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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창공클럽’과 문인/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이번 전쟁이 결코 전투만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즉 정치, 경제, 사상에 있어서도 승리해야만 최후의 승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비장한 결의문의 첫 머리 같다. 이는 1951년 3월, 전쟁이 한창인 와중에 결성된 공군문인단의 자취를 적은 마해송(1905∼1966)의 글이다. 전쟁이 한창일 때라는 점을 다시 상기하자. 총이 아니면 펜을 들어야겠다는 절실한 심정이었겠다. 동족을 향한 총부리를 용인할 수 없지만, 생존의 처절한 마루턱을 어떻게든 넘어야겠다는 일념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먼저 공군문인단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공군이 먼저이고, 그를 이어 육군과 해군문인단이 만들어졌는지 자세한 상황을 나는 모른다. 그때 문인들은, 전선에 나간 병사들을 위로하고, 군과 민 사이 가교 역할은 다른 누구보다도 문인의 펜 끝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마해송은 공군문인단의 단장이었다. 그러나 공군문인단은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라는 이름으로 우리 문단사에 남아 있다.“군 냄새가 풍기지 않는 일반이 친분을 느낄 수 있는 이름이 없을까. 하여 별칭 ‘창공구락부’라 이름짓게 되었던 것”이라고 마해송은 설명한다. 육군과 해군에 비해 먼저 만들어져서 그런지 창공구락부의 회원은 쟁쟁하다. 소설가로 김동리, 최인욱, 최정희, 유주현, 황순원 등이, 시인으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이한직, 김윤성 등이 참여하고 있다. 마해송이 말한 ‘문화의 승리’란 무엇일까.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간다.“유엔군의 병력과 화력과 기술로 상승적(常勝的)인 전투를 계속한다 하더라도, 그간에 우리나라의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가 불안하고, 문화의 발전 예술의 창조가 두절된다면, 전승(戰勝)의 영광이 유엔군에 가는 동시에, 우리나라는 내부로 붕괴하는 길밖에는 없는 것이다.” 정치·경제·문화 등을 아울러 큰 의미의 ‘문화’라는 개념으로 묶고 있다. 전쟁은 전투만이 아닌 바로 문화의 싸움임을 그들은 자각하고 있다. 남의 힘을 빌려 싸움에서만 이기는 것은 곧 남이 이기는 데 지나지 않는다.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때는 우리 땅에 남의 나라 군대가 들어와 싸우더니, 이제는 제 땅에서 제 동포끼리 싸우는 현실이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 문인들의 작은 목소리는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런 소리가 있었다는 역사가 이제 와서 조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냉정히 따져보건대,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까지 우리는 마해송이 말한 ‘최후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역사를 여기서 들추기란 번거로울 뿐이다. 남이건 북이건 마찬가지이다. 창공구락부가 슬그머니 활동을 멈추어버린 것처럼, 비원했던 최후의 승리 또한 그렇게 요원한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내 또래 문인들은 군대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군대는 보람차고 즐거운 경험으로보다,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70∼80년대에는 반정부적인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보내는 일도 있었고, 심지어 거기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일도 있었다. 이문열의 ‘새하곡’,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 조성기의 ‘라하트 하헤렙’, 신상웅의 ‘심양의 정담’, 홍성원의 ‘디데이의 병촌’ 같은, 이 시기에 나온 쟁쟁한 ‘전선문학’이 비인간적인 군대의 이면을 그리는 데 할애되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군대와 문인은 마치 상극처럼 벌어졌다. 그렇게 잊혀지고 멀어진 것 같던 군대와 문인 사이에 새로운 가교가 열리는 모양이다. 역시 이번에도 공군이 먼저다. 끊겼던 공군구락부의 전통을 잇는 공군클럽(대표 도종환 시인)의 결성이 그것이다. 새삼 문화의 승리가 무엇인지, 더불어 생각과 도움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고운기 연세대 국문학 연구교수
  • “軍복무 경험이 재범 억제효과”

    “軍복무 경험이 재범 억제효과”

    군 복무 경험이 범죄 전과자들의 재범(再犯)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군대 특유의 규율과 통제가 범죄심리를 완화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형사정책연구원 강은영 연구원은 6일 이화여대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경력 범죄자의 성인 초기 범죄 지속과 중지에 관한 연구’를 통해 “군대에서의 경험이 범죄 전과자들의 재범 예방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 실증적으로 증명됐다.”고 밝혔다. 범죄 전과자 중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고, 군 복무를 오래한 사람일수록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 연구원은 전국 5개 교도소의 동종 실형 전과 2범 이상 체포경력 5회 이상 30∼35세 남성 상습 범죄자 390명을 대상으로 과거 10년간 범죄를 추적했다. 논문은 군복무·교육·직업·혼인 등 4가지 요인이 재범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 수치화했다. 개인 범죄율(범죄빈도)의 경우 취업기간 -0.403, 군복무 여부 -0.135, 혼인기간 -0.132, 교육기간 -0.027로 나타났다. 수치가 마이너스(-)로 내려갈수록 범죄의 특성을 약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군복무 경험이 재범 억제에 취업기간 다음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의 전문화에서는 군복무 -0.062, 교육기간 0.047, 취업기간 0.132로 나타나 군대가 범죄의 전문화를 떨어뜨리는 데 가장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군입대 경험은 -0.042로 긍정적인 영향이 강했다. 강 연구원은 “군 생활이 규율을 준수하고 사회질서를 지키는 태도를 갖게 해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갔다온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고 ‘이러면 안 되지.’하는 식의 자기통제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일부 범죄자에게 교도소 수용 대신 군복무와 똑같은 체험을 하게하는 부트캠프를 실시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범죄를 늦게 시작하고 비폭력적 범죄를 주로 저지르는 저위험군의 상습범을 대상으로 부트캠프와 같은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책꽂이]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브린 바너드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 사스 바이러스보다 수천배나 파괴력을 지닌 흑사병, 천연두, 콜레라, 황열병 등 전염병에 대한 입문서. 흑사병은 어떻게 봉건제도를 강타했을까.1331년 몽골 군대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4년도 채 안돼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세계사를 바꾼 보이지 않는 손, 전염병의 기원과 확산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1만 2000원.●우주는 안녕한가요?(셜리 앤 존스 엮음, 도솔 옮김, 황매 펴냄) “용기만 있다면, 쥐가 코끼리를 들어올릴 수도 있다.”(티베트 속담) “자기 자신, 지는 태양, 홍수에 쓰러진 나무를 존경하라.”(마오리족 속담) 이 책에는 지도 밖 소수민족들의 삶의 지혜가 가득 담겼다. 호피족, 마오리족, 가리후나족, 키카푸족, 히바로족, 위네바고족 등 200여 종족의 삶의 이야기를 자신들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제4세계 원주민들을 위한 단체인 ‘세계원주민연구소’와 ‘위기에 처한 원주민을 위한 프로젝트(EPP)’ 등에 관한 정보도 실렸다.9800원.●뭐라고,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고?(리사 시크라이스트 치우 지음, 김소정 옮김, 한얼미디어 펴냄) 희귀 질환을 유발하는 우리 몸속 유전자 이야기. 메노파나 아미시 교도들처럼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유전병에 단풍당뇨증이란 게 있다. 단내를 풍기는 유전자 때문에 소변과 땀과 눈물에서도 단풍당밀의 냄새가 난다. 시조들이 갖고 있던 유전자가 자손들에게 많이 발현된다는 점에서 ‘창시자 효과(founder effet)’란 말도 생겼다. 포르피린증을 앓은 조지 3세의 광기,‘켈트인의 저주’로 불리는 혈색소증, 키다리 유전자를 지닌 링컨·라흐마니노프·파가니니·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마르팡 증후군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1만 2000원.●로버트 카파-그는 너무 많은 걸 보았다(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 강 펴냄)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건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신화를 만들어낸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본명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만)는 한 시대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잡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오마하 해변에서 쏟아지는 총탄 사이로 들어올린 카메라.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41세에 베트남 전장에서 죽기까지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험가였다.1만 6000원.●21세기 한중일 삼국지(우수근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한·중·일 3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비교 고찰. 일본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가지지 못한 자도 무엇인가는 가졌고, 가진 자도 무엇인가를 가지지 못한 나라’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본은 엄격한 조세정책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사회적 부의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일본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하다. 중국의 빈부격차 또한 심각한 상태. 빈부차, 실업, 부패 문제 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제2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1만 5000원.
  • [토요영화]

