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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6 50돌] 5·16을 말한다

    [5·16 50돌] 5·16을 말한다

    ■ “8기 JP가 주도했다고? 5기가 핵심 세력이었지” 주역 중 1인 김재춘 前중앙정보부장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김재춘(84·육사 5기)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은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였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재춘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와 1955년 육군대를 졸업했다. 1957년 연대장을 지낸 뒤 1961년 5·16 당시 5·16 군사정변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을 맡았다. 이후 방첩부대장 겸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지냈으며 1963년 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이후 무임소장관,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쳐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김포·강화, 민중당)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고양·김포·강화, 민주공화당)을 지냈다. 1974년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1975년 한·중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 “5·16前 JP가 찾아와 정치발언 하기에 내쫓아” 反혁명분자 몰렸던 김웅수 당시 6군단장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소장)이었던 김웅수(88)씨. 수도권 요충지에 포진한 6만명의 예하 병력을 법을 어겨 가며 진압군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반 혁명세력으로 몰렸고 1년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그레이트폴스시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5·16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쿠데타로 본다.”고 했으나, 답변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5·16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단장급 이상 야전군 지휘관 회의가 5월 17일 강원 원주의 야전군사령부에서 예정돼 있었어요. 16일 열리는 체육행사에도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25~26명의 지휘관들이 15일 원주에 다 모였어. 16일 새벽 4시쯤 잠을 자고 있는데 이한림 야전군사령관이 관사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거야. 그래서 가 보니 이 사령관이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면서 “각자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장악해라. 병력 이동의 빌미가 될지 모르니 부대에 비상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6군단은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6군단의 작전지휘권은 내가 아니라 미 1군단장이 갖고 있었어요. 불법을 진압하려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북한군 교신이 급격히 늘어나기에 비상을 걸었지. 비상을 걸면 자동적으로 1개 사단이 완전무장해서 특정지구로 출동하게 돼요. 이 일로 나중에 나는 반 혁명세력으로 간주되게 되었죠. →미군에는 조치를 요구했나요. -18일 나의 매부인 강영훈 육사교장이 육사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라이언 1군단장한테 “왜 1군단이 갖고 있는 서울 비상계획은 쓰지 않는가.”라고 따졌어. 그날 저녁 라이언 장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매그루더 미 8군사령관이 이한림 장군을 찾아가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 장군이 “I will do(하겠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실제 그날 저녁 이 장군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와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다음날 아침 이 사령관이 소집한 군단장 회의에 가려고 횡성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미군 대령이 “이 장군이 이미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면서 되돌아가라고 하더라고. →결국 미군이 묵인한 건가요. -매그루더 장군이 누구를 진압할 성격이 못 됐어요. 강직하지 않았어. →미국이 5·16을 사전에 감지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17일 마셜 그린 미국 부대사가 ‘군은 헌정에 의한 정통 정부에 귀속하라.’는 서한을 보내 왔거든. →6군단장으로는 언제까지 근무하신 겁니까. -20일 대통령 특사가 온다기에 군단 비행장으로 나갔어요. 도착한 비서 2명이 건넨 윤보선 대통령의 서신에는 ‘대립을 피하고 쿠데타에 협력하라.’라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그날 장도영 장군이 21일 오후 1시쯤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서울로 떠나려는데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불길하다는 거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헌병 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중앙청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달려들어 막아서기에 내려보니 집사람이더라고. 그래서 “군인의 아내이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잘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는 차에 올랐어.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어. 의사당 앞에 도착하니까 어떤 장교가 다가오더니 권총을 옆구리에 대고 같이 가자고 해요. 차지철이었던 것 같아. 나를 마포 형무소에 집어넣더라고. →박정희 소장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나요. -잘 몰랐어. 하지만 그 사람이 청렴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그래서 1957년 내가 군수참모부장으로 있을 때 그를 군수기지사령관에 추천했어요. →직접 본 박정희 소장은 어떤 인물이던가요. -강직한 느낌이었어요. 군수기지사령관 취임식 참석차 부산 동래에 내려가 있었는데 박정희가 숙소로 찾아와서는 “각하, 혁명이라도 해야지 나라가 이대로 되겠습니까.”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군인이 혁명한다고 나라가 잘 된다는 보장이 있나.”라고 했지. →김종필씨와는 인연이 있습니까. -5·16 전에 김종필 소령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부패한 장성들은 군대에서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부패한 장성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소문으로 알지 실제로는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정치적 발언하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미국으로 떠난 이후 두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은 없나요. -1972년인가 장모님이 위독하셔서 한국에 갔었어.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 →청와대로 갔나요. -청와대에서 박정희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기에 “이제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사정이 더 중요하다. 막내 아들이 대학 들어가는데 3년은 더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박정희가 “기업체를 순방하고 군부대도 순방해 달라.”고 그래요. 내가 “장모님 병 때문에 어렵다.”고 했더니 “나이 든 사람의 병이란 늘 그런 것 아니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그래서 포항제철하고 과학기술연구원인가 두 군데 돌아봤어. →김종필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만났더니 “선배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나라가 부패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지. →5·16은 필요했다고 보십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오늘날 국민 전체가 수긍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보면, 5·16이 나라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구나, 국민의 감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정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김웅수는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청산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 김조현의 거처로 옮겨 6살 때까지 중국 하얼빈 근처 독립군 부락에서 살았다. 일본 관동군 학도병으로 끌려간 뒤 일본 센다이 예비사관학교에 편입해 장교가 된다. 일본 야마가타 연대 소대장으로 임명된 지 몇 달 뒤 일본 패망으로 해방된 한국에 들어왔고, 국군 장교가 됐다. 5·16 당시 혁명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뒤 집행유예로 석방,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밟고 워싱턴 DC의 가톨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일했다. 여동생이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 100 대 1 경쟁률 뚫고 뮤지컬 ‘그리스’ 주인공 된 김응주·손예슬

