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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하늘 “군대 안간게 아니라 못간 것이다”

    이하늘 “군대 안간게 아니라 못간 것이다”

    DJ DOC의 리더 이하늘(37)이 자신의 군 면제와 관련해 처음으로 속내를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이하늘은 최근 OBS 경인TV ‘윤피디의 더 인터뷰’(연출 윤경철,이근석)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군 면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군대를)안간 것이 아니고 못간 것”이라며 “부양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군을 기피한 적이 없고 군에서 날 받아주지 않았다.”면서 “부양가족이 있었고 당시 우리 집에는 내가 돌봐 드려야 될 예순이 넘은 할머니와 동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하늘은 45 RPM의 멤버인 동생 이현배와 관련해 “동생의 음반을 4년 6개월 동안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했다. 동생은 내 모든걸 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또 그는 “평소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데 동생과 술만 먹으면 슬퍼진다. 동생앞에서 2번 울어봤다.”고 말했다. 이하늘은 이외에도 맞선 봤던 이야기,자신의 이상형, 최근 푹 빠진 낚시 이야기, 600만장을 팔았지만 무일푼이었던 사연 등을 털어놨다. ‘윤피디의 더 인터뷰’ 이하늘 편은 오는 7일 오전 10시 방송된다. 사진= MBC 캡쳐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베트남 외교문제로 비화

    |베이징 이지운특파원|“5일 동안 미사일을 쏘아댄 뒤 31만 병력을 동원한다. 침공 노선은 윈난(雲南)성, 광시(廣西)장족자치구와 남중국해루트. 작전은 31일내 종료….” ‘선(先) 미사일 공격-후(後) 병력 투입’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중국의 베트남 침공 계획’이 중국 인터넷망에 유포돼 중국과 베트남의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실제로 1979년 중국의 침공으로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 베트남으로서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중국 외교관들을 두차례 불러 엄중 항의했으며 침공 계획 문건에 대한 확인과 후속조치를 요구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5일 보도했다. 침공 계획 문건은 시나닷컴을 포함해 최소한 4개 이상의 포털사이트에 유포됐다.31일 동안의 군사작전 전략은 상세 지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베트남 군대의 지휘 및 통신센터에 전파 방해를 실시하고 남중국해의 해상로를 봉쇄한다는 내용의 구체적인 군사 작전까지 명시했다. 문건은 “베트남은 중국의 영토 안전에 심대한 위협 요소이며 중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지만, 모든 측면에서 볼 때 베트남은 삼키기 어려운 가시와도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베트남은 남동아시아의 전략적 허브로 중국이 남동아시아를 다시 통제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정복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베트남 정부 당국자들은 이 문건이 분쟁지역인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누적된 관련국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이번 ‘침공계획’ 문건 파문이 남중국해 유전개발을 위해 베트남이 다국적 기업들과 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중국이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국립대학의 한 베트남 군사전문가는 “중국이 베트남 침공을 검토하고 있다는 문건은 근거가 전혀 없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문건은 양국 내부의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 문건은 세계 평화와 양국 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거없는 정보로 양국관계에 매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서 “이 문건이 더이상 유포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레 중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이 밝혔다. jj@seoul.co.kr
  • [깔깔깔]

    ●지하철 잡상인 1. 천원을 기준으로 한다. “천원짜리 한 장만 받습니다.” 2. 물건을 판다는 말은 절대로 안 한다. “잠시 양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3. 항상 회사는 부도가 났다. “회사가 망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4. 항상 무더기로 판다. “집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밴드 70매를 종류별로 해서 천원짜리 한 장만 받습니다.”●군대에서의 불만 1. 잠들 만하면 기상(짜증난다. 하지만 누구한테 짜증낼 처지도 안되고….) 2. 먹을 만하면 식사끝(특히 많이 먹는 친구들일수록 심하다) 3. 외박할 만하면 외박금지(정말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럴 땐 정말 군대가 싫다) 4. 놀 만하면 휴식 끝(심심해서 장기 한판 하거나, 바둑 한판 둘라치면 휴식끝이다. 모두들 괴로운 표정짓는다).
  • 에릭, 10월 9일 입소…오늘 영장 받아

