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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인 포커스] 리비아 총선 승리 ‘이변’… 국민연합 지브릴

    지난 7일(현지시간) 치러진 리비아 총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우세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자유주의 성향 ‘국민연합’(NFA)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이 조직을 이끌고 있는 마무드 지브릴(60) 전 과도정부 총리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의 정치학자로 2007~2010년 카다피 정부에서 경제 수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아랍의 봄’ 시민혁명 초기 반정부 세력에 합류했다. 지난해 10월 과도국가위원회(NTC) 총리에서 물러난 뒤 이번 총선에서 세속주의 군소정당 55개 연합체인 ‘국민연합’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지브릴은 압도적인 인지도와 더불어 온건 중도적 정치성향,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 등의 이점을 등에 업고 다양한 부족과 계층의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TV에 자주 출연해 국민연합을 알리는 데 톡톡히 기여했으며, 과도정부 총리로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반정부 세력의 창구 역할을 했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유세 기간 중 NFA의 정치적 대변인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브릴이 카다피의 측근으로 일했던 전력과 카다피를 최후까지 지지했던 바니 왈리드 지역의 와팔라 부족 출신인 점을 근거로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지브릴의 명성이 NFA와 후보들의 약점을 가리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민연합이 승리한다 해도 복잡하게 분열된 리비아에서 연립정부 구성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브릴은 지난 8일 밤 기자회견에서 150여개 정치세력에 대연정을 제안한 상태다. 지브릴은 연립정부의 가장 유력한 총리 후보로 꼽힌다. 총리로서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동부 지역의 반발을 달래야 하고, 인권 문제와 군대 무장해제, 경제 성장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지자체들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언제로” 9년째 싸움만

