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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국제앰네스티 ‘한국 군대의 성소수자’ 발간“성소수자 군인들 아웃팅당하고 폭행·모욕도”동성애자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군 임무 수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2017년 3월 육군중앙수사단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뒤 그의 군 생활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씨의 성적 지향을 알아챈 수사단은 그가 과거 만났던 동성 연인에 대해 물었고 A씨가 부인하자 수사관은 소리치며 위협하거나 옛 연인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결국 A씨가 과거 동성애 관계를 진술하자 수사관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거나 “어디에 사정했느냐” 등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했다. A씨는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소유예됐다. 국제앰네스티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국내 전·현직 군인과 예비 입영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는 이 내용 등을 정리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 한국 군대의 LGBTI(성소수자)’를 발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6~7월과 올해 5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수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의 삶을 파괴하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 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프 국장은 “적대적인 환경이 학대와 따돌림을 조장하고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며 “한국 군대는 군인의 성적 지향이 군 복무 수행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와 인터뷰 한 성 소수자 군인 상당수는 군대에서 지휘관에 의해 아웃팅(동성애 사실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것)을 당했다. 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내에서 폭행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고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보내지기도 했다. 라이프 국장은 “군대 내 게이 남성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라며 “한국은 성 소수자에 만연한 낙인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으로 군형법 제92조 6항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속보]대법원 “유승준 입국비자 발급 거부 위법”

    [속보]대법원 “유승준 입국비자 발급 거부 위법”

    병역 기피 논란으로 17년간 한국 땅을 밟지 못한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43)의 입국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비자)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비자발급 거부 처분에 행정절차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유씨는 방송 등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2002년 1월 미국 시민권을 얻고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유씨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제한했다. 입국이 거부된 후 중국 등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던 유씨는 2015년 9월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냈으나 1, 2심에서 내리 패소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스티브 유(유승준) 17년만에 입국 허용될까…대법 최종 판단

    스티브 유(유승준) 17년만에 입국 허용될까…대법 최종 판단

    1·2심, 청구 기각…“선량한 사회 질서 저해 우려”‘비자 발급’ 전화 통보·무기한 입국 적법성 쟁점 보충역 입대를 공언했다가 돌연 출국, 한국 국적을 포기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스티브 승준 유(한국 활동명 유승준·43)씨에게 우리 정부가 비자 발급을 거부하며 입국을 제한한 것이 위법한지를 놓고 대법원이 11일 최종 판단을 내린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오전 11시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유씨는 2001년 8월 징병검사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아 4급 보충역(당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는 방송 등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그간 ‘바른 청년’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2001년 그는 입대 전 미국에 사는 가족에게 인사를 한다는 사유 등을 내세워 해외로 출국했다. 출국 전 그는 지인 2명의 보증을 받았고, 병무청은 일정이 끝나면 바로 귀국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그의 출국을 허가해줬다. 그러나 2002년 1월 18일 LA 법원에서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고, 대한민국 LA 총영사관을 찾아가 대한민국 국적 상실 신고를 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국적 포기에 대해 “입대하면 서른이 되고, 댄스가수로서 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에서 계속 가수 활동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후폭풍은 엄청나게 거셌다. 병무청은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입국금지 조치를 요청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제한했다. 출입국관리법 제1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무부 장관이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이 경제·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돼도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2002년 2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던 유씨는 입국이 거부됐고, 약 6시간 동안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입국이 거부된 뒤 중국 등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던 유씨는 2015년 9월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우리 정부가 비자 발급 거부 사실을 유씨의 부친에게 전화로 알린 것이 ‘행정처분은 문서로 해야 한다’는 행정절차법을 위반한 것인지, 애초 유씨에게 내려진 무기한 입국 금지 조치가 위법하므로 비자발급 거부도 위법한 처분에 해당하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1·2심은 “외국인의 출입국에 관한 사항은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므로, 발급 거부를 전화로 통보한 것은 외국인에 대한 송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행정절차를 거치기 곤란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전화로 발급 거부를 통보했어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법원은 “유씨가 입국해 방송 활동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며 병역에 종사하는 국군 장병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 사이에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해질 우려가 있다”면서 유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유씨의 입국이 ‘사회의 선량한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해 적법한 비자 발급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2심은 정부가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이 위법하다는 유씨 측 주장도 “조치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그가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왕래를 할 수 있는 비자(C-3)가 아닌 굳이 F-4 비자를 고집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F-4 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투표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적 권리가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하게 주어진다. 즉 대한민국에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한 비자다. 이 때문에 단순히 유씨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병역 기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 버젓이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할 때 사회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유씨는 2015년 5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생방송을 진행, 그간의 심경 고백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대중에게 용서를 빌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방송이 끝나지 않은 사실을 몰랐던 제작진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면서 욕설을 주고받는 음성이 송출되면서 더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또 미리 예상 질문과 답변을 연습하는 상황까지 폭로되면서 여론에 호소하려던 그의 복귀는 무산됐다. 2002년 1월 12일 출국한 뒤 한국 땅을 밟지 못한 유씨가 17년 6개월 만에 대법원 최종 판단으로 입국할 수 있을지 또는 영원히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유엔사,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전력 제공 추진…자위대 상륙 길 열리나

