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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한 캄보디아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한 캄보디아

    중국이 캄보디아를 ‘경제적 속국’화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가 중국에 해군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비밀 협약을 맺은 데다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성장을 이끌고 대규모 리조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친중(親中) 성향의 국가로 분류되는 캄보디아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주요 대상국이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간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있어서도 같은 아세안 회원국인 베트남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입장보다는 중국 쪽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중국 정부가 캄보디아 남서쪽 해안에 있는 해군 기지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비밀 협약을 캄보디아 정부와 체결했다고 복수의 미 관리들을 인용해 지난 21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중국과 캄보디아는 지난 봄 중국 인민해방군(PLA)이 타이만에 접해 있는 캄보디아 쁘레아 시아누크주의 림(Ream)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는 비밀 합의에 서명했다. 로이터통신도 앞서 미국 국방부가 지난달 24일 캄보디아 국방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PLA가 림 해군기지에 주둔할 가능성에 대해 큰 우려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68㎞ 떨어진 시아누크항 인근에 위치한 림 해군기지는 현재 76만 8902㎡(약 23만 2593평) 규모의 부지에 1개의 부두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WSJ은 중국과 캄보디아의 초기 협상안에는 2개의 부두를 추가로 건설해 하나는 중국이, 하나는 캄보디아가 각각 사용하는 것으로 계약돼 있다며 림 해군기지 내 PLA의 주둔과 중국 군함 정박 및 무기 저장, PLA의 무기 소지를 각각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측이 림 해군기지 내 중국측 영역(25만 905㎡ 규모)에 진입하려면 중국 측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먼저 30년간 기지를 사용하고 이후 10년마다 사용허가를 자동 갱신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WSJ은 PLA가 캄보디아 해군기지에 주둔하면 중국이 주변국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와 말라카해협 등에 군사력 투사 능력을 강화해 미 동맹국들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에 중국의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전략적 입지는 그만큼 강화되고 확장될 수밖에 없다. 호주 시드니대의 한 연구원은 “캄보디아에 해군 기지가 있다면 중국은 동남아시아 주변 해역에서 유리한 작전 환경을 가지게 될 것이고 동남아시아 본토는 잠재적으로 중국의 군사경계선 안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강력히 부인하며 펄쩍 뛰었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외국의 군사기지를 유치하는 것은 캄보디아의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파이 시판 캄보디아 정부 대변인도 “그런 것과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서 ‘가짜뉴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중국 역시 “캄보디아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미국 정부는 림 해군기지와 관련해 중국과 캄보디아 측 간의 협상 낌새를 1년 전에 처음 접했으며 이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캄보디아 측에 서한까지 보내 저지를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캄보디아 국방부는 림 해군기지 내의 시설 개선을 위해 당초 요청했던 미국의 자금 지원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중국과 캄보디아 간 림 해군기지 밀약 의혹은 더욱 증폭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올초부터 캄보디아에서 본격 공사가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리조트 프로젝트도 주목된다. 코끼리들이 유유자적하는 캄보디아 최대 국립공원의 청정 해변을 따라 조성된 리조트여서가 아니라 이 리조트 프로젝트가 언제든 중국의 해군기지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캄보디아 코콩주의 보틈사코 국립공원 일대를 개발하는 ‘다라사코 리조트 프로젝트’는 캄보디아 해안선의 20%를 차지하고 싱가포르 면적의 절반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규모다. 중국 연창설계(聯創設計·UDG)그룹은 2008년부터 해당 부지를 99년간 임대 받아 사업비 38억 달러(약 4조 5000억원)에 추가로 12억 달러를 들여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급 리조트를 내세운 이 사업 프로젝트는 ▲카지노와 골프장, 5성급 호텔과 현대적인 콘도, 상업빌딩 등 휴양 시설은 기본이고 ▲국제공항 ▲심해 항만(deep-sea port) ▲발전소 ▲의료 시설까지 완비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이런 만큼 미국은 다라사코 리조트 프로젝트가 캄보디아에 군사력을 배치하려는 중국의 보다 큰 계획이 감춰져 있다고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림 해군기지에서 64㎞쯤 떨어진 국제공항과 심해 항만 건설 계획에서 중국의 붉은 깃발이 아른거린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다라사코에 짓겠다는 국제공항은 연간 1000만명의 승객을 수용하는 규모이다. 수도 프놈펜 공항의 두 배에 해당한다. 다라사코 프로젝트가 속한 코콩주의 연간 해외 방문객은 15만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서너 시간 거리에 시아누크빌 공항도 있기 때문에 굳이 새 공항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도 내년에 문을 열 예정인 이 공항은 대형 민간 여객기는 물론 중국의 장거리 폭격기와 군 수송기가 이·착륙하기에 충분한 활주로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WSJ가 위성사진 분석결과 공항 부지에는 이미 길이 3.2㎞의 대형 활주로가 갖춰진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위성 사진 분석가인 인도의 한 육군 대령도 “수심이 깊은 심해 항만도 관광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이는 하루아침에 해군 기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미국 등은 중국 PLA가 이 공항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캄보디아를 설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밀리 지버그 캄보디아주재 미국대사관 대변인은 “미국은 외국군의 주둔을 허용하는 캄보디아 정부의 어떤 조치도 지역 평화와 안정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관리는 중국군이 림 해군기지에 주둔하거나 건설 중인 캄보디아 공항을 이용하게 되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대만지원 능력을 상당히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암암리에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미도 엿보인다. 지난해 7월 총선을 치른 캄보디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34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는 훈센 총리는 당시 캄보디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의 폐간을 유도하고 제1야당을 해산시키는 등 노골적인 권위주의 야욕을 드러내왔지만 국민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총선에서 전체 의석 125석을 싹쓸이하는 압승을 거뒀다. 국민들이 독재자 훈센 총리에게 지지를 보낸 것은 중국의 투자 지원에 힘입어 2010년 이후 꾸준히 10% 안팎의 성장률을 이어온 경제적 성과 덕분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미국과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받으며 성장했던 캄보디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서방 국가들이 ODA를 줄이기 시작하자 중국 자본에 손을 벌렸다. 2016년 기준 외국인직접투자(FDI) 총액 11억 달러(1조 3000억원) 중 절반이 넘는 7억 5100만 달러가 중국계 자본이었다. 중국의 도움 없이는 지금의 경제성장도 없었다고 믿는 캄보디아 국민들은 친중국 성향 정부의 권위주의 정치에도 관대한 편이다. 지역 통합과 경제 발전을 앞세우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따라 각국에 도로·철도·발전소를 짓는 중국이 ‘독재라도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중국식 개발 모델까지 함께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지난 23일 오전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기 3대가 통보 없이 한국항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러시아 조기경보기 1대는 두 차례나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타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첫 사례다. 우리 군은 즉시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사격까지 했다. 오랜만에 보여 준 군 본연의 속 시원한 모습이다. 군인에게 국가 이익은 오로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신속하고 당당한 대응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과 현장 지휘관에게 외교적 우려나 걱정은 사치다. 이로 인해 발생한 외교적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고 정부의 몫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 획득과 확대를 위해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시현해 왔다. 특히 다른 나라에 함대를 파견해 압력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외교 수단 중 하나인 포함외교의 역사는 오래됐다. 1866년 셔먼호사건,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강화도사건 모두가 포함외교가 빚은 아픈 역사다.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지켜보면서 구한말 열강들의 침탈이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 국방부가 중국 공군과 처음으로 연합 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힌 만큼 이미 철저히 준비된 훈련이었다. 독도 영공 침범 역시 경고사격에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반복됐다는 점에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러가 우리와 개별적으로 군사문제를 야기하고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기에 중러 연합훈련을 동해상에서 실시한 의도는 두 나라가 노리는 전략적 이익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 편을 들어 북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거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중러가 첫 장거리 연합 초계비행 훈련을 한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러의 군사협력 강화와 공동 대응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대 중러 대립의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러를 위협 국가로 규정했다.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고 러시아의 극동 지역 복귀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위상 강화를 가장 바라는 쪽은 미국이다. 아베의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이 군대를 가지게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인정받으려면 한일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위안부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미국-일본-한국이라는 위계적 질서에서 우리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는 족쇄까지 채워졌다. 한국에도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요구하며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군사협력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쪽 한 축을 구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 의사를 밝히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러의 공중훈련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의도대로 호락호락 추진되지 않을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인 미국-일본-한국의 위계적 관계가 가진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독도 영공 침범이 계획적이었다면 일본이 이 상황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리의 군사적 대응을 비난하는 순간 중국과 러시아가 원하던 인도·태평양 전략의 균열이란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미국이 서둘러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독도 문제에 대한 논란을 피하려는 듯 어느 나라 영공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다. 이번 중러 연합훈련이 조직 간 세력 다툼에서 상대 보스나 중간 보스가 아닌 일단 조직원을 향한 것이라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미국이 보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다르다.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이 “누가 넘버 3래. 나 넘버 2야”라고 했던 대사가 불현듯 생각난다. 중러 군용기 엔진 소음이 “그렇게 영원히 넘버 3로 살 거니?” 하는 것처럼 들리니 이상하다.
  • 한·러 ‘독도영공침범’ 실무협의…러, 침범 인정 안해