    에릭, 10월 9일 입소…오늘 영장 받아

    그룹 신화의 멤버 겸 연기자인 에릭(본명 문정혁)이 국방의 의무를 위해 훈련소에 입소한다. 에릭은 오는 10월 9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소해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에릭 소속사 관계자는 “오늘(4일) 오전 영장을 받아 10월 9일 논산훈련소로 입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에릭은 지난 2000년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 이후 입대 대상자가 됐으며 당초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2006년 드라마 ‘늑대’ 촬영 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재검을 받고 최종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게 됐다. 이로써 에릭은 신화의 멤버 중 최초로 군대에 가게 됐다. 한편 지난 1998년 그룹 신화로 데뷔한 에릭은 아이들 그룹으로 성장했으며 이후 연기자로도 변신해 드라마 ‘불새’, ‘신입사원’, ‘최강 칠우’등 드라마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추신수 대활약에 美팬들 “군대는 어떡해?”

    추신수 대활약에 美팬들 “군대는 어떡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추신수(26)가 대활약 중인 최근이지만 국내와 마찬가지로 현지 팬들도 걱정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군대 입대다. 2일 ‘클리블랜드 공식 홈페이지’의 메일 질문 코너에서 클리블랜드에 거주한다는 마이크는 “추신수의 한국 병역 문제가 정확히 어떻게 되느냐”며 “언제 그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담당 기자 앤서니 카스트로빈스는 “만 26세인 추신수는 30세가 되기 전 한국 군대서 2년을 복역해야 한다”고 설명한 후 “그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아시안 게임(2010년) 금메달을 따거나 미국 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카스트로빈스 기자는 “추신수는 일단 이 사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심적으로 걸리는 부분이다. 추신수의 경력에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시점인데 이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솔직하게 말했다. 한편 기자는 “추신수가 베이징 올림픽 한국 대표팀을 보고 부러워 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금메달을 획득해 군대 면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추신수는 올 시즌 70경기서 9홈런 42타점 타율 0.276 장타율 0.509의 호성적을 내고 있다. 기사제공=스포츠서울닷컴 박정환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伊, 리비아와 식민배상 합의

    아프리카의 대표적 폐쇄국가인 리비아가 이탈리아와 배상협정에 합의했다. 이탈리아는 20세기 전반 40년 남짓 리비아에서 식민지배자로 군림했다. 배상액은 앞으로 25년 동안 한해에 2억달러씩 모두 50억달러에 이른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지도자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30일(현지시간) 리비아의 항구도시 벵가지에서 이런 내용의 배상협정에 서명했다. 장소는 이탈리아가 식민지배시절인 1911∼1943년 총독부 본부로 사용했던 벵가지 궁전이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 국민을 대표해 오랜 식민기간 발생했던 일들, 리비아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사과할 의무를 느낀다.”고 밝혔다. 카다피 최고지도자는 “역사적 문서를 통해 이탈리아는 리비아인들에게 저질렀던 살인과 파괴, 억압에 대해 사과했다.”면서 “양국은 미래를 향한 협력과 동반자 관계를 열게 됐다.”고 선언했다. 배상은 대부분 리비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관통해 서쪽 튀니지와 동쪽 이집트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약속했다. 화해의 의미로 로마국립미술관이 갖고 있는 목 없는 조각상 ‘키레네의 비너스’도 반환키로 했다. 이 조각상은 이탈리아 군대가 키레네 마을에서 약탈해갔던 리비아의 대표적 유물이다. 식민지배 기간 매설됐던 지뢰들도 해체된다고 BBC는 전했다. 대신 이탈리아는 산유국 리비아의 원유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국은 리비아인들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지중해에서 합동 해상순시 활동도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직제에도 없는 ‘사로청 서기’ 근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 원정화의 대남 간첩 행위와 별개로 원정화의 북한내 경력과 행적에 대한 의문이 일부 탈북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고위층 탈북자와 공작원 출신들은 북한의 대남 공작 시스템이나 관행 등에 비춰, 검찰 공소장에 원정화가 진술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 원정화의 북한내 행적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원정화는 1989년 6월쯤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최룡해 당시 위원장에게 발탁돼 낮에는 사로청 조직부에서 서기로 근무하고 오후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사로청 간부, 돌격대 대대장 등과 함께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청년동맹 중앙위 조직부에는 지금이나 과거 사로청으로 불릴 때나 서기라는 직제가 없다.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 양성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는 일단 선발되면 외부인과의 접촉은 단절된다. 낮에는 일반인들과 섞여 지내고 오후에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게 탈북자들의 지적이다. 원정화는 “돌격대 간부교육을 이수했다.”고 했으나 ‘속도전청년돌격대’는 사실상 건설노동자 집단이다. 군대식으로 운영이 되고 노동 강도가 센 데다 말그대로 ‘막노동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탄광·광산 다음으로 청년들의 기피대상이다. 원정화가 공작원 훈련을 받았다는 특수부대의 위치로 평양 모란봉구역 전승동을 지목했지만, 탈북자들은 “노동당이든 군이든 모란봉구역 전승동 같은 평양 도심에서는 특수부대 훈련을 하는 곳이 없다.”고 말한다. 원정화는 받았다는 ‘이중영예 붉은 기 휘장’은 개인이 아니라 모범적인 학교나 학급 전체에 수여되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원씨를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남한 실정을 잘 알는 원씨가 몇년 감옥살이 하고 나오면 몸값을 높여 돈을 벌려고 북한 보위부의 끄나풀인 자신의 북한내 이력을 과장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새영화] 스타워즈 - 클론전쟁

