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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뮬레이션게임 「일몰」

    ◎DMZ긴장 틈타 한반도 침략/일본군을 격퇴하라 「일본에게 빼앗긴 한반도를 탈환하라」 다음달 중순 출시될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일몰」은 일본군이 한반도를 점령했다는 가상시나리오에 따라 만들어졌다.일본군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수복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다.「일몰」은 일장기의 해가 떨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 프라모델로 만들어 사실감을 높였고 소규모 부대간의 게릴라전등 전투장면이 특히 볼 만하다. 아군과 적군이 번갈아 공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계속 움직이며 전투를 벌이는 실시간방식이라 게이머는 잠시도 한눈 팔 수 없다. ▷게임의 배경◁ 북한내부의 분열과 비무장지대에서의 잦은 충돌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다.일본 군부내의 군국주의세력은 이때를 틈타 한반도를 침공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들의 함정에 빠진 한국군 상륙전단은 일본 민간인거주지역을 훈련지역으로 오인하여 상륙을 개시하다 일본자위함대에 모두 격침된다. 외무성을 통해 정식으로 선전포고한 일본은 이어 해상자위대를 한반도 남해안지역에 상륙시킨다. 한국군은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하지만 점점 어려움에 빠지고 이때 몇명 남지 않은 특수부대원과 자원자가 비정규부대를 결성,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한다. ▷게임의 특징◁ 적(일본군)을 전멸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일정시간 안에 주어진 인원으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게임이다.시간내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건이 잇따른다. 적의 위치는 아군의 시야에 들어와야 확인할 수 있고 숲보다는 풀밭,풀밭보다는 평지에서 더 먼거리를 관측할 수 있도록 고도개념을 적용하는 등 사실감을 높였다. 웅장한 사운드가 전투 전후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헤비메탈의 엔딩곡은 박진감이 그만이다. ▷캐릭터와 주요임무◁ 보병·포병·무전병·수색대·저격병 등이 전투에 참가한다.이들은 트럭·장갑차·탱크·보트·헬기 등 수송수단으로 정찰활동,거점확보,적진침투,적의 보급로 차단,장비탈취,포로구출 등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철조망·바리케이드·드럼통 등 지형지물을 적절하게 이용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있다.
  • 한인 희생자 2만1천명 야스쿠니신사 일방 합사

    ◎일제 피해국 모독 범죄행위 지적 【도쿄 연합】 일본 우익세력이 「천황제」 유지의 성지로 떠받들고 있는 야스쿠니(정국)신사에 과거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돼 희생된 조선인이 여전히 합사돼 있어 합사대상 제외 등의 조치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9일 야스쿠니신사측에 따르면 현재 신사에 합사돼 있는 조선인은 모두 2만1천1백81명으로,신사측은 후생성의 사망자명부 및 행방불명자와 사망확인통지 등을 토대로 이들을 비밀리에 합사해왔으며 지금도 합사는 계속되고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과거 식민지국이던 대만인 희생자도 마찬가지로 합사해왔다. 이같은 일방적인 합사는 야스쿠니신사가 과거 「천황 이데올로기」와 군국주의 발양의 본산이었던 데다,그동안 한국·중국 등이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를 비롯한 A급전범 등을 신으로 받들고 있는 신사에 대한 일본 각료들의 참배를 침략전쟁 정당화등으로 비판해왔다는 점에서 피해국민의 정서와 영혼을 모독한 일종의 범죄적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중,일 군국주의 부활 경고/정부·언론

    ◎“신사 참배 등서 야욕 노골화” 비난 【북경 로이터 AFP 연합】 중국은 일본의 일부 각료들이 2차대전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고했다. 심국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부 전범들의 위패가 봉안된 야스쿠니신사에 일본 각료들이 참배한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을 겪은 중국 인민들의 감정을 또다시 심각하게 손상시켰다』며 분노를 표시하고 『우리는 일본이 진지하게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 회복에 나서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관영 차이나 데일리지도 『일본에서의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뒤늦게 그것도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한 얄팍한 사죄마저 군국주의자들의 망언 횟수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은 많은 일본 전범들이 정계에 진출해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에 군국주의가 일본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출몰하고 있다며 『그들은 강한 민족적 우월성을 감추고 있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신념에 보다 가까워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통신은 또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초강국」이라는 인식이 팽창하고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일본에서 군국주의의 부활과 확산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했다』고 덧붙였다. 중국은 일본이 2차대전 당시 위안부 배상을 위해 국가기금이 아닌 민간기금인 「평화를 위한 아시아여성기금」을 이용하는 것도 『이중적인 얼굴』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의 전쟁배상 요구 위원회의 한 지도자는 『진정으로 배상할 의사가 있다면 정부가 직접 해야 하며 하시모토 총리가 위안부에게 개인적으로 사과서한을 보낼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 각료 신사참배 반역사 행위”/여야의원 17명 공동성명 전달

    여야의원 17명은 16일 하시모토 일본총리에 이어 일본각료 6명과 국회의원 82명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과 관련,강력히 항의하는 공동성명서를 내고 이를 일본대사관측에 우편으로 보냈다. 이들은 『일본 집권자들의 참배를 보며 일본 권력층의 퇴영적이고 역사의 교훈을 도외시하는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이는 반역사적인 행위로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우리정부가 일본정부에 엄중히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참여의원들은 신한국당 서석재 손학규 김문수 홍준표,국민회의 김근태 임채정 이상수 이길재 방용석 박상규 장영달 이성재 조성준,자민련 정우택,민주당 장을병 김홍신,무소속 홍사덕 의원 등이다.
  • 일 군국주의 부활하는가(사설)

