁권(63·의사·대림성모병원) 김기영(58·의사·서울구치소의무서기관) 구정열(56·의사·마산중앙자모병원) 이병원(60.의사·산재중앙병원) 우영혜(47·쌍용양회 지사장 권대헌의 처) 김명수(50·㈜해태상사 이사) 정영민(53·무역업) 이기석(43·건설업) 조재린(59·크린타치오 대표) 박융길(45·의류판매업) 김정택(57·건설업) 박재명(48·한일유통㈜ 부사장) 백송수(58·동성유통 대표) 송용민(52·전 ㈜이원대표이사) 이정희(50·음식점경영) 황태리(45·의류판매업) 한택환(49·부동산임대업) 김영창(57·건축사) 감경철(55·㈜익산 대표이사) 김두환(56·스포츠용품점) 문희지(61·부동산임대업) 정석명(53·의류제조업·두손 어패럴) 허용호(51·상원산업대표) 주명희(46·주부) 김은정(56·약사) 송희순(53·주부) 채실경(46·부동산임대업) 박상석(53·다남산업 전무) 김용심(50·건화상사 부회장 정우경의 처) 이재오(44·루치아노 대표 최원만의 처) 송인복(59·주부) 전희식(58·완구제조업) 우금순(58·환경미화원 박성구의 처) 방기봉(52·무직) 한은순(45·제마트 대표 임성재의 처) 정양호(55·국세청 5급) 최승계(55·무직) 안동진(52·무직) 장신자(57·전 농협직원 최정웅의 처) 정춘자(54·신라교역 대표 박준형의 처) 김병성(55·.의류판매업)●지명수배 김찬영(61·개풍산업㈜ 대표) 정종대(53·그린웨딩홀사장) 이민우(28·프로농구선수) 갈지원(53) 김용희(56) 신정희(50) 여창대(51) 박성래(55) 박정하(51) 허계근(57) 이상도(57)●참고인 중지 이연우(59·전 상업은행과장) 이명복(50·무직) 김유진(54.주부)● 알선자 및 전직 군의관(49명)●구속 최기택(44·서울병무청 7급) 정건표(46·〃 6급) 김재우(56·〃 6급) 김종기(43·〃 7급) 김세환(40·〃 7급) 이인옥(43·〃 7급) 유남술(54·〃 6급) 정윤근(47·병무청 징병검사과 6급) 박기석(56·〃 총무과장 4급) 이영운(40·〃 감사실 6급) 이영운(40·〃〃) 송두표(47·〃 산업지원과 5급)한상태(54·〃 징모국 4급) 박용원(41·경기병무청 8급) 허주철(45·〃 6급) 이기왕(52·신길1동 병무담당 7급) 김정권(57·전 모병관·해군준위) 성치용(55·전 국군수도병원·대령) 장용기(50·〃 소령) 이승준(59·전 관악구청 5급) 유광영(54·건물임대업) 권태훈(50·평화초등학교 7급) 나춘균(48·반도정형외과 의사) 이민용(39·의사·전 군의관) 손호열(39·〃〃) 김경수(32·〃〃) 이일철(35·〃〃) 이상표(34·〃〃) 이춘오(46·울산대학병원의사)●불구속 김진우(34·의사·전 군의관) 김평호(36·프로야구 코치) 곽주표(55·예비역대령) 소병빈(53·〃) 강선호(52·건물임대업)●지명수배 김진대(51·서울병무청 6급) 김영식(42·〃〃) 김영국(55.서울병무청 6급) 성용현(47·〃〃) 이흥섭(40·〃〃) 안계영(40·〃 7급) 양태근(40·〃〃) 조진구(45·〃 기능직) 조문길(48.전 〃 직원) 한소열(52·병무청징병검사과 6급) 김종근(41·경기병무청 7급) 최경희(51·전 강남구청 병사계장 6급) 황동연(44·전 성동구청 직원) 이상진(67) 정재효(63) 이상직(61)● 군인 및 군무원(23명)●구속 임영호(37·국군수도병원 외과처장·소령) 고기복(38·〃 안과과장·소령) 최경석(34·국군수도병원 신검과장·소령) 송상현(35·국군수도병원정형외과·대위) 윤영현(34·〃 정형외과·소령) 김익수(37·〃 정형외과장·소령) 윤태일(32·〃 정형외과·대위) 김장훈(34·〃 안과·소령) 김도술(52·〃 