    100 대 1 경쟁률 뚫고 뮤지컬 ‘그리스’ 주인공 된 김응주·손예슬

    올 한 해, 전 세계 인증 신데렐라가 영국의 ‘케이트 미들턴’이라면 한국 뮤지컬계 신데렐라는 단연 뮤지컬 그리스의 두 주역 ‘손예슬(오른쪽)·김응주’다. 단국대 뮤지컬 학과에 진학한 뒤, 무대는커녕 늘 1학년이라는 이유로 무대 장비 정리만 해온 스무살 여대생 손예슬과, 주로 주연 배우 뒤편에서 군무를 맞추고 화음 내는데 열중했던 앙상블(배역 없는 합창단) 배우 김응주(23). 무대 경력이라곤 전혀 없었던 이들이 지난 4월 오디션에서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그리스의 여자주인공 ‘샌디’와 남자주인공 ‘대니’역을 꿰찼다. 뮤지컬 ‘그리스’는 대중성은 물론 엄기준, 오만석, 지현우, 윤공주 등을 배출한 뮤지컬 스타들의 등용문과 같은 작품이다. 화창한 봄볕이 내리쬐던 지난 3일, 공연이 한창인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두 배우를 만났다. →김응주의 경우 지난해 뮤지컬 그리스 공연에서 앙상블로 활동한 바 있지만 주역은 아니었다. 손예슬은 앙상블조차 거치지 않은 뮤지컬 학과 1학년 학생이었고. 오디션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김응주(이하 김) 앙상블로 계속 공연하다가 군대를 가야 할 나이라서 입대 준비를 했어요. 그러던 차에 기존 배우가 아닌 신인을 발굴해 무대에 올린다는 오디션 공고를 보고 가슴이 쿵쾅거리더라고요. 다시 안 올 기회다 생각하고 도전하게 됐어요. -손예슬(이하 손) 부모님이 올 초 우연히 오디션 공고 전단을 보시고 제게 추천해주셨어요. 사실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고3 때 뮤지컬학과에 진학한다니까 부모님이 엄청 반대하셨거든요. 밥도 안 먹고 떼를 써서 겨우 허락을 받아 뮤지컬을 전공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런 부모님이 되레 추천해주시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뮤지컬 그리스 오디션에서 각자 어떤 매력을 발산해 주연 배우로 발탁됐다고 보나. -김 제가 사실 그동안 앙상블을 주로 해서 대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잖아요. (웃음) 무대 위에서 대니역의 대사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많이 연습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도 많이 뺐어요. 예전에 108㎏까지 나갔던 적이 있거든요. 꾸준히 38㎏을 감량했어요. 그리고 소극적인 성격인데 오디션 현장에선 무척 뻔뻔해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뮤지컬 그리스에서 대니역을 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제가 키가 커서가 아닐까요(그의 키는 190㎝가량 된다). -손 저는 이번이 오디션 도전 처음이었어요. 지원서에 맡고 싶은 역할란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어요. 어떤 배역이든 무대에만 설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래도 샌디를 생각하고 원피스를 입고 예쁜 구두를 신고 온 지원자들이 많았어요. 저는 그냥 ‘30초 주어진 시간 내에 나란 사람을 그대로 보여주자.’라고 생각했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텀블링도 하고 다리도 찢었어요. 나중에 연출께서 ‘오디션 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냥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 그게 주효했던 거 같아요. →예슬씨는 부랴부랴 원서를 쓰게 됐다고 하던데. -손 네. 사실 오디션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날 지원서 마감 30분 전에 엄마에게 떨어져도 좋으니 쓰겠다고 선언하고서 부랴부랴 집에서 블라우스 입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찍어서 냈어요. 뮤지컬 회사 쪽에서 그 지원서 사진 보고 많이 웃으셨다 하더라고요. 뮤지컬 ‘남한산성’ 스태프인 줄 알았다고…. 하하. →첫 공연은 어땠나. -김 첫 공연 전날 잠을 전혀 못 잤어요. 불안하고 초조하더라고요. 1막 커튼이 갈라지면서 너무 긴장해 객석을 향해 계속 혼잣말을 했어요. ‘저는 김응주입니다. 대니는 꿈많은 청년이에요. 지금부터 제가 대니 역할을 할 거예요. 제발, 부디, 재밌게 봐주세요.’라고요. 같이 무대에 서는 형들, 누나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첫 공연을 마쳤어요. -손 첫 공연 전날, 너무 잠이 안 와서 가족들이랑 치킨 시켜먹었어요. 그래도 새벽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연출님께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연출님이 ‘떨림이 너를 무대로 인도하고 멋진 샌디가 탄생할 거야. 사랑한다.’라고 답장을 보내주셨는데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다음날 무대에 섰는데 관객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긴장했어요. 무척 떨렸지만 샌디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실수는 없었나. -김 많죠. 바지를 떨어뜨린 적도 있고 샌디를 부를 때 음이탈이 난 적도 있고요. -손 저도 음이탈 실수한 적이 있어요. 지난주엔 샌디 솔로 곡 부분에서 음이탈 실수를 너무 심하게 해 울기도 했어요. 손발이 다 떨리고 옷 갈아입으면서 눈물 삼키느라 혼이 났어요.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 남녀노소·외국인·장애우… 모두가 하나되어 달렸다

    [서울신문 하프마라톤 대회] 남녀노소·외국인·장애우… 모두가 하나되어 달렸다

    15일 오전 9시.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의 공원에는 1만여명의 시민이 구름처럼 몰렸다. 어른, 아이, 외국인, 공무원, 가족,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2011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하프코스(21.0975㎞), 10㎞, 5㎞ 등 3부문에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했다. 대회 시작 30분 전. 참가자들은 사회자인 개그맨 배동성씨의 구호에 맞춰 준비운동을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출발준비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서로의 무릎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려주며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5㎞ 코스에 도전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이승환(41) 수사관은 10살짜리 아들 재원이와 9살 난 딸 정원이의 손을 잡고 출발선에 섰다. 그는 “첫째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제1회 서울신문 하프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코스를 뛴 경험이 있다.”면서 “이제 10살이 된 아들과 10회를 맞는 하프마라톤대회에 또 참가하게 돼 기쁘다. 내년엔 아들과 함께 10㎞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탕!’ 하고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자 1만 500명의 참가자들은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출발선을 제대로 찾지 못해 출발이 늦은 1공수특전여단 소속의 심윤호(20) 하사는 “친한 군대 선후배들과 함께 출전했는데 남들보다 늦게 출발해 큰일”이라면서 “등수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프마라톤대회에는 나들이 겸 운동 삼아 나온 가족들부터 수년간 마라톤동호회활동을 통해 프로선수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대회에 모두 168명이 참가해 최다인원 참가 단체가 된 대영마라톤클럽은 매주 금요일마다 송도 신도시에서 10㎞씩 뛰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대영마라톤클럽이 속한 업체의 김창훈(51) 사장은 “모두 무리하지 않고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면서 “기록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사고 없이 완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대회 참가자 중 최연장자인 윤지원(72)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마라톤 선수급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윤씨는 “일년에 6~7번씩 하프코스를 달리고 2차례는 풀코스를 뛴다.”면서 “일주일에 5일 30분 이상 뛰면서 마라톤 준비를 한 것이 지금도 잔병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150여명의 직원들이 참가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이날 대회에 앞서 공원 한쪽에 ‘식중독 예방을 위한 식약청 홍보관’ 부스를 차려놓고 시민들에게 식중독 예방법을 홍보했다. 직접 대회에 참가해 5㎞코스를 완주한 노연홍 식약청장은 “20일까지 식품 안전주간이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식중독 위험이 높아지고 있어 이번 기회에 국민들에게 식품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VMK 장애인마라톤’에서는 22명의 시각장애인들과 이들의 완주를 돕기 위한 ‘해피레그’ 소속 도우미 30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 달린다’고 적힌 현수막을 함께 들고 뛰었다. VMK의 이용술(39) 회장은 “장애인으로서 이동권에 한계가 있지만 체육을 통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려 한다.”면서 “마라톤으로 세상과 화합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글 윤샘이나·김진아·김소라기자 sam@seoul.co.kr 사진 안주영·정연호·손형준기자 tpgod@seoul.co.kr
  • 군림하는 예비역장성 국방개혁 가로막는다

