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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자·시인 꿈꿨던 수포자, 세계 수학계 석학으로 우뚝…허준이 교수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과학기자·시인 꿈꿨던 수포자, 세계 수학계 석학으로 우뚝…허준이 교수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어려서는 구구단도 제대로 못 외우고 수학문제집 답지를 베끼던 수포자, 고등학교 때는 기형도를 좋아해 시인을 꿈꾸며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둔 학생. 대학시절엔 좋아하는 수학자를 만나기 위해 과학기자를 꿈꿨던 사람이 수학계 최고의 영광인 ‘필즈상’을 거머쥐며 세계적 석학으로 우뚝 섰다.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 수학자 허준이(39·June Huh) 프린스턴대 교수이자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이다. 국제수학연맹(IMU)은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에서 열린 국제수학자대회(ICM) 개막식에서 허 교수를 포함해 4명의 수학자를 ‘2022 필즈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허 교수는 수상자 4명 중 두 번째로 호명됐다. IMU는 “허 교수는 리드 추측을 비롯해 오랜 동안 난제로 남아있던 문제들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풀어냄으로써 앞으로 수학이 나갈 방향을 제시해 수학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허 교수는 한국인은 물론 한국계 수학자 중 첫 필즈상 수상자이다. 이번 수상자 중에는 고차원에서 케플러 추측이란 난제를 해결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교수도 선정돼 필즈상 역대 두 번째 여성 수상자로 기록됐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ICM 개막식에서 40세 이하 수학자에게 수상한다. 2026년 열리는 ICM에서는 필즈상의 나이 제한 때문에 올해가 허 교수의 마지막 기회였다. 허 교수는 ‘리드 추측’을 비롯해 ‘로타 추측’, ‘다울링-윌슨 추측’ 등 수학 난제들을 차례로 격파해 ‘난제 콜렉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영국 수학자 로날드 리드가 제시한 채색다항식 관련 조합론 문제이다. 채색다항식은 꼭지점과 변으로 이뤄진 그래프에 색을 칠할 때 이웃하는 면은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한다고 할 때 n개 이하의 색만 써서 칠하는 방법의 수를 나타낸 것이다. 중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다리 7개를 반드시 한 번씩만 건너서 모두 지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같다. 허 교수는 조합론 문제를 1차, 2차, n차 다항식으로 표현되는 대수기하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세계적인 수학자 반열에 오른 허 교수가 처음부터 수학을 잘 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끝날 때가 되서야 구구단을 겨우 외우고 아버지인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가 수학문제집을 풀라는 숙제를 내니 답지를 보고 베끼다가 혼나서 수학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어머니인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명예교수가 알파벳을 가르치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인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중퇴해 검정고시로 대학을 입학했다.대학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했지만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장래 희망을 과학기자로 바꿨다. 허 교수는 미국 시민권자로 군대를 면제받았지만 F학점이 너무 많아 6년만에 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대 국내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자서전 ‘학문의 즐거움’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허 교수는 학부 4학년 때 서울대 초빙석좌교수로 온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를 듣고 전공을 수학으로 바꾼 ‘늦깎이 수학자’이다. 허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도교수인 히로나카의 조언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위해 미국의 대학 12곳에 지원했지만 11곳에서 떨어지고 히로나카 교수 추천서 덕분에 일리노이대에만 겨우 합격했다. 허 교수는 박사과정 1학년 말에 ‘리드 추측’을 증명했지만 자신이 푼 문제가 유명한 수학 난제였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엄상일 카이스트 수리과학과 교수는 “허 교수는 조합수학 분야의 오랜 난제들을 해결한 것도 좋지만 그 추측들을 해결할 때 다른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대수기하학을 통한 접근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허 교수의 수상은 오히려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 ‘성범죄 2차 가해’ 가중처벌한다… 실형 선고도 가능

    ‘성범죄 2차 가해’ 가중처벌한다… 실형 선고도 가능

    ‘2차 가해’를 성범죄 가중처벌 요건에 추가하고, 군대와 체육단체 등 위계질서가 강조되는 조직 내 성범죄에 형량을 강화하는 새 양형기준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된다.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전날 117차 회의를 열고 성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수정안은 116차 회의에서 결정된 성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토대로 관계기관의 의견을 반영해 일부를 재수정한 것이다. 양형위는 116차 회의에서 친족 대상 성폭행 범죄에 최대 징역 15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성범죄 특별가중인자 중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안을 마련했었다. 확정안은 ‘2차 가해’를 성범죄 가중처벌 요건으로 추가했다. 기존의 일반양형인자 및 집행유예 일반참작사유에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가 있었지만, 확정안은 그 범위를 대폭 넓히고 명칭도 ‘2차 피해 야기’로 바꿨다. 이에 따라 합의 시도와 무관하게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는 모두 ‘2차 피해 야기’에 포함된다. 합의 시도 과정에서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부당하게 압력을 가한 경우뿐 아니라 피해자 인적사항 공개,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발언, 집단 따돌림 등을 한 경우도 가중처벌이 가능해진다. 집행유예 대신 실형을 선고할 수도 있게 된다. 친족관계에서 벌어진 강간,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간, 특수강간의 권고 형량은 가중인자가 있는 경우 종전 징역 6∼9년이었으나 이번 수정안에서 징역 7∼10년으로 늘었다. 감경인자가 있는 경우 권고되는 형량도 징역 3년∼5년 6개월에서 6개월이 높아진 징역 3년 6개월∼6년이 됐다. 또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은 경우엔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게 했다.강제추행죄 권고형량도 1년씩 늘었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이나 특수강제추행은 가중인자가 있을 때 징역 5∼8년이, 주거침입 강제추행은 징역 6∼9년이 권고됐다. 특히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제추행에서 피고인의 형량 감경 요인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집행유예 없이 실형만을 선고하게 했다. 수정안은 군대뿐 아니라 체육단체 등 위계질서가 강조되고 지휘·지도·감독·평가 관계로 인해 상급자의 성범죄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피해자도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로 인정하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군형법상 성범죄의 특별가중인자 가운데 ‘상관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경우’도 이번 회의에서 재수정됐다. 기존엔 ‘명시적으로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이라는 정의 규정이 붙어 있었는데 이것으로 인해 양형인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해진다는 관계기관의 의견이 있어 삭제하기로 했다고 양형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한 특별가중인자 가운데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로 신체 또는 정신 장애가 있거나, 군대 내 계급, 서열 또는 지휘관계에 있는 경우 등을 들고 있는데, 이 가운데 ‘군대’를 ‘군대 등 조직이나 단체’로 바꿨다. 또 ‘지휘관계’도 ‘지휘감독관계’로 확대했다. 종전까지는 피고인의 나이가 많은 경우 집행유예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일반 참작 사유로 인정했으나 수정안에서는 이를 삭제했다. ‘고령’의 의미가 불명확한 데다 재범 위험성과 피고인 고령 여부의 관련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양형위는 이번에 수정한 성범죄 양형기준을 올해 10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 日 참의원 후보 52% “개헌 찬성”…전쟁 가능한 국가 속도 낼까

