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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자원公 ·지역난방公의 주목받는 채용시스템

    수자원公 ·지역난방公의 주목받는 채용시스템

    기획예산처가 최근 공기업 사원채용방식을 영어능력측정 등 지식위주에서 직무적성, 종합적인 사고력 등 실무형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신이 내린 직장’의 입사시험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 직무능력검증 시스템을 도입한 수자원공사와 의상자, 선행자 등 소외계층에 문호를 개방한 지역난방공사의 모범사례를 살펴본다. ■수자원공사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달 예산처로부터 인재 채용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정부가 제시한 채용시스템인 ‘직무능력검증+지방인재 및 여성 채용확대’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직무능력검증 도입… 우수 인력 확보 수공은 지난 2월에 실시된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직무능력검증 시스템을 적용했다. 수공의 직무능력검증도구(KWAT)는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수공이 원하는 우수 인재를 뽑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채용 기준 잣대를 그동안 획일적으로 적용했던 학력·출신학교·외국어 능력에서 벗어나 수공만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뽑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공은 2005년부터 수공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를 뽑기 위한 준비 작업을 펼쳤다. 지난해 5개월에 걸쳐 기본 틀을 마련한 뒤 이를 기반으로 전문기관에 용역(용역비 8600만원)을 줘 인재 채용 시스템을 마련해 지난 2월 실시된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적용했다. 새 인력채용 시스템의 특징은 단순 외국어 능력과 상식 위주의 시험에서 탈피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해에도 응시자의 토익 점수 기준은 없었지만 외국어 능력 점수 비중이 1차 합격 점수의 50%를 차지하는 바람에 사실상 외국어 능력에 따라 당락이 결정됐다. 지난해 합격자의 평균 토익 점수는 908점으로 직무 능력과 무관하게 ‘외국어 능력 우수자=합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달리 적용했다. 토익 기준 750점 이상이면 누구나 1차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외국어 면접 과정이 있기 때문에 1차 시험 사정 점수에는 외국어 능력을 포함시키지 않고 업무 수행능력에 지장 없을 정도의 외국어 구사 능력만 갖췄으면 누구나 공기업 취업 문을 두드리게 했다. 결과적으로 올해 합격자의 토익 점수는 830점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영어 면접에서 외국어 구사능력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지방대·여성 채용 기회 확대 효과로 이어져 시사상식과 같은 단순 지식측정도 배제했다. 출신학교·어학능력으로 줄을 세워 채용한 인재들이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업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학점이나 외국어 능력 인플레이션으로 우수 인재 채용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작용했다. 그래서 암기위주의 단편지식보다 유연한 사고 및 종합적 판단능력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뒀다. 수공인으로서 요구되는 기초적인 능력 평가를 위한 언어·수리력을 테스트하고, 직무역량검사정보 및 현상을 종합해 새로운 내용을 추론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추리력 측정 시험으로 바꾼 것이다. 새 채용 기준은 또 다른 효과도 가져왔다. 응시 기회 확대로 객관적으로 실력을 갖춘 지방 출신 인재와 여성들이 대거 합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신입사원 채용에 따로 지방대·여성 정원을 두지 않는데도 정부가 권장하는 지방대 출신과 여성 출신 채용 비율을 넘어섰다. 수공 신입사원의 지방대 출신과 여성 비율은 각각 65%,34%이다. 임형오 총무관리처장은 “어학과 학점위주의 획일적인 서류전형 기준에서 벗어나 채용의 장벽을 완화하고 어학 외에도 다양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보유한 인재를 선발해 신입사원의 현업적응과 직무수행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지역난방공사 1998년 군대를 제대한 김재희씨는 건설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괴한에게 위협받던 여성을 구했다.“의로운 일을 했다.”며 국가에서 표창까지 받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괴한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불편한 몸, 대학(협성대), 전공(시각디자인과)…. 온통 불리한 조건뿐이었다. 공조 냉동기계 기능사·보일러 취급 기능사 등 3개나 되는 자격증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떠돌던 지난해 여름, 지역난방공사에서 특별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자신처럼 의로운 일을 하다가 다친 의상자나 사회선행자들만 따로 모아 채용시험을 치른다고 했다. 무려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나이 서른에 정식 합격 통지서를 받아쥐었다. 그는 현재 수원지사 중앙통제실에서 근무중이다. “발전소의 특성상 하루 3교대 24시간 근무인데 어찌나 성실하고 분위기도 잘 띄우는지 주위의 평이 매우 좋다.”는 게 통제실 관계자의 얘기다. 열 공급 이상 여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하는 업무도 자격증이 세 개나 있는 기술 전문가라 빈틈없이 처리한다는 설명이다. 지역난방공사에는 김씨와 같은 ‘특별한’ 직원이 54명이나 된다. 당시 전체 공채 인원(109명)의 무려 절반이다. 2005년 8월 취임한 김영남 사장은 “토익과 토플 점수가 과연 공사가 원하는 인재상을 보장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영어성적 기준을 없애는 대신 사회선행자·의상자·저소득계층·장애인으로 공채의 절반(사회형평적 인재 특별채용)을 뽑겠다고 했다. 그러자 “일반인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네티즌이 들고 일어났다. 공사 내부에서도 “인재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느냐.”며 술렁거렸다. 하지만 수습교육이 끝난 3개월 뒤. 이같은 비판과 우려는 저절로 잦아들었다. 수습 평가 1등이 ‘뜻밖에도’ 특별채용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수원지사로 발령난 의상자 강민기(31)씨다. 특채 55명 가운데 중도 포기자는 지금까지 단 1명뿐이라고 한다. 공사측은 “정식사원 발령 1년 뒤부터 인사고과를 매기기 때문에 아직 객관적 수치를 제시할 수 없지만 (사회형평 인재들의 업무능력에 대한)평이 아주 좋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형평 인재군은 ‘그들만의 리그’를 치러야 한다. 자격요건에 부합해야 하고, 전공 관련 필기시험과 공무원으로서의 인·적성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특채든 일반 공채든 나이와 학력 제한은 없다. 공사는 올해도 70∼80명의 신규채용 인원 가운데 상당수를 사회형평 인재로 채울 계획이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1년 괴짜가수 조영남

