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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강타한 슈퍼 태풍 ‘라이’… 최소 21명 사망

    필리핀 강타한 슈퍼 태풍 ‘라이’… 최소 21명 사망

    최근 필리핀을 휩쓸고 지나간 슈퍼 태풍 ‘라이’에 지금까지 2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AFP통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태풍 라이가 초래한 침수 및 건물 파손 등으로 최소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태풍이 강한 위력을 보인 남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통신과 전기가 끊기고 가옥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해 3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 대피했다. 태풍 라이는 지난 16일 남부 민다나오 북동부의 관광지 시아르가오섬에 시속 195㎞인 상태로 상륙했다. 미국태풍경보센터(JTWC)에 따르면 라이의 최대 풍속은 시속 259㎞에 달해 슈퍼급으로 분류됐다.지역별 인명 피해 상황을 보면 민다나오의 수리아고와 인근 디나가트섬에서 적어도 각각 3명, 6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필리핀 재난당국은 군경과 소방대원 등 1만 8000명을 동원해 피해가 큰 지역에서 인명 구조 및 수색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태풍 라이는 다소 세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남중국해상을 지나고 있다. 19일 오전에는 베트남 중부 해상 밖 280㎞까지 접근할 전망으로, 베트남 중부의 다낭과 꽝응아이, 빈딘, 푸옌, 카인호아성은 위험 지역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어선들의 출항 자제를 당부했다.
  • [사설] 또 성추행에 은폐 의혹, 국민 절망케 하는 공군

    [사설] 또 성추행에 은폐 의혹, 국민 절망케 하는 공군

    또다시 벌어진 공군 성폭력 사건이 그제 군인권센터 발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6월 이예람 중사 성폭행 사망 이후 여군 숙소 불법 촬영 등 벌써 드러난 것만 세 번째다. 이 중사 사망에 대해 공군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어떤 변화도 없다는 데 국민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크다. 이번에는 남성 부사관이 여성 장교를 성추행, 성희롱했다는 의혹이다. 공군 측은 사건 이후 피해자를 비편제 작전장교로 배치하는 인사상 불이익까지 주려 했고, 결국 가해자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도록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기본적인 성폭력 사후 대응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 군사경찰 대대장인 중령은 여성 장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 여부를 물으면서 “신고를 안 하는 게 좋겠다”, “군생활 오래 해야 할 것 아니냐”는 회유와 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성추행뿐 아니라 군형법상 최대 2년의 징역형이 가능한 상관 면전 모욕죄 혐의까지 더해진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군경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군검찰은 가해자인 부사관을 불기소 결정했다. 은폐 의도 의혹이 있는 중령 역시 불기소했다. 공군 내 성추행, 성폭력이 횡행한다는 사실들이 세간에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폐쇄적인 군 문화 및 군 사법 시스템에 특단의 칼질을 하지 않는 한 군내 성폭력 근절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일선 지휘관의 성폭력 은폐 시도 및 군경찰, 군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부실 수사가 만연한 상황에서 피해자만 2차, 3차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군 바깥에서 아무리 진실 규명 및 엄정한 대응을 요구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이유다. 지난 9월 비군사적 사건의 군사재판을 폐지하고 1심부터 민간 법원으로 넘기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 때부터 재개정 요구가 나올 정도로 미흡한 수준이었다. 비군사적 사건은 아예 수사 단계에서부터 외부 기관이 나서는 등 군 사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군사력 세계 6위에 인권은 ‘후진국 군대’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 국가배상 소송 1심 패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청구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 임기환)는 9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인 고(故) 장환봉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등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각하했다. 재판부는 장씨의 유족인 부인 진점순(98)씨와 딸 경자(76)·경임(73)씨가 소송을 낸 2020년 7월에는 이미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철도기관사로 일하던 장씨는 29살이던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1월 장씨가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된 후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장씨에 대한 형사재판 재심 선고는 지난해 1월 이뤄졌다. 유족들은 재심 무죄를 받고 반년 뒤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당시인 2009년에 이미 손해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판단, 시효가 만료됐다고 보았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아울러 재판부는 유족이 청구한 정신적 위자료에 대해선 이미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했다. 앞서 장씨 유족들은 2012년 1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4년 1월 국가가 유족에게 1억 4000여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 미얀마 군부, 수치 2년형 감형에도… 국제사회 “민주주의 위배”

    미얀마 군부, 수치 2년형 감형에도… 국제사회 “민주주의 위배”

    미얀마 군사정권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76)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에게 선동과 코로나19 방역 조치 위반을 구실 삼아 징역 4년을 선고했다가 당일 형량을 2년으로 줄였다. 군부는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판결을 정당화했지만 한국과 미국 등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쿠데타 정권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6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수치 고문과 민 대통령에게 선고한 형량을 ‘사면’ 차원에서 줄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수도 네피도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복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웅 마웅 온 공보장관은 이날 화상 브리핑에서 “미얀마 사법제도는 편파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얀마 군정은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2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가택연금하고 부패, 선거법 위반 등 10여개 죄목을 덮어씌워 재판에 넘겼다. 이번 판결에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 외교부는 7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얀마의 인도적 상황이 악화하는 데 우려를 표명한다”며 시민에 대한 폭력 사용 중단, 수치 고문을 포함한 구금자 석방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와 정의에 위배되는 정의롭지 않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도 “2월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주의에 또 하나의 주요한 차질을 빚은 이번 선고를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1991년 수치 고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벨평화상위원회의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위원장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뿐만 아니라 오랜 징역형이 수치 고문에게 개인적으로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기소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한 상황이다.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미얀마 군경이 양곤 치민다인구에서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아 최소 5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양곤 시민들은 악령을 쫓아내는 행위인 냄비와 팬을 두드리며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 민간인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의 보복공격으로 군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엔 총회는 미얀마 군정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유엔 대표 교체를 보류함으로써 이들의 정부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얀마는 문민정부 인사인 모 툰 주유엔 대사를 군부 인사로 교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 미얀마군 차량 양곤 시위대에 돌진, BBC “사망자 없었다”

    미얀마군 차량 양곤 시위대에 돌진, BBC “사망자 없었다”

