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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총격 사망” 카자흐 사태 사상자 속출… 정보기관 수장 체포

    “어린이 총격 사망” 카자흐 사태 사상자 속출… 정보기관 수장 체포

    유혈 반정부 시위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 어린이 1명이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민 수천명을 구금하는 한편 정보기관 수장을 반역 혐의로 체포했다. 보도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아동인권옴부즈맨은 이날 성명에서 최근 알마티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로 지난 5일 어린이 1명이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밝혔다. 7일에는 15세 청소년이 심각한 총상을 입고 알마티의 한 어린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카자흐스탄에서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 반발하며 지난 2일 남서부 망기스타우주에서 시작된 항의 시위가 독재 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격화하며 최대 도시 알마티 등지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로 민간인과 정부 측에서 각각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1000명 이상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대변인을 통해 오는 10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베릭 울리 대변인은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카자흐스탄 여러 지역에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과 관련,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2년 1월 10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시위에 가담한 시민들과 배후로 의심되는 고위급 인사에 대한 체포도 이어졌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내무부는 성명을 내고 “여러 지역에서 범죄자를 식별해 구금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하고 있다”며 “구금된 사람의 수는 지금까지 4404명”이라고 이날 밝혔다. 카자흐스탄 국가보안위원회(KNB)는 이날 “지난 6일 국가반역 혐의에 대한 자체 조사를 통해 카림 막시모프 KNB 위원장과 다른 인사들이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됐다”고 발표했다. 다만 막시모프 위원장의 구체적 혐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막시모프 위원장은 2007~2012년과 2014~2016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아래서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고, 2012~2014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2016년부터 KNB 위원장을 맡아왔다. 그러다 이번 사태로 인해 내각이 총사퇴한 지난 6일 해임됐다. 정보기관 수장이 체포된 것과 관련, 현지에선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막시모프 위원장이 토카예프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이번 사태를 기획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규모 시위 사태가 벌어진 알마티에선 이날도 시위대 진압을 위한 대테러작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테러작전은 카자흐스탄 군경 특수부대가 수행하고 옛 소련권 6개국이 결성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평화유지군은 국가 주요시설 경비 임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토카예프 대통령의 평화유지군 지원 요청에 CSTO는 러시아 공수부대를 주축으로 한 2500명선의 병력을 파견했다.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출신 군인도 포함됐다.
  • 러시아군 불러들인 카자흐스탄 대통령 “경고 없이 조준사살 허가”

    러시아군 불러들인 카자흐스탄 대통령 “경고 없이 조준사살 허가”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연료비 급등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엿새째 이어져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군경에 시위대를 향해 경고 없이 조준사격을 해도 좋다고 했다. 7일(현지시간) 최대 도시 알마티를 중심으로 군경과 시위대의 충돌이 계속돼 사상자는 50명을 넘어선 가운데 군경에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시위대를 ‘살인자’로 규정하며 군에 이들에 대한 경고 없는 조준사격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 공수부대를 포함한 옛 소련권 안보동맹의 병력이 현지에 파견되고 서방은 카자흐스탄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멈출 것을 요구해 동서 진영의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인다. 타스와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내무부(경찰) 공보실은 이날 오후 “현재까지 전국에서 3811명의 시위 참가자가 체포됐다”며 “26명이 사살되고 같은 수가 부상했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전날 “질서를 확보하는 과정에 18명의 보안요원이 숨졌고, 748명의 경찰과 국가근위대 병사들이 부상했다”고 밝힌 일이 있다. 타스는 7일 오전 시내 공화국 광장에서 규칙적으로 들리던 총성이 저녁 무렵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자동소총을 든 군인들이 광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군용트럭과 장갑차도 배치돼 있다고 소개했다.또 광장과 주변 도로에는 간밤에 총격을 받은 자동차들이 버려져 있으며, 차 안에는 숨진 사람들이 수습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전날 저녁 알마티의 방송사 취재팀이 시청으로 가던 중 총탄 세례를 받았고, 알마티주의 주도 탈디코르간에서 복면을 한 수십명이 구치소를 공격하기도 했다. 알마티와 수도 아스타나에서는 여전히 인터넷 접속이 거의 되지 않으며, 전화 통화도 차질을 빚고 있으며 국제전화도 사실상 차단됐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날 국영 TV로 방영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시위대와는 협상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해 평화적인 사태 해결은 난망해 보인다. 그는 국제사회의 협상 요구를 일축하며 “범죄자, 살인자들과 어떻게 협상을 한단 말인가. 우리는 국내와 외국에서 온 무장하고 훈련받은 강도들과 마주하고 있다. 그들은 강도이고 테러리스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소위 자유 언론 매체와 외국의 운동가들이 카자흐스탄의 소요를 선동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법률 파괴주의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통령 행정실은 자국 정부의 요청으로 투입되는 옛 소련국가 안보협의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평화유지군 선발대가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행정실은 테러리스트 소탕 작전은 카자흐스탄 군경 특수부대가 수행하고 CSTO 평화유지군은 국가 주요시설 경비 임무만 맡는다고 강조했다. 파견되는 병력은 2500명 선인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러시아 병력 1진이 6일 현지에 도착해 작전에 들어갔다. CSTO 평화유지군에는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 군인들이 포함됐다. 국가별 병력 현황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르메니아가 100명, 키르기스스탄이 150명, 타지키스탄이 100~200명을 파견한 것으로 알려진 점에 비쳐 러시아 공수부대가 사실상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평화유지군 지휘도 러시아 공수부대 사령관 안드레이 세르듀코프 대장이 맡았다. 유럽연합(EU)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폭력 사태의 중단을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사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러시아 군대의 파견 배경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워싱턴 기자회견을 통해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 사태에 충분히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이는데 왜 외부세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블링컨 장관은 카자흐스탄 당국과 이 나라에 주둔한 외국 군대에 ‘국제 인권기준’을 준수토록 할 것을 촉구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우려를 갖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며 모두가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를 통해 “당신이 중요한 시기에 단호하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임무, 국가와 인민에 대해 고도의 책임감 있는 입장을 체현했다”고 지지의 뜻을 밝혔다.
  • ℓ당 330원 LPG, 눌러왔던 분노 깨웠다… 카자흐 전역 비상사태(종합2보)