    경우에 따라 군대 시절의 ‘보따리’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 주인공은 오늘날의 인기가수 조영남(62)이다. 대학 시절 그는 ‘딜라일라’를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자 꾀가 생겼다. 군 복무를 계속 연기했다. 여차 하면 ‘안가는 방법’까지도 궁리했다. 그러던 1970년 4월8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세상이 요란스러워졌다.20여일 후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서 김시스터즈의 귀국공연이 열렸다. 김시스터즈는 국내 여성보컬 1호로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정권 고위층도 참석할 만큼 관심이 높았다. 여기에 조영남은 찬조 출연한다. 무대에 선 그는 무심코 노래 한소절을 바꿔 불렀다. ‘신고사니이∼우르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라고 해야 하는 데 ‘신고사니이 와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 얼떨결에 깔린 사람이 아우성을 치누나∼’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별 일이 아니겠지만 그때는 달랐다. 특히 다음해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일전을 치러야 하는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와우아파트 사건으로 심기가 매우 불편해 있었다. 이런 판에 조영남이 고춧가루를 뿌렸으니 분위기가 험악할 수밖에. 겨우 눈치를 챈 조영남은 무대 뒤로 간신히 빠져나와 평소 안면이 있던 서울신문사 사장 방에서 잠시 피신해 있다가 그날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4시에 두명의 형사가 집으로 들이닥쳐 “병역기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며 끌고갔다. 졸지에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은 이화여대 법정대학장이자 최초 여류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도움을 받는다. 즉 이 박사가 조영남을 재판에서 빼내주었고 대신 군 입대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평소 조영남이 이 박사가 잘 가는 소년원에서 무료로 위문공연해 준 인연이 작용했다. 결국 조영남은 이 박사의 보증아래 훈련을 받은 뒤 육군본부 합창대에서 근무했다. ●가사 바꿔 불렀다 여러번 ‘혼쭐´ 군복무 시절 다시 한번 아찔했던 순간을 겪는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조영남은 나름대로 민족의 애환이 깃든 노래를 한답시고 ‘각설이 타령’ 한곡을 ‘쭉∼’ 뽑았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얼씨구씨구 들어간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조영남은 모처로 불려가 혹독한 ‘취조’까지 받았다. 비슷한 사연은 또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래 도중 하모니카를 빼다가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았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 앞에서 영부인 김옥숙 여사를 향해 ‘나 하나의 사랑’을 열창했다가 눈총을 받아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하지만 그의 대표곡 ‘화개장터’는 공교롭게도 1997년 대선 때 선거바람을 타고 빅히트를 쳐 ‘운때 맞았던’ 경우도 있었다.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대중 정권 때 문화부장관을 지낸 김한길 의원이다. 조영남은 원래 즉흥적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재치와 끼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칸초네 ‘카사 비안카(Casa Bianca)’를 ‘하얀 집’으로 바꿔 부른 것도 여전히 회자된다. 닉슨 미국 대통령 시절(재임 1969∼74년)이다. ‘시커먼 하얀집/어쨌든 하얀집/누가 뭐래도 하얀집/좌우지간 하얀집/불이 나면 빨간집/꺼지면 까만집/∼/닉슨이 사는 The White House’. 결국 그가 지칭하는 하얀집은 ‘백악관’이었다. 지난 2일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조영남씨를 만났다. 올해로 데뷔 41주년이 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달에 한번꼴로 콘서트를 가진다. 얼마 전에는 다시 방송에 복귀, 최유라와 함께 ‘지금은 라디오 시대’(MBC-FM 오후 4∼6시)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가수이자 문학인, 화가, 전방위 예술가로 푸짐한 삶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따뜻한 봄날, 문득 선문답을 나눠보고 싶다는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음악·문학·그림? 그건 그냥 취미야 “노래는 왜 합니까?” 우문이었을까, 뿔테 안경너머로 살짝 째려보더니 “밥벌이”라고 소리지른다. 갑자기 오기가 생긴다. “그렇다면 시는 왜 씁니까?” “암호해독이지, 진실의 핵심을 푸는 재미라고나 할까.” 내공의 깊이가 이 정도?.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렸다. 노려보던 시선을 흐트려뜨리며 “보들레르, 랭보, 예이츠, 에드거 앨런 포, 결국 아무것도 아냐. 인간 존엄성이지.”라고 뱉는다. “하지만 한 가지 못 푼 게 있어, 이상의 ‘날개’, 음 정말 암호가 많아.” 이때 MC 임백천씨가 나타났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잠시 일어선다. 저쪽 방에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등 몇몇 정치인들이 눈에 띄었다. 정 고문의 어머니 고 이태영 박사가 앞서 언급된 병역기피 재판 때 조씨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잠깐 오버랩됐다. 인터뷰가 다시 진행된 것은 20여분 후. “인간 조영남은 음악인, 문학인, 화가 중 과연 어느 쪽을 좋아합니까?” “아무 것도 아냐, 그냥 취미일 뿐이지.” “그렇다면 사는 재미를 어디에서 찾나요?” “재미의 순서? 젊은 여자들과 밥먹고 수다 떠는 것이 제일 재밌지.” “수다가 가능합니까?” “가능하기 위해서 무진장 노력하고 공부하지. 공부 안하고 연구없이 재미있게 살 수는 없어.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다 재미있게 살려는 것이지.” “젊은 여자를 만나면 어떤 내용으로 수다를 떠나요?” “그날 그날 다 달라. 어제는 여름 이불이 어느 정도 얇아야 하느냐, 어떤 천이 좋으냐, 이런 주제로 2∼3시간 수다를 떨었어.” ●젊은 여자랑 밥먹고 수다떠는 게 제일 재밌어 “그렇다면 인생은 수다인가요?” “재미있게 수다 떨다가 죽는 것이 최종목표지 뭐.” “수다 뒤에 찾아오는 허무는 무엇으로 채우나요?” “무엇을 해도 허무해. 허무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고, 잠들면 되고,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또 수다 떨고….” “주변에서 인간 조영남은 고독하고 쓸쓸한 팔자가 아니냐고 합니다.” “말 같지 않은 얘기야, 고독하지 않은 것이 없어. 고독 반, 고독하지 않은 것 반, 기쁨 반, 슬픔 반, 인간사 다 그렇지 않은가.” “고독이 몸부림칠 때 음악을 만드나요?” “몸부림친 적도 없어…, 다 구라치는 얘기야.” 조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툭툭 내뱉는 단어들이었지만 조합을 해보면 매사에 솔직하고 일관된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종답을 위해 인생철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정운찬·정동영·손학규, 삼두 정치 어떨까 “주변에 대통령이 될 법한 친구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 정운찬, 정동영, 손학규…. 그러나 그 중 한명(정운찬)이 떨어져 나가 승률이 줄어들었어.”이어 “정운찬은 쓸 만한 물건이고, 정동영은 잘 만들어진 물건이고, 손학규는 쓰기 편한 물건이고, 다 괜찮아. 말 나온 김에 옛날처럼 삼두(三頭)정치를 제의하면 어떨까.”라고 되묻는다. 왜 혼자 사느냐고 다시 직설적으로 물었다. “여자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 같이 살자고 하면 살아줄 여자도 몇명 있지. 안 하는 이유? 두번씩이나 둘이서 살아봐서 아는 데, 혼자 살아보니 훨씬 재미있어. 난 역시 독립군 체질이야. 성격이 변태 같은데 감당하고 들러붙어 살 여자가 쉽게 나타나겠어?”그는 자신이 불렀던 곡 가운데 가장 아끼는 노래에 대해 이제하씨가 가사를 쓴 ‘모란동백’, 그리고 방송작가 김수현씨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이라고 대답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 파문을 언급하자 “많이 아팠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고 했다. 인생 앞날의 계획을 재차 물었다. “죽기 직전까지 산다는 것이야.”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황해도 남천 출생. ▲51년 1·4후퇴때 월남. ▲64년 서울 용문고 졸업. ▲66년 서울대 음대 시절, 미8군 무대데뷔로 노래인생 시작. ▲68년 첫음반 ‘딜라일라’ 발표. ▲74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권유로 미 트리니티침례신학대학 입학. 이후 목사자격증을 받고 미국 생활. ▲81년 귀국후 가수활동 재개. # 대표곡 딜라일라, 제비, 물레방아 인생, 각설이 타령, 별은 빛나건만, 신고산타령, 화개장터, 웰컴투코리아, 사랑했기에, 겸손은 힘들어, 늘푸른 마을, 인생은 요지경, 무너진 사랑탑, 보리수. 내고향 충청도 등. # 주요 저서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82년), 놀멘놀맨(95년), 조영남 예수의 샅바를 잡다(2002년),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03년),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05년). # 그외 영화 서울에비타 등 출연.1990년 LA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미술 전시회를 갖는다.
  • 美 첫 유인우주선 비행사 시라 사망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 비행사 월터 시라가 지난 2일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이 3일(현지시간) 발표했다.84세. 시라는 1959년 미국의 첫 유인우주선 ‘머큐리 프로젝트’의 우주인 7명 가운데 한 명이자 머큐리와 제미니, 아폴로 등 유인 우주선 3개에 모두 승선한 유일한 우주인이다.1962년 10월3일 시그마7 머큐리를 조종해 9시간에 걸쳐 지구궤도를 6바퀴 도는 임무를 수행했다. 1965년 12월15일 제미니 7호와의 첫 유인우주선 랑데부에 성공한 제미니 6A호 선장으로 다시 우주에 복귀했다. 제미니 6A와 제미니 7호는 때로 불과 30㎝까지 접근하면서 5시간 동안 편대비행을 했다. 시라는 발사대 화재로 아폴로 1호 승무원 한 명이 숨지는 사고 이후 아폴로 7호를 타고 우주비행하는 승무원들을 지휘했다.1968년 10월11일 11일간에 걸친 우주비행은 인간을 달에 착륙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23년 뉴저지주 해켄색에서 태어난 시라는 F-86전투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총 295시간15분의 우주 체공시간을 기록한 후 1969년 해군대위로 NASA에서 은퇴한 그는 6년간 CBS방송 시사해설자로 활약하다 이후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우리 7용사’와 ‘시라의 우주’ 등 2권의 저서를 남겼다.연합뉴스