    동학농민혁명의 국가기념일 제정이 지방자치단체 간 이견으로 미뤄지고 있다. 2004년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10년 만에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으로 국가기념일을 제정할 수 있게 되고서 9년째다. 특히 지난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이달 말~다음 달 초 여론조사를 해 기념일을 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전북 고창군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1968년 시작해 올해로 45회를 맞은 황토현 축제를 하는 정읍시는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로 하자고 주장한다. 이날은 동학농민군이 정규군을 상대로 최초로 대승을 거둔 날이고 이미 교과서에도 실려 가장 널리 알려진 날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현실·상징·대중·역사성을 고려할 때 국가기념일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창군은 무장봉기일인 4월 25일이 국가기념일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규모 농민군이 조직된 것은 동학 대접주인 당시 고창현에 있던 손화중의 힘이었고, 무장에서의 봉기는 동학혁명군의 모습을 갖춘 최초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고창군 관계자는 “여론조사를 하면 정읍에 유리할 것이 뻔하다. 역사적 의의를 놓고 따져야지 여론 조사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읍이 동학농민혁명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동학혁명의 의의를 축소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부안군은 백산대회일인 4월 26일로 하자고 주장한다. 1만여명이 모여 군대조직이 만들어졌고, 군율이 생기고, 격문을 전국 곳곳으로 보낸 시점이 바로 백산대회라는 이유에서다. 그 밖에도 기념일 후보로 고부군수를 몰아낸 고부봉기일인 2월 11일, 전라도 수도인 전주성을 점령한 날인 5월 31일, 최대 격전을 벌인 우금치 전투일인 12월 5일 등이 후보다. 특히 전주성 점령일은 집강소를 통한 개혁이 단행된 날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최초로 민초들이 모든 권한의 주인으로서 역할한 획기적인 사건이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MACAU CUISINE-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사흘간의 식도락 여행 “마카오는 맛있다” 마카오에 3일간 머물렀다. 짧은 일정이었다. 초점은 음식에 맞춰졌다. 중국 광둥요리, 매캐니즈 푸드, 일본 음식, 국수와 에그 타르트 등 미식 기행은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다른 출장에서 열흘간 먹은 음식보다 훨씬 다채롭고 풍성했다. 안 그래도 나온 배가 한결 더 빵빵해져서 돌아왔다. 다이어트에 관한 한 마카오는 ‘적성국’이다. 에디터 김기남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마카오정부관광청 02-778-4402 kr.macautourism.gov.mo 1 도시형 통합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인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 유럽의 정찬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2 알티라 호텔의 일식당 텐마사. 일본의 유명 텐푸라 레스토랑인 텐마사의 해외 지점이다 3 아마 사원 가까이에 위치한 오 포르토 인테리어. 매캐니즈 푸드 전문 식당이다 4 마카오 타워에 자리한 광둥요리 레스토랑 루아 아줄. 5 바닐라 민트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시럽을 얹어 먹는 더 테이스팅 룸의 디저트 6 포르투갈 특산물과 디저트 등을 선보이는 루시타누스.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서로 다른 문화의 합작품 15세기와 16세기는 대항해시대였다.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유럽의 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선도했다. 바스코 다 가마와 마젤란은 모두 포르투갈 사람이다. 배를 보낸 나라의 입장에서 그들은 탐험가였고, 배가 도착한 나라의 관점에서 그들은 침략자였다. 포르투갈은 중국의 남쪽 끝 마카오에도 발을 디뎠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두 세력이 말문을 트게 됐다. 1557년 포르투갈은 마카오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당시 명나라의 군대를 도와준 대가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주했고, 자연스레 포르투갈의 음식과 음식 문화도 따라왔다. 문제는 식재료였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운송 여건은 열악했다. 식료품은 마카오에 입성하기도 전 썩어버렸다.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현지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조리법은 포르투갈의 것을 고수하되 재료는 마카오에서 나는 것을 이용했다. 여기에 포르투갈이 교역하던 다양한 기항지의 음식 재료와 양념 등이 보태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카오 사람들도 점차 포르투갈 음식을 즐기게 됐고, 자연스레 중국의 요리법도 스며들었다. 이것이 바로 포르투갈과 마카오가 함께 절차탁마해서 만들어낸, 오직 마카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캐니즈Macanese 푸드다. 삼각형 모양의 만두 매캐니즈 사모사는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는다. 고기, 양파, 고수를 잘게 다져 속을 채운 뒤 노르스름하게 튀긴다. 아프리칸 치킨, 덕 라이스, 커리 크랩 등은 메인 요리로 사랑받는 품목들이다. 닭고기에 10여 종의 향신료를 첨가한 다음, 오븐에 구워내는 아프리칸 치킨은 매콤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간다. 일단 먹고 나면 마치 아프리카에 있는 것처럼 몸이 더워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매운 것은 아니다. 덕 라이스는 말 그대로 오리고기를 넣어 지은 밥 위에 포르투갈 소시지를 얹은 요리다. 올리브유와 향신료가 곁들여진다. 커리 크랩은 마늘, 양파, 고추 등과 함께 볶은 게에 화이트 와인, 피시 스톡, 코코넛 밀크, 레몬즙 등을 넣어 익힌다. 게살을 발라 먹은 후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면 금상첨화다. 디저트 메뉴 중에는 세라두라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바닐라 크림과 고소한 쿠키 가루를 번갈아 쌓아 만드는데, 살짝 얼려 먹으면 더욱 좋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갓 구운 에그 타르트를 들고 카페로 이동 중인 로드 스토우스 직원의 모습 2, 5 로드 스토우스의 카페 간판과 이곳의 명물 에그 타르트 3 더 테이스팅 룸의 치즈 플레이트 4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원두를 사용한다는 카페 싱잉 빈 커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중독은 시작된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에는 애프터눈 티를 내놓는 곳이 많다. 홍콩 ‘옆 동네’인 마카오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는 세련되고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하다. MGM 그랜드 마카오의 파티세리MGM Patisserie, 요새를 호텔로 개조한 산티아고 호텔 라운지의 라 팔로마La Paloma 등이 애프터눈 티 명소로 꼽힌다. 카페에서 즐기는 티타임도 사랑스럽다. 마카오 타워 4층의 싱잉 빈 커피Singing Bean Coffee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자란 특별한 원두를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커피 맛도 준수하지만 아이스크림의 인기도 상당하다.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 외곽에서 가장 빛나는 곳은 테주 강변의 벨렘 지구다. 앞서 말한 바스코 다 가마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수중 감옥으로 악명 높았던 벨렘 탑, 1960년 엔리케 항해 왕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53m 높이의 발견기념비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벨렘 지구에 가면 꼭 맛보게 되는 음식이 에그 타르트다. 재정 자립을 위해 수도원에서 만들어 팔던 것을 상업화한 경우다. 너무 달다는 느낌도 들지만 커피와 함께 먹으면 감칠맛이 난다. 마카오 콜로안 섬의 로드 스토우스 베이커리Lord Stow’s Bakery는 마카오 에그 타르트의 간판스타다. 원조와 최고, 두 가지 모두 로드 스토우스의 몫이다. 이 집 에그 타르트를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폭신한 커스터드가 혀를 감싸는 순간, 중독이 시작된다. 1 다양한 차를 시음해볼 수 있는 마카오 차 이야기 2 국숫집 룩 케이. 반죽을 치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3 루시타누스의 파두 기타리스트 4 루아 아줄의 딤섬 요리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차를 마시고 파두를 감상하다 마카오에서는 모든 중국 음식을 접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중국 요리의 ‘4대 천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베이징·산둥·쓰촨·광둥 지역의 요리를 빠짐없이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광둥요리가 가장 발달했다. 광둥요리는 압축해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깊고 넓은 맛의 세계다. 산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재료로 상을 차린다. 산해진미라는 표현이 조금도 과하지 않다. 딤섬은 광둥요리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다. 쫀득한 찹쌀 피가 새우를 감싸고 있는 하가우, 육즙이 함초롬하게 고여 있는 샤오롱바우, 노란 만두피 안에 곱게 간 돼지고기와 게살을 넣은 슈마이, 부추와 새우로 속을 꽉 채운 고우초이가우 등은 우리에게도 꽤 친숙하다. 마카오에서 딤섬 잘하는 집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랜드 리스보아 2층에 자리한 중식당 더 에이트The Eight도 뒷줄에 서지 않는다. 맛도 맛이지만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비단잉어 벽면 등으로 멋을 부린 인테리어도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카오 타워에 입점해 있는 루아 아줄Lua Azul도 평판이 좋은 광둥요리 레스토랑이다. 중국인들의 차茶 사랑은 유별나다. 생활의 일부분이다. 식사할 때도 차를 빼먹지 않는다. 중국 음식 특유의 기름기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입 안이 깔끔하게 정리되기 때문에 음식 본연의 맛에 집중할 수 있다. 녹차의 일종으로 은은한 향이 일품인 용정차, 차의 생잎을 발효 도중 볶아 만드는 우롱차, 숙취 제거와 소화 촉진에 좋은 보이차, 맛이 달짝지근한 철관음차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마카오 여행 문화 체험 센터CATC 2층에는 마카오 차 이야기Macau Tea Story가 들어서 있다. 중국의 차 문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시음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는 포르투갈 스타일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루시타누스Lusitanus가 자리한다. 와인을 비롯한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타리스트가 포르투갈 전통음악인 파두를 연주해주는 점이 이채롭다. 애조 띤 선율이 우리네 정서에도 비교적 잘 맞는다. 숙명이란 뜻을 지닌 파두의 태생과 유입 과정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뱃사람이나 죄수들이 입에 자주 올리던 노래, 다른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 여러 갈래의 주장이 옥신각신하고 있지만 명쾌한 결론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1,800년대 초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 그리고 아프리카의 콩고와 앙골라에서 기원한 춤과 노래인 ‘룬두’가 파두의 발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설명은 무게감을 지닌다. ▶미식가를 위한 Travel to Macau 교통 에어 마카오가 인천~마카오 구간의 직항 편을 매일 운영한다. 비행시간 약 3시간 30분. 시차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레스토랑 매캐니즈 레스토랑으로는 아마 사원 부근의 리토랄Litoral, 오 포르토 인테리어O Porto Interior, 아 로차A Lorcha 등이 유명하다. 포르투갈 요리 타이파 빌리지의 안토니오 레스토랑은 정통 포르투갈 요리를 선보인다. 스타 셰프 안토니오 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궁>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리스보아 호텔의 레스토랑 귄초 아 갈레라Guincho a Galera도 포르투갈 음식을 내놓는다. 중국 요리 윈 리조트의 골든 플라워Golden Flower는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한 개를 받은 중식당이다. 청나라 전통 요리를 제공한다. 샌즈 코타이 센트럴의 다이너스티 8 Dynasty 8은 청·한·수·당·송 등 중국 8개 왕조의 특징적인 음식을 모티브로 한 레스토랑이다. 그랜드 리스보아의 누들 & 콘지 코너Noodle & Congee Corner는 상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양한 종류의 국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주방장의 밀가루 반죽 퍼포먼스도 구경할 수 있다. 룩 케이Luk Kei는 서민적인 분위기의 국수 가게. 일본 요리 알티라 호텔의 텐마사는 다다미방을 마련해 놓은 일식 레스토랑이다. 와인 알티라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오로라Aurora는 마카오 최대 규모의 와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기타 시티 오브 드림즈의 더 테이스팅 룸The Tasting Room에서는 유럽식 정찬 요리를 만끽할 수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의 비다 리카Vida Rica는 광둥요리에서부터 서양 요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9) 류성룡과 조헌

