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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일 ‘장한 아내상’ 시상식

    1970년 해병대에 입대한 정만화(61)씨는 훈련소에서 왼쪽 눈을 실명하는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곧바로 전역했다.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한쪽 눈을 잃고 방황하던 정씨에게 한줄기 희망이 찾아왔다. 아내 이명숙(57)씨였다. 이씨는 한쪽 눈을 실명한 정씨와 연애를 하며 결혼에 골인했다. 이씨는 낮에는 식당에서 밤에는 포장마차에서 일하는 등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1남 2녀의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냈다. 방황하던 남편에게 새 삶을 안겨주고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뒷바라지해 훌륭한 사회의 일꾼으로 길러낸 것이다. 국가보훈처와 상이군경회는 이씨의 공로를 인정해 ‘장한 아내’로 선정했다. 보훈처는 29일 거동이 불편한 상이군경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아내에게 주는 ‘제9회 장한 아내상’ 시상식이 30일 여의도 중앙보훈회관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올해 수상자는 이씨를 비롯해 문미례(60)·박두남(52)·이덕임(74)씨 등 20명이며 올해까지 모두 181명이 장한 아내로 선정됐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사설] 생활고 6·25 참전용사, 우리 사회가 외면 말아야

    6·25전쟁 60년을 맞아 어제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한국전쟁기념재단’ 출범식이 열렸다. 이 재단은 해외 참전용사 후손 중 가정 형편이 어려운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오면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예비역 대장인 백선엽 이사장은 “유엔 깃발 아래 모인 21개국의 젊은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오늘 한국의 자유가 있다.”면서 “우리가 조금 나아졌기 때문에 그들이 흘린 피와 땀에 보답해야 한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이역만리에 있는 한국의 자유를 지키려고 희생된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우리가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보답하는 것과 함께 우리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참전했거나, 자원해서 나라를 지킨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에 대해서도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보답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교육원이 6·25 참전용사 19만 7056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의 월 평균 총소득은 37만원에 불과했다. 올해 1인 최저가구 생계비(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참전용사의 경우 무공훈장을 받았으면 ‘무공 영예수당’으로 월 15만원을, 참전 사실만 인정되는 참전 유공자는 ‘참전명예수당’으로 월 9만원을 각각 받는다. 상이군경과 무공수훈자는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 자녀 수업료와 병원비가 면제되고 자녀들은 특별 고용된다. 저리로 대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참전 유공자는 혜택이 별로 없다. 참전 유공자의 84%는 “6·25 참전이 자랑스럽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이 보답을 바라고 6·25전쟁 때 참전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는 이들과 후손들에게 어느 정도 보답할 의무가 있다. 국민의 의무만 강조하고 국가의 의무는 소홀히 한 게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지난해 수출 9위, 국내총생산(GDP) 16위로 성장한 것은 자유를 지키려는 이들의 희생 때문에 가능했다. 보훈(報勳)은 말 그대로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국가보훈처는 있지만 참전용사의 공훈에 보답하는 노력은 미흡했다. 금전적으로 참전용사들이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것과 함께 정부는 국군포로 송환과 전사자 유해를 찾는 데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애국심은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다.
  • [사고] 부산에서 함께 걸어요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부산지사가 개최하는 ‘제261회 부산시민 걷기대회’가 오는 20일 열립니다. 이번 대회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부산지방보훈청이 주최하는 ‘호국보훈의 달 기념 나라사랑 부산시민걷기대회’ 행사와 함께 진행됩니다. 추첨을 해 자전거, 세탁기 등 경품도 푸짐하게 드리며 참가자에게는 부산지방보훈청이 마련한 기념품도 제공합니다. ●모이는 때·곳 20일 오전 10시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성지곡수원지) ●행운상 제공업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부산지사(세탁기), 부산시생활체육회(자전거), ㈜아모레퍼시픽 부산지사(화장품), ㈜트렉스타(등산화), ㈜세정(인디안 패션 셔츠), 배달사(고급 시계), ㈜동마(놀이동산 초대권), 통도환타지아(자유이용권), ㈜유앤미푸드텍(벅스햄버거), 스포원파크(자유이용권), ㈜해인수(생수), 새한전자(찜질기), 상이군경회 부산시지부(자전거), 전몰군경유족회 부산시지부(자전거), 전몰군경미망인회 부산시지부(자전거), 고엽제전우회 부산시지부(자전거) ●후원 부산광역시·부산광역시교육청 ●협찬 ㈜세정(인디안) ●문의 서울신문 부산지사 (051)462-2852 ●주최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부산지사, 부산시 지방보훈청, 부산시생활체육회, 상이군경회 부산시지부, 전몰군경유족회 부산시지부, 전몰군경미망인회 부산시지부, 고엽제전우회 부산시지부
  • “훈련병땐 캔디…이젠 GI제인”

    “훈련병땐 캔디…이젠 GI제인”