  • 김종민 문화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김종민 문화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는 4일 김종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다. 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은 후보자 아들의 군대 배치문제와 딸의 취업 특혜의혹 등 주로 도덕성과 자질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열린우리당 등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대책과 방송·통신 융합과 관광 정책 등에 비중을 두고 질의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후보자는 5공화국 때 박세직 전 총무처 장관의 측근으로 불리고 문민정부 때는 김현철씨의 인맥으로 분류됐으며 참여정부 때는 친노의원들의 모임인 의정연 원장을 역임했다.”며 “지나치게 권력지향적인 것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의정연 원장은 문화경제 담론을 논의하는 모임이 있는데 함께 하자는 공직사회 선배의 권유를 받아 맡게 된 것”이라며 “의정연 의원들과는 모임에 가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심 의원은 또 “아들이 서울 국군기무사령부 예하부대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신체급수 2등급 이상만 차출가능했다.”며 “그러나 후보자의 아들은 입영신검 결과 3급이었는데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아들이 신체등급 1등급으로 입대해 성실하게 제대한 것으로만 알았지, 왜 3등급으로 기재돼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전여옥 의원은 “후보자가 한국관광공사 사장 시절이던 2005년 8월 딸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특별채용됐다.”며 “이 과정에서 투명성이 강하게 의심되는데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어제 알아봤더니 딸이 필기시험 1등, 면접시험 2등을 했더라.”며 “요즘은 관광공사 사장이란 직위를 갖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고 먹히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탈당파 의원들은 주로 정책질의에 비중을 뒀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관광하는 것보다 우리 국민이 외국을 관광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관광수지 적자를 해소할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같은 당 이광철 의원은 “방통융합에서 기구의 규제, 기능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日 국제공헌 내세워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日 국제공헌 내세워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이른바 평화 헌법이 3일 시행 60주년을 맞는다. 일본 헌법은 지금껏 바꿀 수 없는 법이라는 의미에서 ‘불마(不磨)의 대전(大典)’으로 불렸다. 실제 자구 하나도 고쳐지지 않고 현 시점까지 와 있다. 그러나 평화 헌법이 ‘환갑’에 즈음 크게 흔들리고 있다. 본격적인 개정 궤도에 올라 있다. 개헌의 핵심은 평화 헌법의 근거인 전쟁 포기와 군사력 보유 금지를 담은 9조 1·2항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본의 군비 확충에 따른 우경화 및 군사대국화 부활이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물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개헌 추진세력들은 ‘전후 체제 탈피’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현재 헌법 개정을 위한 절차를 규정한 제도적 장치인 ‘국민투표법’은 늦어도 다음달 23일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다. 개헌의 불은 이미 달아 올랐다. ●‘국민투표법’ 내달 23일내 통과될 듯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헌법 60주년과 관련, 자민당의 ‘신헌법제정 추진대회’에서 “현행 헌법은 사정을 모르는 연합군총사령부에 의해 기초가 됐다.”면서 “21세기에 걸맞은 헌법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며 개헌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에도 “우리들 자신의 손으로 헌법을 만들고 싶다.”는 발언을 줄곧 해왔던 터다. 1945년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 첫 총리인 아베 총리의 취임과 함께 개헌은 역대 정권에 비해 탄력을 받고 있다. 자민당의 중의원만 하더라도 전후 세대가 60%를 넘는다.‘전후 세대 역할론’이 먹히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개헌 추진력이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지난달 13일 민주당의 반발에도 불구, 헌법 개정을 위한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을 중의원에서 여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참의원에 상정된 상태이다. ●자위대 군대화… 亞 세력판도 재편 개헌론자들은 개헌 명분으로 ‘국제 공헌’, 즉 국제 평화와 안정을 내세우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5일 집단적 자위권을 검토하는 ‘유식자 회의’를 발족하면서도 “일본의 안전과 함께 세계 평화와 안정에 공헌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 ‘군사적’으로 이바지하려고 해도 헌법을 해석, 위헌 여부를 따져야 하는 등 걸림돌이 적잖다는 게 개헌론자들의 주장이다. 때문에 헌법을 개정하는 쪽이 낫다는 논리다. 일본은 헌법의 해석을 통해 나름대로 이미 이라크와 동티모르 등에 복구지원 및 평화유지 명분으로 자위대를 파견하고 있다. 해상 자위대는 인도양의 미 해군에 유류를 공급하기도 했다. 헌법 해석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현행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군비 확충뿐만 아니라 국제 전쟁의 참여까지 용인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은 “개정 헌법에서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조항을 남기더라도 자위대가 군대로 바뀔 것이 뻔하다.”면서 “결국 아시아의 세력 균형 지도는 다시 그려질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미국도 日의 역할 확대 원해 미·일 동맹은 단순한 ‘일본 방위’ 차원에서 아시아·태평양, 더 나아가 세계 질서의 유지 쪽으로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미국 측이 일본에 새로운 역할을 주려는 전략이다. 지금껏 일본은 국토 방위와 미군에 기지 제공 등에만 힘써 왔다.‘비대칭 관계’였다. 미국 측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확대 해석하거나 개헌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역할 일부를 떠맡기를 원한다. 일본을 통한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전략도 포함된다. 일본과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칭 관계’로의 전환이다. 실제 일본의 희망 사항이기도 하다. 일본 국민들은 대체로 개헌을 지지하는 분위기다.2일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힌 반면 27%만 필요없다고 대답했다. 찬성하는 이유의 84%는 ‘새로운 권리와 제도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헌법 9조 1·2항의 개정 부분에서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의 3월17일 조사 결과, 전쟁 포기를 담은 9조 1항과 군사력 보유 금지의 9조 2항에 대해 각각 80.3%와 54.1%가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특히 헌법의 통치 도구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주당은 2일 헌법기념일 담화에서 “헌법을 정권의 편의에 따라 고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자민당을 공격했다. 도쿄신문도 사설에서 “헌법의 특성과 제9조의 효과를 무시,‘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냐.”고 따졌다. hkpark@seoul.co.kr ■ 日 뿌리깊은 개헌시도 ●92년 6월15일 국제평화유지군활동(PKO) 협력법 마련 ●94년 11월3일 헌법개정안 첫 공개 ●99년 5월24일 미·일 방위협력 지침과 관련한 법 마련 ●2000년 1월20일 중·참의원 헌법조사회 ●2001년 10월29일 테러대책특별법 마련.11월 해상자위대, 인도양에 파견 ●2003년 7월26일 이라크 복구지원특별법 마련 ●2004년 1월 육상자위대, 이라크 파견 ●2005년 10월28일 자민당 신헌법 초안 발표.10월31일 민주당, 헌법제언 ●2006년 9월29일 아베 총리,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연구 천명 ●2007년 4월13일 국민투표법안 중의원 통과 ●2007년 6월23일 이전 국민투표법 참의원 통과, 확정 ●2010년 이후 국민투표법 공표 3년 뒤 헌법 개정 가능 ■ ‘집단적 자위권’ 아베 속셈은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인 지난달 25일 집단적 자위권의 개별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이른바 ‘유식자 회의’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외교나 국방 쪽의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모임체의 명칭은 ‘안전 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정치권이 아닌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었다. 아베 총리는 유식자 회의 측에 집단적 자위권의 4가지 유형이 현행 헌법 안에서도 행사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도록 주문했다. 시한은 올 가을까지다. 하지만 4가지 유형에는 아베 총리의 상황 논리가 이미 제시되어 있는 탓에 짜놓은 틀에 끼워 맞추기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은 앞으로 개정될 헌법에 보다 쉽게 집단적 자위권을 넣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또 미리 국민들의 전쟁 또는 군비 확충이라는 반감을 줄이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검토안 1:‘미국을 노린 제3국의 탄도미사일 요격’ 무엇보다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을 가정한 유형이다. 북한이 지난해 7월 발사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대포동2’가 태평양 사령부 등 미국의 주요 군사기지가 밀집한 하와이를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에서다. ●검토안 2:‘공해상에서 자위대나 미군 함정이 위협 또는 공격받았을 때 반격’ 일본 주변의 공해상에서 미군 등의 함정이 공격을 받았을 때 자위대가 반격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안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이 공격을 받은 뒤 공해에서 미군이 당한 경우에는 개별적 자위권의 연장선에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가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라면 어떻게 해석되는가.”라고 물었다.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의 명확한 구분을 주문한 셈이다. ●검토안 3:‘국제 평화활동 중인 다국적군의 임무 수행 방해를 막기 위한 무력 사용’ 일본 육군 자위대는 이라크의 비전투지역에 파견돼 급수 및 도로 정비 등 복구지원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아베 총리는 역시 지난해 10월 참의원 예산위에서 “만약 이라크에서 일본이 아닌 함께 활동중인 다국적군이 공격을 받았을 때 응전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검토안 4:‘다국적군의 후방 지원’ 작전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등 다국적군에게 항공 자위대가 무기나 탄약 등을 수송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미군과 무력을 똑같이 행사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탓에 금지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 “후방에서의 의료지원이 군사력 행사로 간주하지 않는 상황에 비춰 후방 지원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hkpark@seoul.co.kr ■ 용어 클릭 ●집단적 자위권 자국이 직접적인 적의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동맹국이 침략을 받을 경우,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국제법적인 권리를 일컫는다. 유엔헌장 51조는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개별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헌법 9조의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은 ‘나라를 방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한도의 범위를 넘는다.’라고 해석돼 행사할 수 없는 상태다.
  • “위안부 사과 한국에 해야”