    유엔사,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전력 제공 추진…자위대 상륙 길 열리나

    공식발간물에 “일본과 전력제공 협력” 의지 첫 표기추진시 한국 내 역풍 명확…북·중·러도 반발 예상돼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유사시 전력을 지원받을 국가에 일본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될 전망이다. 유엔사를 대표하는 미국이 7개의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과 실제 합의하면, 일본 자위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유엔기를 앞세우고 투입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방안은 한국민의 정서에 배치돼 큰 역풍을 부르는데다 북한이나 중국 등 주변국도 반발할 것으로 보여 논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은 11일 “미국은 한반도에서 유엔군사령부 역할 확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면서 “이런 차원에서 유엔사 후방기지들이 있는 일본에 대해서도 유사시 한반도에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유엔 전력제공국’에 참여하기를 희망해왔다”고 밝혔다. 현재 유엔사는 한국, 미국, 호주,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영국 등 18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엔사는 이들 회원국을 유사시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유엔 전력제공국’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 국가는 유사시에 유엔기를 들고 한반도에 투입된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은 최근 6·25전쟁 직후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독일에 대해서도 유엔사 회원국(유엔 전력제공국)에 참여해 달라고 타진한 것으로 안다”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 내 반일 정서 등을 고려해 아직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주한미군사령부가 이날 발간한 ‘주한미군 2019 전략 다이제스트’ 제목의 공식 발간물에는 유엔사가 유사시 일본과 전력 지원 협력을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발간물은 유엔사를 소개하는 파트에서 “유엔군사령부는 감사 및 조사, 감시, 정전협정 교육, 비무장지대 접근 통제, 외국 고위 인사 방문 통지 및 지원 임무를 강화하기 위해 유엔 전력제공국의 병력 증원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라며 “유엔사는 위기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매년 발간하는 ‘전략 다이제스트’에 ‘유엔사와 일본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이란 문구가 들어간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 발간물은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한반도와 주변지역 정세, 한미동맹 역사, 주한미군사령부와 그 예하 부대의 임무와 역할 등을 자세히 소개하는 책자로, 매년 내용이 업그레이드된다. 2017년과 작년에 발간한 전략 다이제스트에는 일본과 관련한 이런 문구가 들어 있지 않았다. 유엔사 회원국에 일본을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는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전력이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로 집결하므로, 일본의 유엔사 회원국 가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반도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이 전후부터 최근까지 논란을 일으켜 온 일본의 군대가 1945년 패전 이후 한반도에서 물러난 이후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열리는 것에 대해 한국 국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또 유엔사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우방이 한반도에 집결하는 셈이어서 북한, 중국,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에 위치하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국가들도 반발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주둔 국가에 대한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며 미군의 역할 축소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유엔사에 여러 국가를 참여시켜 역할분담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한다. 유엔사는 주한미군사령부 장성이 겸임해온 유엔사 부사령관에 캐나다 인사에 이어 호주군 장성을, 참모장에 주한미군사령부 소속이 아닌 하와이 호놀룰루 H.M 스미스 캠프에서 근무한 미군 소장을 각각 임명했다. 유엔사의 참모 조직에도 미국, 한국 등 여러 유엔사 회원국의 장교를 임명하는 방안을 계획하는 등 주한미군사령부와 분리된 다국적 군사기구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빨간 벽돌의 공장·창고 즐비한 골목… 수제화 역사가 숨쉰다

    빨간 벽돌의 공장·창고 즐비한 골목… 수제화 역사가 숨쉰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성수동 붉은 벽돌마을’ 편이 지난 6일 성동구 성수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뚝섬역 1번 출구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원조 대학서점 공씨책방을 둘러보고 성수동의 상징 붉은 벽돌마을 길을 찬찬히 걸었다. 성수아트홀~성수동 수제화거리~우란문화재단을 거쳐 서울경찰기마대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코스 중 공씨책방, 수제화거리, 서울경찰기마대가 서울미래유산이다. 이날 올 들어 가장 더운 36도를 기록, 폭염경보가 발효됐지만 한강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과 서울숲이 내주는 넉넉한 나무그늘 덕분에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투어에는 부부와 모녀가 8쌍이나 참가해 미래유산 투어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줬다. 부인과 엄마를 따라 남편과 딸이 합류한 듯했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참석자들이 단순히 말을 지켜보는 투어에서 탈피, 말먹이를 주도록 당근을 사전 준비해 액티비티가 있는 투어를 제공했다.조선 최고의 관찬 백과사전 ‘증보문헌비고’에 “살곶이다리(箭橋)는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왕래하는 도성 9개 다리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뚝섬나루를 건너 청숫골(청담동)로 가거나, 광나루를 통해 강릉 방면으로 향하거나, 송파나루를 거쳐 광주로 나가는 동남지방의 관문이었다.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에 서울에 놓인 가장 큰 돌다리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평야’란 뜻인 전관평(箭串坪) 또는 살곶이벌이라고 불렀다. 한강이 중랑천과 합치는 중간에 있어서 너른 퇴적평야가 형성됐다. 말을 먹이는 목장이었기에 마장동이라는 지명을 낳았다. 마장에는 군인이 주둔, 열병과 무예를 검열했다. 성수동 1가와 2가에 걸쳐 있는 진터마을이 그 흔적이다. 왕이 말과 군대사열을 지켜보던 정자가 성덕정(聖德亭)이다. 열병이 끝나면 노루사냥을 즐겼다. ‘태조실록’ 4년 8월 1일자에 매를 관리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을 뒀다는 기록이 응봉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 왕이 머문다는 사실을 알리는 큰 기를 세웠는데 이를 독기(纛旗)라고 쓰고, 둑기 혹은 뚝기라고 읽었다. 독기를 세운 땅을 뚝섬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이름이 뚝섬(둑섬) 혹은 뚝도(둑도)가 된 까닭이다. 이곳이 섬이라고 불린 이유는 아차산에서 중곡동, 능동을 지나 중랑천으로 유입되는 지류와 중랑천 그리고 한강에 의해 3면이 둘러싸인 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퇴적평야 지대에는 무, 배추, 오이, 미나리 같은 채소 재배가 적합했다. 거대한 소비시장을 끼고 있었고, 노동력이 풍부했다. 말 사육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조선시대 전국목장에서 사육한 4만~5만 마리 중에서 서울로 진상된 말 중 암놈은 자마장(자양동)으로, 수놈은 마장동으로 보냈다. 왕이 친히 말떼를 구경하던 화양정은 화양리에, 말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마조단은 행당동 한양대 캠퍼스 안에 남아 있다. 뚝섬나루(성수동)와 두모포(옥수동)가 한강변 주요 나루로 쓰였다. 두 나루는 강원도에서 오는 건축용 목재와 연료용 시탄(숯)을 보관하는 천연 창고역할을 했다. 수철리(금호동)의 대장간과 뚝섬의 숯장이가 이름을 날렸다. 뚝도수원지와 기동차, 뚝섬유원지가 뚝섬의 옛 3대 명물이었다. 근대 이후 뚝섬의 변모는 1908년에 준공된 뚝도수원지가 이끌었다. 옛 경성수도양수공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 시설이다. 초창기 서울시 5만 6000호 중 3분의1인 1만 8000호가 급수 혜택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뚝섬에 설치된 근대시설물 중 기동차는 추억의 기차다. 1930년 경성교외궤도주식회사가 왕십리~뚝섬 간 4.3㎞ 구간에 운행했으며 1934년 광장리(광장동)까지 지선 7.2㎞가 추가됐다. 애초 37대였던 기동차가 고장이나 노후로 말미암아 1950년대 말에는 18대로 반쪽이 됐다. 운행이 완전히 중단된 1966년까지 뚝섬 주민들은 기동차에 몸과 채소를 싣고 왕십리를 왕래했다. 1960~70년대 여름 피서철 뚝섬유원지에는 하루 평균 10만명의 인파가 몰렸고, 20만명 입장신기록도 세웠다. 당시 뚝섬유원지에는 70척의 놀잇배가 운행됐고, 20여개의 텐트가 난립했으며, 여학생 전용 수영장도 있었다. 사건·사고가 다반사인 서울 최대의 행락지였다. 뚝섬 일대는 1949년 서울시 성동구에 편입됐다. 성수동이라는 지명은 족보에 없는 새 이름이다. 성덕정에서 성(聖)자를 따고, 뚝도수원지에서 수(水)자를 따서 성수동이라고 융합 작명한 산물이다. 1954년 뚝섬경마장이 이전해오면서 성수동의 장소 관성을 깨웠다. 1928년부터 신설동에 있던 경성경마장이 한국전쟁 때 파괴되자 서울경마장이라고 이름을 바꾼 뒤 이전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승마경기를 치를 국제경기장이 필요해지자 과천경마장으로 옮겼다. 장소성은 경찰기마대가 이어받았다. 오늘의 붉은 벽돌마을을 남긴 성수동 공단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서울의 근교농업지대에서 공단으로의 변화는 1950년대 말 청계천 재개발과정에서 봉제, 섬유, 염색, 금속, 기계 공장들이 성수동으로 이전하면서 가속화됐다. 도심과 가깝고, 땅값이 싸고, 한강변 성수천을 끼고 있어 최고의 입지를 자랑했다. 1970년대를 전후 모토로라코리아, 아남산업, 대동화학, 금강제화, 오리엔트시계, 강원산업, 한일약품, 신도리코 등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 15개 업체가 옮겨왔다. 100인 이상 업체도 73개였다. 빨간 벽돌로 지은 2~3층 공장과 창고, 연립주택이 성수천을 따라 바둑판 형태로 늘어서면서 공장지대로 면모를 갖췄다. 1971년 말 성수동 공단을 중심으로 한 성동구의 제조업체 총수는 671개로 서울 전체의 20%를 웃돌았다. 지하철2호선 순환선이 놓인 뒤 경마장 부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공장지대나 전철역 주변을 중심으로 주거기능이 강화됐다. 특히 성수동 한복판을 가로지르던 성수천의 중금속 오염이 문제였다. 성수천은 1977년 복개공사로 덮었지만 공해 유발 업체는 쫓겨나고, 공장 신설도 금지됐다. 1983년 당시 성수동 공단에는 1273개 업체에 5만 2000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형 공장이 지어진 성수동은 대표적인 주택과 공장 혼합지역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의 여파를 겪으면서 1997년 800여개의 공장 중 폐업한 공장이 300개를 넘었다.도시형 전통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제화, 인쇄, 자동차정비업종이 스며들었다. 성수동의 새 3대 명물이다. 노동집약적 산업 대신 생활밀착형 산업을 앞세워 활로를 모색했다. 한국의 신발산업은 부산이 전략적 기지였으나 부산이 고무제품 중심이었다면, 서울은 가죽 제화산업의 중심이었다. 제화산업은 낮은 자본집약도와 상대적으로 낮은 단계의 기술투입, 높은 숙련인력 의존도, 높은 노동집약도가 필요했다. 해방 이후 서울의 수제화 산업은 염천교와 명동의 살롱화에서 싹텄다. 성수동은 수제화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다양한 신발공장과 수선에 필요한 부자재와 소재가 뒷받침했다. 강남과 도심 근접의 이점이 빛을 발했다.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수제화 생산업체 400여개와 중간 가공 및 원부자재 유통 100여개 등 500여개의 업체가 모인 국내 최대의 수제화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은 떠났지만 영세, 중소하청 업체들은 남아 수제화 산업 생태계를 복원한 게 더 값지다. 성수동은 한국 수제화 산업의 시간적 변천과 공간적 변천을 온몸으로 말한다. 지금 성수동은 ‘북촌=한옥’처럼 ‘성수동=붉은 벽돌마을’의 등식 성립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2회 불광동과 은평 한옥마을 ■일시 및 집결장소: 7월 13일(토) 오전 10시 불광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항공기로 담배 심부름·폭언… 갑질 공군대대장 국민청원

