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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난 대란… 버스 폭발 사망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초강력 허리케인 리타가 미국 대륙에 상륙하기도 전에 영향권에 든 뉴올리언스의 제방이 23일(현지시간) 붕괴되면서 또다시 도시가 물에 잠기자 미국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리타를 피해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주 주민 250만명이 피난 길에 오르면서 주요 고속도로가 큰 혼잡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날 아침 노인들을 태운 버스에서 불이 나 최소 24명이 숨졌다. 휴스턴의 양로원에 사는 노인 43명을 태우고 가던 버스가 댈러스 근처에서 갑자기 폭발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특히 버스 안에 있던 산소통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버스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여 희생이 컸다. 한꺼번에 몰린 피난민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던 고속도로는 버스 폭발사고로 정체가 더욱 심각해졌다. 허리케인 리타는 24일 오전(한국시간 25일 오후) 미국 남부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250만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리타 피난민’이 일제히 몰리면서 왕복 8차선을 모두 일방통행으로 돌렸는데도 불구, 고속도로는 약 160㎞에 걸쳐 있는 거대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모텔마다 방이 동나 주민들은 자동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기름이 바닥난 주유소가 많아 차량들이 옴짝달싹 못 하는 등 극도의 혼란이 계속됐다. 빌 화이트 휴스턴 시장은 “고속도로가 죽음의 덫이 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한편 오도 가도 못 하는 차량에 휘발유를 공급하기 위해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휴스턴 공항 역시 사실상 마비됐다고 말했다. 전날 4등급으로 세력이 한 단계 약화된 리타는 이날 당초 예상 경로에서 약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텍사스주 갤버스턴과 뉴올리언스의 중간 지점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리타의 영향으로 뉴올리언스에는 22일 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 23일에는 돌풍까지 불면서 급기야 바닷물이 다시 도시를 덮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는 저지대로 지난번 카트리나 때 가장 피해가 컸던 뉴올리언스시 제9지역 주위만 물에 잠겼으나 리타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폭우가 쏟아질 경우 도시 전체가 다시 물속에 잠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국립허리케인센터(NHC)는 내륙에 들어오면서 리타의 위력이 3등급으로 더 떨어질 수 있지만 리타는 여전히 시속 224㎞의 강풍과 폭우,8m 안팎의 해일을 동반하고 있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dawn@seoul.co.kr
  • [논술 길라잡이]시사 키워드/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맥아더는 영웅인가, 역적인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놓고 보수·진보 진영이 충돌하고 있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논쟁은 분단 한국을 바라보는 보·혁 양 진영의 시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진보측은 노무현 대통령이 동상 철거에 반대하자 노 대통령까지 보수파로 몰아세우고 있다. ●철거를 주장하는 이유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추방공동대책위원회의 주장은 맥아더가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 민족의 자주성을 짓밟은 장본인이며 한국전쟁 때 대량학살을 지시한 전범이라는 것이다. 맥아더가 ▲‘점령군’으로 들어와 이땅을 일제 식민지에서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시켰고 ▲일제가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 10만여 점에 대한 반환 요구를 미국에 대한 일본의 감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으며 ▲노근리 양민학살 등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최근 인천에서 열린 ‘한국전쟁의 역사적 재조명과 맥아더의 재평가’라는 토론회에서 주제 발제를 맡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라며 논쟁에 불을 질렀다. 강 교수는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강 교수는 한국전쟁을 한반도에서 외국군대가 철수한 이후 한 나라에서 두 개의 정권이 단독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상대방과 무력행위를 일으킨 ‘내전’이라고 규정하면서 누가 침략자인지 따지는 것은 보편적 역사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작은 전쟁의 연장선인 6·25전쟁은 통일전쟁으로, 분단을 주도한 미국이 원인제공자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에서 최소한 4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맥아더에 대해 ▲2차 대전 종결후 조선분단 집행 ▲식민지 점령 총독 ▲유엔 승인범위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 북진 감행 등의 이유를 들어 미국에서도 평가가 달라졌듯이 전쟁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철거에 반대 보수진영은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을 구출한 은인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가르쳐 온 내용이다. 반대쪽 사람들은 철거하려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 김일성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이라고 몰아세운다.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번영은 없었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어떻게 볼 것인가 맥아더는 어떤 인물인가, 특히 우리에게는?어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실체에 대한 진실이 하나라도 평가는 두가지 이상이 나오기 마련이다. 맥아더 또한 마찬가지다. 둘 이상의 평가가 나오는 또다른 이유는 어떤 사람이든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맥아더는 2차대전의 영웅이고 인천상륙작전의 이끈 장군이면서도 중국군을 과소 평가하고 원자탄 사용을 주장한 과오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도 맥아더의 실체가 무엇이냐에 대한 평가를 달리 내릴 수 있다. 분단의 주범인가 아니면 한국을 적화에서 구해낸 영웅인가 하는 것이다.2차대전이 끝난 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승국들의 나눠먹기로 약소국 한국은 분단되고 말았다.6·25는 이념의 대결이 전쟁으로 비화된 것으로 그것을 내전으로 보든 보지 않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입장에서는 미국 등 우방의 도움을 받아 공산화를 저지한 것은 사실이다. 맥아더는 그 과정에서 분단을 주도한 인물도 아니고 혼자서 북한군을 막아낸 사람도 아니다. 다만 군인으로서 지시를 받아, 더러는 자신의 판단 아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북한을 남한과 동등한 실체로 인정하는 관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6·25를 내전으로 보고 맥아더가 통일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이 그런 것이다. 이는 우리의 법체제하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나 이데올로기에 따른 체제의 대립도 영원할 수는 없다. 6·25에 개입하고 통일을 방해한 중국은 오늘에는 한국과 아주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북한 또한 마찬가지다. 영원히 대립하는 적국이 아니라 통일을 향해 화해하고 함께 걸어야할 동반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를 신성시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시대적 변화에 맞춰 맥아더의 실체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아울러 행동으로 상대방을 묵살하고 보자는 태도에 앞서 토론과 연구를 통해 실체에 함께 접근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포인트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이 왜 제기됐는지, 극단적인 보수와 진보의 대립을 어떻게 봐야 하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7) ‘고구려비기’ 에서 만난 ‘정감록’

    ‘정감록’의 일부인 ‘감결’에는 역대 왕조의 수명을 논한 대목이 있다.“곤륜산의 내맥(來脈)이 백두산에 이르고, 그 원기가 평양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양은 이미 천년의 운수가 지나 그것이 송악으로 옮겨졌다. 송악은 오백 년 도읍할 땅이나, 요승(妖僧)과 궁녀가 난을 꾸미는 바람에 지기(地氣)가 쇠하고 천운이 막혀 운은 다시 한양으로 옮길 것이다.” 우리나라의 도읍은 평양 천년, 개성(송악) 오백년을 거쳐 한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정감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구절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아스러운 점이 있다. 한양은 조선의 수도, 개성은 고려 때 도읍지였다. 고려 이전의 도읍이라면 당연히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가 논의돼야 한다. 그러나 ‘감결’엔 경주가 빠져 있다. 그 대신 평양이 맨 먼저 언급돼 있다. 그것도 세계의 지붕으로 알려진 곤륜산의 정기가 백두산을 거쳐 평양에 이르러 지기가 더욱 왕성해진 형상이라 했다. ●술사들에겐 고구려가 중요했다 범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조선 후기 전국에 ‘감결’따위의 ‘정감록’을 유행시킨 술사들은 왜 평양을 중시했는가? 술사들의 역사인식이 관계되는 부분이다. 나는 위에 인용한 몇 줄의 간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조선 후기 술사들의 정신적 계보를 추적해보려 한다. 그들에겐 고구려가 신라보다 중요했다. 그들은 한나라 이후 역대 중국 왕조와 자웅을 겨루던 고구려의 기상을 그리워했다. 술사들은 당나라라고 하는 외세를 불러들여 갖은 술수와 모략으로 고구려를 거꾸러뜨린 신라가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았다.‘정감록’을 퍼뜨린 술사들이 대체로 함경도, 평안도 및 황해도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고구려에 대해 유별난 애착을 가졌던 이유를 이해 못할 것은 없다. 더욱이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이기도 했다. 단군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나라의 터를 잡았다는 곳, 동방에 중국의 유교문명을 도입했다는 기자가 뒤를 이었다는 곳도 역시 평양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기자가 평양에서 실시했다고 하는 정전제(井田制·토지를 아홉으로 쪼개 가운데 한 개는 공공의 목적을 위해 공동경작하고 나머지는 농부들이 공평하게 나눠 경작한다는 제도)의 유적이 발견되었단 말도 있었다. 술사들은 그런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같은 고대국가라 해도 한강 이남에 세워진 삼한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거기서 갈라져 나온 백제와 신라와 가야의 역사도 상관없었다. 훗날 삼국을 통일한 것은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였지만 신라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나라였다. 술사들이 보기에 신라란 국가는 그저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를 이어주는 단순한 이음매에 불과했다. 역사상 존재 의미가 있는 나라는 고조선, 고구려, 고려 및 조선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선 조선도 불필요한 나라였다. 조선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일 때만 논의 대상에 가까스로 포함되었다. ●미래는 다시 개성의 시대 ‘감결’은 조선이 망하고 들어설 미래의 왕조도 차례로 언급하였다.“금강산으로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이 태백산·소백산에 이르러 산천의 기운이 뭉쳐져 계룡산으로 들어가니, 정씨가 팔백년 도읍할 땅이로다. 그 후 원맥(元脈)이 가야산으로 들어가니, 조씨가 천년 도읍할 땅이로다. 전주는 범씨가 육백년 도읍할 땅이요, 송악으로 말하면 왕씨가 다시 일어나는 땅인데, 나머지는 자세하지 않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정감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강 다 아는 이야기다. 