주임원사) 김양태(48·〃 군무원·7급) 이정수(50·〃 주임원사) 김용호(52·국군부산병원 주임원사) 임종범(47·〃 행정부장·중령) 임만석(48·국군대구병원 행정부장·중령) 김경환(35·국군 백제병원 안과·소령) 김인식(37·국방부 의무실장·소령) 박종영(45·〃 합조단 군무원 5급) 허성초(36·육군본부 의무감실·소령) 윤일선(39·공군교육사 진주기지병원장·소령) 조규섭(37·공군15비행단 신경외과·중령) 김규형(48·의무사령부 인사행정처장·대령) 정인호(44·〃 인사과장·중령) 여광조(46·연합사령부 기무대·준위)
  • 4者회담 핵심문제는 평행선

    제네바 오일만 특파원 4자회담 개막식에 이어 25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분과위원회가 열렸다.처음으로 실질적 토의에 착수한 만큼기대감도 높았지만 ‘분단의 벽’은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았다. ●긴장완화분과위는 예상대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의제로 명시하자는 북한주장을 놓고 ‘평행선 대립’이 계속됐다.한·미 양국은 “실천 가능한 쉬운 문제부터 논의하자”며 ▲남북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 설치 ▲군사훈련의통보 및 군사훈련 참관 허용 ▲군인사 상호 교류 등의 의제 선정을 제의했다. 북한측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한반도 긴장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맞서 이견 해소에 실패했다. 평화체제구축분과위도 난항을 겪었다.평화협정 체결의 주체 선정을 고집한북한에 대해 한·미는 “외국 사례를 검토하면서 평화협정 내용을 토의하자”고 주장,결론을 내지 못했다. ●24일 4자회담 전체회의는 의장국인 미국의 찰스 카트먼 대표의 사회로 각국 대표들의 기조연설과 의제에 대한 각국의 의견교환 순으로 이어졌다. 초반부터 시각 차이가 커 난항을 거듭했지만 구체적 사안은 분과위원회로넘기자고 합의,일단 ‘한고비’를 넘겼다.4국 대표들은 또 분과위원회와 별도로 수석대표회담을 수시로 소집해 합의가능성을 높이도록 했다. 박건우(朴健雨)한국측 수석대표는 “50년 묵은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 하는 만큼 인내심이 필요하다”며 군사핫라인 설치 등 3개 항을 제의. 반면 북한 김계관(金桂寬)대표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선행을 주장했다.중국의 첸융넨(錢永年)대표는 “인내심을 갖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자”며 ‘실질적 접근’을 요구하는 한·미 입장을 지지했다. ●회담장소 제공국인 스위스의 적극적인 ‘중재’도 눈길을 끌었다.크리스티앙 뒤낭 대사는 “한반도의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유럽안보협력(OSCE)의진행방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며 “4국이 원한다면 스위스 군대를 방문해 OSCE 검증 대표단의 상호 검증 절차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의했다. 스위스측은 ‘판문점 인도적 회랑’설치 방안도 제시한 바 있다.
