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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첫 여성 보훈처장’ 피우진은 누구? “여군 헬기 조종사”

    ‘사상 첫 여성 보훈처장’ 피우진은 누구? “여군 헬기 조종사”

    국가보훈처 사상 첫 여성 처장에 임명된 피우진(61) 예비역 중령은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피 신임 처장은 여군 헬기 조종사 출신인 동시에 유방암 투병으로 길고 긴 법정 투쟁 끝 군에 복귀한 전력도 갖고 있다.피 신임 처장은 1979년 소위로 임관해 특전사 중대장을 지냈고, 이후 육군 항공병과로 자원해 고된 훈련을 거쳐 1981년 여성 헬기 조종사가 됐다. 육군 205 항공대대 헬기 조종사를 지내며 스스로 힘으로 ‘유리 천장’을 뚫고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병마를 이겨냈지만, 군 신체검사에서 장애 판정을 받고 2006년 11월 강제 퇴역됐다. 국방부의 강제 퇴역 조치에 맞서 인사소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피 중령의 강제 퇴역 조치는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군의 지위 문제를 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결국 국방부는 소송에서 이긴 그녀의 손을 들어주고 2008년 5월 복귀 명령을 내렸다. 이후 2009년까지 육군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을 지냈다. 강제 퇴역 조치 이후 여러 차례 소송을 통해 군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과정은 한 여성의 승리라는 차원을 넘어 복무 중 심신장애를 얻을 경우 원치 않은 전역을 해야 하는 우리 군의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방부는 피 중령 사건이 법원으로 확대되자 2007년 8월 ‘심신장애 군인 전역 및 현역복무 기준’을 전면 개정해 심신장애 1~9급으로 판정되어도 본인 희망시 각 군 전역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계속 복무할 수 있도록 바꿨다. 그는 2006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여군으로서 경험담을 써내려 갔다. 그는 저서에서 대위 시절 여군 하사(부사)관을 군사령관 술자리에 보내지 않아 군사령관의 노여움을 산 일, 2000년 사단장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 여군 장교를 돕고자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일화 등을 소개했다. 2008년 진보신당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진보신당의 심상정 의원 같은 여성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여군 예비역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선언 회견에서 지지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청주(61) ▲청주대 ▲건국대 대학원 체육교육학 ▲소위 임관 ▲헬기 조종사 ▲중령 예편 ▲진보신당 제18대 국회의원 후보(비례대표) ▲육군항공학교 교리발전처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10대 청년들에 후추 스프레이 뿌린 이유?

    경찰 10대 청년들에 후추 스프레이 뿌린 이유?

    미국 10대들의 힘겨운 고교 생활? 최근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com)에는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형사 사법 프로그램(Criminal Justice Program)을 체험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소개됐다. 영상에는 프로그램을 위해 학교에 초빙된 경찰관이 벽 쪽에 학생들을 세워 놓고 범죄자 제압용 후추 스프레이를 얼굴에 살포한다. 얼굴에 후추 스프레이를 맞은 학생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괴성을 지른다. 영상을 소개한 이는 “아들의 학교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범죄 과학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며 “학생들은 후추 농도가 약한 것과 센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은 센 것을 선택했다. 이 영상이 그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형사 사법 프로그램을 통해 고등학생들에게 응급처치 및 심폐 소생술 등의 교육을 실시하며 이 프로그램을 마친 학생들은 범죄학 관련 대학에 진학하거나 지역 보안관이나 경찰, 군대로 취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Liveleak.com / News&Politics&Video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외교 실패가 뿌린 적대의 씨앗/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외교 실패가 뿌린 적대의 씨앗/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동맹국의 흔쾌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동맹국과의 외교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를 가꾸어야 하는 이유다. 플루타르코스(46?~120?)의 ‘비교열전’은 이런 철칙에서 벗어난 그릇된 외교로 인해 동맹국에서 증오를 받고 급기야 전쟁의 씨앗을 뿌린 사례를 전한다.때는 기원전 462년이다. 스파르타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갈라지고 타이게토스 산의 바윗돌이 굴러 떨어지는 강진이었다. 온 시민들이 인명과 재물을 구하느라 아수라장이 되자,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던 메세니아의 농노인 헤일로타이(heilotai)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파르타를 공격했다. 반란군의 힘이 거세져 자신들의 군대만으로는 진압할 수 없게 되자, 스파르타는 인근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아테네에까지 지원군을 요청했다. 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체결한 ‘그리스 동맹’이 그 근거였다. 스파르타의 구원 요청을 받은 아테네는 파병 여부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평소 스파르타의 강건한 기풍과 검약의 풍습을 자주 칭찬할 만큼 스파르타에 우호적이었던 아테네 최고의 장군 키몬(BC 510?~449)의 강력한 호소에 설득되어 아테네는 중무장 보병 4000명을 파병했다. 스파르타인들은 막상 키몬이 통솔하는 용맹스럽고 질서 정연한 아테네군을 보자 그만 겁을 집어먹었다. 혹 자유민으로 구성된 아테네군이 스파르타가 노예로 삼은 헤일로타이들이 같은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국가들은 그리스인을 노예로 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으니. 또 아테네인들의 자유로운 기풍이 헤일로타이들에게 자유의 열망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무슨 이유였는지 스파르타인들은 자세한 해명도 없이 아테네군이 정변을 일으키려 한다는 누명을 씌워 그들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이는 외교 관례에 어긋난 파렴치한 행위였다. 스파르타인들이 원군을 불러놓고 나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도로 쫓아내자 아테네인들은 그들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에 분노한 아테네 민중에 의해 키몬은 10년간 도편 추방까지 당했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혈맹이던 양국은 이 일로 신뢰가 깨졌고 적대적이 되었다. 훗날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에서 맞싸우게 만든 씨앗인지도 모른다.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가는 북한에 대적하고 자유통일을 이루는 도정에 한·미 공조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미국 조야의 견제 목소리는 우리 정부의 섣부른 대북 유화 정책을 경계하는 신호다. 혈맹의 신뢰를 잃지 않는 신중한 외교가 필요하다. 신뢰를 저버린 스파르타의 외교적 실패를 거울삼을 일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박근형 “검열 눈치 본 적 없다… 판단은 관객 몫”