일단 왕기가 한양으로 옮은 다음 꽤 오랫동안 남부지방이 한국역사의 주무대가 된다는 예언이다. 충청도(계룡산), 경상도(가야산) 그리고 전라도(전주)가 한 번씩 돌아가며 권력을 쥐게 돼 있다고 했다. 집권기간은 경상도가 천 년으로 최장기간이고, 다음은 충청도(800년), 전라도(600년) 순이라 했다. 집권기간에 차이는 있으나 하삼도(下三道)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집권자가 배출된다는 말이 흥미롭다. 광복 후 역대 정권의 위세를 내 나름으로 어림짐작해 보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순이 들어맞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 출신들의 정치적 비중은 잘해야 6할이 될까 말까 하다. 이런 해석을 근거로 ‘정감록’ 예언이 적중했다고 환호성을 지를 사람도 있겠지만, 한낱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그만이다. ‘정감록’에 담긴 놀라운 이야기는 미래에 관한 예언이다.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이 또다시 역사의 중심지로 떠오른다고 했다. 지금 한창 개발 중인 개성공단이며 개성관광을 지렛대 삼아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고, 통일한국의 수도는 서울과 평양의 중간 지점인 개성으로 낙착된다는 예언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가 사실상 한국사의 정통을 잇는다고 조선 후기의 술사들이 믿었다는 점이다. 서북 출신이었던 그들은 궁극적으로 고구려의 부활을 바랐다. ●고구려의 수명은 구백년이라는 예언 위에서 보았듯,‘정감록’은 어느 왕조의 수명은 몇 백 년이라는 식으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리 역사상 이런 방식의 예언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중국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新唐書)’를 보았더니 고구려에 그런 예언이 존재했다 한다. 그렇다면 ‘정감록’은 고구려의 예언서를 본떠 왕조의 수명을 몇 백 년이라고 논했다는 이야긴가? 고구려가 망하던 해, 고구려 보장왕 27년(688)으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당나라 군대는 한창 고구려와 전쟁 중이었다. 당나라의 고종 황제는 시어사(侍御史)인 가언충(賈言忠)을 전쟁터에 보내 전황을 점검하게 했다. 가언충은 이 전쟁이 당나라에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란 예언서를 인용해 당 고종을 안심시켰다. 예언서에 따르면, 고구려는 건국된 지 “구백 년이 못 되어 80대장이 있어 멸망하게 된다.”고 했다(‘중국정사조선전’,‘신당서’). 가언충이 인용한 예언의 내용이 무슨 뜻인가? 다행히도 ‘삼국사기’에는 이 무렵의 사정이 좀더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그 해 2월 당나라 장수 이적(李勣)이 이끄는 군대가 고구려의 부여성(農安 근처)을 함락시켰고, 전세는 고구려에 무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가언충은 자국의 승리를 확신한 나머지 당 고종 앞에서 문제의 예언을 이렇게 풀이했다고 전한다. “고구려는 한나라 때 건국됐으므로, 이제 약 구백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당나라의 원정군 사령관인 이적 장군의 나이가 바로 80입니다. 지금 고구려는 흉년이 연달아 드는 바람에 백성들이 서로 물건을 약탈해 팔아먹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이리와 여우가 도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두더지가 성문에 구멍을 뚫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인심은 무척 사납습니다.”(‘삼국사기’, 권 22) ●‘고구려비기’는 시어사 가언충이 조작했을 것 ‘신당서’와 ‘삼국사기’를 종합해 보면,7세기 후반에 고구려의 멸망을 예언한 ‘고구려비기’란 예언서가 유행했다.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저술됐는지는 어디에도 밝혀져 있지 않아 안타깝다. 그러나 이 예언서의 저작에 관해 검토할 만한 단서가 없지 않다. 우선 고구려의 종말을 논의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의 지배세력이 조작에 직접 개입했다고 간주하기 어렵다. 예언서의 내용이 당나라에 유리하다는 점은 또 하나의 단서가 된다. 게다가 이 예언서는 최초로 중국의 역사서에 언급되었다. 더욱이 왕조의 종말에 관한 예언 방식도 자세히 따져보면 한국적이지 않았다. 예컨대 백제의 멸망에 관한 6세기 후반의 예언기록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런 여러 가지 사항을 종합해 볼 때,‘고구려비기’는 당나라가 조작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그들은 적국인 고구려 백성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예언서를 날조해 고구려에 널리 퍼뜨렸다고 짐작된다. 알다시피 당나라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왕조에 고구려는 힘겨운 상대였다. 무엇인가 특별한 조치가 없이는 설사 백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간다 해도 승산이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막강한 적수였다. 이런 관계로 당나라의 입장에선 요샛말로 대민(對民) 심리전술까지 동원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고구려비기’가 등장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비기에 관해 당 고종에게 자세히 보고한 시어사 가언충은 ‘고구려비기’의 조작에 가장 깊숙이 간여했다는 가정도 성립한다. 본래 시어사란 벼슬은 글을 다루는 데 능숙한 문인에게 주어졌다. 당 고종이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격렬한 싸움터에 문사인 가언충을 파견한 것은, 한낱 그날그날의 전과를 보고하란 뜻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워낙 심리전에 능통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피어린 전쟁터에서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최대한 북돋우고, 고구려의 민심이 이반될 계기를 마련하란 특명을 받은 것이 아닐까? ‘고구려비기’를 해석할 때 가언충이 장차 고구려를 멸망시킬 ‘80대장’을 당나라 군대의 수뇌인 이적으로 해석한 것이 눈길을 끈다. 하필 이적이 고령이란 점에 주목한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보통은 그와 같이 늙은 장수는 원거리 출정에 동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나라는 상례를 뒤엎고 수많은 젊은 장수를 물리치고 자력으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을 노인을 머나먼 전쟁터로 보냈다. 적임자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80노인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는 사기가 저하될 염려가 컸다. 당 고종은 이점을 가장 염려했고, 그래서 평소 머리 좋기로 소문난 가언충을 전쟁터로 함께 보낸 것이 아닐까? 가언충은 당나라 군대의 약점을 강점으로 둔갑시켜야 될 사명을 띠었을 것이다. 그는 고심 끝에 기상천외한 방법을 발견해냈다. 이적과 같은 고령의 대장이 앞장선다면 9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구려도 이젠 끝장나고 만다는 예언을 조작해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 이로써 당나라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고구려의 민심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668년 고구려는 거듭된 내우외환으로 지쳐 있었다. 이를 틈타 당나라는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자신만만해진 가언충은 서둘러 조정에 복귀한다. 그는 전황을 궁금해하는 고종에게 의기양양해하며 자신과 당나라 군대의 눈부신 전과를 알린다. 이것은 물론 논리적인 추측에 토대를 둔 일개 시나리오다. 비록 이런 짐작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고구려비기’는 당나라 측이 날조했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역사적 사실은 그렇건만, 후대 조선의 술사들은 ‘고구려비기’에 나타난 예언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고구려를 우리 역사의 중심축으로 생각한 그들은 고구려에 관한 것이면 무조건 따랐다. 엄밀한 의미로, 평양 천년, 송악 오백년 하는 식의 ‘정감록’ 예언은 술사들의 착시가 빚어낸 현상이었다. ●그럼 전형적인 한국 고대의 예언방식은? 한국 고대에는 왕조의 멸망을 예언할 때 ‘고구려비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일례로, 신라의 명유(名儒) 최치원은 고려 태조가 건국할 무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한다.“계림은 누런 이파리요, 곡령은 푸른 소나무입니다(鷄林黃葉 鵠嶺靑松).” 계림은 신라의 수도 경주, 곡령은 고려왕조의 발상지 개성을 가리킨다. 두말 할 나위 없이 신라는 시든 이파리와 같아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으나, 고려는 푸른 소나무라 장래가 무궁하다는 예언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왕건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다. 뒷날 왕건의 손자로 왕위에 오른 고려 현종은 최치원이 예언을 통해 태조의 사업을 은밀하게 도왔다며 칭송했다. 왕은 그에게 내사령(內史令)이란 높은 벼슬을 추증하고 문창후란 시호도 내려주었다.(‘삼국사기’ 권 46) 최치원은 중국 당나라에 유학해 과거에 급제했고, 관직에 나아가 출세가도를 달렸다. 보기 드문 수재였다. 그런 최치원이었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골품제(骨品制·신라의 엄격한 신분제도)에 희생돼 뜻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불우한 재사는 끝내 가야산으로 숨어 들어가 고목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전설이 있다. 최치원은 과연 고려의 융성을 예언하는 편지를 왕건에게 보냈을까? 문자 그대로 믿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런 편지를 썼다면 그는 신라를 등진 셈이다. 신라를 대표하는 지성인 최치원에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또 한 가지, 그가 만일 신생국가인 고려를 추종할 뜻이 있었다면 왜 가야산에 머물렀을까 하는 점도 의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최치원이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예언이 깃든 편지를 왕건에게 보낸 까닭에 신라 국왕의 미움을 샀다고 한다. 결국 신라왕실의 박해를 피해 최치원은 가족과 함께 가야산 해인사로 숨어 지내다 거기서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최치원의 해인사 은거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예언에서 찾으려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이다. 그렇게 숨어 죽기까지 할 바에야 왕건을 쫓아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 지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치원이 문제의 예언시를 썼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누런 잎과 푸른 소나무를 대조해 신라와 고려왕조의 엇갈린 미래 운명을 점쳤다는 역사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예언방식은 “고구려 구백년”이라고 하는 ‘고구려비기’식과는 전적으로 달랐다. ●백제의 멸망을 알리는 예언도 비유법 알고 보면 백제가 멸망할 때도 비슷한 방식의 예언이 있었다. 백제 의자왕 20년(660) 6월의 일이었다.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며 큰 소리로 외치더니 땅속 깊이 들어가 버렸다. 왕은 몹시 놀라 그 자리를 파헤치라고 명령하였다. 삼척가량 땅을 팠을 때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다. 그 거북이 등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백제는 둥근달(月輪)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왕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무자(巫者)에게 물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둥근달과 같다는 것은 찼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그런데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아직 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앞으로 점점 찰 것입니다.” 의자왕은 화가 치밀어 무자를 죽이고 말았다.(‘삼국사기’, 권 28) 귀신이 나왔다든가, 거북의 등에 예언이 적혀 있었다는 말은 사실로 간주하기 어렵다. 누군가 조작한 이야기로 짐작된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백제를 둥근달에 비유하고 신라를 초승달로 보아 양국의 운명을 대비시킨 점은 앞에서 살핀 신라와 고려의 비유와 동일하다. 대상이 되는 나라, 비교를 위한 사물이 다를 뿐 예언의 방식은 완전히 일치한다. 한국 고대에 존재한 국운에 관한 예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고구려비기’라든가 후대의 ‘정감록’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한마디로,‘고구려비기’는 서로 대비되는 사물을 비교함으로써 국운을 예언하는 한국 고대의 오랜 전통과 결별을 선언한 셈이었다.‘정감록’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고대의 예언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지만,‘고구려비기’에서 비롯된 예언의 새 전통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술사들의 일시적인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역시 큰 의미가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유서 대필사건 필적 재감정”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관련해 고 김기설씨의 자필 메모가 포함된 자료를 확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청 과거사위 이종수 위원장은 “김씨의 군 동료들로부터 김씨 자필이 담긴 군대 추억록을 확보했다.”면서 “검찰에서 유서 대필사건 수사기록을 넘겨받는 대로 필적감정을 하겠다.”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깔깔깔]

