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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5 충격… 한나라 내부기류 살펴보니] 朴측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나라당이 4·25 재·보선 참패 책임 소재를 놓고 내홍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측은 27일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과 일전불사 의지를 표출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측은 전날 박 전 대표가 대전 서을 국회의원 선거 패배 책임론과 관련,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 통과 당시 ‘군대라도 동원해 막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던 이 전 시장을 겨냥해 파문이 일자 “말이야 바른 말 아니냐.”며 정면 돌파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은 “농담조로 한 말을 특정신문이 잘못 보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은 지난 2005년 2월24일 경기 남양주 강북 정수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뒤 정부의 강행 방침에 대한 대응방안을 묻자 “어떻게 할까. 군대라도 동원할까.”라고 말했었다. 당시 서울신문이 이 전 시장의 발언을 단독보도해 파문이 일자 서울시는 농담조로 한 말이었다고 해명했었다. 박 전 대표측의 한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보육 발언’‘충청 비하 발언’‘시베리아 발언’ 등 자신의 말이 파문을 일으킬 때마다 석연찮은 변명으로 빠져나가는 데 급급했다.”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비판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4·25 충격… 한나라 내부기류 살펴보니] 李측 “참기만 하는 것 오래 안갈것”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관련 ‘군대 동원’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은 삼갔지만 이 전 시장 참모들은 내부적으로 격앙된 분위기다. 이 전 시장은 27일 “지금 국민이 한나라당과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해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행정도시가 계획대로 차질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면서 “특히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도록 행정도시에 플러스 알파 기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서실장인 주호영 의원은 “그동안 지켜봐 온 박 전 대표의 이미지와 너무 차이가 나 당혹스럽다.”며 “사실 우리가 일방적으로 공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핵심측근은 “우리가 박 전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과 당을 같이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면 좋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전 시장 캠프의 한 관계자는 “조용히 참기만 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전 시장이 최근 “몇달 말조심 했더니 이명박도 뭐도 아닌 사람이 됐다.”는 말도 이번 건은 참지만, 조만간 이 전 시장이 ‘참아온 말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자숙 하루만에 “네 탓”

    자숙 하루만에 “네 탓”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이 4·25 재·보선 참패 이후 자숙하는 모습을 보인지 불과 하루만에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양 진영의 감정 싸움에 대한 당내 우려와 비판도 고조되고 있다. 양측의 이번 대립은 표면상 재·보선 공동유세 불발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간 후보 검증문제 등을 둘러싸고 쌓여 있던 감정이 분출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경선 대결국면이 앞당겨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박 전 대표측이 “사실관계는 분명히 해야 한다.”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태세이고, 이 전 시장측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정면 대응을 삼가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일전불사의 전의를 가다듬고 있어 양측은 사실상 전면전에 들어간 상태다. 두 대선주자간 정면충돌은 4·25 재·보궐선거시 ‘공동유세 무산’이 유권자들에게 당의 분열상을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선거결과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당내의 지적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일부 언론을 통해 이 전 시장 책임론을 들먹이며 역공을 펴면서 비롯됐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유세하고 이벤트나 벌이면 대전 시민의 마음이 바뀌었겠느냐.”며 “군대를 동원해 행정도시를 막겠다는 분과 유세를 같이 했으면 표가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 캠프는 27일 오전 긴급 회의를 갖고 일단 정면 대응은 피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전 시장의 최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가 오해를 하고 그런 말을 한 것 같다.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캠프측에 어떤 대응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무대응 전략’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캠프 내에서는 “우리는 일방적으로 공격만 당했는데 언론에서는 같이 싸우는 걸로 보도된다.”며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나라당 지도부 중 이재오 최고위원도 이날 조건부 사퇴 가능성을 시사한데다 유석춘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본부장직에서 물러나는 등 지도부 사퇴 도미노가 이어졌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 여행/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지난 주말 문상을 하느라 경북 안동시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혼자 갈 생각이었다. 군대친구인 상주가 아내와는 만난 적이 없는 데다 문상 길에 꼬박 하루를 잡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가 따라나선다고 했다. 쉬는 날이면 밀린 잠 자기에 바쁘던 사람이 의외였다. 어쨌거나 기왕 안동에 가는 길이니 도산서원·하회마을도 둘러보고 하룻밤 묵고 오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아이들 먹거리다 뭐다 준비하고 나니 점심 때가 되어서야 출발했다. 도로는 이미 정체가 심했지만 아내는 마냥 즐거운 기색이었다. 나 자신도 여느때와 달리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왜일까. 아차, 그렇군! 아이들을 떼어놓고 둘만이 여행길에 나선 게 결혼 20여년만에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번 1박2일 여행이 우리 부부에게는 정말 자유로웠다. 그동안 너무 아이들에 얽매여 산 건 아닐까. 우리는 석달에 한번 둘만이 여행하는 기회를 갖기로 약속했다. 아내와 내가 이 약속만은 꼭 지키리라고 나는 예감한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병역 거부자와 자원자들의 시각

    대학생 정재훈씨는 지난 2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1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 영주권자인 박재록씨는 굳이 안가도 되는 군대에 새달 28일 자원 입대한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과 갈 필요가 없는 군대를 자처하는 사람들. 왜 이런 선택을 할까? 27일 오후 10시50분에 방송되는 EBS 시사프로그램 ‘시사, 세상에 말걸다’(진행 금태섭 변호사)에서는 군대를 바라보는 두가지 상반된 시각을 조명한다. 병역거부자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 약 1만 2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대다수는 집총을 거부하는 교리로 잘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신도. 성우 양지운(59)씨도 이 때문에 두 아들이 징집을 거부해 교도소에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씨의 징집거부를 시작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이들의 병역거부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교도소를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취업 등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으며 ‘사회적 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와 반대로 해외영주권자의 자원입대도 늘고 있는 추세다.2004년부터 지금까지 256건에 달한다. 군대에 다녀와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오더라도 취업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고 떳떳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군대에 대한 두가지 대립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병역특례비리 수사 확대하라

    한동안 잠잠하던 병역비리가 다시 터질 조짐이다. 서울동부지검이 그제 서울 병무청이 관할하는 병역특례업체 60여곳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어제는 비리혐의가 짙은 6개 업체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다. 모 병역특례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 중인 유명 남성그룹 출신 가수와 축구팀 선수 몇 명도 소환했다고 한다. 수사 대상자만 수백명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2004년 프로야구 선수와 연예인 병역비리 사건 이후 최대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병역특례업체는 관리감독이 소홀해 병역비리의 온상으로 지적돼 왔다. 전국 8500여개의 병역특례업체에 3만 6000명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의 선발과 관리를 모두 업체가 쥐고 있어 뒷돈을 주고 특례 혜택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껏 비리가 터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검찰은 고시준비생으로부터 돈을 받은 뒤 병역특례자로 회사에 근무하는 것처럼 기록을 위조한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공계 학생들이 병역특례자로 선정되는 대가로 교수들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고 한다. 병역특례업체가 특례를 주고 받은 돈은 1인당 2000만∼5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뒷거래를 통해 특례자로 선발돼 병역의무를 면하는 일은 돈 없는 사람만 군대에 가는 불평등과 사회부조리를 조장한다. 검찰이 검사 5명을 투입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이참에 서울병무청 관할 업체만 수사할 게 아니라 수사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일이다.
