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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벌 파워 줄고 시진핑 권력 강화… 藥일까 毒일까

    파벌 파워 줄고 시진핑 권력 강화… 藥일까 毒일까

    중국 공산당 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의 준비회의 격인 17기 7중전회(제17기 중앙위원회 제7차 전체회의)가 1일 개막함에 따라 중국의 권력교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어 갈 5세대 지도부가 탄생하는 18차 전대, 권력교체 등과 관련된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Q 권력교체는 18차 전대에서 완료되나. A 엄밀하게는 아니다. 이번 전대에서는 공산당 최고권력기구인 18기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대 폐막 다음 날 열리는 18기 1중전회(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중앙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 총서기를 선출하게 된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와 정부, 군대를 모두 지휘한다는 점에서 총서기 선출을 권력교체로 본다. 국가주석, 총리 등의 승계 작업은 내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완성된다. Q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 총서기직과 주석직을 승계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나. A 절대 불가능하다. 사실상 이미 5년 전 17차 전대에서 계파 간 타협에 따라 시 부주석을 차기 공산당과 국가 지도자로 결정했다. 2010년 시 부주석이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임되면서 권력승계를 확정지었다. Q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넘겨주나. A 현재로선 반반이다. 중국에선 후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까지 모두 넘겨 ‘완전 승계’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란 기대가 크지만 후 주석이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처럼 2년여간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틀어쥐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하다. 장 전 주석은 이 같은 비정상적인 승계에 대해 자신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는 후 주석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시진핑 주석’에게 넘겨주는 대신 총리를 맡게 될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에게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을 겸임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마오쩌둥(毛澤東) 집권 시절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도 중앙군사위 부주석직을 맡은 바 있다. Q 정치국 상무위원 숫자가 9명인지 7명인지 왜 중요한가. A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를 표방하기 때문에 상무위원이 적을수록 의사결정이 빨라진다. 최고지도자의 권력도 상대적으로 강해진다. 이번에 상무위원이 기존 9인에서 7인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당면한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권력집중이라는 부작용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Q 전대에서 선거는 전혀 없나. A 최고지도부를 선출하는 중앙위원회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을 뽑을 때 차액선거(후보자를 정원보다 많이 내세워 득표순으로 선출)를 한다. 탈락자 비율(차액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후보로 내세운 사람들이 떨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7차 전대 때의 중앙위원 선출 당시 차액 비율은 15%로, 2002년 열린 16차 전대보다 5% 포인트 늘었다. 이번에는 차액 비율이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와 중앙아시아/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와 중앙아시아/이혜주 현대건설 해외영업본부 상무

    글로벌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글로벌이라는 말에는 힘센 국가가 자국 내의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지배력을 확장하려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글로벌이라는 말은 자유롭게 자기식대로 살아가는 국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일 수 있다. 다른 한편, 이즈음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 간 거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이제 어떤 나라도 이웃나라와 교류·소통하지 않고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돼 가고 있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 눈을 떠가는 것이라고 한다. 국가 사이에 좋은 친교 관계를 유지하려면 스스로 좋은 친구감이 돼야 한다. 친교는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한때의 마주침으로 끝날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서남아시아와 동남북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정유관인 블랙 로드가 지나고, 철로인 스틸 로드가 촘촘히 이어지는 곳이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우리와 인연이 깊다. 1937년 겨울, 스탈린은 시베리아의 외국인을 일본인과 격리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벌판으로 이주시켰다. 우리 한국인들은 현지인의 도움과 배려로 황량한 벌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듬해 봄부터는 벌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립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후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현지인들은 지금도 한국인들이 보여준 생존 능력과 기술력, 그리고 근면함을 존경해 오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동북쪽에 있는 알타이산맥 부근은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로 이동하기 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어, 몽골어 등을 포함하는 ‘알타이어족’이라는 명칭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알타이산맥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몸속 유전자는 북방 유목민족과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국내에선 능력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던 이들도 일단 해외로 나가면 광활한 대지를 거침없이 달리듯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가지 않는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는 과거 실크로드의 교착지로, 서남아시아와 중국 장안(長安)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실크로드는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그 옛날 실크로드가 한반도 신라까지 이어졌음을 최근 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는 한반도가 오랜 옛날부터 세계와 교류해 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감행한 서역(西域) 원정은 세계 전쟁사에 남을 만큼 유명하다. 중앙아시아 5개국의 수도는 지금 계획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지 21년이 된 이곳 사람들은 실질적인 경제자립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거의 100년 동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표기문자(공용어)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자국어를 활용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조만간 언어 독립도 이뤄질 것 같다. 우리는 20세기 초에 식민지 생활을 겪어야만 했고, 해방 이후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으며, 지금은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아오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없애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우리의 과거사마저 뺏으려 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를 자기 땅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모든 역사는 현재사(現在史)다. 오늘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내일이란 없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자.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중앙아시아는 역사적, 사회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다양한 교류와 소통의 장이었던 만큼 머지않은 장래에 이들만의 의미 있는 삶의 양식을 전 인류에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상대에 대한 이해는 교류와 소통의 지름길이다. 강국으로 비상하고 있는 이웃 중국(한족)에 대한 우리의 미래 대처 전략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교류 강화를 고려해 볼 때다.
  • 뭉치는 日 ‘제3세력’… 극우파워 커지나

    일본 정치권에서 차기 중의원(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자민당, 공명당 등 기존 체제에 대항하는 ‘제3세력’의 연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이 이끄는 일본유신회가 극우 정당 창당을 선언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와 정책 공조를 협의하기로 했다.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는 우익 정당인 ‘일어나라 일본’을 모태로 다음 달 신당을 만들 예정이다. 28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하시모토 대표는 전날 오사카에서 열린 당 간부회의에 참석해 “이시하라와 정책의 방향성이 같다.”면서 정책 공조 등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시모토와 이시하라는 영토문제와 국방력 강화, 정치 및 교육개혁 등에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또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시모토는 헌법 개정 요건 완화를 통해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헌법 제9조)의 존속 여부를 국민투표로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시하라도 현행 헌법을 폐기하고 핵무기 보유 등 우경화된 헌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유신회는 중·참의원 14명이 소속된 ‘다함께당’과도 26일부터 정책 협의를 시작했다. 일본유신회는 오사카 등 간사이 지방에 기반이 있고, 다함께당은 지난 2010년 참의원 선거 당시 도쿄 등 간토 지방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점에서 일본유신회가 이시하라 신당, 다함께당과 연대를 모색하는 것은 ‘동서연대’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다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이끄는 ‘일본 제일 아이치회’도 ‘주쿄(中京) 일본유신회’를 만들어 하시모토와 선거 공조의 틀을 이뤘다. 이처럼 일본유신회와 일본 제일 아이치회 등 지역 정당은 기존 정당에 대한 염증과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따른 국정 혼란, 중앙정치에서 소외된 지역의 반발 등을 이용해 기성 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며 제3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CEO 칼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CEO 칼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요즘 모두들 어렵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 금융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리스에 이어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중국해의 무인도와 암초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토분쟁은 세계 경제에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경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휴일 영업을 둘러싼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간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 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나, 개인의 입장에서나 온통 풀기 어려운 문제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한마디로 위기(危機)의 시대이다. 위기는 ‘위험’을 의미하는 위(危)자와 ‘기회’를 뜻하는 기(機)자가 합쳐진 말이다. 위기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이중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위험을 이겨낸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회를 잡는 데 필요한 것이 지혜(知慧)이다. ‘삼국지연의’에 촉나라를 무너뜨린 등애(鄧艾)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위나라의 정권을 장악한 사마소는 종회를 대장으로 하여 등애와 함께 촉나라를 공략하게 한다. 이에 종회와 등애의 군대는 촉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촉나라는 강유에게 병사를 이끌고 전략의 거점인 검각을 방어하게 한다.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촉군의 결사적인 저항에 막혀 촉군과 위군은 검각에서 대치하게 되었으며 결국 군량이 부족해진 위나라 군대는 회군을 결정하였다. 이때 등애가 검각을 우회해 촉을 계속 공략할 것을 제안했다. 촉나라의 산세는 이백이 ‘촉도난’(蜀道難)에서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힘들다고 할 정도로 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위험을 극복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믿은 등애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인적이 끊긴 산과 골짜기에 길을 새로 만들면서 계속 진격했다. 행군 중 등애의 부대는 수십m가 넘는 낭떠러지를 만나, 되돌아갈 수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지경에 처했다. 이 진퇴양난의 위기에서 등애는 담요로 몸을 감싼 채 밧줄을 타고 낭떠러지를 내려가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한 등애는 촉의 수도인 성도를 공격할 수 있게 됐으며 마침내 촉나라의 항복을 받아낸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환위리’(以患爲利)의 계책처럼,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든 것이다. 불과 15년 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었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았다. 지금 우리는 세계 경제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모든 국가들의 신용도가 하락하고 있는 때,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은 이례적으로 한국의 국가신용도를 상향조정했다. 어려움을 기회로 바꾼 결과이다.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위기는 있다. 정치에도 늘 위기는 있었고,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도 어려움은 항상 존재해 왔다. 이 위기를 이겨낸 사람이 성공하고, 위기를 이겨낸 기업이 경쟁에서 승리한다. 어려움을 이겨낸 나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주역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 속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스신화에 카이로스라는 ‘기회의 신’이 있다. 그는 풍성한 앞머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뒷머리, 어깨와 발뒤꿈치에는 날개를 가진 특이한 모습의 신으로 표현된다. 그가 가진 풍성한 앞머리는 ‘기회는 누구라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의 머리카락이 없는 뒷머리는 ‘기회는 한 번 놓치면 두 번 다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가진 날개는 기회란 빨리 지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위기가 있는 만큼 기회도 주어진다. 다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혜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커버스토리] “백수1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죽어라 일한 젊은 날 억울”