    [새영화] 스타워즈 - 클론전쟁

    ‘스타워즈-클론전쟁’(새달 4일 개봉)은 공상과학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첫 애니메이션 버전 영화다.‘에피소드2:클론의 습격’과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에서 언급된 공화국군과 제국군 간의 본격적 전쟁(클론전쟁)을 소재로 삼았다.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새로운 희망’으로 출발한 ‘스타워즈’ 시리즈는 2005년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를 끝으로 사실상 실사영화의 막을 내렸다. 영화는 은하계 범죄단의 우두머리인 ‘자바더헛’의 아들이 납치당하면서 시작된다. 공화국으로부터의 분리주의 운동을 이끄는 두크 백작은 공화국을 공격하기에 앞서 자바더헛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을 꾸민 것이다. 위기에 빠진 공화국은 제다이 기사인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그를 스승으로 섬기는 제다이의 수련생 아소카 타노를 자바의 아들 구출작전에 투입한다. 이들은 공화국 소속 군단인 클론 군대를 이끌고 두크 백작의 드로이드군과 일전을 벌인다. ‘스타워즈-클론전쟁’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영상 구성이 미국식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일본식 재패니메이션에 가깝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 영화의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는 “극적인 조명과 강렬한 프레임 기법 등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을 일부 수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간주된 제다이 전사에 처음으로 여성 캐릭터인 아소카 타노가 등장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 연출을 맡은 데이브 필로니가 지적했듯 아소카는 불같은 성격의 주인공 아나킨과 침착한 스승 오비완의 중간적 성격의 인물이다. ‘스타워즈-클론전쟁’은 일부 해외 언론에선 “성인용이 아닌 아동용 애니매이션”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광선검으로 상징되는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와 대규모 전투 장면은 ‘스타워즈’를 보고 자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볼 만한 ‘가족영화’로는 손색이 없을 듯하다. 전체관람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오바마 美민주 대선후보로] 일방주의 외교서 다자주의 외교로

    |덴버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의 연설에 나타난 대외정책은 힘에 의한 일방주의가 아닌 외교와 동맹강화,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다자주의, 도덕주의로 요약된다.이날 덴버에서는 오바마의 외교브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바마의 대외정책을 설명해 관심을 모았다. 클린턴 2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지낸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앤서니 레이크, 클린턴 탄핵 당시 백악관 특별 법률고문으로 활동했던 그레그 크레이그 변호사, 리처드 댄지그 전 해군장관 등 오바마가 집권하면 외교안보팀을 구성할 인물들이다. 오바마는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을 책임있게 종식시킴으로써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을 철수하고 9·11테러의 배후인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소탕하는 데 노력을 배가하겠다며 대테러전쟁의 전선 이동을 기정사실화했다. 미래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해 군대를 재건하겠다고도 밝혔다. 직접적이고 단호한 외교정책을 통해 이란이 핵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을 저지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파트너십을 새로 구축해 21세기의 도전인 테러리즘과 핵물질 확산, 빈곤, 기후변화, 질병 등에 공동 대처해 나가겠다는 구상도 펼쳐놓았다. 앤서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군사적 방법에 의존한 외교정책을 펴왔다는 점을 교훈삼아 차기 정부는 외교력과 도덕주의를 결합한 ‘통합 외교’를 정책기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레이크 전 보좌관은 또한 “미국의 국내상황이 안정돼야 대외적인 영향력도 강화될 수 있다.”면서 국내 정치안정과 외교가 원활하게 연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핵확산 및 기후변화 문제 등 국제적인 도전과 위협에 동맹들이 공동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라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수전 라이스 전 차관보는 “21세기 초국가적인 안보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있어 지도력과 전략, 정책의 3박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kmkim@seoul.co.kr
  • “합참의장, 합동군사령관 겸직”