    [선택! 역사를 갈랐다] (19) 류성룡과 조헌

    임진왜란을 앞두고 비둘기파였던 류성룡(1542~1607)과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된 매파 조헌(1544~1592)은 원칙주의자로서 서로 갈등했다. 전쟁 후 류성룡은 ‘징비록’을 저술했고,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전사한 조헌은 그의 제자 안방준의 기록 ‘은봉야사별록’을 통해 잘 알려졌다. 이 두 개의 문헌이 일본에 전래되면서 류성룡과 조헌에 대한 해석은 제2라운드를 맞이한다. ●임진왜란 직전의 일본의 망상 100년 이상 이어지던 일본의 분열상태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중국 명나라는 물론 인도까지 정복하겠다는 야망을 품었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나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조선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도요토미는 조선과는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자리한 쓰시마(대마도)의 지배자인 소씨(宗氏)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소 요시시게(1532~1589) 등에게 조선 국왕이 직접 자신에게 항복하러 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조선 국왕이 순순히 항복을 하면 조선과는 전쟁을 하지 않고 조선군을 앞세워 명나라를 칠 것이요, 아니면 조선을 공격하겠다는 것이었다. 쓰시마와 조선의 관계는 도요토미가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리고 만일 반도와 열도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다면, 그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는 쓰시마로서는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터였다. 그래서 쓰시마 측은 조선 국왕 대신 조선 측의 사절단을 오도록 하겠다고 도요토미에게 아뢴 뒤, 이번에는 조선 조정측에 사절단의 파견을 간청했다. 사절단만 보내주면 두 나라 사이에서 전쟁은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비둘기파와 매파의 이견 사절단을 파견해 달라는 쓰시마 측의 요청을 받은 조선 조정의 의견은 갈라졌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서 거부했지만 쓰시마 측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당시 대제학이던 류성룡은 속히 결론을 내려서 두 나라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현장에서 동분서주한 실무가였다. 그러나 그는 임진왜란이라는 일본의 침략 전쟁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적대 정책을 펴서는 안 되며, 국내적으로는 전쟁을 대비하고 대외적으로는 능숙한 외교로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징계해서 뒤의 어려움을 대비한다.”는 뜻을 제목에 담은 ‘징비록’의 첫머리에 성종에게 신숙주(1417~1475)가 남긴 “일본과의 화의를 잃지 마소서.”라는 유언을 실은 것이나, ‘징비록’에서 “왜”라는 호칭과 함께 “일본”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한 데에서도 실무가 류성룡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조헌은 쓰시마 측의 사절단 파견 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과 명나라에서는 일본의 상황을 도요토미가 선왕(先王)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조헌은 신하의 신분으로 임금의 자리를 빼앗는 불의를 저지른 도요토미가 통치하는 일본과는 절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1591년 귀국한 황윤길(1536~?)과 김성일(1538~1593) 등이 가져온 도요토미의 국서 내용에 분개한 조헌은 일본 사신을 참수하고 그 시체를 여러 나라에 보임으로써 불의의 일본을 정벌할 연합군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김상헌(1570~1652)의 ‘청음집’에 적혀 있다. 이처럼 전쟁 발발 목전의 조선 조정에서는 비둘기파와 매파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립은 전쟁의 위기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어떤 나라에서든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조선 군사정보, 일본으로 유출 두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일어나고 말았다. 조헌은 전쟁이 일어난 1592년에 고경명·영규 등과 함께 의병군을 이끌고 참가한 금산 전투에서 전사했고, 류성룡은 전쟁이 끝난 1598년에 관직을 삭탈당하고 하회로 낙향했다. 전쟁을 막고자 한 두 사람은 전쟁 중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비슷하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그래도 류성룡은 ‘징비록’을 집필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헌보다는 행운이었다. 그 대신, 조헌은 비장한 최후를 맞이함으로써 후세에 변호인을 얻을 수 있었다. ‘은봉야사별록’을 쓴 안방준(1573~1654)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하늘이 조헌으로 하여금 살아서는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죽어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도록 했다며 슬퍼했다. 실로 조헌을 대신하여 그의 변론문을 썼다고 하겠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징비록’과 ‘은봉야사별록’은 임진왜란을 온몸으로 겪은 류성룡과 조헌, 안방준에 대한 귀중한 증언임과 동시에, 전쟁 당시 조선 측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중요한 군사적 문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헌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약탈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쟁 후 검은 커넥션을 통해 일본으로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두 문헌이 조선국 바깥으로 유출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83년에 작성된 쓰시마의 장서목록에 이 두 문헌이 나란히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유출 시기는 그 이전으로 짐작된다. 유출된 지역은 아마도 왜관으로 생각된다. ●‘징비록’ 17세기 日 지성계에 큰 영향 근세 일본에서 이야기되던 임진왜란 담론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임진왜란에 참전한 당사자나 그 주변인이 남긴 증언과 문헌에 의거한 것으로, 여기에는 오로지 일본 측 시각만이 담겨 있다. 그러다가 17세기 초기에 중국 명나라에서 제작된 ‘양조평양록’과 같은 문헌이 일본에 유입되면서, 일본인들은 임진왜란 때 자신들과 싸웠던 적국의 내정(內政)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명측의 문헌에는 자국의 군대가 한반도에 진입하기 이전 단계인 1592년의 전황을 비롯하여 조선 측의 상황이 소략됐고, 조선에 대한 명의 편견 역시 상당했다. 그 결과 일본과 명나라의 문헌을 종합해서 편찬된 ‘조선정벌기’ 등의 문헌에서는, 임진왜란은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전쟁이고 조선은 전쟁의 무대이자 수동적인 역할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식으로 기록된다. 역사는 반복돼 1895년 청일전쟁 이후에도 되풀이된다. 17세기 중기 조선의 임진왜란 문헌 몇 점이 일본에 유입된다. 그 가운데 일본 지식인들이 주목한 것은 류성룡의 ‘징비록’이었다. ‘징비록’을 통해 명측 문헌에서 보이는 조선 측에 대한 편견 몇 가지가 수정되고, 조선 측에도 전쟁 영웅들이 다수 존재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일본에 알려졌다. 이순신이 일본에서 ‘영웅’으로 인식된 것도 ‘징비록’의 영향이었다. 비록 임진왜란을 명과의 일대 결전으로 바라보고 싶어 한 근세 일본인들의 관점을 ‘징비록’ 하나가 뒤집을 수는 없었지만, ‘징비록’이 근세 일본 사회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긴 것 역시 사실이었다. 예컨대, 1695년 교토에서 출간된 일본판 ‘징비록’의 서문을 쓴 유학자 가이바라 엣켄(1630~1714)은 당시까지 일본에 존재하던 임진왜란의 기록 가운데 ‘징비록’과 ‘조선정벌기’만이 ‘실록’(實錄)이며 다른 것들은 번잡하여 볼 것이 없다고 평하였다. ●日 ‘은봉야사별록’으로 ‘징비록’ 비판 물론 인기를 끌면 반발도 생기는 법. 18세기 후기가 되면서 ‘징비록’을 폄하하는 문헌들이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왜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지닌 쓰시마의 학자가 쓴 ‘조선정토시말기’라는 책의 서문에서, 아사카와 도사이(1814~1857)는 류성룡이 “당시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나라를 그르치고 백성에게 해를 입힌 죄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거짓을 적어 사람들을 속였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징비록’을 ‘실록’이라고 칭송한 가이바라 엣켄을 비판하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상반된 견해가 이 시기의 일본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아사카와는 1849년 일본에서 간행된 ‘은봉야사별록’에도 서문을 실었다. 여기서 그는 “임진왜란 직전에 조선 국왕 선조는 음락했고 조정에서는 류성룡·이덕형 등의 간신이 발호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침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명나라의 도움을 기다려서 간신히 나라를 되살릴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양조평양록’의 기사를 끌어와 류성룡과 ‘징비록’을 비판한다. ‘은봉야사별록’를 간행한 것은 미토학(水戸学)이라 불리는 에도시대 후기의 일본중심적 학파의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아사카와처럼 ‘징비록’에 대한 불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은봉야사별록’을 함께 이용함으로써 ‘징비록’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격하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류성룡과 조헌의 대립과 갈등은 ‘징비록’과 ‘은봉야사별록’이라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임진왜란 문헌에 실려 일본 학자들에게 알려졌다. 이 두 사람 중 어느 한 편을 들 필요가 없던 일본 학자들은 두 문헌을 비교하며 냉정한 눈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측 상황을 서술했다. 조선 내부의 갈등이 근세 일본에서 재현되어 저들에게 편리하게 이용된 씁쓸한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가와구치 조주(1773?~1834)는 임진왜란 관련 문헌을 종합하여 임진왜란을 연대순으로 편찬한 ‘정한위략’을 간행하였다. 그는 이 문헌의 기본틀을 잡기 위해 ‘징비록’의 서술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이이·조헌과 대립한 류성룡을 비판하는 ‘은봉야사별록’의 구절을 여럿 가져와서 ‘징비록’과 류성룡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류성룡이 간신이었다는 ‘양조평양록’의 글에 대해 ‘은봉야사별록’에서도 류성룡을 마찬가지로 비판하고 있는 걸 보니 이는 사실이었던 것 같다고 적고 있다. 다만, ‘징비록’에서 우국충정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니 류성룡은 처음에는 나라를 그르쳤으나 전쟁이 일어난 뒤에 반성했음을 알겠다고도 적고 있다. 김시덕(고려대 일본연구센터 HK연구교수)
  • [본색 드러내는 日] ‘전쟁 포기’ 헌법9조 개정 오사카유신회 총선 공약