    [커버스토리] “백수1년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죽어라 일한 젊은 날 억울”

    “도대체 난 그동안 뭘 한 걸까. 삶에 아무런 낙이 없다.” 박명식(54·가명)씨는 요즘 멍하게 앉아있는 일이 잦다. 무얼 해도, 누구와 있어도 도통 재미가 없다. 때로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때로는 콱 죽어버릴까 싶다. 가족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해본 게 언제인지, 부부관계를 한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생수와 떡을 넣은 단출한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를 때면 초라한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다. 살아온 세월에 대한 허무와 배신감, 살아갈 세월에 대한 공포와 암담함. 절망이란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전 건설회사에서 퇴직한 뒤 야심 차게 치킨 전문점을 창업했지만 쫄딱 망해 퇴직금마저 날린 뒤 이런 증상이 시작됐다. ●봄:청도 촌놈, 개천 출신 용을 꿈꾸다 박씨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6·25 전쟁 후 태어난 19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사람 수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 1958년생이다. 그는 질곡의 현대사만큼이나 격동의 50년을 살았다.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2남 4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의 소원은 오직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경북 청도 ‘촌놈’은 대구로 유학을 떠나 명문 국립대 기계공학부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지만 박씨에게 데모(시위)는 사치였다. 과외수업과 막노동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근면 성실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여름:유능한 사회인, 든든한 가장 일자리는 널려 있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큰 어려움 없이 서울에 있는 큰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삼시 세끼를 직장에서 해결하며 밤낮 없이 일했다. 27세 되던 1985년 봄엔 중매로 만난 참한 아가씨와 결혼했다. 서울 단칸방에 살면서도 야근 후 나눠 먹는 붕어빵 하나에 부부는 깔깔댔다. 사글세를 내고 남은 월급은 대부분 시골 가족들의 생활비로 보내졌지만 일할 곳이 있고 쌀밥이 있기에 마냥 행복했다. 이듬 해 딸이 태어났고, 자식에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휴가는 남의 일이었다. 직장에 한 몸 바치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아들도 얻었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이사를 반복했다. ‘내집’만 있다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1994년 경기도 성남 분당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31평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가을:52세 직장 퇴출, 좌절의 문턱 인생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젊고 똑똑한 부하 직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직장에서 그의 입지는 차츰 쪼그라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바뀌는 흐름과 유행을 좇아가기 버거웠다. 영어는 또 왜들 그렇게 잘하는지, 그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추진력도 예전 같지 않았고 자신감도 확연히 떨어졌다. ‘꼰대’로 취급받는 걸 느끼며 박씨는 막연히 은퇴를 예감했다. 그래서일까. 2010년 쉰둘의 나이로 회사에서 잘렸을 때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실제로 큰 충격을 못 느꼈으니까. 딱 100일을 동분서주한 끝에 퇴직금 1억원으로 경기 용인 수지에 통닭집을 냈다. 그러나 창업은 쉬운 게 아니었다. 대접만 받아 왔던 그는 서비스업에서는 젬병이었다. 대우받고 살다가 갑자기 몸을 낮추려니 배알이 꼴렸다. 손님들을 살갑게 대하는 것도 어려웠고,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을 다루기도 버거웠다. 계산과 서빙에 잔 실수도 많았다. 새벽까지 술 손님을 상대하느라 건강도 축났다. 신메뉴와 세련된 인테리어로 단장한 경쟁업체도 잇달아 들어섰다. 아내와도 자주 싸웠다. 결국 반 년도 안 돼 빈손으로 가게를 접었다. 정말 끝이었다. 50평생을 제대로 놀아 본 기억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남은 건 달랑 50평짜리 아파트 하나였다. 박씨는 “팽팽하던 고무줄이 끊어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겨울:절망… 처자식보다 산이 더 좋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간은 ‘백수’로 살았다. 직장이 없어지니까 특별히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었다. 격의 없이 술잔을 주고받던 사회 친구들과는 대부분 연락이 끊겼다. 아니, 박씨 스스로 끊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는 “괜한 자격지심 때문에 내가 먼저 피한 적이 많다.”고 했다. 동창 모임에도 몇 번 나가봤지만 아직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샘이 나서 움츠러들었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은 궁상맞아서 싫었다. 아내와도 영 어색해졌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삼시 세끼 끼니를 챙겨 줘야 하는 남편을 뜻하는 ‘삼식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땐 굴욕적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학생이 된 자식들과도 서먹해졌다. 할 말이 없고 어쩌다 대화를 해 보려 해도 관심사나 가치관이 달라 몇 마디 이어지질 않았다. 아내와는 여자친구 얘기며 학교 얘기며 일상을 속속들이 나누는데 아빠만 시쳇말로 ‘왕따’를 시키다니. ‘여태껏 누구 때문에 풍족하게 먹고 자고 입고 다녔는데’라고 생각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인간관계에 대한 서운함은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무치게 밀려든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 안 되는데. 젊은 시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데’ 사춘기가 다시 오는 건가 싶었다. 사는 게 아무런 재미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제대로 놀 줄도 몰랐다. 넘치는 시간이 고역이었다. 가장 우울한 건 통장 잔고가 팍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버는 건 없는데 씀씀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대학생 두 명을 키우다 보니 등록금만 매년 2000만원 가까이 들어갔다. 둘째가 군대에 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다가 장남인 박씨는 고향 청도에 혼자 사시는 홀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마음의 짐까지 보태졌다. 이젠 ‘100세 시대’라는데 나의 노후만 대비해도 모자랄 판국에 뒷바라지해야 하는 자식과 부모 사이에 끼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박씨는 오늘도 멍하니 앉아 울음을 삼킨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9)합천 화양리 소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9)합천 화양리 소나무