    합참의장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앞서 창설되는 합동군사령부(JFC) 사령관을 겸직하게 된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합동군사령부 예하로 전투사령부 조직을 편성할 것이며 합참의장이 JFC 사령관을 겸직하는 구조로 JFC를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합참의장과 합동군사령관을 별개로 둘 경우 관련 조직이 ‘옥상옥’ 형태로 우리 현실에도 맞지 않다.”며 “합참과 군사령부가 분리 운용되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라고 말했다. 2012년 4월17일부로 한국군으로 전환되는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게 될 합동군사령부의 창설 시기와 관련, 이 장관은 “2012년 4월 이전에 우리 군의 능력을 고려해 편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반도 유사시 합동군사령부가 작전을 주도하고, 주한미군사령부는 2010년 10월까지 전투사령부인 미 한국사령부(US KORCOM)로 개편해 합동군사령부를 지원하게 된다.JFC 창설로 인사·군수, 정보, 작전, 전략기획 등 4본부 체제의 합참은 인사·군수 중심으로 축소되고 나머지 조직은 합동군사령부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참여정부에서 마련한 ‘국방개혁 2020’의 수정 방향에 대해 “전투가 일주일 또는 한달 간 진행되더라도 전투지속 능력을 갖추는 사단이 필요하다.”고 말해 부대 수를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수정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장관은 ‘선 전력화·후 부대개편’ 및 ‘고도의 전문·시스템화’의 방법으로 군을 전투위주로 육성해 비군사·초국가적 위협에 대처하는 군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한·중 군사훈련 상호 참관과 관련,“주요 훈련들이 한·미연합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미국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21세기 한·미 전략동맹과 관련해선 한반도차원을 넘어 지역 및 글로벌이슈에 공조하는 미래지향적 전략동맹이라고 밝혔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데스크시각] ‘중화(中華)’에 대한 변명/ 서동철 국제부장

