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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대책마련 잰걸음

    여야가 31일 재·보궐선거 개선책을 놓고 잰걸음에 나섰다.여야가 현재와같이 ‘죽기 살기’로 재·보선에 매달려 생기는 폐단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없다.여야는 재·보선 문제에는 의견충돌이 별로 없어 이르면 다음달 서울 송파갑,인천 계양·강화갑의 재선거부터 개선책이 적용될 것 같기도 하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이날 “선거과정에 나타난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국민회의는 앞으로는 재·보선의 경우중앙당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소속의원들이 정당연설회에서 후보를지지하는 연설을 할 수는 있지만 의원들을 동책(洞責)으로 임명해 과열을 부추기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회의는 불이익을 보더라도 서울 송파갑과 인천 계양·강화갑 재선거부터 동책을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 또 의원의 경우 재·보선은 사유가 발생한지 90일 이내에 하기로 된 선거법상의 시한을 지방의원처럼 180일 정도로 늘려서 되도록 한꺼번에 여러 지역의 재·보선을 치를 수 있는 방안도 거론된다. 선거부정에관한 재판을 빨리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현행 선거법에는 공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끝내도록 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중앙선관위가 최근 제시한 선거법 위반사범에 관한 재판을 현행 3심제에서 2심제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잔여임기가 1년 미만이면 재·보선을 치르지 않을 수 있는 규정을 고쳐 1년 이상 임기가 남았어도 재·보선을 실시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지만,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다만 지방자치단체장이 공석인 경우는 부(副)단체장이 대행해도 별 문제는 없다. 한나라당도 李會昌총재 주재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어 재·보선 실시기한을 연장하는 등 재·보선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특히 재·보선은 물론 선거 전반의 탈법을 막기 위해 선거위반의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安澤秀대변인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등을 상실하면 영원히 후보로 나오는 것을 박탈하는 등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선거법개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재·보선의 투표율을 높이려는 방안도 검토된다.국민회의 鄭東采기조위원장은 “재·보선은 일요일이나 법정공휴일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 재보선문제점

    과거 혼탁선거의 재판이라는 평가 속에서 재보선이 막을 내렸다.선거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불법·타락 양상이 심화되자 여야는 앞다투어 ‘공명선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급기야 정치권 일각에서는 ‘재보선무용론’까지 등장했다.여야는 선거가 끝난 뒤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현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흑색선전 선거가 달아오르면서 후보들은 ‘IMF사태를 초래한 장본인’ ‘무능공직자’ ‘호화판 주택을 소유한 철새’ 등을 운운하며 상대후보 비방에 열을 올렸다. 지난 25일 모 후보쪽은 상대후보의 병역기피 의혹을 제기하면서 “강박신경증이라는 정신병 때문에 전역했다”고 주장했고 상대후보는 “부인이 서울강남지역에 호화음식점을 차릴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앞서 24일에는 시흥보선에 출하만 모 후보가 “상대후보는 서울부시장 시절 부정행정으로 해임촉구결의를 받았다”면서 “전직 무능공직자”라고원색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특히 모 정당 연설회에서 한 의원이“우리후보가 시시하게 여자와 싸울 만한 분이냐”며 여성후보 비하발언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앙당 개입 이번 선거기간동안 여야는 총재를 비롯,주요 당직자와 소속의원들을 총동원했다.여야는 합의하에 이 기간동안 상임위활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의원들의 ‘선거전’ 투입으로 상임위는 전혀 열리지 못했다.어렵게 마련된 임시국회는 ‘개점휴업’상태가 됐고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초래해후유증을 앓고 있다. 선거운동기간동안 李會昌총재를 비롯,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은 선거지역을 10여차례 가까이 공식방문했다.부총재와 당 3역에게 담당 선거구를 할당하는 등 의정활동을 전혀 할 수 없도록 했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朴泰俊총재 등 공동여권 지도부도거의 매일 선거구를 찾았다.선거구 각 동별로 담당 의원을 정하기도 했다. ▒고소고발 난무 선거가 치열해지면서 후보사이에 고소,맞고소의 악순환이되풀이됐다.여야가 검찰에 직접 고발한 건수는 국민회의 8건,한나라당 6건. 이외에 여야가 주장하는 상대후보 부정선거 사례는 수십건에 이른다.또 선관위가 자체 적발한 선거법위반도 수십건에 이르고 있고 이중 공식발표된 것만도 14건이다. 지난 27일 구로을 재선에서 한 후보가 ‘스카프 배포’ 혐의로 상대후보를검찰에 고발하자 이 후보는 사실무근이라며 맞고발하기도 했다. ▒관권·금권시비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2만∼5만원 단위의 자금을 살포하며 음성적 두더지식 사조직을 중심으로 불법선거를 자행했다”면서 금권선거운동 의혹을 제기했다.이에 한나라당은 “서울시가 각 구청별로 시흥거주공무원주소록을 작성하는 등 관권선거의혹이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맞섰다.
  • 『3·30재보선 D-1』득표전 이모저모