    시인 황동규는 ‘휴대폰이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탁족’에서)고 했다. 고작 10년 전에 쓰인 작품에서 이야기한 살가운 곳은 이제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경남 합천 묘산면 화양리 나곡 마을은 아마도 오랫동안 시인의 표현처럼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살가운 산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한적한 산마을에도 3년 전부터 휴대전화가 연결됐다. 마을 오르는 산길이 매우 비좁고 험한 까닭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한 나곡 마을은 칠순 넘은 노인들 일곱 가구가 모여 살아가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산마을이다. 마을 노인들은 농사일에서부터 읍내 나들이까지 마음을 맞춰 가며 너나들이로 허물없는 공동체로 지낸다. ●한국전 참전 동네 젊은이들 지켜줘 이 정도만으로도 화양리 나곡 마을 풍경은 충분히 평화롭고 한가로우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절로 평화가 지켜지는 깊은 산골이다. 이쯤 되면 마을 풍경 한쪽에서 훌륭한 나무 한 그루쯤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하게 마련이다. 그렇다. 이 깊은 산마을에 사람들처럼 평화롭게 서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다. “우리 마을을 지켜 주는 나무예요. 한국전쟁 때 전쟁터에 나가게 된 사람들은 나무 앞에 술 한 잔 바치고 절을 올리면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했지요. 그 험한 전쟁에서 다친 사람 하나 없이 성하게 돌아온 것도 모두 나무 덕이지요.” 마을 앞 비탈에 일군 조그만 밭에서 곡식을 갈무리하던 백운기 노인의 이야기다. 올해 75세인 백 노인은 이 마을 최연소자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신이 군대에 갈 때에도 나무 앞에서 무사 귀환을 빌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10년쯤 전에 산 아래에서 큰불이 난 적이 있었어요. 바람도 험하게 불던 날이어서 우리 마을이 꼼짝없이 불길에 포위당해 죽을 뻔했지요. 소방차가 여러 대 출동했는데, 저만치에서 바람이 거꾸로 돌면서 우리 마을은 안전하게 남았지요. 그게 다 마을을 지켜 주는 나무 덕이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이 마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나무 주위로 눈에 띄게 달라진 풍경이 그 하나의 예다. 서너 해 전만 해도 나무 곁으로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다랑논이 줄지어 펼쳐 있었다. 특히 가을걷이를 앞둔 풍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다랑논은 모두 묵정밭이 되어 허리 높이 위로 어지러이 흐트러진 이름 모를 풀들만이 무성하다. 이태 전 논 임자이던 칠순의 배용수 노인이 농기계 사고로 수명을 달리한 뒤로 버려진 탓이다. ●샘물 흐르던 나무 곁에 마을터 잡아 “산이 깊어 농사짓기도 어려워. 곡식이 익을 무렵이면 멧돼지들이 내려와서 온 밭을 휘저어 놓아서 남아나는 곡식이 없어. 그 사람 죽고 나니 저 밭에서 농사짓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는 거야.” 백 노인과의 이야기가 깊어질 즈음 밭일을 도우러 나온 거창댁(84)의 이야기다. 이 산골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400년쯤 전 조선 광해군 집권 초기의 일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올랐지만, 선조가 비밀리에 세자로 지목하려 했던 영창대군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위하고,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을 사형에 처했으며, 급기야 영창대군까지 죽음에 몰아넣었다. 이후 김제남 일족을 멸하려 하자 김제남의 육촌 형제 중 한 사람인 김규라는 사람이 조정의 피바람을 피하고자 은신처를 찾아다니다 이 깊은 산골에 들게 됐다. 김규는 이 골짜기에 이르러 큰 소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다가 낮잠에 들었는데, 꿈에서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김규는 나무 아래에서 샘을 찾아낸 뒤, 이곳에 터 잡고 마을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때 그 나무가 바로 지금의 화양리 소나무다.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알려준 샘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처음엔 ‘나천(川) 마을’이라고 부르다가 샘이 없어지면서 지금은 ‘나곡 마을’로 부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조정의 피바람을 피해 김규가 이곳에 찾아든 400년 전에 이미 큰 나무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면 나무는 최소한 500살은 넘는다. 땅에서 듬직하게 솟구친 중심 줄기에서 여러 개의 굵은 가지로 나뉘며 하늘로 오른 모습은 그야말로 이 강산의 모든 소나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다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다. 천연기념물 제289호로 지정한 이유다. 키 18m의 화양리 소나무는 6m쯤 되는 줄기가 3m쯤 높이에서 3개의 굵은 가지로 나눠서 진 뒤에 제가끔 다시 여러 개의 가지를 뻗으며 멋지게 자랐다. 사방으로 20m 이상 고르게 펼쳐진 가지는 단아한 우산 모양이다. 나뭇가지의 꿈틀거림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용을 닮았으며, 줄기 껍질은 거북의 등껍질을 닮았다 해서 ‘구룡목’(龜龍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거북과 용 닮아 ‘구룡목’ 별명도 “지금 나무 옆으로 흐르는 개울은 나무에 물기가 모자란다고 해서 얼마 전에 물길을 돌려 낸 거지. 나무 아래에 샘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무는 이 산골에 사람이 들어오기 전부터 저 자리에 있던 큰 나무였다고 해.” 나무 바로 옆의 낮은 울타리 집에서 나무에서 배어 나오는 평화를 누리며 70년 넘게 살아온 거창댁은 사람의 시간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늘어놓는다. 세월이 더 흘러 노인들마저 떠나면 다시 들어와 살 사람이 있을지 알 수 없는 깊은 산마을이지만, 나무만큼은 그동안처럼 풍경의 중심으로 의연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노인들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지켜온 화양리 소나무의 참 평화가 마을 노인들과 함께 오래가기를 바랄 뿐이다. 글 사진 합천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경남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835. 88올림픽고속국도의 해인사 나들목으로 나가서 좌회전해 가야천을 따라 야로면으로 간다. 야로면 소재지에서 5㎞ 남짓 직진하면 계동 마을이 나온다. 여기에서 500m쯤 더 간 뒤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 산마을로 들어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우회전해 800m쯤 들어가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2.2㎞쯤 산비탈을 오르면 나곡 마을에 이른다. 마을 가까이의 1.2㎞ 구간은 도로 폭이 좁고 굴곡이 심해 조심해야 한다. 나무는 마을 앞 다랑논 가장자리에 있다.
  • [씨줄날줄] 북한 ‘생눈길 정신’/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의 달력은 오늘이 ‘주체 101년 10월 22일’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元年)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초 신년 사설을 통해 “올해 주체 101(2012)년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강성부흥 구상이 빛나는 결실을 맺는 해이며 김일성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가 시작되는 장엄한 대진군의 해”라면서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진군은 백두에서 시작된 혁명적 진군의 계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백두의 혁명정신’은 김일성이 북한 통치를 위해 처음으로 내세운 국시(國是)이자 북한 세습정권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시대정신이다. 북한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두의 혁명정신’은 ‘백두산 위인들의 위대한 혁명사상이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개척하신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을 끝까지 이어 갈 담대한 배짱이며 공격 방식’이다. 김일성 집권기의 ‘천리마 정신’과 김정일 때 ‘속도전의 혁명정신’이나 ‘고난의 행군정신’ 등은 모두 ‘백두의 혁명정신’이 바탕이다. 최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생눈길을 헤치는 정신으로 창조하며 승리해 나가자’는 제목으로 사설을 게재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생눈길’이란 말은 ‘아무도 밟지 않아 눈이 녹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길’이란 뜻이다. 북한의 신문·방송은 이 말을 ‘극복해야 할 난관’ 또는 ‘전인미답의 길’이란 의미로 가끔 사용해 왔다. 노동신문은 ‘생눈길 정신’에 대해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새로운 역사적 시기의 시대정신이며 혁명의 최후 승리를 향해 과감히 돌진해 나가는 낙관적이며 창조적인 공격정신’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이게 김정은 체제의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노동당과 군대, 주민에게 ‘일심단결하여 수령결사옹위를 위해 충성하고 자아희생의 고결한 인생관’을 가져 달라는 주문도 했다. 북한은 신년 사설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 따라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강성부흥을 위한 장엄한 진군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제2의 고난의 행군이나 다를 바 없는 ‘생눈길 정신’으로 새 시대를 열었으니 북한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불행하게도 북한 지도자들은 어려운 식량 사정과 분수에 맞지 않는 핵개발이 자신들을 생눈길로 몰아넣고 있음을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배가 고파 국경을 넘는 주민이 하루에도 숱할 터인데, 그들에게 아무리 충즉진명(忠則盡命)을 요구한들 귀담아듣기나 할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국감 현장] 계룡대 해군본부

