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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미 의회도서관 새 단장(건축)

    ◎7년 보수 매듭… 백년전 화려함 되찾아 화려한 모자이크와 아름다운 벽화로 미국문화의 자존심이 되어 온 미국의회도서관이 지난 7년동안의 「때벗기기」작업을 마무리 짓고 새해 벽두 새로이 단장된 모습을 선보인다. 무려 1억권에 이르는 장서와 문서·필름등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이 도서관이 건축된 것은 1889년. 이보다 9년앞선 1880년 상원의원 대니얼 보히스가 역사발전에 있어서의 지식의 힘을 강조하며 도서관 설립을 촉구해 탄생한 도서관이다. 워싱턴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 지어진 이 도서관은 화려한 장식과 웅장함으로 당시 세계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화려함도 1백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 빛을 잃어갔다. 별다른 생각없이 쳐놓은 칸막이와 조금씩 쌓여버린 먼지들로 이 「아메리칸 르네상스」양식의 광채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85년 더이상 이 도서관이 쇠락해 가는 모습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미국전역에서 일어나면서 정부는 대대적인 복원작업에 착수했다. 칙칙하게 퇴색한 천장의 벽화를 원래의 색으로 덧칠하고 대리석의 때를 벗기는 작업에서부터 황금빛으로 도금된 석고장식 속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작업까지 벌였다. 장장 7년동안 수백명의 전문가가 동원된 이 복원작업에 소요된 비용은 1백년전 이 건물을 처음 지을때 들어간 6백만달러보다 무려 13배가 넘는 8천1백60만달러(약 6백60억원)에 이른다. 제임스 빌링턴 도서관 사서는 『새로이 드러난 찬란함에 넋을 잃었다』면서 『1백년의 역사를 한눈에 생생히 보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새해 1월 맞이하게 될 의회도서관의 「제2의 탄생」은 미국민들에게 세계유일의 초강대국민이라는 힘의 자존심과 함께 문화적 긍지마저도 한껏 심어 줄 것으로 보인다.
  • 친목도모·체력증진 일거양득(이런모임)

    ◎20년 역사 백50명회원 가진 「국회탁구부」/여가시간 이용 땀흘리며 이해폭도 넓혀 국회에는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사무처 및 도서관 직원들로 구성된 16개의 친목단체가 다양하게 이뤄져 있다. 「탁구회」 「산악회」 「테니스회」 「축구회」 「서도회」등 일반 친목단체 13개와 종교관련단체 3개 등이다. 이 가운데 탁구회(회장 조재석국방위전문위원·54)는 단연 눈에 띄는 모임이다. 회원수도 여직원 30여명을 포함해 1백50여명으로 가장 많고 다른 운동이나 모임에 비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탓에 다른 모임보다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지하 1층에 있는 대형탁구장은 점심시간이 되면 모두 10대의 탁구대가 항상 꽉 차 있다. 퇴근시간이 지난 하오 6시이후에도 탁구를 치러온 회원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탁구대 옆에 놓인 의자에는 운동중간에 잠시 휴식하는 회원들끼리 하룻동안의 일이나 사무실의 분위기 등 온갖 화제를 놓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 1백70평 규모의 탁구장은 회원들만의 전용물이 아니다. 여야 의원들은 물론 비서진 등 비회원들도 국회 회기중이 아니거나 모처럼 시간이 나면 가끔 이곳에 들러 땀을 내고 간다. 의정활동을 둘러싸고 서로의 이견으로 다투기 일쑤지만 조그마한 탁구공을 주고받으며 함께 운동하는 동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맞는 것이다. 이처럼 회원 비회원을 막론하고 친목과 유대의 장인 국회탁구회가 생긴 것은 지난 72년. 정현숙·이에리사선수가 유고의 사라예보에서 세계를 첫 제패한뒤 국내에 대대적으로 탁구붐이 일던 시기이다. 당시 탁구를 좋아하던 사무처와 도서관직원 25명이 자연스레 모여 「국회탁구동우회」를 발족시키게 됐다. 이어 지난 86년 정식명칭을 국회탁구회로 개칭해 지금까지 지속되면서 회원은 초창기보다 6배나 늘었다. 탁구회는 그동안 각종 직장 종별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구 민주공화당총재 영부인컵 탁구대회에서 지난 74년 제2회부터 5년간 연속우승을 비롯,82년 서울시장기 직장종별탁구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매회 참가하고 있다. 이와함께 1년에 두차례 국회비회기를 이용해 부서별 대회를 열고 있으며 정당·행정부·언론사의 동호모임과도 친선경기를 자주 갖는다. 비회기동안에는 매주 수요일 하오를 체육의 날로 정해 업무에 지장이 없는 한도에서 연습하고 있다. 회장 조위원은 『3천명이나 되는 직원들끼리 이런 기회를 통해 개인의 체력증진은 서로의 고충이나 의견교환을 통해 유대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 미­EC 농산협정/독 농민 반대시위