    ℓ당 330원 LPG, 눌러왔던 분노 깨웠다… 카자흐 전역 비상사태(종합2보)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급등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격화하면서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시위대와의 총돌로 진압대원 8명이 사망하는 등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교통·통신 단절로 국가 기능이 일시적 마비를 겪은 가운데 이번 사태의 원인에 LPG 가격 너머 카자흐스탄 사회에 누적된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이하 현지시간) 인테르팍스·AFP통신 및 중앙아시아 전문매체 유라시아넷 등에 따르면 전날 수천명의 시민이 참여한 대규모 가두행진, 그리고 일부 시위대와 경찰·방위군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는 이날도 폭력을 동반한 소요 사태가 빚어졌다.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알마티 시청사 침입을 시도한 끝에 시장 집무실을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빼앗은 곤봉과 방패를 휘둘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총격과 폭탄 소리도 수차례 들렸으며 시청사 앞에는 1000명 넘는 시민들이 몰렸다고 인테르팍스가 현지 특파원을 인용해 전했다. 시청사와 시청사 인근에 있는 대통령 관저 건물에 각각 불길이 치솟는 장면 등 혼란한 소요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됐다. 시위대는 오후에 알마티 국제공항까지 장악했고, 이로 인해 알마티를 오가는 모든 항공편이 취소됐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날 인천에서 출발해 알마티에 도착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탑승객 70여 명은 공항 운영 중단으로 입국 수속을 밟지 못한 채 공항 청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LPG 가격 인상 반대 시위는 전날을 기해 알마티에서 본격적으로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휴대전화 손전등 불빛을 들어 LPG 가격 인하를 평화롭게 요구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한편에서는 일부 과격한 시위대가 여러 대의 경찰차·소방차·구급차를 불태웠고 식당·상점의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알마티 도심에는 장갑차와 진압 병력이 배치됐으며, 군경은 최루탄·섬광수류탄을 시위대에 발사했다. 시위는 밤을 새워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수는 5000명 이상이었다고 AFP는 전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오전 1시 30분을 기해 알마티와 시위가 처음 일어난 카스피해 연안 망기스타우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정부와 군부를 공격하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며 시위 자제를 당부했다.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폭력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아리한 스마일로프 부총리가 임시총리직을 맡기로 했다.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지역에서는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국내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다수의 TV 채널은 송출을 중단했다. 정부의 진압 노력에도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비상사태 선포 지역을 알마티주 전체와 누르술탄 지역으로 확대한 데 이어 결국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따라 카자흐스탄 전 지역에서는 앞으로 2주간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통행이 제한되고 집회·시위가 금지된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사회질서 유지, 국가기간시설 경비, 검문·검색 강화 등을 명령했다. 아울러 향후 6개월 동안 휘발유·디젤유 등 주요 상품에 대한 정부의 가격 통제를 도입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전날과 이날 이틀간 알마티에서 벌어진 소요 사태로 인해 경찰과 방위군 317명이 부상을 입었고 8명이 사망했다고 카자흐스탄 내무부 발표를 인용한 현지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내무부는 “법과 질서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수백명의 법 집행관, 의사, 일반 주민들이 부상당했고 8명이 군중의 손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추진한 LPG 가격 인상에서 촉발됐다. 정부는 가격상한제를 통해 생산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던 LPG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지급 중단하는 작업을 새해 첫날에 마무리했다. 석유·천연가스 생산이 주요 산업이지만 그에 대한 수요 또한 많은 남서부 망기스타우주에서는 불과 며칠 사이 주유소에서 ℓ당 60텡게(약 165원)에 팔던 LPG 가격이 120텡게로 2배나 급등했다. 차량용 LPG 가격 급등뿐 아니라 이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와 전반적인 물가 급등이 예상되면서 지난 2일 이 지역 도시 자나오젠에서 LPG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정부는 LPG 가격을 ℓ당 85~90텡게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종전 가격보다 낮은 50텡게까지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 진정되지 않은 항의 시위는 카자흐스탄의 경제 중심지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등 전국으로 퍼졌다. 과격한 소요 사태로 번진 이번 시위의 배경에 LPG 가격 인상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라시아넷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의 명목상 평균 임금은 25만텡게(약 69만원) 정도인데, 그런 수치조차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정체된 반면 물가와 집값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등을 거듭했고 카자흐스탄의 막대한 석유 생산에서 비롯된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런 와중에 닥쳐온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카자흐스탄은 2020년 2.6%의 역성장을 겪었고 저소득층의 고난은 더욱 깊어졌다고 유라시아넷은 분석했다.카자흐스탄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 가까이 통치했고 지금도 대통령 위의 ‘상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번 시위에서 시민들이 “노인은 가라”는 구호를 많이 외친 것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과격한 시위대를 “테러리스트 갱단”으로 규정했다. 그는 국영방송 카바르24에 출연해 “이들은 해외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카자흐스탄에 대한 공격은 침략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국가들은 카자흐스탄이 이번 테러 위협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CSTO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아르메니아·타지키스탄 등 옛 소련권 6개국으로 구성된 군사협력기구다.
  • ‘비상사태’ 카자흐 사망자 발생… 건물 불타고 통신 마비(종합)

    ‘비상사태’ 카자흐 사망자 발생… 건물 불타고 통신 마비(종합)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가 급속히 전국으로 확산한 데 이어 군경과의 무력 충돌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최대 도시 알마티 등 주요 지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됐지만 소요 사태가 계속되며 인명·재산 피해가 커지고 있다. 5일(이하 현지시간) 인테르팍스·AFP통신 및 중앙아시아 전문매체 유라시아넷 등에 따르면 전날 수천명의 시위대 중 일부가 경찰·보안군과 충돌하며 폭력 시위로 번진 알마티에서는 이날도 시위대와 군경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위대는 이날 오전부터 알마티 시청사 침입·점거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총격과 폭탄 소리 등이 들렸으며 시청사 앞에는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고 인테르팍스가 현지 특파원을 인용해 전했다. 또한 시청사 2층 창문 밖으로 불길이 치솟고 건물 전체가 연기에 휩싸이는 영상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퍼졌다. 시청사 인근 대통령 관저 건물에 불길이 치솟은 영상도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것으로 전해졌다.전날 밤 알마티에서는 수천명의 시민이 참가한 대규모 가두행진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밝히는 것으로 LPG 가격 인하를 평화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한편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러 대의 경찰차·소방차·구급차를 불태우는가 하면 식당과 상점의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알마티 도심에는 장갑차와 진압 병력이 배치됐고, 경찰은 방패를 휘두르고 최루탄·섬광수류탄을 던지며 시위대에 맞섰다. 시위는 밤을 새워 새벽까지 이어졌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수는 5000명 이상이었다고 AFP는 전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오전 1시 30분을 기해 알마티와 시위가 처음 일어난 카스피해 연안 망기스타우주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통행이 제한되고 집회·시위도 금지됐다.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폭력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새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아리한 스마일로프 부총리가 임시총리직을 맡게 된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정부와 군부를 공격하는 것은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며 시위 자제를 당부했다.정부의 진압 노력에도 시위가 그치지 않고 확산되자 토카예프 대통령은 알마티주 전체와 수도 누르술탄 지역까지 비상사태 선포를 확대하는 법령에 연달아 서명했다. 알마티와 누르술탄 지역에서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되면서 국내외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일부 TV 채널도 방송을 중단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영방송 카바르24에 출연해 대규모 소요 사태로 인해 보안요원 중에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알마티에서 극단적 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민간인 500여명이 구타를 당했고, 경찰 1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정부 측 주장도 나왔다.이번 대규모 시위는 정부가 추진한 LPG 가격 인상에서 촉발됐다. 정부는 가격상한제를 통해 생산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던 LPG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지급 중단하는 작업을 새해 첫날에 마무리했다. 석유·천연가스 생산이 주요 산업이지만 그에 대한 수요 또한 많은 남서부 망기스타우주에서는 불과 며칠 사이 주유소에서 ℓ당 60텡게(약 165원)에 팔던 LPG 가격이 120텡게로 2배나 급등했다. 차량용 LPG 가격 급등뿐 아니라 이로 인한 물류비용 증가와 전반적인 물가 급등이 예상되면서 지난 2일 이 지역에서 LPG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항의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 정부는 LPG 가격을 ℓ당 85~90텡게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시위대는 종전 가격보다 낮은 50텡게까지 인하할 것을 요구했다. 진정되지 않은 항의 시위는 카자흐스탄의 경제 중심지 알마티와 수도 누르술탄 등 전국으로 퍼졌다.카자흐스탄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부터 2019년까지 30년 가까이 통치했고 지금도 대통령 위의 ‘상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의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사전 신고 없는 시위는 불법인 카자흐스탄에서 이번처럼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드문 일이라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한편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리는 형제 이웃 국가의 사건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다”며 “거리 폭동과 법 위반이 아닌 대화를 통해 법적, 헌법적 틀 안에서 모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서초 보훈단체 위문금 21만원으로 인상