    [국감 현장] 계룡대 해군본부

    국회 국방위원회의 18일 계룡시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는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한 여야의 설전이 계속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부었다. 김성찬 의원은 “2007년 8월 10일 당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NLL은 영토 개념이 아니라는 발언을 했으며 그해 10월 8일에도 비슷한 언급을 했다.”면서 “NLL은 우리 영토선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은 김 의원의 질문에 “NLL은 죽음으로 사수한 우리 영토”라며 “어떤 경우에도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백군기 민주통합당 의원은 “우리 당과 문재인 후보는 NLL을 지켜야 한다는 데 추호도 이론이 없다.”고 반박했다. 백 의원은 “서북도서의 군사적 긴장과 관련해 안전 장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구역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과거 해군 군의관 복무 시절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은 “군의관 시절 1년 동안 서울을 매주 다닐 수 있느냐.”며 “(군의관 복무 당시) 논문을 3편이나 썼는데 해군 군의관은 할 일이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최 총장은 “비상소집에 응할 수 없는 지역까지 가면 사전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정희수 의원도 “안 후보는 군대 생활이 공백기이고 의학과 컴퓨터 연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는데 해군이 군의관 연구시키는 곳이냐.”고 따졌다. 이에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안 후보가 전문분야인 컴퓨터 지식을 국방에 활용할 수 있는 연관성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표현한 것일 뿐 인생을 허비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해군은 이날 국감에서 주변국 해군력 강화에 대비해 3000t급 차기 잠수함을 2020년 이후 9척을 추가 확보하는 등의 전력 확충 계획을 보고했다. 현재 우리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전력은 1800t급이 최고다. 해군은 또한 2018년까지 1800t급 잠수함을 현재 3척에서 9척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계룡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공공의 벗, 공익근무요원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공공의 벗, 공익근무요원

    대통령 선거가 불과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언론은 연일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중계하고 있다. 대통령을 선택하는 잣대인 이른바 ‘검증 보도’가 쏟아져 나온다. 역대 선거 때마다 판세를 좌우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바로 ‘병역’이다. 과거 대선 정국에서 유력한 한 후보는 아들의 병역 의혹으로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그만큼 병역은 국민적 관심이 높고 민감한 사안이다. 당시 현역은 ‘어둠의 자식’, 방위는 ‘장군의 아들’, 면제는 ‘신의 아들’이란 유행어가 생겼다. 병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를 반영한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은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법이 정한 병역의 의무를 마쳐야 한다. 한때 보충역의 대표 격이던 ‘방위병’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신의 아들보다 ‘한 끗발’ 떨어지지만 복무 기간이 짧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제도로 바뀌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복무 기간과 업무 강도가 현역병에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병무청의 곽유석 사무관은 공익근무요원제도를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고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 복지시설 등 에서 병역을 이행하도록 하는 대체복무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다. 병역 기피자라는 오해를 받거나 근무 태만이 만연한 집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연예인과 특권층의 공익근무 병역 비리 의혹은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고 있는 공익요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서울메트로 3호선 오금역 종점에서 취객을 깨우던 정성룡(21)씨는 “현역 복무를 마친 남자들이 반말과 욕설을 예사로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업무 강도가 상대적으로 현역에 비해 낮을 것이란 생각에 처음부터 무시하는 것 같다.”며 “사회에 나가면 공익으로 복무한 사실을 숨기고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 편견보다 스스로 느끼는 열등의식에 따른 고민이 더 컸다. 그러나 이들을 관리하는 지방병무청의 복무 지도 인력은 전체 77명뿐이다. 1인당 100여개 이상의 복무기관과 700여명의 공익근무요원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복무지도관의 증원이 필요한 이유다. 복지 현장 일선에서 공익들이 하는 일은 상상 외로 어렵다.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되거나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돼 주는 일이다. 서울 송파구 청암노인요양원. 입소 노인의 목욕을 시켜주던 2년차 공익 이성민(22)씨는 “현역병에 뒤지지 않는 값지고 힘든 경험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밝게 웃는다. 현역에 비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회적 약자’이지만 스스로 나눔을 실천하며 보람을 찾고 있는 공익들도 있었다. ‘재능 기부’를 하는 공익들이다. 청주시 청북지역아동센터에서 복무하고 있는 박도현(22)씨는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그는 박봉을 쪼개 매달 아동센터 후원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박씨는 “더 많은 분야에서 공익요원들이 봉사활동을 한다면 사회의 시선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병무청은 지난 6월 공익근무요원의 명칭을 ‘사회복무요원’으로 바꾸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목적이다.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이름 같아서 반갑다. 실제로 사회복무제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현실을 반영한 병역 제도 개선 방안이다. 공익근무요원은 공정하고 투명한 입대 과정을 통해 선발된 ‘공공의 벗’들이다.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우리의 자식들이며 이웃이고 국가적으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이들이 공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글 사진 jongwon@seoul.co.kr
  • 아베 “집권땐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

    차기 일본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가 거침없는 우익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총재는 15일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집권할 경우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헌법 해석을 바꾸겠다.”면서 “이는 일·미 동맹 강화로 연결돼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재의 발언은 동맹국이 공격받을 때 자국이 침략당한 것으로 간주해 공격하는 집단적 자위권이 ‘타국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금지한 헌법 제9조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정부의 헌법해석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아베 총재는 차기 총선에서 헌법 96조 개정 문제를 쟁점화해 이를 통해 헌법 개정을 쉽게 한 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헌법 9조)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며 중·참의원 의원 3분의2 이상으로 돼 있는 96조의 개정 발의 요건을 중·참의원 2분의1 이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1㎜도 양보하지도, 교섭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아베 총재는 센카쿠열도 등을 지키기 위해 해상보안청과 해상자위대의 공조를 강화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베 총재는 16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 “나의 정치 신조로부터 유추하기 바란다.”며 17∼20일 야스쿠니신사 추계대제 때의 참배를 시사했다. 아베 총재가 실제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 한국과 중국 등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담화에 대해서는 “미래 지향의 담화를 새로이 내놓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수정 검토 입장을 또다시 밝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군대 성노예 강제동원 법적 책임 아직 남아있다”

    우리 정부가 15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듭 제기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날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67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여성 지위 향상’ 의제 토의에서 정부 대표인 신동익 유엔 차석대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대 성노예’로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 우리 측은 “2차대전 당시 ‘군대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로 강요당한 희생자들을 일컫는 이른바 ‘위안부’(comfort women)”란 문구를 사용했다. 우리 측은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한 국제법 제도의 진전과 유엔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촉구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유엔과 전 회원국들이 전시 성폭력 희생자들을 위한 효과적인 구제조치와 예방, 가해자 처벌 등에 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지적하는 한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정확한 교육을 통한 재발 방지가 중요하다며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육을 겨냥했다. 정부는 일본 측이 위안부 권리구제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일본 정부 대표는 위안부 여성에 대한 사죄를 표하면서도 권리구제 문제는 법적으로 해결됐고 아시아 여성기금을 통해 보건 서비스 및 사죄금을 지급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우리 측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될 수 있는 사안으로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12〉안철수 쟁점행적(하)