    미얀마군이 5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몰아 돌진하는 동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장에 있던 시민 5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지만 영국 BBC는 여럿이 다쳤으며 그 중 한 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군부의 발표를 인용해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얀마 군경이 최대 도시인 양곤에서 벌어진 반군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병사들이 탄 차량이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돌진했다며 시민 5명이 목숨을 잃었고 적어도 15명이 체포됐다고 현지 매체를 인용해 전했다. 반면 영국 BBC는 사망자는 없었으며 11명이 검거됐다고 전했다. BBC가 한국 시간으로 6일 오전 보도한 내용이며 군부의 발표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본다. 다만 두 매체 모두 폭력적이고 잔학한 군부의 진압 모습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위 참가자는 “무언가에 들이받힌 뒤 트럭 앞에 쓰러졌다”면서 “곧이어 군인이 소총으로 때려서 도망치자 실탄이 발사됐지만 다행히 달아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른 목격자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차량을 탑승한 채로 시위대 뒤쪽을 뚫고 들어온 뒤 달아나는 시민들을 마구 때리고 체포했다. 시민 일부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미얀마 군정은 이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치른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과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다. 그 뒤 시민들의 반쿠데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시민들이 대거 목숨을 잃는 등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군부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시민 1303명이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네피도 지방법원은 6일 아웅산 수치(76) 국가고문의 선동죄 및 자연재해법 위반 혐의에 대해 2년씩 모두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내려진 첫 법원 판결이다. 군정 법원이 향후 중대 혐의 관련 공판까지 진행하면 수치 고문에게는 10가지 혐의에 모두 최고 형량이 적용되면 116년형 선고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군정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이날 국영 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사면” 차원에서 수치 여사와 민 윈 전 대통령 등 두 사람에게 선고한 징역 4년을 징역 2년으로 감형했다고 국영 TV가 전했다. 군부가 얼마나 사법제도를 가벼이 운용하는지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 “삼청교육대는 끝나지 않은 지옥… 우리는 국가폭력 피해자”

    “삼청교육대는 끝나지 않은 지옥… 우리는 국가폭력 피해자”

    “애타게 찾았던 막냇동생이 삼청교육대에서 돌아왔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고통은 몇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바람입니다.” 삼청교육대가 남긴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40여년 전부터 시작된 고통은 박광수(71)씨에게는 여전히 벗어나기 힘든 악몽이다. 그의 친동생 박이수(당시 24세)씨는 1980년 동대문야구장을 방문했다가 중부경찰서 경찰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이송돼 이른바 ‘순화교육’을 받았다. 4주 교육 후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모진 구타와 고문 탓에 평생을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난달 16일.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피해자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집단으로 제기했다. ‘삼청교육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에 따라 일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지만 수준이 미약하고 순화교육·근로봉사·보호감호로 인한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피해 사례를 모아 오는 28일까지 계속 소를 제기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삼청교육대피해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국가의 폭력에 평생을 시달린 고통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냐”면서 “국가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군경, 6개월간 6만 755명 영장 없이 체포 1980년 신군부에서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고 재사회화한다는 명분으로 설치한 삼청교육대는 국가 폭력과 무자비한 인권탄압의 장으로 악용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군경은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6만 755명을 영장 없이 잡아들였다. 이들은 A·B·C·D 네 등급으로 분류돼 군법회의에 회부되거나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이 기간 전국 26개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로 간 인원은 3만 9786명이었다. 삼청교육대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기에 동생 이수씨는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서울에서 형과 함께 아버지가 물려준 사진관을 운영하던 이수씨는 1980년 8월 7일 야구 경기를 보러 동대문야구장에 갔다가 매표소 앞에서 경찰에 붙잡혀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전과가 없던 이수씨는 C등급으로 분류돼 4주 순화교육을 받고 나왔다. 아들만 다섯인 박씨 가족들은 막냇동생이 행방불명되자 영문도 모른 채 밤을 새우며 그를 찾아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동생이 갈 만한 곳과 만날 만한 사람을 모두 알아봤죠. 그러다 동생이 행방불명된 지 4주가 지났을 무렵 중부경찰서에서 동생을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 달 만에 본 동생의 모습을 보고 박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생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극심한 불안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다. 평소 활달하고 건강했던 동생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박씨는 동생을 끌고 간 이유가 뭐냐고 경찰에게 따졌지만 “길거리에 침을 뱉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답변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경찰은 동생이 어느 부대로 끌려갔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애타게 찾던 동생이 돌아왔지만 현실은 지옥이었다. 동생은 가족과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거나 머리를 식탁과 벽에 박는 등 이상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가족을 때리거나 할퀴는 등 폭력성까지 보였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고 혼자서 외출은 물론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했다. 1984년까지 4년간 이수씨를 돌본 박씨의 가족은 결국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 가족 모두 일상적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 14년간 매월 70만원씩 치료비가 나갔다. 박씨 월급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박씨는 1998년 동생을 무연고자로 신고한 뒤 강화도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국가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였다. 차라리 동생이 죽었다면 서로에게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해 봤다”면서 “동생은 20년이 넘도록 요양원에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분하고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외롭게 싸웠죠… 이번이 마지막 기회” 박씨는 17년간 국가를 상대로 싸워 줄 변호사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삼청교육대 얘기만 꺼내면 변호사들은 눈치를 보다 사건 수임을 거부했다. 동생이 삼청교육대에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를 찾고자 국가기록원에도 갔지만 헛수고였다. 우여곡절 끝에 1997년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가족 78명이 뜻을 모아 처음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희망의 끈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 삼청교육피해자법이 공포되면서 국방부는 ‘삼청교육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을 설치했다. 이수씨는 2006년 12월 22일 요양·장애보상 및 치료비 명목으로 1850만원을 받았다. 턱없는 금액에 박씨는 개별 소송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당시 보상심의위원회 팀장이 자필 편지까지 건네며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만류했다. “그 후에도 외롭게 싸웠습니다. 동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신문 기사와 자료 등을 수집했어요. 그동안 모아 온 것만 몇 박스가 됩니다.” 민변이 나선 이번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은 박씨에게 마지막 기회다. 2018년 12월 28일 삼청교육대 설치 근거였던 ‘계엄포고령 제13호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민법이 손해배상 소멸시효 3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민변이 급히 나선 것이다. 지난달 16일 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삼청교육대 피해자에게 적정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변호단을 구성해 박씨를 비롯한 삼청교육대 피해자에게 위임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금전 보상뿐만 아니라 진실 규명, 책임자에 대한 문책,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등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씨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생을 무연고자로 요양원에 보내 놓은 상황에서 동생이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이제는 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왜곡된 시선에 더 많은 상처 받아 지난 40여년간 박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을 몰라보는 동생도, 동생을 무연고자로 신고해야만 했던 경제적 어려움도, 국가를 상대로 홀로 버텨 왔던 시간도 아니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한 주위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이었다. 당시 박씨는 동생이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지내야 했다. 주변의 도움을 얻고 싶어도 차마 삼청교육대에 가족이 끌려갔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범죄자 가족으로 낙인찍힐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박씨는 삼청교육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상처받고 있다. 인터넷 댓글창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삼청교육대로 보내라’라는 문구 때문이다. 그 문구를 읽는 박씨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는 그동안 많은 게 바뀌었지만 바로잡을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로잡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피해자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말 한마디에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적 폭력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 콜롬비아 교도소가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콜센터…황당한 압수수색 결과