    일본의 차기 총선에서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지방 정당 오사카유신회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평화헌법)의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총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이끄는 오사카유신회는 지난 5일 차기 중의원 선거(총선)의 공약이 될 ‘유신 8책’(維新八策)의 개정판을 발표했다. 오사카유신회는 ‘유신 8책’에서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헌법 제9조의 개정 여부를 국민투표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와 국방 부문에서는 ‘일본의 주권과 영토를 자력으로 지키는 방위력과 정책의 정비’를 제시했다. 또 미·일 동맹을 외교의 기축으로 삼는 한편 한국과 호주 등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가들과의 공조 강화도 명시했다. 오사카유신회는 대표인 하시모토 시장의 인기에 힘입어 최근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 자민당과 접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사카유신회는 300명의 후보를 공천해 200명 정도를 당선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오사카유신회가 차기 총선에서 후보를 대거 당선시킨다면 헌법 개정에 탄력이 붙을 수도 있다. 보수 성향의 오사카유신회는 국방·외교 정책에서 자민당과 비슷한 정책을 제시했다. 자민당은 이미 차기 총선 공약에 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도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여론은 양원제인 정치체제 개선을 위한 개헌은 필요하다는 쪽이다. 하지만 헌법 9조의 개정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만만찮다. 진보 성향인 아사히신문이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헌법 9조의 개정을 ‘바꾸는 편이 좋다’가 30%,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가 55%였다. 보수지인 요미우리신문의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는 헌법 9조가 ‘해석과 운용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개정해야 한다’가 39%, ‘개정하지 않고 법의 해석과 운용으로 대응해야 한다’가 39%로 팽팽하게 맞섰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집단 자위권 추진…본색 드러내는 日

    집단 자위권 추진…본색 드러내는 日

    일본 의회가 원자력 기본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데 이어 이번에는 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을 요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5일 NHK방송에 따르면 일본의 중장기 비전을 검토해 온 정부 분과위원회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안전보장 면에서 “더욱 능동적인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며 정부의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분과위는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해석 등 기존 제도와 관행의 수정을 통해 안전보장 협력 수단의 확충을 도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평화 헌법 9조에 따라 일본의 방위와 관계있는 타국이 공격받았을 때도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결국 이번 분과위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치 않는 평화 헌법의 개정과 같은 공식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우회로를 통해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해 12월 ‘무기 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 및 수출의 길을 튼 데 이어 지난 6월 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우주활동 관련법에서는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 한정’ 조항을 삭제했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 4월 ‘일본의 재기를 위한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안전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발사, 중국의 패권 확대를 빌미로 오랜 염원인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총리 직속의 위원회가 장기적 비전 차원에서 제안한 것으로 당장 정책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없지만, 차기 총선거 과정에서 보수·우경화 물결 속에 헌법 개정 문제와 맞물려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살인용의자, 도주중 살인범 쫓는 경찰로 영화 캐스팅

    살인용의자, 도주중 살인범 쫓는 경찰로 영화 캐스팅

    살인혐의로 경찰에 쫓기던 용의자가 살인범을 쫓는 경찰로 영화에 캐스팅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호주 브로드워터에 사는 조나단 스탠버그(46)는 이웃인 에드워드 켈리(51)를 살해하고 도주해 현지 경찰에 수배를 받다 이달 초 체포됐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황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스탠버그가 도주 이틀 만에 한 영화에 오디션을 본 것. 이 영화는 휴고 위빙이 출연하는 스릴러물로 10대 소녀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스탠버그는 오디션을 통과해 경찰역으로 낙점을 받았으나 실제 출연하지는 못했다. 이같은 사실은 영화 제작사 측으로부터도 확인됐다. 오히려 제작사 측이 영화 홍보차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 영화의 조감독 마크 인그램은 “한 호텔에서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스탠버그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면서 “발음도 매우 정확하고 군대 경험으로 총기를 잘 다뤄 경찰역으로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이어 “몇차례 그와 만났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출연을 못하게 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면서 “나중에 살인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살인범을 쫓는 경찰로 영화에 출연할 뻔한 스탠버그는 현재 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뉴스팀
  • 日 우경화 뒤 美 그림자