  • ‘옐친 시장경제 도입 16년’ 지금의 러시아는

    1991년 8월. 공산체제 회귀를 주장하는 보수파의 쿠데타를 탱크 위 사자후의 연설로 진압했던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가 공산 러시아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지 16년. 지금 러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정책비판 기자 다수 실종·테러 옐친이 집권한 9년, 특히 초반부는 국가 재산의 사유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옐친 가족과 측근들의 부패는 극에 달했고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임기 후반, 폭음가였던 그는 만취 상태로 국제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고, 결국 지지도 2%인 상태에서 국가정보국(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권력을 조기 이양했다. ‘칼’ 같은 냉정함과 엄숙함으로 옐친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이고 있는 푸틴은 옐친 시대를 쥐고 흔든 미하일 코도르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올리가르흐’(국가 재산을 불하받은 과두 재벌)들을 추방하며 경제엘리트 길들이기에 나섰다.‘창조자’라기보다는 ‘(사회주의체제)파괴자’에 더 가까웠던 옐친과 달리, 그는 권력의 중앙집권화를 다시 꾀했다. 특히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미디어를 대부분 국유화하고 통제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기자들이 다수 실종됐고 테러를 당했다. 지난 수십년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던 체첸의 주지사도 2004년 9월 학교인질 유혈사태가 발생한 이후 중앙임명제로 전환했다.2003년 12월 치러진 총선에서 러시아 야당은 거의 모든 의석을 상실했다. 사실상 정치권은 ‘야당 제로’인 상태. 서방은 친 크렘린 일색인 언론이 만든 결과라고 비난했다. 최근 일어난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반정부 평화 시위도 푸틴은 단숨에 진압했다. ●‘강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 푸틴의 대국민 모토는 ‘강한 러시아의 부활’이다. 냉전시기 세상의 절반을 대표하던 강력한 러시아 재건에 나서 최근에는 미국·중국 등에 맞서는 외교적 입지를 확보했다. 특히 푸틴은 체첸 분리독립 운동의 군사적 진압 명분을 얻기 위해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미국과 손을 잡았다.2002년 5월, 냉전시기 소연방을 겨냥해 설립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도 적극 손을 내밀어 ‘나토-러시아 협의체’를 만들었다. 테러·안보 이슈에 서방과 동등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 이란 정책에선 ‘마이 웨이’를 고집한다. 특히 핵개발 우려로 서방과 대립각을 세운 이란의 부셰르 원전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면서도 핵심 이슈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외교적 위상을 높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급속한 경제 성장의 명암 러시아 경제는 1998년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 유예선언)으로 사실상 붕괴됐었다. 하지만 이후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8년 연속 평균 6.7%라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냈다. 물론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 덕도 컸다. 국영 에너지 회사인 가즈프롬은 유럽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25%를 공급하고, 아시아·미국 시장 진출도 노리고 있다. 푸틴은 옐친 시대 개인 수중으로 들어간 ‘유코’ 등 석유 회사를 다시 국유화하고 세금, 금융, 노동문제에서 강력한 개혁 정책을 실시, 이같은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었다. 그러나 빈부격차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출산율 감소, 인구 전체를 위협하는 건강문제, 군대 부패 등 극복해야 할 개방 후유증도 만만찮다.1인당 국민총생산과 소득은 각각 1만 2100달러,4460달러이지만 재화의 4분의1을 재력가 36명이 소유하고 있다. 잡지 포브스는 러시아의 억만장자는 60명이라고 소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여성&남성] 실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내가 너를 처음 본 곳 마지막 한번 가보고 싶었어. 비가 오는 이 밤길을 정신없이 그냥 걷고 있네. 한도 없이 걷다보면 너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아….”(서태지와 아이들,‘널 지우려 해’ 중에서) 한 사람이 내 머리에, 그리고 몸에 남긴 각인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때로는 끊기 힘든 마약처럼 정을 다 줬던 사람의 기억은 일상의 하나 하나를 파고든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기억력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법. 남자와 여자, 그들은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까. 그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천모(27)씨는 실연이라는 아픔을 겪을 때는 항상 ‘재연 배우’가 된다.“이제는 제목도 잊어버렸는데요. 아주 오래 전에 영화에서 옷을 입은 채 샤워기 앞에 서서 물을 틀고, 쏟아지는 물과 함께 눈물을 흘려보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한번 따라해 봤을 뿐인데 이제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영화 속 그 장면을 반복 연출하고 있지요.” 대학생 방모(29)씨는 영화속 주인공처럼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가 될 때까지 달린다. 평소에도 마라톤을 즐기던 방씨는 “실연당하면 심장이 터질 때까지 뛰고 또 뛴다.”고 밝혔다. 그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내 몸의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 될 때까지 뛰고 나면 더 이상 슬프지 않다.”면서 “눈물로 흘러넘칠 물기까지 모두 땀으로 내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며 미소를 짓는다. 몰입을 통해 잡념을 버리는 또다른 방법으로 대학원생 지모(29)씨는 요즘 텔레비전에서 한창 인기인 ‘무한도전’을 권한다. “계속 봅니다. 재방송도 보고 인터넷에서 다시보기도 하고 유선방송도 봅니다. 등장인물이 벌이는 도전을 하나씩 따라해 봅니다.”지씨는 “무모한 목표를 달성하느라 헤어진 여자 같은 건 이미 기억에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 남는 허탈함은 지씨도 어찌 할 방법이 없다. ●애인의 모든 흔적을 없앤다 취업준비생 추모(26)씨는 애인과 헤어질 때 미니홈피 싸이월드에서 애인과 맺었던 일촌관계도 같이 끊었다. 하지만 꽤 오래 사귀었기 때문에 애인과 추씨를 모두 아는 사람이 많아 일촌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더 좋아했던 사람이라 잊기가 힘들었다.”면서 “일촌 파도타기를 하면서 처음에는 나 자신이 초라하고 비굴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추씨는 “싸이월드 일촌 파도타기를 하며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옛 애인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촌 파도타기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게 하나 있다. 