    한·러 ‘독도영공침범’ 실무협의…러, 침범 인정 안해

    한국과 러시아가 지난 23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 국장급 실무협의를 열었다. 우리 군은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전달했지만 러시아 측은 침범을 인정하기는커녕 관련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25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한 한·러 국장급 실무협의를 오늘 오전 10시 30분부터 정오까지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개최했다”고 밝혔다. 양국 실무협의에는 국방부 이원익 국제정책관과 주한 러시아 무관부 무관대리 니콜라이 마르첸코 공군대령 등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이번 협의에서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일부 자료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23일 독도 인근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를 군 레이더로 포착한 항적 자료 등 일부 자료가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회의에 참석한 주한 러시아 대사관 무관은 “한국이 제시한 자료를 본국에 전달하겠다. 본국에서 자료를 확인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 “오늘 실무협의를 통해 러시아 군용기의 우리 영공 침범 사실을 확인해주는 증거자료를 제공하고, 관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했다”면서 “러시아 측은 동 자료를 진행 중인 조사에 적극 참고할 수 있도록 러시아 국방부에 즉시 송부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러시아는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상호 교환한 군사정보는 제3국에 유출해서는 안 된다. 군 당국은 러시아 A-50이 독도 영공을 침범했을 당시 KF-16 전투기에서 발사한 ‘플레어’ 사진과 레이더 영상, KF-16과 F-15K의 디지털 비디오 레코드(DVR) 기록, 레이더에 포착된 A-50 항적, 전투기 조종사의 경고 사격 음성기록 등의 자료를 확보했다.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러시아 측의 영공 침범 행위를 알리고, 재발 방지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실무협의에 참석한 러시아 측은 ‘영공침범’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 정부는 전날 주러시아 한국 무관부를 통해 자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조종사들이 자국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비전문적인 비행을 했다는 내용의 공식 전문을 우리 정부에 보냈다.주한 러시아 대사관도 24일(현지시간)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자국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 사실을 인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크 에스퍼 미국 신임 국방장관은 24일(현지시간)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가 기억하는 한 러시아 군용기가 남쪽으로 비행한 것은 새로운 사실은 아니며, 그들이 한국 영공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문소영 칼럼] 7세기 백강전투와 21세기의 한일 관계

    [문소영 칼럼] 7세기 백강전투와 21세기의 한일 관계

    백강전투(白江戰鬪). 7세기 한반도에서 한중일이 처음으로 격돌한 국제전으로 평가받는데도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중국에서는 백강구전투로, 일본에서는 백촌강전투로 알려진 이 백강전투는 663년 8월 금강 하구 등에서 백제 부흥군과 일본이 연합군으로, 나당연합군과 싸운 전투다. 백강전투에 당시 백제 부흥군의 규모는 5000명에 불과했지만, 일본군은 5~8배 이상인 2만 7000~4만 2000명이었다. 다른 의도가 없다면 일본은 혈맹 백제를 위해 엄청난 출혈을 감행한 것이다. 이들 백제·일본 연합군은 그러나 신라군 5만과 당군 13만의 대군에 대패했다. 당시 전투에 대해 ‘구당서’는 “왜군 수군의 배 400척을 불태워 그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바닷물은 왜군의 시체로 핏빛이었다”고 적어 놓았다. 7세기 당시 일본 국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배 1000척과 3만~5만에 가까운 군대를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백제와 일본 관계의 밀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의 정권 자체가 휘청했는데, 그때를 놓치지 않고 삼촌이 왕위에 오른 조카를 죽이고 정권을 탈취했으니 말이다. 4년 전쯤 알게 돼 깜짝 놀랐던 역사다. 요즘은 교과서에도 짧게 소개된다는데 잘 안 알려졌다. 왜일까. 일각에서는 백제가 660년 멸망한 뒤에서도 3년 넘게 신라에 저항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의도라거나, 16세기 임진왜란과 20세기 일제강점기 등 과거사에 대한 분노 탓에 일본군이 백제를 도왔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전쟁사 전문가는 일본이 백강전투를 근거로 한국 식민지배를 정당화했던 탓이란다. 일본의 아전인수식 왜곡된 역사 해석은 안타깝다. 한국인은 수천 회에 달하는 외세 침략의 희생자라 규정하고는 한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계승범 교수의 저서 ‘조선시대 해외파병과 한중관계’에 따르면 조선의 세조와 성종 때 명나라의 요청으로 여진을 치는 연합군을 편성해 전쟁에 나섰고, 인조 때는 청의 요청으로 ‘재조지은’인 명나라를 치려고 파병하며, 효종 때는 역시 청나라의 요청으로 러시아를 원정하는 1, 2차 나선정벌에 나서는 등 소극·적극적으로 쏠쏠하게 군사행동에 나섰다. 또 한국인이 일본을 괴롭히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고려 말 창왕 때와 조선 초 세종 때 각각 쓰시마를 정벌했고, 또 고려 말에는 원나라와 함께 일본 정벌을 위해 1, 2차 여몽연합군을 편성했다. 최근 한일 정부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은 G20 주최국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하더니, 지난 4일부터는 반도체 소재의 대한국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더 나아가 15년간 유지해 왔던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단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져 가다 보면 일본 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한일 과거사 문제가 나온다. 가깝게는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과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졸속 합의, 멀리 가면 1965년 한일협정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불안정성이, 더 멀리 가면 1910년 한일병탄의 불법성이 나온다. 즉 독도 소유권 문제나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 과거사 논쟁의 뿌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일본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와 관련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외교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는 방안을 찾기보다 전략물자의 관리 부실이라는 가짜뉴스급 ‘안보의 문제’를 제기하며 자유무역 체제를 훼손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국제분업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활동인데, 가장 큰 혜택을 본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이 국제분업을 정치적 보복의 수단을 악용함으로써 나쁜 선례를 남기고 있다. 이는 성숙한 선진국의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일 관계가 나쁠 때도 있었지만, 악감정을 내려놓고 좋은 이웃으로 지낸 시간들이 더 길었다. 대표적으로 1592년 임진왜란과 1598년 정유재란 이후 조선은 일본의 반성을 근거로 1609년 국교를 정상화한 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기 전까지 260여년 평화를 구가했다. 중국이 팽창하고 있고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이 ‘미국 우선주의’로 변화하는 가운데, 21세기 동북아의 평화는 소소하게 티격태격하더라도 한미일 3각 안보동맹이 튼튼해야만 가능하다. 한일이 윈윈했던 역사를 돌아보고, 개항기의 나쁜 일본뿐 아니라 역사 해석의 논란이 있지만 백제의 혈맹이었던 일본이라는 고대사를 소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symun@seoul.co.kr
  • 유승호 “요즘 취미? 산악바이크에 빠졌다”

    유승호 “요즘 취미? 산악바이크에 빠졌다”

    배우 유승호의 ‘싱글즈’ 화보가 공개됐다. 이번 화보에서 유승호는 여심을 저격하는 아련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한층 더 깊어진 감성으로 촬영 컨셉에 맞춰 분위기를 리드했다는 후문이다. 일찍 군대를 다녀온 유승호는 제대 이후 영화 ‘조선마술사’부터 드라마 ‘복수가 돌아왔다’까지 과감한 주제와 캐릭터를 선택하며 5년 간 7편의 영 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자신을 대변하는 단어로 ‘도전’을 고른 유승호는 “요즘 들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시도해보려고 해요. 스스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도전하면서 저를 좀 알아가는 중이에요. 요즘은 그 일환으로 산악바이크 엔듀로를 타는 재미에 빠졌어요”라고 전했다. 차기작을 고민하는 지금도 가장 주목하는 단어로 ‘도전’을 꼽은 그는 “저에게 맞는 옷을 찾고 있어요. 하지만 중복되거나 겹치는 역할은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제가 도전해보지 못한 장르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라며 앞으로의 작품 행보에 기대감을 높였다.오는 9월 그의 첫 주연 영화 ‘집으로’가 재개봉된다. 그는 “과거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 재개봉을 하는데 거기에 제가 나온 작품이 선정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영광이에요. 개봉 일자에 맞춰 바로 극장을 찾을 예정”이라며 들뜬 마음을 전했다. 성장을 거듭하며 진화하는 유승호의 모습은 우리가 그를 알았던 시간만큼 또다시 시간이 흘러가는 과정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어느새 데뷔 20년차의 배우로 성장한 유승호는 “어렸을 때 현장은 그저 힘든 곳이었어요. 지금도 물론 힘든 순간이 있지만 이제는 즐길 수도 있고 책임감도 생겨요.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를 하는 캐릭터에 듬뿍 빠지는 경험도 신비로워요. 확실히 예전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몰입이 더 짙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 유승호의 화보와 인터뷰는 ‘싱글즈’ 8월호와 ‘싱글즈’ 모바일에서 만날 수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글로벌 In&Out] 북한, 사회주의기업 채권시장을 만들어야/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글로벌 In&Out] 북한, 사회주의기업 채권시장을 만들어야/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만약에 대북 제재가 완화되면 북한은 자국 시장경제와 국가경제의 절충적 개선 조치의 일환으로 새로운 시장이자 국영 경제의 활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시장과 사기업 간의 사회주의 물자교류 시장을 넘어 ‘사회주의 금융시장’이 발달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현재까지 중앙계획경제로 각 생산단위에 행정명령을 통해 일부 생산을 요구한다. 또한 사유재산을 합법화하기는커녕 형법에 개인기업에 대한 금지를 명문화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실제 생산단위들은 ‘돈주’(돈이 있는 주민)의 자본과 판로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사상 때문에 돈주나 핵심 경제주체들을 인정하거나 선전에서 미화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 ‘돈주’들을 탄압해야 할 것인가? 분단된 민족의 한 국가로서 매우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는 북한 정부는 국가의 정체성을 마구 바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2013~2015년 사이에 시범사업에서부터 전개돼 모든 부문에 걸쳐 실행된 것으로 명문화된 일부 국영기업 개선 조치의 내용을 보면 돈주들을 그저 암암리에 묵인하고 언젠가 탄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경제 발전에서 국가의 합법적 상대으로 인정하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이제 국영기업과 협동농장은 합법적으로 주민의 여유자금(유휴화폐)을 대출(동원)할 수 있으며, 인재도 채용할 수 있다. 여유자금으로 생산된 몫에 대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이런 권한들을 뒤집어 보면 여유자금이 있는 주민(돈주)들은 이제 중앙은행으로부터 국영기업이나 농장에 빌려주는 자금에 대한 보호를 받고 인재라는 명의하에 국영기업이나 농장의 경영직에 합법적으로 등록될 수 있으며, 스스로 조직한 단위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 정부는 돈주의 위치와 위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런 정책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러 번 사유재산이라는 것은 사회주의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기에 소유제도 정비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돈주의 투자와 관련해서 금융개혁을 심화하는 것이 사상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돈주들이 국영기업에 빌린 자금의 장부상 가치 일부 혹은 전부를 채권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 현재 북한 은행들은 전자결제 수단(지불카드)도 만들었고 여러 저금 상품도 제공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기업의 채권거래소를 만드는 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돈주들이 국영기업이나 농장에 빌려준 자금을 채권으로 만들고, 거래소와 개인들이 살 수 있는 펀드도 만들면 돈주만큼 돈이 있지는 않지만 여유자금을 투자하고 싶은 주민들에게 투자 기회를 주고 돈주들은 투자 다각화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시장발달 조치는 위험할 수 있다. 1990년대 중국을 보면 국영기업의 채권시장을 제대로 세우려면 투명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북한의 많은 기업들은 회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김 위원장이 2015년에 전국재정은행일군대회에 보낸 서한을 보면 아직 분식회계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국영기업의 회계 문제는 돈주(기업)와 국가 간의 상이한 이해관계(탈세)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제재가 완화되면 경제시스템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 세금 문제와 내부 투자 유치를 장려할 기회가 될 수 있어, 민간 투자자와 국가가 회계의 정확성에 있어 유사한 이해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물론 회계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런 폭넓은 경제 정보공개는 제재 완화 전에는 북한 정부에 곤란할 수 있기에 제재 완화 이후 꼭 실행돼야 한다.
  • [사설] 아베 총리의 ‘전쟁 가능 국가’ 개헌 추진 반대한다

