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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물 빼는 ‘카레 폭탄’ 인도서 개발

    눈물 빼는 ‘카레 폭탄’ 인도서 개발

    최근 인도에서 눈물ㆍ콧물 빼는 기발한 최신식(?) 무기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카레가루 ·고춧가루 등 각종 양념이 섞인 일명 ‘카레 폭탄’(curry bomb)이 개발된 것. 81mm 수류탄으로도 개발돼 주로 사람의 신체를 자극하는 양념과 인광성 물질(자외선이나 전자 빔을 쬐면 빛을 내는 고체물질)로 만들어졌다. 이 폭탄은 미사일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인도 국방연구개발기구(Defence Research and Development Organisation)가 전장이나 테러를 진압할 용도로 만들었다. 특히 인도 북서부 지방의 카슈미르(Kashmir)분쟁에서 이 카레 폭탄으로 파키스탄군을 살상하지 않고 격퇴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 카레폭탄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카레폭탄은 5초이내에 90m밖까지 연막을 내는 것을 물론 짧은 시간동안 적군의 호흡기관(기도)을 질식시키거나 눈·목구멍·피부 등을 계속 따끔거리게 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이 폭탄은 경찰이나 무장군대의 휴대용 유탄발사기에도 쓰일 예정이다. *카슈미르 분쟁: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北 압박에 南 신중…강온 기싸움

    北 압박에 南 신중…강온 기싸움

    북한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27일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남측 당국 인원을 철수시키는 ‘무력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8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뒤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서해상 충돌을 경고했다. 북한은 나아가 29일 김태영 합참의장의 핵공격 대책 발언을 취소·사과하지 않으면 당국간 대화 및 접촉을 중단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남북관계를 둘러싼 긴장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의연하게 대처”하거나 “북한의 진의를 파악한 뒤 대응할 것”이라며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북이 이렇게 기싸움을 벌임에 따라 한반도 경색국면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장은 29일 남측 회담 수석대표에게 전화통지문을 보내 “북한군은 김태영 합참의장이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 대책에 관해 답변한 내용을 ‘선제타격’ 폭언이라고 규정하고 이의 취소와 사과를 요구한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모든 북남대화와 접촉을 중단하려는 남측 당국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北 “선제타격땐 잿더미될 것” 통지문은 이어 “우리 군대는 군부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군부가 나서 당국간 회담뿐 아니라 모든 대화·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주목된다. 특히 북한이 김하중 통일장관에 이어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을 문제삼아 개성 경협사무소 남측 인원을 철수시킨 뒤 서해상 충돌 및 대화 중단을 경고하는 담화를 발표함에 따라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군사논평원은 이날 논평을 통해 “우리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로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국방부는 30일 북측의 통지문에 대해 “북측 진의를 면밀히 파악한 뒤 북측에 2∼3일 내 답신을 보낼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원칙을 가지고 당당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北측에 2~3일내 답신” 이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통상적 훈련”이라고 반응하고 북 해군사령부가 남측이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한 것과 같은 수위로 대응한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부 당국자는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끌어 가겠다는 기본 입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흔들기에 말려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관망을 끝내고 대남정책을 세워 본격 행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북한의 행태를 보다 철저히 파악,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조만간 북핵 6자회담 전략을 마련,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와 6자회담 향방이 남북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다음달 1일 방한, 북측과 회동할 가능성도 있어 북측의 대응이 주목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남편 목숨 걸고 지킨 조국 버릴수 없었다”

    “남편 목숨 걸고 지킨 조국 버릴수 없었다”