    “훈련소 때는 캔디였죠. 매일 밤 울었거든요.” 서울신문과 국방부가 선정한 국군모범용사 송상화(44) 육군 상사는 25년 전 여군 훈련소 시절을 회상했다. 미대생을 꿈꾸다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고 군입대를 결심했다고 한다. 고교 담임 선생님이 군대는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주고 여러가지를 모두 책임져 주는 곳이라는 말에 당장 지원서를 썼단다. 지금은 25년차 베테랑인 송 상사에게 군생활의 첫발을 내딛던 1985년은 막내딸로 자란 그녀에게 혹독한 해였다고 한다. 송 상사는 훈련소 시절 너무 힘들어 동기생들에게 ‘탈영하자’고 설득하며 진지하게 탈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당시 ‘군인’보다는 ‘열아홉 소녀’였던 터라 엄격하고 혹독한 생활, 갇혀 지내는 생활이 맞지 않았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1군단 사령부에서 후배들과 병사들의 고충을 상담해 주는 송 상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훈련소 생활을 끝낸 뒤 첫 근무지로 배치받으면서 그녀는 캔디에서 ‘GI 제인(영화 속 미 여군 전사)’으로 바뀐다. 최전방 15사단에 처음으로 배치받았다. 병과는 심리전. 최근 천안함 사건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대북심리전 요원이다. 27명의 동기 중 3명만 심리전 병과를 달았고 송 상사만이 전방에 근무했다고 한다. 야전에 근무하는 첫 심리전 병과 여군인 셈이다. 자부심이 대단했단다. 송 상사는 밤이면 마이크 앞에 앉아 “북에 계신 오빠들~”을 부르곤 했다고 전했다. 심리전 방식 중 하나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군사보안이라며 얘기하길 꺼린다. 그녀는 휴전선 155마일 7개 사단 전지역에서 심리전단 선임하사로 근무했단다. 여군으로 전방 부대를 모두 근무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다. 하지만 심리전 정책이 바뀌면서 전방에 근무할 행정요원을 교육시키게 됐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행정요원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얼마 뒤 군은 그녀를 또 다른 시험에 들게 했다. 병과를 항공으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정말 말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의하려고 육군본부를 찾아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간단하게 뒤돌아서게 만들더라고요.” 육군 항공 최초 여자 정비사가 되어 보라는 것이었다. “최초의 여군 정비사로서 정책적인 것이니 꼭 성공해야 한다는 취지였어요.” 송 상사를 선두로 4명의 여군이 항공학교에 입교했다. 훨씬 어린 정비 장학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시험볼 때 커닝도 했지만, 과락도 경험했다. “그만둘까도 생각했죠. 동생들 앞에서 커닝하다 들켰는데 너무 창피했죠.” 그날 이후 송 상사는 달라졌다. 무섭게 공부했고 졸업할 때 3등을 차지했다. 송 상사는 항공 관제사로 일하게 됐다. 여군 관제사도 처음이다. 2004년까지 서울에서 관제사로 근무했다. 그녀는 이 기간에 특무상사로 군에 근무하다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잃고 접었던 공부도 시작했다. 낮에는 군에서,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했다. 건국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수료하고 석사가 됐다. 공부 못한 꿈도 군에서 이뤘다. 그런 그녀가 2004년 말 또다시 병과를 바꿨다. 군경력 19년차 때다. 이번엔 정훈이다. 각종 정책과 예산 등 다양한 일을 하게 됐다. 여러 분야에 대한 경험이 정훈업무를 담당하며 도움이 됐다. 그 기간에 딸도 낳았다. 복덩이라는 딸의 이름은 태헌이다. 우리나이로 6살이란다. 군생활 20년 만이며 결혼 10년만에 얻은 딸이다. 남편은 학군 25기 출신의 예비군 중대장 심달우씨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잊혀진 현충일…월드컵에 묻혀 관심 줄어

    현충일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해마다 나오는 지적이지만 특히 올해는 월드컵과 지방선거 등 굵직굵직한 이벤트 때문에 참전용사와 유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 현충일을 이틀 앞둔 4일 국립서울현충원에 따르면 올 4~5월 방문객 수는 53만 496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5만 8610명에 비해 2만여명이 줄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도 36만 2979명이 찾아 전년 동기의 64만 9118명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유공자 유가족들도 이런 사회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몰군경미망인회 경기지부 홍계옥(76) 회장은 “예전에는 6월이 되면 보훈의 달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관심도 많이 가져줬다.”면서 “하지만 현충일이라고 특별히 전몰장병을 기린다는 분위기도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류지철 상이군경회 회장도 “이념의 문제를 떠나 호국영령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윤샘이나기자 ky0295@seoul.co.kr
  • 태국시위 ‘열혈취재’ 中여기자 화제

