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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용산공원 개방의 조건/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용산공원 개방의 조건/박록삼 논설위원

    용산은 오욕의 역사를 품은 땅이다. 13세기 말에는 원나라 군대가, 15세기에는 왜군이, 1882년에는 청나라 군대가 각각 기지로 삼았다. 한강이 가까워 물자가 들고 나기 좋았고, 멀지 않은 곳에 궁궐이 있으니 위협하기에 딱 좋았을 테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6년 아예 300만평을 강제로 수용해 대규모 병영 기지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 미군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사용했다. 2017년 7월 주한미군은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주둔기지를 옮겼다. 충분히 감격스러울 만한 일이다. 하지만 2004년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 체결 이후 실제 반환 시기는 2008년→2016년→2018년→2019년으로 계속 미뤄졌다. 지난해 7월 50만㎡ 추가 반환 합의에 따라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출퇴근 경로로 사용하는 13번 게이트와 주변 도로 등 5만 1000㎡를 반환받는 등 총 63만 4000㎡를 돌려받았다. 이미 450만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평택 미군기지 건설 및 이주 비용 14조원을 우리 정부가 사실상 전액 부담했음에도 용산기지 반환이 계속 미뤄져 온 이유는 딱 하나다. 기지 오염이다. 그리고 오염 정화비용 부담 책임 문제였다. 미군기지는 환경오염의 철저한 사각지대였다. 특히 용산은 국내 미군기지 중 가장 많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 토양 지하수 복합 오염이 심각하다. 지난해 5월 환경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반환된 용산기지 스포츠필드와 숙소, 학교 등의 부지 토양과 지하수에서 구리ㆍ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다수 검출됐다. 일부 지점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기준치보다 34.8배 초과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오염 정화가 필요한 부지에 대한 정화 공사 진행에 7년 정도 소요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가 10~19일 용산공원을 시범 개방하기로 했다. 하루 5회, 회별로 500명에게 2시간씩 관람을 허용한다. 인조잔디를 깐다고 오염물질 유출이 막아질 수 있는 것인지. 정치적 이벤트를 위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방진복 입고 용산공원 가자’는 조롱도 나온다는데, 무엇보다 가장 책임이 큰 미국이 더욱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 [데스크 시각]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다/김미경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다/김미경 경제부장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 되면 경찰이 검찰만큼 중대범죄 수사를 할 역량이 되는 건가요.” 최근 만난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이 같은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숙고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도 해 왔고, 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한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검찰의 지휘를 받느라 눌려 있다 보니 잘할 수 있는데도 제대로 펼칠 기회가 없었다는 항변이었다. “BTS가 군대 가면 케이팝 한류 확산은 누가 하나요.” 대한민국 최고 보이그룹으로 평가받는 BTS의 병역특례 논란이 일자 BTS 팬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에 신생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지인은 이렇게 반박했다. “BTS 뒤를 이을 보이·걸그룹은 많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이다.” BTS의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연과 같은 기회를 기다리는 뛰어난 보이·걸그룹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받자 영화광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박찬욱·봉준호 감독 뒤를 이을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영화제에서 우리 감독들의 잇단 수상이 반갑지만 일부 언론도 이런 우려를 쏟아냈다. 정말 그런가. 최근 만난 재계 임원은 이런 ‘걱정’을 털어놨다. 60대 초반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을 정도로 재벌 총수들이 많이 젊어졌는데 최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의 뒤를 이을 경영인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 등 고위급 관련 행사에 이들 총수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유망 스타트업의 MZ세대(20~30대) 최고경영자(CEO)들은 초청받지 못해서다.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금 (한국의) 내각에는 여자보다는 남자만 있다”며 “한국 같은 곳에서 여성 대표성 증진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나”라고 돌발 질문을 던졌다. 윤 대통령의 답은 이랬다. “지금 공직사회에서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여성에게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이런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다.” 팩트 체크를 해 보자. 정말 장관이나 차관이 될 만한 여성이 없어서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이상 남성)과 검찰 출신으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채운 것인가. ‘남성만의 정부’라는 지적에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과 29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식품의약품안전처장, 특허청장에 모두 여성 전문가를 지명했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도 여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인가. 장차관이 될 만한 인재풀에 훌륭한 여성들이 적지 않음에도 기회를 주지 않다가 여론의 뭇매에 부랴부랴 끄집어낸 것 아닌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공직사회 등 곳곳에 만연해 있다. 공공기관 10곳 중 8곳에 상임이사 이상 여성 임원이 1명도 없다. 외교부 대사·총영사 등 공관장도 여성은 손에 꼽힌다. 은행·증권 등 금융권에서도 여성 임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능력은 충분히 인정되지만 여성이라서, 나이가 어려서, 서오남보다 경력이 짧아서 등의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깎아먹는 것이다. 대통령선거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끝나고 보니 정치권에도 MZ세대나 여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야 모두 언제까지 홍준표와 이재명, 안철수, 송영길인가. 좌충우돌하더라도 이준석이나 박지현과 같은 신예 미꾸라지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제2의 BTS·봉준호·이재용’이 나오지 않겠는가.
  • 中 남태평양 군사 거점 추진설에… 왕이 “기지 안 만든다”

    中 남태평양 군사 거점 추진설에… 왕이 “기지 안 만든다”

    중국은 남태평양 섬나라들과의 협력 강화가 이 지역에 군사 거점을 확보하려는 시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4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남태평양 8개 섬나라 순방 중 7번째 방문지인 파푸아뉴기니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서방이 중국의 군사 거점 확보 시도로 의심하는 중국·솔로몬제도 안보 협정에 대해 “국제법과 국제교류 관례에 완전히 부합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안보 협정은 쌍방의 요구와 수요에 입각해 평등한 협상을 거쳐 도달한 것”이라며 “중국이 남태평양에 와서 하는 일은 민생 개선을 위해 도로를 보수하고 교량을 만드는 것이지 군대를 주둔시키고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왕 부장은 지난 2일에도 “중국이 태평양 섬나라에서 하려는 것은 도로와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지, 군사적 존재감을 높이려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앞서 중국은 지난 4월 솔로몬제도와 안보협력 협정을 맺었다. 중국 군함이 솔로몬제도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으며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중국이 군과 무장경찰을 파견할 수 있다는 등 내용이 협정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또 지난달 30일 왕 부장의 남태평양 순방 4번째 목적지인 피지에서 열린 제2차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에서 안보와 경제 협력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발 비전’ 합의를 시도했다. 포괄적 개발 비전 초안에는 현지 경찰 훈련을 위한 중국 경찰 파견 등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외신 보도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이 사실상의 ‘지역 안보 협정’을 만들려 한다는 의심이 제기됐고, 미국와 호주 등의 견제로 미크로네시아 등 일부 국가가 이견을 내면서 코괄적 개발 비전은 채택되지 못했다. 한편 왕 부장은 지난달 25일부터 3일까지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등 순으로 순방하면서 각국과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기후변화 대응·방역·방재·녹색발전·의료·보건·농업·무역·관광·지방 등 총 15개 영역에 걸친 52개 항목의 협력 합의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 같은 남태평양 섬나라들과의 관계 강화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창설,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정상회의 등으로 미국이 강화하고 있는 중국 포위망에 돌파구를 만들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 ‘尹대통령 자택 테러’ 글 작성자…잡고 보니 10대 남성

