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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통신 ‘군필자 가산점제 폐지’ 의견 봇물

    헌법재판소가 공무원 시험 군필자 가산점제도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자 행정자치부 등 정부 인터넷 홈페이지와 PC통신에 이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있다. 행정자치부 홈페이지에는 헌재의 위헌결정이 내려진 지난 23일 26건의 글이오른 데 이어 24일엔 100여건이 쇄도,갑론을박을 벌였다. 행자부 홈페이지에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남자로 태어난 ‘죄’로 2년여를 군대에서 보냈는데 가산점제마저 폐지한다면 젊음을 국방에 바친 대가를 어디서 찾느냐”고하소연했다. PC통신 하이텔에 글을 올린 김병호씨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인계철선을건드린 것으로 앞으로 군복무에 대한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기획예산처 홈페이지에는 “단지 평등을 강조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쳐선 곤란하다”며 “젊은 군인들의 사기를 꺾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이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글도 올랐다. 군필 가산제 폐지에 대한 반발은 여성채용 할당목표제 등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김완교씨 등은 행자부 홈페이지를 통해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서 합격자의 20%를 여성에 할당하는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국가유공자 자녀에게 10점을 가산하는 제도 역시 폐지하라는 주장도 빗발쳤다.이밖에 “병역법을 개정해 여자들도 모두 군에 가게 하자”는 감정 섞인반발이나 “복무기간만큼 응시자격 연령을 높이고,호봉에서도 군경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안론도 줄을 이었다. 이에 맞서 여성들의 군필 가산제 폐지 옹호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한네티즌은 “군필 가산제는 특혜이지 보상이 아니다” 라며 “2년여의 복무기간은 호봉 인정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여성채용 20% 할당제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군필 가산제가 없어지면 여성들이 30% 이상 채용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진경호기자 jade@
  • 20년이상 지방세 업무담당 세무사 1차시험 면제

    세무사 1차시험 면제자에 20년 이상 지방세 업무를 담당했거나 대위급 이상군인으로 10년 이상 군경리업무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 재정경제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세무공무원과 변호사에 대해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일부 관련경력자에 한해 1차시험과 2차시험의 일부를 면제하기로 한 당초의 세무사법개정안에 이같이 추가한다고 14일 밝혔다. 당초 방안은 국세에 관한 행정사무에 10년 이상 종사했고 5급 이상 공무원으로 5년 이상 재직한 자에 대해 세무사 시험의 1차시험 전과목과 2차시험의일부 과목을 면제해 주도록 했다. 또 사법시험 최종합격자에 대해서는 1차시험만 면제해 주도록 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10년이상 미집행 도로 일제 정비

    공원이나 도로 등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뒤 10년 이상 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서울시내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가운데 도로가 내년 초까지 일제히 정비된다. 서울시는 4일 도시계획시설로 묶은 뒤 오랫동안 방치하는 바람에 시민의 재산권 행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등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관련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10년 이상 집행되지 않은 도로시설 가운데 개설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지역여건상 개설이 불가능한 지역을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종로구 평창동과 은평구 진관내동의 북한산국립공원내 도로,종로구 무악동∼서대문구 홍제4동간 인왕산 자연공원내 도로 등 공원 안에 위치해 환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지역의 도로계획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또 서강대로가 지나는 마포구 구수동 일대와 송파구 복정사거리∼상일IC 등이미 대규모 도로가 건설돼 별도로 도로를 만들 필요가 없어진 곳,종로구 혜화동∼동숭동∼성북구 삼선동을 잇는 서울 도성 성곽도로,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연접도로 등 문화재 및 지역환경 보호를 위해 도로개설계획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 등도 과감하게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천호대로 구의동∼광장동 및 길동∼상일IC 구간 등 도시계획선보다 좁은 면적에 도로가 개설돼 있는 지역은 나머지 토지를 도시계획시설에서해제하고, 종로구 송현동 덕성여고 관통도로와 성동구 왕십리역 철도부지내도로 등 공공시설을 가로질러 도로가 들어서도록 돼있는 지역도 해제할 계획이다.용산구 이태원동 육군경리단 관통도로 등 군사시설을 지나도록 계획돼있는 지역은 도로선형을 변경·폐지하거나 대체시설 설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같은 내용의 정비기준을 각 자치구에 통보하고 다음달 말까지폐지 또는 변경 대상을 확정한 뒤 내년 2월중 도시계획 변경을 마칠 계획이다. 서울시는 도로에 대한 일제정비와 함께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개정 도시계획법에 맞춰 공원·녹지·학교·운동장 부지 등 모든 도시계획시설에 대한재정비도 2001년 말까지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지난해말 현재 서울시내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은 2,178건에 5,956만7,000㎡에 이르며 이 가운데 도로시설은 1,694건 629만6,000㎡에 달한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외언내언] 뒷북 軍검문

    10월 마지막 주말인 30일 서울 근교의 가을 정취에 취했다 밤 늦게 귀가하던 시민들은 예기치 않은 극심한 교통체증에 고생했다.통일로와 자유로는 물론 성산대교는 차량들이 꼬리를 길게 물고 늘어서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는데만 1시간30분이 걸렸다.시민들은 갑작스런 검문으로 유례없는 주말 교통대란에 시달렸다. 이날 검문은 파주 군부대 무장탈영병을 잡기 위한 것이었으나 군의 대응이뒷북치기로 일관돼 시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리게 했다.방탄모와 군복 차림의탈영병들이 부대 근처를 지나던 군용차량을 세워“탈영병을 체포하러 간다”며 금촌역에 이른 것은 오후 9시30분쯤.택시로 바꿔 탄 탈영병들은 1시간 뒤에는 서울 미아리 유흥가에 도착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탈영병들이 이동한 파주∼서울간 도로에는 상설 군경합동검문소가 2군데 설치돼 24시간 운영되고 있으나 이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이들을 서울로 들여보낸 다음에야 육군은 파주와 서울을 잇는 주요 도로 9곳과 서울시내 28곳에서 검문에 들어갔다.택시기사 신고로 군은 이날 밤11시30분쯤 소재를 파악하고 검거에 나섰으나 검문은 탈영병들이 검거된 뒤인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됐다.국민 불편은 전혀 고려된 흔적이 없다. 무장탈영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신속한 보고와 대응이 요구된다.그러나 소속 부대는 상부 문책이 두려워 자체 해결을 시도하다 늑장보고가 일쑤고 결국 피해는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수도권에서만 한해 20여건의 검문검색이 실시되나 그때마다 검문체계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내 원성을 사고 있다. 이번 무장탈영사건도 군 기강 해이와 검문소 운영의 허점,지휘부 보신주의,안일한 상황 대처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탈영병 신원파악도 제대로 못하고있었고 탈영시점과 실탄 보유량도 오락가락해 군의 상황 보고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맹물 전투기 추락사고 후 군기문란 행위에 대한 국민적 질타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검문 개선 방안이 요구된다. 검문방법부터 바꿔야 한다.국민들 사이에는 그동안 효과도 없고 교통체증만불러일으키는 검문검색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탈영병 검거의 당위성 못지 않게 국민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검문방법도 중요하다.검문 발령과해제시점이 명확하고 검문 소요시간과 공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간선도로를막는 투망식 검문은 가장 초보적 방법이다.도주로를 정확히 예측해 검문 길목을 줄이고 차선마다 검문 인력을 배치,차량 흐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검문방법도 효율성 위주로 재고되어야 한다. [이기백 논설위원 kbl@]
  • [이색제언] “대통령에 국가정보 종합보고하자”

    국민회의 임복진(林福鎭)의원은 군사통이다.14대 국회 때 맹위를 떨친 ‘야당 군4인방’가운데 유일하게 15대 재입성에 성공했다.그는 이번 국회에서본회의 대정부질문을 8차례나 했다.여야 통틀어 가장 많다.육군소장 출신의군경력을 바탕으로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 단골 질문자로 나섰다. 26일 대정부질문에서 그는 ‘세계는 정보전쟁’이라고 또다시 주지시켰다. 그동안 질문 때마다 변함없이 강조해온 사안이다.이날도 “우주공간에는 1,000여개의 첩보·감청위성이 있다”면서 “97년 미국의 국방부 시스템에 25만회나 침입기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임의원은 이날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조정위’ 신설을 그 대응책으로 제시했다.“정보사용의 오류를 막고 정보기관의 정치적 판단과 개입을 제한할 수 있다”고 또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질문에 앞서 그는 “대통령에게 주요 국가정보를 종합해 보고하면 각 정보기관장들이 별도로 직보(직접보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각정보기관들이 정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소지를 차단할 수 있다는 논리를폈다.도·감청 시비를 겪고 있는 안기부는 물론 검찰 경찰 기무사 등 각급정보기관들이 대상이어서 주목된다. 박대출기자
  • ‘광주천 환경정화 캠페인’ 성황