    태국시위 ‘열혈취재’ 中여기자 화제

    태국의 유혈사태를 생생하게 보도한 용감한 여기자가 중국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중국 공영방송 CCTV의 한 여기자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태국 반정부 시위대(일명 ‘레드셔츠’)와 군경 간의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진 방콕 시내로 나갔다. 왜소한 체구를 가진 장 멍이란 이 여기자는 방탄조끼와 보호 안경만 착용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시위대의 비명과 격렬한 총성이 들렸지만 비교적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 여성은 “유혈충돌 사태를 볼 수 있는 반정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지점에 나와 있다.”고 말을 시작한 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시위 현장을 자세하게 전했다. 보도 도중에 폭격소음이 강하게 들리자 이 여기자는 땅에 바짝 엎드리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은 채 말을 계속했으며 카메라 기자 역시 바닥에 누워서 이 모습을 담았다. 떨리는 목소리지만 위험천만한 시위 현장을 생생히 담아낸 이 여기자의 용감한 취재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위험한 곳에서도 직업정신을 발휘한 모습이 감명 깊다.”, “여성의 몸으로 격렬한 시위현장을 누비는 모습이 멋지다.” 등 이 여기자의 투혼에 감동했다는 소감이 쏟아졌다. 한편 지난 3월 14일 부터 계속된 태국 시위과정에서 사망 희생자는 50명을 넘어섰다. 19일 지도부의 투항으로 사태가 일단락 되기 전까지 4개국에서 온 기자 중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태국 곳곳 게릴라시위·방화

    태국 정부는 20일 방콕과 지방 23개 주에 대해 22일까지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 사이에 야간 통행을 금지하는 비상조치를 선포했다. 당초 전날 오후 8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방콕 시내를 대상으로 한시적인 통금조치를 취했던 것에서 연장된 것이다. 그만큼 질서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반정부시위대(UDD·일명 ‘붉은셔츠’)가 방콕 시내 곳곳에서 게릴라 시위를 계속하면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시위 지도부가 전날 항복을 선언했지만 시위대 다수는 투항을 거부한 채 방콕 최대 쇼핑몰인 센트럴 월드와 증권거래소, 방송국 건물 등 35곳이 넘는 곳에 불을 질렀다. 시위 범위도 방콕을 넘어 북부와 동북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태국 정부는 전날 장갑차와 소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가 점거하던 시내 중심가 랏차쁘라송 일대를 무력으로 장악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지만 시위가 계속 이어지자 진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약탈과 방화범들에 대해서는 군경이 현장에서 사살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며 체포 시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에는 정규 편성을 취소하고 정부 검열을 거친 프로그램만 방송하도록 하는 보도통제 조치도 시행 중이다. 태국 중앙은행은 안전을 이유로 20∼21일 이틀 동안 전국 은행이 휴무하도록 했고 방콕 도심을 관통하는 지상철(BTS)은 이날 하루 동안 운행을 중단했다. 순센 깨우꿈넷 군 대변인은 “방콕내 일부 지역의 치안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랏차쁘라송 거리 등에서 시위대 잔존 세력들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계속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에라완 응급의료센터는 전날 강제진압작전 과정에서 최소 14명이 숨지고 9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금까지 발생한 사망자는 외국인 기자 2명을 포함한 82명, 부상자도 1800여명으로 늘었다. 한편 콥삭 삽하와수 총리 비서실장은 “국가 화합을 위한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며 이 계획을 마무리하는 데는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하고 “국가 화합 계획이 마무리되면 총선이 실시될 것”이라고 언급, 조기총선을 시사했다. 그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적절한 조기 총선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아피싯 총리는 11월14일 조기총선 실시, 입헌군주제 수호, 사회평등 확대 등을 골자로 한 타협안을 지난 3일 발표했으나 시위대 측이 타협안 발표 후에도 자진해산을 거부하자 타협안을 철회한 바 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무력을 통한 사태 해결에 우려를 나타내며 평화적 방법으로 상황을 정상화시킬 것을 거듭 주문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계속되는 폭력사태와 잇따른 인명피해, 방화 등에 깊이 우려한다.”면서 태국 정부와 시위대 모두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반정부 시위 2개월만에 ‘피묻은’ 백기투항