    日 참의원 후보 52% “개헌 찬성”…전쟁 가능한 국가 속도 낼까

    오는 10일 일본 참의원(상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절반가량은 자위대의 존재를 명시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마이니치신문이 참의원 선거 전체 후보자 545명 가운데 설문조사에 응답한 526명의 답변을 정리한 결과 52%가 헌법 9조 개정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일본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뒤 1947년 만들어졌다. 특히 9조는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점을 배경으로 전쟁·무력행사, 전력 보유를 포기하는 것을 명시해 ‘평화헌법’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일본은 군대를 갖지 못하는데 9조를 개정해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것은 사실상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의미로 일본 보수세력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일이다. 참의원 후보자의 39%만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했다. 개헌 반대 의견은 직전 참의원 선거가 있었던 2019년의 53%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당시 개헌 찬성 의견은 25%였는데 이번에는 두 배가량 늘었다. 또 참의원 후보자의 63%는 방위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답변이 57%였다. 참의원 후보자의 절반 이상은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참의원 후보자의 52%는 ‘핵 보유나 핵 공유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자민당의 51%가 반대했다. 이 신문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진 지난 2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핵 공유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공감대를 이루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참의원의 상당수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이 더 양보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 대해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응답은 52%로 집계됐다.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27%였고 ‘일본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는 12%에 불과했다. 여당인 자민당의 참의원 후보자 대부분은 한국이 양보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연립 여당인 공명당 후보는 이 질문에 대해 46%가 답변하지 않았다. 원내 소수파인 일본 공산당과 사민당 후보자는 일본이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 오래됐으니 전통? ‘마룬5 무지’ 부른 일본 전후 욱일기 사용 [클로저]

    오래됐으니 전통? ‘마룬5 무지’ 부른 일본 전후 욱일기 사용 [클로저]

    독일은 지운 하겐크로이츠일본은 욱일기 계속 사용전 세계 ‘욱일기(旭日旗·욱일승천기)’ 퇴치 캠페인을 펼쳐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이번에는 마룬5(Maroon5· 마룬파이브) 공식 홈페이지에 등장한 욱일기 문양을 삭제하라는 항의 메일을 보냈다고 5일 밝혔습니다. 지난 2일 마룬5 공식 홈페이지에 오는 11월부터 진행되는 월드투어 추가 공연 일정을 공개했는데, 홈페이지 배경 사진에 욱일기 문양을 넣은 것이 문제되고 있죠. ● “욱일기, 하겐크로이츠 같은 전범기” 서 교수는 항의 메일에서 “일본의 ‘욱일기’는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다”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마룬5의 욱일기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죠. 지난 2012년 발표한 ‘원 모어 나잇’ 뮤직비디오에서 욱일기가 걸린 장면을 내보냈습니다. 또한 2019년 마룬5의 멤버 제스 카마이클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욱일기를 옹호하면서 한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한 가수 션 레넌(비틀스 멤버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아들)을 지지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션 레논의 친 오노요코가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가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팬들의 애정어린 시각도 존재했습니다만 말입니다. 억지로 이해하려는 눈물겨운 ‘팬심’의 일환이었습니다. 또한 션 레논을 이해한다 해도 그를 옹호한 마룬5는 이해할 수 없었죠. 이 때문에 마룬5는 국내서 일본을 사랑하는 그룹으로 팬들 사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일본은 왜 욱일기를 계속 사용할까 일본은 독일과 달리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전후에도 욱일기를 응원기 형태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메이지유신 직후 근대국가로 나선 일본이 자신들의 ‘천황 군대’를 위한 상징으로 ‘육군어국기’를 법령으로 제정했습니다. 이것이 일본군 국기로서 욱일기의 시작입니다. 욱일기, 하겐크로이츠는 모두 국민을 교육, 세뇌할 때 쓰인 도구들입니다. 전시 반인륜적 범죄를 행할 때 상징이 되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패전 후 독일은 하겐크로이츠를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다르죠. 욱일기는 기존 붉은 원에 태양 주위에 16갈래로 퍼져 나가는 햇살을 형상화한 문양입니다. 일장기를 써도 될 것을 굳이 일본은 전후에도 욱일기를 사용해 주변국과 갈등을 만든 적이 있죠. ● 응원기로도 적극 활용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응원기로 욱일기를 허용한다고 해 반발을 산 적도 있습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정치적인 의도가 없으며 일본에서 널리 쓰이는 깃발일 뿐”이라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죠. 2013년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일전, 2012년 8월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도 욱일기가 등장했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선 체조 국가대표 유니폼으로 욱일기 변형 디자인이 나왔죠. 그러나 자신들이 오래 써온 전통이기 때문에 욱일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일본 측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하겐크로이츠 역시 나치가 사용하기 전 스와스티카라는 이름으로 엽서, 훈장 등에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어떻게 하겐크로이츠를 지웠나 꺾인 십자가 모양의 하겐크로이츠(Hakenkreuz)는 독일 나치의 상징입니다. 독일어로 ‘갈고리(Hooks)’를 뜻하는 ‘하켄(Haken)’과 ‘십자가(Cross)’를 뜻하는 ‘크로이츠(Kreuz)’가 합쳐진 말로 ‘갈고리 십자가’라는 뜻이에요. 트로이 유적에서 발견한 이 문양을 독일 민족주의 운동에 사용한 것이죠.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을 통해 “수없는 시도 끝에 문양을 완성했다”며 “빨간색 배경에 하얀색 원, 중앙에 검정색 스와스티카가 있는 것이다. 오랜 시도 끝에 깃발의 크기와 흰색 원의 크기 사이 비율뿐 아니라 스와스티카의 모양과 두께도 최종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전범 국가인 독일은 현재 나치 상징물 사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독일 형법 제86조a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등을 반포하거나, 해당 표식이 그려져 있는 물건을 제조, 보관, 반입할 경우 3년 이하의 금고나 징역, 또는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용이 허용될 때는 나치 반대 교육, 과거사에 대한 보도, 예술 및 학문 등 공익 목적이 있을 때입니다. 물론 이를 쓰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지난 6월, 독일-덴마크전이 벌어지자 일부 독일 관중이 네오나치 문구를 새긴 현수막을 걸고 나치 구호를 외쳤습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이를 두고 독일축구협회에 2만5000유로(약 3600만원) 벌금을 부과했죠. 응원기로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한 일본과는 아주 다른 처사입니다.
  • 신좌파 반전 시위대 정부기능 마비 노려… 촘스키·하워드 진 등 세계적 석학들 동참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신좌파 반전 시위대 정부기능 마비 노려… 촘스키·하워드 진 등 세계적 석학들 동참 [이상돈 명예교수의 지금의 미국 알려면 1970년대 읽어라]