    【본 로이터 AFP 연합】 최근 타결된 미·EC 간의 농산물무역협상에 반대하는 성난 독일농부 5만명이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을 3일 앞둔 8일 트랙터 7백대 등을 동원해 본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정부에 재협상을 촉구했다. 농부들은 농무부 청사 앞에 건초더미를 쏟아붓고 미대사관 앞에서는 건초에 불을 질렀으며 미국산 자동차 한 대를 불태우고 농민노조 위원장에게 달걀을 투척하는등 격분을 표출했으며 일부 농민들은 『헬무트 나와라』고 외치며 총리실과 국회의사당 및 농무부청사 안으로 몰려들어가려다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 부토 파키스탄 전 총리 피체/반정시위대­진압경찰 대규모 충돌

    【이슬라마바드·라발핀디 AFP 로이터 연합】 베나지르 부토 전파키스탄총리가 18일 내각사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려다 경찰에 체포됐다. 부토전총리는 이날 하오(현지시간)지지세력들과 함께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이슬라마바드의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하기 위해 군중들이 대기중이던 라발핀디로 향하려다 최루탄을 난사하며 저지하는 2백여명의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경찰은 또 부토여사외에 그녀의 후임자였던 람 무스타파 자토이전총리등 다른 정치지도자들도 체포했다. 부토여사는 이날 3만∼4만명의 군중들에게 행한 짤막한 연설을 통해 자신이 체포된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으며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샤리프 정권이 퇴진할때까지 의사당으로 행진하라고 촉구했다. 부토여사가 경찰에 연행되자 격분한 군중들이 수천명의 진압경찰과 충돌했으나 부상자가 발생했는지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
  • 클린턴 취임행사 준비 착수/「화해와 부활」주제로 42대대통령 맞이

    ◎국회의사당 야외광장 25만명 초청 예정 클린턴 미대통령 취임 준비 위원회는 내년 1월20일(이하 현지시간)정오 워싱턴 의사당 서쪽 야외광장에서 펼쳐질 역사적인 제42대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행사를 위한 중앙 연단 골조공사와 참석자용 좌석 마련등을 위해 12일 인부를 동원,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는 자신의 취임식에 관해 이렇다할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나 취임준비위는 이번 행사의 주제를 「화해와 부활」로 정하고 취임식 기획위원으로 TV프로듀서를 임명한데 이어 취임선서와 취임사가 있을 연단 공사와 참석 인사에 대한 인선과 초청장 인쇄등을 서두르고 있다. 포드 의원은 의회가 90만6천달러를 예산으로 할당했으며 참석인사 25만명에 대한 초청장을 곧 인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취임식을 마친 클린턴 대통령은 고어 부통령과 함께 방탄 리무진에 탑승,백악관으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가에서의 퍼레이드를 선도,이곳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축하 행렬을 맞이할 예정이다.
  • 농민들,부총리실 기습점거/추곡수매가 불만/기물파손… 46명 연행

    ◎전농소속 2백50명 9일 하오4시10분쯤 경기도 과천시 정부제2종합청사 제1동 경제기획원동에 「전국농민회총연맹」(회장 배종렬)소속 농민 2백50여명이 몰려와 추곡수매가인상과 최각규경제기획원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2시간동안 농성을 벌이다 하오 6시10분쯤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농민들은 이날 하오 4시쯤 「추곡수매가 15%인상」「벼1천1백만섬수매」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사로 진입하려다 이를 저지하는 경비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현관 회전문유리창 6개와 안내전화 1대가 파손됐다.청사내로 들어온 농민들은 1층 현관에서 연좌농성을 벌였으며 이 가운데 30여명은 7층 기획원장관실에 올라가 장관실로 통하는 비서실 책상위 유리 2장을 깼다. 경기도 과천 경찰서는 이날 강금구씨(26·전남 승주군 서면 압곡리 347)등 시위농민 46명을 집시법및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연행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앞서 「전농」소속 농민 4백여명은 이날 하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길에서 추곡수매가인상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벌이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30분만에 해산했다.
  • 김영삼총재 국회연설/요지

