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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디세이 새벽’ 이끈 해군대장 美 태평양사령관 전격 지명 왜

    ‘오디세이 새벽’ 이끈 해군대장 美 태평양사령관 전격 지명 왜

    ‘오디세이의 새벽’(서방의 리비아 군사개입 작전)을 이끌었던 새뮤얼 라클리어(57) 미 해군 대장이 미 태평양 사령부를 이끌 새 수장으로 지명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공들여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다. 당장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차단하고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처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임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카다피 축출 나토연합사 지휘 오바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라클리어 대장을 새 태평양군 사령관에 지명했다고 밝혔다. 라클리어가 상원의 인준 절차를 통과하면 F14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로버트 윌러드 대장에 이어 미 서부 해안에서 인도 서쪽 바다까지를 포함한 해역을 책임지게 된다.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 주둔 미 해군을 통솔하는 라클리어 대장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연합사령부를 이끌며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공습의 토대를 만들었다. 1977년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시작한 그는 2000년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투를 이끌며 명성을 쌓았다. 라클리어 대장은 ‘긴장의 바다’가 된 태평양에서 자국과 동맹국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싸움을 벌여야 할 듯하다. 우선, 해군력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첫 항공모함 바랴크호의 시험운항을 잇달아 진행하는 등 군사력 증강에 힘을 쏟는 중이다. 또 일본, 베트남 등과 해양 영토 분쟁을 벌이는 등 지역 내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中 해군 증강·北위협 대비한 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후 북한이 군사적 위협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도 라클리어 대장의 최우선 임무다. 미군 태평양 사령부는 미군에 속한 6개의 3군 통합 사령부 가운데 군사력 규모가 가장 크다. 32만여명의 육·해·공군 병력이 집중됐으며 항공기 2000대와 군함 180척, 항공모함 타격대 6개 등을 보유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 경계 등을 목적으로 미 해병대 병력 2500명을 호주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늘리겠다고 공언해 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계승자 김정은, 김정일 이은 영도자”… 유훈통치 공식 선언

    2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중앙추도대회에서 낭독된 지도부 추도사는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찬양과 충성 다짐을 통해 김정은에 의해 김 위원장의 ‘유훈통치’가 시작됐음을 공식 선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추도사에서 “김정일 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준엄한 시기에 독창적 선군정치로 우리 인민군대를 혁명강군으로 키우시고 우리 조국을 세계적인 군사강국, 당당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킴으로써 우리 인민이 대대손손 자주적 인민으로 살아갈 억년 기틀을 마련하셨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유훈이 선군정치 및 핵보유국 지위 주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김 상임위원장은 이어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인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김정은을 전면에 내세운 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영도, 인격과 덕망, 담력과 배짱을 그대로 이어받으신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최고 영도자이시다.”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의 권력 승계에 대한 정통성을 내세우고 ‘최고 영도자’라는 표현을 사용으로써 김정은 시대가 열렸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김기남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비서는 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오늘의 슬픔을 천백배의 힘과 용기로 바꾸어 김정일 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한치의 양보나 드팀도 없이 빛나게 계승 완성해 나갈 것”이라며 김정은 영도를 바탕으로 유훈통치를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인민군대를 대표한 김정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도 연설에서 “김정은 동지는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 영도자이시며 불세출의 선군영장이시다.”라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뒤 “우리 인민군대는 만약 적들이 감히 건드린다면 절대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진막강한 군사적 위력을 총동원하여 놈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기어이 성취할 것”이라고 밝혀 군부가 더욱 강경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김정일에 대한 추모보다 김정은에 대한 충성대회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추도대회를 생중계한 것은 김정은이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시작됐음을 공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김미경·최지숙기자 chaplin7@seoul.co.kr
  • [프로농구] “세근아, 형 몸 만들고 있다”

    [프로농구] “세근아, 형 몸 만들고 있다”

