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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이슈-유럽 근로시간 연장 논란] “공공부문 파업권 제한” 움직임

    |파리 함혜리특파원|강력한 노동운동의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노조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노조의 파업이 연례 행사처럼 벌어지는 프랑스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교통과 에너지 부문 노동자들은 파업을 단행해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불편을 겪고 대통령궁에 전기 공급이 끊기는 사태가 발생했다.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노조도 경제·사회적 환경 변화와 기업의 세계화 논리에 밀려 기존의 입장을 누그러뜨려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위협받으면서 프랑스 노동운동의 성과물로 꼽혀온 주 35시간 근로제도가 흔들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일계 자동차 부품회사 보슈 프랑스의 노동자들이 최근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주당 노동시간 1시간 연장,보너스 삭감,3년간 임금동결 등을 골자로 하는 사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프랑스 노동계는 보슈 근로자들의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근로자들의 심정은 절박했다.보슈 직장협의회와 민주노동동맹(CFDT) 관계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사측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장은 해외로 이전하고 우리는 일자리를 잃을 처지였다.”고 털어놓았다. 헌법이 보장한 노조의 파업권도 위협받고 있다. 디외도네 망델케른이 이끄는 위원회는 21일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시 이용자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제공을 보장하는 방안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보고서는 여러 공공부문 중 지하철,철도,버스 등 지상 여객 수송 분야에 한해 파업권을 제한하고 노조의 파업시에도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최소 공공서비스 보장 방안으로 지상 여객 수송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파업 48시간 전에 파업 참가 여부를 경영진에 통보하고 ▲파업 예고기간을 종전의 5일에서 10일로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특히 보고서는 파업권을 제한해 최소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분야를 법적으로 정할 것을 제안했다.현행법에 따르면 검찰,경찰,군대,교도 행정원은 파업권이 없으며 병원은 파업시에 최소 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외부의 압력 없이 최후의 순간에 파업 참가 여부를 결정할수 있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제안이 기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는 파업권을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주요 분야에서 잦은 파업이 발생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최근들어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더라도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면서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어떤 경우에라도 최소한의 공공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관련 조치를 입법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당분간 정부·사용자·노동계 사이에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lotus@seoul.co.kr
  • 이라크 저항세력 외국인 6명 참수 위협

    한 이라크 저항세력이 케냐인 2명과 인도인 3명,이집트인 1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며 인질들의 소속 회사인 쿠웨이트 기업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인질들의 목을 베겠다고 위협했다고 AFP통신이 아랍계 위성방송 알아라비야를 인용,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해당 쿠웨이트 기업은 미국의 이라크 재건 사업에 참여한 업체로 추정된다. 납치범들은 알아라비아가 이날 방영한 비디오테이프 화면에서 자신들이 “검은 깃발”이라고 밝혔다.총을 든 납치범들 중 한 명은 “우리는 케냐인 2명과,인도인 3명,이집트인 1명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면서 “인질들의 소속 회사가 이라크 땅을 떠나지 않으면 72시간 마다 한 명씩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비디오 화면에는 “모하메드 알리”라고 이름을 밝힌 이집트인 인질이 “제발 회사는 이라크를 떠나달라.”며 애원하는 모습도 담겨있었다. 바그다드 주재 이집트 대사관은 방송 직후 트럭운전사 모하메드 알리가 납치됐다고 확인했다. 인질로 붙잡힌 이들의 소속 국가들인 케냐와 인도,이집트는 모두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도 않은 국가들이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이경형칼럼] 軍은 신뢰를 먹고 산다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에 따른 최근 일련의 사태는 청와대와 군이 서로 대척점에서 갈등을 빚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래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차제에 군이란 어떤 조직인가라는 물음에 군 스스로는 물론,청와대와 여야 정치권도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해군의 경고 포격을 전후한 작전 전개 상황과는 별개로,남북 함정 간에 이뤄진 교신의 정확한 내용과 여기에서 파생한 보고 누락의 성격을 보는 청와대와 군의 시각차로 증폭되어 왔다.그동안 드러난 합참 및 국방부의 사건 경위 발표와 노무현 대통령의 재조사 지시,그리고 교신 기밀의 일부 언론 유출 등의 과정을 보면 군과 청와대 간에는 어떤 불신이 깔려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불신이 군의 정보처리 메커니즘에 대한 청와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청와대는 적어도 현 군수뇌부가 남북화해라는 큰 틀에서 변화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그래서 인사,의식 전환 등 어떤 형태로든 군부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여당내 일부 그룹들도 현 군부의 군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에 막연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김희선 의원이 현역 군 장성들에게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낸 것도 이러한 시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군은 청와대가 군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군에 신뢰를 주지 않으며,더욱이 군의 명예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고 보고 있다.비근한 예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현역 대장을 공금유용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개 끌듯,끌고 다닌 일’을 지적하곤 한다. 지난달 모범 용사로 본사에 초청된 부사관들은 오찬 자리에서 한결같이 별 4개를 어깨에 단 채,헌병들에게 끌려다니는 장군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군인의 한 사람으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징역 5년 구형에도 불구하고,벌금 2000만원으로 판결 난 데서도 이런 분위기가 묻어난다. 흔히 군은 신뢰와 사기로 먹고 살며,명예를 위해 죽고 산다고 한다.총칼을 든 군대에 신뢰가 없어지면 그것은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군대는 배가 고파도 사기가 충천하면 필승한다고도 한다.사기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통수권자의 신뢰에서 나온다.그리고 군의 명예는 계급장의 존중에서 나온다.적어도 군대 조직은 ‘계급장을 떼고’ 얘기할 수 없다. 군은 최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신뢰가 실추된 것이 사실이다.각종 독직 사건은 물론 군인공제회의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 등으로 군 수뇌의 윤리성도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군은 스스로 잃어버린 신뢰를 찾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참여 정부도 군에 진정한 애정을 갖고 신뢰를 심어주도록 해야 한다.군은 청와대의 손길이 차다고 느낀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수십년간 군사정권의 핵심 지배 세력이었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함으로써 군의 문민 통제를 정착시켰다.YS는 회고록에서 군 개혁이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으로 단행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술회하고 있다.