    서초 보훈단체 위문금 21만원으로 인상

    서울 서초구는 지역 내 보훈단체 회원들에게 지급하는 위문금을 올해부터 연 21만원으로 인상한다. 구는 올해부터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유공자 예우를 위해 기존 연 3회 각 5만원씩 지급하던 위문금을 각 7만원으로 인상한다고 2일 밝혔다. 지급 시기는 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추석 등이다. 올해부터 보훈 가족 복리 후생을 위해 각종 지원금 지급 대상의 범위도 확대된다. 구는 국가보훈대상자 사망 위로금 지급 대상을 상이(전상·공상)군경 등을 포함해 모든 국가보훈대상자로 확대했다. 국가유공자 장례서비스도 선순위 유족까지 지원받을 수 있게 했다. 지역 내 보훈단체 보조금을 전년대비 5% 인상할 예정이며, 기초생활수급자 보훈위문금도 기존 회당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했다. 구는 보훈정책을 계속 강화해왔다. 지난해 서울 자치구 중 유일하게 6·25 참전용사에게 위문금 35만원을 지급했으며, 2019년엔 매월 지급하는 보훈예우수당을 5만원에서 7만원으로 증액, 거주기간 조건도 폐지했다.
  • 충주, 상이군경 고엽제전우 목욕비 지원

    충주, 상이군경 고엽제전우 목욕비 지원

    충북 충주시는 내년부터 상이군경 및 고엽제 전우분들에게 목욕비를 지원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를 위해 시는 이날 한국목욕업중앙회 충주시지부와 목욕요금 적용에 관한 협약식을 가졌다. 이번 협약에 따라 상이군경 및 고엽제 전우들은 시가 지원하는 목욕권을 내면 목욕업중앙회에 가입된 관내 목욕탕을 무료료 이용할수 있다. 목욕권은 내년 3월부터 분기별로 6장씩 지급된다. 지원대상은 상이군경·고엽제후유의증 630여 명이다. 상이군경 및 고엽제 전우는 분기말에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면 별도 신청없이 목욕권을 받을수 있다. 목욕탕 업주들은 모아진 목욕권을 시청에 제출하면 한장당 5000원을 받는다. 현재 충주지역 성인 목욕비는 7000원이다. 업주들이 1명당 2000원 정도 손해를 보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관내 목욕탕 47곳 가운데 협회에 가입된 업소는 20곳이다. 시는 비회원 업소들을 대상으로 동참을 권유할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건의돼 목욕비 지원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상이군경 및 고엽제 전우분들의 건강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 “14명 굴비 엮듯 고문하고 살해” 미얀마 군부 40명의 민간인 학살 증언

    “14명 굴비 엮듯 고문하고 살해” 미얀마 군부 40명의 민간인 학살 증언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사정권이 반군부 세력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민간인 40명가량을 학살한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고 영국 BBC 방송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런 잔학한 학살을 저지른 병사들 가운데 17~18세 어린 병사들도 있었고, 늙수그레한 병사도 있었으며, 여군 병사도 한 명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민간인 대량 학살은 지난 7월 중부 사가잉 지역의 반군부 세력 근거지인 카니구(區)에서 네 건의 별개 사건에 걸쳐 이뤄졌다. BBC가 인터뷰한 카니구 주민 11명의 진술과 영국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미얀마 위트니스’가 수집한 이들의 휴대전화 영상과 사진들을 비교한 결과 가장 규모가 큰 학살은 인(Yin) 마을에서 벌어졌다. 이 마을에서는 적어도 14명의 남성이 줄에 몸이 묶인 채 고문을 받거나 구타를 당한 뒤 사망했고, 시신들은 숲이 우거진 도랑에 버려졌다. 당시 형제와 조카, 그녀의 남편을 잃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봤다는 한 여성은 “우리는 살해된 사람들이 고문당하는 것을 지켜보기 힘들어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며 “군인들에게 그만둘 것을 간청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달아나 목숨을 건진 한 남성은 “결박된 남성들은 돌이나 소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고, 고문도 당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7월 말 근처 마을에 있는 무덤들에서는 훼손된 12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들 가운데는 어린아이나 장애인으로 추정되는 것도 보였다. 이 같은 대량 학살이 발생하기 전 사가잉 지역에서는 민주주의 복원을 요구하는 민간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과 군부와의 충돌이 몇 개월째 이어졌다. 이런 까닭에 BBC 방송은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이 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놀라운 것은 미얀마 군부가 이런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조 민 툰 군정 대변인은 BBC에 “시민방위군이 우리를 적으로 취급하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지난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는 최근까지 강한 저항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학살, 고문 등 군경의 잔학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엔이 미얀마 군부에 의해 자행된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미얀마군과 소수민족 무장단체인 카렌민족연합(KNU)의 교전이 지속돼 최근 주민 수천명이 태국으로 피신한 가운데 이 중 600여명이 미얀마로 송환됐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태국 북부의 딱주 관계자는 국경을 넘어 들어온 미얀마 난민 623명을 미얀마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2094명은 계속해서 태국쪽 접경 지역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들이 희망한다면 본국으로 송환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더 많은 난민들이 재산 피해를 우려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은 난민들의 안전을 이유로 송환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군부는 가택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무전기 불법소지 혐의에 대한 선고를 다음 주로 연기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얀마 법원은 이날 열릴 예정이던 수치 고문에 대한 선고 공판을 오는 27일로 미뤘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두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4년의 징역형이 선고된다. 법원이 선고 일정을 미룬 것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온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노벨평화상 위원회를 비롯해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등은 지난 6일 첫 선고 이후 미얀마 군정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면서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수치 고문은 얼마 전 법정에 처음으로 죄수복을 입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 [서울포토] 슈퍼 태풍 ‘라이’ 강타… 쑥대밭 된 필리핀