일촌 파도타기 덕분에 이별의 아픔을 잊어가던 회사원 마모(29)씨.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거머쥐었다. 아뿔싸! 그토록 잊고 싶던 옛 애인 미니홈피였다. 마씨는 파도타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까. ●그녀 흔적이 없는 곳으로 상처가 너무 커서 이 나라가 싫어졌다는 사람도 있다. 대학생 공모(21)씨는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군 입대를 자원했지만 입대일이 예정보다 늦어지자 학교를 휴학하고 해외연수를 택했다. 공씨는 “그 친구 흔적이 남아 있는 캠퍼스를 도저히 다닐 자신이 없다.”면서 “새로운 환경이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군대 신병교육대에 붙어 있는 유명한 글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은 즐겨라.”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달 여자친구와 헤어진 대학생 피모(27)씨는 “여자친구 때문에 방해받았던 일이 많았다.”면서 “그동안 못 해본 걸 다하면서 그 여자 따윈 잊겠다.”고 밝혔다. 그는 요즘 여자친구한테 들킬까봐 자제하던 무도회장과 클럽 같은 ‘야간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피씨는 상대의 입맛에 맞추느라 먹고 싶어도 참았던 것들도 즐겨 먹는다.“여자친구와 모든 걸 함께해야 하는 생활이 아니라 나 혼자의 삶을 찾고 있습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동병상련’ 동지 만나 아픔 치유 회사원 이모(26)씨는 최근 오래 사귀어오던 남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늘 그랬듯 남자들은 별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표정으로 “헤어지자.”는 말만 했다. 헤어짐의 고통은 그나마 참을 수 있는데 왜 헤어지자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고 남자란 동물을 믿어버린 자신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러다 찾아낸 방법이 이른바 ‘동지 만들기’. 이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진 다른 친구와 만나 남자 친구의 험담을 하며 아픔을 치유했다.“친구와 헤어진 남자 친구의 험담을 하면서 자연스레 실연을 극복했어요.” 대학생 정모(25)씨는 1주일에 3일은 술을 마실 정도로 친구들 사이에 ‘주당’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남자 친구가 영문을 모르는 이별 통보를 해온 날. 정씨는 소주 10병을 사온 뒤 자기 방에다 나란히 나열해 놓고 초록생 병들만 바라보며 밤을 지샜다.“아침이 되어 잠이 들었더니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것 같더군요.” 대학생 김모(25)씨는 실연을 당했을 때 그 남자의 기억을 하나씩 지우는 걸로 분풀이를 한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김씨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그가 쓴 모든 댓글과 사진 등을 하나씩 지운 뒤 그의 홈피에 있는 자신의 흔적도 하나씩 지웠다.“글이 모두 삭제된 걸 그가 알고 황당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통쾌하기 그지 없더군요. 그러고나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어요.” ●추억을 곱씹으며 기억을 지운다 대학생 박모(23)씨는 떠난 연인의 단점을 하나씩 기억나는 대로 적으면서 아픔을 지웠다. 그의 못된 버릇, 마음에 들지 않았던 행동과 말투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의 부정적인 모습만 각인시키려 애썼다.“아름다웠던 추억은 나만의 아픔이 될 뿐이더라고요. 그를 미워하기 위해 나쁜 기억만 떠올리면 점점 그는 잊혀지고 나는 또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게 되더군요.” 전문직으로 일하는 이모(26)씨는 반대로 추억을 곱씹으면서 기억을 지워나가는 스타일이다. 이씨는 남자친구와 함께 다녔던 단골 밥집이나 커피숍 등의 아지트들을 동성 친구와 함께 가거나 혼자 다니면서 추억과 아픔을 떠올려본다.“언제부턴가 저 혼자 그 집을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됐을 때 ‘이제 그가 정리됐구나.’ 싶더군요.” 회사원 배모(24)씨는 학구적으로 실연을 극복한다. 평소 가이드책을 읽길 좋아하는 배씨는 실연당했을 때도 서점으로 달려가 ‘실연극복하기’에 대한 지침서를 사들고 그에 따라 조금씩 아픔을 잊어간다.“예전에는 흥밋거리로 읽었는데 차츰 가슴 속에 하나씩 와닿는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실연당한 친구에게도 이 방법을 권하고 있어요.” ●다른 일에 몰두해 상처 보듬어 학원강사 박모(26)씨는 집중할 무언가를 찾아 실연의 아픔을 극복한다.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이것저것 찾아헤매던 박씨는 그 결론으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찾아냈다. 생전 집안 일이라고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자 어머니가 웬일이냐며 기특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뒀다.“남자친구의 얼굴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면서 분리수거를 하다보면 어느덧 그 남자는 기억 저 구석에 처박히게 되죠.” 회사원 송모(29)씨가 선택한 취미는 웨이트 트레이닝. 땀을 흘리며 조금씩 몸매를 다듬어가는 운동에 집중하면서 기억도 땀샘으로 내보냈다.“헤어진 남자 친구보다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죠.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 다른 취미들도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고 있어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주택 대량건설 추진등 ‘공정한 질서’

    |파리 이종수특파원|세골렌 루아얄(53)은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코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여성 정치인이다. 1953년 세네갈에서 프랑스 육군 대령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ENA 동기인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와 정식 결혼이 아닌 동거 형태로 살면서 네 자녀를 두었다.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가족장관과 환경장관을 지냈다. 특히 가족장관 시절 학교 폭력과 아동 포르노물 척결에 주력했다. 남성 출산 휴가제도 그녀가 재직 시절 도입했다. 2004년 지방선거에서 여당 거물 정치인과의 대결에서 승리, 푸아투샤랑트 지방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스타’로 급부상했다. 블로그 정치에 일찍 눈을 뜨는 등 ‘참여 민주주의’를 내세운 참신한 이미지로 기존 정치인에게 싫증이 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공정한 질서’를 슬로건으로 100대 공약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최저 임금 월 1500유로로 인상 ▲저소득층 은퇴자 연금 수령액 5% 인상 등을 주장했다. 또 주 35시간 근로제 권리는 강화하면서 부정적 요소는 줄여 가자는 입장이다. 또 중앙 정부의 재정 규모는 줄이고 지방자치단체들에 더 많은 재량권을 주며,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주택을 대량 건설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젊은이에게 1만유로를 대출해 주고,25세 이하 여성에게 무료로 피임약을 제공하겠다는 정책도 공약에 포함됐다. 그러나 필요하면 비행 청소년을 군대식 훈련 캠프에 보내 교육하겠다는 방안과 정치인의 직무 수행을 평가하는 시민 배심원제 창설을 추진하는 등 사회당의 정통 노선과는 거리가 있는 정책 제안들을 잇달아 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vielee@seoul.co.kr