    ●남자와 여자 *사랑 /ci0022남자 : 목숨을 건다. ‘죽도록’ 아니면 ‘이판사판‘이다./ci0027여자 : 사소한 일(?)에 목숨 안 건다. 하지만 돈과 함께라면 걸 수도 있다. *남녀 평등 남자 : 계산(?)할 때, 군대 갈 때 주로 불평등하다고 느낀다. 여자 : 아이 낳을 때, 혼자 집안일 할 때 주로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이상형 남자 : 예쁘면 거의 다 된다. 단순(?)하다. 여자 : 잘생긴 것 포함하여 99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친구 남자 : 보통 이상한 놈들이 많다(별명만 봐도 사이코 등). 여자 : 딱 두 종류다(자기보다 예쁜 애, 못생긴 애).
  • [16일 TV 하이라이트]

    ●시네마 천국(EBS 밤 12시) 팀 버튼의 새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윌리 웡커의 초콜릿 공장안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동화작가 로알드 달의 원작동화를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로알드 달의 동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상상의 세계로 떠나보자.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여성도 군대에 가자! 최근 갑자기 여성의 군복무 문제가 흥미 차원을 떠나 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국방위 송영선 의원은 여성도 지원자에 한해 현역병으로 입대할 수 있게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성 군입대 논의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본다.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재희는 금순을 찾아가 농담을 건네며 위로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재희는 금순을 업어주며 속상한 마음을 달랜다. 금순은 머리를 기대며 눈물을 애써 참는다. 한편, 금순은 가족들에게 방을 알아보러 다닐 거라고 말한다. 이에 노 소장은 시선을 피해버리고, 그런 노 소장의 모습에 금순은 한없이 착잡하다.   ●여왕의 조건(SBS 오전 8시30분) 광수는 민규를 만나 모든 것을 다 알고 왔으며,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민규는 과거의 사실을 털어 놓으며 난주가 광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광수는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유성이 이야기”라며 일부러 난주가 전부 털어 놓았다고 말하고, 민규는 난주가 원한다면 이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HD역사 스페셜(KBS1 오후 10시) 오사카의 도시개발이 고대 백제인에 의해 그 기초가 놓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백제의 첨단 공법으로 축조한 300m의 거대한 제방 산협지가 최초로 공개된다. 또 백제식 건물이 일으킨 주거혁명과 백제풍의 의복혁명, 그리고 음식혁명.1400년 전 일본열도를 휩쓴 ‘구다라열풍’을 추적한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0시50분) ‘날라리’ 혜영과 종갓집 종손 재성의 만남. 결혼 첫날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한 혜영은 하루가 멀다하고 말썽을 일으킨다.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자 혜영은 살 판이 난 듯 종갓집의 실권을 장악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종택 주변에 관광단지가 들어서면서 20억원을 줄 테니 집을 팔라는 제의를 받는다.
  • “고유가 못살겠다” 유럽 전역 시위

    유가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지난 2000년 유럽을 휩쓸었던 고유가 항의 시위가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먼저 영국에서는 유가 인상과 공급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도로와 정유소, 주유소 등을 점거할 것에 대비, 군대가 출동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13일 보도했다. 최근 영국 정부가 석유 배급제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정부는 폭력사태가 일어난다면 반테러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탈리아의 주유소 주인들은 정부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번주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벨기에에서는 운송업자들이 도로 봉쇄를 위협하는 가운데 택시운전사들은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다.프랑스에서도 트럭운전사와 농부들이 도로와 항만을 봉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유럽에서 석유 소비자가격은 연초에 비해 50% 가까이 올랐으며, 시민들은 정유사들이 가격을 지나치게 올렸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가 치솟는 데도 정부가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불만사항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농부들에게 공급되는 석유의 세율을 조정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했고, 영국은 유류세 인상을 연기하기로 했다.네덜란드, 이탈리아, 헝가리 등도 세금 인하를 검토 중이다. 일부 정유사들은 정부와 시민의 압력이 가중되자 석유 판매가격을 ℓ당 2∼3센트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 하락폭이 미미한 데다 각 정부 입장에서는 세수 확보를 위해 유류세를 대폭 낮추기 어려운 입장이어서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트리뷴은 내다봤다.도이치뱅크 수석분석가 마이클 루이스는 “유류세를 낮추면 대부분 유럽국가들이 세수 부족에 허덕이게 될 것이므로 사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길](9)한국 인권의 현주소(한국)

    [인권선진국으로 가는길](9)한국 인권의 현주소(한국)

    인권의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2005년 상반기를 돌아보면 곳곳에 사각지대가 있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물론 군인·여성·학생 등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의 인권도 그야말로 ‘등잔 밑’에 있었다. 만연한 인권 불감증에 시사점을 던진 주요 사건들을 통해 한국의 인권 현주소를 짚어봤다. 지난 6월 경기도 연천 전방초소(GP)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그야말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하지만 파장이 컸던 만큼 군내 인권 문제를 단숨에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렸다. ●쉬쉬하기 급급했던 군 인권 수면 위로 총기 사건 전에도 군 인권 문제는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지난 1월 한 육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결교육을 강조하면서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을 먹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대해 부하가 시정을 건의할 수 있고 단체기합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인분 사건 직후 인권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가 심각한 기관 1위로 교도소와 같은 구금시설이 아닌 군대가 꼽혔다. 과거 ‘인분쯤은 나도 먹었다.’‘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다.’는 식의 주장으로 군 인권 문제를 쉬쉬하고 덮어두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국민의식이 한층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GP 총기 사건이 터지면서 군 인권에 대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알몸으로 기합 받는 사진이 잇달아 공개되는 등 안으로 곪았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육군은 이를 계기로 선진 병영문화 조기 정착을 위해 5개 분야 33개의 중·단기 과제를 선정, 추진할 것을 결정했다. ●호주제 폐지, 여성 종중원 인정 양성평등과 관련해 커다란 획을 그은 뉴스는 단연 호주제 폐지다. 지난 2월 부계 혈통주의를 토대로 한 호주제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이어 민법개정법률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호주 개념은 삭제하고 대신 가족의 범위를 확대했다. 아내가 남편의 집에 입적하는 조항도 사라졌으며 입양 혹은 재혼 가정을 위한 ‘친양자제도’도 신설됐다. 또 하나 기록할 만한 사건은 여성도 종중원으로 인정받게 된 이른바 ‘딸들의 반란’이다. 대법원은 1958년 이후 “종중은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된다.”는 판례를 유지해 왔으나 지난 7월 이를 변경했다. 재판부는 “성인 남성만을 종중 회원으로 인정하는 종래의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우리 사회와 국민 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으며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호주제 폐지가 가족 내 양성평등을 인정한 사건이라면 여성의 종중인정은 출가외인으로 불리던 기혼여성의 지위를 인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학생들의 움직임 부쩍 늘어 지난 5월 400여명의 중고생과 시민단체 회원이 서울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와 학교 내 두발자유를 외쳤다. 이에 앞서 학생들은 인터넷상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전교생 앞에서 머리카락을 짧은 스포츠형으로 자르거나 교사가 이발기계로 머리카락 일부를 미는 등의 사례를 공개하면서 학생들의 인권 보장을 외쳤다.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인권위는 지난 7월 교육부총리와 각 시·도 교육감에게 “두발자유는 학생의 기본적 권리”라면서 “두발 제한·단속은 교육 목적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하라.”고 권고했다.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단체도 등장했다. 전국 47개 고교 학생회의 연합체인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가 지난 6월 출범한 것이다. 개별 학생회의 힘을 한데 모아 위상을 높이고, 고등학생의 생각과 주장을 ‘어른’들에게 적극 알리고 설득하는 압력단체로 키우겠다는 게 목표다. 중고생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의 인권문제도 주목을 받았다. 인권위가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일기장을 검사하는 것은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어린이들의 인권과 사생활의 중요성을 사회 전반에 일깨워 준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이밖에 여성 동성애자의 인권문제를 부각시킨 레즈비언 단체의 연대모임 결성이나 사이버상의 인권에 불을 붙인 ‘개똥녀 사건’ 등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주요한 인권 현안의 하나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영역 넓히는 인권위우리 사회에서 ‘인권’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된 계기로는 지난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을 빼놓을 수 없다.1993년 빈 세계인권대회에 참가한 민간단체들이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한 뒤 2001년 ‘독립적 인권 전담 기구’로 출범한 인권위는 그간 인식하지 못한 각종 침해·차별행위를 ‘인권’의 범주로 해석하면서 우리 사회에 적극적인 인권의 개념을 심었다. 