    “막상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하네요.”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34)씨가 전사자 처우 등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에 실망해 2005년 4월 미국 뉴욕으로 떠난 지 3년 만에 귀국한다. 새달 2일 귀국을 앞둔 김씨는 29일(현지시간) “짐도 다 보냈고 생활도 다 정리했다.”면서 귀국하는 심경을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그동안 2함대 사령관이 주관하던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식을 정부 주관으로 격상키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타국에서 가족 없이 혼자 벌어 생활하는 것이 벅차기도 했고, 가족들도 보고 싶었다.“사무실 청소, 식당일 등 나쁜짓 빼고는 다해 봤다.”는 김씨는 친정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에 귀국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을 떠났지만 김씨는 자신이 조국을 등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김씨는 “남편을 잃은 뒤 생활이 힘들었고, 당시 정부에 큰 실망을 한 것 등이 겹치면서 생존의 이유로 한국을 떠났지만 조국을 버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며 “남편이 목숨을 걸고 지킨 조국인데 내가 어떻게 나라를 버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에 돌아가면 서해교전 전사자와 부상자들의 명예회복을 실현하기 위한 일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씨는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무기도 필요하지만 군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이런 점에서 서해교전 전사자와 부상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연합뉴스
  •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명분을 잃은 채 세계의 냉소 속에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라크 전쟁, 국가경제를 바닥부터 흔들어 놓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날이 갈수록 더 깊이 골을 파가는 사회 양극화…. 오늘, 미국 위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미국 사회가 거치는 변화의 한 단계일 뿐일까, 아니면 ‘아메리카 제국’ 몰락의 한 과정일까.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톰 엥겔하트 지음, 창비 펴냄)는 정확히 그 지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지은이는 미국의 대표적 대안언론 블로그인 ‘톰디스패치’의 운영자. 그가 2005년부터 2년 동안 10여명의 미국내 비판적 지성들과 가진 블로그 인터뷰를 모았다. ●美 비판적 지성인 10인 심층 인터뷰 미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에 참여한 진보인사들의 면면은 다양하고 화려하다. 컬럼비아대 역사학 명예교수이자 ‘미국 민중사’의 저자로 유명한 하워드 진을 비롯해 2005년 이라크전을 반대하며 조시 부시 대통령의 별장에서 시위를 벌였던 반전운동가 신디 시핸, 캘리포니아대 역사학 교수 마이크 데이비스,‘빈곤의 경제’를 쓴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히 등이다. 책은 하워드 진이 포착한 미국내 저항의 목소리들을 들려주며 곧바로 본론에 들어간다.‘베트남:철군의 논리’(1967년)를 저술한 반전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이라크의 미군이 완전지원병으로 이뤄진 태생적 속성을 들며 미국내 반전운동은 유례없이 부모들의 몫이 돼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러고는 부시 행정부를 이라크에서 빠져나오게 할 방법으로는 “군대에서의 반란이 그 하나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을 야기한 통치세력의 행위를 결코 범죄로는 몰아붙이지 않는 독특한 미국문화의 특성을 짚기도 했다. 미국문화가 어떤 경우에건 대통령과 통치세력을 매우 특별한 사람들로 보는 군주제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명백히 잘못된 리더십이 전쟁을 불렀다고 한들 그들을 ‘전쟁범죄’나 ‘전범’ 등으로 압박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식 제국주의’를 기획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한 솔직한 견해도 밝혔다. 이라크 전쟁을 “(더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미 제국의 가장 바깥쪽 경계”라고 전제한 그는 “언젠가는 벌어질 이라크 철군은 곧 미 제국의 축소로 가는 첫째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훗날 9·11테러 역시 미 제국 붕괴의 시초로 간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안 블로그답게 주류 언론 현실도 파헤쳐 경제위기에 관해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 버클리) 일본정책연구소장인 찰머스 존슨의 견해를 집중소개했다. 미국경제가 도달한 위기의 본질을 군산 복합체에 의존하는 기형적 경제구조에서 찾은 존슨은 미국 경제의 파산을 조심스럽게 예견했다. 그는 “미국의 불황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미국 이외의 세계도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겠지만 그들은 아마도 훨씬 빠르게 극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현재 진행중인 민주당 경선에 대한 의미해석이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인이 민주당에 보이는 태도를 ‘비판적 수용’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보스턴 글로브’지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캐럴은 “민주당이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사회를 냉소주의에 빠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네이션’지 발행인인 카트리나 밴든 회블도 “민주당의 이러한 처신이 부시 행정부의 자멸을 바라는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다.”면서 “그러나 다수의 민주당 하원의원들이 철군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시각을 현 상황에 적용해 보면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선전은 매우 유의미한 결과이다. 유권자들이 이라크전 등으로 보여준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막지 못한 민주당의 한계는 따갑게 비판하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해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안언론 블로그답게 비판의 촉수를 전방위로 뻗쳤다.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중매체와 주요 텔레비전의 뉴스가 약 5개 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언론의 현실을 신랄히 까발리기도 했다.1만 7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총선 D-13] 男 17.9% 병역면제…50대후보 급증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18대 총선 후보자 1119명의 신상정보를 분석한 결과 전과 기록을 갖고 있는 후보는 15.3%인 172명으로 나타났다. 병역 의무가 있는 등록 후보자 987명 가운데 군대에 가지 않은 후보는 17.9%인 177명이었다. 전과를 갖고 있는 후보 비율은 16대 17%,17대 18.8% 비해 줄었다.1건의 전과를 가진 후보가 117명으로 가장 많았고 2건은 36명,3건 16명,4건 2명이었다. 충남 부여·청양에 출마하는 무소속 이상일 후보는 5건으로 최다 전과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45명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노동당(40명)이 그 뒤를 이었다. 위법 사항은 대부분 민주화 혹은 노동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마약류 관리법(대마) 위반을 비롯해 사기, 공갈, 뺑소니, 특수 절도와 같은 ‘부적절한 과거’를 갖고 있는 후보가 전과를 가진 후보 4명 중 1명 꼴이었다. 기타 전과 기록에는 방화, 사문서위조, 폭행 등이 있었다. 병역 면제율도 16대 21.9%,17대 19%에 비해 낮아졌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후보 중 민주당 소속은 25.4%(45명)였고 한나라당 후보는 19.7%(35명)를 차지했다. 군복무를 한 여성 후보는 2명이었다. 정치인과 국회의원이 각각 448명(40.0%)과 197명(17.6%)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각당이 ‘물갈이’를 외쳤지만 현역의원 출마자수는 지난 17대 총선 당시 162명에 비해 35명이 증가했다.40대가 39.2%(439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378명(33.8%)으로 뒤를 이었다.17대 총선 28.0%였던 50대 후보 등록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최고령 출마자는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최고령자였던 김두섭(78·경기 김포) 후보다. 여성 후보는 132명으로 11.8%를 차지,16대(3.2%,17대(5.6%)에 비해 높아졌다. 여성 후보 비율은 민주노동당이 44.7%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나길회 구동회기자 kkirina@seoul.co.kr
  • [총선 D-14] 16%가 軍면제… 17代보다 낮아져

    25일 오후 8시 현재 병역 의무가 있는 등록 후보자 742명 가운데 군대에 가지 않은 후보는 120명으로 파악됐다. 16.1%가 병역 면제를 받은 셈이다.17대 총선 때 병역 면제율 19.0%에 비해 다소 낮아졌다. 통합민주당 후보들의 병역 면제율은 23.6%(33/140)를 기록했고, 한나라당 후보들의 병역 면제율은 14.2%(28/197)로 나타났다. 질병 또는 수형 등이 주요 면제사유가 됐다. 민주당 정범구(서울 중구)·이시종(충북 충주) 후보와 한나라당 오성균(충북 청원)·윤석용(서울 강동을) 후보, 민주노동당 김형운(여수을) 후보 등이 질병 때문에 군에 가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등을 한 뒤 수형 생활을 하느라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에는 임종석(서울 성동을)·유기홍(관악갑) 의원 등 386인사들이 포함됐다. 이밖에 민주당 노영민(청주 흥덕을)·강창일(제주시갑) 후보 등도 같은 이유로 면제 대상이 됐다. 민주당 백재현(경기 광명갑) 후보와 한나라당 윤진식(충북 충주), 무소속 김재천(경남 진주갑) 후보 등은 장기 대기 후 소집 면제됐다고 밝혔다. 한편 후보자들의 아들 520명 중에서는 7.7%에 해당하는 40명이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346명이 병역 의무를 이행했거나 복무 중이고,134명은 아직 징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소리없는 혁명… 칠레의 女風