    박근형 “검열 눈치 본 적 없다… 판단은 관객 몫”

    관객과 대화서 ‘블랙리스트’ 소회 밝혀 도종환 “새 정부, 지원하되 간섭 않을 것”박근혜 정부의 일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 한가운데에 있었던 박근형이 연출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다시 올랐다. 박 연출은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담은 연극 ‘개구리‘를 공연했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을 문제 삼아 이미 지원이 결정됐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제외하라고 심사위원들을 압박해 탈락시켰고, 2015년 9월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런 내용을 폭로하며 블랙리스트 논란이 시작됐다. 예술 검열 논란의 도화선이 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네 가지의 에피소드를 교차 편집해 국가폭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2016년 한국 경남에서 병역 제도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하고 무장 탈영한 병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45년 일본의 자살특공대 병사에 지원한 조선 청년들,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 식품납품업체 일을 하다 무장단체에 납치된 평범한 남성,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초계함 선원들의 이야기까지 각각 다른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통해 군대, 전쟁, 국가에 의해 뭉개진 군인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다. 지난해 초연 당시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고 한 차례 추가 공연을 할 정도로 관객의 호응이 좋았다. 일본에도 초청돼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연말 주요 연극상을 수상하며 ‘뜨거운 작품’임을 입증했다. 새달 4일까지 서울 공연을 마치고 나면 인천, 성남에서도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근형 연출은 지난 13일 공연이 끝난 후 ‘검열에 대해 말한다’를 주제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소회를 전했다. 그는 “제가 만든 연극이 관객들에게 울림이 있을까 그리고 작품 속에서 내가 이 말을 과연 하고 싶은가 이 정도만 저 스스로 약속을 하고 작업을 하는 편”이라며 “그것을 제외하고 외부의 검열에 대해 눈치를 보는 적은 별로 없었다. 작품에 대한 가장 제대로 된 판단은 관객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관객으로 공연을 지켜본 도종환 의원은 “정부가 할 일은 ‘예술가들에게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면서 “새 정부에서는 이념적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에릭, “‘삼시세끼’ 때 빠르면 점심부터 술 마셨다” 폭소

    에릭, “‘삼시세끼’ 때 빠르면 점심부터 술 마셨다” 폭소

    그룹 신화 에릭이 ‘삼시세끼’ 당시를 회상했다. 16일 방송된 네이버V앱 ‘신화 만 18세’ 비하인드 에피소드에서 신화 멤버들은 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동완은 “이태원은 위험한 게 다른 데는 나가면 정신 차리게 되는데 이태원은 다 미친 사람들이라 다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에릭은 “나는 (앤디) 군대 휴가 나왔을 때 그게 마지막이다. 주로 집에서 먹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진은 “나는 기분 좋게 먹고 들어와서 자던가 한다. 혼자서 먹으면 너무 센티해진다”고 자신의 스타일을 전했다. 이날 일부 멤버들이 라면을 먹겠다고 말하자 에릭은 “나는 그냥 계속 먹는다. 배부른데 계속 많이 먹는다. ‘삼시세끼’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밥 먹고 배부른데 시간 때문에 또 밥 먹고 술 먹으니까 안주 먹고. 술은 빨리 먹으면 점심때부터 먹고 보통은 저녁 준비할 때부터 먹는다”고 덧붙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입대 D-1’ 주원, 연인 보아 반응은? “건강히 잘 다녀오라더라”

    ‘입대 D-1’ 주원, 연인 보아 반응은? “건강히 잘 다녀오라더라”

    배우 주원이 군 입대를 앞두고 연인 보아를 언급했다. 주원은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에서 열린 새 월화드라마 ‘엽기적인 그녀’(극본 윤효제/연출 오진석)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보아의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견우 역을 맡은 주원은 “첫 방송을 할 때 쯤에는 군대 선임들과 함께 있을 것 같다. 선임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저보다 연서나 윤혜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사실 군대에 안 가봐서 잘 모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입대까지 하루 남은 만큼 공개연인 보아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주원은 “보아는 건강히만 잘 다녀오라고 해줬다”고 전했다. 한편 ‘엽기적인 그녀’는 2001년 개봉된 차태현과 전지현 주연의 영화를 청춘 사극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귓속말’ 후속으로 오는 29일 첫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의 절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 보니

    문재인 대통령의 절을 받는 사람이 누군가 보니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사진으로 되짚어 봤다.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 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 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 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 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 결과를 조용히 지켜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 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 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이 표창을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 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끝자락을 함께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다.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시 정보] 식사후 1시간씩 4시간 ‘식터디’… 司試·법원行試 둘 다 붙었다