인권위의 진정 사건 현황을 보면 이같은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2002년 2790건이던 진정건수는 2003년 3815건,2004년에는 5368건으로 급속히 증가했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3323건을 기록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심해진다기보다는, 예전에는 인권 문제로 생각지 않았던 사안들에 대해 국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개별 진정사건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폐지, 사형제 폐지 등 굵직한 사안들에 대해 권고·의견표명 등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던 인권위는 차별시정기능의 통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 6월 말 여성부의 성차별·성희롱 조사구제업무가 인권위로 이관됐고, 오는 10월쯤 노동부의 고용차별시정업무도 이관될 예정이다. 또한 올해 말에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수립해 정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인권 관련 법·제도·정책을 총괄하는 범국가적 중장기 인권정책 종합 계획인 NAP는 2006년 6월까지 유엔에 보고하도록 돼있다. 지난해 초 실무팀을 구성해 장애인, 여성, 난민 문제 등은 물론 제한적 안락사, 대체복무제, 프라이버시권 등 논의가 가능한 모든 사안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정부기관 협의를 거쳐 올해 말 NAP가 확정·시행되면 국가 전반에서 인권관련 인식과 정책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인권선진국 문턱 국보법 폐지 시급” / 최영애 인권위 상임위원“법과 제도만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인권 수준은 상당하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상임위원은 “세계 속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상임위원은 “지난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인권 순위에서 한국은 120개국중 58위에 그쳤다.”면서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고 인정받으면서도 선진사회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법적인 권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미리 국가가 나눠줘 검진을 받게 한다면 그 사회적 비용은 훨씬 절감될 것”이라면서 “인권 문제 역시 이같은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인권기구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로 그는 ‘인권 감수성’의 함양을 꼽았다. 기독교 학교의 채플이나 여대의 금혼 학칙 등이 차별적 규정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지만, 이러한 일상의 문제들을 인권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인권 감수성’이라는 것. 최 상임위원은 “이는 교육은 물론 진정사건을 통해서도 키워진다.”면서 “체벌이나 일기장 검사가 인권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진정사건의 처리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감수성을 일깨워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 인권의 흐름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의 증가를 꼽았다. 난민·기아 등 초국가적인 인권 현안에 대해 국가인권기구간의 논의가 증가되는 추세라는 것. 예를 들면 한 국가에 전쟁이 발생할 경우 주변국가 인권기구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의해 해당 국가에 권고하거나, 자연재해로 인한 실향민을 위해 국가인권기구가 실행해야 할 지침 등을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인권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꼽았다.“지난해 세계인권기구대회때 방한한 70여개국 인권기구 대표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이 국가보안법의 폐지였다.”면서 “유엔에서도 여러번 권고를 받았던 사안인 만큼 실질적인 효과뿐 아니라 상징적 의미도 매우 큰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가자 정착촌 ‘1967~2005’ 역사속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38년 만에 완전 철수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15일부터 시작된 가자지구 21개 유대인 정착촌 철수 작전을 12일 새벽 완료하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5000여명의 군 병력을 철수시켰다. 앞서 이스라엘 내각은 11일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계속돼온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 종식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이스라엘군이 떠나자마자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려들어와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기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들은 남아 있던 19개의 유대인 교회(시나고그)의 유리창을 깨고 불을 질렀다. 이스라엘군은 정착촌 내 집과 건물들을 모두 철거했지만, 율법상 교회는 부술 수 없다는 내각의 결정에 따라 교회는 남겨뒀다. 철수지역 여기저기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의 깃발이 내걸렸고, 일부 무장한 팔레스타인인들은 허공에 총을 쏘는 등 흥분된 모습이었다. 팔레스타인측은 “아직 이스라엘의 점령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주변은 이스라엘과 이집트 군대가 통제하고 있고, 하늘과 바다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갖고 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행복하고 기쁜 날”이라고 반기면서도 “가자지구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 지역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에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서도 철수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기대처럼 가자지구 철수로 평화가 찾아올지는 미지수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가자지구 철수를 ‘이스라엘의 항복’으로 여기고 오히려 공격수위를 높일 태세를 보이고 있다. 장택동기자 외신종합 taecks@seoul.co.kr
  • 고이즈미 “임기중엔 개헌 않겠다”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마술’에 의해 자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일본 중의원 총선거는 여·야 정당을 뿌리부터 흔들어놓고 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정권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다진 반면,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쓸쓸히 퇴장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 고이즈미’에 대한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차기 주자 적극적으로 기용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압승을 거둔 직후 12일 오후 자민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포스트 고이즈미’에 대해 얄궂게 질문을 퍼부어댔다고이즈미 총리는 “나 다음에 의욕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각료나 당 주요 간부 등을 통해) 활약할 장을 적극 마련해 주겠다.”면서도 자격 요건과 관련해서는 “고이즈미 개혁을 전진시킬 정열을 가진 인물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임기 연장론에 대해서는 “내년 9월 임기종료 이후에는 (자민당)총재를 안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 다음 문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운을 남겼다. 아울러 우정민영화와 함께 연금개혁, 소득세 증세 등 각종 개혁조치들도 중단없이 하겠다고 밝혔다.●모리파 최대파벌 부상 종전 파벌 중심의 정치가 상당부분 희석됐지만, 그렇더라도 중의원 선거의 자민당 당선자를 파벌별로 분석해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출신 파벌인 모리파가 해산시 51명에서 53명으로 2명이 늘었다. 중의원·참의원을 합하면 79명으로 당내 최대파벌로 단숨에 뛰어 올랐다. 이른바 ‘자객 소동’ 등에서 무파벌이나 파벌 미정의 당선자가 93명이고, 이중 신인도 71명이나 된다. 이들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가 출마를 설득한 경우가 많아,‘포스트 고이즈미’ 후보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간사장대리가 속한 모리파가 한층 더 세력을 확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해산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옛 하시모토파는 50명에서 35명으로 줄어 중·참 양원을 합하면 70명으로 제2의 파벌로 전락했다. 이밖에도 가메이 시즈카 전 정조회장이 탈당, 신당으로 간 가메이파는 우정민영화 파동의 최대 피해를 입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졌고,3위 파벌은 호리우치파가 유지할 전망이다. 앞으로 무파벌 당선자를 상대로 한 영입작업이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개헌론 급물살?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중의원에서 헌법개정 발의선(3분의2)을 웃도는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개헌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벽이 많다. 우선 참의원에서는 연립여당을 합해도 3분의2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공명당이 개헌에 부정적이다. 자민당은 정권 공약대로 창당 50주년인 11월15일 개헌안 초안을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공론화의 시동을 걸 전망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평화헌법을 이루는 핵심인 9조를 고쳐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다만 고이즈미 총리는 압승 후 “개헌은 남은 임기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부담스러워했다. 따라서 차기 주자 선발과정이나 2007년 참의원선거에서 개헌론이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taein@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미라2(KBS2 오후 11시5분) 스티브 소머즈 감독의 2001년 액션 어드밴처. 브랜든 프레이저 등 1편의 주인공들이 그대로 나오지만 볼거리는 물론 특수효과 등 스케일이 훨씬 커져 전편보다 나은 평을 받았다. 1편에 이어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비행선을 덮치는 거대한 파도와 ‘스콜피온 킹’의 군사 등 화려한 스펙터클을 선보인다. 새로 등장하는 인물은 고대의 영웅 ‘스콜피온 킹’. 인기 프로레슬러 ‘더 락’이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전편에 펼쳐진 하무납트라의 모험을 계기로 이비(브랜든 프레이저)와 오코넬(레이첼 와이즈)은 결혼을 했다. 부부는 아들 알렉스와 함께 세계 곳곳을 탐험한다. 어느 날 일행은 스콜피온 킹의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 세계정복을 이룬 스콜피온 킹은 누군가가 그의 팔찌를 찾아 군대를 부활시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고대 이집트에서 마법사 이모텝과 사랑을 나눴던 아낙수나문은 현대에 부활해 이모텝을 되살려 세계정복을 꿈꾼다. 아낙수나문은 스콜피온 킹의 팔찌를 이용하려 하지만, 소란 중에 팔찌는 알렉스의 팔에 채워져버린 상태. 결국 알렉스는 납치당하고, 이비 부부는 아들을 찾기 위한 아슬아슬한 모험을 떠나는데….124분.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가타카(EBS 오후 11시30분) 인간의 미래를 암울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든 앤드루 니콜 감독의 1997년작 공상영화.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이 연인으로 나와 수준급 연기를 펼쳐 눈길을 끈다. 가까운 미래,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의 최우수 인력이자 완벽한 우성 인자를 갖춘 제롬 머로(에단 호크). 그러나 그의 과거는 31살에 사망하는, 심장병까지 앓는 ‘열등인’ 빈센트 프리만이었다. 하위 계급의 빈센트가 유전적 엘리트들의 집합소인 가타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부다. 그러나 빈센트는 가타카의 우주 프로젝트에 참여해 토성에 가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한 브로커 덕분에 빈센트는 유진 머로(주드 로)라는 유명한 수영선수와 신원을 바꾸는 수술을 한다. 제롬 머로로 태어난 빈센트는 유진의 혈액과 소변으로 테스트를 받아 가타카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고, 동료 아이린(우마 서먼)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제롬은 토성 프로젝트에 선발되지만 팀장이 살해되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107분.