    라오스 작전에 반전운동 재점화 상원 본회의장 폭발물 ‘쾅’ 혼란 25만명 워싱턴DC에 운집 예상 도로 점거 공무원 출근 방해 계획 존 케리 주도 참전용사들도 참여 의사당 앞 훈장 던지는 퍼포먼스 경찰, 1만 2000명 불법 체포·구금 미국 기본권 역사에 큰 오점으로베트남 전세를 반전시켜야 하는 닉슨 대통령은 라오스 내의 북베트남군 요충지를 공격해서 호찌민 루트를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1970년 12월 의회는 미 지상군이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닉슨은 마지못해 이에 서명했다. 따라서 라오스 작전을 수행하려면 미군은 베트남 영토 내에서 포격과 항공 지원을 하고 남베트남군이 국경을 넘어 40㎞를 진격해야만 했다. ●재앙으로 끝난 라오스 작전 1971년 1월 말, 닉슨의 명령에 따라 미군은 1968년에 철수한 케산 기지를 다시 확보해서 헬기 착륙장 등 후방시설을 건설했다. 남베트남군은 해병대, 공수부대, 레인저 부대 등 1만 7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라오스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런 작전을 사전에 파악한 북베트남군은 병력 6만명을 동원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남베트남군을 포위해서 공격했다. B52 등 폭격기가 1만회 출격을 해서 폭탄을 퍼붓고 헬기가 1만6000회 출동해서 근접 지원을 했음에도 남베트남군은 병력의 절반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해야만 했다. 북베트남군의 대공포화로 헬기 108대가 격추되고 200여대가 다시는 날 수 없게 손상을 입었으며, 공·해군 항공기 7대가 격추되는 등 미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케산 기지에 남아 있던 미군도 남베트남군 잔여 병력과 함께 철수하고 말았으니 이 작전은 재앙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남베트남군이 독자적으로 잘 싸웠다고 발표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라오스 작전이 알려지자 한동안 잠잠했던 반전 운동이 다시 불타올랐다. 그해 3월 1일, 워싱턴DC 의사당 상원 본회의장 아래층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급진 폭력단체인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자신들이 폭발물을 터뜨렸다고 발표했다. 1969년 가을 모라토리엄 시위를 주도했던 신좌파 인물들이 다시 연락을 취해서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해서 워싱턴 DC에서 대형 집회를 갖기로 했다.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던 모라토리엄 집회와는 달리 이번에는 워싱턴에 있는 정부기관이 기능하지 못하도록 다리와 도로를 차단하려고 했다. 의회 건물이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입수한 법무부는 리차드 클라인딘스트(1923~ 2000) 차관 주재로 FBI 및 워싱턴DC 경찰과 함께 대책반을 운영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것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면서 강경한 진압을 지시했다.●참전용사들의 반전 시위 베트남에 참전했던 장병들이 전역 후에 만든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참전용사 모임’(VVAW)도 메이데이 시위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들은 전쟁에서 겪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이상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의견을 워싱턴에서 표명하기로 했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메콩강 작전에 고속정 정장으로 참여해서 훈장을 받은 존 케리(1943~)가 이 모임을 주도했다. 이들은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워싱턴 몰 광장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았고, 경찰은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참전군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것인데, 조지 맥거번(1922~2012) 상원의원 등이 이들을 후원했다. 맥거번은 197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게 된다. 상원 외교위원회 윌리엄 풀브라이트(1905~1995) 위원장은 존 케리를 증인으로 출석시켜서 이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4월 22일, 케리는 보도진과 청중으로 가득 메워진 상원 위원회에서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설명하면서 “닉슨이 전쟁에서 패배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 전사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무의미한 전쟁을 당장 끝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 그를 향해 청중은 박수를 쳤고 언론은 그의 발언을 대서특필했다. 다음날 참전용사 800여명이 의사당 건물로 행진을 했고,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 받은 훈장을 던져버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참전용사들의 시위 현장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 중에는 육군 장교 콜린 파월(1937~2021)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두 차례 복무한 파월은 당시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훈장을 던져버리는 모습을 착잡한 심정으로 보았다. 콜린 파월은 그 후 순탄하게 승진해서 합참의장이 되어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다. 존 케리는 그 후 상원의원을 지내고 2004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다.●메이데이 집회와 경찰의 반격 신좌파 단체가 주도한 메이데이 시위에 참여한 4만명은 웨스트포토맥 파크에 자리잡고 반전 가수들의 록 음악을 들으면서 5월 3일 월요일부터 워싱턴 시내로 향하는 다리와 도로를 차단할 계획을 세웠다. 미국 전역에서 이 시위에 참석하러 25만명 이상이 모여들 것으로 예상됐다. 이번 시위는 공무원들의 출근을 방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닉슨 대통령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군대를 동원하라고 지시하고 캘리포니아 샌클레멘츠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향해 떠났다. 무장한 육군 공수부대와 해병대 병력이 백악관 등 주요 기관과 교통 요지를 지키기 위해 워싱턴DC로 진입했다. 워싱턴 경찰은 이들에 대한 집회허가가 취소됐다면서 2일 정오까지 파크에서 철수하라고 통보했다. 대부분 시위대는 파크를 떠났으나 남아 있던 수백명은 경찰에 연행됐다. 5월 3일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워싱턴 DC 경찰 병력 5000명이 시위대 검거에 나섰다. 웨스트포토맥 파크에서 철수한 시위대와 전국 각지에서 뒤늦게 도착한 시위대는 워싱턴 곳곳에서 교통장애물을 설치하는 등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에 의해 거의 전원이 검거됐다. 3일 하루에 7000명 이상이 검거됐고 4일과 5일에도 검거가 이어지면서 총 1만 2000여명이 이 시위로 구금됐다. 이들은 워싱턴 콜로세움과 스타디움에 무더기로 수용돼 며칠 동안 고생을 했고 대부분은 과태료를 내고 풀려났다. 하지만 이들을 검거한 법적 근거는 불확실해서 결국에는 불법적 구금이었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과거의 시위와는 달리 메이데이 시위대는 교통을 방해하는 등 폭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무려 1만 2000명을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이 체포해서 구금한 이 사건은 미국의 기본권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전국에서 메이데이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버스를 대절해서 워싱턴에 모였는데, 보스턴에서는 메사추세츠공대(MIT)의 언어학자 놈 촘스키(1928~)와 보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 하워드 진(1922~2010) 등이 같이 왔다. 이 일행에는 대니얼 엘스버그(1931~)라는 MIT의 선임연구원도 있었다. 하버드와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고 해병 장교로 군 복무를 한 엘스버그는 랜드연구소 연구원으로 핵 전략을 다루면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랜드연구소와 국방부에서 일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된 그는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지시로 작성된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하고자 했다. 랜드연구소에 비치된 이 문서를 복사한 그는 이를 몇몇 의원들에게 갖고 갔으나 비밀문서인 탓에 의원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그는 뉴욕타임스를 찾아갔다. 뉴욕타임스는 닐 쉬핸(1936~2021) 기자에게 기사를 작성토록 했고, 6월 13일 ‘펜타곤 페이퍼’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내보내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중앙대 명예교수
  • 日성폭행 사진가, ‘우크라이나 참상’ 전시회로 재기 노렸다가...국민적 분노