    [토요영화]

    ●붉은 수수밭(시네마TV 밤1시) 베를린영화제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런저런 국제영화제에서 상받으면서 중국영화계 5세대의 등장을 국제적으로 알린 수작. 동양적인, 이국적 취향에 기댔다는 반론도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초기작으로 1920∼30년대 중국의 사회상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장이머우 감독만의 관능적인 색감도 넘친다. 가난이 죄라서 쉰살 먹은데다 문둥병까지 걸린 이웃 동네 영감에게 팔려가듯 시집가는 주얼. 웃통벗은 일꾼들이 멘 붉은 가마에 올라탄 주얼은, 그러나 일꾼들의 탱탱한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주얼은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되돌아가던 중에 서로를 눈여겨 봐왔던 일꾼과 정을 통한다. 정작 합방날 신랑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주얼은 자신을 범한 일꾼을 끌어들여 신랑이 운영하던 양조장에서 고량주를 만들어 판다. 그러나 곧 일본군이 쳐들어오고 그들은 군대 이동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량주의 원료가 되던 수수밭을 없애려 든다. 이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고 마침내 주얼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비장하게 죽고 만다. 어떻게 보면 항일민족주의 영화 같지만 그보다 더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사람의 욕망이다. 주얼이 웃통벗은 가마꾼에게 욕정을 느끼고 결국 그와 가정을 꾸리는 것이나 산간벽지에서 살다와 멋모를 것 같던 소녀가 어엿한 양조장 사장으로 변하는 것도 그렇다. 맥락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를 떠올릴 법한 캐릭터다. 술로 상징되는 질펀함도 영화 내내 여과없이 소개된다. 봉건폐습과 외세침략이라는 두겹의 문제가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세상에서 고량주는 일종의 해방구다. 이제는 세계적 스타가 된 궁리가 주얼역을 맡았다.1988년작,90분. ●스케어 크로우(MGM 오후11시20분) 연방정부의 돈을 훔쳐 달아난 다섯명의 탈영병. 화물비행기까지 빼앗아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그런데 원래 목적지와 달리 조금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 그다지 잘 가꾼 것 같지 않은 옥수수밭인데 발에 걸리는 건 모두 허수아비들. 알고보니 이 허수아비들은 좀비처럼 쫓아와 죽이려 든다. 희생자까지 허수아비로 다시 태어나 동료들을 죽이려 든다. 살해 묘사가, 공포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찬’이라 불릴 정도로 잔혹한 편이다. 그러나 진정한 압권은 이 흉칙한 장면들이 지루해질 무렵, 그 때 마지막 20여분이다.1988년작,88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남과여] 문득 옛애인이 그리워지면 …

    여름 늦더위를 식히는 비가 내리고 아침 저녁으로 조금씩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가을을 앞두고 청첩장이 날아오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한 틈으로 옛 애인 생각이 스멀스멀 치고 올라온다. 사랑하는 마음은 이미 바래졌지만 완전히 지울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 마냥 그 생각에 빠져 지내기엔 지금의 사랑에게 미안하다. 옛 사랑이 떠오를 때, 현명하게 마음을 비우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 “쿨하게 꿈 깨” “천하의 바람둥이 빼고는 잠시라도 만났던 남자들은 당연히 가끔씩 생각나죠.” 친구들 사이에서 연애 고수로 통하는 이소영(가명·26)씨. 중학교 때 테니스 레슨하는 강사와 연애를 했을 만큼 조숙했던 이씨는 그동안 사귄 남자들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은 같은 과 선배와 결혼해 잘 살고 있지만 가끔 옛 애인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나 선배와 수다떨기 “아직 결혼 안한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정신 차려라. 선배한테 잘해라.’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저 못지않게 화려한 연애 생활을 한 선배 언니한테 전화하면 이해를 해주더군요. 한시간쯤 수다 떨고 나면 ‘그래도 지금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옛 애인은 잊어버리죠.” 여대를 졸업한 강모(27·유학 중)씨는 대학 시절, 가만히 있다가는 남자친구를 하나도 못 만들겠다 싶어 소개팅에 목숨을 걸었다. 그 덕에 유학 가기 전까지 모두 6명의 남자를 사귀었다.2명은 군대를 보냈고 4명은 ‘우린 그냥 안 맞는 것 같다.’며 헤어진 터라 특별히 나쁜 감정은 없다. 혼자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외로울 때면 생각이 나기도 한다.2명은 최근 번호를 알고 있어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도 많이 한다.“이럴 때면 친구 중에 연애 경험은 없지만 이론은 완벽하게 꿰고 있는 애가 있는데 걔한테 전화를 걸어요. 그러면 그 친구가 ‘야, 쿨하게 살아라.’라고 한마디 해주면 마음이 좀 정리가 되더라고요.” ●“직접 만나는 것도 환상 깨는 데 좋아” 오모(27)씨는 지난 4월 결혼 날짜를 잡고 보니 대학 시절 2년간 사귀다 졸업 직후 헤어진 남자친구가 생각났다. 오씨는 취직을 했지만 남자친구는 도서관만 들락거렸고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서로 합의 하에 헤어졌다. 이제 와서 다른 마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결국 용기를 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만났다. 오씨는 “자그마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뚜껑 열리는 차(컨버터블카)를 타고 나타났다.”면서 “원래 저렇게 허영 많은 남자였나 싶은 게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손모(26)씨는 헤어질 당시를 떠올려 본다. 불현듯 보고 싶은 순간에는 좋은 기억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나쁜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다. ●미니홈피 몰래 들어가서 보기 직접 만나거나 혹은 다른 이에게 털어놓을 만큼 용기가 없는 이들은 미니홈피로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고 한다. 고등학교 동창과 사귀었던 이모(29)씨는 미니홈피를 통해 옛 애인의 소식을 접한다. 사진을 자주 올리거나 글을 쓰는 등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옛 남자친구가 아닌 주변 친구들 홈피에 들어가 근황을 본다.“이렇게 얘기하면 스토커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한데, 그냥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가끔 살펴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주부 박모(30)씨도 이씨와 비슷하다.“결혼하고 바로 애가 들어서서 요즘은 컴퓨터 자체를 안하지만 미혼일 때에는 생각날 때면 컴퓨터부터 켰죠. 다들 옛 애인 홈피 들어가서 가끔 보지 않나요?”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혹시 미련이…”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질 때면 남자들은 불현듯 헤어진 옛 여인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쓸쓸하게 보이는 남자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걸까. 본능처럼 옛 애인을 떠올린 남자들, 과연 어떻게 향수를 행동으로 녹여낼까. ●상자에 담아둔 편지 들춰보기 대학 때 3년간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뒤 지금까지 솔로로 지내고 있는 회사원 김모(29)씨. 해마다 이맘때면 상자에 꼭꼭 담아둔 편지와 사진들을 들춰본다.3년간 사귀던 여성과 주고 받은 편지 30여통과 사진 대여섯장.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는 침대 밑 구석에 넣어 두지만, 가을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번씩 꺼내게 된다.“이런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옛 여인들에게 미련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해가 갈수록 사진들을 몇장씩 버리게 되는 것만 봐도 그건 분명한 거죠.” ●옛 애인을 잘 아는 친구와 술먹기 예전에 사귀었던 여성과 다 함께 친했던 친구들을 불러내 추억을 곱씹는 사람들도 있다. 은행에 다니는 강모(32)씨는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사귄 여성과 2년 전쯤 헤어졌다. 비교적 오랜 시간을 만났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 친한 선·후배들은 강씨 커플에 대해 좋은 일, 궂은 일 포함해서 서로 잘 알고 있다. “우리 커플에 대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헤어질 때는 약간 부담이었지만, 함께 모여 추억을 곱씹기에는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옛 애인이 생각날 때 학교 선·후배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혼자서는 우울할 것 같은 이야기도 담담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 역시 ‘혹시 미련을….’이라는 말이 나오면 정색하며 손사레 치기 바쁘다.“평소에는 거의 생각나지 않다가 화창한 날씨에 어쩌다 생각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미련이 남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직접 전화하기 드물지만 옛 애인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지방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36)씨는 아직 미혼이다. 조씨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여성들을 만났고 자주 헤어지는 스타일이다.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달 사귄 여자들이 10명이 넘는다. 그는 “날씨가 선선해지면 또 새로운 여성을 소개받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그리운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그럴 때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직접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헤어질 때 서로 상처를 많이 입었다면 저처럼 다시 전화하는 것이 힘들겠죠. 하지만 대부분 ‘쿨’하게 헤어졌던 사람이어서 아직까지 편하게 연락할 수 있게 되더군요.” 이 외에 ‘옛 애인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그 때 내가 좀더 다르게 행동했더라면….”등 한참동안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이문종(31·회사원)씨는 “스스로 한심해지기도 하지만 옛 애인이 생각나면 그냥 그 기분에 푹 빠져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면서 “상상을 하다보면 기분이 어느새 전환된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처녀선생님의 이 젊음 다하도록

