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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물고문 사라졌지만 약자 배려 없는 공권력 자세는 똑같아”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물고문 사라졌지만 약자 배려 없는 공권력 자세는 똑같아”

    임창용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 - 박준영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변호사 법은 과연 얼마나 공평한 것일까. 얼마 전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진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면서 든 의구심이다. 15세 소년이 18년 전 택시 기사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10년간 복역했는데, 나중에 진범이 잡힌 사건이다. 소년이 누명을 쓰기까지 경찰의 불법감금과 극심한 폭행이 있었지만, 검사와 판사는 이를 외면했다. 경찰이 내민 소년의 허위자백만을 근거로 법정 최고형을 합작했을 뿐이다. 지난해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재심’은 법(엄밀히 말하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약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극 중 변호사로 나오는 이준영은 실제 이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44) 변호사와 이름이 같다. 박 변호사는 약촌오거리 사건 말고도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과 삼례 나라 슈퍼 살인사건 등 많은 재심을 이끌어 낸 재심 전문 변호사다.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변호사는 “재심 사건들이 대부분 오래된 사건이지만, 지금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예전의 물고문이나 폭행이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서를 함부로 쓰고, 자백했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유무죄를 재단하던 것도 달라졌다고 봐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런 강압적 수사가 있게 했던 본질적 이유는 달라진 게 없어요. ” 그가 강조한 ‘본질’은 경찰이나 검사, 판사 등 법을 집행하고 심판하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자세다. “얼마 전 늦은 밤에 친척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10대인 아이가 밖에서 추위를 피하려 종이를 모아 불을 피우고 길거리에 세워진 차 문 손잡이를 잡아당긴 죄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거예요. 경찰이 아이를 새벽까지 잡아 두고 심야조사를 하고 있던 거죠. 중범죄도 아닌데 방화와 절도죄 의심만으로요. 심야조사는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죠. ” 반인권적 수사를 막기 위한 규정과 장치는 곳곳에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이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로선 알려주지 않으면 그런 장치가 있는지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나 노숙인 같은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설령 알아도 그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사실 자기 변호가 어려운 약자들을 위한 장치인데 외려 돈 많고 힘센 사람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이용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진술거부권만 해도 만든 취지는 사회 약자들이 강압적 수사에 의해 진술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거든요. 한데 실제론 강자들이 더 애용하죠. 증언거부권이나 조서열람권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조사거부 논란이 일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검찰 조사와 재판에 툭하면 불응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의 사례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박 변호사는 요즘 ‘낙동강변 2인조 부녀자 살인사건’ 재심 인용을 기다리면서 검찰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에 참여해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재심을 청구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도 무죄임을 확신한다”면서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한이 된다고 안타까워한 사건이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된 두 사람은 직접 증거는 하나도 없이 자백만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21년간 복역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극심한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진행됐던 수사와 재판기록을 검토한 박 변호사는 “당시 기록만으로도 지금 재판하면 판사들이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오염된 자백과 조서에만 집착해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재심 인용 결과가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그는 “사실상의 국가범죄”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터진 1987년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부산의 부랑자 보호시설에서 벌어진 사건인데, 실은 부랑자라고 볼 수 없는 아이나 여성 등에 대한 폭행과 성폭행, 강제노역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만행이 자행됐어요.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거리 청소’를 하려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길거리서 구걸하던 사람들이 적잖이 잡혀갔는데, 복지원과 경찰의 결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뉴스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에선 10년간 513명이 죽어나갔고, 가혹행위 정황이 짙었다. 거쳐 간 사람이 수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에선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다. 그럼에도 복지원 원장은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는 데 그쳤다. 1심에서 10년 징역형을 받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대법원 파기 환송 등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당시 그러한 만행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제대로 조사하겠다”고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만 해도 나중엔 진상이 밝혀지고 인권신장으로 이어졌어요.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이 남영동 분실을 찾거나 박종철 열사 부친을 찾아가 사과도 했고요. 형제복지원에선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 수백명이 죽었는데 그동안 누구도 관심이 없었어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사회 약자들도 ‘법이 평등하구나, 우리도 인간이구나’ 하고 생각할 겁니다.” 박 변호사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의 외부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의 과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재심사건을 주로 다룬 만큼 검·경의 문제점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재심 사건을 지금의 법과 제도의 문제로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조심스러워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큰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사권 조정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상 대부분의 수사를 경찰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법적으로 인정해 줄 필요도 있어요. 다만 경찰이 현재 시점에서 검찰의 수사지휘와 특수수사 역량을 무리 없이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제가 접한 일선 경찰 중엔 상당수가 아직 검찰의 깨알 같은 수사지휘를 원하고 있었어요. 물론 경찰에도 능력이 뛰어난 간부들이 많지만 수사권을 완전히 넘겨주기엔 좀더 준비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박 변호사는 또 “일반사법경찰과 특수사법경찰을 한데 묶어 수사권 독립을 논의하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이 합리적으로 권한을 나누고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sdragon@seoul.co.kr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사건만 맡는 ‘흙수저’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전남 완도 옆 노화도란 섬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막일과 배달일, 주먹질을 하면서 방황했다. 지방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군 복무 후 장학금을 못 받게 되자 자퇴한 뒤 군대 선임을 따라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일찍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악착같이 공부했고, 5년 만인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변호사 초기 국선변호를 주로 맡았다. 인맥과 학벌에 밀린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기 방어권이 약한 사람들을 주로 만났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에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가출 소녀들의 눈물은 그를 울렸고, 이후 재심 사건에만 몰두했다. 박 변호사는 모든 재심 사건에서 무료변론을 하고 있다. 변호할 사람들이 가난한 사회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재심 진행에서 가장 큰 동력인 시민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시민 지지가 있어야 목격자나 관련자들의 증언 확보도 수월해진다. 영리 목적으로 재심을 맡았다가 자칫 시민들의 지지를 잃어 재심 진행이 어려워질까 우려한다. 재심 사건은 한 번 맡으면 평균 5년은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박 변호사는 기존에 맡았던 일반 사건 수임료에 사비까지 털어 재심에 매달렸지만 2년 전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포털사이트를 통한 스토리펀딩에 시민들의 후원이 몰렸고, 그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5억원이 넘는 후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최유정·홍만표 등 법조 거물들의 비리사건이 터지면서 더 큰 지지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박 변호사의 주 수입원은 강연료다. 재심사건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인권 관련 강연이 많이 들어온다. 지난해의 경우 많을 땐 월 20회까지 했다. 올해도 월 10회는 강연에 나선다. 일선 경찰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권보호를 주제로 강연한다. 과거사위원회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선 공식적인 국가 업무를 맡았기에 약간의 보수도 받는다. 재심 사건 외에 일반사건은 아예 맡지 않고 있다.
  • 美 “멕시코 국경 군대 배치” 위법 논란… 국제갈등 조짐