    日성폭행 사진가, ‘우크라이나 참상’ 전시회로 재기 노렸다가...국민적 분노

    자신의 명성과 지위를 이용해 여러 여성들에게 추악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던 일본의 유명 사진가가 ‘우크라이나 참상’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통해 슬그머니 활동을 재개하려다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결국 두 손을 들었다. 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포토 저널리스트 히로카와 류이치(78)는 오는 5일부터 오키나와현 나하시의 시민 갤러리에서 ‘나의 우크라이나…참화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사진 전시회를 열려고 했으나 1일 돌연 계획을 철회했다. 히로카와는 자신이 지난 5~6월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에 직접 들어가 촬영한 현지 사진과 사람들의 증언 등을 전시할 계획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포토 저널리스트로 꼽히는 히로카와는 여러 여성들에게 저질렀던 성폭력, 성추행, 갑질횡포 등 추악한 과거가 2018년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오키나와타임스 등 언론들은 지난달 말 히로카와의 사진전 개최 소식이 알려지자 “자신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폭로되고 약 3년 6개월 만에 분명한 사과의 표현도 없이 활동을 재개하려는 데 대해 각계에서 비난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단체 ‘군사기지·군대를 용납하지 않는 행동하는 여성들의 모임’ 다카사토 스즈요 공동대표는 “전시회를 허용한 나하시 시민 갤러리 측에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며 “사진전 개최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것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히로카와는 체르노빌 원전폭발, 레바논 전쟁, 팔레스타인 분쟁 등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현장을 누비며 진실을 전해 많은 포토 저널리스트의 우상으로 추앙받아 온 인물이다. 그러나 2018년 5명의 여성이 히로카와로부터 성폭력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증언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10여년 전 히로카와의 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성(당시 20대)은 “어느날 그가 나를 택시에 태워 호텔로 끌고갔다. 성관계를 요구받고 두려웠지만, 일터에서 쫓겨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응할 수 밖에 없었다”고 폭로했다. 한 전직 여기자는 “15년 전 처음 만난 히로카와가 식사를 마치자 갑자기 성관계를 맺자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자원봉사를 했던 여성은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만 누드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했다. 하지만, 히로카와는 “여성들과의 성관계는 모두 합의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등 모든 혐의를 부인해 왔다. 이번 일과 관련해 미야기 기미코 오키나와대 교수(비교문화·젠더학)는 “과거에 있던 자신의 중대한 인권유린 행위를 정리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착수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었다”며 “저명한 인물로 사진의 수준이 높다고 해도 그걸로 용납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친러반군 “루한스크 ‘마지막 도시’ 리시찬스크 포위” 주장

    친러반군 “루한스크 ‘마지막 도시’ 리시찬스크 포위” 주장

    우크라이나군이 통제 중인 루한스크 주의 마지막 도시인 리시찬스크가 러시아군에 완전히 포위됐다고 친러시아 반군이 주장했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안드레이 마로츠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이날 DPR 및 러시아군이 루한스크의 마지막 전략적 고지를 점령했다”며 “이는 리시찬스크가 완전히 포위됐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체첸공화국의 수장 람잔 카디로프도 “리시찬스크는 우리 것이며, 우리 군대는 도심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카디로프의 보좌관인 압티 알아우디노프는 “(친러) 연합군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하고 소탕 작전을 개시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리시찬스크 주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도시가 포위됐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루슬란 무지추크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대변인은 “리시찬스크 주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만 다행히 도시는 포위되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군이 통제 중”이라고 반박했다. 리시찬스크는 시베르스키 도네츠강을 사이에 두고 세베로도네츠크와 마주하고 있는 쌍둥이 도시로 러시아 침공 전 약 10만 명이 거주했다. 지난 3월 말 이후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북부 전선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아우르는 지역) 전선에 병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지난 25일 루한스크의 전략적 요충지인 세베로도네츠크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에 따라 루한스크 주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통제하는 지역은 리시찬스크만 남게 됐다.
  • “성전환 후 군대 신체검사 1급”…고백한 트렌스젠더

    “성전환 후 군대 신체검사 1급”…고백한 트렌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오은영을 찾아 고민을 토로했다. 1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서는 68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트렌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금쪽상담소를 방문했다. 풍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며 상담소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고관절 뼈를 잘라내 인공 관절을 넣는 대수술을 하고도 마취에서 깨자마자 라이브 방송을 켰다고 고백했다. 오은영 박사는 고민의 심각성을 인지, 일하느라 골반염 치료를 미루다 고관절 괴사로 이어져 하반신 불구 위기까지 겪은 풍자를 일 중독, 즉 ‘워커홀릭’이라고 분석했다. 또 자신의 몸이 편안한 걸 못 견디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도 짚어냈다. 실제로 풍자는 ‘성전환 수술’과 ‘인공 관절 수술’을 받을 때에도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버텼다 고백했다. 이날 풍자는 성전환 후 군대 신체검사를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그는 “제가 신체검사 1급을 받았다. 지금 이 모습으로 1급을 받아서 ‘군대를 정말 가야 하나’라는 고민이 많았다. 조금 당황스러워서 울었다”며 “성전환 후여서 머리도 길고 화장도 한 상태였다. 지금도 굉장히 건강한 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풍자는 지난달 3일 유튜브 웹예능 ‘바퀴달린입’에서 신체검사 1급으로 군면제를 힘들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자신을 “트렌스젠더계 오은영 박사”라며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주면서 힐링을 주고 있는 근황도 전했다.
  •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 신체검사 현역 1급…“어렵게 군 면제”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 신체검사 현역 1급…“어렵게 군 면제”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오은영 박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1일 오후 방송 예정인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68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금쪽상담소를 방문한다. 이날 풍자는 시작부터 신체검사에서 현역 1급이 나와 힘들게 군대 면제를 받았다는 일화로 거침없이 녹화장을 압도했다. 풍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며 상담소를 방문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오죽하면 고관절 뼈를 잘라내 인공 관절을 넣는 대수술을 하고도 마취에서 깨자마자 라이브 방송을 켰다고 고백한다. 이에 오은영 박사는 고민의 심각성을 인지, 일하느라 골반염 치료를 미루다 고관절 괴사로 이어져 하반신 불구 위기까지 겪은 풍자를 일 중독, 즉 ‘워커홀릭’이라고 분석한다. 또한, 오은영 박사는 풍자가 본인의 몸이 편안한 걸 못 견디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등 자기 몸을 혹사시키는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한다는 사실도 짚어낸다. 실제로 그녀는 성전환 수술과 인공 관절 수술을 받을 때에도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버텼다고 고백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에 오박사는 풍자에게 ‘통제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팩폭을 날리며, 그동안 전쟁 같은 위기에 대응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의문을 던진다. 오박사의 질문에 풍자는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중요한 신체 부위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 등 트랜스젠더로서 받았던 차별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그와 관련된 악플들에는 타격감 제로인 모습을 보여 오박사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수제자 박나래는 ‘악플 마저 관심으로 받아들여 왔으나, 반복되다 보니 너무 아프다.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다’며 풍자의 고통을 함께 헤아린다.
  • 軍 사망사건 조기 개입…차관급 ‘군인권보호관’ 출범