    콜롬비아 교도소가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콜센터…황당한 압수수색 결과

    알고 보니 교도소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콜센터였다. 콜롬비아 군경이 교도소에서 압수수색을 진행,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핸드폰 등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현지 언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된 곳은 악명 높은 범죄자가 다수 수감돼 있기로 유명한 피칼레냐 교도소였다. 군경은 교도소 내 감방 지하에 몰래 설치된 '금고'를 발견,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장비와 무기 등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금고에는 핸드폰 31대, 핸드폰 액세서리 154개, 유심카드 104장, 와이파이 모뎀 1개 등이 숨겨져 있었다. 칼 등 흉기 38개, 코카인 444g 등 무기와 마약류도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관계자는 "의심을 받지 않을 교도소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본 조직이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감방에서 운영했다"며 "명백한 증거가 나온 이상 보충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교도소 보이스피싱의 주요 타깃은 상인들이었다. 조직은 상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을 납치했다. 살리고 싶으면 몸값을 내라"고 돈을 요구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전국에 분포돼 있는 걸 보면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는 단체의 소행이 확실하다"며 게릴라 단체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이 주목하는 건 피칼레냐 교도소를 공격한 바 있는 게릴라단체 콜롬비아 혁명군(FARC)과 인민군(EP)이다. 이들 게릴라 단체의 거물급이 다수 문제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어 콜센터 설치와 운영에 깊숙이 간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범죄전문가들은 "교도소 내 관리가 허술해 외부 조직과의 연락과 공조가 가능하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며 교정시설에 대한 관리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 교도소의 54.9%는 수용정원 초과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올해 초 10개의 교도소를 신설해 재소자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준공된 새 교도소는 없다.   
  • 콜롬비아서 사상 최대 ‘코카인 공장’ 적발…2500만명 투약 물량

    콜롬비아서 사상 최대 ‘코카인 공장’ 적발…2500만명 투약 물량

    마약 대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가 올해 들어 사상 최대 규모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콜롬비아 검찰은 23일(현지시간) 총장 브리핑을 통해 "나리뇨주(州)의 사마니에고 지역에 있는 마약공장 2곳을 발견, 코카인 20톤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한창 가동 중이던 2개 공장에선 코카인 염산염(코카인 가루) 10톤, 용해된 상태로 용기에 보관돼 있던 코카인 10톤이 발견됐다. 압수한 물량은 시가로 약 3억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3570억 원에 이른다. 검찰 관계자는 "코카인 염산염의 경우 25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물량"이라면서 "올해 들어 최대 물량의 코카인을 압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프란시스코 바르보사 검찰총장은 "2곳의 마약공장이 모두 초대형이었다"면서 "코카인 제조에 사용된 화학물질, 생산시설 가동에 사용된 기계류 등을 추가 증거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자이언트급'이라고 표현한 마약공장은 게릴라단체 '국가해방군'(ELN)의 마약사업 조직 '하이메 안토니오 오반도'의 소유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선 게릴라단체, 범죄조직 등이 경쟁적으로 코카인 생산과 밀매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6년 정부와의 평화협정을 거부하고 여전히 투쟁 중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잔존 세력, ELN 등 게릴라 단체와 범죄조직 '골포클란', '펠루소스' 등이 마약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식적으론 내전이 종식됐지만 영토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게릴라단체와 범죄조직이 전쟁을 벌이는 1차적 원인은 코카인 재배지 장악에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애꿎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한꺼번에 피난을 떠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유령마을이 된 곳도 있다"고 보도했다. 투쟁자금 조달을 위한 코카인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콜롬비아 당국이 압수하는 코카인 물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 군경이 압수한 코카인은 총 505톤으로 사상 최대였다. 군 관계자는 "게릴라단체와 범죄조직이 코카인 생산과 판매에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생산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유행에도 전혀 활동이 위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이 남성 2명 이상이 오토바이에 탑승하는 것에 대해 발포를 경고했다. 반군부 세력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폭발물을 투척하고 달아나는 공격을 막기 위함이지만, 오토바이와 삼륜 자전거 등에 크게 의존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현지 매체인 이라와디와 미얀마 나우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양곤, 타닌타리, 사가잉, 만달레이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차량 운행의 새로운 조치를 시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남성 2명은 오토바이에 함께 탑승할 수 없다. 남녀 동승의 경우 남성은 뒤에 탑승할 수 없다. 오토바이 탑승자가 노령자면 2명이어도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지난 16일부터 이 규정을 위반하면 오토바이가 압수될 수 있으며, 18일부터는 위반시 체포되거나 총에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민간인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이 최근 오토바이를 이용해 군경 및 군정 관련 시설에 폭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공격이 일어나는 것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도 만달레이 지역 메익틸라구의 PDF가 오토바이를 타고 군경 순찰대에 폭탄을 던져, 경찰 2명이 숨지고 수 명이 부상했다고 PDF가 주장했다. 오토바이 탑승 인원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익틸라구의 한 주민은 “군과 경찰은 2명이건 3명이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오토바이를 타면서 시민들에게만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토로했다. 오토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전사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계속해 먹고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 “유럽에 가지 못한다면 죽겠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아수라장‘