    항공기로 담배 심부름·폭언… 갑질 공군대대장 국민청원

    공군 소속 한 부대장이 부하에게 사적 심부름과 폭언을 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공군이 감찰에 착수했다. 공군 관계자는 10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A 대대장(중령)에 대해 감찰실에서 지난 8일부터 감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군 ○전대 ○○○대대 대대장 인권침해 및 사적지시 사례 고발’이라는 제목의 청원 글에 따르면 게시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항공기를 이용해 외지비상대기 근무 교대 중인 조종사에게 지시해 지인에게 전자담배를 갖다 주라는 등 사적업무를 상습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물품을 병사에게 택배거래를 지시했으며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부대원에게 면세담배를 사오라는 지시도 했다고 주장했다. A 대대장이 부하에 대한 폭언으로 부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원 글에 따르면 A 대대장은 외부 인사가 부대에 방문했을 때 “대대원들 모두 떨거지들만 남았다”, “애들 성격이 죄다 쓰레기다”라며 부대원을 비하했다. 또 업무가 바빠 점심시간을 놓쳐 간단한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는 부대원에게는 “니가 개냐? 사료 처먹게”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본인의 비행감독관 업무를 자격이 없는 부대원에게 지시하거나 일과 시간 중 테니스나 취침을 하는 등 근무태만도 보였다고 게시자는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월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윤의철 7군단장이 비합리적인 부대 운영을 한다며 해임청원이 게시되는 등 최근 부대 지휘관에 대한 부대원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공군 관계자는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두 차례 대선 출마한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 89세로 영면

    두 차례 대선 출마한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 89세로 영면

    1990년대 두 차례나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아웃사이더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89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페롯의 가족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발표해 “혁신적인 기업인이자 사랑하는 남편, 형제, 아버지, 할아버지인 로스 페로가 댈러스 집에서 가족이 임종한 가운데 이날 아침 영면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초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마크 펜스 부통령은 “위대한 미국인, 진정한 애국자, 우리 군대를 지속적으로 응원한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페로가 재산을 모으면서도 불우한 재향군인들을 돕고 해외에서 억류된 미국인 인질들의 몸값을 보탰던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고인이 대선에서 맞붙었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고인을 “기업가 정신과 미국인의 자긍심을 극대화한 강한 애국자”라며 안타까워했다. 텍사스주 출신인 그는 1962년 컴퓨터 데이터 회사를 차릴 정도로 앞서가는 기업인이었다. 1992년 대선에 처음 출마해 균형 재정과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막겠다고 공약을 내걸어 삼자 구도에서는 늘 20%대 지지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6300만 달러의 선거 비용 모두를 자신이 댔다. 같은 해 6월 한때 클린턴과 부시를 앞지를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지만 결국 11월 투표에서 3위로 끝났다. 두 거대 정당 소속이 아니면서 이렇듯 높은 인기를 누린 대선 후보는 그 전에는 없었으며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현직이었던 조지 HW 부시 공화당 후보를 누르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4년 뒤에는 자신의 정당 개혁당을 창당해 다시 대선에 도전했지만 인기는 예전만 못했고, TV 토론에도 초청되지 못했으며 결국 8%의 유권자 마음을 얻는 데 그쳤다. 앤서니 주커 BBC 기자는 무소속 후보로 1992년 대선에 출마한 것은 언젠가 터질 선거혁명의 취약한 지점을 노출시켰으며 양대 정당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분석했다. 투박한 텍사스 억양으로 포퓰리즘, 작은 정부, 반무역, 반글로벌을 외치던 그의 주장이나 대선 출마 선언을 토크쇼를 통해 하는 등 연예와 정치의 간극을 좁힌 점 등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그것과도 닮은 구석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대공황이던 1930년에 태어난 페로는 무척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IBM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서른두 살이던 1962년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EDS)을 창업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88년 페롯 시스템이란 회사를 차렸는데 2009년 델 컴퓨터가 39억 달러에 인수했다. 고집이 무척 센 것으로 유명했고 엄격한 복장 규정으로 악명을 떨쳤다. 직원들은 모두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매게 했고 수염은 기르지 못하게 했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두 직원이 감옥에 갇히자 자신이 돈을 대 특공대를 투입시켜 구출한 일로 책을 썼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 이후 포로로 붙잡힌 미국인 병사 수백명을 그대로 두어선 안된다며 구출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동영상] BBC “한국 청년 박태관, 인도 뭄바이 크리켓 클럽 입단 노려”