    지난 2006년 3월,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의 당선은 칠레의 여성 사회진출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는 등 이 바람은 남미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번 주 방송되는 KBS 1TV ‘수요기획’은 칠레의 ‘실험’에 주목한다. 여풍(女風)이 이끄는 소리 없는 사회변혁을 짚어본 ‘칠레는 여성이 지킨다’편은 26일 오후 11시30분에 전파를 탄다. 미첼 바첼레트의 당선은 단순히 대통령 한 명이 바뀐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 칠레가 오랜 세월 고수해온 국가의 체질과 사회의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 이었다.50대50의 남녀 평등내각이 구성되고,17년간 남성의 영역으로만 굳어 있던 군대와 경찰 부문으로 여성 진입이 시작됐다. 두 번의 이혼경력, 미혼모 등 약점을 지닌 그의 이력은 오히려 더 많은 여성계획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여성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보장제도 개선, 성차별과 성폭력 근절 등을 주도하며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사실은 남성도 가정 내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한 것. 이에 따르면 이혼할 때 남성은 양육비를 지원해야 하며, 위반자는 막대한 벌금을 물고 체포될 수도 있다. 칠레의 여성 가장 가구 수는 전체의 약 3분의 1. 이 가운데 미혼모 비율이 67%나 되는 칠레에서 이 법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사회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종교자유 주장’ 강의석씨 택시기사 변신

    ‘종교자유 주장’ 강의석씨 택시기사 변신

    고교 3학년 때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 제적당한 뒤 학내 종교자유와 관련된 법적 소송을 벌여 주목을 받았던 강의석(22)씨가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강씨는 25일 다니던 서울대 법대를 휴학하고 고생을 자초한 이유에 대해 “갑자기 밀려든 답답함과 살아 있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온실 속에서만 자라온 것은 아닌데 사람들에 대해 너무 교과서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해왔던 것 같다”며 “다양한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고교 3학년 때 학내 종교자유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제적당한 것에 대해 법적 소송을 제기해 2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 화제가 됐다. 요즘 강씨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군복무 문제. 강씨는 “복싱을 하다 머리를 다쳐 신체등급 4급을 받아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지만 군대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20&30]경찰 체포전담반 추진… 다시 떠오르는 ‘백골단의 추억’