    ‘함던컨’ 함지훈(27·상무)은 여전했다. 골밑에서의 유연한 몸놀림과 전매특허인 훅슛, 외곽 오픈찬스를 만드는 넓은 시야까지. 모비스의 통합우승을 이끌고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던 2009~10시즌 모습 그대로였다. 바짝 깎은 머리와 “휴가받아야 하는데 (북한 문제 때문에) 잘리면 어떡하죠.”라고 울상을 짓는 모습이 생소했을 뿐이다. 함지훈이 이끄는 상무는 27일 안산 올림픽기념관에서 열린 농구대잔치 결승에서 명지대를 89-75로 꺾고 대회 4연패, 72연승을 달성했다. MVP는 함지훈 차지였다.   ●농구대잔치 명지대 격파 선봉…MVP  말년 병장의 시계는 너무 빠르다. 함지훈은 “원래 제대할 때가 되면 날짜만 보고 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정말 빨리 가서 초조해요.”란다. 디데이는 내년 2월 3일. 전역 후 바로 코트에 선다. 함께 사회인(?)이 되는 이광재(동부)·김영환(KT)·이현민(전자랜드) 등과 함께 후반기 리그 판도를 좌우할 핵심인물로 관심이 뜨겁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시즌 전부터 “6강 언저리에서 버티다가 지훈이가 합류할 때 승부를 걸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때는 ‘함지훈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금메달을 딸 경우, 선수 등록정원과 샐러리캡에 예외를 둬 즉시 코트에 복귀시킬 수 있는 조항이었다. 중국에 막혀 꿈은 좌절됐지만 함지훈은 “상무에서 뭔가 배우고 나오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함지훈은 진화했다. 약점이었던 중거리슛을 보완했고, 강한 정신력도 갖췄다. “주장이고 또 분대장이거든요. 군대생활이 몸에 익어서 휴가 때 집에서도 각을 잡는다니까요.”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곰탱이’ 같았던,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여유있었던 성격도 ‘빠릿빠릿’해졌단다. ● “승부욕 강한 레더와 잘 맞을 것 같아”  40여일 뒤면 꿈에 그렸던 프로세계로 돌아간다. 양동근과 테렌스 레더가 이끄는 모비스는 지난 26일 현재 공동 6위(13승17패)다. 군인 신분인 함지훈도 ‘직장’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동근이형이야 워낙 많이 해봤고, 레더랑도 잘 맞을 것 같아요. 레더가 성질이 고약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워낙 승부욕이 강해서 더티한 플레이를 하는 거래요.”라고 편들기에 나선다. 함지훈은 “2년 동안 프로경기를 안 해서 장담할 순 없지만 6강,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요. 나가기 전까지 몸을 확실히 만들겠죠.”고 눈을 빛냈다. 사실 부담이 큰데 안 그런 척하고 있다고 귀띔한다.  관심은 역시 ‘슈퍼루키’ 오세근(KGC인삼공사)과의 대결. 함지훈은 “세근이가 잘할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하네요. 덩치나 힘이나 점프나 다 제가 밀리죠.”라고 약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재밌을 것 같아요.”라고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수비는 나 혼자는 버거울 것 같으니 도움 수비로 막을 거고요. 공격 때는 음 제가 영리하게 해야죠.”라고 했다. 선전포고라도 해달라는 말에 “기다려라, 오세근! 뭐 이런 거요?”라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안산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중국, 北 파병설 꿈틀… “김정은체제 불안땐 주둔할 수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중국군의 북한 주둔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26일 중국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중국군의 북한 파병설이 등장했다. 군사전문 사이트인 서륙동방군사(西陸東方軍事)는 ‘김정일 사망 후 중국은 즉각 군대를 파병·주둔시켜야’라는 글에서 “북한의 급변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면서 “중·북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근거해 지상군을 북한에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 등에도 실렸다. 중국이 통제 사회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 정부가 이러한 파병설을 묵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보수 성향 잡지인 내셔널리뷰온라인(NRO)도 최근 기사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중국은 북한을 종속시키는 방향으로 체제를 개편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향후 2∼3년 안에 한반도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중국군이 주둔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장 중국군의 북한 파병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그동안 고수해온 ‘주체사상’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앞세워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독자 노선을 걸어 왔다. 북한이 내정 간섭이나 외국군 주둔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보는 이유다. 탈북자 출신인 이금순 통일연구원 연구원은 “중국의 대북 파병 가능성은 낮다. 북한의 입지가 너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체제 이탈자를 막기 위해 중국군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파병은 다른 얘기”라면서 “파병을 요청하면 주한 미군을 비난하는 논리가 약화되기 때문에 북한에서 거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 체제 유지가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확대될 경우 중국군 파병설이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서방 국가는 물론 중국까지 반대하는 핵 개발 대신 ‘중국군 주둔’을 체제 보장을 위한 장치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내란이나 폭동과 같은 북한 내부 혁명이 일어난다면 이에 대한 진압을 목적으로 외국군이 주둔할 가능성은 있다.”면서 “또 북한 체제가 위협받는다면 주한 미군을 근거로 남북관계의 균형을 위해 중국 측이 파병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 수석연구위원은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러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동아시아와 한반도에서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상황이 되면서 중국이 북한과 한반도에 대해 갖는 전략적 이익이 ‘파병 필요성을 제기’하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고 덧붙였다.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도 “중국군의 북한 파병 문제는 중국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면서도 “그러나 전혀 없을 것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군사 고문단과 같은 소수 파병 형태로는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도 중국 내 움직임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군 당국자는 “중국에서 (파병설을) 언론에 흘리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중국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면서 “북한이 먼저 가만 있지 않겠지만, 우리와 유엔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세훈·최지숙기자 shjang@seoul.co.kr
  • [시론] 北 군부 쿠데타 가능성 희박하다/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시론] 北 군부 쿠데타 가능성 희박하다/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북한 조선중앙 TV는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고 밝혔다.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앞으로 북한체제를 이끌어 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후계체제가 안착 후 순항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이르다. 김정은은 20년간 후계수업을 받은 김정일에 비해 3년 만에 북한의 영도 인이 되었다. 경험 부족은 물론 권력기반을 다질 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외에 다른 직책을 가지지 못했다. 북한에서 당과 인민을 영도하려면 당(총비서), 정부(국방위원장), 군(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총사령관) 등의 수장이 돼야 한다. 당·정·군의 요직을 교차 겸직하는 제도는 당 노선과 정책을 일관하게 추진하려는 것이다. 권력 엘리트의 영향력은 겸직의 수에 의존한다. 김정은 체제의 순항 여부는 이러한 권력 엘리트의 지지가 관건이다. 2010년 9월 김정은 후계체제의 구축을 위해 열린 노동당 대표자회는 중앙위원을 비롯해 정치국위원과 후보위원, 중앙군사위위원회 위원 등을 선출했다. 실세라고 알려진 장성택은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행정부장으로서 정치국 후보위원과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임명됐다. 차수로 승진한 리영호는 군령을 행사할 수 있는 총참모부장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이며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되었다. 김정은 옹립 공신으로 알려진 최룡해는 전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로서 정치국 후보위원과 당비서이다. 조명록 사망 후 군 인사권과 감독권을 가진 총정치국 제1부부장 김정각은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군사위원회위원, 국방위원이다.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우동측은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다. 이러한 권력 엘리트들의 중복 배치는 소수 특정 엘리트의 행동으로 권력질서를 깰 수 없도록 하는 견제장치의 역할도 하고 있다. 중국과 옛소련에서 보듯이 지도자 교체를 위해서는 당 핵심 간부 다수의 합의가 필요하다. 경제적 곤경과 국제적 고립 등 내우외환에 처한 김정은 리더십은 안정을 위해 단결이 요구될 때이다. 이는 권력 엘리트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군의 쿠데타 가능성도 희박하다. 북한군은 당에 통합된 부분이다. 군은 국정운영의 주요 정책결정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다. 선군정치로 당이 군에 끌려다니기보다 ‘군대를 틀어쥐고 앞세워’ 정치 안정과 사회질서 유지 및 경제 건설에 군을 활용하고 있다. 군내의 종파는 군에 침투한 당 조직에 의해 철저히 색출되고 있다. 지난 당대표대회 이후 군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장성택이 국방 분야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김정은에 대한 후견적 역할이 적정수위를 넘을 때 군과 당의 다른 간부에 의해 견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군에 대한 당 영도의 성격상 당이 노선과 정책 대립으로 분열돼 권력투쟁으로 비화하거나 정치혼란이 올 때 군이 권력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후견적 역할을 지속하리라 본다. 하지만, 김정은 리더십이 북한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상항에 직면한다면 북한의 리더십 변화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이 일정 기간의 과도체제를 거친 후 당 총서기직을 맡는다 해도 김정일이 주체적 혁명노선, 통일노선, 대외노선 등의 결정을 독점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당비서와 국방위원들과 유지했던 수직적 관계를 계속 유지해 영을 세울 수 있을까. 또 정책논쟁을 권위 있게 조정, 총괄할 수 있을까. 정책 실패로 인민생활이 더욱 곤궁해질 때 예전처럼 몇몇 책임간부에 대한 척결로 권력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리는 이러한 사태가 김정은 권력구도에 미칠 파문에 대한 정보 실패가 없도록 정보력의 강화를 위한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 대북 핵심정보에 밝은 중국과의 정보교류를 심화시켜야 한다.
  •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2012년 지구촌 뒤흔들 3대 사건] (1)아랍의 봄