  • [대한광장] 민중의 소리도 들어야 한다 / 도진순 창원대 교수

    이규보의 ‘동명왕편’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당시 고려에서는 배운 것 없는 비천한 남녀들까지도 고구려의 ‘동명설화’를 즐겨 이야기하곤 했다.그러나 많이 배운 이규보는 그 얘기를 듣고“공자님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동명설화는 참으로 황당무계하다”며 간단히 무시해버렸다.그런데 그 뒤 이규보는 ‘구삼국사기’의 동명왕 본기를 여러 번 읽고 난 뒤“이는 황당한 것(幻)이 아니요 성스러운 것(聖)”이라 찬탄하게 된다. 동명설화에 대한 이규보의 이러한 변절(?)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슨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규보의 원래 이름은 인저(仁^^)였다.그런데 그가 과거(科擧)시험을 보려고 할 때 ‘규성(奎星)’이라는 별의 신이 노인으로 나타나‘네가 장원을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이후 그는 ‘별로부터 보고받은 사람’,즉 규보(奎報)로 이름을 바꿔 쓴다.과거시험에 대한 집착과 함께 하늘로부터 점지받았다는 대단한 자부를 느낄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규보는 무신정권기라는 불우한 시절을 만나 과거급제 이후에도 9년 동안이나 실업자생활을 하게 된다.이때 그는 이규보라는 이름 대신 백운거사(白雲居士)를 자처하며 방랑과 방황을 하면서 민중세계와 접하게 된다. 그가 ‘동명왕편’을 쓰게 된 시기는 실업자생활을 시작한지 3∼4년 정도 되던 때였다. 과거공부를 하던 이규보가 접했던 책은 ‘사기’ ‘한서’ ‘후한서’ 등주로 중국 책들이었다.여기에는 중화세계는 있었지만 고려의 현실은 없었다. 반면에 실업자 백운거사가 접한 것은 중국 사서보다 세련되지 못한 신화·설화였지만 그 속에는 나라와 민중의 역사가 숨쉬고 있었다.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신화·설화적인 형태를 역사의 장으로 끌어 올리는 데는 시가 적격이라 하여 ‘동명왕편’을 지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후 조선에서 당쟁이 더욱 심화된 것은 아마도 명(明)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국가의 안보가 명에 의해 보장된다는 사대의그릇된 믿음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지속돼 청나라로부터 문물을 배우자고 한 북학파의 박지원에게도 남아 있었다. 박지원이 연행길에 올랐던 1780년은 청의 최전성기인 건륭(乾隆) 45년으로명나라의 숭정(崇禎)황제가 죽은 지 136년이나 지난 뒤였다.그럼에도 그는‘건륭 45년’을 굳이 피하고‘숭정 153년’이라는 명의 연호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청나라에서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할 수 없음으로 그는 부득이 ‘숭정 기원(崇禎 紀元)’을 생략한 채 ‘후삼경자(後三庚子·숭정 기원의 해는 경자년으로 세 번째 맞는 경자년이라는 뜻)’라는 연호를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민중들은 비록 세련되지는 못한 설화의 형태였지만 임진란 당시 이미 명나라에 대한 자주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었다.그들은 명나라 군대가 구국에 도움준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지만,대국 군대가 이국에서 행한 방자한 토색을 직접 맛보아야 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당시 민중의 설화는 이미 이여송과 명군의 횡포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민중의 이야기는 공식적인 역사로 쓰여지진 않았지만 식자들보다 앞서는 현장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사대가 공식적으로 폐기되는 근대 이후정당한 것으로 역사에 등록되었다. 오늘날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세상의 원리를 꿰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일수록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정리해고와 노동·실업의 현장,한·일어업협정과 어민들의 현장,농협과 농민의 현장 등등.비록 문법에는 맞지 않는 신화적·설화적인 수준일지라도 민중이야기는 늘 진실의 보고이다. ‘세계화’를 모르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세계어로 말하는 식자층일 수 있다.구체적 귀결인 현장의 소리를 외면함으로써./한국사
  • [외언내언] 북한 군사우위정책 /장청수 논설위원