    軍 사망사건 조기 개입…차관급 ‘군인권보호관’ 출범

    윤일병·이중사 사건 계기 도입 필요성 확대초대 박찬운 상임위원…“인권침해 조기 발견”인권위 내 25명 규모 군인권보호국 설치군부대 방문조사, 1년 지난 사건도 가능군인권센터, ‘제초작업 후 사망’ 1호 진정 군대 내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조사해 시정조치와 정책권고 등 권리구제를 담당하는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1일 출범했다. 앞으로는 군대 내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인권위가 조기에 개입해 부대 등을 방문조사할 수 있다.인권위는 이날 인권위 10층 인권교육센터에서 군인권보호관 출범식을 개최했다. 군인권보호관제도는 2014년 육군 전방사단에서 선임병들의 구타·가혹행위로 병사가 사망한 이른바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인 인권 문제를 전담할 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던 중 지난해 5월 고 이예람 중사 사건 등 군대 내 성폭력 사망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인권침해 방지 및 민간 조사의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난해 12월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인권위 안에 군인권보호관을 설치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군인권보호관은 ▲군 인권 보호·증진체계 마련 ▲군부대 방문 조사를 통한 예방강화 사업 ▲군 사망 및 성폭력 사건 신속 대응체계 구축 ▲기획조사 및 실태조사 강화 ▲군 인권교육 강화 등 주요 사업을 추진한다. 군인권보호관은 군인 등이 복무 중 사망한 경우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이를 통보받아 사망사건에 조기 개입할 수 있고, 군부대를 방문 조사할 수 있다. 일반적인 방문 조사 때는 해당 군부대 장에게 방문 조사 3일 전까지 그 취지, 일시, 장소 등을 통지한다. 긴급할 경우에는 방문 12시간 전까지, 또 통지 당일 조사가 불가피할 때는 방문 4시간 전까지 일과시간 내에 통지하고 방문할 수 있다. 또 진정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로부터 1년이 경과한 사건은 각하하도록 한 기존 규정과 달리 군인권보호관은 1년이 지난 사건도 조사가 가능하고,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도 군인권보호위원회 의결을 거쳐 조사할 수 있다. 다만 체포나 구인 등 강제수사 권한은 없으며 조사나 진술서 제출, 출석요구를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차관급인 군인권보호관은 인권위법에 따라 대통령이 지명하는 상임위원이 겸직하고, 군인권보호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초대 군 인권보호관은 박찬운 상임위원이 내년 1월 임기 종료 때까지 직무를 수행한다. 인권위는 군인권보호관 출범에 맞춰 군인권보호국을 신설하고 실무 조직으로 군인권보호총괄과, 군인권조사과, 군인권협력지원과를 설치했으며 25명의 전담 인력을 배치했다. 박 상임위원은 “군 내 인권침해,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 임무”라며 “군인권보호관으로서 부대 방문조사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인권침해를 조기에 발견하고, 제도적 차원의 개선을 권고해나가겠다”고 말했다.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이날 1호 진정 사건을 제출했다. 2020년 8월 육군 6사단 복무 중이던 피해자가 군에서 백신접종 등 의료처우가 미흡한 상태에서 제초작업 후 유행성 출혈열로 사망한 사건이다.
  • [TV 하이라이트]

    [TV 하이라이트]

    ●백패커(tvN 저녁 8시 40분) 산 넘고 물 건넜던 출장 요리단이 이번에는 하늘길에 오른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제주에 도착한 출장 요리단을 기다리는 건 먹구름, 비바람, 돌풍. 싱크대와 화구는 물론 아무것도 없는 ‘주방’을 보고 혼란에 빠진 백종원은 급기야 “여기가 군대보다 더 어려워!”라고 외친다. ‘백패커’들은 제한 시간 내에 손수 주방을 제작하고 ‘도새기’ 한 마리로 특별한 요리까지 만들어야 한다. 과연 비바람이 치는 야외 주방에서 ‘백패커’들이 미션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한편 제주 특집을 맞이해 ‘백패커’들은 각자의 ‘백팩’ 가방을 새로 장만한다.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품은 백종원의 가방부터 ‘트랜스포머’ 수준의 변신을 자랑하는 딘딘의 바퀴달린 가방까지, ‘백패커’들이 준비한 새로운 가방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 박군 “8세 연상 아내 한영에 밥상머리서 정신교육 받는다”

    박군 “8세 연상 아내 한영에 밥상머리서 정신교육 받는다”

    ‘새신랑’ 박군이 아내 한영에게 “밥상머리에서 정신교육을 받는다”며 달콤살벌한 신혼 에피소드를 공개, 현실판 평강 온달 신혼 스토리를 전한다. 29일 오후 10시20분 방송되는 MBC ‘라디오스타’는 소유진, 박군, 김다현, 서동주가 출연하는 ‘나의 갓생일지’ 특집으로 꾸며진다. 특전사 출신에서 ‘트로트계 샛별’로 변신에 성공한 박군은 지난 4월 8세 연상 가수 겸 방송인 한영과 결혼에 골인해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다. 1년 만에 ‘라디오스타’에 돌아온 그는 한영과의 신혼 스토리를 들려준다. 박군은 “내 편이 생겼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서 집이 따뜻하다”며 결혼 후 소감을 밝힌다. 이어 “평강공주 스타일이 이상형이었다, 한영이 원하는 아내상이었다”고 덧붙인다. 또 “밥상머리에서 한영에게 정신교육을 받는다”고 이야기해 호기심을 유발한다. 또한 이날 박군은 가수 선배 한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고백 비하인드를 회상한다. 또 한영과 8cm 키 차이를 극복하는 잔망미 폭발하는 필살 애교를 선보이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박군은 군대에서 전역한 지 2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군기가 남아있다고 고백해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와 함께 결혼 후에도 쉴 틈 없는 자신의 하루 일과를 공개한다. 박군의 숨 막히는 하루 일과에 스튜디오가 초토화됐다는 전언이다. 이어 14년 8개월 군 생활하는 동안 상상초월한 갓생을 살았다고 밝히면서 바쁜 군 생활 끝에 피를 본 사연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박군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 ‘이것’을 공부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눈길을 끈다. 이를 듣던 ‘트로트 요정’ 김다현이 꿀팁을 전수했다고 해 궁금증을 자극한다. 박군이 공개하는 한영과의 신혼생활 풀스토리는 이날 오후 10시20분에 방송되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푸틴은 마피아보스…130㎏ 퇴역장군도 전쟁터로”