    일본 자민당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 간사장이 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지난달 2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군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데 대해 “위안부 문제는 한국민의 마음을 해친 것이기 때문에 (미국 측에 사과할 것이 아니라)한국 측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한 중인 가토 전 간사장 등 일본 자민당 의원단은 이날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북핵문제 및 과거사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 송 장관은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며 “일측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병자호란 다시 읽기] (17) 광해군과 누르하치, 그리고 명나라 Ⅳ

    우여곡절 끝에 즉위했지만 국왕 광해군의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당장 그의 친형 임해군을 처리하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사관(査官) 엄일괴 등을 은으로 구워삶아 위기를 넘겼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돌아간 뒤부터 신료들은 ‘역적’ 임해군을 처단하라고 외쳤다. 즉위하자마자 혈육을 손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광해군은 거부했지만 끝까지 임해군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명과의 관계 또한 꼬여가고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총명하고 능력 있다.’고 추켜세우더니 막상 책봉을 요청했을 때는 외면했던 명이었다. 즉위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광해군과 명의 관계는 분명 ‘악연’에서 출발했다. ●李成梁의 병탄 음모에 놀라다 즉위한 지 5개월 남짓 된 1608년 7월, 베이징으로 가고 있던 동지사(冬至使) 신설(申渫)로부터 비밀 장계가 날아들었다. 광녕총병(廣寧總兵) 이성량(李成梁)이 ‘조선을 정벌하고 군현(郡縣)을 설치하여 직할령으로 삼자. ´는 내용으로 황제에게 주문(奏文)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엄일괴 등이 돌아간 뒤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명이 조선을 직할령을 삼으려고 덤비는 것이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이성량의 혼자 생각이 아니라 도어사(都御史) 조집(趙)도 같이 상주(上奏)했다는 것이다. ‘조선에서 형제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성량이 누구인가. 그는 이여송(李如松)의 부친이자, 요동의 막강한 군벌(軍閥)이었다. 워낙 오랜 동안 현직에 있어 ‘리타야(李大爺)´로 불린 그의 영향력은 컸다. 요동이나 산동(山東)의 무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의 가정(家丁)이나 막객(幕客) 출신이었다. 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조선의 내부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었다. 광해군은 신료들에게 대책을 물었다. 병조판서 이정구(李廷龜)가 입을 열었다. 그는 이성량이 조선에 ‘군침을 흘리는´ 것은 땅이 비옥하고 인삼과 은이 생산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정구는 그러면서 이성량과 연결되어 있는 누르하치가 더 문제라고 했다. 이성량의 본심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만약 조선을 공격할 경우 누르하치의 군대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정구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누르하치의 땅과 잇닿아 있는 평안도 지역의 방어 태세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행히 이성량의 상주에 대한 명 조정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병과도급사중(兵科都給事中) 송일한(宋一韓)과 급사중(給事中) 사학천(史學遷)이 이성량의 주장을 일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선이 비록 흠이 있지만, 연개소문(淵蓋蘇文)처럼 임금을 시해한 죄가 없고 명나라를 섬겨 신하의 예절이 어긋나지 않았으니, 이성량의 주청이 잘못되었다. ´는 내용이었다. 송일한은 이성량을 파직시켜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송일한 등의 반박 덕분에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광해군이 둘째라는 이유로 명나라 신료들에게 계속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성량과 연결된 누르하치에 대한 경각심 또한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통성 시비´ 잠재우려 책봉 서둘러 광해군은 ‘이성량 사건´을 계기로 요동에 대한 정탐을 강화하는 한편, 명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책봉(冊封)을 받아내기 위해 서둘렀다. 비록 임해군은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를 차단하고 국왕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명의 책봉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즉위한 지 1년이 더 지난 1609년 3월까지도 명은 광해군을 조선 국왕으로 책봉하지 않았다. 조선에 보낸 외교문서에서는 ‘조선국 권서국사(權署國事) 광해군´이란 호칭을 썼다. ‘권서국사´란 ‘임시로 국사를 담당하는 사람´ 정도의 뜻이다. 이윽고 1609년 6월, 명의 책봉사(冊封使)가 서울에 도착했다. 태감 유용(劉用)이 그였다. 태감이란 환관을 말한다. 내시(內侍), 초당(貂), 초시(貂侍), 엄인(人) 등 환관을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였다. 조선 전기에는 화자(火者)라는 호칭도 많이 썼다. 15세기 조선에 다녀간 명나라 환관들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았다. 워낙 뇌물을 밝히고, 요구 사항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선 출신이었다. 하지만 명나라 황제의 총애를 배경으로 더 위세를 떨었다. 세종 때의 윤봉(尹鳳)과 성종 때의 정동(鄭同)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유용은 더 ‘막강한´ 인물이었다. 수천명에 이르는 명나라 환관 가운데 서열 2위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조선에 도대체 왜 왔겠는가? 광해군은 그가 의주에 도착하여 서울로 올라올 때까지 바짝 긴장했다. 유용은 압록강을 건너기 전부터 공공연히 떠벌렸다. “조선 국경에 발을 들여 놓으면 기필코 10만냥의 은자를 얻으리라. ”라고. 그는 의주에 도착한 뒤 자신에 대한 접대는 오로지 은으로만 하라고 했다. 은만 주면 식사도 다례(茶禮)도 필요 없다고 했다. 은이 부족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거느린 수행원 중에는 한 밑천 잡으려고 조선에 들어온 상인들이 많았다. 그들 또한 이런저런 기완(嗜玩) 물품을 내놓고 강매했다. 유용은 결국 광해군을 책봉하는 황제의 칙서를 전하러 와서 6만냥의 은을 뜯어갔다. 조정의 언관들은 유용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를 우대하라고 지시했다. 어떻게 해서든 정식으로 책봉을 마치는 것이 급했기 때문이다. ●명의 貪風을 받아들이다 ‘오는 데 비용이 많이 들었고, 돌아가면 여기저기에 상납해야 한다. ´ 6만냥을 뜯어낸 유용이 했던 이야기다. 엄일괴와 만애민이 조선에서 한 밑천 잡은 뒤, 명의 환관들은 조선에 서로 나오려고 했다. 17세기 전반 명에서 불고 있던 탐풍(貪風)은 엄청났다. 그 배경에는 은의 유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산 생사(生絲)와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은을 싸들고 명나라로 몰려들었다. 그 은은 대개 신대륙 남미(南美)와 일본에서 채굴된 것이었다. 해마다 밀려드는 수십만 킬로그램의 은은 명나라 구석구석으로 유통되었다. 그것은 인삼이나 모피의 구입 대금으로 누르하치가 일어난 만주 땅에도 뿌려졌다. 은은 운반이 편리해 뇌물로는 그만이었다. 사실 15세기에 왔던 윤봉이나 정동도 엄청나게 뇌물을 챙겼지만 그것은 대개 토산물이었다. 호피(虎皮) 등 짐승가죽과 세모시 등 직물류, 말안장, 구리 제품 등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들을 운반하자면 엄청난 수의 궤짝이 필요했다. 뇌물 궤짝을 짊어진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눈초리가 좋을 리 없었다. 그것에 비하면 은을 운반하기란 너무 쉬웠다. 1610년에는 광해군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기 위한 명사가 왔다. 염등(登)이란 인물로 역시 환관이었다. 그의 목표는 유용이 받아낸 액수보다 더 뜯어내는 것이었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 임진강의 다리가 홍수로 유실되자, 행차가 지체되었다는 것을 빌미로 은 1000냥을 받았다. 서울에 도착하여 보인 행태는 가관이었다. 은으로 된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천교(天橋)라 불리는 그것을 타고 남대문을 넘어가 책봉례(冊封禮)를 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도 결국 수만냥을 챙겼다. 우의정 심희수(沈喜壽)는 염등을 가리켜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광해군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왕세자로 있었으면서도 명의 승인을 받지 못했던 자신의 전철을 되풀이하기 싫었던 것이다. 수만냥의 은을 마련하려면 엄청난 고혈(膏血)을 짜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후 명을 상대하기란 그만큼 버거웠다. 하지만 명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그 명과 누르하치 사이에서 양단을 걸쳐야 하는 훨씬 더 버거운 과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北, 테러지원국 ‘18년 딱지’ 뗀다?