    [2012 대선후보 심층분석]〈12〉안철수 쟁점행적(하)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출마선언 이후 끊임없이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등에서 밝힌 자신의 말과 실제 행동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정치권 비판의 핵심이다. 안 후보가 깨끗한 이미지를 앞세우면서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표리부동한 행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지나치게 깨끗한 이미지를 부각한 게 도덕성 논란의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안 후보와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아파트 매입 시 이른바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안 후보는 2000년 10월 당시 실거래 가격이 2억 4000만원가량인 본인 명의의 서울 동작구 사당동 대림아파트를 팔면서 담당 구청에는 7000만원에 매각했다고 신고했다. 실거래가의 3분의1 수준으로 국세청 기준시가(1억 5000만원)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김 교수도 2001년 10월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를 2억 5000만원에 매입했다고 송파구에 신고했다. 하지만 당시 이 아파트 시세는 4억 5000만~5억 2000만원 선으로 김 교수가 2억원 이상 거래 가격을 낮춰 신고해 취·등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깨끗한 이미지 ‘부메랑’ 맞는 安 실거래 가격으로 신고하는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의무 제도는 2006년 도입돼 안 후보나 김 교수의 다운계약서는 엄밀히 말하면 실정법 위반은 아니다. 안 후보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탈루되는 세금이 없도록 세무 행정을 강화하고, 탈세가 드러날 경우 일벌백계로 엄중하게 처벌해서 세금을 떼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운계약서 논란이 일자 안 후보 측은 “당시에는 위법은 아니었다.”면서도 “안 후보가 탈루된 세액에 대해 납부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해 알아봤지만 당시의 다운계약서는 탈법은 아니기 때문에 세금을 다시 납부할 방법은 없다.”고 설명했다. 안 후보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일이고 국민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직접 사과했다. 부동산 문제는 전세살이 및 상속·증여 논란으로 이어진다. 그는 스스로 “오랫동안 전세살이를 해 봐서 집 없는 설움을 잘 안다. 부모님께 손 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본인의 다운계약서 논란을 불러온 사당동 아파트는 모친이 ‘딱지’를 구입해 마련해 줬다는 지적도 있었다. 안 후보는 사당동 아파트에서 4년을 살았고 이후 사당동 아파트를 전세 놓고 모친 소유의 재개발 아파트인 도곡동 아파트로 이사했다. 안 후보의 모친이 1988년 매입한 아파트였다. 안 후보와 모친은 일주일 간격으로 사당동 아파트 딱지와 도곡동 아파트 지분을 사들였고 12년 뒤에는 석 달 간격으로 두 아파트를 팔았다. 2001년에는 부인 명의의 문정동 아파트를 샀고 지난해 12월 팔았다. 현재 용산 주상복합건물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안 후보는 그동안 대전의 빌라와 여의도 주거형 오피스텔을 오가며 생활했다. 종합해 보면 안 후보가 결혼 이후 집 없이 전세살이한 기간은 2년 남짓인 셈이다. 하지만 안 후보 측은 “안 후보 가족이 자기 집이나 부모 소유의 집이 아닌 다른 사람 집에서 전세로 거주한 기간은 8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부 부동산 편법증여 의혹도 또 안 후보는 저서 ‘행복바이러스 안철수’에서 “내가 살면서 할아버지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그의 조부는 1979년 부산 수영구 남천동 99㎡ 규모의 2층 주택과 224㎡ 규모의 토지를 안 후보를 포함한 가족에게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 매각 당시 해당 토지의 공시지가는 2억 3000여만원. 안 후보의 지분 20%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9200만원 정도다. 당시 안 후보는 고교 3학년이어서 매매로 위장한 편법 증여 의혹까지 제기됐다. 두 사안에 대한 안 후보 측의 해명은 비슷하다. 딱지구입 논란에 대해서는 “부모가 직접 구해 줘 안 후보는 잘 알지 못하고 있고, 지금은 부모들이 연로해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서류도 사실관계만 나와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상속 논란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조부가 하신 일로 현재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안 후보는 아무런 금전적 이득을 본 사실이 없다. 부동산실명제 시행 이전의 일이어서 명의신탁이었는지 증여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군 생활도 책에서 밝힌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안 후보가 군생활 중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외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심 위원은 안 후보가 1995년 출판된 저서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에서 ‘군대생활 39개월은 나에게 커다란 공백기였고 의학연구나 컴퓨터 일을 할 수 없어 엄청난 고문’이라고 밝힌 점을 거론하며 “군 복무 기간을 입대 전 사회생활 때 했던 것을 할 수 없게 됐다고 ‘공백기’, ‘고문’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안보에 대한 오도된 가치관이자 군과 군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안 후보의 의인화(義人化) 또는 위인화(偉人化) 태도도 비판하고 있다. 심 최고위원은 “생존한 인물 중 최초로 모두 11종의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안 후보의 미담 중 상당 부분은 안 후보가 스스로를 의인화·위인화한 데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사례로 안철수연구소 창업 배경과 관련해 “2001년 발간된 저서와 인터뷰에서는 ‘학교 측의 채용보류 결정에 10개월간 실업자로 지내면서 아내가 벌어 온 돈으로 사는 게 견디기 어려워 창업했다’고 했는데 2003년부터는 자신이 의대 교수직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험난한 길에 뛰어들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지적했다. 미담이 각색되며 과대포장됐다는 게 새누리당 측의 비판이다. ●安측 “논문의혹 문제없다” 반박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안 후보 논문은 모두 5편으로, 이 가운데 4편은 재탕 또는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안 후보 측은 논문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학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1993년 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제1저자가 5년 전 쓴 학위 논문을 재탕한 것이 아니냐는 게 논쟁의 핵심이다. 안 후보는 군복무 중일 때 이 논문에 제2저자로 참여했다. 1991년 의학박사 논문도 표절이라는 주장이 일었다. 안 후보가 2년 앞서 박사 학위를 받은 서인석 서울대 의대 교수의 논문 일부를 표절했다는 주장이다. 또 안 후보가 연구조원으로 참여해 제출된 1992년 연구보고서가 같은 해에 나온 다른 석사의 논문과 유사하다는 점,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1년에 500만원씩 1000만원의 연구비를 받았으며 1993년 안 후보가 제3저자로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도 1992년 다른 학회에 실린 논문과 비슷하다는 점이 생물학 연구 정보센터(브릭)의 자유게시판 등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학위 논문은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의무사항(1993년 논문)이고, 일부에서 인용 없이 사용했다고 문제 삼는 볼츠만 공식은 물리학적 원칙으로 인용문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1991년 논문)라고 반박하고 있다. 1992년 연구보고서에 대해서는 논문에 이름이 등재된 사실을 몰랐고 연구비를 받은 적도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군인수 3년새 1만 5000명↓

    3년 새 군인이 1만 5000명 가까이 줄었다. 정부는 사병 3명이 줄 때마다 직업군인을 1명씩 더 늘리는 방식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다. 14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군인 수는 63만 2802명이다. 올해보다 3500명, 2010년 대비 1만 4820명이나 줄었다. 입대 연령인 20대 남자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병사는 부사관을 더 뽑아 보완하고 있는 상태다. 내년 장성급 장교(장군)는 올해보다 3명 줄어든 441명이다. 육군사관학교 행정부장과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부사령관, 국방대학 합동참모대학장 등 별 3개가 사라졌다. 육사 행정부장은 준장에서 대령으로 계급을 낮추고, 항작사 부사령관은 전시에만 준장으로 편제하고 평시에는 대령으로 임명한다. 또 국방대학의 합동참모대학장은 직위를 아예 없애기로 했다. 국방부는 2030년까지 60명 정도를 더 줄일 계획이다. 내년 영관급 장교는 모두 2만 777명으로 3년 새 347명이 늘어난다. 하지만 대부분 20대인 위관급 장교는 4만 4105명으로 331명 줄었다. 또 내년 부사관(하사~원사) 수는 3년 사이 8400명이나 늘어난 11만 162명이다. 이에 따라 준위와 무관후보생을 포함한 내년 전체 직업군인 수는 19만 1304명으로 3년 전보다 8371명 늘었다. 내년 병사(이등병~병장)는 44만 1498명이다. 3년 전보다 2만 3191명이나 줄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선택! 역사를 갈랐다] (30) 이재순 vs 이범진