    패전 51주년이 되는 15일,일본 도쿄는 사뭇 추모와 경배의 분위기였다고 한다.6명의 현직각료와 1백83명의 현역의원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뿐 아니라 야스쿠니신문(신문) 입구에는 불타는 전투기에 몸을 싣고 미군 함정을 향해 돌진하는 가미카제특공대의 모습등 섬찍한 전쟁기념화전이 열리고 있었다.또 군국일본군의 제복에 대형 일장기를 앞세운 2차대전 참전병사의 추모행사도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 규모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86년이래 중단된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지난달 29일 재개된 데다 전후 한때 금기시돼오던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가 이제 공식화돼가고 있다. 『일본사람이 일본의 가미사마(신)를 참배하는 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일본인이 있으나 2차대전의 A급전범이 추모의 대상이 된다면 그 전범으로부터 참략을 받고 수없이 죽어간 피해국민은 어떻게 되는가.『태평양전쟁이 백인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면 백인 아닌일본인의 침략을 받은 다른 아시아인은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도쿄의 「8·15」분위기가 일본의 모든 것이라고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일본의 시사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일본국민의 74%는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정책이 건전한 시민의 상식에서가 아니라 소수 강경론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는 사실에 있다.도조(동조)의 군국주의 하에서도 이를 비판하던 세력이 일본내에 없었던 게 아니다. 일본인의 마음속에 대국의식이 확대되는 추세에 있고 이것이 일본의 경제력과 결부돼 어떤 결과를 빚을지에 대해 우리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세계는 일본의 보수화 내지 군국화에 항상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 광복 51돌과 한일관계(사설)

    광복 51주년과 한·일국교수립 31주년을 맞는 올해 한·일양국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유치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의 큰 발판을 마련했다.앞으로 양국이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진지하게 공동노력해 나간다면 양국간에 켜켜이 쌓인 반감과 편견을 털어버리고 국민적 화해를 통해 진정한 선린의 신시대를 열수 있을 것이다. 한·일양국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냉전체제하의 국제질서 속에서 꾸준히 상호협력관계를 다져왔다.특히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 현안으로 등장한 이후 양국이 미국과 함께 3각공조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매우 특별한 협력관계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불행한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착실히 가꿔 나가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속으로 일본을 안심할 수 있는 이웃으로 신뢰하기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일만 상기해보자.하시모토(교본용태낭)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참배는 우리에게일본 군국주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재일교포를 잠재적 적으로 표현한 가지야마 관방장관의 극언은 어떤가.한국인을 속죄양으로 삼았던 70여년전 관동대학살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한·일간의 갈등은 기본적으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문제 해결의 큰 책임이 가해자인 일본쪽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그럼에도 과거의 침략을 합리화하거나 피해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망언소동이 빈발하고 있다는 건 일본 지도층의 잘못된 역사인식과 그 속에 감춰져 있는 팽창주의의 반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일본이 우리의 참된 이웃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선린관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을 것이다.
  • 일 민족주의 부활을 경계한다(박화진 칼럼)

    『근대 일본사의 일관된 목표는 일본민족의 우월의식을 바탕으로한 아시아 제패였다.도쿠가와 막부 말기에는 「아시아 연대」로,메이지 시대에는 「대아시아주의」로,그리고 쇼와 시대엔 「동아연맹­대동아 공영권」이란 모습으로 나타났다.이름만 다를뿐 그것은 일본이 지배하는 아시아 건설이었고 일본의 번영을 위한 아시아의 희생을 의미하고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목표의 추구가 결국 2차대전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아시아인과 일본인의 희생을 가져오는 좌절의 결과를 낳았다』 일본 근대정치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의 「일본의 국가주의」란 저서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다시 8월이고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기념일인 51번째의 「8·15」를 맞으면서 점점더 공공연해지고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민족주의 부활을 상징하는 총리·각료 및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및 종군위안부 대응,극우파의 독도영유주장 한국대사관 자동차테러 그리고 계속되는 각종 망언소동 등을 보면서 다시 한번 되새기고 음미하게 되는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수 없다. 야스쿠니(정국)신사는 무엇이며 우리와 중국등 아시아 이웃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총리를 비롯한 일부 각료·정치인들은 해마다 기어이 그곳을 참배하려드는 것인가.야스쿠니신사는 도쿄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2백50여만명의 일본전몰자 위패가 안치된 말하자면 일본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메이지 유신 이듬해인 1869년 「초혼사」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야스쿠니신사로 개명된 것은 그 10년 뒤로 「국사로 죽은자」를 이곳에 합사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일본총리및 각료들의 참배가 아닌가.그런데도 해마다 이웃나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문제가 되는것은 그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배후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를 비롯 군국일본을 주도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패전후 연합군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단죄당한 7명의 A급전범 위패도 지난 78년부터 합사되어 있다.현직총리나 각료가이곳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군국일본의 침략전쟁을 공인하고 그 주모자들을 추도·추앙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독일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히틀러와 나치스를 공인하고 추모·추앙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특히 48년 처형 당하기전 45년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도조는 군국주의 일본이 범한 과오와 지은 죄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사죄나 반성도 없이 다음과같은 독기어린 유서를 남긴 인물이다.『일본은 힘이 모자라 졌을 뿐이다.나는 이 사실을 인정한다.하지만 영미국인 당신들은 원자탄으로 죄없는 무수한 비전투원을 죽였다.나는 이 사실을 고발하지 않을수 없다.일본국민은 힘이 모자라 졌지만 조국은 불멸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일본은 앞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아시아를 위한다는 구실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을 침략했는가 하면 그를 통해 확립한 아시아패권을 지키기위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에 참을수 없는 재난과 희생을 강요한 일제는 전혀 잘못이 없다는 너무도 당당하고 오만한 자세가 아닌가.그러한 그의 78년야스쿠니신사 합사는 「사실상의 사면」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총리와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곧 그들 전범과 그들의 생각,그들이 이끈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참배요 공인이며 「공식사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일본총리와 각료의 끈질긴 야스쿠니신사 참배노력은 입만 열면 사죄를 하고 곧바로 망언으로 그것을 뒤집는 오늘의 일본도 결국은 지난날의 군국주의·제국주의를 내심으로는 결코 잘못된 과오로 생각지 않고 있으며 도조가 지적한 것처럼 힘이 모자랐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행동의 증거라 할수 있다.과거를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그러한 행동을 되풀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나 정황증거로 미루어 일본은 정치·군사대국화와 새로운 아시아지배의 패권추구를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그것은 이제 어느 누구도 어쩔수없는 방향으로 보인다.구미의 장벽에 막혀 탈구입아로 돌아선 일본은 다시한번 아시아를 기반으로 51년전의 좌절을 설욕해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갖게한다.이미 중국과의 아시아 패권경쟁은 시작된 조짐이다.우리에게도 냉전시대의 자유우방은 아닌 느낌을 주고있다.일본민족주의에 희생당한 구한말의 비극을 되풀이않고 우리와 아시아의 21세기 평화와 번영을 지킬수 있기 위해 무엇보다 긴요한 것은 오로지 정확한 일본파악과 부국강병의 빈틈없는 자강노력임을 명심해야 할것이다.총리·각료 등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 최근 일본이 보이고있는 변화는 그것을 일깨우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것이다.
  • 위안부문제 당당히 풀라