    저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열린 이번 정기국회에서 집권여당의 대표가 아니라 다수당 대표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직업공무원제의 확립과 신분보장책 그리고 획기적인 처우개선책을 마련할 것입니다.그러나 공명선거에 대한 위협은 관권선거만이 전부는 아닙니다.상대후보에 대한 중상비방과 흑색선전 그리고 금전살포에 의한 매표행위 역시 공명선거에 대한 중대한 위협인 것입니다.돈으로 권력을 사거나 권력으로 돈을 만들 수 있는 풍토는 사라져야 합니다. 저는 하나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그것은 저의 꿈이자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합니다.「신한국을 창조하자!」이것이 바로 그 꿈입니다.지금 이땅은 권위와 질서가무너지고 사회기강이 해이해지면서 무책임의 풍조가 만연되고 있습니다. 이 한국병의 가장 큰 원인은 윗물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저는 이를 치유하기위한 1차적 처방으로 지도층이 앞장서는 「윗물 맑기 운동」을 제창합니다. 저는 가까운 시일안에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저 자신과 가족의 재산을 국민앞에공개할 것입니다.그 다음 저는 반부패선언을 하고자 합니다.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것입니다.부정 공무원의 정화작업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윤리도 확립하겠습니다. 돈안드는 정치를 위해 정치자금법,모든 선거제도 등 법과 제도를 개혁할 것입니다.필요하다면 「부정부패 방지 특별법」제정도 추진하겠습니다.2차 처방으로 전국민을 상대로 한 근검절약,공중도덕 등 새 가치관을 확산하는 건전한 시민사회운동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공직자·근로자·기업인·농어민 모두가 참여하는 의식개혁 운동이 전개되어야 하겠습니다.이러한 의식개혁 노력과 함께 행정규제의 완화,금융개혁·재정개혁 등 경제제도의 개혁도 아울러 단행되어야 합니다. 빠른 시일안에 제조업의 경쟁력을 다 살리기 위해 기술개발 투자를 GNP의 5%까지 늘여나가도록 하겠습니다.올해 추곡 수매량과 수매가격의 책정에 있어서는 우리농민의 희망이 최대한 반영하여 작년 수준을 웃도는 선에서 결정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역간의 불균형입니다.너무 비대해진 수도권 그리고 동서간의 불균형이 그것입니다.이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고는 신한국은 불가능합니다.이를 바로잡기 위한 대담한 새 국가경영 설계가 마련돼야 합니다. 아직도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대남적화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최근 드러난 남한 조선노동당사건은 이러한 북한의 이중성을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이번에 적발된 간첩단의 관련자규모가 수백명이 넘는데도 누구 한사람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한마디로 말해 우리 정부의 직무태만이요 국민의 대북 경각심이 완전히 풀려있다는 반증입니다. 저는 지금 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연설을 끝으로 제 한평생 몸담아 온 국회를 떠나고자 합니다.민주자유당 대통령후보로서 전력투구하기 위해서 입니다.저는 25살의 젊은 나이에 이 민의의 전당에 들어왔습니다.지금까지 아홉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내온 저의 의정생활은 파란많던 우리헌정사바로 그것이라고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금 새로운 책임으로 인해 스스로 이 의사당을 떠나지만 저의 마음은 이곳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이제는 성숙해질 의회정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면서 말입니다.그동안 저의 의정생활에 성원을 아끼지않았던 국민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김영삼총재 의원직 사퇴선언문/요지

    저는 지금 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회의원으로서는 마지막이 될 연설을 여러분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연설을 끝으로 제 한평생 몸담아 온 국회를 떠나고자 합니다. 민주자유당 대통령후보로서 전력투구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다음 14대 대통령의 지위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역사적 전환점에서,그리고 한국이 세계의 먼 동쪽 끝나라에서 세계의 한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 역사적 시점에서,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위와 책임이 크다는 것을 잘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 딸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유산으로 남겨주고,밖으로는 조국을 동방의 등불로 부상시켜야 합니다. 이같은 미래가 이번 대통령선거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대통령후보는 이나라,이민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후보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으므로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자 합니다. 막상 이 의정단상을 떠나려 하니 저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습니다.이 의사당 구석구석은 저의 손길이 닿아 있고 저의 땀과 눈물로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완전한 문민시대까지 열리고 있습니다.변화의 개혁이 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새로운 책임으로 인해 스스로 이 의사당을 떠나지만 저의 마음은 이곳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이제는 성숙해질 의회정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하면서 떠납니다. 그동안 저의 의정생활에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국민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김대중 민주당대표 특별회견/대담 강수웅정치부장