    현재 한국학계에서는 대한제국에서 추진한 광무개혁에 대한 평가가 학자에 따라 엇갈린다. 개혁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쪽에서는 대한제국이 부정부패로 얼룩져 근대화 사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반대로 광무개혁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서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근대화하려 한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대한제국의 다양한 평가에 앞서 한국학계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대상이 있다. 바로 대한제국의 개혁을 추진한 정치세력이다. 개혁을 주도한 정치세력에 대한 천착이 없다면 대한제국의 다양한 해석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아관파천 이후 이재순(李載純,1851~1904)과 이범진(李範晋, 1852~1911)으로 구성된 궁내부는 고종 권력의 핵심세력이었다. ●이범진, 제정러시아 대한제국 개입 유도 1896년 2월 9일 러시아 순양함 아드미랄 코르닐로프의 내부는 긴박했다. 당시 아드미랄 코르닐로프는 제물포에 포함 보브르와 함께 정박했다. 함장 몰라스는 해군대위 흐멜레프에게 러시아 수병을 이끌고 신속히 서울로 출발할 것을 지시했다. 2월 10일 새벽 중위 미하일로프는 서대문에 도착해서 대위 흐멜레프를 비롯한 해병부대를 맞이하여 러시아공사관으로 안내했다. 장교를 포함한 러시아 해병의 전체 인원은 135명이었다. 포함 보브르에서 대포 1문도 러시아공사관으로 이송되었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가마를 타고 경복궁 영추문(迎秋門)→금천교(禁川橋)→내수사전로(內需司前路)→새문고개→러시아공사관으로 신속히 피신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왕이 안방을 내주고 셋방살이를 자처했다는 아관파천이었다. 2월 11일 저녁 러시아공사관과 영사관 사이의 광장에는 청색의 천막이 설치되었다. 1개 중대의 러시아 병력이 러시아공사관의 안팎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고종은 러시아공사관 내부 2개의 방을 침실과 접견실로 사용했다. 공사관 정문 앞에 있는 정원에는 대포가 설치되었고, 공사관 내부의 개조된 3개의 방에 33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영사관 내부의 개조된 2개의 방에는 62명의 해병이 거주했다. 그동안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에도 불구하고 제정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현상유지’ 외교 정책을 고수하였다. 오랫동안 지속되던 러시아의 ‘현상유지’ 외교 정책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북극곰 제정러시아를 움직인 인물은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2월 2일 러시아공사관으로 “생명의 위협을 피하여 왕세자와 같이 대궐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서 피신하려고 한다.”는 고종의 비밀 편지를 전달했다.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 스페예르는 이범진에게 고종 피신의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만 이범진은 “만약 스페예르가 고종의 피신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고종이 대궐에서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며 “고종이 아관파천을 결심했다.”고 답변했다. 아관파천 직전 고종은 자신의 신변안전 때문에 파천의 실행을 주저했다. 그러자 이범진은 러시아 공사의 지원을 확인하는 한편 ‘궁중(宮中)의 여화(餘禍)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고종폐위설’까지 유포하여 고종의 결단을 유도했다. 1898년 9월 11일 경운궁이 발칵 뒤집혔다. 이날 저녁 식사 전에 고종과 순종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커피의 절반을 마신 순종은 토하면서 혼절하였고, 고종은 구토했다. 남겨진 커피를 마신 내관들도 혼절하였다. ●이재순, 고종 커피에 아편 넣어 정적 제거 사건의 파장이 심각했기 때문에 신속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날 고종의 수라상에 관련된 인물은 14명이었다. 심문과정에서 김종화(種和)라는 인물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종화의 심문과정에서 전선사(典膳司) 주사(主事)를 지낸 공창덕(孔昌德)의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공창덕에 따르면 그는 김종화에게 1000원의 사례금을 보장하면서 김종화가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아편 1량’을 몰래 집어넣었다. 무엇보다도 공창덕의 심문과정에서 배후인물이 김홍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창덕에 따르면 김홍륙은 공창덕에게 협판을 보장하면서 고종의 독살을 지시하였고, 김홍륙은 자신의 처인 김소사를 통해서 공창덕에게 ‘아편 1량’을 제공하였다. 사건에 참가한 인물 중 김종화는 이재순의 추천에 의해 각감청(閣監廳)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현당(寶賢堂)의 창고지기인 김종화는 홍릉 제사 때에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해서 면직되었다. 그런데 면직된 김종화는 사건 당일 대궐에 몰래 잠입하여 고종의 독살을 실행했다. 공창덕은 고종의 아관파천 시절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고용한 요리사였다. 아관파천 이후 공창덕은 김홍륙의 추천에 의해서 전선사 주사로 임명되어 왕의 주방에서 외국요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의 의문을 살펴보면 첫째, 커피를 마신 사람 중 죽은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독살의 의도가 있었다면 커피를 마신 사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아야 한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암살의 계획보다는 정치적 음모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 김종화라는 인물이 이 사건에 개입한 동기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고종을 암살하려는 인물이 쉽게 체포된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면직된 인물이 대궐에 잠입할 수 있는가? 1898년 4월 부임한 러시아공사 마튜닌은 독차사건이 러시아통역관 출신 김홍륙을 파멸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의 후원 아래 김홍륙은 궁궐에 자유자재로 출입하면서 정치와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개입하였다. 마튜닌은 러시아정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로 궁내부대신 이재순을 지목하였다. 이재순은 김홍륙이 러시아공사의 후원 아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재순은 자신이 김종화를 추천해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었지만 사건의 처리과정에 개입했다. 이재순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고종의 승인을 얻었고 경무청에 조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이후 1898년 10월 김홍륙·공홍식·김종화는 반역 음모를 기도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군주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소속한 이재순과 이범진 계열을 적극 후원했다. 이범진은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를 구해준 인연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아 민비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관파천 이후 법부대신에 임명된 이범진은 을미사변 관련자를 처벌하면서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순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이범진의 지나친 권력 집중에 반발하였다. 결국 이범진은 1896년 6월 주미공사, 1899년 3월 주러공사에 임명되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까지 도쿄, 워싱턴에만 자국 공사를 주재시켰다. 당시는 의화단 사건 이후 대한제국과 만주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다. 주러공사 이범진은 고종의 여전한 신임 아래 대한제국 외교 정책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종친정시문과에 합격한 청안군(淸安君) 이재순은 종친 내부에 폭넓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었다. 을미사변 이후 시종원경 이재순은 시위대 장교와 병사를 결집하여 고종 구출을 위한 춘생문사건을 주도했다. 그는 김홍륙의 암살시도 및 고종 독차사건의 배후였다. 궁내부대신을 여러 차례 역임한 이재순은 고종의 군주권 강화를 위해서 각종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대한제국 정치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이재순의 인맥은 충청도 출신자, 반면에 이범진의 인맥은 함경도 출신자가 주축이었다. 궁내부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형성한 이범진과 이재순 계열은 군주권의 강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각각 러시아·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이들은 지지기반이 달랐지만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는 상호 연대할 수 있었다. ●고종, 충성심 자극 위해 경쟁 유발… 갈등만 낳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군주 중심의 ‘전제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궁내부에 자신의 정치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고종은 이들을 단일한 세력으로 통합시키지 않으면서 상호간 경쟁을 유발하여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자극했다. 이러한 상호 경쟁은 대한제국의 신속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에 권력 독점을 향한 지나친 대립만 초래했다. 처녀지를 개간하려면 겉으로 미끄러지는 쟁기를 쓸 것이 아니라, 땅속을 깊이 파고드는 플라우(쟁기)를 써야 한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軍입대 최대 공포 입소 첫날 일정은요…”