    ‘尹대통령 자택 테러’ 글 작성자…잡고 보니 10대 남성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을 테러하겠단 글을 온라인에 게시한 1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새벽 김건희 여사 팬클럽인 네이버 ‘건사랑’ 카페에 대통령에 대한 테러 글을 작성·게시한 혐의로 10대 남성 A씨(19)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검거했다. A씨는 지난 2일 오후 ‘건사랑’ 카페에 “2022년 6월 3일 오전 6시 정각에 윤석열 자택에 테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자신을 21살 대학생 남성이라 밝힌 A씨는 게시글에서 “군대 200만원 한다(준다) 해서 휴학했는데 시간 낭비하게 됐다”면서 김 여사도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다. 해당 글을 본 시민들은 국정원 콜센터 등에 신고를 했고, 상황을 전달 받은 경찰이 대통령 자택에 경찰 특공대와 강력팀을 배치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A씨는 범행의 전 과정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게시글을 올린 경위 등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다.
  • 尹대통령 자택 경찰특공대 배치…테러글 IP 추적

    尹대통령 자택 경찰특공대 배치…테러글 IP 추적

    윤석열 대통령의 자택에 테러하겠다는 온라인 게시물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3일 새벽 1시20분쯤 국정원으로부터 상황을 통보받고 대통령 자택 인근에 경찰특공대와 강력팀을 배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40분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3일 오전 6시 정각 윤 대통령 자택에 테러합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전 21살 대학생 남자고 군대 200만원 한다 해서 휴학했는데 시간 낭비하게 됐다”고 적었다. 이 게시물을 본 네티즌은 2일 밤늦게 국정원에 해당 내용을 신고했다. 대통령 경호처와 총리실 대테러센터 등도 상황을 보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게시물을 올린 IP를 추적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테러 관련 글이 올라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대통령 취임식 전날에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일 취임식에 수류탄 테러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친일파 후손들이 취임식을 하는 암울한 시대에 희망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서초경찰서는 당시 작성자를 하루 만에 검거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경찰 조사에서 ‘재미로 장난삼아 글을 올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첫 감염’ 3주 만에 “통제하고 있다” 북한을 BBC가 믿지 못하는 이유

    ‘첫 감염’ 3주 만에 “통제하고 있다” 북한을 BBC가 믿지 못하는 이유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포스터다. “동무는 비상방역규정을 지키고 있는가?” 북한이 첫 코로나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고 밝힌 지 3주가 됐다. 벌써 감염병을 통제했다고 주장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영국 BBC가 2일 리얼리티 체크 기사를 내보냈다. 방송은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모으고 북한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과 연락이 되는 이들과 대화하거나 공적으로 접근 가능한 취재원들을 접촉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북한 내부의 목소리들 김황선(가명)은 서울 집 부엌에 홀로 앉아 중국인 브로커 전화를 받고 있었다. 10년 전 그는 혼자 북한을 탈출했다. 북한에는 두 자녀, 손주, 85세 노모가 살고 있다. 그는 이제 가족들을 서울로 데려올 수 있다는 꿈은 접었다. 이런 비밀스러운 통화는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는 도청 우려 때문에 많은 질문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화는 짧게, 통화 시간은 5분을 넘기면 안된다. 그가 통화한 시점은 북한 당국이 처음 코로나 감염 사례를 발표한 지 이틀 뒤였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전례가 없는 일로 그만큼 전국 모든 지방에 빨리 감염병이 번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씨는 “가족들은 내게 아주 많은 사람들이 열 나고 아파한다고 말했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란 것을 직감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한 약을 구하려고 돌아다닌다고 했다. 모두가 열을 떨어뜨리는 뭔가를 찾았다. 하지만 누구도 어느 것 하나 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차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느냐 묻지도 못했다. 그는 가족이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엿들으면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지금까지 공식 집계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15%정도가 열이 나 아픈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단장비 부족으로 이런 집계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품 부족을 인정하면서 군대에게 비축분을 풀어놓으라고 명령했다. 김씨는 의사들이 처방전을 써줘도 환자 스스로 사든지, 누군가 다른 이의 것을 사든지, 시장에 나가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솔잎을 끓여 마시라고 한다고 가족들이 그에게 전했다. 관영매체들은 증상을 완화하려면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라고 버젓이 말한다. 국영 텔레비전은 비축된 약품들을 보여주곤 하는데 인민들은 약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2001년 이후 북한 마을들에서 유니세프 일을 했던 나기 샤픽 박사는 “약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이다. 전통 약품에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북한을 떠난 2019년에도 벌써 약이 모자랐다. “약간만, 아주아주 조금만 있었다.” 거의 모든 약품은 중국에서 수입됐는데 지난 2년 동안 국경 폐쇄로 그마저 끊겼다.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는 링크(Liberty in North Korea)의 박석길 대표는 고향의 가족과 얘기를 해본 이들은 한결같이 약품이 바닥났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얼마 안 남은 것들도 모두 팔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국 봉쇄 정부는 첫 감염자를 발표한 날 전국적인 봉쇄 조치를 명령했다. 이 조치는 인민들이 음식을 구하지 못하게 만들어 굶어죽게 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적어도 몇몇은 집을 떠나 출근하거나 농장을 다니는 일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감염 확산이 많았던 평양 시민들은 집에만 있으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데일리 NK의 이상용 대표는 북한 내 소식통들을 두루 갖고 있는데 중국과의 국경 지대인 혜산 시민들은 지난달 열흘 동안 집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봉쇄가 해제됐을 때 10여명이 집에 실신한 채로 발견됐는데 식량 부족 때문에 쇠약해진 탓이었다. 지금까지 공식 사망자는 70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치명률은 0.002%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38 노스에서 북한 데이터를 추적하는 마틴 윌리엄스는 “건강돌봄 체계가 빈약하고 한 사람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감염 사례가 늘어나는데도 사망자 숫자가 정점을 찍은 것도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코로나19를 보며 2~3주 정도는 감염 사례가 늘면 사망자 수도 따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서 이 숫자들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그는 나아가 전국적 집계 과정에 잘못 보고됐거나 각 지방의 보건 책임자들이 처벌받을까 두려워 사망자 숫자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국제사회의 도움 지난 몇주 신규 감염자 숫자는 떨어졌다. 노동신문 사설은 당국이 “바이러스 확산을 억누르고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현지 직원들이 봉쇄에서 풀려나 지금은 평양 사무실에 돌아왔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비상방역 국장인 마이크 라이언은 1일 브리핑을 통해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나빠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데이터 접근권을 주지 않아 “세계에 적절한 분석을 제공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백신이나 다른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여러 차례 제안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신 북한은 중국이 이 난관을 돌파하는 데 도와주길 바라며 조용히 중국에만 의지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관세당국의 집계를 보면 지난 3월 중국으로부터 북한의 수입 물량은 4월에 곱절이 됐다. 2년의 국경 봉쇄 후 올해 들어 북한의 수입 물량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의약품 수입이 급증했다. 지난 4월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산소호흡기 1000개를 수입했다.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북한은 900만개의 마스크를 사들였다. 백신 수입도 꾸준히 했다. 남한 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17일 원조 물품을 실어 오기 위해 세 대의화물기를 중국에 보냈다. 같은 달 24일 위성촬영 사진을 보면 평양 순안공항에 고려항공 화물기들이 포착됐다. 며칠 전 중국 셴양 공항에서 목격된 석 대의 화물기와 같은 기체들인 것으로 여겨졌다.이와 별개로 한 소식통은 지난달 13일 평양 남쪽 남포 항에 많은 양의 의약품을 실은 배가 입항했다고 우리에게 전했다. 이틀 뒤에 촬영된 위성 사진을 입수했는데 정말로 항구 일대에 많은 숫자의 배들이 포착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 배가 내비게이션 추적 장치를 꺼놓아 어디에서 무엇을 싣고 왔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김황선씨는 첫 통화 이후 가족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감염자 확인 이후 가족과 접촉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화 신호는 빈번하게 지직거렸고, 겨우 통화할라치면 곧바로 끊겼다.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첫 통화를 한 뒤 노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전날(1일?) 밤 근처 야산에 올라가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그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세상의 나머지(가난한 나라들?)처럼 그는 캄캄한 심연에 있어 도울 수도 없다고 방송은 끝맺었다.
  • 中 싫어서 대만간 홍콩 청년들, “ 1년 만에 강제 군입대” 불만