    ◎“여야구분 소멸… 정책대결 해야지요”/“대선선 대화합·경제재건이 이슈/국민들,중립선언 높이 평가할것” 『서울신문과는 인터뷰를 안하려고 했습니다.25일자의 서울신문 사설과 정치관련 해설기사들 때문에…』 김대중 민주당대표는 26일 서울신문 강수웅정치부장과 가진 특별회견에서 다소 굳은 표정으로 의례적인 인사말을 생략하다시피하고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내 대표집무실에서 이루어진 회견내내 특유의 정연한 논리로 질문들을 풀어나간 김대표는 화색이 도는 건강한 모습이었으나 『감기가 들었다』며 3∼4차례 하품을 하는등 피곤한 기색도 보였다. ­강수웅정치부장=최근 김대표의 이미지 개선을 위한 「뉴 DJ플랜」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김대중대표=대화합의 정치를 펴고 있습니다.특히 그동안 소원했거나 오해를 하고 있던 세력,반대그룹등과도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경제를 번영시키며 민주통일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미지를바꾸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에는 뿌리깊은 반감이 남아있는 것같습니다. ▲많이 개선됐습니다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그렇지만 개선돼야 할 이미지는 사실 과거 정권 등의 모략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김대표는 경제문제에 탁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우리경제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고 그 치유책은 무엇입니까. ▲우리경제의 병리현상을 들자면 먼저 충분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의 자율적인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이 때문에 도시와 농촌,대기업과 중소기업,지역간의 격차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정경유착의 뿌리가 깊다는 걸 지적할 수 있습니다.권력과 대기업의 부패적인 유착이 경제의 바른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올바른 정책을 쓰는데도 실패했습니다.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육성과 기술발전,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투자를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경제리더십이 확립되지 못한 것입니다.정책이 일관성을 찾지못하고 흔들리는데서 오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없습니다. 이밖에도 투기를 막지 못해서 온 한탕주의가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풍토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민주적인 리더십이 경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6공화국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인데 만약 양금씨 가운데 한 사람이 집권하면 6공보다는 나아진다는 말씀입니까. ▲김영삼씨는 33개월동안 민자당 정권의 2인자역할을 해왔으니까 당연히 같이 책임을 져야 하지요.김총재가 특별히 개혁을 이룬 것도 아니고요.민자당이 정권을 계속 잡으면 부분적인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현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걸로 봐야합니다. ­민주당의 한계는 지지기반이 한정돼 있다는 사실인데,말하자면 신행주대교가 무너지거나 한준수전연기군수가 관권선거를 폭로했다 하더라도 정부·여당의 인기는 떨어질지언정 그것이 바로 민주당의 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우리당에 대한 지지는 급속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상승하고 있습니다.그 지지 가운데는 적극적인 부분도 있고 사적인 부분도 있겠죠.결국 문제는 부동표인데 어느 시점에 가면 유권자들이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고 우리쪽으로 오는 부동표가 많을 것입니다.우리당은 국민여망에 따라 통합야당을 이루었고 지난 전당대회에서 보듯이 완벽한 당내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있습니다.민자당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상승한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그동안 정치는 사실상 우리당이 주도해온 것입니다.6공들어 3당합당 이전까지 많은 개혁조치를 단행했습니다.또 지방자치제를 실현하기 위해 싸워온 결과 반은 이뤄논 것아닙니까.나머지 반도 곧 실현될 것이고요.오늘날 노대통령이 당적을 이탈하고 중립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우리당이 1년반전부터 주장해온 결과입니다. 이제는 여야가 없어진 마당에 정책대결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비전을 갖고 지지기반을 확산해 가는 것이지요. ­양금씨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정국을 주도해왔는데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는 예가 없는 것 아닙니까.이러한 양금시대라는 것을 정치사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유신이후 지금까지,적어도 6·29까지 양금씨가 싸우지 않았다면 군정종식이나 민주화는 없었을 것입니다.또 직선제개헌도 없었을 것이고요. 다만 김영삼씨는 90년도부터는 태도가 달라졌죠. 여하튼 우리(양금씨)에 대한 비판도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감옥에 가고 사형을 언도받으며 싸울때 우리를 비난하는 그들은 무엇을 했나 생각해봅시다.그런 부분은 전혀 안따지고 있습니다.스스로에게 참 관대한 것 같습니다. ­노태우대통령이 6·29에 이어 9·18선언을 한 것은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되는데 그에 대한 김대표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단연히 역사의식을 갖고 통치해야죠.노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국민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노대통령이 끝까지 중립에 서서 나머지 임기를 마친다면 역사적으로 위대한 평가를 받을 것이고 퇴임후에도 어떠한 과거와 관련,괴로움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대선의 이슈는 무엇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가장 큰 이슈는 국민 대화합이라고봅니다.그밖에는 경제재건,90년대의 남북관계 정립등이 주요 이슈가 되겠죠. ­무조건 국회정상화를 선언하셨는데 아직 국회가 열릴 태세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고리를 풀어줬는데 민자당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민자당이 상임위 구성을 하면서 위원장 1석 때문에 수학논리까지 무시하고 신판 사사오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중립내각의 구성이 정치권의 현안으로 부상했는데 이와관련한 김대표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 문제는 노대통령이 결정할 것입니다.그분이 협의하라고 하면 하는 것이고 필요없다면 안하는 것입니다.노대통령이 9·18정신을 입증하기 위해 진정한 중립내각을 구성한다면 우리는 계속 지지할 것입니다. ­노대통령은 3당대표가 협의해 그 결과를 건의하라는 뜻 아닙니까. ▲대통령이 직접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김대표 스스로 김영삼총재와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같이 민주주의를 하자고 해놓고 그는 여당이 됐고 나는 야당아닙니까. 국회는 개회중인데도 의사당은썰렁했다.여의도 바람은 거세었다.
  • 성역없는 수사로 의혹해소 주력/18일만에 매듭된 연기사건