    美 “멕시코 국경 군대 배치” 위법 논란… 국제갈등 조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군대를 보내 국경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방법률은 군병력이 미국 영토 안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법 집행을 금지하고 있어 실행하기도 전에 위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발트 3국 정상과 만나 “우리의 국경을 지키기 위한 법률이 매우 나쁘다”며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군사적으로 뭔가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어 “우리는 군대가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우리 국경을 지킬 수 있도록 준비 중이며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 장관, 커스틴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존 켈리 비서실장 등과 따로 회의를 하고 국경 대책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회의 직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국경 대책에는 ‘주 방위군 배치’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군 배치 규모나 역할 등의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실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우선 군부대의 국경 경비 임무는 위법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 미국의 국경 경비는 군대가 아닌 국경순찰대가 맡고 있다. 연방 법률(The Posse Comitatus Act)이 의회 승인 없이는 미국에서 민간 법 집행 임무에 군대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리케인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이후 폭동 진압 또는 구호 작업을 위해서만 군 병력을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하는 게 허용된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군 투입 계획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공화당 안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멕시코 정부도 이런 계획에 반발하고 있어 국제 갈등으로 비화할 여지도 있다. 헤로니모 구티에레스 주미 멕시코대사는 이날 닐슨 장관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혀 달라고 요구하고, “분명히 멕시코 정부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는 7월 1일 멕시코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1위를 질주하는 중도좌파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미국이 국경에 군대를 배치할 경우 수천명의 지지자와 함께 ‘평화의 인간띠’를 구성해 항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태국 군입대 신체검사장에 미모 여성들 나타난 이유

    태국 군입대 신체검사장에 미모 여성들 나타난 이유

    매년 이맘 때가 되면 태국의 군 입대 신체검사장에서는 흥미로운 장면이 목격된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기위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최근 태국 현지언론은 방콕에서 실시된 군 입대 신체 검사장의 모습을 사진과 함께 전했다. 빼어난 몸매와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들이 뜬금없이 신체검사장에 나타난 이유는 바로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많기로 유명하다. 이중에서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인물은 2018 미스 트랜스 유니버스 타일랜드 우승자인 이사리 멍맨(21).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고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은 그녀는 "원활하게 신체검사를 받을 수 있게 도와 준 군인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며 군 면제를 받았다.   역시 트렌스젠더인 농 릴리(23)도 "나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로 출생했지만 속은 여자"라면서 "군의관들이 이같은 사실을 인정해줘서 너무 기쁘다"며 웃었다.   보도에 따르면 태국에서는 군 입대 신체검사장에서 성기수술을 한 트랜스젠더임을 인정받게 되면 공식적으로 군 면제를 받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징병제 국가인 태국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군 복무자를 뽑는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 제비뽑기를 통해 입대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태국은 21세 남성이면 누구나 징집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징집 대상 인원이 군대가 요구하는 복무자의 3배가 넘어 제비뽑기라는 기상천외하지만 공평한 방식으로 입대자를 정한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포토] ‘군대 두번이 현실로?’