  • [열린세상] 軍 병력수 더 줄여야/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국방개혁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현재 68만명인 병력을 2020년까지 50만명으로 줄이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적극적인 국방개혁안을 마련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 법제화하겠다는 것도 정부의 국방개혁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우선 국방부안의 기본방향은 바람직해 보인다. 병력위주의 양적인 군대를 기술집약형의 질적인 군대로 전환하고, 군 조직과 지휘체제를 통폐합해 효율화를 기한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제시한 국방개혁안은 여전히 미흡하다. 그 기본방향과 골자는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8년에 수립한 ‘국방개혁 5개년계획안’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당시 국방개혁안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군병력의 감축 규모면에서 크게 후퇴했다. 당시 개혁안은 2015년을 목표연도로 군병력을 40만∼50만명으로 감축한다는 것으로 최대 30만명에 달하는 감군을 추진한 바 있다. 반면에 이번 국방부안에서는 목표연도도 늦춰졌을 뿐만 아니라 감군 규모가 18만명에 그치고 있다. 국방개혁의 핵심은 사실상 군병력의 감축 규모라는 점에서, 이번 국방부안은 개혁성과 실효성 면에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여전히 50만명에 달하는 ‘병력집약적인 군대’를 유지하면서, 과연 우리 군이 정예화된 정보과학군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부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북한을 들어 대규모 감군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북한의 병력수는 매우 과장된 측면이 있다. 사회주의 특유의 ‘인민전쟁론’의 전쟁관을 갖고 있는 북한의 경우 모두 남한처럼 밥 먹고 군사훈련만 하는 정예군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상당 규모의 인민군들은 대규모 건설공사와 농사일 등에 동원되는 ‘반군반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 많은 수의 군인이 종신 동안 군대생활을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노령화된 군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북한과 같은 방법으로 계산한다면, 한국의 경우도 제대한 장교와 부사관을 전부 병력수에 추가해야 한다. 이미 남북한간의 군사력 경쟁은 끝난 지 오래다. 경제력 차이가 30배 이상 나고, 국방부 통계에 의하더라도 미얀마보다 적은 연간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북한의 병력수를 핑계로 병력 감축에 소극적인 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선을 지니고 있는 러시아보다도 더 많은 육군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다. 200만명이 넘는 중국의 대군에 맞서고 있는 타이완이 병력수를 꾸준히 감축하여 29만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패권을 추구하는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 30만명 이상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없다. 독일의 병력수가 28만명인 것을 비롯해, 영국 군대는 21만명에 불과하다. 인구가 1억 2000만명이 넘는 일본 자위대의 총수는 24만명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전에서는 병력수가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라크전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또 현실적으로도 병력을 대폭적으로 줄이지 않고는 첨단무기로 무장한 정보과학군으로 거듭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국방예산의 70% 가까이가 병력과 부대를 유지하는 운영유지비에 들어간다. 따라서 병력을 대폭적으로 줄이지 않고는 첨단무기 구매와 정보과학군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국방부안대로라면,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국방예산의 증액만 가져오고 군개혁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적정병력수는 인구의 0.3∼0.35% 수준이다. 병력을 30만명 정도로 감축하는 새로운 국방개혁안을 작성해야 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 교수
  • [학부 학과 올 가이드] (1) 한의학

    [학부 학과 올 가이드] (1) 한의학

    적성에 맞지 않는 대학에 진학해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와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미래 전망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은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졸업한 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는 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10회에 걸쳐 학부와 학과 관련 정보를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한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동양의학이다. 질병이 점점 늘어나고 건강한 인생, 한의학적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학과 개요 한의학은 동양 고유의 학문으로 동양철학을 기반으로 발전해 온 의학이며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이념으로 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의학이다. 한의학과는 한의학의 발전을 위한 연구와 진로 능력을 소유하고 봉사정신과 사명감을 갖춘 유능한 한의사와 한의학자를 양성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주요 교육내용 국소적이고 분석적인 진단과 치료를 하는 서양의학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난치병들에 대해 한의학은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진단과 치료방법으로 접근한다. 한의과대학에서는 체질에 따른 치료법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한약과 침자요법을 강의하고, 약침요법, 추나요법, 향기요법 등 다양한 한방치료방법을 강의한다. 한의과대학은 2년의 예과과정과 4년의 본과과정으로 나뉘는데, 예과에서는 중국어강독, 동양철학 등 한의학 관련 교양과목과 의고문, 본초학 등 한방기초이론과 생화학, 조직학, 해부학 등의 기초 의학지식을 공부한다. 또한 본과과정에서는 서양의학의 생리학, 병리학, 진단학, 약리학 및 한방의 생리학, 병리학, 본초학, 방제학, 진단학, 경혈학을 배우고 내과(간계, 신계, 폐계, 심계, 비계), 침구과, 부인과, 소아과, 신경정신과, 이비인후과, 사상체질의학 등 임상진료과목의 진단, 치료에 대한 임상강의와 실습을 받게 된다. ●적성과 흥미 생물과 화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요구되며 한의학 전공서적의 대부분이 한자로 돼 있으므로 한자를 많이 알면 공부하기 편하다. 또한 인체의 신비로움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필요하다.6년간의 방대한 학습량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임상실습과정이나 한의사가 된 뒤에는 상담을 통해 환자의 질병을 파악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고 침착하면서 자상한 성격을 가진 학생이 유리하다. ●취업과 진로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한의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한의사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다. 한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은 98.6%로 매우 높다. 한의사 면허로 별도의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임상한의사로 한의원을 개원할 수 있다. 한방병원의 수련의 과정에 비해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가령 손으로 뼈를 밀고 당겨 척추를 교정하는 추나요법과 침을 놓는 자리에 한약물을 넣는 약침요법 등의 새로운 진료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한의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며 환자를 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방 전문의가 되려면 한방병원 수련의로 들어가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년을 거쳐야 한다.2000년부터 한방의 전문성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생긴 한의사 전문의는 전국에 모두 1013명이 있고 지난해 149명을 배출했다. 한의사 전문의가 일반의와 다른 점은 전공과목이 있다는 점. 전공과목은 한방내과와 한방부인과, 한방소아과, 한방신경정신과, 침구과,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한방재활의학과, 사상체질과 등 모두 8과목이다. 가령 수련의 시절 한방내과를 전공하고 한의사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일반 한의사와 한방내과전문의 자격증을 모두 갖게 된다. 한의사전문의 자격시험 합격률은 90% 이상이다. 다음으로 한국한의학연구원이나 전국한의과대학의 부설 한의학연구소, 제약회사 등에 들어가 한약재 효능검증, 한의학 효과 등 한의학 연구를 할 수 있다. 국립의료원내 한방진료부 및 보건복지부내 한방과 등에서 직업공무원으로도 일할 수도 있다. ●군 복무 의사나 치과의사는 대부분 군의관으로 군대에 가는 데 반하여 한의사는 인원이 제한돼 있다.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치료가 한의학적인 것보다 양의학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공중보건의로 보건소 등에서 복무하게 된다. 군의관의 정원은 30명. 지원자격은 한의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지만 정원이 적어 주로 전문의 자격증 소지자가 뽑힌다. 공중보건의는 지원하면 거의 대부분 되는 추세다. ●학과 전망 한의학과의 전망에 대해서는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 긍정적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2005 미래의 직업세계’에 따르면 졸업생의 56.3%와 재학생의 59.1%가 3년 뒤의 전망을 좋게 보고 있다. 또한 졸업생의 43.8%와 재학생의 40.9%가 보통으로 보고 있어 학과전망을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졸업생과 재학생 모두 나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도움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중앙고용정보원, 한국산업인력공단 ■ 한의과 현황과 합격요건 전국 한의과 대학은 전국 11개 대학에 설치돼 있고 정원을 모두 합치면 750명이다. 한의예과에 입학하려면 수능성적이 전국 0.2∼0.3% 이내에 들어야 안정적이고 평균적으로는 0.5% 내외는 돼야 노릴 수 있어 의과대학과 엇비슷하게 최상위권이다. 일반적으로 수시 2학기는 대학수학능력평가와 학생생활기록부 성적, 논술과 심층면접, 정시는 학생부 성적과 수능으로 뽑는다. 논술과 심층면접은 대부분 과학과 수학에 관련된 소재가 나온다. 논술과 심층면접에는 수능의 과학과 수학문제보다 깊이 있는 문제가 나온다. 수능을 마친 뒤 대학 과학교양서적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경희대 한의예과는 수시 2학기에 교과우수자 30명과 조기졸업자 5명, 한문특기자 2명을 뽑는다. 교과우수자 전형과 조기졸업자전형은 다른 학교와 달리 논리력과 추리력, 수리력 등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인적성검사가 40%를 차지한다. 조기졸업자 전형은 과학고등학교 등을 조기에 졸업한 학생을 지원받아 교과우수자와 같은 전형방법으로 뽑는다. 한문특기자는 전국한문경시대회 3위 이내 수상자 가운데 특기수상실적평가와 특기재평가를 통해 선발된다. 수시 2학기와 정시모집에 모두 적용되는 최저학력기준은 수리영역 ‘가’형과 과학탐구영역, 외국어영역 가운데 두 영역 이상이 1등급이어야한다는 점. 동국대는 수시 2학기에 일반우수자와 지역고교출신자를 뽑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전형에 적용되는 최저학력기준은 수능의 언어와 외국어, 수리영역 가운데 2개 영역이 1등급이어야 한다. 또한 2004년과 2005년도 2월 졸업자와 2006년도 졸업예정자로 제한된다. 지역고교출신자는 대구와 경북, 부산, 울산, 경남 소재 고등학교로 한정된다. 원광대는 수시 2학기 모집을 오는 9월과 11월 모두 두 차례 실시한다. 이 학교도 최저학력기준이 있다. 수능의 언어와 수리 ‘가’형과 외국어의 각 등급의 합이 5이내에 들어야 한다. 심층면접에는 화학과 생물 관련 내용이 나온다. 대학교양서적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정시에도 ‘가’군과 ‘나’군, 두 차례에 걸쳐 선발한다. 경원대는 수시 2학기 모집 지원자격은 재수생까지로만 한정한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언어와 수리 ‘가’, 외국어 영역, 과학탐구영역의 2과목의 평균 백분위가 상위 4%안에 들어야 한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임상강사 우현수씨가 본 한의학 우현수(31·여) 경희의료원 부속 한방병원 침구과 임상강사는 한의학 분야를 공부하는데 음양오행론 수업을 받아야 하는 등의 어려운 점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 우씨는 지난 93년 경산대(현 대구한의대) 한의예과에 수석입학해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대에서 침구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한의사가 된 동기는. -중학교 때 이유없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복통을 앓았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병 이름도 밝히지 못했다. 