    반정부 시위 2개월만에 ‘피묻은’ 백기투항

    태국 정부는 19일 전격적으로 반정부시위대를 치고 들어갔다. 군경의 진압작전에 시위대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던 지역은 곧바로 군경에 넘어갔다. 시위대 지도부는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월14일 시위가 시작된 지 2개월여 만이다. 당초 망명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가 수도인 방콕 시내 중심가에 모여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외칠 때만 해도 시위가 장기화되고, 유혈사태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방콕 중심가를 거점으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많은 사상자가 났지만 정부 측의 해산 최후통첩도 거부했다. 결국 정부는 이날 오전 6시쯤 장갑차, 소총과 유탄발사기, 최루탄 등을 동원해 강제해산에 나섰다. 상원의회가 중재하는 협상을 거부한 지 하루 만이다. 진압과정에서 최소 6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군경은 먼저 장갑차를 앞세워 전진하면서 시위대가 설치해 놓았던 폐타이어로 만든 바리케이드 등을 제거했다. 최루탄과 공포탄도 발사했다. 곧이어 시위대의 차지였던 랏차쁘라송 거리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장악했다. M16 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는 경고 방송을 내보냈다. 시위대는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시꺼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경과 시위대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폭탄이 터진 듯 굉음도 곳곳에서 들렸다.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시위대 지도자인 자투폰 프롬판은 시위대 본부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지자들에게 “더 이상 피해가 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항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시위대 지도부가 경찰에 백기를 든 이후에도 적지 않은 시위대는 방송국과 대형 쇼핑센터, 주식거래소 건물 등 20개 시설에 난입하거나 불을 지르는 등 저항을 계속했다. 랏차쁘라송 거리에서 가까운 쇼핑센터 센트럴 월드에선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화재가 발생했다. 일부 호텔 등에서는 전력 공급이 끊기기도 했다. 친정부성향으로 지목된 신문사 ‘방콕 포스트’는 시위대가 공격에 나서자 직원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TV방송국 ‘채널 3뉴스’가 불길에 휩싸여 사무실에 갇힌 100여명을 구하기 위해 헬리콥터가 출동하기도 했다. 순센 깨우꿈넷 군 대변인은 이날 오후 시위 지역인 랏차쁘라송 거리 일대를 장악했다며 진압작전의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혼란이 지속되자 태국 정부는 TV방송을 통해 방콕 시내 전역을 포함, 24개주에 대해 오후 8시부터 20일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정부는 또 모든 TV방송국의 정규방송을 취소하고 정부 검열을 거친 프로그램만 방송토록 명령했다. 태국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는 공공 안전을 이유로 20~21일 이틀간 휴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편 탁신 전 총리는 이날 자신이 시위대와 정부 간 평화협상을 방해했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탁신 전 총리는 “오늘 정부는 랏차쁘라송 거리의 평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고는 내가 협상을 거부한 이들 중 하나라고 비난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평화적인 방안을 찾는 협상을 위한 어떤 노력도 반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강국진 박성국기자 betulo@seoul.co.kr
  • 泰 시위대 강제 해산

    2개월 이상 계속된 태국 반정부 시위가 19일 정부의 전격적인 진압작전에 강제해산됐다. 시위대 지도부는 정부 측에 격렬하게 저항하다 시위종료를 선언한 뒤 투항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독재저항민주연합전선(UDD·레드셔츠)의 66일간 시위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태국 군경은 오전 6시(현지시간) 시위대가 점거 농성하던 랏차쁘라송 거리 앞 룸피니 공원 등에 수십대의 장갑차와 병력을 집결시킨 뒤 곧바로 강제해산에 돌입, 오후 시위대 지도부의 투항을 받아냈다. 강제해산 과정에서 취재중이던 이탈리아 사진기자 파비오 폴렝기(45)를 비롯해 최소 6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쳤다. 이로써 지난 3월14일 시위가 시작된 이래 70여명이 죽고 17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면서 시위대를 이끌던 웽 토지라칸은 군·경 작전이 본격화되자 “추가 인명피해를 막아야 한다.”면서 “시위 참가자들은 현장을 떠나야 한다.”며 시위종료를 선언했다. 시위대 지도부 7명은 시위를 끝낸 뒤 경찰에 출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 해산으로 태국의 시위 정국은 일단락됐지만 첨예한 계층 갈등과 전·현 정권의 대치가 여전한 만큼 정정 불안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실제 우돈타니주와 콘캔주 등 지방 곳곳에서 정부의 강제해산에 항의하는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강국진 박성국기자 betulo@seoul.co.kr
  • 泰정부 “先해산 後협상”… 대화 무산

    태국 정부가 18일 상원이 중재하는 협상을 거부해, 완화 기미를 보이던 시위 정국이 다시 얼어붙고 있다. ☞[포토]유혈충돌 태국 어디로… 사팃 옹농태이 총리실 장관은 “시위대가 먼저 자진 해산해야 협상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BBC등 외신들이 전했다. 정부의 협상 거부는 시위대가 “아무런 조건없이 상원 중재 하의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힌 직후 나왔다. 사팃 장관은 “해외에 있는 사람의 개입으로 협상이 두 차례나 실패했다.”며 시위의 실질적 지도자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비난했다. 정부는 임시 공휴일을 21일까지 사흘 더 연장한다고 밝혀 시위대에 대한 무력 강경 진압 작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는 ‘최후 통첩’이 만 하루가 지난 이날에도 방콕 쇼핑중심가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를 점거한 채 군경과 대치하고 있다. 군부는 시위대에 대한 무력 해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며 정치적 해결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 향후 역할이 주목된다. 한편 유엔인권기구의 나비 필레이 고등인권 판무관은 18일 “태국 시위대와 정부는 벼랑끝 대치에서 벗어나 충돌을 끝내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80년 5월의 광주…그날 무슨일이