    中 싫어서 대만간 홍콩 청년들, “ 1년 만에 강제 군입대” 불만

    중국의 억압을 피해 대만 이민을 택한 홍콩 출신 젊은이들 사이에 대만 군복무 의무제를 두고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이 2020년 7월 발효된 직후 홍콩의 대체지로 가장 뜨는 곳은 단연 대만이었다. 홍콩과 언어와 역사, 문화가 유사하다는 점은 물론이고 대만이 홍콩보다 상대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이 적다는 이점 덕분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홍콩을 떠나 대만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수는 1만 1173명으로, 전년 대비 3.3% 이상 급증했다. 이는 대만 이민국이 1991년부터 공식 데이터를 발표해왔던 이후 가장 이민자 수다.  하지만 이 같은 대만에 정착하는 홍콩 출신자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각종 문제도 불거지는 상황이다.  특히 대만에 정착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홍콩 출신 청년들 사이에서는 대만 군대에 입대해 4개월의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는 징집 제도에 강한 반발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홍콩 중앙통신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만에 정착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은 대만으로 이주 후 불과 1년 만에 군입대 요구를 받은 것이 부당하다는 불만을 쏟아내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 32세의 홍콩 출신 청년 아캉 씨는 지난 2020년 대만에 이주한 뒤, 군입대 통지서를 받고 총 80명의 군인이 함께 생활하는 부대에 배치됐다.  대만 병역법 제39조 규정에 따라 군복무 연령의 성인 남성은 누구나 대만에서 호적 등기를 완료한 날을 기점으로 1년 내에 군입대를 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아캉 씨는 “대만 군인의 월급이 425위안(약 7만 9천 원)에 불과한데 이 돈을 받고 하루 종일 훈련에 참여해야 하며, 훈련 중에도 1명의 병사가 실수를 하면 부대 전원이 벌을 받는다”면서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매일 아침 4시에 기상해 침대를 정리하고 6시부터 군사 훈련이 시작된다”면서 “부대원 한 명이 실수를 하면 부대 전체가 징계르 받는데, 이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며 받는 월급은 단 425위안에 불과하다”면서 “군사 훈련이 종료돼 자유의 몸이 되면 당장 대만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한편, 대만은 과거 한국과 비슷하게 2년 병역 제도를 운영했지만, 지난 2008년에는 복무 기간을 1년으로 단축했고, 2017년에 들어와서는 그 기간을 4개월로 크게 줄여 운영 중이다. 더욱이 지난 2018년에는 68년간 유지됐던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전면 도입해 현재 대만은 의무복무제도와 모병제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총 15만 명의 정규 병력과 250만 명의 예비군을 유지 중인 것. 특히 대만에서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마친 뒤 군복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막걸리 한 잔 앞에 두고 그리워한다오, 떠나간 당신을[연극리뷰]

    막걸리 한 잔 앞에 두고 그리워한다오, 떠나간 당신을[연극리뷰]

    ‘당신은 누굴 기다리나요.’ 연극 ‘돌아온다’는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막이 없다. 관객석에 앉는 순간 경기도 외곽의 허름하지만 특별한 식당으로 초대된다. 소환 방식은 막걸리처럼 투박하지만 정겹다. 식당의 이름은 ‘돌아온다’. 식당을 알고 찾아온 사람이든 모르고 찾아온 사람이든 모두 벽에 걸려 있는 손글씨 액자에 시선이 멈춘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글귀는 일종의 주문이자 부적이다. “마음이 있겠지요. 풀지 못한 마음, 곪고 곪아서 맺힌 마음, 그 마음이 오래 여기 남아 있는 거겠지요”라는 극중 스님의 말처럼 글귀에는 그리운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식당을 찾은 이들은 기꺼이 양은그릇에 막걸리를 채운다. 군대 간 아들을 기다리는 교사, 집 나간 필리핀 아내가 돌아오길 바라는 남자, 출가 이후 연락이 끊긴 어머니를 찾는 스님, 기다리는 대상을 숨긴 채 매일 막걸리를 마시는 욕쟁이 할머니, 이미 생을 다하고 구천을 떠돌며 서로의 존재를 찾는 귀신 부부까지. 식당을 찾는 사람은 제각각이지만 그리움에 묶인 존재라는 점에서 모두 같다. 엇갈린 시간은 그리움을 낳는다. 서로가 원했던 시간이 조금 달랐을 뿐인데 운명은 얄궂게도 서로를 갈라놓는다. 그사이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가슴 한구석에 콕 박혀 버리기도 한다. 식당 한편에 그리운 이를 생각하며 남긴 사진들, 10월에 내리는 때 이른 눈발,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막걸리, 청각을 자극하는 풍경 소리, 바람 소리까지 모두 그리움을 배가하는 소재들이다. 작품은 돌아옴으로 끝을 봉합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인생,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어떤 근원적 그리움을 담으려 했다”는 선욱현 작가의 말처럼 그리운 대상을 목놓아 불러도 닿을 듯 말 듯 엇갈리고, 얼싸안고 살로 마주해야 할 존재가 뼛가루가 돼 돌아오기도 한다. 심지어 평생을 기다린 존재를 만났지만 곧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든다. 다만 작품은 보여 줄 뿐이다. 식당에 앉아 막걸리를 앞에 두고 그리움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2015년 초연 당시 제36회 서울연극제 우수상, 연출상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작품은 서울 예술의전당 연극 육성 프로그램 ‘창작키움프로젝트’를 만나 업그레이드됐다. 김수로, 박정철, 홍은희, 이아현, 최영준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자주 접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반갑다.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오는 5일까지.
  • 집요한 ‘초토화 전술’ 후엔… 러, 우크라 장악지역 편입 전망