    “유럽에 가지 못한다면 죽겠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아수라장‘

    벨라루스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어 유럽에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폴란드 국경수비대의 충돌이 빚어지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는 16일(현지시간) 벨라루스에서 넘어오는 국경 검문소인 ‘브루즈기-쿠즈니차’에서 충돌이 있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국경 근처 임시 난민캠프에서 머물던 난민 수천명 중 일부가 검문소로 몰려와 짙은 연기와 굉음 속에 콘크리트 블록을 부수고 폴란드 쪽으로 물건을 던졌고 폴란드 병력은 이들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국경에서 이주민 갈등이 한달째 이어졌지만 이날처럼 긴장이 높아진 적은 없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두 나라 모두 상대를 손가락질했다. 폴란드 국방부는 난민들이 군인과 경비인력 등에 돌을 던졌고 벨라루스 측에서 섬광탄까지 공급받았다고 주장했다.섬광탄은 빛과 소리로 대상에게 충격을 주는 수류탄으로 살상무기는 아니다.폴란드는 특히 벨라루스 측이 이주민의 월경을 도우려고 국경 울타리에 구멍을 뚫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반면 벨라루스 국영매체 등은 폴란드가 난민을 저지하려고 물대포와 섬광탄을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매체가 방송한 동영상에는 난민들이 폴란드 경비인력에 돌을 던지고 폴란드 국경수비대가 물대포, 섬광탄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난민들과 기자들이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았다. 폴란드 병력이 최루가스를 사용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벨라루스 국영통신 ‘벨타’는 폴란드 병력이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는 노란 액체를 뿌렸고 연기 때문에 사람들 숨이 막혔다고 보도했다. 벨타에 따르면 벨라루스군 화생방국는 폴란드 군경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들에게 독성 화학물질을 썼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 수사당국은 폴란드 보안요원들이 특수장비를 사용해 상해를 입힌 사건을 현장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 국방부는 벨라루스 국경수비대가 이주민들을 배후에서 폴란드 군경을 공격하도록 부추겼다고 맞받았다. 이 나라 경찰관 7명이 날아든 물체에 맞아 부상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는 이주민들이 돌을 비롯한 물체를 던졌다며 “불법 월경을 막으려고 과격한 외국인들에게 물대포를 썼다”고 발표했다. 한 난민 남성은 CNN 인터뷰에서 “살아남아 있으려고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경 근처에서 28일째 머무르고 있다는 이라크 출신 라완드 아크람(23)은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모두 화가 나 있다”며 “유럽에 갈 수 없다면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벨라루스가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에 보복하려고 이주민들을 데려와 국경으로 내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벨라루스는 이를 부인한다. 국제사회는 벨라루스 쪽 접경지역에 발이 묶인 이주민들이 혹한, 식량부족, 스트레스 때문에 인도주의 위기에 몰렸다고 우려한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벨라루스의 전략 때문에 이주민들의 목숨이 위험해졌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서부 그로드노주 지사에게 난민수용시설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일부 난민이 이 수용소로 옮겨갈 것으로 알려졌다. 벨타 통신은 침대 2000개가 마련됐고, 음식은 벨라루스군 취사병들이 준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로 난민 사태를 논의하고 전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통화 내용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 총리는 50여분 진행된 루카셴코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국경에서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찾고, 난민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독일 정부 대변인이 발표했다. EU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해 10여 개국에서 항공기를 통해 난민들을 수도 민스크로 실어나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이들 난민을 EU 국가에로 밀어내 EU의 안정을 흔들려 획책하고 있다고 EU는 보고 있다. 실제로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5월 EU의 제재에 반발하며 난민들의 EU 행을 막지 않겠다고 밝힌 일이 있다. 한편 독일 경찰에 따르면 이달 들어 벨라루스를 거쳐 허가를 받지 않고 입국한 난민이 170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일간 빌트가 전했다. 올해 들어 같은 방식으로 입국한 난민은 9549명이다.
  • “친자관계 확인되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친자관계 확인되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전몰군경과 친자관계가 확인되면 재혼 등으로 가족관계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는 17일 재혼한 부모의 제적등본에 출생신고가 됐다는 이유로 친부인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결정하고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거부한 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했다. 중앙행심위에 따르면 전몰군경 A씨는 B씨와 혼인해 1948년 자녀를 낳은뒤 A씨의 제적등본에 등록시켰다. 이후 A씨와 사별한 B씨는 재혼한뒤 자녀를 재혼자와의 자녀로 출생신고했고 신고 당시 자녀를 1952년생으로 기록했다. 성인이 된 자녀는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했고, 법원은 자녀의 나이를 1948년생으로 정정토록 했다. 이를 근거로 자녀는 친부인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보훈지청은 나이를 정정한 것 만으로는 전몰군경의 자녀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고, 이에 자녀는 중앙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중앙행심위는 A씨의 제적등본에 자녀로 기재돼 있고 중·고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생년월일이 제적등본과 같은 점 등을 들어 친자녀로 판단하고 고인의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은 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했다. 권익위는 “가족관계의 변동사항으로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민원인의 권리를 구제한 사례”라고 밝혔다.
  •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죄 없는 민간인이 국가 권력의 폭력 속에 억울하게 잡혀가 스러졌다는 것이 여순사건이 빚은 비극의 본질입니다. 이제라도 나라가 진심 어린 사과로 유족의 한을 풀어 주고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합니다.” 비극의 고통은 깊고 길었다. 1948년 벌어진 여수·순천 10·19사건은 김규찬(72)씨가 평생 짊어져 온 아픔이자 벗어나고픈 굴레의 시작이었다. 철도승무원이었던 아버지 김영기(당시 23세)씨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열차에 태웠다는 이유로 내란죄에 몰려 정부 진압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후 불과 한 달 만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결국 마포형무소(지금의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73년이 흐른 지난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송백현)는 유족 김씨 측의 청구로 열린 재심 재판에서 김영기씨의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청구인과 유족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고됐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는 이 사건을 통해 불법적인 폭력을 방관하거나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평생의 설움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난 집안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정부군이 진압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김씨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영기씨는 여순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 순천역 열차 차장으로 근무하며 아내, 그리고 네 살배기 딸과 함께 덕암리 철도관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젊은 가장이었다. 아내는 아들 김씨를 임신한 상태였다. 김영기씨가 탄 열차는 전북 익산에서 출발해 순천역에서 정차하던 중 지역 일대를 장악한 14연대의 요구에 객실을 내줬다. 일반 시민도 탄 정기 운행 열차였지만 총부리를 들이미는 군인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관사로 쳐들어온 진압군에게 ‘반란군과 공모해 부역했다´는 내란죄 혐의로 체포됐다.김씨는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열차 운행만 했을 뿐인데 영장이나 다른 법적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끌려갔다며 밤마다 우시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가 돌이 지난 저를 업고 마포형무소로 아버지를 찾아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 다리가 고문으로 죄다 뒤틀려 찢어진 살 사이로 하얀 무릎뼈와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더라”며 눈물을 지었다. ‘곧 나갈 테니 집안 장롱에 남겨둔 돈을 얼마간 생계비로 하며 기다리라’던 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가장이 사라진 김씨 가족은 철도관사에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매일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신문을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 순천을 떠나 대구에서 멸치 행상을 하며 생활했다. 5살 된 누이는 괴질로 세상을 떴다. 가난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던 김씨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행상을 도와야 했다. ●철도공사 다니며 아버지에 관한 기록 모아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고교를 겨우 졸업한 김씨는 전교 1등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반란자의 자식´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해 1차 적성검사와 2차 신체검사, 3차 필기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신원조회에서 걸렸다. 좌절한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철도학교 홍보 전단이었다. 국비로 교재와 옷, 장학금까지 준다는 말에 끌려 그대로 철도학교에 입학했다. 철도공무원이 되려면 연좌제 해결이 먼저였다. 행방불명된 지 20년이 된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에서 스스로를 파낸 뒤에야 여순사건의 그림자를 일부나마 벗을 수 있었다. 1971년 철도청을 거쳐 198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계획요원으로 옮긴 그는 2008년 도시철도공사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38년을 철도공사에 몸담으면서 틈틈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았다. 아버지가 탔던 서울~여수 전라선 노선을 탈 때면 아버지를 알던 동료 철도공무원을 찾아 증언을 듣고 기록을 모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까지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재판에 나섰다가 행여나 자식에게까지도 불이익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기는 진상 규명은커녕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그는 “운명처럼 아버지를 따라 열차 승무원의 길을 걷게 됐지만 한번 불이익을 겪기 시작하니 언제라도 또 그런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하며 살게 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 옛 동료가 당시 상황 증언 ‘운명이려니´ 하고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재심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1년 여순사건유족연합회가 출범하고 2009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438명이 군경에게 집단 사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족연합회에 있으면서 우연히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옛 동료는 당시 그가 어떻게 경찰에 끌려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군법회의에서 아버지가 무죄를 항변했음에도 확인 절차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증언해 줬다. 아버지의 동료인 철도 기관사 장환봉(당시 29세)씨 유족이 재심을 진행 중인 것도 알게 됐다. 김씨는 “장씨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며 검찰 자료를 통해 진압군에 끌려간 철도원이 66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철도업에 있으면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아버지를 비롯한 철도원들의 무죄를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가 장씨의 재심에서 내린 무죄 선고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 길로 국가기록원을 두 달간 뒤져 아버지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순천역 사무소 직원 명부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본적과 철도관사 주소 등을 대조해 퍼즐 조각을 맞췄다. ●유족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 많아 그렇게 지난해 5월 12일 법원에 청구한 재심은 8개월 만인 지난 1월 29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올 5월 첫 공판을 거쳐 마침내 법원은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첫 공판에서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자료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김씨는 “판결을 듣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내가 70여년이 지나 노인이 다 돼서야 죽기 전에 씻고 갈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결 5일 뒤인 지난 6월 29일에는 진상 규명과 희생자 지원을 위한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 대부분이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아요. 너무 늦기 전에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유족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중앙보훈병원, 하루 만에 확진자 2배로…100명 육박