  • 날아라 허동구 어린이 주인공 최우혁·윤찬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날아라 허동구’(박규태 감독)의 두 주연인 최우혁(사진 오른쪽·10)과 윤찬(11)군. 초등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IQ 60의 장애아 동구(최우혁)가 아버지(정진영)와 짝꿍 준태(윤찬)의 도움으로 야구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둘은 각각 경기도 화성시 매송초등학교(4학년)와 서울 예일초등학교(5학년)에 재학중이다. 이번 영화가 우혁에게는 세번째, 찬에게는 첫번째 스크린 나들이다. 영화를 찍으며 너무도 친해진 듯 인터뷰 내내 우혁이와 찬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 다 영화촬영을 하기에는 아직 어린데…촬영이 힘들지는 않았니? -윤:감독님께서 저한테 “영화 속에서 넌 ‘아웃사이더’니까 그 점을 잘 표현해 내라.”고 하셨는데 사실 아웃사이더가 무슨 말인지 몰라 힘들었어요. 집에서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며 행동이나 표정 등을 도와주셔서 촬영을 잘 끝낼 수 있었어요. -최:한겨울에 반팔 야구복을 입고 영화를 찍어야 했거든요.(영화 속 마지막 부분)그때 너무너무 추워 엄마를 껴안고 엉엉 울었어요.(TT)감독님이 미웠어요.(ㅋㅋㅋ)(영화사에 확인 결과 당시는 3월로 봄이지만 촬영 당일에는 바람이 불어 좀 쌀쌀했다 함.) ●“장애 친구 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서 너희들도 영화를 찍으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최:동구 역할을 잘하고 싶어서 영화 촬영 내내 장애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다니며 행동들을 배웠어요. 그때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이 기쁘고 슬퍼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 배운 공부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윤:초등학교 1∼2학년 때 영화 속 동구처럼 정신지체를 가진 친구가 있었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그 친구의 어려움을 잘 몰랐는데 영화를 찍다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그 친구에게 좀 더 잘해 줄 걸.’하는 아쉬움도 들었고요. 다음에라도 장애를 가진 친구와 한반이 되면 많이많이 도와주고 싶어요. ▶너희들 영화 촬영하느라 학교 나가기도 어려울 텐데… 밥은 먹고 다니니? -윤:영화 찍을 때(지난해 6∼8월) 저하고 우혁이는 아예 학교를 영화 촬영장소인 전주 진북초등학교로 옮겨서 공부했어요. 촬영이 끝난 지금도 학교수업은 오전에만 듣고 행사에 참가해야 돼 점심을 거를 때도 가끔 있어요. -최:예전에도 그랬는데 요즘에는 학교 나가기가 더 힘들어졌어요. 이번주에는 학교를 한번도 못 갔어요.(ㅋㅋㅋ)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저는 영화 찍느라고 8㎏이나 늘려서(42㎏) 당분간은 밥 조금 덜 먹어도 돼요.(ㅋㅋㅋ) ▶학교에 잘 못나가니까 친구들과 사귀는 데 어려움이 많겠구나…. -최:아니에염. 저는 반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어요. 그것만 봐도 학교에서의 제 인기를 아시겠죠? 아저씨는 학교 다닐 때 이런 거 못해 보셨죠?(ㅋㅋㅋ) -윤:저는 이번 영화시사회에 반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덕분에 애들과도 더 친해지고 인기도 더 많아졌어요. 학교에 자주 못 나가도 친구들과 친해지는 데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연기할래요” ▶영화에서 보면 우혁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찬이가 싫어하던데…실제 둘 사이는 어떠니? -윤:사실 우리 둘이 너무 친해서 걱정이에요. 우혁이가 뽀뽀를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저한테 뽀뽀를 하거든요. -최:저도 찬이형이 젤루 좋아요. ▶너희들, 좋아하는 연기자 있어? -윤·최:(이구동성으로)정진영 아저씨요∼ 너무 착하시고 잘해 주세요. ▶꼭 영화사에서 시킨 것 같잖아. 다른 사람은 없니? -최:저는 박준규 아저씨나 MC몽 형처럼 재밌는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윤:비(정지훈) 형이나 장동건 아저씨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음…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거니? -최:저는 군대에 갈 때까지만 할래요. 군대를 갔다와서는 아빠처럼 군인이 돼 나라를 지키고 싶어요. -윤:저는 연기를 죽을 때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연기가 너무너무 재밌어요. 만약 커서 연기자가 안 되면 건축가나 음악가 같은 사람이 될래요. ▶앞으로도 서로 친하게 지내고 커서도 훌륭한 연기자가 돼야지. -(들은 척도 안 하고)이제 인터뷰 끝난 거예요? 야∼신난다. 아저씨도 잘 들어가세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오후 5시10분) 자장면 배달에도 마케팅이 필요하다. 서울 동대문 배달의 기사라 불리는 이원철씨.13년간 갈고 닦은 실력으로 거침없이 거리를 누비는 그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대상이 있다. 바로 아내, 추쥐랜씨다. 쥐랜씨는 하루 용돈 5000원에, 자유분방(?)한 남편을 단속하기 위해 중국집 주인에게 일급제 확인까지 하는 살림꾼이다.●행복한 여자(KBS2 오후 7시55분) 지연은 태섭의 엄마가 생신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직접 목걸이를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라면서 태섭에게 전해준다. 그런 지연의 마음에 태섭은 감동한다. 태섭은 준호가 자신을 찾아왔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지연에게 은지와 지연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준호는 지연에게 재결합하자고 설득하지만, 태섭에게 마음이 가버린 지연은 준호를 받아들일 수 없다.●케 세라세라(MBC 오후 9시40분) 태주는 혜린에게 은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며 빨리 정리하자고 말한다. 혜린은 그런 말할 사람은 네가 아니고 나라며, 끝내도 내가 끝내고 차도 내가 찬다며 자신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혜린은 은수를 찾아가 현명하게 판단해서 빨리 태주와 정리하라고 한다. 은수는 태주는 자신의 남자라며 둘은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연개소문(SBS 오후 8시45분) 안개가 자욱한 밤을 틈타 당나라 장량의 수로군이 고구려 비사성 앞바다에 이른다. 이세민은 고구려의 주요 성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하고, 이미 고구려는 전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투를 벌인다. 비사성을 지키며 당나라 군대와 맞서 싸운 연수정과 쌍검녀는 중과부적을 실감하고 부상당한 검모잠 장군과 퇴각한다. 당나라 장량은 비사성을 함락한다.●스페이스 공감(EBS 오후 10시) 1989년에 강변가요제에서 ‘귀로’로 입상하며 데뷔한 박선주. 지금까지 보컬리스트, 보컬 트레이너, 교수, 음반 제작자, 그리고 재즈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왔다.EBS스페이스 개관 3주년 기념공연으로 마련된 박선주의 무대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다양한 음악을 따뜻하고 포근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녹여낼 예정이다.●라이프 n조이(YTN 오전 11시35분) 수백종의 선인장 탐방과 버섯의 놀라운 변신이 시작되는 곳. 새로운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는 웰빙 여행지, 평택으로 떠난다. 포승지역에 위치한 선인장 농가에서는 선인장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와 빛깔의 도예 작품들이 즐비한 도예방에서 직접 도예체험도 할 수 있다.