    또다시 격동의 한 해가 간다. 하지만 ‘송구영신’은 인간의 계산법일 뿐, 격동은 멈추지 않고 사건은 인과(因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2011년 지구촌을 들썩인 3대 사건으로 아랍의 봄, 유럽 재정위기, 월가 시위를 꼽았다. 2012년 한 해에 이 사건들은 지구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12년을 전망하고 지나온 흔적을 되짚어 봤다. ‘아랍의 두 번째 봄바람이 군주제 국가와 사하라 이남에도 불어닥칠까.’ 2011년 예보 없는 태풍이었던 ‘아랍의 봄’(북아프리카·중동의 연쇄적 반정부시위)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채 ‘1막’을 내렸다. 서막의 희생자 대부분은 이집트와 리비아, 예멘 등 세습을 시도했던 공화정 국가의 독재자였다. 현재진행형인 이 지역 민주화 시위는 2012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다음 퇴출의 타깃은 군주제를 표방한 중동국 지도자들이 될 공산이 크다. 아랍 각국은 격변과 혼란을 감내하며 숨가쁜 1년을 버텨냈다. 혁명의 발원지는 북아프리카 튀니지였다. 정부의 부당한 단속에 항의하며 몸에 불을 붙였던 젊은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당시 26세)가 지난 1월 4일 숨지자 분노의 불씨는 독재와 가난에 지친 튀니지 민중의 가슴에 옮겨붙었다. 반(反)정부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됐고 결국,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23년 철권통치는 민중의 분노 앞에 무너졌다. 반정부 시위의 동력은 생활고와 독재, 지도층의 부패에 대한 염증이었다. 10% 가까운 실업률에 시달리던 이집트인들은 이웃 나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이 성공하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다음 차례”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30년간 비상계엄령에 의지해 권좌를 지켰던 무바라크는 군대를 앞세워 진압에 나섰지만 시위발생 18일 만인 지난 2월 11일 끝내 하야했다. ‘아랍의 봄’은 리비아의 42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정권이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총칼로 답하면서 시위는 내전으로 비화했다. 리비아 사태는 지난 10월 20일 서방의 지원 속에 기세를 탄 시민군에게 카다피가 붙잡힌 뒤 숨지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예멘을 33년간 장기 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면책을 조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다.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아랍 국민들의 투쟁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시리아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부자세습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그는 국내외적 퇴진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붙들고 있으나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분석했다. 국민 다수를 이루는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가 아사드의 시아파 정권에 등을 돌렸고,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구성하는 등 반정부 시위가 조직화되고 있다. 올해 민주화시위를 가까스로 막았던 중동 군주제 국가들에 다시 한번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칠지도 관심사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26일 “시민혁명이나 내전이 아닌 중재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예멘식 모델이 다른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절대왕정과 독재자들의 ‘낙원’으로 여겨졌던 아프리카 중·남부 국가들로 민주화시위가 확산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아랍의 봄을 지켜보며 중동·아프리카 국민들이 권위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의식을 키운 만큼 민주화 혁명의 불길이 사하라 이남까지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 이집트, 리비아 등 혁명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파열음을 내온 국가들이 내년에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北 김정은시대 선언] 김정은 ‘선군’ 내세워 정권장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정권 장악을 위한 세부전략은 무엇일까. 23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질문의 답은 노동신문 22일자 1면의 사설에 담겨 있다. 사설에는 ‘선군’이란 단어가 21회 사용돼 단 3회 언급된 ‘유훈’을 크게 앞지른다. 선군영도, 선군혁명, 선군조선 등이다. 선군은 ‘김정일’(27회)과 비슷하게 사용됐다. 김일성 주석을 상징하는 ‘주체’(14회)나 ‘김정은’(8회)보다도 월등히 많다. 김 위원장의 정치사상인 선군을 앞세운 것은 사실상 유훈과 일맥상통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두 단어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선군이 단순히 세습체제를 굳히고 핵과 미사일로 주변국을 위협하는 방식을 벗어나 내치의 실질적 도구라는 해석이다. 지난 19일 김 부위원장이 군에 1호 명령을 내린 것과 일맥상통한다. 전문가들은 선군정치의 근간이 ‘노동계급’이 아니라 ‘군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북측 역사의 주역이 노동자가 아니라 군대라는 주장으로, 통제경제 체제의 파시즘이라는 특이한 체제를 이루는 데 일조했다는 설명이다. 명분은 세계 열강으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1977년 북조선 사회주의 헌법을 통해 주체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선포하면서 형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했다. 이후 김 위원장이 1990년대 중반 마르크스주의와의 완전한 결별을 내세우며 제시한 정치체제가 선군정치다. 이는 군의 영향력을 빌려 정치와 경제, 교육, 문화, 예술 등 전 분야에서 단박에 김 부위원장의 영향력을 키우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북한 인민군이 단순한 군사조직을 넘어 정치조직으로 변질돼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김영윤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선군정치는 현재 북한사회를 끌어가는 동력이며 동시에 군은 경제 등 모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서 “(김정은이) 군을 통해 완벽하게 북한을 지배한 뒤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주말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 1(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미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고등학생이다. 영리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미아는 미술가인 어머니 헬렌과 단 둘이 산다. 남들처럼 미아도 로맨틱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부스스한 외모와 수줍음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는다. 그런 그녀에게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다. 평생 연락을 끊고 살 줄 알았던 할머니가 온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제노비아라는 나라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남학생들로부터 눈길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미아는 알고 보니 제노비아의 왕위를 이어갈 공주였다. 제노비아의 왕자였던 미아의 아버지는 오래전 어머니와 이혼했고, 미아의 어머니나 할머니도 미아의 장래를 위해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녀에게 신분을 알려주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미아는 갈등에 빠진다. 금붕어 한 마리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자신이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아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제노비아의 독립기념일 무도회 직전까지 공주 레슨을 받고, 공주가 되느냐 마느냐는 그 후 결정하기로 한다. ●이클립스(KBS2 토요일 밤 11시 55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벨라는 에드워드와의 영원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뱀파이어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결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제이콥 역시 벨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말한다. 한편 시애틀에서 연쇄 살인과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신생 뱀파이어 군대를 조직하고 있다고 판단한 컬렌 가는 볼투리 가에서 나서기 전에 사태를 진압하기로 한다. 신생 뱀파이어 군대를 조직한 주동자가 벨라를 노리고 있다는 정황이 발견되자 늑대 인간들과 동맹을 맺어 신생 뱀파이어들과 맞서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신생 뱀파이어 군대가 공격해 벨라와 에드워드는 깊은 산속으로 피신한다. ●킹콩을 들다(MBC 일요일 밤 1시) 88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둔 후 시골여중 역도부 코치로 내려온 이지봉. 역도선수에게 남는 건 부상과 우락부락한 근육뿐이라며 역도에 이골 난 그가, 가진 거라곤 힘밖에 없는 시골소녀들을 만났다. 낫질로 다져진 튼튼한 어깨와 통짜 허리라는 타고난 신체조건의 영자, 학교 제일 킹카를 짝사랑하는 빵순이 현정,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 FBI가 되겠다는 모범생 수옥, 아픈 엄마를 위해 역도 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효녀 여순, 힘쓰는 일이 천성인 보영, 섹시한 역도복의 매력에 푹 빠진 S라인 사차원 꽃미녀 민희까지. 이지봉은 개성도 외모도 제각각이지만 끈기와 힘만은 세계 최강인 순수한 시골소녀들의 열정에 감동한다.
  • 군산비행장 ‘소음 피해’ 줄소송 예고