    D-2일.재·보선을 이틀 앞둔 28일 여야 후보들과 각 당 지도부는 총출동,관내 곳곳을 돌며 ‘한표’를 호소했다.선관위와 시민단체의 감시활동도 눈에띄게 강화됐다. ▒구로을 국민회의 韓光玉후보는 구로중학교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 참석,정치개혁과 지역발전을 앞세워 ‘대세 굳히기’에 돌입했다.韓후보는 “이 지역에 뿌리를 박고 지역발전과 정치개혁을 위해 나의 정치생명을 불태우겠다”고 강조했다.이어 “국회의원은 부부의 공유물이 아니다”고 한나라당 趙恩姬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자민련 朴泰俊총재와 邊雄田의원도 지원 연설을 통해 “구로을 발전을 위해선 강력한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나라당 趙후보는 휴일을 맞아 인파가 몰리는 교회와 성당,백화점 등을 돌며 ‘거리유세’에 초점을 맞췄다.趙후보는 “구로을의 자존심을 살리자”며 국민회의 韓후보의 ‘낙하산 공천’을 집중 공격했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金令培부총재·鄭東泳대변인,한나라당 粱正圭부총재·辛卿植사무총장·朴明煥 朴世煥의원 등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도나와 ‘부동표 공략’에 힘을 보탰다. ▒시흥 이날 열린 마지막 정당연설회에서 각 후보들은 자신이 지역발전의 적임자임을 주장하며 득표활동을 펼쳤다.자민련 金義在후보는 지역 교회와 성당을 방문해 “힘있는 여권후보를 밀어달라”고 한 표를 부탁했다.특히 金후보쪽은 투표율이 30%를 넘으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고 투표율 제고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민련 정당연설회에는 朴泰俊총재 등 자민련 지도부와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金令培부총재·韓和甲총무 등이 나와 여여(與與)공조를 과시했다. 한나라당 張慶宇후보는 시장,아파트 등 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지막 득표점검에 나섰다.투표율이 30%를 밑돌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아래 토박이임을 강조하며 고정표 단속에 혼신을 다했다.특히 유권자의 70∼80%가 살고 있는 시화신도시와 구시가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또 諸廷坵전의원의 조직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張후보쪽은 “지난 27일 諸전의원의 부인 申明子씨가 張후보 선거사무실에 찹쌀떡5말을 기증하는 등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는 李會昌총재를 비롯,李漢東전부총재·金德龍부총재·李基澤전총재대행 당 중진들이 대거 참석했다. ▒안양시장 국민회의 李俊炯후보와 한나라당 愼重大후보는 오전에 유권자들이 몰려있는 성당과 교회를 돌며 막판 표 훑기에 나섰다.李후보는 천주교,愼후보는 기독교신자다.오후에 열린 양당의 정당연설회에서는 당의 핵심 당직자들이 대거 참석해 유세장을 달궜다. 李후보는 새벽 비산성당 미사에 참석한 뒤 인덕원 장내동 중앙성당 등을 방문하며 기독교와 천주교표 응집에 나섰다.李후보는 오후 4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시장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평생을 서민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서민의 아픔을 잘알고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愼重大후보도 오전에 명학성당과 평안교회를 돌며 지지를 당부했다.愼후보는 이어 오후 3시 뉴코아백화점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갖춘 깨끗한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선거의 최대 격전지답게 각 당 수뇌부들이 대거 출동했다.국민회의에서 趙世衡총재권한대행·金令培 盧武鉉 鄭大哲부총재·金玉斗 李錫玄 崔喜準의원이 참석했다.자민련도 金龍煥수석부총재,朴俊炳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자들이 참석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부탁했다.한나라당의 李會昌총재·李漢東전부총재·朴槿惠부총재·孟亨奎 李海龜 金浩一의원 등도 지역을 누볐다.
  • 자민련 宋業敎씨 의원직 승계

    자민련 鄭相千부총재가 23일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전국구 의원직을 사퇴키로 해 예비후보 1번인 宋業敎정책연구실장(58)이 의원직을 승계하게 됐다. 宋실장은 지난 67년 공채 3기로 공화당에 들어와 30여년동안 金鍾泌총리와정치역정을 함께 해왔다.특히 87년 金총리가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뒤부터金총리의 각종 연설·강연 원고 집필을 맡아왔다. 민자당에 함께 있다 결별한 金泳三 당시 대통령을 겨냥한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는 95년의 국회에서의 자민련대표 연설문도 그의 작품이다. ▶전남 나주 ▶광주제일고,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공화당 의원국장 총무국장,민자당 부대변인
  • 「3·30 재·보선」합동연설회 이모저모