    [포토] ‘군대 두번이 현실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열린 ‘병역의무자 부모 초청 병역판정검사 체험’에서 한 아버지가 체혈 후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규정 “평화는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명예회복·유해발굴·배상 등 약속 보수·진보에 낡은 이념 탈피 촉구 “이젠 정의·공정으로 평가받아야”“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제70주년 추념사는 ‘제주도의 봄’이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 의지’를 공식 천명하고 살아남고자 70년간 상처와 아픔을 묻고 살아온 제주 도민들에게 진정한 봄을 약속했다. 추념사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는 ‘진실’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4·3 사건을 단지 불행한 과거사로만 치부하지도 않았다.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4·3 사건의 명예회복 없인 미래도 없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 진실 규명과 피해 보상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도민들에게 4·3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 사과의 진정성은 후퇴했다. 문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4·3 사건을 바로 세우고,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3 흔들기’를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4·3 사건의 성격을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규정했다. 추념사에 나타난 제주 4·3은 이렇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과 유혈 진압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인 3만여명의 양민들이 희생당했다. 좌우 양쪽에 의해 무차별한 학살이 이뤄져 가해자가 어느 쪽인지도 명확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4·3은 아직 이름이 없다. 정부는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 유해발굴 사업,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 치유, 배상과 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약속했다. 보수 진영 일부는 4·3 사건을 ‘친북·좌파 세력의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70년 전 제주 도민의 삶과 죽음 갈랐던, 지금도 대한민국을 가르는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 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고(故)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故)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이념이 있던 곳에 자리할 새로운 시대적 가치로 ‘정의’와 ‘공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목에 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脫)이념으로 적대적 그늘을 걷어 내고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려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직후 제주도 한 호텔에서 유족·희생자들과 오찬하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4·3을 부정하거나 폄훼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4·3의 진실이 똑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규명을 강조했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똑바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희망을 유족들과 희생자들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 있게 해 나가겠다, 만약 우리 정부가 다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홍성수 제주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문 대통령, “항구적 평화 ·인권 향한 4 ·3 열망 잠들지 않을 것”

    문 대통령, “항구적 평화 ·인권 향한 4 ·3 열망 잠들지 않을 것”

    대통령으로는 현직 두 번째로 제주4 ·3 추념식 참석“국가권력 폭력·희생, 반드시 진상규명 ·명예회복” 약속문재인 대통령은 3일 “저는 오늘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며 “더는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희생자 추념일 추념사에서 이같이 말한 뒤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4·3 추념식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참석 이후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제주도민께 사과했다”며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며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족과 생존·희생자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며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고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난다”며 “이제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그러면서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며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 “70년 전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고,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거지·대문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했다”며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 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됐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고,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다”며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을 일일이 열거했다. 문 대통령은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줬다”며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다”며 “우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좌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와 제주도민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다”며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고, 아내·부모·장모·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다”며 “제주도민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이라며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고,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이라며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4·3 70주년 추념사

    [전문] 문재인 대통령의 4·3 70주년 추념사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할 세월동안  제주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 넘어섰습니다.    고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희생자 위령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이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3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 재 인    
  • 방배초 인질범 “군대서 조현병 생겼는데 보상 안 해줘“ 홧김 범죄

