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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중 北대사 “美와 총결산할 때 도래”

    지재룡 중국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15일 “북한은 미국과 총결산할 때가 도래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일전불사의 의지를 밝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인터넷포털인 신화망은 이날 지 대사가 보낸 ‘최근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우리의 견해와 원칙적 입장’이란 제목의 글 전문을 게재했다. 지 대사는 “조선반도 정세는 미국의 핵도발 책동으로 최악의 국면에 처해 있다”면서 “조성된 험악한 사태에 대처해 우리는 미국과 총결산할 때가 도래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침략해 아·태지역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려는 침략적 야망을 실현하려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면서 “최악의 물리적 충돌이 당장 오늘인가 아니면 내일인가 분초를 다투는 폭발 전야의 험악한 사태가 조성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와 외무성이 성명을 발표해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행동 의지를 실제적인 군사행동으로 과시할 최종 결심을 내외에 천명했다”며 이는 정당한 자위적 대응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민군 장병과 전체 인민들은 정의의 핵무기를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미국이 걸어오는 그 어떤 형태의 도발도 그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미국과 총결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중 북한대사가 중국 매체에 북한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우리도 핵무장하자?/육철수 논설위원

    북한이 핵폭탄을 쏘네, 미사일을 날리네 하면서 협박 수위를 높이는 바람에 정신이 온통 사납다. 국영 조선중앙TV를 통해 품격이라곤 전혀 없는 저열한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저러다가 정말 무슨 일 저지르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저들의 모습이다. 외신을 보면 평양에서는 최근 전쟁 분위기와는 달리 봄맞이 치장에 한창이다. 그제 ‘태양절’(김일성 주석 생일) 행사도 의외로 조용히 끝났다. 외국 대사관의 무관 가족들이 한가롭게 시내관광을 즐기는가 하면, 여군들이 전투복에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사진도 찍혔다. 외신의 평양 르포엔 한 주민이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다. 그래서 긴장이 높아져도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터뷰도 담았다. 핵폭탄 한 발 쏘면 그걸로 끝장인데 여러 사람이 요란 떨 일 있느냐는 투다. 핵무기 덕분에 주민들도 배짱이 두둑해진 모양이다. 하기야 20년 동안 북한은 핵으로 재미를 꽤 봤다. 핵으로 적당히 겁을 주면 미국이 “말로 하자”며 쪼르르 달려오지, 한국은 쩔쩔매다가 돈 보따리를 풀어놓지…. 북한 정권에 핵무기는 흔들면 돈이 떨어지는 ‘요전핵’(搖錢核)이 된 지 오래다. 그곳 주민들이 평온한 걸 보면 그들도 핵무기가 전쟁용이 아니라 부(富)를 창출하는 도깨비방망이란 사실을 이젠 눈치챈 것 같다.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요긴하게 써먹은 나라는 북한이나 이란에 앞서 프랑스가 원조 격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유르겐 브라우어는 저서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에서 이를 소개했다. 프랑스는 1960년 알제리에서 60kt의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의 3배, 당시 소련이 보유 중이던 수소폭탄의 1900분의1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한방’으로 세계 핵 대치의 본질을 바꿔버렸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핵 독점을 깼을 뿐만 아니라 2차대전의 치욕과 베트남전 패배로 위축됐던 국가의 자존심과 장엄성을 회복했다. 재래식 군대와 무기를 대체하고도 남을 전쟁 억지력도 갖추는 등 이문이 많이 남은 장사였다는 게 브라우어의 분석이다. 그는 “핵이야말로 약소국이 강대국에 대드는 과격한 수단이자 보유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헌법에 명시까지 해서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떼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장난이 이제는 짜증스럽다. 오죽하면 여당의 중진 정치인들까지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하자”고 목청을 높이겠는가.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60% 이상이 이에 동조했다. 성질대로라면 핵무기를 빨리 만들어 북한의 못된 버릇을 당장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냉정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핵에는 핵’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그럴듯해 보이나 공멸의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미국의 핵우산 체제가 이끄는 국제질서에 순응하면 본전은 찾는다. 물론 급할 때 우리 마음대로 핵무기를 운용할 순 없지만 아직까지 억지력으론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면 수백~수천 기의 핵전력을 갖춘 미국·러시아·중국이 가만히 있겠는가. 핵무기 선택권(Nuclear Option)을 가진 일본도 덩달아 무장할 것이다. 핵무기는 이미 강대국의 기득권이 돼 버렸다.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모른다. 1960~70년대처럼 핵무기에 대한 국제 감시망이 어수룩할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전 세계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해 전쟁 억지력과 자위권을 확보한다 해도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고립된 북한 짝 나지 말란 법도 없다. 핵무기가 정치·군사·외교적으로 강력하고 유용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핵무기를 가진 어떤 나라도 감히 실전에 써먹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굳이 핵무기를 가져 이웃 나라와 불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ycs@seoul.co.kr
  • 중국 “인민해방군 230만명” 국방백서 통해 사상 첫 공개