    군림하는 예비역장성 국방개혁 가로막는다

    군 예비역들은 왜 목소리가 큰 것일까. 이들은 개혁의 후원자인가, 걸림돌인가.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이 육·해·공군 예비역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하게 끌려가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안보 환경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으며 국방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다. 그러나 개혁 방향과 절차가 잘못됐다는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이 개혁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예비역 장성들이 국방정책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자신들이 현재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인사들을 가르쳤거나 그들에게 지시했던 인물들이어서 ‘영원한 상관’으로 군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국방개혁실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태우 정권 당시 추진된 국방개혁 ‘818계획’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전직 국방장관의 육군대학 교수 시절 그의 제자였다. 전직 장관은 그를 불러 개혁 방향을 바꾸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부하로 생각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셈이다. 군의 한 장성은 “수십년이 지나 안보 상황이 바뀌었지만 과거 안보 환경에 근거한 정보와 정책을 갖고 후배를 지도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수천명의 ‘별’들이 집단의 힘으로 국방정책에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별들의 모임인 성우회 회원은 2300여명에 달한다. 현역 장성이 430여명이란 점을 고려할 때 2300여명의 예비역 장성은 우리나라 국방정책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예비역 장성들은 전역 후에도 안보관련 정책 자문위원으로 근무하거나 국방기관의 수장으로 다시 근무하는 사례가 많아 이들의 목소리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30여년간 군사 전문가로 키워진 장성들이 전역 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군밖에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이와 함께 상명하복을 근간으로 하는 계급사회인 군의 특수성 때문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현역들의 여론을 예비역이 대신 표현한다는 얘기다. 민간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은 “군이란 조직의 특성상 현역이 여론을 만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군과 관련된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예비역 장성들”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같은 장성들의 목소리는 모두 전문가들의 목소리란 점에서 장점을 살려 안보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 편집장은 “장성 한명 한명이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안보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자식 군대 보낸 부모 떨게 만든 軍 의료체계

    젊디젊은 장정이 군의 허술한 의료체계 탓에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논산 육군훈련소 소속 노모(23) 훈련병은 지난달 23일 야간행군을 마친 뒤 고열과 함께 패혈증 중세를 보여 민간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튿날 숨을 거뒀다. 입대한 지 31일 만이다. 사인은 패혈증에 따른 급성호흡곤란이었다. 노 훈련병이 의무실에서 받은 처방은 해열진통제 두 알뿐이었다. 처방마저 군의관이 아닌 의무병이 멋대로 했다. 노 훈련병은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지만 군은 몰랐다고 한다. 군은 이런 상황을 유가족과 자식을 군대에 보냈거나 보낼 부모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화를 삭이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른바 구멍 난 군 의료 인력과 시설은 오래전부터 누누이 지적돼 왔다. 2005년 전역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숨진 노충국씨 사건을 계기로 군 의료체계 전반에 걸친 개혁 필요성이 제기됐다. 제대한 지 20일 만에 간암 선고를 받고 사망한 유여주씨, 전역 2개월 만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숨진 오주현씨 사건 때도 마찬가지다. 요란만 떨었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개선책을 찾기보다 땜질식 대응에 그쳤다는 사실을 노 훈련병의 사례에서도 보여 주고 있다. 군 의료체계는 이대로 안 된다. 군의관 2200여명 중 96% 이상이 인턴을 끝냈거나 갓 전문의 자격을 딴 의사들이다. 민간 의사 계약직 채용은 낮은 처우 탓에 지지부진하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이해해 달라고 호소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숙련된 의료 인력의 확보 등을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불신을 씻기 위해서다. 낙후된 병원 시설의 대안으로 민간 병원 위탁진료제를 적극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군 의료체계 혁신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가슴에 못 박는 일이 더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 군대 성추행 피해자 첫 국가유공자 인정

    군 복무 중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처음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는 해병대 부대 참모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의병 제대한 이모(23)씨를 국가유공자로 판정했다고 13일 밝혔다. 해병대 2사단 운전병이었던 이씨는 지난해 7월 군 휴양소에서 술을 마시고 관사로 이동하던 길에 당시 같은 부대의 참모장 오모 대령에게 강제 추행을 당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씨가 성추행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점이 인정돼 지난달 27일 공상 군경 7급의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았다.”면서 “이씨는 매달 32만 2000원의 보훈보상금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또 “군에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면서 “이씨의 경우 가해자의 범행 사실이 명백하고 의학적으로도 피해 상황이 분명하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고]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 별세

    [부고] 옥만호 전 공군참모총장 별세

    ‘6·25전쟁 100회 출격 조종사’로 1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옥만호 예비역 대장이 13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1927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50년 공군 사관후보생 8기로 임관한 옥 전 총장은 공군 제10전투비행단장, 공군대학 총장 및 공군사관학교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6·25전쟁 때 적의 핵심 병참선 차단을 위한 ‘승리호 철교 폭파작전’에 출격, 편대를 지휘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뒀다. 참모총장 시절에는 ‘RF5A’와 ‘T41’를 도입해 항공력 강화에 힘썼고, 은퇴 뒤에는 사재를 헌정해 전남 무안군에 청소년들을 위한 ‘호담 항공우주전시관’을 열었다. 금성충무 무공훈장·대통령 수장·대통령 공로표창·보국훈장 통일장·미 공로훈장 등 여러 훈·포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한용호 여사와 아들 철(H.I.S. 고문)·열(사업)씨, 딸 행녀·유미·수미씨, 사위 양해범(사업)·나영철(현대건설 부장)씨가 있다. 안장식은 16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서 공군장으로 거행된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02)3010-2230.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용산 미군부지에 여의도 규모 공원 조성

    용산 미군부지에 여의도 규모 공원 조성

    정부가 서울 용산 미군기지 부지에 조성될 국가공원 규모를 243만㎡로 확정했다. 여의도(290만㎡)와 비슷한 규모로 2017년 착공해 완공까지 10년가량 소요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2016년 반환 예정인 용산 미군기지 부지의 공원정비구역 경계를 이같이 지정·고시한다고 11일 밝혔다. 국토부는 앞서 2009년 8월 대상지 기초조사를 마치고 지난해 1월 국방부, 서울시 등과 부지 이용에 관한 협의를 끝낸 상태다. 올 들어서는 공청회(2월)와 용산공원조성 추진위원회의 심의(3~4월)를 거쳤다. 공원조성지구는 용산기지(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265만㎡) 중 존치되는 미국 대사관, 헬기장 및 드래건힐 호텔 등 22만㎡를 제외한 본체 부지에 지정된다. 120여 년간 외국 군대의 주둔지로 활용된 곳으로,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 민족성·역사성·문화성을 지닌 국가공원으로 만들어진다. 본체 부지 주변의 유엔사령부, 수송부 등 산재 부지 18만㎡는 복합시설조성지구로 지정해 상업, 업무, 주거, 문화 등 복합용도로 개발된다. 또 용산국제업무지구, 서빙고아파트 지구, 한남재정비촉진지구, 후암동 지역 등 895만㎡는 공원 주변 지역으로 지정됐다. 국토부 용산공원추진단 관계자는 “공원 주변 지역은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지정했다.”면서 “향후 서울시에서 별도의 도시관리계획을 수립해 관리하게 된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공원과 주변지역의 조성·관리 방안 등을 수립하는 종합기본계획을 연말까지 확정·고시할 예정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中중퇴자도 군대 간다