    집요한 ‘초토화 전술’ 후엔… 러, 우크라 장악지역 편입 전망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시크) 지역과 동남부 헤르손주, 자포리자주 등 러시아군이 장악한 지역이 러시아에 편입될 것이라고 러시아 여당 고위인사가 1일(현지시간) 자국 언론에 밝혔다. 러시아군의 집요한 초토화 방식 공격이 앞으로도 이어지며 전쟁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 집권당 ‘통합러시아당’ 총회 서기(사무총장 격)이자 상원 부의장인 아드레이 투르착은 이날 리아노보스티통신과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군이 완전히 장악한 헤르손주의 러시아 편입 가능성에 대해 “결정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 내려야 한다”면서도 “이 지역이 러시아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돈바스 지역에 대해서도 “러시아에 합류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고, 자포리자주에 대해서도 “교전이 멈추고 안전지대가 형성되는 대로 주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 주민들도 그런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투르착 서기의 발언은 러시아가 이들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모두 얻으면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편입을 결정할 것이란 여러 전문가들의 관측과도 궤를 같이한다. 헤르손주 전역과 자포리자주 일부 지역에서는 러시아 통화 루블화가 이미 법정 화폐로 통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용문서와 학교 교육, 교통·통신 분야 등에서도 러시아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오는 3일 전쟁 발발 100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전선은 고착된 가운데 러시아는 느리지만 집요한 초토화 공격을 이어갈 것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망했다.가디언의 전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482㎞에 이르는 긴 전선을 유지한 채 세베로도네츠크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세베로도네츠크는 루한시크주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마지막 남은 요충지다.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펼쳐지던 속도전 대신 소규모 지역에 병력을 집중하며 물량 공세를 펼치는 장기전 체제에 들어선 상태다. 러시아 국경도시 쿠르스크에 집결한 러시아군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수미로 몰려들고 있고,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쿠퍈스크에서는 군대 이동을 용이하게 할 철도와 교량을 재건하고 있다. 남부 헤르손에서는 방어를 위한 요새화가 진행 중이다. 마이클 클라크 전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장은 최근 더타임스 기고에서 “러시아의 공격은 전략적으로 현명하거나 지속 가능하다고 말하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일관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맹공에도 세베로도네츠크 함락을 저지하고 있으며, 헤르손에서도 제한적이지만 반격을 가하고 있다. 호주의 퇴역 장성 출신 현대전 연구자인 믹 라이언은 트위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수백 어쩌면 수천명의 군사와 장비를 잃었음에도 모두 지치지 않았다”면서도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은 다른 전선을 희생하면서도 계속해서 세베로도네츠크에 집중하고 있어 이른 시일 내 진격 속도를 올리지는 못할 것 같다”고 관측했다.
  • 친러 도네츠크공화국 “젤렌스키 전범재판 세울 것”

    친러 도네츠크공화국 “젤렌스키 전범재판 세울 것”

    러시아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조만간 열릴 전범재판에 우크라이나 군인들뿐 아니라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역대 우크라이나 대통령들도 회부될 것이라고 친러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측이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독립을 선포한 DPR 인민위원회(의회 격) 형사·행정법제 위원회 위원장 옐레나 시시키나는 1일(현지시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DPR 정부가 현재 준비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에 대한 전범 재판의 일환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친서방 성향 우크라이나 지도부 인사들을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범엔 손에 총을 들거나 방아쇠를 당긴 사람뿐만 아니라 명령을 내린 장군과 대통령들도 포함된다”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페트로 포로셴코와 젤렌스키 대통령 등이 그들”이라고 주장했다. 투르치노프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 정권 교체 혁명기인 2014년 초부터 2019년까지 상원 의장과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포로셴코는 같은 시기(2014~2019년) 대통령을 지냈다.시시키나 위원장은 이들 전·현직 우크라이나 대통령들이 민간인 학살을 위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민족주의자들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DPR 형법에는 군사 범죄나 테러리즘 지원에 대한 형사적 책임이 규정돼 있다면서 “군사 범죄에 대한 법적 검토가 이루어질 것이고 책임자는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니스 푸실린 DPR 정부 수장은 전날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러시아군에 포로가 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 대한 전범 재판이 조만간 마리우폴이 속한 도네츠크주(州) 관내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범죄는 민간인 강간, 고문, 조롱, 살해 등이며 이 범죄 행위들에 대해 최고 수준의 형벌이 가능하다”면서 “재판이 최대한 공개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국제기구와 서방국가들을 포함한 외국 대표들도 초청할 것이다. 범죄 사실은 아주 명확하며 그것이 전 세계에 보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돈바스 지역 DPR 군대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아 마리우폴을 포함한 도네츠크주 상당수 지역을 장악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개전 초기부터 ‘돈바스 해방’을 전쟁의 주목표로 천명한 바 있다.
  •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러시아, 영국도 침공?… “러軍이 스톤헨지 도착하면 전쟁 끝” 발언 논란

    러시아, 영국도 침공?… “러軍이 스톤헨지 도착하면 전쟁 끝” 발언 논란

    러시아의 친(親) 푸틴 선전가로 유명한 국영TV 진행자가 영국 침공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뉴스위크, 영국 인디펜던트 등 해외 언론의 30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국영 TV ‘로시야-1’의 진행자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는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우크라이나 정치 분석가와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현재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 군대가 얼마나 더 멀리 진격할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이와 관련해 솔로비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계속해서 키이우와 리비우 등지를 공격해야 한다”고 강경한 발언을 했다. 이어 “우리(러시아)가 멈춰야 할 때 멈출 것”이라면서 “(멈추는 지점은) 아마 (영국) 스톤헨지일 것이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도 이미 (러시아와의) 전쟁에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트러스 장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타협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연일 강하게 러시아를 비난해왔다.앞서 솔로비요프는 러시아를 비난하는 영국과 관련해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솔로비요프는 “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전술핵무기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군이 크라이나에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며 “러시아가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를 지구 표면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이 러시아를 향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려 하고 있고, 이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거짓 선동’을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솔로비요프의 발언 전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솔로비요프가 속한 로시야-1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국영 TV 프로그램이 공개적으로 영국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 1일에는 ‘푸틴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친정부 성향의 언론인 드미트리 키셀료프가 국영TV에 출연해 “영국은 너무 작아서 사르마트 미사일(극초음속 핵미사일) 한 발이면 바닷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을 것“이라며 ”포세이돈(수중 로봇 드론) 한 방이면 영국은 방사능으로 뒤덮인 쓰나미에 휩쓸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군은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점령한 뒤 동부 돈바스 지역을 추가로 차지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포격에 대응하기 위해 장거리 무기 지원을 거듭 호소했고, 미국은 장거리 다연포 로켓포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만년 후보 정승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간절하게”