    중국이 지난해 말 현재 230만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동안 서방 군사정보 기관 등이 비슷한 규모의 중국 군 병력을 추정하긴 했지만 중국이 스스로 병력 규모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16일 ‘중국 무장 역량의 다양화 운용’이라는 제목의 국방백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총 병력 230만명 가운데 육군은 85만명, 해군은 23만 5000명, 공군은 39만 8000명이다. 나머지 81만여명은 기타 병종으로 전략 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 무장경찰인 우징(武警), 정보정찰 등을 담당하는 민병 등으로 추정된다. 육군의 18개 집단군(군단) 편제도 공개됐다. 18개 집단군은 베이징, 선양(瀋陽), 란저우(蘭州), 지난(濟南),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청두(成都) 등 7대 군구에 2~3개씩 나뉘어 배속돼 있다. 해군은 북해·동해·남해 3개 함대로 구성됐으며, 공군은 7대 군구와 1개 낙하산 부대에 속해 있다. 백서는 중국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외부의 우려를 의식한 듯 “평화적 외교 정책과 방어적 국방 정책을 추구하고 군사적 확장을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국제적 지위에 걸맞고 국가 안보 및 발전 이익에 상응하는 강력한 군대 건설이 중국 현대화 건설의 전략적 임무”라고 규정, 군사력 강화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중국은 올해 백서 발간을 통해 미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미국을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국가는 아·태 지역에서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확대하면서 지역의 긴장을 빈번히 조성하고 있다”면서 “패권주의, 강권주의, 신간섭주의 분위기가 상승하면서 국부적인 혼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일부 이웃 국가는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양 이익이 관련된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자국과 영토 분쟁 중인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을 공격했다. 특히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겪고 있는 일본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일본이 댜오위다오 문제에서 사달을 내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진짜 사나이(MBC 일요일 오후 6시 25분) 리얼 입대 프로젝트에서는 누구도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군대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기 개성이 다른 여섯 사나이의 실제 입대기.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돌이킬 수 없다. 진짜 군대 이야기의 시작으로 사나이가 되기 위한 도전과 그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우정을 함께한다. ■글로벌 성공시대(KBS1 토요일 밤 7시 10분) 인구 1200만명에 면적만도 남한의 2.5배에 달하는 남미 최대의 도시 브라질 상파울루 주. 급격한 인구 증가와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상파울루에서는 항상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상파울루 주에서 한국인 김윤정 검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금 나와라 뚝딱(MBC 토요일 밤 8시 40분) 현수(연정훈)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유나(한지혜)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걱정을 덜어 드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직접 찾아갈 리 없는 유나 대신 꼭 닮은 몽희에게 이를 대신 부탁한다. 처음에는 거절하던 몽희는 결국 이를 수락해 유나를 대신해 할머니 문병을 간다. ■그것이 알고 싶다(SBS 토요일 밤 11시 15분) 하루가 멀다 하고 검거 소식이 지면에 실리는 대표적인 10대 범죄. 소녀들과의 하룻밤을 노리는 비열한 어른들과 그 어른들을 등치며 비열함을 배워 가는 아이들에게 범죄는 그들만의 생존 법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소년들은 세포분열처럼 범죄를 배워 다시 조직을 만들어 가고 있었는데…. ■OBS 스페셜(OBS 토·일요일 밤 8시 15분) 한라산의 시각적 아름다움과 특정 동식물의 생태를 보여 주는 데 국한됐던 기존 다큐멘터리의 한계를 극복했다. 1부에서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사계의 절경과 함께 인간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던 숨은 공간들을 심도 있게 조명한다. ■다큐멘터리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55분) 학생 1500여명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구 진형중고등학교는 누군가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엄마들의 배움터다. 지난 시절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수 없었던 우리네 엄마들의 비밀을 간직한 이곳. 늦었지만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40여년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엄마들의 뜨거운 학창 시절 3일을 엿본다.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공간적으로 부쩍 가까워진 이웃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활방식이나 소음을 둘러싼 이웃 갈등은 최근 폭력과 방화, 심지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며 ‘이웃사촌’의 정겨운 기억을 지워 가고 있다. 과연 원수가 될지도 모를 수상한 이웃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변화시킬 방법은 없는 걸까.
  • [DB를 열다] 1963년 사형당한 최영오 일병 사건

    [DB를 열다] 1963년 사형당한 최영오 일병 사건

    군부대 총기사고는 근래에도 심심찮게 발생하지만 1960년대 최영오 일병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62년 7월 8일 오전 8시, 모 부대에서 최 일병이 고참 두 명에게 M1 소총을 발사해 살해했다. 최 일병은 당시 서울대 문리대 천문기상학과에 다니다 입대했다. 그는 애인이 보내온 연서 12통을 같은 내무반의 선임병 2명이 먼저 뜯어보고 조롱하자 대들고 사과를 요구하다가 구타를 당했다. 분을 참지 못한 최 일병이 선임병들을 총으로 살해한 것이다. 군사법원은 최 일병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최 일병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백철, 박화성, 최정희씨 등 문인들과 서울대 재학생들이 구명운동을 벌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63년 3월 18일 오후 2시 40분, 서울 수색의 형장에서 최 일병에 대한 총살형이 집행됐다. 처형 직전 그는 “제가 죽음으로써 우리나라 군대가 민주적인 군대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사체인수통지서를 받아든 어머니도 아들의 뒤를 따른 것이다. 홀몸으로 행상을 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한 어머니(당시 61세)는 그날 밤 빨래를 하러 다니던 서울 마포 근처 한강의 절벽으로 가서 강물에 몸을 던졌다. 사진은 사형당한 다음 날 서울 아현동 최 일병 집에 이웃 주민들이 모여 애통해하는 모습이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지방시대] 사통팔달의 편리함/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지방시대] 사통팔달의 편리함/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미국 드라마 중에 스파르타쿠스가 요즘 인기가 있다. 로마제국이 생기기 전 로마공화정 시대가 있었다. 로마공화정 시대 제1차 삼두정치를 이끈 사람이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에게 이들은 익숙한 이름이다. 이들의 시대가 끝나고 제2차 삼두정치가 시작된다. 그중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27년 삼두정치를 끝내고 아우구스투스황제가 되어 로마제국을 건설하였다.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소설, 영화, 혹은 드라마는 지금까지 많이 나왔다. 철학자 마르크스는 그를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등, 그에 대한 평도 다양하다. 제1차 삼두정치가의 세 장군이 스파르타쿠스를 제압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지휘하고 나선 것만 보아도 그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준다. 결국 스파르타쿠스의 무리는 이들에 의해서 진압되어 죽거나 포로로 잡힌다. 역사가에 의하면 6000여명의 무리들이 십자가형을 받고 로마로 들어가는 길에 공개처형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십자가형을 받은 거리가 바로 ‘아피아 가도’(Via Appia)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바로 이 아피아 가도에서 생겨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 사람들은 전쟁을 위한 전진과 후퇴 혹은 전투의 재정비를 위해 필요한 것이 거리라는 것을 알았다. 수도인 로마에서 로마공화정 밖의 나라까지 쉽게 물자를 이동하고 공급하기 위한 거리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아피아 가도다. 그리고 이 아피아 가도를 통해 이탈리아는 로마공화정에서 로마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로마공화정 시절에 이미 거리의 중요성을 안 이탈리아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기차가 처음 놓아질 때, 우리의 선조들은 반대를 하였다. 철 덩어리가 감히 산과 들을 뚫고 지나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주’가 들어가는 도시는 모두 기차가 통과하지 못했다.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도시가 있다면 두말 할 것 없이 대전이다. 이때부터 대전은 우리나라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대전은 기차뿐 아니라 고속도로와 외곽순환도로가 완성되었으며,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모든 고속도로는 대전을 통과하고 앞으로도 통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KTX가 나온 이후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묶었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1일 생활권은 서울을 중심으로 기업인이나 사업가들의 하루 출장 권역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 5일제가 모든 노동자들의 의무화로 치닫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행과 레저가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최고 수단은 도로와 절대적인 관계가 있는 자동차가 자리할 것이다. 자동차로 1일 생활권이 가능한 도시 하면 전국에서 대전뿐이다. 이탈리아는 아피아 가도를 통해 로마제국을 건설했다. 대전은 다른 도시들이 기피할 때 도로의 중요성일 일찍 깨닫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통팔달의 도로망 마련을 통해 진정한 1일 생활권의 기틀을 오래전에 마련했다. 사통팔달이 주는 혜택은 대전에 사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 미모의 모험, 연기를 얻었고…마초의 멜로, 절제를 깨쳤네