    중앙보훈병원, 하루 만에 확진자 2배로…100명 육박

    14일 정오 기준 전체 확진자 97명전날 58명에서 2배 가깝게 늘어확진자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확진자 수가 하루만에 2배 가까운 규모로 폭증해 100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특성상 확진자 대부분이 70~80대 고령자여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14일 중앙보훈병원에 따르면 이날 정오 기준으로 이 병원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97명으로 집계됐다. 전날 집계된 확진자 58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전날에는 확진자 중 입원환자가 34명, 간병인 22명, 병원 직원 2명이었다. 이 병원에서 집단감염 발생 뒤 이날까지 집계된 확진자 97명 중 입원환자는 60%가 넘는 59명이다. 나머지는 간병인, 보호자, 병원 직원 등이다. 중앙보훈병원의 최초 확진자는 지난 11일 확인됐으며 추가 검사 과정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확진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확진자 중 고령자 비율이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높다는 점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산하 종합병원인 중앙보훈병원은 상이군경·애국지사 및 4·19 상이자 등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시행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전날 확진자가 확인된 3개 병동은 모두 같은 건물에 있으며 중환자실이 있는 병동은 아니다. 중앙보훈병원은 발생 병동을 중심으로 전수 검사를 진행 중이다. 확진자들을 병원 내 코로나19 전담병동으로 긴급히 옮기는 한편 발생 병동에 대한 격리 조치도 시행하고 있다.
  • 중앙 정부는 무제한, 지자체는 1년뿐… 국·공유지 무상 사용에 ‘불공정’ 논란