    방배초 인질범 “군대서 조현병 생겼는데 보상 안 해줘“ 홧김 범죄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을 흉기로 위협해 인질극을 벌인 양모(25)씨가 “군대 가혹행위로 조현병이 생겼는데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아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경찰 조사와 학교 측에 따르면 양씨는 2일 오전 11시 30분 정문을 통해 제지 없이 학교로 들어갔다. 학교보안관은 “방배초 졸업생인데 졸업증명서를 떼러 왔다”는 양씨 말을 믿고 신분증 확인 없이 들여보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양씨는 재학증명서를 발급해주는 행정실을 지나쳐 그 옆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는 여교사 1명과 행정직원 1명, 그리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학급 물품을 가지러 온 학생 6명이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간 양씨는 4학년 여학생 1명을 붙잡아 흉기를 들이댔다. 이어 “기자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학교는 11시 40분께 교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내용의 방송을 하는 한편, 교감이 교무실에 들어가 양씨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양씨는 피해 여학생에게 “미안하다”고만 했을 뿐, 자신의 요구사항만 반복해서 말했다. 학교 측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시각은 11시 47분이었다. 3분 뒤인 11시 50분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교감을 내보내고서 교무실 여닫이 문을 사이에 두고 양씨와 대치했다. 방배경찰서 형사는 “집이 어디냐”, “학교, 군대는 어디 나왔냐” 등 질문을 던지며 양씨를 안심시키려 했다. 양씨는 “군대에 있을 때 상사에게 욕을 먹어서 정신병이 생겼다”는 등 횡설수설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몇 차례 간질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여학생의 몸상태를 우려한 경찰은 양씨의 동의를 얻어 오후 12시 20분쯤 물을 종이컵에 담아 줬다. 양씨는 경찰이 멀리 물러나고서야 문간에 놓인 종이컵을 가져갔다. 여학생에게 양씨가 물을 먹이자 경찰은 12시 33분쯤 “점심시간 지났는데 아이가 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빵과 우유 2개를 건넸다. 흉기를 놓지는 않았지만, 빵과 우유, 물을 먹으려던 양씨의 경계심이 순간 풀렸다. 그때 경찰관들이 양씨에게 달려들어 제압했다. 이때가 12시 43분, 교무실 침입 약 1시간 만이었다. 인질로 잡혔던 4학년 A(10)양은 다친 곳 없이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져 스트레스 반응 등 검사를 받은 뒤 2시간 만에 퇴원했다. 병원 측은 “지금은 안정 상태로 보인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 있는지 외래 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씨도 경찰에 제압되는 과정에서 간질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오후 4시 15분쯤 퇴원해 방배서로 호송됐다. 양씨는 방배서에 도착한 뒤 취재진에 “군대에서 가혹행위와 부조리, 폭언, 질타, 협박 등으로 조현증이 생겼다”면서 “전역 후 국가보훈처에 계속 보상을 요구했는데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며 범행 이유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성 자궁은 공공재인가?’ 과제 낸 부산대 교수 논란

    ‘여성 자궁은 공공재인가?’ 과제 낸 부산대 교수 논란

    부산대학교의 한 교수가 수업 도중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다. 부산대 한 학생은 지난달 31일 부산대학교 대나무숲(익명 페이스북)에 강의 중 A 교수가 한 발언이 여성을 비하해 불쾌감을 주는데 공론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글에서 A 교수는 “부산대가 수준이 떨어진 이유는 여성들이 입학하고 나서부터이며 올해 남학생들이 많이 보이자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또 A 교수 수업에서 여학생이 수업 조교가 되는 것은 매우 힘들며 교수가 오직 군필 남학생에게만 조교 기회를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A 교수가 모 교수의 성희롱 대자보를 보고 이를 고발한 여학생이 “매우 이기적이다”라며 “본인은 성차별주의자가 맞으며 당당하니까 신고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했다고 언급했다. 이 학생은 A 교수가 수업에서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인가?’라는 주제로 과제를 냈고 이를 거부한 여학생에게 F 학점을 줬고, 성적에 반영하겠다며 교수의 정치 성향과 유사한 세미나에 강제로 참여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라오자 현재까지 5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이 학생이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부분적인 표현만 문제 삼아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예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A 교수는 “과거 부산대는 서울대 다음으로 수준이 높았는데 그때는 여학생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라며 “그것이 여학생을 욕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A 교수는 이어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 보통 통솔력이 있어 예우 차원에서 수업 조교를 시킨 적이 있지만, 올해 수업 조교 2명은 여학생 1명, 남학생 1명 등 무조건 군필 남학생만 지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 자궁이 공공재인가’라는 과제에 대해서 A 교수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말한 ‘교육은 공공재’ 발언과 함께 여성단체가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가 아니다’라는 피켓을 보고 과연 자궁을 공공재로 볼 수 있느냐는 취지로 리포트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이 리포트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전체 성적이 나빴기 때문에 F 학점을 준 것이며 교수 성희롱 대자보와 관련해 고발자를 이기적이라고 했다거나 나 자신을 성차별주의자라고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세미나 역시 강제로 참여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다음은 부산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의 전문이다. #4738번째샛벌 안녕하세요! 조심스럽게 여쭙니다. 저희 학과 전공 교수님께선 여성을 싫어합니다. 강의중의 이러한 여성비하발언들이 불쾌감을 주는데 이것으로도 공론화를 시킬수있을만한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않습니다. 또한 1년전일이기도 하고, 새내기였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조금씩 꾸준히 이어져오는 말들이 불쾌하지만 성적에 영향이있을까 등의 이유로 아무도 나서지못하는 상황입니다. 교수님은 “부산대가 수준떨어진 이유는 여성들이 입학하고 나서부터”이고 올해들어 남학우새내기들이 많아보이자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강의중에, 공공연히 여학우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하였습니다. 또한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인가?’에 대한 과제를 내고 과제를 거부한 여학우에게 F를 주었습니다. 그 교수님 수업에서 여학우가 조교가되는것은 매우 힘든일입니다. 왜냐하면 교수님께서는 오직 군필 남학우에게만 그 기회를 주시기때문입니다. 애초에 군대에 가지않는 여성분들은 그 대상에서 항상 벗어나있었습니다. 강의초 교수님은 군필 남학우들을 향해 손을 들으라 말하시고 그중에서 한분을 뽑는 식으로 조교를 결정하십니다. 가장 최근 대자보에 올라온 모교수의 성희롱글을 보시곤 고발한 여학우가 “매우 이기적이다”며 강의를 시작하시기전에 언급하였습니다. 또 본인은 성별차별주의자가 맞으며 그에 당당하니 신고를 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하기도했었습니다. 단지 이러한 문제뿐만 아니라 이 외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교수는 자신의 정치사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공공연히 강의중에 밝히며 학생들에게 강요하면 안된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는 교과서에도 나오지않은 전혀 관련없는 세미나를 가도록 요구하시며 거부할시 성적에 반영케하겠다며 강제성을 부여하셨습니다. 게다가 그 세미나는 교수님의 사상과 너무나 동일한, 뚜렷한 세미나였습니다. 사람의 어떠한 사상이든 어느편에 서든 그건 본인의 선택이며 자유니까 저는 비난하지않습니다. 다만 본인의 사상을, 그것도 다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성적에 영향을 주겠다며 , 수업의 일부분이라 말하며 강제로 사상을 부여하는것은 옳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되지않은 학생으로 이외에도 많은 문제유발상황들이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위 사례들이 정말 공론화 시킬만큼 문제적인지 의견들을 듣고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저희 학과 학우들을 모으고 증거들을 모아 공론화 시키려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자 후배들 원산폭격 체벌…모 대학 MT 논란