그만큼 군부 인사는 군통수권자도 대단한 결심 없이는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군은 언필칭 국민의 군대이고,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군의 통수권자다.군은 통수권자에 대한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여기는 조직이다.노 대통령은 군 인사 쇄신을 통해 군통수권을 확립할 수 있다.다만 장군의 옷을 벗기더라도 명예까지 벗겨서는 안 될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朴대표 삼성동자택 기자 초청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1일 “정부가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출입기자 20여명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상생의 정치는 무조건 싸우지 않거나 정부·여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표는 그동안 대여관계에서 상생과 통합을 강조해온 만큼 이날 발언은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이에 따라 박 대표가 2기 체제를 맞아 대여 강경자세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표는 “안보에 있어 정부가 이해되지 않는 행태를 할 때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지금은 우리가 서 있는 바닥이 흔들거려 야당이라도 버티고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이 정부가 과연 경제를 살려낼 능력이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간첩이 군사령관을 취조하는 나라면 볼장 다 본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건도 문제의 핵심이 위장 월선이고,군대는 나라를 제대로 지켰다.”면서 “나라가 너무 이상하게 가고 있다.우리가 이에 대해 공개질의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박 대표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과 빨치산을 민주화 인사로 판정했는데 대통령이 여태껏 경고 한번 하지 않고 있다.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집으로 기자들을 초청한 것은 지난 2002년 1월에 이어 두 번째다.이날 초록색 정장 차림으로 ‘손님’들을 맞은 박 대표는 저녁식사에 앞서 집안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박 대표의 2층 양옥 곳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놓여 있는 등 가족들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육 여사가 직접 수놓은 한반도 지도 모양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박 대표는 2년반 전과 마찬가지로 민요 ‘아리랑’을 피아노 연주로 들려주기도 했다. 식사는 정갈한 한정식으로 차려졌다.술을 거의 못하는 박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폭탄주 러브샷’을 하며 호기있는 모습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그는 “2002년 집 공개 이후 (정치적으로) 시련을 하도 많이 겪어 이제야 다시 공개하게 됐다.”면서 “평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오는 경우가 없어 그릇과 상은 이웃에서 빌려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올 3월 대표 취임 이후 취미인 테니스와 국선도,통기타 연주를 거의 하지 못했고 요즘 흰머리도 많이 늘었다.”고 멋쩍게 웃으면서 “집에 돌아오면 자고 싶지만 반드시 이메일을 점검하고 미니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글을 올린다.”고 털어놨다. 이번 대표최고위원 경선에서 40대 후보들이 선전한 데 대해 그는 “예상 밖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상당한 변화가 한나라당에 찾아온 것”이라며 “여론조사와 네티즌 선거가 있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여권내 ‘386’세대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서는 “지금 총체적으로 그쪽이 주도권을 잡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386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고 사람 나름”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3월 이후 한번도 쉬지 못해 조만간 아는 사람들과 휴가를 다녀올 생각”이라며 “숲이 좋고 계곡 물이 많은 곳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아버지가 대통령이던 시절 경상남도 저도에 가족들과 함께 놀러갔던 생각이 난다.”고 회상하기도 했다.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저도에서 아버지와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며 (내가 아버지에게)‘영혼이란 게 있나요.’라고 물었다고 하더라.”는 얘기도 했다. 그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아버지는 우리 집에 불이 났는데 우리가 끄려고 노력해야 남이 돕지,그러지 않으면 남이 돕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이것이 박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개념이다.지금은 말 한마디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데 이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박 대표는 이날 ‘국가’와 ‘민족’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썼다. 박대출기자 dcpark@seoul.co.kr
  • 은행원 軍경력 연봉차 최고 800만원

    군대 경력은 800만원짜리? 시중은행의 초봉이 군대에 다녀왔느냐에 따라 많게는 8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학원 졸업자는 대학 졸업자에 비해 최고 600만원을 더 받고 있으며,대학원 경력은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의 초봉에 더 많이 반영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신문이 20일 시중 7개 은행의 초봉을 조사한 결과 신한은행의 군필자의 연봉은 3600만원으로 여자 신입행원 등 군미필자(2800만원)에 비해 800만원 많았다.은행측은 “군필자는 5급 2호봉인 반면 군미필자는 6급 5호봉으로 급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군미필자는 입행 2년차가 되어야 군필자의 초봉과 같아진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군필자와 군미필자 초봉은 각각 3100만원과 2500만원으로 600만원의 차이가 났다.이어 외환은행(3000만원·2500만원)과 제일은행(2900만원·2400만원)은 500만원씩,국민은행(3300만원·3100만원)과 조흥은행(3100만원·2900만원)도 200만원씩 차이가 났다.군필자와 군미필자 행원의 초봉이 같은 곳은 하나은행(3600만원)뿐이다. 대학원 경력은 군대 경력에 비해 초봉에 적게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또 같은 대학원 경력이더라도 군필자에 비해 군미필자가 대학원 경력을 더 많이 인정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은행 군미필자의 경우 대학원 졸업자(3400만원)와 대졸자(2800만원)의 초봉은 600만원 차이가 났다.반면 군필자의 경우 대학원 졸업자는 3700만원,대졸자는 3600만원을 받아 대학원 경력에 따른 차이가 100만원에 불과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민노당 “파병철회” 올인

    민주노동당이 이라크 파병 철회에 ‘올인’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등 최고위원과 천영세 의원단 대표,이라크에서 국정조사중인 권영길 의원을 제외한 의원 전원은 20일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옆 열린시민공원에서 이라크 파병 철회와 전쟁 중단을 촉구하며 무기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민노당은 25일 당대회 이후부터는 의원단 전원은 물론 각계 원로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함께 단식에 돌입할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파병결정을 철회하거나 기존 군대의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이라크 침략 전쟁은 부시의 사리사욕을 위한 것으로 만일 정부가 파병을 강행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거듭 경고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또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여야 의원 50명이 파병 재검토 결의안을 제출했으니 국회에서 이를 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임시국회 소집을 촉구했다. 천 대표는 “이달 말 파병물자가 수송되고 8월 초 추가 파병이 이뤄지는 등 상황이 대단히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당 전체적으로 더욱 결연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지난달 의원단의 원내 농성보다 훨씬 더 위상이 높고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하는 차원으로 참여 주체도 넓어졌다.”고 덧붙였다.최고위원과 의원단,수도권 지역 지구당 위원장 등 50여명은 이날 파병반대 한국군 철수를 위한 민주노동당 결의대회를 갖고 퇴근 시간에 광화문 등 서울 곳곳에서 파병 결정 철회의 당위성에 대해 선전전을 펼쳤다. 이들은 순회 연설회와 간담회 등을 개최하고 의원과 최고위원이 결합해 ‘버스 투어 홍보’도 하는 한편 오는 24일 청와대 앞에서 파병반대 시민들과 함께 ‘청와대 인간띠 잇기’ 퍼포먼스를 벌인다.또한 25일 당대회에 앞서 참석자 1200여명과 함께 광화문에서 사전 집회를 갖고 이라크 파병 즉각 철회를 촉구하기로 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핫라인’ 진상 논란 혼란스럽다