    군산비행장 ‘소음 피해’ 줄소송 예고

    전북 군산비행장 주변의 주민들이 소음피해 민사소송을 반복하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음 해결 안돼 3년만에 또 소송 22일 전북도에 따르면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은 지난 9일 서춘길씨 등 주민 21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군산비행장 소음피해 보상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서씨 등에게 2억 7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위자료는 주민 1인당 월 3만원으로 정했다. 이 판결로 군산비행장 주민들은 2008년부터 2011년 11월까지 거주기간에 따라 위자료를 차등 지급받게 됐다. 군산비행장 주민들은 2008년 위자료 배상판결 이후에도 비행장 소음이 해결되지 않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소음피해 보상을 다시 요구해 결국 승소했다. 주민들은 판결선고 확정일 이후 민사상 소멸시효인 3년 이내의 피해를 소급, 추가 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은 “미국 군대가 점유·소유 또는 관리하는 토지의 공작물과 기타 시설 또는 물건의 설치나 관리의 하자로 인해 제3자가 손해를 입은 때에는 대한민국이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한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군산비행장 주변 주민들의 소음 ‘수인한도’를 농촌지역임을 감안해 도심의 85웨클보다 5웨클 낮은 80웨클로 적용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이런 민사소송은 군산비행장의 소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3년 주기로 반복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김귀동 변호사는 “군산비행장만 유독 소음피해 관련 특별법 논의에서 빠져 있어서 특별법 제정 등 소음피해에 대한 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3년을 주기로 소송이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소음피해 특별법은 군용 비행장 등 지역주민들의 생활환경 보호를 위해 소음대책지역을 지정·고시하고 이주대책과 방음·냉방시설지원, TV 수신 대책 등 필요한 대책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군용 비행장은 ‘소음대책사업기금’을 조성하고 민간 항공운송업자로부터 소음 부담금 등을 징수할 수 있도록 했다. ●“민소 3년주기로 반복 불보듯” 한편 군산비행장은 2개 주한 미 공군 전투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1992년부터는 국내선 민간항공기도 취항해 주민들이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2009년 6월부터 7월 사이 주·야간 비행횟수는 하루평균 전투기 56회, 민항기 4회 등 60회이고 소음도는 옥서면 선연 2리가 84.6~90.7웨클, 하제보건소 부근과 중제, 신난산 지역은 77.9~84.6웨클로 조사됐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조승우 “흥행 3할타자, 홈런 칠 차례죠”

    조승우 “흥행 3할타자, 홈런 칠 차례죠”