    처녀선생님의 이 젊음 다하도록

    경기(京畿)도 용인(龍仁)군 포곡면 전대리.「앞고지마을」로 불리는 이 마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중학교가 있다. 교사 1명에 학생 22명. 이 중학교엔 월사금도 잡부금도 없다. 추첨제입학도, 입학찬조금도 없다. 교복•교모는 물론 교과서와「노트」도 없어 헌 책방을 뒤져야 한다. 졸업식 조차 없다. 오직 있다면 46개의 초롱한 눈동자들 뿐. 학생수 22명의 한국 최소 용인두메의 꿈, 생활(生活)학교 1백30여가구가 모여 사는「앞고지마을」에「포곡중등학원」이 생긴 것은 69년8월초순의 일. 교주이자 교장, 교사이자 사환인 처녀선생님 이옥자(李玉子•24•서울서대문(西大門)구 불광(佛光)동)양이 이 마을에 온지 1주일뒤의 일이다. 용인은 바로 김대건(金大建)신부의 고향. 김신부는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신부가 된 사람이다. 독실한「가톨릭」신자인 이양은 몸이 쇠약해 요양을 위해 이곳「앞고지마을」을 찾아왔다. 신도가 없어 폐쇄되어 있던 20평 남짓한 천주교 강당이 이양의 거처가 되었다. 「슬랙스」차림의 낯선 이 아가씨에게 호기심 많은 동네 소년•소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양도 처음엔 벗삼아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1주일이 지나자 어느새 이양을 찾아오는 아이들은 80여명 가까이 되었다. 포곡면엔 중학교가 없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30리나 떨어져 있는 용인읍내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고작 20%가 될까말까한 실정. 한창 배워야 할 15~18세의 소년, 소녀들이 산으로 나무하러 올라가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무작정 상경(上京)의 꿈을 꾸기가 일쑤였다. 『걸핏하면「서울에 갈까 보다」였어요. 농촌아이들의 이런 도시병을 없애주는 것이 큰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래서 이양은 아이들과 의논, 버려져 있던 천주교 강당을 교실로 개조하는 작업에 나섰다. 요양하러「앞고지마을」왔던 이양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용인읍내로 책상을 만들 합판(合板)을 사러 나갔다. 「스파르타」식 개교 정신은 동심(童心)묶어 도시병(都市病) 몰아내 그동안 아이들은 집에 버려져 있던 토막나무들을 모아 자신들의 손으로 대패질을 하고 톱질을 했다. 제법 꼴을 갖춘 책상과 걸상이 마련되었다. 다음은 교과서 차례. 이양은 자신의 돈을 털어 내놓고 아이들에게도 각자 능력껏 교과서 구입비를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10원도 좋고 20원도 좋았어요. 어떤 사내아이는 산에서 검불을 한짐 긁어다 30리 떨어진 읍내에 나가 팔아 50원을 마련해 왔어요.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죠. 자신을 위한 일은 자신이 스스로 앞장서야 한다는 의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였죠. 도시병과 함께 의타심도 없애야죠』 이런 처녀선생님의「스파르타」식 개교정신으로 처음 80여명에 이르던 지원자수가 22명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양은 모은 돈을 들고 서울 동대문시장 헌 책방을 돌며 교과서를 사들였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양은 혼자서 하루 4과목씩 가르쳤다. 아이들이 가장 흥미있어 한 과목은 영어(英語). 국민학교때 배우지 않은 과목이었기 때문. 4시간 수업이 끝나면 교실청소차례. 처음엔 사내아이들이 전부 내뺐다. 말인즉 『집안소제는 여자가 하는건데』였다. 그러나 이젠 22명이 5명씩 돌아가며 청소당번을 정하고 있다. 11월말 처음으로 실력고사를 쳤다. 이양은 이 실력고사에서 1등한 학생에겐 삽과 쇠스랑을, 2등에겐 삽과 쾡이, 3등에겐 괭이를 부상으로 주었다. “시집•장가도 내힘으로” 자립교육 실천 『공부 잘하는 것도 좋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처녀 선생님은 훈시를 했다. 이 학교의 교훈은『유행가를 부르지 맙시다』-이미자(李美子)와 배호(裵湖)의 노래 대신 외국민요가「앞고지마을」의 유행가가 되어버렸다. 3개월여에 걸친 이양의 노력으로 마을주민들과 이웃마을의 뜻있는 이들이 이 학원을 돕기 시작했다. 서울서 농대(農大)를 나온 한 청년은 자진해 아이들에게 1주일에 두시간씩 농사법을 가르쳤다.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속성 재배법, 특약작물의 경제성등,「앞고지마을」서 몇대째 농사 지어 온 사람들도 모르는 새 지식을 가르쳤다. 그러자 주민들은 그간 부락민이 공동 경작해 오던 국유지중 2천평을 이 학원의 실습장으로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이양은 이 곳에 실습장을 세우기 위해 한창 동분서주. 『작은 땅이지만 축산, 임산등 모든 농사법을 가르칠 생각이에요.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가꾼 이 곳의 수확은 50%는 그 학생 몫으로 저축해 두었다가 자립의 터전이 되게 하겠어요. 가령 돼지 한마리 키워 새끼 8마리를 낳으면 4마리는 키운 아이의 몫으로 하겠어요. 4~5년 지나 군대에 갔다 돌아오면 부모가 물려 준 땅이 없어도 장가 들고 자립할 수 있잖아요?』 졸업장 대신 이농을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밑천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 서독(西獨)유학도 다녀 왔는데 삶의 보람을 이곳서 느껴 69년 12월24일 저녁을 위해서 학생들은 학원개교이래 처음인 잔치를 준비. 떡국과 시루떡을 마련하여 영문을 모르고 있는 처녀선생님을 어리둥절하게 해줄 계획이었다. 「크리스마스•파티」를 위해 학생들은 한달전부터 등교때 매일 한 줌의 쌀을 모아 왔던 것. 시간이 나면 남학생들은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 팔기도 했단다. 선생님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 모으는 것은 반장네집에서 모았다고. 『24년동안에 요즈음 4개월이야 말로 사는 보람을 느낀다』는 이 24세의 갸륵한 처녀 선생님은 강원도 홍천(洪川)태생. 홍천서 여고를 졸업, 가족을 따라 서울로 올라 온 이양은 9남매의 여섯째로 64년 서독에 유학, 3년동안 사회사업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가씨다.「앞고지마을」에 오기 전 약 6개월간 수원(水原) 성(聖)「빈센트」병원서「소시얼•워커」로 근무하기도. 『우선 가장 시급한게 문고의설치예요. 책을 읽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읽힐 책이 있어야죠?』 하면서 이양은 또 한번 서울 동대문시장을 다녀와야겠단다. [선데이서울 70년 신년특대호 제3권 1호 통권 제 66호]
  • “용산 국가공원 2045년 완공”