    종군위안부문제가 일본군국주의 침략전쟁이 낳은 범죄중에서도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한 반인륜적인 죄악이었음은 시비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아직도 엄연히 살아 있는 수많은 피해자가 알고,그들을 괴롭힌 가해자가 알고 있으며,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4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반세기가 지난 이 사건과 관련,이른바 「쿠마라스와미보고서」를 내고 일본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못박은 것이다.유엔은 또 이 보고서에서 일본정부는 특별행정재판소를 설치해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야 하고 개별적으로도 공식적으로 사죄해야 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위안부문제는 이처럼 국제적으로 이미 심판이 끝난 사안이다.그런데 일본은 처음에는 이 문제가 날조된 허위사실이라고 버티다 사태가 어렵게 되자 지난해에야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란 민간단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민간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이 단체가 지난 월말께 관계자들을 서울에 보내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접촉,개인적인 배상을 시도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등 관련단체의 항의를 받고 돌아간 것으로 보도했다. 유엔은 물론 한국·필리핀·대만 등지의피해당사자들도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정부는 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배상문제는 일단락된 것이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배상이나 사죄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을 생각할 때마다 첫단추를 한번 잘못 끼운 인과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침략전쟁책임을 회피하려던 첫단추 때문에 일본은 반세기를 넘기고도 일의 고비마다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기회는 아직도 남아 있다.지금이라도 일본은 전쟁책임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국제사회의 용서를 받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그렇게 되면 위안부문제도 자연히 풀리게 될 것이다.
  • 하시모토와 군국일본 망령(사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 참배는 우리에게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일본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건설적 협력관계를 지향하려는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기도 하다.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 있어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군국주의와 팽창주의의 상징일 따름이다.거기엔 청일·노일전쟁·만주사변의 전몰자로부터 태평양전쟁의 A급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에이키(동조영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의 위패가 안치돼 있지 않은가.그런 신사를 참배한다는 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또한 피침국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측면을 헤아려,하시모토 총리는 참배를 자제했어야 마땅하다. 일본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지난 85년 나카소네(중증근강홍) 당시 총리가 처음 강행했다가 국내외의 심한 반발에 부딪쳐 중단했던 것이다.그걸 11년만에 재개한 의도가 무엇인지 하시모토총리에게 묻고 싶다.특히 전임자들과 비교할 때 역사인식의 후퇴를 보여준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우리는 하시모토 총리가 2년전 통산장관시절 『2차대전을 침략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발언해 물의를 일으킨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시모토 총리는 이번 참배에 대해 자신의 59회 생일을 맞아 개인자격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우리에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으로 비쳐지고 있다.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이라고 기입한 것이나 오는 10월 다시 참배할 계획이라는 발언은 그동안 금기시되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서서히 공식화하려는 기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내 상황을 보더라도 하시모토의 참배는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기가 어려워 착잡하다.특히 일본의 정치대국 추구와 더불어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독도및 첨각열도 영유권주장 등 팽창주의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 같아 우리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 중·대만 협력 일 군국주의 막자(해외사설)