    北, 테러지원국 ‘18년 딱지’ 뗀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가 지난 30일(현지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했으나 해제 가능성도 함께 시사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06년도 테러보고서’에서 “2007년 2월13일 (6자회담)초기조치 합의에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는 과정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명시했다. 미국이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의 해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보고서는 북한과 함께 이란, 쿠바, 시리아, 수단 등을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했다. 지난해 지정됐던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 포기 등으로 제외됐다. 북한은 18년 연속 지정됐다. 보고서는 “일본 정부는 2002년 송환된 납북자 5명 등 북한 정부기관에 납치된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인 12명의 생사에 대해 설명할 것을 계속 요구해 왔다.”며 북한이 일본인 납치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음을 밝혔다. 또 “북한은 1970년 제트기(일본민항기) 납치에 관여했던 일본 ‘적군파’ 소속 요원 4명을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고서의 납치 및 적군파 보호와 관련한 표현은 예년에 비해 약화됐다. 보고서는 한국인 납북자를 포함,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 납북자에 대한 언급은 모두 삭제했다. 지난해 보고서는 “한국전쟁 이래 북한에 납치 또는 억류된 사람이 485명인 것으로 한국 정부는 추산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 정부는 납북자 문제를 남북관계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며 미 정부에 테러 관련 정책에서 이 문제를 고려하지 말 것을 요청한 바 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테러보고서는 이와 함께 “북한은 지난 1987년 대한항공 폭파사건 이후 어떤 테러활동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서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올해 안에도 해제를 현실화할 수 있는 조치들이 뒤따를지 주목된다. 미국이 이번 보고서에 북한을 계속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변 핵 시설 동결 등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또 아베 신조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지 말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보고서에 담긴 내용으로 볼 때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고 납북자 문제 해결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경우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 관계자도 이날 발표된 테러보고서가 “미 정부의 현재 대북정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려고 한다면 의회에 관련 사항을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 외교통상부가 대(對)테러 협력국장을 임명하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한 점 등을 부각시키며 “한국은 (테러에 대한) 단속 및 정보능력에서 탁월함을 보여 줬고, 여러 개발도상국 사법당국 관리들에게 테러에 연관된 훈련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통적으로 북한의 잠재적인 테러활동에 역점을 둬온 한국 정부는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의 예상되는 테러활동으로 경계를 넓혔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또 작년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총 1만 4000건의 테러활동이 발생,2005년보다 25% 증가했으며 2만여명 이상이 사망, 사망자수도 40% 늘어났다고 밝혔다. dawn@seoul.co.kr
  • [20&30] ‘3분의 위안’… 내 마음의 비타민

    [20&30] ‘3분의 위안’… 내 마음의 비타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젊은 영혼들의 영원한 주제가다. 누구나 삶이 괴롭고 고단할 때, 혹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힘이 돼 주는 노래 한 곡쯤은 있다. 요즘 ‘20&30’들의 삶의 나침반을 끌어당기는 노래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노래는 고단한 삶의 동반자 최모(32·여)씨는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돼 오랜 연인과 이별했다. 최씨는 이민을 원했지만 남자친구는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했던 것. 낯선 타향에서의 향수병과 이별의 고통까지 겹쳐 길고 춥기로 유명한 토론토의 겨울은 정말 길게 느껴졌다. 이때 우연히 한인 타운의 술집에서 들은 노래가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가 부른 ‘봄이 오면’이었다.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봄이 오면 연둣빛 고운 숲 속으로 어리고 단 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최씨는 “CD를 구해 듣고 또 들으면서 봄이 오면 나는 뭘 하고 싶은 지 노트에 빽빽하게 적어 나갔죠. 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별의 아픔과 겨울의 시림, 외국 생활에서 오는 향수도 극복할 수 있었어요.”라면서 지금도 봄이 오면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원 김모(27·여)씨의 동반자는 윤상의 3집 앨범에 실려 있는 ‘달리기’다. 어학연수 갔을 때 김씨는 한여름 집에서 역까지 30분 거리를 돈을 아끼기 위해 걸어 다녀야 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그늘도 없는 고통스러운 거리였지만 속으로 ‘달리기’를 흥얼거리면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1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이란 가사가 마치 인생의 진리처럼 느껴졌다고 김씨는 말했다. 대학생 장모(29)씨의 MP3에는 언제나 바뀌지 않는 노래가 있다.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다. 장씨가 제대하고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한 평이 조금 넘는 고시원에 틀어 박혀 책과 씨름하던 2002년 주위는 온통 월드컵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당시 단과학원 선생님은 “너희가 지금은 맘 놓고 월드컵도 보지 못하는 재수생 신분이지만 4년 후에는 멋진 인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힘내라.”고 했지만 장씨에게는 되레 비수가 됐다. 군대에 가기 전인 98프랑스월드컵 때 다니던 재수학원 선생님이 같은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울적했던 장씨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곡이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장씨는 “성난 파도 아래 깊은 곳에 한 번만이라도 이르기 위해 외롭게 헤엄치며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는 가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죠. 지금도 힘든 일을 마주할 때면 처음 ‘민물장어의 꿈’을 들으며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고 힘을 얻습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프로골퍼 허모(30)씨는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를 들으면 축 처진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이야/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란 가사가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한다. 체육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골프를 늦게 시작한 그가 클럽을 내던지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 노래를 듣고 힘을 냈다.“조금 늦었지만 결국에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이 생깁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인생의 나침반을 돌려놓은 노래 초등학교 교사인 강모(28)씨가 교직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영어 시간에 일어났다. 평소 학생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줘 인기가 많았던 영어 선생님이 “너희는 공부를 왜 하니?”라며 ‘화두’를 던졌다. 이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강씨는 “그때야 그냥 남들이 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했을 뿐이죠. 특별한 공부의 목표를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던 시절이니까요.”라고 떠올렸다. 그때 선생님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를 들려 주셨다. 강씨는 “선생님께서 ‘언제나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험한 물결 위의 다리처럼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해 공부했고, 교사가 됐다.’면서 ‘너희들도 무슨 일을 하든 험한 물결 위의 다리처럼 되기 위해 공부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죠.”라고 회상했다. 결국 강씨는 교대에 입학했고 지금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인생의 징검다리를 놓아 주고 있다. 최모(29·회사원)씨가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찾아 듣는 노래는 천지인의 ‘청계천 8가’다. 대학 1학년 때 동아리 선배가 기타를 치며 가르쳐준 이 노래는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민중가요였다. “‘파란 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로 시작해 ‘우리들의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로 끝을 맺는 가사는 세상에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습니다. 보이는 것만 보던 내 시야를 넓게 만들어준 셈이죠.”라고 최씨는 고백했다. 그는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뱃심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어쩜 그리 내 상황과 똑 같은지’ 누구나 한 번쯤 유행가 가사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낀 적이 있을 법하다. 요즘 젊은 술꾼들에게 사랑을 받는 노래는 남성 듀엣 바이브의 ‘술이야’다. 시스템 통합(SI) 업체에 근무하는 김모(31)씨는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란 부분은 정말 딱 저랑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내 생활을 그대로 담은 노래 같아 좋아하게 됐죠.”라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에는 장난처럼 불렀는데 점차 가사처럼 술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회사원 오모(30)씨는 싸이의 ‘연예인’ 덕분에 결혼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여름 세 살 어린 신부를 맞이했는데 연애할 때부터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평생을 웃게 해줄게요.’란 가사에 힘을 주어 불렀다고 한다. 오씨는 “지금도 내 마음은 그 노래 가사처럼 평생 아내를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도 가끔 둘이 같이 노래방에 가면 항상 이 노래를 불러 주곤 하는데 아내도 너무 좋아합니다.”라고 수줍게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광석 노래의 힘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최루가스에 녹다운된 대학생들은 ‘아스팔트 열기 속에서’를 부르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먼지 구덩이 연병장을 구르던 이등병은 그의 노래 편지를 받고 찔끔거렸다. 어설픈 사랑에 가슴 찢어진 청춘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며 통곡했다. 고 김광석.‘서른 즈음’이던 32세의 나이로 먼 길 떠난 지 11년. 그의 이름 석 자와 그가 토해낸 노랫말을 사람들은 왜 아직도 잊지 못할까.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김광석의 이야기’ 회원들로부터 그의 노래에 대해 들어 봤다. 아이디 ‘msk204’는 “형의 노래는 삶이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의 노래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어 삶 자체가 됐기 때문이다. 김광석처럼 사람들의 인생에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남긴 가수도 흔치 않다. 아이디 ‘09zzz’는 “대학 1학년 때 대학로 ‘학전’에서 처음 광석 오빠의 콘서트를 본 후 오빠가 떠나기 전까지 마치 중독처럼 콘서트를 다녔던 때가 늘 그립다. 마치 대화를 하는 듯한 작은 소극장 안에 웃음과 눈물이 가득 고일 때면 광석 오빠와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랑하는 이와 한 하늘 아래 살아 간다는 게 참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도 김광석이 떠난 뒤부터는 누구의 콘서트에도 가본 적이 없다. ‘햇살나무’는 군대 이등병 시절 훈련 복귀 도중 선임병이 노래를 시켰던 때를 기억했다.“고민하다가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다.1절을 부를 때는 혼자였는데,2절을 부를 때는 동행했던 선임병이 따라 불렀고,3절을 부를 때는 트럭 안에 타고 있던 모든 병사들이 같이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병사들 모두는 가슴에 품고 있던 초코파이를 하나씩 꺼내 내게 줬다.” 김광석이 살았다면 43세.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던 이들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이젠 그의 노래를 들어도 눈물나지 않을 만큼 딱딱하게 굳은 심장이지만, 사람들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를 보내지 못할 듯하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아베 ‘짧고 굵게’ 訪美실속 챙겼다