    일본이 핵무장에 이어 집단적 자위권까지 추진하고 나서면서 배후에 미국의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의 ‘정상적 국방권 행사’는 승전국으로서 항복문서 조인을 이끌었던 미국의 묵인이 없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심지어 부추기는 인상마저 줬다. 지난달 27일 국무부 당국자는 일본 의회가 원자력 관련법에 ‘안전보장 목적’을 추가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군사적 목적으로 원자력을 사용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핵무장’ 우려를 일축했다. 미국이 올해 22개국이 참가하는 림팩(환태평양 해군합동훈련)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본 자위대 해군 소장에게 부사령관 직책을 맡긴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 헌법을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군대 자체를 가질 수 없는데 오히려 국제적 군사훈련에서 일본군 장성에게 일정 부분 지휘권까지 준 것이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에 대해서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관계를 환영한다.”며 우회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지난달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에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촉구했다는 관측과 맞물리면서 ‘미국 입김설’을 증폭시켰다. 전문가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군사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중국 봉쇄’로 정하면서 일본의 군사적 위상을 높이고 한·미·일 3각동맹을 구체화하는 쪽으로 해법을 마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일본과 한국 쪽에서 나오는 일련의 군사적 이슈들은 그 전략에 기반한 후속 조치라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로 국방비 지출에 한계가 있는 미국이 일본을 키워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는 관측도 그럴듯하다. 미 의회조사국은 2010년 5월 ‘미국이 기초한 일본 헌법은 집단적 자위 참가를 금지한다는 해석 때문에 미·일 간의 더 긴밀한 안보 협력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을 만큼 미국 조야는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에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맥가이버?…고장난 차를 오토바이로 개조해 사막 탈출

    맥가이버?…고장난 차를 오토바이로 개조해 사막 탈출

    홀로 사막을 여행하던 도중 자동차가 고장나 고립된 남자가 자동차를 분해해 오토바이로 만들어 탈출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판 ‘맥가이버’ 또는 ‘아이언맨’으로 불리게 된 이 남자의 이름은 에밀리 르레이(43). 그는 지난 1983년 사하라 사막을 종단하고자 자신의 ‘애마’ 시트로엥 2CV 타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당시 내전에 휩싸인 아프리카에서 모로코 군대에 의해 통행이 저지 당하자 르레이는 험준한 지역으로 길을 우회해 종단에 나섰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자동차가 바위와 충돌해 완파되며 르레이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고립무원의 위기에 빠졌다. 르레이는 “과거 아프리카를 10차례나 여행해 그 지역을 잘 알고 있었지만 뜻하지 않는 사고가 났다.” 면서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의 거리는 32km로 걸어서 가는 것은 무리였다.”고 밝혔다. 부서진 자동차 옆에서 고민에 빠진 르레이에게 남은 것은 몇일 분의 음식과 물 그리고 쇠톱 뿐이었다. 결국 그는 자동차를 분해해 오토바이로 개조할 것을 결심한다. 르레이는 음식과 물을 아껴 먹으면서 초인적인 힘으로 12일 만에 자동차를 오토바이로 개조한 후 인근 마을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근 30년이 지난 그의 기적같은 사연은 최근 개설한 홈페이지(chameaudacier.free.fr/index.html)를 통해 알려졌다. 르레이는 “뜨거운 태양과 추위와 모래폭풍을 견디며 ‘생존용 오토바이’를 제작했다.” 면서 “영화화 되기 딱 좋은 소재”라며 웃었다.   인터넷뉴스팀 
  • [열린세상] 여름을 맞는 캠퍼스 풍경/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여름을 맞는 캠퍼스 풍경/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의 친형이 뇌물 혐의로 소환되고, 국회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심사로 시끄럽다. 진보진영의 종북 행적을 둘러싸고 전향한 진보와 골수 진보 사이에 어색한 공방도 이어진다. 대선 주자들은 왜 이리 많은지, 본인이 대통령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이러는 사이에도 대학의 캠퍼스에는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왔다. 꽃샘추위 속에 봄 학기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의 고요가 찾아왔다. 학생들 답안을 채점하고 성적을 제출할 이 무렵에는 어김없이 편지가 날아든다. 성적을 올려줄 수 없느냐고 하소연하는 학생들의 편지다. 보경이는 아예 시험답안지에 긴 편지를 썼다. 시험공부를 밤새 열심히 했는데도, 정작 예상을 빗나간 문제가 나오는 바람에 시험을 망쳤다는 것이다. 그 사정을 다 들어줘도 C를 면하기는 어렵다. 위탁 교육을 온 총리실의 한 공무원은 A 를 받았는데, 장학금을 신청하려면 A 가 필요하다며 하소연한다. 그래도, 성적은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배분될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수강생이 80명을 넘는 대형 강의가 많아,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학기 초에는 뜻하지 않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학기 초 강의를 막 마치고 나오는데, 남학생 한 명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땅을 보고 걷다 엉겁결에 인사를 받은 나는 분명하지 않은 기억에 “그래, 오래간만이다.”라고 받았다. 그러자 그 학생은 “방금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그때 이후로 나는 학생이 인사를 할 때, ‘오래간만이다’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그냥 “잘 지내지?”라고 바꾸게 되었다. 이러면 학기 초의 어설픈 실수는 없어진다. 경제학과에 다니는 지영이는 더 재밌는 경험을 했단다. 올해 2학년인 지영이는 경제학 수업을 마치고 나오며 복도에서 방금 강의를 하신 교수님과 마주쳤다. 지영이는 “선생님, 안녕하시죠?”라고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골똘히 생각하며 걸어가던 교수님은 “저를 아시나요?” 하더란다. 이제 캠퍼스는 여름방학으로 들어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교정은 한여름의 정적으로 빠져든다. 매미와 찌르레기 소리가 숲을 차지하고, 이 숲의 주인이었던 학생들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누비러 떠난다. 재우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려 한다. 이탈리아의 로마유적을 살펴보고,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스위스의 시골마을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규랑이는 경상도 함안으로 중학교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러 떠난다. 보라색 붓꽃과 노란 원추리꽃을 좋아하는 규랑이는 눈부시게 빛나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행복해할 것이다. 한여름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도 느껴보라고 말해주었다. 소나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먼 벌판에서 군대처럼 쳐들어 온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학생들을 떠나보낸 교수들은 정작 이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밀린 연구와 실험, 집필을 시작하는 시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긴 방학 동안 교수들은 무얼 하는지 궁금해한다. 미스터리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방학 때 오히려 더 바빠진다. 방학시간을 이용해 밀린 연구나 집필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계획만큼 다 이루기는 어렵다. 방학을 끝낼 무렵 방학에 속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일쑤다. 계획했던 대로 일을 하고 몸과 마음을 충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여름방학을 앞두고 시간표를 짜며 공부계획을 세운 다음, 개학 무렵 느껴야 했던 그 아쉬움과 같은 느낌이다. 17년간이나 방학에 속아 왔으니, 올여름에 또 방학에 속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계획은 크고 신나게 세울 만하다. 다시금 9월이 되면 개강에 맞춰 캠퍼스를 떠났던 학생들은 돌아오게 될 것이다. 방학으로 홀가분한 마음을 느끼기가 무섭게, 벌써 젊은 학생들의 눈동자가 그립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꿈을 발견하여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지구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태양에 그을린 얼굴로 돌아올 그들을 기다린다.
  • “와인벼락, 맛이 어때?” 스페인 와인전쟁 축제 성황