    대한매일신보사와 광주광역시가 공동 주최한 ‘광주천 환경정화 캠페인’이 16일 오전 10시 자연보호 환경단체 회원과 한국암웨이 직원,시민·학생·군경 및 공무원 등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광주시 서구 광암교 아래 둔치에서 열렸다. 이에 앞서 광주 밀알 옛소리회가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마당을 펼쳐 시민과참가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참가자들은 이날 자연보호헌장 낭독식을 가진 뒤 광천1교∼유촌교 천변 양안 1.5㎞를 따라 폐비닐 깡통 등 쓰레기와 수중 퇴적물을 치웠다. 행사에는 김완기(金完基)광주시 행정부시장과 송광운(宋光運)환경녹지국장,이정일(李廷一)광주시 서구청장,정도영(鄭道永)영산강환경관리청장,오광교(吳光敎)광주시 서구의원,박세준(朴世俊) 한국암웨이 상무이사,김학균(金學均)대한매일신보사 사업본부장,박형만(朴炯晩)자연보호 광주시협의회장 등이참가했다. 이번 행사는 교육부·환경부·KBS가 후원하고 한국암웨이가 협찬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대한광장] 지진피해 타이완 지원 이유

    일본의 한신 대진재,터키 지진재난에 이어 타이완 전 섬이 몽땅 침몰하는듯한 대참사가 일어나 세계가 경악과 비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최근에는 멕시코에서도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지구촌이 지진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구의 재앙은 천재만은 아닌 것같다.60억 인구의 자연훼손,오염,산업폐기물 투기,불법 매몰,마구잡이 간척및 굴착 등 인재에 자연이 노한 것이 아닌가하는 여론도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다. 타이완은 9월 21일부터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과 10일 동안의 크고 작은여진으로 사망 2,060명,부상 8,672명,실종 및 매몰 189명으로 집계됐으며 건물 6,100동이 붕괴·반파되고 5,398동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그러나 실제이 숫자는 정확치 않고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사망이 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니 얼마나 심각한가를 체감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타이완당국은 지진 구호를 위해 약 3조원(800억 타이완 달러)을 투입하고전국에 6개월간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리덩후이 총통이 재난구제책을 발표하면서 재난지역에 군경파견,생필품 사재기 엄벌 등의 긴급조치를 취하고 있다.국민들도 재해구호기금으로 630만달러를 내놓았고 유력한 대선후보도 내년 대선자금 600만 달러를 전액 쾌척하였다고 한다. 이에 맞춰 우리의 119구조대가 현지에 급파되어 매몰돼 있던 소년을 무너진 건물속에서 구조했다.또 우리 국민 22만명이 모금한 성금을 주한 타이완대표부에 전달하기도 했다.이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에 가졌던 타이완 국민들의 감정도 좋아져 타이완간의 항공협상이 재개되리라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정부도 9월25일 각의에서 5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이밖에 각종 구호장비와 식량,가설주택,발전기 18대,그리고 건물 안전진단 전문가들과 훈련받은 개까지 보내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은 1992년 중국대륙과 수교하면서 매우 성급하고도 미숙하게,일방적으로 사전 통고도 없이 쫓기듯 매정하게 타이완에 대해 단교조치를 취했다.금싸라기같은 서울 명동의 대사관 자리도 중국측 외교관이 급작스럽게 짐을 챙겨가지고 입주케 했다.이에 대한 울분과 응어리가 가시지 않아 타이완내 한국유학생들은 고통을 당해야 했고,교민들은 고개를 떨구고 골목길로만 다녀야 했다.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신규식,이동녕,김구 등 40여명의 우리 애국지사는 상하이로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5)를 수립하고 27년간 국민당과 함께 중국대륙을 이동하며 독립투쟁을 했다.이때 국부 쑨원(孫文) 총통이 임시정부 청사와 식량을 마련해줬고,그가 작고한 1925년부터 45년까지는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물심양면으로 지원,우리 임시정부가 일제 강점하에서대표성을 갖고 국내외 독립운동을 통합할수 있었다. 1940년 3월 13일 중국 지장에서 순국한 이동녕 주석은 유언으로 이런 말씀을 남겼다.“우리가 일제에게 완전 점령당하지 않고 나라를 우리손으로 찾을수 있게 적극 지원한 것은 국민당 총통과 중국민이니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장 총통은 광복후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까지 수백만원의 건국준비자금을 지원해주기도 했다.김구 주석은 환국할 때 장 총통에게 “27년 동안 도와준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예의가 바른 우리나라는 두고두고 갚을 것”이라며 그가 마련해준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장 총통은 이봉창의거(1932년 1월 8일)에 이어 윤봉길의거(1932년 4월 29일)를 본 뒤 임정을 적극 지원하면서 “두 나라의 우정과 신의,교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 타이완은 섬 자체가 침몰할지도 모르는 대지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일제하의 어려운 시절,우리를 도와줬던 타이완의 재난과 참사를 결코 남의 나라 일로만 바라보고 있어선 안될 것이다./이현희 성신여대교수.현대사
  • [중국 건국 50돌] (4.끝) 차세대 지도자들