    미모의 모험, 연기를 얻었고…마초의 멜로, 절제를 깨쳤네

    시각장애인 역 완벽 소화 ‘그 겨울… ’ 송혜교 브라운관 데뷔작은 청소년드라마 ‘신세대 보고서 어른들은 몰라요’(1995). 드라마 ‘첫사랑’(1996), ‘웨딩드레스’(1997)에선 단역이나 비중 없는 조연에 그쳤다. 그때 누구도 그녀가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1998년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백야 3.98’과 ‘육남매’에서 조금씩 얼굴을 알리더니,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주인공 오지명의 막내딸 ‘혜교’로 주연과 다름없는 역할을 따냈다. 예쁘장한 16세 소녀의 당돌함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후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했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순정녀 ‘은서’(2000), ‘올인’의 ‘수연’(2003), ‘풀하우스’의 ‘지은’(2004)이 그랬다. 하지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얼굴만 예쁜 배우”였다. 어린 나이에 외모로 톱스타에 오른 만큼 담금질의 시간이 필요했다. 5년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인 SBS 수목극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로 연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배우 송혜교(32)의 얘기다. 클로즈업된 카메라 앞에서 미세한 얼굴 떨림까지 표현하며 시각장애인 여회장 ‘오영’으로 시청자의 뇌리에 새롭게 각인됐다. 지난 3일 서울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20대에는 예쁜 여배우들이 많다. 30대는 다른 것으로 승부를 봐야할 때”라고 말했다. 완숙한 여배우의 농익은 기품이 풍겼다. 그는 “연기는 모험”이라고 정의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역할로 인기를 얻으면 제작자들은 계속 비슷한 역할만 시키더라. (배우에게)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려고 모험하지 않는다. 이번 작품은 노희경 작가가 ‘영’이란 캐릭터를 두고 제게 모험을 하신 거라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발성에 힘이 실렸고, 눈이 반짝였다. 송혜교는 ‘그 겨울’로 전작인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노희경 작가와 5년 만에 해후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의 송혜교는 노 작가가 요청한 깊고 진한 감정표현을 따라가기에 벅찼다. 연기에 대한 혹평이 이어졌다. 그래서 일부러 가시밭길을 걸었다. 미국 독립영화 ‘페티쉬’(2008년), 이정향 감독의 독립영화급 ‘오늘’(2011년) 등 규모가 작은 영화 출연을 마다하지 않았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일대종사’를 2009년부터 4년에 걸쳐 찍었지만, 편집된 영화에선 정작 6분가량만 나왔다. 송혜교는 “몇 주일간 단 두 장면만 찍고 귀국할 때도 있었다. 현장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 그만둬야 하나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년간은 연기에 바짝 목말라 있었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작품에 대한 열망은 고스란히 ‘그 겨울’에 투영됐다. 못다 푼 연기의 한을 쏟아부은 셈이다. 복지관을 찾아 시각장애인들로부터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방송에서 시각장애인을 묘사할 때, 오버액션이 너무 심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극중에서 눈이 먼 제가 직접 메이크업을 하는 연기도 했다”고 말했다. 촬영장에선 카메라가 멈추고 자리를 옮길 때도 쉬지 않고 울었다. 잠시라도 감정의 곡선이 끊어질까 염려해서다. 그렇게 시청자의 가슴을 뒤흔든 오열 장면이 만들어졌다. 노 작가도 “예전엔 마냥 애 같았는데 이번엔 여자 같았다”며 칭찬했다고 전했다. 상대역 조인성에 대해 물었다. 애정 장면이 “오글거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성씨와 동갑인 데다 2004년 같은 기획사에서 편하게 지내던 사이다. 그런데 솜사탕을 함께 먹는 장면이 너무 낯간지러워 ‘요즘 누가 저렇게 먹냐’고 감독께 항의했다”며 웃었다. 그는 박찬욱, 봉준호 등 ‘색깔 있는’ 감독들과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미 중국의 우위썬(吳宇森) 감독과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송혜교는 “저는 노력형 배우”라며 “‘친절한 금자씨’처럼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들과 전혀 다른 배역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상처 입은 남자로 변신 성공 ‘그 겨울… ’ 조인성 “외모로 승부하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버렸어요. 젊은 배우들과 경쟁하기보다는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야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스타 조인성(32).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이제 톱스타라는 수식어를 내려놓고 배우라는 옷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보였다. 2011년 5월 제대한 조인성의 복귀는 연예가의 핫이슈였다. 하지만 제대 후 복귀작품으로 고른 영화 ‘권법’의 촬영이 지연되면서 그의 공백기는 점점 길어졌다.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8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그에게 이목이 쏠린 이유다. 다행히 ‘그 겨울’은 멜로물이라는 한계에도 같은 시간대 1위로 3일 종영했다. “‘살았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다음 작품을 할 수 있게 돼서요.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주변에서 위로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죠. 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지고 세상을 너무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억지로 작품을 해서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는 싫었어요.” 그러던 시기에 그는 ‘그 겨울’의 대본을 만났고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조인성은 작품을 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순간, 모든 것을 바쳐 작품에 임했다. 유난히 클로즈업 장면이 많아 부담됐을 법도 하지만 그는 “배우가 나이 들어 가는 과정을 두려워하거나 신경쓰게 되면 더 이상해 보인다. 나 자신이 까발려지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인성은 군 제대 이후 “얼굴이 예전 같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 데 대해서도 넉살 좋게 받아쳤다. “군대 다녀온 배우들에게는 ‘어드밴티지’를 줘야 해요. 2년 동안 매일같이 행군하고 총 쏘고 유격 훈련을 했는데 멀쩡한 ‘꽃미남’ 외모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요(웃음)? 한편으로는 비교 대상의 작품이 너무 오래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의 풋풋한 얼굴로 돌아가려고 살을 빼거나 시술을 해 역효과를 내기는 싫었어요. 외모 대신 나이에 맞는 연기로 승부를 내야죠.” 그의 말처럼 대중은 아직도 영화 ‘비열한 거리’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조인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불안한 청춘의 표상이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 가슴속에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살지만 한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오수 역으로 한층 성숙하게 연기했다. “이번 작품에서 절제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노희경 작가님이 힘을 빼고 연기하는 것이 더 재밌다고 얘기해주셨어요. 예전에는 연기가 흔들려 연기 톤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런 점이 캐릭터와 잘 결부돼서 생동감 있게 느껴진 것 같아요.“ 과거에는 연기에 집중하느라 상대 배우의 대사가 잘 안 들릴 때가 많았다는 그는 ‘그 겨울’에서는 상대의 대사나 연기에 집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유가 생겼다. 시청자들의 코를 시큰하게 했던 오열 장면이 더욱 리얼하게 느껴졌던 이유다. 남매와 연인을 오가는 섬세한 감정 연기도 무난하게 소화했다. “오수는 친오빠가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오영을 여자로 느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오수가 돈을 위해 자신과 공통점을 지닌 오영을 속이는 데서 느끼는 죄책감과 비참함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시각장애인 역을 연기한 상대역 송혜교와 눈을 맞추고 연기할 수 없어서 어색하기는 했지만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는 조인성. 그는 “반사전제작제로 진행된 이번 드라마는 거의 주 5일제로 촬영했고 색 보정 등 완성도가 높아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아마 당분간은 멜로를 못하겠죠. 저도 보시는 분들도 잊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다음 작품에서는 마초에서 벗어나고 싶기는 한데 완전히 풀어지는 코미디 연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 벌써 고민이네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김운용(82)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자신의 발자취를 오롯이 모아둔 ‘김운용닷컴’(www.kimunyong.com)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었다. 약속 시간 10분을 앞두고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남색 캐시미어 코트, 맞춰 두른 고동색 에르메스 목도리는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이날은 택시법의 재의결을 요구하며 택시업계가 총파업을 벌인 날이었는데, 그는 기자에게 “택시 스트라이크 때문에 오는 길은 괜찮으셨소”라고 영어를 섞어 말을 건넸다.