    [서울포토] 슈퍼 태풍 ‘라이’ 강타… 쑥대밭 된 필리핀

    슈퍼 태풍 라이가 필리핀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지금까지 최소 21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또 태풍이 강한 위력을 발휘한 남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통신과 전기가 끊기고 가옥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해 3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 대피했다. 태풍 라이는 지난 16일 남부 민다나오 북동부의 관광지인 시아르가오섬에 최대 풍속이 시속 195㎞인 상태로 상륙했다. 이후 남부와 중부 지역을 지나면서 폭우를 뿌려대 여러 마을이 침수되고 나무와 목조 건물이 떠내려갔다. 필리핀 재난 당국은 군경과 소방대원 등 1만8천명을 동원해 피해가 큰 지역에서 인명 구조 및 수색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AP 연합뉴스
  • 필리핀 강타한 슈퍼 태풍 ‘라이’… 최소 21명 사망

    필리핀 강타한 슈퍼 태풍 ‘라이’… 최소 21명 사망

    최근 필리핀을 휩쓸고 지나간 슈퍼 태풍 ‘라이’에 지금까지 2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AFP통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태풍 라이가 초래한 침수 및 건물 파손 등으로 최소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태풍이 강한 위력을 보인 남부와 중부 지역에서는 통신과 전기가 끊기고 가옥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속출해 3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 대피했다. 태풍 라이는 지난 16일 남부 민다나오 북동부의 관광지 시아르가오섬에 시속 195㎞인 상태로 상륙했다. 미국태풍경보센터(JTWC)에 따르면 라이의 최대 풍속은 시속 259㎞에 달해 슈퍼급으로 분류됐다.지역별 인명 피해 상황을 보면 민다나오의 수리아고와 인근 디나가트섬에서 적어도 각각 3명, 6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필리핀 재난당국은 군경과 소방대원 등 1만 8000명을 동원해 피해가 큰 지역에서 인명 구조 및 수색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태풍 라이는 다소 세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남중국해상을 지나고 있다. 19일 오전에는 베트남 중부 해상 밖 280㎞까지 접근할 전망으로, 베트남 중부의 다낭과 꽝응아이, 빈딘, 푸옌, 카인호아성은 위험 지역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어선들의 출항 자제를 당부했다.
  • [사설] 또 성추행에 은폐 의혹, 국민 절망케 하는 공군

    [사설] 또 성추행에 은폐 의혹, 국민 절망케 하는 공군

    또다시 벌어진 공군 성폭력 사건이 그제 군인권센터 발표를 통해 확인됐다. 지난 6월 이예람 중사 성폭행 사망 이후 여군 숙소 불법 촬영 등 벌써 드러난 것만 세 번째다. 이 중사 사망에 대해 공군참모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어떤 변화도 없다는 데 국민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크다. 이번에는 남성 부사관이 여성 장교를 성추행, 성희롱했다는 의혹이다. 공군 측은 사건 이후 피해자를 비편제 작전장교로 배치하는 인사상 불이익까지 주려 했고, 결국 가해자와 같은 부대에 근무하도록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기본적인 성폭력 사후 대응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다. 군사경찰 대대장인 중령은 여성 장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 여부를 물으면서 “신고를 안 하는 게 좋겠다”, “군생활 오래 해야 할 것 아니냐”는 회유와 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성추행뿐 아니라 군형법상 최대 2년의 징역형이 가능한 상관 면전 모욕죄 혐의까지 더해진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군경찰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군검찰은 가해자인 부사관을 불기소 결정했다. 은폐 의도 의혹이 있는 중령 역시 불기소했다. 공군 내 성추행, 성폭력이 횡행한다는 사실들이 세간에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폐쇄적인 군 문화 및 군 사법 시스템에 특단의 칼질을 하지 않는 한 군내 성폭력 근절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일선 지휘관의 성폭력 은폐 시도 및 군경찰, 군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부실 수사가 만연한 상황에서 피해자만 2차, 3차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군 바깥에서 아무리 진실 규명 및 엄정한 대응을 요구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이유다. 지난 9월 비군사적 사건의 군사재판을 폐지하고 1심부터 민간 법원으로 넘기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 때부터 재개정 요구가 나올 정도로 미흡한 수준이었다. 비군사적 사건은 아예 수사 단계에서부터 외부 기관이 나서는 등 군 사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군사력 세계 6위에 인권은 ‘후진국 군대’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 국가배상 소송 1심 패소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들이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청구 소멸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 임기환)는 9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인 고(故) 장환봉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등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각하했다. 재판부는 장씨의 유족인 부인 진점순(98)씨와 딸 경자(76)·경임(73)씨가 소송을 낸 2020년 7월에는 이미 손해배상 청구권의 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철도기관사로 일하던 장씨는 29살이던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됐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1월 장씨가 군경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된 후 살해당했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장씨에 대한 형사재판 재심 선고는 지난해 1월 이뤄졌다. 유족들은 재심 무죄를 받고 반년 뒤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당시인 2009년에 이미 손해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판단, 시효가 만료됐다고 보았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가해자를 피해자가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아울러 재판부는 유족이 청구한 정신적 위자료에 대해선 이미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했다. 앞서 장씨 유족들은 2012년 1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14년 1월 국가가 유족에게 1억 4000여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 미얀마 군부, 수치 2년형 감형에도… 국제사회 “민주주의 위배”

    미얀마 군부, 수치 2년형 감형에도… 국제사회 “민주주의 위배”