    김영후 병무청장이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한 학력 제한을 없애는 한편, 체육·예술인의 병역 면제 규정은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 사회가 강조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청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법 개정을 해서 병역 이행에 학력 제한이 없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재 중학교 중퇴 이하자는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되는데, 이를 앞으로 보충역(공익근무요원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 청장은 또 국위 선양과 개인 특기 계발을 위해 도입한 예술·체육 요원 제도는 장기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청장은 특히 “예술·체육 요원이 한 번의 성적으로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누적 점수제를 도입해 꾸준히 우수한 성적을 거둔 특기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병역법에서는 국제 예술 경연대회 2위 이상 입상자와 국내 예술 경연대회 1위 입상자,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 아시안게임 1위 이상 입상자 등이 관련 분야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병역 의무를 면제받도록 하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쓰레기 도시’ 伊 나폴리, 군인 동원 수거 작전

    이탈리아 나폴리가 쓰레기 처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군대까지 동원해 쓰레기 수거에 나섰다. 지난주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쓰레기 수거를 위해 군인 투입을 결정한 이래 10일(현지시간) 군인 170명을 동원, 쓰레기 수거 작전에 나섰다. ’미항’ 나폴리가 ‘쓰레기 도시’로 변한 이유는 쓰레기 소각장 건설이 늦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앞마당에는 쓰레기 소각장을 들일 수 없다.”는 나폴리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이같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쓰레기 수거 작전에 ‘선거용’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오는15, 16일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연말에도 군병력의 손을 빌려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쓰레기를 치운 바 있다. 한편 4월 중순 이후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폴리는 거리에 방치된 쓰레기들과 이를 무단으로 소각하면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등 유해 물질이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트래비 스토리> 시안(西安)…황제의 죽음을 함께했던 사람들