    여자 후배들 원산폭격 체벌…모 대학 MT 논란

    대학 여자 선배들이 학과 MT(수련모임) 행사에서 1, 2학년 여학생들에게 머리를 바닥에 박게 하는, 속칭 ‘원산폭격’ 벌칙을 시킨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2일 경북의 모 대학 피해 여학생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모 유원지로 MT를 갔다가 늦은 밤 여학생 숙소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행사에 참여한 1, 2학년 여학생 18명은 저녁식사 뒤 대강당에서 레크리에이션과 술자리를 한 뒤 오후 9시 넘어 숙소로 돌아갔다. 조교 겸 4학년생인 A씨와 다른 4학년생 B씨가 숙소로 들어와 “교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데 떠들고, 신입생들 간에도 갈등이 있다고 들었는데 2학년생이 이를 다독이지 않아 분위기가 엉망이다”라고 후배들을 나무랐다. 이어 A씨는 1, 2학년 여학생들에게 “모두 머리 박아”라고 원산폭격을 시켰다. A씨는 나중에 원산폭격을 그만하라고 지시한 뒤 “MT 분위기를 좋은 쪽으로 끌고 가고자 한 단체 체벌인데 앞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자. 체벌해 미안하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MT에는 교수를 포함해 모두 50여명이 간 것으로 전해졌다. 남자 교수 3명과 여자 교수 1명이 함께 갔는데, 집단체벌 현장에는 교수들이 없었고, 학교에 돌아온 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학교 측은 파악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여학생은 “7만원을 내고 수련모임에 갔는데 군대에서조차 요즘엔 하지 않는 원산폭격을 후배들에게 시켰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이 대학은 2년제이지만 본인이 희망하면 4년까지 다니고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따. A양은 이 같은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자 지난달 30일 1, 2학년 여학생들을 따로 모아놓고 “누가 이런 말을 퍼뜨렸느냐”고 따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학과의 한 교수는 지난해 말 남학생 5명을 학과 사무실로 불러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해 피해 학생 2명에 대해 상해 및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학교 측은 “분위기를 다잡는다고 1분가량 원산폭격을 시킨 것 같다”면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한 뒤 가해 학생들을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슈가맨2’ 故 김성재 동생 “형을 꼭 기억해주세요”

    ‘슈가맨2’ 故 김성재 동생 “형을 꼭 기억해주세요”

    ‘슈가맨2’ 故 김성재 동생 김성욱이 형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다.지난 1일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2’(이하 ‘슈가맨2’)에서는 듀스 멤버였던 故 김성재의 동생 김성욱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김성욱은 故 김성재의 곡 ‘말하자면’ 무대를 꾸몄다. 김성욱은 형에 대해 “두 살 터울이라 라이벌 같이 지냈다. 형은 항상 같이 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니어서 계속 도망다녔다”고 기억했다. 그럼에도 김성욱이 故 김성재와 공유했던 취미는 비디오를 보는 것이었다. 김성욱은 “유일하게 둘이 함께 했던 것이 비디오를 보는 것이었다. 형은 비디오를 보면서 제 허벅지를 베고 잤다.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MC 유재석이 “故 김성재에게 표현을 못해서 아쉬운 것은 없냐”고 묻자, 김성욱은 “군대에 가서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보니까 형이 왜 늘 함께 하려고 했는지 알겠더라. 표현을 안 한 게 후회가 돼 태어나서 처음으로 형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동생이 준 편지를 고마워 했던 형은 그걸 평소에도 갖고 다녔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고 형이 떠났다”고 말했다. 김성욱은 “아직까지 형을 기억해주시는 팬분들에게 항상 고맙다. 형을 잊으셨거나 새로 알게 되신 분들은 故 김성재를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사진=JTBC ‘슈가맨2’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준 보충역 판정에 누리꾼들이 보인 반응은...?