    봄 기운이 완연한 요즘,30대 직장인들의 술자리에는 ‘벚꽃 구경’과 함께 ‘백골단’이 단골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경찰이 불법 시위 엄단 조치의 하나로 발표한 ‘체포 전담반’이 90년대 중반까지 시위 현장에서 흰색 헬멧을 쓰고 대학생들을 잡아들이던 ‘백골단’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봄과 함께 시작되곤 했던 대학가 시위와 ‘백골단’을 둘러싼 30대들의 추억을 들어봤다. 90학번인 조모(37)씨는 봄만 되면 등줄기가 욱신거린다. 실제 상처가 남아 있다기보단 그저 화인처럼 남아 있는 곤봉 폭행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1학년이던 90년은 수업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 진압에 픽픽 쓰러지고, 농민들은 시장 개방에 비쩍 말라갔다. 책을 든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절 조씨에게 ‘백골단(白骨團)’은 공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1991년 봄.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학과 동료를 위해 법원 마당에서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시위대 앞에 전·의경들이 서 있었고, 경찰 기동대장은 해산을 요구했다.“평화시위를 해산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한 지 10여분 뒤. 청재킷과 흰 운동화, 몽둥이를 든 백골단이 전·의경 머리 위로 날아오르듯 확 튀어나오더니 시위대를 마구 팼다.“몸집이 참 큰 사람들이었죠. 그저 공포였습니다. 철거예정지에 가면 가끔 조폭들과 연계해 나타나기도 했죠. 대학생들이 왜 정치적인 사건에 개입하냐고 말들 많지만, 배우는 학생들이 주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게 21세기가 원하는 협동심과 리더십을 공유한 사람이 되는 길이죠.” 직장인 이모(36)씨도 봄만 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벚꽃놀이 갈 생각에 설레는 게 아니라 대학 새내기 시절인 91년 봄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해 4월 초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학교 앞 집회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매일 집회가 계속 됐죠.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굉음과 강의실까지 스며드는 최루가스가 절 그냥 놔두지 않았어요. 집회가 시작되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강씨 사망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대생 김귀정씨도 을지로 골목에서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숨졌다. 이후 대학생들의 분신이 이어졌고, 매일 대규모 집회가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서울시청 광장을 놓고 백골단·전경과 매일 싸웠죠. 지금 생각하면 다른 장소도 많은데 왜 꼭 서울시청 광장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어요.” 이씨는 91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청바지·청재킷에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과 명동, 시청, 종로, 을지로 거리에서 숨바꼭질을 계속했다.“백골단은 전·의경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력’을 보유했죠. 한마디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는 경찰이 바로 백골단이었습니다. 두꺼운 진압복을 입은 전·의경은 그저 특정 장소를 지키는 일에 주력했지만, 백골단은 검거가 목적이었죠. 백골단에 잡히지 않으려고 얼마나 뛰었던지….” 최근 경찰이 체포 전담반을 꾸린다고 하자 이씨는 가슴이 벌렁거린다.“지금이 대체 어떤 때입니까. 진짜 과거의 백골단을 다시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 통일운동가 황선(34·여)씨도 씁쓸한 추억담을 털어놨다.92학번인 황씨는 같이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백골단에 의해 숨지거나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 많이 닦아냈다고 돌아본다.“87년 민주화 이후에 집회시위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백골단의 모습은 변한 게 없었죠. 당연히 집회 참가자들은 더욱 분개했고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안진걸(37)씨도 백골단에 대한 ‘추억’ 아닌 ‘추억’을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 안씨는 백골단이 단순히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존재’였다고 말한다.“무작정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백골단이 누가 시위대고 누가 시민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몽둥이를 휘두르는 거죠. 이유도 모른 채 다치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96학번인 대학생 황모(31)씨는 백골단의 끝물을 맛봤다.97년 노동절 집회 때 한양대 근처에서 당한 토끼몰이식 폭행을 아직 잊지 못한다. 당시 집회는 80년대와는 달리 선배의 강압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나가든 말든 결정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경찰은 96년 있었던 한총련 집회 뒤 또다시 강경 진압을 남발했다. 집회에 갔다가 여자 후배 한 명과 함께 백골단에 쫓겼고 여자 후배를 멀리 피신시킨 뒤 자신만 집중 폭행을 당했다.“백골단은 시위대를 공격하기 위해서 생겼던 조직입니다. 해외에도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는 경찰들이 있지만 이들은 최소한의 방어선을 유지하다 시위대가 흥분해 주변 시민을 위협하면 그제서야 곤봉을 듭니다. 무조건적인 체포와 폭력진압을 위주로 하는 백골단과는 성격이 다르죠.” 중학교 교사가 된 96학번 이모(31·여)씨는 같은 대학, 같은 학번 노수석씨를 기억한다.96년 초 새내기였던 이씨는 선배들의 권유로 등록금 투쟁에 나섰다. 이씨는 “당시에도 등록금은 치솟고 있었고, 신입생 때는 무엇이든 참여하고픈 생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대문에 다다르자 ‘등록금 투쟁’ 구호는 ‘정권 타도’로 바뀌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느낄 무렵 최루탄이 터졌다. 이씨는 남자 동기의 손을 잡고 서울역 방향으로 무조건 뛰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백골단이다. 남대문엔 골목이 많다. 큰길로 뛰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대부분 서울역으로 뛰었죠.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노수석씨를 비롯한 몇몇이 골목으로 뛰었다는 거예요. 골목은 목격자도 없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는데….”결국 노씨는 백골단에 폭행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유모(32)씨는 백골단하면 촌스러운 청재킷이 떠오른다.96년 여름, 신분증 검사도 떠오른단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측은했다고 말했다.“연세대에서 8월 사태가 있었죠. 그리고 교문을 들어갈 때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했어요. 당시에는 정말 무서웠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위에서 시킨다고 폭력까지 휘둘렀던 백골단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백골단으로 불리는게 너무 싫었어요” 90년대 초반 광주에서 ‘백골단’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던 전남지방청 소속 한모(44) 경사에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누가 하고 싶어서 했겠습니까. 