    ◎한씨­관련자 진술 엇갈려 수사 난항/살포자금 조성경위 못밝혀 아쉬움 한준수전연기군수의 관권선거 폭로사건은 한씨 본인의 구속에 이은 임재길당시민자당후보의 구속,이종국충남지사의 불구속입건선에서 사건발생 18일만에 일단락됐다. 검찰이 이번 수사를 이같이 조기종결한것은 공소시효만료일(23일)이 다가오는데다 정부 여당의 「성역없는 수사및 관련자엄벌」의지가 수차례 강조돼 이를 가시화함으로써 의혹을 최대한 해소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대전지검은 지난8월31일 국회의사당내 민주당 원내총무실에서 있은 한씨의 관권선거 폭로 이후 즉시 구본성특수부장을 반장으로한 전담수사반을 편성,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초기 검찰은 폭로당사자인 한씨가 검찰의 소환에 응하지 않자 관련자료의 분석과 함께 관련공무원및 주민들을 불러 조사하는등 외곽수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검찰은 한씨가 4차례에 걸쳐 검찰의 소환에 불응 하자 지난 9일 새벽 서울 민주당사에 공권력을 투입,한씨를 강제연행했었다. 이때부터 검찰은 그동안의 기초조사및 분석자료를 토대로 한씨 주장의 진실성 여부와 관련공무원,임 당시후보의 가담정도,선거자금지원 여부,자금의 출처·유통경로,「선거지침서」관련등에 대한 집중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검찰은 수사가 일단락된 이날까지 충남도와 연기군 공무원 57명을 비롯,읍면장·이장·주민등 연인원 3백13명을 불러 추석연휴는 물론 매일 철야조사를 강행했으나 거의가 금품수수등 관련사실을 강력히 부인함으로써 수사에 난항을 겪기도했었다. 검찰은 특히 이번 사건 최대쟁점인 선거자금조성경위와 유통경로에 대해 수사의 초점을 맞췄으나 한씨가 입증자료를 제시하지 못하는데다 한씨의 진술자체도 엇갈리는 부분이 많고 관련자들 역시 한씨의 주장을 한결같이 부인함에따라 거의 실체를 규명하지 못했다. 한씨는 임씨로부터 2천5백만원,도지사에게서 2천만원,자체마련 4천만원등으로 모두 8천5백만원을 조성,이를 읍면 주민들에게 살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씨의 전면부인에다 이지사도 일부(격려금 1천만원)만을 시인했으며 자체조성자금 출처로 폭로된 조준창건설과장과 홍순령내무과장 역시 한씨의 주장을 부인,이 부분 수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에따라 검찰은 「8천5백만원」자체가 「폭로를 위해 과장됐거나」「한씨가 상당부분을 착복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하고 민주당 박계동의원에게 수사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었다. 검찰이 이지사의 사법처리를 전제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1천만원을 이지사의 진술대로 「격려금」으로 보느냐의 법률적해석이었다. 검찰은 당초 도지사까지의 「구속」을 전제로 자금부분과 함께 이른바 「선거지침서」의 직접작성 여부에 대해 증거보강수사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선거지침서로 알려진 「지방단위당면조치사항」은 문서내용 자체가 일반행정지시사항으로 판단된데다 「작성및 발송도 지방과에서 독자적으로 했다」는 당시 지방과장 김영중씨(현보령군수)의 증언으로 이지사에게 혐의를 둘수없게 됐다. 「격려금」의 해석도 『도지사를 공무원선거개입의 공모 또는 교사범으로 처벌하려해도 이미 사전선거운동을 하고있는 사람에게 돈을 준것은 이 법률적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검찰측의 지배적인 입장이나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1천만원을 준것은 임씨를 지원하라는 취지로 판단되어 국회의원선거법위반 혐의로 입건하게된것』이라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이번 수사결과 발표이후 검찰에 대한 「축소수사」비난에 대해 김종구대전지검장은 이날 수사결과를 발표한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어떻게 차단하느냐에 있는 것으로 이는 결국 사회제도적인 문제로 귀착,검찰의 수사만으로는 수습될 수 없었다』고 밝혀 검찰수사의 한계와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 국회 의정활동자료 일반 공개/빠르면 연말부터

    ◎속기록 등 간행물로… 실비 판매 국회가 발간·보유하고 있는 의정활동에 관한 모든 자료가 빠르면 올해말부터 일반인에게 판매돼 국회활동상황이 사실상 전면 공개된다. 국회는 12일 정기및 비정기간행물등 국회가 발행하거나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의정활동에 관계된 모든 자료를 일반인에게 인쇄실비로 판매하기로 결정,구체적인 사업시행준비에 들어갔다. 공개될 자료에는 국회속기록과 예산심의자료,국정감사자료,상임위활동보고서,입법참고자료등이 포함돼 모든 국민이 의정및 정부의 운영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국방·외교등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안보등을 이유로 의회를 통한 정보공개에 반대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보여 다소간의 논란도 예상된다. 국회는 올 정기국회가 끝나는대로 자료분류및 인쇄작업에 들어가 늦어도 내년초부터는 전국의 대형서점망을 통해 자료판매를 시작하고 상반기중에 국회의사당 안에 공보실직속기관으로 「국회간행물센터」를 설치,직접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국회는 최근 자료뿐만 아니라 국회가 보유하고 있는 제헌국회이후의 모든 자료도 공개할 방침이어서 현대사연구등 학술분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가 발간하는 자료는 국회도서관등 극히 일부기관에만 비치돼 의원등 국회관계자와 언론기관,대학원생이상의 학자등 제한된 인원에게만 공개,일반인의 접근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국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획득한 자료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미·일·캐나다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제도가 정착돼가고 있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 한­호 사법공조조약 체결/양국 법무 서명

    ◎증거수집·범인소재 수사등 협력 김기춘법무부장관은 25일 호주 국회의사당에서 마이클 더피 호주 법무장관과 두나라사이의 형사사법공조조약에 서명했다. 우리나라가 외국과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과 호주 두나라는 상호요청에 따라 증거수집,사람의 소재파악,압수·수색에 협력하게 되는등 사법협조체제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교통·통신의 발달로 범죄도 날로 광역화·국제화되고 있어 외국과의 수사협조가 절실한 실정이었다』고 밝히고 『이번 조약체결은 앞으로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형사사법분야의 업무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데 뜻이 있다』고 말했다. 두나라가 이날 합의한 형사사법공조조약은 범죄의 예방과 수사·기소·진압에 있어서의 공조범위와 절차에 대해 규정한 것으로 전문및 본문22개조로 짜여있다. 조약은 두나라가 형사사건과 관련된 수사및 재판절차에 있어 증거수집,소재수사,수색·압수등을 서로 공조하고 피요청국은 국내법의 범위안에서 요청국의 판사,공무원,수사등 관계자가 증거취득절차에 참여할 수 있게하는 것으로 돼있다. 또 피요청국에 구금된 사람은 본인이 동의하면 요청국의 수사에 협조할 수 있도록 요청국에 이감할 수 있으며 피요청국은 국내법의 범위안에서 요청국의 범죄이득물에 대한 확인,처분제한및 몰수조치등의 공조요청을 이행하도록 돼 있다.
  • 택시광란질주 22명 부상/정신병역 30대