    ‘서해상 핫라인 허위보고’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본질을 벗어나고 있어 혼란스럽다.각 정파들의 분별없는 주장으로 자칫 이념논쟁으로 확산될까 우려된다.이번 사건의 핵심은 북한의 핫라인 응답이 있었다는 사실이 합동참모본부 이상의 지휘계통에 보고되지 않은 배경이다.합참-국방부-대통령 등의 계통을 밟는 사전보고를 미처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보고됐어야 할 중요 사안이었다.보고누락을 중심으로 진실규명이 된 뒤 정치적 해법을 내놓는 것이 순서상 맞다. 한나라당은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뒤 핫라인을 통해 중국어선이라고 기만전술을 폈다.”면서 “북한에 엄중항의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국민불안을 조장한다고 비난했다.북한측의 기만전술이 있었는지는 분명히 가려져야 할 대목이다.그러나 북한측의 기만전술이 있었다면 더욱 상부에 보고해야할 사태다.그를 방기한 책임은 덮어두고,NSC의 의도만 파고드는 행동은 옳지 않다. 열린우리당측도 정치적 예단을 갖기는 마찬가지다.김희선 의원은 “이런 일들이 대통령의 지도력을 인정하느냐는 문제로 비쳐지고 있다.”면서 “군대의 준장,소장 등은 군부정권에서 커온 사람들”이라고 말했다.핫라인 보고누락 사태를 군 간부들의 성향 논란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여당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대북화해 기류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깔린 행동이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건의 추가조사를 지시했다.현장에서 교전수칙대로 포격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북측과 교신내용이 중간보고 과정에서 누락된 점은 누가봐도 잘못됐다.국방부는 어느쪽으로라도 ‘짜맞추기식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보고누락의 원인과 책임을 확실히 밝혀야 온갖 오해가 풀리고 사건 재발도 방지할 수 있다.정치권은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 [北교신 보고누락 재조사] 여야 엇갈린 반응

    북한 경비정의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한 교신내용 보고누락 사건을 보는 여야의 입장차가 뚜렷하다. 19일 여당은 북한 측에 대한 언급은 삼간 채 우리 군 수뇌부를 비판하고 나섰다.반면 야당은 우리 군을 두둔하면서 북한 측에 화살을 돌렸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은 이날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발언을 자청,“(지금)군대의 준장에서 소장에 있는 사람들은 중령에서 대령이 되는 과정에서 군부정권에서 지도력을 키워온 사람들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안보태세 등 여러 부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결국은 대통령의 지도력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말했다.이같은 발언은 현 정부내 군장성급 인사에 대한 불신을 밑바탕에 깔고 제기한 ‘물갈이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해,당내 일각의 군 인사시스템 개혁주장과 맞물려 파문이 예상된다. 김현미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그 어떤 승리한 전투보다 평화가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교신에서 ‘허위보고’를 한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실체를 규명하고,상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이와 관련,열린우리당은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위해 국회 국방위와 정보위를 소집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덕룡 대표권한대행은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북한은 NLL을 침범하고도 핫라인을 통해 거짓말을 했는데,이는 중대한 일로 외교적인 문제”라며 “정부는 북한에 엄중 항의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김 대행은 “우리 군은 교전 규칙에 따라 북한 경비정을 퇴치했기 때문에 역할과 책임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배용수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북한의 ‘송신했다.’는 주장에만 큰 의미를 부여한 채 우리 군을 허위보고로만 몰아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회의결과는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국민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바람직한 조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김배곤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철저성을 기해야 하는 군내에서 허위보고가 횡행하는 상황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며,당국은 정확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자에 대한 엄중문책과 재발방지책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carlos@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통일한국은 오는가] 美 국제정책센터 亞국장 셀리그 해리슨

    “현 한반도 상황은 위기라기보다 평화협정으로 이행할 수 있는 50여년만의 기회이며 한국 정부는 단순히 북한과의 관계개선에만 그칠 게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 맵’을 제시해야 합니다.”1972년 미국인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해 고 김일성 주석을 만난 언론인 출신의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센터(CIP) 아시아 국장은 본지 창간 100주년에 즈음한 특별 인터뷰에서 “한반도 통일은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남북한이 연방제로 전환하는 데에만 10년에서 20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바 하버(미 메인주) 백문일특파원| 바 하버에서 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크랜베리 섬의 자택에서 여름철을 지내는 해리슨을 만나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1시간 동안 대담을 가졌다.섬 주민들은 한국인의 방문이 낯선지 섬을 찾은 이유를 물으며 유명한 한반도 전문가가 이웃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함께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대담 내용을 간추린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을 더이상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그렇다고 통일이 성큼 다가선 것 같지도 않다.통일을 위해 우선적으로 취할 조치를 꼽는다면. -한국은 비(非)군사적 측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과거 북한이 드러낸 ‘적화의도’의 위험에 직면한 것 같지 않다.통일을 위해서는 한국 전쟁을 끝내야 하며 정전 체제를 평화협정 체제로 전환하는 게 급선무다.통일은 가능하고 불가피한 과정이지만 신속히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현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통일로 가는 길은 ‘연방제’라고 생각한다. 연방제는 (주로 북한측에 의해) 박정희 정권 이래 계속 거론됐지만 진전된 게 없지 않은가. -노태우와 김대중 정권이 고안한 임시적인 연방제 국가는 매우 현실적이다.양측이 현재의 국경을 유지하면서 기업협력을 확대하는 경제체제를 갖추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는 공통된 행동을 취해야 한다.각자 군대를 보유하고 국경을 통제하면서 북한 경제가 남한과 연계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점진적으로 10년 또는 20년에 걸쳐 연방제로 전환해야 한다.그러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10년 이내로 연방제 이행은 어렵다.주목할 점은 ‘북한이 과거와 달리 연방제를 바란다는 점이다.’(이 부분에 관해서는 국내외에서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이 있다. 편집자주) 북한 당국과 군부 및 당의 고위 관리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 한다.연방제는 양측의 권력을 보장하면서 통일로 가는 조치다. 