    지난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는 집권당인 자민·공명당이 의석의 과반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아베 신조 총리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 필생의 과업인 헌법개정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는 측면에서는 ‘절반의 승리, 절반의 실패’였다. 일본 참의원은 6년 임기의 국회의원을 절반씩 나눠 3년에 한 번 선거를 치른다. 아베 총리는 지난 3년간 개헌 동조 세력인 일본 유신회 소속 참의원까지 합쳐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각각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을 확보했으나 개헌 발의를 하지 못했다. 자민당 내부는 물론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공명당조차 개헌 반대 세력이 있는 데다 많은 국민이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 개정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헌법 9조의 ‘전쟁 포기’, ‘군대 보유 금지 및 교전 불인정’에 손대려 했으나 공명당마저 반발하자 이 항목을 놔두고 ‘자위대 명기’로 후퇴했다. 하지만 개헌의 물꼬가 터지면 살금살금 개헌 폭을 넓힐 것이라는 게 주변국의 우려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5월 초 일본의 ‘헌법기념일’ 전후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의 기운이 높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22%에 불과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72%였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일본인이 아직도 다수 생존해 있는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70여년간 평화와 공존을 가능케 한 평화헌법에 손을 대려는 시도에 대한 불신감이 뿌리 깊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로 개헌선을 확보하지 못한 만큼 2021년 9월까지가 임기인 아베 정권에서 개헌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일본 내 개헌 추진세력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아베 총리는 투표 종료 직후 “제대로 (개헌을) 논의하라는 국민 소리를 들었다. 국회에서 논의를 기대한다”면서 야당인 국민민주당의 이름을 들어 노골적으로 협력을 호소했다. 즉 정계개편을 통한 개헌 시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견제라도 하듯 도쿄·아사히·마이니치신문 등은 7월 22일자 사설에서 “무리한 개헌 논의 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아베 총리가 원하는 개헌은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대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당한 아시아 국가들로서는 일본이 전쟁 가능한 나라로 복귀하는 것은 악몽이 아닐 수 없다. 대중국 봉쇄라는 명분을 미국이 앞세우더라도 그렇다. ‘개헌 발의선’ 확보에 실패한 참의원 선거 결과에도 우리가 경계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우상’ 요시다 정한론 가슴에 품고…아베의 21세기판 침탈 야욕

    ‘우상’ 요시다 정한론 가슴에 품고…아베의 21세기판 침탈 야욕

    1910년 8월 29일 밤 서울 남산 기슭 통감관저.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자축하는 연회가 열렸다. 첫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경복궁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어줍잖은 하이쿠(일본의 단형시) 한 줄이 흘러나왔다. “고바야카와 다타카케,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오늘 저녁 저 달을 어떻게 보았을까.” 1592년 조선을 정복하려다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수들이었다. 전임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 하이쿠를 이어받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땅속에서 깨워 보이리라, 조선 산 높이 오르는 일본 국기를.” 데라우치는 도요토미와 그 장수들 그리고 이토에게 ‘조선 병탄’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역사는 한 번도 끊이지 않았다. 기록된 것만 조선조까지 무려 1000회 이상이다. 663년 4만여 명 이상을 동원해 신라와 전투를 벌였고, 760년에는 발해에 신라 침공을 유혹하기도 했다. 고려 실록엔 600여건의 왜구 침략 기사가 실려 있고, 조선왕조실록엔 312건이 올라 있다. 침탈의 주력은 일본의 서남단 지금의 야마구치현(옛 지명 조슈번)이거나 구마모토, 가고시마현(옛 지명 사쓰마번)이었다. 이 중에서도 조슈번은 특별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물론 1, 2대 조선 총독이 모두 조슈번 출신이었다. 조슈번은 외지고 작았지만, 특유의 공격성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했다. 유신 이후 총리만 무려 8명이나 배출해 하나의 벌(閥)족을 이뤘다. 두 번째로 많은 도쿄는 4명뿐이다. 한국에서 대통령 12명 중 5명을 배출하고, 정부 수립 후 70년 가운데 40여년을 집권한 ‘TK’(대구·경북)와 비슷하다. 군벌이 주력이었다는 점도 같다. 다만 조슈번 벌은, 무작정 권력만 추구한 ‘TK 벌’과 달리 나름의 이념과 책략이 있었다. 그 스승은 요시다 쇼인. 지난 17일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우호적으로 인용했다가 망신을 당한 인물이다. 지금도 야마구치현에선 그에게 ‘선생님’이란 경칭을 쓰지 않으면 바로 외면당한다. 그가 제시하고 가르친 책략이 바로 정한론(征韓論·조선정복론)과 ‘일본 굴기’다. 조슈번에는 사이코데이(채향정)라는 130년 전통의 요정이 있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100여년간 일본 요정 정치의 꽃이었다. 거기엔 박정희 군사정권 실세들을 불러들여 한일협정을 성사시킨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별실도 있다. 채향정의 대연회장인 오히로마에는 좌우 벽을 따라 묵서가 20여점 걸려 있다.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모토,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등 ‘정한’(征韓)의 주역과 현대의 기시 노부스케와 그의 동생 사토 그리고 아베 신조 등이 그 필자다. 아베의 묵서 내용은 “적연부동”(寂然不動).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불과 1년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은 아베 신조는 자신의 지역구(시모노세키)에 머물며 채향정을 드나들었다. 숭배하는 인물의 신조가 빼곡하니, 권토중래를 꿈꾸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아베가 묵서를 가져온 것은 2009년 9월. 다시 출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마음은 조용하고 편안하고,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곧 도쿄로 올라간다. 아베는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두 번째로 총리가 된다. 그때 내건 슬로건이 ‘강한 일본’, 현재 한일 관계를 흔드는 책략이다. 아베는 총리가 되고 전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차 집권 때 참배하지 않은 것을 두고 ‘통한의 극치’라고 했다. 이어 평화헌법 개정 추진과 전쟁 가능한 국가 만들기, 역사 왜곡, 도덕 교과서 부활 그리고 지금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탈이 뒤따랐다. 그런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그는 외조부 기시로부터 요시다 쇼인과 그의 수제자 다카스기 신사쿠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성장했다고 자랑처럼 말하곤 했다. 아베 할머니의 할아버지(외고조부)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 오시마 요시사마다. 1894년 일본군 8000명을 이끌고 경복궁을 점령한 자다. 이토와 오시마가 조선 정벌에 앞장섰다면, 기시는 일제의 괴뢰 만주국 창설의 주역이었다. 기시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됐지만, 재판도 받지 않고 3년 만에 출소해 ‘쇼와의 요괴’로 불리며 일본 정계를 주물렀다. 아베의 할아버지 아베 칸은 조슈번 향리에서 ‘현세의 요시다 선생’이라고 불렸다. 아베의 이름 신조(晉三) 가운데 ‘신’, 아버지 이름 신타로 가운데 ‘신’은 요시다의 수제자 신사쿠에서 따왔다. 요시다의 ‘지성’(至誠)은 아베의 정치적 신념이 됐다. 아베는 “지성이면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2006년 8월 자민당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했던 “사무라이 된 자, 그 뜻(志)을 세워야 그 뜻한 바, 기(氣) 또한 따른다”는 말도 요시다의 말이다. 새로 출간된 도덕 교과서엔 요시다의 이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2013년 8월 총리가 된 뒤 현역으로는 처음으로 요시다 묘소를 참배했다.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다짐했다. “올바른 판단을 하겠다.” 요시다는 1830년 조슈번의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존왕양이’를 위한 과격한 행동으로 수감된다. 금고 상태에서 송하촌숙(쇼카손주쿠)이라는 학당을 만들어 인근의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지은 ‘유수록’엔 그 내용이 잘 담겨 있다. ‘왕조가 바뀌는 중국과 달리 황손이 만세일계를 이루는 일본이 우월하다.’ ‘신성이 있은 연후에 창생이 있다.’ ‘조선의 나라들은 덴노(일왕)의 속국이었으나 국체(덴노 중심체제)의 쇠퇴와 함께 교만해졌다.’ 요시다의 몽상적 역사 인식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국체가 손상된 도쿠가와 막부 시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이 신성의 도에 부합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신공황후(3한을 정벌했다는 신화 속 인물)나 히데요시야말로 황도를 밝게 하고 국위를 신장한 것으로서, ‘신주의 광휘’다.” 요시다가 수감됐을 때 미국와 프랑스가 함포를 앞세워 개항을 압박했고, 막부는 이에 굴복했다. 요시다는 ‘국난 극복’의 책략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疆域(강역)을 소중히 하고 조약을 엄히 지켜 二虜(이로·미국과 러시아)를 제어하고, …쉬운 조선을 취(取)하고, 만주를 꺾고, 지나(支那)를 누르고, 인도에 臨(임)함으로써 진취(進取)의 세를 펴고, 이로써 退守(퇴수)의 기반을 굳히고, 신공과 히데요시의 나라가 달성하지 못한 바를 이룩해야 한다.” 그 세례를 받은 자들의 면면은 이렇다. 다가스키 신사쿠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제자로 막부 타도의 1등공신이다. 이토는 그를 “동하면 우레 같고, 발하면 풍우 같았다”고 평가했다. 기도 다카요시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메이지유신의 3걸. 조슈 군벌의 수장으로 ‘일본 육군의 교황’이었던 야마가타 아리모토는 청일전쟁 때 조선군 사령관이었다. 아베의 외고조부 오시마는 청일전쟁 전날 경복궁을 점령해 조선을 청일전쟁의 교두보로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총리대신을 2차례 역임하고,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제한 뒤 초대 통감이 됐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조선에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뒤 주한 공사를 역임했으며, 그의 후임 미우라 고로는 부임하고 불과 한 달 뒤 명성황후 살해를 지휘했다. 가쓰라 다로는 미국으로부터 조선의 병탄을 묵계받은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주역이었으며, 다나카 기이치는 총리 시절 중국 침략을 기획했고, 데라우치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 2대 조선 총독이었다.요시다는 1858년 막부의 2인자 마노베의 암살계획을 추진하다가 체포돼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편지를 보낸다. “민초들을 산처럼 일으켜 체제를 바꾸라.” 이른바 ‘초망굴기’(草莽起)다. 유신을 주도하고, 힘을 길러 조선부터 인도차이나까지 집어삼킨 뒤 미국과 맞붙고, …제자들은 그 길을 갔다. 아베의 ‘강한 국가’도 그 연장이다. (평화헌법) 체제를 뒤엎어, 쉬운 나라부터 취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경제적 침략을 앞세워 우리 정부를 친일 정권으로 바꾸려는 것은 1894년 외고조부 오시마가 군대를 앞세워 했던 짓과 다르지 않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장윤정 아들, 누구 닮았나 봤더니..