    아베 ‘짧고 굵게’ 訪美실속 챙겼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6∼27일,1박2일간의 짧은 방미에서 나름대로 ‘실속’을 챙겼다. 아베 총리는 27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일 동맹, 북핵 및 납치, 일본군 위안부, 헌법 개정 등 꺼낼 수 있는 대부분의 현안을 의제로 삼았다. 또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때문에 ‘잰 걸음 외교’라는 비아냥에도 불구,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을 통해 ‘둘도 없는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동아시아 보좌관은 “동아시아 최대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없어서는 안 될 동반자”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아베 총리의 취임 이래 다소 껄끄럽게 비쳐졌던 양국의 관계를 비교적 매끄럽게 처리한 셈이다. 특히 아베 총리와 부시 대통령은 ‘가문간의 인연’까지 들먹이며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조부인 프레스콧 부시 전 상원의원이 50년전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골프를 친 일화가 새삼 화제로 오른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군대조차 가질 수 없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개정,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부시 대통령에게 확실히 설명했다. 물론 부시 대통령의 ‘사인’을 받았다. 아베 총리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전후 체제의 탈피를 위한 사실상의 승인이다. 또 납치 문제를 대북 정책과 연계시킴으로써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아니지만 해결을 위한 지지 또한 구두로 약속받았다. 더군다나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부인해 논란을 일으킨 문제와 관련, 제3자 위치에 있는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의 거듭된 사과와 해명에 대해 “아베 총리의 사과를 받아들인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피해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을 무시하는 처사가 됐다. 나아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 등에 맞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을 강화키로 하는 등 군사적 동맹도 한층 높여나간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총론적인 합의가 각론에서도 순조롭게 풀려나갈지가 관건이다. 미묘한 시각차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미국 쇠고기를 먹는 게 일본 국민들에게 유익할 것으로 굳게 믿는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재개를 요구했다. 점심 식사로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내놓았다. 현재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전면 재개에 상당히 신중한 입장이다. 북핵 문제의 경우, 강경 일변도인 아베 총리와 대북 융화책을 구사하는 부시 대통령 사이에는 분명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27일 미국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카타르·쿠웨이트·이집트 등 다음달 3일까지 중동 5개국 순방에 들어갔다. hkpark@seoul.co.kr
  • 李·朴싸움 가열… 한나라 갈라서나

    李·朴싸움 가열… 한나라 갈라서나

    ‘한나라, 두나라로 쪼개지나?’ 한나라당이 4·25 재보선 참패에 따른 ‘지도부 책임론’을 놓고 내홍을 넘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MB)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은 ‘분당 불사(?)’의 기세로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측이 딴살림을 차려 경쟁하다 서로 힘에 부친다고 판단할 때, 통합 후보를 내세우는 게 한 지붕 아래서 제 식구 죽이는 모양새보다는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 대표와 이 최고위원은 한 지붕을 얹고 살기엔 서로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이들은 지난해 대표 경선 이후 사사건건 대립해 왔다. 강 대표는 지도부 사퇴보다는 빠르면 30일 강력한 쇄신안을 던짐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대변인은 29일 현안 브리핑에서 “강 대표는 지금 당장 사퇴하는 것이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빠르면 내일 기자회견을 하고 당 쇄신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오 최고위원은 강 대표가 제시하는 쇄신안을 본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쇄신안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고 판단되면 사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 최고위원이 강 대표의 쇄신안을 거부하고 사퇴할 경우, 강 대표로선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 같다. 김형오 원내대표와 전재희 정책위의장까지 사퇴 대열에 가세하면 강 대표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당 최고위는 ‘반쪽짜리 지도부’로 전락하게 된다. 이 경우, 당은 쪼개질 가능성이 한층 커진다. 지도부 책임 문제와 관련, 박 전 대표측에선 일관되게 현 제체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29일 오후 울산지역 여론주도층 모임인 울산비전포험 특강에서 앞서 배포한 연설문에서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나 다짐보다는 이미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들을 단호하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새로운 지도부 구성주장을 비판했다. 반면 이 전 시장측은 이 전 시장 캠프와 친이(親李·친 이명박) 성향 의원들 얘기가 다르다. 캠프에선 현 체제 유지 입장이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의거 75주년 기념식에서 당 쇄신안에 대해 “당이 복잡할수록 더 조용하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원칙적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측근 의원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4·25 재보선 참패에 대한 대선주자 진영의 책임론에 대해서도 양측은 엇갈린 입장을 보이며 ‘네탓’으로 떠밀기에 급급하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 이 전 시장을 겨냥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던 분’이라고 공격하자 이 전 시장 진영에선 ‘우리가 독재자의 딸이라고 하면 좋겠느냐.’며 원색적으로 맞서면서 양측의 공방은 감정 싸움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4·25 충격… 한나라 내부기류 살펴보니] 李측 “참기만 하는 것 오래 안갈것”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관련 ‘군대 동원’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은 삼갔지만 이 전 시장 참모들은 내부적으로 격앙된 분위기다. 이 전 시장은 27일 “지금 국민이 한나라당과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행정도시가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면서 “특히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도록 행정도시에 플러스 알파 기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서실장인 주호영 의원은 “그동안 지켜봐 온 박 전 대표의 이미지와 너무 차이가 나 당혹스럽다.”며 “사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핵심측근은 “우리가 박 전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과 당을 같이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면 좋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조용히 참기만 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전 시장이 최근 “몇달 말조심 했더니 이명박도 뭐도 아닌 사람이 됐다.”는 말도 이번 건은 참지만, 조만간 이 전 시장이 ‘참아온 말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자숙 하루만에 “네 탓”