    군경·각 부처, 고양 1만 6000㎡ 무료 이용市, 정부 보유지 1620㎡ 쓰며 年1억 지불국가 사용료 부과·토지 맞교환 등 모색 국·공유지를 사용할 때 지방자치단체는 매수를 전제로 1년간만 무상 사용이 가능한 반면, 중앙정부는 계속해서 무상 사용이 가능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공유지 사용료 징수법이 지자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신문 취재결과 경기도 고양시는 덕양구 주교동 일대의 기획재정부 소유 토지 1360여㎡를 주차장으로 사용하면서 연간 1억여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중앙정부)는 공시가 5억 2000만원에 이르는 고양시 토지 8146㎡를 50년 동안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단 한 푼의 사용료도 내지 않고 있다. 국방부를 포함해 경찰서·소방서·교육청·환경부 등 중앙정부 각 부처가 고양 지역에서 무상으로 사용하는 토지 면적은 1만 6000여㎡에 이르고 이를 공시가로 따져보면 144억원이나 된다. 반면, 고양시는 48억원인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 토지 1620㎡를 빌려 사용하면서 연간 1억 2300만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만약 고양시가 국방부 등으로부터 사용료를 받을 경우 연간 3억 6100만원의 세외수입이 예상된다. 이같이 국·공유지 사용방식이 불공정한 것은 현행 국유재산법(34조)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때문이다. 국유재산법은 ‘국가재산을 지자체가 공용·공공용 또는 비영리 공익사업용으로 사용할 경우 매수를 전제로 1년 만 무상사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24조)은 ‘국가나 다른 지자체가 특정 지자체 소유 재산을 사용할 경우 임대료를 면제 할 수 있다’며 무기한 무료사용 여지를 뒀다. 또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전에는 국가와 지자체 소유 재산에 대한 관계가 정립되지 않았고, 이후 관행적으로 무상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화 됐다. 지자체들은 “이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집계 조차 불가능할 만큼 많다”며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국·공유지 사용료 불평등을 개선해 재정건전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상급기관의 목적사업이 지속되는 한 지자체가 자기 재산에 대한 권리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소유자와 점유자의 불일치로 재산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양시 관계자는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 서로 상충돼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중앙정부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주시는 군부대가 점유하고 있는 시유지와 국방부 소유 토지를 맞교환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시는 내년까지 30여개 필지를 교환할 예정이다.
  • 여수·순천사건 합동위령제

    여수·순천사건 합동위령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을 기리는 여수 순천 10·19사건 제73주년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이 19일 전남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6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 열리는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제주 4·3 유족을 비롯해 전몰군경회, 순직경찰 유족 대표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김영록 전남지사, 김한종 전남도의장, 정근식 진실과화해위원장, 장석웅 전남교육감,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권오봉 여수시장 등도 함께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주철현·김회재·이용빈 의원이 참석했다. 집권 여당 대표가 추념식에 온 경우는 처음이다. 무대 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송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권에서 보낸 조화 수십개가 놓였다. 식전 행사에 이어 이날 오전 10시 정각에는 여수와 순천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1분간 울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추념식에 앞서 열린 합동위령제에서는 전남도립국악단의 진혼무와 유족 사연 낭독, 여수시립합창단의 추모 합창, 전남도립국악단의 ‘눈물꽃’ 공연이 이어졌다. 서영노 유족회원이 낭독한 사연은 모두를 눈물짓게 했다. 그는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 돼야 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사연을 알리며 이제라도 찾아온 ‘여순의 봄날’을 환영했다. 김 총리는 영상추모사에서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라고 표현했다.
  • ‘73년 만에 진실의 꽃이 피다’ 제73주년 여순사건 합동추념식 열려

    ‘73년 만에 진실의 꽃이 피다’ 제73주년 여순사건 합동추념식 열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여순사건을 기리는 여수·순천 10·19사건 제73주년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이 19일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광장에서 열렸다. 지난 6월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 열리는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제주 4·3 유족을 비롯해 전몰군경회, 순직경찰 유족 대표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김영록 전남지사, 김한종 전남도의장, 정근식 진실과화해위원장, 장석웅 전남교육감,이석문 제주도교육감, 권오봉 여수시장, 전창곤 여수시의회 의장 등도 함께 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주철현·이용빈·김회재 의원이 참석했다. 집권 여당 대표가 추념식에 온 경우는 처음이다. 무대 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 송영길 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권에서 보낸 조화 수십 개가 놓였다. 식전 행사에 이어 이날 오전 10시 정각에는 여수와 순천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1분간 울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추념식에 앞서 열린 합동위령제는 ‘여순 10·19, 진실의 꽃이 피었습니다’를 주제로 전남도립국악단의 진혼무와 유족 사연 낭독, 여수시립합창단의 추모 합창,전남도립국악단의 ‘눈물꽃’ 공연이 펼쳐졌다. 여순사건 유족 3세대인 서영노 유족회원이 낭독한 사연은 모두를 눈물 짓게 했다. 그는 이념갈등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할아버지와 손가락 총에 끌려나와 몰매를 맞고 실신한 후, 남편을 잃고 어린 5남매를 행상으로 키워야 했던 할머니에게 보내는 아픔을 알리며 이제라도 찾아온 ‘여순의 봄날’을 위로했다.김부겸 국무총리는 영상추모사에서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가장 아픈 손가락이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아픈 역사다”고 표현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추념사에서 “내년 1월 여순사건 특별법 시행을 앞둔 만큼 민주당은 후속 조치의 차질 없는 이행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하겠다”며 “온전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여순사건 발생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정부 주관 행사로 더욱 규모 있게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여순사건이 더는 현대사의 비극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의 역사로 승화돼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나침반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권오봉 여수시장은 “여수는 73년 전 여순사건의 발원지인 동시에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이다”며 “억울한 오명을 벗고 평화와 인권의 도시로 나아가며,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기념공원 조성에도 모두의 뜻을 모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여기는 남미] 불법 이민하려다…사망자 속출하는 해발 3700m 칠레 국경

    [여기는 남미] 불법 이민하려다…사망자 속출하는 해발 3700m 칠레 국경

    칠레에 입국하려고 고산지대를 넘다가 목숨을 잃는 이민자가 속출하고 있다. 해발 3650m 고지 칠레 타라파카의 주민들은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건강한 사람도 얼어 죽을 수 있는 곳"이라면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 건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들어 칠레와 볼리비아 국경에서 사망한 사람은 최소한 15명에 이른다. 사망한 사람은 모두 베네수엘라나 아이티공화국 등에서 탈출해 칠레로 입국하려고 고산지대를 넘던 이민 희망자들이었다. 가장 최근에 확인된 사망은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된 2명의 여자였다. 아이티공화국 출신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고산지대를 통과하다 사망했다. 경찰은 "부패가 진행된 정도를 볼 때 사망한 지 1개월 이상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확한 사인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국경을 향하다 지친 여자들이 동사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칠레의 국경마을 콜차네에서는 한 베네수엘라 여자가 9개월 된 딸의 시신을 안고 병원을 찾았다. 볼리비아 피시가를 통해 칠레로 들어가려던 여자는 산악지역을 통과하다 실수로 안고 있던 아기를 떨어뜨렸다. 당장 응급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아기는 머리를 크게 다쳤지만 고산지대 국경에 병원이 있을 리 없었다. 여자는 국경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딸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콜차네 의료센터 응급실 관계자는 "베네수엘라 여자가 안고 있던 딸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면서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여자가 사고를 당한 곳은 아직 국경을 넘기 전이었다. 병원 측은 "여자의 말을 들어 보니 사고를 당한 곳은 볼리비아 피시가였다"면서 "사고를 당한 아기를 안고 여자가 3km 이상을 더 걸어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남미에서 가장 경제가 안정적이고 부유한 국가로 평가 받는 칠레는 최근 불법 이민자들이 몰리고 있다. 칠레 군경은 국경 감시를 강화하고 있지만 사방으로 뚫린 국경을 완전히 막지 못해 칠레 국경마을들은 난민촌처럼 변해가고 있다. 칠레 경찰에 따르면 올해 칠레에 밀입국한 뒤 적발된 외국인은 이미 2만3000명을 넘어섰다.
  • [기고] 국가유공자 어머니의 ‘눈물’/황기철 국가보훈처장