    장윤정 아들, 누구 닮았나 봤더니..

    장윤정 아들이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다. 최근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에서는 이승기, 이상윤, 육성재 양세형이 지난주에 이어 ‘트로트 퀸’ 사부 장윤정과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트로트 원 포인트 레슨을 마친 장윤정은 멤버들에게 모시조개 샤부샤부를 대접했다. 이날 방송에서 장윤정 아들은 노래를 부르며 남다른 감정표현을 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날, 장윤정의 패밀리가 총출동한 야유회가 시작됐다. 장윤정의 트로트 후배 소유미(정민, 재풍), 나무, 윤희, 영탁, 김빡(김인석, 윤성호)이 함께했다. 김인석과 윤성호는 장윤정을 ‘트로트계의 엄마’라고 칭하며 장윤정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장윤정은 김빡에 대해 “트로트나 해볼까’라고 도전하는 후배들은 안 예뻐 보인다. 개그 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트로트) 그룹을 해서 재미 삼아 하나보다고 생각했다”며 “근데 진지하냐고 물어봤더니 정말 진지하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김빡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도전하고 있었지만 개그맨이라는 편견 탓에 곡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이에 장윤정은 자신의 수 많은 히트곡들을 쓴 분을 만나게 해줬다고 밝혔다. 김빡은 “우리끼리도 많은 얘기를 했다. 왜 장윤정 씨가 우릴 도울까. 저분은 트로트라는 장르에 대해 생각이 남다른 거다”라며 장윤정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후 전주 1초 듣고 노래 제목을 맞히는 ‘1초 노래방’ 대결이 시작됐다. 이승기는 트와이스의 ‘TT’를 바로 맞혔다. 이승기는 군대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승기는 장윤정이 ‘정답’을 외쳤음에도 끝까지 안무를 선보이며 노래를 열창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멤버들과 장윤정의 후배들은 노래와 춤으로 흥을 한껏 끌어올렸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최정우 취임 1년간 시총 8조 증발…포스코 ‘날개없는 추락’ 어디까지

    최정우 취임 1년간 시총 8조 증발…포스코 ‘날개없는 추락’ 어디까지

    국내 철강산업을 이끄는 포스코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주가 폭락과 영업이익 감소, 대내적으로는 잇따르는 사망 사고와 노조 와해 논란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 노동자들은 직업병 보상 투쟁을 장기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취임 1주년(27일)을 맞는 최정우 회장이 이런 ‘사면초가’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 ●지난해 7월 27일 최 회장 취임 이후 주가 내리막길 포스코 주가는 최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7월 27일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포스코의 지난해 8월 1일 시가총액은 29조 1639억 9600만원, 종가는 33만 4500원을 기록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난 5월 24일 시가총액 19조 9657억 8500만원, 종가 22만 9000원으로 바닥을 찍었다. 기업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가 9개월여 만에 31.5% 급락한 것이다. 시가총액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경영 실적 역시 상황이 좋지 않다. 최 회장이 취임한 시점인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1조 5311억원이었으나 4분기에 1조 2715억원으로 17.0% 하락했다. 이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조 2029억원으로 다시 5.4%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9.1% 하락한 수치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1분기보다 7.6% 감소한 1조 1119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는데 경기 침체로 제품 가격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값싼 철강 제품이 국내로 들어와 전반적인 철강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영업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경기 둔화까지 겹쳐 철강 가격은 더욱 하락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철강의 질이 향상되면서 포스코가 내세우는 ‘프리미엄 철강’의 차별성이 약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도 철강 기업이 수익성을 유지하는 데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포스코의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20%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철강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최 회장은 지난해 ‘2차 전지’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미래 신성장을 견인할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2차 전지 시장에서 점유율 2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도 글로벌 철강산업의 불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대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최 회장의 공격적 투자에 대한 재무적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애널리스트는 “최 회장이 취임 이후 밝힌 공격적 투자 계획에 따른 성과가 도출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아직 집행되지 않은 투자 계획도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잇단 사망 사고… 경영 실적보단 ‘사람이 먼저’ 최근 잇따른 사망 사고로 최 회장의 ‘안전경영’ 천명도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안전다짐대회를 열고 형식보다는 ‘실질’, 보고보다는 ‘실행’, 명분보다는 ‘실리’라는 ‘3실(實) 기반’의 안전 관리 해법을 제시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안전은 회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안전사고 방지 예산을 3년간 기존의 2배 수준인 1조 105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올해 안전 관련 분야 예산 3820억원 가운데 1571억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5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데 이어 올해에도 벌써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관계자는 “회사 측이 사고가 났다 하면 내부 직원 입단속에만 치중하고 ‘안전 캠페인’은 보여 주기식에 그치고 있다”면서 “사측이 거액의 안전 예산을 투입해도 실제로 작업장이 안전해졌다고 느끼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은 작업표준서를 근거 삼아 ‘작업자가 이런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며 늘 사고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려는 시도를 해 왔다”면서 “포스코는 법 위에 서 있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지회는 또 직업병 보상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26일부터 폐암, 심근경색, 백혈병, 진폐증, 피부질환 등 직업병 의심 사례를 제보받고 있다.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지원단체인 ‘반올림’을 본보기로 삼아 포스코를 상대로 업무상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장기 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포스코노조는 지난 18일 성명서를 내고 “포스코에서 2년 사이 9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것은 안전에 대한 투자와 예방대책 요구를 회사가 묵살한 결과”라며 “회사는 안전 대책이 미비하다는 의견을 무시한 채 탁상행정에만 의존했고, 최 회장은 사망 사고와 관련해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함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포스코 측은 “연이은 사고에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사외 안전전문기관과 합동팀을 구성해 제철소의 모든 공장을 점검하고 발견되는 위험요소를 즉시 개선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죽음의 외주화’ 끊지 못하는 ‘포스코건설’ 포스코의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에서도 노동자 사망 사고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5년 사이 10명이 사망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18년 산재 확정기준 사망 사고 다발 건설주체 명단’에서도 포스코건설은 1위에 올랐다. 산업재해 발생이 아닌 확정 시점이 기준이어서 숨진 10명에는 2015년 사망자까지 포함됐고, 이들 모두 하청업체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노조 관계자는 “김용균법의 통과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개정된 법률안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 현장의 불법 하도급 문제도 잇따르고 있다. 전국건설노조 서울건설지부는 지난달 포스코건설이 시공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파크원’ 공사 현장에 다단계 불법 하도급이 만연하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포스코건설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불법 하도급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조 “군대식 조직 문화 속 ‘노조 와해’ 시도 여전” 주장 포스코가 노조 와해를 시도했다는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9월 “포스코 사측이 강성노조가 근로자의 권익과 무관한 활동을 다수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포스코지회 관계자는 “문건에는 사측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직원을 선동한다고 비난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측이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노조를 비방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만 하면 인사위원회에 회부하겠다고 협박한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와 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는 포스코 노조파괴 중대범죄자 직위 해임과 부당노동행위 재발 방지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계속 이어 오고 있다. 조합원들은 포스코 제선부 소결공장 공장장과 부공장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여수지청에 고소하기도 했다. 포스코 노동자들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는 포스코의 조직 문화는 ‘군대식’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박태준 초대 회장의 경영 철학에 50년에 걸친 ‘무노조 경영’ 과정이 더해지면서 군대식 기업 문화가 뿌리내리게 됐고, 그 잔재가 지금도 남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노조 관계자는 “포스코에는 군대처럼 내부 전산망을 통해 통제하는 노무관리 시스템이 발달했다”면서 “사측은 근속연수가 오래되지 않고 직급이 낮은 직원을 상대로 노조 탈퇴를 암암리에 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취임 100일째인 지난해 11월 공개한 100대 개혁과제에서 “회사의 자랑인 노사 화합 전통을 지속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힌 데 대해 한 직원은 “최 회장이 무노조 시절 때를 떠올리는 것 같다”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모범적인 노사 문화의 전형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공언도 빈말에 불과한 것 같다”고 했다. 사측은 이런 노조의 입장에 대해 “일방적인 주장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아베, 참의원 선거 반쪽 승리… ‘개헌선’은 못 넘었다