    만년 후보 정승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간절하게”

    프로축구 K리그1 김천 상무의 주장 정승현(28)은 지난 2018년 8월 파울루 벤투 감독이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 거의 대부분 차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3세 이하(U-23) 대표팀부터 울산 현대와 일본의 사간 도스, 가시마 앤틀러스 등을 거치면서 중앙수비수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 지역예선과 같은 비중있는 경기에선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벤투 감독 부임 전 2018 러시아 월드컵에도 대표팀에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에는 김영권, 김민재, 박지수 등 정승현과 포지션이 겹치는 뛰어난 선수들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김민재와 박지수가 부상으로 6월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이집트로 이어지는 4차례의 평가전에 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정승현은 30일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소집 대상 29명의 대표팀 선수 가운데 전투복 차림으로 가장 먼저 등장했다. 정승현은 “국군대표선수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세계 정상급인 브라질 선수들과의 경기가 가장 기대된다”면서 “네이마르를 실제로 보는 것이 설레기도 한다. 매 순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간절하게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어느 때보다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높은 정승현은 이틀 전 소속팀에서 기분좋은 활약을 펼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2022 15라운드 FC서울 원정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팀의 패배를 막는 극적 동점골을 넣었다. 코너킥 상황에서 머리를 갖다대기 위해 높이 뛰어올랐는데, 공이 왼쪽 어깨를 맞고 FC서울의 골문으로 빨려들어간 것. 정승현의 올 시즌 첫 골로 2-2 무승부를 기록한 김천은 승점 1점을 챙겨 2연패로 침체된 팀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특히 이날 경기는 정승현의 주장으로서 마지막 경기였다. 그는 “주장으로서 많이 부족했는데 잘 따라준 팀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승현이 주전 중앙수비수들의 부상 공백으로 위기를 맞은 대표팀의 최후 방어선을 지켜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 최시원 “성룡 생일 파티 참석…전세기 직접 보내주더라”

    최시원 “성룡 생일 파티 참석…전세기 직접 보내주더라”

    그룹 슈퍼주니어 출신 배우 최시원이 ‘월드스타’ 성룡이 자신의 생일에 전세기를 띄워 줘 바쁜 스케줄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며 남다른 친분을 자랑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멤버들 중 ‘부자 막내’로 불리는 최시원이 고급 레스토랑에 탁재훈, 이상민, 임원희를 초대한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식사를 하던 탁재훈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최시원에게 “굳이 국내에서 활동을 안 해도 되지 않나. 외국 인맥도 많으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최시원은 “그래도 국내 활동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상민은 “너도 재키 찬(성룡)이랑 친하더라”라고 물었고, 최시원은 “같이 영화를 찍긴 했었다.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 애드리안 브로디와 함께 했다”라고 떠올렸다. 또 최시원은 성룡의 생일과 관련된 특별한 일화를 밝히며 “저랑 미스터 찬(성룡)이 생일이 같은 날이다. 그리고 성향 자체가 너무 비슷하다. 제 생일날 그분 생일을 축하하러 갔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생일 파티에 참석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계속해서 관심을 보이던 이상민은 “나 역시 성룡의 생일 파티에 갔었다”며 “2000년도였다. 공항에 가면 성룡 차가 온다. JC라고 적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민의 계속된 과거 추억팔이(?)에 멤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최시원에게 물어본 거다”, “대체 이런 이야기들은 어디서 주워듣고 오는 거냐”라며 듣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 폭소를 안겼다. 그러자 최시원은 “저 때는 정말 너무 감사한 게, 전세기를 직접 보내주셨다. 지방에 있을 때 였다”라고 밝혔고, 격이 다른 대우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시원의 일화를 듣던 탁재훈은 “우리는 콜택시 정도는 불러줄 수 있지만, 비행기는 힘들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다시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 10초만에 은퇴 결정한 양준혁 “구단에서 저를 부르더니…”

    10초만에 은퇴 결정한 양준혁 “구단에서 저를 부르더니…”