    21세기 중국 최고지도자의 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까.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오는 2002년 임기 만료와 함께 물러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후보군의 물밑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베이징(北京) 정가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차세대 지도자는 후진타오(胡錦濤·56) 국가 부주석겸 정치국 상무위원,쩡징훙(曾慶紅·60) 당중앙조직부장,원자바오(溫家寶·57) 농업담당 부총리 등 3명으로 압축된 상태. 이 가운데 가장 근접해 있는 주자가 후 부주석이다.22일 공산당 중앙군사위부주석 선출 직후 29일 군서열 제2인자로 공식 지명됐다. 후 부주석은 이날 중앙군사위 위원에 2명의 군사위원을 승진발령하는 자리에서 3명의 부주석중 가장 먼저 소개됐다.이는 장완녠(張萬年·71) 군사위부주석과 츠하오톈(遲浩田·70) 군사위 부주석보다 상위 서열임을 뜻한다.이에 따라 군경력이 없는 후 부주석이 군사분야에서도 장 주석의 후계자로 떠오른 셈이다. 그는 깔끔한 외모에 의외로 강력한 추진력이 돋보인다.후야오방(胡耀邦)에의해 발탁돼 40대 초반에 구이저우(貴州)성 당위 서기를 맡으면서 일찌감치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꼽혀왔다.안후이(安徽)성 지커우(績溪)현 출신으로 이공계 명문 칭화(淸華)대 수리(水利)공정계를 졸업,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시창(西藏)자치구 당위 서기 등을 거쳤다. 장 주석의 신임에 힘입어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쩡 조직부장도 복병이다.2년전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그는 최근 장 주석의 통치철학이 담긴 ‘산장(三講)운동’을 통해 당·정 간부들 사정(司正)을 주도,당권을 노릴만큼 성장했다.그는 장 주석 집권초기 시절 정적에 대한 견제및 제거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장시(江西)성 지안(吉安) 출신으로 베이징 공업학원 자동제어학과 출신으로 상하이(上海)시 당부서기·중앙 판공실 주임등을 역임했다. 원 부총리 또한 무시 못할 존재.중국의 대표적인 기술관료다.전문지식과 행정경험,대세를 읽어가는 정치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금융과 실물경제 부문에 밝아 실각설이 나돌고 있는 주룽지(朱鎔基)총리에 이은 경제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히고 있다.톈진(天津) 출신. 베이징 지질학부를 마치고지질산업부 부부장·중앙판공실 주임·중앙 서기처 서기 등을 거쳤다. 김규환기자 khkim@*金대통령 新華통신 인터뷰 중국 신화통신은 중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金大中 대통령과 서면 인터뷰를가진 뒤 최근 ‘김대통령,신(新)중국의 거대한 성취 및 미래를 높이 평가’란 제목으로 회견 기사를 게재했다.다음은 김대통령의 회견문 요지. 중국은 건국 50여년간 ‘괄목할 만한’발전을 이루었다.특히 개혁·개방 정책 실시후 20여년간 중국 경제의 성장속도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중국을 4차례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중국 지도자 및인민들의 굳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중국의 미래가 매우 밝고 21세기에커다란 진보를 이룰 수 있음을 확신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정치·경제 대국으로서 매우 높은 지위를 점하고 있다.동북아 뿐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중의 하나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4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동남아국가연합(ASEAN)회원국으로,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지역과 세계의 평화,안정,번영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소중한 이웃나라이다.양국은 긴밀히 협력,한반도와 동북아,아·태지역과 세계 번영에 공헌해야 할 것이다. *우다웨이 중국대사 “중국은 오는 2010년 국내총생산(GDP)을 2조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려 영국및 프랑스의 경제규모와 비슷한 수준을 이룩하는게 목표입니다” 우다웨이(武大偉) 주한 중국대사는 30일 건국 50주년을 앞두고 가진 대한매일과 인터뷰를 통해 21세기 중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신중국 건국 50년은 중국 역사상 가장 휘황찬란한 천지개벽이었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요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고도 성장의 비결은. 개혁·개방의 실시로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사회 각 분야의 적극성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것이 원동력이라고 본다.개혁·개방 과정에서개인소득과 사회적 이익이 균형을 이뤄 사회생활이 건전해지는 등 사회구성원들의 훌륭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이바지했다. ?오는 12월19일 자정 포루투갈로부터 마카오 주권 회복의 의의와 그 준비작업 상황은. 97년 홍콩 주권회복으로 통일에의 큰걸음을 내디뎠다.마카오 주권회복은 중국이 식민지 지배 역사를 청산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준비작업은 법률 및공무원의 현지화,중국어 지위문제 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급속히 가까워지는 한국과 중국관계를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은. 92년 관계정상화 이후 한·중관계는 순조롭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지난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중국 방문중 김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주석이합의한 협력 동반자관계가 21세기 두나라 관계발전의 큰 틀이 될 수 있다.양국 상황에 따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게 목표다. ?리덩후이(李登輝) 타이완 총통이 ‘양국론(兩國論)’을 발표,양안관계에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 양국론은 중국을 분열시키기 위한 위험한 한걸음을 내디딘 행위다.리 총통이 스스로 깨닫고 더이상 분열상황으로 나가지 않도록 바라고 있다.중국정부는 타이완 내부에 독립 움직임을 보이거나 외국이 타이완에 침입하면 비평화적인 방법으로 맞설 방침이다. ?중국 위안(元)화 평가절하 문제가 세계 금융시장의 초점이 되고 있다.소비자 물가가 20개월 이상 떨어지는 디플레 현상 등 경제상황 악화로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99년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7%를 넘는 등 경제는 잘 돌아가고 있다.정부가소비 부양조치를 취한 덕분에 최근 1∼2개월동안 소비자극 효과가 나타나고있다.물론 수출이 줄어들고 있지만 감소폭이 둔화되고 1,4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 등을 감안할 때 평가절하를 할 필요가 없다. ?중국이 국유기업을 개혁하다보니 실업이 급증하고 있는데.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지금 1,000만명 정도가 실직을 했다.정부는 이들을 위? 기본 생계비는 보장해주고 있다.특히 경제성장률이 7%를 넘고 있어 고용창출 효과가 크다.실직자들은 정부 부서 등에서 실시하는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김규환기자 [특별기고] 權丙鉉 베이징주재 한국대사 1일 중국은 건국 50주년을 맞았다.베이징(北京)은 금세기 마지막 국경절,3개월 앞으로 다가온 새천년의 전야제를 겸해 거국적인 축제 분위기에 빠져있다.언론매체들도 지난달부터 50년간 중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3부작 드라마를 연출하듯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제1부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이끈 해방과 건국의 역사다.진시황(秦始皇)의 첫번째 천하통일보다 더 광대한 국토에 한족과 54개 소수민족이 이뤄낸 10여억인의 통일 중국을 무대로 새중국의 건설과 혁명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제2부는 78년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의 역사다.덩의 ‘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쥐만잡으면된다)’의 실사구시 정책으로 10여억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등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으로의 변신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제3부는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이끄는 ‘포스트 덩샤오핑 시대’의 새중국 건설이다.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정치적으로 ‘안정과 평화’를 표방하는가운데 홍콩에 이어 오는 12월19일 자정을 기해 마카오가 반환받고,타이완(臺灣)과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아래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가 50주년 행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홍콩과 마카오 반환을계기로 19세기 후반부터 한세기동안 서구 열강에 짓밟혔던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세계 7위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영욕이 교차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의 발전상은 덩의 개혁·개방의 구호 아래 경제개발의 길을 달려오면서 이룩됐다.지난 20년동안 중국경제는 경제규모 면에서 98년말 현재 약 9,600억달러에 달해 국제적 지위가 크게 향상됐다.따라서 고속성장을 지속시키면2030년에는 경제규모 면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중국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다음 세기 선진사회로 도약하기전 해결해야할 난제도 많다. 타이완(臺灣)과의 통일을 완성하는 문제,국제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역할 등이다.개혁·개방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폭증하는 정치참여 욕구를 해결해야할 민주화의 과제도안고 있다. 불균형 성장전략에 따른 빈부격차의 확대,실업문제,국유기업개혁 등 난제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풀어야 한다.파룬궁(法輪功)사태처럼 성장과 함께 분출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수용해 나가야할 과제에도 직면해 있다. 한편 한·중 양국은 수교후 7년이라는 기간동안 각 분야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특히 지난해 11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중(訪中)으로 한·중관계는 ‘21세기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됐다.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역내 안전과 평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줘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지지하도록 이끌어냈다.한국의대(對)중국 교역량이 92년 63억7,000만달러에서 98년 184억2,000억달러로 3배 가까이 급증함으로써,중국은 미국·일본에 이어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떠올랐다.인적교류도 활발,올해 양국간 상호 방문객수는 1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새세기,새천년을 앞두고 한국과 중국은 진정한 협력적 동반자관계가 되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기본 보훈연금 월50만원으로

    내년부터 국가유공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연금이 월 46만5,000원에서 50만원으로 오른다.또 기본연금 외에 개인별 공훈 및 희생 정도에 따라 추가로 주어지는 부가연금도 평균 5% 인상돼 10만5,089명에게 최고 175만3,000원까지 지급된다. 국가보훈처는 30일 2000년 총예산이 1조2,161억3,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2.6% 올랐다고 밝혔다.이같은 증가율은 전체 일반회계 세출예산 증가율 3.6%보다 9%포인트 높은 것이다. ?중상이자 간호수당 대폭 인상 1급 중상이군경에게 지급되는 간호수당은 월 99만원에서 125만원으로 26.3%,2급은 월 33만원에서 40만원으로 21.2%로 오른다. ?7급 경상이자 신설 및 연금지급 등 보훈시혜 부여 경상이로 보훈수혜대상에서 제외됐던 7,800여명을 7급 상이군경으로 새로 등록받아 내년부터 월 15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취업·교육·의료지원 등 보훈혜택을 부여한다,?6·25 전몰군경 유자녀 생활조정수당 지원범위 확대 월 25만원의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하는 지원대상자가 1,341명에서 2,582명으로 늘어난다. ?국가유공자 복지시설 신설 서울보훈병원에 53억원을 들여 750평 규모의장례식장을 신축한다.2002년까지 광주보훈병원을 병상 500석 규모로 개축한다. ?독립유공자 예우금 대폭 인상 생존해 있는 독립유공자에게 지급되는 예우금이 건국훈장 3등급 애국지사는 월 50만원에서 월 60만원으로,4등급은 월 15만원에서 40만원으로,5등급은 월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오른다.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에 대한 지원대상 확대 월남전 참전 고엽제 후유의증환자들에게 장애정도에 따라 월 20만∼40만원 지급하는 수당 수령대상을 1만3,272명으로 늘린다. 우득정기자 djwootk@
  • [리뷰] MBC 특별다큐 ‘이제는 말할수 있다’

    역사에는 자랑할 부분도 많지만 감추고 싶은 내용도 많기 마련이다.더욱이한 핏줄을 나눈 민족끼리,그것도 양민을 무장군경이 학살한 비극을 드러낸다는 것은 용기에 속한다. MBC-TV가 12일 밤 11시30분 방영한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첫편 ‘제주 4·3’(김윤영 기획,이채훈PD)은 이같은 용기를 보여주었다. ANCARUM이란 통신명을 사용하는 김모씨는 “(MBC의)용기에 감사드리며 단지방송시간이 너무 늦다는 점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시청소감을 보내왔다. 제작진은 1948년 ‘5·10’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좌익 무장대가 관공서들을 습격하면서 시작된 이 비극의 발단과 전개과정,미국의 역할 등을 6개월의 치밀한 준비 끝에 밝혀냈다. 미군정은 당시 그날그날의 사태전개를 문서로 보고 받았고 전투기의 위력시위,구축함의 해상봉쇄,통신부대의 항공촬영 등으로 이승만 진영과 친일경찰,우익청년단의 ‘빨갱이 사냥(Red Hunt)’으로 불린 초토화작전을 거들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승만정권 수립후에는 군사고문단을 파견해 초토화작전에 도움을주었다.결국 1년2개월여만에 제주도민 10명 중 1명꼴인 3만여명이 희생됐다. 당시 좌익세력의 무장이 허술한 상황이었고 조직 자체가 궤멸직전이었다는점을 일본에 건너간 전 남로당 간부 등의 증언을 통해 확보한 것은 돋보였다.특히 ‘꿩 잡는 게 매’라며 친일경찰을 끌어들여 학살을 주도하게 한 조병옥 경무부장의 행적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더욱이 전두환정권 때까지 유가족들이 경찰의 검속을 받아 침묵을 강요당했다는 것은 이 참극의 현재적 의미에 귀기울이게 한다. 그러나 제작진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 문제에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지난 6월 방영예정이던 이 기획이 경영진의 압력으로 연기되다가 이제야 방송을 탄 사정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됐다.4·3과 겹쳐보이는 광주항쟁을 애써 외면한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다음주에는 동백림간첩단 조작사건의 진실이,10월3일에는 여순반란사건이 오른다. 임병선기자 bsnim@
  • 포커스 투데이-印尼 국방장관 위란토