    3·30선거전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여야는 21일 지도부가 총출동한 가운데 서울 구로을 등 3개지역 재·보선 현장에서 합동연설회를 갖고 첫 유세전을 펼쳤다.이날 유세전은 쌀쌀한 날씨에도 선거지역별로 수천명씩 청중들이 모여들어 유세현장을 달궜다.이날 현재 여권은 3개지역 모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한나라당은 초반 열세에서 벗어나 최소한 경기 안양시장선거 등 1개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서울 구로을 재선 구로을의 선거전은 국민회의 韓光玉후보와 한나라당 趙恩姬후보의 2파전으로 좁혀진 상태다.韓후보측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격차를 보여 일찌감치 승세를 굳히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지난 대선과6·4 지방선거에서 국민회의가 각각 50%와 64%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여여공조에 기대를 걸고 있다.李信行전의원의 부정선거로 재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을 부각,압승을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 趙후보측은 출발이 늦었고 인지도가 낮아 열세를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선거운동이본격화되면서조금씩 추격,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趙후보의 남편인 李전의원에 대한 ‘표적수사’와 국민연금 파동,한·일어업협정 졸속체결 등 여권의 국정운영 난맥상을 강조,趙후보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구로중학교에서 2,500여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첫 합동연설회장에서 韓후보와 趙후보는 ‘부정선거’와 ‘명예회복’을 쟁점으로 설전을 벌였다.趙후보의 연설회때는 두 후보측 지지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등 한때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민회의 韓후보는 “이번 재선거는 3년전에 잘못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를바로잡는 선거이며 부정과 비리의 부패정치를 심판하는 선거”라며 목청을높였다.이어 등단한 趙후보는 “정부의 표적사정과 국민연금 시행과정,한·일어협정 등 국정 난맥상을 심판하는 선거”라며 “표적사정의 희생양이 된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며 지지를 호소했다.두 후보의 연설에 이어청년진보당의 崔赫후보와 曺平烈후보의 유세는 유권자들이 자리를 떠 썰렁한 가운데 진행돼 대조를 이뤘다. ▒경기 시흥 보선 각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자민련 金義在후보측은 2배 이상 한나라당 張慶宇후보를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한나라당 張후보측은 두자리수 격차를 한자리수로 좁혀 여권의 金후보를 맹반격중이라고 주장한다. 자민련 金후보측은 55%에 이르는 충청·호남권 출신 유권자들에게 기대를걸고 있으나 내심 투표율을 걱정하고 있는 눈치다.충청·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40%에 이르면 당선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나라당 張후보도 고정표가 상당수 있다며 승리를 장담한다.후보캠프는 張후보가 승세굳히기에 들어갔다고 주장하지만 당 자체분석은 ‘격차를 좁혀맹추격중’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張후보측의 주 타깃은 중년주부층.張후보 진영 관계자는 “여권단일후보가 당연히 당선될 것으로 생각하고 투표에 불참하는 유권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시흥시 시흥초등학교에서 열린 첫 합동연설회에는 자민련측에서 朴泰俊총재·金龍煥수석부총재를 비롯한 20여명의 소속의원들이,한나라당에서는李會昌총재,李基澤전총재대행,朴寬用·姜昌成·崔秉烈부총재 등 당 지도부와소속의원 20여명이 대거 투입됐다. 金후보는 “경제와 정국이 안정되려면 정부여당에 힘을 몰아줘야 한다”는정국안정과 정책전문가담임론을,張후보는 국민연금 등 현 정권의 정책혼선과 ‘시흥토박이론’을 들어 유권자를 공략했다.張후보측은 연설도중 諸廷坵전의원에 대한 묵념을 제안,‘諸廷坵정서’에 호소하기도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1,000여명의 시민들이 둘러본 연설회장에서는 선관위 직원들이 공명선거 서명을 하는 주부들에게 장바구니를 나눠주거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청각장애자들을 위해 수화로 연설내용을 알려주는 등 ‘선진 선거기법’도 동원됐다. ▒경기 안양 시장보선 국민회의 李俊炯후보와 한나라당 愼重大후보가 각각‘지역개발론’과 ‘행정경험론’을 내세우며 접전을 벌이고 있다. 李후보측의 張信奎대변인은 이날 “지난 19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수뇌부들이 안양의 3개지구당 합동개편대회를 가진 뒤 여권의 공조가 본격화되고있다”며 “李후보와 愼후보의 격차가 더벌어지고 있다”고 승리를 장담했다.국민회의는 개혁층과 젊은층을 상대로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유권자중 충청 출신이 33%,호남 출신이 26%라는 점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愼重大후보측은 역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愼후보의 安基榮대변인은 “愼후보의 인지도와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면서 “확실한 지지층인 여성표와 40∼50대를 집중 공략해 승리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안양초등학교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2,500여명의 유권자와 양당 선거운동원이 운동장을 가득 메워 유세열기를 돋웠다.한나라당 愼후보는 “행정경험이 많은 시장만이 시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서 행정전문가론을,국민회의 李후보는 “지역발전을 위해 공동여당 후보를 지지해달라”며 정치안정론에 호소했다. 국민회의는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해 鄭大哲부총재,鄭均桓총장,韓和甲총무,李允洙 崔喜準 尹鐵相 李錫玄의원 등이 대거 합동연설회장을 찾았다.무소속의 洪思德의원도 李후보를 지지하려고 참석했다.한나라당의 李會昌총재와 辛卿植총장,李富榮총무,李相得정책위의장 등은 오전 11시 안양 중앙성당에서 미사를 한 뒤 중앙시장을 돌며 愼후보 지지를 호소했다.李총재 등은 합동연설회장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 [사설] 재보선 과열 우려된다

    3·30 재보선 선거전이 14일부터 공식화됐다.서울 구로을 및 경기 시흥의국회의원 선거전과 안양의 시장 선거전이 그것이다.각 후보들은 오는 29일자정까지 정당연설회와 거리유세 등으로 득표활동을 펼친다.그런데 초반부터 선거전은 과열로 치닫는다.과열은 탈선을 빚어내기 쉽다.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온갖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게 만든다.준법과 냉정을 촉구하지 않을 수없다. 사실인즉 이번 선거는 과열이 예고됐던 것이나 마찬가지다.여야가 사력을다해 맞붙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치부되고 있다.그것이 선거전을 뜨겁게 만드는 첫번째 이유다.뿐만 아니라 정국주도권의 향방을 결정하는 선거로 인식되고 있다.이것 역시 선거판을 뜨겁게 달구는 또다른 이유다. 이런 시각을 반증해주고 있는 건가.선거전은 벌써 선거운동이 공식화되기전부터 험악해지기 시작했다.말부터가 거칠어졌다.정치권은 지금 독설 파문으로 술렁거린다.한나라당 李富榮총무가 뱉은 독설 때문이다.말이 거칠면 선거판이 거칠어질 것은 당연하다.이런 식으로 간다면 재보선 선거운동의 전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선거판에서 품위를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아무 말이나 마구 퍼부어대면 선거판은 난장판이 된다.선거판이 난장판이 되면 정치가 난장판이 된다.품위 없는 정치의 피해자는 언제나 애꿎은 국민이었다.제발 말부터 좀 조신(操身)해 주어야겠다.말을 조신한다면 선거판이 꼭 품위가 없으란 법도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체제의 선거가 얼마간 시끄러운 건 감수해야 할 일이다.그렇지만정책 대결로 시끄러워야 한다.상호 비방이나 불법,타락으로 시끄러워서는 안된다.정책 대결은 유권자의 선택을 돕지만 그렇지 않을 땐 유권자를 혼란시킨다.따라서 선거는 준법과 민주주의적 질서 안에서 치러져야 한다.이번 재보선도 그렇게 돼야 함을 유권자들은 엄숙히 요구하고 있다.또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각종 선거행사의 집행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말할 것 없고 시민단체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 과열선거가 낳을 후유증은 여러가지이다.그 중에서 자칫 치유할 수 없는 지역주민간의 불화와 반목이 조성될 수 있다.수도권 선거구는 경향 각지에 연(緣)을 둔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따라서 선거운동이 과열될 때 반목과 갈등은 유발되기 쉽다.그런 선거는 안치름만도 못하다.어쨌든 이것만으로도 선거과열을 막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과열은 식혀야 한다.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곧 도입