    ‘양신’ 양준혁이 은퇴를 결정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지난 29일 방송된 KBS 2TV ‘우리끼리 작전타임’에서는 다이빙 삼 형제 영남, 영택, 영호의 하루가 그려졌다. 이날 첫째 영남은 2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내년에는 은퇴를 생각 중”이라고 계획을 밝혀 모두를 놀라게 했다. MC들은 “영남 선수가 군대 때문에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다이빙은 국군체육부대 내에 종목이 없다 보니 2년 동안 쉬다가 다이빙 하면 정말 어려워서 이 부분을 생각하고 막내 영호를 잘 끌어올려서 국가대표를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성주는 “은퇴를 고려할 때 어떻게 결정하는 거냐”고 물었고 박세리는 “보통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건 최고 자리일 때가 아니라 자리를 내려놓은 나에게 쳐주는 박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양준혁은 “저는 구단에서 저를 부르더라. 구단에 부르는 건 그레이드 아니면 은퇴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길래 10초 만에 결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은퇴식을 하려고 하니 비가 쏟아지더라”면서 “보통 그런 경우는 나라의 지도자가 돌아가실 때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선사했다.
  • 육지로 도망치려는 원균에 항거하고 이순신 출전·해상 장악 뒷받침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육지로 도망치려는 원균에 항거하고 이순신 출전·해상 장악 뒷받침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국체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인물의 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순신이 이끈 수군(水軍)의 역할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결정적이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불과 4척의 판옥선과 그 부속선인 2척의 협선만 남은 경상우수군과 함께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에서 거둔 승리는 꺼져 가던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전라도수군이 엄격했던 관할 경계를 넘어 경상도수군 해역에서 왜군에 잇따라 궤멸적 패배를 안길 수 있었던 배경에 옥포만호 이운룡의 역할이 있었다.●여진족 전투 땐 이순신의 휘하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1585년 무과에 급제하고 1589년 옥포 만호에 임명됐다. 수군만호는 변경의 해안 군진을 지휘하는 종4품의 수군 장수다. 무과에 급제해 연차가 차면 만호 자리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상례였다지만, 이운룡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최전선인 옥포의 만호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그는 1587년 8월 함경도 녹둔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산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이던 이순신 휘하에서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이때 쌓은 이순신과의 친분이 왜란 과정에서 연합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 수군의 첫 번째 승전지인 옥포라는 땅이름에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거제도 옥포에는 잘 알려진 대로 대우조선해양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과 함께 우리나라를 조선 강국으로 만든 2대 성지(聖地)의 하나다. 지금 옥포진성의 흔적은 석축 일부로만 남아 있다. 진성이 있던 자리는 상업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수군의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옥포항은 여전히 고기잡이 포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왜란 당시 수군은 ‘진을 설치하고 군사를 배치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해당 지역을 지키고 적과 싸우도록 하는 것으로 다른 진의 도움을 의뢰해서는 안 된다’는 작전 원칙을 적용받았다. 각각의 수영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독립적 군사단위를 이루고 있었다. 왜적이 침범한 상황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전투태세를 갖추고도 당장 달려갈 수 없었던 것도 전쟁 수역이 경상좌·우수영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옥포는 경상우수영 진관 가운데 하나다. 이운룡의 옥포진 전선들도 당연히 원균의 소집 명령에 따라 경상우수영 함대에 합류했다. ‘난중잡록’은 개전 초기 경상우수군의 행적을 두고 ‘원균은 왜적들이 여러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수군 함대를 이끌고 가덕도로 향했는데, 왜적의 배가 부산 앞바다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보자 마침내 퇴각하여 돌아왔고, 여러 장수들도 점점이 흩어져 가버렸다’고 했다.이운룡의 이야기는 그다음에 나온다. ‘원균은 아군의 전함을 다 침몰시키고는 육지에 올라가서 왜적을 피하려 했으나, 옥포 만호 이운룡이 안 된다고 하여 마침내 중지했다. 원균이 이운룡 등의 몇 척의 배와 함께 노량에 퇴각해 있는데 적병이 뒤따라 쫓아오자, 이운룡이 전라도의 해군에 구원을 청하고자 곧 작은 배 하나를 타고 달려갔다.’ 여기서는 원균이 이운룡을 이순신에게 보낸 것으로 썼지만,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록은 전라좌수영에 구원을 청하러 보낸 인물을 소비포권관 이영남으로 적고 있다. 이운룡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치려는 원균에게 항거하면서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을 설득하는 장면은 택당 이식(1584~1647)이 ‘식성군이공묘비명’(息城君李公墓碑銘)에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운룡은 원균에게 ‘우수사는 국가로부터 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의리로 볼 때 관할 지역을 사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지역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요충이니, 무너지면 호남과 호서가 절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비록 피폐해졌다고는 하나 병력을 끌어모을 수 있고, 또 호남의 수군은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군대를 정돈한 다음 견내량을 차단하여 적이 거제를 지나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면, 사태를 안정시킬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은 지금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라고 했다. 식성은 이운룡의 관향으로 황해도 재령의 옛이름이다. 이운룡은 왜란이 끝난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오르고, 식성군에 봉해졌다. 경상우수사에 부임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원균은 휘하를 장악하지 못했던 듯싶다. 떠나지 않은 장수는 옥포만호 이운룡과 영등포만호 우치적뿐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은 원균의 구원 요청을 받았음에도 처음에는 요지부동이었던 것 같다. ‘징비록’은 ‘원균이 처음 이영남을 이순신에게 보낸 이후 대여섯 차례 더 원군을 청했다’고 적었다. 경상우수군의 요청이 이어지고 녹도만호 정운 등 전라좌수영 내부에서도 강청의 목소리가 나오자 이순신도 출전을 결심한 듯하다. 조정에서도 원균과 합세해 적을 치라는 유서를 내렸다. 전라좌수군이 판옥선 24척과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으로 출진한 것이 5월 4일 새벽이다. 선조수정실록은 ‘이순신이 마침내 거제 앞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이운룡과 우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쳤다.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다시 노량진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선봉은 물길을 잘 아는 경상우수군 장수들이었다. 특히 옥포의 왜적을 공격하는 데 누구보다 현지를 잘 아는 이운룡을 앞세운 것은 이순신 특유의 합리적 결정이다. 이후 경상도 해역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투에서도 이운룡과 우치적은 선봉장이었다.●‘충무, 3군에 으뜸가는 대우’ 이운룡은 1596년 경상좌수사, 160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1595년 4도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은 이순신에게 “공이 후임을 천거한다면 누구를 추천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이순신의 대답은 “이억기와 이순신(李純信) 그리고 이운룡”이었다고 한다. 이억기는 왕실 종친이고, 이순신(李純信)은 개전 초기 전라좌수영 방답진첨사로 훗날 경상우수사에 오른 인물이다. 이운룡이 경상좌수사에 임명될 당시 남해 수군 진용은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이었다. 34세의 이운룡이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택당은 이운룡의 공로를 두 가지로 들었다. 첫 번째는 이운룡만이 원균과 이순신 사이에서 공정한 마음가짐으로 처신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두 사람도 그를 중히 여겼고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원균이 참모로 곁을 지키던 이운룡의 계책을 귀담아 들었을 때는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는데, 이운룡이 좌수사로 옮기고 나자 마침내 패몰(敗沒)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운룡이 경상좌수사로 승진해 원균 휘하를 떠난 것이 개인에게는 광영이지만 조선수군이 무너진 칠천량 패전의 원인(遠因)이 됐다는 뜻이다. 택당은 그런 만큼 ‘이운룡의 공로는 양수(兩帥) 아래 있지 않다’고 했다. 곧 이순신과 원균 못지않다는 뜻이다. 이운룡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뒤 조정의 명을 받아 통영에 이순신의 사당인 충렬사를 지었다. 위당 정인보는 충렬사 마당에 세워진 이운룡 기적비(紀蹟碑)에 ‘당신은 충무에게 바다를 제압하는 위업을 마련해 드렸고, 충무는 당신에게 3군에 으뜸가는 대우를 하였더라’고 적었다. ‘충무’는 말할 것도 없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이운룡은 옥포전투 현장에도 이순신을 기리는 또 하나의 사당을 지었다. 정조실록은 ‘거제 유묘’(巨濟 遺廟)라고 적었다. 이운룡과 이순신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한다. 유묘는 이제 그 자취를 알 수 없다.
  • 힙한 전통 패션·음악·음식… 재미와 친근함으로 통하다 [청춘기록]

    힙한 전통 패션·음악·음식… 재미와 친근함으로 통하다 [청춘기록]