    일본의 우익인사들이 최근 조어도(일본명 센카쿠열도)에 대한 주권의 소유를 주장하며 등대를 설치했다.이 사건은 조어도를 둘러싼 중·일 사이의 해묵은 분쟁을 재연시켰다.중국과 대만,홍콩 등에선 반일 시위가 있었고 중국인들은 분노했다. 지난 72년 미국정부는 불법적으로 조어도의 관할권을 일본에게 넘겨주었다.당시 홍콩과 대만,해외 중국인들도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었다.중·일수교가 이뤄진뒤 북경정부는 영토분쟁을 밀어두었지만 일본은 조어도 문제로 소란을 일으켰다.이같은 일들은 일본 군국주의적,팽창주의적 야심을 드러낸 것이며 그저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일본 우파인사들의 조어도 등대설치사건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일본은 이 섬을 2백해리 경제수역의 범위안에 포함시키려 노력중이다.게다가 그들은 중국대륙에 이어진 사주에 대한 관할권 확보도 시도하고 있다.조어도의 등대사건직후 일본정부는 2백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 곧 발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일본정부와 우익이 함께 「쇼」를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지난 5월 미국과 새로운 안보조약을 경신한뒤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 증대에 관한 시도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 지지에 고무받은듯 보인다.그러나 일본의 이같은 행동은 중국과 대만사이의 관계 악화를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경제원조를 필요로 하는 중국과 독립및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는 대만….이 틈바구니를 일본은 놓치지 않고 파고들고 있다.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처하는 길은 무엇인가.지난날 일본의 침략을 공산당과 국민당의 국공합작으로 분쇄했듯이 새로운 시기의 중국과 대만의 합작,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일 총리의 신사 참배/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가 29일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일본유족회의 회장과 「모두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회장을 지낸 하시모토 총리가 총리재임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주변국의 우려였다.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일본의 총리가 재임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85년 8월15일 참배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이후 처음이다.85년 국내외의 반발은 매우 컸었다.때문에 다음해부터는 총리의 공식참배는 줄곧 억제돼 왔다.하시모토는 이러한 국내외의 양해 사항을 일거에 무시해 버렸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주변국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 명료하다.2차대전의 전범들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그곳에는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희생된 병사,청일전쟁,러일전쟁을 거쳐 2차대전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일본인들이 모셔져 있다.일본인들중에는 이들이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고귀한 희생을 치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전범들이다.전범들을 희생자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전범은 군국주의와 인간을 재료나 도구로 생각하는 비인도주의의 화신이었다.따라서 전범들을 떠받드는 야스쿠니신사는 가해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된 부분을 상징한다. 하시모토는 참배후 무슨 신분으로 갔느냐,사적 참배냐 공적 참배냐 등등의 질문에 대해 「시시한 질문」이라고 일축하면서 「내각총리대신」 자격임을 분명히 했다.사적 참배와 공적 참배를 가르는 기준으로 거론되는 「관용차를 탔느냐,개인차를 탔느냐」,「무슨 돈으로 참배금을 냈느냐」 등등에 대해 『경호상 관용차를 탔지만 참배금은 내지 않았다』고 답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사소한 형식의 질문은 시시하다.그가 총리의 자격으로 참배했다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다.그의 말에는 주변국들의 우려에는 괘념치 않고 가슴을 쭉 내밀며 「과거따위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자신감이 배어있는 듯하다.사회의 총보수화,군사적 역할 강화 책동,의혹을 받고 있는 핵물질 축적,보수우익단체들의 발호 등 일본에대한 불신감이 거둬지지 않는 가운데 하시모토는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 실존인물 모델 장편 「장강」 1·2 펴낸 박영한씨

    ◎“우리 현대사의 독특한 인물형 조명”/이념에 중독됐던 세대 해독제처럼 신선 『비인간적 이데올로기라면 어느편의 것이든 맞서 싸웠던 그릇 큰 한 인물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장강」을 더듬어보려 했습니다』 작가 박영한씨(49)가 1922년생 실존인물의 파란만장한 삶을 모델로 장편 「장강」1∼2를 창공사에서 펴냈다.이두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일제,해방공간의 소련점령,분단전쟁 등 질곡의 역사를 허무하다 싶을 정도의 저돌적 반항으로 통과한다.함북 회령에서의 소학교시절 벌써 만적단사건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하는가 하면 40년대초 일본유학당시엔 군국주의 막바지의 발악속에서도 인물과 어깨를 규합,항일결사 「혈우회」를 조직한다.해방이후엔 소련 점령군의 비인간적 통치에 대들다 5년간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르기까지 한다. 『주인공은 뚜렷한 이념적 지향도 없이 항일,반공,남한비판 등을 오가다 깨지기만 하지요.하지만 맨주먹과 인간애 하나로 살아온 이 돈키호테에게서 이념으로 중독됐던 지난 연대의 해독제같은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소련유형생활을 그린 2권 전반부는 스탈린체제 하층부 삶의 또다른 진실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한국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 불러볼만 하다. 박씨는 『한국현대사를 복원하는 굵직한 역사물의 매력』을 말하면서도 『먼젓번 장편 「키릴로프의 사랑」에서처럼 존재의 내면탐구도 병행해나가겠다』고 앞으로의 소설계획을 밝혔다.〈손정숙 기자〉
  • 일 침략 미화 「게임」 망신살

    ◎중 현지고용 기술자 출근거부 투쟁 휘말려/“미드웨이전 승리” 컴퓨터 프로 선뵈려다 일본의 한 전자게임 메이커가 중국에서 태평양전쟁 시뮬레이션 전자게임을 만들려다 중국인 기술자들로부터 제작을 거부당한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제의 전자게임 메이커는 일본현지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에이사.이 회사는 이미 같은 주제의 게임프로그램 「제독의 결단」 「제독의 결단 2」등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에 패배한 사실과는 달리 미드웨이 해전등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사용,이긴다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인기를 모은바 있다. 이에따라 이 회사는 중국 천진에 있는 자회사 「고에이연건공사」를 통해 지난 5월중순쯤부터 후속 프로그램인 「제독의 결단 3」을 제작하려 했고 이 프로그램의 핵심인 전함 야마토호와 전범인 도조 히데키등 일본제국군의 무기와 인물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할 것을 중국인 직원에게 지시했지만 중국인 기술자 4명은 『군국주의적 소프트에 종사하는 것은 중국인 감정을 해친다』면서 반발,이를거부했다. 책임자인 일본인부사장의 설득에도 이를 거부한 이들은 마침내 출근거부등의 투쟁을 벌이다 해직돼 세간의 관심을 모으게 됐는데,이번 사건으로 최근 일본에서 태평양전쟁이나 미래의 가상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소설·전자게임이 붐이 이는 등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는 시점에서 침략사를 미화하는 내용의 무분별한 붐에 자그마한 경종이 된 셈이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한·일정상 제주회담­현안처리