당시엔 초임 경찰관 가운데 덩치가 좋고 날렵한 사람들이 대거 검거전담반으로 차출됐죠. 백골단으로 불리는 게 너무 싫었는데…. 진압복도 입지 않은 채 대학생들이 휘두르는 쇠파이를 막느라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더이상 그런 아픔은 없어야 겠죠.” 회사원 이모(32)씨는 98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그가 기억하는 백골단은 시위를 진압하는 ‘최후의 수단’이다.“의경 입장에서는 하얀 헬멧과 청재킷만 봐도 힘이 났죠.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대학생들 앞에서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백골단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씨에게 대학 시절 백골단은 무섭고 혐오스러운 존재였지만, 전·의경 복무 시절 시위 현장에서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갑자기 시위와 관련된 모든 이론이 싫어졌어요. 어떤 생각도 뛰어넘은 평화주의자가 되고 싶었죠.” 사건팀 nomad@seoul.co.kr ■ 백골단을 아시나요? “백골단이요? 알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백골부대를 모르는 사람 있나요.” 백골단이 한창 활동하던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낸 아이들은 벌써 어엿한 대학생과 직장인이 됐다. 그들에게 백골단은 그저 생소한 이름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회사원 김모(25·여)씨는 백골단을 백골부대의 다른 이름으로 알았다.“백골단, 유명한 부대잖아요. 여자인 저도 아는 걸요. 해골 부대 마크 있고…. 철원에 있잖아요. 백마부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대 중 하나 아닌가요.” 백골단은 80∼90년대 활동했던 사복 시위 진압대라고 알려주자 김씨는 몹시 당황했다.“그런 진압대가 있었나요. 처음 들어봅니다. 아무리 그 당시 유치원생이었지만 우리 근대사의 일부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너무 부끄럽네요. 인터넷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새내기 대학생 정모(19)씨도 백골단을 부대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글쎄요. 왠지 군대쪽에 관련된 거 같긴 한데…. 학교 다닐 때 백골단에 대해 배운 적이 없고, 아직 대학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잘 모르겠네요.” 정씨는 기자로부터 백골단의 의미를 알게 되자 되레 의아해했다.“정말 그런게 있었나요. 진짜 조선시대 이야기 같습니다. 당당하게 경찰복을 입고 진압하지 왜 치사하게 사복을 입고 진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직장인 최모(26)씨도 백골단은 금시초문이었다. 최씨는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모습을 담았던 영화 ‘화려한휴가’를 본 뒤 관련 책 등을 읽어봤지만 백골단은 난생 처음 듣는 단어였다. “사복경찰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그들이 백골단이란 이름으로 움직인 조직원들인지는 몰랐습니다. 고작 20여년밖에 안 된 일인데 정부가 교묘히 국민을 탄압했다는 사실에 그저 화가 나네요.”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열린세상] 달라이 라마가 ‘추악한 폭도’일까/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열린세상] 달라이 라마가 ‘추악한 폭도’일까/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베이징 올림픽을 5개월 앞둔 중국은 라싸에서 오래 전 톈안먼에서 그랬듯이 가차없이 사람들에게 총을 겨눴고, 발포했다. 사망자 수를 축소하며 서방의 눈치를 보던 중국은 서방이 “올림픽과 티베트 유혈사태는 분리해 봐야 할 것이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하자 이번 사태의 배후 세력으로 다람살라의 14대 달라이 라마를 겨냥, 그를 폭도로 몰아가고 있다.17일 자정 투항시한까지 100여명의 티베트인들이 투항했다는 소식 이후, 티베트 고원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메신저이기도 한 여행자들과 외신기자들을 중국 정부가 내쫓았기 때문이다. 1959년 포탈라성 폭격으로 중국을 탈출한 이래 14대 달라이 라마는 세계가 인정하듯 비폭력 평화외교로 분리독립을 호소하고, 주장하고, 설득해 왔다. 그러나 중국이 난공불락으로 막강해지면서 달라이 라마는 정치적 지배권은 중국에 양보하면서 고토(故土)에서 예전처럼 티베트인들이 신앙만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자치정부를 요구했다. 자치정부라 해봐야 군대도 없는 종교공동체일 뿐이다. 그런 소박한 요구는 그러나 늘 가차 없이 묵살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50여년간 일관되게 비폭력을 주창해 온 달라이 라마로서는 악의에 찬 중국의 비방과 비폭력 노선으로 인한 내부 비판으로 견디기 힘든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이다. 이미 희생된 이들이나 17일 이후의 대학살을 우려한 달라이 라마는 결국,“이번 유혈사태가 통제불능 상태라면 망명정부 수반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현재 세계가 추이를 주목하고 있는 티베트 사태다. 1999년, 나는 내한을 원하는 달라이 라마를 중국의 눈 밖에 날까봐 우리 정부가 쉽게 허락하지 못하자 거리에서 ‘프리 티베트 운동’을 하는 이들과 외쳤다.“달라이 라마 내한 금지로 얻을 국익을 사양하겠다.”고. 국가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세계적인 지성이 한 불자로서 오래된 불국(佛國)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데 그 간단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옹졸함이 딱할 만큼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 전후로 나는 히말라야 산군에서 적잖은 티베탄(티베트인)들을 만났다. 다람살라는 물론 올드델리에서는 칠십줄에 들어선 티베트 전사들도 만났고, 북인도 마날리와 네팔 포카라의 티베트 난민촌에도 여러 차례 찾아갔다. 늙은 티베트 전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지금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나는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잡을 것이다.”라고.50년대 말 유혈사태 때 무려 120만명이 학살당하던 그 즈음 가족을 잃자 승복을 벗고 중국군의 총을 빼앗아 봉기했던 전사들이었다. 다람살라에서 만났던 한 젊은이는 “로마도 결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중국은 지금 말할 수 없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독립을 원하는 소망은 그보다 더 강하고 오래 갈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식계층인 승려가 아닌 평범한 티베탄 중의 하나였다. 그의 소망은 대개 약자들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가망 없는 꿈에 불과할까. 한족과 위그르족이 다르듯 중국과 티베트는 융화될 수 없는 역사적 배경과 문화 차이를 갖고 있다.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열차를 개통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근대’를 안착시키고, 강제로 한족과 피를 섞게 하고, 그들에게는 신적인 존재인 달라이 라마를 위한 기도도 금지하고, 승려들에게 살상을 강요하는 인간성 파괴를 획책해도, 티베탄들은 쉽게 굴할 것 같지 않다. 짐작되는 앞날이 매우 어둡긴 하지만,“세계는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중국이 깨닫도록 촉구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은 언제나처럼 깊은 울림을 담고 있다. 티베트 사태, 다른 일도 그렇듯이 남의 일이 아니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 포드 세계슈퍼모델 우승 강승현