    [동영상] BBC “한국 청년 박태관, 인도 뭄바이 크리켓 클럽 입단 노려”

    운동 선수로는 적지 않은 나이의 한국 청년이 인도 뭄바이에서 지역 크리켓 클럽에 들기 위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급히 만들어진 크리켓 대한민국 대표팀에 들어간 뒤 죽 몸 담고 있는 박태관(27)이 주인공. 초등학교 6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해 중앙대 1학년까지 야구 선수 로 지냈다. 부상과 프로야구의 높은 벽 앞에 야구를 그만둔 뒤 초등학교 리틀야구단 코치로 지내며 새로운 길을 찾던 그에게 2012년 대한크리켓협회에서 일하던 지인의 권유로 대회 1년을 앞두고 크리켓 국가대표가 됐다. 처음 5개월 정도는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훈련했다. 이후에는 전지훈련을 갈 때 빼곤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훈련했다. 몇몇 장비는 대학 동아리 장비를 빌려 쓰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다.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한달 앞두고야 전용구장이 완공됐다. 급조된 대표팀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중국을 꺾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한 것이다. 대회를 마친 뒤 그는 “일단 군대를 갔다 와야 하고 학교도 더 다녀야 하지만 외국에서 크리켓을 좀 더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인도로 건너간 것이다. 영국 BBC는 9일(현지시간) 짧은 영어 밖에 하지 못하는 박태관이 크리켓 강국인 인도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를 동영상 인터뷰로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은 그에게 ‘한국의 사친 텐둘카르’라고 제목을 붙여줬다. 올해 46세인 텐둘카르는 뭄바이 출신으로 크리켓 팀에서 배트맨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크리켓의 신으로 통하며 2012년 전 세계에서 이름값 높은 스포츠 스타 톱 10에 들었다. 인도 갑부들의 결혼식에 단골로 초대되기도 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적지 않은 나이에다 인도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도 적은데도 큰 크리켓 시장을 보고 인도행을 결심했으며 가족의 반대를 설득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지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 부모 등이 만족해 한다고 들려줬다. 그가 배트를 휘두르는 모습을 본 지역 클럽의 프라딥 카스리왈 코치는 “아주 인상적이다. 동작이 완벽하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5년은 더 선수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태관은 “때때로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에 돌아가 크리켓 인기에 불을 지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위안으로 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크리켓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확정됐고, 매년 성인클럽 20개 팀이 참가하는 ‘코리아컵 T20 크리켓 리그’를 개최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크리켓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의 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의 힘

    19세기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위대한 인물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항상 여론을 좇아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며, 또한 고독한 가운데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은 대중의 한가운데 살면서도 고독에서 지닐 수 있는 독립성을 좋은 기분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이성을 잃고 집단적 광기에 휩쓸리기 좋아하는 무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고독의 힘이 위대하다고 말한다. 희곡 ‘잔 다르크’ 제5막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된 프랑스 애국 소녀 잔 다르크는 고문하는 영국 검찰관에게 말한다. “내가 홀로 있다는 사실을 내게 말함으로써 나를 겁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프랑스도 홀로 있고, 하느님도 홀로 계시다. 그리고 나의 조국과 나의 하느님의 고독에 비하면 나의 고독이란 무엇이겠는가. 나는 이제 하느님의 고독이야말로 하느님의 힘이라는 것을 안다. 자, 나의 고독 역시 나의 힘이 될 것이다. 하느님과 더불어 홀로 있는 편이 훨씬 낫다. 하느님의 우정도, 하느님의 충고도, 하느님의 사랑도 내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 안에서 나는 더욱더 담대하게, 담대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용사는 홀로 있을 때 가장 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에서 사탄은 항상 군대(legion)로 무리 지어 다닌다(‘마가복음’ 5장 9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안타이오스는 대지의 여신 테라의 아들이다. 그는 그의 발이 어머니인 대지에 닿아 있는 한 문자 그대로 천하무적이었다. 헤라클레스가 그와 대결하게 됐을 때 헤라클레스는 꾀를 내어 그를 번쩍 들어 공중에서 목을 졸라 죽여 버렸다. 발이 땅에서 떨어진 안타이오스는 썩은 통나무같이 무력했다. 인간도 독립된 인격으로서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설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그리고 진정한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7월이다. 들판 한가운데 앉아 단독자로서 우주를 마주하고 있는 농부에게서 고독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석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41년 6월 22일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꾼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 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미국의 요청으로 1945년 8월 대일전쟁에 참여해 한반도 북부를 해방했다.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 소련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참전해 불멸의 공로를 세웠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됐다. 소련에서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국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또는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용감성을 발휘해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했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를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해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했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해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했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 깃발 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제3우크라이나 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전해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을 치른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해 적군을 격파하고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했고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에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로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했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됐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년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의 반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해 마을을 해방했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했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고 확인됐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 美, 대만에 미사일 등 2조원대 무기 판매… 中 “난폭한 내정간섭”