북한은 과거 남한이 흡수통일을 추진하려는 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실제 김영삼 정권은 그같은 전략에 따라 김일성과 접촉했다.그러나 김일성이 죽은 뒤 남한은 북한이 붕괴될 것으로 믿었다.김정일이 북한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그러나 김정일은 건재했고 통일을 위한 연방제 방식의 길은 멀어졌다. 김대중 정권은 독일식 통일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판단했다.따라서 상호공존을 거쳐 북한을 경제적으로 무너뜨리는 점진적인 연방제 개념을 고안했다.그러나 ‘햇볕정책’은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층의 반발에 부딪혀 빛을 잃었다.남한의 상당수 사람들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북한의 입장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통일로 가는 길이 왜곡됐다고 보기도 한다. 연방제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남·북한과 미국이 포함된 평화협정 체결이 첫번째다.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 대선에서 이기면 국방부가 반대해도 평화협정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그렇다고 한·미간 안보동맹을 고칠 필요는 없다.평화협정으로 전환해도 미군은 장기간 남한에 주둔할 수도 있다. 두번째는 상호 군사력의 감축이다.양적인 감축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뤄져야 한다.김정일이나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 모두 군축의 필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10만 병력의 동시 감축부터 시작될 수 있다. 세번째는 남북한을 포함한 경제교류의 확대다.특히 대북 에너지 지원은 핵심이다.지난 노무현-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가스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는 것을 상세하게 논의한 것으로 안다.북한은 중국을 거치지 않고 사할린에서 북한·남한을 관통하는 가스 파이프 라인을 바란다.이를 위한 연구팀도 청와대에 구성됐다.양측의 투자를 늘리기 위한 면세혜택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전제조건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실질적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대북 강경책을 유지한 부시 행정부가 통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평양의 정권교체다.6자회담에서 미국이 약간의 변화를 보였으나 김정일 정권을 교체한다는 목표에 변화가 없다.그럼에도 평화협정 체결은 북핵 폐기와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평화협정 체제로 이행하면 북한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문제삼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미 공군력이지 지상군이 아니다.물론 평화협정 이후 미군의 신속한 대규모 감축이 있을 것으로 본다. 미국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한반도에서의 통일한국을 지지한다.문제는 한국이 북한과의 갈등을 해소하려 하면서도 분명한 통일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노무현 정권이 통일 한국의 ‘로드 맵’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다.대북 에너지 지원방안이나 개성단지 등과 관련한 논의는 있었으나 장기적으로 통일을 어떻게 추진할지 비전이 없다.남한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먼저 말하기는 어렵다.다만 통일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중국이 경계한다는 점을 미국은 잘 인식하고 있다. 연방제를 보는 남·북한 시각을 비교한다면. -북한은 연방제를 안보와 연계된 개념으로 본다.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선제공격할 의도가 있다고 보는 평양정권은 연방제를 통해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노태우와 김대중 정권이 구상한,남북한 동수의 ‘연방의회’에도 찬성한다.흡수통일에 거부감을 갖는 북한으로서는 동수제가 박정희 대통령이 제시한 인구비례에 따른 연방의회보다 공정하다고 여긴다.특히 연방제는 상대방을 인정하는 ‘공존의 체제’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반면 남한은 연방제로 가려는 준비가 됐는지 분명치 않다.한·미 동맹 관계에 큰 변화를 바라지 않는 남한 당국으로서는 연방제 논의에 신중하며 미국에도 압력을 가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군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북한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보유하면서도 남한은 해외투자 등 경제적 요인 때문에 미군철수로 이어질 연방제 추진을 꺼린다.북한이 위협인지 아닌지도 당장 결정할 필요를 못느낀다.게다가 남한은 미군이 빠져나갈 때마다 좋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이는 통일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정전협정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뤄졌기 때문에 미국이 결정하면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미국도 내부적으로 연방제 개념에 반대한다.남한이 구체적인 압력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연방제가 미군의 한반도 주변 배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국방부의 판단에서다.북한이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요구한 것도 정전협정에서 남한이 배제됐고 결국 미국이 결정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입장을 바꿨다.뉴욕 채널을 통해 남·북한과 미국 및 다른 나라들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협정 체제를 바라고 있다.이는 50여년 만에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이행할 절호의 기회이지만 남한은 신중하다.미국에서도 한국전을 보는 인식이 바뀌어 적극적이지 않다.국무부에서 평화협정 체제가 거론되지만 남한이 제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의미가 없다. 냉전종식과 함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전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하고 미국이 남한을 돕는 ‘대리전’으로 보지 않으려 한다.대신 일종의 ‘내전(civil war)’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앞으로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해도 미국이 즉각 전쟁에 개입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을 통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완화된 것 아닌가. -6자회담은 실용적이다.그러나 공교롭게도 부시 행정부가 의도한 방식과는 다르게 흐르고 있다.당초 미국은 중국과 한국,일본,러시아가 북한을 압박할 것을 상정했다.지금은 한국과 중국 등이 미국의 강경한 입장에 반대하며 유연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부시 행정부내에서 거센 논쟁이 있었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CVID) 표현을 자제한 것은 협상의 여지를 연 것으로 해석된다.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기본 시각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중국과 한국이 미국을 압박했지만 이번 회담뿐 아니라 11월 선거 이전까지 미국의 대북 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년내 북·일관계의 정상화를 말했는데.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제스처라고 본다.미국은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일본이 북한에 접근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고이즈미가 북한을 두차례 방문하면서 미국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점에 미국은 크게 당황하고 분개했다.일본의 북한 접근은 상당히 독립적으로 이뤄진다. 한국내 반미정서가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반미정서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안티 부시’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본다.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지 미국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이에 따른 반발력으로 남·북한을 가깝게 보는 정서는 연방제로 가는 길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이 경제·군사적으로 미국과의 동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사실이다.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안티 부시’의 정서와는 별개의 문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통일정책의 차이점은? -김대중 정권의 통일 정책은 1991년부터 정립된 정책으로 연방제가 핵심이다.반발은 있었지만 비전을 제시했다.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이렇다할 방향제시가 없다. mip@seoul.co.kr˝