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첨병으로 오래 활약한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6년 IOC 위원, 1988년 IOC 집행위원, 92년 부위원장에 당선돼 활동했다. 그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 1994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 등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을 진두지휘한 그다. 좌절되긴 했지만 2001년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IOC 위원장직에 도전, 세계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올림픽 30년, 태권도 40년’ 문장 속에는 한 사람이 일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취와, 딱 그만큼의 시련이 녹아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운동과 영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소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다섯살 나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대구 만경관에서 ‘민족의 제전’이란 올림픽 기록영화를 본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어쩌면 훗날 그가 올림픽 무대의 중심에서 일하리라는 자기암시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다섯 살 위의 형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큰일이 났다”고 말해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친 김도학(1936년 별세)씨의 영향으로 어린 형제는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대구 조선민보사 기자였다가 서무부장 겸 경리부장으로 일했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즐겼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부친을 닮아 그는 다재다능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서울 욱구중학교(1945년 해방 후 6년제 경동중학교로 변경, 현 경동고)에서 공부 말고도 복싱·스케이팅·공수도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마했고, 피아노도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과목별 편차가 심했다. 영어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수학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5등 하는 게 1등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저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중에서) 특히 영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내 꿈이 외교관, 피아니스트, 국제법 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엔 방학 때 다음 학년도 책을 미리 읽고 4학년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스케치북’(워싱턴 어빙) 같은 문학 작품도 많이 읽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찾아가 보초들과 회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선교사가 세운 연희대(현 연세대)를 택하게 됐다. “그때는 (연희대가) 국제적인 학교라 외국 교사가 많아서 성경도 영어로 1주일에 3시간, 회화도 언더우드 부인이 직접 가르치는 3시간, 영어강독 3시간 등 일주일에 영어만 9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는 그가 외교관의 꿈을 이루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50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 3부(현 외무고시)에 응시한다. 응시원서 마감일인 6월 20일 대학 1학년 수료증과 인지세 2000원을 들고 고시회관에서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 전쟁이 터졌다. 시험은커녕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생은, 특히 그런 격동기를 통과하는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인 대구로 피란가지 못해 서울에 갇혀 있던 그는 9월 말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육군본부에서 국제연합 연락장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라 징집 공고가 곳곳에 나붙었는데, 국군과 미군의 공조를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19세이던 그는 연희대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가서 2학년 재학증명서를 뗀 뒤 이를 4학년으로 고치고 나이도 응시 자격인 21세로 올리는 ‘문서 위조’를 감행하면서 지원한다. 1951년 12월 그는 보병 중위로 임관해 동해안을 지키는 5사단의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발령받는다. 인생의 항로는 바뀔지언정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의 영민함 덕이었다. 영어가 나침반이 됐다. 엉겁결에 군인이 됐지만 그는 좋아하는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 외교관이 될 수 없다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활동하면 됐다. 기회는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왔다. 1953년 1월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보병학교 훈련 시험에 합격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보병학교를 다녀온 것을 비롯해 세 차례나 군사유학을 다녀왔다. “요즘 한창 얘기하는 드론(첨단 무인폭격기)을 1955년에 벌써 공부했다. 산 영어를 많이 하니까 (나를) 써먹기 좋잖아. 직업군인도 아닌데 (군대에서) 내보내지를 않았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일했다. 참모총장이 미8군과 매일 접촉해 탄약이나 기름을 지원받던 때였으니….” 1960년 4·19 혁명 당시엔 계엄사령관이었던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일했고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송 장군이 내각수반(총리)에 오르면서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8월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돼 워싱턴으로 갔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와대에서 미국담당 1급 비서관으로 일하라는 전갈을 받고 귀국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리면서 경호실 보좌관(차장 1급)으로 발령이 난다. 그 뒤 6년 동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다. 조금 길지만 그의 육성 증언을 옮겨본다. “장군을 맨 처음에 뵌 건 1954년 2군단 소속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사령관을 할 때였다. 나는 막 미국 유학을 다녀온 상태였다. 세 번째 유학을 마치고 1군사령부 비서실에 있을 때 그분은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비서실이 참모장 소속이었다. 그때 장군들은 주말이 되면 자유당에 ‘사바사바’하러 다녔는데 박 장군은 안 그랬다. 휘하에 소령이나 대위들 데리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우리를 만나면 ‘김 소령 어디가, 한 잔 할래?’ 하고 말도 건넸다.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판공비를 본인이 안 쓰고 다 나눠줬는데, 나도 많이 얻어 썼다.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는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상관이었던 송요찬 장군이 1963년 동아일보에 ‘군은 민정이양하고 복귀하라’는 성명서를 낸 뒤 구속됐잖나. 그걸 풀어주고 송 장군이 나온 뒤에 딸을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시키는 걸 도와줬다. 자신이 한 번 친 사람들도 후에는 명예회복을 해줬다. 순경 시켜서 ‘누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갖다주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내가 출장 다녀오면서 여비를 털어서 카디건 같은 걸 사오면 ‘이런 거 왜 사왔어’하며 나무라셨다. 선물 같은 건 당연한 건 줄 알고 ‘좀 더 사오지’ 할 법도 한데, 그 정도로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5·16 후에는 박 장군이 내각 수반으로 왔을 때 의전비서관으로 있었다. 1968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가서 6년간 모시다가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왔다. 경호실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었지만 막상 가보니 (경호실이) 권총만 차는 데가 아니고 미국 식으로 서비스, 즉 공공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도 해야 하고 사전 경비를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하고…. 경호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심부름(군사원조 관련)도 많이 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책임지고 나왔다. 사표를 냈더니 박 대통령이 부르더라고. 장례식 때문에 좀 가다듬고 나서 부르는 거라면서 봉투를 줬다. ‘다시 부를 테니까 가 있어’ 했다. 그런데 그 후에 자신이 암살당했으니…나는 (청와대를) 나와서 태권도만 열심히 했다. 1971년에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제의도 들어오긴 했는데 내가 고사했다. 4·19 때 자유당이 하루저녁에 무너지는 걸 다 봤는데…절대 안한다고 했다.” 육 여사 묘소에 참배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김 전 부위원장은 1971년 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정책 컨트롤타워는 무슨? 청문회 컨트롤타워 세운 미래부