    트래비 스토리> 시안(西安)…황제의 죽음을 함께했던 사람들

    시안(西安) 방문을 앞두고 체크한 일기예보는 여정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올 것이라고 알려줬다. 여행객에게 ‘날씨 흐림’은 반갑지 않은 동반자임에 분명하다. 북서부에 황토고원이 위치하고 황하가 아니었다면 건조한 이곳에 하필이면 여행 시기에 맞춰 비라니, 이번 여행 운은 나쁘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시안에 도착하고, 워낙 건조한 지역이서 손님이 비를 몰고 오면 더 귀하고 반갑게 맞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금세 우쭐한 기분이 됐다. 또 평소 같으면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 전시돼 있어도 화창한 날씨 탓에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들곤 했던 박물관 방문도 흔쾌히 즐기게 됐다. 글·사진 이지혜 기자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서울사무소 02-773-0393, 산시성인민정부, 시안시인민정부, 2011시안세계국제원예박람회 www.expo2011.cn,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 여유(旅遊)는 여행과 관광을 뜻하는 중국어다. 중국어로는 ‘뤼요우’라고 발음한다. 중국국가여유국은 중국 중앙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여행 관련 업무 조직이며, 서울사무소를 운영 중에 있으므로 이곳에 여행 관련 정보를 문의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인천-시안 항로를 주 4회(월·수·금·토요일) 운항하고 있다. 병마용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진시황을 지키는 병마용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기병이고, 한경제의 왕릉인 한양릉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궁정악사와 무희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왜 이것에 대해 언급하는지 벌써 알아차렸을 것이다. 진시황은 무력을 통해 전국시대를 통일했으며, 강한 군대를 기반으로 한 통치체계를 확립했다. 특히 다른 국가와 달리 우위를 가진 기량이 다름 아닌 기병이었다. 한양릉의 주인인 경제는 한나라의 네 번째 황제로 국가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특유의 문화예술이 발달하던 시기의 황제다. 이때의 힘을 바탕으로 한무제는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전성기를 누리고 됐다. 힘의 역사를 수호하는 병마용 “시엔양 가세요?” “아니요, 시안 가는데요.” 병마용 유적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에 앞서, 시안 출장길에 공항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언급하고자 한다. 탑승카운터 직원이 위와 같이 물었을 때 동북지역 리야오닝(요녕)성의 성도인 선양(瀋陽, Shenyang)을 묻는 줄 알았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서울 간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그 직원은 시엔양이 시안의 국제공항임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았을 듯하다. ‘시안’은 산시(陝西, 섬서)성의 성도이자 중국 서부 지역의 중심 도시이다 한자 발음인 ‘서안(西安)’이라는 지명을 들으면 그나마 역사 시간에 배운 ‘서안사변(1936년 동북군 총사령관 장학량이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을 화청지에서 납치하고 감금했던 쿠데타)’이 떠오르는 이곳, 중국식 발음으로 ‘시안’이다. 과거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등의 수도로 나라가 오래도록 평안하길 바라는 의미를 담아 ‘장안(長安)’이라고 불렸으나 지금은 수도를 비롯한 국가 경제·문화 중심이 동부의 베이징 등으로 옮겨온 것과 더불어 서쪽이 편안하라는 의미에서 ‘시안(西安)’이 됐다. 시안은 여전히 서부의 중심 도시 가운데 하나지만, 중부의 충칭(重慶)이나 남부의 광저우(廣州) 등과 같은 고층 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흔히 ‘시안은 어디를 파도 유적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함부로 개발할 수 없고, 옛 건물들은 중소지방도시의 소박한 모습인 채로 수년이 흘러도 홀로 제자리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이는 그곳에는 넓디넓은 관중평야가 2,00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왕조가 바뀌고 전쟁이 계속되면서 아방궁이나 대명궁과 같은 황제의 권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화려한 건축물들은 사라졌지만, 친숙한 중국여행의 이모티콘인 병마용과 무용(무희 등을 형상화한 인형) 등을 만날 수 있는 유적지들이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되어 준다. 눈에 보이는 엄청난 규모와 예스런 자태 등은 두 눈을 즐겁게도 하지만, 각각의 유물과 그것이 발견된 유적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시엔양(咸陽)’은 시안의 동북부에 위치하며 시엔양국제공항은 시안 시내에서 약 1시간 거리다. 인천은 특수한 경우지만, 이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 공항을 건설한 이유는 시안 인근에 유적지가 워낙 많아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안과 시엔양국제공항 사이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발견한 유적지가 한양릉이다. 또한 시엔양은 진시황제가 다스린 진나라의 황궁이 위치한 곳이다. 시엔양은 관중평야에서도 위하의 하류 지역으로 여산을 끼고 있는 풍수지리가 좋은 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방궁은 시엔양 지역에 위치한 궁들 가운데 정무를 보는 정전(正殿)의 전전(前殿 )이다. 진나라의 시조는 본래 황하 하류 동해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한 분파였는데, 후에 간쑤(甘肅)성의 동부로 이주해 유목민족 생활을 한다. 한족과 외모가 다르며 신체적으로 훨씬 체격조건이 우월한 편이었다. 역사서 <사기>에는 진시황릉의 지하궁전이 묘사돼 있다. 지상의 궁전을 본떠 만들었으며, 대량의 수은을 사용해 황하와 양자강을 조성하고 매일 진시황의 관이 중국 전역을 주유할 수 있도록 설비했다. 병마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74년에 린퉁(臨潼)의 농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병마용갱의 위치를 근거해, 인근 여산 토질에 수은 함량이 많은 점 등과 연계해 진시황릉의 위치를 파악하게 됐다. 오랫동안 밀폐된 공간에 있던 지하궁전 내의 수은이 공기와 접촉할 경우 대량의 독가스가 발생하기에 발굴을 미루고 있으나, 과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그 내부의 모습이나 규모가 사기에 묘사된 것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마용갱은 진시황릉과 1.5km 거리에 위치하며, 약 7,000여 개의 사람과 말의 토우가 매장돼 있다. 실제와 같은 크기로 제작됐으며, 같은 모습이 없고 핏줄이나 근육 모양, 표정 등까지도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병마용은 모두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는 궁전과 성의 문 위치 등도 동일하다. 이에 대해 동방을 숭상하는 종교를 가졌다거나, 동쪽 나라를 평정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 한양릉 병마용만 봐도 사람들은 진시황을 떠올린다. 서양의 드라큘라와 미이라만큼 동양의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반면에 한양릉에서 출품된 도용(도자기 형태로 제작된 인형)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50~60cm의 자그마한 크기에 팔도 없이 앙상한 모습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금성과 경복궁을 크기만으로 비교할 수 없듯이, 한양릉의 도용 역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안을 찾는 이들에게 병마용뿐 아니라 한양릉도 꼭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중국의 문화를 꽃피운 한나라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한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나라를 먼저 알아야 하고, 동시에 한나라와 패권을 다툰 초나라를 알 필요가 있다. 진나라는 아방궁을 비롯해 수도 시엔양에 호화로운 성을 지었을 뿐 아니라, 지상의 궁전과 유사한 규모의 지하궁전도 건설했다. 동시에 북방민족을 막기 위한 만리장성도 축조했다. 진시황릉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이 즉위한 직후부터이며, 37년 동안 72만명의 인력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공사는 황실의 위엄과 통치력을 확보하는 데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진시황 사후에 진나라는 곧바로 멸망했다. 진나라의 멸망 후 천하를 얻기 위해 겨룬 이들은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다. 항우는 초반에 우세를 띠었는데, 진나라의 궁전은 물론이고, 병마용갱 등 유산을 모두 불태웠다. 병마용갱은 화재로 인해 내부를 지탱하던 기둥이 소실되면서 함몰됐고, 병마용 역시 심하게 훼손됐다. 다만 도굴의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지금도 병마용갱 박물관에 가면 병마용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 쪽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병마용은 균열된 자국이 보인다. 일부는 복원하지 못한 것도 있다. 후학자들이 유방이 승리한 이유를 분석하는 데 있어, 평민 출신의 유방이 백성의 고초를 알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때문에 한나라 왕조 역시 되도록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 주는 데 항상 주의를 기울였다. 한양릉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실제 크기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크기로 제작돼 있다. 이는 실물 크기로 제작할 경우 백성의 고충이 너무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황후의 능과 합장하고 있으며, 다른 왕조와 비교해 소박함이 느껴진다. 또 하나 눈에 띄는 특징은 무희나 악사 등 문예와 관련된 도용이 많다는 점이다. 병마용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황궁에서 필요로 하는 요소에 예인이 많이 포함돼 있다. 특히 한나라 시대의 무용은 궁정 의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전문 악부가 민간 무용을 비롯해 고대의 의전 무용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서역과 서남 소수민족의 무용 또한 포함돼 있었고, 감정과 예술을 결합시키는 데 대해 관심이 높았다. 사람 도용 외에 동물 도용도 다양하다. 흥미로운 것으로 개보다 작은 크기의 돼지가 있다. 이 돼지는 쓰촨(四川) 지역 등의 토종 품종으로 육질이 훨씬 쫄깃쫄깃하고 맛있다고 한다. 이렇듯 한양릉에서는 궁의 의장군대뿐 아니라 생활용구 등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부장품이 다수 발굴됐다. ◈ 2011시안세계원예박람회는? 211시안세계원예박람회 (International Horticultural Exposition 2011 Xi’an, China)가 4월28일부터 10월22일까지 178일 동안 시안시 찬바 생태구에서 진행된다. 박람회 주제는 ‘천인장안(天人長安), 창의자연(創意自然)-도시와 자연의 화합 공생’이다. 장안은 시안의 옛 명칭인 동시에 ‘국가번영과 평안의 상징’이다. 마스코트는 시안의 시화인 석류를 형상화한 ‘장안화’다. 중국은 1999년에 쿤밍, 2006년 선양에서 세계원예박람회를 개최한 바 있다. 418만 평방미터의 부지에 장안탑, 창의관, 자연관, 광운문 등 주요 건축물과 5곳의 테마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관은 정자와 연못으로 이뤄진 우리 정원을 조성했다. 정자의 이름은 순천정이다. 조선관은 한옥의 양식과 사뭇 다른 모습의 조선가옥을 선보이고 있다. 언뜻 한옥처럼 보이지만 용마루 끝과 처마 끝에 장식하는 십장생 동물의 형상인 ‘어처구니’가 없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관 내부에는 김정일화를 전시할 예정이다. 입장료 일반표 100위안(한화 1만8,000원), 지정일표 150위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한국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한국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160㎏→108㎏’ 1년만에 체중 52㎏ 뺀 육군 상병