    자숙 하루만에 “네 탓”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이 4·25 재·보선 참패 이후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지 불과 하루만에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양 진영의 감정 싸움에 대한 당내 우려와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양측의 이번 대립은 표면상 재·보선 공동유세 불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간 후보 검증문제 등을 둘러싸고 쌓여 있던 감정이 분출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경선 대결국면이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박 전 대표측이 “사실관계는 분명히 해야 한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태세이고, 이 전 시장측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정면 대응을 삼가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일전불사의 전의를 가다듬고 있어 양측은 사실상 전면전에 들어간 상태다. 두 대선주자간 정면충돌은 4·25 재·보궐선거시 ‘공동유세 무산’이 유권자들에게 당의 분열상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선거결과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당내의 지적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일부 언론을 통해 이 전 시장 책임론을 들먹이며 역공을 펴면서 비롯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유세하고 이벤트나 벌이면 대전 시민의 마음이 바뀌었겠느냐.”며 “군대를 동원해 행정도시를 막겠다는 분과 유세를 같이 했으면 표가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 캠프는 27일 오전 긴급 회의를 갖고 일단 정면 대응은 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가 오해를 하고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캠프측에 어떤 대응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무대응 전략’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캠프 내에서는 “우리는 일방적으로 공격만 당했는데 언론에서는 같이 싸우는 걸로 보도된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나라당 지도부 중 이재오 최고위원도 이날 조건부 사퇴 가능성을 시사한데다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본부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지도부 사퇴 도미노가 이어졌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 여행/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지난 주말 문상을 하느라 경북 안동시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혼자 갈 생각이었다. 군대친구인 상주가 아내와는 만난 적이 없는 데다 문상 길에 꼬박 하루를 잡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따라나선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밀린 잠 자기에 바쁘던 사람이 의외였다. 어쨌거나 기왕 안동에 가는 길이니 도산서원·하회마을도 둘러보고 하룻밤 묵고 오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아이들 먹거리다 뭐다 준비하고 나니 점심 때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도로는 이미 정체가 심했지만 아내는 마냥 즐거운 기색이었다. 나 자신도 여느때와 달리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왜일까. 아차, 그렇군! 아이들을 떼어놓고 둘만이 여행길에 나선 게 결혼 20여년만에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번 1박2일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자유로웠다. 그동안 너무 아이들에 얽매여 산 건 아닐까. 우리는 석달에 한번 둘만이 여행하는 기회를 갖기로 약속했다. 아내와 내가 이 약속만은 꼭 지키리라고 나는 예감한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4·25 충격… 한나라 내부기류 살펴보니] 朴측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나라당이 4·25 재·보선 참패 책임 소재를 놓고 내홍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측은 27일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과 일전불사 의지를 표출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은 전날 박 전 대표가 대전 서을 국회의원 선거 패배 책임론과 관련,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 통과 당시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던 이 전 시장을 겨냥해 파문이 일자 “말이야 바른 말 아니냐.”며 정면 돌파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은 “농담조로 한 말을 특정신문이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은 지난 2005년 2월24일 경기 남양주 강북 정수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뒤 정부의 강행 방침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자 “어떻게 할까. 군대라도 동원할까.”라고 말했었다. 당시 서울신문이 이 전 시장의 발언을 단독보도해 파문이 일자 서울시는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고 해명했었다. 박 전 대표측의 한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보육 발언’‘충청 비하 발언’‘시베리아 발언’ 등 자신의 말이 파문을 일으킬 때마다 석연찮은 변명으로 빠져나가는 데 급급했다.”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비판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병역 거부자와 자원자들의 시각

    대학생 정재훈씨는 지난 2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1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 영주권자인 박재록씨는 굳이 안가도 되는 군대에 새달 28일 자원 입대한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과 갈 필요가 없는 군대를 자처하는 사람들. 왜 이런 선택을 할까? 27일 오후 10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시사프로그램 ‘시사, 세상에 말걸다’(진행 금태섭 변호사)에서는 군대를 바라보는 두가지 상반된 시각을 조명한다. 병역거부자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 약 1만 2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대다수는 집총을 거부하는 교리로 잘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신도. 성우 양지운(59)씨도 이 때문에 두 아들이 징집을 거부해 교도소에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씨의 징집거부를 시작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이들의 병역거부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교도소를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취업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으며 ‘사회적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와 반대로 해외영주권자의 자원입대도 늘고 있는 추세다.2004년부터 지금까지 256건에 달한다. 군대에 다녀와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고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에 대한 두가지 대립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병역특례비리 수사 확대하라

    한동안 잠잠하던 병역비리가 다시 터질 조짐이다. 서울동부지검이 그제 서울 병무청이 관할하는 병역특례업체 60여곳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어제는 비리혐의가 짙은 6개 업체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 모 병역특례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 중인 유명 남성그룹 출신 가수와 축구팀 선수 몇 명도 소환했다고 한다. 수사 대상자만 수백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2004년 프로야구 선수와 연예인 병역비리 사건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병역특례업체는 관리감독이 소홀해 병역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다. 전국 8500여개의 병역특례업체에 3만 6000명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의 선발과 관리를 모두 업체가 쥐고 있어 뒷돈을 주고 특례 혜택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껏 비리가 터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검찰은 고시준비생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병역특례자로 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기록을 위조한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공계 학생들이 병역특례자로 선정되는 대가로 교수들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한다. 병역특례업체가 특례를 주고 받은 돈은 1인당 2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뒷거래를 통해 특례자로 선발돼 병역의무를 면하는 일은 돈 없는 사람만 군대에 가는 불평등과 사회부조리를 조장한다. 검찰이 검사 5명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참에 서울병무청 관할 업체만 수사할 게 아니라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일이다.
  • ‘옐친 시장경제 도입 16년’ 지금의 러시아는