    “용산 국가공원 2045년 완공”

    정부는 24일 오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앞 광장에서 오는 2008년 반환될 용산 미군기지를 국가가 주도해 세계적인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선포식을 가졌다.<서울신문 8월18일자 1면 보도> 총리 산하 ‘용산 민족공원 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한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3부 요인 및 각계 대표, 외교 사절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예고대로 불참했다. 서울시는 이날 성명을 내고 ‘완전 공원화’를 관철하기 위해 대체입법과 헌법소원,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 모든 대응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혀 공원화 범위를 둘러싼 서울시와 정부간의 갈등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선포식은 124년전 임오군란을 빌미로 청나라 군대가 용산 미군기지 터에 주둔했던 날인 8월24일에 맞춰 열렸다. 용산기지 공원화는 역사성과 대규모 녹지공간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국가가 건설·관리하는 ‘국가공원화’ 사업으로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공원화 사업과 관련,“서둘러 완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면서 “용산공원은 지금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들에게도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서울시와의 이견에 대해 “서울 시민 중에는 이 사업을 서울시가 시민의 뜻에 맞게 추진하기를 원하는 분도 많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 사업은 국가적 의미가 매우 크고, 그 결과도 국가적인 것”이라며 서울시의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건립 추진위는 다음달 30일까지 ‘공원 명칭 및 아이디어 국민 공모전’을 실시한다. 한편 서울시는 성명에서 “용산기지터 전체를 온전한 공원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뜻을 무시한 행사”라면서 “정부는 공원화 대상부지 전체 면적과 경계를 명문화하자는 시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홍기 조현석기자 hkpark@seoul.co.kr
  •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이사람] 제주 ‘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현직 중국 국가주석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제주도 북제주군 현경면 저지리에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예술원을 운영하는 성범영(67) 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행복한 농부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농부 외교관´ 정원을 다녀간 세계 지도자들은 수없이 많다. 최근 10년 동안 각국의 정상, 공무원, 군인, 언론인 등이 다녀갔다. 이들이 남긴 감탄의 글과 그림만도 300여점에 이른다. 성 원장은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한국적인 정원을 소개하면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가 민간 외교관 역할을 맡게 된 계기는 1995년 11월 장쩌민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방문이다. 예정 관람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정원을 샅샅이 돌아본 장 주석은 귀국한 뒤 “한국 제주도에 있는 분재예술원은 일개 농민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서 보고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간부들에게 지시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생각하는 정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국가 부주석이 찾았다. 이후 중국 당과 정부, 지방 정부, 군인 등 엘리트 공무원들이 성 원장의 정원 조성·운영 노하우와 철학을 배우기 위해 찾는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제임스 레이니·버시바우 전현직 주한 미국대사, 장 폴레오 전 주한 프랑스 대사도 다녀갔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장, 중국 인민일보 총편집인 등도 찾았다.CNN에 정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나간 뒤 미국·캐나다 등에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성 원장은 “오직 분재원을 보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 20시간을 걸려 찾아온 관광객도 있으며, 독일의 한 관광객은 무려 열 번이나 찾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관광 전문기자 15명이 3시간 동안 분재원을 취재하고 돌아갔다.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 성 원장의 거친 손에는 늘 전지 가위가 들려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에 물을 주고 돌을 쌓는 억척스러운 농민이다. 세계적인 관광농원을 조성한 성 원장은 그러나 관광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제주 토박이도 아니다. 그저 나무가 좋아서, 제주도 돌이 소중해서 분재원을 가꾼 농민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중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 때 군에 입대했다. 그가 척박하기로 소문난 제주도에 발길을 내디딘 것은 1963년 말. 군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포에서 연락선을 탔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타고 겨우 찾아온 곳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나지막한 가시덤불 언덕이었다. 초겨울인 데도 파릇파릇 자라는 채소와 열대 과일, 구멍이 숭숭 뚫린 제주돌이 신기해 막연하게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돌아갔다. 성 원장은 서울에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모두 제주 돌밭을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전국을 돌면서 나무를 사들였다. 분재 정원에 관한 전문지식을 별도로 배운 적도 없고 정원 조성 설계도도 그리지 않았다. 다만 가장 한국적이고 제주도의 자연에 맞추겠다는 생각으로 농장을 가꾸고 돌담을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두루외! 낭이 밥멕여주나(미친 놈, 나무가 밥먹여주나).”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는 제주 돌을 아낄 줄 안다. 돌에 미친 ‘돌챙이’(돌담 쌓는 사람) 소리를 들을 정도다. 정원은 나무와 돌담으로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다. ●분재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 성 원장의 분재관은 남다르다. 분재야말로 살아 있는 나무를 소재로 삼아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랑으로 완성하는 ‘생명예술’로 본다. 오랜 세월을 바쳐 완성하고,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시간예술’이기도 하다. 기르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름답게 완성하는 ‘인격예술’로 정의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의 기술과 정성을 더하여 자연보다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땔감에 불과한 나무(우리만 갖고 있는 자연이란다)도 그의 손을 거치면 아름다운 분재가 된다. 성 원장은 “분재는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무를 사랑하다보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를 깨닫는다.”며 정원 조성과 그의 철학이 담긴 책 ‘생각하는 정원’을 내놓았다. 이 책은 중국어·영어로 번역됐고, 일본어·독일어판도 나올 계획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학생체벌 금지’ 법제화 논란