    미얀마 군사정권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76)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에게 선동과 코로나19 방역 조치 위반을 구실 삼아 징역 4년을 선고했다가 당일 형량을 2년으로 줄였다. 군부는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판결을 정당화했지만 한국과 미국 등 각국 정부와 인권단체들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쿠데타 정권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6일(현지시간) 국영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수치 고문과 민 대통령에게 선고한 형량을 ‘사면’ 차원에서 줄인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수도 네피도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복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웅 마웅 온 공보장관은 이날 화상 브리핑에서 “미얀마 사법제도는 편파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얀마 군정은 지난해 11월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2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수치 고문을 가택연금하고 부패, 선거법 위반 등 10여개 죄목을 덮어씌워 재판에 넘겼다. 이번 판결에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 외교부는 7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얀마의 인도적 상황이 악화하는 데 우려를 표명한다”며 시민에 대한 폭력 사용 중단, 수치 고문을 포함한 구금자 석방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와 정의에 위배되는 정의롭지 않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도 “2월 쿠데타 이후 미얀마 민주주의에 또 하나의 주요한 차질을 빚은 이번 선고를 강력히 비판한다”고 밝혔다. 1991년 수치 고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노벨평화상위원회의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위원장은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뿐만 아니라 오랜 징역형이 수치 고문에게 개인적으로 미칠 영향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기소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한 상황이다. 군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미얀마 군경이 양곤 치민다인구에서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아 최소 5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하자 양곤 시민들은 악령을 쫓아내는 행위인 냄비와 팬을 두드리며 항의의 뜻을 나타냈다. 민간인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의 보복공격으로 군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엔 총회는 미얀마 군정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유엔 대표 교체를 보류함으로써 이들의 정부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얀마는 문민정부 인사인 모 툰 주유엔 대사를 군부 인사로 교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 미얀마군 차량 양곤 시위대에 돌진, BBC “사망자 없었다”

    미얀마군 차량 양곤 시위대에 돌진, BBC “사망자 없었다”

    미얀마군이 5일(현지시간)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향해 차량을 몰아 돌진하는 동영상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장에 있던 시민 5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지만 영국 BBC는 여럿이 다쳤으며 그 중 한 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군부의 발표를 인용해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얀마 군경이 최대 도시인 양곤에서 벌어진 반군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병사들이 탄 차량이 시위 참가자들을 향해 돌진했다며 시민 5명이 목숨을 잃었고 적어도 15명이 체포됐다고 현지 매체를 인용해 전했다. 반면 영국 BBC는 사망자는 없었으며 11명이 검거됐다고 전했다. BBC가 한국 시간으로 6일 오전 보도한 내용이며 군부의 발표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본다. 다만 두 매체 모두 폭력적이고 잔학한 군부의 진압 모습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위 참가자는 “무언가에 들이받힌 뒤 트럭 앞에 쓰러졌다”면서 “곧이어 군인이 소총으로 때려서 도망치자 실탄이 발사됐지만 다행히 달아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다른 목격자들에 따르면 군인들은 차량을 탑승한 채로 시위대 뒤쪽을 뚫고 들어온 뒤 달아나는 시민들을 마구 때리고 체포했다. 시민 일부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미얀마 군정은 이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11월 치른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올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과 집권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인사들을 대거 체포했다. 그 뒤 시민들의 반쿠데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시민들이 대거 목숨을 잃는 등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지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군부 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시민 1303명이 군경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네피도 지방법원은 6일 아웅산 수치(76) 국가고문의 선동죄 및 자연재해법 위반 혐의에 대해 2년씩 모두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내려진 첫 법원 판결이다. 군정 법원이 향후 중대 혐의 관련 공판까지 진행하면 수치 고문에게는 10가지 혐의에 모두 최고 형량이 적용되면 116년형 선고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군정을 이끄는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이날 국영 TV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사면” 차원에서 수치 여사와 민 윈 전 대통령 등 두 사람에게 선고한 징역 4년을 징역 2년으로 감형했다고 국영 TV가 전했다. 군부가 얼마나 사법제도를 가벼이 운용하는지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 “삼청교육대는 끝나지 않은 지옥… 우리는 국가폭력 피해자”

    “삼청교육대는 끝나지 않은 지옥… 우리는 국가폭력 피해자”

    “애타게 찾았던 막냇동생이 삼청교육대에서 돌아왔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고통은 몇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지만 이제는 이룰 수 없는 바람입니다.” 삼청교육대가 남긴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 40여년 전부터 시작된 고통은 박광수(71)씨에게는 여전히 벗어나기 힘든 악몽이다. 그의 친동생 박이수(당시 24세)씨는 1980년 동대문야구장을 방문했다가 중부경찰서 경찰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이송돼 이른바 ‘순화교육’을 받았다. 4주 교육 후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모진 구타와 고문 탓에 평생을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난달 16일. 1980년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피해자와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집단으로 제기했다. ‘삼청교육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에 따라 일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졌지만 수준이 미약하고 순화교육·근로봉사·보호감호로 인한 피해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피해 사례를 모아 오는 28일까지 계속 소를 제기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삼청교육대피해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씨는 “국가의 폭력에 평생을 시달린 고통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냐”면서 “국가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군경, 6개월간 6만 755명 영장 없이 체포 1980년 신군부에서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하고 재사회화한다는 명분으로 설치한 삼청교육대는 국가 폭력과 무자비한 인권탄압의 장으로 악용됐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2006년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군경은 1980년 8월부터 1981년 1월까지 6만 755명을 영장 없이 잡아들였다. 이들은 A·B·C·D 네 등급으로 분류돼 군법회의에 회부되거나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이 기간 전국 26개 군부대에 설치된 삼청교육대로 간 인원은 3만 9786명이었다. 삼청교육대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기에 동생 이수씨는 국가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서울에서 형과 함께 아버지가 물려준 사진관을 운영하던 이수씨는 1980년 8월 7일 야구 경기를 보러 동대문야구장에 갔다가 매표소 앞에서 경찰에 붙잡혀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전과가 없던 이수씨는 C등급으로 분류돼 4주 순화교육을 받고 나왔다. 아들만 다섯인 박씨 가족들은 막냇동생이 행방불명되자 영문도 모른 채 밤을 새우며 그를 찾아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동생이 갈 만한 곳과 만날 만한 사람을 모두 알아봤죠. 그러다 동생이 행방불명된 지 4주가 지났을 무렵 중부경찰서에서 동생을 데려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 달 만에 본 동생의 모습을 보고 박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생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극심한 불안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다. 평소 활달하고 건강했던 동생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박씨는 동생을 끌고 간 이유가 뭐냐고 경찰에게 따졌지만 “길거리에 침을 뱉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답변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경찰은 동생이 어느 부대로 끌려갔는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애타게 찾던 동생이 돌아왔지만 현실은 지옥이었다. 동생은 가족과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일어나 비명을 지르거나 머리를 식탁과 벽에 박는 등 이상증세를 보였다. 심지어 가족을 때리거나 할퀴는 등 폭력성까지 보였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고 혼자서 외출은 물론 정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했다. 1984년까지 4년간 이수씨를 돌본 박씨의 가족은 결국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 가족 모두 일상적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후 14년간 매월 70만원씩 치료비가 나갔다. 박씨 월급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박씨는 1998년 동생을 무연고자로 신고한 뒤 강화도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국가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하루하루가 지옥 그 자체였다. 차라리 동생이 죽었다면 서로에게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해 봤다”면서 “동생은 20년이 넘도록 요양원에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분하고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외롭게 싸웠죠… 이번이 마지막 기회” 박씨는 17년간 국가를 상대로 싸워 줄 변호사를 백방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삼청교육대 얘기만 꺼내면 변호사들은 눈치를 보다 사건 수임을 거부했다. 동생이 삼청교육대에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를 찾고자 국가기록원에도 갔지만 헛수고였다. 우여곡절 끝에 1997년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가족 78명이 뜻을 모아 처음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당했다.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희망의 끈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4년 삼청교육피해자법이 공포되면서 국방부는 ‘삼청교육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을 설치했다. 이수씨는 2006년 12월 22일 요양·장애보상 및 치료비 명목으로 1850만원을 받았다. 턱없는 금액에 박씨는 개별 소송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당시 보상심의위원회 팀장이 자필 편지까지 건네며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만류했다. “그 후에도 외롭게 싸웠습니다. 동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신문 기사와 자료 등을 수집했어요. 그동안 모아 온 것만 몇 박스가 됩니다.” 민변이 나선 이번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은 박씨에게 마지막 기회다. 2018년 12월 28일 삼청교육대 설치 근거였던 ‘계엄포고령 제13호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민법이 손해배상 소멸시효 3년을 넘기지 않기 위해 민변이 급히 나선 것이다. 지난달 16일 민변은 기자회견을 열고 “삼청교육대 피해자에게 적정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변호단을 구성해 박씨를 비롯한 삼청교육대 피해자에게 위임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은 금전 보상뿐만 아니라 진실 규명, 책임자에 대한 문책,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등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씨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동생을 무연고자로 요양원에 보내 놓은 상황에서 동생이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이제는 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왜곡된 시선에 더 많은 상처 받아 지난 40여년간 박씨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가족을 몰라보는 동생도, 동생을 무연고자로 신고해야만 했던 경제적 어려움도, 국가를 상대로 홀로 버텨 왔던 시간도 아니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한 주위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이었다. 당시 박씨는 동생이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지내야 했다. 주변의 도움을 얻고 싶어도 차마 삼청교육대에 가족이 끌려갔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범죄자 가족으로 낙인찍힐 우려 때문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박씨는 삼청교육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상처받고 있다. 인터넷 댓글창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삼청교육대로 보내라’라는 문구 때문이다. 그 문구를 읽는 박씨의 마음은 찢어진다. 그는 그동안 많은 게 바뀌었지만 바로잡을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로잡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피해자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말 한마디에 가슴이 찢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적 폭력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 콜롬비아 교도소가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콜센터…황당한 압수수색 결과