    아베, 참의원 선거 반쪽 승리… ‘개헌선’은 못 넘었다

    아베 “한국이 먼저 답변 가져와야”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집권여당이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투표 대상 의석 124석의 과반(63석)을 확보하며 승리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관심이 집중됐던 개헌 발의선(전체 의석의 3분의2) 확보에는 실패해 당분간 개헌 추진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절반씩 교체된다. 이날 투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4만 7000여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22일 오전 1시 현재 자민당이 56석, 공명당이 13석 등 집권여당은 69석을 확보했다. 두 당은 이날 선거가 실시되지 않은 기존 121석 가운데 70석(자민 56석·공명 14석)을 갖고 있어 참의원 전체 의석(245석)으로도 과반(123석)을 초과하는 의석을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자민·공명 양당에 일본 유신의 회 등을 합친 개헌세력 의석수는 78석에 그쳤다. 기존 의석을 합쳐도 157석으로 개헌안 발의선에 7석이 부족한 상황이다.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 ‘군대를 보유한 보통국가’의 실현을 지향하는 아베 총리는 이번 선거전에서 개헌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만큼 비록 과반의석을 확보했어도 ‘반쪽 승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이 조기 헌법개정 추진에 필요한 양원 헌법심사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선거 이후 한층 어려워진 개헌 추진 과정에서 아베 총리는 필요하면 한일 관계의 악화도 수단으로 삼을 것으로 보여 양국 갈등이 더 첨예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아사히TV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전후 태세를 만들면서 서로 협력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구축하자는 협정”이라며 “이런 협정에 대해 위반하는 대응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개헌 야욕’ 아베, 참의원 선거 승리…한일 갈등 심화될 듯

    ‘개헌 야욕’ 아베, 참의원 선거 승리…한일 갈등 심화될 듯

    아베 정권이 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전체 투표 대상 의석 124석의 과반(63석)을 여유 있게 확보하며 낙승을 거뒀다. 관심을 모으는 헌법 개정안 발의 기준인 전체 의석의 3분의2 달성 여부는 이날 오후 10시 현재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NHK의 출구조사에서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됐다. NHK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4만 7000여개 투표소에서 실시된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이 과반인 63석 이상 확보가 확실시돼 선거에서 승리가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NHK는 개헌에 필요한 3분의2 의석 확보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의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절반씩 교체된다. 아베 총리가 숙원으로 삼고 있는 개헌안 발의를 위해서는 전체 의석 245석의 3분의2를 확보해야 한다. 자민·공명 연립여당과 일본유신의회 등 이른바 ‘개헌세력’이 전체 의석의 3분의2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85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중의원에서 공동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개헌선을 확보한 만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이 확정되면 개헌 논의가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베 총리와 그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 맞춰 ‘개헌을 향한 총진군’을 선언한 바 있다.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 ‘군대를 보유한 보통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무리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도 상당 부분 선거 압승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선거 승리 이후 한일 갈등이 더 첨예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투표율은 전국 평균 27.3%로 지난 선거(32.49%)보다 5.19% 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백아영 시어머니 갈등 “친구들 보면 며느리 욕할 것”

    백아영 시어머니 갈등 “친구들 보면 며느리 욕할 것”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오정태 아내 백아영과 시어머니의 갈등이 폭발했다. 18일 방송된 MBC 교양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이하 ‘이나리’)에서는 오정태와 그의 아내 백아영의 일상이 전파를 탔다. 앞서 백아영과 오정태 부부는 시댁 공사로 시부모님과 임시 합가했다. 그 가운데 이날 방송에서는 시어머니가 백아영과 상의 없이 친구들을 초대했고 백아영은 홀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통보한 시어머니는 백아영에게 “넌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방에만 있어라”고 쉽게 말했지만 백아영의 표정은 굳어만 갔다. 이후 손님 올 생각에 신이 난 시어머니와 달리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해 진땀 빼는 백아영의 모습이 대비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 시어머니는 백아영이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규칙판을 몰래 뒤집으며 “친구들이 보면 창피하다. 내 욕보다 며느리 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앞서 아무 것도 하지말라는 말과 달리 손님상에 과일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결국 백아영은 시어머니에게 부엌일을 부탁했지만 시어머니는 손님들을 맞으러 다시 나가버린 상황이 이어졌다. 또 시어머니는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백아영의 흉을 봤다. 시어머니는 내심 식판에 차려주는 식사가 맘에 안 들었다면서 “군대식이다. 소꿉장난 같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시집살이 시키냐”고 타박했고 시어머니는 입을 닫았다. 이후 시어머니와 친구들은 대뜸 집 안에서 노래를 부르며 휴식 중이던 백아영을 당황스럽게 했다. 이에 백아영은 일손을 도우러 온 오정태에게 “매일 매일이 명절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극한 군사대치→평화의 장…66년 역사 ‘산증인’ DMZ

    비무장지대(DMZ)는 1953년 탄생한 이후 극한의 군사적 대치와 평화의 장으로 변화하기까지 모든 역사를 경험한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1953년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제1조 제1항에 의해 탄생한 DMZ는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 떨어진 북방한계선(NLL)과 남방한계선(SLL)까지의 공간을 의미한다. 서해의 임진강 하구에서부터 동해의 고성군 명호리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약 248㎞에 달한다. ‘Demilitarized Zone’이라는 사전적 의미대로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 배치 등 군사활동이 금지됐다. 하지만 남북은 가장 가까이에서 총부리를 겨누며 군사적 긴장감을 극대화해 약 42만 건의 정전협정 위반 사례를 만들어 냈다.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서쪽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이던 미군 병사를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만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또 2017년 11월 JSA에서 ‘오청성 귀순사건’이 벌어지며 귀순 병사를 추격한 북한군과 국군 사이에 근거리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DMZ에서 발생해 긴장감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남북 평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DMZ도 원래 약속한 ‘군사적 완충지대’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4월 사상 최초로 판문점에서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은 분쟁의 상징인 DMZ에서 남북 정상이 평화를 약속한 최초의 회담으로 기록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과 군정위 소회의실(T3) 사이의 30㎝ 콘크리트 턱을 넘어 북측으로 ‘10초’ 깜짝 방문했다. 특히 지난달 30일 JSA에서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만났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당시 콘크리트 턱을 가볍게 넘어 북측으로 이동해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MDL을 넘은 대통령이 됐다. 지난해 탄생한 남북 9·19 군사합의도 DMZ에 역사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전방 감시초소(GP) 11곳이 철수되며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 향후 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추가 GP 철수가 논의되면 DMZ에서의 완전한 ‘군사적 청정구역’도 가능하다. 더불어 남북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술도로’도 지난해 최초로 화살머리고지에 연결됐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최초로 DMZ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 병사의 유해가 발굴됐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90‘s 신주류가 떴다] 같은 듯 달랐다…80년대 vs 90년대생 직장 문화 시각