    [워싱턴 柳敏특파원] 미국을 방문중인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한국시간 27일 새벽(한국시간) 정치구조개혁과 관련해 “1.4분기내에 소선거구제를 포함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해 법개정을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趙대행은 미 헤리티지 재단 초청 연설에서 “우리는 지금 정당제도,선거제도,국회제도 등 정치부분 3대 제도의 개혁을 통해 돈 안드는 정치,부정부패의 연결고리를 끊는 정치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법개정을 추진중”이라며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은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연설에서 “우리의 정치개혁이 더딘 걸음을 보이는 것은 과거 수십년간 우리 정치와 경제를 움직이던 수구세력의 반발때문”이라면서 “정당제도 등 나머지 정치분야에 대한 개혁도 오는상반기까지 마무리짓겠다”고 강조했다.
  • [제2공화국 張勉](1) 국토건설사업(上)

    1961년 2월27일 오후 2시.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앞 광장은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기로 가득찼다.국토건설에 앞장설 이 땅의 젊은이 2,000여명이 교육을 마치고 수료식을 갖는 자리였다.녹회색 모자와 작업복 차림의 건장한 청년들이 도열한 주위를 가족·친지 그리고 ‘형들이 가는 길 우리도 따르리’라고 쓴 플래카드를 든 남녀 중고생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단상에 앉은 尹潽善대통령 張勉총리 등 3부요인도 기대와 흥분에 찬 모습들이었다.尹대통령이 “국토건설사업은 모든 산업건설의 기간이 되는 것인 만큼 여러분이 이 사업의 중심인물이 되리라고 크게 기대한다”고 치하한 데이어 張총리도 “이 사업에 여러분이 가진 젊은 의기와 예지를 송두리째 투입한다면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굳게 믿는다”고 격려했다. 수료식을 마친 국토건설사업 요원들은 삽 한자루씩을 멘 채 서울시가를 행진했다.咸錫憲·張俊河 등 당대의 지성인들과 장면내각의 金永善재무장관 鄭憲柱국무원사무처장 등 각료들이 대열을 이끌었고 국회의원도 여러명 가담했다.장면정부에 사사건건 트집을 일삼던 민주당과 신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합세한 것은 이변이었다. 이날의 시가행진은 장면정부가 내건 ‘경제제일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또 그 대열에 지식인들과 여야 정치인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함으로써국토건설사업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쌀 한가마에 1만4,000∼1만7,000환(현시세 17만4,400원) 하던 시절에 장면정부는 61년 한해에만 400억환을 투입하고 연인원 4,500만명을 동원하는 대규모 국토개발 사업을 벌이겠다고 공표했다.‘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군사혁명을 스스로 불러들였다’고 알려진 제2공화국의 장면정부,그 나약하고정쟁만 일삼았다는 정부가 정말 이처럼 원대한 포부를 가졌을까.계획을 세웠더라도 실제로 집행할 능력은 있었을까. 그러나 국토건설사업은 민주당이 추진한 경제정책 가운데 한 부분일 뿐이었다.1960년 4월혁명의 결과로 그해 8월 출범한 장면정부는 국정의 중점을 경제발전에 두었다.장면은 60년 8월27일 총리 취임후 민의원(民議院)에 나가취임인사 겸 시정연설을 하면서 “당면한 민족적 과제인 경제적 건설을 수행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껴마지 않는다”고 말했다.그가 훗날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경제 안정을 기한 후에야 정국안정을 바랄 수 있고 참된 민주주의 실현이 가능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장면정부는 경제발전 방안으로 두 가지 큰 틀을 구상했다.하나는 장기목표인 ‘경제개발5개년계획’이고 다른 하나가 국내경기를 단시일에 활성화하는 국토건설사업이었다. 국토건설사업이 국민 앞에 실체를 드러낸 때는 60년 11월28일이었다.정부는 이날 ‘국토건설사업’이라 이름붙인 대규모 공공사업계획을 발표하고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그 규모는 단군이래 첫 국토종합개발답게 가히 ‘혁명적’이었다.소양강댐·춘천댐·남강댐 건설을 비롯해 발전소 및 도로 건설,농지개간,수자원개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이고 다목적인 계획이었다.장면정부는 60년 12월 경제4부장관회의를 열어 61년분 제1차 추가경정예산에 사업비 280억환을 계상하기로 결정했고 이어 61년 1월에는 국토개발특별회계법을 제정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6·25가 휴전으로 끝맺은 지 10년이 채 안돼 전쟁의 상흔이 국토 곳곳에 남았고,이승만정권 말기의 폭정(暴政)탓에 국력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에서장면정부는 무슨 힘이 있어 이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을까. 그 무렵 국가재정은 절반 가까이를 미국 원조에 의존했다.장면정부는 국토개발을 꼭 이루어야 한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기에 자신있게 청사진을 마련할 수 있었다.미국 정부가 국토건설사업을장면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고 이를 적극 지원하였음은,대한매일이 이번에처음 공개하는 일련의 미 국무부 문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장면정부는 출범후 곧바로 국토건설사업 준비에 들어갔다.먼저 국토건설사업본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책임자를 물색했다.