    [데스크시각] ‘중화(中華)’에 대한 변명/ 서동철 국제부장

    동료기자가 독자로부터 꾸짖음 섞인 전화를 받았다. 그 독자는 지난 27일자 서울신문에 나간 ‘중국의 비상-팍스 시니카 시대로’에 크게 화가 나신 듯했다. 어떻게 대한민국 신문이 1면에 ‘중화(中華)’라는 제목을 버젓이 내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수긍할 수 있는 지적이었다.‘중화’란 중국의 이른바 ‘중원(中原)’만이 문명화된 지역이고,‘중원’을 둘러싼 주변사방은 ‘이적(夷狄·오랑캐)’에 불과하다는 특유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그러니 중국을 ‘중화’라고 부르는 순간 스스로가 ‘오랑캐’를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분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중화’에 중국을 섬기는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담겨 있다고 보는 시대는 지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담을 섞자면, 우리 중국집에는 어김없이 ‘중화요리(中華料理)’라고 씌어 있지 않은가. 자장면과 짬뽕이 대표메뉴인 동네 중국집이 간판에 ‘중화’를 내걸었다고 쯔진청(紫禁城)의 청나라 궁중요리를 떠올리지는 않는다.‘중화요리’를 먹는다고 사대주의에 젖었다고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오늘날 ‘중화’라는 표현이 한국 신문에서 씌어졌다면 중국을 미화하고, 그들이 가진 힘에 빌붙겠다는 의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중국이 멀지않은 장래에 ‘중화’라는 세계관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만큼이나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우려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어떤 작가도 쓰기 어려운 드라마를 야구에서 보여주었고, 역도의 장미란과 유도의 최민호는 우리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통쾌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땄다. 두 사람의 경기 이전에 가슴 졸이지 않고 올림픽 결승전의 중계방송을 본 적이 있었던가. 스포츠라는 측면 말고도 우리가 베이징올림픽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한줌도 되지 않는 영국군대에 베이징마저 능욕당한 아편전쟁 이후 100년이 훨씬 넘는 ‘굴욕의 시대’를 떨쳐버리고 그동안 쌓은 정치·경제·외교력을 바탕으로 ‘중화의 시대’로 복귀하겠다는 중국의 야심이 드러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올림픽 이후 중국에 대한 전망은 다소 엇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같은 사람은 수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권력과 영향력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극동지역과 나눠 갖는 상황이 되었다며, 권력분점의 대상으로 중국을 지목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에선 시큰둥한 반응이 많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처럼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딴소리’를 하기도 한다. 중국은 인권상황에 대한 지적을 놓고 자신들이 강력한 경쟁상대로 떠오를 것을 우려하는 나라들이 빼어드는 압박카드에 불과하다고 이미 1996년 발간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에서 규정했다.‘아시아 제1의 경제대국’의 위치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했음이 분명한 마치무라식(式)의 변죽울리기는 오히려 중국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적절히 대(對)중국전략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 손자들이 중국에 불법체류하면서 식당일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한 중국 진출 기업인의 경고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을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실제보다 조금 더 과장되게 평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미래의 어느날 갑자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야 한다. 위험한 이웃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철저히 해도 지나치지 않은 법이다. 서동철 국제부장 dcsuh@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간첩 연루 장교 총살시켜라” 질타 이어져

    ‘원정화 여간첩 사건’에 현역 장교들이 연루됐다는 소식에 네티즌들이 “군대가 제대로 썩었다.”며 군 기강해이를 질타하고 나섰다. 27일 합동수사본부 발표에 따르면 직파간첩 원정화(34·여)는 군사 기밀을 빼내 북측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됐다.이 과정에서 현역 장교 3∼4명이 사건에 연루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특히 육군 소속 황모(27) 대위는 원정화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군 안보강사로 활동 중인 탈북자 명단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뉴스 댓글 및 각 포털게시판에 ‘군 기강 해이’를 지적하는 글을 잇따라 올리며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 ‘kill_dochin’은 “안보의식이 실종된 ‘군바리’들의 잘못”이라며 황모 대위를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아이디 ‘nexus_corea’는 “장교들을 모두 해임시키고 장교직 영구박탈과 함께 불명예 퇴진시켜 군인연금 등을 한푼도 받지 못하게 하라.”며 엄벌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yjscool2002’는 “성로비 받았다는 장교를 즉각 총살시켜 군기강을 바로 잡아라.”며 한층 격렬한 의견을 개진했다. 이와 관련,국방부는 “국민들에 심려를 끼친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사과했다.이상희 국방장관은 이날 고위급 간부회의에서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군 간부들의 복무기강 확립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한편 ‘cjfdnd2’ 등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사건이 발표된 시점을 문제삼으며 “범불교도 집회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정부의 물타기”라고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부상투혼’ 태극전사들은 지금…