    경제사정은 어렵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한 스페인의 ‘와인전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북부지방 라리오하의 아로에서 열렸다. 올해는 평일에 축제가 열려 참가자가 적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세계 각국에서 군대(?)가 결집하며 최대 8000여 명이 참가했다. 스페인 현지 언론은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뿐 아니라 호주, 일본 등 먼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와인전투에 대거 원정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오전 7시부터 모여든 참가자들은 ‘전투개시’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와인을 발사(?)하며 전투를 개시했다. 들통, 양동이, 물총 등이 무기로 사용됐다. 아로 당국은 이날 전투에 사용된 ‘실탄(와인)’을 약 6000리터로 추정했다. 관계자는 “축제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해마다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6월 29일이 토요일이 되는 내년엔 참가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와인전투, 토마토전투 등 스페인에선 식품을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해마다 축제가 다양하게 열린다. 매년 8월에 발렌시아의 부뇰에서 열리는 토마토전투도 외국인관광객이 대거 참가하는 세계적인 전쟁놀이축제다. 손영식 해외통신원voniss@naver.com
  • [열린세상] 애국가의 역사적 함의/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열린세상] 애국가의 역사적 함의/허동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국가(國歌)는 국기와 함께 국민국가(nation state)의 국민 통합을 위한 대표적 표상이다. “상뎨는 우리 황뎨를 도우8/셩수무강하8” 1902년에 대내외에 공포된 ‘대한제국 애국가’는 상제(上帝)에게 전제군주의 성수무강(聖壽無疆)을 기원하는 구절로 시작된다. 그러나 하늘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돕지 않았다. ‘nation’은 ‘국민’으로도 ‘민족’으로도 번역된다. 사실 1905년 이전 민족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고 ‘백성·신민·인민·동포’라는 단어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신분을 넘어선 동등성의 어감(語感)을 느끼게 하는 ‘동포’도 국권의 주체로서 평등한 정치 공동체의 성원은 아니었다. 당시의 신문·잡지·역사서 등 인쇄매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도 평등한 근대 민족의 창출이 아니라 황제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당시 민권은 국권보다 하위 개념으로 국가의 생존과 유지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었다. 백성을 국민으로 만들기보다 신민(臣民)으로 잠자게 하려 한 대한제국은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대한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국망(國亡)의 위기가 몰아닥치자 사람들은 전제군주가 아닌 민초들 자신을 이 땅의 주인으로 호명(呼名)한 새로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충성의 대상은 황제에서 민족으로 바뀌었다. 민초들은 신민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에 올 새로운 공화주의 국가의 국민이 되기를 꿈꾸는 민족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10년 우리는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민지 국민이자 ‘천황’의 신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일제 치하 36년간 애국가는 태극기와 더불어 마음속으로만 부르고 흔들 수 있었던 금지된 상징이었다. 1945년 8월 15일 도둑과 같이 광복이 찾아오자 사람들은 다시 태극기를 꺼내들고 애국가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을 모델로 한 공산주의 국가 수립을 꿈꾸며 “만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조국 쎄쎄쎄르(소련) 만세! 세계혁명운동의 수령 스탈린동무 만세!”를 외친 남로당 당수 박헌영 같은 이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더 이상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체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아니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굳기 전에/ 혈조(血潮)는 깃발을 물들인다.” 북한이 1948년 8월 인공기를 사용하기 전까지 좌익은 손에 든 태극기를 부인하는 ‘적기가’(赤旗歌)를 애국가 대신 불렀다. “마음속에 그려보던 태극기가/ 푸른 하늘 밑에 물결칠 때/ 막혀가던 핏줄도 용소슴처 흐르고/ 꿈이 아닌 이 순간에 자유의 새암은/ 어느 새 우리들의 몸을 씻겨 주었다/ 자유의 인민이 되라고/ 권력의 인민이 되라고/ 일장기를 고친 기가 무슨 우리의 기드냐/ 불 끓는 우리 마음에 그 짓 기는 살러지리라/ 거리를 뒤덮은 저 붉은 기/ 붉은 기를 억세인 그대들 손 안에/ 모든 권력은 쥐어지리라/ 날러라 붉은 기/ 이 땅 위에 날러라.” 뒤에 북한 국가를 작사한 박기영이 1945년 10월에 지은 ‘날러라 붉은 기’라는 시의 한 대목은 3·1운동 이후 이 땅 사람들의 뇌리에 독립의 강력한 표상으로 작동하던 태극기를 전술적으로 공산혁명에 활용하려 한 그들의 속셈을 잘 보여준다. 1945년 11월 임화가 남긴 ‘발자욱-붉은 군대를 환영하기 위하여’에 보이는 “아아 승리와 영광에 빛나는 스탈린그라드의 용사도 왔구나. 그대들이 가져 오는 것은 우리의 영토인가. 그대들이 들고 오는 것은 우리의 기(旗)ㅅ빨인가. 우리는 어느 것이 그대들의 것인지. 어느 것이 우리들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대목이 잘 말해주듯이,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좌파 지식인의 맹종에 가까운 소련 추종은 명백한 오류였다. “좌익 파쇼와 일부 공산당원들의 소아병적인 경향 때문에 민심이 공산당에서 이탈하고 있다. 젊은 공산주의자 중에 공산당을 유아독존으로 여기고 스탈린을 전지전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았던 중도 성향 역사학자 김성칠이 남긴 1946년 2월 16일의 일기가 시공을 넘어 공감을 자아내는 오늘이다.
  • “軍 간토대지진때 조선인 학살”…日중학교 부교재는 인정했다

    일본 요코하마시의 중학교 부교재에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군인과 경찰이 조선인을 학살한 사실이 기술됐다. 25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요코하마시 교육위원회가 시립중학교 학생 전원에게 배포한 올해 판 부교재인 ‘와카루 요코하마’(알기 쉬운 요코하마)는 “(도쿄에서) 군대와 경찰, 재향군인회와 청년회를 모체로 조직된 자경단 등이 조선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했으며, 중국인도 살상했다.”고 적었다. 또 “요코하마에서도 각지에서 자경단이 조직돼 이상(異常) 긴장상태하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이 학살된 사건이 일어났다.”고 적시했다. 이 부교재의 작년도 판에는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해 군대를 요코하마에 출동시켰다. 이유는 자경단 가운데 조선인을 살해하는 행위로 나아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 시내만 해도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고 기술했었다. 이는 군대의 출동이 마치 조선인 살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포장한 것으로, 올해 판에서 전면 수정됐다. ‘와카루 요코하마’는 중학생이 요코하마시의 역사와 문화 등의 이해를 돕기 위해 수업시간에 활용하는 부교재로 1학년생 전원에게 배포된다. 이 부교재의 기술내용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부인한 것이지만 그동안 양심적인 일본 학자나 한국, 중국의 연구결과 진실로 드러난 것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연방제 수준 정치동맹… EU 10國, 논의 시작”