    [공시 정보] 식사후 1시간씩 4시간 ‘식터디’… 司試·법원行試 둘 다 붙었다

    1963년부터 54년간 시행된 사법시험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올 제59회 사법시험은 1차 시험이 실시되지 않았다.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222명 가운데 첫번째 2차 시험에서 탈락한 응시생 200명을 대상으로 다음달 21~24일 2차 시험을 진행한다. 지난해 22명만이 최종 합격했다. 올해 최종 선발 예정 인원은 50명이다. 합격자는 10월 12일 발표되며 최종 관문인 3차 면접 시험은 11월 1~2일 이틀 동안 진행된다. 최종 합격자는 같은 달 10일 확정·발표된다. 서울신문은 한 달 정도 남은 마지막 사법시험 2차를 앞두고 지난 3월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지난해 합격자 2명으로부터 합격비결, 수험생활 등을 들어봤다.# 지방대생들이여, 나를 보고 용기 가져라 “‘지방대생이니까 난 안 될 것이다’며 지레 짐작하는 후배들의 생각이 저를 보며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6년이 넘는 수험기간 끝에 고시 2관왕을 이룬 권병철(31)씨는 14일 이렇게 밝혔다. 영남대 법학부를 졸업한 권씨는 지난해 치른 사법고시와 법원행정고시에 최종 합격하는 영예를 안았다.그는 군대를 졸업한 2010년 5월,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 권씨는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늘 20등 정도를 하다가 지방 대학에 진학했다”며 “공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9급 검찰직 공무원시험을 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런 권씨의 목표가 바뀐 데에는 20년지기 친구의 영향이 컸다. 그는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낮게 잡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해 고민하다가 고시에 도전하게 됐다”며 “친구는 2년 전 재경직 사무관으로 입직했는데 앞으로 함께 공직의 길을 걷게 돼 기쁘다”고 했다. ” 권씨는 지난 6년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2차 시험 재시를 낙방한 2014년 여름을 꼽았다. 그는 “시험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2차 준비를 하던 서울에서 방을 빼 대구 집으로 내려갔는데, 부모님에게 암이 발병한 사실을 알게 돼 힘들었다”고 했다. 금전적인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그는 “함께 사는 고모와 누나의 지원 덕분에 버텼다”며 “4년 만에 그만두기엔 아쉬워 2015년 1월부터 다시 1차를 준비해 시험을 쳤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를 받았고, 이듬해 2차에서 합격했다”고 했다. 법원행정고시도 2015년까지 연달아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으나, 2016년 응시 직렬을 사무직에서 등기직으로 바꾸면서 합격했다. 권씨는 “사무직 커트라인이 워낙 높은 터라, 해마다 아까운 점수 차로 떨어졌는데 직렬을 바꾸자 2개월 간격으로 치러진 1, 2차 시험에 붙었다. 권씨에게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은 헌법·행정법이다. 그는 “암기가 필요 없는 법 과목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이 두 과목은 매일 스터디에서 암기장을 만들어 외운 것이 주효했다”며 “전략으로 내세울 만한 과목은 하루도 빠짐없이 봐야 한다”고 했다. 민법·상법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을 덜 쏟은 과목이다. 권씨는 “다른 수험생들도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이기 때문에 ‘방어만 하자’는 생각이 강했다”며 “최대한 하루에 7개 과목 모두 조금씩이라도 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자신만의 합격 비결이 일명 ‘식터디’(식사 후 스터디)라고 답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난 직후나 밥을 먹은 후 등 혼자서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1시간씩 총 하루 4시간 스터디를 하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썼다”며 “또 2015년부터는 하루 20~30분씩 관악청소년회관에서 달리는 운동을 했더니 집중력도 향상됐다”고 말했다. 시험 관련 팁으로 권씨는 “변호사 시험, 검찰 승진 시험이나 각종 고시의 행정법·형사소송법 기출문제에 나온 특이 판례가 사법시험에 변형 출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법원행정고시의 경우 학설보다는 개수형 판례 조문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고 귀띔했다. 권씨는 2년간의 사법연수 기간을 마치면 2019년 법원공무원교육원에 입소하게 된다. 법관·변호사와 법원공무원의 길 사이에 놓인 그는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실무수습(시보)을 하면서 적성을 더 알아보고 결정할 계획”이라며 “어느 길을 선택하게 되든지 전문성을 키워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버지(고 제정구 의원) 뜻처럼 사회에 쓸모있게 올해 3월 사법연수원 입소생의 평균 나이는 33세다.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추세이다. 사법시험 합격 연령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인데, 지난해 합격자인 제아름(40·여)씨는 다른 연수원생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한 사연을 지녔다. “‘우리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평생 제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제씨는 15일 사법연수원 인근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서른네살에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빈민 운동가 출신으로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 제정구(1944~1999)씨다. 제씨는 “이화여대 법학부 재학 시절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며 “마음속 깊이 의지하고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막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았던 그는 학교를 관두고 미술 공부를 하러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지만 공부를 마치지 못한 채 방황했다. 국회 비서관, 게스트하우스 사업 등 다양한 일을 거치면서 사법시험을 보겠다고 결심하게 된 시기는 2011년 34살 때였다. 제씨는 “처음엔 도서관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 버티려는 연습을 했다”며 “초반에 흥미를 느낀 민법은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 반면, 무슨 말인 지 이해조차 되지 않던 형법은 틀이 잡혀갈수록 점수가 높게 나온 과목”이라고 말했다. 늦깎이 공부의 장점도 있었다. 제씨는 “아무래도 무슨 내용이든 이해가 좀더 잘되고, 공부하면서 단 한번도 ‘놀고 싶다’,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며 “오히려 이전에는 뭘 해야 할 지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 힘들었는데, 수험기간엔 ‘합격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절실한 목표가 있어 좋았다”고 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2014년 처음 1차 시험에 합격했는데 같은 해와 이듬해 2차 시험에 모두 떨어졌을 땐 놔버리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당시는 물론 자신감이 떨어질 때마다 제씨는 어머니의 말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제씨는 “2016년 1차 시험 합격 후 2차 시험을 준비한 기간이 짧아 시험 당일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부담을 느꼈는데, ‘괜찮다. 떨어져도 된다. 넌 다른 것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어머니 말씀에 부담감을 털고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자신만의 공부 전략으로 제씨는 “주간에는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행정법·상법을 혼자 공부하면서 동시에 1차 시험 과목과 겹치는 기본 3법은 매일 저녁 2시간씩 스터디를 했다”며 “기본 3법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본 게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2차 시험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기본 3법 스터디 때 2시간씩 실제로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을 했고, 이전에는 과목별 사례집을 봤다”고 덧붙였다. 특히 형사소송법은 목차 구성을 익힌 게 주효했다는 것이 제씨의 조언이다. 제씨는 또 “중요 최신 판례에 대해 법대 교수, 일선 검사들이 쓴 판례 평석을 찾아본 것 또한 도움이 됐다”며 “자기 전 시간에 읽어 뒀다가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면서 다시 읽고, 독서실에 가 표시를 해 놓는 방식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제씨는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살 때 적지 않은 차별을 경험하면서 국내 이주노동자, 국제 결혼 이민 여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집이 시흥이라 자주 접하면서도 거리감이 있었는데, 법을 통해 이런 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길섶에서] 화투 대화/박홍기 수석논설위원