    ‘학생체벌 금지’ 법제화 논란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체벌 금지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인권 차원에서 체벌을 원천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런 문제까지 법으로 해결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학생체벌을 둘러싼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런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울 강남의 A중학교는 2003년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한 여교사가 말을 듣지 않은 학생들에게 엎드려 뻗치기를 시킨 뒤 신고 있던 뾰족 구두로 학생들의 머리를 때린 사건 때문이었다. 학부모들이 흥분했지만 정작 학교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학부모였던 박모씨는 “선생님을 대상으로 들고일어나 큰 문제를 삼는 것은 학부모가 약자인 현실에서 엄청난 ‘명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경기도의 B초등학교에도 이런 여교사가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저학년들에게 심한 체벌을 주기 때문이다.2학년생에게 주먹 쥐고 엎드려 뻗치기를 시키고 발로 차거나, 수업에 방해된다며 교실 밖으로 끌어내 쫓아내기도 했다. 학부모들이 항의했지만 교장은 이듬해 해당 교사에게 1학년 담임을 맡겨 학부모들을 경악시켰다. 학부모들은 한목소리로 “언론에 보도된 것과는 별도로 폭력에 가까운 체벌이 일상화돼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학교에 체벌과 관련해 문제 있는 교사 몇몇은 꼭 있는데, 이 교사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언어폭력도 위험수위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정한 체벌 규정이 사실상 학교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때문에 “법으로 금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폭력은 막아달라.”고 강조한다. 체벌이 교육적 차원을 넘어 폭력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학부모 이모씨는 “교육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지만 체벌을 풀어놓다 보니 일반화되는 것이 문제”라면서 “부작용도 있겠지만 법제화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문제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언어 폭력도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서울 강북의 C중학교에 자녀가 재학 중인 이모씨는 “일반적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신체적·언어적 체벌에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가도 빌어먹을 놈’이라든지, ‘네 아버지 직업이 뭔데 이 모양이냐.’,‘거지 팔자 못 면한다.’는 등 가족사나 아이의 미래를 언급하며 꾸짖는 경우 아이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된다.”면서 “‘강남 아이들은 안 그런데 너희는 왜 이 모양이냐.’는 등 지역차별적인 발언도 무의식 중에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들 지도할 방법 없다” 하소연 서울의 D초등학교 김모 교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한 학생에게 “선생님,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그 아이가 평소 내게 불만이 많이 쌓여서 나온 행동이었겠지만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참 답답했다.”면서 “교육적 차원의 체벌로 고쳐질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체벌금지 법제화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사들 사이에 ‘내 자식도 아닌데 왜 욕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확산될 수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교사들은 과도한 체벌에는 명백히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 차원의 체벌에는 찬반이 엇갈린다. 체벌금지를 법제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서울 E중 송모 교사는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서 마땅한 대안도 없이 체벌을 금지한다면 아이들을 지도할 방법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서울 F여고 박모 교사는 “체벌은 사라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면서 “무조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 ●“능력 없는 교사일수록 체벌 의존” 법제화를 둘러싼 의견이 학부모와 교사를 중심으로 나뉘지만 한 가지에서만큼은 의견일치를 보고 있다. 교육부가 법제화만 서두르지 말고, 학교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G고 3학년 박모군은 “체벌 자체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선생님을 보고 배워 후배들을 똑같이 때리는 등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면서 “법제화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원모씨는 “가르치는 능력이 떨어지는 교사일수록 체벌에 의존하는 반면, 체벌 없이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적으로 운영하는 반이 있다.”며 대안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체벌을 포기한 지 7년 됐다는 서울 H중 함모 교사는 “경험상 체벌은 효과가 없다.”고 전제한 뒤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이해하고 설득하다 보니 훨씬 효과가 있더라.”면서 “결국 교사가 운영의 묘를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폭력은 또다른 폭력 낳아” vs “교단 자율성 침해우려 커” ‘사랑의 매인가, 또 하나의 폭력인가.´ 학생체벌 법제화 방안을 둘러싸고 찬반이 팽팽하다. 올해에는 교육부가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찬반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법제화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무엇보다 학생 인권 보호를 강조한다. 교도소와 군대에서조차 금지하고 있는 체벌을 교육적이라는 이유로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 교육과 시민사회, 바른교육권 실천운동,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등 학부모·교육단체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등이 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은 “공개되지 않은 채 묻혀가는 일상적인 폭력 사례들이 부지기수로, 그 결과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교육 불신은 높아지고, 교사 집단을 혐오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도 “학생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올 하반기 중에 체벌금지 규정을 반드시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학생들이 과도한 체벌을 그대로 보고 배워 또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법으로 체벌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공통적인 주장이다. ●사제 신뢰회복에 걸림돌 반면 법제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체벌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법으로 강제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학교별 학교생활 규정에 따라 체벌을 금지하거나 합리적인 사랑의 매만 허용할 수 있는데, 굳이 법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체벌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대안을 활용하도록 돕는 것이 훨씬 교육적인 대책이라는 것이다. 서울 S초등학교 김모 교사는 “교육적인 작은 체벌에도 교사를 신고하는 마당에 법으로 체벌을 금지한다면 생활지도를 아예 포기하는 교사들이 속출할 것”이라면서, 교사와 학생간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것을 걱정했다. 한국교총 한재갑 대변인도 “교사와 학생간 신뢰관계가 크게 훼손될 수 있고 교단의 자율성도 침범할 우려가 크다.”면서 “현행 학교생활규정으로도 학생에 대한 과도한 체벌을 막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체벌 정의와 법적 규정 현행 초중등교육법 18조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 법령 및 학칙에 정하는 바에 의해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 체벌을 간접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교육부는 원칙적으로 체벌을 금지하면서도 교육상 불가피한 체벌의 경우 학교 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합의절차를 거쳐 사회통념상 합당한 범위 안에서 학교 규정에 명시해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지키는 학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대법원의 2004년 판례에 따라 ‘용인되지 않은 체벌’을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은 채 교사의 성격·감정에서 비롯되거나 ▲공개적으로 체벌이나 모욕을 가하는 지도행위 ▲학생의 신체나 정신건강에 위험한 물건이나 교사의 신체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성이 있는 부위를 때리거나 ▲학생의 성별, 연령, 개인적 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외국에선 어떻게 하나 우리나라처럼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질’을 하는 것이 외국에서는 가능할까? 나라마다 전통과 관습, 사제간에 대한 인식차가 있어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현재 체벌금지에 대한 법제화 기류가 적지 않게 형성된 시점이어서 외국 사례는 주목된다. 교육인적자원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체벌을 금지한 나라는 이슬람권 국가와 독일, 룩셈부르크, 스웨덴, 스페인, 영국, 오스트리아, 우루과이, 일본, 중국, 프랑스, 호주 등이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교원이 학생을 ‘너’라고 부르는 것도 금지할 정도로 체벌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독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집단 벌과 모든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체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27개 주에서는 법으로 체벌을 금지한다. 하지만 텍사스, 뉴햄프셔 등 13개 주에서는 잔인한 체벌을 금지하지만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김창환 연구위원은 “미시간주의 경우, 학기초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훈육관련 지침을 통보하는데 학생이 학교에서 비행을 저지르면 저녁에 남아서 별도 공부를 시키는 것은 가벼운 벌이고 며칠간의 정학도 있다.”고 소개했다. 교육부 서유미 국제교육협력과장도 “아이오와주의 경우, 장난을 심하게 치는 아이에게 서있게 한다든지, 평소 사용하던 화장실이 아닌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이용하게 한다든 지 심리적 압박은 주더라.”라고 소개했다. 이밖에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싱가포르 등도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한다. 반면 캐나다와 태국은 체벌을 전면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체벌을 교육의 최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체벌했을 때에는 학생의 위반 행동과 체벌경위를 기록으로 보관하고 장학사 요구가 있으면 이를 언제든지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학생지도에 개인적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태국은 학교 규율을 위반하거나 학생 본분을 이탈한 행위에 한해 제3자가 없는 닫힌 방에서 교사가 체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학생의 허벅지 뒤쪽 부위를 때리돼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며 직경 0.7㎝를 넘지 않는 회초리로 6대 이내를 때릴 수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오늘의 눈] 따로노는 용산공원 갈등 유감/조현석 지방자치부 기자