    독일이 주축이 된 유럽연합(EU) 10개국이 유럽 재무장관직 신설, 유럽 국경경찰 및 군대를 창설하는 ‘정치적 동맹’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 군경 창설… 재무장관직 신설 검토 신문은 “유럽의 미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이러한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과의 인터뷰를 전했다. 베스터벨레는 “올 초부터 10개국 외무장관들이 정기모임을 갖고 EU를 연방제 수준의 정치 동맹체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베스터벨레의 이러한 발언은 소위 ‘유로 그룹의 미래’라는 EU 10개국 외무장관들의 최근 회동 직후 나왔다. 이 모임에는 독일을 비롯해 벨기에, 덴마크,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가 참여하고 있다. 반면 영국, 스웨덴, 아일랜드, 그리스 등은 이 모임에 초대받지 못했다. ●獨·佛 등 10개국 외무장관 연구·제안 모임은 지난 19일 그간 논의된 사항을 ‘제안서’ 형식으로 구성해 EU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유럽 재무장관회의 등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안서는 유럽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대통령이나 총리와 같은 권한을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日 원전법 개정으로 核무장 여지 커져… 전쟁금지 ‘평화헌법’ 개정 쉽지 않을 것”

    “日 원전법 개정으로 核무장 여지 커져… 전쟁금지 ‘평화헌법’ 개정 쉽지 않을 것”

    일본 정치권이 원자력 기본법을 개정해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과 핵무장의 길을 열려하자 세계평화 호소 7인 위원회가 “국익을 해치고, 화근을 남겼다.”는 내용의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1955년 일본내 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이 모여 출범한 ‘세계평화호소 7인 위원회’의 사무국장 고누마 미치지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물리학)를 22일 만나 원자력 기본법 개정이 앞으로 일본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 국회가 지난 20일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 부칙에서 ‘원자력 이용의 안전확보는 국가의 안전보장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어떤 의미가 있나.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건 있을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이 원자력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데는 원자력 기본법이 존재하고, 일본 여론이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원자력기본법 개정으로 이런 믿음이 흔들리게 됐다. 일본이 당장 핵무기를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 등 주변국가들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안전보장’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법적으로 핵무장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의혹에 대한 생각은. -핵무장을 할 수 있다기보다는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실질적인 (핵의) 군사이용의 길을 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위원회가 긴급 호소문을 발표한 것이다. →충분한 논의도 없이 관련법을 바꾼 것은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나. -국회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안전보장’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절차적으로 큰 문제다.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핵무장 가능성을 전면 부인했는데. -후지무라 관방장관의 해명은 진심으로 들렸다. 하지만 후지무라 장관이 속한 민주당은 여당인데도 불구하고 현안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 게 문제다. 이번 사안도 자민당 의원의 요구에 민주당이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해 준 것 아니냐. →일본은 앞서 지난해 12월말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해 외국과의 무기 공동 개발과 수출의 길을 튼데 이어 우주활동 관련법에서 우주 활동의 ‘평화적 목적 한정’을 삭제했다.일본 사회가 보수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많다. -일본 사회 전체가 그렇다기보다 정치권이 문제다. 이전에는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에 진보적 의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민당과 공명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도 보수적인 의원들이 많은 것 같다. 국회의원 성향만 따지면 우경화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일본 전체가 우경화로 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등 보수당이 집권하면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헌법 9조 개정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평화헌법 9조의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 내에 평화를 지지하는 국민이 많고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비판이 거세 난관에 부딪칠 것이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후 “軍간부 재산 의무공개” 권력교체기 ‘총칼’ 기강잡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정권 교체를 앞두고 연일 당에 대한 군의 충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군 간부의 재산 신고 의무화라는 실질적인 조치로 군 기강 잡기에 나섰다. 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최근 군대 내 간부급 지도자의 수입 정도, 부동산 및 투자 내역 등 재산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간부급 지도자 개인과 관련된 보고 규정’(이하 규정)을 통과시켰다고 인민일보와 해방군보 등 중국 언론들이 21일 보도했다. 당·정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고위 공직자 재산 신고제가 군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군 간부의 재산 신고 의무화 규정은 후 주석의 반부패 청렴 건설 지시를 관철하기 위한 조치로, 군 간부들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군 내 반부패 분위기를 제고하는 의미가 있다고 신문들은 전했다. 차기 상무위원 유력 후보인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당서기는 자신의 지역 내에서 대규모 반부패 숙청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숙청으로 최소한 100명 이상의 지역 관리들이 쌍규(雙規) 조치에 처해졌다고 둬웨이(多維) 뉴스를 인용해 명보가 이날 보도했다. 쌍규란 공직자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당 감찰기구인 당기율위원회의 조사를 받는다는 의미인데 감금, 고문 등 강압 수사가 수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실상 ‘정치적 사형 선고’로 통한다. 신문은 숙청 규모와 관련, 광둥성 부비서장 셰펑페이(謝鵬飛)와 재정청 부청장 웨이진펑(危金峰)이 중대 기율 위반 혐의로 당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 광저우(廣州)시에서 공무원 200여명이 부패 문제로 이미 면직 처분됐으며 선전(深?)시에서만 100여명의 공무원이 쌍규 처분을 받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왕 서기가 2007년 부임한 이후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수차례 시도했으나 지역 내 부패 관리들에 의해 저지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반부패 숙청은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며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덧붙였다. 한편 중국 차기 대권주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은 명문대 학생들에 대한 공산당 교육 강화를 지시하고 나섰다. 시 부주석은 19∼20일 베이징(北京) 시내의 베이징대, 칭화(淸華)대, 인민(人民)대를 차례로 방문해 대학 내 공산당 건설 교육 강화를 지시하면서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 견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업 건설에 적합한 인재 양성 ▲당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교장책임제 강화 등을 주요 원칙으로 제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개인 나약함만 탓해선 안돼” 국가책무 강조

    “개인 나약함만 탓해선 안돼” 국가책무 강조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8일 군 복무 중 가혹 행위로 자살한 장병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함에 따라 현재 1·2심 법원에 계류 중인 재판의 흐름은 완전히 뒤바뀔 수밖에 없다. 그동안 ‘군 복무 중 가혹 행위로 정신착란이 발병해 자살’한 극단적인 사례에 대해 하급심 판결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준 적은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처음이다. 대법원은 “군인들에 대한 합당한 처우와 국가의 보호를 더 충실히 하도록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 지난 1999년 대법원 1부(주심 이임수 대법관)가 우울증으로 자살한 공군 소령 김모씨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인정했지만 당시에도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결론이었을 뿐 군 가혹 행위와 관련된 판결은 아니었다. 물론 지난해 9월 개정된 국가유공자법은 국가유공자 제외 사유로 규정됐던 ‘자살행위로 인한 경우’를 삭제, 군 가혹 행위도 유공자의 요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던 터다. 그러나 개정 법에서도 교육훈련·직무수행과 자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세세하게 따질 여지가 적잖았다. 대법원 판결은 앞으로 ‘군 가혹 행위와 자살’ 재판의 지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계류 중인 판결뿐만 아니라 진행될 소송이나 국가보훈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마디로 “군에서 가혹 행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자살했다면 국가유공자”라고 쐐기를 박은 셈이다. 판결의 당사자인 장모씨는 지난 1998년 5월 충북 충주에 있는 19전투비행단에 입대, 항공기 기체정비병으로 근무하다 이듬해 4월 내무반 지하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장씨는 평소 무능하다는 이유로 선임병들로부터 질책과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의 어머니 엄명숙(59)씨는 대구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 신청을 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은 엄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원고 패소로,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이후 엄씨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했다. 위원회는 2008년 12월 ‘장씨가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구타, 가혹 행위, 욕설 등 언어 폭력과 집단적인 따돌림, 중대장 등의 위법한 지시에 따른 대리시험 발각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사망하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재심의를 요청했다. 엄씨는 이를 근거로 다시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군 복무와 관련된 정신적 스트레스와 대리시험 적발로 인한 부담감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우울증 등으로 인한 심신상실이나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할 정도에 이른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 판결이 “‘자살로 인한 경우’에 해당하기만 하면 곧 국가유공자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법리를 전제로만 판단하고, 상당(相當) 인과관계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봤다. 주심인 전수안 대법관은 “군대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살하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면서 “자살자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며,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위로와 보상은 국가의 책무다.”라는 보충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씨줄날줄] Young Man/이도운 논설위원