    금테 안경 뒤로 비치는 매서운 눈빛과 무표정, 마운드 위에서의 분주한 동작까지. 영화 ‘퍼펙트 게임’ 속 조승우(30)는 롯데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투수였던 고(故) 최동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작은 사진)하고 있었다. ‘퍼펙트 게임’은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최동원과 선동열(현 기아 타이거즈 감독) 선수의 세기의 맞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마이웨이’와 함께 올 연말 충무로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한국 영화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조승우는 중학교 때까지 실제로 투수가 꿈이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학창 시절 공부는 하기 싫었고, 운동 신경이 좋아 공을 멀리 던지는 것은 자신 있었어요. 테니스공으로 친구들과 캐치볼도 많이 하면서 중학교 때까지 투수의 꿈을 키웠죠. 물론 그 이후 뮤지컬을 한 편 보고 제 삶이 바뀌기는 했지만….” 출연 중인 뮤지컬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다른 작품 대본은 일절 보지 않는다는 그는 공연 초반에 소속사 대표의 전화를 받고 우연히 영화 요약본을 본 뒤 마음이 흔들렸다고 털어놨다. “야구 영화를 꼭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제 꿈이었던 투수 역할이고, 거기다가 최동원 선수 역할이라니 더욱 마음이 흔들렸죠.” 부산 사투리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영화 ‘타짜’(2006)에 함께 출연했던 “(김)윤석이 형에게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밝게 웃는 조승우. 그는 끈질긴 집념의 최동원을 연기하기 위해 600쪽가량의 자료를 파고들었다. “(최동원 선수가) 영화에서는 철저한 승부사로 나오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명랑하고 쾌활하고 장난도 잘 치는 분이셨습니다. 후배들에 대한 리더십이나 책임감도 컸고요. 은퇴식도 없이 스스로 쓸쓸하게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고 열정이 컸기 때문에 그 외로움과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동원이 공을 던질 때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배짱과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포커페이스’를 스크린에 그대로 담고 싶었다는 조승우는 “최동원 선수의 인간적인 면모보다 냉철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이 더 부각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최동원과 자존심 대결을 펼치는 선동열 역에 양동근을 강력 추천한 이는 바로 조승우였다.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양)동근이가 제격이라고 생각해 감독님께 얘기했습니다. 내가 관객이어도 조승우와 양동근 조합이라면 흥미롭게 볼 것 같다고 큰소리 치면서요.” 조승우는 다른 영화를 계약하기 직전이던 양동근을 설득해 한배를 탔다. 연기 경쟁이 만만치 않았겠다고 하니 “함께 연기하면서 오히려 많이 배우고 반성도 많이 했다.”면서 “양동근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일품”이라고 답했다. “동근이는 모자를 만지고, 물을 마시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 동작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합니다. 마치 몰래카메라로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하지만 힘이 느껴지는 동근이의 연기 호흡을 보면서 25년 연기 경력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제 연기가 긴장감을 준다면, 동근이는 이완해 주는 역할을 했어요.” 영화의 대부분은 1987년 5월 16일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승부를 그리고 있다. 당시 승부는 15회까지 가는 혈전 끝에 무승부로 끝났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히는 경기다. “저는 그때 나이는 어렸지만, 당시 언론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다루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다시 재조명하고 영화화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당시는 야구를 통해 지역 감정을 조장하기도 했던 때지만, 그런 시대에 한 방 먹여주는 통쾌함도 있고…. 사전적인 의미는 다르지만 진정한 ‘퍼펙트 게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승우는 지난 9월 세상을 떠난 최동원을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생전에 그는 박희곤 감독에게 “영화를 만들 거면 허구를 넣어도 좋으니 허투루 하지 말고 진정한 야구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최동원 선수를) 시사회에 꼭 초대해 칭찬받고 싶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애교도 부리고, 공 잡는 방법도 배우고 싶었는데….” 조승우는 고인과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에 “최동원 선수가 유니폼을 입었을 때와 벗었을 때가 다른 것처럼 나 역시 무대에 섰을 때와 무대 밖에 있을 때가 다르다.”면서 “나 자신이 해이해질 때마다 채찍질을 하고, 겉멋에 치중하거나 취해 있거나 연습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후배들에게는 쓴소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영화보다 뮤지컬 무대가 좋다고 잘라 말했다. “무대는 두 시간 동안 음악과 몸짓으로 캐릭터를 극대화시켜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영화는 찍는 순서도 뒤죽박죽이고 가끔 시커먼 카메라가 집중을 깨기도 합니다.” 까칠했던 성격이 군대를 다녀온 뒤 유연해진 것 같다고 하니 “너무 착한 이미지 때문에 영화 ‘하류 인생’에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일부러 그런 척을 했던 것”이라고 여유롭게 받아친다. 뮤지컬에 비해 영화는 흥행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고 하자 “10편의 영화에 출연해 3편 정도 성공시켰으니 3할 타자는 된다.”면서 “이번에 스포츠 영화의 (흥행)기록을 깼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받아넘겼다. 자신의 인생을 야구에 비유한 마지막 답변이 인상적이다. “중학교 때 뮤지컬을 본 게 1루를 밟은 것이라면, 2루는 예고에서 은사인 남경읍 선생님을 만난 겁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에 출연하면서 3루를 돌았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출연으로 마침내 홈에 들어왔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인격적으로 타락한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인생은 어떤 공이라도 쳐내야 하는 타자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장벽과 쟁애물을 허무는 과정이 아닐까요?”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北 ‘김정은 시대’ 선언

    北 ‘김정은 시대’ 선언

    북한이 22일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위대한 영도자’,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로 치켜세우며 사실상 새 지도자의 시대가 개막했음을 선언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 속에 영생하실 것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계신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원고지 60여장에 이르는 사설을 1면 전면에 게재했다. 신문은 사설 앞부분에 북한을 핵으로 무장시키고 강성국가 건설을 시도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신격화하고 중반부에서 후계 문제를 언급하며 “계승 문제를 이상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해결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또 김정은을 “백두 천출위인들의 넋과 인격, 영도 풍모를 그대로 닮은 또 한 분의 걸출한 영도자”라고 부르며,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이어지는 일명 ‘백두혈통’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향후 ‘유일적인 영도체계’, 즉 절대권력 체제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현재 이 작업이 “편향도 없이 최상의 수준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야 한다.”고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으로 유훈을 언급했다. 신문은 이어 “김정은 동지의 두리에 단결하고 또 단결해 그이(김정일)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야 한다.”고 밝혀 김정은의 ‘유훈통치’가 곧 시작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지시는 김정일 교시’ 간주…항명땐 혁명 부정 반국가행위로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유훈통치’의 막이 올랐다.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처음으로 ‘김정일 유훈’을 언급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은 두 번째 유훈통치 시대가 개막했음을 알렸다. ●29세 지도자에 든든한 방패막이 유훈통치는 말 그대로 김 위원장의 생전 교시와 사상, 노선을 이어가는 정치를 뜻한다. 김정은이 내리는 지시는 곧 김 위원장의 교시가 되는 것이다. 당 총서기 등 절대권력자에게 걸맞은 직위를 갖추지 못해도 김 위원장의 유훈이라는 명분으로 당과 군부, 국가기관에 얼마든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항명은 김 위원장에 대한 반역이 되고, 더 나아가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이른바 ‘혁명위업’을 부정하는 게 되며 해석에 따라 반국가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근간을 항일혁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치 경험이 부족한 29세의 어린 지도자에게는 파워엘리트들에 대한 장악력을 확장하는 동안 자신을 보호해 줄 훌륭한 방패막이인 셈이다. 신문이 사설에서 장문에 걸쳐 김 위원장의 생애를 신격화한 것도 김정은에게 극대화된 아버지의 후광을 덧입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 김 위원장도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유훈통치를 통해 불만세력을 제압하고 권력 기반을 다졌다. 군부장악 과정에서 쿠데타 움직임이 포착된 6군단의 수많은 장성을 처단한 ‘6군단 숙청 사건’(1995년)이 유훈통치 기간 벌어졌다. 다만 김정은은 김 위원장이 권력세습 작업 과정에서 후계체제에 걸림돌이 될 만한 인사를 대부분 정리했기 때문에 굳이 반발을 불러올 ‘피의 숙청’을 단행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신 김 위원장이 추진하던 일을 계승해 내용을 채우고 실력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훈통치의 첫 번째 과제는 자위적 국방력 강화다. 신문은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더욱 강화하고 적들의 그 어떤 도발책동도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강국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모든 부문에서 혁신을 이루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주체의 강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6·15공동선언 이행을 통한 평화통일을 강조했다. ●국방력 강화·강성국가 강조 더욱 견고한 핵무장,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중국과의 경제협력 강화, 남측과의 관계개선 노력 등 김정은의 향후 행보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는 29일 애도기간이 끝난 뒤 김정은은 한 해 정책기조를 천명하는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자신의 강성대국 건설 계획을 대내외에 공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北, 인민복 차림 김정일 시신 신속공개