    에이브럼스 전차 등 장비 훈련까지 지원 中 “엄정 교섭 제기에도 주권 침해” 반발 美상무부, 중국산 구조용 철강 관세 부과 의회는 “스파이 네트워크” 화웨이 때리기 미국 정부가 대만이 요청한 22억 달러(약 2조 6000억원) 규모의 무기 판매 계획을 승인했다.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양국 갈등은 안보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 국방부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8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대만에 M1A2 에이브럼스 전차 108대와 스팅어 휴대용 방공 미사일 250기, M88A2 허큘리스 구난전차, M1070A1 중장비 수송차, M2 중기관총 등을 판매하는 계획을 국무부가 승인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들 장비 운용과 훈련에 필요한 지원활동도 할 예정이다. DSCA는 “대만은 군대 근대화와 방어력 유지를 위해 계속 노력을 하고 있다”며 “이를 지원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 안보는 물론 경제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만에 무기 판매가) 역내 기본적인 군사적 균형 관계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 정부는 해당 무기의 대만 수출 방안을 미 의회에 통보했다. 이번 무기 판매 계획안은 미 의회 통과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의회는 표결을 통해 무기 판매를 거부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미 하원은 지난 5월 미국이 대만 국방전력 강화를 지원하고 대만 국제기구 활동을 지지하는 내용의 ‘2019 대만 보증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중국산 구조용 철강을 겨냥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미 상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이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해 제조업체들이 이득을 봤다”며 “연방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철강 수입업체들로부터 현금 예치금을 거두도록 지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무부의 예비조사 결과 중국은 30.3~177.4%의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무부는 오는 11월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미국이 지난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구조용 강재는 8억 9750만 달러에 이른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 의회의 견제도 계속되고 있다. 더힐에 따르면 마샤 블랙번 상원의원은 폭스뉴스에 출연해 중국이 화웨이를 통해 세계 각국에 스파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그들(중국)이 뭐라고 말하든 화웨이는 국영이며 우리는 이 기업이 국영이고 스파이 활동의 메커니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이런 위험 때문에 화웨이가 우리는 물론 동맹국들의 차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토록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브리핑에서 “미국은 중국의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했고 중국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훼손했다”며 “중국은 강렬한 불만과 반대를 표시했다. 이미 미국에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수하고 3개 공동성명을 준수하며, 즉각 무기 판매 계획을 취소하고 대만 군대와의 연락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北목선’ 23사단 사병 투신… 軍 “조사대상 아니었다”

    ‘북한 목선’ 사건으로 경계실패 비판을 받고 있는 육군 23사단 소속 사병이 휴가 중 한강에 투신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육군은 9일 “23사단 예하 소초에서 상황병으로 근무하던 A(21) 일병이 휴가 중이던 지난 8일 오후 원효대교에서 투신했다”고 밝혔다. A 일병은 경계작전 중 발생하는 상황을 상황일지에 기록하는 업무를 했으며 사건 당일인 지난달 15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근무했다. 국방부는 “병사에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는 데다 사건 발생 시점인 15일 오전 6시 20분쯤엔 A 일병이 경계근무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대상도 아니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A 일병의 휴대폰에 작성된 유서에는 “군대 생활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등의 자괴감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 관계자는 “지난 4월 A 일병이 소초에 투입된 이후 업무 미숙으로 간부의 질책이 있었던 게 헌병 조사에서 확인됐다”며 “사망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A 일병이 ‘북한 목선 조사 과정에서 심리적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북한 선박 국정조사를 통해 함께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에서 6월말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6·25남침이라는 대답이 들릴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며 그 상처들은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9년 3일 전인 1941년 6월 22일에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꿀 또 한 가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이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략한 것이다.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Lebenstraum)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유발한 이 전쟁은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만약 독일이 성공했다면 전 세계가 몇 개의 민족들이 강제 지배하는 암흑시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해방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 문화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말살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1945년 8월에 미국의 요청으로 대일전쟁에 참여하였고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해방하였다. 물론 이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족을 비롯한 소련의 모든 민족들이 참여한 전쟁이었으며, 그 중 침략 당시에 소련에 거주한 한인, 소위 ‘고려인’들도 있었다. 이 기사에서 유럽, 나아가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서 불멸의 공로를 세운 한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문서보관소의 폐쇄 등으로 제2차 세계대전 한인 참가의 연구는 오랫동안 큰 제약을 받고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되면서 일반 연구자들도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년~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되었다.1941년 당시 소련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붉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37년 국가안보의 이유로 극동지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소련의 한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민족으로 간주되어 붉은 군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전문군인들도 강제 전역되었다. 1937~1938년 대숙청이 끝난 후 그 일부는 군대에 복귀되었지만, 많은 한인에게 붉은 군대 입대권은 여전히 거부되고 있었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의 소식이 알려지자 각각 도시와 농촌의 군사동원부 앞에서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고 나치즘이라는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붉은 군대에 지원하려는, 애국열과 투쟁열에 불타오르는 소련 모든 민족 젊은이들의 기나긴 줄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한인들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당시 군대에 입대하면 전선에서 나치침략자들과 싸우는 전선군대와 후방에서 전선부대들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노동군대 등 2가지의 길이 있었다. 물론, 입대에 성공한 많은 한인은 전선에 가지 못해 노동군대에 파견되어 무기생산이나 방어시설 건설 등에 전선부대들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역사 앞에서의 책임을 자각하는 많은 한인 젊은이들은 전선에 가는 것을 꿈꾸고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다. 입대지원서에 출신지, 민족에 대하여 위조한 사실을 신고하고 입대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이름을 바꾸고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보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1년 노동군대에 동원된 차가이 씨가 전선에 가기 위해 3번이나 탈영 시도했고 결국 성공하여 고리키 시에 도착하고 노동자로 일하다가 다시 동원되어 전선에 파견되었다. 1941년 8월 노동군대에 동원된 황동국은 스탈린에게 “소비에트 조국의 원수들과 직접 싸우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1942년 9월에 입대했으며 중사라는 계급을 수여받고 대전차포의 지휘성원으로 베를린 공세작전에서 참여하였다.우리에게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지는 자료는 그 공로의 기록이 나오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러시아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훈장수여 관련 자료는 너무 방대해서 연구가 완료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 중 대표적인 예들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 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혹은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지 위해 용감성을 발휘하여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하였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시킨 후 그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하여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하였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깃발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참전하였으며 제3우크라이나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여하여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적군 부대들을 격파시키면서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하였으며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 하의 그 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하였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에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되었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녀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보관되어 있는 그의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 반공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하여 마을을 해방하였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하였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는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는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는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전선에 나가 파시즘과 싸운 한인 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소련의 다른 민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나치 독일을 막음으로써 그 희생과 공훈이 한국 해방으로의 길을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람들을 기념하는 한국 영화는 아직 한 편도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 독소전쟁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것은 ‘마이웨이’이라는 영화이지만, 그는 냉전 시대에 할리우드로부터 들어온 선입견에 사로잡혀 독소전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풍자화를 그리고 있다. 1941년에 발발하고 1945년 5월 9일에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식된 이 전쟁은 한민족을 비롯한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민족들의 공동 공로이며, 한인들의 독소전쟁 참전 역사를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영원토록 남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들의 중요한 과제이며 거룩한 임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숨진 23사단 병사 유서 발견…군 당국 “4월부터 업무 질책받아”

    숨진 23사단 병사 유서 발견…군 당국 “4월부터 업무 질책받아”