    50을 넘어선 또래들이 만났다. 소주잔을 기울리던 중 한 친구가 자식과의 대화를 화제로 꺼냈다. 아들딸과 “몇 분이나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몇 분씩이나 몇 초면 끝.” “대화는 무슨, 말에 대한 반응이지.” 한마디씩은 한 것 같다. “군대가기 전에는 1분, 갔다 와서는 3분”이라는 친구는 요즘만 같으면 만족이란다. 화두를 던진 친구가 “애들과 화투를 쳐 본 적이 있느냐”고 했다. 다들 의아해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지고,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자식들과 시간을 갖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는 것이다. 토요일마다 저녁식사 뒤 한 시간가량 화투를 쳤다. 화투가 뭔지도 모르는 애들에게 짝 맞추기부터 족보까지 하나하나 알려줬다. 동전도 한 움큼씩 나눴다. 놀이도 뭔가 걸지 않으면 재미를 못 느낄까 봐서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실력도 늘었다. 상대의 패도 읽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의 얘기까지 미주알고주알 꺼내놨다. 한참 지난 뒤엔 “이번 주, 하지 않나요”라고 묻곤 했다. 2년 전쯤 일이다. 추억이란다. 자식과의 대화, 걱정이 없어졌다고 했다. 듣는 내내 쉽지 않은 일이다 싶었다. 박홍기 수석논설위원
  • [새 영화] ‘킹 아서’

    [새 영화] ‘킹 아서’

    마법사와 기사, 괴물 등은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익숙해진 판타지의 세계관이다.이러한 세계관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전설에 기대고 있다. 아서왕은 중세 초반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바위에 꽂힌 검을 뽑아 왕의 혈통임을 인정받은 그가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이상향 카멜롯을 건설하고, 또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모험을 펼치는 이야기는 중세 서양 문학의 근간을 이루기도 했다. 현대에서도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는데, 비극을 진하게 입힌 영국 출신 존 부어맨 감독의 ‘엑스칼리버’(1981)가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킹 아서: 제왕의 검’은 역시 영국 출신인 가이 리치 감독이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재해석한 ‘아서왕 비긴즈’나 다름없다. ‘반지의 제왕’ 같은 장대한 서사시라기보다는 화려한 판타지 액션물에 가깝다. 영화는 어둠의 마법사가 이끄는 악의 군대가 카멜롯을 향해 진격하고, 악과 결탁한 보티건이 형인 우서 팬드래건을 배신하고 왕좌를 차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도입부가 상당히 묵직하게 연출되어 가이 리치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가이 리치 감독은 삼촌의 마수에서 벗어난 어린 아서가 옛 런던인 론디니움의 길거리에서 생존법을 몸으로 터득하며 왈짜패 우두머리로 성장하는 과정을 현란하게 압축하며 자신의 인장(印章)을 찍는다.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 방식을 비틀고 감각적인 촬영과 스피드 있는 편집으로 영화를 버무린다. 데뷔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에서부터 최근 ‘셜록 홈즈’ 시리즈까지에서 보여줬던 장기들이다. 아서와 보티건의 마지막 대결의 경우 컴퓨터 그래픽(CG)의 힘을 빌려 360도 각도에서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3D 대전 격투 게임처럼 연출됐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를 토대로 한 ‘아서왕’ 모바일 게임도 출시됐다. 등장인물의 관계를 새롭게 각색한 점도 눈에 띈다. 보티건과 아서왕을 혈육으로 연결하거나 아서왕의 부인인 기네비어를 대법사 멀린의 제자로 설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야기가 아서와 보티건, 엑스칼리버에 집중되다 보니 훗날 원탁의 기사가 될 주변 캐릭터들이 밋밋하게 그려진 게 아쉽다. 아서가 엑스칼리버만 손에 쥐면 천하무적이 되는 바람에 판타지를 더 판타지스럽게 만들어 버린 점도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바이크 갱단을 다룬 미드 ‘선스 오브 아나키’와 거대 로봇과 괴수의 한판 승부를 그린 SF ‘퍼시픽 림’의 주인공이었던 찰리 허냄이 엑스칼리버를 뽑는다. 중견 배우 주드 로와 에릭 바나가 각각 보티건과 우서 팬드래건을 맡아 영화의 급을 끌어올린다. 러닝타임 126분 중 30분가량이 CJ CGV에서 개발한, 극장 좌우 벽을 활용해 삼면으로 상영되는 ‘스크린X’ 버전으로 제작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단독] 신검소장이 털어놓은 이낙연 총리 후보자 아들 병역면제 과정