    포드 세계슈퍼모델 우승 강승현

    “군대에서 잠시 휴가 나온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아요. 하하.” 지난 1월 세계 양대 모델 에이전시 가운데 하나인 포드모델사가 주최한 세계슈퍼모델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한 강승현(21). 미국 뉴욕에서 두 달 만에 돌아온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떠날 때 달랑 두명이서 떠났는데 지난 11일 입국 때는 공항에 몰려온 카메라를 보고 놀랐고, 오디션 없이 패션쇼에 설 수 있을 만큼 ‘대접’도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헐렁한 미니 원피스에 가죽 재킷,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그녀는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스칠 법한 앳된 고등학생 같은 모습의 그녀를 보며 당황한 쪽은 기자였다. 아직까지 자신이 이룬 것이 뭔지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개의치 않으려 하는 것일까.“제가 이룬 것이 있나요? 물론 대회에서 우승해서 시작은 엄청 좋다는 것뿐이지 뉴욕에서는 무명의 신인 모델에 불과한 걸요.” 걸걸한 목소리는 털털한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코가 약간 삐뚤어져서 정면에서 사진 찍는 게 두렵고”“시대를 잘 만나서 모델이 될 수 있었다.”고 시원스레 툭 던진다. 맞다.“예쁘지는 않지만 매력은 있는 것 같다.”며 배시시 웃는 강승현은 요즘 서양 디자이너들이 원하는 동양인 모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뉴욕 패션계를 좌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 정도로 좋은 성격까지 지녔다.“포드모델 대표도 인정했어요. 현지 언론에서 저의 강점이 뭐냐고 묻자 ‘성격 좋은 거’라고 하시더군요.” 한국 대표로 나가 48개국에서 온 각국 모델들과 지낸 합숙 기간. 말이 안 통해 의기소침했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오겠냐 싶었다.1주일을 즐기다 가자고 결심하고 ‘이명박식 실용영어’를 사용해 하나둘씩 친구를 만들어 갔다.“다음에 오는 한국인 또는 동양인 모델이 있을지 모르는데 소심한 인상을 주면 안 되겠다 했죠.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포드측에서 예쁘게 봤나봐요.”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쇼를 시작으로 마크 제이콥스,YNK, 필립 림 등 뉴욕에서 12번의 쇼를 소화,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뉴욕에 이어 파리, 밀라노도 밟고 싶은 욕심이다.“어떤 무대에 서도 떨지 않을 자신감을 얻었다.”는 그녀는 “언젠가는 존 갈리아노(크리스찬 디오르의 디자이너)의 무대에 서고 싶다.”며 야무진 표정을 지었다.178㎝,50㎏. 어려서부터 키가 커서 모델 되라는 말을 숱하게 듣고 자란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컬렉션을 통해 데뷔했다. 그래서 때마침 열리고 있는 서울컬렉션 소식에 마음이 설다. 체류 기간이 짧아 더 많은 쇼를 하지 못해 아쉬워한 그녀는 지난 19일 서은길 컬렉션 무대에 올라 더욱 당당한 워킹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튿날 강승현은 베네통 화보 촬영이 기다리고 있는 뉴욕을 향해 예정보다 빨리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eoul.co.kr
  • [씨줄날줄] 꼿꼿장수/육철수 논설위원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을 ‘에프 엠’(F.M.)이라고들 한다. 군대의 야전교범(Field Manual)에서 유래한 것인데, 언행이 도리와 규범에 어긋나지 않을 때 이렇게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선택의 기로에서 굽지 않고 부러지는 길을 택한다. 그래서 융통성 없고 답답하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하지만 이런 부류 덕분에 인간사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무인의 길을 FM대로 걸어온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꼿꼿한 자세로 악수를 나눈 장면은 인상적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허리를 90도로 굽힌 것과 대조를 이뤄 칭송이 자자했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김 장관은 FM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야전교범의 ‘경례·예절’ 규정에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흔들어 아첨하거나 비굴해 보이는 저자세 악수를 삼가야 한다.’고 돼 있어서란다. 더구나 김 전 장관은 햇볕정책 이후 처음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북한 군수뇌부에 당당하게 제기해 ‘꼿꼿장수’란 애칭을 얻었다. 김 전 장관이 정치에 입문해 화제다.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할 것이란다. 통합민주당 쪽에선 난리가 났다. 그가 손학규 대표에게 비례대표 2번을 요구해 놓고 배신했다는 거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해명은 다르다. 손 대표와 만난 건 사실이나, 그런 요구를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을 ‘양다리 장수’라고 비아냥대는 말도 떠돈다. 진위를 떠나 민주당은 ‘십고초려’로 공을 들인 한나라당에 밀린 게 분명하다. 선거철에 훌륭한 인사를 모으는 것은 정당의 능력이다. 김 전 장관의 이미지는 ‘표’가 된다. 서로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입경쟁에서 지고난 뒤에 이런저런 험담을 해대는 건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다. 김 전 장관이 무장(武將)으로서 조용히 무대 뒤에 머물지 않은 아쉬움은 남는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정치참여는 그의 자유에 속한다. 정치는 유연해야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는데, 꼿꼿장수가 험한 정치판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눈여겨봐야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국방부 대장급 인사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 이상희 국방장관의 경기고 4년 후배다.23사단장 시절 영동지역 산불과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 복구에 힘썼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병이 전역하면 반드시 회식자리를 마련할 정도로 자상한 면모가 있다. 수영과 테니스를 즐긴다. 부인 이범숙(53)씨와 1남1녀. ▲58세·서울 ▲육사 29기 ▲6포병 여단장 ▲23사단장 ▲국방부 국제협력관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작전본부장 ▲육군 1군사령관 ●임충빈 육군참모총장 원리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창의적인 것을 강조한다. 지난해 육사 교장으로서 화랑대 국제심포지엄을 열어 국제 사관학교 협의체를 결성하는 등 국제적 감각도 지니고 있다. 올해 초에는 새로 창립된 한국군사학교육학회의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테니스를 즐긴다. 부인 최옥례(57)씨와 1남. ▲58세·충남 천안 ▲육사 29기 ▲청와대 국방비서관 ▲17사단장 ▲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1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재직시 이지스구축함(KDX-Ⅲ),214급 잠수함 등의 국내 건조 사업을 추진하는 등 해군의 주요 전력증강 사업을 추진했다. 2년간의 프랑스 유학으로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종교는 기독교. 부인 장은숙(55)씨와 2남. ▲56세·경남 창원 ▲해사 29기 ▲작전사 작전참모처장 ▲진해기지사령관 ▲국방대학교 부총장 ▲제1함대사령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교육사령관 ●이성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군내 전략통으로서 대미관계에 정통하다는 평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 합참의장의 주무 참모본부장으로서 무난하게 보좌했다. 검정고시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로 사단장 시절 병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는 등 현장 중심 리더십을 발휘했다. 부인 박정신(55)씨와 2남. ▲59세·전남 신안 ▲육사 30기 ▲육본 전략기획처장 ▲22사단장 ▲육본 지휘통신참모부장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김근태 1군사령관 온화한 성품으로 부하들의 건의를 존중하는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당시 군 대책반을 이끌며 이라크, 아프간 주둔 미군 지휘관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했다고 한다. 지난해 공직자 재산공개 때 2329만원의 재산을 신고,‘청렴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인 김혜영(52)씨와 1남1녀. ▲56세·충남 부여 ▲육사 30기 ▲합참 작전차장 ▲11사단장 ▲육군대학 총장 ▲7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조재토 제2작전사령관 군 인사·군수 전문가로 후방 작전사령관으로 적임자라는 평이다. 군내 군수업무 체계를 현대화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하부대 순시 때 지적보다 격려를 많이 하는 ‘칭찬형 리더십’의 소유자다. 전북대 철학과를 나와 학군(ROTC)으로 임관해 대장까지 오른 뚝심있는 인물이다. 부인 김점례(63)씨와 1남1녀. ▲61세·전북 김제 ▲3군 군수처장 ▲25사단장 ▲육본 군수참모부장 ▲9군단장 ▲합참 인사군수본부장 ●이상의 3군사령관 3군사령부 작전과장과 1군단사령부 작전참모 등을 역임한 작전통이다.8군단장 시절 엄정한 부대지휘와 작전 능력을 바탕으로 각종 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육사 축구 대표선수 출신으로 지금도 시간이 나면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부인 황문향(52)씨와 1남1녀. ▲57세·경남 사천 ▲육사 30기 ▲보병학교 교수부장 ▲39사단장 ▲8군단장 ▲건군 60주년 기념 사업단장
  • [총선 D-23] [단독]‘꼿꼿장수’ 김장수, MB가 직접 영입