    1988년 국회 5공청문회를 통해 5·18의 진실이 조금 드러났다.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도 이뤄졌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는 아직껏 미궁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5월17~18일 17일 오후 9시40분 임시국무회의가 비상계엄확대 선포안을 의결했다. 신군부는 곧 전국 대도시에 군대를 투입했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됐다. 18일 오전 10시쯤 전남대 정문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진 줄 모르고 등교한 학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쳤다. 계엄군은 진압봉을 휘두르며 해산에 나섰다. 10여명의 학생이 다치고, 나머지는 시내로 진출했다. ‘5월항쟁’의 신호탄이었다. ●5월19~20일 광주는 전날 벌어진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공포와 분노의 도시로 변했다. 19일 오전부터 금남로에는 대학생·시민 2000~3000명이 나와 군경과 대치했다. 11공수여단 3개 대대가 가세했고 젊은 사람들이 무차별 폭행당했다. 시내 병원들은 부상자로 넘쳤다. 20일부터는 3공수여단 1100여명이 추가 파견됐다. 하지만 전날과 달리 M16 소총에 착검도 하지 않았다. 말씨도 공손했다. 금남로에는 10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MBC방송국 등이 불탔다. 밤 11시쯤 광주역 부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차량을 앞세워 저지선을 돌파하려던 시위대를 향한 첫 발포였다. ●5월21일 새벽이 돼도 군중들은 물러설 줄 몰랐다. 세무서·파출소 등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전날 광주역 발포로 숨진 시체 2구가 시민들의 손에 넘어왔다. 오전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금남로를 꽉 채웠다. 오후 1시 정각. 전남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때맞춰 계엄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5월22~25일 날이 밝자 광주는 ‘해방구’로 변했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였다. 시민군은 치안유지를 맡는 등 ‘자치 활동’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주먹밥을 해다 날랐다. 각계 원로가 참여한 ‘5·18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됐으나 ‘결사항전’을 주장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 기간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5월26~ 27일 26일 새벽. 마침내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시내로 진입했다. 원로 수습위원들이 최후 담판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안에서 첫 총성이 울렸다. 특공대는 5시10분쯤 시민군을 완전 진압했다. 항쟁지도부가 머물렀던 상황실 등은 피로 물들었다. 열흘간의 항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泰정부 “여성·노인·어린이 떠나라” 최후통첩

    泰정부 “여성·노인·어린이 떠나라” 최후통첩

    태국 정부와 반정부 시위대(UDD, 일명 레드셔츠)간 충돌이 사실상 내전으로 접어들었다. 총리가 무력강경진압 방침을 천명한 가운데 시위대의 야영지역이 ‘실탄 발사구역(live-fire zone)’으로 지정됐다. 방콕 시내는 총성과 폭발음, 화염으로 가득찬 전쟁터로 변했고 무력진압이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16일(현지시간) 오후 방콕 시내 라차프라송 거리를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에 “월요일(17일) 오후 3시까지 여성과 어린이, 노인은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내고 17~18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본격적인 무력진압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TV연설에서 “무력 진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태국 정부는 15일 라차프라송 거리 주변의 라차프라롭 지역을 ‘실탄 발사구역’으로 지정,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또 추가로 5개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로써 비상사태가 내려진 주는 모두 20개로 늘었다. 방콕 시내 학교의 개학은 1주일 연기됐다. 시위대도 격렬하게 저항 중이다. UDD 지도자인 나타웃 사이쿠아는 “아피싯 정권이 이미 내전을 시작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폭력을 멈추고 진압대를 철수시킨다면 언제든지 협상에 나서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특히 그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이번 폭력사태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며 유엔의 중재도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태국 정부는 시위대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봉쇄를 풀 계획이 없으며, 어느 나라도 내부 문제에 유엔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부했다. AP통신은 병원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 동안 30명이 숨지고 시위대와 군경, 기자 등 232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군경과 시위대 양측 모두 소총과 수류탄, M79 유탄발사기 등을 사용하고 있어 앞으로도 사상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BBC는 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태국 군경이 물이 가득찬 대형풍선을 이용해 시위대를 방콕 외곽으로 밀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방콕 시내는 시위대가 군경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트럭과 타이어 등에 불을 지르면서 검은 연기로 가득 찼고, 시위대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비행하는 헬리콥터 굉음으로 주민들의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태국 정부는 5000여명의 시위대가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에 모여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무력진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영국, 일본에 이어 스위스 정부가 15일 방콕 주재 대사관을 잠정 폐쇄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인들에게 태국 여행 자제령을 내렸고, 대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방콕에서 피신하도록 지시했다. 태국언론인협회(TJA)는 16일 시위 취재과정에서 내외신 기자들이 잇따라 부상하자 각국 취재진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성명을 내고 “추가적인 인명손실과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태국 정부는 아피싯 총리가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태국 내부의 문제로, 외국과 국제기구의 개입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반 총장에게 보내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일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泰, 군경·시위대 충돌 7명 사망