    [단독] 신검소장이 털어놓은 이낙연 총리 후보자 아들 병역면제 과정

    “연예인 병역비리 많은 시기여서 흐릿하지만 기억 나”“탄원서, 말썽쟁이 아들 군에 보내려는 부모인 줄 알아” “당시 정밀검사를 진행한 담당 의사가 그래요. 총이라도 잡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요. 자기는 군대를 보낼 수 없다고 그랬어요. 재발성 탈구는 치료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기에 결국 5급 면제 판정을 번복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002년 아들 군 병역 문제로 병무청에 탄원서를 제출했을 당시 중앙신체검사소 소장 직무대행(운영관)이었던 박권수(73)씨는 12일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5년이 넘은 일이라서 박씨의 기억은 흐릿했지만, 이 후보자의 아들 얘기를 꺼내자 기억의 조각을 조금씩 맞춰 냈다. 무엇보다 박씨는 정밀 재신체검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복수의 의사가 정밀검사를 진행하는 중앙신체검사소 구조상 판정에 문제가 생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앙신체검사소는 연예인 병역비리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했던 2001년, 이를 해결하고자 설립됐다. 지방병무청에서 면제대상자, 이의제기자, 정밀검사가 필요한 사람에 대해 정밀 재신체검사를 실시한다.박씨는 2002년 5월 10일 “공익근무요원이라도 복무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받아봤을 때만 해도 탄원서의 주인공이 후보자인지 몰랐다고 말한다. 당시엔 말썽을 일으키는 아들을 군에 보내려는 부모가 상당수 있었기에 그런 사례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신원을 조회하고 나서야 국회의원의 아들임을 알았고,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신원조회한뒤 국회의원 아들인줄 알고 정밀검사” 탄원서에 따르면 이 후보자의 아들은 1999년 12월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스키를 타다가 처음으로 오른쪽 어깨가 빠졌다. 이후 2001년 8월 대학교 1학년 때 징병검사를 받아 3급(현역)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4개월 뒤 운동을 하다가 어깨를 또 다시 다쳤고, 의사의 권유로 2002년 2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원래는 2002년 3월 입대하려고 했지만, 회복이 덜 돼 입영을 연기했고, 같은 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재검을 받아 결국 재발성 탈구로 5급(면제) 판정을 받았다. 결국, 이 후보자는 법원으로 따지면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중앙신체검사소에 정밀신검을 의뢰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2차례 재검에도 면제 판정 따지다 의사에게서 면박당해”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박씨는 자초지종을 확인하고자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가 되레 면박만 당했다. 판정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을 의심하냐는 것이다. 박씨는 “당시 중앙신체검사소에는 징병 전담의사들이 23명 근무했는데, 당시 만연했던 병역비리를 없애고자 복수의 의사들이 합의체를 구성해 정밀검사를 하게끔 돼 있었다”며 “결국 이 후보자에게 5급 면제 판정한 것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앙신체검사소는 이 후보자에게 “징병전담 의사의 의학적 전문지식에 따라 5급 판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역이나 공익근무요원 복무가 가능하도록 판정해 달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입장을 이해해달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보냈다. 2005년 퇴임해 경기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씨는 이 후보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후보자의 아들 역시 기억을 해내지 못했다. 다만, 국회의원이 직접 탄원서를 낸 것은 또렷하게 기억해 냈다. 특이한 경우인 건 맞기 때문이다. 박씨는 “퇴임할 당시에도 야구선수 군 면제 문제로 시끄러워 힘들었다”면서도 “중앙신체검사소가 설립되고서 군 면제 문제가 많이 해소돼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낙연 “아들 공익근무라도 시켜달라” 탄원서 보니

    이낙연 “아들 공익근무라도 시켜달라” 탄원서 보니

    국무총리실은 12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에 대해 과거 병무청에 보냈던 입영 희망 탄원서를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후보자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려고 병무청에 탄원서를 보낼 정도로 국방의 의무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자녀의 병역에 어떤 문제도 없다”고 해명했다.앞서 일부 언론은 전날 이 후보자의 아들 이모(35)씨가 2002년 신체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은 뒤 입대를 연기했고, 어깨 수술을 받아 재검에서 5급 면제 처분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이 후보자는 아들이 5급 면제 처분을 받았을 당시 병무청에 탄원서를 보내 아들의 입영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탄원서에서 이 후보자는 “제 자식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며 “제 자식도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들이 병역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와 제 자식은 평생을 두고 고통과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제 자식이 현역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며 “신체 상태가 현역으로 복무하기 어렵다면, 공익근무요원으로라도 이행했으면 하는 것이 제 자식의 생각이자 저의 희망”이라고 요청했다. 이에 병무청 중앙신체검사소는 답변서를 통해 “귀하의 신체검사는 오로지 징병신체검사등검사규칙에 의거 징병전담의사의 의학적 전문지식에 따라 5급 판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역이나 공익근무요원복무를 가능토록 판정해 달라는 귀하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회신했다. 아울러 이 후보자가 부친의 상속 재산을 17년 뒤인 지난 2008년에 뒤늦게 신고, 2000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8년간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했다는 지적에 대해 총리실은 “문제가 있다면 국회에서 각종 주의조치를 주도록 돼 있는데 그런 전력이 없다”며 “향후 등기부등본 등 자료 확인이 되는 대로 해명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딸 바보 文, 아들엔 엄격… 편식한다 손찌검도