    [90‘s 신주류가 떴다] 같은 듯 달랐다…80년대 vs 90년대생 직장 문화 시각

    받은 만큼만 일해요, 일에 끼워넣지 마세요…워라밸이 중요 1990년대생과 기성세대가 가장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곳은 직장이다. 기성세대 상사들은 “워라밸(일과 개인 삶의 균형)을 입에 달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요즘 애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90년대생들은 “꼰대들 때문에 소중한 내 인생을 허비할 수 없다”고 맞선다. 기존 조직문화로는 기성세대와 20대들의 간극을 메우기 힘든 상황이 됐다.서울신문이 1980년대와 1990년대생 6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두 세대는 자신들이 몸담은 직장에 기대하는 것이 비슷했다. 그러나 직장(직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었다. 20대와 30대 사이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두 세대 모두 현재 직장(직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자아실현’을 꼽았다. 80년대생은 38.7%, 90년대생은 40.4%에 이르렀다. 두 번째로 꼽은 이유는 ‘워라밸이 가능한 환경’(80년대생 17.8%, 90년대생 16%)이었다. 현재 직장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묻는 질문에 80·90년대생 모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2위 항목에서는 엇갈렸다. 80년대생 중에는 ‘정년까지 오래 다니는 것(21.9%)’을 목표로 삼는 이가 많은 반면 90년대생 중 24.4%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꼽았다. 정년을 채우는 걸 목표로 삼은 90년대생은 312명 중 33명(10.6%)뿐이었다. 특히 지금 직장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기타 의견’으로 직접 써낸 이들의 답변이 눈에 띄었다. 20대 중 8명은 “지금의 직장을 ‘발판’ 삼아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워라밸이 목표라는 의견도 3명이 제시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 ‘심심함 해소’, ‘생존’, ‘행복한 것’, ‘즐거운 인생’ 등의 답변도 나왔다. 반면 30대 중에서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사회적 가치 실현’ 등을 현재 직장 생활의 목표로 꼽는 이들이 있었다. 설문 결과를 종합해 보면 20대와 30대 중 대다수가 자아실현을 위해 현재 직업을 선택했고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으며 워라밸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층 인터뷰를 해 보니 두 세대 사이에는 워라밸에 대한 인식에도 차이가 존재했다. 80년대생에게 워라밸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컸지만 90년대생에게는 ‘일 외에 나만의 활동을 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90년대생들에게는 일과 직장은 자신과 가족의 전부를 좌우할 만큼 묵중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언제든 갈아탈 수 있는 가벼운 것이었다. 채용정보사이트 ‘사람인’이 지난 5월 41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입사 1년 미만의 신입사원이 퇴사한 경우가 있다는 기업이 74.8%나 됐다. 지난해 같은 조사(66.2%)보다 8.6% 포인트 높아졌다. 지난달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4%를 기록했다. 청년 취업난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도 90년대생들은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진다. 지난해부터 적용된 주52시간 근무제와 지난 16일부터 발효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대 직장인들의 워라밸과 빠른 사직·이직에 날개를 달아 줬다. 더욱이 이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인권교육과 노동기본권 교육을 받아 기성세대보다 일찍 노동권을 의식하게 됐다. 우리는요 부장님 부품이 아닙니다…무조건 조립은 거부 ‘일한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일한다’는 생각도 분명하다. 대기업 입사 3년차인 김민준(27·가명)씨는 “회사는 우리에게 ‘회사의 주인’이 되라고 하는데 웃기는 말이다. 내가 사장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이 되느냐”면서 “회사와 나는 계약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20대들은 또 언제까지 지금의 직장에 다닐지 몰라도 하루의 절반을 직장에서 보내는 만큼 최대한 즐겁게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즐겁게 일하면서 개인 시간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 20대들은 투트랙 전략을 쓴다. 일에서는 존재감을 보이는 ‘인싸’(인사이더) 전략을 구사하고 상사와의 관계에서는 철저히 ‘아싸’(아웃사이더)로 남는 것이다. 유통업체 직원인 정용덕(28)씨는 “상사의 눈에 안 띄려고 회식 때도 구석에 앉는다”면서 “나서서 말을 하거나 튀면 불필요한 일까지 떠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하게 내 일만 잘하면 된다”면서 “업무에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닌 김민영(25)씨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이 명문대를 거쳐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정작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면서 “명문대 간판을 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사는 인생에 좌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초 한 전문직 법인에 입사한 최명훈(26·가명)씨도 “대기업에는 옛날 방식의 숨 막히는 조직문화가 남아 있을 것 같아 자유롭게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작은 회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건설현장 관리직으로 일하는 김학인(26)씨는 “업종 특성상 아직도 군대식 문화가 강하고 막내에게 일이 몰려 적응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막내든 선임이든 능력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는 90년대생에게 경직된 조직문화와 상사들의 꼰대 짓은 분노를 유발한다. 김민준씨는 “최근 퇴사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꼰대 같은 선배들을 보면서 10년 뒤 내 모습이 저럴 것이라는 게 암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는 선배들의 모습이 실망스럽고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업무 능력이 탁월한 선배가 지적하면 곧바로 수긍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말했다. 경찰관인 이모(26)씨는 “능력이 없고 책임감이 없는 선배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배가 시키는 대로 했다가 일이 틀어졌는데도 정작 선배는 뒤로 빠지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을 느낀 적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능력을 무책임하게 후배에게 전가하는 상사들은 아예 상종하지 말하야 한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설문조사 결과 ‘가장 화나는 상사의 행동’으로 90년대생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거나 책임지지 않을 때’(26.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저녁이나 주말에도 업무 지시를 할 때’(16.1%), ‘상사가 할 일을 나에게 떠넘길 때(15.5%)’, ‘업무지시가 구체적이지 않을 때’(15.5%)도 20대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봉오동전투 최진동, 임정 김희선… 민낯 드러난 가짜 유공자

    봉오동전투 최진동, 임정 김희선… 민낯 드러난 가짜 유공자

    2017년 8월 우리 사회에 놀라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한 70대 시민이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가짜 독립유공자였다’는 사실을 솔직히 밝혀 정부로부터 이를 인정받은 것이다. 조상의 독립운동을 부풀리는 사례는 허다했지만, 그 반대로 조상의 허위 공적을 스스로 바로잡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독립유공자에 이름을 올렸던 김정필(1846-1920)의 증손자 김종갑(77)씨. 그는 2015년 용기를 내 광복회 대전충남지부 김영진 감사를 찾아가 오랜 세월 숨겨온 이야기를 털어놨다. 국가보훈처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에 따르면 김정필은 충남 대덕 출신으로 1907년 의병장 한봉수(1883~1972)의 밑에 들어가 경기 용인, 여주 등에서 격전을 치렀다. 중국 만주로 망명한 뒤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게 살해됐다. 1968년 김씨의 당숙(아버지의 사촌형제)이 서훈을 신청했고 정부는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1991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4등급)도 추서했다. 하지만 종갑씨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자신의 증조부가 그토록 엄청난 활동을 했는데도 집안 사람 누구도 이를 알지 못했다. 증조부가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던 나이도 75세로 격한 신체활동을 하기 힘들 때였다. 공훈록에는 그가 1920년 사망했다고 나오지만 실제 증조부는 1925년 세상을 떠났다. 알고 보니 당숙이 보훈 연금을 타내려고 똑같은 행적의 동명이인 공훈을 가로채 서훈을 신청한 것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종갑씨는 고민 끝에 국가보훈처에 “증조부에 대한 서훈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사실이 아닌 것을 묻어두는 것이야말로 선대를 욕보이는 죄악이다. 정부가 유공자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가짜 유공자’ 논쟁을 없애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가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하루빨리 서훈을 자진 반납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데 동참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공식적 서훈 취소 ‘가짜 유공자’는 39명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독립유공자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가짜’들을 솎아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학계와 시민사회는 입을 모은다. 아직도 수많은 가짜 독립운동가가 버젓이 예우받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보훈처, 서훈자 1만 5180명 전수조사 17일 보훈처가 내놓은 ‘독립유공자 서훈 취소 현황’을 보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서훈이 취소된 ‘가짜 독립유공자’는 39명이다. 2011년에는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2009)가 내놓은 반민족행위자(1006명) 명단을 토대로 허위 공적자 19명에 대한 서훈을 취소했다. 2017년에도 동일인 중복 서훈 등 가짜 유공자 15명을 추려냈다. 지난해 2월에는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학계에서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가짜 독립유공자가 100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은 “과거 자료가 워낙 부실하다 보니 같은 공적으로 이중 포상이 이뤄진다거나 흠결이 있는 분들까지도 잘못 서훈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공적 도용 등 가짜 유공자 30~40명 추가 가짜 유공자 논란이 끊이지 않자 보훈처는 지난해 11월 “서훈자 1만 5180명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1976년 이전 서훈자 가운데 우선 검증 대상 587명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먼저 발표한다. 이들 587명은 1949~1976년에 당시 문교부와 총무처가 서훈한 독립유공자 가운데 1990년 재검증에서 빠진 이들이다. 과거에는 건국훈장이 3등급(중장, 복장, 단장)이었다가 1990년부터 5등급(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으로 확대됐다. 이때 보훈처는 새로 생겨난 4~5등급(애국장, 애족장)에 해당하는 이들을 선정하고자 일부 유공자에 대해 재검증 작업을 벌였다. 그간 유공자 전수조사를 주장해 온 윤석경 전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장은 “이번이야말로 역사를 바로 세우고 보훈처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학계에 따르면 보훈처는 이번 조사에서 독립운동 행적이 지나치게 부풀려지거나 남의 공적을 도용한 가짜 유공자 30~40명 정도를 추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인물로는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김희선(1875~1925)과 봉오동 전투의 주역으로 알려진 최진동(1883~1945) 등이다. ●김희선의 상하이 임시정부 행적 지나치게 과장 김희선은 조선 말기 육군참령(소령)으로 활동하다가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항전을 주도했다. 평안도 안주군수로 있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해 군무부차장(국방부차관)을 지냈고 1920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청년단연합회·대한독립단·서로군정서를 통합한 대한광복군총영을 설치했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됐다. 그는 1925년 지린성 지안현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백범일지에는 그가 “임정 군무부차장 때 일본군에게 항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적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그의 행적이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주장해 왔다. 최진동은 함경북도 온성 출생으로 중국 만주로 망명해 1919년부터 청년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 제19사단 보병부대와 교전해 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거뒀다. 이후에도 북간도와 시베리아 등지에서 무장항일운동을 이어 갔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이 추서됐다. 하지만 그는 1937년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위력을 확인한 뒤 돌연 친일파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토벌대의 선두가 돼 항일무장세력 진압에 앞장섰고 자신의 독립운동 과거를 속죄하고자 일제에 거액의 국방헌금을 냈다는 의혹도 있다. 막대한 재산으로 독립운동과 친일행각을 동시에 벌인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최진동의 유족은 “(친일 의혹은) 몇몇 학자들이 감정에 기반해 작성한 그릇된 자료가 바탕이 됐다”면서 “특히 일제의 비행기 제조를 돕고자 헌금을 했다는 일부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가짜 유공자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친일 행적 인물들의 현충원 안장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고도 국립묘지에 묻히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보훈처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현충원에만 친일 인사 37명이 안장돼 있다. 이 가운데는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인물도 7명이나 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친일 행위가 확인됐음에도 여전히 현충원에서 진짜 독립유공자들과 함께 있다. 7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종찬(1916~1983)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나와 1942년 2월 일본군 최고 영예인 금치훈장을 받을 정도로 일제에 협력했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묻혔다. 2015년 9월 안장된 김홍준(1915~1946)은 만주국이 세운 간도특설대에서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는 데 가담했다. 하지만 그 역시 대한민국 국방경비대총사령부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얻었다.●‘김구 암살 배후 의혹’ 김창룡도 국립묘지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 28명을 더하면 그 수는 65명으로 늘어난다. 대전현충원에 있는 친일 인사 가운데 일본군 헌병 오장(분대장) 출신 김창룡(1920~1956)은 김구(1876~1949) 암살의 배후에 있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관계자는 “현충원에 반민족·민주행위자들이 버젓이 묻혀 있는 것은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하루빨리 개정해 이미 안장돼 있는 자도 이장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월드피플+] 71년 해로한 美 ‘잉꼬부부’ 같은 날 천국으로…한국전도 참전