    베이징올림픽에서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을 이겨내고 끝까지 승부욕을 불사른 선수들의 투혼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메달리스트들에 앞서 국내에 돌아와 치료 중인 선수들의 근황을 들어봤다. ●비운의 복서 백종섭은 통원치료 계속기관지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8강전을 포기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던 ‘비운의 복서’ 백종섭(사진 왼쪽·28·충남체육회)은 지난 21일 귀국한 뒤 곧장 건국대부속병원에 입원했다.26일엔 이명박 대통령이 주최하는 청와대 오찬에 다른 대표선수단과 함께 참석하기 위해 모처럼 외출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몸도, 마음도 지친 터라 빠지고도 싶었지만 대통령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도록 배정돼 발걸음을 했다.“대통령께서 ‘시합 안 뛰기를 잘했다.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시는데 뭐 드릴 말씀도 없고, 답답하죠.” 백종섭은 27일 퇴원한 뒤 통원치료를 받을 계획이다. 백종섭은 “아내도 몸이 안 좋아서 일단 퇴원을 할 겁니다.”라면서 “군대 문제를 주위 분들과 상의해야 되고 10월 전국체전도 준비해야죠.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하면 다시 운동을 해도 된다고 하더군요.”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여자농구 최윤아 4~6주 뒤에나 활동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농구의 자존심을 한껏 살린 가드 최윤아(오른쪽·23·신한은행)도 지난 21일 귀국과 동시에 서울 고덕동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에 입원했다. 세계 최강 미국과의 8강전에서 흐르는 공을 붙잡으려다 미국 선수와 부딪쳐 요추 3번이 골절된 것. 의료진은 ‘1∼2주 동안 움직이지 말고 절대 안정을 취하되 4∼6주 뒤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운동을 쉰 기간이 있어 코트에 복귀하려면 두 달 정도 필요할 전망이다.오는 10월3일 개막하는 08∼09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1∼2라운드까지는 결장이 불가피한 셈. 최윤아는 “다쳤지만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한 거라 후회는 없어요. 다만 시즌이 얼마 안 남아 팀동료들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같이 못해 미안해요. 그래도 마음 편히 먹고 있으려고요.”라고 말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박병진 공군대령 美유공훈장