  • ‘외톨이 폭탄’ 우리도 안심 못한다

    ‘외톨이 폭탄’ 우리도 안심 못한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조승희(23)씨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적 성장은 뛰어나지만 정서적 성장은 멈춘 ‘아이 어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조씨처럼 이민 1.5세대로 정체성 혼란을 겪지 않았더라도 인성교육은 접어둔 채 입시에 ‘올인’하는 교육 시스템과 사회규범이 만신창이가 된 국내에서 ‘제2의 조승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총기 휴대가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진단했다. 총이 아니더라도 분출구를 찾지 못한 시한폭탄 같은 ‘외톨이’들이 공격 성향을 표출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입시 올인 시스템·軍·취업 스트레스 국내 대학생들이 군대와 취업 문제로 겪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특히 요즘 맞벌이 가정에서 홀로 자란 학생들이 많고, 중·고교에서 입시만을 목적으로 살며 컴컴한 방에 처박혀 인터넷에 몰두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한 외톨이들이 ‘예비 사회’로 비유되는 대학에 입학한 뒤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는 많이 보고되고 있다. 반건호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는 “상담을 하다 보면 대학에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 우울증을 호소하며 군대로 빠지거나 유학, 연수로 현실을 피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의 일종인 야스퍼거병 환자들은 ‘외톨이 폭탄’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반 교수는 “야스퍼거병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눈을 못 맞추고 사회적 감각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자기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다. 다만 지능이 뛰어나고 언어감각이 발달해 대학에 많이 가는데, 동아리나 과 활동은 하지 못하고 홀로 떨어지다 보면 다른 이를 원망하고 화내게 된다.”고 말했다. ●정신분열증 20대 초반에 두드러져 우영섭 대전성모병원 정신과 교수는 “정신분열증은 전 인구의 1% 정도에서 나타나는데, 군대나 대학에서 강한 압박을 받는 20대 초반이 두드러진다. 일부 체육대 학생들이 보여준 강제 신고식처럼 강압적인 문화를 접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에는 대학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입학하자마자 또다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이와의 유대를 생각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낙오자 보듬는 사회풍토 만들어야 이어 “인터넷으로 관계를 맺고 의사를 표현하는 학생들은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할 수 있고 자해나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사회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나타내는 세태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요즘 남학생의 경우 여권이 신장되는 변화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낸다.”면서 “여권 운동에 악플을 다는 소극적인 방법에서부터 여학생 단체 등의 기물을 파손하거나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또한 “폭력 수단의 한계로 당장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기는 힘들지만 자해, 자살 등 자기 파괴로 나타나거나 사이버상의 악플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총, 칼 등을 사용할 방법이 현실화한다면 사이버 상의 공격성이 오프라인에서 나타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영섭 교수는 “사회적으로 외톨이들을 배려해 주고 신경 써준다면 치료 반응도 훨씬 좋다.”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적 기준에서 떨어지면 낙오시키는 풍토에서는 증상 드러내기를 꺼리다 보니 치료도 늦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적절히 대응하면 이런 일은 안 생긴다.”면서 “조승희씨도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해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우 교수는 이번 일로 인해 정신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생길까 걱정이라고 했다. 강지인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편견 때문에 정신질환 초기에 병원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미리 치료 상담을 받아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인도에 미치다/이옥순 지음

    ‘알렉산드로스, 혜초, 바스코 다 가마, 비틀스….’ 인도를 찾아간 이방인들은 이들 외에도 끝이 없다. 지금도 세계인들의 여행 희망지 가운데 인도는 단연 첫번째 그룹에 속한다. 인도에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마치 ‘블랙홀’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일까. 신간 ‘인도에 미치다’(이옥순 지음, 김영사 펴냄)는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땅 인도를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도 델리대에서 인도 역사를 전공한 뒤 연세대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인도 전문가인 저자. 그는 ‘황금’이 이들을 인도로 끌어들였다고 말한다.“황금은 중의적 표현이다. 후추에서 금, 진리에서 자유까지. 인도를 찾아간 이방인들은 늘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 목적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들이 성취한 것이야말로 바로 황금과도 같은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어둠과 굵은 빗줄기를 뚫고 젤룸강을 건넜다. 진짜 ‘황금’을 얻기 위해서였다. 헤겔의 말처럼 ‘역사없는 인도’에는 당시의 기록이 없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알렉산드로스를 인도를 정복한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정말 인도를 정복했을까. 저자는 알렉산드로스가 겨우 인도의 서쪽지방에 도착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알았던 인도는 단순히 ‘명상의 나라’ 정도다. 그러나 과거부터 인도는 엄청난 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같은 부로 인해 인도는 침입과 정복을 부르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해 왔다.21세기에도 인도인들은 해마다 세계 금 생산량의 20∼30%를 사들인다.17세기 무굴제국을 찾은 유럽의 한 여행가는 농촌 여성이 금목걸이를 하고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인도에는 델리, 아그라, 수라트, 라호르 등 인구가 20만명이 넘는 도시가 9개나 있었다. 동시대 유럽에는 그런 도시가 런던, 파리, 나폴리 등 3개뿐이었다. 이렇듯 이 책은 인도가 가진 부에 주목한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20세기 초반까지 인도는 물질적 황금을 찾는 이들에 의한 약탈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기부터는 정신적 황금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인도를 찾고 있다. 비틀스는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 위해 아내와 여자친구들을 데리고 갠지스강 상류를 찾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비틀스의 뒤를 이어 위안을 얻기 위해 인도에 가고 있다. 마케도니아부터 영국까지 수없이 많은 나라에 정복당했지만 인도는 진짜로 정복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복자들을 힌두에 동화시켜 나갔다. 이 책은 이처럼 아무나 갈 수 있지만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인도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다.99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서울대 위안부강제동원 문서 첫 공개 해프닝 그 진실은?

    지난 12일 서울대에서는 ‘양치기 소년’ 해프닝이 있었다. 이날 오후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가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강제 연행해 매춘을 강요했다는 증거 문서 ‘일본 해군 점령기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서 발생한 강제매춘에 관한 보고서’가 처음 발견됐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 내용이 6년 전 발간된 책에 소개돼 있다.”면서 정 교수의 주장을 뒤집었다. 정 교수와 서울대는 검증 없이 성급한 발표를 했다며 망신을 당했고 문서의 의미는 온데간데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문서, 의미가 없는 걸까? 취재 결과 이 보고서는 당시 기자들이 증거로 제시한 책 ‘천황의 군대와 성 노예(당대)’, 그리고 일본의 아사히 신문에 몇줄 인용된 적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2001년 발간된 ‘천황의’는 1993년 일본 한 월간지 기사를 재인용한 것으로, 보고서를 다룬 자료는 지금까지 3건이다. 그러나 위의 세 자료와 비교해 정 교수가 공개한 보고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월간지 기사는 보고서를 일부 인용하면서 출처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이를 재인용한 ‘천황의’는 말할 것도 없다. 또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상당부분 ‘극화’됐다. 저자인 미네기시 겐타로 교수는 근현대사 전공이 아닌 에도시대(1603∼1867) 전공자로 밝혀졌다. 아사히 신문은 1997년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보르네오섬에서 해군이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면서 위안부를 모은 책임을 묻고 있다.”고 겨우 몇줄 적은 게 전부다. 