    딸 바보 文, 아들엔 엄격… 편식한다 손찌검도

    실향민 부친 위해 사법시험 준비 누나는 대학도 포기 文 뒷바라지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부인 김정숙(63)씨와 1남 1녀를 뒀다. 장남 준용(35)씨는 건국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미디어 아티스트다. 문 당선인은 아들에게 엄격한 아버지였다. 준용씨가 초등학생 때 콩을 가려 먹으며 편식을 하자 손찌검을 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때문에 준용씨가 고3 때 인문계에서 미술로 진로를 바꿨을 때도 반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준용씨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06년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문 당선인 측은 “특혜는 없었다”고 했다. 문 당선인은 딸 다혜(33)씨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딸 바보’다. 부인 김정숙씨가 “딸에게 뭐든지 다 괜찮다고 하니까 속이 터진다”고 말할 정도다. 다혜씨는 2010년 결혼해 아들을 둔 주부다. 다혜씨는 “어린 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보면서 아빠가 힘든 길을 가지 않길 바랐다”면서도 “지금은 문빠 1호”라고 했다. 문 당선인은 경남 거제에서 이북(함흥) 출신 피란민 부부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문용형(1978년 작고)씨는 문 당선인이 군대에서 제대한 직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취업을 준비 중이던 문 당선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늦게나마 성공한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어머니 강한옥(90)씨는 막내 여동생 재실(55)씨와 함께 부산 영도에 산다. 문 당선인의 부모는 피란살이 중에도 어떻게든 아들의 수업료를 마련했다고 한다. 문 당선인과 동생들이 대학 교육을 받는 데에는 누나 재월(68)씨의 희생이 뒤따랐다.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누나도 공부를 잘했는데 대학을 포기하고 작은 회사 경리 직원으로 취직해 저를 도왔다”고 말했다. 누나 재월씨와 여동생 재성(62)씨는 주부이며 남동생 재익(56)씨는 외양어선 선장이다. 문 당선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시절 재익씨가 회사의 배려(?)로 지상 근무지로 발령 난 적이 있다. 이에 문 당선인이 전화를 해 “그 회사에 도움 줄 일 없으니 다시 배를 타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독서에 굶주렸던 ‘문제아’…강제징집 때 발견한 ‘특전사 체질’

    독서에 굶주렸던 ‘문제아’…강제징집 때 발견한 ‘특전사 체질’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이켜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고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2012년 대권 도전을 앞두고 펴낸 저서 ‘운명’에 담긴 내용이다. 이처럼 5년 전 운명에 떠밀리듯 정치를 시작했던 그는 이제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숙명’과 마주하게 됐다. 가난했던 10대, 학생운동에 뛰어든 20대,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 일선에서 활동한 30대, 노무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청와대에 입성한 50대, 그리고 정치적 홀로서기에 나선 60대까지. 그의 인생을 뒤바꾼 10가지 장면을 들여다봤다.(1)유기정학까지 받았던 ‘문제아’ 문 당선인은 1953년 경남 거제에서 이북(함흥) 출신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장사 실패 후 어머니가 근근이 생계를 꾸렸는데 성당에서 배급받은 강냉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허다했다. 문 당선인은 ‘운명’에서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 일이 늘 창피했다”고 회고했다. 명문 경남중·고 시절 ‘모범생’보다는 ‘문제아’에 가까웠다. 고3 여름방학 무렵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한 뒤 학교 뒷산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고성방가를 하다 걸려 유기정학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문제아’란 별명이 생겼지만, 유기정학으로 진짜 문제아가 됐다. 이처럼 입시공부는 뒷전이었지만, 비교적 상위권을 유지했고, 신문과 독서에는 늘 굶주렸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내면이 성장하고 사회의식을 갖게 됐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재수를 한) 대가를 보상받기에 충분”하다고 했다.(2)10월 유신, 법대생을 학생운동으로 그가 경희대에 재학 중이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하숙 생활을 했던 문 당선인은 밤늦게까지 선후배들과 시국담론을 나눴다. 캠퍼스 커플이던 부인 김정숙씨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때다. 대학가의 반(反)유신 시위 열기는 고조됐다. 1975년 문 당선인은 뜻이 맞는 친구들과 총학생회를 장악해 유신 반대 시위를 열기로 했다. 총무부장이던 그는 시위 당일 등굣길에 붙잡힌 총학생회장(강삼재 전 의원)을 대신해 비상학생총회를 개최했다. 또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학생 대열을 이끌고 교문으로 향했다. 문 당선인은 구속과 동시에 곧바로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당시 유신 반대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에 대한 형량은 ‘징역 2년 정찰제’라고 할 만큼 일률적이었다. 그러나 판사의 소신 판결로 징역 10개월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3)훈련마다 최우수 표창… ‘A급 사병’ 비록 더불어민주당 경선 TV토론에서 ‘전두환 표창 논란’을 초래했지만, 특전사 복무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1975년 석방되자마자 강제 징집돼 특전사 제1공수 특전여단에 배치됐다. 군대는 의외로 체질에 맞았다. 첫발을 디딜 때부터 ‘A급 사병’으로 분류됐다. 학창시절 개근상 말고는 상을 받아본 적 없는 그였지만, 군 복무 시절 훈련마다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논란이 됐던 전두환 당시 여단장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은 것도 이때다. 공수부대에서 가장 고되다는 ‘천리(1000里) 행군’을 받을 때에도 산과, 강, 마을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상병 시절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응하는 미루나무 제거조에 투입되기도 했다. 공수부대가 체질이어서 제대 후 한동안 다시 군대에 가는 꿈에 시달렸다고 한다.(4)운명의 시작, 노무현의 첫 만남 문 당선인은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은 안 됐다. 1982년 변호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문 당선인은 ‘김앤장’을 비롯해 대형 로펌 스카우트 제의를 마다하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사시 동기(사법연수원 12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개받았다.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다. 문 당선인은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의 첫인상에 대해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 ‘법무법인 부산’에서 시국 사건을 도맡으며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 인권변호사로 자리잡았다. 1987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전국적인 저항이 일어났다. 부산의 민주화 바람도 거셌다. 문 당선인과 노 전 대통령은 부산 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을 결성해 6월 항쟁을 주도했다. (5)노무현의 동반자로 청와대 입성 2003년 1월 서울 종로의 한 한정식집. 제16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의 노 전 대통령과 문 당선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산선대본부장으로 대선을 도왔던 문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가 즉답을 못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당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라”라며 압박했다. 문 당선인은 일주일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한 끝에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대신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고 수용했다. 그렇게 문 당선인은 평생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걷게 된다. 정권 초반부터 대북송금 특검, 검찰 개혁 등 굵직한 업무가 수두룩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첫 1년 동안 과로로 치아를 10개쯤 뽑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최루탄 맞은 文 챙기다 인연…“가치관 맞는 짝”