    이준 보충역 판정에 누리꾼들이 보인 반응은...?

    지난 2월 군 내 부적응과 관련한 서울신문은 단독 보도 당시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던 배우 이준의 소속사가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 만에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 이준 소속사는 서울신문의 군 복무 관련 보도에 해명자료를 내고 “이준은 현재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밝혔었다.이준의 소속사 프레인TPC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배우 이준이 3월 23일 부로 보충역으로 편입됐음을 알려드린다. 앞으로 이준은 병무청의 지시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속사는 “지난해 10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한 이준은 입대 전부터 앓아온 공황장애로 복무중 치료를 받아왔다”면서 “하지만 호전되지 않아 군에서 법규에 의한 심사절차를 거쳤고, 현역복무에 부적격 하다는 판정에 따라 현역병복무 중 보충역으로 편입됐다”고 설명했다. ▶[단독]아이돌 출신 배우 이준 자해시도 의혹 서울신문은 지난 2월 12일 군 관계자를 인용해 이준이 군내 부적응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단독 보도했다. 그러자 소속사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며 관련 기사를 오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준이 현역에서 보충역으로 편입되며 여러 해석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연예인들은 왜 다 아프죠?” “면제가 참 많다” “이준의 우울증 때문에 우울하다” “남들은 다 잘 다니는 군대를 연예인은 왜 다 공황장애냐” “평소 연예인 한 것을 보면 공항장애를 올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등 과 “평소 이미지 보면 거짓말 아닐 것 같은데” “정말 아플 수도 있잖아”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이른바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으로 6월 항쟁이 발생했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외교부는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30년 이상 경과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했다. 문서 대부분은 1987년에 작성됐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당시 미국이 직접 남북 및 북·미 대화를 견인하려 했다는 점이다. 1986년 11월 7일 방한한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실제 미국은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개최,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하며 북·미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이 ‘남북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의미 있는 북·미 접촉은 없었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북한은 이 시기에 미국에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방안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 방안에서 북측은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이 외 남북이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9일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사절단으로 방남했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7년 12월 11~15일에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다. 그는 당시 외교부장으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34 달러(약 1280만원)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으로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29일 격동의 1987년을 담은 외교 문서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하면서 확인됐다.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특별사절단으로 왔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시대였던 셈이다.  국내적으로는 외교 당국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우발적 사건”이라고 외빈에게 주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북한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북한은 남북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한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보다 앞선 1986년 11월 7일 방한했던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소위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초조한 나머지 무력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미국은 실제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은 ‘남북한 당사자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며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북한도 한국보다 미국과 직접 대화를 고수하며 출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이 시기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참가국에 대회 보이콧을 요청하는 특사로 나섰다. 당시 외교부장이던 그는 1987년 12월 11~15일 ‘김일성 특사’로 우간다를 방문해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00여 달러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외신 떠들썩한데… 왜 ‘비공식 방문’인가

    지난 26일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포착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동 차량 앞쪽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북한 ‘인공기’가 달리지 않았다. 외신 보도로 떠들썩했지만, 북·중 매체들의 보도대로 ‘비공식 방문’이기 때문이다. 흔히 외교에서 정상의 방문은 상대국의 공식 초청에 따라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이 된다. 김 위원장의 방중도 먼저 제안키는 했지만 시진핑 국가주석이 초청했고 의전도 황제급이었다. 그러나 앞의 세 범주 밖의 ‘비공식 방문’이다. 28일 정부 관계자는 “시 주석의 초청이 있었고 북·중 정상회담도 열렸지만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국가 대 국가보다 당(黨) 대 당 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비공식 방문으로 처리한 것 같다”고 밝혔다. 북·중은 역사적으로 국가보다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의 관계가 우선이었다. 이번 방중의 주요 의도에도 2013년 김 위원장이 고모부이자 대표적 친중파인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악화된 당 대 당 관계 복원이 들어 있었다. 이번 만남도 국가 정상보다 당 대표 회담 성격이 컸다는 의미다. 이날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 김 위원장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령도자’라며 당을 앞세워 표현하고, 시 주석의 직함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가장 먼저 나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공식 방문은 사전에 방문 일정이 공개되는 것이 통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경호와 신변 안전 문제로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 비공식 방문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해석은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논의에 영향을 주거나 ‘미국 대 북·중 대결 구도’의 오해가 없도록 ‘로키’(low key)로 방중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비핵화 의지를 설명하고 중국의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인 탓에 실무적 만남으로 보이길 바란다는 의미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비공식 형태의 방중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하지만 오히려 비공개 일정이 주변국의 의구심을 더 키울 수 있고, 최근 강조하는 정상국가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살림남2’ 미나, 류필립 군대 동기와 나이 차이 “걔네들 두번 태어났다”