    “軍입대 최대 공포 입소 첫날 일정은요…”

    ‘잘못 들었습니다?’라는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는 곳, ‘군대리아’(햄버거)와 ‘뽀글이’(뜨거운 물을 부어 봉지째 만드는 라면)와 ‘맛스타’(과일 주스)가 존재하는 곳. 군대다. 먼저 제대한 남성들이 “지금은 편해졌지 나 때는 훨씬 힘들었다.”며 위로인지 자랑인지 알 수 없는 말을 건네 봤자 입대를 앞둔 청년들에게 군대는 여전히 낯설고 두렵기만 한 게 사실이다. 두려움은 군 생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2009년 육군에 입대한 백건호(23)씨도 비슷한 답답함을 겪었다. 백씨는 “주변에 물어봐도 객관적인 조언보다는 자기가 겪은 얘기만 늘어놓아 별 도움이 안 됐다.”고 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백씨는 아예 직접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8월에 전역하기까지 21개월간 여러 정보들을 모아 지난 8월 ‘입대를 앞둔 아들과 엄마가 알아야 할 군대 이야기’를 펴냈다. 책은 훈련소 입소부터 후반기 교육, 자대 생활 등 군 생활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남성들이 입대 전 가장 ‘공포’를 느끼는 훈련소 생활을 일차별로 자세히 적었다. 입소 첫날에는 어떤 일정이 있는지, 군복과 군화는 어떤 사이즈로 하는 게 좋은지 실용적인 정보를 덧붙였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게이부대는 백전백패” 국회의원 차별발언 논란

    “게이부대는 백전백패” 국회의원 차별발언 논란

    칠레의 한 국회의원이 군대가 게이로 채워지면 전쟁에서 백전백패 하고 주권수호가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온라인에는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게이를 차별한 발언”이라며 문제의 국회의원을 질타하는 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최근 열린 칠레 국회의 국방위원회의에서 나왔다. 우파 정당 독립민주연합의 이그나시오 우르티아 의원이 발언권을 얻어 필패론을 제기했다. 그는 게이가 많은 군대는 무용지물이라며 “ “페루나 볼리비아가 쳐들어와 전쟁이라도 난다면 칠레는 필패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국가의 주권을 지켜야 하는 군대에 동성연애자들이 득실댄다면 어느 국가라도 손쉽게 칠레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게이부대’ 필패론을 이어갔다. 우르티아 의원은 “내일이라도 칠레의 군대가 동성연애자들로 가득하게 된다면 그날로 칠레는 끝장이 난다.”며 결코 동성연애자의 입대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극보수 의원의 발언은 보수심리를 자극하긴커녕 전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트위터에는 “게이는 애국심이 없냐?” “게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이는 이유가 뭐냐?? “게이의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증거라도 있는가?”라는 등 그를 비판하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중남미 언론은 “우루티아 의원의 발언으로 칠레가 때아닌 게이부대 필패론에 휘말려 논란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깜짝 인사’ 김용준 前헌재소장&김성주 회장

    ‘깜짝 인사’ 김용준 前헌재소장&김성주 회장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김용준(왼쪽·74) 전 헌법재판소장은 소아마비를 딛고 ‘지체장애인 최초의 대법관’이라는 성공 신화를 일궈낸 주인공이다.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 통학하면서도 서울고 2학년 때 검정고시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법대 3학년 때인 만 19세에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해 1960년 최연소 판사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소신판결을 중시 여겨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선 출마 반대글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일화도 있다. 헌법재판소장 재임 중엔 과외 금지, 군제대자 가산점, 동성동본 혼인 금지, 영화 사전 검열, 미결수 수의 착용 사건 등의 판결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각종 제한을 철폐했다. 그러나 1996년 5·18 특별법 위헌제청 사건에선 위헌 의견을 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5·18특별법 위헌의견 내 논란 1988년 대법관에 임용됐고 2000년 제2대 헌법재판소장 퇴임 후엔 청소년참사람운동본부 명예총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등을 맡았다. 현재는 법무법인 넥서스의 고문 변호사다. 공동선대위원장인 김성주(오른쪽·56) 성주그룹 회장은 재벌 2세임에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국외에서도 인정받는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해 국내에서 ‘일하는 여성’의 롤모델로 통했다. 대성그룹 창업주 고(故)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 미국 유학을 떠나 학비를 벌어 가며 공부했다. 1979년 하버드대학원 수료 뒤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18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을 배웠다. ●“여성도 군대 가야” 파격 발언 2005년 독일 매스티지 브랜드 MCM을 인수한 뒤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로 키워 냈다. 2004년 월스트리트저널이 꼽은 ‘주목받는 50인의 여성 기업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중소기업과 여성 기업인, 비정부기구(NGO),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인으로도 평가받는다. 각 후보 캠프마다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박근혜 후보와 최근 세 차례 만나면서 합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0년 전경련 하계포럼 강연에서 “고급호텔에서 점심 때 노닥거리고 있는 상류사회 여성들을 보면 가슴을 치게 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또 “우리나라 여성도 1년쯤 군대를 가야 한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특별한 기회’ 3차 경찰공무원 공채…1037명 선발 사전 분석

    ‘특별한 기회’ 3차 경찰공무원 공채…1037명 선발 사전 분석

    지난 8일 마감한 원서 모집에서 24.7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3차 경찰공무원(순경) 채용은 최근 거의 없었던 특별한 기회다. 지난 5~6년간 경찰공무원 채용은 1년에 두 차례가 전부였다. 올해 초 경찰청이 채용시험 일정을 발표할 때도 3차는 예정에 없었지만, 강력범죄가 빈발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채용인원도 일반공채 남성 622명, 여성 155명, 전·의경 140명, 경찰행정 120명으로 모두 1037명에 이르러 1, 2차 채용인원을 뛰어넘는 대규모다. 경찰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평균 78.6대1 정도인데, 8월 25일 필기시험이 치러진 2차 채용에서는 1차 선발인원보다 모집 규모가 줄어 89.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오는 20일 예정인 3차 모집 필기시험의 난이도는 평이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문각 남부경찰학원의 공병인 강사는 10일 경찰학개론 과목에 대해 “올해 1, 2차 채용에서 경찰학개론은 전체 20문제 가운데 법조문이 7~8문제, 판례가 1~2문제, 내용이론이 10문제 정도로 출제됐다.”며 “3차 시험에 대비해서 법조문과 기출문제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1, 2차 시험에서 판례는 승진 및 경찰간부시험에서 이미 출제되었던 신뢰보호의 원칙 등이 다시 나왔고, 법조문은 개정법률 및 행정규칙 등이 출제되었다. 내용이론은 기존에 출제된 것을 변형하여 단답형이 아닌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주로 나왔다. 문제의 난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박스 문제가 많아 시간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체감 난도는 높았을 수 있다. 형법 과목에 대해 함승한 강사는 “1, 2차 시험에서 형법은 판례 위주로 나왔고, 3차 역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요이론과 미수, 예비음모와 같은 주요 도표는 반드시 익혀야 할 내용이다. 또 새로운 교재를 보기보다는 1, 2차 채용 시험에서 본 교재를 다시 한번 꼼꼼히 보는 것이 고득점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2차 채용 시험에서는 형법 판례 문제가 지엽적이고,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 나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형사소송법 과목에 대해 이승준 강사는 “매년 마지막 시험의 난이도는 무난하게 출제되는 편”이라며 올해를 비롯한 최근 몇 년간의 경찰승진 기출문제와 함께 지난 3년간 최신 판례를 정리하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판례가 그대로 문제로 출제되는 일도 있으므로 최신 판례까지 꼼꼼하게 정리하고 문제풀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응용력을 키워야 한다. 경찰행정법 과목은 1차 경찰행정 특채에서 중요법령 및 판례가 출제됐고, 특히 최신 판례가 많이 나왔다. 수사 과목에 대해 안태영 강사는 “수사총론에서 13~15문제, 각론에서 5~7문제가 출제된다.”며 “개정된 법령·규칙에 유의하고, 최근 사고가 빈발하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사 과목에 대해 오태진 강사는 “1, 2차 시험과 마찬가지로 3차 채용 시험도 난이도는 평이하게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차 시험에서는 18문제가 눈에 익은 기출문제였다. 변별력을 위해 생소한 개념을 묻는 문제도 있었으나 당락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맞는 것은 몇 개인가?’와 같이 정확한 지식을 알아야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는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했다. 영어 과목은 1차 시험은 평이했으나 2차 시험에서는 단문형식 및 어휘 규정이 많이 출제됐다. 3차에 대비해서는 기본적인 문법과 기출 어휘를 반복학습하고, 1차 시험에서 출제됐던 중단문의 독해 기출문제를 풀이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다. 필기시험을 끝낸 순경 2차 채용은 오는 22~26일 면접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최종합격자는 필기 50%, 체력 25%, 면접 20%, 가산점 5%를 합산하여 결정된다. 순경 면접은 1차 단체면접과 2차 개별면접으로 나뉜다. 지방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개인별로 약 15~30분 진행된다. 단체면접에서 그동안 나온 질문을 종합해 보면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시민의 불법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도 피의자가 도망가는데 피해자가 피를 흘리고 있을 때 대처방법은?’ 등이 있다. 개별면접에서는 지원 동기, 지원하고 싶은 부서, 전공, 군대 등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이 많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조직의 리더나 장이 되어본 경험, 봉사활동 경험, 상사와의 의견충돌, 자기희생 경험 등을 물어 공직적합성과 인성을 검증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1037명 3차 경찰공무원 합격비법 알고 보니…