    ‘160㎏→108㎏’ 1년만에 체중 52㎏ 뺀 육군 상병

    “살을 빼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입대 당시 160㎏이었던 몸무게를 1년 만에 50㎏ 이상 빼는 데 성공한 김지영(20) 상병은 8일 “너무 큰 덩치 때문에 말도 잘 못했는데 살을 빼고 난 후 성격도 밝아지고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육군 제3기갑여단 정비근무대에서 복무 중인 김 상병은 2009년 5월 신검 당시 키 195㎝에 몸무게 125㎏(체질량지수(BMI) 34)으로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키가 1㎝만 크거나 체질량지수가 1만 높았어도 4급으로 현역 판정을 받을 수 없었다. 더욱이 논산 육군훈련소를 입소한 지난해 4월 26일에는 몸무게가 무려 160㎏까지 늘었다. 재검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가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현역병으로 남았다. 군 미필자들이 취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현역 복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 상병은 훈련소에 들어가 기초훈련을 받으며 두 달여 만에 10㎏을 감량했다. 지난해 7월 중순 자대에 오며 본격적인 살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식사량부터 조절했다. 끼니마다 식판 가득 담던 밥을 3분의2 수준으로 줄이고 국도 먹지 않았다. 매일 방문하던 충성클럽(PX)도 일주일에 한 번만 출입했다. 특히 김 상병은 일과시간에 이뤄지는 훈련에 집중했다. 주특기·병기본훈련·총검술·제식훈련 등의 교육훈련에 최선을 다했다. 일과 전후 이뤄진 2㎞ 뜀걸음(구보)과 3㎞ 뜀걸음도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또다시 8개월여가 지나 그는 현재 108㎏의 몸을 갖게 됐다. 꾸준한 살빼기 덕에 따라온 성과도 있었다. 1㎞도 제대로 뛰지 못하던 그가 체력검정에서 3㎞ 달리기 1급, 팔굽혀펴기·윗몸일으키기 3급의 평가를 받았던 것. 훈련소에서 단추를 열고 입었던 전투복 하의는 이제 전우 한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졌고 2개를 엮어 사용하던 탄띠도 이제는 1개만 착용하게 됐다. 환골탈태라는 말을 실감했다. 김 상병은 “전역하는 순간까지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단하게 노력해 반드시 특급 전사가 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전역하기 전까지 체중을 90㎏까지 줄이고 특급 전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의 도전을 돕고 있는 같은 부대의 행정보급관 박광래(35) 상사는 “처음 봤을 때 최홍만 선수 동생이 군대에 왔나 보다고 생각했다.”면서 “이제는 특급 전사가 돼 전역하는 김 병장의 모습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10만 경찰 전용폰? 무료 통화 최대 880분 ‘경찰폰’ 도입 추진

    10만 경찰 전용폰? 무료 통화 최대 880분 ‘경찰폰’ 도입 추진

    경찰이 잦은 외근 업무 등으로 통화량이 많은 경찰관들을 위해 ‘경찰폰’(가칭) 도입을 추진 중이다. 경찰 가입자끼리 또는 가입자~사무실 간 ‘최대 무료통화 880분’ 혜택을 볼 수 있어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특정 공무원 조직을 위한 요금할인제는 군대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서 도입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KT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며, 이르면 이달 중 KT와 요금제별 무료통화 등을 제공하는 ‘경찰폰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8일 밝혔다. 방통위 신고절차가 마무리되면 경찰 가입자들은 ▲3만 5000원-110분 ▲4만 5000원-220분 ▲5만 5000원-330분 ▲6만 5000원-440분 ▲7만 9000원-660분 ▲9만 5000원-880분 등의 월 요금제 무료 통화를 이용할 수 있다. 경찰청은 조만간 경찰폰 가입 배너를 경찰 내부게시판에 띄우고 요금제 가입 절차 등을 공지할 예정이다. 경찰과 KT는 경찰폰 도입이 ‘윈윈’의 결과를 낳을 것으로 판단한다. 경찰청은 “기존 관용폰이 전체 경찰관 10만여명 중 9000여명에게만 보급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수사 및 외근 기능 강화로 급증하는 통신비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T 측으로서는 10만명이 넘는 경찰을 잠재적 고객으로 손쉽게 유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SKT와 LGT도 경찰폰 지원 협약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방통위는 경찰폰 도입에 부정적이다. 다른 공무원 조직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경찰폰과 유사한 할인요금제를 잇따라 요청해올 경우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이와 관련, 경찰청은 경찰 공무원만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 애초 ‘복지폰’이었던 이름을 ‘경찰폰’으로 바꾸기도 했다. 경찰폰이 특수요금제 적용을 받으려면 이동통신사가 ‘이동전화 이용약관’을 개정해 방통위에 신고해야 한다. 방통위와의 사전 조율 없이 약관을 변경하면 시정명령 등 규제를 받을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방통위의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경찰폰 도입의 타당성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문희준 “뮤지컬이 여자 꾀는 것보다 어렵더라”

    문희준 “뮤지컬이 여자 꾀는 것보다 어렵더라”

    원조 아이돌 그룹 H.O.T의 리더였던 문희준. 왕년엔 10대들의 우상이었다. 5년간의 H.O.T 생활 이후 솔로 앨범도 냈고 군대도 다녀왔다. 이번에는 뮤지컬 배우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3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무대에 오른 ‘오디션’에서 최고의 뮤지션을 꿈꾸는 밴드 복스팝의 리더 ‘최준철’ 역을 맡은 것. 지난 3월 ‘오디션’ 11차 공연을 본 뒤 오디션에 자원, 공연에 합류하게 됐다. 6일 아트원시어터에서 문희준(33)을 만났다. →‘오디션’ 오디션에 직접 참가 의사를 밝혔다던데. -출연 요청은 공연기획사 측에서 먼저 해왔다. 수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대사를 잘 외우지 못하는 부담감에 망설여졌다. 나는 내가 만든 노래 가사도 잘 못 외운다(웃음). 그래서 고사했는데 공연이나 한번 본 뒤 결정하라고 하더라. 작품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출가 집으로 찾아가 오디션을 봤다. →복스팝 리더 최준철과 H.O.T 리더 문희준이 닮은 것 같다. -‘내가 리더잖아’라는 대사가 있다. 연습할 때 괜히 슬펐다. 화를 내야 하는 장면인데 순간, (멤버였던) 토니(토니 안) 생각도 나고 재원이(이재원) 생각도 나고…. →뮤지컬 도전은 처음인데 어려운 점은. -여자 꾀는 것보다 뮤지컬이 더 어려운 것 같다(웃음). 뮤지컬은 노래와 춤, 연기 모두 소화해 내야 한다. 게다가 ‘오디션’은 연주도 해야 한다. 요즘 방송 프로그램을 5개 정도 하고 있는 까닭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잠 자는 시간을 줄여 연습했다. (오디션 통과하고) 3주 만에 무대에 서야 했던지라 정말 열심히 했다. →첫 공연은 어땠나. -원래 떠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SM(H.O.T를 키운 기획사) 오디션 때 떤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 떨었다. 관객들이 열띤 반응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멍해졌다. 하마터면 “조용히 해주세요” 할 뻔했다. 하하. →신화 김동완도 ‘헤드윅’ 무대에 오른다. -그런가? 전혀 몰랐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뮤지컬 작품이 있나. -다른 공연에 욕심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깊은 감정을 끌어내는 훈련을 좀 더 해야 한다. 가수라고 해서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이번에 하면서 느낀 건데 연기도 참 재미 있는 것 같다. 늘 어렵다고만 느꼈는데 내 자신과 배역이 비슷해져 가는, 희열 같은 걸 처음 느꼈다. 공연은 7월 24일까지다. 4만~5만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왕들의 반격…사우디, 법 개정해 언론 통제