그때 소개로 한 한의원을 찾아가 침 치료를 받고 한약을 먹었는데 나았다. 대학입시를 치를 때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다. 그러자 부모님께서 한의학 전공을 권유했다. ▶여성 한의사로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은. -요즘 여성 한의사의 수가 증가해 성별에 대한 차별도 적은 편이다. 오히려 상위를 다투는 학생 가운데 여학생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한의학의 장단점은. -장점은 인체를 끊임없는 생활 활동이 일어나는 하나의 유기체로 봐서 국소의 질환도 전신적인 순환이론으로 치료해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양방보다 부작용을 일으키는 경우도 적다. 또한 양방과 달리 개인체질에 맞는 맞춤형진료를 한다. 단점은 같은 병을 진단, 치료할 때 하나의 기준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한 답이 없다. 이는 진료의 표준화측면에서 상당한 약점이다. ▶보람을 느낄 때와 힘들 때는. -환자가 병에서 나을 때 보람을 느낀다. 나의 지식이 환자가 더 낳은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준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는가. 반대로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거나 나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잘 치료가 안 되면 답답하다. ▶공부할 때 힘든 점은. -한방과 양방이 학문체계가 달라 이해가 잘 안 돼 힘들었다. 이분법적이 아닌 음양오행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한의사의 평균 연봉은. 전문의 연봉은. -근무하는 형태에 따라 차이가 크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병원에 취직해 근무하는 경우라면 월평균 350만∼400만원 내외로 추정되고 전문의의 경우는 약간 더 높은 금액을 받는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수련의의 경우는 평균 연봉의 절반 수준인 월평균 170만∼2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임상강사의 경우도 정식 교수가 되기 전까지는 수련의의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한의사 전문의에 대한 전망은. -노인의 수가 늘면서 만성질환이 증가, 한방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환자들의 한방의료 서비스에 대한 기대도 높아져 전문의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10년 뒤의 모습 혹은 포부는. -지금도 가끔 병원에서 기회가 있을 때 의료혜택을 받기 힘든 지역에 나가 봉사를 하는데,10년 뒤라면 좀더 여유가 있을 테니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한의예과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만큼 의학을 배우기 전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 또한 의사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 스스로 병을 빨리 이기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기존의 사고체계와 다른 한의학의 체계를 받아들일 때 무척 힘든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극복하면 재미있고 순리적인 학문이다.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영화속 수능잡기] 화씨 911

    [영화속 수능잡기] 화씨 911

    형법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사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 불법 행동에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는 오직 국가뿐이다. 국가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주체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주체도 국가다. 국가가 이렇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내세우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공익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교왕과직(矯枉過直)이라 했다.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정도를 넘으면 곧음이 지나쳐 사태를 그르치는 수가 허다하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 과연 공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인지도 충분히 고찰되어야 한다. 집권 세력만, 사용자, 경제력 있는 자들만을 위한 이익을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공익이 발전한 개념이 국익이다.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 국민이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정치가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는 것이 국익이다. 그러나 세상 어떤 나라에도 전체 국민의 단일한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하며,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한 계층에게는 이익이 되는 것이 다른 계층에는 손해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는 말할 것이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말할 것이다.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국익인가. 소수가 손해를 입더라도 그 손해의 보상이 다수에게 커다란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면 소수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의 논리’요,‘수의 논리’다. ‘수의 논리’를 위해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이다.’라는 문구를 담은 통계 자료가 곧잘 인용된다. 파병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파병으로 얻는 이익이 파병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작다면 국민들이 찬성할 리가 없다. 과반수 이상의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면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곧 파병의 논리다. 영화 ‘화씨 911’은 이런 식의 국익의 논리가 과연 정당한지 묻고 있다. 영화는 이라크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의 한 가정을 보여준다. 식구 중 많은 수가 군대 간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 집안은 아들을 이라크로 보낸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주검이 되어 돌아온 뒤 집안은 큰 슬픔에 잠기게 되고 이후 강력한 반전 세력으로 돌변한다. 한 개인의 이익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양보되어도 좋다는 것이 ‘수의 논리’다. 다수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소수에게는 극심한 아픔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책 결정에서 항상 소수가 배제되는 사회는 공평하지 못하다. 소수를 배려하고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사회, 진보된 사회란 그런 곳이 아닐까. 마이클 무어 감독·제작,2004년작. 김보일 서울 배문고 교사 uri444@empal.com
  • “한국, 6·25 참전 사과 고집 안했다”

    “한국대표단은 중국의 1950년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유감표시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다. 그러나 중국측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고집하지 않고 쉽게 포기해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 당시 실무협상 대표였던 장루이제(張瑞杰·76) 전 중국 본부대사는 중국의 6·25 참전이 수교 협상의 의제로 제기됐지만 한국 대표단이 이를 고집하지 않아 협상의 빠른 진척이 가능했다고 밝혔다.“이미 역사는 흘러갔다.1950년에는 당시의 사정이 있었다. 앞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한국측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번 꺼내본 것이었지 문제삼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중 수교과정에서 한국이 이 문제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비난이 지금도 있는 가운데 협상 당사자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처음이다. 장 전 대사는 지난 5일 중국 외교부 산하 인민외교학회(회장 루추톈)와 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공동 주최로 중국 후난(湖南)성 웨양(岳陽)시에서 열린 ‘5차 한·중 지도자 포럼’에서 이같은 수교 비화를 소개했다. 그는 46년 동안 외교부에서 일한 원로 외교관. 당시 스리랑카 대사를 마치고 본부대사로 근무 중이었다. 평양에서 출생, 고등학교 때까지 16년 동안 북한에서 보내고 30여년을 평양대사관과 외교부 조선처에서 근무한 경력 덕에 자연스럽게 실무회담 주역을 맡았다.●한국이 강력한 수교요청 `일사천리´ 진행 “수교협상은 92년 5월 중순에 시작해 보름 간격으로 3차례 열렸다. 별다른 장애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3일씩 열렸으니 결국 9일간의 회의로 수교가 결정된 셈이다. 한국측이 첫번째 협상부터 직설적으로 수교를 요청하는 등 강력한 수교 의사를 밝혔고 중국은 두 나라 관계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데 동의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전했다.” 당시 협상 수석대표는 형식상 두 나라 외교부 차관이 임명됐지만 실제 협상장에선 장 전 대사와 권병현 당시 외무부 아주국장이 이끌었다. 그는 “베이징의 외교부 실무자나 국가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수교는 대세라고 판단했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도 ‘한국과의 관계를 열어 나가라.’고 지원했다. 그러나 첫 협상때엔 수교가 가능할지 자신이 없었다. 북한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게 중국측 분위기였다.1차 협상이 끝난 뒤 중국의 결심이 내려진 것이다.92년 5월 말이었다.”고 밝혔다. 2차 회담땐 구체적인 수교 조건이 나왔다. 중국측은 타이완과의 단교, 관련 조약들의 폐기, 타이완 대사관의 중국 인계 등을 제기했다.“별다른 마찰없이 역사상 보기 드물게 빠르게 진행됐다. 마지막 3차 회의에선 문서작업이 이뤄졌다.”●김일성 “하는 수 없지 않은가” 냉랭한 반응 첸치천(錢其琛) 당시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을 만나 “중국이 이미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란 냉랭한 김일성의 승인을 받아온 것은 7월.8월24일 베이징에서 두 나라 외교장관간에 수교협정이 서명됐다. “1·2차 회의는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의 14호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3차 회의는 서울 워커힐호텔의 별장식 객실에서 진행됐다.” 한·중 수교의 주역이지만 외교관 대부분의 기간을 북한관계에 종사했다.“1966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문화대혁명 때엔 북·중 관계가 악화된 상태였다. 북한은 문화대혁명을 이해하지 못했고 옛 소련편에 서 있었다.” 78년 중국 개혁개방 이후 북·중 관계가 정상화되자 실무자로서 그는 덩샤오핑, 리셴녠(李先念), 후야오방(胡耀邦), 자오쯔양(趙紫陽) 등 10여년 동안 5명의 지도자들의 북한행을 모두 수행했다. 북·중 회담에서 중국측은 중국의 개혁개방의 진전 상황을 김일성에게 설명했고 북한측은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너희 어디 잘 되나 봐라.’란 식의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개혁 가능성과 관련,“의식이 너무 굳어있고 자본주의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을 갖고 있다.”면서 “김정일은 군대를 장악하고 있고 인민들은 힘들지만 참을 수 없는 단계는 아니고 중국·한국 등 국제사회의 원조로 최저 생활을 상당기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웨양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여자도 군대가게 해달라” 여고생 헌소