    북한이 20일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 30분에 사망한 지 78시간 30분 만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는 93시간 40분 만에 시신을 공개했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3시쯤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 위원장의 시신 모습을 방영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시신을 방부처리해 김 주석처럼 금수산기념궁전에 영구보존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시신은 붉은 천으로 가슴까지 덮여 있었고 인민복 차림이었다. 시신이 들어 있는 유리관은 붉은색 김정일화와 흰색 국화로 장식돼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새 영도자에 오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영전에 조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참가자들이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이신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일심단결하여 장군님(김정일)의 염원을 기어이 성취하고야 말 굳은 맹세를 다졌다.”고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포스트 김정일 北 어디로 가나] ① 김정은 체제 안착할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라진 북한 체제에 대한 전망은 상당히 엇갈린다. 만 29세인 셋째 아들 김정은이 권력승계에 나섰지만 통치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고작 1년여간 후계 교육을 받은 게 전부이기 때문에 권력기반은 극도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9월 28일 열렸던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을 맡아 후계자로 공식 등장했을 때, 그의 권력 세습 안착 여부는 김 위원장이 얼마나 더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대세였다. 이른바 ‘공동통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건강이 악화되기 전부터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해 측근들을 중심으로 후계 권력 기반을 마련했으며,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뒤 최근까지 김 위원장을 ‘그림자 수행’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김정은 체제 구축에 대해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9일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중대보도’를 통해 김정은을 ‘주체혁명의 계승자이며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라고 강조하는 등 그의 이름을 5차례나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통일부와 조선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해 9월 후계자로 공식화된 뒤 지금까지 132차례의 공개활동을 벌였다. 분야별로는 군 40회, 경제 25회, 대외 13회, 기타 44회로 군과 경제 관련 현지지도에 치중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군 관련 시찰은 같은 기간 김 위원장(39회)보다 오히려 1회 더 많아, 안정적인 후계 구축을 위해 김정은이 군을 장악하고 군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소식통은 “김정은이 공식적으로는 1년간 후계 수업을 받았지만 보위부 등 체제 단속을 위한 조직이 이미 김정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군을 상당히 장악한 것으로 보여 당분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체제 단속 및 대내외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후계 체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김정은 후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래희망연대 송영선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해 “앞으로 몇 개월간 유지되겠지만 6개월쯤 지나면서 권력에 대한 내부 투쟁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부가 쿠데타를 하거나 강경파가 득세하는 일은 있을 수 없지만 김정은 체제가 안착할지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김 위원장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정은과 장성택 등 측근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 북한 체제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군부와 함께 협력해 상당 기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당분간 체제 안정에 주력할 것”이라며 “정부는 동북아 및 한반도 안정을 위해 긴장과 상호 위협적 인식이 고조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퇴역병 다시 ‘錢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참전했다 돌아온 미국의 퇴역군인들이 심각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들어 20~24세 사이 전역자의 실업률은 평균 30%로 군대 경험이 없는 같은 연령대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지난해 7월(21%)과 비교해 50% 가까이 증가한 수치라고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군대 미경험자보다 2배 높아” 클레이턴 로덴(25)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한달에 2500달러를 벌었다. 미국 해병대원으로 수도 카불에서 헬기를 타고 급조폭발물(IED)이나 폭탄제조 공장을 찾아내는 게 그의 임무였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일주일에 고작 80달러를 번다. 그것도 자신의 혈장(血漿)을 팔아서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는 로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역자들의 취업난은 주방위군 등에 소속된 제대 직전의 청년 군인들이 특히 심하다. 중장년 전역자의 실업률은 지난해 7월의 12%에서 큰 변화가 없으며, 같은 연령대의 일반인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미 노동부의 제인 오티스 차관(취업교육 담당)은 “20년을 채우지 않고 단기 제대하는 청년 전역자의 실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직업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너무 좁고 적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역자들의 취업난을 학력 등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회진출을 방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전역자들과 민간사회의 이질감을 지적한다. 고용주와 전역자 모두 서로를 ‘이방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 군대 경험이 없는 기업체 간부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군 출신들의 전쟁 후유증 때문에 기피하기도 한다. ●“전역자·고용주 이질감 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기업들에 군 출신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것을 권유해왔다. JP모건체이스와 버라이즌 등 대기업이 2020년까지 10만명의 전역자를 채용키로 하면서 전역자들을 위한 일자리가 조금씩 늘고 있다. 하지만 이라크와 아프간전 경험자 22만명이 여전히 실직 상태인 가운데 향후 5년간 100만명이 추가로 제대할 것으로 예상돼 이들의 취업난은 당분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北중앙통신 보도문 요약