  • 연쇄 테러… 임시정부 ‘흔들’

    출범 3주째를 맞은 이라크 임시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한동안 잠잠했던 테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고,일부 외국기업과 군대는 테러를 피해 이라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알라위 총리 “총보완국 신설” 15일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 하디타의 경찰관서 근처와 카발라 서쪽 지역에서 각각 차량 폭발이 발생,적어도 12명이 사망했다.또 바스라에서 남쪽으로 20㎞ 떨어진 알아스카리 지역에서 송유관 파괴 행위가 발생,원유가 대량으로 유출됐으며 이라크 북부 베이지의 송유관도 폭탄 공격을 받았다. 이야드 알라위 임시정부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의 저항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총보안국(GSD)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14일 유세프 카슈몰라 니네베주 지사가 모술에서 남쪽으로 110㎞ 떨어진 지역에서 폭탄 공격으로 사망했다.바그다드 서쪽 라마디에서는 미군과 저항세력간의 교전이 벌어져 5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숨졌다.13일에는 산업부 회계감사관 사비르 카림도 바그다드에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잇따른 테러의 배후에는 자르카위가 있다.”고 비난했다. 알라위 총리에 대한 살해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을 이끄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의 명의로 된 성명서가 14일 몇몇 이슬람 웹사이트에 게재됐다.이 성명서에서는 알라위 총리를 “이라크의 배신자”라고 부르면서 “앞으로 더 많은 공격이 알라위 총리의 심장을 겨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우디 회사 이라크서 철수 이라크에서 납치된 이집트인 트럭운전사를 고용한 사우디아라비아 회사가 이라크에서 철수를 약속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14일 보도했다.인질범들은 사우디 회사가 이라크에서 떠날 것과 100만달러를 지불할 것을 요구해왔다.이집트인을 납치한 단체도 유일신과 성전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은 보도했다. 고 김선일씨와 미국인 닉 버그,불가리아인 1명 등을 납치,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 단체는 이날 “이라크 포로를 석방하지 않으면 남은 불가리아인 1명도 24시간 안에 살해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알자지라 방송은 이날 밤 필리핀 정부의 철군결정에 감사하며 인질은 곧 석방될 것이라는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했다. 외신들은 저항세력들이 이라크 임정의 대테러 강공책에 대해 반발하고 있고,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테러와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최근 크게 논란이 일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그 양심’에 대한 법조계의 일차적인 무죄판결은 우리사회에서 점차 이데올로기보다 양심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양심은 윤리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윤리는 행위하는 인간의 이성적 통찰에서 나온다. 숫타니파타에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을 싫어한다.그들에게도 삶은 사랑스러운 것이다.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괴롭히지도 죽이지도 말라.”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존재에 대한 통찰이 윤리와 어떻게 결합되는가를 보여주는 붓다의 명언이다.필자는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의 양심이 이러한 윤리에 토대하고 있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집총을 거부한다면,필자는 그들의 양심이 틀린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적어도 군대의 의무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폭력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국가의 힘에 있다고 한다면,그것이 그들의 양심과 충돌하지 않는다.왜냐하면 한 국가의 힘은 강력한 무력이나 군비를 갖추는 데서 나올 수도 있겠지만,역사적인 경험에 비추어 오히려 토론에 입각한 민주정신과 약자에 대한 보호에 기초한 사회통합 속에서 진정한 힘이 나오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체복무로서 사회적인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시설 등지에서 일하며,병역복무보다 어려운 강도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대체복무를 수락한다면,그들의 양심을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시험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가 유럽인권규약 제9조에 의거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덴마크,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노르웨이,핀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벨로루시,불가리아,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우크라이나,에스토니아,폴란드,체코 공화국,헝가리,케이프 베르드,키프로스 등 25개국은 민간에서의 대체봉사 또는 군내에서의 비무장복무를 보장하고 있다. 이상의 나라들은 대부분 헌법과 하위 법률로 대체복무를 인정하는데,대체복무의 내용은 구제활동,환자수송,소방업무,장애인을 위한 봉사,환경미화,조경,농업,난민보호,청소년보호센터 근무,문화유산의 유지 및 보호,감옥 및 갱생기관 근무 등이며,기간은 현역 복무기간의 1∼1.4배 정도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심적인 병역거부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무장복무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고통을 싫어한다.그들에게도 삶은 사랑스러운 것이다.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괴롭히지도 죽이지도 말라”라든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식의 종교적 혹은,도덕적인 양심을 반드시 위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무장복무가 오히려 적을 오판하여 살상이나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함으로써,자신의 그 궁극적인 양심을 지켜내는데 더욱 커다란 공헌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데스크시각] 사이버 국가안보법 제정해야/염주영 편집부국장

    우리나라의 사이버 영토가 또 뚫렸다.침투해 들어온 적들은 지난 한달 사이에 열곳의 국가기관이 보유한 211대의 컴퓨터를 해킹해 국가정보망을 흔들어 놓고 있다. 침투당한 곳들 가운데는 국회와 해양경찰청 등 국가 핵심기관들과 국방연구원,국방과학연구소,공군대학 등 군 관련 기관들도 포함돼 있다.‘잘 훈련된 해커조직에 의한 의도적인 공격’으로 보이며,중국인이 이 해커조직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들이 우리의 국가정보망에 들어와 무슨 일을 하고,어떤 정보를 빼갔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이버 국가안보가 위협당하고 있다.그런데도 정부는 해커들의 최초 침투가 있었던 날로부터 거의 한달이 지나도록 공식 발표 한번 하지 않았다.국제 해커들의 조직적인 침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지난 해 1월에도 웜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국가의 기간 통신망인 초고속 인터넷망이 반나절이나 마비되는 사태가 있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국토방위의 개념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현대전에서 교전 상대국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적의 기간 통신망과 정보망에 침투해 마비시키는 것이다.아무리 강력한 첨단 무기와 군대를 갖추었다 해도 금방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오프라인에서 아무리 국토방위를 튼튼히 하더라도 사이버 영토방위가 허술하면 국가안보를 지켜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각국은 이런 사이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앞다퉈 ‘사이버 방위군’을 창설하고 있다.흔히 ‘해커부대’라고 불린다.미국은 지난 해에만 ‘사이버 방위군’ 양성을 위해 3000만 달러(360억원)의 예산을 썼다.우리나라 사이버 방위의 주력인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올 예산은 19억원으로 미국의 5%에 불과하다.미군은 1999년부터 합동작전부대를 창설,적의 통신망과 작전 소프트웨어를 마비시키는 훈련을 해왔다.