    ◎과거사/일 총리 “월드컵계기 미래 열자”/역대총리 보다 사과수준 떨어져/위안부­“금전보상 등 피해자 납득이 우선”/독도­일,「영유권」 언급 회피… 의제 제외 23일 끝난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총리간의 정상회담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그러나 한·일간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과거로부터의 현안」이 산재해 있다. ▷과거사◁ 하시모토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과거의 무거운 짐과 미래에의 책임으로부터 도망할 수 없다』는 총리 취임뒤의 발언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 전반적인 과거사에 대한 인식표명을 대신했다.하시모토 총리는 『패전당시 국민학교 2학년생이었으며 당시 양국간의 불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하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예로 들어 『그런 행위가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줬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하시모토총리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미래의 꿈을 만들고자 한다』는 말로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다. 이같은 하시모토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창씨개명,위안부 등 과거사의 일부 단면에 대해서는 공식사과를 했으나 일제의 한국강점과정,2차대전의 성격,한국민의 피해 등 일본군국주의의 과거침략사 전반에 대한 사과는 표명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이는 지난해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전 총리의 「전후 50주년 특별담화」­『통렬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수준에도 미흡하고 지난 90년 5월 한일정상회담당시 가이후총리의 언급­『과거의 한 시기…고난과 슬픔을 체험하셨던데 대하여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린다』­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한마디로 역대 일본총리의 『과거사 사과』수위에 비해서는 상당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군대위안부◁ 하시모토 총리는 전반적인 과거사 발언과 함께 『군대위안부문제 만큼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준 일은 없다』면서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을 한다』고 밝혔다.군대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총리가 구체적으로사과한 것은 미야자와·호소카와 총리에 이어 세번째이다. 한·일외무장관 회담에서는 군대위안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견교환이 있었다.이케다장관은 군대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목표로 설립한 「아시아의 여성을 위한 평화국민기금」이 결코 순수 민간기금일 수는 없으며 정부도 의료,복지분야를 지원하는 민관의 「2인3각체제」라고 강조했다.일본측은 기금을 통한 피해자보상과 총리명의의 위로서한을 한국측이 받아들이기를 희망했다.이에 대해 공장관은 『일본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에 피해자 개개인이 납득을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면서 『일본정부는 피해자 개인과 단체의 주장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정상회담장인 제주신라호텔 주변에서는 군대위안부 희생자 단체 회원 20여명이 나와 『정신대문제 해결없는 정상회담에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독도◁ 이번 회담에서는 애초부터 독도문제가 의제에서 제외됐다.하시모토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다.그러나 회견 모두발언에서 『유엔해양법조약의 체결과 관련해서는…영유권 문제와 분리하여 교섭을 촉진…』이라고 걸치고 넘어갔다.일본측이 독도문제를 계속 양국간의 현안으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의 반영이라는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일본왕 방문◁ 역시 이번 회담의 의제에 포함되지 않고 김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거론됐다.김대통령은 『양국 국민의 환영분위기속에 방한할 수 있는 시점』을 강조하며 아직은 여건이 적당치않다는 입장을 시사했다.양국관계에서 일왕의 방한이 갖는 정치적 무게는 매우 크다.일본은 일왕이 방한하면 그로써 한일간의 과거사 논란은 일단락된다는 인식을 갖고있는 것 같다.따라서 우리 정부로서는 일왕의 방한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어찌보면 양국의 과거사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갖고있는 하나의 카드라고도 할 수 있다.〈서귀포=이도운 기자〉
  •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송복 연세대교수·정치사회학(시론)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명백히 우리가 배워야 할 나라다.일본은 많은 장점과 많은 결점을 동시에 가진 나라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루드 베네딕트 교수의 말대로 일본은 「국화와 칼」이다.국화를 가꾸듯 탐미주의적이면서도 칼을 갈듯 비정하고 잔폭한 면이 있다.유례를 찾기 어려울만큼 예의바른 사람들이면서 「그러나 또한 불손하고」,성실하고 관용이 있으면서 「그러나 또한 협소하고」,유순하고 복종적이면서 「그러나 또한 명령에 잘 따르지 않는」「벗올소」(but also)라는 2중성을 가진 사람들­.그 사람들이 바로 일본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대립적 모순은 베네딕트 교수의 기술속에선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잘 짜여진 진실이 되어있다. 그의 기술대로 일본인들은 최고로 공격적이면서 비공격적이고,군국주의적이면서 자유주의적이고,불손하면서 예의 바르고,완고하면서 적응성이 풍부하고,보수적이면서 새로운 것을 즐겨 찾는 사람들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어떻든 일본은 오늘날 경제대국이면서 문화대국이다.한국 사람들은 일본이 경제대국이라는 것은 잘 인정하면서 문화대국이라는 것은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문화에 관한한 옛날에도 우리가 선진이었고,지금도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다.우리는 일본을 객관적 대상에 올려놓고 바라보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대개의 경우 우리는 꾸부러진 주관으로 일본을 바라본다.「근친증오」에서 보듯,서구에 비해 우리와 너무 가까운 일본을 우리는 주관적으로 늘 미워한다.일본에 대한 주관적 증오는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거의 생리화되어 있다.그래서 물질의 성장과정인 경제는 인정하지만 정신과 마음을 함께 하는 문화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일본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심정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분명히 문화적으로 대국이 되어 있다.일본인들의 독서량과 독파력,일본인들의 언어 조어력과 새로운 개념,창의력,그들의 유려한 필치와 산문구사력,그것은 우리와 결코 비교할 바가 아니다.우리는 그들에 비해서 너무 떨어져 있다.일본은 서구를 추종하다 이미 서구를 추월했다.우리는 아직도 서구를 추종하면서 추종조차도 아직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 공동개최를 통해 일본을 잘 배워야 한다.무엇보다 그들의 문화,그중에서도 그들의 사회적 태도와 행동을 배워야 한다.일본은 적어도 그들간에는 「공인의식」(Pubilic mind)이 투철해 있는 사회다.공인의식은 특정인 소수에게 하는 태도와 행동이 불특정인 다수에게도 그대로 옮아져 있는 것을 말한다.특정인 소수는 특별히 잘 아는 소수의 사람들­가족이라든지 친지 친우 이웃등이다.불특정 다수는 전혀 모르는 일반 대중이고 일반 국민들이다.잘 아는 친지 친우에게 하듯 전혀 모르는 일반사람들에게도 예의를 똑같이 지키고,친절한 태도와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 공인(Publicman)이다.잘 아는 소수에게 하듯 잘 모르는 다수에게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 것이 이 공인의 마음,곧 공인의식이다. 우리는 이 공인의식이 아직도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우리는 잘 아는 사람과 잘 모르는 사람을 너무 차별화한다.우리는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끼리끼리 뭉쳐 파당지우려는 비사회적 태도와 행동이 몸에 배어있다.우리는 잘 모르는 다수에 대해서 너무 마음이 닫혀있다.닫혀 있을뿐 아니라 너무 불친절하고 무례하다.그리고 야박하고 각박하다.희생과 봉사는 차치하고 적개심과 공격성마저 띠고 있다. 우리의 매년 고소고발 사건은 일본의 60배가 넘는다.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95년도 일본의 고소고발사건은 1만2천건에 불과한데,우리는 72만건을 상회하고 있다. 일본인구가 우리 인구의 약 3배라는 것을 감안하면,인구비례로 고소고발사건은 우리가 일보의 1백80배나 된다.기가 막힌 나라다.이러고도 월드컵을 단독개최하자고 나섰고,그리고 북한동포를 어루만지겠다고 하고 있다. 일본을 배우자.그들의 공인의식을 배우고,그들의 친절을 배우고,그들의 예의를 배우고,그들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배우자.우리도 이만하면 남을 위해서 베풀고 남을 위해서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다.그 여력을 이제 사회와 문화에 쏟자.
  • 아태평화 위협하는 「미·일 신안보선언」/여신(지구촌 칼럼)