장면정부가 지목한 적임자는‘사상계’ 사장인 장준하였다.올곧은 지식인의 표상이자 반독재 민주투쟁의 상징인 그가 한때 국토개발에 앞장선 사실을 지금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4월혁명후 장준하는 사상계의 편집위원과 필진을 주축으로 학계·언론계·문화계·경제계의 주요인사 30여명을 모아 ‘국제연구소’를 운영했다.‘국제연구’를 내걸었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국정운영을 연구하는 데 주력했다. 이렇다 할 정책연구기관이 없던 시절이라 국제연구소는 정책의 산실로 떠올랐고,연구위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분야가 국토개발이었다.정책 수립에 골몰하던 장면정부가 장준하와 그를 뒷받침하는 국제연구소 멤버들에게‘구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사상계에서 일하다 장준하를 따라 국토건설사업에 참여한 朴敬洙씨(69·작가)는 “장면정부가 출범 직후인 60년 8월말 장준하선생에게 국토건설사업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고 기억했다.장준하는 거듭 사양하다가 결국 ‘국토개발은 시대적 의무’라는 명분에 져 수락하게 된다. 국토건설사업본부는 총리 직속이었지만 실제로는 관민이 함께 운영하는 반관반민(半官半民)성격의 독립기구였다.본부장은 장면총리가 겸임했고 장준하는 수석부장으로서 본부장 대리 구실을하는 기획부장을 맡았다.또 사상계편집위원인 申應均과 李萬甲이 관리부장·조사연구부장으로,일제때 한강철교를 설계한 崔景烈이 기술부장으로 들어왔다.박경수씨는 간사로 임명됐다.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 팀이 사업본부 지휘부를 형성함으로써 장면정부는국토개발에 필요한 두뇌와 함께 지식인층의 지지를 얻었고 그 기반 위에서자신있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국무부문서에 나타난 ‘국토건설’ 펑가 ‘제2공화국과 張勉’연재에 정치학 박사 전상숙 씨(이화여대 강사)가 동참합니다.田박사는 지난 97년 8월부터 1년동안 미국에 머무르면서 1960∼63년에작성된 미 국무부 한국관련 문서 1만여점을 조사·연구했습니다.그 축적을토대로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새 사료를 통해 당시 미국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어떻게 평가했는지,이에 따른 대한(對韓)정책은 무엇이었는지를깊이 있게 분석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장면정부가 물려받은 경제상태는 매우 불안한 것이었다.빈약한 자원에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산업시설의 대량파괴,예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방비,그리고 부패하고 허약한 관료집단이 주원인이었다.장면정부는 뉴딜정책과 같은공공사업을 통해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곧 1960년 11월발표된 ‘국토건설사업’이다. 장면정부는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줄 것을 미국에 요청했고,미국도경제원조가 장면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하다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나섰다.이같은 사실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소장한 미 국무부문서(RG59)중 여러건에서 확인된다. 매카나기 주한미대사가 61년 3월11일 미 국무부에 보고한 전문(A)에는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평가가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장면정부하의 한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식량부족과춘궁기(보릿고개)·대졸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국토건설사업이 큰 도움이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아울러 경제발전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머지않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시위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이 때문에 미국은 장면정부의 시책 가운데 국토건설사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이보다 열흘 앞선 보고서(B)에서는 매카나기와 한국 金永善재무장관의 대담내용이 자세히 들어 있다.김장관은 국토건설사업이 시작됐음을 알린 뒤 미국이 이미 제공한 지원금 2,000만달러를 유용하게 사용할 것임을 약속했다.이어 경제개발을 위해서도 한·일간의 전면적인 외교관계 수립은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측도 양국의 국교정상화가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빨리 이루어지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이뤄 일본이한국에 경제원조를 하도록 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이익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보여준 것이다. 국토건설사업에 대한 미국측 지원이 변함 없음은 매카나기의 후임인 마셜그린 대리대사가 4월18일 장면총리와 대화한 내용을 담은 전문(C)에도 그대로 나타난다.그린은 국토건설사업에 1,500만달러를 추가 원조하기로 결정했음을 통보하면서 지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도 명시하고 있다. 이같은 한·미간의 국토개발 노력은 그러나 5·16으로 중단돼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
  • 與野 총무·총장회담 안팎