    콜롬비아 교도소가 알고보니 보이스피싱 콜센터…황당한 압수수색 결과

    알고 보니 교도소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콜센터였다. 콜롬비아 군경이 교도소에서 압수수색을 진행,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핸드폰 등을 무더기로 발견했다고 현지 언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압수수색이 진행된 곳은 악명 높은 범죄자가 다수 수감돼 있기로 유명한 피칼레냐 교도소였다. 군경은 교도소 내 감방 지하에 몰래 설치된 '금고'를 발견,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장비와 무기 등을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금고에는 핸드폰 31대, 핸드폰 액세서리 154개, 유심카드 104장, 와이파이 모뎀 1개 등이 숨겨져 있었다. 칼 등 흉기 38개, 코카인 444g 등 무기와 마약류도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관계자는 "의심을 받지 않을 교도소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본 조직이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감방에서 운영했다"며 "명백한 증거가 나온 이상 보충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교도소 보이스피싱의 주요 타깃은 상인들이었다. 조직은 상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을 납치했다. 살리고 싶으면 몸값을 내라"고 돈을 요구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전국에 산재해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전국에 분포돼 있는 걸 보면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는 단체의 소행이 확실하다"며 게릴라 단체가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특히 경찰이 주목하는 건 피칼레냐 교도소를 공격한 바 있는 게릴라단체 콜롬비아 혁명군(FARC)과 인민군(EP)이다. 이들 게릴라 단체의 거물급이 다수 문제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어 콜센터 설치와 운영에 깊숙이 간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범죄전문가들은 "교도소 내 관리가 허술해 외부 조직과의 연락과 공조가 가능하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며 교정시설에 대한 관리에 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 교도소의 54.9%는 수용정원 초과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는 올해 초 10개의 교도소를 신설해 재소자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준공된 새 교도소는 없다.   
  • 콜롬비아서 사상 최대 ‘코카인 공장’ 적발…2500만명 투약 물량

    콜롬비아서 사상 최대 ‘코카인 공장’ 적발…2500만명 투약 물량

    마약 대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남미 콜롬비아가 올해 들어 사상 최대 규모의 코카인을 압수했다. 콜롬비아 검찰은 23일(현지시간) 총장 브리핑을 통해 "나리뇨주(州)의 사마니에고 지역에 있는 마약공장 2곳을 발견, 코카인 20톤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한창 가동 중이던 2개 공장에선 코카인 염산염(코카인 가루) 10톤, 용해된 상태로 용기에 보관돼 있던 코카인 10톤이 발견됐다. 압수한 물량은 시가로 약 3억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3570억 원에 이른다. 검찰 관계자는 "코카인 염산염의 경우 2500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물량"이라면서 "올해 들어 최대 물량의 코카인을 압수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프란시스코 바르보사 검찰총장은 "2곳의 마약공장이 모두 초대형이었다"면서 "코카인 제조에 사용된 화학물질, 생산시설 가동에 사용된 기계류 등을 추가 증거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자이언트급'이라고 표현한 마약공장은 게릴라단체 '국가해방군'(ELN)의 마약사업 조직 '하이메 안토니오 오반도'의 소유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선 게릴라단체, 범죄조직 등이 경쟁적으로 코카인 생산과 밀매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6년 정부와의 평화협정을 거부하고 여전히 투쟁 중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잔존 세력, ELN 등 게릴라 단체와 범죄조직 '골포클란', '펠루소스' 등이 마약사업을 벌이고 있다. 공식적으론 내전이 종식됐지만 영토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게릴라단체와 범죄조직이 전쟁을 벌이는 1차적 원인은 코카인 재배지 장악에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애꿎은 농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한꺼번에 피난을 떠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유령마을이 된 곳도 있다"고 보도했다. 투쟁자금 조달을 위한 코카인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콜롬비아 당국이 압수하는 코카인 물량은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 군경이 압수한 코카인은 총 505톤으로 사상 최대였다. 군 관계자는 "게릴라단체와 범죄조직이 코카인 생산과 판매에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생산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유행에도 전혀 활동이 위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부 “오토바이에 남성 2명 타면 총 맞는다”…왜?