    1037명 3차 경찰공무원 합격비법 알고 보니…

    지난 8일 마감한 원서 모집에서 24.7대1의 경쟁률을 기록한 3차 경찰공무원(순경) 채용은 최근 거의 없었던 특별한 기회다. 지난 5~6년간 경찰공무원 채용은 1년에 두 차례가 전부였다. 올해 초 경찰청이 채용시험 일정을 발표할 때도 3차는 예정에 없었지만, 강력범죄가 빈발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채용인원도 일반공채 남성 622명, 여성 155명, 전·의경 140명, 경찰행정 120명으로 모두 1037명에 이르러 1, 2차 채용인원을 뛰어넘는 대규모다. 경찰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평균 78.6대1 정도인데, 8월 25일 필기시험이 치러진 2차 채용에서는 1차 선발인원보다 모집 규모가 줄어 89.3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오는 20일 예정인 3차 모집 필기시험의 난이도는 평이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문각 남부경찰학원의 공병인 강사는 10일 경찰학개론 과목에 대해 “올해 1, 2차 채용에서 경찰학개론은 전체 20문제 가운데 법조문이 7~8문제, 판례가 1~2문제, 내용이론이 10문제 정도로 출제됐다.”며 “3차 시험에 대비해서 법조문과 기출문제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1, 2차 시험에서 판례는 승진 및 경찰간부시험에서 이미 출제되었던 신뢰보호의 원칙 등이 다시 나왔고, 법조문은 개정법률 및 행정규칙 등이 출제되었다. 내용이론은 기존에 출제된 것을 변형하여 단답형이 아닌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주로 나왔다. 문제의 난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박스 문제가 많아 시간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체감 난도는 높았을 수 있다. 형법 과목에 대해 함승한 강사는 “1, 2차 시험에서 형법은 판례 위주로 나왔고, 3차 역시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요이론과 미수, 예비음모와 같은 주요 도표는 반드시 익혀야 할 내용이다. 또 새로운 교재를 보기보다는 1, 2차 채용 시험에서 본 교재를 다시 한번 꼼꼼히 보는 것이 고득점에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2차 채용 시험에서는 형법 판례 문제가 지엽적이고,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 나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형사소송법 과목에 대해 이승준 강사는 “매년 마지막 시험의 난이도는 무난하게 출제되는 편”이라며 올해를 비롯한 최근 몇 년간의 경찰승진 기출문제와 함께 지난 3년간 최신 판례를 정리하라고 귀띔했다. 최근에는 판례가 그대로 문제로 출제되는 일도 있으므로 최신 판례까지 꼼꼼하게 정리하고 문제풀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응용력을 키워야 한다. 경찰행정법 과목은 1차 경찰행정 특채에서 중요법령 및 판례가 출제됐고, 특히 최신 판례가 많이 나왔다. 수사 과목에 대해 안태영 강사는 “수사총론에서 13~15문제, 각론에서 5~7문제가 출제된다.”며 “개정된 법령·규칙에 유의하고, 최근 사고가 빈발하는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사 과목에 대해 오태진 강사는 “1, 2차 시험과 마찬가지로 3차 채용 시험도 난이도는 평이하게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차 시험에서는 18문제가 눈에 익은 기출문제였다. 변별력을 위해 생소한 개념을 묻는 문제도 있었으나 당락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맞는 것은 몇 개인가?’와 같이 정확한 지식을 알아야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는 수험생들을 당황하게 했다. 영어 과목은 1차 시험은 평이했으나 2차 시험에서는 단문형식 및 어휘 규정이 많이 출제됐다. 3차에 대비해서는 기본적인 문법과 기출 어휘를 반복학습하고, 1차 시험에서 출제됐던 중단문의 독해 기출문제를 풀이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다. 필기시험을 끝낸 순경 2차 채용은 오는 22~26일 면접시험을 시행할 예정이다. 최종합격자는 필기 50%, 체력 25%, 면접 20%, 가산점 5%를 합산하여 결정된다. 순경 면접은 1차 단체면접과 2차 개별면접으로 나뉜다. 지방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개인별로 약 15~30분 진행된다. 단체면접에서 그동안 나온 질문을 종합해 보면 ‘상사의 부당한 명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시민의 불법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도 피의자가 도망가는데 피해자가 피를 흘리고 있을 때 대처방법은?’ 등이 있다. 개별면접에서는 지원 동기, 지원하고 싶은 부서, 전공, 군대 등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이 많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조직의 리더나 장이 되어본 경험, 봉사활동 경험, 상사와의 의견충돌, 자기희생 경험 등을 물어 공직적합성과 인성을 검증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싸우겠다”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싸우겠다”

    “일본의 만행에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이제 우리가 함께 싸우겠습니다.” 10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나눔의 집’을 찾은 미국 뉴저지주 제임스 로툰도(50) 팰리세이즈파크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직접 뵙게 돼 영광”이라며 이 같은 첫 인사를 건넸다. 김군자(87), 박옥선(89)할머니 등 피해자 6명과 나란히 앉은 그는 “시민 중 한인 비율이 53%를 웃도는 곳이라 평소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한국에) 아픈 역사를 안긴 일본이 반드시 사죄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2010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주축으로 팰리세이즈파크에 세운 ‘위안부 기림비’에 대해 일본 자민당 등에서 철거를 요구해 왔다.”며 “단호히 거부할 수 있었던 건 할머니들이 지금 여기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 정부 군대에 유린당한 20여만명의 여성과 소녀들을 기린다.’라고 적은 기림비는 미국과 유럽대륙에서는 처음 들어서 미국은 물론 한·일 두 나라에서도 큰 이슈로 떠올랐다. 로툰도 시장은 “2007년 미 연방 하원에서는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많은 미국인들이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해 이옥선(86), 이용수(85) 할머니가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고자 지난해 12월 미국을 찾은 일을 떠올리며 “할머니 두 분이 흘린 눈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이 함께 싸워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살아 계시는 동안 반드시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일행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이들은 위안부 관련 지역을 둘러본 뒤 14일 출국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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