    ◎인도 덮친후 도주했다 재돌진/여의도광장서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개인택시 운전사가 택시를 몰고 서울 여의도광장을 질주,시민 22명을 다치게 했다. 일요일인 16일 상오11시15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마포대교 남쪽 여의도광장입구에서 개인택시 운전사 이봉주씨(36·중랑구 면목2동 133의40)가 서울4하 1540호 스텔라 택시를 몰고 시속 50㎞의 속도로 인도로 돌진,길을 건너던 황성경양(13·성산중1년·용산구 이태원2동 694)등 7명을 치고 영등포쪽으로 달아났다. 이씨는 이어 한국방송공사와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 10분쯤뒤 다시 사고현장으로 차를 몰고 돌아와 50여명의 시민들을 향해 시속 60㎞의 속도로 돌진,도로변 80㎝ 높이의 가드레일을 들이받은뒤 김영호씨(33·인쇄공·용산구 용문동 5의 12)등 15명을 치어 중경상을 입혔다. 이씨는 사고뒤 바로 경찰에 붙잡혀 『10년전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내 시체를 팔아먹기 위해 독살하려고 해 세상사람들에게 복수하고 나도 죽으려 했다』면서 『사고를 내고 달아나다 남자답지 못한것 같아 다시 되돌아가 구경하던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리려 했다』는등 횡설수설했다. 경찰조사결과 이씨는 지난 86년부터 피해망상증세로 서울청량리정신병원·경희의료원 등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올해에도 지난 2월부터 4개월 동안 이리원광대부속병원 신경정신과에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북 김제군 축산면이 고향인 이씨는 국민학교 2년을 중퇴하고 지난 69년 상경해 세탁소·주유소 종업원으로 일하다 지난 76년 운전면허를 따 약품회사 운전사등을 거쳐 83년 1천7백만원에 개인택시를 사들여 영업을 해왔다. ○이씨 정신감정 의뢰 경찰은 17일 이씨를 일단 살인미수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검찰의 지휘를 받아 국립서울정신병원에 정신감정을 의뢰했다.
  • 국회 의원활동 제약/야 보좌관 조치 촉구/박 국회의장