    인도네시아 실세인 위란토 국방장관겸 군 총참모총장이 동티모르 계엄령 선포를 건의하고 B J 하비비 대통령의 사임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동티모르 사태에 군병력이 민병대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혈사태를 배후조종했다는 의심을 받을 만큼 동티모르 사태와 관련해서는 중심에서있는 인물이다.그러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군부내 현재의 위치가 흔들리고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수하르토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한창일 때 수하르토에 대한 충성을 견지하면서도 강경 시위진압을 자제하기도 했다.88∼93년까지 수하르토대통령의 부관으로 재직했으며,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가 고조됐을 당시 군총참모총장에 임명된 뒤 한달만인 3월에는 국방장관직도 겸임했다. 그는 수하르토가 사임하고 권력기반이 취약한 하비비 대통령이 취임하자 그를 지지하면서 힘을 실어줬다.인도네시아가 올초 동티모르 독립 찬반투표 실시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히자 군부 일각의 강한 반발을 무마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총참모총장은 휘하에 47만5,000명의 군경(軍警)병력을 거느리면서 헌법상으로도 정치적 역할을 보장받고 있어 대통령 다음의 2인자라고 할수 있다. 김규환 기자 khkim@
  • [義烈 독립투쟁](4)송학선 의사

    일제에 맞서 국권수호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의병·독립군·광복군·의사·열사 가운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신돌석(申乭石)의병장을 비롯해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洪範圖)장군,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의사 같은 분이 그런분들이다.1926년 순종(純宗) 승하 직후 창덕궁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송학선(宋學善)의사 또한 그러한 인물 가운데한 분이다. 1893년 서울 천연동에서 출생한 송 의사는 13살 때 보통학교를 1년 다닌 것 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또 극심한 가난 때문에 어려서는가족이 흩어져 방랑생활을 하였으며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구상점·사진관 등을 전전하며 호구(糊口)를 해결하기도 하였다.말년에는 영양실조로 각기병까지 걸려 고생한 송 의사였지만 조국에 대한 애정은 배운 사람 못지않았다. 1926년 ‘금호문 의거’로 체포된 후 일본인 판사가 “피고는 어떤 주의자(主義者)인가,사상가(思想家)인가?”라고 묻자 송의사는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총독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답변하였다.송 의사는 사상·주의는커녕 배후세력이나 후원자조차 없었다.굳이 송 의사를 평가하자면 순수한 애국심에서비롯한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송 의사의 의거는 1926년 4월 26일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승하가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대한제국의 마지막 임금으로 망국의 쓰라림을 경험한순종의 승하 소식은 많은 조선인들에게 망국의 슬픔을 절감하게 했던 것이다.이 소식을 접한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머리를 풀고 엎드려 궁성을 향해망곡(望哭)하였으며 서울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창덕궁으로 몰려들어 통곡하기도 하였다.고종 승하후 3·1의거를 경험한 일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군경(軍警) 총동원 채비를 갖춘 채 창덕궁 일대에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평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安重根)의사를 흠모해오던송 의사는 사이토 총독을 처단키로 결심하고 의거에 사용할 칼을 구입,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그러던 차에 4월 26일 순종이 승하하자 송 의사는 사이토가 조문차 순종의 빈소가 있는 창덕궁을 찾을 것으로 확신하고창덕궁 입구에서 처단키로 작정하였다.이튿날 송 의사는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군중들 틈에 끼여 사이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사이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장소를 바꿔 돈화문 서쪽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를 기다리고 있던 송 의사는 오후 1시 10분경 고관 차림의 일본인 3명을 태운 자동차가 창덕궁으로 들어가자 그 중 1명이 사이토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얼마후 그들이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나오자 송 의사는 비호같이 자동차에 뛰어 올라 왼쪽에 앉은 자의 오른쪽 가슴과 왼편 허리를 찌른 후 다시 중앙에 앉아 있는자의 가슴과 배를 찔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송 의사는 차에서 내려 인근 재동(齋洞) 방면으로 내달렸다.현장을 목격한 일경들이 추격하여 송 의사를 에워쌌으나 이들은 송 의사를붙잡기는커녕 오히려 육탄전에서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송 의사는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일경 5,6명은 칼을 빼들고는 달려들지도 못한 채 한참 서서 송 의사를 바라보다가 돌멩이를 집어던졌다고 한다(‘동아일보’,1926.5.2).송 의사는 일경 수 명과 대치 와중에도 의연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한편 송 의사가 처단한 자들 가운데 사이토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그들은경성부 평의원 다카야마 다카유키(高山孝行)·사토 도라지로(佐藤虎次郞)·이케다 조지로(池田長次郞) 등 3인이었다.이들 가운데 칼을 맞은 다카야마는 즉사하고,사토는 중상을 입었다.또 육탄전 와중에 송 의사의 칼을 맞은 조선인 순사 오환필(吳煥弼)과 일본인 기마경찰 1명도 중상을 입었다. 일제에 피체된 송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 거사 이듬해인 1927년 5월 19일서대문형무소에서 3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송 의사의 의거는 비록 목표로삼았던 사이토를 처단하지는 못했지만 그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3·1의거 이후 급격히 활성화되었던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일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다.또 일부 조선인들은 사이토의 교활한 ‘문화정치’ 전략에 일시적으로 말려들어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바로 이러한 때 서울 한복판에서 한 순박한 애국청년의 의거를 계기로 조선민족은 다시 민족의식을 회복하게 되었고 비록 3·1의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이는 다시 6·10만세 의거로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1962년 정부는 송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하였다.송 의사피체 후 보도된 신문기사에는 가족으로 부모와 동생 2명만 언급돼 있을 뿐처자에 대한 얘기는 없는 것으로 봐 의거 당시 송 의사는 미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현재 송 의사 관련 기념사업회나 추모모임이 없는 것은 물론 보훈처에서 유족의 근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나라를 위해 목숨을바친 순국선열이 가신 지 한 세기도 채 못돼 벌써 잊혀지고 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노릇이다. 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문학박사*의거 현장 금호문 앞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좌우에는 작은 문 두 개가 있다.오른쪽으로는 단봉문(丹鳳門),현대그룹 사옥쪽인 왼쪽으로는 금호문(金虎門)이 있다. 바로 이 금호문 앞이 송학선 의사가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현장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왕조 궁궐 가운데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멸망을 지켜본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망국을 맞았기 때문이다.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은 순종은 황제 즉위 후 덕수궁에서 이곳 창덕궁으로 옮겨 기거하고 있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일제는 순종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시킨 후 ‘이왕(李王) 전하’ 혹은 창덕궁에 기거한다고 해서 ‘창덕궁 전하’라고 부르곤 했다. 일제는 ‘망국의 임금’인 순종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망국 이듬해인 1911년부터 인근 창경궁에 동물원·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을 훼손하였다.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송 의사의 의거 현장인 금호문 앞 일대는 창덕궁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송 의사의 의거현장임을 알리는 표지석은 물론안내판 하나도 서 있지 않다.창덕궁 관계자는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늘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사이토총독 어떤 인물인가 일제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처단 대상으로 지목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일본 해군대장 출신으로 제3·5대 조선총독을 역임했다.재임기간은 10년 1개월로 역대 조선총독 가운데 중임한 사람은 사이토가 유일하다.1856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에서 태어난 사이토는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25세인 1882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이후 해군에서 승승장구,41세인 1898년에는 해군차관,1906년에는 49세의 나이로 해군의 수반인 해상(海相)에 올라 8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이어 1919년 8월부터 두 차례나 조선총독을 역임했고,1932년 5월 일본 내각의 수상에 취임하였다. 일본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엘리트로 내각 수반직에까지 오른 사이토는두 얼굴을 지닌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사이토는 3·1의거 후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이 가장 고조되어 있을 때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총독 취임 후 소위 ‘문화통치’라는 슬로건 아래 문관(文官)총독제허용,헌병경찰제 폐지,지방자치제 실시,산미증산계획 등을 내걸었다.그러나이러한 사탕발림식의 제도는 그의 재임기간 내내 거의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강화된 무단통치로 나타났다.즉 문관출신 총독은 해방이 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임명된 적이 없고,경찰은 이름만 바뀐 채 이전보다 더 늘었으며 증산된 쌀은 한국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대신 모두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한편 사이토는 부임 초부터 한국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었다.경성(현 서울)에 부임하는 날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64세의 노 투사 강우규(姜宇奎)의사로부터 폭탄세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24년 5월에는만주의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部) 대원들이 압록강을 순시하는 그와 그의일행을 공격,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결국 귀임 후 1936년 2월 26일 소위 ‘2·26사건’때 후배 청년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채영국 연구원