    태국 정세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 14일 군·경과 반정부 시위대가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7명이 숨지고 최소 100여명이 부상했다. AFP통신은 부상자 가운데 한 명은 프랑스 관영 매체인 프랑스24에서 일하는 캐나다인 카메라맨으로 취재 도중 다리를 총에 맞아 위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 측은 전날 저녁부터 17개 지역으로 비상사태 선포를 확대하는 동시에 무장 병력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를 원천 봉쇄한 데 이어 이날부터는 봉쇄선을 뚫으려는 시위대를 겨냥해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고 공중을 향해 공포탄을 발사했다. 방콕 시내 중심가를 거점으로 삼은 반정부 시위대, 일명 ‘붉은 셔츠’는 군이 보유한 물대포와 차량을 탈취해 불태우는 등 저항을 이어 갔다. AP통신은 “군대 봉쇄선이 시위대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총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며 긴박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태국 정부는 오는 11월에 조기총선을 실시하자는 타협안을 시위대가 거부하자 전날 저녁부터 시위 현장 주변의 진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기존 방콕과 인근 지역에 더해 북부 15개 주에 비상사태를 발효했다. 이로써 비상사태를 선포한 주는 17곳으로 늘었다. 파니탄 와타나야곤 정부 대변인은 “비상사태 확대는 지방 주민들이 방콕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시위대가 점거한 방콕 시내 쇼핑가인 라차프라송 거리 일대에 대한 전기와 물을 끊고 대중교통과 휴대전화 서비스도 중단시켰다. 정부 대변인은 “봉쇄 완료가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봉쇄 작전은 지속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과 영국 정부는 방콕에서 군과 시위대 간 충돌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폭력사태를 우려해 이날부터 각각 방콕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태국 현지 공장 4곳 가운데 방콕 교외에 있는 동남아 수출용 차량을 생산하는 공장 한 곳의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泰 반정부 지도자 피격… 정국 다시 격랑

    태국 정부가 13일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의 점거 지역을 장갑차 등 군 부대를 동원해 봉쇄하고 조기총선 실시 등의 타협안을 철회, 정국이 다시 격랑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밤 시위대의 주요 지도자인 카티야 사와스디폴 전 특전사령관이 피격당해 시위대와 군대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고 BBC등 외신들이 전했다. CNN 등은 카티야가 시위 장소인 방콕 라차프라송 거리에서 수차례의 총성이 들린 직후 머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나 위독한 상태라고 전했다. 정확한 사건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UDD의 투쟁 작전을 총괄하고 있는 카티야는 태국 정부 당국이 시위대의 테러활동을 조종하고 있다고 지목한 인물로 특수전에 능통한 군장성 출신이다. 태국 정부는 이날 밤 반정부 시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시위 지역의 봉쇄를 단행했으며 단수, 차량 운행 중단, 전화 서비스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산선 캐우캄넛 군 대변인은 “시위대에 섞여 있는 테러범들이 공격을 가할 경우 실탄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태국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3월14일부터 의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지난달 10일에는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 25명이 숨지고 870여명이 부상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泰, 이르면 9월15일 의회해산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가 6일 의회 해산 일정을 공개하며 반정부 시위대(UDD·레드셔츠)와 협상에 돌입함에 따라 길었던 유혈시위 정국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방콕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피싯 총리는 “11월14일 조기 총선 실시를 위해 9월15~30일 사이에 의회를 해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부 방침은 ‘1개월 내 의회 해산과 3개월 내 총선 실시’를 주장해 온 시위대가 지난 4일 정부 측의 ‘6개월 내 총선 실시’ 안을 수용하면서 나왔다. 시위대는 의회 해산이 공식 선언되는 대로 자진 해산하기로 했다. 아피싯 총리는 이와 관련, “11월14일 조기 총선을 치르자는 타협안을 제안할 당시 의회 해산 시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누구라도 법 규정을 고려해 본다면 해산 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은 의회가 해산된 뒤 45~60일 사이에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11월14일에 총선을 하려면 9월15~30일 사이에 의회를 해산해야 한다. 아피싯 총리가 의회 해산시기를 공식화하자 시위대 지도부들은 자진해산 일정에 대한 협의를 벌이기로 했다. 시위대는 지난 3월14일부터 방콕 시내의 대표적 쇼핑가인 라차프라송 거리를 점거하고 시위를 이어 오면서 군경과 충돌한 결과 시위대 26명, 군인 1명이 숨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55년만에 면사포… 쑥스럽네요”

    “55년만에 면사포… 쑥스럽네요”