    “푸틴은 마피아보스…130㎏ 퇴역장군도 전쟁터로”

    “푸틴은 누구도 복종을 거부할 수 없는 마피아 보스 같다. 푸틴이 부르면 퇴역 장군도 별수 없이 전쟁터로 돌아가야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70)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군대를 이끌어줄 장군으로 은퇴한 비만 장군을 다시 데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매체 데일리스타는 26일(현지시간) 67세 파벨 장군이 포격으로 중상을 입은 장군을 대신해 러시아 특수부대를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전쟁터로 다시 불려간 파벨 장군은 280파운드(약 130㎏)로 추정되는 몸무게에 매일 다섯 끼를 먹고, 1리터의 보드카를 마시는 거구라고 알려졌다. 러시아 소식통은 “푸틴의 실력 좋은 고위 지휘관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라고 설명했다. “돈바스 점령속도에 불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장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도보르니코프(대장급)를 경질했다고 보도했다. 4월 10일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드보르니코프는 이미 한 달 넘게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러시아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동부 돈바스 점령 작전이 지연된 것이 첫 경질 사유로 지목된다고 이 신문은 해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 초기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이후 드보르니코프를 앞세워 돈바스 지역 점령을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는데 그마저도 투입한 자원에 비해 성과가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새뮤얼 라마니 영국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루한스크주 요충지 세베로도네츠크를 10일까지 점령하라는 기한을 줬지만 드보르니코프가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군 수뇌부를 경질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월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8명의 장군을 파면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개전 후 충분한 충성심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보기관 수장들도 해임했고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확보한 정보가 부실했다며 연방보안국(FSB) 수장도 교체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군 분석가는 장성급의 빠른 교체로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의 지휘 체계가 흐트러졌다며 “최전선에서 최고 장성이 전술 지휘관 역할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자 절망의 신호”라고 설명했다.러군 “전투하기 싫다” 항명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군 수백명이 참전을 거부하거나 전투에서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월 4일 러시아군의 한 사령관이 서명한 군 내부 문서 사본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서 근무 중 명령을 거부한 수백 명의 군인이 명령에 의해 강제 전역 조치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러시아군이 점령한 우크라이나 마을에서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거나 전쟁에 참전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 전역 처분에 반발하는 군인의 법적 대응을 돕는 러시아 변호사 미하일 베냐쉬는 WSJ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탈영과 명령 불복종은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서방의 정보기관들은 우크라이나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이 지휘계통의 무질서함과 혼란에 노출돼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미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는 WSJ에 “러시아군 내 다양한 계급의 장교들이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민첩하게 따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군은 탈영을 하거나 명령에 불복종하는 이들을 형사 처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곤혹스러워하는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정식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탓에 러시아 군법상 타 국가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을 형사 고발할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강제 전역 조치가 유일한 처벌 수단인 것으로 알려졌다.병력 손실 커지자 군복무법 개정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군 병력 손실이 커지자 모병 연령 상한제를 폐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계약제 군인 모집 조건의 상한 연령을 없앤 군복무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기존 18~40세 러시아인과 18~30세 외국인만 지원이 가능했던 군 복무 계약을 40세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다. 현재 러시아 정규군은 약 90만명으로, 이 중 40만명이 계약제 군인이고 나머지는 1년간 의무복무하는 징집병이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군사 당국은 상한 연령 폐지가 우크라이나 전쟁 병력의 충원이 목적이라고 본다.
  • 3개월간 9억원 모아…우크라 돕고자 옷 벗은 여성들의 사연

    3개월간 9억원 모아…우크라 돕고자 옷 벗은 여성들의 사연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여성 수십 명이 옷을 벗어 던졌다. 26일(현지시간) 미 온라인 매체 인사이더는 온라인으로 누드 사진을 판매해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는 여성 나스타샤 나스코(23)의 사연을 공개했다. 나스코는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도시 하르키우에서 지인의 대피를 도와달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아무도 답변하지 않자 그는 반농담으로 “도와주면 누드 사진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5분도 되지 않아 10개 이상의 DM(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나스코는 회상했다. 실제로 그가 한 남성에게 누드 사진을 보내고 나서 지인은 하르키우 탈출에 성공했다. 이런 경험은 나츠코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며칠 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친구 아나스타샤 쿠치멘코와 함께 ‘터온리팬스’(Ter Only Fans)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사이트는 성인 콘텐츠를 올리고 돈을 버는 플랫폼 ‘온리팬스’(OnlyFans)와 비슷하지만, 돈을 콘텐츠 제작자가 아닌 우크라이나 군대로 직접 전달한다. 나스코는 “3개월 만에 70만 달러(약 9억원) 이상이 모금됐다”고 밝혔다. 대부분 기부금은 우크라이나 국토방위에 사용되지만,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난민과 우크라이나 동물보호단체도 지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부자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에서도 기부금을 보냈다. 지금까지 기부금 중 한 번에 가장 큰 금액은 2800달러(약 360만 원)였다. 사이트 개설 후 여성 35명과 남성 3명도 나츠코의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이들 대부분은 우크라이나에 거주 중이다. 이 중 10명 만이 온리팬스 경험이 있고, 나머지 28명은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터온리팬스는 사진 요청을 받지 않고 콘텐츠 제작자가 알아서 사진을 찍어 보낸다. 나스코는 “우리는 성노동자가 아니다. 우크라이나군을 돕고자 모금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나스코는 벨라루스 출신이지만 키이우에서 살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때문에 나스코 역시 종종 오해받는다. 나스코는 “모든 벨라루스인이 러시아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벨라루스인 중에도 좋은 사람도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스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폴란드 바르샤바로 건너갔다. e스포츠 회사 마케팅 관리자로 일하면서도 웹사이트를 관리한다. 그는 “일이 많아 힘들 수 있지만 그만둘 계획은 없다. 우리는 푸틴이 죽고 러시아가 침략을 멈출 때 이 프로젝트를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이순신의 연승 이끈 ‘싸움 길잡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 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전라좌수영의 맏형 어영담은 왜수군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돼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일~6월 5일 사천·당포·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 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결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 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에서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 등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방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러, 3주만에 키이우 폭격… “쇼이구, 우크라 내 군부대 방문”