  • 의열 독립투쟁(2)-강우규 의사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 가운데서 의사(義士)라고 하면 흔히 20∼30대 열혈청년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실제로 윤봉길(尹奉吉)·조명하(趙明河)의사는의거 당시 24세였고,이봉창(李奉昌)의사는 32세, 김상옥(金相玉)의사는 33세,그리고 나석주(羅錫疇)의사는 36세였다. 1924년 일황의 궁성 정문 앞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金祉燮)의사가 의거 당시 44세로 드물게 40대에 속하는 정도다. 그런데 환갑이 넘은 60대 나이로 의거를 행한 의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지.그러나 실제 우리 의열투쟁사에는 60대 노(老)투사의 의거기록이 있다. 1919년 9월2일 오후 5시경.서울의 관문인 남대문역(현 서울역) 주위에는 일본 군경이 삼엄한 경계를 펼친 가운데 어느 고관의 도착을 기다리는 준비가부산하게 진행되고 있었다.이윽고 5시가 되자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신임 총독 일행을 태운 열차가 플랫폼으로 도착하였다.사이토 총독 내외와 일행은출영나온 내외 인사·신문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귀빈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사이토가 귀빈실에서나와 입구에 마련된 쌍두마차에 오르려 하자인근 한양공원(현 남산공원)에서는 그의 부임을 축하하는 21발의 예포(禮砲)소리가 울려퍼졌다.예포가 끝나고 사이토가 마차에 오르는 순간 사이토가 탄마차 인근에 폭탄 한 발이 굉음을 울리며 작렬하였다. 마차를 호위하던 호위병을 비롯해 신문기자 등 30여명이 일순간 현장에서 고꾸라졌다.폭탄이 떨어진 곳은 사이토가 탄 마차로부터 불과 7보(步)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3·1의거 후 격앙된 조선민족의 감정을 잠재우기 위해 소위 ‘문화통치’라는 허울을 내걸고 부임한 신임 총독 사이토.그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디딘후 받은 첫번째 선물은 ‘폭탄세례’였다.이날 신임 총독이 부임하는 자리에폭탄을 던져 조선인의 기개를 만천하에 드높인 의사가 바로 강우규(姜宇奎)의사다.강 의사의 그때 나이는 64세,이미 환갑이 지난 노인이었다.일제하 숱한 의·열사 가운데 강 의사는 가장 고령에 속한다. 1855년(철종 6년) 평안남도 덕천(德川)에서 태어난 강 의사는 한일합병으로 나라가 망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모두 보고싶지 않은 사람,보고싶지 않은 물건”이라며 이듬해 봄 가솔(家率)을 이끌고 북간도로 이주하였다.만주길림성에 정착하여 신흥촌을 건설하고 동광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 진력해온 강 의사는 1919년 국내에서 3·1의거가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만주·노령(露領) 등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해 5월 노령의 ‘노인동맹단’에 참가,노인단을 대표하여 조선총독을 폭살키로 작정한 강 의사는 시베리아에서 러시아인으로부터 러시아 돈 50원을주고 영국제 폭탄 한 개를 구입한 후 6월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 배를타고 원산을 거쳐 8월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국내로 들어와 안국동 김종호(金鍾鎬)의 집에 머물면서 최자남(崔子南)·허형(許炯) 등과 거사 계획을 세운 강 의사는 마침 하세가와(長谷川好道)에 이어 사이토가 신임 총독으로 부임한다는 정보를 접하고 남대문역에서 그를 처단키로 결심했던 것이다. 9월2일 의거 당일 강 의사는 폭탄을 명주수건에 싸 허리춤에 차고 그 위에저고리와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또 시골영감 티를 내기위해 파나마 모자에 가죽신을 신고 양손에는 양산과 수건을 하나씩 들고 남대문역으로 향했다.이런 강 의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역 구내 다방에서 군중 틈에 끼여 기회를 엿보고 있던 강 의사는 사이토가 귀빈실에서 나와 마차에 오르려하자 마차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강 의사가 던진 폭탄은 투탄거리가 불과 6∼7m 정도에 그쳐 사이토가 탄 마차에는 미치지 못한데다 폭탄의위력이 약해 사이토를 처단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이토는 폭탄의 파편이 혁대를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고 같이 부임한 정무총감 미즈노(水野鍊太郞)는 경미한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그러나 성과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이 사건으로 현장에서 총 37명의 부상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스에히로(末弘又二郞) 경기도 경시(警視)는 파편이 왼쪽 엉덩이를 관통하는 상처를 입어 9일 후인 9월11일 사망하였다.또 ‘대판조일(大阪朝日)신문’의 다치바나(橘)특파원은 파편이 복부를 뚫고 들어가 11월1일 사망하였으며야마구치(山口諫男)특파원은 오른쪽 어깨에 중상을 입고 결국 팔을 절단 하였다. 한편 사건 직후 일경·헌병들은 남대문 일대에 비상령을 선포하고 범인 검거에 혈안이 돼 수색을 벌였다.그러나 60대 노인인 강 의사는 별다른 검문도받지 않은 채 무난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며칠간의 수소문 끝에 투탄자가 노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일경은 의거 보름 만인 9월17일 가회동 하숙집에서강 의사를 체포했다. 강 의사를 체포한 사람은 조선인 경찰 가운데 애국지사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던 김태석(金泰錫)이었다. 강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도 의연함과 당당한 기개를 잃지 않아 일본인 재판장이 ‘영감님’ ‘강선생’으로 호칭하였다고한다.고등법원의 항소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자 강 의사는 면회온 장남중건(重健·작고)에게 “사람은 한번 나면 죽는 것이다.네가 나의 사형을 슬퍼한다면 내 아들이 아니다.나는 내가 우리 민족을 위하여 아무 일도 이루어놓지 못하였음을 슬퍼할 뿐이다.내가 이때까지 자나깨나 잊지 못하는 것은우리나라 청년들의 교육이다.내가 이번에 죽어서 우리 청년들의 가슴에 어떠한 감상과 인상을 주게 된다면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없겠다…”고 하고는그 뜻을 전국 13도의 각 학교와 교회에 알릴 것을 부탁하였다. 노 투사는 최후까지 조국을 걱정하였다.1년간의 옥고를 치른 강 의사는 이듬해 11월29일 오전 9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그때 나이 65세였다.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형 집행자가 “유언이 없느냐”고 묻자 대답 대신사세시(辭世詩) 한 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사형대에 홀로 서니(斷頭臺上) 춘풍이 감도는구나(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有身無國) 어찌 감회가 없으리요(豈無感想) 강 의사의 유해는 처음에는 현 은평구 신사동 소재 공동묘지에 묻혔는데 54년 수유리로 이장됐다가 67년 다시 국립묘지(애국지사 묘역)로 이장됐다.1962년 정부는 강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하였다.강 의사의 의거현장인 서울역 역사(驛舍) 앞에는 강 의사의 의거를 알리는 기념표지석이 오가는 행인들의 눈길도 끌지 못한 채 쓸쓸히 서 있다. 한편 강 의사의 직계 후손은 대가 끊긴 상태다.장남 중건씨는 연해주에서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친손녀 영재(榮才)씨도 수년 전 작고했다.영재씨의부군은 도쿄제대 출신의 농학자로 수원농사시험장장을 지낸 최병석씨.현재강 의사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는 조카 항렬의 강영복(姜榮福·72·서울 거주)씨로 강씨가 강 의사의 훈장과 훈장증을 보관하고 있다.그러나 직계 후손이 아니어서 연금수령은 못하고 있다.강 의사의 제사는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에서 매년 순국일인 11월29일 지내고 있다.변변한 일대기 한 권도 없고 그흔한 추모사업회,기념사업회 하나 없는 것은 대가 끊겨 돌보는 이가 없는 탓이다.강 의사가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고적(孤寂)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국회본회의 통과 법률안 주요내용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정안]■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 재외국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 영주권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자로,외국국적동포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직계 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로 정의함.외국국적동포는 출입국관리법상의 재외동포체류자격으로 입국·체류할 수 있으며 국가 안전과 질서유지·공공복리·외교관계 기타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재외동포체류자격을 부여하지 않음. ■국민경제자문회의법안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과주요 정책방향의 수립,국민복지의 증진과 균형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책 수립,국민경제의 대내외 주요 현안과제에 대한 정책대응방향의 수립,기타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대통령이 부의하는 사항에 대한 자문에 응함. ■범죄신고자보호법안 범죄신고자나 친족 등이 보복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검사 및 경찰서장은 신변안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함. ■임용결격공무원 등에 대한 퇴직보상금 지급 등에 관한 특례법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임용결격공무원 또는 당연퇴직공무원의 사실상 근무기간에 대해 공무원연금법 등에 의해 계산한 퇴직보상금을 지급함. ■시국사건관련 교원임용제외자 채용에 관한 특별법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7월25일부터 1990년 10월7일까지의 기간 중 시·도교육위원회별로 작성한 교사임용후보자 명부에 등재되어 임용이 예정되어 있던 자로서 시국사건 등에 관련돼 임용에서 제외된 자에 대해 임용신청의 기회를 부여함. ■화장품법 제조업자나 수입자 등은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인시킬 우려가있는 표시·광고를 해서는 안됨. ■국민기본생활보장법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가구에 대해 생계,주거,의료,자녀교육 등 4대 기초생활보장급여와 자활,해산,장애급여를 제공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권자에 대해 조건부로 급여를 하되 직업훈련 등 자활능력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둔다.시행안을 2001년 1월1일로 한다. ■세무대학설치법폐지법안■폐지된 학교재산의 활용촉진을 위한 특별법안■지역신용보증재단법안■국방대학교설치법 [개정안]■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전(戰)·공상(公傷)군경 등의 상이(傷痍)정도 판정기준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신체장애율 5% 이상 상이등급의신체장애를 입은 자로 함. ■국세기본법 납세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법정신고제한 내에 세무신고를 하지 않은 자도 세무서장이 납세고지를 하기 전까지 신고를 할 수 있도록하고 세무신고만 하고 해당세액을 납부하지 않은 자도 미납부세액을 자진납부할 수 있도록 함. ■조세특례제한법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수도권의 경우 창업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감면을 적용받을 수 있는 벤처기업의 범위를 벤처기업전용단지 또는 벤처기업집적시설에서 창업하는 기업으로 제한하던 제한을폐지함.천연가스사용시내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와 취득세를 면제함. ■감사원법 국회의 입법기능과 행정감시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다른 헌법상독립기관의 경우에 준하여 국회와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사무총장이 국회에 출석하여 발언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마련함. ■소득세법 근로소득자가 연간 총급여의 3%를 초과하여 의료비를 지출한 경우 그 초과지출분에 대해 종전에는 연간 100만원까지 근로소득에서 공제했으나 앞으로는 연간 200만원까지 공제할 수 있도록 함. ■여권법 여권의 유효기간 만료일로부터 6월까지 유효기간 연장신청이 가능하도록 함. ■외무공무원법 외교직공무원과 외교통상부 소속 5급 이상 행정직공무원을외교통상직공무원으로 통합함. ■군인사법 운영실적이 저조한 전군(轉軍)심사위원회를 폐지함으로써 행정효율성을 높임. ■지방자치법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궐위 또는 공소 제기된 후 구금상태에 있거나 의료기관에 60일 이상 계속하여 입원한 경우와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에 입후보하는 경우에 부구청장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학교급식법 급식지원대상학생의 개념을 학교급식의 실시여부와 관계없이모든 초·중·고교에 재학하는 학생 중 중식을 제공받지 못하는 자로 규정하여 종래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던 비급식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도 포함되도록 함. ■고등교육법 학점승인 등에 관한 법률 등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해 학점을취득한 자도 대학의 편입생으로 선발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고등교육을 받을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 ■사립학교법 분규가 발생한 학교법인에 선임된 임시이사의 임기를 1년 이내에서 2년 이내로 하고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도록 한다. ■전기용품 안전관리법 전기용품제조업자가 제조한 전기용품과 공장 등 그생산체제를 시험·평가하여 당해 전기용품에 대한 안전성을 인증하는 업무를행하는 안전인증기관을 산업자원부장관이 지정토록 함. ■의료법 1999년 7월부터 실시 예정이던 의약분업이 1년간 연기됨과 동시에의약분업이 1년 후에는 차질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의료법의 의약분업 관련규정을 개정. ■국민연금법 반환일시금 제도를 실직후 1년이 경과한 사업장 가입자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하고 있는 대상을 확대,실직후 1년이 경과한 지역·임의 가입자에게도 허용함. ■장기(臟器)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장기 등 매매금지 대상에 장기 등을 주고받는 행위 뿐만 아니라 장기 등을 주고 받기로 약속한 행위를 첨가함. ■사회교육법■국민체육진흥법■국민건강증진법■검역법 [기타]■1999년도 제2회추가경정예산안■공공차관도입계획에 대한 동의안■1998년도 및 1999년도에 발행하는 부실채권 정리기금 채권에 대한국가보증변경동의안■1998년도 및 1999년도에 발행하는 예금보험기금채권에 대한 국가보증변경동의안■1999년도 외국환평형기금채권발행 동의안■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소득에 대한 조세의 이중과세 회피와 탈세방지를위한 협약체결동의안■대한민국 정부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간의 북한에서의 경수로사업을 위한재원의 조달에 관한 협정비준동의안■서울중구지역관광특구지정에 관한 청원■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총회 대의원소속의 건
  • [이것이 문제다]-지휘체계 혼선…재난관리 ‘구멍’