    北중앙통신 보도문 요약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 우리의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은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 김정일 동지께서 뜻밖에 서거하신 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최대의 손실이며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가장 큰 슬픔이다. 김정일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온 겨레를 자주와 민족대단결의 길로 이끌어오시였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동지께서 서 계신다.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며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 김정일, 질병과 서거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장 및 뇌혈관질병으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초강도강행군의 나날에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달리는 야전렬차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였다.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대책을 세웠으나 주체100(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서거하시였다. 주체100(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였다. 전당, 전군, 전민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서거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며 깊은 경모의 마음으로 추모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음을 알린다. 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구를 금수산기념궁전에 정중히 안치한다. 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추모하여 주체100(2011)년 12월 17일부터 12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하며 주체100(2011)년 12월 20일부터 27일 사이에 조객들을 맞이한다. 3.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령구를 바래우는 영결식은 주체100(2011)년 12월 28일에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엄숙히 거행한다. 4.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추모하는 중앙추도대회는 주체100(2011)년 12월 29일에 진행한다. 5. 애도기간에 전국의 모든 기관, 기업소들에서 조의행사를 진행하며 평양시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진행되는 시간에 각 도, 시, 군들에서 추도식을 진행한다. 6. 애도기간에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조기를 띄우며 일체 가무와 유희, 오락을 하지 않도록 한다. 7.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 주체100(2011)년 12월 17일(끝)
  • 김일성 사망때처럼… 낮 12시 ‘특별방송’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북한이 19일 오전 10시부터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통신 등 매체를 통해 낮 12시에 ‘특별방송’ 및 ‘중대보도’를 하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특히 북한이 ‘특별방송’을 한 것은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 사망 때뿐이었다는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북 방송들은 특별방송에 앞서 김 위원장의 활동을 담은 화면을 계속 내보냈으며, 여성 아나운서가 울먹이는 모습도 잠시 등장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분위기는 한층 어두워졌다. 탈북자단체 NK지식인연대는 오전 11시 40분쯤 홈페이지에 ‘김정일 사망 예견’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예고를 하는 방송원이 매우 비통한 어조와 표정으로 특별방송을 알리고 있다. 1994년 김정일 사망 당시를 연상시킨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낮 12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중대보도’를 시작했다. 통신은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고 밝혔다. ‘너무도 갑자기’라는 표현으로 미뤄볼 때 북 당국에서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 “김정일 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 유훈을 실현하실 철석의 의지를 지니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리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으시였다.”며 2000년 6월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등 김 위원장의 활동과 역할을 부각시켰다. 통신은 또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령도자이신 김정은 동지께서 서 계신다.”며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며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유고에도 후계자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단결을 강조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후계가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은 북한 전체에 불안과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김정은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51시간 30분이나 극비에 부친 것은 열차 이동 중 발생한 상황에서 부검이 늦어졌고,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발표 과정 및 장례 절차 등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MB, 57분회담 거의 내내 “위안부 할머니 恨 풀어달라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MB, 57분회담 거의 내내 “위안부 할머니 恨 풀어달라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18일 일본 교토 영빈관에서 오전 9시 13분에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간의 정상회담은 오전 10시 10분 끝날 때까지 57분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회담 모두 발언에서부터 마무리 발언까지 거의 대부분을 위안부 문제에 할애했다. 전체 발언의 90%가량이 위안부 관련 내용이었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 외에는 신세대 공동연구, 공동교과서 문제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했다. 노다 총리는 “제3기 역사공동연구가 진행된 것을 환영한다.”, “양국 간 교류가 활성됐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다. 노다 총리가 경제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가자 이 대통령은 “경제 문제 이전에 과거사 현안, 군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겠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인식을 달리하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양국 간 현안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대국적 견지에서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위안부 문제를 다시 꺼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63명의, 일생에 한을 갖고 살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본인들 목소리는 이제 없어지는 것”이라면서 “이러면 양국 간 큰 부담으로 남게 된다. 그때 가서는 해결할 길도 없고, 지금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실무적으로 어느 부서에서 해결하려면 실마리를 못 푼다.”면서 “총리가 직접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총리의 실무적 발상보다는 큰 차원의 정치적 결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의 예상을 뛰어넘는 ‘초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노다 총리는 원칙론을 고수하며 오히려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회담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후 중간에 경제 관련 대화가 오간 뒤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위안부 얘기를 꺼냈다.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노다)총리의 보다 성의 있는 해결책을 기대한다.”면서 “그것은 거창한 방법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서 기초하는 것이다. 노다 총리의 결단을 계속 기대하겠다.”고 거듭 압박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17일) 노다 총리와 두 시간 이상 가진 정상만찬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집중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안부 문제는 사실 이번 정상회담의 공식의제로 잡힌 사안은 아니다.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접촉에서 우리 측이 거듭 정식의제 채택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이 난색을 보이자 양국은 공식의제로는 삼지 않되 이 대통령이 간단히 언급하는 선에서 논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쪽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예상 외로 집요하고 강도 높게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노다 총리를 압박하자 노다 총리는 물론 회담에 참석했던 일본 측 관계자들은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후에도 양국 정상의 냉랭한 관계는 지속됐다. 이 대통령과 노다 총리는 고사찰인 교토의 료안지(龍安寺)를 25분간 함께 둘러보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이 대통령은 이 일정을 절반으로 줄이고 예정보다 일찍 전용기로 돌아갔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32) 공무원교육 변천사