    스마트폰에 ‘유서’ 제목으로 된 메모 발견군 적응 어려움 호소…경계 관련 언급 없어군 당국 “소초 배치 후 업무 관련 질책받아”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당시 경계 근무 부실 지적을 받은 육군 23사단에 소속돼 복무 중이던 A 일병(21)이 한강에서 투신해 숨진 가운데, 이 병사의 휴대전화에서 ‘유서’라는 제목의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35분쯤 서울 원효대교에서 육군 23사단 소속 A(22) 일병이 투신했다. 신고자는 112에 “원효대교를 지나는데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사람이 허우적거린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당국은 구조대를 급파, A 일병을 구조한 뒤 인근에 있는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 하고 숨졌다. A 일병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라는 제목의 이 메모에 “부모를 떠나 군대 생활을 하는데 적응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목선 경계실패 논란이 언급됐는지 여부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초소 경계 업무와 관련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았다”면서 “유서에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일병의 신원을 확인한 뒤 즉시 군 당국에 통보했다. 한편 군 당국은 A 일병이 목선 입항 사건과 별개로 업무와 관련해 부대 간부의 질책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군 당국자는 “A 일병이 근무하는 부대는 지난 4월 소초에 투입됐다. A 일병이 (그때부터) 간부로부터 업무 관련 질책을 받아온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 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A 일병의 사망과 간부의 질책과의 연관성을 속단하기는 어렵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 A 일병에 대한 폭행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폭행 여부를 포함해 또 다른 형태의 가혹 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군 수사당국은 면밀한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북한 목선 사건 발생 이후에도 A 일병에 대한 질책이 있었는지에 대해 “(업무 관련 질책이) 4월 이후부터 계속 있었기 때문에 있었을 수 있다”면서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북한 목선 사건을 계기로 부대 분위기가 악화하고 소속 부대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해졌다는 관측이 나오는 데 대해서는 “모든 개연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대답했다. ‘북 목선 입항’ 15일 오후 소초 상황병 근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합동조사 땐 휴가 떠나군 “병사에 책임 묻지 않아…경위 조사 중”2명이 근무하는 일반 초소보다 큰 규모로 감시장비 등을 갖추고 운영되는 소초의 상황병이었던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전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입항할 당시 오후 근무조에 편성돼 근무를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병은 경계 시 발생한 특이사항, 소초 출입자 등 모든 상황을 전파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는다. 다만 당시 북한 목선이 오전에 입항하면서 불거진 경계 부실 문제와 A 일병의 근무 시각이 달라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었고 조사를 받은 바도 없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A 일병은 6월 15일 오후에 초소 근무를 섰다”면서 “합동조사단 조사(6월 24일) 당시에는 휴가를 갔다”고 전했다. 군에 따르면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를 섰고,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연가 및 위로 휴가를 사용했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는 정기휴가를 받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목선 사건과 관련해서는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사망자가 ‘북한 소형 목선 상황’과 관련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이는 확인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숨진 23사단 병사 스마트폰서 유서 발견…‘목선 경계’ 내용 없어

    숨진 23사단 병사 스마트폰서 유서 발견…‘목선 경계’ 내용 없어

    스마트폰에 ‘유서’ 제목으로 된 메모 발견군 적응 어려움 호소…경계 관련 언급 없어‘북 목선 입항’ 15일 오후 소초 상황병 근무조사 대상에서 제외…합동조사 땐 휴가 떠나군 “병사에 책임 묻지 않아…경위 조사 중”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당시 경계 근무 부실 지적을 받은 육군 23사단에 소속돼 복무 중이던 A 일병(21)이 한강에서 투신해 숨진 가운데, 이 병사의 휴대전화에서 ‘유서’라는 제목의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35분쯤 서울 원효대교에서 육군 23사단 소속 A(22) 일병이 투신했다. 신고자는 112에 “원효대교를 지나는데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사람이 허우적거린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소방당국은 구조대를 급파, A 일병을 구조한 뒤 인근에 있는 여의도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 하고 숨졌다. A 일병의 스마트폰 메모장에서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라는 제목의 이 메모에 “부모를 떠나 군대 생활을 하는데 적응하기 힘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목선 경계실패 논란이 언급됐는지 여부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초소 경계 업무와 관련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았다”면서 “유서에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가혹행위 등을 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일병의 신원을 확인한 뒤 즉시 군 당국에 통보했다. 2명이 근무하는 일반 초소보다 큰 규모로 감시장비 등을 갖추고 운영되는 소초의 상황병이었던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전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입항할 당시 오후 근무조에 편성돼 근무를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병은 경계 시 발생한 특이사항, 소초 출입자 등 모든 상황을 전파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는다. 다만 당시 북한 목선이 오전에 입항하면서 불거진 경계 부실 문제와 A 일병의 근무 시각이 달라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아니었고 조사를 받은 바도 없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A 일병은 6월 15일 오후에 초소 근무를 섰다”면서 “합동조사단 조사(6월 24일) 당시에는 휴가를 갔다”고 전했다. 군에 따르면 A 일병은 지난달 15일 오후 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를 섰고, 6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연가 및 위로 휴가를 사용했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는 정기휴가를 받았다. 군 관계자는 “북한 목선 사건과 관련해서는 병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육군은 “사망자가 ‘북한 소형 목선 상황’과 관련해 조사받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투신했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유통되고 있는데, 이는 확인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전쟁 가능한 日” 개헌 목맨 아베 국민은 무관심