    ◎일 군사대국화·해외파병 구실 제공 우려 일본과 미국 정상들이 지난달 17일 도쿄회담에서 서명한 일·미안보선언(신안보선언)이 아시아·태평양지역 국민들의 각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미안보조약은 지난 51년 체결된후 60년 수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이 조약은 2차대전뒤 패전국 일본이 미국의 핵보호아래 체결한 것으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강대국 대결에 따른 냉전의 산물이다.그러나 옛소련의 와해와 냉전의 종식으로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위협은 더 이상 존재하지않게 됐다.국제정세도 명확히 긴장완화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이는 일·미안보조약 역시 그 존재이유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일본과 미국은 도리어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안보체제와 군사동맹을 강화했으며 그 협력범위를 확대했다.그러한 결과는 신안보선언의 그럴싸한 수식어뒤에 숨은 실제 목적이 무엇인지를 의심케 한다. 신안보선언뒤 「일·미안보체제의 질적변화」,「역사적 분기점」등 다양한 국제적 논평이 나왔다.그렇지만 필자는 이번 선언의 특징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우선 기존 일·미안보체제가 일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라면 이번 선언은 일본의 안전보장의 필요성을 넘어 전체 아·태지역의 안전보장까지를 군사동맹의 임무 테두리안에 집어넣었다는 점이다.더욱이 일·미안보체제가 「아·태지역 번영의 기초」라고까지 선언했다. 또 일·미안보조약의 범위가 대대적으로 넓어졌다는 사실이다.원래 쌍무 방위적 성격의 조약이 아·태지역 전체라는 범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긴급사태에 대한 공동대응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쌍방의 군사행동을 전체 동북아시아로 확대한 것은 장래 일본의 해외파병 구실을 제공한 것이다.그러면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인가.일본정부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어떤 관계자는 필리핀 이북지역을 지칭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동남아와 북양주까지를 포함한다고 말한다.그러한 다양한 의견속에서도 공통점은 일본이외의 아·태지역까지 일·미안보조약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어떤 평론가는 신안보선언은 일본과 미국이 군사동맹을 결성한 것이며 이를 핵심으로 전체 아·태지역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일·미안보체제는 아·태지역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그리고 안정을 보장할 수 있을까.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일본과 미국 두나라의 군사동맹 강화는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여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이때문에 아·태지역 일은 이 지역 각국 국민이 결정해야하며 어느 누구도 지역 패권을 행사해서는 안된다.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은 어떤 대국의 군사적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각국의 협력과 공동노력에 달려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미국은 냉전의 산물인 일·미안보조약체제와 쌍무 군사동맹의 강화를 통해 아·태지역의 신질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한 일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일본의 한 교수는 그동안 일·미관계는 명확한 역할분담아래 움직여 왔다고 지적했다.일본은 방어적 역할을 맡고 미국은 공격능력으로일본의 역할을 보완해왔다는 것이다.그러나 신안보선언은 그러한 역할분담의 시대가 이미 끝났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그 예리한 칼을 다시 사용하도록 재촉하고 있다.일본무사도의 칼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아시아 각국의 국민들은 아직도 일본군국주의자들의 날카로운 칼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고 중국의 대만등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으며 2차대전중 많은 나라 국민들에게 범죄를 저질렀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국내의 일부세력은 오늘날까지도 침략역사를 인정하지않고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을 외면하고 있다.오늘날 일본은 이미 상당히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국방예산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무기·장비도 세계 일류다.이러한 상황아래서 일본이 다시 아시아 각국 국민의 머리위에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면 어떻게 안심할 수 있을까. 전후 일본헌법은 일본이 평화발전의 길로 가도록 규정했다.헌법9조는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무력사용의 영원한 포기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이것은 수천만 인명피해의 대가로 얻어낸 냉혹한 역사경험의 결산이며 일본국민의 최대 이익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하지만 일본 평화헌법은 지금 험난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신안보선언중의 일부 내용은 사실상 평화헌법의 규정을 넘어선 것도 있다.일본 국내의 일부 세력들은 이때문에 공공연히 헌법개정을 주장하며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군사대국은 일본국민들에겐 매우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일본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를 주시해야 한다.
  • 일의 아태군사역할 경계한다(박화진 칼럼)