    한 여고생이 “여자도 군대에 가게 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사실이 4일 확인됐다. 경기 일산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고모(18)양은 지난달 18일 여자는 지원해야만 군인이 될 수 있다고 한 병역법 3조 1항 등이 헌법 39조를 위반했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 39조는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양은 “남자는 아무런 제약 없이 군대에 갈 수 있지만 여자는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없고 지원 조건도 까다로워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며 헌소를 낸 이유를 설명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일본을 다시본다] (20) 특별취재팀 방담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기획한 ‘일본을 다시 본다.’ 시리즈의 마감을 앞두고 도쿄를 비롯, 교토와 나고야, 오사카 등 일본 현지 곳곳을 누볐던 특별취재팀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방담을 통해 정리했다. ●도쿄의 부동산 열풍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銀座) 거리를 가보니 엷은 회색 포장으로 바꾸었더군요. 도쿄역 앞을 비롯한 도심의 재개발도 한창이었습니다. 도쿄만을 놓고 본다면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그 때문에 부동산 열풍도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와 도쿄 인근 부동산 값이 너무 치솟아 ‘억션’이라는 말이 유행한다더군요.‘맨션(일본의 저층 고급 아파트)’이 웬만해서는 모두 몇억엔을 호가한다고 해서 일본사람들은 맨션 대신 ‘억션’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도쿄 인근을 제외한 그 밖의 지방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 있어 양극화 경향이 심각하다더군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았지만 일본에서 가장 활기 있는 곳은 역시 나고야인 것 같았습니다.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유치한 아이치 만국박람회 덕분이지요. 나고야역에서도 심심찮게 외국인을 볼 수 있었고, 나고야 번화가 어느 상점에나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나고야역 근처 한 전자제품매장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자 점원이 급히 인터넷 번역사이트에서 일본어를 영어로 번역, 프린터로 인쇄해 주더군요. 단순 친절을 넘어 외국인을 고려한 철저한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취재하면서 일본 사회 전체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도 여러차례 실감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의 정치인이나 회사, 단체 등에 인터뷰나 면담신청을 하면 통상 1∼2개월 가량 걸렸는데 이번에는 전혀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도 홍보 필요성이 있는 곳은 하루 만에 일정이 잡히곤 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본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치밀한 일본인들이 속도감까지 갖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이나 사회가 스피드마저 갖추게 되면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속도가 빨라져도 그 무서운 준비력은 여전했습니다. 취재원들 모두 뒷받침할 통계나 증빙자료가 없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더군요. -일본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먼저 헤어질 시간을 미리 고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일단 인터뷰를 하다가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할 텐데, 일본은 미리 양해를 구해놓는 차이가 있더군요. 최대한 신중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태도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가급적 단정적이고 명확한 대답을 요구하는 기자의 욕심을 좀처럼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어봐도 저렇게 물어봐도 신중함의 경계선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요. ●감시의 나라, 일본 -일본은 ‘감시의 나라’라는 말도 실감했습니다.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를 취재한 뒤 도쿄전력을 찾아갔는데, 노사관계와 관련해 다소 민감한 질문을 던졌더니 “렌고에서 이미 취재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더군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감시하는 체제가 강력히 구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쿄전력에서 회사측과 노조측 관계자를 교대로 만났는데, 먼저 취재에 응한 회사 관계자가 나중에 면담한 노조 관계자에게 저와 나눈 대화, 질문 내용 등을 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은 지금 패전 60주년이자 러·일전쟁 100주년, 자민당 결성 및 ‘55년 체제’ 50주년을 맞아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상황입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을 바꾸겠다는 상징으로 의회까지 해산하며 우정개혁을 밀어붙이는 최대 강수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선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미국식 경제주의와 일본식 경제주의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식인층과 기득권층은 주로 미국식 경제주의를 도입해야 일본이 살아날수 있다는 논리를 폈고, 렌고 등 노동계와 일부 학계에서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거든요. 이들은 고이즈미의 개혁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단정하고, 강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약자에게만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에 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더군요. ●지도층 “패러다임 바꾸자” -제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일본은 안된다.”고 말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해도 시대의 변환기에서 적어도 리더그룹들은 일본을 형성해온 ‘패러다임을 바꾸고 변화를 늦춰서는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전보다 다른 나라를 더 의식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기자들로부터 ‘취재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본우정공사를 취재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도쿄신문 기자가 우정공사 취재 배경 등에 대해 알고 싶다며 인터뷰 요청을 해와 당황했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현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했더니 “일본은 그동안 주변 국가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개혁의 파고속에 주변국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더군요. -기업의 육아지원책에 대해 취재하기 위해 NEC를 찾았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간단히 NEC의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를 소개하고선 오히려 저에게 한국은 어떤지 묻더군요. 출산휴가는 며칠이나 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지 꼬치꼬치 묻는 통에 좀 당황했습니다. 양육지원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단계 앞서 있다고 하자 얼굴에 안도감과 자부심이 비치더군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일본의 수준을 가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21세기 초 동북아 정세에 관해 들은 재밌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3월 말 외무성 북한반장직을 박차고 퇴직한 서른 다섯살의 어느 지식인은 동북아의 위기상황에 대해 “북핵문제는 표면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 사실 속을 들여다 보면 결국 동북아의 부(富)를 둘러싸고 중국, 한국, 미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군대를 보내는 전쟁이 아닌 ‘세련된 제국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본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새삼 실감한 한류 열풍 -현지 취재에 나서기 전 가장 궁금한 것들 중 하나가 한류 열풍이었는데요,‘도쿄의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크보에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더군요.2001년 한국어학원을 개원한 한국인 원장을 만나봤는데, 그때 2곳에 불과하던 학원이 이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조금씩 늘어나더니 한류열풍을 타고 지금은 20여곳이나 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팬레터를 쓰고 한국관광을 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는데,MP3 플레이어에 들어 있는 300곡이 모두 한국 노래일 정도로 열성적이었지요. 이 여성은 한국어를 배운 덕에 최근 한국계 기업에 취직까지 했다며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다고 기뻐했습니다.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이 1년 안에 사그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현지에 가보니, 그렇진 않았습니다.TV를 보니 배우 장동건이 한국 소주를 선전하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또 아이들 사이에서는 한류 스타의 이름을 끊이지 않고 말하는 일종의 말잇기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여성은 영문 명함을 건넸더니 제게 명함에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하더군요.‘뵨사마(탤런트 이병헌)’가 너무 멋져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한국사람이 직접 쓴 한국어 글씨를 기념으로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은 한국에서 욘사마(배용준)와 뵨사마 중에 누가 더 인기 있는지, 이들 말고 또 ‘뜨는’ 연예인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 -이번 취재는 우리가 너무 일본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욘사마 신드롬’,‘독도문제’,‘교과서문제’ 등은 일본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 갈등에 우리가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거나, 일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은 겉(형식)과 속(내면)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본질을 다각도로 파악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일본은 형식적이면서 실용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한 일본인 교수의 고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에선 지하철이나 전철의 출입구쪽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는 10대들이 갈수록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전혀 주변 사람을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어른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고집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기자가 물어보지 않은 내용인데도, 자기가 할 말은 꼭 하려들어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NEC의 아라이 도시노리 홍보부장은 일본 제조업의 부활을 묻는 첫 질문에 “대답에 앞서 우선 우리 회사 소개부터 하겠다.”면서 캐털로그를 펼쳐놓고 한바탕 ‘강의’를 했습니다. ●5층 빌딩 짓는데 4년 -‘일본의 경주’로 알려진 문화유적의 도시 교토에서는 일본 문화재정책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교토대에 입학, 현재 석사 과정에 있는 유학생에게서 들은 얘기입니다. 교토대는 그 학생이 신입생으로 입학한 5년 전 총장실 신축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공사가 한창이던 어느날 현장에서 유물이 발견되면서 무려 2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고 유물 발굴이 다 끝난 뒤에야 건축 공사를 재개했다고 합니다.1학년 때 시작한 공사가 4학년 때 끝났으니 5층건물 하나 짓는데 4년이 걸린 셈입니다. wisepen@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군대서도 ‘기록’은 중요”

    “진정한 통일의 첫걸음은 휴전선 일대를 공원화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연간 6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되며 이는 곧 통일기금으로도 사용되지 않겠습니까.” 최갑석(76) 예비역 소장.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 보기 드물게 장성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최근 이같은 파란곡절의 군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한 회고록 ‘장군이 된 이등병’을 발간,2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그는 이와 관련,“우리나라의 군대는 여전히 기록문화가 약하다.6·25전쟁 당시에는 더욱 그랬다.”면서 후배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더러는 교훈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번 출판기념회를 갖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전쟁세대로서 ‘휴전선의 평화공원화’의 필요성을 부각시킨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1947년 2월 국방경비대에 자원 입대, 이등병 군번 ‘1200599’를 받았다. 이후 창군 시절,6·25와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하며 다섯가지의 병과와 38개부대 전속,50여개 보직을 거쳤다.83년 10월 예편.김문기자 km@seoul.co.kr
  • 여성장군 1호 양승숙 예비역 준장