    여야 대화가 활기를 띠고 있다.정치복원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지된다.장애물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총무접촉이 시작되고,사무총장 만남이 속도를 더하고 있다. 국민회의 韓和甲·자민련 具天書·한나라당 李富榮 3당 원내 총무는 18일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만나 임시국회 일정 및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결과도 좋았다. ▒여권은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의 방미 등 일정으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늦추자는 의견을 내놓았다.한나라당은 이를 흔쾌히 받아 대표연설을 다음 임시국회로 넘겼다.대화 정국의 최대 난관인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도 내달 2∼4일 본회의 대정부 질문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물론 야당이 상정할 예정인 朴相千 법무장관 해임건의안,金泰政 검찰총장의 탄액소추안과 일괄처리하는 선이다.그러나 여야의 합의대로 표결처리까지 갈지는 미지수다.여권이徐의원을 대화정국의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볼모가 필요 없는 대화정국이 조성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총재회담도 시기와 의제만 남겨 놓고 있다.국민회의 鄭均桓·한나라당 辛卿植 양당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비공식 접촉을 갖고 의중을 탐색했다.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辛총장은 “대통령이 야당을 파괴하지않겠다는 선언을 해 달라”고 요구했다.이에 鄭총장은 “야당이 지역감정을조장하지 말고,경제회생을 막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서로의 입장을 지도부에 보고한 뒤 다시 만나 총재회담의 시기와 의제를 논의하기로 했다.이날접촉에서 辛총장은 그동안 총재회담의 전제조건이었던 ‘정계개편 포기선언’을 ‘야당파괴 중지’로 표현,눈길을 끌었다.‘야당파괴 중지’는 ‘정계개편 중단’과 일맥 상통한다.좀더 좁혀 말하면 여권이 주장하는 ‘인위적정계 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표현에 오히려 가깝기 때문이다.여권에서는 중요한 걸림돌이 제거됐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시기는 유동적이다.金大中 대통령의 21일 국민과의 대화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한나라당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다.安澤秀 대변인은 “오는 21일 金大中대통령의 ‘국민과의 TV대화’를 지켜보며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이같은 기류를 전했다.여권은 그러나 25일 취임 1주년 이전에 여야 총재회담이 이뤄질 것을 고대하고 있다. ▒대화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여권은 의미 심장한 ‘화두’를 던졌다.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올해는 국민화합과 민주화의 신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정국을 대화 정국으로 이끌어 국민들의 정치불안과 불신을 씻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간부회의 분위기를 전했다.향후 정국의 바로미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한나라당은 선거법 및 정당법개혁에 여전히 미온적이다. 그러나 이날 총무회담에서 임시국회 회기내에 국회법 개정에 합의,가능성을열었다.대화정국이 만개해 가는 느낌이다. 吳豊淵 姜東亨yunbin@
  • 정국정상화 본격 절충

    여야는 18일 사무총장및 총무회담을 갖고 총재회담 등 정국정상화 방안을논의했다. 국민회의 鄭均桓·한나라당 辛卿植사무총장은 회동에서 총재회담 일정과 의제등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鄭총장은 “야당이 경제회생의 분위기를 살려나가기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고,辛총장은 “대통령이 야당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민회의 韓和甲·자민련 具天書·한나라당 李富榮총무도 오후 국회운영위원장실에서 회담을 갖고 다음 달 2∼4일중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朴相千법무장관 해임건의안,金泰政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을 일괄 처리하기로 의견 접근을 보았다.일정은 추후 확정키로 했다. 3당 총무는 이번 임시국회 기간 중 국회법만이라도 개정,국회의 구조조정이 가능하도록 합의했다.그러나 당초 합의했던 3당 대표연설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다음 달 3∼5일 갖기로 했던 대정부 질문도 5∼7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국회의원 축구시합 등 친선모임이 있어 하루씩 앞당기기로 했다. 吳豊淵 郭太憲poongynn@
  • 여야, 설 연휴 다각 물밑접촉

    여야는 설 연휴 직후인 18일 3당총무회담을 갖고 교섭단체대표 연설 등 제201회 임시국회 의사일정의 조정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국민회의 韓和甲총무는 13일 한나라당 李富榮총무에게 전화를 걸어 12일 총무회담에서 3당 교섭단체대표 연설을 실시키로 합의했지만 趙世衡 총재 권한대행의 미국방문 기간과 겹쳐,연설을 생략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와함께 설 연휴기간 또는 연휴가 끝난 뒤 사무총장 회담을 비롯,다각적인 대화채널을 가동해 여야 총재회담의 성사여부를 타진하는 등 정국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姜東亨 yunbin@
  • 3黨총무회담 뒷얘기

    12일 총무회담에서는 여야 3당간 복잡한 속사정이 드러났다.첨예한 현안은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朴相千법무장관 해임건의안,金泰政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의 일괄 처리문제였다.합의문에는 “이번 회기 중 3당 총무가 다시 협의한다”고만 돼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각 당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자민련 具天書총무가 “3개 모두 처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먼저 운을 뗐다.한나라당 李富榮총무가‘회기 내 일괄 처리’를 주장했으나 具총무의 태도가 완강했다고 한다.국민회의 韓和甲총무는 별 언급이 없었다. ‘3당 교섭단체 대표연설’도 具총무가 제의했다.총재회담을 둘러싼 국민회의·한나라당 위주의 대치 정국이 자민련의 소외감을 자극했다는 설명이다. 국민회의는 회담 결과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그러나 한나라당 일각에서는고개를 갸우뚱거렸다.당초 대정부질문 시기를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5일 전후로 잡았으나 3월 초로 양보하는 바람에 전략적 효과가 반감됐다는 것이다. 특히 201·202회 임시국회 사이에 열흘남짓 간격을 두기로 미리 합의한 점도 향후 대여(對與)투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방탄국회’의 비난을 원천봉쇄하는 취지라지만 3개 사안의 일괄 처리가 지연되면 한나라당이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朴찬玖 ckpark@
  • 국회 22일부터 정상화

    설연휴 이후 정국이 본격 대화국면을 맞을 전망이다.여야는 12일 총무회담을 갖고 한나라당이 단독소집한 제201회 임시국회를 22일부터 정상화해 다음달 9일까지 열기로 했다. 여야는 또 이번 회기 내에 국회사무처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방침이다. 여야는 특히 임시국회가 더 이상 ‘방탄국회’가 되지 않도록 다음 임시국회는 3월20일 이후 3당간 합의로 소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야는 임시국회 일정과 관련,22일 개회식,23일부터 27일까지 상임위활동▒3월 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3월 3일부터 5일까지 대정부 질문을 벌이기로했다. 여야는 그러나 한나라당 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과 朴相千법무장관 해임건의안 및 金泰政검찰총장 탄핵소추안 처리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해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 대화정국 복원을