    요즘 청년에게 전통은 그저 ‘옛것’으로 취급될 것만 같은데 전통의 매력에 푹 빠져 전통에서 기회를 찾는 이들이 있다. 패션, 음악, 음식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청년들은 기존 전통을 그저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어 전통을 ‘요즘 것’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전통을 재밌고 친근하게 만드는 세 명의 청년을 만나 봤다. ●전통 고유의 멋에 현대적 기법 보완 패턴 디자이너 장하은(26)씨는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의상과 생활 소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 장씨가 운영하는 ‘오우르’를 가 보면 그가 디자인한 제품을 비롯해 이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쇼룸 곳곳에서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갖추려는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일례로 현대식 건물에 쇼룸을 꾸미면서도 서까래 형식의 천장을 통해 한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장씨는 지난 24일 “전통과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고 싶었다”며 오우르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의상을 만들 때 한복과 전통 문양이 가진 고유의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기법적 부분을 보완시켜 현대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복 디자이너인 모친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한복을 가까이 한 장씨는 대학 시절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텍스타일’(직물·옷감 등)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서도 패턴과 관련된 일을 하며 꿈을 키웠다. 장씨는 “전통이 현대적으로 잘 해석되면 우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장씨는 ‘계승’과 ‘창조’를 키워드 삼아 작업을 한다고 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일궈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주변의 긍정적 피드백이 힘이 됐다고 한다. 장씨는 “친구들이 한복 클래스를 열면 꼭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내가 하는 일이 ‘또래에게도 통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전통을 보여 주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전통과 대중 모두 잡은 소리꾼 전통 창작 음악그룹 ‘거꾸로프로젝트’의 소리꾼이자 ‘서의철 가단’의 국악인 서의철(27)씨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통해 경기민요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악의 길을 걷게 됐다. 지난 23일 만난 서씨는 “휴지를 뜯어 살풀이를 추거나 우산 비닐로 탈춤 흉내를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씨는 고교 시절 실기와 이론을 겸한 소리꾼이 되고자 했는데 한 차례 입시에 실패하면서 1~2년 방황도 하고 마음고생도 했다. 서씨는 “공연할 때 소리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힘들었던 시절”이라면서 이후 군대를 갔다고 했다. 다행히 군 복무를 하면서 건강을 회복했고 채지혜 작곡가의 연락을 받아 곡을 녹음한 걸 계기로 거꾸로프로젝트에도 합류했다. 서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충남의노래 전국 공모전에서 자신이 작사한 ‘충남의 노래’로 대상을 받은 걸 꼽았다. 서씨는 “작사가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충남만의 고유한 것을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서씨에게 전통은 ‘깊고 맑은 샘’과 같다. 대중과 가까이하고자 거꾸로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도 전통에 방점을 둔 ‘서의철 가단’을 새로 만든 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만 전통 자체는 유지돼야 한다”는 서씨만의 철학 때문이다. 서씨는 “전통이라는 담장 속의 작은 돌이 돼서 담벼락이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색다른 디저트 ‘전통 다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카페 ‘연경당’을 운영하는 20대 사장 정연경(24)씨는 제과·제빵을 전공하다 전통 다과에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지난 25일 만난 정씨는 “좀더 건강하고 색다른 디저트를 찾아보다가 전통 다과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해외 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하려다 코로나19로 취소되면서 계획보다 이른 시기에 창업을 했다는 정씨는 “전통 다과는 모두 전통 조리법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따라 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면서 “조리 방법을 바꿨을 때 전통 다과를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금귤진정과, 꽃 매작과, 호두강정 등으로 구성된 다과상은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정씨의 노력이 깃든 산물이다. 전통 다과를 만드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클래스를 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보람을 느낀다. 정씨는 “인삼이나 도라지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원래 잘 안 먹는 식재료인데 다과상으로 내놓으니 맛있다고 말씀해 주실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전통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밝혔다. 그는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는 지금 세대에 맞게 해석해야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끼고 전통을 더 잘 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통 다과를 이어 나가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이 이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김가현(경제학과 3학년)정은서(경영학과 2학년) 성대신문 기자
  • 원균의 장수, 이순신 출전 이끌어 내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원균의 장수, 이순신 출전 이끌어 내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임진왜란 당시 조선이 국체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인물의 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순신이 이끈 수군(水軍)의 역할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결정적이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불과 4척의 판옥선과 그 부속선인 2척의 협선만 남은 경상우수군과 함께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에서 거둔 승리는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전라도수군이 엄격했던 관할 경계를 넘어 경상도수군 해역에서 왜군에 잇따라 궤멸적 패배를 안길 수 있었던 배경에 옥포만호 이운룡의 역할이 있었다.   이운룡(李雲龍·1562-1610)은 1585년 무과에 급제하고 1589년 옥포 만호에 임명됐다. 수군만호는 변경의 해안 군진을 지휘하는 종4품의 수군 장수다. 무과에 급제해 연차가 차면 만호 자리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 상례였다지만, 이운룡이 27세의 젊은 나이에 최전선인 옥포의 만호에 오른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그는 1587년 8월 함경도 녹둔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산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이던 이순신 휘하에서 전투를 치르기도 했다. 이 때 쌓은 이순신과의 친분이 왜란 과정에서 연합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조선 수군의 첫번째 승전지인 옥포라는 땅이름은 익숙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거제도 옥포에는 잘 알려진대로 대우조선해양이 자리잡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과 함께 우리나라를 조선강국으로 만든 2대 성지(聖地)의 하나다. 지금 옥포진성의 흔적은 석축 일부로만 남아있다. 진성이 있던 자리는 상업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수군의 전선(戰船) 정박지였을 옥포항은 여전히 고기잡이 포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왜란 당시 수군은 ‘진을 설치하고 군사를 배치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해당 지역을 지키고 적과 싸우도록 하는 것으로 다른 진의 도움을 의뢰해서는 안된다’는 작전 원칙을 적용받았다. 각각의 수영은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독립적 군사단위를 이루고 있었다. 왜적이 침범한 상황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전투태세를 갖추고도 당장 달려갈 수 없었던 것도 전쟁 수역이 경상좌·우수영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옥포는 경상우수영 진관 가운데 하나다. 이운룡의 옥포진 전선들도 당연히 원균의 소집 명령에 따라 경상우수영 함대에 합류했다. ‘난중잡록’은 개전 초기 경상우수군의 행적을 두고 ‘원균은 왜적들이 여러 성을 연달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수군 함대를 이끌고 가덕도로 향했는데, 왜적의 배가 부산 앞바다를 뒤덮고 있는 것을 보자 마침내 퇴각하여 돌아왔고, 여러 장수들도 점점이 흩어져 가버렸다’고 했다.  이운룡의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온다. ‘원균은 아군의 전함을 다 침몰시키고는 육지에 올라가서 왜적을 피하려 했으나, 옥포 만호 이운룡이 안 된다고 하여 마침내 중지했다. 원균이 이운룡 등의 몇 척의 배와 함께 노량에 퇴각해 있는데 적병이 뒤따라 쫒아오자, 이운룡이 전라도의 해군에 구원을 청하고자 곧 작은 배 하나를 타고 달려갔다.’ 여기서는 원균이 이운룡을 이순신에게 보낸 것으로 썼지만, 선조수정실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록은 전라좌수영에 구원을 청하러 보낸 인물을 소비포권관 이영남으로 적고 있다.  이운룡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치려는 원균에 항거하면서 이순신에 지원을 요청할 것을 설득하는 장면은 택당 이식(1584~1647)이 ‘식성군이공묘비명’(息城君李公墓碑銘)에 조금 더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운룡은 원균에게 ‘우수사는 국가로부터 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의리로 볼 때 관할지역을 사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지역은 전라도와 충청도의 요충이니, 무너지면 호남과 호서가 절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비록 피폐해졌다고는 하나 병력을 끌어모을 수 있고, 또 호남의 수군은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군대를 정돈한 다음 견내량을 차단하여 적이 거제를 지나 서쪽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면, 사태를 안정시킬 여지는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은 지금 이곳을 버리고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라고 했다. 식성은 이운룡의 관향으로 황해도 재령의 옛이름이다. 이운룡은 왜란이 끝난 1604년 선무공신 3등에 오르고, 식성군에 봉해졌다. 경상우수사에 부임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원균은 휘하를 장악하지 못했다. 떠나지 않은 장수는 옥포만호 이운룡과 영등포만호 우치적 뿐이었다. 그런데 이순신은 원균의 구원 요청을 받았음에도 처음에는 요지부동이었던 듯싶다. ‘징비록’은 ‘원균이 처음 이영남을 이순신에게 보낸 이후 대여섯차례 더 원군을 청했다’고 적었다. 경상우수군의 요청이 이어지고 녹도만호 정운 등 전라좌수영 내부에서도 강청의 목소리가 나오자 이순신도 출전을 결심한 듯하다. 조정에서도 원균과 합세해 적을 치라는 유서를 내렸다.  전라좌수군이 판옥선 24척과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으로 출진한 것이 5월 4일 새벽이다. 선조수정실록은 ‘이순신이 마침내 거제 앞바다에서 원균과 만났다. 원균이 이운룡과 우치적을 선봉으로 삼고 옥포에 이르렀는데, 왜선 30척을 만나 진격하여 대파시키니 남은 적은 육지로 올라가 도망쳤다. 그들의 배를 모두 불태우고 돌아왔다. 다시 노량진에서 싸워 적선 13척을 불태우니 적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선봉은 물길을 잘 아는 경상우수군 장수들이었다. 특히 옥포의 왜적을 공격하는데 누구보다 현지를 잘 아는 이운룡을 앞세운 것은 이순신 특유의 합리적 결정이다. 이후 경상도 해역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투에서도 이운룡과 우치적은 선봉장이었다. 이운룡은 1596년 경상좌수사, 1605년에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된다. 1595년 4도 도체찰사 오리 이원익은 이순신에게 “공이 후임을 천거한다면 누구를 추천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이순신의 대답은 “이억기와 이순신(李純信), 그리고 이운룡”이었다고 한다. 이억기는 왕실 종친이고, 이순신(李純信)은 개전 초기 전라좌수영 방답진첨사로 훗날 경상우수사에 오른 인물이다. 이운룡이 경상좌수사에 임명될 당시 남해 수군 진용은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이었다. 34세의 이운룡이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택당은 이운룡의 공로를 두 가지로 들었다. 첫번째는 이운룡만이 원균과 이순신 사이에서 공정한 마음가짐으로 처신하면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두 사람도 그를 중히 여겼고 싸운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원균이 참모로 곁을 지키던 이운룡의 계책을 귀담아 들었을 때는 싸움에서 진 적이 없었는데, 이운룡이 좌수사로 옮기고 나자 마침내 패몰(敗沒)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운룡이 경상좌수사로 승진해 원균 휘하를 떠난 것이 개인에게는 광영이지만 조선수군이 무너진 칠천량 패전의 원인(遠因)이 됐다는 뜻이다. 택당은 그런만큼 ‘이운룡의 공로는 양수(兩帥) 아래 있지 않다’고 했다. 곧 이순신과 원균 못지 않다는 뜻이다. 이운룡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뒤 조정의 명을 받아 통영에 이순신의 사당인 충렬사를 지었다. 위당 정인보는 충렬사 마당에 세워진 이운룡 기적비(紀蹟碑)에 ‘당신은 충무에게 바다를 제압하는 위업을 마련해 드렸고, 충무는 당신에게 3군에 으뜸가는 대우를 하였더라’고 적었다. ‘충무’는 말할 것도 없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이운룡은 옥포전투 현장에도 이순신을 기리는 또 하나의 사당을 지었다. 정조실록은 ‘거제 유묘’(巨濟 遺廟)라고 적었다. 이운룡과 이순신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한다. 유묘는 이제 그 자취를 알 수 없다.  
  • “한국 식민지배가 나쁜 것이라는 자학사관 버려야”...日막료장의 도발