    1991년 8월. 공산체제 회귀를 주장하는 보수파의 쿠데타를 탱크 위 사자후의 연설로 진압했던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가 공산 러시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지 16년. 지금 러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정책비판 기자 다수 실종·테러 옐친이 집권한 9년, 특히 초반부는 국가 재산의 사유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옐친 가족과 측근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임기 후반, 폭음가였던 그는 만취 상태로 국제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고, 결국 지지도 2%인 상태에서 국가정보국(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권력을 조기 이양했다. ‘칼’ 같은 냉정함과 엄숙함으로 옐친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이고 있는 푸틴은 옐친 시대를 쥐고 흔든 미하일 코도르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올리가르흐’(국가 재산을 불하받은 과두 재벌)들을 추방하며 경제엘리트 길들이기에 나섰다.‘창조자’라기보다는 ‘(사회주의체제)파괴자’에 더 가까웠던 옐친과 달리, 그는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다시 꾀했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미디어를 대부분 국유화하고 통제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자들이 다수 실종됐고 테러를 당했다. 지난 수십년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던 체첸의 주지사도 2004년 9월 학교인질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중앙임명제로 전환했다.2003년 12월 치러진 총선에서 러시아 야당은 거의 모든 의석을 상실했다. 사실상 정치권은 ‘야당 제로’인 상태. 서방은 친 크렘린 일색인 언론이 만든 결과라고 비난했다. 최근 일어난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반정부 평화 시위도 푸틴은 단숨에 진압했다. ●‘강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 푸틴의 대국민 모토는 ‘강한 러시아의 부활’이다. 냉전시기 세상의 절반을 대표하던 강력한 러시아 재건에 나서 최근에는 미국·중국 등에 맞서는 외교적 입지를 확보했다. 특히 푸틴은 체첸 분리독립 운동의 군사적 진압 명분을 얻기 위해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과 손을 잡았다.2002년 5월, 냉전시기 소연방을 겨냥해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도 적극 손을 내밀어 ‘나토-러시아 협의체’를 만들었다. 테러·안보 이슈에 서방과 동등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 이란 정책에선 ‘마이 웨이’를 고집한다. 특히 핵개발 우려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운 이란의 부셰르 원전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면서도 핵심 이슈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명암 러시아 경제는 1998년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 유예선언)으로 사실상 붕괴됐었다. 하지만 이후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8년 연속 평균 6.7%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냈다. 물론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 덕도 컸다. 국영 에너지 회사인 가즈프롬은 유럽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25%를 공급하고, 아시아·미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푸틴은 옐친 시대 개인 수중으로 들어간 ‘유코’ 등 석유 회사를 다시 국유화하고 세금, 금융, 노동문제에서 강력한 개혁 정책을 실시, 이같은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빈부격차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출산율 감소, 인구 전체를 위협하는 건강문제, 군대 부패 등 극복해야 할 개방 후유증도 만만찮다.1인당 국민총생산과 소득은 각각 1만 2100달러,4460달러이지만 재화의 4분의1을 재력가 36명이 소유하고 있다. 잡지 포브스는 러시아의 억만장자는 60명이라고 소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여성&남성]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내가 너를 처음 본 곳 마지막 한번 가보고 싶었어. 비가 오는 이 밤길을 정신없이 그냥 걷고 있네. 한도 없이 걷다보면 너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태지와 아이들,‘널 지우려 해’ 중에서) 한 사람이 내 머리에, 그리고 몸에 남긴 각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때로는 끊기 힘든 마약처럼 정을 다 줬던 사람의 기억은 일상의 하나 하나를 파고든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기억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법. 남자와 여자, 그들은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까.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천모(27)씨는 실연이라는 아픔을 겪을 때는 항상 ‘재연 배우’가 된다.“이제는 제목도 잊어버렸는데요. 아주 오래 전에 영화에서 옷을 입은 채 샤워기 앞에 서서 물을 틀고, 쏟아지는 물과 함께 눈물을 흘려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한번 따라해 봤을 뿐인데 이제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영화 속 그 장면을 반복 연출하고 있지요.” 대학생 방모(29)씨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가 될 때까지 달린다. 평소에도 마라톤을 즐기던 방씨는 “실연당하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뛰고 또 뛴다.”고 밝혔다.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내 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될 때까지 뛰고 나면 더 이상 슬프지 않다.”면서 “눈물로 흘러넘칠 물기까지 모두 땀으로 내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며 미소를 짓는다. 몰입을 통해 잡념을 버리는 또다른 방법으로 대학원생 지모(29)씨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한창 인기인 ‘무한도전’을 권한다. “계속 봅니다. 재방송도 보고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도 하고 유선방송도 봅니다. 등장인물이 벌이는 도전을 하나씩 따라해 봅니다.”지씨는 “무모한 목표를 달성하느라 헤어진 여자 같은 건 이미 기억에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남는 허탈함은 지씨도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애인의 모든 흔적을 없앤다 취업준비생 추모(26)씨는 애인과 헤어질 때 미니홈피 싸이월드에서 애인과 맺었던 일촌관계도 같이 끊었다. 하지만 꽤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애인과 추씨를 모두 아는 사람이 많아 일촌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더 좋아했던 사람이라 잊기가 힘들었다.”면서 “일촌 파도타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나 자신이 초라하고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추씨는 “싸이월드 일촌 파도타기를 하며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옛 애인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촌 파도타기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일촌 파도타기 덕분에 이별의 아픔을 잊어가던 회사원 마모(29)씨.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아뿔싸! 그토록 잊고 싶던 옛 애인 미니홈피였다. 마씨는 파도타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그녀 흔적이 없는 곳으로 상처가 너무 커서 이 나라가 싫어졌다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공모(21)씨는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군 입대를 자원했지만 입대일이 예정보다 늦어지자 학교를 휴학하고 해외연수를 택했다. 공씨는 “그 친구 흔적이 남아 있는 캠퍼스를 도저히 다닐 자신이 없다.”면서 “새로운 환경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군대 신병교육대에 붙어 있는 유명한 글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은 즐겨라.”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달 여자친구와 헤어진 대학생 피모(27)씨는 “여자친구 때문에 방해받았던 일이 많았다.”면서 “그동안 못 해본 걸 다하면서 그 여자 따윈 잊겠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여자친구한테 들킬까봐 자제하던 무도회장과 클럽 같은 ‘야간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피씨는 상대의 입맛에 맞추느라 먹고 싶어도 참았던 것들도 즐겨 먹는다.“여자친구와 모든 걸 함께해야 하는 생활이 아니라 나 혼자의 삶을 찾고 있습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동병상련’ 동지 만나 아픔 치유 회사원 이모(26)씨는 최근 오래 사귀어오던 남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늘 그랬듯 남자들은 별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헤어지자.”는 말만 했다. 헤어짐의 고통은 그나마 참을 수 있는데 왜 헤어지자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고 남자란 동물을 믿어버린 자신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이른바 ‘동지 만들기’. 이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 다른 친구와 만나 남자 친구의 험담을 하며 아픔을 치유했다.“친구와 헤어진 남자 친구의 험담을 하면서 자연스레 실연을 극복했어요.” 대학생 정모(25)씨는 1주일에 3일은 술을 마실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 ‘주당’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남자 친구가 영문을 모르는 이별 통보를 해온 날. 정씨는 소주 10병을 사온 뒤 자기 방에다 나란히 나열해 놓고 초록생 병들만 바라보며 밤을 지샜다.“아침이 되어 잠이 들었더니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것 같더군요.” 대학생 김모(25)씨는 실연을 당했을 때 그 남자의 기억을 하나씩 지우는 걸로 분풀이를 한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김씨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그가 쓴 모든 댓글과 사진 등을 하나씩 지운 뒤 그의 홈피에 있는 자신의 흔적도 하나씩 지웠다.“글이 모두 삭제된 걸 그가 알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통쾌하기 그지 없더군요. 그러고나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어요.” ●추억을 곱씹으며 기억을 지운다 대학생 박모(23)씨는 떠난 연인의 단점을 하나씩 기억나는 대로 적으면서 아픔을 지웠다. 그의 못된 버릇, 마음에 들지 않았던 행동과 말투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의 부정적인 모습만 각인시키려 애썼다.“아름다웠던 추억은 나만의 아픔이 될 뿐이더라고요. 그를 미워하기 위해 나쁜 기억만 떠올리면 점점 그는 잊혀지고 나는 또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게 되더군요.” 전문직으로 일하는 이모(26)씨는 반대로 추억을 곱씹으면서 기억을 지워나가는 스타일이다. 이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다녔던 단골 밥집이나 커피숍 등의 아지트들을 동성 친구와 함께 가거나 혼자 다니면서 추억과 아픔을 떠올려본다.“언제부턴가 저 혼자 그 집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됐을 때 ‘이제 그가 정리됐구나.’ 싶더군요.” 회사원 배모(24)씨는 학구적으로 실연을 극복한다. 평소 가이드책을 읽길 좋아하는 배씨는 실연당했을 때도 서점으로 달려가 ‘실연극복하기’에 대한 지침서를 사들고 그에 따라 조금씩 아픔을 잊어간다.“예전에는 흥밋거리로 읽었는데 차츰 가슴 속에 하나씩 와닿는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실연당한 친구에게도 이 방법을 권하고 있어요.” ●다른 일에 몰두해 상처 보듬어 학원강사 박모(26)씨는 집중할 무언가를 찾아 실연의 아픔을 극복한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이것저것 찾아헤매던 박씨는 그 결론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찾아냈다. 생전 집안 일이라고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자 어머니가 웬일이냐며 기특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뒀다.“남자친구의 얼굴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면서 분리수거를 하다보면 어느덧 그 남자는 기억 저 구석에 처박히게 되죠.” 회사원 송모(29)씨가 선택한 취미는 웨이트 트레이닝. 땀을 흘리며 조금씩 몸매를 다듬어가는 운동에 집중하면서 기억도 땀샘으로 내보냈다.“헤어진 남자 친구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죠.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 다른 취미들도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고 있어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주택 대량건설 추진등 ‘공정한 질서’

    |파리 이종수특파원|세골렌 루아얄(53)은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여성 정치인이다. 1953년 세네갈에서 프랑스 육군 대령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ENA 동기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와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 형태로 살면서 네 자녀를 두었다.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가족장관과 환경장관을 지냈다. 특히 가족장관 시절 학교 폭력과 아동 포르노물 척결에 주력했다. 남성 출산 휴가제도 그녀가 재직 시절 도입했다. 2004년 지방선거에서 여당 거물 정치인과의 대결에서 승리, 푸아투샤랑트 지방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스타’로 급부상했다. 블로그 정치에 일찍 눈을 뜨는 등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운 참신한 이미지로 기존 정치인에게 싫증이 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공정한 질서’를 슬로건으로 100대 공약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최저 임금 월 1500유로로 인상 ▲저소득층 은퇴자 연금 수령액 5% 인상 등을 주장했다. 또 주 35시간 근로제 권리는 강화하면서 부정적 요소는 줄여 가자는 입장이다. 또 중앙 정부의 재정 규모는 줄이고 지방자치단체들에 더 많은 재량권을 주며,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주택을 대량 건설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1만유로를 대출해 주고,25세 이하 여성에게 무료로 피임약을 제공하겠다는 정책도 공약에 포함됐다. 그러나 필요하면 비행 청소년을 군대식 훈련 캠프에 보내 교육하겠다는 방안과 정치인의 직무 수행을 평가하는 시민 배심원제 창설을 추진하는 등 사회당의 정통 노선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 제안들을 잇달아 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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