    [총선 D-23] [단독]‘꼿꼿장수’ 김장수, MB가 직접 영입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의 한나라당행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선 끝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영입하려던 통합민주당이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대통령의 입당 제의는 ‘대통령의 총선 개입’이라는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16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김 전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같이 일합시다.’라며 강하게 설득해 한나라당 영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비례대표 2번 제안은 김 전 장관이 아니라 민주당이 먼저 했고, 이에 김 전 장관은 고심 끝에 지난 2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원하면 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장관은 그러나 그 뒤로 주변의 반대와 한나라당의 지속적인 제안이 이어지자 “정치는 안 하겠다.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안 한다.”며 미국행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미국행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한나라당 입당을 제의했고, 이를 김 전 장관이 수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김 전 장관의 유임을 고려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한나라당 입당 요청은 그러나 당장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전망이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야당이 공들인 분까지 이런 방식으로 낚아채 가고 이런 일을 대통령이 잘했다고 칭찬하는 형국이 어이없다.”며 김 전 장관과 한나라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이어 “김 전 장관은 손학규 대표를 만나 60만 군대의 명예를 위해 비례대표 2번을 달라고 먼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정치권에서 훌륭한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 “못 먹는 감 찔러 보기식”의 비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같은 정치권의 공방 속에서 김 전 장관은 한나라당행으로 결정되기까지의 물밑 과정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한나라당 당사에서 강재섭 대표를 만나 “안보·국방에 대한 생각을 여당의 입장에서 정부 또는 여러 곳에 확실히 전달하겠다.”며 입당을 결정했다. 강 대표는 “삼고초려 이상으로 여러 번 뵈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윤설영 한상우기자 snow0@seoul.co.kr
  • “한·미 안보동맹 매우 중요”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군의 보다 큰 의무는 전쟁 예방”이라면서 “이런 관점에서 한·미 연합적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에서 가진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이같이 말하고 “21세기에 걸맞은 국방력을 만들기 위해 많은 예산이 필요하며, 한국이 고도성장을 해야 할 당위성이 거기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또 “2020년까지의 군 현대화 계획은 연평균 7% 경제성장을 전제로 만든 것”이라면서 “5% 성장만 한다면 이룰 수 없는 만큼 목표하는 경제성장을 이뤄야 강한 군대를 만들고 국민을 위한 일자리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李대통령 “경제 살려야 强軍 가능”

    역시 화두는 ‘경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경기도 용인의 3군사령부를 방문해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경제살리기를 강조했다.“경제를 살려야 강군(强軍)도 가능하다.”는 지론을 역설했다.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군심(軍心)잡기’. 앞서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를 향해 쏟아냈던 송곳 같은 질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기진작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강했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적’인 정책 운영을 한 국방부에 상대적으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 중 하나가 국방력 강화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경제성장을 이뤄야 강한 군대도 만들고, 국민들에게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경제성장→강한군대→일자리창출’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군에서 제대했을 때 일자리가 있어야 군복무도 충실할 수 있다.”면서 “‘내가 제대하고 나면 일자리가 있을까.’,‘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이 있으면 자신감을 갖고 군복무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군의 사기를 다독이기 위해 외아들인 시형씨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막내아들이 전방에서 근무했는데 들어갈 때 싫어하더니 6개월까지도 불만이 많았다. 한 1년쯤 지나니 편지 내용이 달라지더라. 이젠 보람도 느낀다고,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 와야 한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아울러 “세계 유일 분단국으로서, 또 불과 40마일 앞에 세계 최강의 하나라는 북한의 군사력을 두고 수도권이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도시가 됐다는 것은 세계사에서 드문 일”이라면서 “많은 국방비를 쓰면서도 우리 경제를 선진화시킨 데 대해 국민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군의 변화를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전쟁을 예방하고 남북 평화를 유지, 발전하기 위해 군의 체질을 끊임없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민의 튼튼한 안보의식과 미국과 협력의 중요성도 빼놓지 않았다. 보고 전 이 대통령은 사령부가 위치한 용인의 ‘초호화 시청 건물’을 화제에 올려 “서울시청보다 좋더라. 관청 건물은 너무 좋게 지으면 안돼요. 민간건물보다…. 서울시내 구청도 서울시청보다 더 잘 지어. 그게 다 낭비다.”라고 지적했다. 국방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사상 처음으로 ‘야전’에서 개최됐다. 참모식당이 회의장으로 급조됐고, 식당테이블과 바퀴 달린 의자, 빔 프로젝트가 긴급 투입됐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숙종시대 군인 18%가 마맛자국”

    “숙종시대 군인 18%가 마맛자국”

    조선시대에 군역에 동원되는 나이는 ‘경국대전’과 ‘속대전’에 따라 16∼60세로 알려졌다. 특히 지방방어군이라고 할 수 있는 속오군(束伍軍)은 창설 시기인 임진왜란 당시 15∼50세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에 작성된 군적(軍籍)에 따르면 평균 나이는 34.4세였지만, 불과 10세의 사내아이 종과 밥짓고 가축을 돌보는 69세의 노(老) 화병(火兵)도 있었다. ●평균 34세… 군 편제 소상히 기록 이런 사실은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지난해 11월 공개한 조선시대 충청지역 병적기록부인 속오군적에 나타난 병사들의 신상을 전산입력해 분석한 결과 밝혀낼 수 있었다. 이 군적은 충청도 관찰사 휘하 군인들의 개인신상 정보를 수록한 3책으로,2책은 작성 시기는 각각 숙종 5년(1679)과 숙종 23년(1697)이며 나머지 1책은 앞장이 떨어져 나가 작성연대를 알 수 없었다. 명부에 오른 사람은 모두 4213명으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던 사람은 3883명이었다. 나이가 기록된 3541명 가운데 16세 미만은 65명이었고,60세가 넘은 병사는 9명이었다. 나이가 가장 적은 직책은 일종의 사환병사인 수솔(隨率)로 26.5세이고, 나이가 가장 많은 직책은 오늘날의 하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총(旗摠)으로 41.9세였다. 얼굴의 특징이 기록된 사람은 2260명으로, 천연두를 앓으면 나타나는 마맛자국이 있는 사람이 전체의 17.7%에 이르는 402명이었다. 마맛자국은 대단히 심하게 얽은 박(縛)에서부터 잠박(暫縛), 마(麻), 잠마(暫麻), 철(鐵) 등으로 구분했다. 서애 류성룡 집안에 전하는 1596년의 평안도 군적에는 552명의 병사 가운데 27%인 150명의 얼굴에 마맛자국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만큼 임진왜란 이후 천연두 발병률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혼란스럽게 만든 대목은 4.00척(尺)으로 산출된 평균신장이다. ●천민 24%·상민이 74% 차지 김성갑 토지박물관 주임은 “이 시대는 황종척(34.48㎝)이 통용되었고, 실제 이를 적용해 제주 속오군적에 오른 인물들의 평균신장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46.54㎝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수치가 나온다.”면서 “그러나 똑같은 척도를 적용할 때 충청도의 군인들은 평균키가 137.9㎝밖에 되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말했다. 토지박물관은 직접 자를 대고 키를 잰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기입해 넣은 데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있다. 군적에 나타난 인물을 신분별로 보면 24%인 929명이 사노나 궁노(宮奴), 내노(內奴)와 같은 천민이었고, 양인(良人)과 한량(閑良), 업무(業武) 등 상민이 74%인 2946명을 차지했다. 군적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전기에는 군대로 징발할 수 있는 명단이라는 실용적인 측면이 강했으나, 조선후기에는 군포(軍布)라고 하는 일종의 국방세금을 거두기 위한 기초자료로 주로 활용됐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명말·청초 조선외교 ‘현장보고서’