    러, 3주만에 키이우 폭격… “쇼이구, 우크라 내 군부대 방문”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벨라루스 영공에서 키이우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공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접경에서 60㎞ 떨어진 벨라루스의 소도시 모지리 상공에서 전투기 6대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수미 등지로 X22 크루즈 마사일 10여기를 발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전쟁에 완전히 끌어들이려는 행동”이라며 비난했다. 러시아군은 이날도 키이우를 겨냥한 미사일을 발사해 아파트 등 민간 건물을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 등에 따르면 이날 이른 아침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의 9층짜리 아파트와 유치원 부지 등이 파괴됐다. 현지 경찰은 키이우 폭격으로 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이우에 폭격을 가한 것은 3주만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인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 내 ‘특별군사작전’ 지역을 방문해 자국 군대를 검열하고 전투 상황을 점검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이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보도문을 통해 이같이 전하면서 “쇼이구 장관이 러시아군 지휘소들에서 주요 전선의 현 러시아군 상황과 작전에 대한 지휘관들의 보고를 들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쇼이구 장관은 전면적 보급 문제와 군대 임시 주둔지 내 필수 생활 요건 조성 문제 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면서 전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훈장도 수여했다고 전했다.쇼이구 장관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부대를 방문한 일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지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쇼이구 장관은 이번 방문은 4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직접 점검하면서 러시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 보일러실 감금에 눈썹 밀고, 죽은 파리 먹게 강요한 선임병

    보일러실 감금에 눈썹 밀고, 죽은 파리 먹게 강요한 선임병

    군대 후임병에게 죽은 파리를 먹도록 강요하고 보일러실에 감금하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은 선임병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강성수 부장판사는 26일 폭력행위처벌법(공동감금)·특수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A(23)씨에게 최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5~6월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군부대에서 후임병을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업무에 숙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사장 창고에서 청소도구로 후임병의 엉덩이를 때리는가 하면 전등이 설치되지 않은 보일러실에 피해자를 감금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늦게 받아 왔다며 피해자의 허벅지를 가격하는 이른바 ‘마비 킥’을 날리기도 했다. 또 5명이 맡아서 하는 취사장 바닥 청소를 13일 동안 혼자서 하도록 했고 눈썹을 밀면 ‘마비 킥’을 가하지 않겠다며 피해자의 왼쪽 눈썹과 오른쪽 정강이 부위의 털을 모두 제거하기도 했다. 도수체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폭행하고 죽은 파리를 주워서 먹도록 강요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후임병을 여러 차례 폭행하고 감금했으며 파리까지 씹게 했다”며 “피해자가 겪은 고통은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이고 용서를 받지도 못했다. 이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범행의 상당 부분을 자백하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대학생으로 해당 사건 전까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면서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 러 국방부, 긴급 성명 “세베로도네츠크와 인근 지역 완전 점령”