이라크전쟁에서는 개전 초기에 사이버 전술을 실전에 사용해 이라크군의 통신망을 마비시킴으로써 단기간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지난 해 전세계를 휩쓴 웰치아 바이러스는 미국 정부 전산망을 공격,비자발급 업무를 일시 중단시키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전문가들은 웰치아가 중국산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북한도 1년에 100명씩 전문해커를 양성하고 있으며,해킹 수준은 미국 CIA에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사이버 전쟁이나 테러에 전문적으로 대비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고 정기적인 훈련도 실시하고 있다.그러나 아직은 관련 예산과 조직,제도,법규 등이 미약해 인터넷 강국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실정이다.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책임자는 “센터내의 인력 65명중 사이버 보안업무 종사자는 30명에 불과하고,이 인원으로는 이번의 해킹 피해 조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2002년 말 매우 강력한 ‘사이버보안 강화 법규(CSEA)’를 통과시켰다.이 법규는 컴퓨터 해킹으로 국가의 중요 기반시설에 위해를 가한 경우 최고 종신형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주목할 점은 이 조항을 ‘개정 국토안보법’에다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안법에 사이버 보안조항을 신설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주요 국가기관들은 국제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우리의 ‘사이버 방위군’은 공격을 사전에 감지 못했으며,조기경보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대한민국의 사이버 영토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됐다.이제라도 ‘사이버 국가안보법’을 서둘러 제정하고,관련 제도와 조직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염주영 편집부국장 yeomjs@seoul.co.kr˝
  • 국가기관 10곳 해킹 당해

    중국발 ‘악성 프로그램’의 공격으로 국회와 한국국방연구원,국방과학연구소,공군대학,원자력연구소 등 10개 주요국가기관이 잇따라 뚫렸다.전.현직 국회의원과 국회사무처 직원 등 122명의 아이디는 아예 도용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지난 6월 이후 악성 프로그램 ‘변종 Peep’와 ‘변종Revacc’에 국가 주요기관과 민간기업 등 278대의 컴퓨터가 해킹당했다고 13일 밝혔다. ‘변종 Peep’는 트로이목마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일단 감염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해당 컴퓨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자료를 꺼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수정과 삭제 등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또 ‘변종 Revacc’은 사용자를 특정사이트로 접속하도록 해 바이러스 감염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해킹당한 컴퓨터는 해양경찰청 77대,국회 69대,원자력연구소 50대,한국국방연구원 9대,국방과학연구소와 공군대학,해양수산부,중소기업청,통일교육원,천문연구원 각 1대 등 국가기관 것만 211대다.일부 파일은 이미 유출된 흔적도 발견됐다.지난달 19일 6개 국가기관 64대와 민간분야 52대 등 모두 116대의 컴퓨터가 해킹당했다고 국정원이 중간발표했을 때보다 2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국회는 개인 이메일의 비밀번호 관리를 소홀히 하여 전·현직 국회의원 및 국회사무처 직원 등 모두 122명의 아이디가 도용됐다.민간 부문에서는 기업과 대학,언론사 등의 보안망도 무너져 67대의 컴퓨터가 피해를 입었으며,몇몇 언론사 기자의 이메일 아이디가 도용되기도 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정부는 이번 사건이 일정 규모의 조직이 개입된 국가안보위협 사건으로 판단하고,외교통상부와 정보통신부,기무사령부,경찰청 등 관련부처 합동으로 적극 대응키로 했다.해킹 공격의 최초 발신지가 중국으로 드러남에 따라 정부는 외교통상부를 통해 주한 중국대사관측에 중국의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경찰청을 통해 인터폴,중국 공안부 등과 공동 수사를 추진중이다. 국정원은 해킹의 진원지 및 경유지로 이용된 IP를 국가사이버안전센터 홈페이지(www.ncsc.go.kr)에 게재하여 각급 기관 및 주요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기업들로 하여금 경유지를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比, 인질범 요구 수용?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된 필리핀 인질을 구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가 이라크에 파견한 51명의 필리핀 평화유지군을 조기철군시킬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인질 석방을 위해 바그다드에 온 라파엘 세기스 필리핀 외무차관은 13일 “가능한 한 빨리” 철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필리핀 정부는 곧 이같은 발언을 부인했다.바그다드주재 필리핀 대사관은 무장단체가 13일 중으로 인질을 석방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해왔다고 밝혀 필리핀이 인질범들의 요구에 굴복하느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라크 “필리핀·불가리아 인질 생존” AFP통신이 이라크 내무부 수석 대변인의 말을 인용,“불가리아 인질 2명과 함께 필리핀인 인질이 아직 살아있다.”고 보도했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는 등 인질의 생존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세기스 차관은 이날 알자지라방송에 출연,“모든 필리핀인들과 그(인질로 잡힌 트럭 운전사 안젤로 델라 크루즈)의 가족들을 대신해 납치세력들에게 자비와 동정을 호소한다.”면서 “필리핀 정부는 철군 준비가 끝나는 대로 가능한 한 빨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자국 군대를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세기스 차관은 그러나 철군의 구체적 일정은 밝히지 않아 인질범들의 요구대로 7월20일 이전에 철군하겠다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혼란 부추기는 필리핀정부 필리핀 국방부의 다니엘 루체로 대변인도 철군을 위한 계획이 이미 마련됐다면서 그러나 철군 지시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이같은 알자지라방송이 나간 지 수시간 뒤 미 CNN방송은 이라크주재 필리핀 대사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납치범들이 인질을 13일 중으로 석방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보도했다.그러나 필리핀 대사관이 어떤 경로로 이같은 의사를 전달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필리핀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1년의 주둔기한이 만료되는 8월20일 철군한다는 기존 계획에 아무 변화도 없다며 세기스 차관의 발언을 부인해 혼선을 빚고 있다. ●인질 납치 테러 더욱 빈발 우려 필리핀군이 인질범들의 요구에 굴복,조기철군한다면 이미 수십명의 외국인이 인질로 잡혀 있는 이라크에서 파병국을 겨냥한 인질 납치 테러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지난 3월 마드리드 열차폭탄테러로 스페인군이 철수한 바 있지만 계속되는 인질 사태 이후 인질범들의 위협에 대한 첫 굴복이 인질범들에게 인질 납치 테러가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인질범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으며 세기스 차관이 알자지라방송에 출연하기 수시간 전에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에 대해 인질범들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찬사를 보냈었다. 한편 필리핀 국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스타’지는 이날 필리핀군의 조기철군은 필리핀의 무력함과 비겁함만 드러내는 것이며 중동 지역에 나가 있는 다른 필리핀인들을 테러범들의 위협에 더욱 노출시킬 뿐이라며 조기철군에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열린세상] 문명의 충돌과 공존/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문명의 충돌과 공존에 관한 담론은 이미 21세기의 최대 화두로 굳어졌다.이 화두는 지난 세기를 마감하면서 등장했다.사실 금세기의 문턱에서 이라크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그랬다면,이 화두는 그저 헌팅턴 대 뮐러 간에 벌어졌던 일대 논쟁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불행하게도 역사는 반대로 흘러갔다.9·11사건이 터진 것이다.미국은 보복조치로 이라크를 침공했다.이때까지만 해도 문명에 관한 담론은 아직 우리에게 국제적인 톱뉴스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에 불과했다.