    오랜만에 냉동정국에 해동(解凍)의 조짐이 보인다.무엇보다 金大中대통령은 金杞載행자부장관과 金正吉청와대정무수석의 임명을 통해 지역화합과 대화정치의 의지를 확연하게 보여주었다.金신임정무수석도 정치에서의 ‘햇볕정책’을 강조하고 있고 인사차 한나라당을 방문하면 이같은 입장을 전할 것이라고 한다.한나라당도 이번 인사와 관련,‘여야 타협을 통한 진정한 상생(相生)의 정치’를 기대하며 이례적으로 ‘환영’을 표시했다. 대화정국에로의 복원을 희망하는 신호음은 조금 더 확산되고 있다.여권에서는 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이 야당의원의 영입작업을 진행시키지 않고 있다고밝히는가 하면 야당은 金대통령이 여야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취임 1주년 연설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경색정국에서 대화정국에로의 대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전기는 현실적으로여야총재회담뿐이다.지난달 초에도 어렵사리 여야총재회담의 분위기가 성숙되는가 싶더니 결국 무산되어 버렸고 그 이후에도 한두 차례 여야간에 절충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현재 여야대화정치를 가로 막고 있는 장애는 그동안 누적되어 온 여야간의 상호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이 불신을 해소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권으로서는 이번 인사조치를 통해 대화와 화합의 의지를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고 야당이 우려하고 있는 ‘야당의원 빼가기’도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그렇다면 이제는 야당이 응답할 차례다.무엇보다 장외투쟁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여(對與)메시지가 될 것이다.그동안 마산,구미에 이어 7일 인천·부평집회를 끝낸 만큼 야당으로서도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졌다고 볼 수 있다.계속 장내외투쟁의 병행방침을 고집한다면 결코 여당의 대야(對野)불신도 덜어 줄 수가 없을 것이다. 대화정치를 복원하는데 있어 잠복된 난제도 만만치는 않다.국세청을 동원한 불법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한 徐相穆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여당 단독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제청문회의 마무리 문제 등도 여야대화정치의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없지 않다.그러나 이들 문제는 정파(政派)이기주의라는 소아(小我)를 버리고 의회정치의 대의명분에 따라 대국적인 견지에서 처리하면 큰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여야는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이번 주말로 경제청문회가 종료되는 만큼주초부터 여야 원내총무를 비롯한 모든 가용한 채널을 동원하여 여야총재회담이 성사되도록 사전 정지작업을 적극 펴야 할 것이다.여야는 이번 주중에 대화정치의 여건을 조성해놓지 못 하면 설 연휴 귀향활동에서 지역구민들로부터도 호된 질책을 받게 될 것이다.
  • 여야 총재회담 성사돼야

    냉각정국이 한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총재회담이 모색되고있다.한나라당의 李會昌총재가 지난 24일 마산집회를 통해 金大中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의했고 金대통령이 25일 회담용의를 표시하고 이에 필요한 대야접촉을 여당측에 지시했다. 한나라당은 총재회담의 조건으로 여당의 국회 본회의 안건 변칙처리 등에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함께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할 것을 내걸고 있다고 한다.그러나 한나라당은 金대통령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여야 총재회담을 준비시키면서도 ‘사과’를 거부하고 나선 것은 총재회담을 할 생각이없는 것으로 본다며 대규모 장외집회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는 차제에 정치권이 여야 총재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 경색정국을 대화정국으로 전환하는 일대 계기를 만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이와 관련하여먼저 한나라당은 무조건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여당과의 협상을 통해 대화정국을 여는 접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대규모 옥외집회 등 거리 투쟁을 계속하면서 여야 총재회담을 추진하겠다는것은 누가보아도 진실한 대화준비의 자세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또 야당이 ‘정치사찰의혹’문제와 관련자 문책을 계속 제기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한다면 이 또한 진정한 협상의 태도가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은 마산집회를 통해 민심의 소재가 확인됐다며 여당이 정당한 지역민심의 표출을 지역감정으로 몰아붙인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일부 연사들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연설을 한 것은 야당 집회가 지역정서에 편승하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야당은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영호남의 골을 깊게 하는 대중집회를 더 이상 열어서는 안될 것이다. 여당은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은 결국 여권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여야 총재회담의 성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그간의 정국 흐름에비추어 볼때 경제청문회의 여당 단독운영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으나 다시 한번 야당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야당이 주장하는 특위 구성의 여야 동수는 어렵다 하더라도 청문회 운영자체를 여야 합의제 형식으로 운영하는 등 우회적인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것이다. 여야는 대화정국으로의 대전환을 가져올 여야 총재회담의 불씨를 조심스럽게 지펴나가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여야 중진들간에 모든 가용 채널을동원하여 정치현안들에 대한 최대의 공약수를 찾도록 해야 한다.그러나 이공약수는 어디까지나 원칙있는 타협이 되어야지 밀실에서의 야합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시민단체 공동 신년하례회

    한국시민단체협의회(공동대표 李世中)는 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 제회의장에서 각 시민·사회단체장 및 관련 인사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단체 공동 신년하례회를 가졌다. 韓勝憲 감사원장,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金成勳 농림부장관,申樂均 문화관 광부장관을 비롯,李美卿 한나라당 국회의원,李敦明 변호사,宋月珠·李卨兆 스님,金性洙 성공회 주교,池銀姬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宋寶炅 소비자 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 모임 회장,崔冽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吳在植 월드비 전 회장,孫鳳淑 정치개혁시민연대 대표,張元 녹색연합 사무총장,朴元淳 참여 연대 사무처장,李亨模 시민의 신문 사장 등이 참석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정치개혁시민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 등을 대표한 6 명은 3분 연설을 통해 정치와 경제·사회·환경분야 등에서의 ‘중단없는 개 혁’을 정부에 요구했다.이를 위해 시민·사회단체는 착실하게 올해의 운동 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金榮中 jeunesse@ [金榮中 jeunesse@]
  • 청소년교육연 ‘일본 문화의 개방이 청소년 교육에‘ 정책토론회