    ‘외국군 주둔지’라는 멍에를 쓰고 있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터가 700여년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로,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대 주둔지로, 광복 이후에는 미군 주둔지로 상처를 입은 땅이 비로소 민족의 상징인 국가공원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공원화를 둘러싼 서울시와 건설교통부간의 갈등은 국민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자치단체의 의견에 귀를 막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불신하는 모습이 혹여 공원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들은 “후대에 물려줄 멋진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건들며 대립각을 유지,‘기관 이기주의’ ‘힘겨루기’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서로에 대한 ‘불신’에 연유한다. 서울시는 건교부가 입법예고한 ‘용산민족·역사공원 조성 및 주변지역 정비에 관한 특별법 입법예고안’의 제14조와 제28조가 “민족공원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정부가 기지이전 비용 마련을 빌미로 공원내에 상업시설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반면 건교부는 ‘서울시의 오해’라고 일축하면서 문제조항을 삭제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용산공원을 효율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는 용산공원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짠 뒤 특별법을 공포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건교부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마스터플랜을 짤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강변한다. 건교부는 ‘오해’라는 공허한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특별법에 ‘공원의 경계선’을 명시하고, 공원 본체인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81만평에 대해 상업화 개발을 하지 않을 것임을 법안에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서울시도 소모적인 힘겨루기는 자제해야 한다. 특히 오세훈 시장은 대의적인 차원에서 용산 민족공원 선포식에 참석하는 게 옳은 처사다. 화합과 상생이라는 용산공원 조성 취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조현석 지방자치부 기자 hyun68@seoul.co.kr
  • “대화는 계속” 우라늄 농축 중단 거절

    “대화는 계속” 우라늄 농축 중단 거절

    ‘당근을 건넬 것이냐, 채찍을 휘두를 것이냐.’ 이란에 최후통첩을 했던 서방 국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월 ‘포괄적 인센티브안’을 제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P+1)이 학수고대하던 이란의 답변이 모호한 탓이다. 1차 시한에 이어 유엔 안보리가 정한 2차 시한은 오는 31일이다. 서방 국가들의 적전분열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AP통신은 22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가 ‘포괄적 인센티브안’에 대해 공식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답변서 분량은 20쪽이지만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대화를 하자고 해놓고 정작 양보한 것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이란 ‘모호한 답변’은 서방 분열 의도 알리 라리자니 이란 핵협상 대표는 이날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청사로 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독일·스위스 대사를 불러 “23일부터 진지한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란 파스통신은 서방이 요구하는 우라늄 농축 중단은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필립 두스트-블라지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란이 협상장으로 복귀하고 싶다면 우라늄 농축을 중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서방의 요구에 감정적 맞대응을 피하면서 완곡하게 대화 의지를 내비친 이란의 전술은 결국 서방 국가의 전열을 흩트릴 것이란 분석이다. 미 매사추세츠 공대(MIT) 안보학 프로그램 운영자 제임스 마시는 미국이 서둘러 경제 제재를 가한다면 이란핵 문제에 취약한 5개 상임이사국의 연대도 사분오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협상 의지를 밝힌 이란은 중국, 러시아 및 일부 유럽국가에 정치적 위기 고조를 피해야 한다는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NYT “레바논 사태로 이란 문제 더 꼬여”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으로 안보리에서 이란 제재 결의를 도출하려던 미국의 입장이 더욱 곤혹스러워졌다고 전했다. 헤즈볼라의 ‘승리’에 의기양양해진 이란은 국제사회에 충분히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EIP)의 비확산 담당 책임자인 조지 페르코비치는 “레바논 사태로 이란은 ‘당신들이 우리를 압박하면 우리는 진짜 문제를 야기해 골칫거리를 안겨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란 핵에 강경했던 프랑스가 최근 레바논에 고작 200명의 군대를 평화유지군으로 파견하겠다고 제안함으로써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과 소원해진 점도 제재 결의 도출에 걸림돌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법조문보다 면적 대타협 급선무

    용산미군기지 이전부지 공원화를 놓고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서울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번주 중 용산기지를 국가공원(민족·역사공원)으로 선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선포식 불참은 물론 대체입법의 추진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울시와 합의 없는 용산공원 추진을 막겠다는 태세다. 양측의 갈등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으면서 이제는 타협점을 찾으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머리를 맞대라 국민들은 국가적·민족적 의미뿐 아니라 수도 서울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를 놓고 두 기관의 양보 없는 대립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용산은 지난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후 112년여 만에 우리에게 반환된다. 그만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의미가 깊다. 그 의미는 서울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용산을 어떤 형태의 공원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는 수도 서울의 미래 청사진과 결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도 정부와 서울시가 대타협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용산 미군기지는 오는 2009년 평택으로 이전하게 된다. 이 일정을 기준으로 입지 선정에서부터 이주 등의 일정이 짜여져 있다. 양측이 다투면 법 통과도 쉽지 않을뿐더러 통과 이후에도 갈등이 지속돼 추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상철 명예교수는 “정부가 민족의 애환과 역사가 담긴 용산공원 일대를 이전비용 조달을 이유로 누더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서울시도 공원화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이전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등의 가시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법은 다음, 원칙부터 합의하라 현재 정부와 서울시의 공방은 용산민족역사공원 조성에 관한 특별법(용산특별법) 조문 때문인 것처럼 비쳐지고 있지만 핵심은 공원면적을 얼마로 하느냐다. 미군이 머물던 주요구역 전부를 공원으로 하느냐 아니면 일부를 개발하느냐는 것이다. 서울시는 메인포스트(2만 4000평)와 사우스포스트(5만 7000평) 등 81만평 전부를 공원화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81만평을 공원 부지로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불가’ 입장은 아니다.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용산특별법 14조에 있는 공원구역을 용도변경할 수 있는 조항이다. 서울시는 이전경비가 부족하면 이 땅마저 개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조항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법조문 공방이다. 만약 지난달 하순 용산특별법 입법예고에 앞서 서울시와 논의를 통해 공원구역 등의 면적을 확정했더라면 이런 갈등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은 용산미군기지 일대를 공원구역·복합개발구역·주변구역으로 나누면서도 면적 등은 확정하지 않았다. 내부 용역결과는 있지만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은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특별법 제정에 앞서 서울시와의 원만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정부가 법을 먼저 추진한 면도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면적 등에 대한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사설] ‘용산 국가공원’ 조성 환영하지만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를 국가 차원의 공원으로 개발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오는 24일 ‘국가공원 비전 선포식’을 갖기로 했다. 반환기지 80여만평을 모두 공원화한다는 기본 방침도 제시됐다. 국가공원화 방침은 과거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주둔했던 이곳을 온전히 돌려받는다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정부의 방침을 환영한다. 하지만 공원 및 주변지역이 난개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용산공원 특별법안 때문이다. 건교부장관에게 용도지역·지구 변경권을 부여한 입법예고안 규정이 공원 안에 난개발을 끌어들일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서울시와 논란을 빚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정부는 “서울시의 기우”라고 말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입법예고안을 바꾸면 될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양측이 구체적인 개발계획의 상호 제시 없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의구심만 키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번째로 공원 주변 지역의 난개발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나 서울시가 미군기지 이전 비용 마련을 이유로 주변 지역을 고층으로 조밀하게 개발한다면 용산공원은 아파트 벽으로 가려진 한강처럼 시민의 접근과 이용이 어렵게 될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주변 지역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도 머리를 맞대고 긴밀한 협의를 해 나가야 한다. 선포식에 앞서 22일에는 건교부장관과 서울시장이 만나 입장차를 조율한다. 미군기지 이전비용 마련에 얽매이지 말고 국가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자세로, 구체적인 계획을 상호 제시하고 조율함으로써 역사성을 살린 공원 조성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주기 바란다.
  • 임요환 “전산특기병으로 군대 가요”