    “전쟁 가능한 日” 개헌 목맨 아베 국민은 무관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그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오는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 맞춰 ‘개헌을 향한 총진군’을 선언했다.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해 ‘군대를 보유한 보통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에 무리한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것도 상당부분 선거 압승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 지지세력을 규합해 개헌안 발의 가능선인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이다. 올 가을 임시국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에 불을 붙이고 내년에 신헌법을 공표하겠다는 그의 행보는 한국 등 과거 군국주의 침략 피해국가들을 포함해 국제사회에 큰 우려를 던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개헌 추진의 앞과 뒤를 문답 형식으로 살펴본다.Q.아베 총리가 개헌을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들고 나왔는데. A.그는 2017년 5월 3일 헌법기념일에 ‘2020년 개정헌법 시행’을 목표로 밝히는 등 여러 차례 개헌의 이슈화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번번이 정치 상황이나 국민 여론에 밀려 좌절됐다. 이번에는 전에 없이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유권자들을 향해 “헌법을 논의하는 정당을 선택할지, 논의조차 하지 않는 정당을 선택할지의 선거”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기에는 ‘허울뿐인 아베노믹스’, ‘노후 생활자금 불안’ 등 불리한 부분을 개헌 이슈로 덮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Q. 2012년 12월 총리 복귀(제2차 집권) 이후 6회의 국정선거 중 이번처럼 개헌을 전면에 내건 것은 처음인데. A. 앞으로 그가 ‘총재 4연임 가능’으로 당헌을 바꾸는 등 무리수를 두지 않는 한 이번 참의원 선거는 총리로서 치르는 마지막 국정선거다. 3연임 임기 만료(2021년 9월)까지 남은 2년 남짓 동안 개헌을 시도할 최후의 기회로 생각하는 이유다. 모든 가용자원을 동원해 국민과 정치권을 향해 집요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 것임은 불보듯 뻔하다. 참의원 선거 이후 이뤄질 개각이나 당 간부 인사도 헌법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Q. 현행 헌법의 어떤 부분을 바꾸려고 그리도 애를 쓰는 것인가. A. 전쟁 패망 이듬해인 1946년 11월 3일 제정돼 이듬해 5월 3일 시행된 현행 헌법은 제9조에서 ‘국제평화를 희구하고 무력행사는 영구히 포기한다’(1항), ‘육·해·공군 및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2항)고 규정하고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의 연합국총사령부(GHQ)가 일본의 재무장을 막기 위해 당시 일본 지배세력에 강요한 결과다. 세계 유일의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전력 불보유 원칙에 따라 실질적인 군대인 ‘자위대’의 존재는 반영돼 있지 않다. 아베 총리는 73년 동안 유지돼 온 헌법을 고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제9조는 그대로 두고 ‘제9조의 2’라는 별도 조목을 신설해 자위대의 근거 규정을 명기한 자민당 차원의 헌법 개정안을 지난해 3월 확정했다. 본심은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 등을 모조리 삭제하고 싶지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자위대 규정만을 추가해 집어넣은 변칙적 개헌안이다. Q. 과거 다른 사람들보다도 아베 총리가 개헌에 적극적인 것은 왜 그런가. A. 1954년생인 아베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전후세대 총리다.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수정주의 역사관이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있는 인물이다.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헌법 개정을 외쳤던 기시 노부스케(재임 1957~1960년) 전 총리가 외할아버지로, ‘일본의회’ 등 뿌리 깊은 보수의 원류들과 깊숙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2006년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국가의 골격은 일본 국민의 손으로 백지상태에서 만들어야 한다. 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회복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GHQ와 같은 외세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헌법을 사용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라는 논리다. 오는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는 그는 ‘맥아더가 강요한 헌법’에서 일본을 해방시킨 총리로도 교과서에 남기를 원하고 있다.Q. 개헌에 있어 이번 참의원 선거가 왜 그렇게 중요한 건가. A. 개헌이 성립되려면 ‘국회의원(중의원·참의원 공통) 3분의2 이상의 발의→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야 한다. 흐름상 우선단계는 국회 내 3분의2의 개헌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양원 각각의 3분의2는 중의원 310석(전체 465석), 참의원 164석(245석)이다. 중의원은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만으로도 3분의2가 구성되지만, 참의원은 이에 못 미친다. 이번 선거에서도 자민·공명 연립여당의 승리는 확실해 보이지만 3분의2 달성은 어렵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극우성향 야당으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일본유신의회와 합했을 때 3분의2 달성이 가능한지가 초점이 되고 있다. Q. 자민·공명·유신 등 3개 정당이 3분의2를 장악하면 바로 개헌으로 가는 것인가. A. 개헌에 소극적 또는 반대 입장을 보이는 공명당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는 남지만, 어쨌거나 단순 수치상 3분의2선에 도달하면 아베 총리는 “개헌에 대한 민의를 확인했다”며 일사천리로 절차를 밀어붙이려 할 게 뻔하다. 올가을 임시국회에서 헌법심의회 심사를 독자적으로 강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안 제출까지 완료한다는 것이 목표다. 필요하다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제2야당 국민민주당 의원들을 포섭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그러나 개헌세력이 3분의2를 밑돌면 아베 총리의 꿈은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더 필사적으로 한국에 대해 수출제한 보복 등 강경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Q.정작 국민들은 개헌에 별 관심이 없다던데. A. 지난 4일 NHK가 공개한 국민여론조사 중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 항목에서 ‘개헌’이란 응답은 6%에 그쳤다. 사회보장, 경제정책, 외교·안보 등에 밀린 5위였다. NHK의 다른 조사에서도 ‘개헌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9%만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 국민들은 대체로 헌법이 안 바뀌어도 살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Q. 향후 전망은 어떤가. A. 아베 총리가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내년 신헌법의 공표·시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가장 큰 개헌 협의 대상인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반대가 완강한 가운데, 어찌어찌 해서 성사가 되더라도 내년 1월 정기국회 제출, 중의원·참의원 심사, 개정안 발의, 국민투표 회부 등의 과정을 감안할 때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플랜B’로 자위대 명기 부분을 제외한 상태로 개헌을 추진하는 방안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헌법 자구 하나도 고칠 수 없다는 공산당·사민당과 달리 입헌민주당은 국민복지 증진 등을 주제로는 개헌에 참여할 의사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의 말. “무리하게 9조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부결되면 자칫 향후 몇십년간 자위대 관련 개헌 논의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일단 좀더 진입장벽이 낮은 쪽을 선택해 개헌을 달성하고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개헌을 노리는 다단계 전술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Q. 헌법에 자위대가 명기되면 전쟁이 가능해지는 것인가. A. 전범국으로서 일본에 부과돼 온 평화노력 의무 준수의 ‘족쇄’가 풀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가뜩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군비 확장을 억제할 브레이크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미 일본의 지난해 국방비 지출은 454억 달러(약 53조 5350억원)로 한국(392억 달러·10위)에 앞선 세계 8위였다. 자국 방위산업을 위한 미국의 무기 수입 강요에 따라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으로 군비 증강을 거듭해 온 일본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주변의 안보위협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세계평화를 앞세워 자위대 파병을 확대하며 군사적 입지를 넓히려 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진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유승준 최종판결일 앞두고 ‘영구퇴출VS그만하면 됐다’ 의견 분분

    유승준 최종판결일 앞두고 ‘영구퇴출VS그만하면 됐다’ 의견 분분

    병역 기피 의혹으로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오는 11일 오전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유승준이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를 대상으로 제기한 사증발급 거부취소 소송의 상고심 재판 선고기일이 진행된다. 유승준은 2001년 8월 신체검사 당시 4급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고 2002년 입대를 3개월 앞둔 시점에 돌연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서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에 법무부는 유승준이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했다고 보고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입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후 유승준은 2003년 장인 사망으로 일시적으로 입국한 것을 제외하고 17년째 입국 금지상태다. 지난 2015년 유승준은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인 ‘F-4’ 비자의 발급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했고, 이에 해당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서 “유승준이 입국해 방송 활동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며 병역에 종사하는 국군장병의 사기가 저하되고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해질 우려가 있다”면서 유승준의 청구를 기각했고, 오는 11일 소송의 상고심 판결이 내려진다. 유승준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병역 기피 문제로 도주한 거 아닌가?”, “안 된다”, “영구퇴출”, “군대 간 사람들은 호구인가”, “의도가 잘못됐다”등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 네티즌은 “벌써 17년이다. 그만하면 됐다”, “나도 유승준 입국 반대했지만 17년은 조금 심한 것 같다”, “외국인으로 여행처럼 오면 될 듯”등 긍정 반응도 보였다. 유승준은 그동안 꾸준히 눈물로 대중에 호소하면서 국내 복귀를 희망해왔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입국 제한 해제가 이뤄질지 판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스티브 유(유승준) “입국 허가해달라” 소송…대법, 11일 최종 판단