    2005년 6월 3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매우 이례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인 논평을 했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우리 최고 수뇌부에 대해 ‘선생’이라고 존칭했다.”면서 “우리는 이에 유의한다.”는 것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흘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거명하면서 ‘미스터’(Mr)라는 경칭을 붙인 데 대한 일종의 화답이었다. 그 효과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한때 순풍을 타는 듯하기도 했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외부의 호칭에 유난히 민감하다. 김일성보다는 김정일 통치 시기로 넘어오면서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정통성 없는 권력 세습과 핵무기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질타가 가져온 반작용이었을 것이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앞세운 부시 정권은 북한을 ‘정권 교체’의 대상으로 인식했다. 그러한 인식은 김정일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호칭에 그대로 담겼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5월 16일 의사당을 방문, 공화당 지도부와 환담하는 자리에서 김정일을 ‘피그미’라고 불렀다. 원색적인 표현에 함께 있던 공화당 의원들이 놀랄 정도였다. 부시는 이후에도 김정일을 ‘독재자’, ‘위험한 인물’, ‘국민을 굶기는 사람’ 등으로 표현하며 줄기차게 공격했다. 2005년 4월 29일 기자회견에서는 아예 ‘폭군’이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시의 김정일 호칭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효과 없는 대북 압박정책에 변화가 온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미국인들이 피로감을 느끼자 새로운 외교적 업적을 만들어 보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했다. 그런 맥락에서 ‘미스터 김정일’이 나온 것이다. 당시 대북 외교를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아예 김정일을 ‘미스터 체어맨’이라고 호칭했고, 2007년 부시도 그런 표현을 썼다. 지난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과 미국의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김정은을 ‘영 맨’(Young Man)이라고 호칭했다. ‘Young Man’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젊은이’이지만, 미국에서는 하대하는 뉘앙스로도 쓰인다. 군대 고참이 신참을, 야구 감독이 선수를 타이르거나 할 때 입에 올리곤 하는 말이다. 클린턴 장관은 그러나 김정은을 ‘새 지도자’(New Leader)라고도 지칭했다. 권력의 3대 승계 이후 ‘최고 존엄’에 대한 평가에 한층 민감해진 북한이 클린턴 장관의 어느 호칭에 더 관심을 둘지 주목된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15일 TV 하이라이트]

    ●고향극장(KBS1 밤 7시 30분) 전남 순천시 낙안면 사람들은 이모작으로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농사는 뒷전이고 놀고 즐기는 데에만 온 신경을 쏟는 세 남자가 있다. 바로 순천 베짱이 3인방이다. 한낮 보리밭에서 보리 서리는 이들에겐 기본이다. 또 하우스 일을 도와주겠다며 오이에 토마토까지 먹고 달아나는 대범함까지 보인다. ●스펀지(KBS2 밤 8시 50분) 새로 이사 온 집에서 행복한 나날도 잠시, 자꾸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이제는 집이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진다. 밤마다 괴롭히는 악몽과 핏물 섞여 쏟아지는 수돗물, 의문의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편 유명한 심리학자 레이먼드 무디 박사가 추천한 귀신 보는 방법을 브레이브걸스와 함께 직접 실험해 본다. ●스탠바이(MBC 밤 7시 45분) 시완은 우연히 진행이 여자를 만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정우로부터 그 여자가 진행의 애인이며, 시완이 신경쓰여 몰래 만나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시완은 진행을 위해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수현은 석진, 기우와 함께 직장인 밴드 ‘김수현과 석기시대’를 결성하고 석진은 수현에게 제대로 점수를 따려 한다. ●궁금한 이야기 Y(SBS 밤 8시 50분) 지난 5월 사이클 선수 정수정양은 경북 의성군의 한 국도에서 훈련 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사고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의 사망보험금을 둘러싸고 새엄마와 친엄마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각종 언론에서는 11년 전, 이혼하고서 소식이 없던 생모가 나타나 보험금 절반을 챙겨 갔다고 보도했다. ●금요극장-여름연가(EBS 밤 12시 5분) 말레이시아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올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소녀이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올케의 부모는 보통 이슬람 가정과 달리 가부장적이지 않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또 부부간의 애정표현에도 자유롭고 가정부와도 가족처럼 지낸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올케의 가족을 서양물이 든 집안이라고 수군대는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OBS 밤 11시 5분)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온다. 바로 행방불명됐던 그녀의 고모 마츠코의 유품을 정리하라는 전화였다. 쇼는 유품을 정리하던 중 마츠코가 이웃들에게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사설] 군 장성의 성추행 사건 엄중하게 다스려라

    현역 육군 장성이 여군 부사관을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군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장성은 지난 4월 회식을 마친 뒤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여 부사관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고 한다. 지난 3월에는 육군 중장인 특전사령관이 여군 부사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사실이 드러나 보직해임되기도 했다. 두 사건은 군 내의 성 추행이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식 처벌이 군 내 성 범죄 사건을 불식시키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장성들의 성 추행 사건이 잇따르는 것은 우리 군의 기강이 어느 정도 해이한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군에서 여군의 비율은 점차 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여군은 2600명으로 군 전체의 1.5%를 차지하며 2050년까지 5%로 늘린다는 것이 국방부의 방침이다. 또 지난 2010년 전투병과에서 첫 여성 장군이 탄생했고, 여성 학군사관후보생(ROTC)도 선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 내 성 추행 사건을 근절하지 않으면 여군의 사기는 크게 저하될 것이고 역할은 제한될 것이다. 이번에 성 추행 사건을 당한 여 부사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소를 취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군 당국은 고소 취하와 관계없이 엄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 결과 문제가 있었다고 확인되면 이 장성을 엄중하게 처벌해 일벌백계로 삼아야 한다. 또 군은 일선 부대의 여군들을 대상으로 성 군기 위반 사례가 있는가를 대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우리 군의 구성은 최근들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여군이 늘어나는 것과 함께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군 내에서 더욱 다양한 사건이나 사고가 벌어질 개연성도 커졌다. 그걸 막으려면 문제가 커지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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