    임요환 “전산특기병으로 군대 가요”

    ‘스타크래프트의 황제’ 프로게이머 임요환(26) 선수가 올 안에 공군 전산특기병으로 입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산특기병은 올해 프로게이머를 위해 신설됐다. 18일 MBC게임 등에 따르면 임요환은 전날 열린 MBC게임 스타리그 ‘프링글스 MSL 시즌2’ 조 구성 행사에서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군에 입대할 계획임을 밝혔다. 임씨의 소속사인 프로게임단 SK텔레콤 T1측은 “정확한 입대 시기는 아직 결정된 게 없으며, 다음달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 임요환은 ‘이제 군입대로 마지막 시즌’이라는 사회자의 말에 대해 “군대에서도 새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시즌에 임하는 사회에서의 마지막 각오는 ‘MSL에서 나를 만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밝혀 우승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다. 프로게이머 공군 전산특기병들은 앞으로 공군 대표 자격으로 게임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임요환 선수는 입대 후에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월드 사이버 게임스 개인전 우승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공원화 ‘한목소리’ 규모 ‘딴목소리’

    ‘서로 공원으로 하자면서 왜 싸울까.’ 시민들은 서울 용산 미군기지를 둘러싼 정부와 서울시의 갈등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정부와 서울시가 이 땅을 공원화하자면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공원화라는 대원칙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 비율이 문제다. 따라서 시민들은 쉽게 타결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복잡하기 그지없다. 양측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100년 넘게 외국군대가 주둔해온 지역인 만큼 온전히 민족공원으로 조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공원화의 대원칙에는 찬성하지만 미군기지 이전비용을 이 부지 개발에서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별법을 만들 때부터 재원 조달을 염두에 두고 입안한 것이다.●공원화 쟁점은 정부는 용산민족·역사공원특별법 입법예고가 17일로 끝남에 따라 다음주 중 민족공원 선포식을 갖는다. 서울시가 특별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몇몇 조항의 삭제나 수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일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특별법의 골자는 미군기지와 그 일대를 공원구역과 복합개발구역, 주변지역으로 3분하고 있다. 또 14조에서는 공원구역을 용도변경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시는 이 조항의 악용을 경계하고 있다. 이전비용이 많이 들어갈 경우 정부가 공원구역마저도 개발해 비용조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복합개발구역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도 서울시는 불만이다. 정부는 일단 법을 만든 후 총리실에 설치된 용산민족역사공원추진위원회에서 서울시장이 위원으로 참석해 구획을 정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시장 1명이 어떻게 시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느냐며 구색 맞추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시는 지금 공원구역과 복합개발구역, 주변구역 면적을 확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이에 서울시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입장이다. 특별법 제정 이후 추진위원회에서 협의를 통해 공원조성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추병직 건교부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22일 회동, 이견을 조율할 예정이지만 타결여부는 불투명하다. 시는 건교부가 입법주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나 총리실의 의지가 있어야만 타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대안은 없나 서울시는 용산미군기지 대신 용산역 인근 철도공작창 등 국·공유지를 개발해 여기서 나오는 비용으로 미군부대 이전비용을 충당하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른 도시계획절차 등은 시가 밟아주고 그래도 모자라는 비용은 일정부분 시가 보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신 메인포스트(24만평)와 사우스포스트(57만평) 등 81만여평을 모두 공원화하고, 캠프킴(1만 6000평) 등 3개 부지 5만 8000평의 개발도 최소화하자고 주장한다. 정부는 이에 묵묵부답이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만큼 절차에 따라 수용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 서울시는 대체입법 추진도 불사한다는 입장으로, 이 경우 정부안의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환경단체의 가세도 부담이다. 추 장관과 오 시장의 회동에서 대타협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용산기지 ‘국가공원’ 선포

    용산기지 ‘국가공원’ 선포

    노무현 대통령은 미군이 떠나는 용산기지를 ‘민족공원’, 이른바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비전을 다음주 중 공식 선포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용산기지의 국가공원화에 따른 역사적 의미와 함께 민족주체성 회복 의지를 천명할 방침인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비전 선포는 ‘용산 민족·역사공원 특별법안’에 대한 입법예고까지 끝낸 상황에서 이뤄지는 만큼 국가공원을 건립하기 위한 상징적인 시발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용산 민족·역사공원의 국가공원화는 현행 자연환경의 보존에 역점을 둔 환경부 산하의 국립공원과는 달리 국가 주도로 건설교통부가 개발, 국민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쉼터로 되돌려주는 첫 사례이자 새로운 모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용산 미군기지의 이전과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 등과 맞물려 국가공원화 선포는 뜻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용산기지의 활용은 민족사적 의미가 있다.(지난 8일 시·도지사 토론회)”,“용산의 미군반환부지를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국가주도의 민족역사공원으로 조성하겠다.(지난해 10월 국회 시정연설)”고 밝혀왔다. 노 대통령은 또 “지난 한 세기 동안 청나라와 일본, 미군의 군대가 번갈아 주둔해 왔던 곳(지난해 10월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식)”이라며 역사성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선언을 앞두고 추병직 건교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22일 회동을 갖고 ‘용산 민족·역사공원 특별법안’과 관련, 개발 범위 등을 둘러싼 이견에 대해 최종 조율할 방침이다.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계획은 지난 1988년 8월 한·미 양국이 군사시설 이전 원칙에 따라 92년 용산가족공원을 조성키로 한 데 이어 93년 이전 비용 문제 등으로 협상이 중단됐다가 2004년 7월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에 합의함에 따라 실질적인 추진에 들어갔다. 용산 민족·역사공원 건립추진위는 군 시설을 공원화한 캐나다의 다운스 뷰 파크, 미국의 크리스 필드와 센트럴 파크, 프랑스의 라빌레트 공원 등 세계 유명공원을 비교, 검토하고 있다. 박홍기 최광숙기자 hkpark@seoul.co.kr ●국가공원이란 국가가 조성·관리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 본 명칭은 용산민족·역사공원이다.1894년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미군부대에 이르기까지 112년간 외국군대가 주둔하던 땅이 우리 민족의 품에 돌아온다는 의미를 반영한 것이다. 관리는 ‘용산민족·역사공원 특별법’의 입법주체인 건설교통부가 맡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가가 관리한다는 점에서는 국립공원과 같다. 다만, 공원조성 취지를 살려 입장료를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 [100년만의 귀향 항일 허위가문 후손들] 일부 후손들 “고국에 영구 귀국 않겠다”