    [테마로 본 공직사회] (32) 공무원교육 변천사

    교육은 백년대계다. 특히 나라의 살림을 맡게 될 공무원에 대한 교육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정부는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공무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판단, 1949년 3월 국가공무원 교육훈련 기관의 시초인 ‘국립공무원훈련원’을 개원했다. 이후 훈련원은 제4대 윤보선 전 대통령 재임 중인 1961년 지금의 이름인 중앙공무원교육원(중공교)으로 재탄생했으며, 60년 넘게 국가공무원 교육을 담당해오고 있다. 정권에 따른 공무원 교육의 변천사를 살펴봤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시대별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자연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행정이 감시와 통제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일반 행정업무 외에도 정책 소통과 갈등 조정 등 공무원에게 다양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감시·통제서 소통 중심으로 변화 박제국 행정안전부 인력개발관은 공무원 교육의 변화를 살펴보려면 더 큰 틀의 행정 환경 변화부터 살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행정 환경이 진화함에 따라 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졌고, 이는 마치 골키퍼는 그대로인데 골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즉,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공무원의 역할이 변했고, 공무원 교육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중공교의 전신인 국립공무원훈련원 시절은 ‘공무원 능력발전’이라는 교육훈련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정실인사에 희생된 공무원이나 부정을 저지른 공무원들의 대기소처럼 이용됐다. 중공교가 발간한 공무원 교육훈련역사 자료에 따르면 당시 훈련원은 이승만 정부 말기 인사행정이 문란해지면서 공무원 교육을 위한 인력 구성이 되지 않았고, 정책 입안자들도 공무원 교육훈련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제3~4공화국)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제5공화국) 집권기까지는 반공사상과 안보교육이 특히 강조됐다. 또 ‘경제 개발’이라는 당시 사회적 요구에 따라 ‘새마을운동’이 공무원 교육에 접목되기도 했다. ●반공·안보·경제개발 집중 교육 1981년 공직에 입문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도 1980년대 초반 참여했던 ‘새마을 정신교육 특별과정”의 기억이 생생하다. “야 이 XX들아 뒤에 줄 똑바로 안 서! 뒤에 떠드는 X들은 누구야!” 이 관계자는 “벌써 30여년 전이라 몇 년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새마을 관련 교육 중 군대처럼 행군 프로그램이 있었고 당시 전경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했던지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전경환 전 사무총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첫 직선제 대선을 통해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 출신이면서도 행정 전반에서는 전 정권과 차별화를 두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보통사람’을 기치로 내세우자 이는 곧 공무원 교육에도 반영됐다. 당시 신임관리자과정에는 ‘삶과 그 보람’, ‘나의 공직관’, ‘전환기 극복의 지혜’ 등의 과목이 신설됐고, 토의와 종합발표 주제를 ‘우리 시대의 보통사람들을 위하여’로 단일화했다. 신임관리자과정 등 주요 공무원 교육에서 기존의 반공·안보 교육은 완화됐고, 당시 국가 최대 이벤트인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만큼 ‘서울올림픽 등 국가시책에 대한 이해’와 ‘국민정신교육덕목 체질화’와 같은 정신 교육을 강화했다. ●개방·세계화 대응 방안 다각 모색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는 행정부 기능의 다양화 및 전문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에 따라 공무원 교육에도 많은 과정과 과목이 만들어졌다. 현 5급 승진자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초급관리자과정’에는 민간기업의 변화를 위한 전략 과목과 함께 개방화·세계화에 따른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 정보의 보호와 공개 및 행정절차 과목을 신설했다. 신임관리자과정에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이해와 우리 경제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WTO체제 출범과 한국경제에 관한 교과목을 설치했다. 또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반공 관점에서 탈피, 남북현안 문제와 통일정책의 이해와 같은 과목도 공무원에게 교육하기 시작했다. ●‘경제회복·남북교류 활성화’ 과목 신설 IMF 구제금융체제라는 최악의 금융난 속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의 공무원 교육은 ‘경제위기 극복’과 ‘남북 교류 활성화’로 요약된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어려워진 교육행정 여건에 따라 교육훈련체계를 대폭 축소하고 ‘IMF의 조직·활동과 우리 경제의 대응’ 등 경제회복을 위한 교육 과목을 만들었다. 박동훈 행안부 대변인은 “국민의 정부에서는 경제 회복이 최우선 과제였다.”면서 “주요 국가 시책과 그에 따른 교육 내용 모두 경제에 집중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신임사무관 대상 첫 특강 공무원 교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 환경과 시스템, 내용에서 일대 변환을 맞이했다. 과천 교육관 신설뿐만 아니라 유비쿼터스 환경 도입 등 외형적 변화와 함께 ‘정부혁신’과 ‘지방분권’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과 함께하는 참여정부를 이끌 혁신적 공무원 양성’을 목표로 ‘참여·토론식 교육 체계’를 도입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위해 2005년 11월 중공교 교육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신임사무관을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다소 느슨해졌던 공직자 안보 교육을 강화했으며, 국정철학 특강 등을 통해 국가 정책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에는 중공교 개원 이래 첫 민간 출신인 윤은기 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을 원장에 임명해 공무원 교육에 변화를 주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동반성장 현장을 가다] 핀란드 게임社 ‘프로즌바이트’

    [동반성장 현장을 가다] 핀란드 게임社 ‘프로즌바이트’

    헬싱키 중심부에서 지하철로 10분 남짓 떨어진 반하탈 비티에 거리. 구로디지털 단지 격인 이곳은 지난 몇 년 새 세계적인 게임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핀란드 최대 전산 솔루션기업 티에토도 들어와 있다. 러시아풍의 빨간 아파트형 공장 건물들이 즐비한 속에 섀도그라운드란 게임으로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업체 프로즌바이트도 이곳에 있다. 200여평 남짓한 사무실. 10여명의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편한 옷차림으로 컴퓨터작업을 하면서 게임프로그램을 만들고, 이곳저곳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 2009년 10년 가까운 와신상담 끝에 섀도그라운드1이 미국 시장에서만 수백만 달러어치 팔리며 성가를 올렸다. 지금은 연말 연초를 겨냥해 버전2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임대료와 인건비 말고는 나가는 돈도 거의 없다. 이 회사는 청년들의 도전을 사회가 어떻게 뒷받침해 꽃피울 수 있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스무살의 고졸 출신 로리 히베리넨이 1년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2000년 선택한 길은 게임 만들기. 히베리넨은 자타가 공인하는 게임광. 그는 “무작정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 등 5명의 친구들이 뜻을 같이했고,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처럼 차고가 그들의 공장이자 모태였다. “실패만 거듭했다. 되는 게 없었다. 시장도 냉담했다.” 히베리넨과 친구들은 소소한 게임 소프트웨어로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쥘 때마다 이를 몽땅 제품 개발에 퍼부었다. 2003년에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기술혁신기금 테케스가 개발 자금을 제공했다. 그러나 좌절은 계속됐고, 프로즌바이트는 창업자와 몇몇의 친구들로만 몇년 동안이나 유지해야 했다. “좋아하는 일을 했고, 사회보장 덕택에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는 생각이 히베리넨을 계속 게임 개발에 몰두하게 했다. 공공펀드의 청년창업지원과 테케스 등에서 받은 소프트론(떼이면 돌려줄 필요 없는 기술지원자금)도 버티는 데 한 힘이 됐다. 이 회사는 섀도그라운드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게임산업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히베리넨과 친구들은 영화 같은 느낌의 게임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스토리와 예술성을 중요시하고, 핀란드 전설이나 풍광을 넣어 게임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중년 및 노년층에까지 게임이 더 보편화될 것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고, 이런 확신과 기대감이 더 큰 힘을 준다. 프로즌바이트는 직업훈련을 위한 전문대학 폴리텍과의 정보 교류와 인적 충원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대외 담당 미카엘 하베리는 “회사 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지역 폴리텍에 가서 학생 및 교수들과 프로그래밍 과정을 비롯해 게임 소재, 제작 방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의견을 교환한다.”고 소개했다. 지역 폴리텍에서는 매 학기 학생들을 인턴으로 보내고 이들 가운데 채용이 이뤄진다. 사장은 고졸이지만 하베리는 네덜란드에서 경영대학원을 마친 인재다. 대기업들의 스카웃 제의도 마다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도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청년 인구 비율이 높고, 다양성과 유연함을 존중하는 문화, 긴 겨울 실내에서 지내야 하는 생활 조건도 핀란드 게임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조건이 됐고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지형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은 “핀란드의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꼽히는 게임산업의 빠른 성장 뒤에는 실용적이고 단단한 중등교육의 성과와 도전을 북돋는 다양한 청년창업 및 벤처 지원 등 치밀한 지원시스템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헬싱키(핀란드)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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