하지만 이라크 파병을 강요당하고 고 김선일씨가 무고하게 희생된 현실 앞에서,문명의 충돌과 공존에 관한 화두는 이제 우리에게도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현실과 역사는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밀접하다.역사는 현실문제의 해결방향을 제시하고,현실 또한 그 역사의 의미를 새로이 되새겨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중국사에는 농경문화권의 한족과 유목문화권의 이민족이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갔던 장면이 선명히 남아있다.이 역사적인 장면은 우리의 눈앞에 진행중인 이라크 사태의 해결방안을 근본부터 다시 재고하도록 이끌어 준다. 만리장성은 한족과 유목민족 사이의 ‘피에 젖은 경계선’이었다.그것은 또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가르는 문명권의 철벽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상고시대부터 유목민족은 농경민인 한족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약탈하였다.한족에게 유목민족은 공포 그 자체였다.그것은 무소불위의 진시황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그가 만리장성을 축조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이어서 한 무제도 유목민족을 악의 근원으로 판단했다.그는 전 국력을 기울여 유목민족을 공격했다.그러나 시황제의 만리장성도 무제의 수 차례의 파병도 모두 실패하고 만다.이것은 유목민족과 그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선택의 결과였다.이해 없이 공존의 길은 결코 모색될 수 없었다.아니 도리어 양측의 무고한 젊은이들만이 무수히 희생되고 말았다.지금도 만리장성은 수많은 백성의 한(恨)으로 쌓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고 만리장성의 문을 여는 순간 다가왔다.유목민이 한족을 침범하고 약탈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다.그들은 근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농경민인 한족에게 침범과 약탈이었던 것이 유목민에게는 유일한 생존의 방법이었던 셈이다.한족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자 문제해결은 비교적 간단했다. 한족이 유목민에게 자급자족의 부족 분을 제공하면 평화공존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만리장성을 열고 국제무역장을 개설하면 그만이었다.그 결과 관시(關市)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이렇듯이 문명권 사이에 평화공존의 길은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는 토대 위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고 김선일씨의 피살은 우리에게 경악과 분노를 가져왔다.파병 반대를 외쳤던 많은 이가 찬성론자로 돌아섰다.정부도 ‘테러 단호 대처’란 기본 방침을 결정하였다.미국의 강경론자들을 따라 이슬람문명권과 우리 사이에 진시황제처럼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것이다.한무제처럼 군대를 파병해 악의 근원을 제거하겠다는 얘기다.여기에 공존은 있을 수 없다.오직 충돌의 법칙만이 더욱 난무하게 될 뿐이다.충돌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길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린다.우리의 통찰력도 발휘될 수 없다.그 결과가 다시 더 큰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우리는 경악과 분노의 와중에서도 통찰력을 되찾아야 한다.이성을 회복해야 한다.하루빨리 충돌의 법칙을 파기하고 공존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강자인 미국의 강경책에 휘말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이슬람문명권의 입장에서 약자인 그들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공존의 원칙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끝까지 “살고싶다.”고 울부짖던 고 김선일씨의 희생과 지나간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숭고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지금 우리는 그 메시지에 따라 충돌에서 공존으로 나아가야만 될 중요한 길목에 서있는 셈이다. 도중만 목원대 역사학 교수 ˝
  • 불가리아인 2명 또 납치

    이라크 무장단체들이 참전국 국민들을 납치한 뒤 살해 위협을 하는 것이 일상화되다시피 하고 있다.전날 필리핀인을 납치,위협하는 비디오테이프가 방영된 데이어 9일에는 불가리아인 2명을 참수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방송됐다.하지만 해당국가들은 뚜렷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불가리아·필리핀 정부 “굴복 안 할 것” 9일 알자지라방송은 이라크 무장단체 ‘유일신과 성전’이 불가리아인 인질 2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했다.이 테이프에는 소총·로켓발사기로 무장한 남자 3명이 ‘미군이 24시간 내에 구금 중인 이라크인을 모두 석방하지 않으면 인질들을 참수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바그다드의 민간회사에서 트럭운전사로 일하던 불가리아인 2명이 피랍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연합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불가리아는 약 48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다.필리핀의 놀리 데 카스트로 부통령도 이날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라크 경찰 관계자는 이날 라마디에서 미군의 통역으로 일하던 이라크인 1명이 복면을 한 남자 4명에게 납치됐다고 밝혔다. ●일상화되는 납치·살해위협 이라크에서는 지난 4월 이후 외국인 납치가 끊이지 않고 있다.4월12일 인질로 잡혔던 이탈리아인 4명 가운데 1명이 권총으로 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5월에는 미국인 닉 버그가 참수됐고,지난달에는 레바논인 2명과 미국인 폴 존슨,한국인 김선일씨가 납치된 뒤 목숨을 잃었다.4월 이후 이라크에서 20건 이상의 외국인 납치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메트로 의회]‘서울의 허파’ 녹지훼손 안된다

    서울 용산구의회가 환수예정인 용산 미군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용산구의회 오세철(61·한나라당 이촌1)의원은 ‘용산 미군부지 자연생태공원 조성을 위한 특별위원회(가칭)’를 후반기 의장단 선출이 끝나는대로 구성하겠다고 8일 밝혔다. 오 의원은 “특위를 통해 ‘서울의 허파’인 용산을 훼손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국방부·서울시·용산구 의견차이 국방부는 최근 미군기지 용도변경 권한을 국방부장관이 갖는 것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려 했었다.미군기지 이전비용을 마련하려는 저의가 숨어있었다.그러나 서울시와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특별법 제정은 무산됐다.대신 국방부는 미군부지 터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서울시에서 부지를 사들여 공원을 조성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 4일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대로 미군 기지가 국유이므로 무조건 지자체에 무상으로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 터는 역사성 등을 감안할 때 민족공원으로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용산은 과거 몽골군,일본군,미군 등 외국 군대가 주둔하던 곳으로,빼앗긴 토지를 회복해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뜻에서 민족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또 서울시는 도시 계획에 따라 북한산-남산-용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중심 녹지축을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용산구의회 “기본적으로 서울시 입장과 동일” 용산구의회는 미군부지 활용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서울시 입장과 동일하다.즉 북한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의 중심에 용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그러나 용산구의회는 서울시보다 더 녹지보전에 적극적이다. 김근태(62·한나라당 원효1)용산구의원은 “시가 조성하려는 민족공원도 최대한 자연상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김 의원은 또 “큰 범위에서 자연생태공원이 되어야 하며 그 안에 민족공원 등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의회는 일단 미군부지가 다른 용도로 변경돼 매각되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서울시 방침에 적극 협력한다는 계획이다.이와 동시에 시의 미군부지 활용계획의 중심 축이 생태공원 조성 쪽으로 옮겨오도록 노력한다는 복안이다. 특히 구의회에 특위가 구성되면 적극적인 주민 조사와 의견수렴을 통해 용산구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킬 방침이다. 특위 구성을 준비중인 오세철 의원은 “시가 추진중인 민족공원도 최소한의 건물만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민 3800명의 서명을 받았다.”면서 “생태공원 조성이 배제될 경우 3만명까지 서명을 받아 실력행사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에 앞선 지난달 26일 용산구의회는 용산구발전위원회와 공동명의로 미군부지 활용방안에 대한 결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성냥·담배 생산 극장·자장면·축구’ 인천이 효시네