    1일 열리는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미래부와 산하기관이 모두 비상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31일 정부과천청사와 대전 대덕단지 정부출연연구소는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예상 질문지와 답변서를 만드는 과정은 이미 2주일 가까이 이어져 왔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인사 청문 준비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각 부서와 연구소에 상시 연락이 가능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전의 한 출연연 관계자는 “주요 간부들은 주말 내내 24시간 비상연락망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주말 동안 대부분의 기관에서 군대 불침번처럼 시간대를 정해서 당번을 이어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래부가 최 후보자의 청문에 부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사령탑 없이 부처가 운영될 수는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재 미래부는 장관의 재가가 필요한 국·실장급 인사는 전혀 하지 못했고 과장급과 사무관급 이하 직원들 인사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 올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부처 개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이후부터 공무원들이 업무에서 사실상 손을 놓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3개월째 선장 없는 표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부의 한 간부는 “조직이 전혀 굴러가지 않는 상황”이라며 “신설 부처는 정권 초창기에 뚜렷한 로드맵을 세워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 후보자가 낙마라도 한다면 진짜 심각한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내부의 공통적인 우려”라며 “땅투기나 주식보유 논란 등이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관 청문회 대응에 산하 기관까지 모두 동원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정책 검증은 어디까지나 장관의 업무능력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부처와 산하기관 전부가 검증을 받는 꼴”이라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벌금 715달러만 내면 군대 안가도 되는 나라?

    벌금만 내면 군대 안가도 되는 나라? 페루 정부가 징병제도를 부활하는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페루 정부는 수천여명의 신병 부족 현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오는 5월부터 징병제를 재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18세 이상의 남녀를 대상으로 할 계획이나 문제는 대상자 중에서 벌금 1850 솔(미화 715달러)만 내면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이것은 부자들은 병역을 회피하고, 가난한 사람만 군대에 가게하는 부자 우대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군은 이 조치는 부족한 군인 충원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로 차별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이 문제에 대해 증언하도록 국방장관을 소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엘 코메시오 신문은 사설에서 “이 정책은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층이며 최저임금이 월 750솔(미화 290달러)인 페루에서 벌금을 낼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당국은 비판이 거세지자 이웃 콜롬비아도 시행하는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합참의 호세 퀘토 장군은 국영 안디나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원병제로 전환한 이후 입대 희망자가 급격히 감소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다. 인터넷 뉴스팀
  • [DB를 열다] 1971년 위수령으로 연세대 백양로를 점령한 무장군인들