    ‘살림남2’ 미나, 류필립 군대 동기와 나이 차이 “걔네들 두번 태어났다”

    ‘살림남2’ 미나가 류필립 군대 동기를 만났다. 28일 오후 방송된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이하 ‘살림남2’)에서는 미나-류필립 부부의 일상이 전파를 탔다. 이날 미나는 류필립에게 “오늘 군대 동기 만나기로 했지? 몇 살이지?”라고 물었다. 이에 류필립은 “22살? 23살?”이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미나는 “나랑 몇 살 차이인 거냐”라며 당황했고, 류필립은 “걔네들이 두 번 태어났다”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미나는 “오늘 너무 피부가 별로다”며 류필립에게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다.그러자 류필립은 “오늘 좀 별로긴 하다”고 맞장구쳐 미나를 당황하게 했다. 이에 미나는 고주파 기계로 마사지를 하고, 팩을 하는 등 피부관리에 나섰다. 어린 남편의 군대 동기를 만나러 가는 게 부담이 된 탓인지 미나는 아이라인을 그리고, 볼터치를 하는 등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기 위해 노력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미나-류필립 부부가 출연하는 KBS2 ‘살림남2’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 55분 방송된다. 사진=KBS2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살림남2’ 미나, 류필립 친구들과 훈훈한 만남..칭찬에 ‘함박웃음’

    ‘살림남2’ 미나, 류필립 친구들과 훈훈한 만남..칭찬에 ‘함박웃음’

    ‘살림남2’ 미나가 노래방에서 댄스 삼매경에 빠졌다.28일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2’(이하 ‘살림남2’) 측은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미나의 열정적인 노래방 공연 사진을 공개했다. 이번주 방송분에서 미나는 류필립의 군대 친구들을 만난다. 미나는 류필립의 친구들 중 두 명의 나이가 20대 초반이라는 말을 듣고는 부담스러워했다. 나이차가 많은 탓에 친구들이 자신을 보고 어려워할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미나는 류필립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마사지를 받고, 밝은 색 옷을 준비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서 준비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난 필립의 친구들은 미나를 보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고, 미나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 보이는 친구들의 외모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20대로 보인다며 피부가 너무 좋다고 칭찬하는 필립의 친구들 말에 미나는 함박웃음을 지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졌다. 이후 신이 난 미나는 분위기 너무 좋다며 먼저 나서서 2차를 제안했고, 일행은 노래방으로 향했다. 공개된 사진 속 미나는 노래방에서 그녀의 히트곡 ‘전화 받어’를 부르고 있다. 노래방에 오자마자 친구들은 미나에게 ‘전화 받어’를 신청했고 미나는 특별한 자리인 만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편, KBS2 ‘살림남2’는 28일 오후 8시 55분에 방송된다. 사진=KBS2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4·3은 제주만 앓고 있는 병이 아닙니다”

    “4·3은 제주만 앓고 있는 병이 아닙니다”

    전국적·세계적인 관심 필요 생명·평화에 대한 화두 되길“1948년에 일어난 제주4·3 사건은 70년이 지나도록 마치 제주도만 앓고 있는 병처럼 되어 있죠. 하지만 제주를 병들게 한 것은 누구입니까. 육지에서 파견된 경찰이고 군대입니다. 변방에서 바라보듯 아무 생각 없이 이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됩니다. 70주년을 맞아 4·3 사건을 본토에 상륙시키고 더 나아가 그 관심이 전국화, 세계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제주4·3 사건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소설 ‘순이 삼촌’(1978)을 쓴 현기영(77) 작가가 특별한 광고에 출연했다. 4·3 사건 70주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가 기획한 TV 캠페인 광고에서다. 제주 출신인 영화감독 양윤호, 오멸, 한재림 등 3명이 각각 자신의 개성을 담은 짤막한 영상을 제작했는데 현 작가는 한 감독이 연출한 광고에 내레이션을 맡았다. ‘순이 삼촌’에서 모티브를 따온 이 영상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힘겹게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사람들과 이들의 뒤를 따르는 군인의 모습이 담겼다. 영상 위로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 사람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 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라는 소설의 한 대목을 읊조리는 현 작가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27일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 작가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국민이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듯 4·3 사건 역시 국가와 생명에 대해 운명적으로 묻는 사건”이라면서 “모쪼록 4·3 사건이 죽음이 아닌 생명을 옹호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가는 중요한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밝혔다. 군인들이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부 장면 등이 캠페인 광고 심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이 영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만 볼 수 있다. 현 작가는 새달 6일에는 광화문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4·3 사건을 그린 대하소설 ‘화산도’를 쓴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93)과 함께 ‘4·3에 살다’라는 제목 아래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현 작가는 “오랜 친구인 김 작가가 쓴 ‘화산도’는 4·3 사건과 해방 직후 역사에 대해 소상히 알 수 있는 작품”이라면서 “우리 둘이 만난 자리에서는 4·3 사건을 그저 애도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 국가를 원했던 민중들의 항쟁 이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아크부대를 ‘우정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청와대의 기획력