    “결혼에 이어 임신까지 했다고 모두들 어린아이 보듯 안쓰러운 눈빛들을 보내더군요. 그때는 그만큼 여성으로서 살아가기가 힘겨웠지요.” 우리나라 여성장군 1호 양승숙(56) 예비역 준장은 30년 전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군대에서 여성의 결혼이나 출산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때였지만 양씨의 간호병과는 유일하게 여기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제도적으로만 그렇다는 얘기고 1973년 임관 뒤 74년 결혼,75년 출산과 육아 등을 거치는 과정은 단계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임신, 육아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다 보니 결혼하는 사람들이 적었고, 결혼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지원이 더 빈약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면서 “소령, 중령 같은 꽤 높은 계급의 여군들 중에서도 결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씨의 경우 임신했을 때에도 하루 3교대의 과중한 업무가 계속됐다. 양씨는 “임신 중이었지만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 환자 간호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간호사관학교 교장 재직때 매년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체력측정에서 임신한 여군은 제외시키는 규정을 도입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임신과 출산, 육아는 모든 직장여성들의 문제이니만큼 군같이 특수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적 지원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년6개월에서 2년마다 이동해서 근무했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육아정책 확립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양씨는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서 “아이 돌보는 사람을 둘 수밖에 없었고 어쩌다가 하루 이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여군들은 육아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시댁과 친정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육아가 부담스러워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다시 한번 육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양씨의 주장이다. 그는 여군의 임신과 출산, 육아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으로 인력의 확충을 꼽았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기간 동안 업무를 대신할 충분한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신 등 공백기간 동안 풍부한 대체 인력이 존재하는 일반 직장에 비해 군은 인력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힘들다. 양씨는 “필요한 인력보다 조금 넘는 인력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여군들에게 임신, 육아정책 지원은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씨는 “여군의 복지 등 여성 근로자들의 권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9)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일본을 다시본다] (19)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도쿄 특별취재반|‘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지평 모색.’ 이보다 우리를 더 난감하게 만드는 주제가 있을까. 지금껏 한국과 일본 사이에 ‘미래’가 자리할 틈은 없었다. 한·일은 여전히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고, 과거에 발목잡혀 있다. 독도, 야스쿠니, 역사교과서 등의 현안은 시간의 정방향성과 격리된 채 수십년째 제 자리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한·일관계에 있어 모든 과거는 현재에 투영되고, 모든 현재는 과거에 닿아 있다. 도대체 한·일이 과거를 훌훌 털고 현재를 뛰어넘어 미래로 내달릴 수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대전환은 불가능한 것일까. ●지금 뭐라고 했지?… 對한국 관심지수 30 A라는 사람이 친구 B한테 잔뜩 화가 나서 항의한다. 하지만 B는 별다른 대꾸가 없다.A는 더욱 화가 나 욕을 퍼붓는다. 그래도 B는 묵묵부답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A는 급기야 B의 멱살을 잡는다.“야, 내 말이 말같지 않아?” 그제서야 B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뗀다.“응?아까 뭐라고 했지?” A는 얼마나 황당할까. 일본에 가서 일본인과 직접 한·일관계를 얘기하면서 든 기분을 조금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그동안 일본을 향해 분기탱천해온 기억이 무안할 정도로 일본 사람들은 한·일간 현안에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우리의 대일(對日) 관심지수가 ‘100’이라면 일본 국민의 대한(對韓) 관심지수는 ‘30’정도, 심지어는 ‘0’에 가깝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정서는 지난달 말 서울신문과 도쿄신문이 공동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상대국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0%대로 나타났지만, 일본인한테서는 유독 무관심성 응답이 35%나 나왔다. 한국인의 대일 무관심 비율 20.9%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일본 국민의 이같은 정서가 정치인들의 반쪽짜리 역사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일본의 정치인을 만나면서, 한국이 과거의 거울로 일본을 재려는 데 반해 일본은 과거를 외면한 채 현재만 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중의원 해산 전인 지난 5월 만난 고노 다로 의원은 군대를 가질 수 없도록 한 일본헌법 9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했다.“일본이 이미 해외에 자위대를 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과거는 외면한 채 현재만 보는 논리다. 자민당의 차세대 유력 정치인인 그는 또 “사이가 안 좋다고 한국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도 그는 “시마네현이 일본 정부에 어민들을 좀 챙겨달라는 취지로 한 것이지,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다.”면서 “한국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 대통령이라면 배용준과 독도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조언’까지 곁들였다. 야당인 민주당의 기타하시 겐지 중의원이 준 첫 인상도 비슷했다. 그는 “일본인들은 독도 문제를 크게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렇게까지 이슈화되는 데 놀랐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나치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의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유명한 일화를 기자가 꺼내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느냐. 처음 들었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화의 씨앗´ 키우는 야당 정치인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한·일관계 개선에 청신호가 될 만한 조짐들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무적이다. 기타하시 의원은 “10년 전 한국의 독립기념관을 가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일본 정치인은 아시아 민족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를 안 하는 것은 물론,2차대전 전범은 야스쿠니에서 분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일 정부가 프랑스 등 제3자를 포함시키는 역사 공동연구회를 만들어 연구한 뒤 결과를 TV 등을 통해 공표함으로써 기정사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한국을 향해 한가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독립기념관의 전시물이 너무 리얼해서 충격적인데, 한국 어린이들이 그런 것을 자꾸 보면 평생 일본을 미워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한·일간 우호가 정착되기 힘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미카즈키 다이조 중의원은 보다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일본의 미래상은 경제선진국이 아니라 문화선진국, 인간부흥, 자연과의 공생, 아시아 공동체 등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지금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은 자기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일의 진정한 미래 모색 그럼에도 불구, 결국 한·일간의 진정한 ‘미래’는, 정부 차원의 화해 같은 것이 담보해줄 수 있는 사안이 아닐 것이다. 근본적으로 일본 국민이 변하지 않는 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변화는 사상누각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일본에 항의하고 일본 내 양심세력과의 연대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우리 스스로 힘을 키워 경제적·문화적으로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는 것밖에 왕도가 없다는 것이 일본을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하며 한국을 아예 맞수로 치지 않는 일본 국민을 향해 “내 말을 들어보라.”고 핏대를 올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상대가 저절로 관심을 갖게끔 힘을 기르고 매력을 키워가는 게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모색은 그 다음 단계일 것이다. 최근의 ‘욘사마 열풍’은 이런 핵심을 적나라하게 예시한 사례이다. 욘사마 때문에 난생 처음 지난해 한국을 여행했다는 일본인 간다 가쓰에(39)의 ‘고백’은 시사점이 크다.“욘사마 이전에는 한국이나 한·일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이 아주 발전된 나라더라. 한국을 더 자세히 알고 싶고, 좋은 한국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 carlos@seoul.co.kr ■ 日 민주당 ‘386 보좌관’들이 말하는 일본 |도쿄 특별취재반|지난달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국회를 해산하기 전 일본을 취재하면서 도쿄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노자키 도시오 등 민주당의 국회의원 보좌관 6명과 한·일관계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30∼40대 연배인 그들과의 토론을 통해 일본에 대해 갖고있던 선입견이 많이 깨졌고, 일본인을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보좌관들은 일본 정치가 개혁돼야 하고, 그러려면 자민당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리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우경화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일왕제와 관련해 직설적인 질문을 던져봤다.“일왕제 때문에 일본이 변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왕제가 존속됐기 때문에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집권층은 기득권을 유지했으며, 우경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보좌관들은 하나같이 묵묵부답이었다. 화자(話者)를 배려해 미소 띤 얼굴을 일그러뜨리지는 않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무언의 항변 같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정말 일왕을 신의 자손이라 믿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젓는다.“신의 자손이라고 전혀 믿지 않는다. 다만 국가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이 왜 우경화 하느냐.”고 묻자 “우경화를 나쁘게만 보지 말라.”고 반박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이 유엔 분담금을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이 내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입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고 강조했다. “일본국민은 왜 자꾸 자민당에 몰표를 주느냐.”는 질문에는 “막상 정권이 바뀌면 불안해서.”라는 대답과 함께 “이혼을 두려워하는 것” “부모들 때문에 젊은층도 자민당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에 대해서는 “투표해도 선거결과가 바뀌지 않으니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봤다.“그전에는 한국이 뒤처진 나라라고 인식했는데 최근 한국 드라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의견과 “한국 드라마는 한 편도 본 적이 없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취재에 도움을 줘 고맙다는 뜻으로 식사비를 내려 했더니 그들은 “안된다. 더치페이하자.”고 사양했고, 결국 각자 밥값을 계산했다. carlos@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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