    박병진 공군대령 美유공훈장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박병진(사진 오른쪽·49·공사 31기) 대령이 25일 미국 정부의 근무유공훈장(The Meritorious Service Medal)을 받았다. 근무유공훈장은 미 정부가 평시 업무 중 공로를 세운 우방 장병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박 대령은 2005년 9월∼2007년 9월 미 버지니아주 합동전력사령부에서 최초의 한국군 연락단장으로 근무하며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공군은 설명했다. 미 합동전력사령부 우드(미 육군 중장·왼쪽) 부사령관은 이날 서울 용산 주한미군사령부에서 열린 서훈식에서 박 대령에게 미국 정부를 대신해 훈장을 전달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기고] 아리수에 고구려대교를/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기고] 아리수에 고구려대교를/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오면서 강변도로를 승용차로 달렸다. 한강에 다리들이 보였다.1970년대 초 5개뿐이던 한강의 다리가 21개로 늘어난 것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나라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강에 처음 다리가 세워진 것은 1900년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철교’라고 한다. 지금은 마포구 상암동에 ‘월드컵대교’, 또 강동구 암사동과 경기 구리시를 연결하는 가칭 ‘암사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이 다리는 아차산에 3.5㎞의 터널을 뚫고 강동구와 중랑구의 사가정길로 연결해 동부서울의 교통소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다리다. 요즘 이 다리를 놓고 강동구에서는 ‘암사대교’로, 구리시에서는 ‘구리대교’로 지역명을 반영해야 한다는 제각각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한강다리에도 처음에는 제1, 제2, 제3 등 행정편의적인 이름으로 부르다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을 거치면서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 등 지역과 관련된 이름으로 바꾸었다. 지역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했겠지만 이 또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닐까. 한강의 다리 이름 중에 ‘올림픽대교’와 건설 중인 ‘월드컵대교’가 그나마 색다른 의미를 지녔을 뿐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의 선진국가로 진입하려면 문화 콘텐츠가 사회 주류를 선도하는 흐름에 맞춰 다리 이름에도 개성을 존중하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서 논란이 되고 있는 새 다리 이름을 ‘고구려대교’라고 하면 어떨까. 한민족의 유구한 반만년 역사와 함께 해온 한강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신라, 백제가 각축을 벌이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아차산 일대는 고구려 장수왕이 한반도 남하정책을 추진하며 한강 유역의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거점이 된 곳이다. 곳곳에 보루를 쌓고 160여년간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남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유물과 유적을 남긴 곳이다.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연화문와당’이 출토된 홍련봉 보루를 비롯한 17개의 보루가 확인되고 수천점의 토기와 철기류 등이 쏟아졌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광진구는 고구려 유적을 복원하고 출토된 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 보존할 ‘고구려역사문화관’을 건립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고구려역사문화관과 연계해 새로 건설되는 다리 이름에도 단순한 지역명을 붙일 게 아니라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동북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기상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름으로 하자. 동부 서울의 관문이 될 ‘고구려대교’와 아차산에 건립되는 고구려역사문화관을 동부서울의 랜드마크로 활용한다면 서울시의 ‘1200만 외국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도 한강의 생태를 되살리고 곳곳에 숨은 문화·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외국관광객도 한강, 아리수에서 서울의 역사를 느끼며 추억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Pont-Neuf)’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센 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우아한 교각에 갖가지 조각을 아로새긴 퐁네프는 16세기말 30년간에 걸쳐 완공됐다고 한다. 이 다리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명소가 됐다. 세계의 도시에서 폭이 1㎞가 넘는 강을 끼고 있는 도시는 서울뿐이다. 훌륭한 관광자원인 한강에 새로 건설하는 다리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한다. 후손들이 오늘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GREAT 고구려대교’를 위하여. 정송학 서울 광진구청장
  • [글로벌 시대] 한국식 위계문화를 겪어보니…/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글로벌 시대] 한국식 위계문화를 겪어보니…/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19세기 후반 한국이 외국에 처음 문호를 개방했을 당시 외교 문제를 담당했던 부처는 예조였다. 유교사상이 강했던 당시 상황에서 담당부서로 적합한 곳이었다. 그러나 서방과의 ‘의사소통’측면에서는 논의되어야 할 의제 자체보다, 엄격한 규율에 의거해 지위와 신분에 따른 회담 대상을 정하는 데 더 중심을 두는 등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무리’의 서열과 지위가 중시된다. 최근 외국 회사의 임원이 공적 기부계획 내용을 담당 장관에게 팩스로 보낸 적이 있다. 근데 팩스는 장관급에 적절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가 됐던 일이 있다. 이러한 수직적 인간관계는 때로 한국인과 서구인 사이에 혼란과 오해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필자가 10년 이상 연하인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어린 사람과 친구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사업 관계로 동승할 때 오른편 뒷좌석을 ‘특별석’이라며 양보하는 문화도 외국인에게는 낯설다. 서양이라면 운전자 뒷좌석이 최상석, 다음으로는 아마도 경치를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운전자 옆 좌석이 꼽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모습들이 타당한 것일까. 글로벌화를 위해 한국은 위계 중심 문화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까. 우선 이와 같은 유교적 가치가 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 보자. 한국 부모들은 교육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며 자신의 커리어, 심지어 가족의 생활마저도 희생한다. 교육 기관에도 서열이 있어, 졸업 후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식 시험의 결과가 직장에서 필요한 업무 역량이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한 서구 저널리스트는 “한국의 교육은 분석력, 창의적 사고, 실용 응용력 등을 거의 배제한 채 상당 부분 기계적 암기와 석차에 의존한다. 영어시험에서 99점을 받아도 영어 회화가 어렵고, 교수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것조차 역부족”이라고 했다. 서열이 높은 교사가 항상 옳다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학생들이 의견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한 한국은 교육수준 세계 60위(세계경제포럼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둘째로 서열, 계급, 지위를 강조하는 군대조직과 같은 한국의 기업문화를 들 수 있다.‘요청’이면 될 사안으로 직원에게 ‘명령’하는 문화는 비한국인에게 모욕이나 비하로 여겨질 수 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회사들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비즈니스 문화에서 점차 고립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직접 찾아가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드물다. 상사를 모시고, 흡족하게 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은 엄청나며, 이와 같은 방식의 비용을 초래하는 사치는 어느 서구 경영체제에서도 환영받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연령차별을 들 수 있다.‘피터의 법칙’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정력가들에 비해 성공의 열정이나 동기는 줄고, 현상 유지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사회는 변화에 저항이 크고, 아이디어 실현은 보다 느리고 덜 유연하다. 다시 말해 오늘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서 살아남는데 덜 적합하다는 뜻이다. 고백하건대 손자를 둔 할아버지이자, 일정 수준의 나이와 지위에 오른 사람으로서, 필자는 유교적 공경사상의 호사를 누리는 것이 꽤 편안하기는 하다. 그러나 국가적, 사회적 경쟁의 시대 한국은 성공과 생존을 위해 필요한 방편들을 갖추어 나가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가 갖춰야 할 것들 가운데 유교사상이 앞으로도 적절한 방편이 되어 줄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알란 팀블릭 서울글로벌센터 관장
  • [깔깔깔]