무엇보다 인용된 자료는 법정 등 국제사회에서 증거로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정신대연구소 이성순 소장은 “앞의 세 자료는 언제, 어디서, 누가 작성한 것인지 발굴 경로도 없고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것이다. 이번 자료는 작성자의 서명이 있고 증빙서류로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학자들 “문서의미 간과해선 안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권위자인 간토가쿠인대학의 하야시 히로부미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이 문서는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뒤집을 수 있는 명백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서는 일부 내용이 인용된 적은 있으나 그 중요성에도 불구, 존재가 잊혀져 온 게 사실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작성한 원문이 공개되는 게 처음이라는 점이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월간지 기사를 쓴 오무라 데쓰오도 이메일을 통해 “일본 정부가 역사 수정주의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현재, 이 문서의 공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왔다. 지난 17일 일본 도쿄에서는 하야시 교수 등 17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에 군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정 교수의 보고서를 증거자료 중 일부로 제시했다.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소속 연구자들은 올 6월 발간될 ‘계간전쟁책임연구’에 보고서의 전문을 게재하겠다고 밝혔다. 이성순 소장은 “서울대와 연관지어 비난하다가 문서의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처음이라는 말을 반복하다 벌어진 일 같은데 이와는 별도로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광해군은 성공적인 분조 활동을 통해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부왕 선조의 견제 때문이었다. 왜란 초반,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의주까지 파천하기에 급급했던 선조는 지존(至尊)으로서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더욱이 강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매듭지으려 했던 명군 지휘부는 ‘광해군 즉위’를 들먹이며 선조를 계속 압박했다. 위기에 처한 선조는 왜란을 치르는 동안 모두 15번이나 양위(讓位)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진심이 아니었다. 명의 압박에 맞서고, 광해군과 신료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아내기 위한 정치적 몸짓이었다. 명의 이중적 태도도 광해군을 괴롭혔다. 명 조정은 광해군이 유능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정작 그를 왕세자로 승인해 달라는 요청은 거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해군은 안팎 곱사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1593년 1월 벽제전투에서 패한 직후, 명군의 최고책임자인 병부상서 석성은 심복 심유경(沈惟敬)을 서울의 일본군 진영으로 보냈다.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협상 끝에 일본군이 남쪽으로 철수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강화협상에서 드러난 명의 본심 이후에도 4년이나 더 계속된 강화협상에서 양측이 내세웠던 요구조건은 복잡했다. 고니시는 ‘명나라 황녀(皇女)를 천황의 후궁으로 주고, 조선 영토 가운데 4도를 떼어주고, 무역을 허락하고, 조선의 왕자를 일본에 인질로 보내야만’ 조선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심유경은 ‘일본군이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해야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한다.’고 했다. 도저히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의 차이였다. 하지만 명군 지휘부는, 벽제전투 패전과 갈수록 불어나는 전비(戰費) 부담에 대한 명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군이 서울에서 철수했다.’는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일본군 또한 일단 남해안 지역으로 물러나 숨을 고르면서 명의 태도를 지켜볼 심산이었다. 일본군의 서울 철수는 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일시적 성과’였다. 이윽고 1593년 4월20일, 한강변에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남쪽으로 철수하는 일본군을 ‘보호하기 위해’ 명군 장졸들이 조선군을 막아서고 있었다. 명군 지휘부는 일본군을 추격하던 조선 장수 변양준(邊良俊)을 붙잡아 목을 쇠사슬로 묶은 뒤 난타했다.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추격전을 지휘하던 전라감사 권율(權慄)은 이여송에게 소환되었다. 명군 지휘부의 지침을 어기고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추격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명군의 ‘에스코트’ 아래 서울을 무사히 빠져나온 일본군은 남해안에 머물면서 철수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명군도 삼남의 요충지에 병력을 배치하여 일본군을 견제하려 했을 뿐 전의(戰意)를 보이지 않았다. 전쟁은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광해군, 무군사를 이끌며 민심을 파악 그것은 석성을 비롯한 명군 지휘부에게도 수렁이었다. 황제에게는 ‘심유경의 활약’ 덕분에 일본군이 곧 물러나고, 전쟁이 끝나 동정군(東征軍)이 개선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일본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삼남에 주둔해 있는 명군 지휘관들은 군량과 군수물자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조선 민중이었다. 싸울 의지는 없이 그저 장기 주둔에 들어간 명군의 민폐가 극심했다. 곳곳에서 군기가 풀어진 명군 장졸들에 의해 약탈과 강간이 자행되었다. 한편에서는 일본군에게 시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명군에게 곤욕을 치러야 했다.‘우리 편’으로 여겼던 명군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컸다. 민중들 사이에서 “명군은 참빗, 일본군은 얼레빗”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명군 주둔지역의 민심은 불온해졌다. 지방에 주둔한 명군들이, 조선의 지원이 미흡하다고 하자 명군 지휘부는 선조와 조선 조정을 쪼아대기 시작했다.1593년 10월, 명군 지휘부는 광해군에게 삼남으로 내려가 명군에 대한 접대업무를 총괄하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배경에는 ‘무능한 선조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었다.1593년 윤 11월, 광해군은 다시 남행길에 올랐다. 그는 1594년 8월,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무군사(撫軍司)라는 조직을 이끌며 충청도와 전라도의 곳곳을 순행했다. 특히 1593년 12월, 전주에서 왕자 시절 사부(師傅)였던 박광전(朴光前)으로부터 전라도 지역의 전황(戰況)과 민심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박광전은 광해군에게 위기에 처한 전라도의 실상을 알렸다. 일본군이 비록 거제도 일대에 주둔해 있지만 진해와 고성을 거쳐 섬진강으로 진입할 경우, 전라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박광전이 특히 강조했던 것은 ‘민심 수습’이었다. 그는 당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전라도에서 징발하고 있던 현실, 각종 세금과 노역 때문에 도망하는 백성이 속출하고 있던 상황을 알린 뒤, 포악한 지방관들을 처벌하여 지역 민심을 위로하라고 촉구했다. 비록 명군 지휘부에 떠밀려 이루어졌지만, 전란의 고통에 신음하는 민초들의 참상을 직접 보았던 것은 광해군에게 소중한 체험이었다. 그가 즉위 이후 명과 누르하치 사이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려 노력했던 것은 분명 그 같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 광해군을 흔들다 무군사 활동을 통해 왕세자로서 광해군의 위상은 확고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명 조정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은 1594년부터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명 조정에 주청(奏請)했다. 광해군이 전란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워, 온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명 조정은 조선의 요청을 거부했다. 광해군이 맏이가 아니라 둘째이므로 그를 책봉하면 ‘장유(長幼)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자 선조는 다시 보낸 주문에서 ‘맏아들 임해군은 자질이 평범한 데다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후 놀라는 증세가 생겨 왕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정황을 들어 광해군을 승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명은 다시 거부했다.1604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주청사(奏請使)가 베이징에 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명 예부(禮部)는 조선에 보낸 답신에서 ‘광해군은 현명하다. 현명한 사람은 차례를 뛰어넘는 참월(僭越)한 행위를 하지 않는 법’이라고 운운하며 광해군에게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명 조정이 광해군을 거부했던 데에는 물론 속사정이 있었다. 당시 명의 신종이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주상순(朱常洵)을 염두에 두고 맏아들 주상락(朱常洛)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미루고 있던 상황과 연결되어 있었다. 명 예부는 차자 광해군을 섣불리 승인해 줄 경우 신종이 맏아들을 밀어내고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데 명분을 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명의 태도는 조선을 흔들기 위한 ‘의도된 것’이기도 했다. 