    일본은 강성해지면 언제나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넘보곤했다.중국을 치겠으니 길을 열라며 조선을 유린한 임진왜란은 말할것없고 금세기초 러시아·중국과의 전쟁 및 한반도강점과 식민지화등이 그것을 증거하는 역사다.「역사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결코 잊을수 없으며 절대 잊어서도 안될 것이란 생각을 최근 자주 하게 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물론 역사란 반드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다.일본이 당장 군사적으로 한반도를 넘보기 시작한것도 아니다.그럼에도 한반도와 중국대륙에 대해 일본이 범한 과오의 역사를 새삼 상기하게 되는것은 탈냉전이후 지난날을 방불케하는 시대상황 및 동북아정세의 신전개,특히 일본의 변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섬나라의 유리한 자연 및 안보여건속에 서양문명의 한발앞선 수용을 기초로 강성해진 군국주의 일본이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석권,동북아패권을 장악한데 이어 미국에 도전했다가 임진왜란때같은 패배를 당한 것이 반세기전이다.그리고 지난 50여년동안 전승미국 보호하의경제건설에 집중함으로써 경제대국건설에 성공한 것이 오늘의 일본이다.다시 강성해진 일본이 이제부터 또 어떻게 나올 것이며 어디로 갈것인가.그것이 오늘의 우리는 물론 세계의 비상한 주목거리가 되고있는 것이다. 오늘의 일본은 왜구시절의 해적 일본이나 무력통일을 달성한 도요토미시절의 사무라이국가 일본도 그리고 19세기 제국주의 식민지경쟁시절의 군국주의 일본도 아니다.자유민주국가이며 우리에게 여러가지 도움도 주고있는 전통우방의 일본이다.그럼에도 우리가 일본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뿐아니라 그것을 반성할줄 모르는 오늘의 현실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반성은 커녕 불가피하고 자랑스럽기(?)까지한 역사로 미화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최근엔 명백한 우리영토에 대한 시비까지 걸고나서는 침략근성을 다시 노골화시키고 있기까지하다. 그런 일본의 아태 특히 동북아 군사역할이 그것도 미국의 필요와 도움으로 강화·확대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중국등 아시아국가들의 시선도 담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광복당시 『미국을 믿지말고 소련에 속지말며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은 조심하라』던 말들이 새삼 실감나는 시대상황이라 할수있다.미국이 일본의 한반도기득권을 인정했던 「태프트·가쓰라(계)밀약」도 상기하지 않을수없게 된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시위가 한창일무렵 우리는 일본의 재무장 내지 군비강화빌미가 되지않을까 걱정했었다.북한의 핵개발고집때도 그것이 일본의 핵무장구실로 이용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었다.실제로 일본은 북핵무장소동을 간접적인 핵무장능력강화 구실로 이용했으며 이제 대만위기의 여세를 몰아 군사대국화의 길을 재촉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 방일과 안보공동선언채택의 미국측 목적은 냉전종식후 일본의 미·일동맹이탈과 독자노선가능성을 방지하고 증대되는 일본의 힘을 미국통제의 틀속에 묶어두는 동시에 일본을 통한 중국견제등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되고있다.그러나 일본은 그것을 역이용,군비증강및 군사대국화의 발판으로 삼으려하고 있다.당장일본은 이번 선언을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그이상의 세계를 향한 군사역할확대 계기로 이용할 움직임을 보이고있다.자체적인 중국대응가능의 수준까지 군사력을 증강시켜나가는 발판으로도 삼으려할 것이 틀림없다. 일본은 군사대국화노력을 가속화할 것이고 결국 미국의 영향에서도 벗어나게 될것이며 중·일의 동북아 군사패권경쟁 또한 격화될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군사대국일본에 대비하면서 미·중·일·러로 이어지는 세기말 안보환경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지킨 것으로 유명한 태국외교를 능가하는 현명하고 유능한 안보외교를 전개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우리가 당면한 지상과제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부국강병의 전통적 치국이념에 충실하면서 우리의 지정학적 장점을 최대한 살려 일본은 물론 중국의 지역패권도 방지하고 군비경쟁도 억제할수 있는 새로운 동북아 지역안보협력체제 구축의 모색을 주도하는 동북아평화의 중심국가를 지향해나가야 할 것이다.〈심의·논설위원〉
  • 경계되는 일의 군사대국화(사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국제 역학구조가 급격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주변 4강의 이해가 교차되는 가운데 그 힘의 균형에 민감하게 적응,대처해온 우리로서는 작금 미 클린턴행정부 주도로 본격화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증대를 전제로 한 동북아의 역학구조 개편작업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의 경우 구러시아 붕괴로 비롯된 탈냉전 상황속에서도 남북한의 무력대치,중국·대만간 긴장관계,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에 대한 주변국의 역사적 경계심등 지역 특수성 때문에 계속 냉전과 탈냉전 양태가 혼재하는 과도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오는 11월의 대선을 앞두고 대외정책 전반을 점검해온 클린턴행정부가 동북아정책의 재정비에 착수,이 지역의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여기에는 북한의 핵개발,휴전선 무력도발이 부각시킨 한반도의 평화정착 필요성,중국의 대만해협 무력시위가 촉발한 대중국 견제장치 필요성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이에따라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제주·도쿄방문을 통해 견제와 세력균형 전략적 성격의 신동북아 역학구도를 밝힌 것으로 분석된다. 「미·일 신안보공동선언」에 담긴 미국의 신동북아전략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평화헌법의 굴레에서 어느정도 풀어주어,세계 최대병력과 핵무기까지 보유한 군사강국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이를 위해 미·일 안보협력은 「안보동맹」으로 격상돼 미국의 이 지역 방위부담을 덜었고 「방위협력지침」을 개정,유사시 자위대가 아·태지역에서 미군지원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기능과 행동반경을 넓히기로 했다.다만 한반도평화 4자회담 제의를 통해 중국을 4자에 포함시킴으로써 동북아지역내 중국의 지분을 인정하는 세력균형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군사강국으로 급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 추구 조짐에 보태지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가능성은 우리에게는 숙명적이며 힘든 외교과제가 아닐 수 없다.
  • 한­일관계사연구회 「독도학술 심포지엄」