    4월25일은 북한 인민군 창건 67주년 기념일이다.북한은 48년 2월8일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당초 이날을 창군일로 기념해 오다가 지난 78년부터 김일성(金日成)이 만주에서 조직했다는 반일인민유격대 결성일인 32년 4월25일로 바꿨다.알려진대로 북한 인민군은 6·25동족상잔을 일으킨 주력군으로 또는 북한 사회주의 존립의 보루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군의 위상과 역할은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金正日)체제 출범이후에도 지속돼 무소불위를 자랑하고 있다.김정일체제 출범 이후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이며 당’이라고 역설함으로써 기존의 당우위에서 군사우위정책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체제고수를 위한 군대의 중요성을 거듭강조하는 등 북한군의 제고된 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북의 이같은 군사우위정책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명백히 나타나 있으며 김일성생일인 이른바 태양절을 기해 군장성 79명을 대거 승진시킨 것은군사우위성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북한의 이같은 군사중시 정책은 김정일이군에대한 지속적 관심과 배려를 표명함으로써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위축된군의 사기진작을 통해 절대적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군부에 대한 카리스마가 약한 김정일로서는 군부를 장악하지 못하면 체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통치 전략으로 이해된다. 김정일체제 출범과 맞물린 북의 군사우위정책은 과다한 군사유지비로 북한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북한 군부가 권력의 핵심을 장악할 경우 한반도 안보에 위기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된다.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도 군사우위정책은 포기돼야 한다.총칼로 유지되는 정권은 총칼에 의해 멸망한다는 것은 세계사적 교훈이다.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도 결국 비극적 종말을 고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며 이는역사의 필연이다.현 시점에서 북한당국이 선택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무리한 군사우위정책을 포기하고 남북당국간 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보장을 제도화하는 일이다.그리고 과다한 군사비 지출과 군사적 모험주의를 중단하고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그 길이 바로 북한의 체제말기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이 함께 번영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李鐵基교수 아시아사회과학硏 학술포럼 주제발표

    통일한국의 적정 군사력은 어느 정도여야 할까.이철기(李鐵基)동국대 교수는 24만∼28만명의 군인을 보유해야 한다는 1차적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사회과학연구원(원장 李長熙 외국어대 교수)주최‘남북한 군사력 평가와 적정 군사력 수준’학술포럼에서 밝힌 이 교수의 주제발표 요지는 다음과 같다. 통일국가의 적정 군사력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외적 안보환경을 고려해야 한다.통일 후 주변의 잠재적국들로부터 제기되는 안보적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주변 강대국들과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방어적 충분성’의 원리에 입각한 자위에 필요한 전력의 보유를 말한다. 그 다음으로 통일국가가 지향해야 할 군사력의 구축방향이 고려되어야 한다.말하자면 통일국가의 군대는 병력 위주의 군대가 아니라 ‘소수 정예의 과학군’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음의 과제를 부과한다.첫째,병력의 대폭적인 감축이 수반되어야하며 육군 위주에서 탈피하여 육·해·공군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통일국가의 군사력은 경제력에 걸맞은 세계 10위권수준의 견실한 중견국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한국의 적정 병력수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통일국가의 인구수를 추계하는 것이 필요하다.통계청이 유엔의 자료를 토대로 추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까지의 남북한 총인구는 남한(5,061만여명)과 북한(2,911만여명)을합쳐 7,973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통일국가의 인구가 8,000만명에 달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인구면에서 가장 적당한 참고 대상국이 독일이다.독일 등을 참고로 할 때 통일국가의 적정 병력은 인구 대비,0.3∼0.35% 수준이면 충분하다.이를 예상인구 8,000만명에 대입해보면 통일국가의 적정 병력수는 24∼28만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육·해·공군의 비율도 점증하는 해양의 중요성과 반도국가라는 지정학적위치를 고려할 때 60 대 20 대 20 정도가 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한은 통일국가의 적정 군사력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군사력을 감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통일에 이르기까지 군축 과정을 평화체제단계,국가연합단계,통일국가단계의 3단계로 나눠 단계마다 보유 상한선을 설정해 무기와 병력을 감축해 나가는 것이다. 정리 구본영기자 kby7@