    최루탄 맞은 文 챙기다 인연…“가치관 맞는 짝”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의 부인 김정숙(63) 여사는 이번 대선 기간 문 당선인의 최대 조력자를 자임했다.김 여사는 ‘문재인의 호남 특보(특별보좌관)’라고 불릴 정도로 지난 8개월간 문 당선인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호남의 마음을 돌리는 데 애썼다. 김 여사는 문 당선인이 직접 찾지 못하는 호남의 곳곳을 누볐고, 붙임성 좋은 성격으로 문 당선인의 진지한 이미지를 보완했다. 늘 진지한 성격의 문 당선인이 답답하다는 의미의 ‘고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면, 활달하고 밝은 성품의 김 여사는 시원한 ‘동치미’ 같은 역할로 문 당선인 곁을 지켰다.문 당선인과 김 여사는 경희대 선후배 관계다. 서울 출신인 김 여사는 1974년 경희대 성악과에 입학해 축제에서 두 학번 위인 72학번 법대생 문 당선인을 처음 만났다. 본격적인 인연은 이듬해 유신반대시위 현장에서 시작됐다.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들고 행진했던 문 당선인의 앞에 최루탄이 발사돼 기절하자 문 당선인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 줬던 사람이 바로 김 여사였다. 두 사람은 그 일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이후 구치소, 군대, 고시공부, 또다시 구치소, 사법연수원 등으로 이어진 7년 동안의 연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김 여사가 문 당선인을 평생의 반려자로 선택한 이유는 삶에 대한 가치관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 당선인이 관습에 따른 여성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 같았다는 점도 문 당선인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김 여사의 친정과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친가와 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 친정 부모는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운영했고 김 여사는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두 살 위인 친언니는 미국 뉴욕 패션기술대(FIT) 출신으로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 여사는 숙명여중·고(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동창)를 졸업한 뒤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했고 졸업 뒤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문 당선인이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 김 여사는 2011년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주년 기념음악회 무대에서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는 등 녹슬지 않은 성악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으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은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태어났다. 그는 6·25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온 부모로부터 1953년 경남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서 출생했다.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 도시락 뚜껑을 빌려 강냉이 죽을 받아먹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사진으로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다. 그의 모친 강한옥(90) 여사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문재인을 데리고 암표장사를 하기 위해 이른 새벽 부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아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돈을 벌수 없어 먼 길을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꾸려 장사를 하고 연탄배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떠올리면 문재인은 늘 죄송하기만하다. 강 여사는 9일 부산 영도구 자택에서 개표결과를 조용히 지켰봤다. 문재인은 가난한 형편에도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부산영도로 이사를 와 고등학교 때까지 부산에서 살면서 당시 명문이던 경남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범생’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흡연과 음주를 하다가 학교 측에 들통나는 바람에 몇 차례 정학을 당한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그의 집에서는 전혀 알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에 72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끝에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생이 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서 반독재 투쟁을 벌였다. 평생 동반자인 부인 김정숙(62) 여사를 이때 만났다. 시위에서 최루탄을 맞고 기절한 그를 김씨가 물로 적셔 깨우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교 2년 후배다. ‘안개꽃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그들의 러브스토리다. 그 시절 보통 군대에 면회를 갈 땐 맛있는 음식을 싸들고 갔지만 김씨는 안개꽃을 한 아름 안고 문재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러브스토리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감옥으로, 군대로, 문재인이 사법시험을 공부할 때는 전남 해남 대흥사라는 절로 찾아갔다. 그들은 7년 열애 끝에 1981년 결혼했다. 문재인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을 당하고 강제 징집됐다.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면서 “‘내가 군인체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흐뭇해했다. 실제로 그는 군 생활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주특기가 폭파라는 사실은 점잖은 지금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반전이다. 폭파과정 최우수 표창,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당시 사령관 전두환에게서 받은 것이 밝혀져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직후 부친을 잃은 문재인은 사법시험에 본격적으로 매진해 1979년 사시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부마항쟁과 10·26, 12·12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재차 구속된 그는 1980년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재인은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1982년 처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같이 시작했다. 특히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문 후보는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1988년 노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 출마해 정치권에 들어섰지만, 문재인은 노동·인권 전문 변호사 일을 계속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은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두 사람은 재결합했다. 그후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후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한 그는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비서실장을 맡으며 ‘동지 노무현’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뇌물 의혹이 불거지자 문재인은 변호인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장례를 도맡았고, 이후 노무현 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끝에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 후보는 적폐청산의 최적임자로 거론되면서 ‘대세론’을 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라이플·폭력의 씨앗·가까이,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영예

    라이플·폭력의 씨앗·가까이,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영예

    독립·예술 영화 중심 전주국제영화제의 올해 대상은 브라질 다비 프레투(왼쪽) 감독의 ‘라이플’(국제경쟁), 임태규(가운데)감독의 ‘폭력의 씨앗’(한국경쟁 부문), 배경헌(오른쪽) 감독의 ‘가까이’(한국단편경쟁)에 돌아갔다.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3일 각 부문 수상작 14편을 발표하고 시상식을 열었다. ‘라이플’은 땅을 사러 온 부자에게 존립의 위협을 느껴 장총을 든 외딴 시골 목장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며 문명과 자연이라는 서부극 대립 구도를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멋지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까지 2관왕에 오른 ‘폭력의 씨앗’은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그에 대처하는 개인의 황망한 행동들을 보여 주며 폭력은 개인 영역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748편이 응모해 19편으로 추려진 본선에서 경합을 벌인 ‘가까이’는 진심으로 장애우들을 돕고 있지만 궁핍에 짓눌려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연 맹인 안마사의 안내견을 훔치게 된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이야기를 보여 주며 고독의 깊이를 묻는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파문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담아 관심을 받았던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와 한국경쟁 부문 출품작 중 다큐멘터리 장르에 수여하는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한편 전주국제영화제는 6일 폐막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라이플’, ‘폭력의 씨앗’, ‘가까이’···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영예