    집중호우와 태풍은 해마다 찾아들고 있다.그리고 피해는 반복되고 있다.화재와 대형건물 붕괴같은 대규모 재난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피해의 불안감도떨치지 못하고 있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재난관리법이 만들어지고 중앙 119구조대가 창설된 지도 4년이 지났지만 재난관리체계의 취약성은 거의 고쳐지지 않았음이 이번 수해에서 드러났다.재난대책이 발전하기는 커녕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고질화됐다고까지 말하여지는 국가재난관리체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점검한다. 재난관리업무는 부처별로 따로 놀고 있으며 중복돼 있다.부처간 긴밀한 협조체계도 찾아볼 수 없었다.경찰(112)과 소방(119),그리고 보건복지부의 응급환자정보센터(129) 등으로 흩어진 응급구조 및 신고체계는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다.긴급대응 및 구조재난은 피해확산을 막고 사회적·경제적 파장을차단하는데 중요한데도 구조장비와 인력은 부족한 상태이다. 이재민 구호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내의 행정자치부와보건복지부·기상청·소방본부 등은 제각각 업무를 처리했다.행정자치부 장관과 각 부처의 차관들이 참석하는 재해대책위원회에는 정작 기상청장은 끼지도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효율적인 재해대책을 가로막는 한 원인으로꼽힌다.중부 수해는 재난과 재해에 종합적이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관리체계수립이 시급함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수마(水魔)가 잇달아 찾아들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구호 준비도 소홀,이재민들의 원성을 자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인 허점 못지 않게 공무원이나 국민들의 의식전환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대구 가스폭발,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서야 재난관리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한동안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자 재난관리 조직과 법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다.정부 구조조정 과정에서 총리실의 안전관리심의관 자리가 없어지고,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가 3국 11과에서 2국5과로 크게 줄어들었다.소방인력의 상당수도 감축됐다. 하지만 조직이 축소되는 만큼 재난관리에구멍이 생길 것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이번 수해가 나고서야 뒤늦은 지적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문가 양성은 기대조차 어려웠다는 게 관료들의 설명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재난관리의 문제점을 영화 ‘타워링’에 비유했다.미국식의 최첨단 설비와 장비들이 들어간 초고층 빌딩 타워링이었지만 몇 푼의돈때문에 불량전기부품을 사용하는 안전불감증이 있는한 대형참사를 피하기어려웠다는 얘기다. 재해의 사후대책과 관리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책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재해대책 예비비를 재해대책비로 바꿔 예방설비에투자하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립방재연구소의 심재현(沈在鉉)연구관은 “재해복구비의 3분의 1정도를예방에 투자하면 재해복구비 전체를 절약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재난 예방 시설 설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10년간 연평균 재해피해액을 재해대책비로 편성해 지출하면 엄청난 예방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동철기자 dcsuh@ *민방위 재난통제본부 수습 총괄 ‘안전사고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는 것’이라는 군(軍)의 격언이 있다. 안전관리를 강조하는 말이다.대형재난은 사회적 충격이 큰 만큼 국민경제에미치는 악영향도 클 수 밖에 없다. 각종 재난·재해 가운데 풍수해가 가장 많은 재산피해를 입히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가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이같은 재난을 예방하고,피해를 수습하는 행정체계는 국무총리 직속의 중앙안전대책위원회를 정점으로 한다. 예방기능은 각 부처로 분산되어 있다.민방위·화생방·자연재해·재난관리·소방안전·수난구호는 행정자치부,산업재해는 산업자원부,수질 오염은 환경부,방사능 재난은 과학기술부,산림재해는 농림부,해양오염은 해양수산부,전염병 관리대책은 보건복지부가 맡는다. 그러나 일단 재난이 일어나면 수습은 행자부의 민방위재난 통제본부가 실무적으로 총괄한다.각 지방자치단체에도 비상기구가 편성되어 있다.그러나이들 기구는 종합적이고 강력한 집행기구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받고 있다. 구조·구급 기능은 119 구조대가 맡는다.첨단장비를 갖춘 중앙 119구조대는 대형재난에 대비한 조직으로 최근 첨단 구조체제를 갖춘 새 청사가 마련되기도 했다.전국 132개의 소방서마다 구조·구급대가 배치되어 있다.이번 수해에서는 119구조대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도 했다.또 여천공단의 화학구조대와 지리산 국립공원 등의 산악구조대,한강·청평·충주·통영의 수난구조대등 특수구조대도 운영되고 있다. 서동철기자 * 대안은 무엇인가…업무 단일화 통합기구 필요중부 수해에서 재난·재해대책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대책이 각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데다 행정자치부장관이 본부장인 중앙재해대책본부도 적절한 대책마련보다는 상황집계에 치우쳤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종합적이고 강력한 재난대책기구가 없었다는 것이다.정부의 구조조정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줄어든 재난관리조직은 효율적인 대책에 역부족이었다. 까닭에 대통령 직속의 재난관리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감사원장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부방위)가 최근 제시한 재난관리체계의 3가지 모델도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부방위의 방안은 재난 관리청이나 소방청을 신설하거나 기존의 조직을 보완하자는 것이다.재난관리청 신설안은 행정자치부 산하에 독립청을 신설해 수해를 비롯한 모든 재난의 사전 예방과 사후 대책을 총괄하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소방기능을 중심으로 재난관련 조직과 업무를 일원화하자는 소방청 신설안은 자연재해와 인위재해가 원인만 다를 뿐이고 인명과 재산피해를 끼치며 복구과정도 비숫하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마지막 보완방안은 민방위 재난통제본부 체제를 유지하되 재난 종류별로 돼 있는 것을 단계·기능별로 업무를 분담시켜 조직을 재편한다는 것이다.부방위는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재난체계에 통합관리기능을 부여하고,장기적으로는 소방청같은 독립기구 신설이 바람직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동철기자 @*대형 재난·사고 일지■93.1.7.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93.3.28. 구포열차 전복사고■93.7.26. 아시아나 여객기 해남 추락■93.10.10. 서해 위도 여객선 침몰■94.10.21. 성수대교 붕괴■94.10.24. 충주 유람선 화재■94.12.7.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95.4.28. 대구 도시가스 폭발■95.6.29. 삼풍백화점 붕괴■96.4.3. 남한강 버스 추락■96.4.23. 강원도 고성 산불■96.7.25.∼7.28. 서울·경기 북부·강원 집중 호우■97.8.6.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98.7.31. 지리산 폭우■98.8.3.∼8.6. 서울·경기 북부 집중호우■98.10.29. 부산냉동창고 화재■99.6.30. 씨랜드 화재■99.7.31.∼8.3. 서울·경기 북부·강원 집중호우·태풍 * 외국의 재난관리 워싱턴 최철호특파원·황성기기자 미국은 수해나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한 모든 재난관리는 전화번호 911의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70년대 전까지 비상 방송은 대통령실,화재는 상무부,국민방위는 국방부,범죄는 경찰과FBI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이런 비효율적인 체계는 대통령 직속으로 연방비상관리처(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가 설립되면서 일원화됐다. FEMA는 LA 대지진과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사고가 터졌을 때 사태와 혼란을 효율적으로 수습하고 일사분란하게 피해를 복구하는 데 강력한 기능을 발휘했다. 수해나 토네이도가 발생,인명피해가 나면 1차적으로 911신고를 받은 지방관리소는 응급구호팀이나 재해복구팀에 즉각 연락해 인명피해를 최소화시키는동시에 지방행정기관장을 거쳐 주지사에 알린다.주지사는 FEMA와 중앙정부에 연락하며,피해정도에 따라 대통령은 재난지역을 선포하게 한다.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긴급대응팀이 구성돼 의료,위험물관리,복구,소방,식량 등의 종합적 대책이 세워져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FEMA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직접 비상관리연구소라는 비상대비담당 공무원및 전문가 교육부서를 운영하는 것.연방과 지방정부의 소방요원,경찰과 민간업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는 실기위주의 토의식 교육으로 효과적인 대응책이 몸에 배도록 한다. 일본에서는 지진같은 대형 재해가 많은만큼 방재체계가 잘 발달돼 있다.지진피해 판독이나 화재확대 예측 등에 첨단 컴퓨터 영상시스템 등을 통한 정보전달체계의 첨단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95년 고베(神戶)지진때 재난대책에 일부 허점이 드러나 미국의 FEMA를 본뜬 비상대책기구 설립을추진중이다. 프랑스는 긴급 재난사태에 5분내에 소방대원이 출동,군경과 공조로 응급조치를 한다.26만6,000명의 소방대원이 전국 1만여곳의 비상센터에 20개의 비행장을 갖추고 출동태세를 갖추고 사뮈(SAMU)라 불리는 의료서비스기관과 함께 응급조치를 취한다. hay@
  • ‘報勳’ 못하는 보훈병원…시설 낡고 의료진 부족