  • 4者회담 포용정책 시험대로

    제네바 오일만특파원 24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4자회담 5차 본회의는또 한번의 ‘대북 포용정책 시험장’이다. 이번 회의도 역시 ‘기대반 우려반’에서 출발하고 있다.기대는 지난 1월4차회담부터 가동된 긴장완화·평화체제 양 분과위가 ‘본궤도’에 오른다는 점이다.‘우려’는 북한이 아직까지 뚜렷한 변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북한은 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를 의제로 정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되풀했다. 한·미양국은 이번 회담에서는 초보적인 신뢰구축조치(CBM)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이다.양국은 남북한 군사통신망 설치,군인사 교류,군사훈련 사전통보·참관,인도물자의 판문점 직접통과 등을 제의할 방침이다. 본회의를 앞두고 4국은 양자회담과 차석대표회의를 잇따라 열어 의제선정을 위한 이견조율을 시도하는 한편 본회의 진행절차 등을 논의했다. 한·미는 22일 저녁 늦게까지 박건우(朴健雨)-카트먼 수석대표 주재로 양자회담을 갖고 긴밀한 한·미 공조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권종락(權鍾洛) 외교부 북미국장은“주한미군 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거론하지 않기로 의견을모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등 기존입장을 되풀이할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이 상당히 진전된 상황에서 모든 군대문제와 함께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할수 있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도 23일 오전 양자회의를 통해 “실효성있는 회의를 진행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회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23일 오후에는 4국은 차석대표회의를 열어 5차회의 진행순서와 형식 등을논의했다.이날 회의에서 4국은 24일 전체회의,25∼26일 긴장완화·평화체제양 분과위 가동 등으로 가닥을 잡았다.회의 마지막 날인 27일엔 분과위 토론내용을 문서로 전체회의에 회부키로 했다. 한편 21일 제네바에 도착한 북한대표단은 23일 미국과 양자회담을 갖고 긴장완화·평화체제 양 분과위 의제선정 문제와 금창리 지하시설 현장방문의 구체적 방안을 협의했다.
  • [金三雄 칼럼] 민주와 개혁은 양립되는가

    우리는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안고 있다.대표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묘청과신돈,조선 건국기의 정도전,중기의 조광조·율곡·정조,후기의 전봉준·대원군·고종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한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이들 중에는 국왕을 비롯한 권력자도 있고 학자와 개혁사상가도 포함된다. 개혁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무난한 방법은 권력자가 스스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이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두번째는 개혁사상가들의 뜻을 받아 권력자가 추진하는 옆으로부터의 개혁이다.상당한 불안과 정쟁의 요인이 따르는 방법이다.마지막은 개혁운동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적 방법이다.자칫하면 내란 또는 정변으로 이어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①은 정조와 대원군,고종의 개혁정치를 들 수 있고 ②는 신돈,정도전,조광조,율곡 ③은 묘청과 전봉준의 경우를 든다. 묘청은 서경천도·칭제건원 등 획기적인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신돈은 무신란과 원(元) 간섭기를거치면서 득세한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작업을시도하다가,정도전은 신권론(臣權論)으로 집약되는 국정쇄신을,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특권과 비리를 혁파하고 합리적이고 기능 위주의 관료체제 확립과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율곡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강화와 왕도정치를,‘탕평 군주’ 정조는 정치개혁을 총론으로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각론으로 하는 국정개혁을,전봉준은 척왜척양과 12개 폐정개혁,대원군은 서원철폐와 부패척결 등 갑오경장,고종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을 각각 추진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좌절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이 발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했다.