    [기고] 국가유공자 어머니의 ‘눈물’/황기철 국가보훈처장

    “잊지 않고 찾아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오늘은 최고의 날”. 올해 초, 생때같은 자식을 나라에 바친 국가유공자 어머니께 감사와 위로를 전하기 위해 찾았을 때 오히려 그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국가유공자 명패를 달아드리며 “명패를 아들이라 생각하시라”고 하자, 참았던 눈물로 대답을 대신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고 돌아오는 길, 잊지 않고 찾아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보훈’이 그 깊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감싸 안고 있다는 생각에 무거웠던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유가족들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은 반드시 기억되고 보답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국가와 보훈의 책무라는 것을 다시 새기게 된 일이었다. 그간 보훈은 그러한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며 여성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발굴·포상 확대, 미등록 참전유공자 발굴, 생계 곤란 참전유공자 장례비 지원, 보훈급여금 인상, 의료비 감면, 각종 의료·재활·요양 인프라와 국립묘지 확충 등 부문별 성과도 많다. 홍범도 장군과 하와이에서의 국군전사자 유해 봉환도 정부의 ‘무한책임’ 의지를 보여 줬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할 수는 없다. 이제 보훈은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확장돼야 한다. 국가보훈처 예산은 매년 늘어 2022년에는 5조 8530억원이 편성됐다. 국가유공자와 유가족 등의 보상금과 각종 수당을 5% 인상하고, 부모 모두가 사망한 전몰·순직군경 자녀의 자립을 위해 보상금 수령 연령을 만 19세 미만에서 만 25세 미만으로 확대했다. 전국 보훈위탁병원을 늘리고, 위탁병원 약제비 지원 대상도 넓혀 평생건강을 도울 예정이다. 여기에 우리의 땅과 영해, 영공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피땀을 흘렸던 제대군인과 의무복무자에 대한 지원 확대도 추진할 계획이다. 소중한 자식을 가슴에 묻은 국가유공자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고 닦아드리는 보훈,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보훈가족, 국민들의 기대와 믿음에 답하는 ‘든든한 보훈’을 위해 더 힘쓸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보훈현장으로 나선다.
  • 법원 제주 4·3 생존 수형인 국가 손해배상 책임 불인정

    법원 제주 4·3 생존 수형인 국가 손해배상 책임 불인정

    법원이 사실상 제주 4·3 생존 수형인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주지법 민사2부(류호중 부장판사)는 7일 양근방(89) 씨 등 4·3 수형인과 유족 등 3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4·3 희생자 본인에게 1억원, 배우자에게 5000만원, 자녀에게 10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다만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은 공제한다고 판시하면서 이번 재판에 참여한 4·3 수형인 18명 중 박순석(94) 씨만 2000만원 가량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앞서 제주지법은 2019년 8월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4·3 생존 수형인 18명에게 구금 일수에 따라 1인당 최저 8000만원에서 최고 14억70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형사보상 결정을 내렸다.형사보상은 구속 재판을 받다 무죄가 확정된 경우 구금 일수만큼 보상해주는 제도다. 당시 박씨를 제외한 4·3 수형인들은 모두 1억원 이상의 형사보상금을 받았다. 사실상 이번 판결로 국가배상은 받지 못하게 된 셈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해방 이후 격변기 사회적 혼란기 때 발생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고, 4·3특별법도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이 목적이지 손해배상 책임을 추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해자 간 구금 기간 차이가 8개월에서 11년까지 적지 않지만, 4·3 수형인별 구금 기간에 따른 형사보상이 지급돼 형평성이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일률적으로 위자료를 책정한 근거에 관해 설명했다. 당초 원고들이 제기한 국가배상 청구액은 1인당 적게는 3억원에서 많게는 15억원으로 모두 103억원이다. 제주 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4·3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 용병이 된 콜롬비아 군인들… 왜 암살·쿠데타에 등장하나