    한모(65·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최근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있는 한국보훈병원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다가 비좁은 영안실과 형편 없는 부대 시설을보고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례식장은 빈소를 포함해 2∼3평에 불과,조문객들은 앉을 자리조차 없어불편을 겪어야 했다.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의 마지막 자리로는 너무나열악하다는 것이 조문객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씨는 “빈소가 촘촘히 붙어있는데다 좁고 시끄러워 상주와 변변히 인사도나누지 못했다”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고생 끝에 별세한 고인에 대한예우가 너무 형편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보훈병원의 장례식장은 좁은데다 빈소는 6곳 뿐이다.특히 빈소 4곳은 10평남짓한 방에 몰려 있어 조문객들이 들락날락하기도 어려워하는 실정이다.나머지 2곳의 빈소는 조금 크기는 하지만 문상객이 10명 이상 앉기 어렵다. 보훈병원에는 6·25 때 부상한 70대 안팎의 상이용사 200여명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이들 외에 고령의 국가유공자 상당수가 병원을 이용하는 점을 감안하면 장례식장은 턱없이 비좁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상을 마친 조문객들은 영안실 밖에 있는 간이 천막에서 머무르지만 이마저도 하나뿐인데다 3∼4평에 불과하다.조문객들이 몰리는 오후 8시부터 12시사이에는 상당수 조문객들이 자리에 앉지 못하고 마당에서 서성거린다. 식당도 영안실 외벽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어 유족들이 문상객을 대접하는데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치료 시설이나 의료진도 부족하다.보훈병원의 병상은 800개로 직원수는 1,200여명이다.그러나 일반 병원과는 달리 거동이 불편한 중증 환자와 나이가많은 장기 입원환자가 80%를 차지,제대로 치료하고 돌보기에는 의료진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 병원측의 설명이다.최근에는 일반인 환자도 받기 시작하면서 시설과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달에는 병원측의 진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와 가족 50여명이 원장실과원무과 유리창을 깨는 등 1시간 남짓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상이군경회 최병용(崔丙龍·71)사무총장은 “외국의 보훈병원은 대통령 전용병원으로 활용될 만큼 시설을잘 갖추고 있다”면서 “국가 유공자들이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시설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훈병원 관계자는 “지은 지 20년이 다 돼 시설이 낡은데다 비좁아 환자나보호자의 불만이 많다”면서 “영안실의 증·개축 계획을 세워놓고 부지 확보와 예산 문제 등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행자부, 잭슨 공연“6월25일은 문제 있다”

    오는 25일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릴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일정에대해 김흥래(金興來)행정자치부 차관이 “공연날짜에 문제가 있다”며 18일문화관광부에‘시중의 여론’을 전달,공연 관련자들이 아연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김차관은 이날 6·25의 상징성과 최근 서해 해상에서의 충돌 사태 등을 감안할 때 공연날짜가 적절치 못하다는 여론을 문화관광부에 전달했다고 김완기(金完基) 행자부공보관이 전했다.행자부의 조치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등 보훈단체들이 “수많은 전몰자와 피해자를 냈던 6·25날은 호국정신을기려 온 국민이 엄숙해야 한다”며 잭슨 공연을 다른 날로 옮겨달라는 요지의 진정서를 당국에 제출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문화관광부는 이 공연이 지난 10일자로 이미 한국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허가를 받은 데다 북한어린이돕기를 비롯한 자선공연이며,한국만의 단독행사가 아니라 29일로 예정된 독일 뮌헨 공연과 연계된 국제적인 행사라는점 등을 들어 연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화계에서도 행자부의 이번지적에 대해서는 뜻밖이라는 분위기다.애초 마이클 잭슨이 한국 공연 날짜를 25일로 정한 의도 자체가 금세기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고 공연취지도 북한어린이돕기를 비롯한 자선공연임을 밝힌 만큼 이 공연을 호국정신 훼손과 연결하는 것은 지나친 반응이라는 설명이다.국내 공연기획사인 제일기획측도 보훈단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이 공연이 자선돕기 성격이란 점을 설득하고 있지만 모처럼 순조로운 잭슨행사진행에 차질이 빚어질까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이순녀·서동철기자 coral@
  • “세르비아系 치하 코소보는 생지옥”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가 실시한 ‘인종청소’는 코소보 땅 전역을 알바니아계의 피와 눈물과 신음으로 뒤덮은 인간성 ‘도살’ 작업이었다. 90만명에 육박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하루아침에 국경밖으로 내쫓고 그들의 집과 농장을 불태운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재건비용으로 100억달러가예상될 만큼 삶의 터전이 황폐화됐지만 그래도 고향 땅을 다시 밟게 된 이들은 운좋은 사람들이다. 최근 유고군이 코소보주에서 철수하고 국제평화유지군(KFOR)이 진주하면서속속 드러나고 있는 세르비아 군경의 만행은 ‘참혹’ 그 자체다.코소보주 85개 도시와 마을에서 세르비아계의 대량학살이 자행됐다고 보고되고 있으며실제 평화유지군이 진주하는 데마다 수십여개의 집단매장지가 발견되고 있다.나토를 포함,서방측은 유고 군병력이 학살한 알바니아계 민간인 숫자가 1만명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미 해외정보국(USIA)의 최근 보고서는 22만∼40만명에 이르는 알바니아계 남성들이 실종된 상태라고 밝혔다. 17일 영국 공수부대가 공개한 코소보 주도프리슈티나의 한 경찰서는 그동안 입으로만 전해진 세르비아계의 잔학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각 외신들이 ‘고문강간실’ 또는 ‘고문센터’라고 표현한 이 경찰서에선쇠로 만든 수갑이 가득찬 상자들과 함께 ‘마우스 셔터(Mouth-Shutter)’라고 새겨진 야구방망이들 외에 고문용으로 쓰인 칼과 곤봉세트들이 여기저기널려있었다.또 알바니아계 여성들을 성폭행할때 이용했던 방에서는 콘돔 여러 상자와 흥분제로 쓴 신경가스제 및 각종 음란물들이 갈기갈기 찢겨진 침대 매트리스 등과 함께 발견돼 당시 끔찍했던 상황들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지난 5월25일 이 경찰서로 끌려와 고문받았던 인근 주민 리자 크라스니치는그때도 15∼70세까지의 여러 알바니아계 남녀 주민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목격했었다며 그중 일부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그는세르비아 경찰들이 주민들을 마구 구타하며 이름과 주소를 묻고는 세르비아에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제프 훈 외무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에 공개된 경찰서는코소보주에서 얼마나 공공연하게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탄압하고 야만적 행위를 저질렀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서 어린이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하고 젊은여성과 소녀들을 집단강간하고 시체를 대량으로 매장하며 살인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태울 수 있었는지 아직도 믿기 어렵다”며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코소보에서 실제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경옥기자 ok@
  • 코소보 곳곳서 총격전… 해방군 보복공격