    ‘왕들의 반격’이 본격화되고 있다. 연초부터 중동·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바람, 재스민 혁명에 화들짝 놀랐던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등 걸프 지역 전제 군주들이 숨을 가다듬고 민주화 열기를 억누르기 위해 더 가혹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유혈 시위 진압은 물론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비판적 지식인들을 마구 잡아들이는가 하면 막 숨통을 틔워 가던 야당을 짓밟으면서 정치공간의 문을 닫고 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등이 8일 전했다.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새 언론 보도 지침을 내놓으면서 지식인들과 언론에 재갈 하나를 더 물렸다. 새 지침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어긋나거나 국가 안보를 해치는 내용, 외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사안은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내용을 담았다. 이를 어기면 50만 리얄(약 1억 3700만원)의 벌금과 영원한 언론계 추방을 규정했다. 소수의 수니파 왕족이 시아파가 대부분인 국민들을 통치하고 있는 바레인의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의 반격도 거세다. 계엄령에 사우디 군대까지 끌어들이며 시위를 가까스로 유혈진압했던 알할리파 국왕은 시아파 시위자 4명에 대해 경찰관 살해 혐의로 사형을, 또 다른 3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바레인 경찰은 부상당한 시위 참가자들을 치료하던 30여명의 의사들까지 체포하는 등 서슬이 시퍼렇다. 다만, 바레인 정부는 이날 셰이크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바레인 국왕의 칙령에 따라 내달 1일 국가비상사태가 해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국영 뉴스통신 BNA가 보도했다. FP는 오만과 아랍에미리트연합 등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면서 저명한 반체제 인사들이 자꾸 사라지고 있고,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변호사협회, 교사 조합 등은 5월 들어 해산되고 어용 단체들로 대체됐다고 전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사설] 이슬람 보복테러 차분·정교하게 대비해야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주에 파견된 한국 지방재건팀(PRT)의 차리카 기지가 그제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시설·장비 손상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올들어 이미 여섯번째 공격을 받은 데다 알카에다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에 사살된 직후 일어난 일이어서 우리로서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군인을 비롯한 일반 국민이 이슬람권의 보복테러 대상으로 지목됐을 수 있음을 의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이슬람권은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다. 멀리는 6·25 당시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해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대한민국을 도왔다. 이후 1970년대에는 중동에서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우리 기업이 대거 참여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만들었다. 그 뒤로도 축구를 비롯한 체육 부문에서 활발히 교류했고, 지난 몇 년 새에는 중동과 동남아·중앙아시아 일대 이슬람권에 한류 붐이 이는 등 이슬람권은 지구촌에서 우리에게 다정한 이웃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와 이슬람권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우리나라는 본의 아니게 이슬람권의 대척점에 서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면서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돼 참살됐고,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신자들이 탈레반에게 집단 납치돼 피살자가 발생하는 등 비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이 사건들에서 특정종교가 빌미가 됐다는 사실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는 부분이다. 우리는 이슬람권과 척질 까닭이 하등 없지만 국제적인 세력 판도에서 부득이 대립관계로 치부될 개연성은 있다. 따라서 국내의 이슬람 신자들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등 이슬람 국가·국민과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다만 당장은 현실적인 보복테러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이에는 철저히 대비하되 조용히 진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반(反) 이슬람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슬람권과 관련된 외교정책에는 더욱 정교한 판단을 내려 한국과 이슬람권의 관계가 불필요하게 악화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金국방 “잘하는 것 얘기 말고 문제 지적하라”

    “잘하는 것만 얘기하지 말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6일 오전 국방부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가 끝나갈 무렵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얘기들이다. 김 장관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이날 회의는 한민구 합참의장, 육·해·공군 참모총장,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과 직할부대장, 기관장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북한 동향과 군사대비태세, 국방개혁 307계획, 전투형 군대 육성 보고와 야전 지휘관 의견수렴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회의는 북한의 일상적 동향을 시작으로 김 장관 취임 후 전투형 부대 육성을 위해 특별검열을 실시한 결과 보고로 이어졌다. 국방부는 행정서류가 감소하고 사고 발생 시 야전 지휘관에 대한 문책률이 크게 줄어 전투임무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회의 직후 임관빈 국방정책실장은 “국방부 특검단 평가 결과 정량적으로 볼 때 육군에서는 44.1%, 해군 47.8%, 공군 29.5% 정도 행정서류가 감소했다.”면서 “작년 한 해 43%에 달한 사고 시 지휘관 문책률이 올해 현재까지 6% 수준으로 많이 낮아졌다.”고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들의 보고가 끝난 후 토의시간에 사회자가 각군의 지휘관들을 호명해 전투형부대 육성과 관련해 발언하도록 했다. 지명된 육군 5군단장, 공군 남부전투사령관, 국방부 특별검열단장, 해군 3함대사령관 등은 “장관의 의지에 따라 전투형 부대 육성을 위해 실전적 훈련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대적관 교육도 많이 하고 있으며 전투형 군대로의 탈바꿈을 위해 노력하고 잘되고 있다.”고 김 장관에게 보고했다. 지휘관들의 보고가 끝나자 김 장관이 일침을 가했다. 김 장관은 “잘하는 것에 대한 얘기만 하지 말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지적해야 위에서 수정문서가 내려간다.”며 적극적으로 상급부대의 문제를 지적하라고 강조했다. 성과 일색 보고가 이어지자 마음에 두고 있던 말들을 꺼낸 것이다. 그는 이어 “대비태세가 오래되면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전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선) 지휘관들이 자주 야전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투부대 육성을 위한 강조가 군의 피로도를 높이고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는 부작용을 방지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 장관의 지적은 일선 부대의 행정업무로 이어졌다. 앞서 국방부 특검단이 행정서류를 크게 감소시켰다고 밝혔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취지다. 그는 “일선 부대에 방문하니 작은 부대에서 환담자료를 작성해 주더라.”면서 “연대급 이하 부대는 날렵해야 하는데 행정 소요는 그것을 막는 요소다.”고 질타했다. 주입식 교육으로 이뤄지는 대적관 교육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장관은 “대적관은 암기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면서 “단순히 싸워 이겨야 하는 적이란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방개혁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 장관은 “일부 언론에서 국방개혁을 왜곡하고 흥미거리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국방개혁은 그런 것이 아니다.”면서 “국방개혁은 정치논리가 아닌 군사논리로 군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병역기피’ 이스라엘 女모델 “군대는 시간낭비”