이미 1418년 태종이 맏아들 양녕대군을 밀어내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뒤의 세종)으로 왕세자를 교체했을 때 명은 군말 없이 그것을 승인했었다. 충녕대군의 전례를 볼 때 명의 태도는 분명 이중적이었다. 조선의 요청대로 따라주는 것이 관행이었던 ‘왕세자 책봉’ 문제에서도 ‘상국(上國) 행세’를 톡톡히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승인 요청을 계속 거부해 광해군의 애간장을 녹일 대로 녹인 뒤, 큰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책봉을 허락하여 생색을 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군대를 보내 조선을 ‘구원’해 주고,‘자격도 안 되는’ 광해군을 인정해 준 자신들의 ‘은혜’를 강조하여 조선을 길들이려는 속셈이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명이 조선에 과거보다 훨씬 버거운 존재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실제 누르하치의 도전이 거세짐에 따라 ‘길들여진’ 조선을 이용하고픈 명의 유혹도 커져만 갔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정종욱 월드포커스] 中·日간 얼음이 녹으면 한국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베이징에는 동서 양쪽에 서로 대조되는 두개의 건물이 있었다. 서쪽에는 항일전쟁기념관이, 동쪽에는 21세기 중·일청년우호교류센터가 있었다. 항일전쟁기념관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 군대가 자행했던 끔찍한 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과 임신부의 배를 칼로 찌르는 참혹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재연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중국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성지 참배를 온 것처럼 숙연한 표정으로 한 시간 이상 각종 전시물들을 참관했다. 이에 비해 21세기 중·일청년우호센터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일본 정부가 양국 청소년들 간의 우호증진과 교류협력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지은 현대식 건물들이지만 대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이렇게 메우기 힘든 공간이 있었다. 지난주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이 있었다. 그동안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과연 그의 방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자바오 총리의 말을 빌리면 이번 방문은 양국 간에 ‘얼음을 녹이는 여행’(融氷之旅)이었다. 지난 10월 아베의 중국 방문이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이었다면 원자바오의 방문으로 깨어진 얼음이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자민당 간사장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가 “이로써 중·일 간의 얼음이 완전히 녹았다.”고 말하자 원자바오는 “양국 관계에 겨울은 가고 봄날이 왔다.”고 화답했다. 그가 중국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제는 “역사를 직시하며 양국 간에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고 역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본과 중국의 언론들도 대체로 원자바오의 일본 방문이 양국 관계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중·일 간에 얼음이 녹고 봄날이 오려면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양국이 원자바오 방문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불행한 과거의 참담한 기억을 잊고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항일전쟁기념관의 악몽이 갑자기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바오도 앞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략적 호혜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고 경제각료회의를 매년 개최하기로 했지만 양국 관계는 협력보다 경쟁의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민투표법이 일본 중의원을 통과함에 따라 일본 헌법이 개정되고 일본이 본격적인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는 시점이 임박했다는 게 중국의 시각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시아 패권을 향한 숙명적 경쟁이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처지이다. 이제 한국은 중국에 더 이상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중국에는 좋든 나쁘든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일종의 자기최면에 빠져 있었다. 중국이 우리에게는 호의적이고 일본에는 적대적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 우리가 앞서가는 일본과 뒤에서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가 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 뒤에서 아무도 쳐다 보지 않는 외롭고 미운 오리의 신세가 될 가능성을 이제부터라도 직시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 보다 현실적 인식을 가져야 하며 일본과의 감정이나 기 싸움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보다 균형 잡힌 새로운 한·중·일 삼각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달빛 아래 희망을 건지다

    달빛 아래 희망을 건지다

    글 이호준 《서울신문》 뉴미디어국장 겸 비상임논설위원 퇴근하려고 책상 정리를 하던 중에 조카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 근처에 와 있다며 저녁을 사달라는 것이었다. 모처럼 만난 조카는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졸업이 코앞인데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청년실업이 국가적 문제가 된 지 하루 이틀이 아닌 마당에 취업을 못한 게 어찌 내 조카뿐일까만,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저녁 겸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하려고 가까운 음식점에 가 앉았다. ”너무 고민하지 마라. 몇 년씩 놀고 있는 애들도 많다며. 요즘은 이태백이 아니라 이구백이라고 한다잖니?” 작은아버지의 어설픈 위로에 답례로 짓는 웃음이 무척 씁쓸해 보인다. ”그래, 무슨 일을 할 것인지 목표는 정했니?” ”작은아버지도 참. 무슨 일이 어디 있어요. 아무 곳에나 원서를 넣어 보는 거지. 배부른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요. 정말 답답해 죽겠어요. 전부 저만 보고 손가락질하는 거 같고….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니까요.” ”그래, 그 심정 이해가 간다. 그래도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 아무리 취업이 급하다지만 무턱대고 원서를 내서야 쓰겠냐.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인생을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선택이 있어야지.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평생 하겠다는 거냐? 지금 넌 초조감에 빠져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거야. 이럴 땐 차라리 한 발 비켜서서 세상을 바라볼 필요도 있어. 여행을 하거나 한 적한 곳에 가서 며칠 지내다 오도록 해라. 네 내면에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을 거다. 사람은 아주 엉뚱한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도 하니까.” 조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잔소리를 늘어놓는 작은아버지가 답답하다는 표정이지만 별 대꾸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나는 나대로 잠시 상념에 젖는다. 그래, 내게도 너 같은 젊은 날이 있었다. 자꾸만 넘어지고 깨어지던 시절…. 목표로 삼은 일에 연이어 실패한 뒤 세상과 결별하는 심정으로 산골의 작은 마을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내 곁에는 죽음이란 단어가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무 하는 일 없이 그곳에서 머문 지 보름쯤 된 어느 밤이었다. 그날은 달빛이 무척 밝았다. 창을 뚫고 들어와 방바닥을 유영하는 달빛은 황홀할 정도로 눈부셨다. 그러지 않아도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는 내게 그런 달빛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결국 문을 열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를 불러낸 건 꼭 달빛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강한 힘에 끌려가기라도 하듯 나는 걷기 시작했다. 희다 못해 푸른빛마저 도는 달빛이 발길마다 채여 산산이 부서졌다. 그렇게 방향도 모른 채 걷다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개울을 하나 만났다. 물 속의 달 역시 하늘의 달 못지않게 아름답게 빛났다.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개울가의 돌 위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달빛이 부서지는 것이려니 했다. 그게 달빛도 아니고 물거품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 한참 들여다본 뒤였다. 물고기 떼, 정확히 말해서 붕어들이었다. 수많은 붕어들이 줄을 지어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저 물 속에 저만큼의 붕어가 살고 있다니, 낮이라면 짐작도 못할 일이었다. 붕어들은 물이 얕은 곳에서는 옆으로 누워 파닥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비늘. 그들의 행진은 때로는 군무처럼 때로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헤엄치다 솟아오르고 구르고…. 