    [프리슈티나 브뤼셀 워싱턴 외신종합]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주도의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은 14일 후속부대의 순조로운 진주와 함께 조직적인코소보 장악에 나섰다. KFOR는 이날 1,200명의 미 해병대가 미 주둔군 본진으로 코소보에 진입함에 따라 선발대 영국군 5,000여명을 비롯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병력 등 예정인원 5만명 가운데 1만5,000여명의 코소보 배치를 완료했다.초기 배치과정에서 세르비아 잔류병력과의 충돌사고로 4명이 죽고 4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일부 세르비아 군경이 철수 직전 KFOR 병사 및 서방 언론인을 저격하거나 알바니아계 주민의 가옥을 불지르는 등의 파괴활동을 벌이자 이에 KFOR이단호히 대응했다. 독일 외무부는 13일 프리슈티나 남쪽 스티믈례 부근에서 독일 기자 2명이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대변인이 말했다.이들은 알바니아계 주민을 집단매장한 공동묘지 취재를 가던 중이었다. KFOR 소속의 독일군과 영국군도 남부 프리즈렌 등에서 세르비아계 무장병력과 총격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기습진입으로 주도 프리슈티나의 슬라티나 군사공항 등을 점거했던러시아군은 선점 장소를 독점할 태세를 보이면서 지위 및 역할을 놓고 미국과 협상을 계속 했다.세르비아계 밀집지역인 북쪽지역의 관할 및 KFOR과 별도의 독자 통제권을 주장해온 러시아는 레오니드 이바쇼프 국방부 대외군사협력국장을 통해 미국이 15일까지 입장표명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코소보지역의 알바니아계 무장조직인 코소보해방군(KLA)은 철수하는 세르비아계를 공격하고 있어 “새로운 피의 보복”등도 우려되고 있다.
  • 유엔 국제평화유지군-현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코소보의 평화회복을 위해 나토 주도하의 국제평화유지군(KFOR) 배치를 결의함에 따라 유엔의 평화유지군 활동에 다시 관심이쏠리고 있다.지난 88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던 유엔 평화유지군의 과거및 현재 활동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유엔 국제평화유지군은 현재 전세계 14개 곳에서 1만3,0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아프리카,중동,발칸반도,서남아시아 등 국제사회 대표적 분쟁지역에서 무장군대,군경부터 민간 감시단까지 다양한 형태로 평화유지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임무와 영향력 또한 하나같지 않다.휴전지역을 접수,무장해제,선거감시,경제재건 등 수렴청정에 진배없는 권력을 행사하는가 하면 정부의 경찰력을 조련하는 ‘사관학교’ 역에 그치기도 한다. UNMIBH(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평화유지군)와 UNMOP(크로아티아 평화유지군)은 평화유지군이 제2의 정부로 기능한 대표적 사례.옛 유고연방 내전 주체들이 95년 데이튼 평화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각각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크로아티아 지역에 분쟁재발 방지 및 긴장완화를 임무로 진주했다.특히 UNMIBH는 나토 가입국들이 다국적군 무장병력 대부분을 이뤘기 때문에 코소보사태가 터진 뒤 평화유지군 준거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UNTSO(유엔정전감시단)은 48년 유엔 평화유지군 창설 조직으로 중동에 투입돼 지금에 이른다.48년 휴전 및 49년 휴전협정 감시,67년 제2차 중동전 중재 등을 떠맡았다.이스라엘군의 레바논 철군 감시를 위한 UNIFIL(유엔레바논잠정군),이스라엘-시리아간 휴전 및 국경협정을 감독하는 UNDOF(유엔해방군) 등과 연대활동 중. 평화유지군은 때때로 파견국 정부의 강한 반발로 각종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91년 걸프전 종전과 함께 이라크 봉쇄,양국간 국경침범 방지 등을 목적으로 구성된 UNIKOM(이라크-쿠웨이트 정전감시단)은 이라크 정부와 첨예한 신경전을 편 사례.UNICOM에 대해 이라크 정부가 유엔 종전안에 따른 대량살상무기 관련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단원들을 추방하자 미국이 공습에 나서기도했다. UNMOGIP(인도-파키스탄 군사감시단) 역시 파견지역 반발로 활동이 주춤해졌다.인도,파키스탄 독립 2년 뒤인 49년,양국간 카슈미르 지역 국경을 확정한‘카라치 협정’에 따라 그 이행 감시를 위해 투입됐다가 72년 카라치 협정이 개정되자 임무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인도 정부측에 의해 활동이 제약됐다. 이밖에 아프리카 지역에 ▲MINURCA(중앙아프리카 공화국 평화감시단)▲UNMOSIL(시에라 리온 내전감시단)▲MINURSO(서 사하라지역 분쟁감시단),미주에서 MIPONUH(아이티 경찰감시단;아이티 경찰 조련임무),아시아에서 UNMOT(타지키스탄 정전감시단),유럽에 ▲UNFICYP(키프러스 국제평화유지군)▲UNOMIG(그루지야 휴전감시단) 등이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완료된 평화유지군 활동 유엔은 지난 48년 평화유지활동을 처음 시작한 이래 51년간 유엔의 이름으로 총 49회의 국제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35차례 활동을 완료했다. 그간 111개국에서 75만명 이상의 군인,경찰 및 민간 봉사자가 파견돼 활동에 공헌했으며 1,581명(98년 8월말 현재)이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이미 종료된 평화유지활동을 지역별로 보면 아프리카 13회,중·남 아메리카7회,아시아 6회,유럽과 중동 각각 5회다.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적인 유엔평화유지 활동으로 앙골라검증단(UNAVEM)을우선 들수 있다.UNAVEM은 앙골라 정부군과 반군인 앙골라완전독립 민족동맹(UNITA)간의 평화협정에 따른 쿠바군의 철군이행,민족화합,완전 정전 및 UNITA군의 무장해제 및 무기회수 등을 검증하기 위해 89년초부터 97년 6월말까지 3단계에 걸쳐 구성되었다.프랑스,헝가리,인도 등 31개국으로부터 283명의군감시단과 3,649명의 군병력,288명의 경찰이 파견됐다. 앙골라 정부군과 반군의 협정이행 지연 등을 이유로 유엔은 UNAVEM을 유엔앙골라관찰단(MONUA)으로 대체했으며 이 관찰단은 99년2월 활동을 종료했다. 유엔은 르완다의 정전협정 감시와 수도 키갈리의 치안유지 등의 감독을 위해 93년 10월부터 3년여 동안 르완다지원단(UNMIR)을 파견했으나 26명의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맛보았다. 코스타리카,엘살바도르,과테말라,온두라스,니카라과 등 중미 5개국에서의유엔 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유엔 중앙아메리카관찰그룹(ONUCA)은 89년 말부터 3년 동안 1,000여명이 파견돼 인명피해 없이 이들 5개국 정부의 게릴라 지원중지와 게릴라해산 등을 감독했다.이와 함께 엘살바도르 정부군과반군간의 정전 감시와 아이티의 경찰제도 확립 및 경찰훈련을 위해서도 파견됐다. 다시 포격전이 터졌지만 카슈미르 지역에서는 2차 전쟁이 발발된 지난 65년유엔 인도-파키스탄관찰단(UNIPOM)이 파견돼 임무를 수행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캄보디아 등지에도 나갔는데 특히 93년 말까지의 유엔 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는 캄보디아 재건에 큰 일을 해냈다.중동에서 이란과 이라크가 격돌하자 테헤란과 바그다드에 감시단을 파견,정전과 철군을 감시했다. 크로아티아 신뢰회복기구(UNCRO),유엔 민간관찰지원그룹(UNPSG),유엔보호군(UNPRFOR),유엔 예방배치군(UNPREDEF) 등의 이름으로 옛 유고연방 지역에 파견된 유엔군은 세르비아계 무장 민병대가 판을 치는 이 지역에서 민간인들에게 수호천사 역을 다했다.92년 2월부터 3년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크로아티아,신유고연방 및 마케도니아에 나갔던 3만9,0000명의 유엔군은 비행금지구역 감시,비무장지대 설정,인도적 구호 등의 활동을 벌이면서 167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박희준기자 pn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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