    [DB를 열다] 1971년 위수령으로 연세대 백양로를 점령한 무장군인들

    위수령의 뜻은 육군 부대가 한 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그 지역의 경비, 군대의 질서 및 군기(軍紀) 감시와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대통령령으로 풀이된다. 위수령은 1965년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대학가의 시위에서 처음 발동되었다. 대학생들의 반대 데모가 계속되자 당시 윤치영 서울시장이 요청해 서울 일원에 위수령이 내려졌다. 법적인 근거가 없던 위수령에 근거를 부여하고자 만든 것이 1970년 대통령령 제4949호로 본문 22개조와 부칙이다. 이 법에 따른 최초의 위수령은 1971년 10월 15일 발동됐다. 이 무렵 서울의 대학가에서는 교련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농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정부는 교련 시간을 단축해 주고 교련을 이수한 학생들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유화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교련 반대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데모로 흐트러진 학원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군을 투입해 달라”고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요청했고 육군은 이를 받아들여 위수령이 내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학원질서 확립을 위한 특별명령’을 발표, “교련 반대를 빙자한 불법데모로 질서가 파괴된 대학에는 학원의 자유 자주 자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찰은 학원 안에 들어가서라도 데모 주동학생을 색출하고 안 되면 군을 투입해서라도 질서를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는 “학생들의 불법적 데모, 성토, 농성, 등교거부 및 수강방해 등 난동은 일체 용납할 수 없다”면서 “주동학생을 전원 잡아들여 학적에서 제적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이날 정오 무렵이 되자 공수특전단과 수도경비사령부 등의 무장한 군인들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캠퍼스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강의실을 덮쳐 학생들을 연행하고 달아나는 학생들을 따라가 폭행했다. 사진은 군인들이 대학 캠퍼스에 진주한 지 9일째인 10월 23일 연세대 교정의 모습이다. 학원을 군홧발로 짓밟았던 군인들은 그해 11월 9일에야 철수했다. 두 번째 위수령은 1979년 10월 부마사태 당시 마산 일원에 내려졌다. 김영삼씨가 신민당 총재에 당선되자 여당은 권한정지가처분을 신청하고 급기야 제명해 버렸다. 이에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반대 시위가 결렬하게 일어나자 위수령을 또 발동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소인기(小忍飢)하라/임창용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세종로의 아침] 소인기(小忍飢)하라/임창용 정책뉴스부 전문기자

    조선 광해군의 난정(政) 때 한 선비가 집에서 친구들과 바둑을 두며 놀았다. 그 부인이 친구들을 위해 수제비라도 끓이려고 했다. 그런데 땔나무가 없어 궤짝을 쪼갠다는 것이 그만 칼로 가슴을 찍고 말았다. 비명에 나갔던 선비는 들어오면서 ‘가난이 죄’라고 탄식했다. 이를 두고 한 친구는 가난이 원수인 줄 이제 알았느냐면서 나간 뒤 다시는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 그 선비는 뜻을 바꿔 벼슬길에 나갔고, 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는데 숲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잠시 멈추게 했다. 이어 닭 한 마리와 술병을 내놓고 함께 나누었다. 그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 마음이 변한 줄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올라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小忍飢), 소인기하라’고. 위 고사는 시인 조지훈의 수필 ‘지조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생뚱맞게 옛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은 새 정부의 공직 후보자들이 한 사람씩 낙마할 때마다 이 고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벌써 공직 후보자로서 일곱 번째 낙마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은 듣기에도 민망한 성 접대 동영상 의혹으로 공직을 마감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상을 위해 일한 죄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무분별한 처신과 재산 축적 의혹으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아들 병역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뜻을 접었다. 낙마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해 보이는 것은 살아오면서 작은 욕망과 유혹을 참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단순한 욕망이고 유혹이다. 조금만 사려깊다면 피할 수도 있었다. 재산을 해외에 남모르게 보관하고 싶은 유혹, 무기중개상이 주는 고문료를 받는 짭짤함, 특정업무경비를 개인 계좌로 받아 마음대로 쓰고픈 달콤한 유혹, 귀한 아들을 험한 군대에 보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 등등. 이런 욕망과 유혹에 넘어가는 게 떳떳하지 못함을 후보자들이 몰랐을 리 없다. 더구나 이들은 선비처럼 궁색하지도, 처지가 곤란하지도 않았다. 이미 남부럽지 않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정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이들은 수많은 의혹 제기에도 계속 버티다가 여당마저 외면하면 그제서야 손을 들었다. 그만두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반성보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내심 ‘조금만 더 참았으면, 조금만 더 사려깊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찌 없을까. 가난을, 배고픔을 조금만 더 참았으면(小忍飢) 하고 선비가 후회했듯이 말이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엘리트들의 자기관리 소홀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위 공직 후보군에 들 만한 부류는 그리 많지 않다. 관료, 정치인, 법조인, 기업인, 학자, 언론인 등이 고작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큰 뜻을 품고 있다면, 항상 되뇌면 좋겠다. 소인기, 소인기하라고. sdragon@seoul.co.kr
  •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진해 군항제 새달 1일 개막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진해 군항제 새달 1일 개막

    전국 최대 벚꽃축제인 제51회 진해 군항제가 군항과 벚꽃 도시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오는 31일 전야제와 개막식을 시작으로 다음 달 10일까지 화려하게 펼쳐진다. 다음 달 5일 오후 8시 진해루 해상에서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멀티미디어 해상 불꽃쇼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6일 오후 4시에는 북원로터리에서 중원로터리 사이 시가지에서 충무공 이순신 승전행차가 열린다. 6~8일 진해공설운동장에서는 우리나라 육·해·공군과 해병대 군악의장대, 미8군 군악대 등 13개팀 700여명이 참가하는 진해군악의장페스티벌이 열려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등 군부대가 1~10일 벚꽃이 만개한 영내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거북선과 함정 공개, 의장시범, 전시회 등 자체 행사를 한다. 벚꽃 명소인 여좌천 일대에서는 행사 기간 매일 오후 6시부터 레이저쇼를 비롯한 불빛축제가 열려 꽃과 빛이 어우러진 환상의 야경을 연출한다. 10일 오후 7시 30분 옛 육군대학에서 KBS열린음악회가 열리며 전국예술경연대회, 진해벚꽃예술제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행사 기간 내내 이어진다. 6일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해루 해상에서 창원해양경찰서가 해경함정 8척과 구조선 10척, 헬기 2대, 제트스키 5대 등을 동원해 대규모 해양인명구조시범 행사도 선보인다. 행사 기간 교통편의를 위해 벚꽃관광순환열차가 마산역~창원역~신창원역~진해역을 하루 14차례 오가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진해역을 오가는 벚꽃관광 임시열차도 운행된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천안함 3주기 날… 北, 최고 전투태세 도발

    천안함 3주기 날… 北, 최고 전투태세 도발

    북한이 26일 전략미사일 군 부대와 장거리 포병 부대를 포함한 모든 야전 포병군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겠다고 선포하고 “우리 군대의 초강경 의지를 물리적 행동으로 보여 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1호 전투근무태세’를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국방부는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발효한 것으로 분석했다. 북한은 전면전 및 국지도발 시 가장 먼저 장거리 공격을 펼 수 있는 미사일 군부대와 장사정포 공격부대를 지목해 지침을 내리고 공격 대상도 ‘미국 본토와 하와이, 괌을 비롯한 태평양 미군기지와 남한’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전시상황을 연출하면서 이날이 천안함 사건 3주기인 점을 이용해 긴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최고사령부 성명을 통해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 존엄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대응 의지를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과시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첫 순간 타격에 모든 것이 날아가고 씨도 없이 재가루로 불타버리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 외무성 성명에서 미국과 남한의 도발 책동으로 조선반도(한반도)에 일촉즉발의 핵전쟁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공개 통고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즉각 대비태세에 들어갔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군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며 “적의 도발 시 강력하고도 단호하게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이런 내용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어서 국가안보실에서 의도를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군 소식통은 “아직까지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깔깔깔]