    “빚보증 잘못 서서 집까지 날릴 위기에 놓였을 때도, 상이군경으로 몸이 불편해 거동도 불편해졌을 때도 꿋꿋이 나를 지켜준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웨딩마치를 신청했지 머야. 허허.” 노부부 2쌍이 7일 서울 서초구 중앙노인종합복지관에서 앙코르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세종대왕 10대 자손으로 7남매 중 첫째로 태어난 이문호(78) 할아버지와 남양주시 출신인 박순공(75) 할머니는 1955년 중매로 결혼식날 처음 얼굴을 보고 식을 올렸다. 결혼 55년차로 이혼의 위기도 극복한 이른바 ’황혼 부부’로 불리는 사례이다. 박 할머니는 3년간의 시집살이, 7남매의 어머니로 고생을 달고 살아왔다. 남편 이씨가 10년 전 친구와 형제들에게 보증섰다가 그만 있던 집까지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놓여 법원에 이혼 신청까지 했었지만 자녀들 생각에 결국 참고 견뎌냈다. 할머니는 “지금은 복지관에서 남편과 볼링도 배우고 수영도 하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면서 “남편이 웨딩마치를 신청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새색시처럼 쑥스럽게 미소지었다. 이날 최치용(68) 할아버지와 양승춘(66) 할머니도 혼례를 치른 지 46년만에 다시한번 식장의 주인공으로 나설 예정이어서 들떠 있다. 최 할아버지는 “칠순이 다 되어서야 수줍지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게 돼서 너무나 다행이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당시 군생활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는 결혼 3일 만에 군대에 다시 복귀했고, 2년여간 시어머니와 단둘이서 지내야만 했던 할머니는 신혼생활의 기대나 떨림보다는 긴장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며 모범적인 가정을 꾸려온 이들 부부에게 힘이 되어주며, 신부에게는 처음으로 면사포를 씌워주는 아름다운 5월의 추억을 남겨주게 돼 기쁘다.”고 강조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泰시위대 11월총선 타협안 수용

    ‘레드셔츠’로 불리는 태국 반정부 시위대(UDD)가 오는 11월14일에 총선을 실시하자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의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이에 따라 50일 넘게 이어져온 태국 사태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UDD 핵심 지도자인 웨라 무시카퐁은 4일 “시위대의 모든 지도자들이 만장일치로 아피싯 총리의 타협안을 수용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시위대는 1개월 내 의회 해산, 3개월 내 조기 총선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아피싯 총리가 TV연설을 통해 새로운 안을 제시한 지 하루도 안 돼 타협안을 수용했다. 이는 반정부 시위대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인 더 네이션은 탁신 전 총리가 친탁신계 야당인 푸에이타이당에 전화를 걸어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대관식 기념일인 5일은 상서로운 날로 정치적 화해를 위해 매우 좋은 날”이라며 시위대가 아피싯 총리의 협상안을 수락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탁신 전 총리는 “나는 UDD 운동의 일부일 뿐”이라면서 “아피싯 총리의 협상안을 수락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시위대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UDD는 이번 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도 즉각 해산하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시위대 지도자인 자투폰 프롬판은 “아피싯 총리가 언제 의회를 해산할 것인지 등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을 밝혀야 한다.”면서 “의회 해산 시기 등이 명확해질 때까지 당분간 시위 대열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UDD는 지난 3월14일부터 방콕 시내에서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시위 기간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로 지금까지 27명이 숨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보상금 ‘고무줄’… 상처 덧내는 보훈법

    [천안함 함미 인양] 보상금 ‘고무줄’… 상처 덧내는 보훈법

    천안함 사건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이나 공무원, 그들을 잃은 유족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느냐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보상금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생존자와 유족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은 뒷전이다. 관련 법률의 제도적 개선, 섬세한 배려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1993년 군대 간 아들을 잃은 이원배(72)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사무총장. 당시 받은 보상금은 500만원이었다. 그리고 매월 102만원을 받는다. 그나마 지난해 받던 97만원에서 5만원이 올랐다. 이 사무총장은 “100만원 남짓으로 밥은 먹고 살지 모르지만 그외의 생활은 뻔하다.”고 밝혔다.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사진] 진실 간직한채…모습 드러낸 함미 그는 지금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영웅적 행동은 칭찬해야 마땅하지만 기념사업을 하거나 동상을 세우는 방안도 있는데 꼭 돈으로만 특별대우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국가를 위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미흡한 인식도 꼬집었다. 고(故) 한준호 준위에게 수여한다고 국방부가 발표했던 ‘보국훈장 광복장’은 “오래 근무하면 누구나 받게 되는 ‘밥그릇’ 훈장”이라고 평가했다. 보국훈장 광복장은 33년 이상 군 생활을 하면 받는 훈장이다. 국방부는 대통령의 검토 지시를 받고 충무 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위험한 업무를 하다 다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딱히 있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해 12월15일 새벽, 인천 대우 일렉트로닉스 공장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은 박주원(36) 소방교는 “병원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보상을 많이 받을 것으로 알고 있어 무척 놀랐다.”며 “당시 나는 병원비 지원이 다 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박 소방교는 양 어깨와 오른손에 2∼3도 화상을 입고 한강 성심병원에 47일간 입원했다. 지난 9일 인천 선학역에서 만난 그는 당시 입은 화상으로 수술을 두 번했지만 평생 오른손에 장갑을 끼고 살아야 한다. 오른손에 대한 성형수술은 할 수 있겠지만 치료비 지원은 기능과 관계돼야만 가능하다. 검지가 잘 구부러지지 않는 부분은 해당되지만 나머지 흉터에 대해서는 지원이 없다.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 아쉬운 것이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치료비야 나오지만 보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경찰이나 소방공무원 등이 범인 검거나 화재진압 등을 하다 다쳐 입원할 경우 병원비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나온다. 단,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최대 3년까지만 지원된다. 상급 병실 사용료는 지원되지 않다가 지난해 말 행정안전부의 고시 개정으로 최대 7일까지 쓸 수 있게 됐다. 거동이 불편해 간병인을 쓰게 되면 의사소견서, 간호기록지 등을 첨부해야 한다. 병원에 치료비를 일단 낸 뒤 공무원연금공단에 청구해 받는 방식이라 공상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다툼이 생길 여지가 있다.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 금액이나 세부 항목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사건이 언제 발생했는지에 따라 지원금 또한 천차만별이다. 제도가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도 있지만 근본적 이유는 전체적 틀을 만들지 않고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땜질 처방으로 법을 만들거나 이런저런 조항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보훈교육연구원의 연구직원은 5명이다. 또 보훈교육연구원은 ‘기갑·기계화부대 작전형태별 화력운영 방안’ 등과 같은 군사학술 연구도 보훈 관련 정책과 비슷한 비중으로 수행한다. 순직 공무원에 대해 조금이나마 예우를 하게 된 것은 2006년부터다. 2004년 피의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순경 유족에게 주어진 보상금이 4658만원에 불과해 비난이 빗발쳤다. 2년 뒤 ‘위험 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보상금은 1억원가량이 됐고 순직유족연금도 만들어졌다. 올해부터 ‘공무원연금법’에 해당 내용이 반영되면서 순직공무원 보상법은 없어졌다. 전경하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泰정부·시위대 유혈사태 책임공방