    [월드피플+] 71년 해로한 美 ‘잉꼬부부’ 같은 날 천국으로…한국전도 참전

    70년 넘게 해로한 부부가 같은 날 사망했다. 남편이 먼저 떠났고 크게 상심한 아내는 12시간 뒤 남편을 따라갔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허버트 딜라이글(94)과 프란시스 딜라이글(88) 부부는 평소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다. 70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사랑은 지난해 이미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대표 잉꼬부부였던 딜라이글 부부는 그러나 지난 12일(현지시간)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CNN은 이날 새벽 2시20분 남편이 먼저 먼저 숨을 거뒀으며 꼭 12시간 뒤인 오후 2시20분 아내도 사망했다고 전했다.72년 전 동네 카페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금방 사랑에 빠졌다.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허버트 씨는 “1947년 내가 22살이던 해 카페에서 일하던 프란시스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 매일 지켜만 볼 뿐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못 붙였다”며 웃어보였다. 그때 프란시스 여사의 나이 16세였다. 얼마 후 허버트 씨는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두 사람은 영화관람을 시작으로 긴 러브스토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 후,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됐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늘 평탄한 건 아니었다. 신혼 생활 중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프란시스 여사는 군대에 복무했던 남편을 따라 독일로 가 6년을 보냈다. 22년간 미 육군으로 복무한 허버트 씨는 한국과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 동안 부부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태어났고 71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풍파가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말년까지도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프란시스 여사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 사람은 맨날 늦었다. 데이트 때도 내가 먼저 나와 기다리기 일쑤였다”며 푸념하기도 했다. 허버트 씨는 심지어 결혼식 날에도 한 시간이나 늦어 주례를 맡은 성직자를 한참 설득한 뒤에야 급하게 예식을 마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프란시스 여사는 “결혼식이 하도 짧게 끝나서 주례에게 겨우 5달러만 주면 됐다”고 웃어 보였다.그렇게 71년을 함께한 딜라이글 부부는 죽음의 문턱도 함께 넘었다. 15일 열린 장례식에서 딜라이글 부부의 자녀들은 “70년 넘게 함께한 부모님이 같은 날 동시에 천국으로 갔다. 놀라운 사랑에 경외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CNN은 딜라이글 부부는 죽기 전까지 6명의 자녀와 16명의 손자, 25명의 증손자와 3명의 증증손자와 함께 했다고 전했다.노환으로 사망한 남편을 따라 돌연 사망한 아내. 현지언론은 이들 부부의 영화같은 죽음에는 ‘상심 증후군’(Broken heart syndrome)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상심 증후군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흔히 보이는 증상으로, 아드레날린과 호르몬이 과다분비되면서 심장의 능력이 저하되고 터질듯한 통증이 나타난다. 현지 정신과 전문의 매튜 로버는 “극심한 감정적 충격은 갑작스러운 심장 약화를 일으키며 심하면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프란시스 여사 역시 70년 넘게 붙어다닌 남편의 죽음에 슬픔을 가누지 못하다 12시간 만에 숨을 거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사진=CNN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전문성 강화” 과장 드래프트제 시행에 “인사적체 심화” 불만

    “전문성 강화” 과장 드래프트제 시행에 “인사적체 심화” 불만

    외교부가 이번 하반기 인사부터 현직 과장에게 먼저 과장 보직에 지원할 기회를 주는 일명 ‘과장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했다. 본부 근무 1~2년 만에 해외 공관으로 떠나는 과장을 재임시켜 전문성을 보장하는 제도지만 서열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다가 최근 세간을 시끄럽게 한 ‘구겨진 태극기’ 사건도 담당 과장이 오롯이 책임을 졌다. 상명하복의 문화를 겪은 고위급과 지나친 권위·통제에 거부감을 보이는 실무직원 사이에서 고충을 겪는 중간 간부의 고달픈 신세는 공무원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의전 실수 탓 드래프트제… 과장 책임론 분분 외교부 관계자는 16일 “이번 인사부터 ‘과장 드래프트제’를 도입했다”며 “능력 중심의 인사 기조를 강화하고 과장들의 재임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적격자가 과장직을 맡는 경우도 줄고 공석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드래프트제는 과장 승진 예정자를 제외한 현직 과장이 먼저 자신이 원하는 과장직을 신청하는 방식이다. 해당 국장 등 상층부와 뜻이 맞으면 낙점된다. 여기서 떨어진 현직 과장은 과장 승진 예정자와 함께 본 드래프트에 참여하게 된다. 이 제도로 현직 과장은 본부에서 연이어 2번 이상 과장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졌다. 본부 과장이 통상 1년여 만에 해외 공관으로 나가던 그간의 관행으로 업무의 전문성이 함양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반면 과장 보직 경쟁은 치열해졌다. 한 외교관은 “갑자기 주요 과장이 3년씩 머물게 되면서 인사 적체가 생긴 건 사실”이라며 “물론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외려 현장 공관을 두루 거치는 게 전문성도 잘 길러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능력보다 상층부와의 친화력이 승진의 열쇠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외교부가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은 올해 잇따라 벌어졌던 의전 실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말레이시아 순방에서 ‘슬라맛 소르’라는 인도네시아어 인사를 했고 외교부 영문 보도자료에는 ‘발틱’ 국가인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가 ‘발칸’ 국가로 잘못 기재됐다. 4월에 열린 제1차 한·스페인 전략 대화에서는 구겨진 태극기를 세워 비난을 받았고 문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는 미국 의장대의 환영 태극기 색깔이 바랬다는 논란도 있었다. 외교부의 새 드래프트 제도 도입은 필연적인 면이 있다는 의미다. 다만 문제의 원인이 과장급에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 외교관은 “‘구겨진 태극기’ 사건으로 책임을 진 것은 담당 과장이었는데 해당 회의에는 고위직도 있었다”며 “위에서 막아주는 건 기대하지 않았지만 과장 혼자 책임질 일인지 싶기는 했다”고 설명했다.●외국어 능력 함양 강조에도 과장 일감 늘어 강경화 장관이 그간 강조해온 외국어 능력 함양에 대해서도 결국 과장들의 일감이 늘어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외국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인 실무 직원은 크게 늘었지만 강 장관 등 상부에서 원하는 건 결국 해외의 정보를 한국말로 취합하고 분석하는 언어·사고 능력이라는 것이다. 한 외교부 직원은 “직원들이 생산한 문서를 자구까지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과장도 봤다”며 “상부는 지시하면 되지만 과장은 실무 직원의 일까지 떠안는 경우가 늘어나니 업무가 과중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명하복의 문화를 바꾸는 최전방에 있다는 점도 업무가 녹록지 않은 이유다. 이런 고충은 군과 공무원이 함께 생활하는 국방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한 영관급 장교는 “군은 계급장이 있으니 직급 파악이 쉬운데 공무원은 판단하기가 힘들다”며 “또 군은 하급 직원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에 순응하는 문화가 있는데 공무원은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고위직 줄고 실무급 늘려 중간간부 의기 소침 또 다른 공무원은 “군대는 상명하복이지만 국방부는 민간 공무원이 많아서 분위기가 다르다”며 “지시를 하면서도 꼰대처럼 보이는 게 아닌지 스스로를 경계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시점의 과장만 힘든 것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문화 차이가 있는 조직의 상하부를 연결하는 업무는 전통적으로 힘들었다는 것이다. 워라밸(일·가정 양립) 문화가 확산되면서 과장들의 업무 환경 역시 조금씩 개선되는 추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적어도 고위직을 줄이고 실무급을 늘리는 인사 기조는 승진으로 보상받는 중앙 부처 공무원의 입장에서 고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는 1급 공관장 자리 중 일부를 2급으로 내리고 실무직원을 늘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방부는 장성 수를 줄여 가볍고 날쌘 군을 만든다는 계획이고 검사장 역시 줄어드는 추세다. 정부 관계자는 “왜 하필 지금 고위직 수가 줄어드는지에 대해 섭섭해하는 중간 간부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할 볼 때 고위직보다는 실무 인재를 늘리는 조직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연평도 포격 때도 유임” “국가 안보 뻥 뚫려” 여야, 정경두 국방 해임안 놓고 강대강 대치