    박준규국회의장과 황락주부의장은 10일 최근 여야대치상황중 야당의원 보좌관들이 국회의사당내에서 의장단과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제약하는 행동을취하고 있다고 전제,『이는 의정사상 전례가 없던 일로써 이들의 행동과 영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한다』면서 이들의 의사당내 집단행동을 중지시켜줄 것을 민주당의 이철원내총무에게 촉구했다.
  • 의원인가 「전사」인가/김만오 정치부 차장(오늘의 눈)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요즘 전장을 방불케한다. 「육탄저지조」「감시조」「비상대기조」「강경대응」「비상수단」등의 용어가 또 다시 등장했다.본회의장을 비롯한 의장실·부의장실 앞에는 민주당의원들과 보좌관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국회경위들이 동원돼 곳곳에서 지키고 있는 살벌한 분위기이다. 오랜 공전끝에 합의운영이 결렬되고 단독국회로 변질되면서 파행으로 치닫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인 악순환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는 본질적으로 「싸움하는 곳」이다.그 「싸움」은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정책현안이나 민생문제 또는 정치적인 문제를 쟁점화시켜 이성적인 싸움을 하는 곳이다. 정치적인 현안의 내용이 명확히 밝혀지면 쟁점이 부각되고 여야 상호간의 입장이 표명되어 대화·조정·타협·설득의 과정에 의해 문제가 풀려나갈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판을 보면 상대방의 견해가 거부된 상태에서 쟁점화 과정은 없고 어느 일방의 주장과 목소리만 높여 상대편을 비방·공격하면서 명분과 당리당략을 추구할 뿐 의견조정 기능을완전히 상실했다. 이러한 이전투구식의 싸움에다 지엽적·부차적인 감정까지 전이되어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8일 열린 국회는 극렬한 몸싸움 속에서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 지금 상당수 국민들은 뭐가뭔지 명확하게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있을 것이다.무엇이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이며 그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충분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이런 것들은 모두 정상적인 국회운영을 통해 알려지는 것이 상식이다. 다양한 견해와 상당한 판단력을 갖고 있는 대중이 이같은 감정에 휩쓸리게되고 정치적인 선전이나 공세속에 함몰되어 버리면 군중으로 전락하게 된다. 정치인이 정치공작·공세를 하면서 비열하게도 군중심리를 이용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이렇게 되면 여야를 떠나 사회적·국가적인 위기 상황으로 치달아 걷잡을 수 없는 사회붕괴 현상을 빚게 될 것이다. 국회는 논리와 대화를 통해 정상화되어야 한다.목전의 실리를 노려 극한 대립하는 것은 교각살오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 실망 안긴 총무회담/이도운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30일 박준규국회의장의 주선으로 국회의장실에서 열린 첫 여야 3당총무회담은 기대와는 달리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날 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연 14대 개원국회의 의사일정을 마련하자는 자리였다. 그러나 모임은 시작되기 전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국민당의 김정남총무는 회동시간을 얼마남기지 않고 뚜렷한 설명없이 불참을 통보해 박의장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민주당의 이철총무는 의원총회를 이유로 15분 늦게 의장실에 도착했다. 어쨌든 박의장과 민자·민주 두 총무는 오는 3일 본회의를 열어 이번 임시국회 회기를 30일로 정하고 새로 임명된 대법관및 감사원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자는 데 의견을 모아갔다. 그러나 국민당 김총무가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이 지난뒤 불쑥 나타나 격앙된 목소리로 『민자·민주 두 당은 누구의 허가를 받고 방(사무실)을 사용하느냐』면서 국회시설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의장이 각당의 사무실 공간을 재배분해줄 것을 요구했다. 김총무는 『정치지도자들이 국회에서 방을 사용하는 문제를 두고 시비를 건다고 욕먹을까봐 그동안 참아왔지만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어 불가불 공개거론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자·민주총무는 김총무에게 『방 배정문제까지 포함해 함께 얘기를 나눠보자』고 권했으나 김총무는 소매자락을 뿌리치고 의장실에서 나가버렸다. 김총무가 이처럼 흥분한 것은 전날(29일) 국회에 처음 나온 국민당의 정주영대표가 『왜 아직 대표 방조차 마련하지 못했느냐』며 호된 질책을 한데서 비롯됐다는 후문이다. 현재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각 방은 민자·민주당이 나누어 쓰고 있다.신생 국민당은 양당과 협의해 사무실을 새로 배정받으면 된다.전날 국회의장이 선출됐기 때문에 그동안 협의할 틈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방배정문제는 아무래도 하찮은 일에 속한다.한달여 공백끝에 겨우 문을 연 국회가 아직 의사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판에 김총무가 사소한 문제로 개원후 처음 열린 중요한 총무회담을 팽개친 행위는 어떤 이유를 제시해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협상과 협의·타협을 거부하고 본말이 전도된 행태를 앞세우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14대 국회에서는 볼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통일위해 안보태세 더 굳건히”/노 대통령 강조

    ◎북에 도발기회 줘선 안돼 노태우대통령은 22일 하오 서울신문사가 초대한 제29회 국군모범용사 부부 1백3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다과를 함께하며 격려했다.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지난 4년간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민족의 통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결과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에 우뚝서게 됐다』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안보태세를 더욱 튼튼히 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에게 도발의 기회를 주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전투력을 훌륭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사관들이 부대를 잘 뒷받침해주어야 하며 누구보다 상하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모범용사 여러분이 솔선수범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모범용사들은 상오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최세창 국방부장관에게 신고한 뒤 신우식서울신문사장 초청오찬에 이어 서울신문사를 방문,신문제작과정을 돌아봤다. 이들은 하오에는 이해원서울시장을 예방한데 이어 민경배국가보훈처장 초청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이들은 23일에는 국가안전기획부와 국회의사당을 방문하고 24일부터 지방일정에 들어가 27일까지 독립기념관 방문,전남도청 방문,대구직할시청 방문,포항제철 견학 등의 행사를 갖는다.
  • 외언내언

    지난 89년6월14일 백악관의 로즈 가든에선 한국전참전기념비 설계당선작을 선보이는 기념식이 거행됐다.당선작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4명의 공동작품으로 5백여 응모작 가운데서 뽑힌 것이다.이로부터 1년후 4교수는 시공회사측이 조형물의 설계를 임의로 변경,작품의 본뜻을 왜곡시켰다고 항의하며 설계의 원상회복을 주장하고 나섰다.자신들의 뜻은 『병사들이 전쟁을 치르고 마침내 평화의 품에 안기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호전적인 전투장면과 전쟁을 미화하는 분위기로 변조됐다는 것』이었다.◆이 기념비의 설계와 예술성에 대한 논란은 그후 각 위원회의 심의과정에서도 계속되었다.연방예술위원회는 『38명의 미군병사 입상이 두줄로 늘어선 모습이 지나치게 산만하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이에따라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병사를 19명으로 줄였다.그러나 예술위는 다시 『병사들의 모습이 공동묘지에서 걸어 나오는 유령같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수도도시계획위원회는 병사의 수를 더 줄이도록 종용했다.결국 용기에 찬 병사 16명이 성조기를 향해행진하는 모습으로 바뀐 이 조형물에 대한 최종 승인이 수도 도시계획위에서 떨어진 것은 지난 3월초였다.당선작을 놓고 근 3년간의 재심과 설계변경 기간이 소요된 것이었다.◆수백년 걸려서 지은 건축물이 흔한 서양의 사고방식으론 이정도의 심사과정은 졸속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낭비일지 모른다.70년대 서울의 중심가에 늘어섰던 조잡한 동상들이 10년도 못가 모조리 철거되고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지은지 20년도 안된 국회의사당이 볼썽사납게 쇠락한 우리의 조형문화를 상기할때 이 기념비의 우여곡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우리는 그 기념비의 조형미 이상으로 지난 40년간 미국민들 의식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참전의 뜻마저 흐려져 왜,무엇때문에,우리가 멀고 낯선 그곳에서 그처럼 희생을 해야 했느냐며 울분을 토하던 많은 노병들에게 그들의 지난날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회상의 안식처가 뒤늦게나마 워싱턴 중심지에 마련된 것을 흐뭇하게 생각한다.
  • 사회당등 불참속 일사천리 가결/PKO법 중원통과 하던날