    ●불효 아들 백두산 효도 관광을 온 30명의 노인들에게 안내원이 물어봤다. “여기서 따님이 보내주셔서 관광 오신분 손들어 보세요.” 28명이 손을 들자 안내원은 “두분은 아드님이 보내주셔서 오셨나보네요.” 두 노인은 아니라고 하자 안내원은 재차 물었다. “그럼 아드님이 아니시라면 어느분이?” “사위가….”●술자리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이야기 이런 이야기 나오면 대체로 술판 분위기 깨진다. 술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말아야 할 화두는? 1. 군대 이야기(여자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2. 직장 이야기(백수 앞에서 하면 안된다.) 3. 자식자랑(특히 동창회에서)
  • [열린세상]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동북아 평화/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열린세상] 베이징올림픽 이후의 동북아 평화/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의 향배가 주목된다. 마침 이달 말에는 중국 주석 후진타오의 방한도 예정되어 있다.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것이 1910년 8월이니,100년이 됐다. 베이징올림픽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따져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중국의 위상이 예전과 달라지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일합병 100년과 중국의 부상, 다음 100년, 아니 가까이 다음 10년 아시아의 질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100년 전 대한제국 말기와 비교해 지금의 동아시아는 어떠하며, 환갑을 넘긴 대한민국은 안녕하고, 안녕할 것인가. 제국주의 열강의 아시아침탈이 가속화되던 1880년대, 당시 청의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주일 외교관 황준헌이 수신사 김홍집에게 ‘조선책략’을 전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황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정세에서 조선의 살길로 ‘친중(親中), 결일(結日), 연미(聯美)’를 제안한다. 전략적 주적은 러시아였다. 당시 제국주의 최강자인 영국은 논외로 하고,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이은 뒤 조·중·일 3국이 연대해서 주적 러시아를 견제하자는 말이다. 1900년을 전후한 동아시아권에서 아시아주의, 아시아연대론, 조·중·일 ‘삼국공영론’ 등은 상당히 인기있는 화두였다. 일본이 내세웠던 ‘동양평화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1905년 러일전쟁시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내걸었고, 고종을 비롯해 조선의 민초들 역시 러시아에 맞서 일본에 각종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청이 ‘아시아의 환자’ 노릇을 하는 동안, 동아시아를 놓고 벌인 일본과 러시아간의 패권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일본이었다. 상당수 조선의 지식인은 이 러일전쟁을 황백인종간의 인종전쟁으로 파악하였고, 일본은 그러기에 황인종의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 충분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 등이 내세운 동양평화론이 결국은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조선의 합병으로 귀결되었을 때 그 동양평화, 아시아연대란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이데올로기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안중근은 유명한 미완의 옥중유고 ‘동양평화론’을 통해 이토류 동양평화론의 허구를 맹렬히 성토하고, 결국 이것이 동양평화의 파괴를 불러 왔음을 웅변한다. 물론 지금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안중근의 논설이 다분히 ‘인종론적’이고, 이토와 일왕을 애써 구분하며, 동학운동을 폄훼하는 등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동양평화론의 행동플랜으로 당시 일본이 차지한 여순항을 조·중·일 3국이 공동관리하고, 공동의 군대를 창설, 공동의 화폐를 발행하는 일종의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했음은 그 자체로 놀랍게 ‘현대적’이다. 100년 전과 지금이 다름은 자명하다. 우선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이 아니다. 구한 말과는 달리 남북은 분단되어 있다. 러시아가 한·중·일 공동의 주적도 아니며, 미국은 동아시아의 ‘키다리아저씨’도 아니다. 티베트, 위그르 등 ‘아시아의 화약고’를 안고 있지만, 올림픽 이후 중국이 ‘아시아의 환자’는 아니다. 과거 러, 일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다퉜다면, 지금은 중, 미가 그렇다. 여기에 남북한, 일, 러를 더하면 ‘동양평화’로 가는 방정식이 훨씬 복잡해진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친미로만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북이 서로 불통이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자칫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경고한 바, 연작처당(燕雀處堂) 곧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처마 밑 참새와 제비가 즐겁게 노는’ 형국일 수도 있다. 올림픽 이후 동아시아는 100년 전 ‘아시아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대담한 역사적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일본의 극우 군국주의, 한반도의 분단 너머에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소통과 연대를 상상해 본다. 여기에 중국의 시민사회와 새로운 지식인의 출현마저 기대하면 과욕일까.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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