    ‘라이플’, ‘폭력의 씨앗’, ‘가까이’···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대상 영예

    독립·예술 영화 중심 전주국제영화제의 올해 대상은 브라질의 다비 프레투 감독의 ‘라이플’(국제경쟁), 임태규 감독의 장편 데뷔작 ‘폭력의 씨앗’(한국경쟁 부문), 배경헌 감독의 ‘가까이’(한국단편경쟁)에게 돌아갔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3일 각 부문 수상작 14편을 발표하고 시상식을 열었다. ‘라이플’은 땅을 사러온 부자에게 존립의 위협을 느껴 장총을 든 외딴 시골 목장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며 문명과 자연이라는 서부극의 대립 구도를 하드보일드로 멋지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까지 2관왕에 오른 ‘폭력의 씨앗’은 군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과 이에 맞선 개인의 황망한 대처들을 보여주며 폭력은 결코 개인 영역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748편이 응모, 19편으로 추려진 본선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 ‘가까이’는 진심을 다해 장애우들을 돕고 있지만 궁핍에 짓눌려 자신에게 마음의 문을 연 맹인 안마사의 안내견을 훔치게 된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고독의 깊이를 묻는 작품이다.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파문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담아 관심을 받았던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와 한국경쟁 부문 출품작 중 다큐멘터리 장르에 수여하는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한편,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6일까지 계속된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서바이벌 패밀리’가 폐막작으로 영화제 대미를 장식한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사설] ‘평화헌법’ 수정, 2020년 새 헌법 시행 밝힌 아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전쟁 포기와 함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해 2020년에 시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아베는 헌법 제정 70주년을 맞아 우익 단체인 일본회의 등의 주도로 열린 개헌 행사에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법 9조 1항(전쟁포기)과 2항(군사력 보유 금지)을 남기고 자위대를 명확하게 포함한다는 생각은 국민적 논의를 할 만하다”고 밝혔다. “자위대 합헌화가 내 시대의 사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당초 평화헌법을 상징하는 제9조 1항과 2항까지 손대려다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감안해 그대로 놔두면서 자위대를 명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단 개헌의 문을 연 뒤 제9조를 뜯어고치려는 구상이나 마찬가지다. 1954년 창설된 자위대는 자국 방어만을 목적으로 하는 역할을 점점 확대해 군대처럼 활동하고 있다. 자위대는 세계 10위권에 들어갈 만큼 막강한 육·해·공군의 전력을 갖고 있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전력은 세계 5위다. 일본은 지난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안전보장관련법의 시행에 따라 ‘전쟁 가능한 국가’의 토대를 마련해 놓았다. 까닭에 지난 1일 해상자위대는 미군 보급함 방어를 위해 경항공모함 이즈모함을 출동시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승전국인 미군 보호에 나선 첫 군사작전이다. 아베의 의도는 헌법 조문을 고쳐 자위대의 현실적 한계를 해소해 분쟁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 자위대의 지위를 ‘국방군’으로 재무장시키는 데 있다. 또 아베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이용해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럴 경우 동북아의 안보 긴장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헌 여부를 결정할 일본 국민들도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지난해 37%에서 올해 41%로 높아졌다. 반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55%에서 50%로 줄었다. 제9조에 대해서는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63%다. 아베는 ‘평화헌법’이 제정된 경위와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개헌이 ‘군국주의로의 회귀’라는 주변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결코 지울 수 없다. 한반도의 위기를 핑계 삼아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하려는 꼼수일 뿐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과거 국군주의 아래 저지른 만행부터 진정성을 갖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 [말빛 발견] 따라가지 못한 사람 ‘미망인’

    ‘영윤’은 중국 초나라 때 최고 직위의 관직이다. 초의 문왕이 죽자 당시 영윤이었던 자원이라는 사람이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고 싶어졌다. 그는 궁 옆에 새 건물을 짓고 ‘만’(萬)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은 군대를 훈련할 때나 하는 행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의 부인은 이렇게 한탄한다. “영윤은 적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나 보다. ‘미망인’ 곁에서 이러고 있으니.” ‘춘추좌씨전’에 전하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미망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망인’은 이렇게 아주 오래된 말이다. 이천 년도 넘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쓰게 되고, 의미에도 변화가 온다. 문왕의 부인은 ‘미망인’을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미망인’은 본래 이렇게 일인칭으로 쓰였다. 그것도 자신을 한껏 낮춘. 원뜻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직(未) 따라 죽지(亡) 못한 사람(人)’이 ‘미망인’이었다. 문왕 부인은 ‘미망인’에 이런 뜻을 담았다. 당시의 풍습과 생각, 시대상을 보여 준다. 아내는 남편에게 딸려 있고 죽음도 같이해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하던 시절이다. 지금 우리에게 ‘미망인’은 일인칭이 아니다. 제삼자를 가리키는 삼인칭으로 쓴다. 그러면서 고결함으로 포장된 말처럼 사용하려 하기도 한다. ‘과부’가 비하적이라면, ‘미망인’은 반대인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이천 년 전의 생각은 아직 강하게 묻어 있다. ‘미망인’에 대응해 남자를 가리키는 말은 없다. 남성 중심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오래 써 온 관습이어서 버리기는 만만치 않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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