왕조나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쇠퇴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개혁이나 경장을 서둘러야 해체의 비극을 겪지 않게 된다. 고려가 신돈의 개혁정치를,조선조가 조광조와 율곡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의 개혁요구만이라도 수용했다면 ‘해체’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여년의 군사통치유산과 김영삼 정부가 남긴 국가부도위기 그리고 남북대결과 지역갈등구조 등 그야말로 쇠퇴 또는 해체기의 국정을 맡아 ‘제2의 건국’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사 대부분의 개혁작업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도전에 의해 좌절되었듯이DJ개혁도 이들에 의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기득세력은 친일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거나 정경,정언유착을 통해 수혜를 받은 계층이다.이들은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더 연연한다.때문에 개혁에 도전적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보수 기득세력은 또 그렇다 치자.입만 열면 개혁과 통일,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인·지식인,노동계는 어떤가.국난극복과 개혁의 당위보다는 지역,파벌,계층,집단이기주의를 우선한다.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은 도덕성과 정당성에서 비롯된다.독재·부패정권에 협력하거나 기생해온 지식인·언론인들의 오늘의 비판자세는 어떠한가.최근 칼럼 미게재에 항의하면서 신문사를 떠난 한 언론인은 “포악한 정권에겐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 아래선 교활하다”고 토로하면서 “과거 정권 아래선 능동적으로 나쁜 짓 하던 언론이 이제는 매사를 트집잡고 비판해.집권세력을 보는잣대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해.하고 있는 것의 ‘동기’,집권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지”라고 말했다.이런 언론인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설 땅이 없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이고 지성계이며 개혁의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4·19후 장면 정권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이를 말해준다.DJ정부의 개혁작업이 주춤거리는 것도 반개혁 세력의 도전과 자율에 대한 악용에서 비롯된다. ‘자율’을 존중하되 악용·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혁이 요구된다.남한 180만 실업자,북한 300만 아사자를 둔 민족적 재앙과 문명사적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의 네트워크가 시급하다.우리에겐 실패한개혁의 역사를 되풀이할 여지가 없다. 김삼웅 주필
  • 美행정부, 지상군 투입 철저 배제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행정부가 유고 공습에 지상군 투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4일 시작된 나토의 공습을 회의적으로 지켜보던 여론은 물론다양한 색깔의 정치지도자들 사이에서 오히려 지상군 투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다. 여론은 60%가량이 코소보공습을 찬성했고 이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지상군을 투입해야 완전한 승리를 빨리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회는 민주당의원들 사이에서는 물론 군사 쪽에 밝은 상원의 존 매케인 의원이나 존 워너 군사분과위원장은 한결같이 지상군 투입을 주장해왔다. 15일에도 상원 군사위에서 미국과 나토가 공습에만 의지해서는는 밀로셰비치 유고대통령을 몰아내고 코소보 인종청소를 끝낼 수 없으며 오히려‘재난을 자초하는 처방’이라는 비난이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미 행정부와 일부 나토국가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유고내 군사력을 그대로 둔채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필요없는 손실만 가중시킨 채 전쟁을 장기화시킬 뿐더러인명피해로 인해 평화보장이란 명분이퇴색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고는 잘 알려졌듯이 게릴라전에 능한 강인한 군대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전설적인 티토의 게릴라전 전통이 아직 내려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토는 밀로셰비치가 나토의 지상군 투입에 게릴라전으로 맞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분석 속에 굳이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 보인다. 그럼에도 공습 사이를 비집고 유고가 민간인 학살이나 코소보 영역확보에지금처럼 계속 전념하는 한 지상군 투입을 요구하는 미국내의 목소리는 앞으로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朴康文 코너]’당구게임’과 ‘마지막 수업’