    러 국방부, 긴급 성명 “세베로도네츠크와 인근 지역 완전 점령”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루한스크주(러시아명 루간스크주)의 격전지 세베로도네츠크와 주변 지역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25일(현지시간) 오후 긴급성명을 내고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군대가 성공적 공격 작전 끝에 세베로도네츠크시와 (시 남쪽 외곽의) 보롭스코예시, 보로노보와 시로티노 마을 등을 완전히 점령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베로도네츠크의 아조트 산업지대를 저항 거점으로 바꾸려던 적의 시도는 저지됐다”며 “현재 이 공장 지대는 LPR 부대가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국방부는 또 “세베로도네츠크와 보롭스코예 점령에 따라 루간스크주의 세베르스키 도네츠(시베르스키 도네츠)강 좌안 지역은 모두 LPR의 완전한 통제 하로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세베로도네츠크와 세베르스키 도네츠강 건너편에 마주한 도시 리시찬스크는 루한스크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로, 그동안 러시아군과 LPR 군대는 우크라이나군을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공세를 펼쳐왔다.세베로보네츠크에 이어 현재 완전히 포위된 것으로 알려진 리시찬스크를 점령하면 러시아군과 LPR 군대는 루한스크주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LPR과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의 독립을 승인하고, 돈바스 내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내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했다.
  •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남해안 ‘물길 귀신’ 이순신 함대를 인도하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광양현감 어영담(魚泳潭·1532~1594)은 왜란이 발발했을 때 이미 환갑 나이였다. 종6품 현감(縣監)은 조선시대 지방수령으로서는 품계가 가장 낮은 외관직이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방목(榜目)에 따르면 그는 1564년(명종 19) 갑자 식년시에서 무과에 급제했다. 그런데 급제 이전에 전라좌수영 소속 수군진 여도의 종4품의 만호를 이미 지냈다. 어영담은 30년 안팎이나 서·남해안 일대에서 수군 지휘관과 고을 수령 자리를 이어간 것이다. 어영담이 광양현감에 임명된 것은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직후인 1591년 3월이다. 60세에 왜적의 대규모 침략이 기정사실이었던 시기 군사와 행정을 겸해야 하는 남해안 최전선 고을 수령 자리에 앉은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맏형이자 오랜 수군 경력으로 남해안 물길을 훤히 알고 있었던 어영담은 왜수군과 싸움에서 언제나 길잡이자 선봉장이었다. 이순신은 조정에 올린 장계에 어영담을 두고 ‘경상, 전라 두 지역의 변장을 지내며 물길의 형세를 잘 알고 계책이 뛰어난 사람’”이라면서 “호남이 보전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사람이 한몫을 했다’고 적었다.  어영담을 다룬 역사기록은 매우 소략하다. 광양문화원에서 ‘광양 어영담 현감 사료조사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영담의 일생’은 완전히 재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방목에 거주지가 함안으로 되어 있는 만큼 고향은 같을 것으로 보지만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어영담 스토리’를 제법 길게 소개한 조경남(1570~1641)의 ‘난중잡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출신의 조경남은 13세 때인 1582년 12월 난리를 예견하고 매일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1610년까지 이어진 기록은 인조시대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하는 데도 크게 참고가 됐다. 그럼에도 이 기록의 기본적 속성은 야사(野史)다. 전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남원까지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게 변개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당대 보통사람들의 시각이 투영된 사료라는 뜻이다.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1592년 5월 20일자에 다루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군이 경상도 해역으로 처음 출정해 왜수군을 궤멸시킨 5월 7~8일 옥포·합포·적진포 해전은 물론 5월 29~6월 5일 사천·당포 ·당항포의 대승 소식도 전하고 있다. 조경남이 기록을 그날그날 정리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중잡록’은 다른 기록들과 달리 경상좌수사 원균의 지원 요청에도 출정을 주저하던 이순신의 결심을 이끌어 낸 인물로 어영담을 지목한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팔뚝을 걷어올리고 이순신 장군에게 크게 소리치기를, “영남은 왕의 땅이 아닌가. 이 왜놈은 나라의 적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서 관망이나 하면서 구원을 청하는 말을 듣고도 걱정 않고, 왜적이 온 것을 보고도 마음이 태연한 채 앉아 영남 바다의 군사를 오늘 다 없어지게 만든다면, 내일의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남의 위급한 것을 구해주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왜적을 기다린다면 겁 많고 나약한 게 아니오. 장군께서 헤아려 하시오.” 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경상도해역으로 출정하기 직전 전라좌수영 참모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5월 1일자에는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李純信), 흥양현감(배흥립), 녹도만호 정운 등을 불러 들이니 모두 분격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義士)들이라 할 만 하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뢰한 전라좌수영의 핵심참모들이 한곁같이 울분을 곱씹으며 사령관에게 출정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신 역시 결심이 확고했다는 사실은 이튿날 일기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오정 때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출정을 거부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목을 베겠다는 뜻이다. 낙안군수 신호는 하지만 첫 출전에서부터 전라좌수군의 좌부장으로 나서 이순신이 승리를 알리는 장계에 이름을 첫번째로 올릴 만큼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난중일기’는 5월 3일 정운의 진언이 출정 명령으로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난중잡록’은 어영담을 출정 결정을 이끈 최대 공로자로 부각시킨다. 당연히 어영담도 한시라도 빨리 바다로 나가 왜적과 싸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참모의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팩트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전투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희망사항’이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당시 사람들에게 어영담은 매우 영웅적 인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난중잡록’은 수군의 연승을 두고 ‘어영담의 귀신 같은 지도(指導)를 얻어 전후의 전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했다. 어영담을 ‘물길 귀신’으로 부르는 근거가 됐다. ‘어영담은 무과 급제 이후 영남 바다 여러 진의 막하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바다의 얕고 깊음과 섬 지역의 험하고 수월함, 나무하고 물 긷는 편의와 주둔할 장소 등을 빠짐없이 가슴 속에 그려 두어 수군 함대가 영남 바다를 드나들며 수색하거나 토벌할 때면 집안 뜰을 밟고 다니듯 궁박하고 급한 경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593년 12월 19일 선조가 비변사 및 삼사와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류성룡은 ‘어영담은 수로(水路)에 익숙한 사람이니 일을 위임시켜야 합니다’라고 했다. 어영담은 공인된 ‘물길 전문가’였다. 그에 대한 ‘난중잡록’의 서술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수군의 전공은 어영담이 가장 높았는데도 당상관에 올랐을 뿐, 선무공신이 되지 못해 남쪽 사람들은 다들 애석히 여겼다’ 마지막까지 애정이 담겨있다.  이순신의 모든 해전에서 공을 세운 어영담이지만 1593년 10월 광양현감에서 파직된다. 명나라 주둔군에 군량미를 조달하는 독운어사(督運御使) 임발영이 광양현이 장부보다 600석 많은 양곡을 보관하고 있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순신은 장계를 올려 ‘어영담은 독운어사가 양곡을 임검할 때 바다에 있었다. 그러니 문제는 현감 업무를 대신한 유위장(留衛將)에 있다. 또 약간의 과실이 있더라도 국가적 위기에 의로움을 떨치고 있는 장수를 잃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파직을 막지는 못했다. 전라좌수영은 5개의 수군진과 5개의 연해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답 첨사진, 사도 첨사진, 녹도 만호진, 발포 만호진, 여도 만호진과 순천도호부, 보성군, 낙안군, 흥양현, 광양현이다. 연해 고을을 수군에 편제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병력 충원과 군량미 보급, 전선(戰船) 건조 때문이다. 그러니 연해 고을 수령은 수군진 지휘관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전쟁 상황에서 수군 소속 고을 수령이 전투에 나설 수군의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직분이 아닐 수 없다.  ‘난중일기’에는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휘하 군사나 관원을 군율로 처단하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런 이순신이 어영담을 감싼 것은 개인적 비리가 아니었다는 반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임발영은 임발영대로 명나라 군대에 군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들 군영에 끌려가 수모를 당하기도 했으니 광양현의 ‘장부외(外) 양곡’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어영담은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잇따른 상소로 1594년 2월 전라도 주사조방장으로 복귀한다. 주사(舟師)는 수군을 가리키는 조선시대 용어다. 하지만 다음달의 제2차 당항포해전은 어영담의 마지막 싸움이 됐다. 수군 진영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어영담의 병세가 악화했고 결국 4월 9일 눈을 감았다. 이순신은 이 날짜 ‘난중일기’에 ‘이 애통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랴’라고 했다.  
  • 루간스크공화국 “돈바스 요충지 리시찬스크 사실상 포위했다”

    루간스크공화국 “돈바스 요충지 리시찬스크 사실상 포위했다”

    러시아군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군대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요충지 리시찬스크를 사실상 포위했다고 LPR군 대변인 이반 필리포넨코가 24일(현지시간) 러시아 TV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리아노보스 통신에 따르면 필리포넨코는 인터뷰에서 “오늘 (리시찬스크 남쪽의) 거주지역 히르스케(러시아명 고르스코예)가 점령됐고, 졸로테(졸로토예) 점령도 마무리됐다”며 “현재 이 지역들에선 잔존 전투원 색출 및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리신찬스크 주변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으며, 도시는 사실상 전술적 포위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크라이나군은 리시찬스크로 연결되는 보급로를 차단당했으며, 병력·군사장비 지원과 부상병 이송을 위한 경로도 막혔다고 했다. 전날 모스크바 주재 LPR 대표는 리시찬스크에 우크라이나군 약 7000명이 남아있다고 밝힌 바 있다. 리시찬스크는 러시아군이 사실상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강 건너 세베로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루간스크주)의 주요 요충지다. 이 2개 도시가 완전히 점령되면 루한스크주는 러시아군과 LPR 군대 수중에 떨어진다. 러시아군이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까지 점령되면, 러시아는 당초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하며 목표로 제시한 돈바스 지역(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 장악을 마무리하게 된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크림에 뒤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선포했던 돈바스 지역 DPR과 LPR의 독립을 지난 2월 말 승인했다. 이어 곧바로 돈바스내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했다. DPR과 LPR 자체 군대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점령 지역 확대를 위해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전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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