    유혈사태로 치달았던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쏭끌란(태국 최대 명절) 연휴를 맞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부와 시위대 간 책임 공방이 치열하고 입장 차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시위대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머물고 있는 군부대로 행진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방콕 시내의 상업 중심가로 모이기로 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위대 지도자 나타와 사이쿠아는 “우리는 라차프라송 거리를 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최후의 결전 장소로 삼을 것”이라면서 “더 이상의 협상도, 대화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진압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두 군데의 주요 시위 장소를 한 곳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위대 지도자 웽 토지라칸은 “우리는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주장을 고수할 것”이라면서 향후 행동 계획은 쏭끌란이 끝나고 난 다음날인 16일 이후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몇몇 거리에서는 쏭끌란 연휴를 맞아 물 축제가 열렸다. 카오산 거리에서는 태국인들과 외국 관광객 등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물을 퍼붓거나 물총 싸움을 하는 등 물 축제의 전통을 만끽했다. 그러나 지난 10일 발생한 유혈사태에 대해 정부와 시위대 간의 책임 공방은 여전히 치열했다. 정부 측이 시위대 속에 숨어 있는 과격 테러범들이 총기를 사용해 사상자가 나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위대 측은 군경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수텝 타욱수반 태국 안보담당 부총리는 13일 “지난 10일 총기를 사용하고 수류탄을 던진 테러범들이 시위대 지도부와 관련돼 있다.”며 총기를 들고 있는 남성의 사진 등을 공개했다. 시위대 측은 군부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영상과 사진 등을 확보했다며 이를 반박했다. 한편 병원 당국은 이날 치료를 받던 군인 1명과 시위대 1명이 숨져 10일 유혈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23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태국시위 진정세… 조기총선설 대두

    1992년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를 빚은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일단 소강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태국 정부와 집권 여당 내에서 정국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오는 10월 조기총선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태국 정부 관계자는 “정부 측이 오는 10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 실시를 제안할 것”이라며 “최대의 명절인 쏭끌란 축제 연휴(13~15일)가 끝나면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태국 일간 방콕포스트가 12일 보도했다. 이 같은 논의는 아피싯 총리와 수텝 타웅수반 안보 담당 부총리 등 정부 고위인사들과 연합정당 대표들이 지난 10일 저녁 회동에서 이뤄졌다. 태국 정부는 그동안 즉각적인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의 요구에 맞서 올해 말이나 내년초쯤 총선 실시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는 이날 정부 측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유혈 충돌로 사망한 시위 희생자의 시신이 든 관을 싣고 거리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이어 유혈 충돌사고의 책임 소재를 놓고 정부 측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파니탄 와타나야곤 태국 정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 과정에서 군경은 진압 안전수칙을 지켰지만 시위대가 폭발물·총기류 등 무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이같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면 UDD 지도자인 나타웃 사이쿠아는 “시위대가 총기류 등 그 어떤 무기도 사용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 다른 지도자 자뚜뽄 쁘롬빤은 “태국 정부 측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인권탄압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태국 정부는 오는 10월 조기 총선설을 부인했다고 AF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파니탄 정부 대변인은 “아직까지 10월 총선 실시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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