    방비를 해야 탈이 없다.율곡 이이가 10만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뒤에 왜군에 국토를 짓밟히고 임금은 압록강까지쫓겨가야 했다.프랑스도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 시대에 군비를 소홀히 했다가 프러시아 군에 파리를 포위당하는 꼴을 당했다. 프러시아 군대의 침공이 있기 3년 전인 1867년 프랑스 전쟁장관 아돌프 닐원수가 군비 현대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반대에 부딪혀 이루지 못했다.병력과 군비를 단단히 키워온 프러시아 군이 예상대로 1870년 프랑스로 쳐들어왔다.프랑스는 프러시아의 왕 빌헬름 1세가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을 차지하고여기서 의기양양하게 독일황제 대관식을 치르는 것을 구경해야 하는 국민적수치를 맛보았다.나폴레옹 3세는 황제 자리를 잃었다.프랑스는 제3공화국 시대로 넘어갔다. 다음해 강화조약에서 알사스와 로렌 지방을 프러시아에 떼어 주었는데,이시절 이야기를 쓴 알퐁스 도데의 작품 하나가 ‘마지막 수업’이다.이 소설은 꽤 오랫동안 우리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마지막 프랑스어 수업 시간 이야기가 우리에게 각별한 감명을 주는 것은 일제에 강제 합병되고 국어와이름까지 말살되는 지경을 겪었기 때문이다. 제 나라 말을 마음대로 쓴다는 것이 보통 때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지만,그럴 자유를 잃으면 그처럼 서러운 것이 없다.프랑스 국민에게 애국 교과서가 될 만한 이 소설을 쓴 도데의 다른 작품 ‘당구 게임’이라는 것도 같은단편집 안에 함께 들어 있다. ‘당구 게임’은 지도층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생각된다.프러시아 군대가 눈앞에 몰려온다.전령이 급박한 상황을 사령부로 전하는데 사령부에서는 아무런 명령이 없다.그 시각에 사령관인 장군은 멋진 정장을 하고 부하 장교와 당구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이윽고 사령부 마당에 포탄이 떨어져도 이 배짱 두둑한 장군은 전혀 동요가 없다.결국 장군은 당구를이겼으나,장군의 군대는 패주했다. 이 ‘당구 게임’은 우리 외환 난리 전후의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우리 사령탑이 닥쳐오는 전쟁을 보지 못하고 무슨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다.대통령 선거와 국난이 함께 물려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불행이었다. 우리 경제정책 수립과 시행에 오래 관여한 고위 공직자 한 분을 인터뷰한일이 있었다.그때 골프 금령이 풀리지 않은 때여서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뒤에 알고 보니 그의 취미는 골프고 실력은 ‘싱글’이라고 했다,고위 경제관료가 한 단위 숫자 핸디캡이 되도록 골프를 쳐대는데 신경을 쏟았으니 나라 경제가 제대로 되었겠는가,골프 또한 ‘당구 게임’이 아니었는가.‘당구 게임’은 이밖에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독일의 강자 프러시아가 제2제정 프랑스를 친 것은 독일과 유럽의 복잡한정세 때문이었지만,그 전 제1제정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에게 독일이 혼난일이 있었으니까 설욕한 셈이기도 했다.나폴레옹의 성세에 독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되었을 때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라는 연설로 민족정신을 고취했다.그 뒤 부단히 국력을 기른 프러시아는 방비가엉성해진 프랑스를 쳤다. 알퐁스 도데 단편집은 ‘당구 게임’의 장군들 때문에 종국에는 ‘마지막수업’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우리에게는 ‘당구 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는 대담하고 대범한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있다.그 동안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을 고치고 정신을 가다듬어야 다시 또 난리를 당하지 않으련만, 제 잇속 챙기고 제 기분 내는 데만 마음을 쏟으니 언제 또 민초들만 녹아날지 걱정이다. [편집국 부국장 pensanto@]
  • 임동원 청와대외교안보수석, 韓·美 주한문제 논의 가능

    임동원(林東源)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12일 주한미군의 지위변경 논란과 관련,“한·미 두나라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문제에 관한 실질적인 진전이이뤄질 때 한반도내 모든 군대의 구조나 배치문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서 “이 때 남·북간의 군사력과 주한미군 문제를 함께 논의할 수 있다는입장”이라고 밝혔다.