    ◎청소년 80.4% 일본문화 영향/옷차림·말투·어법까지 흉낸/건전한 대중문화 육성해야 한국청소년교육연구소(이사장 咸鍾漢)는 12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일본 문화의 개방이 청소년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강원대 韓敬九 교수가 ‘일본 문화의 개방에 따른 사회문화적 예상 문제’,인천교대 鄭文誠 교수가 ‘일본 문화의 유입에 따른 청소년 교육의 예상문제 및 대책’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첫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韓교수는 “일본 대중문화 산업은 우리에 비해 자본,상품 공급 능력,마켓팅 기법에서 월등히 앞서 대일 적자가 늘고 일부 국내 산업은 궤멸될 것”이라고 우려했다.韓교수는 또 “사회·문화적으로 과거에 대한 진정한 청산 없는 완전 개방으로 일본문화의 지배가 강화되고 심지어 말투나 어법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애니메이션의 95%,단행본 만화의 90% 이상을 일본 상품이 장악하고 있다”면서 “2세들이 우리 세대와 다른 인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두번째로 주제발표를 한 鄭교수는 “일본 만화를 최초로 본 시기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들은 평균 9.7세,중학생은 10.9세,고등학생은 12.2세 때라고 대답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80.4%가 일본문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본 만화·위성방송·비디오 등은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에 앞서 연세대 韓駿相 교수는 기조연설을 통해 “일본문화를 사회문제로 보는 시각이나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두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韓교수는 “일방적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바이러스처럼 침투하고 있다”고 현실을 평가하고 “성인들이 대중문화를 제길로 이끈다면 일본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는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李해찬 교육부장관,金道洙 단국대 총장을 비롯한 정·관·교육계 인사 및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 인권 법·제도적 정착 최선/金 대통령 세계인권선언 기념식 연설

    정부는 10일 오전 10시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金大中 대통령과 朴浚圭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金容俊 헌법재판소장,咸正鎬 변협회장을 비롯,시민단체 회원등 1,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50회 세계인권선언 기념식을 가졌다. 인권선언 기념일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金대통령은 “과거처럼 권력의 폭압으로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사회적 환경과 제도 및 문화를 만들어나가는,더욱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인권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정부는 인권법의 제정과 인권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인권이 법적·제도적으로 더욱 확고히 정착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국내 인권개선 상황 보고’를 통해 “인권법이 제정돼 내년에 인권위원회가 활동을 개시하면 전반적인 인권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인권국가로서의 이미지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인권보호와 신장에 크게이바지한 李敦明 변호사가 국민훈장 무궁화장,崔昌植 한국갱생보호공단 이사장이 국민훈장 모란장,吳文植 법무사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또 文昌河 제주지검 범죄예방위원과 周先應 인천구치소 종교위원,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성남지부 등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 일부 의원들의 질의 말투를 보며(박갑천 칼럼)

    말투에는 사람됨이 어린다.만무방들 몫다툼 말투와 법도있는 안방 고부간의 말투가 어찌 같겠는가.직업성도 나타난다.도떼기시장과 학교강단 같은.그뿐만이 아니다.말투에는 그 사회의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다.그것은 북녘의 방송을 들으면서도 느낄수 있는 일이다.남녘의 귓전으로는 무언지 모르게 거부반응이 와닿는 부자연스러운 소리.하기야 남녘도‘대한늬우스’시절의 이런저런 소식 전달하는 소리는 그런 유형이었다. 일부 국회의원의 대정부 질의 말투를 들으면서 위화감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질의를 연설로 착각하는 듯한 태도부터 그렇다.‘선거구민용’이라는 말도 나온다.그건 그래도 나은 편.어떤 경우는 “이것이 의사당에서 내는 소리야!”라는 듯이 기묘한 억양과 가성을 배앝는다.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연극성’일 뿐이다.더러 흥분해야 할 대목이 없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말투만은 답변하는 사람들같이 대화형식의 ‘정상적’인 것이었으면 한다. 그런 말투다 보니 문책성 질의에서 듣기 거북해지는 표현도 나온다.그래야만 금배지의 권위가서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국민도 이제는 자유당시절의 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권위도 조작된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에서 발산된 것이라야겠다는 뜻이다. 디즈레일리 전기를 쓴 프라우드는 그런 사례를 적절한 예화를 곁들여 전하고 있다.­런던극장에 여배우들이 모였다.그들은 디즈레일리와 글래드스턴중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가를 화제에 올렸다.거기 있는 모든 여배우가 디즈레일리를 꼽았다.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만이 글래드스턴쪽을 선택한다.“어머,웬일이야”하면서 모두가 의아해하자 그 여배우는 말한다.“왜들 이래.나는 글래드스턴과 결혼한 다음 디즈레일리와 사랑의 도피행을 하려고 해.그때의 글래드스턴 얼굴좀 볼까 하고”­.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특히 여자문제에 엄격했고 돈문제에 깨끗하게 처신하면서 ‘내면의 권위’를 지켜나간 것이 디즈레일리 인기의 본질이었다고 프라우드는 평가한다. 질의 하나에도 그런 내면의 권위는 나타나는 법이다.야릇하고 괴상한 말투에서 국민은 무엇을 느끼겠는가.국회는 말투의민주화부터 이뤄야겠다.다음 (101장)을 재담·기지를 쓰자는 말로 받아들여보자. “말은 착하고 부드럽게 하라.악기를 치면 부드러운 소리가 나듯이 말을 하면 몸에 시비가 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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