    용병이 된 콜롬비아 군인들… 왜 암살·쿠데타에 등장하나

    십여년 전 17세의 칼로스 마르티네스는 부모가 써 준 입대 동의서를 들고 콜롬비아군에 입대했다. 이 나라의 가난한 청년들에게 미성년 군 입대는 낯선 선택이 아니다. 입대 말고 선택할 직업의 폭은 좁았다. 이후 10년 동안 현역 복무한 뒤 마르티네스는 안데스 지역에서 무장단체 및 마약 밀매업자들을 상대로 싸우는 특수부대에 합류했다. 미국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전개되는 ‘마약과의 전쟁’이 20년 넘게 진행 중인 콜롬비아에서 마르티네스 이전에 이미 수백만명의 군인이 게릴라전을 경험했다고, 마르티네스의 사연을 소개한 월드폴리틱스리뷰(WPR)가 전했다. 마르티네스 인생의 문제는 ‘마약과의 전쟁’ 복무가 끝날 무렵부터 생긴다. 이십대를 꼬박 군에서 보낸 마르티네스와 같은 군인들은 진급에서 탈락하거나 군에서의 일탈 행위에 휘말려 군을 떠난다. 운 좋게 계속 진급해 군에 남더라도 20년 복무기간을 다 채우면 40대 초중반 무렵에 제대한다. 22만명 규모를 유지하는 콜롬비아군은 매년 1만~1만 5000명을 제대시키는 구조다. 혈기왕성한 시기 직업을 잃게 된 이들이지만, 연금과 같은 사회보장망은 열악하다. 군 생활 외 사회경험이 부족한 이들은 구직은커녕 민간에 적응하는 일조차 힘겨워한다. 이들은 결국 다른 분쟁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예멘의 전장으로 콜롬비아 용병이 향하는 이유다. 전장뿐만이 아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송유관을 지키는 경비대나 콜롬비아와 이웃한 국가의 지주들을 방어하는 경호대, 심지어 지난 7월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현장에서도 콜롬비아 용병이 등장했다. ●용병 산업 아프간·이라크 전쟁에 급성장 민간기업에 고용돼 전쟁과 분쟁 지역에 투입되는 용병 산업(PMC)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2003년 출간된 PMC의 부상을 다룬 책인 ‘전쟁대행 주식회사’를 쓴 피터 싱어는 전 세계 PMC 산업 규모가 2005년 약 1000억 달러 규모였고 2010년 2배로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중동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석유 시설물 보호, 테러 대응활동에 PMC를 활용하면서 이 산업은 계속 호황을 누렸다. 뉴욕타임스(NYT)는 2011년 UAE가 국가 자산 보호를 위해 미국의 PMC 회사인 블랙워터를 통해 콜롬비아 용병 수십명을 고용했고, 2015년에는 수백명의 콜롬비아 용병이 예멘에서 후티 반군과 싸웠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전시와 평시 또는 국가 업무와 기업 업무의 경계 없이 활동하는 용병의 활동이 가끔 언론의 레이더에 잡히기도 하지만 전체 산업의 규모와 운영 방식은 상당 부분 베일에 싸여 있다. PMC의 주요 고객군인 중동엔 라틴아메리카 출신뿐 아니라 짐바브웨, 네팔, 파키스탄 출신의 용병이 모여 있다. 이 중에서도 콜롬비아 용병은 특히 고용주들이 선호하는 집단으로 분류되는데, 그 이면엔 미국이 있다. 미국은 2000년부터 시작된 콜롬비아의 마약과의 전쟁인 ‘플랜 콜롬비아’를 지원하며 콜롬비아 군경을 훈련했다. 플랜 콜롬비아가 출범한 2000년 이후 7년 만에 콜롬비아 군경 규모는 27만 9000명에서 41만 5000명으로 증가했고 군경의 소탕 대상인 좌익 무장단체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규모는 1만 6000명에서 8000명으로 줄었다. 양측 숫자의 변화는 그 기간 빈번했던 게릴라전의 횟수와 비례한다. 즉 콜롬비아 용병들이 군 생활 동안 실전 게릴라 전투 경험을 충분히 쌓았다는 뜻이 된다. 보고타에 기반을 둔 컨설팅회사인 콜롬비아리스크분석의 세르히오 구즈만 이사는 WPR 인터뷰에서 “실제 전투라는 시험대를 통과했다는 것이 ‘콜롬비아 용병’의 마케팅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미국식 훈련을 받았지만 미군 출신에 비해 인건비가 낮다는 점도 콜롬비아 용병을 선호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NYT는 익명의 전직 콜롬비아군 장교의 고백을 인용, “콜롬비아 군인들은 많아야 최저임금의 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인 월 300달러(약 36만원)를 받지만, 용병으로 고용되면 최소 월 2700달러(약 320만원)를 번다”면서 “군 시절의 9배에 달하는 보상이 있기 때문에 콜롬비아 용병들이 카불, 멕시코, 예멘, UAE로 향하는 것”이라고 전했다.●민간인 사살 등 각국서 용병 폐해 드러나 용병은 각국의 군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지만,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정규군과 정반대 지점에 있다. 예컨대 군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반면, 용병은 작전이 실패하거나 국제질서에서 일탈하는 작전을 수행했을 때 그 존재를 알리게 된다. 대표적인 PMC 회사인 블랙워터만 해도 2007년 9월 이라크 바그다드 시내에서 갑자기 사방으로 사격을 퍼부어 민간인들을 사망케 한 일탈 행동을 계기로 회사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콜롬비아 용병의 존재 역시 지난 7월 아이티의 모이즈 대통령 암살 사건이란 일탈 행위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궁에서 대담하게 벌인 잔인한 암살 이후 콜롬비아 용병 18명이 미국인 2명과 함께 체포됐다. 아이티 검찰은 미국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던 이 콜롬비아 전직 군인들이 아리엘 앙리 현직 총리 측의 의뢰를 받아 암살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후 앙리 총리가 이 사건 담당 검사를 해임하며 진상 규명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콜롬비아 용병들이 다른 나라의 권력분쟁 과정에 연루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근처 해안선에 무장세력이 침투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들을 체포한 베네수엘라 당국은 이들이 미국의 PMC인 실버코프 소속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전복을 노렸다고 발표했다. 당시 베네수엘라 당국에 체포된 괴한들은 미군 출신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베네수엘라 군경 출신, 그리고 콜롬비아군 출신들로 구성돼 있었다. 아이티 대통령궁 암살 사건에서처럼 미군 출신과 콜롬비아군 출신이 혼재된 조합이 당시에도 적발됐던 것이다. ●유엔에 조사 요청 등 용병 산업 공론화 지난해 미국과 콜롬비아를 맹비난하는 정도로 대응했던 베네수엘라는 아이티 대통령 암살사건을 계기로 후속 행동에 다시 나섰다. 베네수엘라는 지난 8월 “아이티 대통령을 암살한 용병들과 관련된 미국·콜롬비아 용병들이 (지난해) 마두로 대통령 암살과 정부 전복을 시도하다 미수에 그쳤다”고 주장하며 유엔에 용병 관련 조사를 요청했다. 베네수엘라의 사무엘 몬카타 유엔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제출한 서한에서 “중남미 정부 전복을 위해 콜롬비아 용병과 미국 용병으로 구성된 초국가적 조직범죄 네트워크가 작동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이 몬카타 대사의 주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세계의 분쟁과 혼란을 양분 삼아 자라난 용병 산업이 공론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티 대통령 암살을 감행한 콜롬비아 용병들은 이라크 전장에서 용병이 민간인 사상을 일으켰을 당시에 이미 제기됐어야 했을 질문을 일깨웠다. ‘PMC 회사는 각국 정부와 계약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합법적인 회사들이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일하는 용병들의 활동도 합법일까’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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