  • [인터뷰] 자민련 姜昌熙신임총무

    “솔직히 염치가 없고 송구스럽다.”자민련 강창희(姜昌熙)신임총무의 취임 일성이다.12일 의원총회에서 선출되자 인사치레로 한 말이다. 강신임총무는 승승장구중이다.사무총장·과학기술부장관에서 원내총무로 이어지고 있다.공동정권 출범 1년 남짓 동안 화려한 경력을 쌓고 있다.‘잘 나간다’는 비아냥마저 사고 있다. 강총무는 “훌륭한 동료의원들도 많아 박태준(朴泰俊)총재에게 고사했다”고 소개했다.그러면서도 “총재님도 그러시고 총리께서도 간곡한 권유도 있고 해서 당이 어려울 때 기꺼이 나서는 게 도리”라고 소감을 대신했다.그는 “순리와 상식에 벗어나서 잘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정치에는 원칙이 있다”고 강조했다.“이 세가지를 바탕으로 윗분과 상의하고 동료의원들의 조언을 구해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향후 국회운영과 관련해서는 “상대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한나라당이부영(李富榮)총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형님으로 부르고 있어 얘기가 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정치개혁협상 등 현안에는 “지금부터 파악할 것”이라고 즉답을 유보했다. 오는 8월까지 내각제 논의 중단에 대해 “총장 재임중 대선후보 단일화와내각제 개헌에 합의했으므로 주역은 아니지만 책임은 있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내각제 소신에는 변경 여지가 없다”면서도 “다만 8월까지 논의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니 그 테두리 안에서 할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53 ▲대전고 육사 ▲육군대 교수 ▲민정당 조직국장 ▲총리비서실장 ▲자민련 사무총장 ▲과학기술부장관 ▲11,12,14,15대 의원
  • “승용차 구입 이달이 적기”

    ‘차를 구입하려면 이달중에 사세요’ 승용차 성수기인 4월을 맞아 현대,기아,대우 등 자동차3사의 판매전쟁이 뜨겁다.파격적인 할부제와 다양한 할인제가 선을 보이고 각종 판촉행사도 잇따라 차량구입에 유리한 시기다. 할부및 할인제도 현대는 아토스,엑센트,아반떼를 대상으로 프라임할부를실시한다.할부방식은 인도금 액수(10만원에서 구입금액의 40%까지)에 따라정상금리(연리 13.8%)의 절반수준인 6∼8%를 적용한다.보너스할부는 평월에는 일반할부금액의 60%만 내고 1년에 한번만 평월의 8배를 한꺼번에 납입하는 방식으로 매달 내는 할부금에 부담을 느끼는 샐러리맨에게 유리하다. 대우는 할부금 납입시기를 2000년 1월까지 유예해 주는 밀레니엄 할부제를실시한다.보험료,등록비 등 차량구입 부대비용을 차종에 따라 120만∼200만원까지 연 6∼10%의 저리로 대출해준다.대상차종은 라노스,누비라Ⅱ,레간자,브로엄,이스타나등이며 할부기간은 24개월과 36개월 두가지다. 13.8%의 금리를 적용하는 정상할부땐 차종에 따라 20만∼50만원을 할인해준다. 기아는 3사중 유일하게 무이자할부를 시행하고 있다.할부금리를 6%로 낮춘수퍼할부제도와 계약금 10만원만 내고 나머지는 모두 할부로 납입하는 전액할부제도도 실시중이다.일시불 구입땐 차종에 따라 10만∼50만원을 깎아준다. 판촉 이벤트 대우는 ‘대우오토카드 더블포인트’,‘대우오토 마일리지 페스티벌’등의 이벤트를 벌여 할인혜택을 준다.이중 대우오토카드 더블포인트제는 대우오토카드를 갖고 있는 고객이 레간자를 사면 카드적립포인트 금액의 2배,최대 60만원까지 할인해준다.중형차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레간자 밀레니엄 스페셜 모델을 내놓고 구입 선착순 2,000명에게 최고 40만원까지 할인해준다. 현대는 4월 한달간 ‘해피투게더-현대 대축제’를 펼쳐 직장과 아파트 주민,가족 등이 2대이상 단체로 구입하면 특별보너스를 제공한다.대상차종은 아토스,엑센트,아반떼 등 3개 모델이다.상장회사,5대그룹 계열사,공기업,군대,은행,학교,중앙부처및 지방정부의 직원중 2명이상이 2∼4대를 구입하면 1인당 도고 수안보 백암 등 온천지 호텔의 하루 숙박권을 받을 수 있다. 기아도 4월중 승용차를 구입한 전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등 한명에게 노트북 컴퓨터를,2등 100명에게는 레스포 MTB자전거를 증정한다.또 스포티지와 레토나를 산 고객중 추첨을 통해 20명에게 금강산 관광을 보내준다.
  • 金대통령, 해병대 50돌 축하메시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10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50주년 기념식에 축하메시지를 보내 “국민의 사랑과 존경 속에서 성장해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믿음직한 해병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우리 해병이 한국전쟁과 월남전,그리고 대간첩작전을 통해 쌓아올린 혁혁한 전공은 국민의 방패다운 자랑스러운 것”이라며 “그 고귀한희생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양승현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