    ‘성냥·담배 생산 극장·자장면·축구’ 인천이 효시네

    ‘우리나라에서 축구경기가 처음 열리고 성냥·자장면·쫄면 등이 탄생된 곳은 어디일까.’ 인천시는 최근 ‘개항과 교류의 도시 인천의 뿌리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최초·최고 54개 항목을 발굴해 발표했다. 국민적 스포츠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축구는 인천에서 비롯됐다.고종 19년인 1882년 6월 영국 해군함 플라잉 피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 들어온 영국 군인들은 선상 생활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부두에서 공을 찼다.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연안 주민들은 흰색 저고리에 대님을 맨 채 영국 선원들이 두고간 공을 찼던 것.이것이 한국 근대축구의 효시다. 또 다소 저급하지만 1950∼1970년대 군대 및 시중에서 널리 유행했던 노래 ‘성냥공장 아가씨’의 유래도 인천이다.성냥공장은 1886년 인천에서 처음 생겼다.이후 1917년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 2000여평 규모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朝鮮燐寸)’이 설립됐다.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던 이 회사에서는 남녀 직공 500여명이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생산했다. 지금은 경북 의성에 있는 ‘성광성냥공장’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외식하면 떠오르는 자장면과 쫄면의 원조도 인천이다.우리나라 최초의 차이나타운인 중구 북성동에 1905년 생긴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에서 부두노동자 등 서민들을 위해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도록 개발한 음식이 바로 자장면이다. 쫄면은 1970년 중구 경동에 있던 ‘광신제면’ 창업주가 냉면을 만들다가 우연히 불거져 나온 굵은 국수가락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것이 청소년들이 즐기는 쫄면의 유래가 됐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땅의 기가 가장 센 곳은 인천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이다.마리산(摩利山),두악산(頭嶽山)으로도 불리는 마니산은 지기 탐지기의 분당 회전수가 65회로,기가 센 것으로 알려진 다른 지역 20∼30회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마니산을 기준으로 한라산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이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현 애관극장),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최초로 담배를 생산한 동양연초회사,최초의 기독교 포교지 등이 인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짱짱한 아이들 ‘동방신기’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란 거창한 뜻을 그룹 이름에 담고 멤버들 이름도 사자성어처럼 네 자로 지은 아카펠라 댄스 그룹 동방신기(東方神起).이들이 국내 가요계 최고 스타로 자리잡은 건 불과 몇 개월 사이의 일이다.지난 2월 싱글 ‘Hug’로 데뷔한 뒤 각종 차트를 평정했고,이젠 그들의 팬들이 무서워 어느 누구도 함부로 그들에 대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렇다고 얼굴,춤으로 한 몫 챙기려는 스타라는 편견은 금물.아카펠라로 승부수를 띄운 것도 모두 노래 솜씨가 뛰어나기 때문이다.영웅재중(英雄在中·18)이 메인보컬,시아준수(細亞俊秀·17)는 중고음,최강창민(最强昌珉·16)은 높은음,믹키유천(秘奇有天·18)은 중저음,유노윤호(瑜鹵允浩·18)는 베이스를 맡아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하지만 아무래도 10대에 치중한 인기를 의식해서일까.최근 발표한 두번째 싱글앨범 ‘The Way U Are’에서는 미소년의 티를 벗었다.실제로 모두 사슬이 주렁주렁 매달린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 이들은 강렬한 남성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음악도 강해졌다.타이틀곡 ‘The Way‘는 라틴과 유로 팝 스타일의 댄스곡으로 강한 리듬을 살렸고,‘Whatever They Say’에서는 성숙한 R&B 창법으로 화음의 조화를 이뤘다.“지난 앨범이 귀여운 고등학생의 이미지였다면 이번엔 어른스러워졌다.”는 게 이들의 설명. 그래도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는 이미지일뿐.이들에겐 아직 때묻지 않은 천진함이 남아 있었다.다른 가수의 사진이 실린 서울신문 주말섹션 WE를 보자 “우리도 저렇게 나와요?와,신난다.”라며 좋아하는 모습은 여느 학생과 다르지 않았다.또 재중은 “이런 자리가 떨린다.”며 수줍음을 탔다.첫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의 심정처럼 이들에겐 여전히 모든 것이 신기한 듯했다.톱스타도 남들의 얘기지 이들은 그저 “음악을 하는 5명”이란다.“라디오에서 우리 음악이 나오면 신기해요.”(준수) “우리도 다른 연예인을 보면 ‘어,연예인이다.’라며 들뜨죠.”(윤호)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또래 청소년들다운 풋풋함은 이들의 각오에도 묻어났다.“우리는 죽을 때까지 같이 갈 거예요.”(윤호) “군대도 똑같이 갔다가 돌아올 거예요.”(재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뭔가 허전하다는 이들은,이제 서로가 운명의 고리로 연결된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직업이 가수거나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지만,함께 사는 서울 청담동의 아파트 근처는 새벽까지 늘 극성 팬들로 둘러싸여 있다.“반상회를 한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주민들이 항의할까 봐서요.” 팬들에겐 고맙지만 자제를 당부한단다. 정규앨범은 올해 늦가을쯤에 나올 예정이고,그 전까지는 2집 싱글앨범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2집 타이틀곡은 이전보다 댄스가 강해 안무도 두가지 버전을 준비했지만 “립싱크가 아닌 라이브로 승부하겠다.”며 ‘노래’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줬다.팝·댄스·솔·R&B 등 다양한 장르를 아카펠라로 시도해 보고 싶다는 이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친숙한 동요 ‘옹달샘’을 멋진 화음의 아카펠라로 들려준다.이 곡의 앞 뒤의 트랙에는 녹음을 하면서 나눈 솔직한 대화도 담겨 있다. 모두 작곡하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는 작곡가로도 성공하고 싶다는 이들.미발표 작도 여럿 된단다.또 아시아로 뻗어 나가기 위해 중국어·일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잘 해요?”라고 묻자 거침없이 중국어로 자기 소개를 하는 팀의 리더 윤호.동방신기가 그들의 이름대로 아시아를 정복할 날도 멀지 않았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짱한 아이들 재중은 공주,윤호는 광주,준수는 일산,창민은 서울,유천은 미국 출신.자란 곳은 제각각이지만 깎은 듯한 외모에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이들은 형제처럼 꼭 닮았다.이렇듯 잘 어울리는 한 팀을 구성하기까지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렸을까.갑자기 뜬 듯 보이지만,이들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서 노래와 춤 연습에 적게는 1년부터 길게는 6년까지의 시간을 투자했다. 아시아의 최고가 되고 싶어 ‘시아’라는 별칭을 지은 준수는 6년전인 중1때부터 준비에 들어갔다.지금도 목소리가 허스키인 그는 변성기를 거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울기도 하고 소리를 막 지르면서 연습했어요.그러다 보니 저만의 색깔이 나온 것 같아요.” 윤호는 4년전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서 ‘댄스짱’에 선발된 뒤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유노’란 별칭은 중국어 표기발음으로는 ‘빛과 소금이 되다.’는 의미고,영어발음으로는 ‘당신을 알라.’는 의미.“팀의 리더로서 상대방을 잘 이해해야 되잖아요.” 같은 대회에서 ‘외모짱’으로 뽑힌 재중은 3년전 기획사에 들어왔다.“중학생땐 음치였어요.계속 연습하다 보니 노래도 늘던데요.” ‘영웅’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오디션에 여러번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다.가요계 ‘최강’을 꿈꾸는 창민도 ‘노래짱’을 수상한 뒤 2년전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원래는 학교와 학원에 열심히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유천의 별칭 ‘믹키’는 한자표기로 秘奇.가요계의 숨겨진 무기가 되라는 뜻이다.1년여전 미주 가요제 대상을 받은 그가 합류하면서 드디어 동방신기는 완성됐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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