    ‘병역기피’ 이스라엘 女모델 “군대는 시간낭비”

    남녀 모두 동등하게 병역의무를 져야 하는 이스라엘에서 군 입대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미녀 모델이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슈퍼모델 출신이자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애인으로 유명한 바 라파엘리(25)가 최근 패션잡지 이탈리아 GQ와의 인터뷰에서 “군 입대를 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며 군 복무가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선 여성도 18세와 20세 사이 군복무를 해야 한다. 종교적인 이유나 신체상의 결함이 있을 경우나 결혼을 했을 때에는 면제가 되는데, 라파엘리는 18세에 결혼식을 올렸다가 몇 년 뒤 슬그머니 이혼을 해 병역회피를 했다는 질타를 받았다. 전쟁을 테마로 한 이번호에서 라파엘리는 헬멧과 반바지만 착용한 밀리터리룩 패션의 화보를 공개했다. 라파엘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군 입대를 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군복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또 의도적 병역기피도 일부분 인정하면서 “당시 난 그 방법밖엔 없었다. 나의 사건이 병역제도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면서 “왜 나라를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차라리 뉴욕에 사는 편이 낫겠다.”고 말하기도 해 파문을 일으켰다. 한편 175cm의 큰 키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라파엘리는 15세 때 모델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에는 이스라엘 TV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달력모델로 나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벌새 만한 5천만년 전 ‘거대 개미’ 화석 발견

    벌새 만한 5천만년 전 ‘거대 개미’ 화석 발견

    몸길이가 5cm까지 자란 거대한 개미 화석이 발견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캐나다와 미국의 화석 연구팀이 영국왕립학회보B에 발표한 거대 개미 화석을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개미 화석은 미국 와이오밍 주의 고대 호수 퇴적물 일대에서 발견됐다. 이 화석은 신생대 에오세(Eocene)인 약 500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며, 화석에 나타난 개미의 몸길이는 자그마치 5cm를 넘어 현존하는 벌새의 크기와 맞먹는다. 멸종됐거나 현재까지 살아 있는 개미 중 가장 큰 종의 하나로 알려진 이 개미는 ‘괴물처럼 커다랗다’ 하여 ‘타이타노미르마 루바이’(Titanomyrma lubei)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개미는 아열대성 지역에서 서식했으며, 독일과 영국 남부에 있는 와이트 섬에서도 같은 시대의 유사한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발굴에 참여한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의 브루스 아치볼드 박사는 “발견된 개미는 날개가 달린 여왕개미” 라면서 “예전에 독일에서 발견된 개미처럼 굴뚝새만큼이나 커다랗다.”고 전했다. 한편 현존하는 개미 중 몸길이가 5cm까지 자랄 수 있는 종은 아프리카 군대개미로 알려졌다. 사진=데일리 메일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전쟁 선동자…‘지지 않는 탐욕의 해’가 만든 분쟁사

    분쟁 지역 취재를 하던 히로세 다카시는 어느 날 이스라엘 가자 지구를 찾아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만난다. 고통과 증오로 범벅된 눈빛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저녁에는 팔뚝에 나치 강제수용소의 문장과 수인 번호를 찍은 채 살고 있는 이스라엘 여성을 만난다. 어느 한쪽에 서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을 몸으로 직접 맞닥뜨린 셈이다. 그리고 인류사에서 벌어진 전쟁과 갈등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스스로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고민과 성찰 속에서 그는 역사 속 한 인물을 만난다. 군사이론 교범서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다. 히로세는 평화와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근대사에서 전투와 전쟁의 기술적 이론을 만들어 내며 ‘천재적 군사 전략가’로 일컬어지는 이를 호출하며 전쟁의 근본 원인에 대한 의문을 풀어 가기 시작한다.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는 47장의 지도를 앞세워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5년부터 1991년까지 해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과 전투, 분쟁을 빼곡히 채워 놓은 분쟁사 연속 지도다. 지도는 지구상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이 계속돼 왔음을 한눈에 보여 준다. 구구한 말과 설명 없이도 지도 자체가 전쟁의 지긋지긋함을 웅변해 준다. ‘1인 대안 언론’이자 ‘평화와 대안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사는 히로세는 생생하고도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며 전쟁이 세상과 인류를 어떻게 절멸시키는지 생생히 보여 준다. 1984년에 처음 쓰여진 책으로 히로세 평화사상의 원형과도 같다. 평화운동의 고전으로도 꼽힌다. 책의 원제목이 ‘클라우제비츠의 암호문’인 것에서 짐작되듯 그는 전쟁이 미치는 해악과 무엇을 이용해 학살을 자행했는지, 누가 전쟁을 지시했는지를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밝힌 이론을 차용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던진 ‘전쟁의 이유’라는 질문에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 끊임없이 적을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쉼 없이 전쟁을 지향하며 주변을 선동하는 사람을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이라고 구분 짓는다. 히로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사는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에 의한 ‘전쟁 선동사’였으며 이들이 적을 만들어 내는 능력에 의해 전쟁이 이뤄진다고 결론짓는다. 전쟁의 근원적 이유를 탐구하기 위해 클라우제비츠를 불러냈다가 다시 그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셈이다. 히로세에 따르면 역사 속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나폴레옹, 클라우제비츠로부터 시작해 히틀러, 스탈린, 부시, 앨런 덜레스(미국 CIA 국장) 등으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며 이어져 왔다. 그리고 전쟁사는 ‘전쟁 선동사’였다고 규정하고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은 분쟁 지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은 A전쟁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곧바로 B전쟁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그래서 히로세는 권유한다. 독자들 또한 자신처럼 매일 신문에서 분쟁 기사를 보며 분쟁 지도를 만들어 보라고. 미국이건, 구 소련이건 가릴 것 없이 전쟁으로 탐욕을 채워 가는 존재들은 집요한 취재의 결과물 앞에서 낱낱이 까발려진다. ‘핵을 중심으로 한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한다.’는 논리에 대해 히로세는 “핵은 오로지 핵전쟁만을 방지하고 핵이 없는 나라의 군사적·경제적 지배만을 가능하게 했을 뿐”이라며 그 허구성을 논박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도 개운찮은 구석이 있다. 뭔가 말을 마치지 않고 책을 닫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형 인간’들이 철저히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고 했는데 추구하는 ‘이익’의 실체 등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어서다. 히로세는 2년 뒤 ‘제1권력-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를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이 책이 첫 번째 책 ‘왜 인간은’보다 먼저 나왔다. 히로세는 두 책을 통해 전쟁과 자본의 연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며 자신의 이론을 완성해 나간다. 한국전쟁 때 자행된 세균 전쟁의 진실과 1983년 여객기 격추 사건에 얽힌 음모, 한국과 일본의 군대를 이용한 방위 시스템을 구축해 ‘손 안 대고 코 푼’ 미국 CIA의 첩보전 실상 등도 곁들여져 있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치열하고 야만적인 전쟁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 역시 주요 전장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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