    ◎17세기 일부막도 “독도는 조선땅” 인정/울산 어부­일 상인 마찰때 “울릉도 부속 도서 “밝혀”/개항기땐 독도부근에 온 일밀매상 처형사실도 조선후기 일본 막부의 독도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학술심포지엄이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한일관계사연구회(회장 정재정)가 8일 하오 1시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소강당에서 「한·일 양국간 영토인식의 역사적 재검토」라는 주제로 마련하는 행사가 그것.참석자들은 일본 막부시대 당시도 양국간에는 독도가 엄연히 조선의 영토로 인정됐음을 증명해 보인다. 한국외대 이훈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논문 「조선후기 독도의 영속시비」를 통해 『일본은 외무성에 독도문제 전담 연구원을 두고 조사를 추진한 적이 있으며 독도에 대한 명칭의 혼란,위치의 불분명함,무인도였던 점을 강조해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최근 연구를 볼때 일본측이 자국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양국의 문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 앞으로의 한·일관계 전개에 상당한 우려를 느끼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두나라의 논쟁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일본측은 독도를 울릉도로부터 완전히 분리 해석하려 하지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인식·취급한 사료가 얼마든지 있고 지질학적인 측면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동일한 백두화산대에 속하는 화산섬이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특히 『조선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를 빼놓곤 중종때까지도 독도에 대해 공도정책을 취했지만 이 섬에 대해 조사와 탐색을 지속적으로 벌였다』면서 1693년 울산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일본 상인들과 마찰을 빚었을때 당시 일본 막부가 대마도로 보낸 지시에서 『처음부터 그 섬을 조선으로부터 뺏은 적도 없는데 지금 이를 돌려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밝혀 당시 기록상 일본측이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독도를 인정했던 사실에서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였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개항기 일본의 독도인식」에 대해 발표하는 홍익대 현명철교수는 『조선과 일본간 울릉도·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은 숙종때인 1690년대에 완전히 해결됐다』면서 18 37년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밀무역을 하던중 적발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일본의 막부가 책임자를 사형에 처하고 판찰을 게시해 일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가지 말것을 엄하게 지시한 사실을 예로 들어 『막부 말기 단계에서도 일본은 울릉도·독도 지역을 이국(조선국)영토로 확실히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현교수는 『이웃나라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했던 1877년 당시에도 일본은 내무성 문서등을 통해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천명했다』면서 『그러나 청일전쟁 이후 군국주의 바람이 거세지고 서양 제국주의 편입을 시도하면서 영토확장 측면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 일 독도망언속 다시맞은 3·1절/「망언규탄」·「극일함성」그날처럼

    ◎“선열의 자주정신 계승” 메아리/1백여 문인 “독도지키기” 다짐 일본의 잇따른 「독도 망언」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진 가운데 3·1절 77돌을 맞았다. 1919년,그날의 함성만큼이나 뜨거운 극일의 목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진다.각계각층에서 일본을 규탄하고 선열을 기리는 다양한 모임과 행사가 잇따른다. 문인 1백여명은 1일 상오 8시 독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갖는다.「96 문학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서기원)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기념사,고유문 낭독,축시 낭송,결의문 채택,만세삼창 순서로 3시간 남짓 진행된다. 문인들은 고유문을 통해 『독도는 만년토록 동해의 등대로써 나라의 안녕에 이바지하였으며,그 극진함이 하늘에 닿아 천년토록 국가의 고임을 받았다』고 상찬하고 『우리가 이곳에 닿은 것이 매우 늦었으나 이로부터 자주 찾고 글로써 국토를 지키고 가꾸기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김후란시인의 축시 「독도는 깨어 있다」 낭송에 이어 ▲한국과 일본은 국가간 공익질서를 상호 숭상·수호하는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고 ▲일본은 두나라 후손에게 참화와 질곡을 남긴 책임을 반성하며 ▲일본은 억지를 쓰는 구시대적 망상에서 깨어날 것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다. 독립기념관(단장 박유철)은 통일염원의 탑에서 3·1정신의 계승을 다짐하는 「통일염원의 종 타종식」을 갖는다.각계 대표 22명이 참석해 33번 종을 친 뒤 조국통일 실현의지와 일본의 독도망언을 규탄하는 결의문을 낭독한다. 「사랑의 실천 국민운동본부」(대표회장 유호준 목사)는 상오 11시 한일 과거청산 범국민운동본부,순국선열유족회,6·3동지회,한국기독교총연합 등 8개 단체와 공동으로 「3·1절 나라사랑 범국민운동 대행진」을 갖는다.2천5백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종로3가 탑골공원까지 대형 태극기와 순국선열 영정을 앞세워 행진한다. 「삼일운동 기념사업회」(이사장 이원범)도 상오 8시 탑골공원을 청소한뒤 국민대 조동걸교수를 초청,「3·1운동의 현대적 의미」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갖는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상임의장 이창복)은 하오 2시 종묘공원에서 「3·1 민족자주정신 계승 및 군국주의 부활 반대 결의대회」를 갖고 일본의 망언을 엄중 경고한다. 서울시는 낮 12시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일깨우고 조국통일과 번영을 기원하는 「보신각 타종행사」를 갖는다.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의 유족 19명,3·1독립운동 유족 14명 등 33명이 참석해 33번을 타종한다. 나라밖 행사도 다채롭다.「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 황백현)과 「흥사단」(이사장 김종림) 회원 10여명은 상오 11시 도쿄 일본국회 앞에서 대형 독도그림을 내걸고 3·1절 기념식 및 독도망언 규탄대회를 갖는다. 「태평양전쟁 희생자 유족회」(회장 배해원) 회원 15명은 사이판에서 열리는 태평양전쟁 징용 희생자 추모비 건립 행사에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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