    광복절을 맞아 왕산 허위의 손자인 허프로코피씨 등 17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꿈에도 그리던 고국이 이제서야 이들을 반겼지만, 이들은 고국에 영구귀국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세기 가까이 일가가 이국생활을 하며 그 곳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70이 넘은 고령에 말과 사람이 낯선 조국에서 새로 시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입국했을 때 받는 지원금도 턱없이 부족하다. 형제가 한명도 없을 때 후손이 최대한 받을 수 있는 정착지원금이 7000만원이다. 형제가 많으면 가구별로 받는 지원금이 줄어든다. 해외에 살고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림 통계치도 없다. 지난해까지 국가보훈처는 해외에 있는 유공자 후손 381명을 찾아 고국에 초청했다. 올해는 17명의 후손들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찾아왔다. 후손 가운데 에피모바 류드밀라(70)씨는 고종의 밀령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갔던 이위종의 손녀다. 일제의 방해공작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위종은 만국기자협회 회견을 통해 일본의 야만적 침략행위를 알렸다. 황빅토르(58)씨는 1920년 하바로프스크에서 한인 500여명의 시위를 주도했던 황경섭의 손자다. 황경섭은 같은 해 일본군이 한국인을 학살했던 4월참변 때 최재형·김이직·엄주필 등과 함께 사살됐다. 황경섭과 함께 사살됐던 최재형은 9살이던 1867년에 부모를 따라 러시아에 귀화해 관리로 성공했다. 그는 연봉을 은행에 예치해 교포 장학금을 만들었고,1919년에는 상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근거지로 무장투쟁 준비를 했다. 이번 고국 방문단에는 최재형의 손자인 최 세르게이(29)씨도 포함됐다. 1919년 간도 무관학교에서 신식군대를 양성하고 1922년 고려혁명군 사령관을 지낸 김경천의 손녀 필란스카야 갈리나(43)씨도 이번에 고국에 왔다.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던 독립운동가 김화영의 자녀 신순향(70)씨 부부도 고국을 방문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클릭이슈] 軍 총기사고 급증…실탄지급 계속 해야하나

    “순간적인 충동으로 총을 쏠 수 있다면, 군에 아들을 보낸 가족들이 어찌 맘 편히 지낼 수 있나요?” “군인은 군인다워야 합니다. 군인이 보이스카우트입니까?” 최근 총기사고로 병사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방부 홈페이지 등 국민들 사이에서 실탄 휴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초점은 합동참모본부가 올해 4월 중순쯤부터 전방뿐 아니라 후방부대 경계병에게도 실탄 휴대를 의무화하는 ‘경계작전 지침’을 하달한 이후 총기사고가 급증했다는 데 맞춰져 있다. 실제 4월 중순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17건의 총기사고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 반면 올 1월부터 4월 중순까지의 총기사고는 모두 2건에 2명 사망으로 나타나 실탄 휴대 의무화를 전후로 사고 빈도가 확연히 대비됐다. 건수로는 8.5배, 사망자는 6배나 늘어난 셈이다. 실탄 휴대 의무화 조치는, 지난해 몇몇 부대에 민간인이 난입해 경계병들의 총을 탈취해간 사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막상 지침을 시행해 보니 실탄휴대가 자살이나 탈영의 도구로 악용되는 부작용이 돌출한 것이다. ●“언제 사고날까 살얼음판” 자살하려고 작심한 사람은 실탄이 없더라도 막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지만, 총기는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피해를 입힐 위험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더욱이 사병들은 ‘자원’이 아니라 ‘징집’의 형식으로 입대하기 때문에, 군대에 끌려왔다고 느끼는 사병일수록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큰 형편이다. “현실적으로 민간인에게 발포하기도 힘들고, 공비가 출몰하는 시대도 아닌데 굳이 실탄을 나눠줘 위험을 초래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는 시민들뿐 아니라 일부 장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한 영관급 장교는 “실탄 휴대 이후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라며 지침 철회를 희망했다. ●“긴장도 높아져 안정적 병영 생활” 그러나 합참은 지침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괴한들이 부대에 난입해 총기를 탈취하면 더 큰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군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위 수단”이라고 말했다. 군 소식통은 “실탄 휴대는 ‘군인정신’을 남달리 강조하는 이상희 합참의장의 소신”이라고 전했다. 장기적으로 실탄 휴대가 병영문화 개선에 촉진제가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군 관계자는 “실탄을 휴대하면 긴장도가 높아져 선임병이 후임병을 괴롭히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 “정신교육 강화 부작용 최소화” 합참은 장병들에 대한 정신교육 강화 등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의지가 무색하게도 일선 부대에서는 지휘관들이 사고를 우려해 지침을 편법 운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경계병의 탄입대(탄창 지갑)를 테이프로 봉인하거나 자물쇠로 잠가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네티즌들은 “위기상황에는 쓸 수 없고 자살할 때나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나아가 어떤 부대에서는 지휘관이 아예 탄창을 모조리 수거해갔다는 제보도 들어오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지침 위반 사항이 있다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총기사고가 이등병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을 들어 2명의 경계조 가운데 ‘고참병’에게만 실탄을 지급하는 방안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역 군인이나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씨줄날줄] 빈대의 역습/황진선 논설위원

    자연의 역습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구온난화일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지구의 기온은 지난 100년간 평균 0.6도나 올라갔다. 온난화와 함께 역습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메뚜기 떼 공습이다. 2004년 11월, 리비아·이집트·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일대는 서아프리카에서 이동해온 메뚜기 수십억마리의 습격으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보았다.1998년 3월 마다가스카르에도 수십억마리가 훑고 지나갔다. 마다가스카르와 유엔은 메뚜기 떼를 퇴치하기 위해 군대와 농약과 항공기를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국과 페루도 종종 메뚜기 떼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충북 영동에서 갈색 여치가 수만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30여 농가의 과일을 닥치는 대로 갉아 먹었다. 요즘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창궐했다가 1950년대에 사라진 빈대가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미 해충관리협회는 지난 4년간 4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6.5∼9㎜인 야행성 해충인 빈대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는 귀찮은 존재다.‘빈대 붙는다.’거나 ‘빈대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나.´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빈대를 얕봐서는 안될 것 같다.2년 전 한 TV 드라마가 그 이유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되자 밥상 위로 올라가 잠을 잤는데, 빈대들은 밥상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래서 다시 밥상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양재기를 하나씩 괴어놓고 잤는데, 이틀만에 다시 물리기 시작했다. 빈대들이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향해 툭툭 떨어졌던 것이다. 이는 드라마 주인공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 나오는 장면을 재연한 것이다. 빈대가 늘어난 원인에 대해서는 DDT 사용이 금지된 지 수십년이 지났다든가, 여행객들이 묻혀온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메뚜기 떼의 습격과 마찬가지로 환경변화에 따른 ‘빈대의 역습’일 수도 있다.TV 드라마가 보여주었듯이 빈대는 무한한 생명력을 지녔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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