    ◎“지연책 달리없다” 사회당등 사퇴 결행/「발원거부」 계속땐 중원해산 논란일듯 ○…15일 밤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이 PKO법안의 통과를 공표하자 본회의에 참석한 집권 자민당과 야당인 공명·민사당 의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며 환영. 의장석 옆에 앉아있던 미야자와총리도 일어나 중의원 의원들에게 인사한후 곧 퇴장했으며 다른 중의원의원들도 PKO법안이 통과된 직후 모두 퇴장했다. ○「소걸음 전술」 또 구사 ○…PKO법안의 처리를 위한 중의원 본회의는 이날 하오5시30분쯤 속개되었다.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사회당과 사민연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시작된 투표에서 자민·공명·민사등 3당 중의원의원들은 빠른 속도로 투표를 진행했으나 공산당소속 17명의 중의원들은 참의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연전술로 천천히 투표. PKO법안에 대한 투표는 공산당 당수가 하오8시25분쯤 마지막으로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종료. ○…사회당과 사민련소속 중의원들은 자신들이 제출한 의원직사퇴서가 우선적으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의원 본회의참석을 거부. ○사퇴서 수리 않겠다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이 PKO법안의 통과를 선포하자 방청석에 있던 시민들이 일어나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국회 경위들이 급히 달려가 이들을 제지. ○…PKO법안에 반대하는 많은 시민들은 국회의사당앞에서 밤늦게까지 PKO법안의 중의원 통과에 항의하는 시위를 계속. 노조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PKO법은 침략법이다』,『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반대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PKO법안 반대시위를 벌였다. ○…이날 PKO협력법안이 통과하기 12시간전 사회당과 사민련소속 중의원 1백41명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여야간 갈등의 골이 한층 깊게 패였다. 사직서 제출에도 불구,PKO법안은 중의원을 통과,성립됐지만 그 후유증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일본정계는 중의원해산,중·참의원 동시선거의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사쿠라우치의장은 15일밤 PKO법이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후 사회당과 사민련이 제출한 의원직사퇴서 처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국회운영이 정상화 될 때까지이를 보관토록 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사퇴서를 받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야자와(궁택)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수뇌진들은 『사회당이 주장하고 있는 중의원 해산및 총선거 실시 주장은 현 시점에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한편 사회당이 계속 의원직 사퇴를 고집할 경우 적절한 제재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민당 관계자들은 『국회의원은 선거를 통해 그 지위를 얻은 것으로 의원 개인의 의사로 의원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 ○긴급중집회서 결정 ○…사회당이 의원직사퇴서 제출방침을 결정한 것은 14일 하오 자민당이 제출한 내각신임안이 가결된 직후. 사회당은 당시 PKO법안의 처리를 지연시킬 수단이 「완전 동났다」고 결론짓고 당3역회의와 긴급중집회의를 열어 이를 결정. 이어 15일 상오 다나베 사회당 위원장·고에다 사민련대표는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을 방문,소속의원 사퇴서를 제출했으며 사쿠라우치의장은 『사퇴서는 내가 갖고있을 것이며 중의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토록 하겠다』고 응수. □PKO법안 처리 일지 [91년] ▲9·19=일본 각의,PKO협력법안 의결후 국회 제출 ▲10·4=국회회기 만료로 PKO법안 계속 심의 결정 ▲11·5=제1백22회 임시국회 소집,미야자와(궁택)내각 발족 ▲11·27=자민·공명 양당,중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서 PKO법안 내용 일부 수정후 통과 강행 ▲11·29=여야,PKO법안 중의원특별위 반려 합의 ▲12·2=중의원 특별위서 자민·공명 양당 찬성으로 PKO법안 가결을 확인 ▲12·3=중의원 본회의,PKO법안을 가결 ▲12·4=참의원,PKO법안 심의 시작 ▲12·20=국회회기 만료로 참의원 계속 심의 결정 [92년] ▲3·15=유엔캄보디아잠정통치기구(UNTAC)본격 시동 ▲4·27=참의원 본회의서 사회당 대안 제출,제안 설명 ▲4·28=참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서 PKO법안 심의 재개 ▲5·29=자민·공명·민사 3당,유엔평화유지군(PKF)에의 자위대참가 동결과 국회 사전승인 등을 포함시킨 재수정안 마련 합의 ▲6·5=참의원 특별위서 자민·공명·민사 3당 찬성으로 PKO법 재수정안 가결 ▲6·11=중의원 국제평화협력특별위,PKO법안 가결 ▲6·15=중의원 본회의,사회당의원 불참속 PKO 법안 통과,최종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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