    여야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전날 정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한 야당은 최근 군 관련 사건들을 거론하며 정 장관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고, 여당은 장관 해임 요구는 지나친 정치 공세라며 맞섰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북한 목선 입항 사건에 이어 이번 해군 2함대 축소·은폐 조작 사건까지 우리나라 군대가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며 “평생을 군에 바친 장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 장관은 “장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공인으로서 인사권자께서 준 현재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있고 주어질 시간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목선과 2함대 사건을 보면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정치 공세로 규정한 데 대해 “국가 안보가 뻥 뚫린 상황에서 야당이 국방부 장관에게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이를 정쟁으로 인식하는 민주당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오 의원이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이 부당한 일인가’라고 묻자 “그 부분은 제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반면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인) 2008년 6사단 수류탄 폭발 사건, 2009년 22사단 민간인 월북 사건, 2010년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2011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2012년 노크 귀순 사건, 2017년 윤 일병 사건 등이 일어났을 때 국회에서 국정조사나 국방부 장관 해임 요구가 있었나. 없었다”라며 “국가 안보를 위해 부당한 공격, 지나친 정쟁에는 정 장관이 강하게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정 장관을 엄호했다. 정 장관은 해군 2함대 허위 자수 사건과 관련해 국회 국방위원인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이 박한기 합참의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한 데 대해 “국회의원이 합참의장과의 통화 내용을 그대로 공개한 것은 아주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확실한 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60년대, 대중성과 작가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뛰어난 감독들이 등장해 한국영화 미학을 개척해 갔다. 1960년대 초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은 각각 ‘하녀’(1960), ‘오발탄’(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라는 대표작을 선보였고, 이후 각자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상업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며 1960년대 내내 활약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김수용, 이성구 그리고 이만희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역시 대중과의 호흡뿐만 아니라 미학적 완성도 역시 포기하지 않으며 한국영화의 품위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예술성을 꽃피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천은 바로 문학이었다. 원작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제작이 제도적으로 안착하며 작가주의 감독들의 작업 기반이 됐다.●감독들,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돼 1960년대 초중반 영화산업의 외양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한국영화는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선다. 문제는 이야기였다. 영화 제작편수는 100편을 넘어 150편 가까이 계속 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 영화잡지에 실린 일본영화 시나리오 중 누가 먼저 흥행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 번안할지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흡족한 시나리오를 만날 수 없었던 감독들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방식을 택한다.1960년대 초반 ‘오발탄’(이범선 원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를 비롯해 김수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 1963), ‘혈맥’(김영수 희곡 원작, 1963) 등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문예영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됐지만, 바로 이때부터 한국영화계의 특별한 경향으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문예영화는 곧 제작자들의 관심 ‘장르’가 됐다. 당시 정부는 제작업과 수입업을 일원화시켜 한국영화 제작자만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수입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보부로부터 외화 쿼터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제작사 입장에서 수입 쿼터는 말 그대로 돈이었다. 개봉되는 외화가 한정됐기 때문에 한국영화 수익보다 더 확실한 자금원이 돼 준 것이다. 이처럼 제작사들이 외화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우수영화보상제도였고, 바로 문예영화는 반공영화, 계몽영화와 함께 ‘우수영화’의 항목에 포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예술적으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인위적인 제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산업과 당국의 이해가 맞아 정착한 문예영화 덕분에 영화의 예술적 표현에 관심 있는 감독들이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됐던 점이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이성구, 정진우 등의 감독들은 문예영화라는 장르를 활용해 특유의 영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도 누렸으며 국제영화제 진출 역시 노릴 수 있었다.특히 ‘갯마을’(오영수 원작, 1965), ‘유정’(이광수 원작, 1966) 등 문예영화의 대가였던 김수용 감독은 1967년 10편의 연출작을 선보이는 가운데 ‘만선’(천승세 희곡), ‘산불’(차범석 희곡), ‘안개’(김승옥 원작), ‘까치소리’(김동리 원작) 같은 걸작들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연출 감각과 왕성한 창작력을 말해 주는 대목이지만, 그 기반이 된 것은 문예영화라는 장르 혹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한편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이만희의 걸작 ‘만추’(1966)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외화 수입 쿼터를 받자 문예영화의 범주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소설을 각색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의 오리지널 각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쪽은 우수영화 심사에서 아깝게 떨어진 제작사였는데, 바로 이만희의 ‘물레방아’(나도향 원작, 1966)를 제작한 세기상사였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원작으로부터 최소한의 모티브만 가져온 새로운 창작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1969년 우수영화에서 문예영화 제외되며 쇠퇴 이를 계기로 문예영화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애초의 의미에서 ‘예술성 있는 우수한 영화’로 정의가 확대됐다. 결국 1969년 우수영화 선정부터 문예영화가 제외되면서 충무로식 예술영화라 할 문예영화 현상은 급격히 쇠퇴한다. 1960년대 미학적 야심이 있는 감독들이 때로는 통속 멜로드라마, 코미디, 액션스릴러 등 흥행 장르를 벗어나 예술영화의 문법을 고민하고 한국영화의 미학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문예영화의 순기능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문예영화를 기반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감독 중 이만희는 꼭 언급해야 할 존재일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개발한 기존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재해석했고,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과 분위기로 관객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멜로드라마도, 액션스릴러도 심지어 시대극도 그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보다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고전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반하는) 화법까지 가장 독창적으로 수용한 감독이었다. 1931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난 이만희는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광무극장, 동화극장 등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보낸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암호병으로 근무하다 중사로 만기 제대했고, 1955년경 유치진이 운영하는 연기학원에 다니며 극단 생활을 시작한다.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연출부로 처음 영화에 입문했고, 조감독 생활을 하다 이화룡의 화성영화사가 제작한 ‘주마등’(1961)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화룡은 명동파 건달이었지만 1960년 이후 뛰어난 영화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주마등’은 당시 화성영화사가 제작하고 강대진이 연출한 ‘박서방’(1960), ‘마부’(1961) 같은 ‘서민영화’ 경향의 작품이었다. 이만희는 1962년 액션스릴러 ‘다이알 112를 돌려라’로 충무로의 이목을 끈 후 1963년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흥행 성공으로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됐다. 이어 미스터리스릴러 ‘마의 계단’(1964), 액션누아르 ‘검은 머리’(1964) 등 이만희 특유의 장르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주목받았다. 1965년 연출한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 위반에 휘말리며 수감 생활을 했지만, 이듬해 ‘시장’, ‘물레방아’, ‘군번 없는 용사’, ‘만추’ 등 4편을 1966년 한국영화 ‘베스트 10’(부산영화평론가협회 선정)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언어를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만추’ 그리고 ‘귀로’(1967)는 당시 그의 예술성이 만개했음을 증명했다. 1968년에는 다시 당국의 검열로 고초를 겪었다. 영화 ‘휴일’이 문제가 됐다. 1968년 3월쯤 촬영에 들어가 문화공보부의 개작 지시까지 반영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결국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당국의 요구에 지친 제작자와 감독이 개봉을 포기했던 것이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는 이만희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1974년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국책전쟁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연출했으나 의견 차이로 편집권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고, 1975년 4월 ‘삼포 가는 길’ 후반 작업 중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 지향의 장르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성을 개척한 특별한 감독이라는 점에서 이만희는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젊은 팬들도 “김기영에 이은 스타는 이만희” ‘휴일’이 처음 대중에게 상영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37년이나 지난 2005년이다. 개봉도 못 한 영화라 주목받지 못한 채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돼 있던 필름을 처음 공개한 것이다. 영화의 반향은 대단했다. 이만희 특유의 예술성이 정점이 달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들은 기꺼이 그해 개봉작들과 함께 ‘휴일’을 베스트 10에 올렸고, 젊은 영화 팬들 역시 김기영에 이은 또 한 명의 주목할 감독으로 이만희를 인식하게 됐다. 또한 ‘휴일’은 ‘만추’의 필름이 사라져 아쉬운 지금, 영화의 만듦새와 분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큰 작품이다. 많은 평론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휴일’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이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전달보다는 인물이 처한 공간의 풍경과 영화적 분위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인물들의 대사는 극히 희박하다. 카메라는 클로즈업 쇼트 사이즈로 인물과 밀착해 주인공 허욱(신성일)과 지연(전지연)의 미세한 표정과 감정을 포착하다가도, 익스트림 롱 쇼트로 물러난 황폐한 공간 속에 그저 둘을 던져 놓기도 한다. 가난한 연인은 그들의 내면 풍경이라 할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남산 공원을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다. 회화적인 구도의 흑백 화면은 무척 슬프지만 또한 아름답다. 특히 이 영화는 고 신성일의 외모와 연기가 가장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무척 간단하다.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마다 만나는 연인이다. 무일푼인 허욱은 사기를 쳐서 택시를 타고 담배를 살 정도이고 지연 역시 커피값이 없어 다방 앞에서만 그를 기다린다. 어렵게 말을 뗀 지연은 중절 수술을 받겠다고 말하고, 허욱은 지연을 공원 벤치에 남겨 두고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찾는다. 같은 처지의 룸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릴 수 없던 그는 결국 부자 친구의 집에서 돈을 훔쳐 나온다. 둘은 산부인과로 향하고 결국 그녀는 수술을 받는다. 그 사이 허욱은 카페에서 만난 여인과 술집을 전전하다 공사장에서 정사를 나누려 한다. 교회 종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지연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허욱은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절규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전차를 타고 종점에 내려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읊조린다. 바로 문제의 엔딩 장면이다. 당시 검열관들은 허욱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대에 가는 설정으로 고치기를 원했고, 이만희는 이 정도 대사로 타협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는 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영화 ‘휴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심의 전 버전), 심의용 대본 그리고 당시 개봉되지 못했던 필름이라는 세 가지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어, 각 버전 간의 차이와 당국의 검열이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심의 대본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해 보자. 허욱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보통 연인들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했던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질주하다, 이제 전차 철로가 끊긴 자리에 서 있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 주인아저씨, 하숙집 아주머니, 일요일 그리고 모든 것. 나는 다 사랑하고 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 이제 일요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 커피값이 없어도 돼. 안녕, 안녕”이라는 시나리오상의 내레이션이 영화 속 허욱의 목소리로 흐르지만, 최종 영화에서는 자살을 의미하는 “안녕, 안녕” 대신 “이제 곧 날이 밝겠지… 머리부터 깎아야지, 머리부터 깎아야지”라는 대사로 바뀌어 있다. 암울한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묘사가 남자는 군대를 가야 인간이 된다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계몽으로 대체된 것이다.1968년 212편, 1969년 229편이라는 제작편수는 1960년대 후반을 한국영화 중흥기의 정점으로 인식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내면은 이미 1970년대의 쇠퇴기를 예비하고 있었다. 한국영화의 흥행 실적과 질적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중이었고 그 배경에는 당국의 신경과민적인 영화정책과 검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텔레비전의 공세 역시 거세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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