    아크부대를 ‘우정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청와대의 기획력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부대에서 27일 ‘우정의 무대’가 펼쳐졌다. 국군 장병이 보고싶은 가족을 만나는 감동의 옛 TV 프로그램이 이역만리 UAE에서 재현된 것이다.UAE를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이날 아크부대를 격려차 찾았다. 부대 내 식당에서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의 사회로 부대원들이 소감을 밝혔다. 특수전 3팀장을 맡은 이재우 대위가 마이크를 잡았다. 신혼인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파병이 확정된 후 결혼식을 10월로 미뤘다”면서 “아내는 신혼집에서 혼자 남편을 기다리고 있지만 국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인이니까 잘 이해하고 있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 부대변인은 이 대위에게 “뒤로 돌아 달라”고 말했다. 이 대위가 뒤로 돌자 아내 이다보미씨가 서 있었다.깜짝 놀란 이 대위는 아내를 힘껏 껴안았고 부대원들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 내외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 대위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정숙 여사가 직접 꽃다발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아크 부대장 김기정 중령은 이 대위에게 1박 2일의 부대장 특별휴가를 명했다. 문 대통령은 “두 분은 정말 축하한다. 대통령이 제대로 선물을 가지고 온 것 같다”면서 “정말 특별한 만남이 돼서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특전사가 주축이 된 아크부대를 방문해 “공수 130기, 공수특전단 출신 대통령”이라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아크 부대 임무 못지않게 여러분 개개인에게 중요한 임무가 또 있다. 건강하게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며 “다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에게 복귀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다. 그 임무를 기필코 완성할 것을 대통령으로서 명령한다”고 덧붙였다. 간담회를 마친 문 대통령 내외는 정연수·정대용 상병이 함께 쓰는 숙소를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복무한 1공수특전여단 소속인 정연수 상병에게 “1여단 어느 부대 소속인가”라고 물었고, 정 상병이 “3대대 작전과 입니다”라고 답하자, “같은 3대대 작전과네. 내가 3대대 작전과 선배에요”라며 웃었다.김정숙 여사는 인도 시민권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한 정대용 상병의 사연을 물었다. 정 상병은 “한 번도 한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길을 택하는 젊은이도 있는데 남자로서 당당하게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훌륭하다.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정연수 상병은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에 사인을 받았고, 정대용 상병은 군복에 사인을 받았다. 아랍어로 ‘형제’라는 뜻을 지닌 아크 부대는 평시에 UAE 특수전 부대의 교육훈련 지원과 연합훈련 등 군사교류 활동을, 유사시에는 UAE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특전사 선배’ 문재인 대통령 “아크부대는 태양의 후예”

    ‘특전사 선배’ 문재인 대통령 “아크부대는 태양의 후예”

    “여러분은 국민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태양의 후예’입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아랍에미리트(UAE)를 공식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아크 부대는 대한민국 군의 자랑이자 한국과 UAE 협력의 상징”이라며 “아크부대의 존재로 양국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고, 형제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군복 차림의 문 대통령은 이날 현지 파병부대인 아크 부대를 격려 방문한 자리에서 조준경을 바라보며 사격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975년 육군에 입대해 특전사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엊그제 정상회담에서 모하메드 왕세제도 아크 부대가 양국 간 협력의 차원을 높여준 주춧돌이라고 아주 높이 평가하며 고마워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아랍어로 ‘형제’라는 뜻을 지닌 아크 부대는 평시에 UAE 특수전 부대의 교육훈련 지원과 연합훈련 등 군사교류 활동을, 유사시에는 UAE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특전사에서 군 복무를 한 문 대통령은 특전사 출신이 주축이 된 아크 부대 장병들을 ‘후배’라고 부르며 “내 나라를 떠나,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이역만리 사막에서 고생하는 여러분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는 여러분이 이곳에서 흘린 땀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아크 부대는 시대가 요구하는 강한 군대, 신뢰받는 군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군대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으며, 국방 교류협력에서도 새로운 모범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한국에서는 우리 군의 역사를 독립군, 광복군으로부터 새롭게 정립하고 있다”며 “우리가 독립군과 광복군을 기억하며 애국심과 자긍심을 갖듯이 여러분의 후배들도 여러분을 자랑으로 여길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조국에 젊음과 열정을 바친 여러분들의 빛나는 얼굴을 늘 기억하고 여러분이 꼭 지키고 싶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과 함께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여러분을 사랑하고, 국민이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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