    ●남자와 여자에 대한 통계 ▶남자 1. 남자들의 90%가 목욕탕에 가서 친해지게 된다. 2. 군대를 다녀온 남자의 73%는 악성무좀에 걸려 있다. 3. 지나가는 여자들의 점수를 매기며 시간을 때워보지 않은 남자는 단 8%. 4. 하루쯤 팬티를 갈아입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38%가 된다. ▶여자 1. 모든 여자들의 85%가 밤에는 왠지 모르게 예뻐 보인다고 생각한다. 2. 20대 여자들의 83%는 순결을 준 남자가 첫사랑이라고 믿는다. 3. 여자들의 90% 이상이 같은 값이면 값비싼 뮤지컬 티켓보다, 귀엽고 앙증한 명품 파우치를 원한다. 4. 여자들의 85%가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 푸에블로호 나포 45년… 美·北 ‘기싸움’

    1968년 북한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된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놓고 미 콜로라도주와 북한이 끈질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따르면 콜로라도주 하원은 최근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1월 23일을 ‘푸에블로호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지난 2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연방하원 의장 등에게 진정서 형식으로 전달했다. 결의안은 푸에블로호가 콜로라도의 도시인 ‘푸에블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인연을 소개한 뒤 “올해로 나포 45주년을 맞는 푸에블로호를 미국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콜로라도주 하원은 지난해 1월에도 푸에블로호의 반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푸에블로 지역 매체 ‘치프테인’ 등에 따르면 결의안 채택 두 달 뒤 케이스 스워드피거(공화) 콜로라도주 하원의원 앞으로 평양을 발신지로 한 우편엽서가 날아들었다. 엽서는 푸에블로호를 ‘간첩선’이라고 지칭한 뒤 “우리는 백만년이 지나도 푸에블로호를 반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돌려받고 싶으면 직접 와서 가져가 봐라. 우리 군대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환대를 선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비아냥댔다. 이 엽서의 한쪽 면에는 두 명의 북한 군이 소총 개머리판으로 한 미군을 가격하는 섬뜩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결의안을 발의했던 스워드피거 의원은 지난해 3월 2일 하원 본회의장에서 엽서를 공개하면서 “결의안에 대한 답장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여유를 부린 뒤 “우리는 푸에블로호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DB를 열다] 1971년 교련 검열을 받고 있는 여고생들

    [DB를 열다] 1971년 교련 검열을 받고 있는 여고생들

    교련은 일제의 유산으로 광복 후에도 잠시 시행되다 중단되었다. 1968년 1·21 사태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이 교련을 부활시킨 계기가 됐다. 1969년부터 대학과 남자 고교에서 교련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얼룩무늬 교련복을 입고 제식 훈련과 M16 목제 모형 총을 이용한 총검술, 화생방, 각개전투 등 군사 훈련과 함께 실기 검열을 정기적으로 받았다. 학교와 가까운 부대로 1일 입대 훈련도 갔다. 사격훈련, 소풍을 이용한 무장 행군, 겨울방학 야영 훈련 등 군대 훈련과 다름없는 강도 높은 훈련도 교련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여학생도 교련 교육을 받았다. 남학생보다 늦은 1970년 2학기부터 여학생 교련이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구급법 등 간호 교육 중심이었지만 점차 화생방·제식훈련 등 남학생들이 받는 교육도 받았다. 사진은 1971년 7월 20일 하복을 입고 검열을 받고 있는 서울의 어느 여고 학생들의 모습이다. 치마저고리나 원피스를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여선생님들의 모습이 더 어색해 보인다. 교련 교사는 예비역 대위나 소령 출신, 간호사관학교 출신이 맡았다. 교련은 1993년 5월 이론 중심으로 개편되고 1997년에는 선택과목으로 바뀌어 사실상 폐지되었고 이름도 2011년 ‘안전과 건강’으로 변경됐다. 현재도 이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심야 ‘애국가 시청률’에 울고웃는 방송

    최근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는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들이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같은 시간대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방송되는 오락 프로그램 시청률은 2~3%를 오간다. 케이블과 종편에선 1% 이상의 시청률을 지상파의 15% 이상 시청률에 견줘 ‘대박’이라 부른다. 지난 19일 동시간대 1위 SBS 토크쇼 ‘화신, 마음을 지배하는 자’(6.9%·이하 닐슨코리아)를 비롯해 MBC ‘PD수첩’(4.7%), KBS2 ‘뮤직뱅크 인 자카르타’(3.3%)는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다. 20일 방영된 SBS ‘짝’(6.9%),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6.0%), KBS2 ‘추적60분’(3.8%)도 마찬가지. 21일의 KBS2 ‘해피투게더’(8.2%), SBS ‘자기야’(7.2%),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스페셜’(2.8%)도 사정은 비슷했다. 흔히 ‘애국가 시청률’로 불리는 지상파 시청률 3% 이하의 프로그램들도 속출했다. 종편 심야 프로그램은 승승장구다. 21일 방영된 채널A ‘웰컴투시월드’(2.7%), MBN ‘천기누설’(2.7%), JTBC ‘썰전’(1.4%), TV조선 ‘아시아헌터익스트림’(1.4%)은 모두 고른 시청률을 나타냈다. 케이블인 tvN의 월화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은 첫 방영부터 시청률 2%에 육박했다. 최근 이영자가 출연한 ‘SNL코리아’는 4% 가까운 시청률을, 군대 시트콤인 ‘푸른거탑’, ‘막돼먹은 영애씨’ 등도 꾸준히 2%를 넘나들고 있다. 이는 종편과 케이블이 지상파에선 다루기 힘든 정치, 사회 풍자와 19금 유머 등을 앞세워 틈새를 노린 덕분이다. 한 케이블 예능 관계자는 “능력 있는 PD들을 영입하고 꾸준히 투자를 늘린 것도 한 이유”라며 “시청자가 원하는 부분을 꼭 짚어주기 때문에 점차 더 인기를 얻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커버스토리-협동조합 석달] 40년 된 순대공장 처분하려던 나창업씨, 협동조합서 길을 찾다