    미얀마 쿠데타 군사정권이 남성 2명 이상이 오토바이에 탑승하는 것에 대해 발포를 경고했다. 반군부 세력이 오토바이를 이용해 폭발물을 투척하고 달아나는 공격을 막기 위함이지만, 오토바이와 삼륜 자전거 등에 크게 의존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17일 현지 매체인 이라와디와 미얀마 나우는 “미얀마 군사정권이 양곤, 타닌타리, 사가잉, 만달레이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차량 운행의 새로운 조치를 시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남성 2명은 오토바이에 함께 탑승할 수 없다. 남녀 동승의 경우 남성은 뒤에 탑승할 수 없다. 오토바이 탑승자가 노령자면 2명이어도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지난 16일부터 이 규정을 위반하면 오토바이가 압수될 수 있으며, 18일부터는 위반시 체포되거나 총에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조치는 민간인 무장세력인 시민방위군(PDF)이 최근 오토바이를 이용해 군경 및 군정 관련 시설에 폭탄을 던지고 달아나는 공격이 일어나는 것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도 만달레이 지역 메익틸라구의 PDF가 오토바이를 타고 군경 순찰대에 폭탄을 던져, 경찰 2명이 숨지고 수 명이 부상했다고 PDF가 주장했다. 오토바이 탑승 인원을 제한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익틸라구의 한 주민은 “군과 경찰은 2명이건 3명이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오토바이를 타면서 시민들에게만 이런 규정을 적용하는 건 불공정하다”고 토로했다. 오토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전사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일을 계속해 먹고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 “유럽에 가지 못한다면 죽겠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아수라장‘

    “유럽에 가지 못한다면 죽겠다” 벨라루스-폴란드 국경 ‘아수라장‘

    벨라루스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어 유럽에 들어가려는 이주민과 폴란드 국경수비대의 충돌이 빚어지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폴란드 국방부는 16일(현지시간) 벨라루스에서 넘어오는 국경 검문소인 ‘브루즈기-쿠즈니차’에서 충돌이 있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국경 근처 임시 난민캠프에서 머물던 난민 수천명 중 일부가 검문소로 몰려와 짙은 연기와 굉음 속에 콘크리트 블록을 부수고 폴란드 쪽으로 물건을 던졌고 폴란드 병력은 이들을 향해 물대포를 쐈다. 국경에서 이주민 갈등이 한달째 이어졌지만 이날처럼 긴장이 높아진 적은 없었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두 나라 모두 상대를 손가락질했다. 폴란드 국방부는 난민들이 군인과 경비인력 등에 돌을 던졌고 벨라루스 측에서 섬광탄까지 공급받았다고 주장했다.섬광탄은 빛과 소리로 대상에게 충격을 주는 수류탄으로 살상무기는 아니다.폴란드는 특히 벨라루스 측이 이주민의 월경을 도우려고 국경 울타리에 구멍을 뚫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반면 벨라루스 국영매체 등은 폴란드가 난민을 저지하려고 물대포와 섬광탄을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이들 매체가 방송한 동영상에는 난민들이 폴란드 경비인력에 돌을 던지고 폴란드 국경수비대가 물대포, 섬광탄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난민들과 기자들이 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았다. 폴란드 병력이 최루가스를 사용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벨라루스 국영통신 ‘벨타’는 폴란드 병력이 타는 듯한 통증을 일으키는 노란 액체를 뿌렸고 연기 때문에 사람들 숨이 막혔다고 보도했다. 벨타에 따르면 벨라루스군 화생방국는 폴란드 군경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들에게 독성 화학물질을 썼다고 주장했다. 벨라루스 수사당국은 폴란드 보안요원들이 특수장비를 사용해 상해를 입힌 사건을 현장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 국방부는 벨라루스 국경수비대가 이주민들을 배후에서 폴란드 군경을 공격하도록 부추겼다고 맞받았다. 이 나라 경찰관 7명이 날아든 물체에 맞아 부상했다. 폴란드 국경수비대는 이주민들이 돌을 비롯한 물체를 던졌다며 “불법 월경을 막으려고 과격한 외국인들에게 물대포를 썼다”고 발표했다. 한 난민 남성은 CNN 인터뷰에서 “살아남아 있으려고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경 근처에서 28일째 머무르고 있다는 이라크 출신 라완드 아크람(23)은 뉴욕 타임스(NYT) 인터뷰를 통해 “모두 화가 나 있다”며 “유럽에 갈 수 없다면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했다. 폴란드는 벨라루스가 유럽연합(EU)의 경제제재에 보복하려고 이주민들을 데려와 국경으로 내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벨라루스는 이를 부인한다. 국제사회는 벨라루스 쪽 접경지역에 발이 묶인 이주민들이 혹한, 식량부족, 스트레스 때문에 인도주의 위기에 몰렸다고 우려한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벨라루스의 전략 때문에 이주민들의 목숨이 위험해졌다고 지적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서부 그로드노주 지사에게 난민수용시설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일부 난민이 이 수용소로 옮겨갈 것으로 알려졌다. 벨타 통신은 침대 2000개가 마련됐고, 음식은 벨라루스군 취사병들이 준비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로 난민 사태를 논의하고 전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통화 내용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 총리는 50여분 진행된 루카셴코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국경에서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방안을 찾고, 난민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협의했다고 독일 정부 대변인이 발표했다. EU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해 10여 개국에서 항공기를 통해 난민들을 수도 민스크로 실어나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벨라루스는 이들 난민을 EU 국가에로 밀어내 EU의 안정을 흔들려 획책하고 있다고 EU는 보고 있다. 실제로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5월 EU의 제재에 반발하며 난민들의 EU 행을 막지 않겠다고 밝힌 일이 있다. 한편 독일 경찰에 따르면 이달 들어 벨라루스를 거쳐 허가를 받지 않고 입국한 난민이 1708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일간 빌트가 전했다. 올해 들어 같은 방식으로 입국한 난민은 9549명이다.
  • “친자관계 확인되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친자관계 확인되면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전몰군경과 친자관계가 확인되면 재혼 등으로 가족관계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는 17일 재혼한 부모의 제적등본에 출생신고가 됐다는 이유로 친부인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결정하고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거부한 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했다. 중앙행심위에 따르면 전몰군경 A씨는 B씨와 혼인해 1948년 자녀를 낳은뒤 A씨의 제적등본에 등록시켰다. 이후 A씨와 사별한 B씨는 재혼한뒤 자녀를 재혼자와의 자녀로 출생신고했고 신고 당시 자녀를 1952년생으로 기록했다. 성인이 된 자녀는 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했고, 법원은 자녀의 나이를 1948년생으로 정정토록 했다. 이를 근거로 자녀는 친부인 국가유공자의 유족으로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보훈지청은 나이를 정정한 것 만으로는 전몰군경의 자녀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고, 이에 자녀는 중앙행심위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중앙행심위는 A씨의 제적등본에 자녀로 기재돼 있고 중·고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생년월일이 제적등본과 같은 점 등을 들어 친자녀로 판단하고 고인의 유족으로 인정하지 않은 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했다. 권익위는 “가족관계의 변동사항으로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민원인의 권리를 구제한 사례”라고 밝혔다.
  •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73년 만에 명예회복… 여순사건 유족에겐 시간이 없다”