이슬이 옷깃에 내려앉아 축축했지만, 나는 시간 감각을 상실한 채 그 엄숙한 광경 속에 풍덩 빠져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이 조금 들면서, 붕어들이 무엇을 향해 저리도 처절한 몸짓으로 오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들의 밤잠을 빼앗고 저렇게 행진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계시처럼 머리를 스친 답은 달빛이었다. 붕어들은 황홀하다 못해 광기까지 느껴지는 달빛을 흠모해서 오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빛의 근원인 달에 다가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었다. 오를 수 있고 없고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뿐이었다. 벅찬 감동에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밤마다 그 내를 찾아갔지만 달을 향해 오르는 붕어들의 몸짓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며칠 뒤 나는 그곳을 떠나 다시 도시에 섰다. 조카에게 젊은 날에 내가 겪었던 좌절과 방황, 그리고 다시 일어서게 된 계기를 들려주며 두서 없는 잔소리를 보탰다. ”난 그날 붕어들의 도전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과 살아가는 방식을 바꿨다. 목표를 향한 그들의 열정은 아름다움을 지나 감동 그 자체였다. 그 뒤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그날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했다. 살다보면 무모해 보일 정도의 열정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네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취업이 안 됐다는 게 아니라 꿈을 잃었다는 것이다. 취업은 언젠가 되겠지만 잃어버린 꿈은 다시 찾기 어려운 것이니….”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아베의 ‘개헌 마이웨이’

    아베의 ‘개헌 마이웨이’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헌법개정 행보가 거침이 없다. 지난해 9월 취임 때 밝힌 ‘임기내 개헌’을 위해 반대 여론에도 개의치 않고 ‘마이 웨이’를 계속하고 있다. 집권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12일 중의원 헌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심의시간 부족을 내세워 민주당 등 야당이 불참하자 단독으로 헌법개정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을 가결시켰다. 이어 1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도 통과시켰다. 참의원 본회의에서는 16일 논의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다음달 3일로 시행 60년을 맞는 전후 헌법의 개정을 향한 관문들을 ‘과감하게’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투표법은 국민투표 대상을 헌법개정으로 한정하고 투표권자는 만 18세 이상으로 규정했다. 또 공표일로부터 3년 동안 헌법개정안을 제출하거나 심사하지 않도록 못박았다. 아베 총리는 전날 법안의 통과와 관련,“상당히 오랫동안 깊이있게 논의를 해왔다.”면서 “드디어 채택 시기가 온 것으로 본다.”며 환영했다.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에 대한 집착은 역대 총리들보다 훨씬 강하다. 전후세대 첫 총리로서 개헌을 ‘새로운 국가 만들기’로 표현할 만큼 ‘야망’으로 여기는 듯싶다. 전후 세대에 맞게 헌법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논리다. 취임 이래 “임기 3년내 개헌을 지향하겠다.(지난해 10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의 모습, 형태를 뜻하는 헌법개정 논의를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1월26일 국회 시정방침 연설)” 등 줄곧 개헌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피력해왔다. 아베 총리의 개헌 일정은 무엇보다 오는 7월 치러질 참의원 선거에 맞춰져 있다. 아베 총리 역시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참의원 선거 때 개헌을 쟁점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강경 보수의 이미지와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워 보수 집단들의 세력을 결집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더욱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아베 총리는 총리로서 ‘롱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쥘 가능성이 크다. 향후 3년간 예정된 선거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지난 8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판정승을 거둠에 따라 국정운영과 개헌추진에 한층 힘을 받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민당이 추진하는 헌법개정안은 군사력 보유 금지 조항을 없애고 자위대를 군대로 규정했다.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일본의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개헌 과정에는 난관도 적지 않다. 일단 ‘역사적 오점’,‘졸속’,‘다수 당의 횡포’라며 비판하고 나선 야당과 여론을 잠재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은 “헌법개정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 절차법을 강행 처리한 것은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공산당 시이 가즈오 위원장도 “법안 폐지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헌법개악 반대’,‘강행 처리 항의’ 등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항의 집회를 갖기도 했다. hkpark@seoul.co.kr
  • [일요영화]

    ●역전의 명수(KBS1 밤 12시20분)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코믹물. 정준호가 쌍둥이 형제로 1인 2역을 맡았다. 역전은 두 형제가 처한 상황에 대한 ‘뒤집기’와 주인공이 살고 있는 ‘군산역’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가 과장돼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 네이버 네티즌 평가 6.69(10점 만점) 이 영화는 화려한 조연들이 많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 신드롬’을 일으킨 박노식이 명수와 함께하는 동생 ‘똘빵’으로 등장하며, 박정수도 명수 엄마로 나와 잘난 아들을 위해 다른 아들을 희생하는 모정을 연기한다. 명계남도 부패권력의 핵심인 ‘송우진’으로 출연하며 임현식도 박정수를 짝사랑하는 경찰로 나온다. 조형기는 누군가를 사랑한 죄로 감옥까지 오게 되는 색다른 인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2분17초 먼저 태어난 ‘명수’와 ‘현수’는 일란성 쌍둥이지만 인생은 정반대다. 명수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짱’을 놓치지 않은 반면 동생 현수는 전교 1등을 한 번도 내주지 않은 모범생이다. 명수는 늘 현수와 비교되며 갖은 구박 속에 지내지만 별 불만 없이 군산 뒷골목을 책임진다. 쌍둥이 동생의 부탁으로 여자 문제를 해결해줬더니 이번엔 엄마가 사법시험 공부하는 동생 대신 군대도 가란다. 군대를 두 번 갔다온 명수. 건달시절 저지른 실수로 발목이 잡혀 감옥 갔다온 그는 또다시 동생 죄까지 뒤집어쓰고 별 하나를 더 달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명수는 동생의 대타인생으로 늘 꼬이기만 하는 자신의 인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모의 여인 순희(윤소이)가 접근해 온다. 명수는 ‘한번 준다.’는 순희의 유혹(?)에 무작정 따라 나서기는 하는데…. 하지만 차 안에서 권총이 발견되는가 하면 감옥에서 나온 지 두 시간밖에 안 된 명수에게 은행을 털자고 제안하기도 하는 등 여자의 정체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길가던 여성 끌어가 日軍이 위안소 넘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이 직접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고 발뺌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구체적인 문서가 발견됐다. 서울대 정진성 교수는 12일 네덜란드 정부기록물보존소에서 일본군이 직접 위안부 강제동원에 나섰다는 내용의 문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일본 해군 점령기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서 발생한 강제매춘에 관한 보고서’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일본군 특별해군헌병대가 거리에서 여성들을 잡아들여 강제로 신체검사를 한 뒤 위안소에 수용한 사실이 담겨있다. 문서에 따르면 1943년 네덜란드령 동인도 서보르네오에 주둔하던 일본 해군 사령관 소좌는 두 종류의 ‘공식적 위안소’ 설치 명령을 내렸다.3곳은 해군 전용이고,5∼6곳은는 민간용으로 이중 1곳은 해군 민생부 고위직원 전용 위안소였다. 헤이브룩 대위는 문서에서 “위안소에 여성을 공급하는 임무를 맡은 해군특수헌병대는 노상에서 여성들을 잡아 강제로 신체검사를 시킨 후 위안소에 넣었다.”면서 “여성들이 위안소를 탈출할 경우 특수헌병대가 즉시 가족을 체포해 참혹하게 다뤘기 때문에 탈출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서에는 위안소를 탈출한 여성의 어머니가 실제로 죽임을 당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헤이브룩 대위는 특수헌병대의 명령으로 여성들 신체검사를 담당했던 인도네시아인 군의관을 만나 기록한 증언을 증거로 남겼다. 정 교수는 “이 문서는 바타비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볼 때 바타비아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재판 관련 자료도 조만간 입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서가 처음 공개된 것이 아니라 2001년 발간된 미네기시 겐타로의 책 ‘천황의 군대와 성 노예’에서 같은 내용이 언급된 적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이 문서가 2차대전 전범 재판에 사용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것이 책에서 인용한 자료인 군법회의 관계자료와 같은 자료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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