    병자호란 때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가 본국에 써 보낸 ‘심양장계’(瀋陽狀啓, 소현세자 시강원 지음,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 옮김, 창비 펴냄)가 번역·출간됐다. 심양장계는 신하가 임금에게 보내는 보고서 형식의 글이다. 세자를 수행한 시강원(조선시대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관청으로 소현세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 따라감) 관리가 장계를 작성해 승정원으로 보내면 승지가 국왕에게 전달했다. 본국에 보내기 전에 세자의 재가를 거쳤다는 점에서 세자가 임금에게 보낸 글이라 봐도 무방하다. 소현세자 일행은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한 이듬해인 1637년 4월 심양에 도착(당시 세자 나이 26세)한 뒤부터 귀국을 허락받은 1644년 8월에 이르기까지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세자는 자신을 수행해간 남이웅, 박로, 박황 등 시강원 관료들을 통해 본국 승정원에 장계를 올렸다. ●정치상황·청나라 궁실 생활상 자세히 심양장계는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사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로 꼽힌다. 책엔 청나라 건국 초기의 정치상황과 궁실의 내부 사정, 만주 귀족들의 생활상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당시 조선과 명·청 3국의 외교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조선이 몰락하는 명나라와 흥성하는 청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시강원 관리는 심양의 세자와 대군 이하 종신들의 동정 외에도 청나라 관아의 모습, 심양의 정치·경제·사회 상황, 청나라와 명나라의 관계까지 탐문해 보고했다. 특히 국경 지역에서 벌어진 담배와 종이 등의 교역에 관한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본국에서는 장계 내용을 토대로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내렸다. 장계에 따르면, 소현세자가 심양에서 풀어야 할 시급한 외교 현안은 요동 일대를 장악한 청나라가 명의 본토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요청한 군대 파병 문제였다. 세자는 조선과 청 사이에서 양국의 의견을 조율했고, 조선군을 향한 청군의 각종 항의를 무마시키기도 했다. ●세자가 양국 의견 조율·청군 항의 무마 시급한 현안을 놓고 급하게 쓰인 글인 만큼 심양장계는 정통 한문 문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조선식의 이두가 섞여 있고 부정확한 표현들도 적지 않아 해독이 쉽지만은 않다. 미묘한 국제관계를 다룬 탓에 조선왕조 기간엔 대외유출이 철저하게 금지됐고, 규장각에 국가 기밀자료로 보관된 채 왕실 친인척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심양장계에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일본인 학자들이었다. 명말 청초의 조선 외교관계를 파악하고 조선 식민지화 구실을 찾기 위해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고서번각위원회’가 1932년 ‘규장각총서’ 제1책으로 간행했다. 이번 번역본은 이화여대 국문과 고전번역팀이 이강로 한글학회 이사의 감수를 받아 수년간 공동작업 끝에 완성한 완역주석본으로 경성대 판본에 기초했다. 학술적 목적으로 이화여대 팀과 비슷한 시기에 직역 위주로 옮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번역본에 비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썼다는 것이 번역팀의 설명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곰가죽’으로 만든 英근위병 모자 논란

    영국 왕실의 전통과 근엄을 나타내는 근위병 모자가 뜨거운 논란을 낳고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PETA(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근위병 모자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곰 사체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PETA측은 근위병 모자를 만들기 위해 곰의 털·가죽을 벗겨내는 것은 지난 200여년간 이어져 온 전통이라며 인조모(毛)를 쓸 것을 국무성측에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PETA의 안 위드콤브(Ann Widdecombe)는 “가죽을 팔기 위해 새끼를 밴 곰이라도 사냥꾼들은 총을 쏴 죽인다.”며 “정부가 이 사안에 대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무성 대변인은 “이미 군대에서는 진짜 곰 대신 다른 재료를 사용해 모자를 만들어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위드콤브는 “국무성측은 지난 2005년부터 곰가죽 모자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조사에 따르면 1년에 50개의 곰가죽 모자를 공급받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반론했다. 또 “지난 5년간 국무성측은 곰가죽 모자에 약 30만 파운드(한화 약 5억 9천만원)를 썼고 낡은 모자를 손질하는데 13만 1천 파운드(한화 약 2억 6천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논란에 대해 대다수의 네티즌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즌 ‘Mavis Radel’은 “단순히 모자 하나를 위해 이같은 잔혹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진짜 털과 가짜 털의 차이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밝혔으며 ‘M.Edmonds’도 “모자를 만들기 위해 이같은 아름다운 동물이 총에 맞아야 한다니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 다큐영화 ‘야스쿠니’ 사전검열 논란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야스쿠니’가 다음달 12일 개봉을 앞두고 ‘사전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자민당의 소장파 의원 41명으로 구성된 ‘전통과 창조의 모임’이 문화청을 통해 “반일적인 내용이 있다.”며 전례없이 시사회를 요구하면서 비롯됐다. 영화는 지난 1989년부터 일본에서 활동중인 중국인 감독 리잉이 2006년 일본의 예술문화진흥기금 750만엔을 지원받아 제작에 들어 갔었다. 내용은 군대용 칼인 ‘야스쿠니도’를 만들어온 장인의 전쟁과 신사를 둘러싼 복잡한 마음을 축으로 한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유족과 군복을 입고 절규하는 일본 청년, 성조기를 든 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미국인 등 야스쿠니 신사의 다양한 모습을 해설 없이 담고 있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에도 정식 초청되는 등 반향도 적잖다. 영화 배급사측은 “특정 의원만을 대상으로 부자연스런 시사회에 응할 수 없다. 사실상 검열”이라며 반발하다 아예 모든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오는 13일 시사회를 갖기로 했다. 배급사 측은 “이념이나 정치색은 없다. 관객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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