    “한국 식민지배가 나쁜 것이라는 자학사관 버려야”...日막료장의 도발

    보수우익 성향의 일본 산케이신문이 문재인 정부 때의 자위대 욱일기 관련 한일 갈등을 재론하며 과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자국의 반성을 ‘자학사관’이라고 폄하했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긴 하지만, 제국주의 군대에 바탕을 둔 자위대의 긍지를 결코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산케이는 26일 ‘한국의 해상자위대 욱일기 게양 거부 문제...전 통합막료장이 밝힌 속내’라는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산케이는 우선 “일·한(한일) 위안부 합의를 백지화하는 등 반일 정책을 추진해 일본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킨 한국의 문재인 정권이 물러났다”며 “윤석열 정부에서는 양국 관계 개선과 일·미·한(한미일) 안보체제의 강화가 기대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반일 감정과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불신이 워낙 뿌리 깊은 것이기 때문에 앞날은 험난할 것”이라며 욱일기 갈등을 거론했다.“문재인 정권 하에서 일한 관계 악화가 국방 분야에까지 미쳤음을 각인시킨 것 중 하나가 2018 10월 한국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의 자위대 욱일기 문제였다. 한국 정부가 관함식에 초대한 해상자위대 함정에 자위함기인 욱일기의 게양을 불허하자 일본은 참가를 취소했다. 한국 측이 욱일기 게양을 거부한 배경에는 욱일기를 ‘전전(戰前)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의 상징’, ‘전범기’ 등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반일 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당시 통합막료장(한국으로 치면 합참의장)이었던 가와노 가쓰토시(68)는 “한국이 욱일기를 비판하는 것은 일본의 대응이 잘못된 탓도 있다”고 말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가와노 전 통막장은 관함식 갈등 당시 자신이 했던 기자회견을 떠올렸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부 측에서 나에게 준 예상 문답지(Q&A)에는 ‘욱일승천기는 풍어를 기원하거나 출산을 축하할 때에도 사용된다’(일상에서 널리 활용된다는 의미)는 식으로 답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입이 찢어져도 (욱일기가 일본의 전통문화의 일부이니 널리 이해해 달라는 식의) 그렇게 부끄러운 설명은 할수가 없었다.” 그는 실제 회견에서는 “자위함기는 해상자위관에게 ‘긍지’의 깃발로, 결코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딱 부러진 이 말 한마디면 되지 욱일기를 일본 전통 차원으로 봐달라는 식의 설명은 너무나 구차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가와노 전 통막장은 “군인이 긍지나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만국 공통으로, 이는 자위관들도 마찬가지”라며 “욱일기를 문화 차원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위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욱일기를 일본의 전통 문화 차원으로 설명하는 데서는 ‘욱일기는 피(전쟁)로 얼룩진 깃발이 아니다‘라고 변명하는 자세가 느껴진다며 “이는 ‘군국주의 일본의 조선 통치는 악(惡)이었다’고 하는 자학사관에 빠져 자국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못하는 관료들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케이는 “욱일기 문제에서 어정쩡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일본 측 태도가 한국의 욱일기 거부 사태를 초래했다”며 “이는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사죄와 변명으로 일관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했다. 산케이는 “1954년 해상자위대 창설 이후 줄곧 자위함기로 사용돼 온 욱일기는 옛 일본 해군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오늘날 해상자위관의 긍지는 모두 선배들의 발자취 위에서 길러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아시아 안보환경을 생각할 때 한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긴 하지만, 자위대의 긍지를 훼손하면서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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