    스티브 유(유승준) “입국 허가해달라” 소송…대법, 11일 최종 판단

    1·2심, 청구 기각…“선량한 사회 질서 저해 우려” 보충역 입대를 공언했다가 돌연 출국, 한국 국적을 포기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스티브 승준 유(한국 활동명 유승준·43)씨에게 우리 정부가 비자 발급을 거부하며 입국을 제한한 것이 위법한지를 놓고 대법원이 11일 최종 판단을 내린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1일 오전 11시 대법원 2호 법정에서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관을 상대로 낸 ‘사증(비자) 발급 거부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고 4일 밝혔다. 국내에서 가수로 활동하던 유씨는 2001년 8월 징병검사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아 4급 보충역(당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는 방송 등에서 “군대에 가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고, 그간 ‘바른 청년’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2001년 그는 입대 전 미국에 사는 가족에게 인사를 한다는 사유 등을 내세워 해외로 출국했다. 출국 전 그는 지인 2명의 보증을 받았고, 병무청은 일정이 끝나면 바로 귀국하겠다는 각서를 받고 그의 출국을 허가해줬다. 그러나 2002년 1월 18일 LA 법원에서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고, 대한민국 LA 총영사관을 찾아가 대한민국 국적 상실 신고를 했다. 그는 당시 대한민국 국적 포기에 대해 “입대하면 서른이 되고, 댄스가수로서 생명이 끝나기 때문에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에서 계속 가수 활동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후폭풍은 엄청나게 거셌다. 병무청은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입국금지 조치를 요청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법무부는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입국을 제한했다. 출입국관리법 제11조 1항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무부 장관이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이 경제·사회 질서를 해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돼도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2002년 2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던 유씨는 입국이 거부됐고, 약 6시간 동안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입국이 거부된 뒤 중국 등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던 유씨는 2015년 9월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다가 거부되자 국내 법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냈다. 1·2심은 “유씨가 입국해 방송 활동을 하면 자신을 희생하며 병역에 종사하는 국군 장병의 사기가 저하되고, 청소년 사이에 병역 기피 풍조가 만연해질 우려가 있다”면서 유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유씨의 입국이 ‘사회의 선량한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해 적법한 비자 발급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왕래를 할 수 있는 비자(C-3)가 아닌 굳이 F-4 비자를 고집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F-4 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투표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적 권리가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하게 주어진다. 즉 대한민국에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한 비자다. 이 때문에 단순히 유씨가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병역 기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 버젓이 한국에서 경제 활동을 할 때 사회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씨는 2015년 5월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생방송을 진행, 그간의 심경 고백을 하면서 무릎을 꿇고 대중에게 용서를 빌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방송이 끝나지 않은 사실을 몰랐던 제작진끼리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면서 욕설을 주고받는 음성이 송출되면서 더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또 미리 예상 질문과 답변을 연습하는 상황까지 폭로되면서 여론에 호소하려던 그의 복귀는 무산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동영상] 트럼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탱크, 에어포스원 동원”

    [동영상] 트럼프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탱크, 에어포스원 동원”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2일 워싱턴 DC의 한 철로 위에 탱크 여러 대와 험비 차량을 태운 열차 화물칸이 목격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독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 ‘살루트 투 아메리카(미국에 경롓)’에 동원하자고 고집을 부려 동원된 M1A1 에이브럼스 탱크와 군사용 지프 차량들이다. 탱크 등의 무게는 60t 정도이며 조지아주 포트스튜어트 기지에서 이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워싱턴 시청 관계자들은 포토맥강 위에 건설된 다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지 걱정했는데 별 탈 없이 진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트위터에 “펜타곤(국방부 청사)과 군 지도자들이 이런 멋진 장면을 미국민에게 보여준다는 데 가슴 떨려 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최강에다 가장 앞선 군대 아니냐. 믿기지 않는 축하비행과 가장 떠들썩한 불꽃놀이를 기대해도 좋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향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전투기들과 다른 비행기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 뒤 “탱크 몇 대가 밖에 진을 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4일 행사가 “어떤 것과도 다른 특별한 행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워싱턴 시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DC 시의회는 지난 1일 트위터를 통해 “전에도 얘기했는데 다시 ‘탱크는 안돼’라고 얘기해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DC 시의회는 지난해 재향군인의 날 행사 때 국방부가 발표한 가이드북을 트위터에 올린 뒤 “지역의 인프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탱크는 안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일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해군 비행단 블루에인절스의 축하비행을 명령하면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도 참가하도록 했다.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육해공, 해병대 사령관들도 모두 자신 옆에 선 채로 사열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되면 4일 저녁 2시간 동안 리건공항 등 워싱턴의 모든 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돼 상당한 소동이 일게 된다. 여기에다 불꽃놀이까지 하려면 45분 동안 워싱턴 상공은 추가로 닫히게 된다. 워싱턴 시청 관계자들은 탱크가 퍼레이드에 참여하면 도로가 심하게 파손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 재향군인의 날 퍼레이드에 9200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원래 계획했던 비용의 3배 넘게 치솟자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 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바스티유의 날 퍼레이드를 본 뒤부터 군사 퍼레이드에 유달리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종합] 김수현, 늠름한 모습으로 제대

    [종합] 김수현, 늠름한 모습으로 제대

    김수현 제대 소식과 함께 그가 걸그룹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배우 김수현이 1사단 수색대대에서 만기 전역하고 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의 종에서 전역 인사를 했다. 이날 “위안이 된 걸그룹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병사들은 신곡 업데이트를 빠짐없이 다 보고 있다”며 재치있게 답했다. 이어 김수현은 “아침마다 뮤직비디오를 빠짐없이 날마다 봤다”고 덧붙였다. 또 김수현은 군대 있을 때 가장 시간이 가지 않았던 순간을 묻자 “휴가에서 복귀한 다음이다. 2주 정도는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현은 앞서 어린 시절 앓아온 심장 질환으로 첫 징병검사 당시 대체 복무에 해당하는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으나, 재검을 받아 1급 판정을 받고 2017년 10월 23일 현역으로 입대했다. 또한,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1사단 수색대대로 지원해 본격적인 군 복무를 시작했다. 1사단 수색대대는 군사분계선(MDL)과 남방한계선(SBL) 사이에서 수색과 매복 작전 등 최전방 지역의 위험성 높은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다. 체력과 정신력 등이 뛰어난 0.1%만 있다는 1사단 수색대대에서도 TOP팀 및 특급전사로 선정되는 등의 사유로 일병에서 상병, 상병에서 병장 진급을 각각 1개월씩 앞당겨 조기진급을 할 정도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사진 = 뉴스1 연예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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