    [커버스토리-협동조합 석달] 40년 된 순대공장 처분하려던 나창업씨, 협동조합서 길을 찾다

    “이제 한계야.” 며칠 전 40년 전통의 순대 공장을 정리할 마음을 먹은 나창업(53)씨. 할머니 대부터 이어져 온 가업을 끊는다는 생각에 착잡해진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술친구 김협조씨의 번호를 눌렀다. 몇 잔이 오가자 창업씨가 속내를 털어놨다. “벌이는 반 토막인데, 재료값과 인건비는 계속 올랐어. 평생 할 줄 알았는데 결국 공장 내놓았어.” 협조씨의 표정도 어두웠다. “나도 3년 전 회사 그만두고 차렸던 프랜차이즈를 정리하기로 했어. 툭하면 인테리어 공사 하자고 하고, 장사 좀 되는가 싶으면 물량 떠넘기고, 본사 횡포에 버틸 수가 없어서….” 각자 생각에 잠겨 몇 잔을 더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협조씨가 무릎을 쳤다. “창업아, 공장 정리하지 말고 근처 순대 공장이랑 힘을 합쳐서 요즘 각광받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봐라. 프랜차이즈 대신 무엇을 할까 연구하다가 찾아낸 해법인데 네가 하면 되겠다.” “협동조합?” 창업씨도 협동조합법이 생겼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 지난해 12월부터 다섯 명만 모이면 출자금 규모나 업종에 관계없이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됐어. 공익활동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장관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영리를 추구하는 보통의 협동조합은 시·도지사에게 신고만 하면 돼.” “에이, 다른 사람들과 동업했다가 의견이 틀어지면 손해만 보지 않겠어?” 창업씨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협조씨의 열정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 조합원은 출자자인 동시에 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야. 주식회사는 많이 출자한 사람이 큰소리치고 배당도 많이 받지만, 협동조합에서는 서비스 이용을 많이 하는 조합원이 그만큼 이득인 거야. 의견을 조율할 때는 각자 출자한 규모에 관계없이 1인 1표가 원칙이지. 탈퇴하게 되면 협동조합에서 출자금을 돌려주게 돼 있어.” “경영에 내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는 건 매력적이네. 하지만 근본적으로 순대가 많이 팔려야 하는데 협동조합이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잖아.” 망설이는 창업씨를 보며 협조씨는 그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공감했다. “만약 조합원인 다른 공장과 재료를 공동구매한다고 생각해 봐. 싸고 안정되게 구할 수 있겠지. 대기업이 순대 시장에 뛰어들려고 하면 조합원들이 한목소리로 성토할 수도 있어. 이런 장점이 있으니까 정부도 우리 같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에게 협동조합을 권하는 것 아니겠어.” 듣고 있던 창업씨의 표정이 갈수록 진지해졌다. “순대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협동조합을 고민해 볼 수도 있어. 재료 공동구매가 목적이라면 소비자협동조합이고, 유통·판매를 목적으로 직원들이 모이면 직원협동조합이 되겠지. 공동판매에 중점을 둔다면 사업자협동조합이야. 이익이 나면 그 돈을 설립 목적에 맞춰 쓰면 돼.” “흠…. 그렇지만 협동조합을 한다고 적자를 보던 사업이 다시 살아날까.” 지난 몇 년간 공장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고생한 기억 때문에 창업씨는 망설였다. “자네 선키스트 들어봤지. 다들 오렌지 주스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협동조합 명칭이야. 미국의 한 협동조합에서 생산하는 주스인 거지. 몇 년 뒤 자네의 협동조합이 명품 순대를 해외에 수출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나. 그러면 술 한잔 사야 하네.” “어차피 사업을 접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공장 사람들에게 제안이라도 해볼까.” 3년 전 돼지 구제역이 발생해 순대 재료인 돼지 소장 가격이 폭등했을 때 거래처에 항의하러 갔다가 마주쳤던 다른 공장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느새 창업씨는 “얼마를 출자해야 하지”라고 묻고 있었다. 협조씨는 “얼마 이상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어. 조합원 마음대로야”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협동조합 박사가 됐나?” 한결 편해진 얼굴로 술집을 나서며 창업씨가 협조씨에게 물었다. “이번에 내가 손녀를 봤잖아. 애 부모는 직장에 나가니까 아기를 할머니가 봐야겠구나 각오했는데, 글쎄 애 엄마가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더니 거기에 맡기는 거야. 회사를 차릴 수 있는 영역이라면 협동조합이 안 되는 분야가 없더군. 외국은 이미 역사가 100년이 넘었대. 물론 섣불리 뛰어들면 실패하는 것은 협동조합이고 일반 사업이고 똑같아. 뜻 맞는 사람끼리 시장조사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해.”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이 기사는 2011년 설립된 한국순대산업협동조합 사례를 토대로 작성했다. 인물과 상황은 가상이다. 순대산업협동조합은 설립 첫해 대기업의 순대시장 철수라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결정을 이끌어 냈다. 현재 국내 순대 생산량의 70%를 공급하며, 군대와 학교에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 한부모가족 자녀 병역 기간만큼 지원 연장

    한부모 가족 자녀에게 21~24개월의 병역 의무 복무 기간만큼 지원을 연장해주도록 법이 바뀐다. 여성가족부는 18세 미만 또는 취학 시에는 22세 미만까지만 지원하는 기간을 군 복무 시 21~24개월을 연장하는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22일 입법예고한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은 배우자 없이 홀로 아동을 양육하는 한부모 가족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지원하는 법으로, 한 달에 5만~15만원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재는 지원 대상 ‘아동’ 범위를 만 18세 미만으로 하되 취학 시에는 22세 미만까지로 하고 있어 군대를 다녀오면 22세를 넘게 돼 한부모가족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고, 대학교 등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와 함께 한부모가족 복지 급여의 부정 수급을 막고자 가족관계등록 전산정보자료 등을 주기적으로 조사할 수 있도록 근거 조항을 두고, 금융재산 조사 대상도 보호 대상자뿐 아니라 나머지 가족 구성원도 포함하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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