    “죄 없는 민간인이 국가 권력의 폭력 속에 억울하게 잡혀가 스러졌다는 것이 여순사건이 빚은 비극의 본질입니다. 이제라도 나라가 진심 어린 사과로 유족의 한을 풀어 주고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합니다.” 비극의 고통은 깊고 길었다. 1948년 벌어진 여수·순천 10·19사건은 김규찬(72)씨가 평생 짊어져 온 아픔이자 벗어나고픈 굴레의 시작이었다. 철도승무원이었던 아버지 김영기(당시 23세)씨는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을 열차에 태웠다는 이유로 내란죄에 몰려 정부 진압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후 불과 한 달 만에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최종심에서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지만 결국 마포형무소(지금의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행방불명됐다. 그로부터 73년이 흐른 지난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송백현)는 유족 김씨 측의 청구로 열린 재심 재판에서 김영기씨의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심청구인과 유족이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이 고됐을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며 “사법부를 비롯한 국가는 이 사건을 통해 불법적인 폭력을 방관하거나 자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서울 동대문구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평생의 설움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이번 판결로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난 집안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으킨 반란을 정부군이 진압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진압 과정에서 이 지역에 거주하던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김씨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북 상주 출신인 김영기씨는 여순사건에 휘말리기 전까지 순천역 열차 차장으로 근무하며 아내, 그리고 네 살배기 딸과 함께 덕암리 철도관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던 젊은 가장이었다. 아내는 아들 김씨를 임신한 상태였다. 김영기씨가 탄 열차는 전북 익산에서 출발해 순천역에서 정차하던 중 지역 일대를 장악한 14연대의 요구에 객실을 내줬다. 일반 시민도 탄 정기 운행 열차였지만 총부리를 들이미는 군인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그는 관사로 쳐들어온 진압군에게 ‘반란군과 공모해 부역했다´는 내란죄 혐의로 체포됐다.김씨는 “어릴 적 어머니는 아버지가 군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열차 운행만 했을 뿐인데 영장이나 다른 법적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끌려갔다며 밤마다 우시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가 돌이 지난 저를 업고 마포형무소로 아버지를 찾아 면회를 갔는데 아버지 다리가 고문으로 죄다 뒤틀려 찢어진 살 사이로 하얀 무릎뼈와 정강이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더라”며 눈물을 지었다. ‘곧 나갈 테니 집안 장롱에 남겨둔 돈을 얼마간 생계비로 하며 기다리라’던 아버지는 그 길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가장이 사라진 김씨 가족은 철도관사에서 쫓겨났다. 어머니는 매일 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신문을 받으며 곤욕을 치르다 순천을 떠나 대구에서 멸치 행상을 하며 생활했다. 5살 된 누이는 괴질로 세상을 떴다. 가난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기 힘들었던 김씨는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행상을 도와야 했다. ●철도공사 다니며 아버지에 관한 기록 모아 다행히 친척의 도움으로 고교를 겨우 졸업한 김씨는 전교 1등도 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반란자의 자식´이라는 그림자가 늘 따라다녔다.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해 1차 적성검사와 2차 신체검사, 3차 필기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신원조회에서 걸렸다. 좌절한 김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철도학교 홍보 전단이었다. 국비로 교재와 옷, 장학금까지 준다는 말에 끌려 그대로 철도학교에 입학했다. 철도공무원이 되려면 연좌제 해결이 먼저였다. 행방불명된 지 20년이 된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에서 스스로를 파낸 뒤에야 여순사건의 그림자를 일부나마 벗을 수 있었다. 1971년 철도청을 거쳐 198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지하철 계획요원으로 옮긴 그는 2008년 도시철도공사 임원으로 퇴직할 때까지 38년을 철도공사에 몸담으면서 틈틈이 아버지의 흔적을 좇았다. 아버지가 탔던 서울~여수 전라선 노선을 탈 때면 아버지를 알던 동료 철도공무원을 찾아 증언을 듣고 기록을 모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까지는 망설임의 연속이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재판에 나섰다가 행여나 자식에게까지도 불이익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기는 진상 규명은커녕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그는 “운명처럼 아버지를 따라 열차 승무원의 길을 걷게 됐지만 한번 불이익을 겪기 시작하니 언제라도 또 그런 일을 겪을까 노심초사하며 살게 됐다”고 회고했다. ●아버지 옛 동료가 당시 상황 증언 ‘운명이려니´ 하고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재심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1년 여순사건유족연합회가 출범하고 2009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438명이 군경에게 집단 사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유족연합회에 있으면서 우연히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옛 동료는 당시 그가 어떻게 경찰에 끌려갔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군법회의에서 아버지가 무죄를 항변했음에도 확인 절차 없이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도 증언해 줬다. 아버지의 동료인 철도 기관사 장환봉(당시 29세)씨 유족이 재심을 진행 중인 것도 알게 됐다. 김씨는 “장씨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며 검찰 자료를 통해 진압군에 끌려간 철도원이 66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철도업에 있으면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아버지를 비롯한 철도원들의 무죄를 입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21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가 장씨의 재심에서 내린 무죄 선고는 한 줄기 빛이었다. 그 길로 국가기록원을 두 달간 뒤져 아버지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순천역 사무소 직원 명부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찾고 본적과 철도관사 주소 등을 대조해 퍼즐 조각을 맞췄다. ●유족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 많아 그렇게 지난해 5월 12일 법원에 청구한 재심은 8개월 만인 지난 1월 29일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다. 올 5월 첫 공판을 거쳐 마침내 법원은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첫 공판에서 “내란, 국권문란, 포고령 위반 등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나 자료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김씨는 “판결을 듣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며 “아버지의 불명예를 내가 70여년이 지나 노인이 다 돼서야 죽기 전에 씻고 갈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결 5일 뒤인 지난 6월 29일에는 진상 규명과 희생자 지원을 위한 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유족 대부분이 나이 들고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적지 않아요. 너무 늦기 전에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적극적으로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합니다. 유족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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